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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적갑산-운길산 - 수종사  연계 산행  
3월22일토요일 오전6시30분에 집을 나서 순두부로 아침을 해결하고
일산 백석역에서 7시9분 전철을 타고 옥수역에 8시쯤 내렸습니다

3호선 옥수역
오랜 기간동안 서울에서 살았지만 옥수역에 내려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지하역이 아니기에 자연광으로 비치는 햇살과 한강변의 공기가 새삼 싱그럽게 느껴졌습니다.
오늘도 앞에 가는 山友와 '단둘이 홀로' 제법 긴 코스인 예봉산-적갑산-운길산을 다녀 오려합니다.

중앙선 옥수역
대부분의 열차가 서울역에서 출발하는데 서울의 동쪽이나 동남쪽을 갈 때는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에서 출발을 하죠?
그 방향으로 갈때 청량리역에서 타본적은 제법있어도, 불행이도 '용산역'에서부터
기차를 타본적이 단한번도 없었습니다.
"전철 중앙선 옥수역" 이름도 매우 생소했습니다만 처음으로 한강 북로를 따라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기위해 예봉산=운길산 산행도 산행이지만 이 중앙선 전철을 타고 한강변을 달리는
감상을 꼭 산행기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수도권 전철이 '팔당역'까지 얼마전 개통이 되고 나서부터 
오늘 가려고하는 예봉산-운길산 등산객이 몇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상황을 알고 그런 분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떠나게 된것입니다.
최신형 전동차가 다가와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을 열어 주워 담으려 합니다

달리는 전철 안에서 - 구리 부근
한강변을 중앙선을 타고 가며 풍광을 많이 찍을려고 했는데, 찍은 사진들이 생각많큼
나오지 않아 고르고 골라 한장을 올립니다.
한강이 흐르는 강변 - 낭만적입니다
토요일 중앙선은 용산에서 덕소역까지 10분에 한대가 운행하고 있었으며
용산에서 팔당역까지는 30분에 한대가 운행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전철 3대에 한대가 팔당역까지 운행 함으로, 우리는 덕소역에서 내려 기다리다가
팔당가는 전철로 다시 갈아 탓습니다. 덕소에서 팔당역까지는 두정거장으로 5분정도...

팔당역
새로 지어진 팔당역은 규모도 크고 시설도 최신식이었습니다
뒤로 오늘 오를 '예봉산'이 보입니다.
            
        팔당역 내부                                              화장실
모든 시설이 새로 지어서인지 깨끗했습니다. 특히 화장실은 호텔 수준이었습니다.
먼 곳에서 오는 산객들은 여기서 기초적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고 출발하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팔당역
팔당역은 주차장도 넓어 산꾼들의 약속 장소로도 좋은듯합니다.
뒤로 오른쪽이 예빈산(견우,직녀봉)이 보이며, 좌측 조금 보이는 능선이 예봉산입니다.


팔당역앞 - 자동차 도로
오전 9시 20분경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팔당역앞에서 동쪽, 즉 양수리 방향으로 조금 올라 갑니다.


예봉산 등산로입구
팔당역에서 조금 올라 오면 '팔당2리' 굴다리가 나오며, 
이 굴다리를 지나 큰 길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항상 등산로를 처음 찾아 들어가는 문제만 해결하면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이 사진을 봤는데도 못찾아 가는 사람은 앞으로 등산 다니지 마세요~~
뒤로 예봉산이 보입니다.


첫번째 만나는 삼거리
굴다리에서 5분정도 올라 오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하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저 앞에 사람들 모여 있는 곳 - 초행길은 이런 삼거리가 문제이지요.


등산로 안내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민 할 필요 없습니다. 요즘 안내판 설치가 잘 되있으니까요

             
              이정표
오른쪽은 예빈봉이나 율리봉을 거쳐 예봉산을 가는 길이니 초행이신 분들은 대부분
왼족의 예봉산 직코스를 선택해서 가더라구요.


이정표 왼쪽의 예봉산 직코스
예봉산은 전철 도착시간에 왕창 붐볐다가 30분 동안은 조용하고~ 이런 상황 반복~ㅎㅎ
당연하겠지요?
우리와 같은 전철을 탓던 사람들 한무더기는  모두 먼저 올라 갔습니다.

조금 올랐더니 같은 전철을 탓던 사람들을 금방 만났습니다.
벌써 휴식을 취하더군요. 토요일인데도 산객들이 많았습니다


오르막 시작
이제부터 숨쉴틈 없이 오르고 올라야 합니다

생각보다 경사도가 높았습니다
특히 쉬어가는 구간이 하나도 없이 오르막만 존재 했습니다.
예봉산 정상까지 이렇게 오르막이었습니다.

조금씩 오를수록
나뭇가지 사이로 한강이 조금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한강과 검단산
이제 제법 완벽한 제모습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주변 풍광들.
이런 맛에 오르고 또 오르지요?
한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의 검단산이 예봉산과 키를 맞추어 갑니다.
검단산은 잘 아시다시피 매우 유명하며 
주로 강남구, 강동구, 하남시 사람들이 애용하는 등산 코스입니다.


검단산 우측의 하남시 전경 - 멀리 강동구

계속 오르막
예봉산 정상까지는 산행기를 특별히 쓸만한게 없습니다.
오로지 오르고 또 오르고..그리곤 한강구경과 예봉산 검단산의 도토리 키재기를 감상 하는 일과
조금후 등장하게 될 두물머리의 풍광을 감상하는 일..그게 전부입니다


이 날은 어느 산악회의 늦은 시산제를 하느려는 팀이 한팀 있었습니다
요즈음의 산악회에는 남자들 보다 여자가 더 많은 듯합니다.
세상의 모습은 자꾸만 변해 갑니다. 옛날엔 여자가 산에 다니는건..좀 그랬지요?


두물머리
동남쪽 방향으로 양수리(두물머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예봉산 정상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예봉산 정상 바로 밑에서...

예봉산 정상
드디어 정상에 다가 왔습니다.
예봉산 정상엔 많은 산꾼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모든 동서남북의 조망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지만 역시 정상이다 보니
동그란 좁은 면적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증명사진은 산에 왔을때 찍는 것,  동서남북의 경치를  카메라에 담아
이 산행기를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감회를 느끼도록 노력은 하는데...

           
      이정표                                                 다산 정약용선생의 詩팻말
팔당역에서 여기까지 1시간반 정도 걸렸습니다.
아마도 오르막을 오래 오르는 일은 앞으로 없을듯 합니다.
그러나 현재 11시 정도 됬지만 앞으로 약 다섯시간정도를 더 가야한다니
오르막은 차지하고 그 지루함과의 싸움을 해야 할듯하군요.


예봉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바라 본 양수리 -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
금강산에서 흘러 흘러 오는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검용소에서 발원하여 흘러 흘러 오는 남한강이
다시 바다로 손잡고 나가기 위해 모이는 곳 -  두물머리


예봉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바라 본 예빈산과 팔당호

예봉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바라 본 하남시

예봉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바라 본 운길산
오늘 부지런히 저 운길산을 가야합니다


예봉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 본 적갑산 방향
적갑산을 돌아 운길산, 그리고 수종사까지 식사시간 포함해서 앞으로 약 5시간을 가야합니다.


예봉산과 적갑산 사이의 갈대밭

갈대밭에서 바라본 예봉산 - 정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와 장사를 하는 분들이 몇분 있었는데 대단한 집념입니다


갈대밭에서 바라본 검단산,고추봉, 용마산
이 갈대밭에서 산행 시작후 처음로 휴식을 취하며 가지고 온 과일도 먹었습니다

          
           철문봉
갈대밭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조금 가니 "철문봉"이 나왔습니다
이제부터 역사 속의 인물 중에서 제가 가장 닮고 싶었던 인물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퇴계 이황선생님이시라는건 
저의 글들을 읽으신 분들은 모두 아실겁니다.
제가 가장 닮고 싶고 따라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분 - 茶山 정약용선생
이제 그 꿈을 접고 그분의 발톱사이의 때 많큼도 닮지도 못하고 가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제가 많이 아는 분이시니 산행을 하며 그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이곳 喆文峰은 정약전 둘째형, 정약종 셋째형, 그리고 정약용 삼형제가 청운의 꿈을 안고
젊은 시절 공부를 할때 건강관리를 위해 오르곤 했던 봉우리라 
'학문의 도(文)를 밝혔다(喆)'고 喆文峰이라 한답니다.
정약용 선생이 살던 집은 저 아래 팔당호 옆이라 여기 철문봉까지 오르 내리려면
아무리 빨리 다닌다해도 5시간은 걸렸을 겁니다만 건강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진리를
일찍이 깨우쳤고 나중의 大實學者 다웁게 말로만 떠벌리는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미 등산을
생활화 하셨으니 그런 큰 업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산 정약용선생도 당시로서는 대단한 장수를 하셨죠. 칠십오세까지 사셨으니.....
우리 역사 속에서 높은 관직에 오르고 좋은 역사적 평가를 받으시는 분들은 거의 모두 등산을 하셨습니다
등산을 않하면 출세가 의미 없는거죠? 밑빠진 독에 물 부어 봤자..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거죠
정조대왕의 가정교사였던 채제공 선생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다산 정약용선생인데
당시 여러 직위를 맡으시고 영의정까지 하신 번암 채제공 선생의 관악산 산행기인 遊冠岳山記는 무지 무지 유명합니다
당시 예순일곱살에 관악산을 종주 했기에 유명한것입니다.
여든넷에 관악산 종주 하신분이 숙종 때에 서인의 수괴 송시열과 쌍벽을 이루던  남인의 총수 허목 선생이죠.
채제공 선생이 존경한 분이 바로 허목 선생이고 허목 선생이 존경한 분이 이황선생이며 세종때의 방촌 황희 선생이죠
이 분들 모두 등산을 엄청나게 좋아 해서 황희 선생이 팔순까지 사시고, 퇴계 이황선생이 칠순, 미수 허목 선생이 여든일곱,
번암 채제공선생이 팔순까지 사셨으니 당시로는 대단한 장수이지요
앞으로 다음 산행기 쓸때 소개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채제공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철문봉에서 적갑산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
저를 자주 만나는 분들은 저의 주장을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듣고 상당 부분 공감하는 게 있는데...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의 이름을 '정약용 국제 공항'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 최고의 만물박사 -미술, 음악, 건축, 의학, 과학,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르네상스시대 당시 세계 최고라 할수 있는 사람 - 레오나르드 다빈치 -
이 사람에 대해선 더이상 설명 할 필요가 없지요? 
한국의 정약용선생이 이테리의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견줄수 있는 세계 유일의 인물이라고 주장 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테리의 수도인 로마의 국제공항 이름이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이기 때문에
우리도 편협한 지역 지명으로 공항 이름을 지을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 '정약용 국제공항'이나 '세종 국제공항'등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뉴욕의 국제 공항은 '존 에프 케네디 공항',  파리는 '드골 공항',  런던은 '히드로 공항', 이미 말했듯이
로마는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입니다. 모두 지역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동양 쪽에서나 지역 지명을 붙입니다.
'인천 국제 공항'은 사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항인데도 인천 지역적 이미지가 짙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에겐....


