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날의 노래"
      "하조대-법수치리" 피서휴가
        용대리-양양 하조대-법수치리
   
               * 꽃과 바람 *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면 꽃처럼 살면 되고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면 바람처럼 살면 된다. 
           꽃은 자신을 자랑하지도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바람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으며 
           험한 산과 바다도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날아 다닌다

                        
                         

      
        [구글어스]

  2015년 여름 피서휴가는
  '강원도 양양군 하광정리'에 있는 "하조대해수욕장"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에 있는 "법수치계곡 최상류"로 갑니다.


  [용대리-백담사입구]
  
  2015년 8월 5일 (목) 구름조금 맑음 
  열혈 놀이파인 동기동창생들과 여름 피서를 떠납니다.
  서울을 출발하여 '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있는 "백담사 입구"로 먼저 가서
  더덕구이 황태구이 순두부로 점심식사를 하고 "미시령 터널"을 지나 동해바다로 갑니다.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위해 구글어스를 이용하여 우리가 가는 곳의 위치를 알아 보면...
  "백두대간" '오대산'의 "두리봉-신배령-만월봉-응복산-마늘봉-약수산-구룡령"이 지나는 곳 동쪽 계곡입니다.
  "만월봉"과 "응복산"에서 동해바다로 급경사를 이루는 계곡인데 "남대천"의 최상류입니다.
  인간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곳이라, 보시는바와 같이 자연이 아직도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는
  두메산골 원시림 속으로 2015년 여름 피서휴가를 떠납니다.


  [법수치계곡 최상류]

  위치를 조금더 쉽게 설명하자면 "법수치리"로 들어 가는 입구는 "하조대해수욕장"입니다.
  "하조대해수욕장"에서 승용차로 40여분 "양양 남대천" 최상류지역으로 올라 가면
  속세 인간들의 출입이 거의 없는 "남대천의 최상류"인 "법수치리 法水峙里"가 나타납니다.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습니다.


  [친구 별장]

  별명이 "감초"인 저의 동기동창생이 "법수치리 계곡"의 최상류에 조그마한 통나무집을 지어 별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이곳이 2015년 여름 피서휴가를 보낼 곳입니다.
  조금 더 실감나게 보시라고 다음에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동영상]

  시대가 좋아져 사진은 물론 동영상으로도 더욱 실감나게 감상할수 있습니다.
  동영상 촬영기술은 아직 초보여서 수준이 낮지만 그런대로이니 감상하시고....


                      
                          [아르헨타식 바비큐]

  이 별장 주인인 "감초"는 일찌기 '아르헨티나'로 유학을 다녀와 '아르헨티나' 문화를 좀 알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배웠다는 "아르헨티나식 바베큐"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맛은 설명할수 없으니 그냥 상상만 하세요~~ㅎㅎ
  아시다시피 우리가 만나면 하는게 언제나 똑 같지요?     마시고 먹고...ㅎ


  [장 교수]

  '강원대학교' 장교수가 칭구들 왔다고 "도미회"를 준비해 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현직에 있는...즉, 아직도 월급을 받는 몇 않되는 우등생이라 맛있는 걸로 준비하라고 했더니
  "도미 회"를 준비해 왔습니다.
  교수들의 정년이 너무 길다고 시샘을 하며 한잔 얼큰하게 하고....ㅎ


  [법수치계곡 최상류]

  계곡으로 내려가서 더위를 식힙니다.
  산천어가 돌아 다니는 청정지역의 1급수에 몸을 담구며 무릉도원이 어디 이보다 더 좋겠냐고
  반문하며  도시인이 가장 하고픈 알탕을 하고...



  [놀고...먹고...마시고...]

  시간은 잘도 갑니다.
  통나무집으로 올라와 다시 주안상을 폅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들이 많겠지요? ㅎ  평생 하던 그 얘기가 그 얘기이지만...
  이렇게 첫날밤은 지나 갔습니다


                      
                         [둘쨋날 아침식사]

  지난 밤에 누구 누구가 코를 무지 골아 잠을 못잤다는둥 투덜대면서도 아침식사를 준비해 줬는데
  미국 뉴욕에서도 음식점을 경영했었다는 대머리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실력이 좋은 줄 미쳐 몰랐습니다.
  음식 재료도 없이 얼렁뚱딱 볶음밥과 부칭개를 만들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하조대해수욕장]

  둘째날 아침을 먹고 조금 쉬다가 "하조대해수욕장"으로 나갔습니다.
  2015년 여름 휴가씨즌의 절정기 다웁게 "하조대해수욕장"에도 많은 피서인파가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수욕]

  나이 먹으면 해수욕장 보다는 계곡을 더 좋아하게되지요?
  그래도 언제 또 올지 모르니 해수욕도 잠시 하고....
  에구~~ 몸도 마음도 많이 늙었군요...ㅎ


  [하조대해수욕장 전망대]

  전에는 없던 "하조대해수욕장 전망대"가 새로 만들어져 있어 구경 갔습니다.



