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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  
                   주 자 천 
          손전화에 저장된채 지우지 못한 번호가 두 개 있다
          차마 지우지 못하고 한 그룹에 묶어 놓았다
          아주 가끔 열어보며 망설였다
          단축번호 7을 누르면 살가운 목소리 들리던
          지금은 누눈가가 쓰고 있을,
          죽은지 십 년이 지난 동생의 전화번호
          한 사람은 신현정시인이다
          어느날 오후 몸이 아픈 시인이 찾아왔다
          혼자 집에 갈 수 없으니 데려다 달라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택시에 태워 보냈다
          그리고 한참 뒤, 신문 부음란에서 만났다
          이 그룹을 정말 삭제 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선택창이 뜬다
          아니오,를 누른다는게 그만
          예, 가 눌렸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 홍어와 무인도★

그리운 얼굴 - 유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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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지 마라
                         황의천
          흔들지 마라
          흔들지 않아도 흔들린다
          강변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가을엔 흔들리지 않는 것이 없다.
          강물도 흔들리고
          강물에 비춘 달도 흔들리고
          달에 잡힌 흰 구름도 흔들린다

          흔들지 마라
          흔들지 않아도 떨어질 날 멀지 않다
          빨간 홍시는 까치밥 되고
          푸른 배추잎은 무서리에 삭고
          빈 밤송이는 밤나무 아래로 떨어진다

          마음이 약하다
          독한 가시나무도 가시를 잃었다
          어설픈 밤 그림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흔들리는
          가을밤이 서럽다
          흔들지 마라  
          흔들릴 일만 남았는데

          풀죽은 은행잎도
          물들만 하면 떨어진다 
          저 한량한 코스모스도
          제 자리에 못 박은 채
          흔들리다 흔들리다 하루를 보낸다


        코스모스도 낙엽도 모두 나를 흔드는듯 합니다.
        아마도 세월이 세상을 흔들리게 하겠죠?
        한 해가 또 쓰러져 갑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랜만에 편지 한장 띄웁니다~    栗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네게 장미를 전한다-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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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썻던 글인데 공부 삼아 다시 한번 더 올립니다


페루 수산업과 엘리뇨현상

많은 사람들이 엘리뇨현상이 나타나면 큰 재앙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만한것이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엘리뇨현상'에 대한 지식은 그저 '지구의 이상 기후현상'으로만 알고 있다.
오늘은 "엘리뇨현상과 페루의 수산업"에 대해 알아보자


1. 엘리뇨의 뜻

엘리뇨는 스페인어로서 "el nino"이며 '남자 아기'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에선 "아기 예수"로 사용하고있다.
참고로 이와 반대 개념으로 쓰여지는 "라니냐현상"의 라니냐는 "la nine"로서 여자 아이란 뜻이다


2. 엘리뇨 현상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현상을 '엘리뇨 현상'이라 한다.

유식하게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엘니뇨 현상은 태평양 동부 적도 해역(4"S-4"N, 150"W-90"W)의 월평균 해수면 온도 편차의
5개월 이동 평균값이 약 6개월 이상 계속해서 +0.5'C이상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단순 간단하게 얘기 하자면
태평양 적도 남쪽부근의 따뜻한 바닷물이 남미의 에콰도르(에콰도르의 뜻은 '적도')쪽으로
흘러 에콰도르 남미대륙에 부딪히고 그 강도가 강할때에는 페루 해안 아래쪽으로 흘러 가는데
이것을 엘리뇨현상이라고한다. 이 현상은 2~7년 간격으로 불규칙적으로 나타난다고한다.
즉, 평시엔 태평양 적도 남쪽 부근의 난류가 에콰도르 쪽으로 흘러 가기만 하는데,
그 강도가 강해 페루 해안 아래쪽으로 까지 영향을 미칠 때 '엘리뇨 현상'이라고 한다.
엘리뇨현상이 나타 날때엔 국지적으로 바닷물의 온도가 1도~7도 정도 상승한다고 한다