철문봉에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
이제부터는 조막조막한 봉우리들을 오랐다가 내렸다를 반복해야합니다.
정약용선생이 집필한 책만해도 800여권이 넘으며, 그 책 내용들이 어떤 한 분야의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미술, 문학, 철학,...범죄수사, 심리학....과학, 기계, 건축학....
모든 분야를 섭렵하셨으니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견주어 모자람이 없다는거죠
오히려 더 훌륭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패러글라이딩 황공장
TV에서만 봤지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남양주시의 공식 활공장이니 의미있는 자리인 모양이죠?
저는 '활강'인줄로 알았는데 패러글라이딩은 공중에서 뛰어 내리는 게 아니라 공중을 날기 때문에
'활공'으로 쓴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패러글라이딩 활공 start 장소 
밑은 낭떨어지였습니다. 에구~ 저 같은 사람은 엄두를 못내겠습니다.
멀리 다리가 하나 보이시나요? 현재 건설중인 '서울-춘천'간 민자 고속도로라고 하더군요
앞의 아파트들이 구리시 덕소쯤이며 한강 건너편이 하남시


활공장의 휴식처 - 찻집
여러가지 파는 듯..


활공장의 찻집

뒷쪽에서 본 활공장
저 앞의 사람들 서 있는 곳 바로 앞이 낭떨어지 활공장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적갑산 가는 내리막 길
오르락 내리락이 계속 됩니다
여기서 부터는 등산객을 보기가 힘들어 집니다. 대부분 중간에서 하산 했기 때문입니다


적갑산 가는 길에서 본 '운길산'이 푸르른 소나무 사이로..

또 오르막....적갑산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봉우리라 해도 그다지 크지 않고 구경거리도 별루였습니다
어디가 적갑산인지 별도 표시가 없었습니다. 대략 적갑산 부근이겠지...
다시 말해 적갑산은 조그만 봉우리 정도 였기 때문입니다
          
            정일근 시인의 "갈림길"이라는 詩팻말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너에게로 가는 길이 나에게 있었고
           나에게로 가는 길이 너에게 있었다
           지금 가장 멀고 험한 길을 걸어
           너는 나에게로 돌아 가고 있다
           나는 너에게로 돌아 가고 있다
           이제 작별이지
           이승에서의 길은 여기까지다
           길은 가까워 질수록 멀어 지는 것이니
           멀어 질수록 가까워 지는 것이니

또 걷고 걷습니다.

거의 하산 수준으로 내려가서 다시 오르고...운길산까지 계속 됩니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고 외길이라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정표가 있는 곳엔 유명한 詩가 하나씩 걸려 있었습니다
           
            김종해 시인의 "새는 자기 길을 안다"
       하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먼저 안다
             하늘에 길을 내며 날던 새는
             길을 또한 지운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은
             그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때문이다

茶山 정약용선생의 생가와 기념관, 그리고 묘소가 양수대교 옆 팔당호로 툭 튀어 나온 
능내리 마재 마을에 제법 규모가 크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茶山 정약용선생을 떠올리면 전남 강진의 草堂을 생각합니다.
그곳이 곧 茶山 정약용선생의 本家같은 느낌을 받습니다만, 그곳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유배지였씁니다.
그곳에서 18년간이라는 유배 생활을 하며 외롭게 지냈는데 왜 그토록 그곳이 더 각광 받을까요?
사실은 이곳 능내리 마재 마을이 本家이며 生家이니 이곳이 더 각광 받아야 당연한데도....
전라남도와 강진군의 공무원들이 업무를 잘해서일까요?
아시다시피 그곳이 각광 받는 이유는 그곳에서 정약용이라는 실학자가 일생의 최대 업적을 남기기 때문이죠
500여권이 넘는 책을 그곳에서 집필하였고 사연도 많았기 때문일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은 정약용선생의 호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정약용선생의 호는 사암 (俟菴)이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인데  '겨울 내를 건너고 이웃이 두렵다는   의미'를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사암 (俟菴)은 정약용선생이 가장 좋아한 호였다고 합니다. 
사암은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 즉 '뒷날의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함이 없다.' 라는  
기다림의 의미가 있고, 뒷날의 성인에게도 학문적 질책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배어있는 가장 선생다운 호라는 것입니다
 여유당(與猶堂)은 뭔 여유있게 사색을 즐기려고 지은게 아니고, 선생의 불우했던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선생은 요즘 말로 하자면 사상범이었습니다. 천주교를 접했다는 이유 하나입니다.
그 이유로 유배생활 18년...
물론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한 진보 개혁파가 정조대왕의 의문의 죽음으로
보수 수구세력인 서인 벽파들로부터 처참한 정치보복을 당한 것이지만...
與猶의 與는 머뭇거릴 '여'이며, 猶는 망서릴 '유'로 
즉 망설이기를 사방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듯이 조심하면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랍니다
선생의 호로 茶山이 많이 쓰이는건 전남 강진의 유배지 뒷산이 조그마한 '茶山'이라는 地名이어서
茶山에 사는 정약용을 나타낼때 쓰셨는데 이것이 후세에 그냥 '호'로 자리 메김하고 말았습니다.
선생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여기 本家에 왔을 때는 "洌水" 정약용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엔 한강을 '洌水'라고 했기에 '洌水'에 사는 정약용을 나타 낼때 사용했는데
그의 자서전에는 '洌水' 정약용이 쓰다...라고 되 있습니다.
이렇듯 정약용선생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후세엔 모두 "茶山" 정약용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등산로 가운데를 소나무가 가로 막고 있어 부닥칠 위험이 있어 여기 소개 합니다
모자 눌러 쓰고 가다 저도 부닥칠뻔 했습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산행시엔 항시 조심해야하죠?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 하시라~~!!

생강나무 꽃
이 노오란 꽃이 뭔 꽃인지 몰라 동행한 山友에게 물었더니 글세~산수유인가? 하며 자신 없어 했습니다.
그래서 궁금하면 못참는 성격 아시죠? 그런데 제가 즐겨찾는 블로그가 있는데 얼핏 생각이 나 들렸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꽃에 대해 설명을 잘 해 놨더라구요. 물론 산수유로 혼동 하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생강나무 꽃
[한국의 야생화]여기 클릭해서 자세히 알아 보셈
세상 사는데 블로그가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모두 아시져? 모든 정보가 무료이고..이해하기 쉽고..

중간 중간 하산길이 있는데 그런 곳엔 산꾼들이 좀 있더군요
이곳은 잘 알아두면 혹시 빨리 하산해야 할때 이곳에서 '도곡리'로 내려 가면 바로 교통편을 이용

도곡리 하산길이 있는 곳.
이곳은 잘 알아 두세요

여기에 이 유명한 글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정약용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 정약용선생의 글이 많았습니다.
이글은 강진 유배지에서 쓴 글인데 사연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지요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정약용선생의 어머니는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 윤선도의 6대손이며 윤두서의 손녀입니다.
정약용선생의 부인은 풍산 홍씨인데 이 부인이 정약용선생이 유배지에 있을때 
'자신이 시집 올때 가지고 온 다홍치마 여섯폭'을 싸서 유배지로 보냄니다. 
이 치마는 흐르는 세월 속에 낡고 색이 바래져 있었습니다.
윤씨부인이 이 치마를 보내는 이유는 가히 짐작 하시겠죠. 
지금 병들어 고통스러우나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시집 올때와 변함없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정약용선생은 이 빛바랜 치마를 짤라 4폭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폭엔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일명 ‘매조도(梅鳥圖)’라고도 하는 그림과 글을
시집간 딸에게 보냅니다. 그 매조도(梅鳥圖)에 써여 있는 글을 한글로 풀어 썬 것이 위의 시팻말입니다.
오리지날 보여 드리죠.
 
                 
                 翩翩飛鳥 (편편비조)
                 펄펄 하늘을 나는 새들이 
                 息我庭梅 (식아정매)
                 우리 집 뜰 앞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有烈其芳 (유열기방)
                 꽃다운 그 향기 은은하기도 하여 
                 惠然其來 (혜연기래)
                 즐거이 재잘거리려 찾아왔나보다 
                 爰止爰棲 (원지원서)
                 이렇게 이르러 둥지를 틀고
                 樂爾家室 (낙이가실)
                 너희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華之旣榮 (화지기영)
                 꽃은 이미 활짝 폈으니 
                 有賁其實 (유분기실)
                 이제 토실한 열매가 많이 달리겠구나 
딸에게 보낸 이 그림과 글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 되있으며
아들에게 보낸 4장의 하피첩(霞帔帖)은 문서로는 있었으나 실물이 없었는데
제작년 4월에 KBS의 TV진품명품에서 4장중 3장을 소장하고 있는 분의 출연으로
세상에 그 진면모를 나타냈었고 저는 그때 TV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감정가가
1억이 나온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피첩(霞帔帖)은 노을 霞에 치마 帔로 직역하자면 노을치마이고 의역하자면..아시죠?
아내가 시집올때 입고 왔던 다홍치마가 노을빛으로 바래진 그 치마폭에
시집간 딸에게 보내는 유배지의 정약용선생의 마음을 냉철하게 담아 보내는 아빠의 마음 --
아들에게 보낸 편지도 무지 유명하죠? 다음 산행 때 소개하죠

사거리
약수터가 있는 사거리 고개에 도달하는데
여기서도 네군데로 하산 할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먼데서 온 산꾼들은 무조건 '수종사'까지 가야만 할것입니다


제법 험난한 산을 다시 올라야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힘이 많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산행 시작한지 4시간이상이 지났습니다.

