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백운산 산행기
5월3일(토) 연휴라고 모두들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 많은 도로가 몸살을 앓는 날
그 동안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광교산을 오르기로 하고 어려운 발길을 수원으로 돌렸습니다
水原 - 왠지 친근감이 가는 그런 도시입니다
물론 저에게는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산행을 하며 하나 하나 추억을 더덤어 보려 합니다
수원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경기대 입구'에 내렸습니다
이때가 벌써 오전 11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광교공원]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앞이 광교공원이었으며 잘 단장되 있는듯했습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내려 오며 광교공원을 구경하기로 하고 바로 올라갔습니다
광교공원을 왼쪽에 끼고 경기대 입구로 오르는 길이 펼쳐집니다
[경기대 입구 삼거리]
조금 오르니 삼거리가 나왔는데 오른쪽이 경기대 입구이며
왼쪽길이 광교산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토요일인데도 산꾼들이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반딧불이 화장실 못미쳐서 왼쪽은 광교저수지 댐이고
오른쪽은 '광교 생태 학습장'이란 표지가 있었는데 여기가 광교산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인듯 합니다
[반딧불이 화장실]
광교산 관련 인터넷 글들에서 거의 대부분 등장하는 유명한(?) 반딧불이 화장실입니다.
광교산 산행을 바로 시작 하는 입구가 이 화장실이더군요
화장실 들려서 윗문으로 나가니 바로 등산로였습니다
화장실을 통과하는 등산로는 이곳 뿐이지 않을까 생각되며..그래서 유명한지도....
그래서 반딧불이 화장실을 자세히 구경하였습니다
요즈음 만나기 힘든 반딧불이가 화장실을 �히고 있는듯 독특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중국등 외국인들의 관광 명소가 되어 "한국 화장실 투어"도 있다고 하죠?
화장실 안에서 보이는 광교저수지댐이 인상적이었으며, 내부가 매우 청결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와 등산로 입구에서 화장실 안을 촬영했는데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화장실 출구가 등산로 입구 였습니다
화장실을 나오니 바로 등산로 계단이 이렇게 펼쳐지고
앞으로 광교산을 점령할 생각을 하니 가슴 설래였습니다
그런데 한 코너를 돌고 위를 보니 까마득한 계단이 있지 뭡니까.
아~~이 광교산도 계단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힘께나 드는 산인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이 숨을 막히게 했습니다
계단을 약 150m정도 오르니 이정표가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곳이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올라 오는 코스와 경기대 후문쪽에서 올라 오는 코스가
만나 함께 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오르막"이 강력하게 나올것에 대비하며 왼쪽 등산로를 따라 갔습니다
'오르막'이 곧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며 가는데...평평한 평범한 평지였습니다
이상하게 오르막이 나오지 않고 평지만 계속되고...산꾼들의 옷차림도 이상했습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장비가 산책하는 듯한 차림들이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오르막은 나타나지 않고 평범한 평지만 계속되었습니다
걷는 도중에 만나는 산꾼들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 등산화도 신지 않은 처녀 총각,
하물며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들도 간혹 보였습니다
광교산은 水原市의 대표산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어느정도 험난한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등산객들의 모습이 등산이라기 보다는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처럼 보였고
등산로가 登山路가 아니라 山策路가 계속되고 있어 의아한 생각을 가지며 걸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반딧불이 화장실 위 이정표에서 형제봉 턱밑까지는
약간의 높낮이가 있는 경사도가 매우 낮은 완만한 경사도의 능선길이었습니다.
남여노소 누구나 오를수 있는 매우 쉬운 코스였습니다
[문암골 갈림길]
문암골에서 올라오는 코스와 만나는 곳 같았습니다.
산길은 이렇게 다른 길과 만나고 헤어지며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이어집니다
오르막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보시다시피 이런 정도가 오르막이라고 특별히 촬영했으니
얼마나 완만한 경사인지 아시겠죠?
[천년수 약수터]가 여기서 440m 지점에 있다고 알려 주는 갈림길입니다
또 평지를 걸으며 김소월의 유명한 詩팻말도 감상하며....
[이의동 갈림길]을 지나
숲속 산책은 계속되고....
[백년 약수터]갈림길
천년 약수를 먹으면 천년을 살고..백년 약수를 먹으면 백년을 산다?
