雙靈山 時宮山 山行記
미리내 聖地를 가다
農夫라는 아이디를 쓰는 어느 초보 산객의 "쌍령산-시궁산" 산행기를 읽고
그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궁금해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챙피하게도 저같은 무신론자나 모르지 알만한 사람들 모두 아는 유명한 곳이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해 뭍혀있는 "미리내 성지"를 둘러 싸고 있는
쌍령산과 시궁산이었습니다
더 확실하게 하자면 미리내 성지는 "쌍령산과 갈미봉, 묘봉으로 둘러 싸여 있고
시궁산은 한발작 물러 나 있는 산이었으나 모두 이 능선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2월 21일(일)
산 이름도 다소 특이한 쌍영산과 시궁산
그리고 "미리내 성지"
눈이 많이 내리고 저녁부터는 매우 추워진다는 일기 예보도 우습게 여기며
모처럼 승용차를 몰고 산행길에 나섰습니다
쌍령산을 가려면 "미리내 성지"를 찾아 가기만 하면 됩니다
미리내 성지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어 교통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산행 들머리 - 예지촌 입구]
미리내 성지입구로 들어 가면 먼저 "미산 저수지" 뚝이 보이고
조금 올라 가면 윗 사진에서 보는 "예지촌" 입구가 나옵니다
이 근처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예지촌 입구 - 미산저수지]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예지촌 입구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예지촌 입구 좌측은 "미산 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저수지 주변엔 여러 레져 시설들이 있으며 경치가 좋았습니다
[미산저수지 휴양시설]
휴양시설들이 다양하게 있으나 겨울철이라서인지 모두 텅빈 집들 뿐이었습니다
경기도 않좋은데 과잉 투자가 아닌지 염려되더군요
현재는 주인도 없고 모두 텅 비어 이용 할수 없습니다
[미산저수지 휴양시설]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즐기러 가 볼만한 곳입니다
아마도 천주교 신자들이 여름철에 많이 이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미산 저수지]
미산 저수지는 이곳의 지명이 美山里이라 美山저수지로 이름 붙여졌고
美山은 아마도 쌍령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미산저수지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자그마한 저수지였습니다
[산행 들머리 - 예지촌 입구]
10시 35분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쌍령산-시궁산 산행은 산행 들머리인 이곳 "예지촌 입구"만 알면 간단하더군요
입구에서 예지촌으로 올라 갑니다
[예지촌]
오른쪽으로 예지촌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행길과 예지촌 정문]
50m정도 올라 가면 예지촌 정문이 나옵니다
이곳이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산행길은 예지촌 정문 바로 앞 돌담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 가야합니다
저는 예지촌 내부시설을 구경하고 다시 이곳으로 와 좌측으로 가려합니다
[예지촌]
예지촌은 가끔 T.V.에서 소개 된적이 있어 낮설지 않은 이름인데
여기에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예지촌은 "산골학교 체험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종의
초등학생들의 현장학습 체험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지촌 홈피를 가 봤더니 예지촌의 목적이
"산골학교 체험학습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이 탐구력, 집중력, 창의력
또한 더불어사는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라고 되 있더군요
[예지촌]
예지촌에선 美山저수지가 바로 내려다 보이며
저수지 뒤로는 묘봉이며 예지촌의 뒷산이 쌍령산입니다
묘봉 뒷기슭엔 김대중 전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 저 멀리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던
자신의 부친 묘를 경기도 용인 묘봉 아래 소위 명당자리라고 하는 저곳으로 이장한 묘소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첫째 부인의 묘까지 함께 이장했더군요.
예지촌 프로그램 참가비는 [1인당][당일과정] 유아,초등,중등 : 13,000원
1박2일 5가지 체험 -25,000원
제법 비싼 수업료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장사 아이디어로 괜찮은 사업이겠더군요
장사가 되면 이런 비슷한 사업이 우후죽순처럼 산과 바다를 막론하고 생겨나는데
요즘 많이 생겼다고 하지요?