산 하나를 넘어서 이제는 '운길산'에 다가 왔나 싶으면 다시 이름도 잘 모르는 산봉우리가 있고..
넘으면 또 있고를 반복했습니다

양수리가 조금씩 보이는 걸로 보아 운길산이 가까워 오는 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수종사'라는 절이 '두물머리'를 감상하는 최적의 위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르고...

오르고 나면 또 나타나고...

건너편 예봉산이 시야에 들어 오니 운길산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걸 느끼겠습니다

마지막 릿지를 하고....
능선에는 암벽이라곤 거의 찾아 볼수 없고, 이곳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운길산을 오르는 마지막 피치
               
드디어 雲吉山에 올랐습니다            다른 산 봉우리에서는 찾기 어려운 평상도 있고..
구름도 쉬어 간다고 운길산이라는 군요

운길산에서 바라 본 두물머리
날이 좀 어두워 지기 시작합니다

운길산에서 수종사로 내려가는 길에 이제서야 올라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여기서 수종사는 지척 거리였습니다.
올라 오는 여자들에게 '날씬한 여자들이 여긴 뭐하러 와요!!'~~했더니 모두 기분 좋아 하더군요..ㅎㅎ

수종사가 모습을 드러 냅니다

수종사는 매우 웅장하고 수련하는 스님들이 매우 많은 큰 절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큰 절은 아니더군요

두물머리 구경에는 최적지라고 알려져 있어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이제까지 예봉산 - 적갑산 - 운길산을 돌아 오면서 여러 각도에서 봐서 그런지
새로운 감은 좀 떨어졌습니다

水鐘寺는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러 오대산 상원사에 갔다가 길목인 두물머리 근처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는데, 밤중에 어디선가 이상한 북소리가 들려 찾아 따라 올라 가 보니
어느 동굴에 물방울 덜어지는 소리가 쇠북치는 소리와 같이 들렸다고 해서
水鐘寺라 했다고 합니다

기와로 만든 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해탈문

앞의 사적기 뒤로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세월의 풍상을 안고 우뚝 서 있습니다.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水鐘寺의 내력을 기록한 사적기

'칼의 노래' 김훈 작가 아시죠?
저의 고등학교, 대학 4년 선배되시고 일산에서 같은 동네에 살고 있죠
그의 저서 '자전거 여행'에서 여기 수종사를 노래한것이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종사 마당에서 산하는 크게 열린다.
산하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굽이치며 다가와 다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흘러나간다. 
내륙의 산악과 평야를 파행으로 흘러 온 남한강과 북한강이 눈 아래서 합쳐지고, 
거기까지 강을 따라온 산맥들이 다시 여러갈래로 모이고 흩어져 하구를 향하는 대오를 갖춘다. 
어디서부터 몰려오는 것인지, 산맥들의 대오는 푸르고 강성해서 하늘 밑을 가득 출렁대는데, 
그 푸른 기세의 먼 변방으로 낮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품어서 자애롭다."

"수종사 절 마당에서, '열수'강은 '열수'마을을 3면으로 휘감고 크게 굽이치면서 돌아나간다. 
그 강 건너편 광주시 퇴촌면 앵자산 밑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의 선각자들인 이벽(1754~1786), 
권철신(1736~1801), 권일신(1751~1791), 이승훈(1756~1801), 정약종(1750~1801)이 묻혀있다. 
그들은 모두 총명하고 반듯했던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의 젊은 날은 서학을 통해서 새롭게 열리는 세계와 미래의 모습으로 설레었다. 
그들은 평등과 보편의 신세계를 향해 개안했다. 그들의 청춘은 찬란하고 치열했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이단과 대역을 다스리는 형장에 으깨져 죽었거나 망나니의 칼에 베어졌고 
그 사체는 거리에 버려졌다. 
강물이 합쳐져서 앞으로 향하는 그 두물머리 남쪽 깊은 산속의 작은 암자에서 
전환하려는 꿈과 전환되지 못하는 세계의 참극은 비롯되었다. 
수종사 마당에서 합쳐지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정다산의 고향과 강 건너 퇴촌면 천진암 언저리가 한눈에 보인다. 
강물에 실려오는  전환과 신생의 꿈이 아직도 그 양쪽 유적지 사이를 흐른다. 
합치고, 굽이쳐서 기어이 바다로 나아간다." 
 

수종사의 해우소는 특이합니다
신발을 벗고 해우소로 들어 갑니다


우리는 수종사의 후문으로 들어가 정문으로 나오다 보니 
이제서야 수종사 일주문이 보입니다

중리 마을에 내려와서 콜택시를 불렀는데 빈차가 없다고해서
양수대교까지 걸어 가다 행운스럽게 택시 합승을 할수 있었습니다
1인당 2,500원씩 네명이서 만원내고 팔당역까지 갔습니다

중리에서 팔당역 가는 택시 안에서....

드디어 서울 가는 전철을 탓습니다.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새벽 6시30분에 집을 출발해서 순두부 한그릇 사먹고 팔당역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오전 9시 20분경이었으니 아홉시간반 정도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점심 먹는 시간도 한시간 정도 걸렸지만, 중리에 내려와서 차 기다리는 시간과
팔당역까지 오는데 차가 막혀 많이 걸려 예상보다 두시간반 정도 더 걸렸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저희들이 걸린 시간 정도는 각오 하고 가야 할 코스인듯합니다

팔당역에서 붉은 점선이 걸은 코스이며, 중리에서 초록색 점선이 택시를 탄 코스
어~휴~
쓰기도 힘들었지만 읽느라고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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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상장능선과 영봉 

3월16일 일요일에는 북한산의 동쪽 "상장능선과 영봉을 다녀왔습니다. 
상장능선으로 가려면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1번출구로 나와 송추 의정부 방향 버스를 다시 타야합니다. 
삼천사 입구, 북한산성 입구, 효자리, 사기막골(숨은벽코스입구)을 지나 "솔고개"에서 내리면 됩니다. 
 
솔고개 버스 정류장 
 
솔고개 버스 정류장 우측 상장능선 입구 
멀리 상장봉이 보입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우측으로 상장능선 가는 길이 있어 입구를 찾기가 쉽습니다. 
멀리 상장봉이 보이고, 앞의 좀 낮은 능선의 봉우리가 '폐타이어봉'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3~400m정도 들어 갑니다 
 
워밍업 할 겨를도 없이 바로 등산을 해야합니다
상장능선은 잘 알려지지않아 산객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산행을 즐길수 있습니다. 
3월의 북한산 주요 등산로는 아시다시피 초만원을 이룹니다 
 
폐타이어봉
20여분정도 걸어 도착한 '폐타이어봉'은 폐타이어를 활용하여 
군 방어참호인 벙커를 만들어 놓아 '폐타이어봉'이라 한답니다 
이곳에서 두꺼운 옷들을 벗고, 물도 조금 마시며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합니다. 
 
폐타이어봉에서 바라 본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인수봉이 멀리 보입니다 
 
폐타이어봉에서 내려다 본 송추 
 
폐타이어봉에서 올려다 본 '상장봉'
상장능선은 저 상장봉까지만 가면 힘든 구간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장능선에는 아홉개의 봉우리가 횡으로 있어 제1봉인 상장봉에서 제9봉인 '왕관봉'까지 
옆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며 진행하기에 한결 편합니다. 
어떤 내력이나 특징이 없기 때문에 오늘 산행기는 정말 재미 없습니다.이제 시작 해 볼까요? 
 
상장봉까지는 끝까지 오르막이라 제일 힘든 구간입니다 
앞에 가는 山友를 언젠가는 소개 해 드릴겁니다만 
신비주의의 달인인 제가 궁금증을 더 키워 잡아 먹어야지요...ㅎㅎ
오늘 산행이 끝날때까지 저 山友의 뒤를 따라 갑니다
 
중간 중간 등산객들이 벌써 부터 퍼져 앉아 한잔씩 하는 광경이 목격됩니다 
 
제1봉 '상장봉'산행 시작 한시간여만에 상장능선의 제1봉인 상장봉이 보입니다. 
좀 싱겁지요?  이런저런 고생을 하며 올라야하는데 
특별한 험난한 코스 없이 무난하게 가장 힘들다는 코스를 올랐습니다. 
 
상장봉 옆구리
상장봉을 릿지로 올라 가는 곳이 있으나 
만수무강을 위해 옆구리로 우회로를 따라 봉우리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 보니 천길 낭떨어지

좌측 봉우리가 '여성봉'이며 그 능선이 송추남능선입니다.
가운데 능선이 오봉능선이며 우측 저 멀리 도봉산 주봉인 자운봉 신선대등이 보입니다
여성봉 뒤에 하얀 봉우리가 사패산입니다.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을 합쳐 북한산국립공원이라 합니다.

우스개 소리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오봉과 석굴암절 사이의 '부처바위'가 보이시죠.
이 부쳐바위는 '여성봉'만 곁눈질로 훔쳐 보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봉은 절묘하게도 여성의 그곳을 쏙 빼 닮았다해서 붙여진 지도에도 나오는 공식 지명입니다.
여성의 거시기라면 '여성봉'으로 표기 할게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표기 해야죠? ㅎㅎ
하여튼 부처도 인간이었으며 남자였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수 있겠으나
30억년을 바라 보기만하며 욕정을 눌러 수도했기에 부처가 될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모든 욕망을 다스릴때 나온다는 설도 있지요?
믿거나 말거나...산행시 유머로 써 먹으세요
   
여성봉
이 사진은 전에 갔을 때 찍어 둔 것입니다. 절묘 오묘하죠?
 
앞으로 가야할 제2봉부터 순서대로 있으며 맨 끝에 제9봉인 '왕관봉'이 보입니다
상장능선은 아홉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봉우리 '상장봉'과 아홉번째 끝봉우리인 '왕관봉'을 제외하고는 
각봉우리들의 이름도 없을 정도로 그져 그런 봉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봉우리들은 그냥 지나치며 간혹 사진으로만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온 길을 뒤돌아 보며.....많이 지나 왔습니다. 
 