두군데 약수를 다 먹으면 천백년?
무언가 전설이 있겠지만....안 마셔도 오래 살것같은 기분은 기분 그 자체로 즐거웠습니다
백년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조금 가니 이제서야 오르막이 나타났습니다
오르막이 나타나자마자 공사중을 알리는 현수막
오르막이라고 등산객들을 위해 등산로 - 즉 계단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등산로에 계단을 설치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예산을 들여
건설하겠지요. 그런데 그러한 편의 제공은 등산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편의가 아닙니다
저는 산에가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물으면
산에 가는 이유는 여럿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힘들기 위해 갑니다"라고 답합니다
산에 오르는데 힘들지 않는다면 뭣하러 갑니까? 집에서 편히 구둘짱 짊어 지고 뒹굴지...
힘들고 땀이 뻘뻘 나고 숨이 할딱거리지 않는다면 등산을 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힘들고 땀이 많이 날수록 즐거운게 바로 등산입니다
그런데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인공편의시설을 거금을 들여 건설을 한다?
저는 동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자연은 모두 아시다시피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두는게 자연을 위하는 길이라 여깁니다
계단 건설 구간 몇십m를 오르니 형제봉 바로 밑 작은 봉우리더군요
대부분의 산에 있는 '깔닥고개'치고는 너무 짧았습니다
여기까지 강아지도 올랐더군요..얼마나 쉬운 산책길인지 아시겠죠?
그리고 박재삼 시인의 유명한 詩한수가 산을 오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산에서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기쁨이거던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中年들어 肝腸(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던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
박재삼 시인은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등 우리나라 전통시의 맥을 이은 시인이지죠
박재삼 시인의 시 중에 제가 아는 시는 "그대가 내게 보내는 것"인데 소개 해 드릴까요?
그대가 내게 보내는 것
박재삼
못물은 찰랑찰랑
넘칠 듯하면서 넘치지 않고
햇빛에 무늬를 주다가
별빛 보석도 만들어 낸다.
사랑하는 사람아,
어쩌면 좋아!
네 눈에 눈물 괴어
흐를 듯하면서 흐르지 않고
혼백만 남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어지러운 바람을,
못 견디게 내게 보내고 있는데!
형제봉 정상을 향하는 길
등산객이 한곳으로 모이는 곳이 정상이니 당연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조금 가니 [형제봉]을 우회하는 길과 릿지를 해서 형제봉 정상을 오르는 길안내를 했습니다
저야 당연히 정상을 올라야죠?
형제봉까지 처음으로 암벽이 나타났습니다.
친절하게도 로프까지 설치해 놨더군요. 사실 이런 정도의 경사는 로프는 오히려 짐이 됩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듯 로프를 잡고 유격훈련 하는듯 올랐습니다
저는 릿지를 좀 하기에 그냥 뒷짐지고 발가락 두개로 올랐더니 몇몇 사람들이 박수를 치더군요
[형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이라봐야 서울의 남산 정도이지만 이곳까지 특이한 점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뭐냐하면,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처음으로 하늘과 주변 경관을 조망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산행기를 쓰려면 동서남북, 좌우 위 아래를 잘 설명을 해야 다음에 오시는 분들에게
이 산행기가 도움도 되고, 또한 나의 위치를 알며 온길과 가야할 길을 느끼며 산행 할수있는데
울창한 숲으로 인해 등산로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수 없었습니다
형제봉이 동쪽인지 북쪽인지도 알수 없이 그냥 오르기만 한 것입니다
岩山과 陸山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만, 형제봉을 오르는 마지막 봉우리 이외에는
돌맹이 구경하기도 힘든 그런 陸山이기에 산꾼들은 이런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죠
형제봉 정상에서 아마 수지 방향이라고 추측되는 곳을 처음으로 조망했습니다
서쪽 방향..
북쪽 방향
형제봉 정상에서도 간신히 조망한게 세장의 사진 뿐입니다
도데체 바같 세상이 보이지 않아 감옥생활 하는듯했으며
하산 할때까지 거의 같은 "숲의 터널" 속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산림이 잘 우거졌다고 해야하나요?
