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산-칠현산-덕성산을 가다 

5월24일(토) 
한남금북정맥이 나뉘어 지는 삼거리 산인 칠장산과 칠현산, 그리고 금북정맥으로 뻗어가는
덕성산을 한바퀴 휙 돌려고 승용차를 몰고 안성맞춤의 도시 안성으로 향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엔 안성 가는 I.C.가 두군데 있는데  새로 생긴 평택-안성간 고속도로의
분기점인 안성분기점으로 나와 평택-안성간 고속도로를 타면 매우 불편하니,
옛 오리지날 안성I.C.로 나와 일죽 가는 국도를 타고 "죽산"까지 스트레이트로 가면 됩니다.
이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잘 되있어 불편함이 전혀 없었고 20여분만에 죽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죽산 조금 못미쳐서 오른쪽으로 광혜원 가는 17번 국도가 나오며 "칠장사" 가는 길 안내표지도
나오니 우회전하여 광혜원 쪽으로 10분정도 내려 가면....

'칠장사' 입구
'칠장사' 입구 이정표가 길을 안내합니다

'칠장사' 입구
이정표에서 우회전을 하면 이런 길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칠장사'까지는 승용차로 7~8분 정도 걸렸으니 제법 먼 거리입니다
걷기에는 너무 지루한 길입니다만, 대중교통  수단은 죽산에서 '칠장사'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번밖에 없다고 하며, 서울에서 죽산이나 안성까지 버스로 와서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고 하는군요. 죽산에서 택시비가 대략 만원정도랍니다

'칠장사 일주문'
주차장은 넓었고 주차비는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입장료도 없었습니다
칠장사가 위치한 칠현산은 원래 아미산이었는데 고려시대 혜소국사(972~1054)가
이 산 아래 아라야를 짓고 수도처로 삼고 있었는데, 어느 하루는 깡패같은 선량치 못한
놈들 7명이 찾아와 혜소국사와 마주 앉게 �는데, 이들이 혜소국사의 신묘한 도력에
이끌리어 설법을 듣게 되었고 설법을 들은 나쁜 놈들은 교화되어 일곱 현인이 되어
산 이름을 아미산에서 칠현산(七賢山)으로 고쳐부르고, 칠장사(漆長寺)도 七長寺로
개명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칠장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파이며 사업자 등록 번호가 125-89-02369 이라합니다. ㅎㅎ

'칠장사 범종'
지금도 사용하는 종이라하며 1782년 죽산 도호부사인 이언충이 시주한 범종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칠장사 식수대'

'칠장사 대웅전'
우선 오래된듯한 느낌부터 다가 왔습니다. 
절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지난주 광덕사와 비교하자면 그다지 깔끔하지도 않았습니다
칠장사는 원래 신라시대 진덕여왕648년경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고려 헌종때 혜소국사가 중건했고, 그 동안 여러번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짓고, 또 다시 짓고를 반복했다고 하는군요

대웅전 우측의 "봉업사지 석불입상"
보물 983호로 지정 되있다고 하네요

제가 칠현산을 가기 위해 기초 자료 조사를 하는 중에 칠순이 넘은 광광 안내사가
칠장사에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이 날 탐방객들을 위해 칠장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더군요. 열심히 젊게 사시는 분이 부러웠습니다
(끝 기둥 앞에서 손을 올리고 열변을 토하시는 분)

대웅전 좌측 나한전, 등산로 올라 가는 길
등산로는 대웅전 바로 옆 좌측으로 나가면 됩니다
저는 스님에게  "칠장사에 있는 국보 296호 '5불회 괘불탱화'를 볼수 없느냐?"고
물어 봤는데 특별한 날 아니고는 공개를 하지 않는 다는군요
그래서 칠장사 홈피에 들어가 유명한 국보 296호 '5불회 괘불탱화'를 퍼다가 옮깁니다
       
       사실 불교는 석가모니 이전에 인도에 있었던 종교이고, 석가모니가 총집대성한 종교로 보아도
       이의 다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인목대비" - 우리 역사 속에서 무지 유명한 여인이죠?
산행을 하며 인목대비에 대해 간단히 알아 보겠습니다

나한전과 혜소국사탑비
대웅전 좌측 오르막 계단을 올라 가니 혜소국사 기념탑비와 나한전이 있었습니다
나한전의 모양새에 실망스러웠는데...