  [하조대해수욕장 전망대]

  전망대 앞 방파제로 나가서 전망대를 조망하고...


  [전망대]

  전망대로 올라 갔습니다.
  등대인줄 알았더니 등대 모양 전망대였습니다.


  [동해 조망]

  펼쳐지는 東海..............


  [전망대 아랫쪽]

  조금 전에 올려다 봤던 전망대 아래에 있는 방파제


  [하조대해수욕장 조망]

  "하조대해수욕장"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하조대' 조망]
 
  남쪽으로는 "하조대 河趙臺"가 조망됩니다.
  조선 건국의 1등 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태종 이방원"이 한테 토사구팽 당하고 은거했던 곳이라고
  그들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고 한답니다.
  여러번 다녀 간적이 있기 때문에 "하조대" 방문은 생략합니다.



  [법수치계곡]

  우리 나이엔 해수욕장 보다는 계곡이 딱이죠.
  다시 "법수치계곡"으로 돌아와 신선놀음을 합니다.

              
                                         [동영상]

                                          이 동영상은 홍사장이 촬영한것인데
                                          세로로 각도를 맞춰 화면비율이 맞지 않는군요.
                                          앞으론 촬영기술이 발전하겠죠? ㅎㅎ
                                          여하튼 이 계곡이 어떤 계곡인지 실감 나지요?


  [주문진 삼교리 막국수집]

  마지막날엔 '주문진 삼교리'에 있는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구글어스]

  거대한 '백두대간' "두리봉-신배령-만월봉-응복산-마늘봉-약수산"이 만들어 내는 계곡에서
  2박 3일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돌아 왔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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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祖江이 西海와 만나는 곳"
     "강화도 연미정" 나들이 
          하류의 강은, 늙은 강이다
          큰 강의 하구 쪽은 흐려진 시간과 닿아 있고 
          그 강은 느리게 흘러서 순하게 소멸한다
          흐르는 강물 옆에 살면서 여생의 시간이 저와 같기를 바란다
          나는 이 물가 마을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저녁나절을 보낸다
          이제, 시간에 저항할 시간이 없고, 시간을 앞지를 기력이 없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그리고 그 두 운명 사이에는
          사소한 상호관련도 없다는 또 다른 운명도 보인다 

                   김 훈  < 밥벌이의 지겨움 > 중에서
                 


  ['강화도' 주변 구글어스]

  "강화도" 주변의 구글어스입니다.
  이 구글위성사진은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리라 생각되지만, 
  저는 제일 먼저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이 번쩍하고
  그리고 "통일이 된다면 '강화도'가 뉴욕의 맨하탄이 될듯하다"라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함께 "땅값도 무지 오르겠군.."이라는 경제동물적 느낌도 옵니다. ㅎ
  그 많큼 지정학적으로 남북의 핵심중심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저 뿐만일까요?
  그래서 옛날엔 외침이 있을때마다 쪼다리 왕들이 도망치는 은신처이기도 했고, 
  근대엔 외침의 주요 통로가 되기도 했나 봅니다.
  오늘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조강 祖江"을 이루고 西海와 만나는 "강화도 연미정"으로 갑니다.
  "연미정"은 지도에 빨간색으로 표기해 놨는데 다음 구글어스에서 더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연미정' 주변 구글어스]

  "연미정 燕尾亭"은 '인천시 강화군 월곳리'에 있으며
  "조강"과 '서해'의 경계가 되는 "유도 留島"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유도 留島"는 화물을 범선으로 운송하던 조선시대까지는 매우 중요한 섬이었답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곳이라 물때를 맞춰야 한양 '마포나루'로 운항할수 있어서,
  물때를 기다리며 쉬어가는 섬이어서 주막이 성행했던 섬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산줄기와 등산에 조예가 깊은 분들은 아시는 "보구곶"이 "유도" 앞에 있는데
  "한남정맥"이 끝나는 지점이지요.


  ['朝海樓']
  
  2015년 5월 12일(화)~13일(수) 맑음 
  오늘은 친구가 강화도에 마련한 별장으로 초대를 해서 나선 나들이입니다.
  그런데 별장 입구에 "연미정"이라고 하는 사적지가 있어 둘러보고 가는 덤도 있었습니다.
  "연미정"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조해루 朝海樓"라는 城門같은게 있는데...
  城門 밖은 바다이니, 아마 바다와 통하는 "海門"이라고 해야겠군요.



  [연미정]

  "조해루" 바로 윗쪽에는 "장무공 황형장군 집터 莊武公 黃衡將軍 宅址"가 있더군요.
  그리고 그 뒤에 "연미정"이 있었습니다.
  인적없는 최전방 철조망 앞에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황형"이라는 장군의 집터와 
  "연미정"이라고 하는 정자를 많은 예산을 들여 복원인지 신축인지 알수 없는 城을 만들어 놨습니다.