형제봉을 내려와 시루봉으로 향하는 곳에 하늘이 쬐끔 보이니 사람들이 몰려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비집고 들어가 처음으로 겨우 앞으로 가야할 길을 알아 냈습니다
저 앞의 제일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비로봉(종루봉)이며 우측 능선의 중간 쯤이
광교산의 정상인 시루봉이라하더군요
가운데 멀리 보이는 철탑 같은 것이 방송국 송신탑이라는 설명을 산꾼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광교산의 윤곽이 조금 잡혔으며, 흠~ 이제부터 등산이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내려가야 하더군요
바로 오른쪽에 급경사라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내리막 급경사도 잠깐이고 순탄한 길을 걷습니다
[김준용 장군 전승비]안내 표지판
내용을 요약하면
병자호란때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대를 물리친 김준용 장군(1586~1642)의 戰勝地에
碑모양으로 암반에 다음과 같이 새겨 놨다고 합니다
'충양공김준룡장군전승지(忠襄公金俊龍將軍戰勝地)'라 새기고, 그 좌우에
'병자호란공제호남병근왕지차살청삼대장(丙子胡亂公提湖南兵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는
戰勝 내용을 새겨놓았다는데....
정조대왕이 "華城" 축조 때, 영의정이었던 번암 채재공선생이 광교산에 올랐다가
이 분의 얘기를 듣고 새기게 했다고 합니다.
번암 채재공 선생에 대해선 저의 산행기 "예봉산-적갑산-운길산 연계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번암 채재공 선생은 등산을 무지무지하게 좋아 하신 분으로 육십칠세에
경기오악중에 유일하게 서울에 있는 관악산을 오르시고 산행기를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팔순까지 사셨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장수이지요
김준용장군 전승지 안내판에서 조금 가니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왼쪽길은 비로봉(종루봉)을 올랐다가 시루봉으로 가고,
오른쪽 길은 바로 시루봉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당연히 왼쪽 비로봉으로 올랐습니다.
어느 봉우리나 마찬 가지로 비로봉도 조금 오르막입니다.
비로봉 정상 표지판
비로봉 정상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비로봉 정자 안에는 나옹선사의 유명한 시조가 걸려있었습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말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비로봉에서 또 하늘을 보고, 또 가야할 곳도 조망 할수 있었습니다
시루봉정상이 능선에 걸쳐 있는듯...
시루봉에서 송신탑 - 통신대 가는 방향이 확 펼쳐지는 군요.
백운산 가는 방향은 저 송신탑과 통신대를 보면 알수 있기에 길안내 이정표와 같았습니다
비로봉을 내려가니....
[토끼재]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토끼재 등산로에 대한 설명
아마 토끼가 넘나 드는 그런 곳이겠죠?
예쁜 토끼가 뛰어 다니는 모습을 연상하니 토끼재의 옛모습을 가늠할수 있었습니다
청춘의 모습처럼...
토끼재에서 조금 가니 갈림길이 나왔는데
광교산의 정상인 "시루봉"으로 가는 길과
시루봉을 가지 않고 바로 "억새밭"으로 가는 우회길 안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시루봉 정상을 갔다가 억새밭으로 가야지요
갈림길에서 조금 가니 광교산의 정상 [시루봉] 표지석이 숲을 뚫고
환한 햇빛을 받으며 그 모습을 드러 냈습니다.
대부분의 산정상은 오르는 경사가 있는데 경사도 없이 불쑥 나타나더군요
[광교산의 정상 시루봉]
582m 높이의 광교산은 백과사전에는 光橋山이라 표기되 있고,
수원시 공식 홈페이지에는 光敎山이라고 표기 해 놨더군요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아는 체 좀 하시는 분들이 광교산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을 하는데...
정확한 내력은 저 정상석 뒷면에 다음과 같이 써 놨더군요
"수원 북쪽에서 찬 바람을 막아주며 수원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해발 582m의 광교산은
원래 이름이 광악산이었다. 고려야사에 의하면 928년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친히
정벌하고 귀경하는 길에 광악산 행궁에서 군사들을 위로할 때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을
솟아 오르는 광경을 보고 부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하여 산이름을 '光敎山'이라 하였다."
