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도솔지맥 4구간 四明山 區間 山行記 공리고개-592.3m봉(dndwls3xjsjfdnl)-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1180m봉-1004m봉-817m봉-추곡약수 장마철 치고는 맑은 날 7월 26일(일) 이번에는 4개국 외국인들까지 합세하여 "서울백두클럽"의 勢가 더욱 막강해 지는 가운데 "도솔지맥 四明山 區間" 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산행 개념도] 공리고개-592.3m봉(웅진3터널위)-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 1198.6m-1180m봉-1004m봉-門바위-817m봉-추곡약수 枝脈 圖上거리 - 약17km, 총거리 - 약20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30분 [경춘고속도로 가평휴게소] 새로 탄생된 "京春高速道路"를 처음으로 타고 시원하게 달리다가 "가평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民資로 만들어져 통행료가 비싸다고 논란도 많은데, 요즘 도로 나들목 차량 예측을 잘못해 교통체증을 일으킨다고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다고 하는데, 갈때는 몰랐는데 올때 무지 막히더군요 [공리고개] 오전 9시50분경에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공리恭里"에 있는 "공리恭里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장마철인데도 맑은 날씨에 시야가 확트이는 날씨였습니다만 바람이 없어 매우 더운 날씨였습니다 [공리고개 - 항일의병전적비] "공리恭里고개"에는 항일 의병 전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碑는 1978년에 강원도에 의해 건립되었다고하며, 일제침탈의 시대에 이 지역 출신인 유인석, 이강년, 최도환등의 의병장들이 이 지역 주민들과 합세해 쪽바리들을 무찔렀다고 기념하기 위해 戰積碑를 세웠다고 합니다. [공리고개 - 산행 들머리] 이 도로는 "46번 국도"입니다. 요즘은 꼬불 꼬불하던 도로를 터널을 뚤어 길을 쫘악 펴서 양구로 직진하도록 되있어 옛길인 이 46번 국도에는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46번 국도"는 무지 유명한 國道이지요? 학창시절 한번쯤은 데이트를 하며 달려 보았을 "京春街道"가 "46번국도"이지요 "46번 국도"는 인천의 월미도에서 서울과 春川을 거쳐 이곳을 지나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가는 우리나라 허리를 가로 지르는 중요한 국도입니다만, 고속도로가 뚤리고 터널들이 생겨 터널 위 옛도로들은 썰렁합니다. [서울백두클럽 기념사진] 오늘 산행에는 외국인들이 4명 참석했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 우즈벡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2월 "명성지맥4구간"에 참가했던 Mr.Warren이 친구들과 함께 참가하여 5개국이 합동 산행을 하게 된것입니다. 세계적 산악동호회로 거듭나고있는 "서울백두클럽"의 위상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파이팅~!" [산행 출발] 10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유명한 등산코스를 찾아 다니는 산악동호회가 아니고 길도 험한 "枝脈"을 찾아 다니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長行을 시작합니다. [웅진터널 위 592.3m봉으로]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오르는 四明山산행코스에는 우리 일행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단 한명도 볼수 없었고, 한여름 장마철이여서인지 산행이 끝날때까지 다른 산객은 단 한명도 만날수 없었습니다. [四明山 안내 이정표] 조금 오르니 이정표가 나타나서 길안내를 해줍니다. 등산객 한명 없는 이곳에 이정표를 친절하게도 세워 놨습니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도 거의 없습니다 [四明山 안내 이정표] 四明山까지 10.5km라고 친절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하고 四明山은 일반산객들에게는 관련이 없는 먼 곳인데도 우리같은 지맥종주자들을 위해서인지 안내를 해 놨습니다 가는데 10km, 내려 오는데 10km였으니 얼마나 긴 거리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웅진터널 위 592.3m봉으로] 산마루까지 올라 가는 길은 언제나 급경사로 땀이 납니다. 登路를 잘 정비해놔서 오르기는 쉬웠으나, 초보산객들인 외국인들이 완주를 할수 있을려는지 많이 염려 되었습니다. [웅진터널 위 592.3m봉] "46번국도 웅진3터널" 위에 있는 592.3m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공리고개'에서 여기까지가 급경사 오르막이고, 여기서부터는 마루금을 따라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전진합니다. [학조리방향 이정표] '鶴鳥里' 방향으로 갑니다. [四明山] 마루금에 오르니 왼쪽으로 四明山이 위용을 보여줍니다. 四明山까지 C字 뒤집은 모양으로 빙돌아 10km를 가야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583m봉] 크고 작은 봉우리,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四明山을 갑니다. [갈탄리 고개 가는 길] 이런 길을 걸으면 내리막이 싫습니다. 왜냐고요? ㅎㅎ 그 많큼 또 기어 올라야하쟌아요~ [무명봉] 제법 높은 봉우리.... [四明山] 肉山은 여름철엔 울창한 숲으로 외부 조망이 어렵습니다. 조금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운 좋게 외부를 잠깐 조망할수있습니다 왼쪽에 四明山을 보며 4시간 정도 걷습니다 [갈탄리 고개 가는 길]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회원님들이 계셨는데, 월남에 파병되기 전에 맹호부대등이 이곳 "四明山"에서 훈련을 받고 갔다고 하더군요. 월남의 정글 속에서 전투를 하기위한 훈련이었다니 그 강도를 짐작하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오늘은 사서 고생을 하는데 그 때와 비교 된다고....가슴 뭉클하겠지요 [635m봉] 삼각점이 있는 635m봉은 "갈탄리 고개"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리고 이 봉우리를 지나 "四明山과 鶴鳥里 갈림길"이 나오니 지금부터 유의해야합니다 [학조리방향 이정표] 이곳에서 약800m앞에 갈림길이 있는데, '학조리' 방향이 아닌 좌측 방향으로 가야 四明山으로 갈수 있습니다. 四明山 방향 길은 희미하기에 강조합니다 [헬기장] 635m봉과 "갈탄리고개" 사이에 헬기장이 하나 있었고.... [양구읍내 전경] 오른쪽으로 "양구읍" 시가지가 잘보입니다 저쪽 비봉산 기슭에는 우리나라의 세계적 화가인 "박수근 화백"의 미술관이 있습니다. 몇년전에 가 본적이 있는데 멋있게 건립해 놨더군요. 박수근 화백의 화법은 "마티에르기법"이라고 하는 점을 이용해 그리는 화법이지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비싼 값으로 경매가 되니 가짜 그림들이 출현해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법정으로까지 가 있죠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이던 하는 사람들이 "박수근 화백"을 욕되게 하는데 그 가운데에 박수근화백의 장남이 관련되있다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까발렸지요 그 놈도 자기 아버지의 화법인 "마티에르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더군요 SBS는 그 장남이 그린 그림을 아버지의 그림이라고 속여 팔아 묵고 있다는 의심을 강력히 하고 있었습니다. 믿을 놈 없는 세상이죠? [점심식사] 산에 왜 오르느냐구요? 유식한척하는 사람들 많지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등등..... 솔직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게 바른 말 아닐까요? ㅎㅎ 너무 형이하학적이라구요? ㅋㅋ 그래도 묵어야 걸을 수 있지요. 저 외국넘들은 비스켓에 참치를 포개서 먹더라구요. 그게 잴 맛있다나? 그거 묵고 어찌 앞으로도 6시간을 더 걷겠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제가 권하는 김밥과 반찬을 부랴 부랴 먹더라구요 "먹어야 오를 수 있고, 오르기 위해 먹는다~" 했더니 고개를 끄떡끄떡 [학조리-사명산 갈림길] 유일하게 갈림길이 있고, "사명산"방향은 길이 희미해 알바하기 쉬운 곳이니 앞으로 오실 후답자들은 유의 해야하는 곳입니다. [갈탄리고개] 고개 다운 고개가 처음으로 나오는데 이곳이 "갈탄리 고개" 입니다. 오늘 산행 거리의 4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입니다. [갈탄리고개 이정표] 에고 이제 5km걸었군요. 사명산 정상까지 앞으로도 오르막 5km가 더 남았네요 날머리인 "추곡약수"까지는 약15km가 더 남았으니....어휴~ [806m봉 헬기장] 높고 낮은 봉우리를 몇개 지나면 제법 높은 봉우리인 "806m봉 헬기장"을 만납니다. 여기에선 "사명산" 정상이 쪼끔 보입니다. 사명산 정상부도 여러개의 높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越北峴] 오후 2시 정각에 "월북현 越北峴"에 도착했습니다. "공리고개"에서 4시간이 걸렸군요 이제 정상까지 3km 남았다고하니 여유가 생깁니다만, 지금부터 힘든 된비알을 본격적으로 올라야 합니다. [越北峴] 양구군 "웅진리 雄津里"에서 "양구읍"으로 넘어 가는 옛 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지금은 터널화로 쉽게 양구읍으로 가지만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오죽하면 "越北 고개"라고 했겠습니까 이곳에서 부터 실제 "四明山 등산로"입니다. [사명산 오르는 길] 1시간 50분을 올라야 사명산 정상에 오를수 있었으니 새로 등산을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4시간을 걷고 다시 된비알을 1시간 50분 오르면...힘좀 들겠지요? ㅎㅎ [독버섯 구별법]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소양호에 접해있는 雄津里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사명산 일반등산코스"입니다. 雄津里는 글자 그대로 소양호에 붙어있는 큰 나룻터라는 동리입니다. 대부분의 일반 등산객들은 雄津里에서 사명산을 오릅니다. 그러면 약5시간 코스라고 하네요. [1031m봉 헬기장] '사명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1031m봉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정상까지 약2km 남았습니다. [정상을 향해...] 사명산 정상이 보입니다. [소양호] 야호~~ 처음으로 "소양호"가 조망됩니다. "四明山"에 오르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소양호"와 "파로호"의 장관입니다. 왜냐하면 "四明山"이 소양호와 파로호 사이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두곳을 볼수있습니다. 동시에 두곳을 함께 조망할수 있는 곳은 "四明山 정상" 뿐이더군요. [도솔산-대암산 방향] 멀리 "도솔지맥"이 검은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雄津里에서 올라 오는 일반등산로가 두곳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명산 정상까지는 500m정도이니 대부분 이곳으로 오르리라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이정표] [등산코스 안내도] 우리는 오른쪽 아래 "공수리"라는 곳쯤에서 붉은 선을 따라 올라 온 것입니다. 무지 걸었지요? 앞으로도 이많큼 더 걸어야합니다. 에구~ [四明山 정상] 드디어 하늘이 가슴에 와 닿고, 더 이상 아무것도 높은게 없는 정상에 왔습니다. 이때가 오후 3시 50분. "공리고개"에서 약 5시간 50분 걸렸습니다. [四明山 정상석] 좁은 사명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우람하게 서 있고 춘천, 화천, 양구, 인제까지 네곳이 모두 잘 보인다고 지어 졌다는 四明山이 지친 산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四明山 유래]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대암산" "도솔산" 방향] 검은 능선이 "도솔지맥"입니다. "돌산령"에서 "도솔산"을 지나 군부대에서 짬밥을 먹고 "대암산 용늪"을 구경하고 "광치령 터널" 옆으로 하산했던 1구간이 아득히 보입니다.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봉화산" 방향] 지난 7월 12일에 찾았던 "도솔지맥 3구간"에 있는 "봉화산 烽火山"이 잘 조망됩니다. 애석하게도 그날 엄청난 장맛비로 도중에 산행을 포기했었습니다. 비가 무서워 산행을 포기한게 아니라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않고, 구름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산행의 의미를 찾을수 없어서였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가는 것은 뒷동산을 가는 것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산행기를 쓸수 없는 산행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저 "봉화산 烽火山"구간은 별도로 산행 할 예정입니다. 오른쪽에 높은 산봉우리가 "봉화산 烽火山"입니다. 왼쪽 흰 부분이 양구읍내입니다.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소양호"] 우리나라 최대의 담수호인 "소양호"가 자기 모습을 조금 보여 줍니다. "반야월선생"이 이곳 출신 가수 지망생인 어느 처녀의 집을 찾았다가 作詞했다는 국민 애창곡 "소양강 처녀"가 저절로 흥얼거려집니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져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파로호"]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보는 파로호 破虜湖 우리나라 최초의 북한강 水界의 다목적 댐으로 형성된 破虜湖 "花川댐"에 의해 생겨난 인공호수이니 花川湖라고 해야하는데 유별나게 이곳만은 댐의 이름을 따지 않고 "파로호 破虜湖"라고 합니다. "花川댐"은 일제 강점기 때에 쪽바리들이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산업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파로호 破虜湖는 6.25전쟁 때에 중공군과 북한군들을 이곳에서 물리치고 "花川湖"에 수장시켰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 破虜湖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오랑캐 虜입니다. 즉 오랑캐들을 쳐부셔 수장시켰다고 "花川湖" 대신에 "破虜湖"라 한것입니다 이젠 평화 지향시대가 왔으니 전쟁적인 느낌을 주는 "파로호 破虜湖보다 필자는 그 본래의 이름인 "花川湖"로 불리워지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름도 아름답쟌아요? "花川湖"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앞으로 가야할 "도솔지맥 마루금"] 앞으로 이곳 四明山 정상에서 추곡약수까지 가야하는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산이니 이젠 쉽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머나먼 하산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봉우리도 너무 많았습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1180m봉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소양호"] 반야월선생이 작사하시고 이호선생이 작곡한 국민 애창곡 "소양강 처녀" 이 노래의 주인공인 "소양강 처녀"는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였습니다. 몇년전에 "KBS 스페샬"에서 방영한 다큐멘타리를 보아서 어렴푸시 기억나 다시 그 동영상을 찾아 "소양강 처녀"가 만들어 지는 배경을 알게됬습니다.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는 가수 지망생으로 반야월선생이 일하고 있던 명보극장 근처 `한국가요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에 찾아가 여사무원으로 근무하며 가수의 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자신의 집 소양호로 음악가들을 초대해 소양강에서 어부로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가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잘 대접했나 봅니다 이때 이 주변 경관과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의 사연을 묶어 작사를 했다는군요 현재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는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광주에서 야간업소 가수생활을 하고 있다는군요 [이정표] 이 이정표에 속은 기분입니다. 왜냐하면 "추곡약수"까지 거리표시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다지 멀지 않으니 거리표시를 하지 않았겠지...라고 생각한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거의 다 왔겠구나라고 생각한게 결과적으로 더 큰 심리적 압박감이 되었습니다 "추곡약수"에 가서 생각해 보니, 여기서 너무 멀어서 거리를 미리 측정하지 못해 거리표시를 못한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무지무지 멀었습니다. 가깝겠지하는 심리적인 문제도 한몫하구요.. 저녁 7시20분에 "추곡약수"에 도착했으니...닝기리~ [1180m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도솔지맥 마루금"] 앞에 보이는 산줄기를 조금 따라 내려가 좌측이 "추곡약수"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를 책크해도 그럴듯하고요... 그런데 실제는 저 산즐기 많큼 한칸 더 가야 했던것입니다. 저 산줄기 뒷산줄기 뒤에 "추곡약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180m봉 하산] 산봉우리들도 높아 보통 1,000m가 넘으니 내리막도 고달픕니다. 이미 체력은 소진되어 자동으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초보 외국인들은 무릎에 이상이 오기 시작합니다. 우즈벡에서 온 양반은 이미 119 구조대에 의해 "웅진리"로 하산 시켜진 상태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대략 짐작이 가시지요? [1004m봉 갈림길] 이곳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웅진리로 바로 내려 갈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이었습니다. 5시 10분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 숲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1004m봉 갈림길 이정표] 이 이정표에도 거리 표시가 없습니다. 또 이제 가까우니까 거리표시를 하지 않았겠지....라고 생각 했는데.... 여기서 "추곡약수"까지 2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에구 ["門바위" 위 탑] "1004m봉 갈림길"에서 약 10분정도 가니 "門바위"가 나왔습니다. "門바위"가 어디있나 찾으며 왔는데 이제서야 나타납니다. "門바위"는 사명산 정상 부근에 있는줄 알았기에 못보고 이미 지나 갔는줄 알았는데 이제서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색다른 경관을 보여주는 "門바위"는 우리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산하는 구간에 이 "門바위" 마저 없었다면 너무 삭막한 사막과 같았을 것입니다 소양강 위에 서있는 12층 석탑이 신비한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門바위" 위 "구름다리"] "門바위" 위에는 사람이 다닐수 없는 나무로 엮은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단순히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이 다리에 술취한 놈이 올라 가지나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명산에서 만난 대표 볼거리였습니다 ["門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소양호"] 오늘 힘겨운 산행길을 모두 잊게해주는 경치가 펼쳐집니다. "소양호"가 내려다 보이는 "門바위"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합니다.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춘천, 화천, 홍천 이 도시 이름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공통점 같은게 느껴 지지 않습니까? 순전히 파란문의 생각입니다만, 틀림없이 이 세 도시는 연관성이 있을듯합니다. 春川 봄이 흐르는 강 - - - 花川 꽃이 피어 어우러지는 강 - - - 洪川 봄꽃을 맞이하는 넓은 강 - - - 어떻습니까? 무언가 연관이 있지 않을 까요? 어떻던 여기는 봄날에 찾아 꽃구경을 해야 제맛이 아닐까요? [門바위] "門바위"는 큰 바위 두개가 양쪽에 서있어 門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더군요 門바위를 통해 하산합니다. [뒤돌아 본 "門바위"] '門바위'이여~ 안녕~ 이제 언제 다시 널 찾아 문을 열고 들어 가겠냐만은 고달픈 사명산 하산길에서 나에게 보여준 그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급경사 내리막] 門바위에서 급격한 내리막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를 내려가고, 다시 한봉우리를 오릅니다. [817m봉 정상] 지도상에 나오는 "817m봉"에 올랐습니다. 이곳 정상은 삼거리 갈림길인데 도솔지맥은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여기에서 확실한 "추곡약수"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또한 여기서 1시간을 걸어 "추곡약수"를 갔습니다. [추곡약수] 7시 20분에 추곡약수터에 왔습니다. 우선 약숫물부터 한바가지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물맛이 완전히 틀렸습니다. 탄산수였으며 철분이 많이 함유된 "초정리약수"나 "방아다리약수"와 같은 맛이었습니다 이 물로 밥을 지으면 색깔이 푸른색을 띤다고 합니다. [추곡약수 입구 마을] [뒷풀이] 추곡 계곡에서 알탕을 하고 뒷풀이를 했습니다. 초보 외국인들도 뒷풀이는 즐거운듯...ㅎㅎ 무릎이 아파서 앞으로는 절대 "서울백두클럽"과 함께는 등산 못가겠다고 아우성...ㅎㅎ [뒷풀이] 여하튼 완주를 하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도 스스로 자랑스러움으로 느끼며 "Cheers!!~~"를 외쳤습니다. [산행 개념도] 공리고개-592.3m봉(웅진3터널위)-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 1198.6m-1180m봉-1004m봉-門바위-817m봉-추곡약수 枝脈 圖上거리 - 약17km, 총거리 - 약20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30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진양기맥 黃梅山 區間 山行記 구름재-박덤-삼봉-하봉-중봉-황매삼봉-황매봉-떡갈재-작은황매산-소야리 집중호우가 퍼붓는 장마철 7월17일(금) 밤 10시 30분경 경부고속도로 죽전 버스정류장에는 굵은 빗줄기가 차량들의 전조등에 더욱 빛을 토하며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장마철 산행에 대해 많은 주윗분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진양기맥8구간 黃梅山 區間" 을 종주하기 위해 무박으로 길을 떠납니다.

             
             [산행 개념도]
             이 지도를 잘 봐둬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합천댐 앞 "합천댐 관광단지"]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합천댐 바로 앞에 있는 "합천댐 관광단지"에서 바라보는 합천호 주변 경관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악견산"이며 옆 계곡에 '합천댐'이 있습니다
     이 주변 地理는 황매산에 오르며 사진으로 자세히 보여 드림니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오전 6시30분경이었습니다
  
      [송옥가든]
     합천관광단지에 있는 전망이 가장 좋은 음식점인 "송옥가든"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식사도 했습니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산 이름이 지도에도 나오는 "금성산"이라고 주인이 알려주었답니다
    
     [송옥가든]
     서울에서 빗길을 뚫고 이곳까지 약 4시간이 걸려 도착하니 밤 2시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송옥가든에서 무료로 방을 빌려 주었고, 아침식사비만 받았습니다.
     서너시간 잘수 있어서 황매산을 종주 할수 있었고, 따뜻한 된장찌개 아침식사가
     산행에 큰 도움을 준것은 틀림없습니다.
     앞으로 무박산행시에는 민박이나 펜션을 예약해 전날 미리 내려가 이런식으로
     숙식을 하고 이른 아침 산행을 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하면 더 많은 회원님들이 참여 할듯..
     