  [안내문]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燕尾亭]

  "연미정 燕尾亭"은 城같아 보여 군사요충지인걸로 짐작했는데...
  조선시대엔 중국사신들을 영접하고 국정을 논의하고 협약을 체결하던 곳이라 합니다.
  城같은 "연미정" 안으로 들어 가니,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두그루가 세월을 암시하고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조강"과 "서해"가 만나는 절묘한 곳에 있어 조망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래서 조망을 하고 갑니다.


  [동쪽 조망]

  먼저 동쪽을 바라보면
  '김포반도'의 끝자락이며, "한남정맥"이 그 맥을 다하며 "문수산"과 "보구곶"이 "염하 鹽河" 건너편에
  가까이 조망되는데 '강같은 바다'라고 "염하"라고한다는건 모두 아시져?


  ['유도' 조망]

  "조강 祖江"이 끝나고 "서해"와 만나는 곳에서 "한남정맥"은 그 脈을 다하고 있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던 "유도 留島"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유도"는 한강에서 떠내려가던 섬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머물러 앉은 섬이라고 
  "머무를 유留"를 사용하는 "유도 留島"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저 "유도 留島"는 조선시대까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섬이었다고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
  각 지방에서 조곡을 싣고 올라 온 배들이 한양 "마포나루"로 올라 가기 위해 서해바다의 간조 시간을
  맞춰 밀물 때에 올라 가려고 대기하며 무료한 시간을 한잔 술로 보내는 장소 였답니다. 
  그래서 저 섬에는 주막이 여럿 있었다는군요.
  그리고 1997년에 북한의 소 한마리가 발견되어 우리 군이 구조를 했다는 뉴스를 접한적도 있었습니다.


  ['보구곶'과 '유도' 조망]

  성곽에 붙어 "유도"부근을 근접 촬영했습니다. 줌인한 사진이 아니라 실제 사진입니다.
  '강화도' 앞으로 흘러가는 이 강을 우리는 대체로 "한강 漢江"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조강 祖江"이라고 계속 표기하고 있죠?
  그 이유에 대해선 '한남정맥'을 종주하며 언급 한적이 있습니다만 못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더
  "한강"과 "조강"에 대해 시원하게 풀어 드리겠습니다.
     "동강 東江"
     '오대산 두로봉' -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이 분기하는 봉우리입니다.
     이 봉우리에서 부터 하늘이 주는 선물-빗물을 모아 흘러 내려 가며
     다시 정선, 평창 일대의 주변 계곡에서 여러 물줄기들을 만나며 세력을 키워 나가다가, 
     오대천, 골지천, 임계천, 송천 등 제법 큰 물줄기들이 모여 정선읍내 까지
     "조양강 朝陽江"이라 부르는 江의 모습을 갖춥니다. 
     이 "조양강"에 "동남천"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선읍 남쪽 "가수리 수미마을"에서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51km 구간"을 "동강 東江"이라고 따로 이름하였답니다. 
     이 "동강 東江"은 '영월읍'에 이르러 "서강 西江"과 합해지며, 
     여기서 이윽고 "남한강 南漢江"이란 이름으로 변합니다.
     "남한강 南漢江"은 단양, 충주, 여주를 흘러 "양주 양수리"로 가고,
     양수리에서 다시 "북한강 北漢江"과 팔당댐 앞에서 한몸을 이루며,
     이윽코 쨘~세계적 명성을 날리며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는 "한강 漢江"이라는 이름으로 
     수도 "서울"을 관통하며 흘러 갑니다.
     그리고 '오두산 전망대'가 있는 "교하 交河"에서 "임진강"과 만나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강화도 앞 서해바다로 나아 갑니다.
     큰 강 두개가 만난다고 "교하 交河"라는 地名이 생겨 났으며, 
     여기서 부터 강화도 앞까지를 우리나라 강의 元祖라고 "조강 祖江"이라고 하는데, 
     휴전선으로 통행이 없어서인지 일반인들은 오리지날 이름 "조강 祖江"을 잘 모릅니다.
     정리를 하면 "한강"은 '양수리'에서 '교하'까지이며,
     '교하'에서 이곳 '강화도 앞'까지는 "조강 祖江"이 되는 것입니다.
  "한남정맥"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제가 두발로 걸으며 쓴 "한남정맥 산행기"를
  참고하시고...


  [북한 개풍군 조망]

  북쪽으로는 북한이 지척에 있습니다.
  이 강같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동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고 어러렁거리고 있는데
  이 강같은 바다와 북녁땅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 유람선이 오고가는 자유로운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서남쪽 조망]

  서남쪽으로는 강화도의 뼈대인 "강화지맥"이 지나고 있는 산줄기가 조망됩니다.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과 강화도에서 두번째로 높은 "혈구산", 그리고 "퇴모산"까지 조망되는군요.
  "강화지맥"에 대해서도 제가 두발로 걸어 쓴 산행기가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찾아 참고하시고...
  그리고 오늘 이곳을 찾은 주목적지인 친구 별장은 앞에 보이는 마을에 있는데
  자세한 위치는 다음 구글어스를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월곳리]

  "연미정"과 "조강" 하구를 구경하고 친구 별장으로 향합니다.