원래 내 자신의 사진은 산행기에 잘 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물도 시원찮아서 자주 등장하면 보시는 분들이 짜증을 내거던요. ㅎㅎ
그래도 증명사진이니 보일듯 말듯하게 축소해서 한컷 올리니 양해 바람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5월초 날씨로는 제일 더웠다는 날이라 저도 땀좀 흘렸습니다
시루봉을 내려와 억새밭 방향으로 향합니다
조금 가니 [노루목 대피소]가 나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루목 대피소는 지리산에 있죠? ㅎㅎ 여기도 노루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정도의 산에선 비를 피하기 위한 정도 일듯....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햇볕이 광교산의 숲으로 차단되어서 최고 더운 날씨임에도 시원했습니다
[TV방송국 송신탑]
조금 가니 우리나라 각 TV방송국 안테나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더군요
에펠탑 같죠?
두개의 큰 송신탑중에 하나는 3개방송사 것이고
다른 하나는 MBC
[억새밭]
송신탑에서 조금 가니 '억새밭'이라는 팻말이 나오는데,
억새는 없고 돌무덤만 하나 있었습니다
지나는 산꾼에게 억새밭에 왜 억새는 없냐고 물었더니, 옛날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없는거라고 하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산에 갈대가 특정지역에 자라면 그곳은 전에 집이 있었던 자리이며
그 집이 불에 탓을때 그 자리엔 반드시 갈대가 자란다고 알고있습니다
여기도 아마 옛날에 집터가 있었을것입니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로 온길을 자연스럽게 뒤돌아 볼수 있었습니다.
너무 심한 숲은 오히려 우리를 감옥 속에 넣는것과 같습니다
해방 된듯 하지 않습니까? 산은 이래야 다닐 맛이 나는데...
억새밭에서 약간의 오르막을 오름니다
미군 군사시설이 나옵니다
[통신대]
여기가 통신대입니다.
저는 '통신대'라고 해서 放送通信大學敎가 있는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美軍 通信部隊를 '통신대'라고 하더군요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백운산과 지지대고개 갈림길 안내판
'通信隊 주요시설'앞 이정표
왼쪽으로 가면 지지대 고개나 광교저수지로 가는 하산길입니다.
白雲山을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합니다
갈림길에서 우측 철조망을 타고 白雲山으로 갈수있습니다.
미군 레이더 기지 시설이 장난이 아니게 규모가 컷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곳을 촬영했다간 잘못하면 붙잡혀 갔습니다만
이제는 숨겨야 할 이유도,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라 암묵적으로 촬영이 허용되죠
백운산 방향으로 와서 뒤돌아 본 미군 통신대 시설
조금 오니 바로 "백운산" 정상이었습니다
미군 통신대는 광교산에 있는게 아니라 백운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원시가 아니라 의왕시였습니다
백운산 정상은 통신대 갈림길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형제봉까지 1시간 10분정도 걸렸고,
형제봉에서 시루봉까지 1시간정도,
시루봉에서 백운산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저는 산행기를 쓸때 시간은 전체적으로 걸린 시간만 표기합니다.
왜냐하면 걷는데 개인차가 크기때문에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별루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평이한 능선코스이기 때문에 알려 드림니다
광교산과 백운산은 "한남정맥"에 있는 산으로서 한남정맥 중의 산중에는
광교산이 제일 높습니다
한남정맥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하여 안성의 칠현산을 거쳐 광교산, 백운산,
지지대 고개를 지나 인천을 통과해 김포반도의 끝인 문수산에서 끝납니다
문수산에 대해서도 제가 쓴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정맥을 종주하는 등산마니아들에겐 '지지대 고개'가 유명합니다. 왠지 아시겠죠?
요즈음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나 산경표의 신경준을 따라 백두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하는 산행이
등산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남정맥 종주의 릴레이 장소가 바로 "지지대 고개"여서
"지지대 고개"가 마니아들에게 유명한 것입니다
백운산 정상에까지 막걸리를 들고 올라 영업을 하시는 분이 있더군요.
대단한 신념을 존경합니다
백운산 정상에서 점심 식사와 쐬주 한잔 했습니다
약 45분정도 휴식을 취했습니다.
밥 옆의 돼지고기 안주가 보이시나요? 제 옆지기의 주특기 안주인데 조리법을 알려드리죠
돼지고기는 제일 싼 부위인 '사태'입니다.
고기는 기름 부위는 분리시키고,
고기를 삶을 국물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생강,마늘,파,양파,된장,커피,통후추를 넣고 푹 끓입니다.