산행기를 쓸땐 카메라 쥼을 당겨 촬영을 하지 않는 다는군요
왜냐하면 가지도 않은 길을 간것으로 오해 할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오봉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카메라 성능도 그렇고 황사도 좀 있어서 사진이 별루네요 
 
오봉과 자운봉, 신선대등의 봉우리들이 새로운 각도에서 가깝게 다가 옵니다. 
 
상장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왕관봉' 
 
 
 
 
마지막 봉우리인 '왕관봉'을 끝으로 '상장능선'은 끝납니다
왕관봉에서 육모정고개까지는 내리막 길입니다 
 
육모정 고개
육모정 고개에는  고려대 교수였던 이창렬 박사의 추모비가 이정표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70년대에 한국산악회장이었군요 
 
영봉을 바라 보며..여기 육모정 고개에서 다시 영봉을 오르기 위해선 등산을 새로 시작해야합니다 
지금까지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다시 가파른 영봉을 오르려니 무척 힘들었습니다. 
 
중턱쯤 올라왔습니다. 영봉 뒤로 '인수봉'이 아련히 나타 납니다. 
 
우의동과 상계,중계,하계동의 아파트촌이 한눈에 들어 오며, 멀리 불암산이 보입니다 
앞의 바위가 '코끼리 바위'인데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영봉 중턱은 몇년전 산불이 나 많은 나무들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습니다.시간이 많이 흘러 어스럼 저녁때가 되 가고 있습니다. 
특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있기에 산의 이쪽편은 그림자가 짖게 깔립니다. 
 
영봉 정산 부근에 다달았습니다. 
 
 
靈峰 정상 

 靈峰 정상석
靈峰 정상석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山을 어디라 손을 대려 하느뇨 
     山에 들면 가득한 靈氣에 감사할지니 
     山의 精氣 있으매 푸른 氣運 솟고 
     山의 自然 있으매 맑은 물도 흘러 
     우리 생명 더불어 모든 生命 사노니 
     山이여, 靈峰이시여 萬古不變하여라 
           시 鄭孔采 
           서 農庵 鄭祥玉 
           靈峰命名人 尹柱廣 
 
거대한 인수봉이 가장 장엄하게 잘 보이는 곳이 바로 靈峰입니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암벽타기'의 최고의 코스랍니다
제가 대학 1학년때쯤 친구들과 여기 산행을 온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날 저 인수봉에 많은 산꾼들이 갑자기 불어닥친 차가운 바람으로 로프들이 엉켜
저 인수봉에 대롱대롱 매달려 저 세상으로 떠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는 이 인수봉에 오지 않았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서서 그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숱한 산꾼들이 더 산화해 갔군요
 
그렇습니다
靈峰은 저 인수봉을 암벽 등반하다 다시는 돌아 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리는 곳이라 붙여졌으리라
그 동안 수많은 산꾼들이 이곳을 오르다 산화해 갔습니다 
그래서 인수봉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 영봉에 수많은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40여개라네요
저승에 가서라도 마음껏 북한산을 즐기라고..... 
  
  
 
 
  
노산 이은상 선생의 詩碑가 눈길을 끕니다

         백운대 푸른 하늘에
         그대들 산새되어 날고
         인수봉 바위틈에
         그대들 산꽃으로 피고
         우리는 여기 올적마다 
         그대들 이름 부르마 
 
영봉 주변으로 세워져 있는 추모비는 관련 당사자들에겐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국립공원이 사설 공동묘지 같은 느낌을 주어 마음이 좀 상했는데 
도선사 입구에 내려와 보니 추모비 철거 계획을 알리는 팻말이 보이더군요
금년 3월말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5월15일까지 강제 철거 하겠다고 하는군요 
잘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다음 산행시에는 추모비들을 못 보겠네요
 
영봉에서 도선사, 우의동 버스 종점으로 하산하는 길은 짧고 편안했습니다. 
 
도선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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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동해 바다에 바람 쐬러 갔었습니다
'아침바다'라고 하는 펜션에서 2박3일 동안 머물며
그동안 꽉막혔던 가슴을 동해 바다 바람으로 시원하게 뚫어 버렸습니다
우리 집 유일한 기쁨조 강아지 '씨츄' 의 이름은 "하루"입니다.
저의 블로그를 열심히 보신 분들은 모두 아시죠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고 또 하루를 즐겁게 해 준다고 '하루'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주문진의 겨울 바다에 섰을 때엔 날씨가 제법 좋았습니다
요즘 엄마가 없어 심심해 죽을 지경인 울 "하루"가 "개폼"을 잡고 엄마가 보고 싶답니다
우리 "하루"의 폼은 폼만 놓고 따지자면 고래사냥이 가능..ㅎㅎ 오로지 제 생각
누가 우리 "하루"의 폼을 "개폼"이라 하겠는가?








눈이 부셔서....울 "하루"는 확실히 스타 기질이 있어요~~눈이 부셔도 촬영이 뭔지 알어 요ㅋㅋ
이 폼을 누가 개폼이라 하겠는가?
이렇게 이쁜 개폼 봤는가






고래사냥(송창식)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로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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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8일 토요일 오늘은 북한산 응봉코스를 시작으로 사모바위, 문수봉을 돌아 대남문을 거쳐
북한산성 안으로 들어가 내려 올 예정으로 11시경 일산에서 지하철3호선을 타고 나섰습니다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1번출구
북한산 국립공원의 서쪽에서 산행을 하려면 
이곳 구파발역1번출구와 불광역2번출구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합니다
특히 송추, 사패산 방향 산행을 하려면 이곳이 제격입니다.
일요일 이곳은 등산객들로 초만원을 이루는 곳이나 오늘이 토요일 11시반경이라 한산하기만 합니다
북한산 응봉코스를 가려면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몇정거장 가야합니다.

삼천사 입구 삼거리
구파발에서 북한산성입구 방향으로 몇정거장 가면 삼천사 입구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하차하여 우측으로 약10분정도 걸어갑니다
뒷쪽으로 북한산 주봉의 위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산꾼들은 가슴 설레게 됩니다

삼천사 입구 삼거리에서 10분정도 큰길을 따라 올라 오면 좌측으로 삼천사 입구가 나옵니다

옛 북한산 매표소 - 현재는 주차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대당3,000원/일) 

삼천사까지 차로가 있으나 모두 이 등산로를 이용합니다

육군전투수영훈련장
삼천사 쪽으로 조금 올라 오면 이런 수영장이 하나 나옵니다.
국립공원 안에 이런 철골 시멘트로 육중하게 만들어진 군수영훈련시설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입니다
이제까지 오래토록 다녔지만 군인들이 훈련받는 광경을 목격한적이 없습니다
물론 휴일에 주로 다녀서 그런가하고 앞의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 봤더니
군사정권- 즉 노태우시대 때까지는 여름에 계급이 높은 고위 장교들의 하계휴양소로 
고기 구워 먹으며 놀자 판 피서지로 사용�으나
그 이후- 즉 문민정부부터는 거의 텅빈채로 방치되 있다고 합니다.

수영장에서 삼천사 올라 가는 길
앞의 하얀 자동차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응봉코스"가 시작 되므로 이 수영장을 잘 기억 해 두어야합니다.
오늘은 삼천사를 구경하고 다시 내려와 저곳에서 응봉코스로 갈 예정입니다

삼천사 -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 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고 합니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합니다.
저는 금수강산 삼천리에서 온줄 알았습니다

삼천사 일주문
정식 명칭이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라고 되 있습니다.
寂滅寶宮이라는 단어는 아무 절에서나 사용해서는 안되는 단어이지요?
寂滅寶宮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절"에서만 사용 할수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나라 5대 寂滅寶宮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를 칭하는데
어떻게 이곳 삼천사가 寂滅寶宮이 되었는지는 ......

寂滅寶宮은 부처님상을 모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곧 부처님을 의미하므로 별도로 법당에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불상은 불상대로 모시고 寂滅寶宮이라 합니다. 앞뒤가 좀 맞지 않는 듯합니다.
불교 신자도 아닌 무신론자인 저는 상관 없는 일이기에 더 조사 해 보지 않았습니다

좌측이 부처님 진신사리함, 가운데 바위에 마애불상이 조각 되 있습니다.
"진신사리"에 대해선 이 기회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진신사리"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요? 
대부분 부처님 사후  화장한 뒤에 유골에서 나온 동글 동글한 결정체를 의미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뜻은 맞는데 왜 "사리"라고 하는 지는 아시는 분들이 거의 없더라구요.
사리를 한자로 쓰면 집舍자에 이로울 利입니다. "舍利" 이 한문이 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까?
의미와 한자는 아무른 관계가 없습니다. 한문을 뜻글자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리(舍利)는 옛 인도말의 Sarira를 중국에서 표기 할때 가장 원음에 가까운 舍利(중국 발음으로 [sheli])로
音譯한것을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문 舍利를 우리말 소리인 '사리'로 音譯한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리(舍利)'는 소리글자이지 뜻 글자가 아닙니다.
교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基督敎"라는 말의 "基督"도 소리글자이지 뜻글자가 아닌것과 같습니다
"基督"의 "基는 터라는 뜻이고, 督"은 살필 독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과 基督은 아무른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원어가 중국어로 音譯되고 그 중국어를 다시 한국어로 音譯하면서 탄생된 전세계에 유일한 소리 글자일 뿐이죠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基督敎"라는 말이 무언지 처음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진신사리를 정확히 쓰려면 "眞身사리"라고 써야 정확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 합니다
우리나라 불교와 기독교의 國譯된 불경이나 성경에는 "사리"와 같은 이런 소리 글자 뜻글자 구분을 안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들이 무지무지하게 많이 있더군요. 종교계는 이것부터 바로 잡아 나가야 할것입니다 

|보물 제657호| - 마애여래불상
삼천사의 자랑인 고려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마애여래불상입니다.
마애여래불상도 바위의 단면을 음각으로 갈거나 깍아 조각한 불상을 말하는 것이죠? 
특별한 말이 아니고 조각된 그 형태를 보통명사로 표현해논 것인데, 
바위단면음각조각불상이라하면 좀 쉬운가요? 왜 어려운 표현을 쓰는지..신비주의? 