  ['연미정'과 친구집 위치]

  이곳 '강화도 월곳리'에는 두명의 동창생이 있는데
  오늘 가려고 하는 "곽병현 전회장"의 별장과 이곳에서 농업을 하며 살고 있는 "황우석"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집은 "곽집" "황집"이라고 표기했으니 참고하시고....


  [곽병현 휴식처]

  노후에 살려고 우연찮은 기회에 장만하게된 "곽병현" 전임회장의 별장입니다.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지요? ㅎ 보시는바와 같습니다.



  [곽병현 별장]

  오늘 몇몇 친구들을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자고...


  [야채 수확]

  먼저 자작농원에서 야채를 채취하고....

 
  [야채 세척 담당]                                   [설겆이 담당]

  깨끗하게 씻는건 전직 교감선생님이 담당하고
  설겆이는 귀금속 사업을 하는 홍사장이 맡았고...ㅎ



  [바베큐 파티]

  오후 1시부터 숯불바베큐에 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저녁까지 마셨습니다만, 맑은 공기와 맛있는 숯불 삼겹살..그리고 끝없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두 그렇고 그런거니까 별도로 추가 설명할 필요 없지요? ㅎㅎ
  특별한것도 없이 시간은 무지 빨리 가버리는거...그런거...ㅎ



  [酒宴]

  어두워지자 실내로 들어와 다시 시작...ㅎ
  그런데 조금 독특한 못보던 분이 한분 있지요?
  얼굴색이 좀 다른 분...ㅎ


  [황우석]

  저는 고딩 졸업한후 처음으로 만나는 동기동창생 "황우석"을 여기서 만났습니다.
  논문조작으로 문제를 일으킨 '황우석박사'가 아니라 이름은 같지만 강화도 월곳리에 살고 있으며
  농업을 하고있는 "휘문고 62회" "황우석"입니다. 
  제가 그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여러번 물었습니다만, 살아 온 자기 인생을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아픈 추억이 기쁜 삶보다 훨씬 많은듯 그의 검게 그을린 주름진 얼굴에서도 나타나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전에는 중풍에 걸려 반순불수가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는데
  자기는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한쪽 팔은 사용이 어려워 한손으로
  저에게 술을 따르는 그 모습이 45년만에 반갑게 만난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당시로는 일류학교 일류대학을 나온 그가 이상을 향해 나래를 훨훨 펴지 못하고
  부닥치는 현실과 이상 속에서 날지 못하는 새장 속의 새가 된 자신을 술로 위안하며 살았으리...
  아직도 건강에 문제가 많은 걸로 보이는데도 여전히 술은 많이 마셨습니다.
  술부터 끊어야겠는데....
  위에서 "연미정"을 둘러 볼때에 "장무공 황형장군"의 집터를 함께 돌아 봤지요?
  '강화군 월곳리' 일대가 "창원 황씨 장무공파 집성촌"이라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황형장군"의 후예들이 아직까지도 대를 이어 살고 있는 곳인데, "황우석"이도 "창원 황씨"로서
  여기서 태어나 서울 휘문고등학교로 유학을 갔으니 예전 그 집안의 규모를 어림 짐작할수 있겠습니다.
  현재는 아이들 뒷바라지 다하고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바다와 산이 함께하는 강화도에서 후회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살아 가고있다고...
  제가 "강화 순무"가 독특한 맛이 있어서 좋다고 했더니 
  이번 가을엔 순무를 더 심어 주겠다고 제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약속까지 해 주더군요. 
  그래서 적절한 가격을 쳐 줄테니 재배해 달라고 했는데 당연 선물로 그냥 주겠다고 했겠죠? ㅎ
  우리 애독자 여러분들 중에 '강화 순무'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저에게 신청해 주시면 
  가을 김장철까지 계약 재배해 드릴수 있으니 많이 신청해 주시기 바람니다. ㅎ
  물론 시중 가격보단 싸게 믿을수 있는 품질로 열포기 단위로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농담이 아님니다.



