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재발견"
"삼성산 모자봉 열녀암"을 찾아서
서울대 정문-호수공원-무장애숲길안내소-열녀암-모자봉-
제2깔딱고개-철쭉동산-제2광장-제1광장-나들이숲-서울대정문
"烈女"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열녀전]
편찬자, 편찬 연대는 미상으로 중국의 여러 문헌에 기재된 역대의 뛰어난
여성들의 행적을 발췌하여 번역한 책. 2권 2책. 한글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구글맵 지형도]
[구글어스]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출발하여 "관악공원"을 통과하여 "제4 야영장"까지의 "옥류천"을 둘러보고
"열녀암"과 "모자봉"을 오르고, "제2 깔딱고개"에서 "철쭉동산-제2광장"으로 내려가
"관악 나들이숲"을 통과하여 "서울대 정문"으로 돌아오는 GPS 측정으로 "7.8km"를 걸었습니다.
구글어스에서 보는바와 같이 "서울대" 옆 "관악공원"을 둘러 보는 코스였습니다.
[서울대 정문앞]
2016년 4월 29일 (금) 맑음 박무
요즘 일주일에 한두번 비가 내리고, 황사도 자주 있어 산행하기 좋은 날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날씨가 그런대로 괸찮은듯 하여 부랴부랴 길을 나섯습니다.
먼저 "서울대 정문"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뒷쪽 "관악공원 시계탑"이 있는 주차장방향으로
30m쯤 가면....
[관악공원 입구] 12:10
"관악공원"으로 들어 가는 샛문에 사람들만 다닐수 있도록 틈새 통로를 만들어 놧습니다.
시계탑이 있는 주차장까지 가지 않아도 되도록 전에는 없던 샛문을 만들어 놨군요.
'서울대 정문' 앞길은 터널과 인터체인지 공사로 혼잡하더군요.
[관악공원 진출입로]
"관악산-삼성산" 등산로이기도한 "관악공원" 길을 따라 5분여 진행하면...
[갈림길] 12:15
물레방아가 있는 "서울둘레길" 갈림길을 만납니다.
그리고 좌측에는 "관악나들이숲길" 입구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직진해서 올라 가고 돌아 올때는 좌측 "관악나들이숲길"로 돌아 올 예정입니다.
[공원길]
영산홍과 봄꽃들이 화려함을 더해주는 공원길을 따라 7분여 더 올라 가면....
[삼거리] 12:22~12:31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우측길로 "성주암"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 와서 좌측 [연주대][관악산 계곡 나들길]방향으로 갑니다.
[호수공원] 12:32~12:35
[조형물]
이어서 "호수공원"을 통과합니다.
오랜만에 들렸으니 둘러 보고 갑니다.
['신위 선생 상']
"신위 申緯" 선생 동상
1769(영조 45)∼1845(헌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화가·서예가.
이 분의 호가 "자하 紫霞"라는데....
지난번 "수영장능선"과 "자하동천"을 산행하면서 업급했던 지명을 기억하시나요?
옛날엔 관악산을 크게 4개 洞으로 구분했다는 것...
관악산 주변을 "자하동 紫霞洞"이라 했답니다. "자주빛 자紫, 노을 하霞"입니다
현재 관악공원이 조성되있는 서울대 정문 입구쪽이 "北紫霞洞"
과천 향교 부근이 "東紫霞洞", 육봉능선과 관양능선이 있는 안양 쪽이 "南紫霞洞",
삼막사가 있는 삼성산 시흥쪽이 西紫霞洞이라 했답니다.
"신위선생"은 어렸을때부터 "정조"가 신동이라고 칭찬했던 인물인데 詩 書 畵에 능해 3절이라고 했답니다.
관직에 등용되어서는 "국산품 애용, 양반 배척, 서얼의 차별대우 철폐, 당쟁의 배격"등을 제시하다가
수구세력들에 의해 쫒겨나 시흥쪽 "서자하동"에서 은거하였다는군요.
이곳은 "북자하동"인데 이곳에 동상을 세워놨습니다.
[자하정]
"호수공원"에 있는 "자하정 紫霞亭"이 서울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옥류천'] 12:36
"호수공원"에서 "옥류천"을 따라 올라 갑니다.
이 개천은 "도림천"의 최상류인데, 안내도에 "옥류천"이라고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올라 가면...
[다리] 12:37~1:17
다리를 하나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다리가 있는 이 개천은 좌측 "옥류천"의 지천인데 '삼성산'과 '호암산' 산줄기가 만들어 내는 개천이더군요.
여기서 저는 좌측 "옥류천"을 따라 "제4야영장"이 있는 곳까지 올라 갔다가 다시 내려 왔습니다.
오늘 주 목적이 "열녀암"을 찾아 가는 것이었는데 알바를 한거죠. ㅎㅎ
알바한 거리는 구글어스에 나와 있드시 제법 긴 거리였으며 40분간이었습니다.