삼천사에서 구경을 마치고 전투수영장 쪽으로 50m정도 다시 내려와
본격적으로 "應峰능선코스"를 遊山하려합니다

등산 시작 30분이 제일 힘들다는 것은 모두 아시지요?
여기 응봉능선은 경사도가 심해 더욱 힘이 듬니다. 짧고 굵은게 특징인거죠..ㅎ

응봉 중턱에서 바라 본 삼천사, 
제법 올라 왔습니다. 뒤에 용출봉, 증취봉이 보입니다

응봉 정상입니다.

응봉 정상에서 바라 본 삼천사

응봉 정상에서 바라 본 "진관사" - 진관사도 매우 유명한 절입니다
응봉 능선의 우측이 진관사 계곡이며, 좌측이 삼천사 계곡입니다
이 삼천사 계곡의 좌측이 그 유명한 "의상봉코스"입니다
 
사모바위로 향하는 중턱에서 
암벽코스에는 대부분 우회도로가 있스니다만 없는 곳엔 이렇게 철제 손잡이를 만들어 놔서 큰 불편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의상봉 코스의 용출봉 근처에서 이런 철제 손잡이를 잡고 가다 낙뢰가 떨어져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당했습니다. 내구성은 차지 하고 식물성 로프로 바꿔야 할텐데...

지난주 불광역9번출구에서 시작하여 사모바위를 오르는 곳에 있었던 "비봉"이 보입니다.
이제 '사모바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사모바위 가는 중턱에서 바라 본 북한산의 상징 "백운대" "만경대""노적봉"이 보이기 사작합니다

응봉코스에는 조막조막한 암벽코스가 좀 있습니다

북한산의 뒷쪽 즉 북쪽에서 남쪽으로 산행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시나요?


이제 '사모바위'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상을 넘어 서니 '사모바위'가 불끈 '이 대근'이 처럼 나타 납니다. 반갑지요.
지난주엔 여기까지가 산행의 정점이었습니다만
오늘은 오늘 산행의 3분의1 지점에 도달 한것 뿐입니다
험난한 문수봉 코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모바위'의 내력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습니다
바위가 사각이긴 하지만 그래서 사모바위라고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의미라면 "네모바위"라고 해야지 "사모바위"라고 하는 건 
세발낙지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리 없기 때문이지요. 
'가는발' 낙지나 '세족'낙지라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워하는 마음"  - 그런 의미로 해석 합니다...저는

사모바위에서 바라 본 비봉
어느 곳에서 보나 민족의 얼이 듬북 담겨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사모바위를 지나 문수봉 쪽으로 가다 보면 "승가봉"을 만납니다
좌측 아래 승가사가 보이고 가운데가 비봉 우측이 사모바위입니다
승가봉 암벽 옆구리에 자리를 잡고 오늘은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산 입구쪽의 김밥집들은 맛도 없고 값도 비싸서 동네에서 미리 사 옵니다
그런데 일산 백석역앞 김밥집에서 김밥 두줄을 사는데 지난주엔 이천원을 냈는데
삼천원을 내라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50%를 올렸습니다. 에궁~
요즘 물가가 장난이 아니라는걸 실감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먹는 김밥은 오늘따라 모래 씹는 듯 했습니다
참치 통조림에 쇠주도 한병 가져 왔습니다만 오늘은 오랜만에 문수봉 암벽 코스를 오를려고
쐬주 한잔 크~를 못했습니다. 끝내고 북한산성 안에서 한잔 하려합니다.
사실 쐬주 한잔~~크~를 위해 산을 오는지도 모르는데.....

승가봉 정상부근도 제법 쌕시합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이 通天門을 지나면 문수봉 코스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뒷쪽에서 본 통천문 "구멍"...ㅎ....
북한산은 진정 금강산을 약간 축소 해 놓은 그런 명산입니다.

구멍을 빠져 나오면 펼쳐지는 문수봉
오늘은 오랜만에 암벽코스를 릿지로 오르려고 맘 먹고 왔습니다

문수봉 암벽코스 앞에 위험 경고판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위험 경고판을 무시하고 이곳으로 갑니다.
암벽타기가 두려우신 분들은 좌측으로 가면 계곡으로 해서 문수봉을 오를 수 있습니다만
아름다운 경관은 포기 해야 합니다.

숨이 콱 막히게 앞을 가로 막는 문수봉 암벽

예전에..청춘 때 다니던 릿지코스로 들어 섰더니 전문가들이 버거운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의 좀 쉬운 코스로 옮겼더니 이게 왠일입니까!!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궁뎅이를 머리로 받으며 오르고 있었습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어려운 코스마다 인공 손잡이를 친절하게 설치 해 놔서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초보들에겐 잘한 일일거고...방귀깨나 끼는 놈들에겐 욕먹고..

이젠 문수봉 암벽 오르는게 식은 죽 먹기가 �습니다.
잘 하는 짓인지 못하는 짓인지는 차지해 놓고 왠만한 사람들은 모두 오를 수 있게 �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칭 선수인데 손잡이 잡고 오를 순 없지~하여 손잡이가 없는 
옛날에 오르던 릿지 코스로 올랐습니다

이런 아슬아슬한 스릴은 느껴보지 못하신 분들은 당연히 모르시겠죠
오랜만에 하는 릿지여서 사실 속으로 겁도 많이 냈습니다..ㅎㅎ 오줌도 마렵고..
 
올라와 위에서, 올라 오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니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ㅎ
좋은 길 놔두고 왜 저리 위험한 곳을 오르는지~

문수봉 정상 바로 아래 봉우리에 올라서 문수봉을 찍었습니다.
올라서 내려다 보는 것보다 아래서 바라 보는 것이 그 위용을 더 잘 느낄수 있습니다.

암벽 뿐인 문수봉에서 그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소나무
놔사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을  사람들이 '식물인간'이라고 표현하죠?
저는 이 표현이야 말로 가장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소나무를 보세요!!~~
암벽 뿐인 문수봉 꼭대기 조그만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꿋꿋이 하늘 향해 대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저 소나무 --
꽃 피우고 열매도 맺고 - 즉 종족 보전을 하며 - 
많은 이들에게 시원한 산소를 제공하고 있는 저 소나무를
어찌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인간과 동일시 할수 있다는 말인가!!~~
저 소나무가 들으면 심한 모욕감을 느끼리라~~

자연은 하나하나 그 어떤 것도 무시 되어서는 않되라~

문수봉에서 본 "보현봉"

문수봉에서 바라 본 비봉

문수사와 북한산성의 상징 "대남문"이 산성과 함께 드디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오늘은 저기 까지가 등산의 정점이 되겠기에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문수봉 정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북한산성의 성벽이 보이기도 합니다
북한산성이 이곳으로 돌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산에는 태극기가 두군에 꽂혀 있습니다. 바로 이곳 문수봉과 백운대입니다.
그많큼 중요하고 의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문수봉 태극기 밑에서 증명사진 한장 박았습니다. 
인물이 시원찬아 쬐끄마하게 축소 시켜 보일락 말락하게 올린다는게 그래도 잘 보이네요
워낙 모델이 좋아선인가? ㅎ

이제 하산길입니다
북한산성 성벽위를 걸어 내려 가고 있는데 옆으로 길을 내서 성벽을 보호 해야 할듯..
나중에 또 거금 들여서 복구 하지 말구...닝기리

북한산성의 꽃 - 大南門
멋있죠?
저곳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가면 구기터널, 이북오도청이 바로 나옵니다
좌측으로는 산성 안이 되겠습니다

대남문

대남문에서 본 백운대 - 백운대 앞에 노적봉이 있는데 사진에서는 하나로 보이네요

산성 안으로 하산을 하려 했더니 온통 눈밭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못신"을 꺼내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북한산성 안에는 유적지가 많지는 않고 조금 있습니다만, 절간을 제외하고는
모두불타고 없어져 그 흔적만 횡하니 남아 있습니다

옛 화려했던 모습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이런 표지판만이 역사의 그늘을
비추고 있습니다


산속에 갈대가 자라면 그곳은 집이 있었던 자리이며 그 집이 화재로 소실 �을 경우라 하죠?
대남문에서 중성문 사이에는 이렇게 갈대 밭이 드문 ㅡ드문 있습니다.
옛 행궁들이 불타 없어진 자리들인거죠

산성 안에서 바라 본 노적봉 - 노적가리 쌓아 논듯한 형상이라고 노적봉이라 한답니다
다 아시죠?

중성문
여기서 대남문까지가 북한산성 속의  행궁이 있었던 핵심 城입니다

중성문에서 대서문으로 내려 가는 길

북한산성 한가운데 이런 호화 유흥업소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국립공원안에 이런 상가가 있다는게 어떻게 느껴 지십니까
국립공원 안에서 취사행위를 하면 엄청난 벌금이 부과 되고
특히 불 피우면 감옥 갑니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죠?
여기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 마시면 저 아래 버스 타는데 까지 승합차로 태워다 줍니다
얄팍한 상술로 초보 산꾼들을 유혹하는거죠
저는 걷기 위해 왔는데 차타고 북한산을 내려 갈순 없다고 핑개대며
여기선 아무것도 사먹지 않고 걸어서 내려 갑니다...속으론 사실 무척 먹고 싶고 차타고 싶고..