우리 지구의 빙하시대때의 평균 기온이 현재 지구 평균기온보다 2도 낮았다고 하니
넓디 넓은 태평양 수온의 변화는 지구 곳곳에 많은 기상 변화를 줄수 밖에 없을 것이다


3. 엘리뇨현상과 페루 수산업

엘리뇨현상이 지구 곳곳에 기상 이변을 이르키는 재앙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엘리뇨 현상이 나타나면 세계 최대 수산업 국가중 하나인 페루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젖어든다.
왜냐하면, 평상시엔 나타나지 않던 열대 난류성 漁族들이 대거 나타나
수산업이 활기를 띄고, 다시 엘리뇨현상이 사라 질때쯤엔 깊은 바다로부터 순환되는
차거운 바닷물이 올라오며 새로운 深海의 漁族들이 올라와 수산업이 더욱 활기를 띄게 된다는
것이다.

즉, 엘리뇨현상은 주로 12월 크리스마스 쯤에 나타나기 시작하므로
페루인들에겐 豊漁를 가져다 주는 '엘리뇨현상'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대변되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의미하게 됬으며 그래서 엘리뇨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엘리뇨현상'은
기상 이변의 어두운 면으로 시작 된것이 아니고 구세주가 오신 좋은 의미로 사용 된 것이다.

 