"열녀암"으로 가는 길은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측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삼거리] 1:17
위에서 언급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길로 올라 가야하더군요.
이 삼거리에는 [관악구 공원녹지과 산불진화장비 보관함]이 있습니다.
[오솔길] [족구장]
넓고 잘 정비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며
배드민튼장인지 족구장인 뭔지 운동장을 하나 지나면....
[무장애숲길]
[무장애숲길 안내소]가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무장애숲길' 안내소] 1:22~1:24
"관악산공원 무장애 숲길 안내소"
여기로 오는 방법은 조금전 "호수공원입구 삼거리"에서 도로 따라 직진해서 와도 되더군요.
"열녀암"은 여기서 안내소 뒤로 난 [무장애숲길 데크]로 가야 했습니다.
새로 [무장애숲길]이 건설되는 바람에 길찾기가 어려워진듯....
[무장애길]
"무장애 숲길"이란...
숲길을 걷는데 장애물을 없애 휠체어등도 다닐수 있도록 만든 숲길을 말하는데,
주로 장애인들이 숲길을 이용 할수 있도록 만든 길을 말 한답니다.
안내소에서 50여m 진행하면.....
['잣나무 쉼터'] 1:25~1:26
"잣나무쉼터"를 만나는데 이곳에 무장애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무장애숲길 현위치도']
제가 "열녀암"을 찾아 가는 길을 빨간색으로 표기했습니다.
[무장애 숲길]은 세 구간으로 만들어 져 있다는 것을 색깔로 표기해 놨습니다.
조금 멀지만 계속 [무장애 숲길]을 따라 '자주색'으로 표기된 길에 있는 "전망쉼터"를 통과하여
"열녀암"으로 갈수 있다는 것도 알수 있습니다.
[무장애길]
"잣나무 쉼터"에서 데크길을 따라 2~3분 진행하면...
[갈림길] 1:29 ★ 길조심 ★
"잣나무 쉼터"에서 데크길을 따라 2~3분 진행하면 관심 없으면 알수 없는 "열녀암능선"을 만납니다.
능선이지만 낮아서 고개같지 않은 고개인데, 우측을 보면 숲속에 길이 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저는 지도를 보며 독도를 할줄 알기에 쉽게 찾았습니다만, 일반인들은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열녀암' 가는 길]
제법 선명하게 난 능선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다시 윗쪽 [무장애숲길] 데크를 만나는데
데크 밑을 통과해서 올라 갑니다.
[오름길]
데크 밑을 통과하면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잠시 이어지고...
[열녀암] 1:35~1:50
철조망 울타리를 만나는데 앞에 보이는 바위가 "열녀암"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넓은 등산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열녀암]
"열녀암 烈女巖"
바위라는게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건 상식이라....
빙빙 돌며 여러 각도에서 "열녀"의 흔적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려 봤습니다만
아쉽게도 제 눈에는 그런 모양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각이 무뎌서 이겠지만...ㅎ
여하튼 매우 큰 바위 두개가 서로 마주하는듯 있고, 주변엔 바위들이 움집해 있었습니다.
"관악구청 홈피이지"에서 인용 합니다.
"열녀암(烈女巖)
옛날에 아낙이 남편과 아들, 딸을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악한이 아낙의 주인 남자를 찾아와서 “사냥하러 가자”고 유인하여 먼 곳으로 가 살해하고
돌아와서 열녀를 유혹하여 보았으나 열녀는 유혹을 완강히 물리쳤다.
한편 남편이 살해된 사실을 모르고 아이를 등에 업고 아낙은 관악영산을 근거로 하여
넓죽한 망부대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도하였다.
이 갸륵한 정성에 감동되어 복두꺼비와 바둑이가 열녀를 다른 짐승으로부터 지켜주는 동안
열녀는 쉬지 않고 기도를 계속하여 지성이면 감천으로 천지인삼덕(天地人三德)이 상응하여
천추에 맺힌 한이 서린 화석으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구전되어 오고 있다."
'관악구청'이 알리고 있는 "열녀암의 유래"는 제 생각으로는 누가 쓴것인지 문맥의 앞뒤도 어슬프고,
그 내용도 이 동네의 자랑거리도 아닌 이 동네가 우범지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내용의 핵심은 오히려 숨기고 싶은 '살인'이라는 범죄적 행위에서 시작됨과 동시에
'부녀자'는 죽던 살던 무조건 남편만을 섬겨야 한다는 옛시대의 남성우월주의 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명의 유래를 홈페이지에까지 올릴 필요가 있는지 관련 공무원은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람니다.
특히나 제가 조사해 본 바로는 이 유래는 최근에 작위적으로 꾸민 소설이라는 것도 알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를 알려 드리면...