     [송옥가든 앞 "합천댐 관광단지 축구장"]
     이곳에는 합천군이 설치한 축구장이 있었는데 제법 유명한 축구대회가 열리고,
     각급학교 축구부들의 합숙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관광객을 끄는 방법 중에 하나이라고 하며 이곳의 명소라고하네요
     
     [황매산 만남의 광장]
     승용차로 약 10분정도 이동하여 "황매산 만남의 광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황매산은 산청군과 합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등산코스도 산청군과 합천군에
     각각 있는데 이곳은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 황매산 들머리입니다.
     
     [기념촬영]
 
     [황매산 만남의 광장]
     오전 7시에 도착하여 약 10분 정도 주변 사진을 찍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반 등산로로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진양기맥"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하므로 마루금을 찾아 마루금으로 이동해야합니다.
     
     [구름재]
     "진양기맥 황매산 구간 마루금"이 지나는 "구름재"에서 정식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황매산 만남의 광장"에서 황매산 등산로로 들어 오는 중간에 마루금이 지나 갑니다.
     일반 등산로로 황매산을 오르실 분들은 이 길로 더 들어 가서 쉽게 오를수 있습니다.
     황매산은 앞으로 아시겠지만 거의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산행시작]
     진양기맥을 걷는 우리는 "구름재"에서 숲속으로 들어 갑니다.
     오전 7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좋은 등산로를 놔두고 길도 없는 마루금으로 들어 가는 특이한 사람들
     
     [헬기장]
     '구름재"에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 조금 오르니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일반등산로 "박덤 갈림길"까지 길없는 길을 갔습니다.
     가시덤불과 숲을 헤치고 약 30분을 악전고투하며 오릅니다.
     너무 험한 길이라 숲속 사진은 한장도 찍을수 없었습니다
  
     [박덤]
     "구름재"에서 약30분 정도 숲을 헤치고 나아가면 임도를 만남니다.
     다시 임도를 따라 약15분 정도 오르면 "박덤 이정표"를 만남니다.
     여기서부터 황매산을 지나 "떡갈재"까지는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좋은
     산행길이었습니다.
     "삼봉"방향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삼봉으로 가는 갈림길]
     넓직한 임도를 따라 오르면 길안내를 잘해 놓은 이정표를 수시로 만납니다.
     황매산 등산은 합천군 대병면 "황매산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하여
     "박덤-삼봉-하봉-중봉-황매삼봉-황매봉"코스를 강력 추천합니다
     황매산의 모든 것이 이 코스에 들어있다고 생각됩니다
  
     [삼봉 오르는 길]
     합천군 대병면 만남의 광장에서 오르는 등산코스에는 지도에 "삼봉"이 두개 있습니다.
     "박덤'에서 오르면 첫번째 봉우리가 "삼봉"인데, 사실 표지석이 없어 어느 봉우리가
     "삼봉"인지 잘 알수 없었고, 대략 그러려니하고 올랐습니다.
     하지만 "하봉"과 "중봉"을 지나 나타나는 "삼봉"은 표지판도 있고 설명 안내판도 있어
     확실히 알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삼봉"은 "황매삼봉"으로서 "황매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황매산의 하일라이트였습니다
     
     [무명봉]
     하늘이 열리는 봉우리로 처음 올라서니 "황매산"이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황매산"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 봉우리에서 진정한 황매산 산행이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곳부터 황매봉까지 화려한 산행코스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게 황매산을 遊山합니다.
     
     [황매산의 주 능선]
     펼쳐지는 저 산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하고 대자연과 함께 하리라~~
     지난 밤까지 퍼붓던 장대비는 언제였는지 더욱 맑아진 공기와 하늘은
     가을 날씨같았으니 우리는 너무 행운이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산행 개념도]
     "삼봉 - 하봉 - 중봉 - 황매삼봉 - 떡갈재 갈림봉 - 황매봉"
     순서를 알고 산행기를 읽으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삼봉 오르는 길]                                                   [삼봉 입구]
     합천 대병면에서 오른 코스에서 처음으로 맞는 봉우리가 "삼봉"인데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봉우리의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며 암릉구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삼봉 오르는 암릉]
     처음으로 암릉을 오릅니다.
     
     [삼봉]
     아마도 아랫쪽 "삼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처음으로 황매산의 안쪽 바깥쪽을 두루 살펴 볼수 있는 전망이 좋은 봉우리였습니다.
     구름이 수시로 황매산을 덮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구름 이외에는 좋은 날씨입니다.
     
     [삼봉에서 내려다 보는 "합천호"]
     처음으로 "합천호"가 보입니다.
     합천호는 합천댐이 준공되면서 생긴 호수로 면적이 785만 평, 댐 높이 96m, 길이 472m, 
     총 저수량이 7억 9천만 톤의 인공 호수로 1988년 12월 준공된 다목적 댐이라고 합니다
  
     [하봉 가는 능선]
     오늘은 합천군 대병면과 산청군 가회면의 경계인  "구름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실제 "황매산"은 산청군의 산이라고 말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면적에서 산청군이 훨씬 많이 차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봉]
     실제 "하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상표지석도 없고, 대략 알아서 생각하면 됩니다
     돌무덤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중봉]
     드디어 봉우리 다운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중봉"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는 돌탑이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뚝 솟아있고,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 능선은 山城이었답니다.
     山城의 이름은 "黃梅山城"이었는데 구전되어 오면서 음운변화를 거쳐 "할미산성"으로
     변형되어 지금까지 전해 진다고 합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황매봉"]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름 위에 떠있는 "황매봉"이 글자 그대로 梅花같습니다.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꽃잎 모양을 닮아 마치 매화꽃 속에 홀로 떠 있는 듯 신비한 
     느낌을 주어 "황매산"이라 부른다고 산청군은 자랑하고 있습니다.
     
     [할미산성과 "치마 덤" 내력]
     이 "할미산성" 아래에 넓은 바위가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 바위를 "치마 덤"이라고 한다는데 그곳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군요.
     "덤"이 무슨 뜻인지 경상남도 지역 이외의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를것입니다
     "덤"은 경남지방 특히 경남 내륙지방의 사투리로 "바위"라는 말입니다
     제 고향이 이쪽이라 확실합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황매삼봉"]
     "황매산"은 효의 산이며 3무(無)의 산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사연을 알아 보니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는 군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련을 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가 수련을 할 때 무학대사의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위해 산을 오르내렸는데
     오르내릴때에 칡덩굴과 땅가시에 발등이 긁혀 넘어져 상처가 나고 뱀에 놀라는 것을 본 뒤 
     황매산 산신령에게 지극 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드렸다고합니다.
     무학대사의 기도가 산신령을 감동 시켰는지 그 이후 지금까지 "뱀"과 "땅가시",
     그리고 "칡덩굴"이 자라지 않아 "3무(無)의 산"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무학대사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의 실천과 사랑은 천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전설로 
     이어져 오고있답니다.
      불교를 믿는 무학대사가 석가에게 기도를 해야지,
      '산신령'에게 기도를 했다는게 조금 이상하군요. 맘대로 놀아라~~ㅎㅎ
     
     [중봉에서 내려다 보는 "합천호"]
     "황매산"에서 "합천호"를 바라 보는 광경이 압권입니다.
     요즘 장맛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합천호의 水位는 중간 정도를 보여주고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가물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황매삼봉 오르는 길에 있는 삼거리]
     "중봉"과 "황매삼봉" 사이에 있는 삼거리입니다.
     이 산줄기의 좌우에서 올라 오는 등산코스와 만나는 곳입니다.
     
     [황매삼봉으로 가는 길]
     人類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을 꼽으라면 무슨 말을 꼽으시겠습니까?
     사람들에 따라 꼽고 싶은 말이 다소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쏘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를 꼽으면 크게 반대 하실 분은 없을듯합니다.
     그런데 우리같은 산객들에겐 "너 자신을 알라~"보다
     '쟝 쟈크 루쏘'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 가라!~"가 더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산꾼은 아무래도 "山"이 대표로 지칭되는 "自然"이 더 마음에 와 닿을겁니다.
     이런 산행기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조금 있으면 알게 될것입니다.
      "자연으로 돌아 가라!~"
  
     [황매삼봉 오르는 길]
     우선 "쟝 자크 루쏘"에 대해 간략히 얘기하면....
     18세기 계몽사상가요,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루쏘(Jean Jacques Rousseau)는
     "자연은 인간을 선량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었으나, 
     사회는 인간을 죄악에 젖게 하고 노예로 만들어 불행을 초래케 하였다.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 가라~!"고 외치며 일어나 프랑스 대혁명의 먼 원동력이 되고, 
     근대 민주주의에 이론적 터전을 마련해 준 세계 역사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황매삼봉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합천호"]
     쏘크라테스에 버금가는 출중한 인물인 "쟝 자크 루쏘"가 웃기는 짜장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쟝 쟈크 루쏘"는 노출증(exhibitionism) 환자였습니다
     노출증(exhibitionism)이란 육체의 일부, 특히 성기를 일부러... 특히 여성 앞에다 노출시키는 
     충동적 행위를 말하는데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황매 삼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 본 "황매평전"]
     드디어 황매산의 대명사인 "황매평전"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매년 5월 하순이면 저 앞에 보이는 도로를 따라 수많은 자동차들이 행렬을 이루고
     철죽이 뒤덮은 "황매평전"이 인간들의 화려한 등산복으로 더욱 붉게 물들이는 곳이
     저 "황매평전"입니다.
     자동차가 황매산의 정상부까지 올라 올수 있어 날나리 산객들이 산행이 아닌 관광을
     전국에서 오기 때문에 엄청난 人山人海를 이룬다고 합니다.
     
     [황매삼봉]
     수년 전 홍대 앞 카페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젊은 연예인 두 명이 
     공연 도중 갑자기 성기를 드러내는 바람에 생중계방송 중이던 방송사가 
     시청자 앞에 사과성명을 내는 등 해프닝이 있었다는것 기억하실겁니다
     정열적인 음악 삼매경에 도취돼 정신이 좀 느슨해졌던 것 아닌가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성기를 내 보이고 그것으로 쾌감을 얻는 "노출증"인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노출증의 대명사로 곳곳에서 나타났던 '바바리맨'이 있었던것도 기억하실겁니다
     요즘은 포르노 수준의 영화들이 케이블 TV의 채널을 주름 잡아 '바바리맨'이 쌕수얼한 이슈가
     되지 못하고 개그프로의 개그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출증"이 변태적인 성행위에서 벗어나 있는 듯도 하지만, 
     아직도 정상적인 인간에게는 호기심 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ㅎㅎ
     
     [황매삼봉 오르는 계단]
     노출증(exhibitionism)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유치한 노출증 충동이 고학력군 젠틀맨들에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는 저학력군에 속하기에 '노출증' 환자는 절대 아닙니다. ㅎㅎ
     전세계 역사에서 알려져 있는 '노출증 환자'는 그 대표적 인물이 다름아닌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인 "자연으로 돌아 가라~"라고 한 "쟝 자크 루소"입니다
     그는 노출증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자서전이라 할수 있는 "참회록"에 상세히 고백해 놓았습니다. 
     그 이후 의학계에서는 노출증이 속칭 ‘가방 끈 긴 사람이 주로 걸리는 질병'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었는데 대체적으로 고학력군에서 이런 노출증 환자가 나타난답니다
     재미있나요? ㅎㅎ 이 이야기는 '황악산 산행기'에서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갈림길 - 가회덕만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
     젊은 시절의 정신적 방황에 대해 용서를 비는 루소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조명이 안 된 컴컴한 골목이나 행인이 드문 곳에 대기하다 
     지나가는 여인을 만나면 그 여성들 앞에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키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그 여성들의 당황한 모습을 즐겼다고 분명하게 써놨습니다. 
     또 자신의 페니스를 여성에게 보이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한 쾌감이 전신을 엄습했다는 사실도 고백해 놓았습니다.    
     이런 등산로는 노출증 환자들에게 더욱 좋은 장소가 될수 있겠습니다. ㅎㅎ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들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해도 그런 충동은 느끼지 않나요?
   
     [삼봉 정상부 갈림길]
     드디어 "황매삼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중봉", "하봉" 아래에 있던 "삼봉"과는 구별해야합니다.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이 등산코스에는 "삼봉"이 두군데에 있는데
     "박덤"에서 오르면 처음 만나는 "삼봉"과 "하봉","중봉"을 지나 만나는 "삼봉"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까지 펼쳐지는 능선에 있는 세개의 봉우리를 "삼봉"이라
     하는데, 구별하기 위해 "黃梅三峰"이라 한답니다.
     
     [삼봉 정상부 갈림길]
     루소의 솔직한 젊은 날의 참회처럼 
     노출증 환자는 자기의 성기를 보였을 때 여성이 당황해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성적 만족을 느끼며 그러한 희열을 맛보는 것으로 그 여성을 직접 범한 것과 같은, 
     즉 그 여성과 섹스를 한 것 같은 흡족한 기분이 든다고 하는 군요.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쟝 쟈크 루쏘'가 노출증 환자였다니.......
     제가 이 "노출증" 이야기를 왜 하는지 잠시 뒤에 알게 됩니다.
     
     [황매삼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
     "黃梅三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는 "팔각정"이 벼랑 위에 세워져있습니다.
     "황매평전"에서 불어 오는 하늬바람이 오장육부를 써늘케 합니다.
     먼저 도착한 횐님들은 팔각정 안에서 午睡를 늘어지게 즐기고 있습니다.
     절묘한 위치에 팔각정을 지어놨습니다.
     
     [황매삼봉 팔각정에서 내려다 보는 "황매평전"]
     "黃梅坪田"
     봄이었으면 더 좋았을 "黃梅坪田"을 내려다 보며 오늘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아!~~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 -
     천하가 모두 내 발 아래에 있습니다.
     정말 장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가방끈 긴 사람들"이 주로 한다는 exhibition 노출을 했습니다. ㅎㅎㅎ
     팬티를 내리고 불어 오는 하늬바람에 땀으로 쩔은 '거시기'를 말렸습니다.
     黃梅山의 정기를 받아 더욱 솟아나는 정력!!~~
     그리고 집에 전화를 걸어 와이프에게 "지금 황매산에서 황매산 정기를 받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뭔 말인지 모르고 그져 조심해서 다녀 오라는 말만 남겼지만 속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장마철이라 이 코스로 오늘 산행을 한 사람들은 우리 뿐이었습니다.
     혹시.......
     가운데 '파란문'의 팬티를 보고 여성분들이 울 남푠도 저 팬티 사입혀야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혹시 '파란문' 비슷한 그런 ..그런 쎈 사람이 되지 않을까?해서...ㅎㅎㅎ
     이나저나 '파란문' 날씬하죠?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우웩? ㅎㅎ
     단체로 아예 홀라당 벗고 黃梅山의 정기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인터넷에 올려지면 문제가 될까요?
     음란물 유포로 감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다소 문제는 될수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만
     그져 재미로 봐 주시기 바람니다.
     요즘 영화나 케이블 TV에는 진짜 완전 홀라당 아닙니까?
     그리고 "장 쟈크 루쏘"처럼 '노출증 환자'도 아니고 그저 '거시기'를 좀 말렸을 뿐입니다.
     황매산을 오르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ㅎㅎ
     그리고 여성분들 진정하세요~~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황매봉까지 능선]
     이제부터 가야할 "黃梅三峰" 능선이 펼쳐집니다.
     다소 쉬운 코스이지만 이 능선에 "황매산"이 다 들어 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팬티를 올리고 반바지를 입고 황매산 정상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납니다.
     
     [황매 삼봉 능선]
     아기자기한   "黃梅三峰" 능선이 가는 길을 즐겁게 해 줍니다.
     
     [황매삼봉에 있는 다른 한 봉우리]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또한 누구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1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뜻 있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산청군과 합천군은 홍보하고 있습니다.
     
     [황매삼봉 능선에 있는 한 봉우리에서 바라 본 황매봉]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이 가까워 옵니다.
     요소 요소에는 휴식 시설이 설치되 있습니다.
     
     [황매 봉 능선] 
       "黃梅三峰" 
     이곳을 이미 다녀 가신 분들은 저의 산행기를 보며 기억이 더욱 새로울 것입니다.
     정말 멋진 곳입니다.
     
     [황매삼봉 안내]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富)귀(貴)山"이라해도 뭐라 할 사람 없겠습니다.
     
     [황매 삼봉 능선] 
     "黃梅三峰"을 이곳 사람들은 설악산의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고 한답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肉山이 많은 남쪽지방에서는 그런 느낌도 ...
     
     [황매 삼봉 능선]  
     "黃梅三峰"능선을 걸을때엔 전혀 지루함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암릉길이 산행의 묘미를 더욱 느끼게 해 줍니다
     
     [황매삼봉 능선에서 뒤돌아 본 "황매삼봉"]
     "黃梅三峰"능선을 모두 지나와 뒤돌아 봤습니다.
     이렇게 "黃梅三峰"은 세개의 봉우리로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팬티를 내린곳이 끝에 있는 봉우리의 팔각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황매 삼봉 능선에서 뒤돌아 본 "황매삼봉"의 팔각정 - 줌인한 사진]
     나도 "쟝 자크 루쏘"처럼 노출을 해 봤던 팔각정이 있는 "黃梅三峰" 봉우리를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이제 어디에서 팬티를 벗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상상이 갑니까? ㅎㅎ
     '거시기' 말리기에는 최고의 명당이었습니다.
     
     [황매삼봉 끝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황매봉"]
     방향에 따라 보이는 황매봉이 변화무쌍합니다
     
     [황매산 정상으로 가며 뒤 돌아 본 황매삼봉의 끝봉]
     봉우리 세개가 모두 巖峰입니다.
     
     [황매산 정상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 - 무지개터]
     앞에 보이는 평평한 봉우리가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에게는 중요한 봉우리입니다.
     저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진양기맥 마루금"은 나있습니다.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은 왼쪽으로 갔다가 되돌아 와야합니다.
     그리고 저 봉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당자리 "무지개터"라고 하는군요.
     오전에 산행을 시작했던 "황매산 만남의 광장" 앞에 세워져있는 안내판에
     "무지개터"라고 명당을 소개하는 글이 있어서 그런가보다하고 소개해 드리는 것입니다.
     
     [황매산 정상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로 가는 중턱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
     이제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과 키 높이가 같아졌습니다.
     모든 산행이 끝난 기분이었습니다.
     
     ["황매봉"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
     '진양기맥'을 종주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베낭을 두고 "황매봉"을 갔다가 돌아 와야합니다.
     "떡갈재"는 우측으로 내려 가고,
     "황매봉"은 왼쪽으로 갔다 와야합니다.
  
     ["황매봉"과 "떡갈재" 갈림길 이정표]
     이곳이 합천군과 산청군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떡갈재" 가는 길]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림니다.
     이 사진은 오른쪽이 "황매삼봉"에서 올라온 길입니다.
     왼쪽이 "떡갈재" 가는 길인데, 왜 다시 소개해 드리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바로 V字로 꺽어지기 때문에 길 찾기에 혼동이 올수 있어서 친절하게 알려 드림니다.
     
     ["떡갈재" 갈림길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
     약100m쯤 앞에 있는 "황매산 정상"을 밟아 보고 가야겠지요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가는 길]
     잠깐이면 "황매산의 정상"인 "黃梅峰"을 갔다 올수 있습니다.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가는 길]
     먼저 간 횐님들이 벌써 올라 가 있습니다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우리 횐님 중에 '솔개'라는 닉을 가진 산꾼이 있는데 
     이 분은 "황매봉" 이곳에서도 '거시기'를 건조 시키고 있더군요. ㅎㅎ
     이 분은 오늘 이곳을 산행하고 다시 이어 "호남정맥"으로 달려가 3일간을 무박으로
     등산을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체력입니다. 그래서 거시기도 말리나? ㅎㅎㅎ
     부인한테는 꼼짝도 못하는거 같던데......켁켁켁
               
               [황매산 정상석]
               오전 11시 10분에 黃梅山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구름재"에서 4시간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너무 많이 쉬었지요..말리느라구 ㅎㅎ)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마지막 준봉인 山"
               1,108m 높이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서 인기 순위 약20위 정도를 하는 인기있는 산이랍니다.
               오르기 쉽고, 아기자기해서 초보 산객들에게 더욱 추억에 남는 산이랍니다
     
     [황매봉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삼봉"]
     지나온 "黃梅三峰"을 뒤 돌아 보니 왜 "黃梅三峰"이라 하는지 실감납니다.
     
     [황매봉에서 바라 본 서쪽 방향]
     일반 등산객들이 황매산 중턱 이상까지 차를 타고 와 오르는 코스입니다.
     아주 쉽게 오를수 있는 코스여서 등산객들 보다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랍니다
     오른쪽 계곡이 '산청군 차황면'이며 "단적비연수", "임꺽정"등 영화를 촬영했던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이 보입니다
     
     ['단적비연수'등 영화 촬영장]
     그래서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을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계절 따라 번갈아 가며 수십만평의 고원에 깔리는 철쭉의 융단과 억새 
     그리고 다섯 남여의 애절한 사랑이 남아 있는 영화 ‘단적비연수’의 촬영장은 
     또 다른 환상을 느끼게 해주어 줌인하여 촬영을 하였습니다.
     