[예지촌]
등산로로 올라 가며 예지촌을 내려다 봤습니다
예지촌에는 술집도 있었습니다. 아마 학부형들을 위해서 이겠지만
초등학생들에게 禮를 가르치는 곳이라면서 좀 그렇군요
조금 올라 가면 묘비가 나오며 우측으로 오르는 길이 제법 좋습니다
쌍령산 정상을 오르며 좌측으로 내려다 보면 "미리내 성지"가
나뭇가지 사이로 조금씩 보입니다.
쌍령산은 肉山이기에 여름철에는 숲으로 둘러 싸여 외부 조망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肉山은 겨울철에 다니고 岩山은 여름철이 좋습니다
제법 경사가 있는 오르막을 오릅니다.
특이한 볼거리는 없습니다
[쌍령산 능선]
50분 정도 오르면 쌍령산 능선을 만나는데, 이 능선이 "한남정맥의 쌍령지맥 마루금"입니다
능선에 오르면 우측에서 오는 마루금을 만나 쌍령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쌍령지맥 마루금]
마루금을 따라 쌍령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쌍령산에선 소나무를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상수리 나무, 떡갈나무 인듯
그래서 그 낙엽을 밟으면 소리가 아삭거리며 납니다
낙엽을 밟고 싶으신 분들은 오세요.
하지만 눈이 오면 낙엽 때문에 더 미끄러울듯합니다
[쌍령산 정상으로 가는 길]
오늘은 오전에 눈빨이 흩날렸습니다.
정상부근에는 눈이 녹지 않고 약간 쌓여 있습니다
[쌍령산 정상]
쌍령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쌍령산 정상 - 헬기장]
11시 35분에 도착했으니 예지촌 입구에서 정확히 1시간 걸렸습니다
쌍령산 정상은 헬기장이었으며, 정상석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안내판도 없고 등산객들도 거의 없어
GPS없이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곳이 정상인지 알수 없을 정도입니다
[쌍용저수지 갈림길 쉼터]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니 쉼터가 나왔으며
이곳에서 '쌍용저수지'로 가는 길이 있는듯했으나 어느 쪽인지 알수 없었습니다
[쌍용저수지 이정표]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오래된 표지판이 을씨년스럽습니다
[쌍령지맥 마루금]
쌍령산 정상 능선은 "쌍령지맥" 마루금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이해서 걷기에 편안합니다.
"배내미 약수터"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지나 갑니다
"배내미 약수터"는 제법 유명한 약수터이더군요.
무슨 성분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앉은뱅이도 이 약수를 먹으면
벌떡 일어 난다고 했다는군요. 그냥 전설이겠죠?
[삼거리 이정표]
쌍령산 정상 헬기장에서 30여분 걸으면
쌍령산에서 처음으로 이정표 다운 이정표를 만납니다
저는 여기서 알바를 합니다. 거북바위로 내려 갔습니다. 왜냐구요?
직진했어야하는데 직진방향이 마을회관(장경사)라고 표시해 놨기에
아직 갈길이 먼데 벌써 "마을회관"으로 가면 않된다고 생각한것이지요.
ㅎㅎ 일반적 상식적 생각 아닌가요?
"거북바위" 방향은 미리내 성지에서 오르 내리는 주요 등산로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이정표 다운 이정표를 세워 놓은 것인데 '마을회관'에 속았습니다. ㅎㅎ
거북바위 방향으로 내려 가니,
시궁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리내 성지로 하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쌍령산을 거의 다 내려 가서야 알바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에구~ ㅎㅎ
그래서 다시 올라 왔습니다.
쌍령산을 거의 두번 오른셈이 됩니다.
갈때는 몰랐는데 올라 오다 보니 우측에 암벽이 하나 있었는데....