[열녀암 표지석 앞면] [표지석 뒷면]
"열녀암"앞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烈女碑"라고 하는군요.
뒷면에는 "烈女巖 保存會 乙丑 開天節"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乙丑年"은 가장 최근이 "1985년"이니 이 표지석은 "1985년 10월 3일"에 세웠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烈女巖 保存會"가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서 검색해 봤더니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홈피의
[자료실]에서 2005년 3월 28일에 올려진 글에서 찾을수 있었습니다.
"열녀암 보존회"는 "윤봉길의사"의 친동생인 "윤남의 선생" 장례식의 '장례식 弔辭'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장례식 弔辭'에 나타나 있는 그 분의 행적 중에 "烈女巖 保存會"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면<
/FONT>
▲ 1974년~ 2002년
매헌 통일산악회, 열녀암보존회등을 조직하고 관악산에서 빈병, 쓰레기수거등 환경운동을 전개하다
관악산에서 열녀처럼 생긴 바위를 발견, 이를 열녀암이라 명명하고 열녀비를 세우게 된 동기부터
당시 신문기사,현대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활품 100종등이 들어있는 타임캡술을
바위 아래 묻어두고 100년 후에 열어 볼 것을 부탁하다.
'관악구청'이 알리고 있는 "열녀암의 유래"는 최근에 작위적으로 꾸민 것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진짜 "열녀암의 유래"는 근래에 "윤봉길의사"의 친동생인 "윤남의선생"이 "매헌 통일 산악회"를 조직하여
관악산 환경운동을 할때 발견하여 열녀처럼 생겼다고 "열녀암"이라 명명하고 열녀비를 세우게 되었으며
타임캡슐도 만들어 열녀비 아래 묻어 두었다는 데에서 "열녀암의 유래"가 탄생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열녀암' 앞길]
"열녀"가 현대에선 어떻게 평가 받나요?
"烈女"의 사전적 의미는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한번 맺은 결혼 언약은 영원한 언약"으로 지키며 남편이 죽은 이유나 사정을 따지지 않고
스스로 자결 함으로서 정조와 절개를 지키는 미혼녀를 일컷습니다.
또한 "烈婦"는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 죽으면 지아비를 끝까지 섬기겠다고,
남편이 바람피다 죽었던 뭔짓을 하다 죽던 관계없이 남편의 뒤를 따라 스스로 죽는 부인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를 통칭하여 모두 "열녀"라고 하지요.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을 개국하면서 도입된 "유교".
'남존여비' '남성우월주의'등으로 여성들의 사회 입지가 강제 폐기된 조선시대에
"열녀"와 "열부"가 탄생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기생질, 여러명의 첩을 데리고 살면서 여자들에겐 목숨을 걸고 정조와 절개를 지키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남성우월주의'가 "열녀 烈女"라는 단어로 몰래 미화된 것이지요.
정조와 절개를 지키는 여자들을 "여자의 善-훌륭한 최고의 여자"라고 정의하며
그런 여자를 온 천하에 광고하며 교육하여 부추기는 행태를 "열녀문"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요즘엔 "열녀"를 "맹렬히 일하는 여성-커리어 우먼"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만
요즘에도 그런 "烈女 烈婦"를 기대하는 남성은 여자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ㅎ
男女平等을 넘어 '여성우월시대'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ㅎ
['열녀암' 뒷길]
그러면서도 은근히 "烈女"를 기대하는 이기주의자인 "파란문"은 마눌에게도 은근히 기대하며...
그러다 큰코 다치지나 않을지 또한 눈치도 보며...ㅎㅎ
"열녀암"에서 단상을 접고 "열녀암" 뒤로 난 좁은 바윗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열녀암' 뒤에서 조망]
"열녀암" 뒤에 올라 내려다 보는 광경입니다.
"열녀"의 흔적을 연상해 보려고 각도를 달리하며 "열녀암"을 바라 봤습니다만
"현대엔 烈女란 없다!"~라고 하는듯 "烈女"로 보이는 바위는 저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망소] 1:54
"열녀암"에서 조금 더 올라 가니 조망이 좋은 쉼터가 있었습니다.
조망을 하면...
['호수공원' 조망]
먼저 지나온 "호수공원"을 조망하고 "서울대 캠퍼스"를 바라보고
[오름길]
3분여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삼형제바위' 암벽]
"삼형제바위"가 있다는 암벽을 만나 암벽을 올라 갑니다.
위에 보이는 바위가 "삼형제 바위"라고 하는데 ...
['삼형제바위'] 1:58~1:59
"삼형제바위"에 올랐습니다.
삼형제로 보던 말던 이런 바위가 있었는데 조망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성주암' '돌산국기봉' 조망]
북쪽을 바라보니 "성주암"과 "돌산국기봉"이 조망되고...