     [황매평전]
     "黃梅坪田"에는 목장도 있으나, 봄에는 철쭉이 화려한 불꽃쑈를 하여
     전국의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이 모여 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가을에는 들국화가 아가씨들의 마음을 설래이게 하며,
     또한 억새가 석양에 흔들리며 감상을 자아 내는 곳이랍니다.
     
     [황매봉에서 바라 본 "떡갈재 갈림길"]
     이제 黃梅山 등정을 마치고 '진양기맥'을 따라 가야합니다.
     하지만 黃梅山은 많은 볼거리와 감명을 주어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떡갈재 갈림길"에서 점심 식사]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했습니다.
     
     ["떡갈재"로 가는 "진양기맥 마루금"]
     황매산 산줄기를 뒤로하고 "떡갈재"로 하산합니다.
     하지만 "떡갈재"에서 다시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올라야 합니다.
     산 하나를 오르고 다시 다음 산을 오를때가 힘이 들기 시작합니다.
     "작은황매산"을 오르고 난 다음에 엄청난 알바를 했습니다.
     '작은황매산'에 가서  알려 드림니다.
     여기까지는 '고속도로'였습니다.
     
     ["떡갈재"로 가는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산"]
     합천군에서 바라 보는 "黃梅山"은 또 다른 감회를 느끼게 합니다.
     
     ["떡갈재"로 가는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삼봉"]
     이쪽에서 올려다 보는 "黃梅三峰"이 또 다른 모양으로 다가 옵니다.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
     山靑郡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의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 시켜 잘입고 잘살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목화씨를 숨겨온 역사적 인물인 "문익점선생"이 탄생된 곳이기도 하며,
     근현대에서 가장 존망받은 스님인 "성철스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또한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균 보다도 더욱 빛나는 인물 - 허균의 스승으로 나오는 
     神醫 유의태선생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저의 고향이 산청 바로 위 함양이기도 하니 이 일대에 출중한 인물이 많이 나온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山水가 좋아 깨끗한 대자연 속에서 살기에
     머리 좋은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온것입니다. ㅎㅎㅎ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 - 이정표]
     문익점선생을 단순히 목화씨를 훔쳐온 도둑놈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즁국 원나라 입장에서는 나쁜 도둑놈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구세주입니다.
     신념있는 테러리스트 안중근 의사와 같은 맥락입니다.
     오히려 안중근의사보다 더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필자인 파란문은 생각합니다
     천박한 의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 시킬수 있었으니 그 공로는 계산 할수 없습니다
     그 동안 주로 삼베옷으로 여름 겨울을 모두 견뎠는데 더운 봄-여름에는 시원한
     삼베옷을 입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면옷을 입을수 있게 되었으니 의류문화를
     완전히 변화 시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니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고마운 분입니다
     당시에는 부유층만 중국에서 광목을 수입해서 입었었습니다.
  
     [문익점선생 생가와 목화 시배지 - 자료사진]
     문익점선생은 1331년 고려 충혜왕 원년에 이곳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 가고 1363년 공민왕 13년에는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로 사신이 되어 갑니다.
     이때 고려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지요. 최유등 무신정권들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옹립하는 모사를 벌이는데, 이런 모사를 바로 잡기 위해 날조된 관련 서류들을
     불태우고 공민왕 폐위의 부당함을 알리며 신하로서 절개를 지키다가 원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중국에 억류되 있다가 돌아 오는 길에 문제의 "목화씨"를 훔쳐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고려를 깨부수고 "조선"을 개국하는데
     쿠데타정권에 빌붙어 일할수 없다고 영원히 벼슬을 그만 둔 충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두문동 72현"과 같이 이성계와 이방원이의 부름을 여러번 받았으나 끝끝내 관직을 사양한것입니다.
     "한 신하가 두 임금을 모실수 없다"라고 하면서....
     목화씨 훔쳐 온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생각을 바꾸세요
     생육신 - 사육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충신이었다고....
  
     [활타기 - 씨아기 작업]                                      [고치말기]
     1364년 공민왕 13년에 원나라에서 돌아 올때 잘 아시다시피 붓뚜껑에 목화씨 10개를 
     숨겨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인인 "退軒 장천익선생"에게 주었습니다.
     "退軒 장천익선생"이 재배를 했는데 오로지 하나의 씨에서 꽃을 피웠고, 우리나라에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목화씨를 훔쳐온 사람은 문익점선생이고 재배를 한 사람은 그의 장인인 "퇴헌 장천익선생"인것입니다.
  
     [실뽑기]                                                          [베짜기]  
     '퇴헌 장천익선생'은 재배에 성공한 이후 목화씨를 전국으로 나눠져 대량생산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베를 짤수 있는 기계들을 발명해냈는데 바로 목화씨를 분리시키는 "씨아"와 
     실을 쉽게 굵게 감을수 있는"물레"등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태종과 세종대왕은 문익점선생과 장천익선생에게 각별한 예우를 해 주었으며
     특히 세종대왕은 문익점에게 "의정부 영의정"을 추서하고 부민후富民候로 追封하였답니다
     세종대왕은 大王소리를 들을 만하지요? 인재를 알아보고 예우를 해 줄줄 아는 王이었으니까요
     요즘 정치하는 인간들하고는 완전히 틀림니다.
     요즘 넘들은 백성들을 위해서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밥그릇 채우기를 위해 정치를 하니까 
     자기보다 똑똑한 인재를 추겨 세우는게 아니라 깔아 뭉개 죽일려고 하니 완전히 틀림니다.
     
     [황매산 등산로]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산"]
     "황매산"을 뒤돌아 보는 기분이 조금 야릇합니다.
     문익점선생에 대해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쓴 詩가 있는데....

     우리나라 열린지 몇천년인가
     백성이 옷입는것 다 이유있네
     선생이 가져온 그 물건
     재화되어 오래도록 영원하다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내려다 본 "합천호"]
     오늘 '합천호'는 확실히 감상했습니다.
     동쪽에는 "합천호', 서쪽에는 '황매평전'을 두고 진양기맥 마루금을 걸었습니다.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너백이재 가는 길로 가는 마지막 봉우리]
     황매산에서는 마지막으로 주변 경관을 구경했습니다.
     
     [너백이재 - 쉼터]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갑니다
  
     [너백이재 이정표]
     '장박마을' 옆으로 '영화마을'이 있더군요
  
     [떡갈재로 하산]
     '떡갈재'로 내려 가는 길은 숲터널이었습니다.
     
     [떡갈재]
     우리들 이외에는 사람 구경할수 없는 조용한 '떡갈재'에 왔습니다.
     
     [떡갈재]
     '떡갈재'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45분경이었으니 
     오늘은 일찍 산행을 시작해서 일찍 서울로 올라 갈수 있겠다고
     여유를 부리며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나.......닝기리~~ 오후 6시30분이 되서야 서울로 출발했으니....
     이제부터 얼마나 산속을 헤메는지 알만하지요? 
     
     [떡갈재에서 작은황매산 오르는 마루금]
     오늘은 빨리 집으로 갈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힘차게 오릅니다.
  
     [작은황매산 가는 길]
     "작은황매산"은 뾰쪽한 삼각형의 산이라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작은황매산]
     대략 800m 정도 되는 한 봉우리를 올라 가니, 다시 올라야 할 "작은황매산"이 나타납니다.
     이때부터는 힘들기 시작합니다.
     바로 "작은황매산"인줄 알았는데 또 올라야하니 맥이 빠집니다.
     
     [뒤돌아 본 "황매산"]
     '작은황매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黃梅山"
     잘있거라 ~~ 이제 언제 다시 오겠는가~
     하지만 나의 산행기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할것이니라~~
     
     [작은황매산]
     '작은황매산' 정상이 다가 옵니다.
     
     [작은황매산 정상]
     '작은황매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객들의 흔적이 별로 없었으나, '진양기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었습니다
     힘들이며 오른 댓가가 너무 초라합니다.
     하지만 이제 2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오늘 산행이 끝나므로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알바를 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여기서 좌측 서쪽으로 완전히 틀어 내려 가야하는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달려있는 북쪽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알바를 했습니다.
     앞으로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은 이곳에서 독도를 조심해야합니다
               
               [작은황매산 정상석] 
               843m 높이라는 정상석이 외롭게 서있는데
               오늘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두번 오릅니다. 에고~
               북쪽으로 완전히 하산했다가 마루금을 잃고 다른 산봉우리들을 넘고
               몇개의 계곡을 건너 다시 이곳으로 올라 오게 됩니다.
     
     [산행 개념도]
     얼마나 알바를 했는지 상상만 해 보시라..
     두시간 이상 헛다리 짚고 다니다 결국 되돌아 왔으니 에구~~
     연두색 선이 알바한 코스입니다.
     
     [작은황매산에서.....]
     '작은황매산'에서 직진하여 산속을 헤메이며 정신없이 다니느라고 사진도 못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특이한 곳을 발견 할수도 없었습니다. 
     온통 잡풀과 나무, 계곡, 봉우리들 뿐이었으니...
     그래서 알바코스에서는 사진이 없습니다. 
     
     [작은황매산 정상에 되 돌아 오다]
     '작은황매산'에 되 돌아 왔습니다
     이때가 이미 오후 3시 50분이었습니다.
     오후 1시 45분에 떡갈재에서 이곳에 올랐으니 약 2시간 정도 알바를 했습니다.
     
     [작은황매산에서 "밀치" 가는 길]
     '작은황매산'에서 '밀치' 가는 길도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없는 길'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을수 없을 정도로 잡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었습니다.
     枝脈을 가면 보통 이런 길이지만 ...그리고 이런 길을 각오하고 가지만.....
     이번에는 "황매산 구간"이 너무 쉽고 아름다운 길이어서, "작은황매산 구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안이하게 준비도 하지않고 독도도 하지 않으며 진행한것이 큰 오산이었습니다
     枝脈길을 갈때엔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큰 실수를 했습니다.
     