쌍령산은 肉山이기에 바위 찾아 보기가 매우 여렵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죠
[거북바위]
이 암벽 위로 올라 와 보니 이것이 "거북바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가면 이런 바위는 하찮은 바위일 뿐이지만
肉山인 쌍령산에선 볼거리인듯하군요
하여간 알바 덕분에 "거북바위"라고 생각되는 바위를 보았습니다
[미리내 성지]
'거북바위'에 올라 서니 조망이 터였습니다. 알바하기 잘했죠? ㅎㅎ
그 유명하다는 "미리내 聖地"가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앞에 보이는 건물이 103인의 순교자를 기리는 대성당이었습니다
건물 바로 뒷산이 '갈미봉'이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이 "시궁산"입니다
건물의 오른쪽 계곡이 그 유명한 "미리내 고개"가 있는 곳인데 앞으로 지나 갈것입니다
미리내
미리내는 모두 아시다시피 銀河水의 순 우리말입니다
'서학' 즉, 천주교가 170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와 '봉건수구정치세력'들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지요. 자유 평등 사랑을 모토로 확산일로에 있는 천주교를 우리나라
수구정치세력들은 그냥 둘수가 없었습니다. 아니면 정권이 흔들거리니....
그래서 천주교도들을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의 천주교 신도들이 죽임을 피해 숨어 들어 火田을 일구며 산곳이
이곳 쌍령산과 시궁산 계곡이었답니다. 밤이면 이 피난민 신도들이 켜 놓은 등불이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고해서 "미리내"라고 했다는군요
나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고 뭍힌 곳이 또 이곳이라
이곳을 "미리내 聖地"라고 부른답니다
[거북바위에서 내려다 본 '미산저수지']
알바하기 잘했죠? 만약 알바를 하지 않았다면, "미리내 성지"를 한눈에 조망 할수 없었습니다
우리네 인생길....이길 저길 모두 다니다 가고 싶은데....편한 길만 찾습니다
때론 실수한 길이 더욱 멋진 길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했습니다
단지 구름인지 안개인지 시야가 좋지 않아 사진빨이 받지 않아서 날씨탓을 합니다
다시 쌍령지맥 능선에 있는 이정표로 되돌아 왔습니다
갔다 오는데 40여분 정도 걸린듯합니다만 갔다 오기 잘했습니다
이 산행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제가 갔다 오기를 더욱 잘했다고 생각하겠죠?
자기들은 앉아서 구경 잘했으니까...ㅎㅎ
[송전철탑]
'거북바위 삼거리에서 "마을회관(장경사)"방향으로 조금 가면
어마어마한 송전철탑을 만납니다
"農夫"님이 쓴 산행기엔 이 송전선에는 삼만사천오백 볼트라고하는 전류가 흐른다고 하던데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엄청난 규모의 송전선임에 틀림었을듯합니다
[송전철탑 고개]
쌍령산에서 시궁산을 종주하시는 분들은 이곳 "송전철탑"을 반드시 지나야합니다
쌍령지맥을 종주하시는 분들은 더더욱 반드시 지나야하는 코스입니다
그러므로 이 송전탑이 나침판 역활을 해 줌으로 길찾기가 용이합니다
[송전철탑 고개]
송전철탑 밑으로 내려 와서, 뒤 돌아 보았습니다.
원래 쌍령지맥 능선은 이 철탑계곡이 없이 저 윗 봉우리와 다음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봉우리였겠지요. 이 송전철탑을 세우기 위해 마루금 봉우리를 절개했습니다.
"배내미 약수터" 안내판이 제가 지나 온 길을 가리키고있습니다
[송전탑 고개]
송전선은 서울을 향하여 길게 뻗어 있습니다
송전선이 가는 방향 끝으로 한남정맥에서 쌍령지맥으로 분기하는 "문수산"이 보입니다
[송전탑 고개]
송전탑 고개에서 바라 보이는 "시궁산"
맨 뒤에 보이는 들어 누운 산이 시궁산이며 정상은 오른쪽 제일 높은 곳입니다
[송전탑 고개 갈림길]
송전탑 고개의 철탑 밑에 갈림길이 보시는 바와 같이 있습니다
여기서 완쪽 ,즉 서쪽으로 가야합니다. 오른쪽 산위로 올라 가지 않습니다
시궁산이나 쌍령지맥 마루금도 왼쪽으로 갑니다
송전탑에서 서쪽 방향으로 쌍령지맥 마루금을 따라 갑니다
우리나라 산에서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가 떡갈나무와 상수리 나무입니다
쌍령산도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푹신푹신 할 정도로 많이 쌓여있습니다
"도토리"와 "상수리"가 어떻게 다른지 아세요?