                 - 파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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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김유정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 뒤에서 푸드득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 같은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 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푸드득 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어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 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는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접어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 척 만 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리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보구……. 
    “그럼 혼자 하지 때루 하듸?”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또는,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대인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저의 집께를 할끔할끔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 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네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쓱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 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온 것은 근 3년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다시 집어 들더니 이를 꼭 아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동네 어른이, 
    “너 얼른 시집을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세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리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러움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지게 후려때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렇잖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므로 일상 굽신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다니면 동네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 하면,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었다. 
  나무를 한 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닭이 죽는 소리를 친다. 
  이거 뉘 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래졌다. 
  점순이가 제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아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리 패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 번 휘돌아보고야 그제서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참 지게 막대기를 들어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닭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 
  죽어라 하고 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닭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네 보란 듯이 내 앞에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닭이 맞을 적마다 지게 막대기로 울타리를 후려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왜냐 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아,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터이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루루 오더니, 
  울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닭을 내팽개친다. 
    “에이 더럽다!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게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라고 하는 것은 암탉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찌똥을 ‘찍’ 갈겼는데,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히 든 듯싶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배냇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 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그러나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 못 하는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이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치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고로 으레이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 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이께로 들여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 접시 턱이나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금시는 용을 못 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들도록 홰 속에다 가두어 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 내고 나서 쉴 참에 그 닭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 안에서 헌 옷을 뜯는지 혹은 솜을 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을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닭은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는 바람에 우리 닭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날갯죽지만 푸드득푸드득 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 뿐으로, 
  제법 한 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 번은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발톱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며 
  면두를 쪼았다. 큰 닭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수탉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쪼니, 그제서는 감때 사나운 그 대강이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옳다,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 때에는 뜻밖에 내가 닭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 한다! 잘 한다!” 
  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뻗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 하면, 큰 닭이 한 번 쪼인 앙갚음으로 허들갑스리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 못 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순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 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 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먹질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닭을 반듯이 뉘고, 그 입에다 권련 물부리를 물리었다. 
  그리고 고추장물을 타서 그 구멍으로 조금씩 들이부었다. 닭은 좀 괴로운지 ‘킥 킥’ 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 물을 먹이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닭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서 얼른 홰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할 계집애가 필연 우리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홰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닭을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 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 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스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앞에서 또 푸드득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닭을 집어 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막대기를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렀다. 
  닭도 닭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앤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겨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 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 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턴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 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알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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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봄  