     [밀치 아래 개울에서]
     거창군 신원면 소야리로 내려와 어느 계곡에서 알탕을 하고
     거창 시내에서 오리로스로 저녁 식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와 집에 들어 가니
     밤 2시였습니다.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도솔지맥2구간』 遊山記 광치령-개골령-907m봉 군부대-두무동고개 [산행 개념도] [광치령 터널] 2009년 6월 28일(일)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도솔지맥2구간"의 산행 들머리인 "광치령 廣峙嶺"에 도착했습니다 [광치령 휴게소] 오늘 늦게 도착하게 된 이유는 양재역 서초구청에서 출발도 늦었지만 뒤풀이용 음식물들을 사느라고 더 많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가는 길을 잘 몰라 빙빙 돌아 가느라 많이 늦었는데 또한 "광치령 廣峙嶺" 터널 위 마루금까지 버스가 올라 가는 길을 찾다가 못찾아 추가로 더 늦었습니다. [진갑 Celemony] '서울백두클럽' 회원님 중에 "산깜님"이 오늘 진갑을 맞아 간단한 "진갑잔치"를 조촐하게나마 마음으로 열었습니다. 스스로를 산에 대해 깜깜하다고 "산깜"이라고 아이디를 지으셨다는 "산깜님'이 진갑을 맞았지만 앞으로도 더욱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하시기를 기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깜깜한 산도 잘 다니신다고 "산깜"이라 지은게 아닌지 산을 잘 타십니다 [축가와 답사] "서울백두클럽"의 회원님들의 나이 분포도는 다양하여 우리들의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현존하는 회원님들로부터 볼수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상존하는 "서울백두클럽'은 이렇게 따뜻한 情으로 뭉쳐 山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삶도 사랑합니다. 조그만 케익이 우리가 차린 소박한 '진갑상'의 모두 이지만 함께하지 못한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까지 흐뭇함이 느껴지실겁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11시 15분 산행을 바로 시작합니다 바로 휴게소 뒷편으로 가파른 길없는 길을 치고 오릅니다. 광치령 터널 위 마루금으로 오르는 길은 '옛길'로 오르면 많이 돌아야하기 때문에 휴게소 뒷쪽으로 뚜렸한 길이 없는 벼랑을 기어 올라야 합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산가태가 난 비탈길로 치고 오르는데 落石을 조심해야합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휴게소에서 광치령 터널 위로 오르는 길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된비알입니다 약 25분 정도 숨을 몰아 쉬며 '광치령 옛길'로 오르면 오늘 산행의 고생은 끝입니다 [광치령 옛길] 25분 정도 벼랑을 기어 오르면 "광치령 옛길"이 나옵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이동통신탑이 있는 광치령 터널 위로 갑니다 [광치령 위 "도솔지맥 마루금"] 이동통신탑 우측 '광치터널 위'로 "도솔지맥2구간 마루금"이 열립니다. 11시 35분 '광치터널' 위에서 도솔지맥 마루금을 밟기 시작합니다 [광치터널 위 첫번째 헬기장] 이동통신탑에서 조금 가면 광치터널 위에 헬기장이 있으며, 앞으로 가야할 산봉우리들이 나타납니다. [林道 - 마루금] '도솔지맥2구간'은 거의 대부분이 "林道'로 걷기에 매우 편했습니다. 그리고 길찾기도 매우 쉬워 알바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길찾기는 이곳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것과 세번째 헬기장이 있는 909m봉과 "두무동고개'로 내려 가는 낭떨어지만 유의하면 됩니다. [두번째 헬기장] 광치령 첫번째 헬기장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두번째 헬기장이 나옵니다 산행 시작 한시간이 넘으니 두번째 헬기장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909m봉 아래 갈림길 - 세번째 헬기장] 지도상에 '개골령'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었고 두번째 헬기장에서 몇km 정도 전진하니 세번째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이곳이 갈림길인데 유의해야 하는 곳입니다. [909m봉 아래 갈림길 - 세번째 헬기장에서 뒤 돌아 본 909m봉] 유의 해야할 곳이라 온 길을 뒤돌아 보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좌측에서 왔는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헬기장이 있는 곳으로 와야합니다. 뒤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909m봉"입니다. 여기까지가 "林道"이고, 앞으로는 희미한 마루금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헬기장에서 직진하여 숲속으로 들어 가야합니다. 이제부터는 산길을 걸어야 합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세번째 헬기장에서 907m봉 군부대까지 이런 산길입니다. 구경거리 하나 없는 '도솔지맥2구간'은 임도와 이런 숲길과 임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루금을 따라 걷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특이한 것이 없었습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숲에 포위되어 외부를 조망할수 있는 그런 곳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간혹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일 뿐.... [점심식사] 12시 45분쯤 되니 회원님들이 점심 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잡습니다 [점심식사]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겁지요 오늘 "도솔지맥2구간"을 종주하는 산객은 우리 이외에는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고목]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909m봉 헬기장에서 군부대가 있는 907m봉까지만 이런 숲속길입니다. 그리고 거리도 짧습니다. [907m봉 군부대] 외부 세계를 조망할수없는 갑갑한 숲속을 헤메이다 갑자기 하늘이 보이니 바로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군부대였습니다. [907m봉 군부대] 철조망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 군부대 안으로 개구멍 같은 비좁은 틈새로 기어 들어 갔습니다. 사실 이곳으로 들어 가면 안되는 곳이었고, 이런 불법행위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으면 철조망 옆으로 희미한 우회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 우회 길을 따라 나가면 군부대 정문이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우회로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군부대 철조망] 겁도 없는 '서울백두클럽'은 군부대 안으로 무단 침입했습니다 무단 침입하여 온 길을 뒤돌아 봤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들을 지나 이곳으로 왔는데 앞의 철조망 아랫쪽으로 우회길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아직도 철조망 밑으로 기어 들어 오는 회원이 있습니다. ㅎㅎ [907m봉 군부대] 군부대 안으로 들어 오니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모두 모여 지도를 펴고 길을 찾았는데 부대 안을 통과하지 않고는 갈수가 없더군요. 명성지맥2구간에서 탱크 사격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 마루금을 따라 가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이런건 따라 하지 마세요~~ㅎㅎ [907m봉 군부대] 각종 군시설들이 있는데 군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907m봉 군부대] 차라리 군인이 나오면 길이라도 물어보고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겠는데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아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으나, 후미에서 늦게 오는 회원들을 함께 데리고 이곳을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며 마루금을 찾았습니다 [907m봉 군부대] 지도를 펴고 독도를 하니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통과해야 하더군요. "우리나라 군대는 '우리'를 위해 존재 하는 것이니 무단 침입을 이해해 주리라"ㅎㅎ [907m봉 군부대] 앞 봉우리를 따라 내려 가니 군부대 안이었고 길은 양호하게 열려 있습니다 [907m봉 군부대] 간 큰 회원님들은 누굴 믿고 군부대 안을 유유히 걸어 내려 가시나? ㅋㅋ 하여간 대책은 없고 무작정 내려 갔습니다. [907m봉 군부대에서 바라 본 "양구"] 처음으로 "양구읍내"가 보입니다. 양구와 화천에서 군생활을 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양구와 화천은 "하늘 천평, 땅 천평"이라고 하더군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산이 높아 부대가 천평이면 하늘도 그 많큼 천평"밖에 보이지 않는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더군요. 주변 산들이 얼마나 높은지를 간접적으로 말해 줍니다. [907m봉 군부대] 도솔지맥2구간 마루금은 이 군사도로가 "두무동고개"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트렉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군부대 철조망을 밑으로 기어 들어오긴 왔는데, 나갈수가 없었습니다. 정문이 잠겨있고 주변으로는 탈출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에구~ [907m봉 군부대 정문 통과] 다행이 왕년에 군수사기관에서 직업군인생활을 하신 "홍목선생님"이 군부대 상황실로 올라가더니 열쇠를 든 군인을 한명 데리고 왔습니다. 우왝? ㅎㅎ 그리고 군부대 정문은 열렸고 우리는 탈출할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길래 문을 열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홍목선생이 "내가 누구냐?"하고 웃으시더군요. ㅎㅎ 덕분에 군부대 탈출 아까 군부대 철조망에서 우회하면 이 정문 앞으로 올수 있으니 군부대를 무단 침입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 군부대에서 '두무동고개'까지는 군사도로였습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하는 중에 휴식] 군사도로도 매우 길어 다리가 아파 도로 위에 주저 앉아 쉬기도 하며 내려왔습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 [林道 갈림길 - 두무동고개 가는 마루금] 군사도로를 따라 1시간 20분 정도 내려 오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우로 굽은 도로를 만나는데 이곳이 중요합니다. 1.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 가도 "두무동 고개"로 갈수 있습니다. 단지 상당히 돌아 내려가 다시 두무동 고개로 올라 와야합니다. 2. 여기서 직진하면 바로 "두무동 고개"입니다. 약 100m정도 단지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낭떨어지를 내려 가야 함으로 길이 나쁨니다 정식 마루금은 여기서 직진 하는 것입니다. [두무동고개 가는 마루금] 직진하여 군사도로를 벗어 나면 바로 무덤이 있는 '두무동 고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급경사 절개지를 내려 갑니다. 위험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두무동 고개] 아래로 "두무동 고개"가 보이며 우리 관광버스가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낭떨어지이니 조심해야하며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 가야합니다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회장님이 엉덩이로 낭떨어지를 내려 옵니다. ㅎㅎ [두무동 고개] 드디어 "두무동 고개"에 도착 했습니다. 4시 25분에 도착했으니 광치령에서 5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다시 "양구터널"이 있는 "작은 도라지 고개"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구간이 다소 짧은 구간이라 여기서 2구간을 끊고, 나머지를 다음 3구간에 보태기로 하며.....2구간 산행을 마쳤습니다 [두무동 고개] "두무동 고개"에는 멋진 표지석이 "斗武里"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도솔지맥3구간"은 이 표지석 뒤로 올라 갑니다. [뒷풀이] 斗武고개 위에서 '서울백두클럽'의 자랑, 뒷풀이가 시작됬습니다 삼겹살이 지글거리고, 갓 익은 김치가 두무동고개를 오염시킴니다. 이 맛은 안먹어 본 사람들은 말을 하지 마세요~ ['산깜'님과 '평원'님] 오늘 진갑을 맞으신 "산깜님"과 새로이 서울백두클럽에 합류하신 "평원님'이 한껏 업그레이드 된 기분으로 한잔 했습니다. 다시 한번 '산깜님'의 진갑을 축하 드리며, 알고 봤더니 산을 엄청 사랑하시는 "평원님"도 계속 함께 할수있기를 기대합니다 "건배~~!!" [뒷풀이] 오늘 산행으로 뺀 살을 도로 갖다 붙여야겠다고 삼겹살을 싹쓸이하시는 女山客들 [뒷풀이] 언제나 이 순간만 같아라~~!!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시는 횐님들 새로운 얼굴들도 보입니다. 앞으로도 늘 함께 하시길... [국수역] 돌아 오는 길이 너무 막혀 국수역에서 내려 중앙선 전철로 갈아 타고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도솔지맥2구간"은 경치나 구경거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행기도 부실합니다 그러나 다음 3구간부터는 아마도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좌측으로는 "소양호", 우측으로는 "파로호"가 펼쳐질테니까요. 그리고 춘천, 홍천, 인제, 양구가 모두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 "사명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3구간에서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나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도솔지맥1구간] 돌산령-도솔산-대암산-광치령 돌산령-도솔산-1304m봉 군부대-작은 용늪-큰 용늪-대암산-광치령 [도솔지맥] "도솔지맥 兜率枝脈" 요즘 우리나라 산에 흠뻑 젖어 산줄기를 찾아 다니는 열혈산객들이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를 기본으로 하면서 임의로 붙인 산줄기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토지리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름도 아니니 지도에는 없습니다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금강산과 진부령 사이의 "회전령檜田嶺"에서 분기하여 "해안산亥安山"을 거쳐 "도솔산兜率山"으로 와 "광치廣峙"를 건너 "사명산四明山" - "청평산淸平山" - 용화산龍華山(春川北百里) - "수청산水淸山" - "우두산牛頭山" - "백로주白鷺州"까지로 표기되 있습니다. "백로주白鷺州"에 대해선 "春川西七里新津韶陽江會干西南永平南十一里"라고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산경표"에 나와 있는 이름과 현재의 이름이 같은 것은 도솔산兜率山, 광치廣峙, 사명산四明山, 용화산龍華山, 우두산牛頭山입니다. "해안산亥安山"은 현재 양구군 "펀치볼"로 유명한 "해안면亥安面"이 있습니다만 山이름으로 "해안산亥安山"은 남아있지 않은데 "해안면亥安面"을 빙 둘러싸고있는 山을 의미하는듯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현대의 정확한 지도를 놓고 "山自分水嶺"원리에 입각하여 산줄기를 이어본 결과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산경표"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는걸 발견하고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금강산 위의 백두대간 "매자봉"에서 분기하여 "매봉"-"가칠봉加七峰"- "대우산大愚山"-"도솔산兜率山"-"대암산大岩山"-"광치령廣峙嶺"-"사명산四明山"-"우두산牛頭山"으로 재해석하여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 다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약120km 구간 중에 북한지방에 약40km가 있고 남쪽지방 약80km에도 대부분 휴전선 근처 '군사지역'이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워 아직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며 완주를 한 산객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이한 것은 "山經表"에는 명확히 나와있는 용화산龍華山(春川北百里)을 현대에선 빼고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요즘 산객들이 산줄기보다 산행하기 편한 "마루금"枝脈으로 편한데로 산행코스로 잡는데 있다고 느껴집니다. 분명한 것은 枝脈산줄기이므로 面積이 있고, 마루금으로 面積이 없습니다. 다시말해 '산줄기' 모두가 枝脈인 것입니다. [돌산령-도솔산-1304m봉 군부대-작은 용늪-큰 용늪-대암산-광치령 지도] 양구에서 해안면 "펀치볼"로 넘어 가는 고개인 "돌산령"에서 "도솔지맥 兜率枝脈"을 시작합니다 "돌산령"위로는 군사분계선이 있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객들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도상거리 약20km이며 실제 산행거리는 약25km인 도솔지맥1구간을 시작합니다 ["펀치볼" 주변 위성사진]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는 "도솔지맥 兜率枝脈" 1구간 "돌산령" 주변은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펀치볼 Punch Bawl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해안면 亥安面이 있고, 우리나라 해병대가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은 "도솔산전투"를 벌여 勝戰한 도솔산兜率山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고냉습지 高冷濕地대암산 "용늪"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행기의 서두에 위성사진을 편집해 이해를 도울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지역을 어느정도 감 잡을수 있겠습니까? 대답 좀 해봐요~!! 맹그느라 고생했는데...ㅎㅎ 세부사항은 산행을 하며 실제 사진과 함께 설명을 추가로 더 드림니다. [해병대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탑] 2009년 6월 13일(토) 밤 12시 양재역 서초구청 앞에서 모여 준비물 준비하고 2009년 6월 14일(일) 01시에 출발하여 새벽 3시45분에 "돌산령 해병전적비" 앞에 도착했습니다 몇시간 눈을 붙였다 땟다하다가 오전 7시경에 라면 끓여먹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날씨는 밤새 비가 내렸으며 오전에는 간간이 가랑비가 흩뿌렸습니다 [略史文] "도솔산 兜率山"은 6.25戰爭때 우리나라 海兵隊가 큰 勝戰을 한곳입니다. 海兵隊가 이곳 戰鬪에서 勝戰하여 "無敵海兵", "귀신잡는 海兵"이라는 칭호를 얻은 곳이지요. 海兵隊가 바다가 아닌 내륙지방에서 전투를 하여 "無敵海兵"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좀 이상하지요? 海兵隊는 글자 그대로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싸우는 군대이기에 이곳에도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필자인 '파란문'은 70년대 중반에 海兵隊에 入隊해 軍生活을 해서 저도 '海兵隊 出身'입니다. ㅎㅎ 당시엔 海兵隊라기 보다 犬兵隊(개병대)라고 불리웠답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기억하지요? 그래서인지 대부분 '파란문'이 해병대 출신이라면 잘 믿지 않으려합니다. 아마 느껴지는 인상이 '잔인무도한 해병대'보다는 '얌전한 민병대' 수준으로 보이는가 봅니다. ㅎㅎ 사실 저는 아주 얌전한 학구파이니까요~ 저는 해병대 훈련병 시절에 얼핏 '도솔산전투'가 있었다는 강의를 받은듯하기도 한데 고달픈 훈련병의 귀에는 가물가물한 관심없는 전설같은 이야기였을 뿐이어서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 충혼탑을 바라 보니, 어렴푸시 괜히 폼잡고 자기가 한 일인것처럼 자랑하던 선임수병들의 이야기가 기억 나기도합니다. 海兵隊가 자랑하는 3大 戰鬪가 "도솔산전투", "인천상륙작전", "월남 '짜빈퉁' 상륙작전"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쫄병들 앞에서 자랑하던 그 선임수병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해병대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탑] "도솔산전투"는 "미국 해병대 제5연대"가 공격을 했다가 실패하고 난 다음 "한국 해병대 1연대"가 美海兵隊作戰地域을 인계 받아 바로 공격하여 16일만에 勝戰한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명성을 얻은 전투인데, 해발 1,300m가 넘는 동해안 준령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심한 안개 속에서 그것도 밤중에 돌격하여 적군을 완전 섬멸하여 "귀신잡는 海兵""無敵海兵" 이라는 칭호를 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적군 3,265명을 사살하고 포로로 700여명을 잡고, 해병대는 123명이 전사했으며 부상자가 60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해병대 상륙함 LVT] '해병대 수륙양용 LVT함"은 사실 이곳과는 아무른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상륙작전 때에 사용하는 것인데 이곳에 전시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海兵隊"의 상징이 "수륙양용 LVT함"이라 해병대를 상징하기 위해 첩첩산중에도 "LVT함"을 전시해 놨는가 봅니다. 물론 "海兵隊"는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전투를 하는 軍隊입니다. 바다와 육지가 가까이 있고 가장 민감한 지역인 "西部戰線"은 "海兵隊"가 방어하고 있습니다 "西部戰線"은 김포에서 백령도까지를 주로 말합니다 저는 "西部戰線" "청룡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장승] '도솔산으로 오르는 登路는 軍作戰地域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있습니다 이곳 '해병대 충혼탑'이 있는 곳에서 도솔산을 오르는 등로에는 해병대를 충혼하는 장승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도솔산은 앞에 보이는 철문을 열고 올라 가야 합니다. [산행 출발] 해병대 충혼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도솔지맥 1구간"을 완전 점령하려고 합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보슬보슬' 내린다고하죠? 여름에는 '주룩주룩' 내린다고하고... 가을엔 부슬부슬... 6월의 초여름인데도 봄비처럼 청승스럽게 보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도솔산 들머리] 오늘 함께하는 '서울백두클럽'은 '도솔지맥1구간'을 정규코스로 완주하기 위해 관할 군부대에 공문을 보내 출입허가를 사전에 받았습니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도솔산-대암산"을 오리지날 마루금을 밟으며 종주하는 산악회는 "서울백두클럽"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돌산령(양구 팔랑리 방향)] 해병대 충혼탑에서 내려다 본 돌산령 고갯길입니다 양구군 팔랑리 방향을 촬영했습니다 [돌산령 (양구 해안면 "펀치볼" 방향)] 이 사진이 '도솔지맥'을 종주 하는 산객들에게는 의미있는 사진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줄기가 오리지날 '도솔지맥 마루금'인데, 군부대가 점령하고있어 이곳 '해병대 충혼탑'에서 도솔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저 위가 오리지날 돌산령이며, 돌산령을 넘으면 유명한 펀치볼 - 해안면입니다 [도솔산 등로] 7시 5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도솔산 중턱까지는 군사도로가 잘 나 있으며 철문을 통과하면 바로 "도솔산 兜率山"이 좌측에 보입니다. "도솔산 兜率山"은 1,147.8m 높이의 높은 산인데, "돌산령"이 해발 940m정도 되니 "돌산령"에서 약25분 정도면 오를수 있는 산이 되겠습니다. 너무 쉽지요~이~잉 [돌산령] 도솔산을 오르며 동쪽방향 "돌산령 정상"을 바라 봤습니다 북쪽에서 뻗어 내려오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돌산령" 고개가 선명하게 보이며 마루금 위에는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게 보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고 보기 어려운 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돌산령" 너머 멀리 끝에 높은 "검은 능선"이 보이십니까? 바로 "백두대간"의 "설악산"구간입니다. "공룡능선" "설악산"이 선명히 보였는데 사진에는 희미하게 나왔군요. 도솔산과 설악산 사이에 "인제, 원통"이 있지요? 그러니 도솔산에서 설악산은 매우 가깝게 있습니다 [양구군 팔랑리] 서쪽으로는 양구군이 펼쳐져 있는데 구름으로 가리워져 오리무중이군요 아래에 보이는 마을은 "팔랑리"입니다. "팔랑리"는 조사해 봤더니 "八郞里"이더군요. "팔랑리 민속마을"과 전쟁 기념관등이 있는 제법 알려진 마을입니다. "팔랑리 전설" 조선 중엽 어느 때 함경도에 살던 전주 이씨인 이학장이라고 하는 도사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방방곡곡을 두루 돌아다녔답니다. 그가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더듬어 오다가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동면 팔랑리에 이르렀답니다. 이곳 산수가 가히 자기의 뼈를 뭍을 만 한 곳이라고 생각한 그는 몇몇 친족들과 함께 여기에 터를 닦고 살게 되었던 것이라 합니다. 이 도사가 맞아들인 부인의 가슴에는 괴상하게도 유방이 네게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몹시 괴이하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 부인과 백년을 해로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에서 살았답니다. 그 뒤 아기를 가진 부인은 달이 차자 해산을 했더니 놀랍게도 네 쌍둥이씩 여덟을 계속 낳았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 부인의 유방이 네 개가 달려 있는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와 그 부인은 온갖 정성을 다해 그 팔형제를 잘 길렀고, 기골이 장대한 그들은 장성해서 모두 나란히 낭관 벼슬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이 마을을 팔랑리라고 불리우게 되어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八郞里" [도솔산 오르는 길] 도솔산 오르기는 너무 쉽지요~잉 앞에 가는 회원들이 짐을 짊어지고 오르고 있지요? 젊은 대원들이 짐을 짊어졌습니다. 오늘 대암산 정상에서 국토방위에 힘쓰고 있는 군장병들에게 전달하려는 "위문품"입니다. "도솔지맥 1구간"을 오리지날 루트로 종주하기 위해 출입신청하여 허가를 받았으니 이 기회에 "위문품"도 전달하여, 감사의 표시를 하기로 하여 "위문품"을 준비한 것입니다 "위문품" 준비보다 짊어 지고 대암산까지 오르는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헌책을 별도로 준비하여 15권을 짊어 지고 오르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자세한 위문품 내역은 대암산 군부대에 올라서 보여드림니다. [도솔산을 오르면서 뒤 돌아 본 '도솔산 등로'] 도솔산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뒤따라 오르는 회원님들의 행렬이 멋있습니다. 그리고 출입허가를 받지 않고 도솔산을 오르는 산객들은 앞의 헬기장 뒤에서 몰래 올라 오더군요. 하지만 금방 군인들에게 발각 되어 쪼껴납니다 [도솔산 오르는 길] 비교적 완만한 登路를 오릅니다 이런 등산만 하면 몇일이라도 하겠습니다. ㅎㅎ [도솔산 정상] 잠깐 오르니 벌써 "도솔산 정상"입니다. '돌산령 해병대 충혼탑'에서 약25분 정도 걸렸으니 쉽게 올랐습니다. 오늘 등산이 시시하게 모두 끝난 기분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광치령까지 걸린 시간이 9시간이었으니.... 상상만 해 보시라~휴~ [도솔산 정상에서 뒤돌아 본 '登路'] 올라와 내려다 보니 지나온 등로가 제법 그럴듯하게 멋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높은 산이 도솔지맥이 지나는 "대우산 大愚山"입니다 [海兵隊 兜率山 戰積碑] 도솔산 정상에는 "海兵隊 兜率山 戰積碑"가 크게 세워져 있습니다. 아래 돌산령에 있는 것은 전사한 해병대를 충혼하는 "위령비"이며 이것은 戰積碑입니다. [海兵隊 兜率山 地區 戰積碑] 海兵隊 兜率山 地區 戰積碑라고 쓰여있습니다 저도 이곳에 서니 海兵隊 출신임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의 명찰" "팔각모"..... 선임수병들의 피땀으로 덩달아 우쭐댑니다. 추~ㅇ 서~ㅇ [海兵隊 兜率山歌] 하늘의 우뢰소리 땅 위에 아우성 불바다 피투성이 새우기 몇밤 이 나라 해병대가 명예 걸메고 목숨 내건 싸움터 도솔산일세 오 오 도솔산 높은봉 해병대 쌓아 올린 승리의 산 오늘도 젊은 피 불길을 뿜는다 [돌산령과 "펀치볼"] 도솔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돌산령"과, "돌산령" 너머 "펀치볼"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해안면 亥安面"이 조망됩니다. 그리고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군사도로가 선명하게 나있는 북녁이 애처러웁게 잘 보이는데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좌측으로 "대우산 1178.5m"과 "가칠봉 1242.2m"이 보입니다. "가칠봉"은 加七峰으로 금강산의 한 봉우리인데 금강산의 최남단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 뒤로 희미하게 "김일성 고지"와 "금강산"이 보입니다 "펀치볼"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해안면"에 대해선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도솔산에서 바라 본 "대암산 1304m봉"] 앞으로 가야할 "대암산 大岩山 1304m봉"이 구름을 이고 솟아있습니다 저 봉우리는 대암산 정상이 아니고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대암산 1304m봉입니다 출입허가를 받지 않으면 저 봉우리를 절대 통과할수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군인이 나와 우리를 안내합니다. [도솔산 정상] "도솔산"의 "도솔"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듣기는 많이 들었어도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사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겠지요. ㅎㅎ 모르는게 당연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솔 兜率"은 외국어 이기 때문이며, 그것도 현재는 사용치 않는 인도의 옛글자 "산스크리트語"이기 때문입니다 佛經이 처음으로 쓰여진 글자이니 불교 학자들이나 아는 "산스크리트語"이기에 모르는게 당연 대암산 1304m봉을 오르며 알려 드리겠습니다 [도솔산 정상 이정표] 이곳의 이정표는 혼동을 주기에 충분하게 "대암산"이 북쪽방향으로 표기되있습니다 윗 사진에서 본 "대암산 1304m봉"을 향해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반대로 되있습니다. 물론 북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남쪽으로 틀면 되겠지만.... [뒤돌아 본 '도솔산 정상'] 도솔산 정상을 내려와 뒤돌아 봤습니다. 도솔산 정상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군요 兜率이라고는 사용하는 경우가 없고, 兜率天이라고 주로 씁니다. 兜率天 은 불교에서 욕계(欲界) 6천(六天) 가운데 제4천(第四天)을 일컷는데 인도의 옛글인 산스크리트語의 tusita를 한문으로 音譯한것이며, 한문으로 音譯된것을 다시 우리말로 音譯한것이 "도솔"이니.... 이게 뭔말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도솔산 능선] 오늘 "도솔지맥1구간"에서는 "도솔산에서 대암산"까지의 山路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환상적인 산행길이었습니다 [뒤돌아 본 '도솔산 정상'] "兜率天"은 미륵보살이 사는 하늘나라 궁전을 의미합니다 "佛國天國" 이제 이곳 "兜率山'이 어떤 의미로 이름 지어졌는지 짐작할수 있겠지요? '미륵보살'이 사는 山이라는 의미이겠지요 "미륵彌勒" "친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語 미트라(mitra)에서 파생한 마이트리야(Maitreya)를 音譯한 것으로 사랑의 동반자로서 모든 중생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보살을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홍어와 무인도"에 와야 알수 있는 것들이지요 ㅎㅎ [구름이 넘나드는 '도솔산 능선'] 東海와 인접해 있는 준령이라 날씨변화가 많았습니다. 구름이 잔뜩 몰려왔다간 다시 햇볕이 나고, 비도 오락가락했습니다. 정말 "兜率天"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도솔산 능선] 서정주선생이 쓴 詩 중에 "춘향유문"이라는 詩가 있지요. 얼핏 생각나는데... 이 싯귀중에 "도솔천'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오랜만에 이 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춘 향 유 문 - 서정주 -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도솔산 능선 이정표] 이런 모양을 한 이정표는 여기까지이고 앞으로는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산길을 가야합니다 [도솔지맥 마루금] 대암산으로 오르는 길은 구름과 안개로 도솔천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춘향유문은 춘향전 속에서 발쵀하여 詩로 표현한 유명한 서정주선생의 詩이지요 춘향가에서는 쑥대머리로서 감옥에 갖혀 한양간 이도령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이고, 춘향유문은 한양가서 소식없는 이도령을 그리워하며 遺言을 남기는 서정주 시인의 詩입니다. 모두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죄로 감옥에 갖혀, 애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와 詩입니다 [龍바위] 숲속을 헤메며 걷고있는데 숲사이로 잠깐 보이는 龍바위 못보고 지나친 분들이 대부분일겁니다. 정말 龍이 昇天하는듯하군요 대암산의 "늪" 이름이 "龍늪"인데..... [지나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아주 오래전 고교시절 국어 참고서에 나와 외웠던 것을 주섬주섬 간추려 가며 춘향유문 春香遺文을 나름대로 감상해 보겠습니다 춘향이 그처럼 많은 소릿꾼이나 시인들에 의해 美化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인간의 영원한 주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유이기도하고, 春香이라는 봄내음 풍기는 듯한 여인이 한국 여인의 절개와 미모를 대변하는듯하기도 해서이겠지요 [대암산 오르는 길] 춘향은 시대적 제약 속에 있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서보다는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화신으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춘향 유문 春香遺文"도 시대적인 특수성이 희석된 사랑의 노래입니다. 유언(遺言) 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한 여인의 독백을 통해 '저승'을 비춰 줍니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이라는 인사말은 헤어지기 싫은 현실을 파라독스로 깜짝 놀라게 합니다 '저승'이라는 詩語와 만나서, 그것이 예사로운 인사말이 아니고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하는듯 하지 않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오히려 초연할 수 있는 春香은, 저승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사랑보다 먼 '딴 나라'에 가 있다고는 생각치 않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음을...죽음의 세계조차도 그의 사랑 안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춘향의 이 도령에 대한 사랑이 생사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극대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서정주선생의 春香遺文이라는 詩는 학교때 "輪廻思想"이 근간을 이룬다고 배웠습니다. 춘향이가 죽어서 천길 땅밑에 검은 물로 흐르던 도솔천의 하늘, 즉 저승에 가더라도 결국은 도련님 곁으로 돌아 온다는 믿음.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다시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라는 끝없는 춘향의 사랑을 "輪廻思想"을 배경에 깔고 인간이 최후로 하는 遺言을 빌어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사랑 이야기"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도솔산에서 대암산까지는 정말 경치가 아름다운 코스였습니다. 경사도 완만해서 걷기에도 편했으며, 인간의 손때가 뭍지않은 깨끗한 自然이 이렇게도 잘 보존되있다는 것에 놀라며, 보존의 힘이 남북분단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뒤돌아 본 "도솔산과 도솔지맥 마루금"] 뒤 돌아 보니 지나온 "도솔산"이 가운데 검은 색깔을 띠고 그 뒤로 대우산, 가칠봉이 이어져 있습니다. [펀치볼 - 해안면] "펀치볼"로 유명한 "해안면 亥安面"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만 구름으로 이 사진이 유일한 사진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깝습니다. "해안면 亥安面" 양구군에 속해 있는 국내 유일의 "분지 盆地" 하나가 面이 된곳이랍니다 이곳은 약 4,500만년전에 우주를 날던 운석이 떨어져 커다란 盆地가 만들어 졌으며, 움푹 패인 盆地에는 물이 고여, 바다와 같은 넓은 호수를 이루었다고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海安"이었다고합니다. 지금도 亥安面을 둘러 싸고 있는 산에선 조개류와 해초류가 발견되고있다고합니다 세월이 흘러 물이 빠지고 인간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유독히 뱀이 무지무지 많아, 생활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뱀의 천적인 돼지를 키우니, 돼지가 뱀을 모두 잡아 먹어 뱀도 없어지고, 돼지도 잘 자라서 돼지의 수도 무지 늘어나 부유한 마을이 되었답니다 그후 "돼지(亥)가 마을에 평안(安)을 가져왔다"라고 亥安面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亥'는 돼지 '해'입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그리고 亥安面을 펀치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6.25때에 미군이 이곳에 왔을때에 亥安面의 모양이 "화채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고 "Punch Bowl"이라고 불렀답니다 그 이후 亥安面의 닉네임은 펀치볼이 되었답니다. "Punch Bowl"에 대해서 영어영문학과를 건성으로 다니다 나온 '파란문'이 조금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선 "Punch"는 모두 아시는 '주먹'이라는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지요? 그리고 칵테일의 일종인 "술·설탕·우유·레몬·향료를 넣어 만드는 음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로 여름철에 우리는 이 음료에 수박 참외 딸기 토마토등을 썰어 넣어 "화채"를 만들어 먹지요 그 화채 그릇이 유리나 크리스탈로 만든 평평한 넓직한 그릇이지요 그릇, 주발을 "Bowl"이라고 합니다. 스포츠 볼링 할때도 Bowling을 씁니다. 이때의 Bowl은 나무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Punch Bowl"은 영어의 합성어로서 "주발 모양의 분지(盆地)"라는 의미를 본래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이의 국립현충원의 이름도 하와이 화산 분지 안에 있어 "Punch Bowl"이라고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 휴식] "서울백두클럽" 회원님들은 한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번 쉼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었으니 1시간 25분만에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이것도 군인이 안내하러 오니 모두 멈추라는 지시를 받아서 멈춘것이지 경사가 완만하다고 그냥 자꾸 올라 가려고만 합니다 ㅎㅎ [군부대 출입 안내 군인] 드디어 "육군 원사님"이 나타났습니다. 사전에 연락을 받았다고 환영해 주었습니다. [군부대 출입 안내] 그리고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듣고 산행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금년 10월부터는 이곳을 정식으로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개방을 하면 천연자연이 졸ㅈㅣ에 쑥대밭이 되지 않을까 염려 되기도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우리가 군인의 안내를 받으며 오르는듯합니다 기분이 진짜로 兜率天을 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군부대' 오르는 길] 정상이 다가 오면 언제나 깔닥 고개는 있는 법 [뒤돌아 본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아!~ 兜率天을 오르는 기분 글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군사적전 도로] 군부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저 아래 군작전도로로 빙빙 돌아 가야합니다 [군사적전 도로] 군부대의 출입허가를 받지않으면 저 군작전도로를 걸어 우회해서 대암산을 가야하니 저 길을 걸을바에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겠지요. 아무른 의미가 없습니다 동네 뒷산을 오르는게 더 나을것입니다. 출입신청을 하면 왠만하면 허가를 해주고 안내를 해 준다고 하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대암산 1,304m봉이 다가 옵니다. 대암산 1304m봉은 민둥산이라 구경거리가 없는데 다행이 여러 형태의 안테나들이 민둥산을 그나마 품위있게 만들어 줍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대암산 1,304m봉우리는 넓은 분지를 이루고 있더군요 이 사진을 보니 육군 군대생활을 여기서 한 사람들은 감개무량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고 눈이 제일 많이 온다는 최전방 중에 한곳입니다. 여름에도 서늘해서 모기가 없기로 유명하며,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필요없는 곳이 이곳 대암산이라고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 군부대 초소] 완전무장을 하고 "철통방위"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 군부대 兵舍] 방문 기념사진 [서울백두클럽이 준비한 위문품] 이번 도솔산-대암산 산행에 출입허가를 해준 군부대에 감사도 드릴겸, 또한 이때까지 남들이 하는 위문을 T.V로 구경만 했는데 직접 위문도 하려고 회원님들이 조금씩 분담하여 조촐한 위문품을 준비했습니다. 조촐하지만 마음이 담긴 위문품이니 의미가 있길 바람니다. [위문품 전달] 서울백두클럽 회장님이 위문품을 전달합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기분이 좋지요? 저도 수동태로 살다가 모처럼 능동태로 전환하여 기쁜 일 하나 했습니다 [위문품 전달] 저의 아들 둘은 몇년전에 육군 병장으로 이미 전역했습니다 [장병들과 기념촬영] 장병 여러분!~ 건강하게 그리고 추억에 남는 군생활 하시기 바람니다 남자들의 군생활은 일평생 얘깃꺼리로 술집의 단골 안주입니다 [안내해 주신 원사님] 오늘 안내를 해주신 주임 원사님과 한컷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 나올때 연락 주시면 대포 쏘겠습니다. 대암산에서 국토방위에 전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림니다 [점심식사] 대암산 부대에서 점심식사를 손수 준비하여 저희들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짬밥' 정말 오랜만에 먹어 보았는데, '돈까스'를 준비해 주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때엔 고기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 부럽지요? 등산하고...짬밥도 얻어 먹고...ㅎㅎ [대암산 "용늪" 가는 길] 대암산 "용늪"은 군부대 兵舍 바로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군부대 안에 "용늪"이 있는 것입니다. [작은 용늪] 좌측으로 "작은 용늪"이 넓게 펼쳐집니다. [작은 용늪 안내판] 지구의 온난화와 토사의 난입으로 "용늪"은 자꾸 육지화 되어 가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하네요. 이곳 "용늪"에 대해서는 "큰용늪"에 가서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큰 용늪" 가는 길]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비한 "큰용늪" 가는 길이 다정스럽습니다. ["큰 용늪" 전망대] "큰용늪"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있어 조망하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앞에 산봉우리 끝에 조금 보이는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입니다. [큰 龍늪]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큰용늪" 가운데 나무가 없는 곳이 "늪"입니다 이 "늪"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있으며, 1,280m 高地帶에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高冷濕地"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자연생태계보존지구 "람세스"에 가입되있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군부대 초소 - 큰 용늪과 대암산 정상 입구] 이곳이 군부대 입구이기도 하며, "용늪"과 "대암산 정상" 입구이기도 합니다 "큰용늪"은 좌측 안이며 "대암산 정상"은 이길 똑 바로 갑니다 [큰 龍늪] 안내를 받으며 큰용늪으로 들어 갔습니다. [큰 龍늪] 짐작했던것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자연생태계보존지구"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큰용늪"은 하늘로 올라 가는 龍이 잠시 쉬었다 올라 가는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큰 龍늪] 이 늪은 약4,200년 전에 만들어 진것으로 조사 되었다고 하며 용늪의 바닥에는 채 썩지 않은 식물들이 쌓여 스펀지처럼 물컹한 지층을 이룬 이탄층이 발달해 있고 보통 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땅 속에 묻히게 되는데 기온이 낮고 습기가 많은 습지에서는 식물이 죽은 뒤에도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연못 같은 형태로 짙은 갈색의 층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이탄층"이라고한답니다 [큰 龍늪] 용늪에 만들어진 '이탄층'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m 깊이이며 깊은 곳은 1m 80㎝나 된다고 합니다. 용늪의 이탄층에서 꽃가루를 추출하여 분석한 결과, 용늪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4천2백년 전 쯤으로 이탄층의 밑바닥에서는 포자가, 그 뒤 1천년 동안 더 쌓인 지층에서는 신갈나무가, 그리고 2천년 정도 더 흐른 지층의 윗부분에서는 소나무 꽃가루가 발견되었다고 하는군요. 이것으로 그 시대의 자연 환경을 알수있다고 하니 이 지역 역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곳이랍니다 [대암산 정상 입구] 큰용늪을 구경하고 입구로 나와 대암산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야합니다 이 때 시간이 11시 50분 저 멀리 뒷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입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대암산 주변은 모두 "미확인 지뢰지대"입니다 그래서 길이 아닌 곳으로는 가면 책임 질수 없답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봉우리를 하나 넘어 다음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이니 쉽게 생각해선 않됩니다 [대암산 정상 오르는 암릉] 대암산은 글자 그대로 큰바위가 있는 大岩山입니다 그러니 정상 부근에는 온통 바위였습니다. [대암산 정상] 대암산 정상은 바위들로만 우뚝 서있는 뾰쪽한 봉우리입니다 [대암산 정상] 안전시설이 없어 매우 위험한 대암산 정상 [大岩山 정상] 大岩山 정상에 오르니 12시 25분이었으니 입구에서 35분 걸렸습니다. 정상석도 없고 안내판도 없습니다 높이는 1,310m [大岩山 정상] 大岩山 정상에서 설악산을 촬영하려고 했는데 구름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큰용늪, 대암산 입구] 다시 큰용늪 입구로 되돌아 오니 12시 55분이었으니 대암산을 갔다 오는데 구경하는 시간을 합쳐 1시간 5분 걸렸습니다. [큰용늪에서 廣峙嶺가는 길 지도] 지도의 맨 위 대암산 갈림길이 윗 사진입니다. 여기서 "광치령"까지는 구경꺼리 하나 없는 지루한 길입니다. 지맥 마루금이 산속에서 군사도로로 들락날락하면서 4시간 이상을 갑니다. 지긋지긋한 지루한 산행길이 시작됩니다. 행복은 여기까지이고 이제부터 고생길입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군작전도로는 광치령까지 잘 나있습니다. 마루금을 탈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이 도로를 4시간 정도 내려 가면 "광치령"입니다. 도솔지맥 마루금은 여기서 약300m 앞에 우측으로 산악회 표지기가 달린 곳으로 들어 갑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숲으로 시야가 꽉막힌 도솔지맥 마루금은 길을 잃고 알바하기 쉽습니다 매우 조심하여야 목적지까지 갈수 있습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어디가 어디인지 오로지 지도와 나침판으로만 진로를 결정하고 진행합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외부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름철 肉山 마루금을 타는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길찾기가 어렵습니다. [지나온 '도솔지맥 마루금'] 1218m봉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잠시 볼수 있었습니다 구름에 비까지 내려 외부를 조망할수 없었습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마루금이 다시 군작전로로 나와 모두 모였습니다. 일행을 놓치면 큰일 나기 때문에 바짝 바짝 붙어서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여기까지는 전부가 잘 왔습니다만 이제부터 흩어지기 시작하여 알바하는 분들이 늘어 나기 시작합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군작전도로를 조금 따라 가면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길 찾기에 자신 없으신 분들은 여기서 도로를 따라 광치령으로 갑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여기서 저는 도로를 따라 광치령으로 갑니다. 군사도로는 걷기에 편합니다만 거리가 마루금보다 훨신 더 깁니다. [廣峙嶺 舊道路 - 대암산 입구] 약 4시간을 걸어 내려 오니 "광치령 옛길"을 만나며, 이곳에서 대암산 용늪까지 12km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광치령 휴게소"를 가려면 우측 "광치령 옛길"로 가야합니다 참고로 여기까지 버스가 올라 올수 있었는데 몰라서 휴게소에 기다리라고해 많은 회원들이 여기서 휴게소 가는데 많은 알바를 하였습니다 [마루금을 약간 벗어나 군작전도로로 온 길] 붉은색 선이 마루금을 벗어나 군사도로로 걸어 온 길입니다 왠만하면 군사도로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廣峙嶺] 이동통신탑이 있는 "廣峙嶺" 에 왔습니다. 여기까지도 버스가 올라 올수 있으니 다음 2구간에는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올라 와야하겠습니다. <지도 참조> [廣峙嶺] 도솔지맥 2구간은 앞으로 직진하여 "광치터널" 위로 가야 합니다 광치령 휴게소를 가려면 우측 옛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왼쪽으로 비탈을 따라 내려 갑니다. 여기서도 휴게소 가는데 일부 회원들이 광치터널을 건너 하산하느라고 알바를 많이 하고 고생을 했더군요 [廣峙嶺 舊道路에서 휴게소로 하산하는 길] 휴게소로 내려 가는 길은 없고, 대략 알아서 내려 가야하며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廣峙嶺 舊道路에서 휴게소로 하산하는 길] 몇번 미끄럼을 엉덩이로 하며 내려 갔습니다 [廣峙嶺 뒷쪽으로 하산] 휴~ 휴게소가 나오며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廣峙嶺 터널] 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춘천가도"가 46번 국도입니다. 그 46번 국도가 춘천을 지나 이곳 광치령으로 와서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을 넘어 동해안 "고성"으로 가서 끝납니다 길이 좋아져 서울에서 여기까지 2시간이면 올수있습니다 [廣峙嶺 휴게소 앞에서 양구 방향] [뒷풀이] 오후 5시 30분에 도착하였으니, 오늘 총산행 시간은 9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총산행 거리는 약25km 휴게소 바닥에 주져앉아 라면에 쇠주 한잔 쭉 마시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 "도솔지맥 2구간"에서 다시 만나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천마지맥4구간]
        먹치고개-갑산-새재고개-적갑산-철문봉-예봉산-
        율리봉-예빈산 견우봉-직녀봉-천주교 묘역-능내리