혜소국사 기념탑비가 있는 정각
     
정각 속에 있는 조각품
              
               글을 읽을수는 없었고, 대략 혜소국사의 일대기를 기록해 놨다고 하는데
               고려 문종 14년(1060년)에 만들어졌다니 무척 오래된 비입니다
    
古刹의 나한전 치고는 현대식(?)입니다. 산신각도 있었습니다
칠장사의 나한전에는 공양을 하는 신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조그마하고 초라하게 古刹같지 않게 지어진 이곳에 사람이 많은 이유가 있더군요.
암행어사 박문수 - 아시지요? 대한민국에서 초딩만 되도 아는 인물 - 암행어사 박문수
박문수는 이곳 아랫 동네인 천안 병천이 고향입니다.
그리고 박문수라고 하면 암행어사로만 거의 알려져 있죠?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를
3년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박문수는 과거시험의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인회계사'같은 회계 경리 업무에 밝은 그런 관리였습니다.
그런데 3년간의 암행어사 시절에 숱한 일화들 때문에 암행어사로 훨씬 더 알려졌을 뿐이고,
세간에 들어 나지 않은 경제 치세에 더욱 공이 큰 사람으로 영남절도사 시절에는 
관북지방에 큰 수재가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영남 제민창(濟民倉)의 곡식1만 섬을 
미리 발송함으로서 수많은 수재민을 구출하여 주자 
당시 그곳 주민들이 박문수에 대한 고마움과 은혜에 감복하여 
함흥의 만세교에 북민비(北民碑)라는 송덕비를 세워 그 은덕을 기렸을 정도로 경제통이었습니다
이 박문수가 병천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갈때 여기 저 '나한전'에서 합격기원 기도를
하고 가서 장원급제를 하였다고 개나 소나 모두 여기 와서 기도를 드린다는거 아닙니까.
박문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청유과를 부처님께 올리고 
그날 밤을 칠장사에 머물렀는데 꿈에 과거시험문제를 현몽하였다고 한다는군요.
이렇다면 부처님은 만인에 평등한 사랑을 베푸는게 아닌데...이기주의자가 되는 건데....
종교!!~ 이거 어디까지가 이율배반인가?

칠현산-칠장산 등산로 입구
혜소국사비와 나한전 사이에 칠장산과 칠현산을 올라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산행이 시작됩니다
이곳 절간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은 산행 중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전광판
조금 올라 가니 자연보호등 여러 안내를 하는 전광판을 만났습니다
이런 산속에서 전광판은 처음 보는 듯합니다
칠장사에서 칠장산과 칠현산 까지는 등산객이 조금은 있었습니다만.
칠현산-덕성산에서는 단 한명도 만날수 없었습니다

칠장산-칠현산-덕성산도 바위 찾아 보기 힘든 陸山입니다
그래서 숲으로 뒤덮여 바같 세상을 조망할수 없었습니다

칠장사에서 칠장산을 오르는 길에는 온통 山竹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갈림길
15분 정도 오르니 삼거리 갈림길이 안내표지도 없이 나타 났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칠현산'이고 우측으로 가면 '칠장산'이었습니다
저는 칠장산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 칠현산을 가려고 합니다

칠장산으로 가는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조금 올라 가니 '칠장산 정상'이 보였습니다
     
칠장산 정상
칠장산은 칠현산의 한봉우리 정도의 작은 산인데, 이 산이 유명한 이유가 있죠?
바로 한남금북정맥의 갈림길이자 시작점이 되는 곳이라 유명한 것입니다.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에서부터 달려온 '한남금북정맥'이 이곳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져, 한남정맥은 용인 수원의 형제봉 광교산을 지나 백운산,
그리고 지지대 고개를 지나 인천 계양산으로 해서 김포반도의 끝인 문수산에 까지 갑니다
(시간 나시면 저의 '문수산성 종주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금강의 북쪽을 달린다고 이름 지으진 금북정맥은 이곳에서 칠현산 덕성산을 지나 천안의 광덕산,
서산의 팔봉산으로 달려 태안반도에서 멈춤니다
    
많은 정맥종주 마니아들이 흔적과 기념으로 달아논 리본들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저도 언젠가는 정맥 종주를 위해 미리 한구간씩 조금씩 길을 익혀놓고 있는 중입니다

칠장산에서 내려와 칠현산으로 향합니다
아까 칠장사에서 올라 올때의 삼거리에 다시 왔습니다.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직진 해야합니다

조금 갔더니 이정표가 있었습니다만 필요한 곳에 설치를 해야하지않을까요?