우리나라 산에서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떡갈나무와 상수리 나무의 열매가 비슷하게 생겨
구별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참나무는“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통틀어 참나무라 한답니다.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모두가 참나무입니다
상수리나무에서 열리는 도토리만 "상수리"라고 하는데, "상수리"도 도토리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도토리"는 약간 길죽하고, "상수리"는 조금 동글동글하지요
[고개]
돌무덤이 있는 고개를 만났습니다.
"미리내 성지 →"라는 표지판이 있어 혹시 미리내 고개인가 생각했는데
지도상에는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곳에는 두개의 고개가 있습니다
한곳이 이곳이고, 조금 있다가 나오는 제법 큰 고개가 김대건 신부 시체를 운구했다는
"애덕의 고개", 즉 "오두재"라고 하는 미리내 고개입니다
이 고갯길은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고갯길도 고갯길로서는 제법 넓은 길이었습니다
미리내 성지로 가는 방향입니다
미리내 성지로 가는 고갯길을 지나 조금 가니
"안성맞춤 브랜드는 안성인의 자랑이자 희망입니다"라는 작은 현수막에
"상원봉"이라는 표시가 있었습니다. 여기가 상원봉인지 지도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삼각점이 있어 이곳이 중요한 지점이란건 느낄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답자들의 표지기들이 나무가지에 걸려 있는 걸로 봐서
중요한 분기점이란걸 감으로 느낄수 있습니다
[시궁산과 쌍령지맥 갈림길]
그렇습니다. 이곳이 문수산으로 가는 쌍령지맥과 시궁산으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안내판이 오래되 같은 방향으로 걸려있어, 유추 해석하며 갈길을 정해야 합니다.
당연히 문수산은 북쪽이고, 시궁산은 서쪽입니다. 그러니 왼쪽 길로 가야합니다
1시 50분에 이곳에 왔으니 예지촌 입구에서 3시간 15분이 걸렸습니다.
불론 알바한 시간을 합쳐서입니다
이곳 갈림길에서 아마도 산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듯한 산객을 만났습니다
오늘이 일요일인데도 이곳 쌍령산과 시궁산에선 산객들을 많이 볼수 없었습니다
안성에 사신다고 하는데 즐거운 산행을 즐기고 있는 분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길 안내를 받고 허락을 받아 사진을 한컷했습니다. 저의 블로그에 찾아 오셨는지....
계속 즐산 안산하세요~ 멋쟁이이시죠?
[죽리, 장촌]
미리내 고개로 가는 능선의 우측으로 "죽리, 장촌"이 보입니다
저곳까지 포장도로가 나있으며, 비포장도로가 미리내 고개이더군요.
용인의 양지에서 오는 길로서 '김대건 신부의 시체'를 옮겨 온 루트였습니다
뒤돌아 보니 쌍령산과 걸어 온 능선이 조망됩니다
앞으로는 '시궁산'이 아직도 갈길이 많이 남았다고 알려 주네요
제일 뒤에 보이는 산이 시궁산입니다
[애덕의 고개] - 미리내 고개
드디어 성지 순례길이라고 하는 미리내 고개에 왔습니다.
또 산객들을 만났습니다.
[애덕의 고개]
이분들도 안성에 사시는 분들이라고 하는데 오늘 쌍령산에서 시산제를 드리고
이 고개를 통해 하산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山祭"를 지내고 내려 오는 것이라 여겨 집니다.