     
     [산행 개념도]
     
     [중앙선 이촌역]
      5월24일(일)
      天摩枝脈의 마지막 구간인 제4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날씨는 약간의 안개를 빼고는 매우 좋은 날씨였습니다.
      오랜 세월 서울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내려보는 "중앙선 전철 이촌역"
      지하철 4호선과 환승하는 역으로 환승하는 거리가 짧고 편했습니다.
      이촌동은 二村洞으로 西氷庫과 東氷庫 사이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덕소역-팔당역-국수역"가는 중앙선 전철로 8시경에 환승했습니다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의 경계인 "먹치고개"]
     중앙선 "덕소역"에서 9시 30분에 출발하는 [88-3번] 시내버스를 타고
     "천마지맥 4구간" 들머리인 "먹치고개"로 갔습니다.
     [88-3번] 시내버스는 약 한시간에 한대꼴로 있으니 시간을 반드시 맞추어야합니다
     덕소역에서 먹치고개까지 약 25분 정도 걸렸습니다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의 경계인 "먹치고개"]
     지난 5월 10일(일) "천마지맥 3구간'의 날머리이기도한 "먹치고개"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 時雨里의 경계이기도 한 "먹치고개'는 
     마석에서 양수리로 바로 갈수있는 新作路입니다
     
     [먹치고개에서 바라 보는 "갑산"]
     "甲山'이 손에 잡힐듯 보입니다.
     4구간 산행은 의외로 쉬웠습니다
     지난 3구간에 저 "甲山"을 넘어 "새재고개"까지 가려고했는데, "알바"라는 복병을
     여러 대원들이 만나 이곳 "먹치고개"에서 끊었었지요.
     그런데  오늘 4구간을 이어 종주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종주 하실분들은 먹치고개에서 3구간 4구간을 끊어 종주하시기 바람니다.
     
     [먹치고개 산행 들머리]
     오늘도 "서울백두클럽" 회원님들과 함께 합니다.
     오전 10시 정각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전날까지 비가 와서 모든 自然이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갑산 오르는 길]
     귀신처럼 천마지맥 마루금을 찾아 산행을 합니다.
     제가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 - 茶山 정약용 선생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퇴계 이황선생님이시고, 닮고 싶은 인물은 茶山 정약용 선생입니다
     오늘은 "茶山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있는 팔당댐 바로 앞 능내리에서 "天摩枝脈"을 졸업합니다
     그래서 遊山을 하며 자연스럽게 茶山 정약용 선생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갑산을 오르며 뒤 돌아 본 "먹치고개"]
     甲山으로 조금 올라 뒤돌아 본 '먹치고개"
     뒤로 마치고개에서 "栢峰山'을 넘고 "수레넘이고개"를 지나, '해비치 골프장'과 "고래산"을 점령하고
     내려왔던 "천마지맥3구간"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갑산 오르는 길]
     오늘 제4구간은 거리는 제법 긴 약14km 정도입니다만, 급경사 오르막이 별루여서
     산행하기에는 "천마지맥 네개 구간" 중에서 제일 쉬운 구간인듯했습니다
     "먹치고개"에서 "갑산" 정상 오르는 길이 경사가 가장 심한 정도이니 짐작 할수 있겠나요?
     약 30분간만 된비알을 오르면 됩니다
     
     [능선 쉼터]
     '먹치고개'에서 약 30분 정도 오르면 처음으로 능선을 만나고 한숨 돌릴수있는 쉼터가
     나오는데 사실 여기까지가 제일 급경사였으니 오늘은 遊覽山行입니다.
     
     [437m봉 삼각점 갈림길]
     능선 쉼터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 가니 처음으로 '삼각점'이 있는 갈림길인 437m봉이 나오며,
     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합니다
     
     [갑산 정상 부근 쉼터]
     甲山 정상 바로 밑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오늘은 길을 잃고 헤메일 염려는 없습니다.
     甲山만 통과하면  '새재고개'부터는 대부분 이미 여러번 산행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객들이 우굴대는 유명한 '적갑산-예봉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막걸리도 한잔씩 하며 여유를 부림니다
     일반 산객들과는 차별화 되고 싶어하는 '서울백두클럽'이기에....
          
          [갑산 정상]
          甲山 정상에는 정상 표지석 대신에 기상관측대가 우뚝 솟아 있으며
          조그마한 '팻말'이 甲山의 정상임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甲山까지는 일반 산객들이 이용하지 않는다는 걸 암시합니다
          에구~ 우리같은 오지 산줄기를 따라 다니는 산꾼들이나 이런 곳을 다닙니다
               
               [갑산 정상 표지판]
                정상 표지팻말이 조금은 안스럽게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타나는 이정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만들어 설치했다고 생각되는
                멋진 이정표들이 산객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그러니 甲山은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관계 공무원이 세금을 아꼈으리라
                甲은 제일이라는 의미이기도하지요
                그러므로 甲山은 최고의 山이라는 의미인데.....여기는 좀..
     