대서문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서문입니다
이 대서문을 시발점으로 하여 우측 의상봉 코스를 시작으로하여 
산성의 12문을 종주하는 코스가 매우 유명합니다.
그리고 약8시간반정도 걸리는 힘든 코스이기도 합니다
또한 염초봉에서 백운대를 오르는 릿지코스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오르기 힘들기도 합니다
저는 2번의 경험만을 자랑으로 삼고 북한산을 오르는 초보들에게 큰소리로 우쭐대기도 하죠
다음번에는 "北漢山城十二之門" 종주 코스를 오랜만에 시도 하려 합니다.
이곳의 山行記는 옛선조들에서 부터 많이 쓰여져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다음 산행기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하는 산행이 되겠습니다
흠~ 역사 얘기 많이 쓰야겠군요..아는 것도 별루이면서..ㅎ

대서문

북한산성 입구에 내려 왔습니다
땅거미가 내려 앉기 시작했습니다
앞에 원효봉, 뒤에 노적봉 사이로 만경대가 보이며 백운대는 원효봉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날이 많이 어두워졌습니다..저녁 6시경
버스 정류장에서 보는 의상봉

오늘 산행한 코스를 요약 정리 했습니다
주황색으로 표시 된 코스가 오늘 걷고 또 걸은 코스가 되겠습니다.
이제까지의 산행로는 아기자기한 코스였습니다만, 동쪽으로 갈수록 웅장해지기 시작합니다
30억년의 풍상을 한눈으로 볼수 있는 곳....그 규모는 가히 짐작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 염초봉...........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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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문
요즈음 지하철등 공공 장소에서 가끔 눈이 번쩍하는 때가 있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기발하다고 느끼는 장면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세대들은 생각과 행동도 새롭게 변모한다고 느껴집니다. 고정관념에 쩔어 그져 왕년만 찾아 추억 속에 뭍쳐 자신의 틀을 유지시키는데에만 여념이 없는 좀 오래된 사람들과 비교하면...역시 역사는 진보하는 거구나~~!!라고 옛날..아니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 근간까지도 여성들은 수동적 모양새를 하고 길을 나섰죠 다소곳하게 옷을 차려 입고 어떻게던 정숙하게 보이려는 노력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거리에서 남성들의 수작에 수동적 방어적 위치에만 서 있었던것 같은데... 윗 사진 어떻게 보이세요? 우선, 그 아이디어가 독특하지 않습니까? 새로운 패션이라고 하고 싶군요 우리 땐 상상도 할수 없었던 그런 디자인의 발상이라 여겨집니다. 앙징 맞기도하고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대범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 부위에 저런 글귀와 그림을 그리고 다니면 성적인 뭔가를 더 풍기는 듯 하기도 한데.. .. 그 곳에 역설적 발상으로 성희롱 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이고 거리를 다닌다는게 세상 정말 많이 변하고 있는듯 합니다. 공격적으로 변모하는 여성들은 어디까지를 여성의 성역으로 할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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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둥이 남편 빨리 하늘로 보내는 방법   

1. 기름기가 많은 쇠고기와 흰설탕이 듬뿍든 음식을 자주 먹인다. 
[파란문 상식] 비만과 당뇨병, 심장병에 아주 효과적이다. 
[참고사항] 돈이 아까울 경우... 
사료용 우지, 공업용 돼지비계 등을 활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2. 매일 술 먹고 들어 온다고 바가지 긁지 말고 오히려 술을 자주 먹도록 권한다. 
[파란문 상식] 술은 혈중 중성지방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고혈압 심장병등 모든 병에 도움을 많이 준다. 
[참고사항] 적당히 먹는 건 藥이 되니 절대 조심해서 많이 먹도록 해야한다.
집에서 먹는 꼴을 보기 싫으면... 돈 줘서 밖에서 먹고 오게 한다... 
술 마시고 또라이가 돼서..어디가서 맞아 죽는 의외의 덤 효과를 얻을수 있다. 

3. 매일 아침 달걀후라이나 날계란을 3~4개 먹인다. 
[파란문 상식] 달걀은 콜레스테롤 덩어리라 심근경색을 유도할 수 있다. 
[참고사항] 슈퍼 주인한테..미리 귀띔해 두거나... 
큰 양계장을 물색해 별도의 계약을 맺으면... 노른자가 두개씩 든 쌍알도 쉽게 구할 수 있다... 

4. 밤에 잠을 못자게 하여 늦게 자는 습관을 키운다. 
[파란문 상식] 이렇게 하면 매일 고문하는 효과를 본다. 
[참고사항] 알겠지만..잠을 못자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절대..즐거워서 잠못자게 하는 방법을 택하면 안된다...주의를 요한다 . (즐겁게 못 자게 한다???ㅋㅋㅋ)
당신의 殺意가 약해지거나...당신이 먼저 命이 짧아질 수도 있다. ^^; 
5. 휴가 여행을 금지하여 스트레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게 한다. [파란문 상식]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면 터질 수 밖에 없다. [참고사항] 정 여행 가겠다고 우기면...혼자 보내라... 미리..타이어 나사를 조금 풀어 놓던가... 술이라도 몇잔 멕여 보내고 사고소식이나 기다려라... 기쁨의 크기는 보험갯수와 비례할 것이다... 6. 모든 음식은 최대한 짜게해서 먹인다. [파란문 상식] 동맥경화나 고혈압으로 언젠가 쓰러질 것이다. [참고사항] 중국산 소금은 염도가 떨어지고 죽염은 비싸기만하지..효과가 없다... 대빵 굵은 국산 천일염..그게 최고다... 넘어갈 기미가 안보이면...밥에도 넣어본다... 7. 커피나 홍차를 수시로 먹이되 흰설탕을 듬뿍 넣는다. [파란문 상식] 흰설탕은 혈액을 산성화 시킨다. 곧 칼슘이 부족해져 뼈가 쉽게 부러진다. 커피나 홍차의 상습음용은 지방간과 심근경색의 원인이다. [참고사항] 재래시장에 가면 대따 큰 머그컵을 구할 수 있다... 그걸로 성에 안차면..남는 사발을 활용하거나... 근처 호프집에서..하나 꿍쳐다 써라... 큰 일을 위해...작은 쪽팔림은..눈감아라.. 프림 대신 마요네즈를 넣으면 더 효과있다
8. 흡연을 적극 권장한다. [파란문 상식] 가장 좋고 빠른 방법이다. 하루 세갑이상 피우게만 하면 '이 주일' 뒤따라 가는데 2주면 충분하다 연탄가스 중독 효과를 얻을수 있으며, 폐암, 위암, 대장암등 각종 암을 일으키는데 직빵이다. [참고사항] 요즘 담배값이 장난이 아니게 비싸니까,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값싼 걸 많이 사다 놓는다.. 잠잘때...콧구멍에도 넣어보고... 내용물을 비운후..가끔..연탄가루도 집어넣어 보자...
9. 늘 빈둥빈둥 누워있게 하고 걷지 못하게 한다. [파란문 상식] 운동이 부족하면 다리와 허리를 약화시킬뿐 아니라 그에 따른 신체 기능이 약화되 결국 모든 내장 기능도 약화되 하나님 곁에 빨리 가는데 큰 효과가 있다 [참고사항] 음...글케되면 여자분에게 아쉬운거 한개는 있을거다... 그건 참을 각오 해야된다...^^ (뭔 야그인지 ㅋㅋ) 해결방법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남편 보낼려면 당신도 한가지 정도는 참아야하지 않겠는가? ㅋㅋ.. 10. 돈과 아이 문제로 조석으로 바가지를 긁는다. [파란문 상식]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 당장 효과는 없지만...남편들이 제일 듣기 싫어 하는 소리가 돈과 아이 문제이니 장기간 이런 스트레스가 쌓이면...넘어가게 돼있다... [참고사항] 이 방법은 당신도 좀 피곤할 수도 있지만... 가장 저렴하므로 일반에게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파란문 상식]으로 본 최고의 방법 위에 언급한 10가지 방법들을 혼합하여 활용하면...효과 만점이다... 그렇다고 여자분들 절때루~ 실험정신을 발휘하면 안됩니다...!! ㅎㅎㅎ~~~ '파란문'이 마지막으로 여자분들에게 드리는 충고 말씀 이 글은 제가 모두 쓴 글이 아니구요~~ 요즘 인터넷 유머란에 떠 다니는 글을 우연히 보고 잼있어서 제가 좀 다듬고 편집을 해서 올린 '유머'입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 개그를 제가 이렇게 표현을 해 놓으니까 오히려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되지는 않는지요 역설적으로 건강을 챙겨 드릴려면 반대로 하면 됩니다. ㅎㅎㅎ 오히려 남편 건강 챙기기에 활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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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登山과 遊山
                            파 란 문

     우리나라 역사속 인물중에 가장 존경하는 분 있으시죠?
     많은 분들중에서도 저는 퇴계 이황선생님을 제일 좋아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학,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갖추신 분이시지만
     제가 특히 좋아하는 연유는 선생께서 "등산"을 매우 좋아하셨기 때문입니다
     퇴계선생님에 대해선 아시는 분들이 매우 많으실것같아 이런 글을 쓰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한때 퇴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분의 향기를 느끼러 이곳 저곳 많이 다니다
     나름대로는 매우 인상 깊었던 그 분의 새로운 면모를 깊이 느꼈기에 몇자 적습니다.
     어려서부터 가냘픈 몸매에 허약했던 선생은 집안 살림살이까지 어려워 
     영양상태가 매우 안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주야를 가리지 않고 독학에 열중하여  더욱 허약해졌는데도 
     그 어려움을 이기고 일찍이 모든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하지요?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 중에 높은 관직을 고사하시고 사표를 가장 많이 제출하신 분이
    바로 퇴계 이황 선생님이시랍니다. 총 오십여회라니...ㅎㅎ
    王들이 제발 관직을 맡아 달라고 애원을 하였으니 선생님의 위상을 짐작 하실만 하지요?
    영의정등 높은 관직을 사양하신 이유중에는 치졸한 당파싸움하는 꼴을 직접 대하기도 싫었겠지만
    핑개인지는 모르지만 건강이 시원치않아 사양한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래서 관직에서 물러나 나이 들어서는 건강을 무지하게 챙기셨는데 주로 안동과 봉화사이의
    청량산을 비롯해 소백산, 태백산, 월악산, 주흘산등, 많은 산에 등산을 함으로서 건강을 챙기시고
    특히 청량산엔 "청량정사"를 지어 기거하시며 많은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뭇 강호의 유생들은 퇴계선생님을 만나려면 청량산을 올라야 했으니  
    등산 못하는 강호의 유생들은 퇴계선생님을 만나 뵙기도 힘들었답니다

     퇴계선생님의 등산에 관한 유명한 명언이 있죠?
     "讀書는 유산(遊山)이다"
퇴계선생님은 산을 오른다는 표현인 '登山'이라 하지 않고 "유산(遊山)"이라 하였습니다. 
즉, 登山은 산을 오른다는 의미 밖에 없지요?  
힘들게 산을 오르는것만이 아니라 산을 오르면 내려 가기도 해야하고, 
또한 산행 도중 식사도 하고 계곡에 발도 담그며 경치를 즐겁게 즐기며 산행도 해야겠죠? 
퇴계선생님은 이미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아시고
登山이라 하지 않고 유산(遊山)이라 했답니다
讀書에 대해선 더 설명할 필요 없겠지요?
"책 속에 삶의 지혜와 지식이 모두 들어 있으니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 곁에 올 생각말아라!"
선생은 讀書많큼 즐겁고 중요한 일이 없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책 속에 인생사 모든 섭리가 있고, 책 속에 자연의 천라만상의 이치가 들어 있으니, 
책 읽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遊山과  讀書를 동격으로, 讀書많큼 즐겁고 의미있는 인생사가 遊山이었던게죠