                     김유정 
    "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바기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년이면 삼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 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없이 
  꾸벅 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 차려서,  
    "어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봐서 
  지레 펄펄뛰고 이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번 재볼까, 했다마는 우리는 장인님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침 가서 
    "제 -- 미 키두!'
  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말락 밤낮 요모양이다. 개 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뼉다귀가 움츠라드나보다, 하고 내가 넌즛넌즈시 그 물을 
  대신 길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 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서,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되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자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심어서 뭘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가 너무 먹는 걸 모르고 
  냇병이라나,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 심곤 조금도 싶지 않다.  
    "아이구 배야!"  
  난 몰 붓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그대루 논둑으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겨드랑에 꼈던 벼 담긴 키를 그냥 
  땅바닥에 털썩 떨어치며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암만 바빠도 나 배 아프면 고만이니까. 
  아픈 사람이 누가 일을 하느냐. 파릇파릇 돋아오른 풀 한숲을 뜯어 들고 다리의 거머리를 쑥쑥 문대며 장인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논 가운데서 장인님도 이상한 눈을 해가지고 한참 날 노려보더니,  
    "넌 이자식, 왜 또 이래 응?"  
    "배가 좀 아파서유!"
  하고 풀 위에 슬며시 쓰러지니까 장인님은 약이 올랐다. 저도 논에서 철벙철벙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자식아. 일 허다 말면 누굴 망해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세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허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참봉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히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생기길 호박개같애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이 똑 됐다. 장인에게 닭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라 안는다. 
  이바람에 장인님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그래도 굽실굽실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장인님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된다.  
  뒷생각은 못하고 뺨 한 개를 딱 때려놓고는 장인님은 무색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갈도 꺾어야 하고 모도 내야 하고, 한참 바쁜 때인데 나 일 안하고 우리집으로 그냥 가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니까 늦잠잔다구 돌멩이를 집어던져서 자는 놈의 발목을 삐게 해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끙끙, 앓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예,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되면 너 장가 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 품들일 논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장인님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가을에 와서 혼인을 시켜 줘야온 경우가 옳지 않겠나, 
  볏섬을 척척 들여쌓아도 다른 소리는 없고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는 점순이를 담배통으로 가리키며,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구 그러니 원!"
  하고 남 낯짝만 붉혀 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꼰코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꼴하고는 집으로 차마 못 간다. 
  장가를 들러갔다가 오죽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장인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줘야 안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
  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구장님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자식이 왜 이래 어른을."  
    안 간다구 뻗디디구 이렇게 호령은 제맘대로 하지만 장인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한다. 
  막 부려먹고 딸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야……. 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새고 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병을 아직 모르지만)이 날려구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을 반도 갈지 않아서 온몸이 맥이 풀리고 대구 짜증만 난다. 공연히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아냐! 아냐! 이 망할 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 대가리를 꺾어줄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안야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구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 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헌데 한 가지 과가 있다면 
  가끔가다 몸이(장인님이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서 깨빡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 할까봐서 이걸 씹고 앉았느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채루 밭머리에 곱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챙기는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
  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없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내에 부쩍 (속으로) 자란 듯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아직 어리다구 하니까…….  
    우리가 구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는 싸리문 밖에 있는 돼지우리에서 죽을 퍼주고 있었다. 
  서울엘 좀 갔다오더니 사람은 점잖아야 한다구 웃쇰이(얼른 보면 지붕 위에 앉은 제비꼬랑지 같다) 양쪽으로 
  뾰죽히 삐치고 그걸 애헴, 하고 늘 쓰담는 손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미리 알아챘는지,  
    "왜 일들 허다 말구 그래?"
  하더니 손을 올려서 그 애헴을 한번 후딱 했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먼저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떠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빙장님과 첨에,"
  하고 첫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장인님은 빙장님,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장인님,하면 괜스리 골을 내려고 든다. 
  뱀두 뱀이래야 좋으냐구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 데는 제발 빙장님, 빙모님, 하라구 일상 당조심을 받아 오면서 
  난 그것두 자꾸 잊는다. 당장두 장인님, 하나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길게 길러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말에 장인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년 동안에도 안 자랐더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  
    "글쎄, 이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빙모님은점순이보다도 귓 배기가 작다)"  
  장인님은 이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쌍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니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그러나 이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논으로 돌아와서 모를 부었다. 
  왜냐면 장인님이 뭐라구 귓속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뭉태의 말은 구장님이 장인님에게 땅 두 마지기 얻어부치니까 그래 꾀엿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자네 말두 하기야 옳지, 암 나이 찼으니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농사가 한층 바쁜 때 