     [갑산 정상부 갈림길]
     甲山 정상을 조금 지나면 멋진 이정표가 甲山 정상과 주변 지리 안내를 잘하고 있습니다
          
          [갑산 정상부 갈림길 이정표]
          山水甲山
     
     [헬기장]
     甲山 정상에서 '새재고개' 사이에 헬기장이 하나 있습니다
     
     [운길산]
     甲山 정상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雲吉山"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는 이 산줄기의 끝이 저기 보이는 "雲吉山"으로 나옵니다.
     백두대간과 13정맥, 그리고 수많은 기맥, 지맥, 분맥은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를 
     표준으로 해서 현대인들이 나름대로 선을 그어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론에 따르면 우리는 "雲吉山"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봉산-예빈산"을 거쳐 능내리로 가는 것은  산줄기의 끝을 찾아 가는
     일반 지맥 산객들의 임의적인 발상일 뿐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봉산-예빈산"을 거쳐 두물머리로 가는 산길이 더욱 아름다워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은 "산경표"에서  "산줄기"를 포괄적으로 산이름과 고개로 열거 해 놨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탄력적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렇게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새재고개로 하산하는 길]
     甲山에서 '새재고개'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였습니다
     
     [새재고개]
     '새재고개'가 반깁니다
     '새재고개'는 남양주시 瓦阜邑 陶谷里에서 鳥安面 時雨里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재'라는 말이 '고개'라는 말이니 그냥 "새재"라고 하던지 "새고개"로 하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
     영남지방이라는 이름을 만든 고개가 문경에 있지요?  "聞慶새재" 鳥嶺이라고도하지요
     새가 울고 넘는 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새재"도 아랫 동네의 이름이 鳥安面이니
     분명히 날아 다니는 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새재고개 이정표]
     매우 멋진 이정표가 예빈산까지 안내합니다
     한가지, 남양주시 瓦阜邑 陶谷里의 瓦阜는 瓦는 기와를 뜻하는 '와'이고,
     阜는 언덕을 뜻하는 '부'이지요?. 그리고 陶谷里의 陶谷은 陶가 질그릇 '도'이니...
     이 지역에서 기와나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가 많았던게 틀림없습니다
  
[도곡리 버스정류장 안내]                               [와부읍 도곡리 하산길]
     새재고개를 이용해 예봉산이나 운길산을 오르는 코스도 권장 할만합니다
     "중앙선 전철 덕소역"까지 마을버스가 30분 간격으로 다니고있기에
     교통이 편리합니다.
     그리고 이 코스는 MTB코스로도 유명합니다
  
[조안면 時雨里 가는 길]                                 ["갑산" 가는 길]
          
          [적갑산-예봉산 오르는 길]
           赤甲山 정상을 향해 된비알을 오르는데 거리는 짧아 간단히 오를수 있습니다
          
           [적갑산을 오르며 뒤돌아 본 "새재고개"]
           赤甲山 정상을 오르며 뒤 돌아 본 "새재고개"와 "甲山"
          
          [적갑산 오르는 길]
           '새재고개'에서 적갑산 능선까지 약15분 정도 오릅니다
     
     [운길산과 예봉산 갈림길]
     잘 알아 두어야하는 갈림길.
     예봉산에 오시는 일반 산객들은 주로 "팔당역-예봉산-철문봉-행글라이드 활공장-
     적갑산"을 거쳐 이곳으로 옵니다.
     그리고 "雲吉山"- 水鐘寺로 종주를 하는데 여기가 갈림길이니 잘 기억해 두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절하죠? ㅎㅎ
  
     [운길산과 예봉산 갈림길 이정표]                             [류시화시인의 詩]
     "雲吉山"- 水鐘寺로 가시는 분이나 "도곡리"로 하산 하실 분들은 여기서 갈라져야합니다
     이곳 이정표에는 詩가 한수씩 걸려있어 산객들에게 신선함을 더해 줍니다.
     남양주시 관계 공무원은 "遊山"을 아는 분인듯....
                   새와 나무
                                       류시화
 
                 여기 바람 한 점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무가지 하나만 움직인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 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적갑산 가는 능선]
     지난 해에 왔을 때만 해도 이 산길은 울퉁불퉁 사람들의 흔적이 별루였습니다
     "중앙선 전철" 개통으로 "예봉산-운길산" 종주 코스가 각광을 받으며
     수많은 산객들이 찾아와 이렇게 산길이 고속도로가 되었군요
     
     [적갑산 가는 능선에서 바라 본 "운길산"]
     "雲吉山"이 이젠 앞 얼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 등장하는 산이름입니다.
      그리고 "雲吉山"에는 "水鐘寺"라고 하는 유명한 절이 있지요
      수양대군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했다는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는 평생 피부병에 시달렸지요. 우리도 어렸을 때에 종기가 많이 났었는데 요즘은
      종기 나는 얘들을 보기 쉽지 않습니다.
      하여튼 '세조"는 피부병 치료를 위해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 갔다가 돌아 오며
      이곳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쇠북소리가 들려와 어디인지 찾아 올라 갑니다.
      그곳을 찾아 가니 동굴 속에서 "물망울 떨어 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 조그만 절간이 하나 있어 "세조"가 신기하고 경치도 좋아 절간을 중창해 주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쇠북 소리같다하여 "水鐘寺"라 했다고하는 유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茶山 정약용선생이 쓴 "遊水鐘寺記"도 매우 유명합니다
     
     [적갑산 가는 능선]
     능선길이기에 편안한 산책길입니다.
     요즈음 수많은 산객들이 예봉산-적갑산-운길산으로 찾아 오는 이유는
     중앙선 전철 개통으로 편리한 교통 접근성과 이런 편한 산행길 때문일 것입니다
     
     [적갑산 정상]
     赤甲山 정상은  능선길에서 조금 높은 곳에 있어 힘들지 않게 오릅니다
     길을 가다 불숙 나타나는게 赤甲山 정상입니다
     
     [적갑산 정상]
     "적갑산'의 유래는 절터가 있어서 예로부터 적골(절골의 변음)이라 했던 곳이며 
     절골산-적골산 이었는데 일제시대에 이런 유래를 모르고 적갑산으로 기록한 것이 
     현재까지 전해진다고 합니다. 남양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인용했습니다
               
               [적갑산 정상석]
                지난해에는 없던 정상석이 새로이 설치 되었군요
     
     [적갑산 정상에서 패라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
      가족끼리 함께하는 산행지로 추천 드리며, 회사 행사로 하는 산행에도 좋은 코스입니다
     
     [점심식사]
      적갑산을 조금 지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겁지요
     
     [적갑산에서 패라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
     적갑산에서 패라글라이딩 활공장까지는 매우 가깝습니다
     
     [패라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에 바라 본 "雲吉山"]
     雲吉山은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는 구름이 많아 구름도 쉬어 가는 吉地'라고 지어진 이름이라는군요
     그리고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의 절경을 가진 水鐘寺.
     그리고 水鐘寺에서 바라 보는 "두물머리'라고 합니다.
     운길산 앞으로 흐르는 북한강이 보이시죠? 가운데 마을이 조안면 진중리입니다
     <수종사중수기>에는 雲吉山으로 나오고, 또한 여암 신경중선생의 산경표에도 雲吉山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보다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에는 "鳥谷山"이라고 적혀있답니다
      水鐘寺까지 승용차가 올라 갈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 코스로 이용하더군요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적갑산에서 조금 가면 "패라글라이딩 활공장"이 나옵니다
     이 활공장은 남양주시 공식 활공장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차와 술을 파는 허름한 카페가 있습니다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제가 도착하는 순간에 한사람이 패라글라딩을 타고 막 떠났습니다
      저는 아직 경험이 없어 모르지만, 아마도 창공을 나는 기분은 타본 사람들이나 알겠죠
      "안 타봤으면 말들을 하지 마~"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다음 사람이 활공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지켜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두명이 동시에 타는 것이라 크기가 엄청나더군요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혼자서는 도저히 탈수 없고 여러 사람이 도와 주어야 하늘로 날라 오를수 있더군요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날개를 펼치고 맞바람이 불어 올때에 힘차게 낭떨어지로 뛰어 내리더군요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보다 훨신 더 높은 예봉산의 철문봉에서 낭떨어지로 뛰어 내릴수 있는 
     분들만 하늘을 날수 있겠습니다. 저는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구경이나 하렵니다. ㅎㅎ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창공을 가르고 날라 갑니다.
     구경하기에는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페라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바라 본 "한강"]
     패라글라이딩이 한점이 되는 창공 속으로 날아 갈때 이젠  한강이 시야에 들어 옵니다
     한강 건너편 '하남시'가 펼쳐집니다
     
     [喆文峰]
     패라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또 조금 가면 "철문봉'이 나옵니다.
     '철문봉'은 조그만 봉우리이지만 무척 유명한 봉우리입니다
     그 이유는....
  
     [이정표]                                                    [산행 안내도]
     茶山 정약용선생과 그의 형제들 , 둘째 형인 정약전과 셋째 형인 정약종이 어린 시절에
     건강 단련을 위해 자주 오르던 봉우리입니다
     정약용선생은 이후에도 전국의 많은 산을 遊山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遊山記를 남기셨습니다
               
               [철문봉 내력]
               정약용 삼형제가 자택인 능내리에서 여기까지 왕복하려면 5시간 이상이 걸렸겠지요
               이곳에 와서 학문(文)의 道를 밝혔다(喆)고 하여 이 봉우리의 이름을
               "喆文峰"이라고 하였답니다
     
     [철문봉과 예봉산 사이의 헬기장]
     茶山 정약용선생은 1762년에 이곳 능내리 마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진주부사라는 관직까지 한 정재원이라는 분이며, 본부인은 정약현을 낳고  일찍 죽어
     세칸드인 海南 尹氏에게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그리고 누이 까지 네명이 태어 납니다.
     물론 다른 여러 형제가 있으나 모두 일찍 죽었습니다.
     어머니 海南 尹氏는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 윤선도"의 6세손이고,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詩·書에 두루 능했던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입니다.
     이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정약용선생은 어려서 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살때에 선생의 최초의 漢詩인 "山"이라는 詩를 지었으니 천재임을 입증해 줍니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네'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검단산" "고추봉" "용마산"]
     '한남정맥"의 석성산에서 분기하여 뻗어 나오는 "검단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인
     "검단산"이 한강 건너에 선명히 보입니다. 그 뒤로 "고추봉"과 "용마산"이 맥을 잇고...
     "은고개"를 지나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으로 검단지맥은 이어져있습니다.
     저는 "검단지맥"을 이미 종주한바 있습니다
     
     [예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다산 정약용선생이 10세 이전에 지은 詩文을 모은 『삼미자집(三眉子集)이 있다고하니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三眉"라는 말은 "眉"가 눈섶이라는 뜻이죠. 눈섶이 세개라는 의미이니,
     정약용선생은 자신을 "三眉子"라고도 했던 것입니다. '눈섶이 세개인 놈"이라는 말이지요
     정약용선생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눈섶 사이에 흉터가 생겨 눈섶이 떨어져 
     눈섶이 세개로 보여 해학적으로 스스로를 "三眉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정약용선생은 곰보 였던 모양입니다. 옛날엔 곰보가 많았지요?
     
     [예봉산 정상]
     예봉산 정상이 하늘을 열고 나타납니다.
     遊山을 엄청나게 좋아한 茶山 정약용선생
     산 오르는 것을 매우 좋아한 다산 정약용선생도 당시로서는 대단한 장수를 하셨죠. 
     칠십오세까지 사셨으니.....
     우리 역사 속에서 높은 관직에 오르고 좋은 역사적 평가를 받으시는 분들은 
     거의 모두 등산을 하셨습니다. 등산을 않하면 출세가 의미 없는거죠? 
     밑빠진 독에 물 부어 봤자..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거죠
     정조대왕의 가정교사였고 영의정을 지낸  번암 채제공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다산 정약용선생인데 당시 여러 직위를 맡으시고 영의정까지 하신 번암 채제공 선생의 
     관악산 산행기인 "遊冠岳山記"는 무지 무지 유명합니다. 저의 관악산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당시 예순일곱살에 관악산을 종주 했기에 더 유명한것입니다.
     최고령으로 여든넷에 관악산을 종주 하신분이 숙종 때에 서인의 수괴 송시열과 쌍벽을 이루던  
     남인의 총수 허목 선생이죠. 퇴계선생보다도 더 등산을 좋아하셨습니다
     채제공 선생이 존경한 분이 바로 허목 선생이고 허목 선생이 존경한 분이 퇴계 이황선생이지요
     이 분들 모두 등산을 엄청나게 좋아 해서 방통 황희 선생이 팔순까지 사시고, 
     퇴계 이황선생이 칠순, 미수 허목 선생이 여든일곱, 번암 채제공선생이 팔순까지 사셨으니 
     당시로는 대단한 장수이지요. 관직은 지금의 국무총리인 영의정까지 모두 하신 분들이지요
     정약용 선생은 학문적으로 성호 이익선생을 스승으로 하며,
     정치적으로는 번암 채제공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예봉산 정상]
           태극기가 휘날리는 禮峰山 정상
     
     [예봉산 정상]
     150여년전에는 정약용 형제들만이 이 산을 오르내리며 풍운의 꿈을 키웠으리...
     지금은 많은 산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예봉산 정상석]
          이 정상석도 지난해 까지는 없던 것입니다
     지난해 예봉산 산행기에 이미 언급했던 얘기 다시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를 자주 만나는 분들은 저의 주장을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듣고 상당 부분 공감하는 게 있는데..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의 이름을 '정약용 국제 공항'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 최고의 만물박사 -미술, 음악, 건축, 의학, 과학,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르네상스시대 당시 세계 최고라 할수 있는 사람 - 레오나르드 다빈치 -
     이 사람에 대해선 더이상 설명 할 필요가 없지요? 
     정약용선생이 이테리의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견줄수있는 세계 유일의 인물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테리의 수도인 로마의 국제공항 이름이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이기 때문에
     우리도 편협한 지역 지명으로 공항 이름을 지을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 '정약용 국제공항'이나 '세종 국제공항'등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뉴욕의 국제 공항은 '존 에프 케네디 공항',  파리는 '드골 공항',  런던은 '히드로 공항', 
     이미 말했듯이 로마는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입니다. 모두 지역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동양 쪽에서나 지역 지명을 붙입니다.
     '인천 국제 공항'은 사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항인데도 인천 지역적 이미지가 짙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에겐....
     
     [예봉산 정상에서 북쪽방향의 雲吉山]
     우측 앞이 '운길산'이며 좌측 이 지나온 '甲山'이며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이 '고래산'
     그 뒤로 '축령산'등이 어렴푸시 보입니다.
     
     [예봉산 정상에서 동쪽방향의 한강의 "두물머리"]
     예봉산의 眞價는 이곳에서 "두물머리"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北漢江과 南漢江이 만나는 곳 - 두물머리 兩水里
     이곳에 다시 서게되면 꼭 이 詩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 "박후자 詩人"의 "두물머리에서"라는 詩인데
     <문예한국>을 통해 등단한 "박후자 詩人"은 <이대문인회>,<한국시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그림자를 세워 집을 짓는다"등이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편집한 것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두물머리에서  
                       박후자  
     만남의 절창이다
     물속으로 숲과 구름이 만나고
     파란 하늘의 풍금 소리
     고요한 오후와 만난다
     강물 일렁이는 슬픔
     햇볕이 다독이는 강변에
     물방개 발자국 따라 퍼져가는 동심원
     파장이 크다
     저기 떠내려온 붉은 잎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동심원에 갇혀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다가
     물결 따라 떠내려가는
     이별의 선창가다