        讀書如遊山
     讀書人說遊山似  사람들은 글읽기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더니 
     今見遊山似讀書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구나
     工力盡時元自下  공력을 다하면 스스로 내려오는 법
     淺深得處摠由渠  얕고 깊음을 아는 것 모두가 자기에게 달려있네
     坐看雲起因知妙  조용히 앉아 일어나는 구름을 보고 오묘함을 알고
     行到源頭始覺初  발길이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시초를 깨닫네
        - 퇴계 이황 선생님이 쓰신 "讀書如遊山"에서 
이제 따뜻한 봄바람이 금수강산을 뒤덮습니다.
여러분 어느 산이던 산으로 遊山 떠나지 않을래요?
퇴계선생님은 어려서부터 허약하였지만 
遊山으로 칠순까지 건강하게 사셨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장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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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0) 20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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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첫날이자 우리 민족의 자결을 부르짖었던 삼일절에 제일 좋아하는 북한산을 찾았습니다. 북한산은 거의 매주 찾습니다만 오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를 소개해 드리려고 처음부터 카메라를 길목마다 드리댔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수도 서울을 뒤에서 안고 東西로 가로 지르고있는 대단히 큰 규모의 국립공원입니다 오늘은 북한산국립공원 공식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지 않은 코스를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 사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는 코스입니다만, 처음 가시는 분은 안내를 받지 않고선 찾아 갈수 없는 곳이라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코스는 북한산국립공원의 西쪽 끝에서 시작하며, 교통이 가장 편리한 지하철3호선과 6호선이 함께있는 불광역 9번 출구로 나가 바로 산행을 시작하는 점이 가장 좋은 점이 되겠습니다. 대부분 불광역2번출구로 나가 구기터널쪽 코스를 이용하기에 이곳은 다소 한적하며 자동차의 매연을 조금이라도 덜 마실수 있습니다. 이제 떠나 볼까요? 불광역 9번 출구 불광역 9번 출구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서쪽 끝봉우리가 아파트 뒤로 보입니다 저 봉우리를 시작으로 길고 긴 산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지하철역을 나오자 마자 바로 산행을 시작할수 있어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그런 곳입니다 북한산 등산 코스를 찾아 들어 가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불광역 9번 출구에서 앞으로 직진...2백여m 가면 첫번째 신호등이 있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갑니다 좌측으로 틀어 다시 2~300m정도 가면 두번째 신호등이 있는 조그마한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농협 간판이 있는 쪽으로 우회전합니다 우회전 해서 바라보면 위와 같은 골목이 펼처집니다 이 골목을 따라 2~300m정도 올라 갑니다 제일 중요합니다. 여기를 못 찾으면 되돌아 가야합니다 농협있는 곳에서 2~300m정도 올라 오면 "삼환 그린 파크"라고 하는 빌라가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시죠? 여기서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좌측 골목으로 들어 서면 이렇게 북한산 등산 코스가 나타납니다 이후부터는 오직 외길이기에 코스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후부터는 서쪽에서 동쪽 끝까지 외길이오니 코스를 잃어버릴 염려도 없습니다. 골목 끝에 오면 이렇게 등산길이 열립니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걷는 일 뿐입니다 오늘이 토요일이고 12시40분경이라 등산객들이 별로 없습니다만 일요일 오전에 오면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오늘은 한적한 산행을 하게 �군요 조금 올라가면 예전에 매표소였던 곳에 탐방안내도가 보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많은 등산객을 볼수 있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한적합니다 첫번째 만나는 암벽 코스...하지만 각도가 별루여서 오르기엔 별 무리 없습니다 두번째 만나는 암벽 코스...여기도 걷기 좋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등산은 처음 30분이 제일 힘들지요? 힘좀 드실겁니다..ㅎㅎ 아까 9번 출구에서 바라봤던 봉우리에 올라 9번 출구를 내려다 보며 찍었습니다. 제법 올라왔죠? 사진의 가운데 큰 빌딩이 있는 곳이 불광역 9번 출구입니다 이제 2번째 공략 할 봉우리인 수리봉 일명 족두리봉입니다 저 봉우리 뒤에 북한산 서쪽에서는 가장 멋있다는 족두리봉이 있습니다 수리봉을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습니다..여기서 부터는 땀이 좀 나기 시작합니다 수리봉에 거의 다 올라 왔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족두리봉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북한산의 소나무는 거의 대부분 적송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2~3월경에 많은 사람들이 솔잎을 따다 솔잎酒를 담가 먹는답니다. 저는 자연홰손이 된다고 자제합니다만... 족두리봉 정상에 오르니 제법 고지대라고 잔설이 남아 있었습니다 뒤에 보이는 능선이 불광사쪽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능선입니다 족두리봉 정상입니다 근간에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에 이런 피뢰침이 세워졌습니다. 대여섯군데 되는 것 같습니다 피뢰침만 세우기 아까웠는지 카메라도 설치해 놨습니다. 산불감시용이라는데... 북한산 주요 봉우리는 이 피뢰침과 카메라로 자연 경관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족두리봉에서 바라본 향로봉과 비봉 아직도 갈길이 온길보다 훨신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족두리봉에서 바라본 말도 많았던 '은평 뉴타운' 건설현장 엄청 높은 분양가로 서민들의 마음을 두번 울렸죠 족두리봉 근처에서 만난 할머니 처음 보고 연세가 많은듯하여 놀라 여쭤 봤더니 연세가 86세이시라는데 이 험난한 족두리봉까지 홀로 올라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틈만 나면 오르신다니 제가 산을 오르면서 힘들다고 하는게 "사치"라 여겨졌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옆모습만 보이게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어머님은 금년이 米壽이신데 다소 비교가 되더군요.. 물론 저희 어머니도 건강하시지만 등산은 일평생 해 보신 경험이 없으시니... 동쪽으로 지나와 바라 본 족두리봉. 할머니는 저 족두리봉 뒷쪽에서 조금 전에 만났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이시나요....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상상은 자유 (전 여인의 젖X지..ㅎㅎ) 족두리봉 앞의 바위가 일명 '걸레바위'입니다. 좀 걸레같죠?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향로봉입니다 향로봉은 북한산의 서쪽에선 제일 높은 봉우리입니다 향로봉 근처에서 바라 본 족두리봉 많이 왔습니다 향로봉 중턱에서 바라 본 서울 바로 앞의 큰 건물이 구기동에 있는 '이북오도청'이며 가운데 젖무덤 같은 산봉우리의 좌측이 청와대 뒷산 북악산이고 우측이 옛날에 호랑이가 나왔다는 인왕산입니다 한가운데 멀리 남산이 보입니다 그 남산 뒤에 어렴푸시 관악산이 육안으로는 잘 보였는데 사진에는 어렴풋하군요 흠...이 사진 가만히 살펴보니 女人이 裸身으로 누워있는 듯 하군요..아니라구요? ㅎㅎ 대부분의 큰산에는 날飛자 비봉이 있습니다만 북한산의 비봉은 그 유명한 "진흥왕 순수비"가 있어 비석碑 비봉입니다. 이번 불타 없어진 숭례문이 국보 1호라는 걸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나 국보2호를 물어 보면 90%이상 대답 못하고, 국보 3호를 물어 보면 100% 답변 못하더군요 오로지 1호, 1등,,,이런 것 외에는 기억되지 않는 것일까요? 2호 2등 아름다운 꼴찌도 때론 의미있는데... 아니면 학교교육이 잘못 된 것일까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가 국보 3호이구요, 현재 오리지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놨으며 현재 비봉에는 모조비만 있습니다. 사진 한가운데 꼭대기에 보이죠?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모조비를 집고 서 있네요 참고로 국보2호는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의 원각사지십층석탑이랍니다 오늘 등산의 마지막 종착지 "사모바위"입니다 하산하며 승가사 쪽에서 바라 본 사모바위 구기동 쪽으로 내려 오는 하산길도 한적했습니다 오늘은 북한산의 서쪽을 산행했습니다 東西로만 따져 북한산국립공원의 6분의1 정도를 다녀 왔다고 할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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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무슨 말인지 알고 쓰나요? 