쌍령산과 시궁산에 대한 설명도 듣고 기념 사진도 한컷했습니다
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것 같았는데 계속 즐거운 산행 하시기 바람니다
[愛德고개]
말로만 듣던 고개에 직접 올라와 섰습니다
'서학'이라는 천주교를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산화해 간 사람들이
숨어 살며 몰래 넘나 들던 이 고개에 섰습니다
오후 2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4시간 걸렸습니다
[愛德고개]
지금으로부터 162년전, 그러니까 1846년 9월 16일
지금 서울 용산의 한강철교와 인도교 사이에 있는 "새남터"라는 조선시대 사형장에서
'군문 효수형(軍門梟首刑)'이라는 처참한 방법으로 사형 당하며 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그때 나이 26세였습니다
그의 시체는 모래사장에 가매장 되었는데 40일 후
그의 제자인 신도 이민식(빈첸시오1829-1921)이 몰래 시신을 빼내 업고 백오십리를 밤에만 운구하며
일주일이 걸려 이 "미리내 고개"를 넘어 미리내로 운구하여 현재의 위치에 묘를 썼답니다
그래서 김대건신부의 시신을 운구한 이 고갯길이 천주교도들에게는 성지순례지로서 유명한데
'묵리'에서 '미산리'로 넘어 가는 이 고개엔 세개의 고개가 있다고 합니다
神德고개(별미고개)와 望德고개(용해곡 고개), 그리고 이곳 愛德고개(거문정 고개)로서
"三德고개"라고 합니다. 이 고개가 '미산리'로 가는 마지막 고개가 되는 것입니다
비석 아래엔 이렇게 적혀 있군요
생전엔 사목활동 길
순교후 유해운구 길
비석 뒷면엔 김대건 신부의 약력이 소개되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들으면 저에게 뭐라 하겠지만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라는 것 이외에는
신부로서의 활동은 미미합니다. 시간이 없었지요.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우리나라에 들어 와 고작 3개월 정도 외국 선교사들의
밀항을 돕다가 백령도에서 체포되어 용산의 "새남터"에서 목을 짤라 죽이는
사형을 고작 26살에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새남터"는 노량진 "사육신 묘"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1456년 단종을 복위시키려다가 실패한 성삼문등 사육신들이 처형된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비석의 옆면
[愛德고개]
'묵리'에서 '미산리' 방향을 보며 찍은 愛德고개입니다
김대건 신부와 어렵게 피난살이를 하던 서학 신도들을 생각하면
저는 哀悼고개로 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우리나라 정권의 천주교 박해에 대한 외국의 보복을 말하고 싶습니다
丙寅洋擾
1866년 9월 16일
"로즈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는 전함 3척, 포함 4척, 병사 1,000여 명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해왔습니다.
프랑스 함대는 순식간에 강화도를 점령하고 김포반도의 끝이며 '한남정맥'의 끝인 "문수산성"을 침략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 시피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 중요 도서를 약탈하여 프랑스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왜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침공했을까요? 이 이유를 알아야합니다. 이유없이 침공 할수는 없지요
이유는 "프랑스 신부 9명을 조선 조정이 학살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를 강력하게 돌려 달라고 못하는 이유를 이제 조금 알겠습니까?
천주교를 잔인무도하게 탄압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대략 이 정도에서 이 이야기는 끝내겠습니다. 반론을 펴실 분들도 많겠으나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 봅시다
단, 무조건 상대방의 침공에만 촛점을 마추지 마시고 그 이유도 함께 아시면 여러 생각이 듭니다
정조대왕 이후 어린 순조를 왕위에 올려 놓고 수렴청정을 하며
여자의 치마폭을 피비린내 나게 휘두른 "정순왕후"부터 "안동김씨 세도정치"까지
그리고 대원군의 척화쇄국정책 아래에서도 수없이 살해 당한 조선과 외국 천주교도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 역사를 한번쯤 더 되돌아 봐야합니다
'정순왕후'에 대해선 지난 '서산 팔봉산' 산행기에서 이야기한바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사건도 순조와 정순왕후 시대 쯤에 일어 난 것들이죠
시궁산은 비석 바로 옆 비탈로 올라 갑니다 시궁산 산행 들머리입니다
[애덕고개]
비탈로 올라 가서 내려다 보며 애덕고개를 촬영했습니다
쓸쓸하게 찬바람만 고개를 넘고 있습니다
시궁산을 오릅니다
[미리내 성지]
시궁산 오르는 능선에 올라 서니 "미리내 성지"가 나뭇가지 사이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산 저수지]
미리내 성지 아래로 '미산저수지'도 조금씩 보입니다
[갈림길 이정표]
시궁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미리내 성지 뒷산인 "갈미봉-묘봉"으로 가는 길을 알리는 갈림길입니다.