그리고 소주를 조금 넣고 돼지 사태를 넣고 한시간 이상 삶습니다
기름은 쫙 빠지고 부더러운 살코기만 남습니다.
많이 삶으면 부더럽고, 조금 삶으면 좀 질깁니다. 너무 부더럽게 오래 삶으면 않됩니다.
왜내하면 다시 볶아야 하기 때문에 볶을 때 고기가 부서지기 때문입니다.
삶은 사태를 꺼내 찬물에 씻어 적절한 크기로 썹니다.
그리고 후라이팬에 식용유와 다진 마늘을 볶다가, 고기를 넣고 조금 볶다가,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물엿과 파, 후추가루를 넣고 볶아냅니다. 그리고 불을 끄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주 안주 입니다. ㅎㅎ 한번 해 보세요. 특허료 주셔야하고..
통신대 우측 철책을 타고 하산하기 시작합니다
광교산, 백운산까지 오르는 시간과 지금부터 하산하는 시간이 비슷하게 걸린듯합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알게 됩니다
통신대 정문
통신대 정문에서 좌측으로 계단길이 나 있습니다
계단길이 제법 길었습니다
미군 숙소인듯한 兵舍가 나오면 좌측으로 돌아 나아 갑니다
兵舍를 돌아 나와 뒤돌아 봤습니다
포장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 가니 "통신대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이 헬기장에서 좌측 포장도로를 따라 하산하면 '상광교 버스 종점'이 나온다더군요.
다리 아프신 분들은 여기서 하산하여 버스를 타시면 등산로를 탈출하게 된다는군요
저는 헬기장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의왕시와 수원시의 경계표지가 있었고
통신대 헬기장에서 뒤돌아 보고
"광교 헬기장" 가는 길을 찾아 내려 갔습니다
미군 통신대 헬기장에서 광교 헬기장까지는 지도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거리가 있었습니다
내리막 오르막을 여러번 거치며....길을 모르면 길손에게 묻고...
[광교 헬기장]에 왔습니다
통신대 헬기장에서 여기까지는 거리가 있습니다
광교 헬기장에서 오른쪽 똑바로 가면 "지지대 고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지지대(遲遲臺)고개
수원은 효의 도시라고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조대왕의 애틋한 사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하는데,
그 중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47-2(국유지)에 위치한 지지대고개라고 하는
서울에서 융릉으로 오거나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면 꼭 넘어야 하는 야트막한 산으로
우리에게 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것 같습니다.
이 고개에는 정조와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조가 이 산을 오르면 멀리 화산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가 보이는데도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아주 더디게 느껴져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한탄을 하였고,
참배를 마치고 서울에 환궁을 할 때는 이고개의마루턱에 어가를 멈추어 서게 하고
뒤돌아서서 오랫동안 부친의 묘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 어가에 올라서도 화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아 행차가 자꾸 늦어져
이러한 사연 때문에 이 고개를 '느리게 느리게 넘어가는 고개'
또는 '더디게 더디게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의 한자어를써서 지지대고개라 부르게 되었고,
순조 7년(1807) 정조의 효성을 전하자는 신현의 건의에 따라 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답니다.
광교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내려 가야 반딧불이 화장실로 원점회귀를 할수 있습니다
멀리 형제봉 능선이 보입니다.
이제서야 왜 오르막이 별루였는지 알았습니다
형제봉에서 좌측으로 폭 페인 부분이 형제봉에서 비로봉-시루봉으로 가는 계곡 같지 않은
계곡이었을 뿐 거의 평지를 걷고 또 걷고 걸었을 뿐 힘든 오르막은 거의 없었습니다
광교 헬기장에서 내려 가는 길엔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등산로에 들어 서면 숲으로 외곽 조망이 안됨으로 어디가 어디인지 갑갑합니다
앞에 가는 부부 산객에게 길안내를 부탁하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반딧불이화장실로 회귀해야하고 저분들은 '보건환경연구원' 쪽으로 간다고하더군요
"홍어와 무인도" 저의 블로그를 알려주고 시간 나면 들리시라고 했는데....