80년대초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우리 국토를 피로 물들이며 쿠데타 정권 수립에 성공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5공화국이었으며 그들의 케치 프레이즈는 "정의 사회 구현"이었습니다
정의를 짖밟고 올라선 쿠데타 정권의 구호가 '정의 구현'이었으니,  
그들이 얼마나 합법적 기반을 찾아 볼려고 노력했는지를 알수 있으며 
자신들의 쿠데타가 불법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듯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법정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었인지 그들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반된 국민들의 환심을 살수 있을까......
그들이 내 놓은 방안 -국민들에게 다가 갈수 있는 민심 추스르기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습니다만
저의 기억에 남는 두가지를 소개해 드리며 " '다이어트' 무슨 말인지 알고 쓰나요?"를 주절주절 하려 합니다.
전두환 쿠데타정권과 '다이어트'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구요?....ㅎㅎ
우리가 '다이어트' 열풍에 빠져 들게 하는 단초를 전두환 일당이 제공 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쿠데타 정권의 국민 환심사기 정책
첫번째가 '삼청 교육대'로 잘 알려진 사회 질서 잡기였습니다.
10.26 거사 '부루터스 너 마저도...' 
많이 인용하는 이 한마디에 18년 군사독재정권의 심장 박정희 대통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들이고
우리 대한민국에도 '80년의 봄'은 오는지 기대에 차 있었으나........
로마제국의 3두정치 잘 아시죠? 시이져,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어쩌면 이렇게 역사는 반복될까 희안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엔 3김이 있었죠? 이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저~쪽 국군보안사 지하벙커에선 허수아비 대통령 최규하씨를
얼굴마담으로 내 세우고 쿠데타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암중모색, 오리무중, 밀실야합, 합종연횡...수많은 단어를 열거해도 모자랄 안개정국이 전개 되었으며
이러한 사회 문란 상태를 신군부 세력들이 명분을 쌓기 위해 조장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사회 질서는 문란해 졌습니다
싸움은 시이저, 폼페이우스가 하고 실제 정권은 군바리 대장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차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군부 세력, 전두환과 노태우가 국토를 피로 물들이며 정권을 탈취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사회 정화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 중 하나 '삼청 교육대'
그들의 입장에선 사회의 암적 존재들이라 하는, 실제 그런 인간들이 많았지만  법원의 영장없이 체포 구금하여
인간 개조 작업 - 즉 三淸敎育을 군부대에서 실시하였습니다. 
후유증도 많았습니다. 삼천여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심한 상해를 입었죠
사실 초기에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도 받았습니다. 수많은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하였기 때문입니다.
속이 시원하게 잡아 족쳤습니다. 그로인해 거리 표면적 모습은 질서가 잡히는 듯 했습니다. 
군사 쿠데타 정권이 아니면 할수 없는 일이었기에 국민의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두번째가 "먹는 일"이었습니다.
5천년 역사에 편히 쉬고 맘껏 먹고 자유롭게 놀아 본적이 없는 듯한 우리 민족
좁은 페닌슐라에서 그것도 산으로 뒤범벅된 국토는 풍부한 식량을 공급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먹는 문제"가 역사 속에서 최고의 정책 과제였습니다.
불과 1~2십년전만해도 "쌀밥에 소고기국"이 가장 큰 바램이었습니다. 
진수성찬은 바로 "쌀밥에 소고기국"이었으니 .....
지금의 잣대로 보자면 정말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수 없지요..불과 얼마 전인데도..
전두환 쿠데타 정권이 정통성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환골탈태하고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 놓은 또 하나의 정책이 바로 먹는 문제였습니다
먹을거리 중에서도 단연 "소고기"였습니다. 기억 나시나요?
반만년 역사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 소고기, 소갈비를 먹고 싶은대로 맘껏 먹으라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소값의 10분의 1도 않되는 미국과 호주등지의 소를 무한정으로 수입 해와 국민들에게 풀었습니다.
당시 거리에 생기는 음식점은 거의가 갈비집이었습니다. 돼지갈비집은 시장 모퉁이나 가야 찾을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 정착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50년대 수백만명이 희생되는 6.25후 70년대까지는 먹고 사는 일이 너무 어려워 남녀노소가 거리로 나갔습니다.
한 맺힌 국민들은 돼지고기값보다 싼 소갈비를 뜯고 도 뜯었습니다. 하루 세끼를 뜯기도 했습니다.
주말이면 갈비집에서 풍기는 냄새가 거리를 뒤덮었을 정도 였던거 기억 나시나요
처음엔 쇠고기를 수입했으나 전두환 동생 전경환이가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으로 나서며 
아예 살아있는 소 몇만마리씩을 수입해 전국에 뿌렸습니다.
당연히 후유증이 생겼죠? 
전국의 목축 농가는 줄도산하고 한우 한마리 가격이 수입소 값(당시 마리당 약US$500정도)으로 떨어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
농민들이 소를 끌고 와 "니네들이나 쳐 먹으라~!!"라며 소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뉴스에서 종종 볼수 있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무슨 음식이던 자주 많이 먹으면 질리는데 쇠고기라고 안질리겠습니까?
꿈에도 그리던 소갈비를 사양하는 전대미문의 역사가 이 때에 쓰여지죠. 
먹을 많큼 먹은 우리 국민들은 소고기를 그리운 음식으로만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팔리지 않는 살아있는 수입소들은 사료만 축내며 수입원가를 계속 올리고 있어 
이어지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마침내 소들을 생매장 합니다. 수천마리 씩~~..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의 작품이었습니다.
수입소들의 소값을 어떻게 조달해서 국민들에게 수입해 퍼 부었을까?
물론 박정희 정권 시절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효과가 나서 경제가 활기를 띄기 시작 했기도 했습니다만
외국에서 빌려다 퍼 부은 거죠. 대책도 없이..... 
이러한 것들이 잘 아시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부도사태인 'IMF 구제금융'을 초래하는 단초들중 하나 인 것입니다
'쌀밥에 소고기국'에 한 맺힌 우리 국민들은 원도 끝도 없이 먹었습니다.
그 결과..........이젠 살을 빼야 살아 갈수 있는 처지에 이르게 됩니다
"다이어트 열풍"이 수많은 국민들에게 불어 닥치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인기영합적인 정책 하나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얼마나 큰 후유증을 앓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정책은 많은 연구와 토론을 거쳐 자연스럽게 국민적 합의를 거쳐 세워져야하는데
군사 쿠데타 정권 실세들의 즉흥적 밀실 행정이 가져다 준 폐해는 이것 하나만은 아니지요
요즘 경부운하같은 것들도 자못 이런 즉흥적 발상이 아니길 기대하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음식같은 경우엔 남의 탓하기에 앞서 뭐니뭐니해도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스스로 잘 판단하여 절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만든 시대적 아픔을 나름대로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부터 잘못 사용되어 지고 있는 "다이어트"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이어트"하는 방법이나 기술을 얘기하려는게 아님을 먼저 알려드림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어트"라 하면 "살 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합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만,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중 하나일뿐입니다
"다이어트"의 단어 의미만 제대로 알아도 원하는 살빼기에 큰 도움이 될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이어트 diet 는 사전적으로는  식이(食餌)요법 - 
食餌(먹을 식, 미끼 이 - 일어에서 유래 된듯)라는 말도 매우 어려운 한자이라 부연 설명을 하자면
간단하게 말해 '음식 조절을 해서 체중을 줄이거나 건강의 증진을 위하여 제한된 식사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의료적 행위입니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어려운 일본말에서 유래 한듯한 "식이(食餌)요법" 대신에 "음식조절요법"이 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다이어트는 살을 빼는 일도 해당 되지만 살 찌게하는 일도 해당 됩니다. 
허약한 사람들에게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이는 일도 다이어트입니다. 
당뇨환자에게 설탕등 당분이 많은 음식을 못먹게 하며 음식을 가려 먹게 하는  일도 다이어트입니다.
고혈압 환자들은 주로 짠 음식을 절제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살이 과다하게 찐 사람들은 건강에 심각한 이상을 일어킬수 있어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다이어트'입니다.
그러니 요즘 많이 쓰는 '운동 다이어트'라는 말은 존재 할수도 없는 말이겠죠. 
'운동음식조절법'이라면 말이 되겠습니까? 유식한척 하지 말고 그냥 우리말로 '운동 체중조절법'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남자분들은 군대에서 '피똥체조' 많이 해 보셨죠?  군기가 빠진 경우 체벌적인 형벌이라고 느꼈죠.
사실 이 '피똥체조'도 P.T.체조 - Phisical Training의 약자로 체력 훈련 프로그램인 것인데 훈련시 기합으로 느낀
훈련병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피똥'이 나온다고 '피똥체조'라고 했겠습니까.
각설하고 다이어트와 운동은 목적은 같지만 서로 붙여서 사용할수 없는 단어라는걸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다이어트'라는 말이 그냥 그렇게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diet     [질병의학] 식이 (食餌)요법  (개인의  특수한 요구에 의하여  특별히 계획된 음식물을 섭취하는 일)
          [생명과학] 치료식 (治療食), 식이 (食餌)   (매일 섭취하는 일상적인 음식물의 허용량)
          [식품영양] 식사 (食事)  (음식을 먹는 일)
이렇게 각 분야에 따라 의미는 다름니다만, "살 빼는 일"로만 알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음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 건강보다는 외모에 치중하여 무리한 '살빼기'가 횡횡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지 몸매만을 위해 해서는 위험 하다는 건 모두 아시고 계십니다
건강!!~~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것 모두 절감 하시리라 믿습니다
세상사 사건들은 모두 인간의 하잘없는 욕심 때문 아닐까요?
어려웠던 시절에 겪었던 배고픔이 풍요로운 요즘 시대의 '살을 빼야하는 일'보단 낫지 않습니까?
전두환 시대에 번성했던 소갈비 음식점들은 요즈음 찾아 보기 힘듭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 격세지감이니 세옹지마니..하죠
물은 우리 인간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 맹물도 많이 먹으면 죽습니다
모든게 지나침에서 유발된다고 하는 말에 모두 동의 하실 것입니다
진정한 다이어트 !!~~
어느 산사 앞에 붙여 놓은 팻말을 보며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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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치
雅靜 김필녀


새 치


雅靜 김필녀

빛깔이 다르다는 이유로도
다분히 거슬릴 수 있다

아닌 척해도
슬그머니 드러나는 거짓처럼

눈곱만큼의 망설임도 없이
늘어나는 세월의 메시지

진실을 이기는 거짓은 없다

덧칠하며 숨기려 해도
다시 불거지는 진실 앞에서

새치라 우기려는 철부지 마음이
제 스스로 부끄럽다 한다



 

 

 

 

 

 

 


우선 윗 詩를 차분이 읽고 다음 저의 글을 읽으시죠. 참을성 없고 성질 급하신 분은 아마 가실꺼유~~
雅靜 김필녀 시인은 스스로 이름없는 시인이라 칭하더군요.

이름을 날리던 뭐던 그런건 상업적인 거이라..시인은 시를 잘 쓰면 그로서 소임을 다한거 아닌가요

잘 썼는지 못 썼는지 그런건 다른 문제이고 자신의 시를 느끼고 좋아하는 독자 한명만 있어도 시를 쓴다던데....

그런 시인들이 저는 좋더라구요
혼자 감상하기 아까워 제가 편집을 좀 해서 올림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이 詩는 詩를 잘 모르는 제가 읽어도 세월을 읽는 듯합니다.


언제나 검은 머리일줄 알았던 내 머리에 하나 둘 흰 새치가 나오면 아직은 검은 머리가 뭔 실수 했을거라고 우기고 싶고
그 새치가 제법 늘어 가면 흰머리인데 그때는 또 새치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
감추려고 뽑고 염색을 한들 가는 세월을 어찌 숨길수 있으오리....

오늘은 좋은 詩를 하나 읽었습니다

여러번 읽어 보세요. 읽을 수록 점점 더 인생이 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곤 괜히 거울을 봅니다

뜬금없이 자꾸 세월 탓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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