오른쪽 시궁산 정상으로 가야합니다
이정표 오른 쪽으로 계단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시궁산 가는 길을 찾기 쉽습니다
[헬기장]
조금 올라 가면 헬기장이 나옵니다만 시궁산 정상은 훨신 더 가야합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몇개 넘어야 시궁산 정상으로 갈수 있습니다
가까운듯이 보여도 정상은 그냥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시궁산 정상]
시궁산 정상을 오르는 길엔 또 목재계단을 만들어 놨습니다
계단을 보면 정상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동(송전,어비)저수지]
시궁산 정상을 오르며 좌측을 바라 보니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빛이
송전저수지에 비쳐 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설명 드리겠지만 이 저수지에 비치는 노을은 무척 유명합니다
[시궁산 정상]
시궁산 정상에 왔습니다
시궁산 정상에는 산불감시 카메라 철탑이 설치되 있어 멀리에서도 시궁산 정상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쌍령산에서도 이 철탑이 있는 봉우리를 찾으면 시궁산 정상입니다
[시궁산 정상]
시궁산 정상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후 3시 45분에 시궁산 정상에 도착 했습니다
그러니까 '애덕고개'에선 1시간 10분 걸렸으며, 예지촌에서는 5시간 10분걸렸습니다
[시궁산 정상석]
돌탑에 정상석을 세워 놨습니다
時美里 三峰山 登山會에서 세웠는데 時美里가 눈에 들어 옵니다
틀림없이 時宮山과 時美里는 어떤 관련이 있겠지요
시궁산(時宮山)은 513m 높이로서 용인시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랍니다
時宮에 대해 조금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가 업무를 보는 곳이 백옥루라고 한다는것은
송강 정철선생이 읊은 "관동별곡"에 나옵니다. 총석정을 노래할때 읊지요
옥황상제가 사는 宮에는 여러 형태의 宮이 많이 있는데
仙女들이 주로 목욕을 하는 宮이 時宮이라고 한답니다
이 산 정상에는 옛날에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이 연못에 仙女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時宮山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또한 神仙들도 자주 내려 와서 놀았다고 神仙峰이라고도 한답니다
神仙들도 仙女들이 여기로 목욕하러 오면 따라와 몰래 구경했나보죠?
그렇다면 神仙이나 人間이나 벗은거 보는 것은 다 좋아 하는 모양입니다. ㅎㅎ
[시궁산 정상 이정표]
시궁산은 삼봉산과 연계해서 주로 산행을 하는 코스라 한답니다
저는 앞으로 삼봉산-시궁산-애덕고개-문수산-곱든고개로 종주를 한번 해야겠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곱든고개는 꼬불꾸불 길고 높은 고개이라 곱등고개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지는데
제 기억에는 "홍명희"씨가 쓴 오리지날 "임꺽정" 소설에 곱든고개가 등장하는게 생각납니다
임꺽정이 양주에서 자신의 스승인 '갖바치'를 만나러, 안성 칠현산의 칠장사를 찾아 올때
곱든고개를 넘는데, 가짜 '임꺽정'이가 나타나 진짜 '임꺽정'을 털려고했지요.