  [노래방]

  이 친구가 이 집 주인인 "곽병현"입니다. ㅎ 전임 "휘문62회 동창회장"이기도 했습니다.
  고삐리 때에 이 친구 별명이 "비게"였습니다. ㅎ 그런데 고생하느라 살이 빠져 날씬해 졌답니다.
  그래서 제가 "홀쭉한 비게"로 바꿨습니다. ㅎ "날으는 비개"가 더 좋겠다구요? ㅎ
  '파란만장'이라는 단어의 깊은 뜻을 실제 아시는 분들 있습니까?
  '자수성가'라는 말이 아직도 이 시대에 있을려는지 의심하시는 분들 많지요?
  바늘 찌를 빈틈도 없는 빡빡한 요즘 세상에서 '자수성가' 하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답니다.
  '파란만장'한 굴곡의 인생바다에서 '자수성가'한 실제 인물이라고 '파란문'은 장담합니다.
  니야카를 끌며 '길표 음식"을 팔며 바닥을 기고 뒹굴다가 일어서서
  현재는 2~30분 줄서지 않고는 들어 갈수조차도 없는 유명한 "진천토종순대국집"을 인천 가좌동에서 하며
  하루에 순대국만도 500그릇 이상이 팔린다는 성공한 사장님이 되었답니다. 체인점도 전국 여러곳에 있죠.
  "파란문"이 전국의 산과 지역을 돌며 먹어본 순대국 중에서 비교 할수 없는 맛과 멋이 있는 순대국이라고
  쬐끔의 과장도 하지 않고 단언 할수 있습니다. 그 집에 어떡하면 가서 먹어 볼수 있냐구요? 
  인천 가좌동에 있으며 식당연락처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먼저 010-6356-5256으로 연락해서 물어 보세요. ㅎ
  "파란문"의 "홍어와 무인도"를 읽다가 알아서 연락한다고 하면 국물이라도 더 있을 겁니다. ㅎㅎ
  또한 요즘은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이웃돕기에도 열성이랍니다.
  그리고 요즘 시간도 좀 여유가 있어 취미생활로 색소폰을 배운다고...
  들어 본 결과 아직은 바람이 좀 새더군요. ㅎ


  [수요일 아침]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 합니다.


  [아침식사]

  아침은 강화읍내에 있는 "선지해장국집"으로 나가 해장술과 함께 속을 풀고


  [찍사도 등장]       

  오전 시간을 이런 저런 얘기로 추억을 추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오는 길에선 "통진 마송"에 있는 "천정꿩만두집"에서 '꿩만두전골'로 또다시 포식을 하고...ㅎ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저물어서 강가에 나가니
        내 마을의 늙은 강은 증오조차도 마침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 비틀거림은 대수로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김 훈 < 밥벌이의 지겨움 > 중에서

  "제비꼬리" 모양 같다는 '강화도 월곳리'의 "燕尾亭"에서 느리게 흘러 바다와 만나는
  "祖江"과 "鹽河"
  고삐리 졸업 후 45년만에 처음 만나는 검게 그을린 동기동창생
  파란만장한 삶의 바다에서 '자수성가'한 자랑스런 놈
  언제나 함께 할수 있어 행복한 들러리맨들
  즐거운 1박2일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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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長春夢 봄바람이 살랑살랑 어두운 겨울을 깨우고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꽃들이 먼저 앞다퉈 봄이 왔다고 난리를 떨더니 찬바람의 시샘을 받더라 그렇다고 가슴은 왜 이리도 아려져 오는 걸까 바람만 불고 나의 봄은 오지 않는것인가 꼬부라진 할미꽃 한송이도 기웃거리지 않아 산마루를 뒤덮은 봄꽃들도 한숨으로 보이네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가여운 이 가슴에... 화창한 봄날의 슬픈 꿈이 씻겨져 내릴수 있도록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홍어와 무인도☆

☆ 봄날은 간다 ☆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손로원선생 작사, 박시춘선생 작곡, 백설희 노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언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가난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기의 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지만 
              후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가짐으로 가능하다.』
 윗글은 톨스토이가 한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참회록'이라는 책에서 人生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화를 빗대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나그네가 광야를 지나다가 사자가 덤벼들기에, 
이것을 피하려고 물 없는 우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물 속에는 큰 뱀이 큰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물 밑바닥에 내려갈 수도 없고, 우물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나그네는 
우물 안의 돌 틈에서 자라난 조그만 관목 가지에 매달립니다. 
우물 안과 밖에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적이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의 생명을 앗아 갈것이란 걸 생각합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그냥 나뭇가지에 매달려 나무를 쳐다보니,
흑백색 두 마리의 쥐가 나뭇가지를 갈가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두 손을 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필경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그네는 
우물 바닥에 있는 큰 뱀의 밥이 될 것이 틀림없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며  나뭇잎 끝에 흐르고 있는 몇 방울의 물을 발견하곤, 
이것을 혀로 핥아먹습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이 꼭 이 모양이다"라고 말합니다.
인생이란게 언제나 막다른 골목에서 살지만 그래도 희망으로 헤치고 나간다는 의미로 저는 느낍니다
항상 희망을 가져야한다고 하는 말이 그냥 듣기 좋은 말로만 생각하면 안된다고 느낍니다
한편 저는 그의 최대 최고의 역작이라고 하는 『戰爭과 平和』가 생각 날때면 언제나  
이와함께 10여년전쯤 이 세상에서 사라져간 한 여자 탈렌트의 '유언'이 생각 납니다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유언'이야 많았겠지만 '유언'중에 아주 특이해서 였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아~~!! 하며 기억 하실겁니다
             