  일을 안한다든가집으로 달아 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두 징역을 가거든!(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 좀 놓았다구 징역간 거 못 봤나. 
  제 산에 불을 놓아도 징역을 가는 이땐데 남의 농사를 버려두니 죄가 얼마나 더 중한가. 
  그리고 자넨 정장을(사경 받으러 정장 가겠 다 했다) 간대지만 그러면 괜스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걸세.
  또 결혼두 그렇지. 법 률에 성년이란 게 있는데 스물하나가 돼야지 비로소 결혼을 할 수가 있는걸세. 
  자넨 물론 아들이 늦을 걸 염려하지만 점순이루 말하면 이제 겨우 열여섯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주겠다 하시니 좀 고마울겐가. 
  빨리 가서 모붓든 거나 마저 붓게, 군소리 말구 어서 가."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전혀 뜻밖의 일이라 안할 수 없다.  
  장인님으로 말하면 요즈막 작인들에게 행세를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돈 있으면 양반이지 별게 있느냐!" 하고 
  일부러 아랫배를 쑥 내밀고 걸음도 뒤틀리게 걷고 하는 이판이다. 이까진 나쯤 두들기다 남의 땅을 가지고 모처럼 
  닦아놓았던 가문을 망친다든가 할 어른이 아니 다. 또 나로 논지면 아무쪼록 잘 봬서 점순이에게 얼른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 …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어젯밤 뭉태네 집에 마슬간 것이 썩 나빴다. 
  낮에 구장님 앞에서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구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떡허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로 박아놓지 뭘 어떡해?"
  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놈이 번히 괄괄은 하지만 그래놓고 날더러 석유값을 물라구 막 찌다우를 붙는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신 지껄이는 소리가,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 테냐?"  
    "영득이는 일년을 살구두 장갈 들었는데 넌 사년이나 살구두 더살아야 해?"  
    "네가 세번째 사윈줄이나 아니? 세번째 사위"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자식아, 우물에 가 빠져 죽어."  
  나중에는 겨우 손톱으로 목을 따라고까지 하고, 제 아들같이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를 다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우리 장인님 딸이 셋이 있는데 맏딸은 재작년 가을에 시집을 갔다. 
  정말은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그 딸도 데릴사위를 해가지고 있다가 내보냈다. 
  그런데 딸이 열 살 때부터 열아홉 즉 십년 동안에 데릴사위를 갈아들이기를, 동리에선 사위부자라고 이름이 났지마는 
  열네 놈이란 참 너무 많다. 장인님이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고로 그 담 딸을 데릴사위를 해올 때까지는 부려먹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머슴을 두면 좋지만 그건 돈이 드니까, 일 잘하는 놈을 고르느라고 연방 바꿔들였다. 
  또 한편 놈들이 욕만 줄창 퍼붓고 심히도 부려먹으니까 밸이 상해서 달아나기도 했겠지, 
  점순이는 둘째딸인데 내가 일테면 그 세번째 데릴사위로 들어온 셈이다. 
  내 담으로 네번째 놈이 들어올 것을 내가 일도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록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 
  세째딸이 인제 여섯살, 적어두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할 테므로 그 동안은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속 좀 채리고 장가를 들여달라구 떼를 쓰고 나자빠져라, 이것이다.  
    나는 겉으로 엉, 엉,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뭉태는 땅을 얻어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 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장인님이 저 달라고 할 적에 제 집에서 위한다는 그 감투(예전에 원님이 쓰던 것이라나, 
  옆구리에 뽕뽕 좀 먹은 걸레)를 선뜻 주었더면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뭉태란 놈의 말을 전수히 곧이듣지 않았다. 
  꼭 곧이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장인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딸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장인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점순이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된장찌개하고 간장 한 종지, 조밥 한 그릇,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산나물이 한 대접, 이렇다.
  나물은 점순이가 틈틈이 해오니까 두 대접이고 네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밥은 장인님이 한 사발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된다. 그런데 점순이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려 놓으며 제 말로 지껄이는 소리가,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
  하니까,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들어가지 않느냐, 
  이때 아 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에미 잃은 황새새끼처럼 가여 웁다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치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생겼다 해두 괜찮지만
   내 아내 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밥을 먹은 뒤지게를 지고 일터로 갈려 하다 도로 벗어던지고 
  바깥 마당 공석 위에 드러누워서 나는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 안하면 장인님 저는 나이가 먹어 못하고 결국 농사 못 짓고 만다. 
  뒷짐으로 트림을 꿀꺽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다 날 보고서,  
    "이자식아, 왜 또 이러니."  
    "관격이 났어유, 아이구 배야!"  
    "기껀 밥 처먹구 무슨 관격이야, 남의 농사 버려주면 이자식아징역간다 봐라!"  
    "가두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해서 징역 가도 좋다 생각했다. 일후 아들을 낳아도 그 앞에서 바보, 바보, 이렇게 별명을 들을 테니까 
  오늘은 열쪽이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하게 가더니 지게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돌 떠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기고 넘기고 했다. 
  밥을 잔뜩 먹어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았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에는 배를 지게 막대기로 위에서 쿡쿡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했다. 
  장인님은 원체 심청이 궂어서 그러지만 나도 저만 못하지 않게 배를 채었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고 넌 해 라 난 재밌단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후려갈길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 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 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벽 뒤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라보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 
  또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장인님하곤 아무것도 안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수염만 채고
  (제 원대로 했으니까 이때 점순 이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라부다!"
  하고 소리를 쳤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려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려버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번을 하며 그럴적 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허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 장 님!  빙 장 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보다 했다. 
  그래두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러나 얼굴을 드니(눈엔 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랭이를 꽉 움키고 잡아낚았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어쫓았지, 터진 머리를 볼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만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 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인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부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겨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댕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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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  
       김재홍 교우 차녀 결혼식 참관기 
          2012년 3월 10일 (토) 12시 
          아이컨벤션웨딩홀 노블레스홀
          양숙성, 성옥분의 차남 관훈군 
          김재홍, 이순섭의 차녀 소연양 
                     