웃기는 일입니다만 당시에 일반 백성들에게 얼마나 임꺽정이 인기 있는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헤프닝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방 범죄는 있는 법이고 사람 사는 곳엔
어디서나 같은 사건들은 일어 나나 봅니다
그래서 한번 이 코스를 종주해 보고 싶습니다. 이산들은 모두 肉山이기에 겨울철에 해야 하는데...
[시궁산 정상 헬기장]
정상에서 '삼봉산' 가는 길로 헬기장이 넓게 있습니다
[시궁산 정상 헬기장]
시궁산의 높이가 513m인데 다시 패라글라이더를 타고 날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이곳에서 패라글라이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저 멋있게 보일 뿐이고 타고 싶은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이젠 늙어서....ㅎㅎ
[漁肥落照]
시궁산 꼭대기까지 힘들게 오른 또 하나의 이유가 이것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漁肥落照
저 앞의 저수지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송전리, 어비리에 있는 저수지이라
부르는 이름이 "송전저수지", "이동저수지", "어비저수지"로 제각각이랍니다
지도에도 같은 저수지를 제각각 틀리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인시 공식 홈페이지에 용인팔경으로 漁肥落照를 자랑하고 있더군요
특히 時宮山정상에 올라 바라 보는 어비저수지의 落照를 최고로 꼽더군요
용인시 공식 홈페이지가 자랑하는 漁肥落照를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송전저수지는 원래 어비리란 지형으로 고기의 날개 지느러미와 같이 생겼다하여
어비촌이라 불렸다. 어비촌 가운데로 묵리, 서리, 천리에서 흐르는 물이 풍부하여
72년 수역에 제방을 쌓아 저수지가 생겼고 어비리가 물에 잠겨
글자 그대로 고기가 살찌는 마을(漁肥里)저수지가 생겼다.
옛부터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실감난다.
45번국도를 따라 안성쪽으로 가다보면 송전리를 지나면서 넓디 넓은 저수지를 만난다.
송전에서 묘봉리로 들어서는 언덕길에서 광활한 수면위에 태양이
저수지를 물들이고 사라지는 모습이 어비낙조라하여 용인팔경중 하나다.
산에 지친 살찐고기
바람에 나부끼는 은비늘
태양이 희롱하니 금비늘이네
산마루 바위 모두에 금비뿌려
황금물결 황금산하
용인의 자연을 쉬지않고 색칠한다
송전에서 보는 낙조도 아름답지만 시궁산을 등반하여
산 정상에서 보는 어비낙조는 그야말로 용인팔경 어비낙조의 진면목이다.
오후에 땀을 쪽빼고 정상에 올라 멀리 내려다 보이는 황금 호수위로
하루를 마감하려는 붉은 태양의 마지막 발광색의 조화는
우리 마음의 감동을 주고도 남을 만하다.
특히 정상 갈대 숲사이로 밀려드는 낙조의 빛은 용인팔경의 진수 바로 그것이다
저는 오늘 완전히 본전 뽑았습니다. 물론 아직 짙은 노을은 아니지만 그래도
절묘한 각도로 반사되는 漁肥落照를 구경하여 오늘 산행의 기쁨을 배가 시켰습니다
[시궁산 정상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쌍령산]
저 멀리 쌍령산 능선을 돌아 시궁산 능선까지 영어 알파벳 S자 모양의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이 계곡엔 은하수 같은 불빛이 비춰졌다는 '미리내 성지'가 있고....