[예봉산 정상에서 남서쪽방향의 팔당과 한강 건너 하남시] 박후자 시인의 "두물머리"에서"라는 詩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詩라고 여겨집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것을 '만남의 절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絶唱'이라는 한자이리라~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꼭 제가 살아온 인생길을 말해주는듯.... 여기 두물머리에서 지나온 세월을 한번쯤 추억하고 떠나는 이별의 선창가 - 두물머리 [예봉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동남쪽의 "예빈산"] "천마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앞으로 가야할 "예빈산'이 보입니다 '예빈산"에서 바라보는 "팔당호"와 "두물머리"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앞으로 "두물머리'는 계속 보여 드림니다 [예봉산에서 하산] 정약용선생이 일곱살에 지었다는 漢詩 "산"에 대해 느낌을 조금더 피력해 보렵니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네' 엄청 철학적인 詩를 일곱살에 지었습니다. 해석은 제 마음대로이니 믿거나 말거나...ㅎㅎ 가까이 있는 작은 산 때문에 멀리 있는 큰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그가 작은 산 뒤에 있는 큰 산을 보고 있다는 뜻이라 여겨집니다. 직관력(直觀力)입니다. 평범한 저같은 인간은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작은것 때문에 더 큰것을 보지 못합니다 더 큰것을 놔두고 좁은 생각으로 작은 것을 탐하며 살지는 않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산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그것은 내면화 된 정신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 바둑으로 따지자면 9단의 수읽기 경지에 도달한듯한 詩라 생각 됩니다 일곱살에 이런 직관력(直觀力)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천재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너무 칭찬하는건가요? ㅎㅎ 제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분이니 이해해 주세요 [예봉산에서 율리봉 가는 길] 다산 정약용선생이 집필한 책은 750권이 넘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것들은 '목민심서","흠흠심서","경세유표"등등이 유명하지요 기억나는 "목민심서" 중에 한구절 - 돈 쓸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한다 절약만 하고 쓸 줄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할 것이니, 덕을 심는 근본은 선심쓰기를 즐기는 데 있는 것이다. 가난한 친구나 곤궁한 친족들은 제 힘을 헤아려 두루 돌보아 주도록 하라. 제 집 광에 남아도는 물건이 있거든 남에게 주어도 좋거니와 공유 재산으로 몰래 남의 사정을 돌보아주는 것은 예가 아니다. 또한 권문세도가를 지나치게 후히 대우해서는 안 된다. 정약용선생은 검소함과 절제를 강조하면서도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도와주는 것을 즐기라고 가르칩니다. 여유가 없을 때에도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라는 말에 담긴 뜻이 깊게 느껴 집니다 [예봉산과 율리봉 사이의 안부 - 팔당역 코스] 다산 정약용선생이 재물에 대해서 언급한 글들을 추려보겠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1810년 9월 유배지에서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재물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구절이 눈에 띕니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게 재물이니, 메기같은 물고기라고나 할까?" [이정표] [율리봉 오르는 길] 1816년 5월 큰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저울, 다른 하나는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 이 두 개의 저울에서 네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최상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최하는 그른 것을 추구하다 해를 입는 것이다" [율리봉 정상] 자식에게 유산 遺産을 남겨 주는데 현금이나 부동산등을 남겨 주지 않고 "글자"를 遺産으로 남겨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마도 정약용선생 뿐일것입니다 그 유명한 정약용선생의 遺産 전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논밭을 너희들에게 남겨 줄 만한 벼슬을 못했으니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을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이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부지런함과 검소함,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이나 기름진 토지보다 나은 것이니 평생을 두고 필요한 곳에 쓴다 할지라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근(勤)’부지런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 때까지 미루지 말라.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늦추어서는 안된다. 집안 식구들이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한순간도 게으름이 없는 것을 부지런함이라 한다. 또 ‘검(儉)’검소함이란 무엇인가.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이 옷을 먼 훗날까지 입을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 가는 베로 만들면 머지않아 해어지고 말테니 질박한 천으로 만들어 입으라. 음식도 목숨을 이어가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거라.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탐하면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모할 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조건을 극복하는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여유있는 가정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다. 그러니 가슴깊이 새겨 두라고 거듭 당부한다." 여러분들도 혹시 아시려는지.... 정약용선생은 정학유와 정학연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며, 이 아들이 아버님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후에 조선시대의 大學者가 되지요? [율리봉 정상] 장약용선생의 아들 "정학유 丁學游"는 그 유명한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를 지었지요 "農家月令歌"에 대해 잠깐 공부좀 할까요? 農家月令歌는 긴 노랫말입니다. 장편가사라 하지요 시골의 농부들이 농사 지을 때 잊어버리지 않도록 쉽게 노래로 만들어 보급한 것인데 "24절기"에 농부들이 절기에 맞춰 시기를 놓치지 않고 농사를 짓도록한 노랫말입니다. 다시말하자면, 1년을 12달로 차례대로 맞추어 나가며 농가에서 할 일을 읊은 노래로 농가의 행사를 월별로 나누어 그 달의 자연, 기후 상태와 관련 지어 농촌 풍속과 농사짓는 모습을 노래하였으며, 생활에 교훈이 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율리봉 정상]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전사한 이곳 출신 정화성 선사가 지은 "강역산유기"에서 "율리봉"은 栗里峰으로 밤나무가 많아 붙여진 산봉우리이라 합니다 [예빈산 가는 길] [율리고개 가는 길에서 올려다 본 "예빈산의 직녀봉"] "天摩枝脈"의 마지막 산인 "예빈산"이 보입니다. "예빈산"은 큰 봉우리 두개가 있는데 "직녀봉"과 "견우봉"입니다 [율리고개 가는 길] [율리고개 가는 길에서 보이는 "두물머리"] 아!~~ 두물머리 금강산에서 흘러 흘러 오는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검용소'에서 발원하여 흘러 흘러 오는 남한강이 다시 바다로 손잡고 나가기 위해 모이는 곳 - 두물머리 [율리고개 가는 길] [율리고개] [율리고개] "율리고개"에서 오른쪽으로 '중앙선 팔당역"으로 하산 할수 있으며, 왼쪽으로 내려가면 '중앙선 운길산역'으로 갈수 있습니다. '팔당역'이 훨신 가깝습니다 [이정표] [정약용선생이 쓴 詩] 이정표에 정약용선생이 쓴 詩팻말이 보이니 정약용선생의 생가가 가까워 오는듯합니다 "소내 집에 돌아 오다"라는 詩인데 이 詩에 대해서는 원문과 내력을 알려드리겠습니다 還苕川居라는 詩인데 우선 원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還苕川居 소천(苕川)집에 돌아 오다 茶山 다산 정약용 忽已到鄕里 갑자기 고향 마을에 이르고 보니 門前春水 문 앞에선 봄물이 흐르고 있네 欣然臨藥塢 기쁜 듯 약초밭에 다다라 보니 依舊見漁舟 예전처럼 고깃배 눈에 보여라 花煖林廬靜 꽃들이 어우러져 산집은 고요하고 松垂野徑幽 솔가지 늘어진 들길은 그윽하다 南遊數千里 남녘 땅 수천 리를 노닐었으나 何處得玆丘 어디메서 이런 언덕 찾아보리요 [예빈산의 직녀봉 오르는 길] 還苕川居는 정약용선생이 16세에 아버지가 전라도 화순현의 현감으로 부임하여 아내와 함께 형님들을 모시고 임지에 따라가 지내다가, 과거공부를 하라는 아버지 명령으로 18세의 봄에 고향 마을에 도착하여 지은 시입니다 "苕川"은 이곳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정약용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의 옛 이름입니다. 苕川 소천으로 읽어야하나, "川"이 "내"라는 우리말로 바껴 "소내"라고 한답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오르는 길] 경사가 제법있는 된비알을 오릅니다 고향은 언제나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언제나 자고 먹으며 살아가는 고향집도 아늑하고 따뜻함을 느끼지 않을 때가 없건만, 오랫동안 객지에서 노닐다가 돌아온 고향집은 더욱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안락의 거처입니다. 경기도 광주군의 소내(苕川)는 지금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로 호칭되는 곳인데, 바로 이곳이 다산 정약용선생이 태어나서 자라고 학문을 익히며 화목하게 가족들과 생활했던 고향집이 있는 곳입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예빈산의 정상인 "직녀봉"이 나타납니다 정약용선생이 15세에 서울의 회현동 홍씨집안으로 장가들어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고,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는 당대의 신진사류들과 교제하면서 청운의 뜻을 키우던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벼슬살이와 귀양살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월을 보냈던 곳이 바로 고향 마을 "소내"에 있는‘여유당’이라는 선생의 집이었습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 "天摩枝脈"의 마루금을 이곳에서 능내리 '다산 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연결짖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직녀봉'에서 좌측 급경사 내리막길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곳 '직녀봉'에서 '견우봉'으로 가 '천주교 묘역'으로 가는 큰 산줄기가 "天摩枝脈"의 마루금이라 확신하고, "天摩枝脈"은 "팔당댐" 바로 위에서 한강 속으로 잠긴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해석이 제각각인 이유는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자세한 안내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마지막 산이 "雲吉山"이라고 표기 해 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던 "天摩枝脈"의 마루금을 벗어 나는 것은 아니기에 어느쪽으로 가던 상관없다는 생각입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 '직녀봉' 정상은 제법 넓은 공터가 있군요. 그 옛날, 아니 그렇게 옛날도 아닌 150여년전에 세계 최고의 천재 정약용선생이 웅지와 기상을 일깨우던 곳에 서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특히 저는 정약용선생을 '레오나드 다빈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기에...... [직녀봉의 내력] 예빈산은 건너편 검단산등과 함께 한성백제 시대에 영토를 수비하던 "와오성" 산이었고 조선조에는 나라굿 기우제를 지내던 명산이라고 합니다. 정약용선생 형제들과 정화성선사, 몽양 여운형선생등의 얘기들이 전해 온다고 하는군요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서쪽방향 "팔당대교"]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쪽방향의 지나온 "예봉산"] 지나온 "天摩枝脈"의 산줄기 - 뒤돌아 보니 그 동안 4구간으로 나눠 진행한 天摩枝脈이 다시 그립기 까지 하군요 天摩枝脈도 서서히 한강물속으로 잠기려 합니다.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 백봉산 고래산 갑산 적갑산...그리고 예봉산이 그립군요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쪽방향의 "검단산-고추봉-용마산"] 하남시와 서울의 강남, 강동구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검단산"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뒤로 '고추봉'과 '龍馬山'이 "나도 산이니 많이 오시라~!"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저의 산행기 "검단산-고추봉-용마산 산행기"를 찾아 읽어 보시면, 산행에 도움이....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방향의 "天摩山"] '예빈산의 직녀봉'에서는 天摩枝脈의 대표산인 "天摩山"이 아련히 보입니다. 좌측 앞이 "운길산"이며, 天摩枝脈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방향의 "天摩山"- 줌인한 사진] 그래서 "天摩山"을 줌인합니다 줌인하니 "天摩山" 뒤로 "鐵馬山"도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남쪽방향 가야할 예빈산의 "견우봉"] 정약용 형제가 웅지를 불태우며 오르 내렸던 산줄기가 능내리까지 뻗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견우봉"입니다. 견우봉을 지나는 이 산줄기가 天摩枝脈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예빈산의 "견우봉" 정상] '견우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고 이정표와 돌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예빈산의 "견우봉" 정상에서 하산] 견우 직녀(牽牛織女)는 중국, 한국, 일본에 전해지는 전설이지요? 한국에서는 견우직녀(牽牛織女)의 전설로, 중국은 우랑직녀(牛郎織女)의 이야기로 내용은 각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여름의 별자리인 견우, 직녀와 관련이 있지요. 한국의 칠월칠석과 일본의 타나바타(七夕) 등의 풍습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예빈산의 "견우봉"에서 보이는 "八堂湖"] 견우 직녀(牽牛織女) 이야기의 내용은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견우와 베를 짜 옷을 짓는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七月七夕)에만 까마귀와 까치가 놓아 준 오작교 위에서 만난다는 이야기이지요. "오작교"는 한자로 "烏鵲橋"로 씁니다.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 [예빈산의 "견우봉"에서 보이는 "두물머리"] 두물머리는 일반명사이기에 전국 곳곳에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은 모두 두물머리이지요 세 물줄기가 만나면 세물머리가 되는 샘이니까... 유관순 누나가 만세운동을 펼친 곳이 "아우내 장터"이지요? "아우내"도 "병천"의 순 우리말입니다. 정선의 '아우라지'와 비슷한 말이지요 '열수洌水',양수兩水, 병천竝川, 두물머리, 아우내, 아우라지..등등이 거의 비슷한 말입니다 [예빈산의 "견우봉"에서 보이는 능내리 "정약용선생 생가"] 茶山 정약용선생의 생가와 기념관, 그리고 묘소가 양수대교 옆 팔당호로 툭 튀어 나온 저곳 능내리 마재 마을에 제법 규모가 크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茶山 정약용선생을 떠올리면 전남 강진의 草堂을 생각합니다. 그곳이 곧 茶山 정약용선생의 本家같은 느낌을 받습니다만,그곳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유배지였습니다. 그곳에서 18년간이라는 유배 생활을 하며 외롭게 지냈는데 왜 그토록 그곳이 더 각광 받을까요? 사실은 이곳 능내리 마재 마을이 本家이며 生家이니 이곳이 더 각광 받아야 당연한데도.... 전라남도와 강진군의 공무원들이 업무를 잘해서일까요? 아마도 그곳이 각광 받는 이유는 그곳에서 정약용이라는 실학자가 일생의 최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겠죠. 500여권이 넘는 책을 그곳에서 집필하였고 사연도 많았기 때문일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은 정약용선생의 호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정약용선생의 호는 사암(俟菴)이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인데 '겨울 내를 건너고 이웃이 두렵다는 의미'를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사암(俟菴)은 정약용선생이 가장 좋아한 호였다고 합니다. 사암은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 즉 "뒷날의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함이 없다."라는 기다림의 의미가 있고, 뒷날의 성인에게도 학문적 질책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배어있는 가장 선생다운 호라는 것입니다 사암(俟菴) 정약용이라 불러야하는데..... [八堂湖] 여유당(與猶堂)은 뭔 여유있게 사색을 즐기려고 지은게 아니고, 선생의 불우했던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선생은 요즘 말로 하자면 사상범이었습니다. 천주교를 접했다는 이유 하나입니다. 그 이유로 유배생활 18년... 물론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한 진보 개혁파가 정조대왕의 의문의 죽음으로 보수 수구세력인 서인 벽파들로부터 처참한 정치보복을 당한 것이지만... 그로인해 조선왕조는 세도정치로 멸망의 길로 접어 들기 시작하지만.... "與猶"의 與는 머뭇거릴 '여'이며, 猶는 망서릴 '유'로 즉 망설이기를 사방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듯이 조심하면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랍니다 선생의 호로 茶山이 많이 쓰이는건 전남 강진의 유배지 뒷산이 조그마한 '茶山'이라는 地名이어서 茶山에 사는 정약용을 나타낼때 쓰셨는데 이것이 후세에 그냥 '호'로 자리 메김하고 말았습니다. 선생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여기 本家에 왔을 때는 "洌水" 정약용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엔 이곳 '두물머리'를 '洌水 열수'라고 했기에 '洌水 열수'에 사는 정약용을 나타 낼때 사용했는데 그의 자서전에는 '洌水 열수' 정약용이 쓰다...라고 되 있습니다. 이렇듯 정약용선생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후세엔 모두 "茶山" 정약용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八堂댐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예빈산의 견우봉 하산]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 마지막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두물머리"] 정약용선생의 가족 사랑은 끝이 없었습니다 18년간의 유배생활 유배지에서 그리워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 표현은 극치를 이룹니다 如夢令寄內이라는 사랑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如夢令寄內 - 꿈속에서 본 아내에게 하룻밤 사이에 지는 꽃이 헤아릴수 없는데 산비둘기와 어미제비가 지붕을 맴도네. 외로운 나그네 돌아간다 말 못하니 언제나 침실에서 아름다운 인연 맺을까나. 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 슬프고 서글픈 표정의 꿈속에서 본 아내 얼굴을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雲吉山"과 北漢江] 정약용선생은 75세까지 사셨는데 당시로서는 대단히 장수 한것입니다 그리고 15살에 결혼해서 결혼 60주년까지 사시는데 이런 것을 회혼 回巹이라고 하지요? 부부가 함께 결혼60주년까지 살아야 하니 매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런데 불행이도 회혼례 回巹禮를 올리려는 날 아침에 돌아 가십니다. 정약용선생은 돌아 가시기 전에 回巹詩를 남겼습니다 또 친절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ㅎㅎ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완벽한 "두물머리"] 回巹詩 六十風輪轉眼翩 穠桃春色似新婚 生離死別催人老 戚短歡長感主恩 此夜蘭詞聲更好 舊時霞帔墨猶痕 剖而復合眞吾象 留取雙瓢付子孫 회혼시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갔는데도 짙은 복사꽃, 봄 정취는 신혼 때 같구려. 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사람 늙기를 재촉하지만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이 밤 〈목란사〉 소리 더욱 좋고 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은 아직도 남아 있소. 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니 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 줍시다 [두물머리] '칼의 노래' 김훈 작가 아시죠? 저의 고등학교, 대학 4년 선배되시고 일산에서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라고 해도 이의를 다는 분은 없을것입니다 그의 저서 '자전거 여행'에서 여기 "두물머리"를 노래한것이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종사 마당에서 산하는 크게 열린다. 산하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굽이치며 다가와 다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흘러나간다. 내륙의 산악과 평야를 파행으로 흘러 온 남한강과 북한강이 눈 아래서 합쳐지고, 거기까지 강을 따라온 산맥들이 다시 여러갈래로 모이고 흩어져 하구를 향하는 대오를 갖춘다. 어디서부터 몰려오는 것인지, 산맥들의 대오는 푸르고 강성해서 하늘 밑을 가득 출렁대는데, 그 푸른 기세의 먼 변방으로 낮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품어서 자애롭다." [천주교 묘역] '열수'강은 '열수'마을을 3면으로 휘감고 크게 굽이치면서 돌아나간다. 그 강 건너편 광주시 퇴촌면 앵자산 밑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의 선각자들인 이벽(1754~1786), 권철신(1736~1801), 권일신(1751~1791), 이승훈(1756~1801), 정약종(1750~1801)이 묻혀있다. 그들은 모두 총명하고 반듯했던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의 젊은 날은 서학을 통해서 새롭게 열리는 세계와 미래의 모습으로 설레었다. 그들은 평등과 보편의 신세계를 향해 개안했다. 그들의 청춘은 찬란하고 치열했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이단과 대역을 다스리는 형장에 으깨져 죽었거나 망나니의 칼에 베어졌고 그 사체는 거리에 버려졌다. *'열수'는 설명드린데로 "洌水"로 이곳 한강 두물머리를 옛날에는 '열수 洌水'라고 했답니다 [천주교 묘역] 강물이 합쳐져서 앞으로 향하는 그 두물머리 남쪽 깊은 산속의 작은 암자에서 전환하려는 꿈과 전환되지 못하는 세계의 참극은 비롯되었다. 수종사 마당에서 합쳐지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정다산의 고향과 강 건너 퇴촌면 천진암 언저리가 한눈에 보인다. 강물에 실려오는 전환과 신생의 꿈이 아직도 그 양쪽 유적지 사이를 흐른다. 합치고, 굽이쳐서 기어이 바다로 나아간다." [천주교 묘역] [천주교 묘역 정문] [봉안대교 아래 산행 날머리- 45번 국도] [매운탕집 "오성회관"] [오성회관 안 계곡에서 알탕] [뒷풀이] 山行을 하며 苦樂을 함께한 "서울백두클럽" 회원들과 졸업식을 매운탕으로 자축했습니다 아무른 사고없이 전구간을 함께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림니다 [구글어스로 본 산행도] [天摩枝脈 개념도] 4월12일 "한북정맥"의 '운악산'과 '수원산' 사이의 명덕고개에서 시작한 天摩枝脈. 서파고개-鑄錦山(814m)을 지나 "금단이 고개"를 지나고, 4월18일에는 鐵馬山 北峰(780.8m)-鐵馬山 南峰(710m)-과라리 고개- 배랭이 고개- 멸도봉-天摩山(812m)-磨峙고개. 5월10일에는 柏峯山(590m)-수레넘이고개-고래산(542m)-먹치고개 그리고 오늘 5월24일에는 먹치고개에서 갑산-새재고개-적갑산-철문봉-예봉산- 율리봉-예빈산 견우봉-직녀봉-천주교 묘역-능내리까지 산행했습니다 총산행 거리는 약 65km 천마지맥 마루금은 53.9km 총산행시간 약30시간 天摩枝脈을 졸업합니다. 다음부터는 "도솔지맥"을 종주할 예정입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天摩地脈3區間 마치고개-柏峯山-수레넘이고개-고래산-먹치고개 5월10일(일) 오전 8시30분 청량리역 4번출구에서 支脈山行을 좋아하는 "서울백두클럽" 회원님들과 天摩地脈3區間을 종주하기위해 길을 나섯습니다 [남양주시 호평동 구룡터 버스정류장] 청량리역앞 버스정류장에서 비금리행 [330-1]번 좌석버스를 타고 남양주시 호평주공아파트앞 "구룡터"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오전 9시 25분경 "구룡터" 정류장은 "마치터널"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이므로 여기서 내려야 산행들머리인 "마치고개"로 올라 갈수 있습니다 우측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마치고개"로 오르는 옛길이 나옵니다 [마치고개 옛길] 향수가 느껴지는 그 유명한 46번 국도 옛길 - 마석 넘어가는 마치고개.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옛길이 한산한 모습으로 산객들을 부르고있습니다 지금은 터널이 뚤리고 길이 넓혀진 새로운 국도 46번이 이 옛길 아래로 쌩쌩 달리고있어서 우리 같은 산객들이나, '비젼힐스 골프장'을 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낭만이 서려있는 "춘천가도" 마치고개를 옛날에 넘으려면 교통체증으로 고생을 했는데 이젠 걸어서 오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마치고개] "구룡터" 버스정류장에서 마치고갯마루까지는 제법 멀어 25분 정도는 걸어야합니다 옛날에 이근처에서 맷돌을 많이 만들었다고, 摩石고개라고 하는 고개입니다 남양주군 호평동에서 和道邑 마석으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마치고개 산행 들머리] "마치고개" 정상에 이정표와 함께 산행 들머리가 있습니다. 이곳부터 백봉산까지는 아주 독특하고 예쁜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되 있습니다 9시5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이정표] 모두 통일된 모양의 이정표가 예봉산, 예빈산까지 설치되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 땐 잠시 서서 한줄의 詩도 감상할수있도록 배려해 놔서 이곳 남양주시 담당 공무원은 정말 '산행'이 뭔지 아는 사람인듯합니다 [柏峯山 오르는 길] '마치고개'에서 柏峯山까지 2.3km는 제법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우리 '서울백두클럽' 선두는 약 50분이 걸려서 柏峯山 정상까지 올랐으니 속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첫번째 쉼터] 柏峯山도 肉山이어서 바위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으로 이 바위가 나오면 옷을 벗고 본격적 산행 준비를 하고 오릅니다 [첫번째 쉼터에서 조망] 첫번째 바위에서 올려다 보면 柏峯山 정상같은 봉우리가 조금 보입니다. 그러나 이 봉우리는 올라 가 보니 柏峯山 정상이 아니고, "서울 리조트 스키 슬루프"의 정상이 있는 봉우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봉우리에서 柏峯山 정상은 500m 떨어진 곳에 있으니 거의 정상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된비알] 제가 사진 찍을 줄을 몰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르막 경사는 사진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옆 계곡은 "서울 리조트 스키장"입니다 스키장에는 신록이 무러익어 가고.....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기를 기대하며 숲속을 오릅니다만 신록은 온 대지를 푸르게 만들며 날씨도 더워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호평동 주공아파트 단지] 지금 오르고 있는 능선은 "서울 리조트 스키장" 끝머리를 타고 오르는 것입니다. 뒤 돌아 보니 남양주시 "호평지구 아파트단지"가 펼쳐지고, 산행을 시작했던 "구룡터"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입니다 새로이 만들어진 46번 국도가 바쁜 사람들을 빠르게 옮겨주고 있습니다 [비젼힐스 골프장] 우측에는 "서울 리조트 스키장"이 있고 좌측에는 "비젼힐스 골프장"이 있습니다 천마지맥 산줄기는 스키장과 골프장이 양쪽에서 갈가먹어 산줄기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는데 외나무 다리 위를 걷는 느낌을 줍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신록] 일주일 사이에 나뭇잎은 엄청 넓어지고 초록색으로 변했습니다 여름이 다가 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계단] 앙상한 뼈대만 남은 외나무다리 같은 천마지맥 산줄기를 따라 가면 정상부근에 도착 했다는 느낌이 들때에 계단이 나타납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 갑니다 [서울 리조트 스키 슬루프 꼭대기]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숲사이로 돌탑이 하나 나타는데..... 백봉산 정상 같은 느낌을 줍니다만 백봉산 정상 바로 옆 스키 슬루프입니다 [서울 리조트 스키 슬루프 꼭대기] 이곳이 '서울 리조트 스키장 슬루프 꼭대기입니다 573m봉우리를 깍아 반토막 내서 스키 슬루프 정상을 만들었습니다. 깍아 반토막 낸 이 봉우리 아래에서 스키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울 리조트 스키 슬루프 꼭대기] 눈이 없는 스키장의 정상. 스키어들을 실어 나르는 리프트는 멈춰있으나, 겨울철의 스키 타는 소리가 들려 오는 듯합니다. 저도 스키 경력이 30년은 넘습니다. 비록 1년에 한두번 정도 탓습니다만, 햇수로는 30년이 넘지요...ㅎㅎ 30년동안 30번 정도 탄것 같네요..ㅎ [柏峯 가는 길] 스키장 봉우리를 지나면 이정표가 정상까지 500m 남았다고 알려줍니다 이때서야 스키장 봉우리가 柏峯山 정상이 아니란걸 알게 됩니다 [전망대 쉼터] 스키장에서 柏峯山 정상 가는 길목에 전망대 쉼터가 있습니다 "비젼힐스 골프장"인데 천마지맥 좌측에는 골프장이 펼쳐져있습니다 저도 오랜동안 골프에 미쳐서 일주일에 필드를 9번씩 나가는 적도 있었지요 물론 골프를 그만두고 등산과 수영을 한지가 벌써 7~8년됩니다 저의 산행기를 열심히 읽어보신 분들은 제가 왕년에 어떤 골퍼였는지 아시지요. 골프를 그만 둔 이유가 많이 있지만 대략 우스게 소리로 정리를 하면.... 1. 가만히 생각할 수록 정말 기도 안차는 것이 '골프'입니다. 운동같지도 않은 것이 하고 나면 즐겁기나 하나, 친구간에 우정이 돈독해 지기를 하나, 열은 열대로 받고, 시간은 시간대로 날아가고, 돈은 돈대로 들고 하니 말입니다. 2.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골프 공 한개 값이면 자장면 곱배기가 한 그릇인데 물에 빠트려도 의연한 체 허허 웃어야지... 인상쓰면 인간성 의심받기 마련이고........ 자장면 한 그릇을 물에 쏟아넣고 웃어보세요..아마 미친놈이라고 할 것입니다. [전망대 쉼터에서 바라보는 마석]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비젼힐스 골프장' 뒤로 펼쳐지는 화도읍 마석이 잘 보입니다 3. 그리고 원수 같은 골프채는 무슨 금딱지가 붙었는지 우라지게 비싸지요... 드라이버 랍시고 작대기 하나가 33인치 평면 칼라 TV 값과 맞먹고... 비밀 병기랍시고 몇 십만원짜리를 오늘 좋다고 사 놓으면 내일은 구형이라고 새로 사야지... 풀밭좀 걸었다고 드는 돈이 쌀 두가마에다가 그나마 한번 치려면 실력자를 동원해야 부킹되고.....더러워서 4. 돈몇푼 따면 곱배기로 밥 사야 하고, 돈잃으면 밥 안사주나 눈치봐야 하고, 안 맞아서 채라도 한번 집어던지면 상종못할 인간으로 찍히고, 신중하게 치면 늑장 플레이라고 욕먹고, 빨리치면 촐싹댄다고 욕먹고..... 5. 공이 잘맞으면 일 안하고 공만 쳤다고 욕먹고, 안맞으면 운동신경 없다고 욕먹고, 퍼팅이 쏙 들어가면 돈독 올랐다고 욕먹고, 못넣으면 소신없다고 욕먹고, 길면 쓸데없이 힘쓴다고 욕먹고, 짧으면 쫄았다고 욕먹고. - '해비치 골프장'에 가서 계속합니다 - [柏峯 정상에 있는 팔각정] 柏峯山 정상에 올라 왔습니다. 10시 45분경에 왔으니 마치고개에서 50분 정도 걸렸고, 구룡터에서는 1시간 20분정도 걸렸습니다 柏峯山 정상에는 2층짜리 팔각정이 우뚝 서있고, 앞에는 헬기장이 있습니다 [柏峯 정상] 柏峯山 정상에는 정상석과 태극기, 이정표가 팔각정 뒤에 서 있습니다 [柏峯 정상석] 柏峯山은 산봉우리 형체가 '잣송이' 같다고 하여 '잣봉'이라 하며, 백봉柏峯은 '잣봉'의 한자표기입니다 [柏峯 정상에서 뒤 돌아 본 천마산] 천마지맥의 대표산인 天摩山이 보입니다 [柏峯 정상에서 바라보는 앞으로 가야 할 천마지맥] 이 한장의 사진 - 오늘 산행에서 가장 소중한 사진입니다 앞으로 가야할 산들이 모두 펼쳐지고, 한강 건너 "검단산"까지 보입니다 이 사진 속의 산이름 안내는 다음 사진에서 설명합니다. 친절하지요? ㅎㅎ [柏峯 정상에서 바라보는 앞으로 가야 할 천마지맥] 앞으로 천마지맥3구간을 가실 분들은 이 사진을 잘 보아 두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바를 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베테랑이라고 알바를 않을것이라고 믿었는데, 상당수가 알바를 했습니다. 물론 저는 '수레넘이고개' 바로 앞에서만 알바를 했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대부분 좌측으로 가지 않고 똑바로 직진해서 심한 알바를 했으니 이 산행기를 보고 다음에 오실분들은 저의 산행기를 잘 메모해 가셔야하겠습니다 [柏峯 정상에서 바라보는 갑산, 예봉산, 검단산] 사진 속의 산들에 대해선 다음 사진을 참고하세요 [柏峯 정상에서 바라보는 갑산, 예봉산, 검단산] [柏峯 정상에서 휴식] 柏峯 정상에서 정상주를 한잔씩 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柏峯 정상에서 하산] 柏峯 정상에서 '수레넘이 고개'로 향합니다 지금부터 알바를 많이하는 곳이니 유의 하여야합니다 [410m봉 갈림길 - 철탑] 알바를 가장 많이 하는곳 --- 이곳입니다. 柏峯 정상에서 조금 가면 처음으로 "송전철탑"을 만나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 '큰길'로 가면 간단한데 대부분 직진합니다. 저는 직진하여 철탑이 있는 정상에서 좌측으로 능선을 탓습니다. 오리지날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좌측으로 난 길을 다시 만납니다. 알고 나면 쉬우나 모르면 전부 직진하여 1시간 이상 알바를 합니다 [갈림길 - 철탑에서 뒤 돌아 본 백봉산] 송전철탑에서 뒤돌아 보니 백봉산 정상이 숲으로 뒤덮혀있군요. 정상에서 어느 정도 거리인지 아시겠나요? [341m봉 가는 길] 한적하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341m봉을 향해 갑니다. 이 시간에 후미는 아까 철탑에서 직진하여 알바를 하고 있었으니...ㅉㅉ ㅎㅎ [341m봉] 341m봉도 중요합니다. 이곳에서도 좌측 능선을 타기 쉽습니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후미를 기다렸으나 후미는 오지않고 산속을 헤메고 있었습니다 이런 지맥을 다니는 사람들은 알바를 두려워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지요. ㅎㅎ 때론 길을 잃고 헤메였던 것들이 더 큰 추억으로 다가 오기도 합니다 알바도 엄연한 산행입니다 [갈림길] 잘 가서 '수레넘이 고개' 직전에서 우측으로 가야하는데, 좌측으로 가 저도 알바를 했습니다. 에구~ 물론 긴 거리는 아니었습니다만, 고생을 조금 더 했지요. 이곳에서 좌측으로 갔더니 和道邑 車山里가 나왔습니다 이름 모를 집으로 내려 갔습니다 지맥을 다니는 우리는 평상시에는 도저히 갈수 없는 곳을 가지요 기억나시나요? 명성지맥2구간에서 탱크 사격 훈련장으로 들어 간거....ㅎㅎ 그러니 이렇게 남의 집에 들어 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和道邑 車山里] 이 집 마당으로 내려와 집 주인에게 야단도 맞고.... 죄송하다고 싹싹 빌고..................저 고개 위로 무지 걸어야 됩니다 이럴때 사실 제일 힘들어요. 포장도로 알바 [86번 지방도 - 수레넘이 고개 오르는 길] 和道邑에서 瓦阜邑으로 엄어가는 "수레넘이고개"로 오릅니다. 길을 잃어 고생을 사서 하는거지요.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수레넘이 고개] "수레넘이"에 대해서는 "감악지맥"에서 몇번 설명하였습니다. 수레가 넘어 가는 고개라고...한자로는 車踰嶺...일반명사가 고유명사화 된것이니 "수레넘이고개'는 전국에 많이 분포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 이름이 車山里 이곳 "수레넘이고개" 밑으로는 "서울-춘천 민자 고속도로" 터널이 뚤리고 있습니다 [수레넘이 고개] 수레넘이고개에서 후미의 알바 사실을 알았는데.... '서울백두클럽 횐님들 중에 두분만 정상루트를 따라 오고있습니다. '서울백두클럽 羅대장님'이 알바를 했지만 다시 정상루트를 찾아 오고있습니다. 산을 오르 내리느라 알바를 한 우리보다 알바하며 정상루트를 찾아 오니 우리보다 늦게...ㅎㅎ [수레넘이고개 지나 철탑에서] 수레넘이고개 지나 339.4m봉 가는 길목에 있는 송전철탑에서 뒤 돌아 보니 백봉산 뒤로 천마산이 쬐끔 보입니다. [339.4m봉 가는 길] 이제부터는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339.4m봉 가는 길] "수레넘이고개"에서 "고래산"지나 "먹치고개"까지는 산객들의 흔적이 별루입니다 오늘 이길을 가는 사람들은 오직 '서울백두클럽' 뿐입니다 [339.4m봉] "339.4m봉"은 특별한 봉우리 표시가 없습니다. 지도를 보고 대략 위치를 알아야합니다 이곳에서 휴식을 조금 취하고.... [339.4m봉] 이곳에서 "해비치 골프장"까지 가는 길도 조금 조심해야합니다. 좌측으로 가야하는데 직진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몇군데 있습니다 ['해비치 골프장' 가는 길] '수레넘이고개'에서 "해비치 골프장" 정문 위 에코브릿지로 가는 길입니다. 우측에는 마을이 있는데 제법 알려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입니다. 월문리에는 "표적사"라고하는 절이 백봉산 아래에 있지요 [갑산] '해비치 골프장' 가는 길에서 보이는 우측 끝의 "갑산" 좌측 끝 능선위가 "고래산"이고 우측 끝에 멀리 보이는 산이 "갑산"입니다. [해비치 골프장] '천마지맥 마루금' 옆으로 "해비치 골프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제가 골프를 끊은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6. 옷을 화려하게 입고 골프하면 날라리라고 욕먹고, 점잖게 입으면 초상집 왔냐고 욕먹고, 인물 좋으면서 잘치면 제비같은 놈이라고 욕먹고 인물 나쁘면서 공도 못치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욕먹고, 농담하면 까분다고 욕먹고, 진지하면 열 받았냐며 욕먹고, 도우미하고 농담하면 시시덕댄다고 욕먹고, 농담하지 않으면 분위기 망친다고 욕먹고.....닝기리~ [해비치 골프장] 7. 노는산 깎아 골프장 만들어도 좁은 땅에 만든다고 욕 먹고, 나무 심고 잔디 심어 키워놔도 농약 친다고 욕 먹고, 여름이라 햇볕 피할수 있나, 겨울이라고 누가 따스하게 손을 잡아 주나, 땡볕 눈보라는 고사하고, 제대한지가 언제인데 툭 하면 산등성이에서 각개전투, 미친개도 아닌데 물만 보면 피해 다녀야 하고..... 8. 공이 갈만한 자리는 무슨 심술로 모래 웅덩이와 연못을 파놓고, Hole은 꼭 처녀 엉덩이 꼭 그거 같은 곳에다 코구멍만 하게 뚫어 놓았으니... 아무리 "구멍 넣기" 게임이라 하더라도...18홀 십팔구멍을 찾아 헤메고 다니니.... [해비치 골프장 출입구 위의 에코브릿지] 9. 골프채 새채 사서 잘 치면 돈이 썩어난다고 욕하고, 새채 안사면 죽울 때 돈 싸가지고 갈거냐고 욕먹고, Buyer가 공치자고 해서 외국에 채가지고 나가면 남의 눈총받고, 그나마 몇번하고 나면 세무조사 한다고 겁주고... 선물로 받은 채 들고 들어오면 무슨 밀수꾼처럼 째려보고, 새벽 골프나가면 그렇게 공부 좀 하~지 하고 욕먹고, 남녀 어울리면 바람 났다고 욕먹고, 남자들 끼리만 치면 호모놈들이라고 욕먹고...... [해비치 골프장 정문] 10. 이글, 홀인원 한번하면 축하는 못할 망정 눈들이 퍼래 가지고 뜯어 먹고, 잘 쳐도, 못 쳐도, 자주 쳐도, 안쳐도, 새 채로 쳐도, 헌 채로 쳐도, 새벽에 쳐도, 낮에 쳐도, 비올때 쳐도, 눈 올때 쳐도, 시끄럽게 쳐도, 조용히 쳐도, 천천히 쳐도, 빨리 쳐도, 멀리 쳐도, 짧게 쳐도, 돈내고 쳐도, 접대 받아 쳐도, 우째든지 욕을 먹게 되어 있는 이런 빌어먹을 골프를 왜 하느냐 이 말이여!~~ 정말 골프하는 사람들이 전부 제 정신이란 말인가?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욕먹기도 지쳤고, 돈 쓰기도 아깝고, 이제 골프를 확 끊어 버리고, 골프채도 만지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로 테스트에도 나가 볼 정도로 골프에 미쳤었지만 그래서 저는 골프를 진짜로 끊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욕먹을 일 전혀 없고, 건강에 최고이고, 경제적이고, 칭찬 받는 "등산과 수영"으로 바꿨습니다. 아시다시피 등산은 일주일에 한번은 꼭 하고, 수영은 매일 새벽 한시간씩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골퍼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주변에서 "골프 가자~~"하면 또 작대기 짊어지고 마눌 눈치 보며 필드로 나갑니다. ㅎㅎ [고래산 오르는 된비알] 체력이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다시 '고래산'을 오르는 된비알을 오르니 무척 힘듭니다 [고래산 오르는 된비알] 오르고 또 오릅니다 [고래산 정상 갈림길] 천마지맥 마루금에 있는 "고래산" 갈림길입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고래산 정상을 가지 않고 그냥 "먹치고개"로 갑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 베낭을 두고 좌측으로 "고래산" 정상을 갔다가 오려합니다 [고래산 정상 가는 길] "고래산"은 산객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산이었습니다. 하지만 山路는 뚜렷해서 길을 찾기는 쉬웠습니다. [고래산 정상 가는 길] 소래산 갈림길에서 고래산 정상까지는 제법 멀었습니다. 왕복 30분은 잡아야합니다 [고래산 정상] "고래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하나 있을 뿐이고, 정상석은 없었습니다. 울창한 숲으로 외부 조망도 쉽지 않아 더더욱 정상의 의미를 잃고 있습니다 [고래산 정상] 어느 산악회에서 붙여 놓은 정상 표시기가 다행이 걸려 있었는데 이 종이는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금새 없어지겠지요. 하지만 "고래산" 정상임을 확인하고 돌아 왔습니다 [고래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본 갑산] 천만 다행으로 '고래산' 정상에서 "갑산"을 볼수 있었습니다. 오늘 원래 저 "갑산"을 넘어 "새재고개"까지 가려고했는데..... '오리로스'가 꼬시는 바람에 저 "갑산" 밑으로 들어가 '오리고기 로스'를 먹으며 산행을 마쳤습니다. [먹치고개로 하산] "천마지맥3구간"은 유명한 산도 없고, 역사적 유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산행기에 올릴만한 얘기거리가 별루입니다 하산하는 길에 어디서 본 인생역정 유머 "강남 부자와 강북 서민"이란 얘기 들려 드림이다 강남 부자 오늘 마누라와 외식을 먹으러 나왔다. 마누라는 애드워드 아일랜드산 바닷가재를 먹자 했으나 나는 그냥 늘 먹던대로 상어 지느러미를 먹자고 했다. 실랑이 끝에 토라진 마누라는 운전기사의 키를 뺏어 벤츠를 몰고 집에 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누라의 생일이다. 사과의 기념으로 우리부부는 내일 호놀룰루에 여행을 간다. [먹치고개로 하산하는 길에 바라 본 "큰명산"] 강북 서민 오늘 마누라와 시장을 보고있었다. 마누라는 탕수육이 먹고싶다고 했다. 나는 집에 가서 밥이나 먹으라고 호통을 쳤다. 토라진 마누라는 그길로 바로 버스를 타고 혼자 집에 갔다. 나는 열이 받아서 집에가서 마누라를 무지하게 팼다. 헛소리 안 한다는 각서 까지 받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마누라 생일이다. 나는 참 무심한 남편이다. 집에 가는 길에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가야겠다 [먹치고개로 하산] 20년이 흐른후~~ 강남 서민 호놀룰루에 갔을땐 봄날였다. 중국 주식 열풍에 휩싸여 펀드에 재산 절반을 투자 했는데 건진것도 별로 없다. 잘 나가던 사업체 부도난건 오래전~ 그나마 강남이 슬럼화 한지라 집 한채 값도 이젠 강북 집에 세들어 살기도 모자란다. 이런저런 시름의 생각에 묻혀 있을때 마누라가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한다. 화가 난 나는 오늘 무지하게 두들겨 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누라 생일이다. 나는 참 무심한 남편이다. 약국에 가서 파스나 사서 붇여줘야겠다 [먹치고개로 하산] 강북 부자 강남이 슬럼화 되자 강북이 예전의 집 값보다 배나 올랐다. 허리끈 동여맨 마누라 덕에 사업도 성공했다. 모처럼 마눌과 외식을 하러 나왔다. 질린 바닷가제,상어지느러미도 그렇고 해서 제비집 스프나 곰발바닥 스프로 간단히 먹자고 했다. 실랑이 끝에 삐친 마누라는 곧바로 자가용 비행기 타고 호놀룰루로 가버렸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마누라 생일이다. 사과의 기념으로 자가용 비행기를 보잉747기로 바꿔 줘야겠다 과장이 너무 심했나요? ㅎㅎ 하지만 곧 이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세요~~~~ [먹치고개 마을] '먹치고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먹치고개] "먹치고개" 왜 먹치고개라고 하는지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이곳 "먹치고개"를 일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오려면 "중앙선 덕소역"에서 [88-3번] 마을버스를 타면 됩니다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타면 약 20분 걸려 이곳에 도착합니다. 이 마을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므로 시간을 마추어야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택시를 얼마던지 불러 탈수있습니다 전화하니까 금방 오더군요. 먹치고개에서 덕소역까지 8,000원 정도이니 4명이서 타면 버스 타는 비용보다 많이 비싸지는 않더군요 [갑산 아래 내치마을] 원래 "갑산"을 넘어 "새재고개"에서 3구간을 마치려고했으나 백봉산에서 알바를 많이해 오늘은 이곳의 유명한 '오리로스집'에서 뒷풀이로 산행을 마감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오리로스집'으로 올라 갑니다. 그러나 유명한 오리로스집은 '먹치고개'에서 상당히 멀어, '갑산' 아래까지 올라 갔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갑산'입니다 [오리로스집에서 뒷풀이] 청랭리나 구리 일대에서는 알려진 오리로스집이라고 하더군요 여하튼 즐거운 뒷풀이를하고 '천마지맥3구간을 마쳤습니다 다음 제4구간은 졸업구간입니다. 오늘 '새재고개'까지 진행을 못해 4구간은 더 걸어야하겠습니다 5월24일(일) 오전 9시까지 '중앙선 덕소역'에서 만나, 마을버스 [88-3번]을 9시30분에 타고 '먹치고개'로 다시 와서 산행을 시작합시다. (택시를 타도 됩니다) "천마지맥" 완주후 졸업식이 거행되니 더 많은 산객들의 참가를 기대합니다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鐵馬山에서 바라 보는 남양주시 진벌리