그렇습니다 
"탈렌트 이 미경"이라는 당시 44세의 올드 미스였으며 대중적 인기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렴푸시 당시 뉴스가 기억 나시겠지만 그녀는 슬프게도 폐암으로 아까운 생을 마감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인터뷰 할 때의 사진이며  
이제까지 접해 보지 못한 특이한 인터뷰로 하는 유언은 『금연과 마음의 평화』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가 담배 피지 마시고 마음을 편히 먹으라는 의미이겠죠
당시에 저는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시집도 안간 노처녀이며 그래도 좀 알려진 어느 여자 탤런트가
          이 세상과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유난히도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 까지 수많은 선인들의 유언을 접해보았지만
          "금연과 마음의 평화"
          이러한 유언은 처음인거같다
          그리고 그 나이에 그런 의미심장한 유언을 하는것도 너무 감명 깊다
          텔런트 이미경은 담배연기 속에서 생활고와 2류인생을 스스로 달래며
          그렇게 살다 사라져 갔단다
          인터뷰에서 이미경이 폐암에 걸린 이유에 대해 
          "흡연과 함께 과도한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었음을 털어놓았다

톨스토이가 인생이란 꽉막힌 공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나뭇잎에 맺힌 물을 상징적으로 빨며 여든이 넘게 장수했는데.....
텔런트 이미경은 생활고와 2류인생을  스스로 달랜다는게 희뿌연 담배연기 였습니다..생명수가 아닌 독약을....
결혼해서 가정도 가져보지 못하고 부활절에 사라져간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그렇게 그렇게 갔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명언이 더욱 감명스럽게 느껴집니다
       『가난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기의 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지만 
        후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가짐으로 가능하다.』
  ★살며..느끼며..즐거운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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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특정 종교와 무관하게 제가 그냥 느낀 점을 쓴 글이니
종교적 의미로 읽지 말아 주시기 바람니다.



























           "동자승 사진을 보며....."

윗 사진들은 여기저기 인터넷상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동자승 사진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사진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 사진들을 볼때마다 저는 이런저런 상념에 잠깁니다 우선 첫번째로 느껴지는 느낌은 세상살이 고달픔이나 살아야겠다는 처절함이 없이 너무나 청순하고 맑고 순수해 저같은 핫바리 인생은 그저 숙연해 질 뿐입니다 제 마음까지 검은색이 하~아얀 색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들은 이 세상이 얼기설기 엮여 머릿속이 우주라는 혼잡한 세파에 고민과 근심 걱정으로 살지 않고 그저 맑고 깨끗하게... 아무른 근심 걱정없이... 즉 忘憂里가 필요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을 볼때마다 제 육신의 구석구석까지 맑고 깨끗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가 저들을... 저 어린 것들을..... 저런 모습으로 저 나이에 ..저런 곳에 보냈을까?... 저들은 석가모니가 중생들의 생로병사를 해결해 줄꺼라 믿을까 저들은 석가모니가 세상사 근심 걱정을 사멸시키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열반"하여 "극락왕생"하리라 믿을까 저들이 무슨 그렇게 해야할 많큼의 근심 걱정이 있을까 저들은 석가모니가 '인디언'인줄 알까? 우리는 백의민족 단일민족 우수한 민족이라 주창하면서 인도사람을 神으로 믿는 사연을 알까 석가모니가 영어로는 Buddah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칙사머니'인줄 알까? 석가모니의 고향인 인도에선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까? 예를들면 같은 맥락의 예수가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에선, "이스라엘 극좌 세력의 우두머리"였으며 지금으로 말하자면 반체제 인사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십자가에 처형 당했다는 정도로 알려져있고 기독교는 이스라엘이 아닌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니우스 대제에 의해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 선포로 국교로 인정되고... 신약성경이 그때에 급히 만들어 지고... 그래서 기독교 총본산이 이스라엘이 아닌 로마에 있는 이유를.... 저들을 저곳에 저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저들 스스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어린것들이 스스로 저 고행(?)의 길에 나서진 않았으리... 무엇을 얻고 무엇을 줄것인지도 모르리라 산다는게 행복인지 불행인지도 모르리라 오로지 어른들...즉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모르는 무식하고 욕심 많은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수행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학원도 몇군데 다니며... 저녁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쉬기도하고....컴퓨터 게임도 좀 하고... 아빠 엄마에게 찡짜도 부리고...손잡고 놀이공원에도 가고.... 살아야 짧은 인생길을 준비하는 대다수의 어린이들처럼... 우리나라 교육이 뭐 어떻고 저떻고해도 그냥 그렇게 그렇게 가는 길이 오히려 정상적인 길이 아닐까 그래서 '동자승' 사진만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건 비록 저 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럽디다. 세상 사는 일 다 그렇고 그렇다고.... 넓은 침대서 잔다고 좋은 꿈꾸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음식 먹고 산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랍디다. 떠날때 주머니 없는 수의 입고 빈털털이로 사라지는 게 인생의 말로라는데 어린것들 시켜 대리만족하는건 더욱 아니고 죄악이며 불행이라고...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데.... 뭘 그리 원하는게 많을까요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던 때가 좋은 때였습니다 윗 사진의 동자승을 보면 맑고 깨끗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무한히 그립습니다 우리 나이이면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른들은 결코 되돌아 갈수 없는 어린시절의 무념무상의 시절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아 가고파하는 '욕심'으로 돌아갑니다 남들과 좀 다르게 살아보자고 바둥거렸는데... 결국 저도 남들과 다를바 없습디다
파 란문 李 栗 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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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을 먹고 사는 놈들"
   "송기동교우 석탑산업훈장" 그 후
                  