완전이 숲에 포위되어 외부 세계를 전혀 볼수 없었습니다
오른쪽 아래 능선에서 들려 오는 '세븐힐스 C.C'의 골프공 소리와 씨잘데 없는
캐디들과의 농담 따먹기 소리가 조용한 숲속길을 짜증나게 했지만....

조금 가니 헬기장이 나왔으며....
칠장산의 동북쪽은 안성 C.C.가 모든 능선을 차지하고 있었고
칠장산-칠현산의 서북쪽 능선은 세븐힐스C.C.가 몽땅 점령하고 있어서
산인지 골프장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 였으니....
저도 오래전에 안성C.C는 여러번 왔었는데, 여기가 거기인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헬기장을 지나니 '금연성공자들'이 금연 한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현수막을 걸어 놨으며

또 알듯 모를듯한 삼거리가 나왔는데, 여기서 느낌적으로는 직진 해야 할듯하지만
왼쪽 아래쪽으로 가야합니다. 사람의 흔적이 많은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지루하지만 시원한 숲속길을 따라가니 구경거리가 없습니다
이래서 여름산은 재미 없다고 하는가 봅니다.
여름엔 그저 계곡에 발담그고 시원하게 한잔 하는게 더 좋을련지도....

구경거리도 없는 숲길을 가다가....
"인목대비"가 하사한 탱화가 國寶로 여기 칠장사에 소장 되있다는데 .....
워낙 유명한 女人이라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제 나름대로 몇자 적겠습니다.
인목대비는 사실 "인목왕후"인데 '왕후'또는 '중전'보다는 '대비'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왜인줄 아시죠? 모르신다구요? 그럼 알려 드리죠..ㅎ
인목왕후는 '선조'의  세칸드입니다. 
선조의 정실 부인인 '의인왕후'가 아들도 낳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버리죠. 
그래서 인목왕후가 19살에 선조의 정식 두번째 공식 왕비가 되고,
선조의 유일한 적자 '영창대군'을 낳습니다만..........비극은 시작되죠?
선조의 소실인 공빈김씨에서 '광해군'이 이미 태어 났으며, 인목왕후보다 나이가 9살이나
더 많았는데... 비록 서자이지만 선조에게 아직 아들이 없었던지라,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 버리지요. 이 과정도 무지 재미있지만 생략하고..
그런데 인목 왕후가 '영창대군'을 낳고는 자기 아들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죠
뭔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엄마가 아들보다 9살이나 나이가 적으니 
엄마인 왕비와 9살이나 나이가 많은 아들 세자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 다툼은
결국 인조반정 - 쿠데타로 발전하죠..어마어마한 피바람이 불고.....

뭔가 구경거리 같은게 하나 나타났습니다
선조의 둘째 부인인 인목왕후는 광해군, 인조 때에 까지 살아 정치권력을 휘둘러서 
인조의 할머니, 즉 인목대비로 우리에게 더 알려져 있는것입니다.
물론 영창대군은 광해군에 의해 살해되지만, 그 핑개로 인목대비는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영원히 君으로 남게 만들어 버리고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대단히 쎈 여성 중에 한분이죠
여기 칠장사에 탱화를 하사하고 자주 온것은 아들 '영창대군'의 안위와 명복을 빌러
왔다고 하는군요.

"부부탑, 칠순비"
이런 산꼭대기에 왜 이런 돌탑과 비석을 세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어느 노부부가 함께 여기 칠현산을 자주 올라서 건강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기념으로 이런 기념탑과 비석을 세운게 아닌지....

비석의 뒷면을 봤더니 "김성기 임경순" "광혜원 중고개"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아마도 여기가 광혜원의 중고개인데 이곳에 김성기, 임경순이라는 칠순 노부부가
또는 그 자손들이 기념비와 돌탑을 쌓았으리~~
저는 사람 이름 지을때 '성기'라고 짓는건 좀 민망스럽다고 생각되는데...ㅎ
姓이 呂氏인 사람한테도 '성기'라는 이름을 붙여 놨더군요.
유명한 영화감독 '홍성기'씨, 영화배우 '안성기'....안성기는 성기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성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무척 많더군요. 농담좀 했습니다..^*^

정맥 종주자들의 리본은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듯...
종주를 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듯합니다

오르락 내리락을 몇개하고....