거북바위 방향으로 제법 내려 갔습니다
광교 저수지 방향으로 내려 가는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안내를 해 주신 부부산꾼분들이 여기서 마을회관 방향인 좌측으로 내려 가라고 하더군요
부부산꾼들은 보건환경 연구원 쪽으로 가시고....
"홍어와 무인도"라고 블로그 이름을 지은 이유를 묻기도 했는데....
저의 블로그의 글들을 읽어 보시면 아실수 있습니다만..읽으실려는지...
고마웠구요~건강하시고 안산 즐산 하세요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 오니 예림식물원이라는 무인경비 꽃판매장이 있었고....
상광교 마을이 나왔습니다
이 다리가 新上光敎橋이며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버스를 탈까 망서리다가
종주하러 와서 버스를 탄다는건 쪽 팔리는 일이라 걷기 시작 했습니다
여기서 반딧불이까지 무지하게 멀더군요.
이제부터는 산행이 아니고 트랙킹입니다.
사실 산길보다 트랙킹이 더 지루하고 다리 아픔니다.
오르막이 별루여서 다리는 괜찮은데, 워낙 많이 걸어 발바닥이 아팟습니다
상광교에서 하광교로 내려가니 길 가운데에 큰 느티나무가 멋있게 서 있었습니다.
수령이 370년 �답니다
가게에서 아이스 돼지 바- 하나 사먹으며 걸어 내려 가니 영동고속도로가
광교터널을 향해 뻗어 가고 있었고....
[광교 쉼터] 공원
고속도로 밑을 지나니 바로 광교 쉼터가 나왔습니다
깨끗하게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광교저수지 맨윗쪽에 만들어진 휴식공간이었습니다
광교쉼터에서 광교저수지 오른쪽 산밑 산책로를 따라 가면 경치가 좋다는 안내를 받고
산책로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산책로는 한산 하면서도 운치가 있었습니다
발바닥이 아파 앞에 보이는 정자에서 조금 쉬었습니다.
정자에서 바라 본 형제봉과 시루봉
언제나 그렇듯 지나고 나면 내가 어떻게 저 먼 거리를 걸었을까..하고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오늘 광교산은 경사도가 별루여서 힘들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장난이 아니게 길어
많은 시간이 소요�습니다
산책로 운치 있습니다
이런 산책로에는 주로 젊은이들이 걷는게 아니고 연세 있으신 홀애비 과부들이 주로
데이트 코스로 이용하지요 ㅎㅎ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의 자기 고장 가꾸기가 무진장 활성화 되어 환경이 좋아 졌습니다만
더 급한 곳에 들여야 할 예산을 전시행정을 위해 소모한다는 비판도 있지요
광교저수지댐에 다달았습니다
이 저수지 산책로만 4km가 넘으니 얼마나 많이 걷는지 아시겠죠?
건너편에 "반딧불이 화장실"이 보입니다
산책로에서 댐위로 오르는 길도 아름답게 치장 해 놨습니다
광교저수지 댐 윗길
댐 위에서 바라 본 걸었던 산줄기가 아득히 뻗어 있습니다.저 맨 뒷쪽의 검은 능선을 돌았습니다
[광교 공원]
오를 때 못 들어 가 봤기에 들어 가 봤습니다
강감찬 장군 동상을 세워 놨는데 수원이랑 뭔 관계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는 잘 아시는 서울대학교가 있는 관악산 밑의 "낙성대"이지요?
태어 날때 별이 떨어 졌다해서 생긴 이름이라는데....
또 묘는 충북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에 있고...팔십사세까지 장수하신것도 유명하고...
강감찬 장군은 키가 아주 작았고 못생기기로도 유명했습니다.
서른다섯이 넘어 과거에 급제해서 대기만성형 역사인물로 자리 메김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강감찬 장군은 文科 과거에 합격하여 요즘으로 말하자면 교육부, 문화관광부등에서 일했으며
나중에 武人으로 거란족의 천적으로 활동했지요.
강감찬 장군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文武를 겸비한 다재다능한 분이었지요
이것으로 길고 긴 "걷기"를 마쳤습니다. 총 6시간40분이 걸렸습니다.
트랙킹이 장난이 아니었으며 백운산 정상에서 점심과 소주 한잔 하는데 45분이 걸렸을 뿐
열심히 걸었는데도 시간은 많이 걸린 듯 합니다
오늘 걸은 코스를 요약 정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