     
       [석탑산업훈장]



  ['송기동' 교우]

  제가 직접 받은 훈장은 아니지만 제가 받은듯 기분 좋았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분들은 모두 제 마음 같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넘을 친구로 둔 보람인지... 시샘인지...뭐 그런 야릇한 기분...
  그래서 축하 할 자격도 없는 '파란문'이 축하를 했드니....
  제가 운영하는 "카페 홍어와 무인도"의 "세상사는 이야기란"에
  "송기동교우"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더군요.
  그 글 내용이 저에겐 살갑지 않은 꿈같은 글이라 속으로 괘씸해하며 
  그러면서도 혼자서 보기엔 어찌 허전한듯해서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송기동교우"가 "카페 홍어와 무인도-세상사는 이야기란"에 올린 
  "부끄러운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해 드림니다.
  파란문 선생  잘 지내시오???
  요즘 내가 무슨 상을  탓다고해서  동기생들이 많이 축하 해줘서 고맙구먼.
  그런데 난 참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 오늘도 혼자 집에서 소주를 마신다오.
  이제 초로의 길에 들어선 민초가  그놈에 상이 무신 의미가 있겠소???
  동갑내기 그네는 세상을 경영하는데, 사내놈이 초등핵교 우등상도 아닌
  우범상을 탄것을...ㅉㅉ
  자네가 그 사진을 크게 홈피에 올린 뜻은
  아마도 나의 반성을 촉구하는 친구의 생각이라 짐작했어..
  우찌 그리 내맘을 잘알고 반성문을 쓰라 하시는지?
  가히 유-령-일쎄,ㅎㅎㅎ
  남들은 상을 타면 앞으로 더욱 정진하고, 또 정진하리라고 다짐을 한다지만 -
  난  더 이상 후배기술자들의 일거리를 뺏어가며 주접떨지 않고,
  이 직업을 떠나려 하오.
  그러지 않아도 38년간 일 많이 했오, 무슨 미련이 있으리아...?
  2년 안에 서울 생활 정리하고 제주에 내려가서 
  바다와 바람과 돌, 그리 살다 한줌 재가되어 없어지려하오.
  그 동안 기술쟁이 생활하노라 0.001에 노심초사했던 삶을 내 동댕이치고.
  젊은시절 하고싶던 글쟁이가 되고 싶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내 남은 삶을 살기위하여...ㄲㄲㄲ
               - 걸마 -


  ['파란문'과 '송기동교우']

  [설악산에서 캠프파이어]

  "석탑산업훈장" 받은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리고 아름다운 은퇴를 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바다와 바람과 돌'을 벗하며 살겠다면....
  누구 약 올리는거요?
  그렇다면 난 자랑 할게 하나도 없군요. ㅠㅠ
  나도 국가로 부터 받은 "증"은 '산림청장'한테 받은게 하나 있긴 있지만
  '석탑산업훈장'과는 비교가 짱도 않되 챙피하기만 한데...ㅎㅎ
  '삼다도'에 가면 "바람과 돌, 그리고 여자"라는데...
  '바다'를 넣고 왜 "여자"는 뺏소? ㅎ
  어스럼 저녁녁에 눈 덮힌 산을 바라보며 나도 쐬주 한잔하고 있다우
  벌써 옛날로 변한 '설악산'의 그날이 색바랜 사진 속에서 
  다시 그 추억 속으로 되돌아 오라고 아우성이지만
  오늘은 뭔가 마음이 富者가 된듯 즐거워...
  어느 무인도에서 홍어회로 막걸리 수십말 마시고 싶어지는 저녁녁이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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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면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이다.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를 지나 
              하루 낮도 가장 짧아지는데
              언젠가 싶더니 벌써 한해가 가고...
              그런 날
              법정스님의 '세월과 인생'이라는 글로
              뒤집어 보는 인생과 세월이라해도
              가는 세월의 냉혹함을 
              자신 탓으로만 돌릴수 있을까
              한 해에 한 해를 더 넘기는 한 해가 
              여러 아쉬움을 주는 그런 세월을
              '세월이 가면'이라는 옛 노래를 들으며
              눈 내리는 한 해를 보내고....