예고편 없이 '칠현산' 정상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칠현산 정상석
칠장사 경내를 둘러 보는데 약20분
칠장사에서 칠장산을 오르는데 약20분,
칠장산에서 여기 칠현산까지 오는데 50분 걸렸습니다.
칠장사를 출발하여 아직까지 한번도 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덕성산을 갔다 되돌아 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늘 승용차를 가지고 왔기에, 칠장사로 원점 회귀를 해야하는데
덕성산에서는 칠장사로 내려 가는 길이 없기때문에 여기로 되돌아 와서
'명적암'으로 하산해야합니다. 부지런히 갔다 와야하기에 바로 출발했습니다.

칠현산 정상의 숲을 빠져 나오니 헬기장이 보였습니다

헬기장 건너편의 숲구멍으로 들어가 덕성산을 갑니다
또 숲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칠현산에서 덕성산 사이는 사람들의 흔적이 별루였으며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조금 갔더니 "곰림 정상"이라는 정상석이 있었는데
자료 조사 할때는 없었던 것이라 여기가 덕성산 정상인가?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벌써 덕성산이 나오지는 않겠지...라고 또 중얼거리며..누구한테 물어 볼수도 없고..

금북정맥의 선답자들의 리본을 보며 또 걷습니다.

오직 숲만 펼쳐지고...

진절머리 나는 숲 속을 뚫고 또 뚫어

'생거진천'에 도착 했습니다.
칠현산에서 여기까지 약50분 정도 걸렸습니다.
덕성산 정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생거진천'이라는 지명도 사전 조사에 없었기에 '덕성산'은 더 가야 하나 보다고
생각하고 또 걷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여기 삼거리에서 '병무관'방향으로 몇십m만 가면
"덕성산 정상"인데 '무술마을'쪽으로 30분을 더 갔습니다~~닝기리~
금북정맥 능선을 따라 간다는 생각만 앞섰기 때문입니다
'덕성산 정상'은 금북정맥 라인에서 좌측으로 쬐끔 벗어 나 있었으며, 갔다가
다시 이 곳으로 와 금북정맥 길을 따라 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 바람에 많이 더 걸었습니다. 가도 가도 덕성산이 나오지 않고
하산하는 곳이 나와서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 왔습니다.
왕복 40~50여분을 더 걸었습니다

다시 '생거진천' 삼거리로 돌아 와 이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사실 '덕성산 정상'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당시는 몰랐습니다

'병무관' 방향으로 조금 들어 가 자리를 폈는데 저 앞이 '덕성산' 정상이었는데...
못가고 말았습니다. 집에 와서 상세 지도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에구~ 또 언제 간다고...... 10m 앞에다 두고 정상을 밟지 못하다니....

점심을 먹고..오늘은 차를 가져와서 쇠주는 않했습니다

칠현산으로 되 돌아 오는 도중

칠현산 정상 바로 앞 헬기장에 되돌아 오고....

칠현산 정상에서 우측 '명적암' 방향으로 하산 했습니다

내려 오다가 첫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왼쪽으로 가야 하고 직진을 하면 고생 합니다

그 삼거리에 이런 리본을 달아 놨더군요

울창한 숲을 뚤고 30~40분 정도 내려 오니

명적암이 보였습니다
뭐 그렇고 그런 절이었습니다

명적암 석간수에 세수를 시원하게 하고

전통 불교 절이 아니란걸 확인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 오니, 칠장사로 올라 가는 오전에 갔던 길이 나왔습니다

내려와서 바라 보니 이제서야 가운데 칠현산과 좌측 덕성산의 외모를 구경할수 있었습니다

에고~~명적암 입구에서 칠장사 까지는 제법 멀었습니다
산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이런 곳에 �아 붙는 시간이 훨씬 아깝습니다

오전엔 승용차로 가느라 못본 칠장사의 자랑 "철제 당간"이 보였습니다

설명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당간은 일반적으로 石柱로 하는데 철제 당간은 저는 처음 봅니다

칠장사 사적비를 마지막으로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 가게에서 얼음과자 두개 사 먹으며 돌아 왔습니다
이 때가 3시 50분
오전 11시 정각에 이 곳을 출발했으니 4시간50분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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