하늘엔 정확한 타이밍에 패라글라이딩을 즐기는 활공맨이 그림에 멋을 더해 줍니다
[시궁산 정상 헬기장에서 내려 다 본 '묵리']
지금으로부터 162년전에 빈첸시오 이민식신도가 시체가 된 김대건 신부를 메고
울며 불며 걸어 온 길이 쭈욱 뻗어 있습니다
[시궁산을 하산하고 있습니다]
시궁산에서 漁肥落照와 패라글라이딩, '죽리'의 길을 머리 속에 담으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삼봉산-시궁산-문수산-곱든고개를 종주해야겠습니다
[愛德고개]
하산길은 오를때 산행기를 썼으므로 모두 생략하고 愛德고개로 바로 돌아 왔습니다
시궁산 정상에서 다시 이곳 愛德고개까지는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오후 4시 50분에 이곳을 통과합니다
종교
26세의 나이에 목숨 바쳐 가며 믿은 종교
목숨까지 바칠많큼 값어치가 있는 것이 종교인가
그의 소원대로 이 세상은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었는가
16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교적으로 그 때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느끼는
초라한 '파란문'은 씁쓸한 마음을 안고 하산하고 있습니다
갈떡나무 상수리나무들의 낙엽이 수북히 쌓여 푹신푹신한 愛德고개를 내려 갑니다
지금으로부터 162년전에 빈첸시오 이민식신도가 시체가 된 김대건 신부를 메고
울고 넘었을 "미리내 고개"- 즉 愛德고개를 넘어 미산리로 갑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미리내 성지]
애덕고개에서 조금 내려 가니 바로 '미리내 성지'였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교회 같은 곳이 김대건 신부와 세분이 뭍혀있는 무덤입니다
[애덕고개 가는 입구]
미리내 성지에 내려와 애덕고개로 올라 가는 길을 뒤 돌아 봤습니다
여기서 애덕고개까지는 매우 가까웠습니다
[경당]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그의 어머니 고(高)우르슬라,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Ferreol 高)주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이곳으로 모셔와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묘소입니다
일요일인데도 사람을 구경할수 없는 묘소 앞에 촛불만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묘]
앞에 石棺묘가 김대건 신부의 묘입니다
그런데 이 묘에는 김대건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만을 모셨다고하며
다른 유해는 카도릭신학대학(성신교정) 성당 안에 안치 되있다고합니다
이 김대건신부 묘의 좌측과 우측에 어머니와 페레올 주교,
이민식 빈첸시오 신도의 무덤이 나란히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상]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아 우리나라에 들어와 약 3개월 정도 외국 선교사들의 밀항을
백령도 등지에서 도와 주는 일을 하다 백령도에서 체포되어 26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 진 김대건 신부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미리내 성지]
신도들에겐 聖地이겠고, 나같은 무신론자들에겐 영업장으로 보이는 "미리내 성지"는
쌍령산과 시궁산 계곡에 있어 날도 짧지만 더욱 빨리 어두워집니다
규모가 상당합니다
[103위 성인 기념 대성당]
성당의 규모가 어마 어마합니다
이곳은 현재 미사를 드리며 사용하고 있는 성당입니다
[103위 성인 기념 대성당]
[예수 탄생 상황모형도]
몇일 있으면 예수 탄생일, 즉 크리스마스입니다
저는 이런 모형도가 일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갑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 난게 자랑스러운 일로 보는 듯합니다
저는 자랑할만한 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지무지 챙피한 일로 생각 되거던요
무식한 무신론자여서일까
마리아는 카펜터였던 남편 '요셉'이 있었고, 그렇게 가난하지 않아 집도 있었는데
왜? 왜? 위생상 매우 열악한 환경의 마굿간에 들어가 말 밥통에다 애를 낳았단 말인가
그렇게 애 낳을 곳이 없었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神을 낳으면서.....
분명 피치 못할 사연이 있긴 있었을 텐데....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 밥통에 애를 낳습니까
그리고 여자가 애를 낳는데 왠 외간 남자 셋이 애 낳는 마굿간에 오는가
남편인 요셉은 않오고....이제까지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물으면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답변이 돌아 옵니다. 뭔 믿음이 부족한지도 모르겠고
애 낳는것하고 믿음하고 뭔 관계가 있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논쟁하고자 한 얘기는 아니니 부족한 인간의 의문이라 생각해 주시고
너그러이 사랑으로 감싸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고 하시니
Merry Christmas와 Happy New Year를 소리 높여 외치겠습니다
산행 들머리였던 "예지촌" 앞에 돌아 오니 날은 어두워지고.....
시간은 오후 5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정확히 7시간의 산행을 했습니다
쌍령산 시궁산 산행 개념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