  동창생들 축하 행차

  신랑(우측) 신부(좌측) 어머니 입장

  신랑 신부가 현역 군인이라 결혼식도 군대식으로...


  수 많은 세월을 키워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 보내는 마음
  만감이 교차 하겠지요.

  새로운 세계를 향해
  새로운 세대를 향해
  행복의 문으로 향하는 결혼

  신랑 신부 맞절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가 되려고 한답니다.
  하나와 하나가 합쳐 "하나"가 되려고 한답니다.

  키워서 보내느라 고생했수~

  "혼 婚"
  "여자 女"와 "남자 氏"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日"이 되는 한자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의미이겠죠?

  직업 군인들로서
  한 가정의 아빠 엄마로서
  현명한 처신을 하며 행복한 삶을 구가 하길 기원합니다.





축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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鹿潭 柳淏宣 선배님의 선물 2012년 黑龍의 해에 어느 곳에선가 예기치 못한 선물이 왔습니다. 鹿潭 柳淏宣 선배님이 마음으로 보낸 "홍어와 무인도" 휘호와 선배님이 직접 쓰신 "명산유람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어떤 표현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소생이 받은 선물을 자랑부터 하겠습니다.
["홍어와 무인도" 휘호] 지난 6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 얼핏 한말씀 올렸는데 잊지 않으시고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어와 무인도"를 사랑해 주시는 회원님들과 함께 기리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님이 집필하신 "명산유람기"와 "홍어와 무인도" 휘호] [명산유람기] [친필 싸인] [책 내용 일부] [책 내용 일부] [책 내용 일부]
우리나라 漢詩의 살아있는 巨木이신 선배님께서 소생을 위해 휘호와 "명산유람기"를 보내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名山遊覽 더 많이 하시기 바람니다. 자주 찾아 뵙도록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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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던 날의 송년회 2011년 12월 23일(금) 저녁 7시 저의 인생 이력에 특이하다면 특이한 2년간의 교직생활이 있었습니다. 즉,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한적이 있지요. 그 2년을 함께했던 제자들도 꽤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잊지않고 보고 싶다는, 이제 그들도 待天命의 나이가 된... 그들 말로 함께 늙어 간다는 제자들이 저를 불러 주었답니다 34년전의 그 교정에서 있었던 우리들의 이야기들이 긴 세월의 터널을 빠져 나온듯 새롭게 아기자기하게 기억되는 밤이었습니다.
눈 오는 날 쓰는 편지 정재삼 꽃인가 눈발인가 저 새하얀 눈이 흩날리며 내리고 또 내립니다. 멀리 갔다 돌아오는 고요가 눈부신데 누구의 낭만을 채우려고 지독히도 새하얗게 지평선을 덮습니다. 문득 내 안에 들어온 귓속말이 생각나서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에 속내를 다 비운 편지를 썼습니다. 감사한 당신을 잊지 못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 써놓고 보니 동녘에 햇살 나 스러져버려도 당신 향한 내 마음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 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비가 좋아 빗 속을 거닐었고 눈이 좋아 눈 길을 걸었소 사람없는 찻 집에 마주 앉아 밤 늦도록 낙서도 했었소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 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부끄럼도 또 자랑거리들도 우리에겐 하나도 없다오 우리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알간 마음뿐이라오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 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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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윤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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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국선언 전문
'민주주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壟斷)되었다.' 
1960년 4월 19일, 선배들이 직면했던 비통한 현실은 2011년 오늘, 우리의 눈앞에 망령처럼 되살아났다. 
선배들과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가 다시금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상황에 대하여 우리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결연히 분노한다. 
공명정대한 선거의 실현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10ㆍ26 재보궐 선거에서 자행된 일련의 선거방해 공작들을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최악의 범죄행위로 규정한다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찬란한 자유의 가치가 민주주의와 그 생사를 함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지고(至高)한 민주주의의 수호 앞에는 좌-우의 이념 논리도, 어떠한 종류의 경제 논리도 우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이 심각한 상황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책동 뒤에 가리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지성과 양심의 호소(號召)에 따라, 우리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이 위기상황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1960년 4월 19일의 의기(義氣)가 위기를 넘어 숭고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냈듯, 
오늘날 우리의 결기(決起)는 상처를 딛고 더욱 굳건해질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에, 우리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다음의 사항들을 단호하게 요구한다. 
1.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에 따라, 민주주의에 비수를 겨눈 이번 사건의 실체를 전 국민 앞에 직접 밝혀라! 
1. 일개 비서가 단독으로 범행을 계획, 실행했다는 경찰의 중간 수사 발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사법 당국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히 밝혀내라! 
1. 이번 사건에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 정부 여당의 관계인들은 더이상 진실을 감추려하지 말고, 
권력 뒤의 음지에서 나와 엄준한 법의 심판을 받으라! 
이명박 정부는 지난 1960년 3월 15일의 선거 부정이 정권의 퇴진으로 이어졌음을 기억하라! 
지금의 사태가 부정한 세력에 의해 흐지부지 덮인다면 1960년 4월 19일의 국민적 분노는 다시금 거리를 뒤덮을 것이고, 
우리 서울대학교 학생들 또한 분연히 일어나 민주 수호의 길로 달려 나갈 것이다. 
2011년 12월 26일 서울대학교 학생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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