['서울대' 조망]
동쪽으로는 "서울대"와 지나온 "호수공원"이 조망됩니다.
[관악산 조망]
동남쪽으로는 "관악산"이 왕관을 쓰고 있는듯...
몇일 전에 올랐던 "수영장능선"도 보이는데
"수영장능선"에서 바라봤던 "열녀암능선"을 참고로 보여 드리면....
['수영장능선'에서 '열녀암능선' 조망] 자료사진
"수영장능선"에서 바라본 "열녀암능선" 방향으로 자료사진입니다.
[기암괴석 조망]
"삼형제바위"에서 기암괴석을 지나 4분여 오르면....
['모자봉' 정상] 2:04
"모자봉 母子峰 236.1m"
정상에는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철탑이 하나 서 있는데
관악구청 홈피에서 알리고 있는 "열녀암의 유래"에서 따온 이름인듯 합니다.
남편을 기다리는 엄마와 아들이 이 봉우리에 올라 울며불며 기다리다가 바위로 굳어버렸다고 하는듯...
국토지리원 1/25,000 지도에는 단순히 "236.1m봉"이라고만 표기되 있습니다.
['K48 국기봉' 조망]
"삼성산"과 "K48국기봉"이 조망됩니다.
다음주에는 앞에 보이는 "도사바위능선"과 "돌산능선"을 답사 할 예정입니다.
[암릉길]
암릉 직벽을 하나 내려가서
['열녀암능선']
"열녀암능선"을 10여분 진행하면....
['제2깔딱고개'] 2:15~2:33
"제2 깔딱고개"를 만납니다.
"K48 국기봉"까지 올라 갈까하다가 시간이 너무 흘러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려 갑니다.
다음주에 "열녀암능선"과 "도사바위능선"을 답사하고, "칼바위능선-돌산능선"으로 내려 가겠습니다.
['철죽동산' 가는 길]
"제2 깔딱고개"에서 "깔딱고개"라고 하기엔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내림길을 8분여 내려 가면....
['철쭉동산'] 2:41
"철죽동산"을 만나는데 철쭉은 보이지 않고 평상만 하나 있었습니다.
['제2광장' 가는 길]
다시 4분여 내려가니...
['제2광장'] 2:45
"제2광장"을 만나는데 여기에 "열녀암"으로 가는 정상적인 등산로가 있더군요.
[관악공원] 2:47
이어서 "관악공원"의 도로를 만나고
[공원길]
공원길을 잠시 내려 가면...
['무장애숲길 안내소'] 2:51
조금전 "열녀암"으로 올라 갈때에 지났던 "무장애 숲길 안내소"의 도로쪽 화장실을 만나고
['제1광장'] 2:55
이어서 "제1광장"을 지나 갑니다.
"강감찬 장군"이 학교때 배운 "귀주대첩"을 한지가 997년이 되었다고 하네요.
3년 후엔 1,000년이 되겠군요.
"인헌공 강감찬 장군"
장군의 묘는 '충북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에 있고...팔십사세까지 장수하신것도 유명하고...
'강감찬 장군'은 키가 아주 작았고 못생기기로도 유명했답니다.
역사 속 우리나라 장군 중에선 제일 작았다는데 150~160cm 안팎이었다나 뭐래나...
올림픽 레스링 금메달리스트 "심권호"가 연상됩니다. 동상에서도 다리 길이는 숏다리이죠?
서른다섯이 넘어 과거에 급제해서 대기만성형 역사인물로 자리 메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강감찬 장군은 文科 과거에 합격하여 요즘으로 말하자면 교육부, 문화관광부등에서 일했으며,
나중에 武人으로 거란족의 천적이 되어 "귀주대첩"을 한 장군이 되었지요.
강감찬 "장군"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文科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훌륭한 장군은 칼싸움등 무술을 잘하기도 해야겠지만 작전을 잘 짜고 지휘를 잘해야 하지요? ㅎ
['호수공원' 위 공원]
이어서 "호수공원" 위에 있는 공원을 지나고....
[삼거리] 2:59
"관악산등산로"와 "삼성산등산로"가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고...
['나들이숲'] 3:02
내려 갈때는 "관악산공원 나들이 숲"을 통과하며 내려 갑니다.
['나들이숲' 통과]
공원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데 노인들이 군데군데 모여 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다섯팀은 넘어 보였습니다.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도 무지무지 많았는데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늙은이들의 행태...
에쿠 나도 조만간 저리 될려나....저러지 말아야지
[사거리] 3:08
[서울둘레길]이 갈라지는 사거리를 지나
[관악공원 시계탑 주차장] 3:17
'서울대 정문' 옆에 있는 "관악공원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도로 공사 중이어서인지 이 주차장엔 주차를 할수 없도록 변했더군요.
여기서 산행을 마쳤습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7.8km"였으며 알바 40분 포함 3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