              送舊迎新            

세월이 가면 박인환詩 박인희노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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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대포 서울 오던 날 
2014년 10월 17일 (금) 맑음
[이을우네 집]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기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비바람도 피해가는 아늑한 곳에 아담하게 집을 짓고 조용히 살아가는 '을우네'에서...
[단체사진] 미국 뉴욕에 사는 의사 '원덕민'이가 서울을 방문해서 환영회 겸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었습니다. 덕민이 딸과 와이프도 함께 왔습니다.
[점심식사] 서울 방문이 한두번이 아닙니다만, 이번 방문은 모두에게 관심이 큰 이슈였습니다. 그래서 '을우네집'에서 조금 특별한 만남의 시간을 만들었지요.
[대포 마시는 원대포] 대부분 아시다시피 '원 대포'는 의사인 스스로가 '폐암말기'라고 밝힌바있어 이번 서울 방문이 "이별여행"이 아닌가해서 모두 조심스러운 반응이었죠. 제일 궁금한 "폐암"에 대해 직접 물어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대화 내용을 간단하게 간추렸습니다.
파란문: (조심스럽게) 너 아프다더니 어케 된거야. 자초지종을 얘기해봐. 원대포: (태연스럽게 막걸리를 마시며) 지난 2월경인가? 보험을 갈아타려고 했더니 건강검진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거의 폐암 말기라는 확진을 받게 된거지 (상황은 우리가 그 동안 '뉴욕통신' 소식으로 들은 바와 같아서 생략하고...) 파란문: 그런데 우째 이렇게 서울 나들이를 애들 소풍 가드시 나왔냐? 폐암이 나았다는거냐? 원대포: 응~ 무척 좋아졌어. 보시다시피 모두들: (놀라며) 뭐? 폐암 말기가 치료가 되었다구? 어떻게? 원대포: (목청을 높이며) "Miracle !" "Miracle !" 내가 생각해도 기적이야~ 파란문: 치료를 했냐? 폐암도 치료가 되냐? 수술없이? 원대포: 현대 의학의 위력이 어디까지인지 나도 놀랐어. 뉴욕 동기들의 도움이 컷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는 나에게 매일 찾아와 희망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지...특히 '재근'이가 추천한 약을 먹게 되었는데...그 약의 위력이 아닌가 생각해 모두들: (놀라며) 뭐? 폐암말기도 치료 할수 있는 약이 있다구? 원대포: 보시다시피...나를 봐 파란문: 꽤병 아니었냐? 또 대포 쏜거 아니었어? 원대포: 허~~참. 내가 뭔 할일이 없어 그런걸 거짓으로 꾸미겠냐 (요즘 폐암을 치료하는 新藥이 있다고 하며 한달에 약$2,000 정도 약값이 든다고) (모두 그 약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이 많았습니다.) (전문적인 분야이니 그 약에 대해서는 '원덕민'이에게 직접 문의 하시기 바람니다)
[결혼 37주년 축하] 또한 며칠전이 결혼 37주년이라나 뭐래나... 그래서 축하도 해 주고...
[투병담] 폐암 말기로 다 죽어 간다던 "원덕민"이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돌아 왔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앞으로 완치 되기를 기원하며 계속 대포 쏘며 즐겁게 살자구~~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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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그해 여름...
 
'원대포'...그는
   망상해수욕장을 망상하지 못하고
   모든 망상을 '망상해수욕장'에 남기고
   고국과 친구들 곁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후 수많은 날들이 지나 갔습니다.
   기쁨도 슬픔도...사랑도 미움도...고생도 성공도...
   삶이 그렇듯 그렇게 33년이 지나 갔습니다.
   간혹 서울을 방문했을때 먹고 살아야한다는 목구멍 포도청 핑개로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못했던 것들까지
   오늘에서야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왠일인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들이 더 넓은 태평양을 건너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허공에 날립니다.
   산다는게 오고 그리고 가는거라지만
   누가 먼저 가고 누가 나중에 가는 거야 조물주의 고유권한이라지만
   그래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밤에 
   막걸리 수십말 마시고 통곡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소식은 무언가
   오늘은 괜히 '원대포'가 보고 싶습니다.

간간히 너를 그리워하지만, 어쩌다 너를 잊기도 하지.. 
때로는 너를 미워도 하지만, 가끔은 눈시울 젖기도 하지.. 
어쩌면 지금 어딘가 혼자서, 나처럼 저 달을 볼지도 몰라. 
초저녁 작게 빛나는 저 별을, 나처럼 보면서 울지도 몰라. 
인연이라는 만남도 있지만, 숙명이라는 이별도 있지. 
우리의 만남이 인연이었다면, 그 인연 또 한번 너였음 좋겠어~ 
어쩌면 우리 언젠가 또다시, 우연을 핑계로 만날지 몰라. 
내 삶의 전부 눈물로 채워도 널 기다리면서 살른지 몰라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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