       
               [天摩枝脈2區間] 
           비월교-금단이 고개-鐵馬山 北峰-鐵馬山 南峰-
           과라리 고개- 배랭이 고개- 멸도봉-天摩山-磨峙고개
      
           
           [산행지도]
           2009년 4월 26일(일) 오전 8시 15분
           지하철 청량리역 4번 출구에서
           남양주시 수동면 비금리行 좌석버스 330-1번을 타고
           "天摩枝脈2區間"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섯습니다
           
           [남양주군 수동면 금단골 "비월교-너래바우"앞]
           청량리-비금리를 다니는 좌석버스 330-1번은 약1시간30분 정도 걸려
           "비월교 다음 정거장인 "너래바우"에 섯습니다
           수동골 피서지 계곡이므로 업소도 제법 멋지게 꾸며놓고 손님들을 유혹합니다
           
           [주금산, 철마산 등산로 입구]
           "너래바우" 정류장 앞은 "주금산과 철마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주차장에서 산행 계획과 유의사항을 간단하게 전달받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天摩枝脈"중에서 가장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 2구간입니다.
           
           [철마산 등산 안내도]
           철마산이나 주금산을 올랐다가 원점회귀 할수 있는 곳이기에
           승용차를 몰고 와서 주차를 하고, 산행을 하고 난후 다시 차를 몰고 돌아 갈수있어 편리합니다.
           하지만 枝脈을 종주하는 우리는 이곳으로 돌아 오지 못합니다.
           
           [금단이 고개 가는 길]
           "너래바우" 주차장 뒤로 오르면 바로 "금단계곡 입구"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금단이 고개" 까지가 급경사 오르막으로 땀을 좀 흘려야 합니다
           
           [금단계곡]
           전날 비가 조금 와서 날씨는 제법 쌀쌀해서 강원도 지역에는 눈빨이 날린다는 뉴스가 있습니다.
           4월 하순 날씨로는 다소 이레적이지만 산행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기온이며 
           가시거리가 길어 많은 곳을 조망 할수 있었습니다.
           "금단계곡"은 맑은 물이 소곤대며 흐르고......
           
           [금단계곡]
           서울 주변의 대표적 여름 피서지 다웁게 "금단계곡"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꽃으로 이쁘게 단장하고 산객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금단이 고개]
           '비월교-너래바우'에서 "금단이 고개"까지 약50분 걸렸습니다
           숨돌릴 여유도 없이 가파른 된비알을 올랐습니다.
           '금단이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鐵馬山"을 오릅니다
           
           [금단이 고개 이정표]
           "금단이 고개"는 지난 1구간의 날머리였지요.
           한북정맥 명덕삼거리에서 서파사거리를 건너 주금산을 오르고 도착했던 곳입니다.
           1구간이 7시간 30분 걸렸는데, 이번 2구간은 훨신 더 긴 거리입니다.
           오늘은 총 9시간 25분을 걷습니다.
           그래서 산행기를 많이 요약 축소했습니다.
           
           [鐵馬山]
           '금단이 고개'를 지나 南쪽으로 "鐵馬山"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鐵鑛石이 많이 나올것 같다고 붙여졌다고 하며,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가 말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서리산]
           '천마지맥' 옆으로 함께 뻗어 가는 "축령지맥"의 "서리산"이 구름 속에서
           삐쭉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鐵馬山 오르는 길]
           鐵馬山은 南峰과 北峰이 있는데 北峰이 780.8m로서 南峰710m보다 더 높습니다.
           鐵馬山 北峰 오르는 길이 급경사로 힘든 코스입니다.
           하지만 수동골 '비월교'에서 '금단이 고개'를 지나 "철마산 북봉"까지만 오르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오르막은 대략 오르는 결과이더군요.
           
           [鐵馬山 오르는 길에서 뒤 돌아 본 "천마지맥1구간"]
           이 한장의 사진 - 정말 값어치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의 가운데-약간의 구름을 이고있는 산이 "鑄錦山"입니다.
           사진의 좌측 뒤에 약간의 구름이 있는 산이 한북정맥의 "수원산"입니다.
           그리고 매우 유명한 산인 "雲岳山"이  "鑄錦山" 우측 뒤에 살짝 얼굴을 보여줍니다
           "鑄錦山" 옆 "雲岳山"앞에 있는 조그만 산이 "개주산"입니다
           
           [鑄錦山. 雲岳山. 개주산]
           산행기를 쓸때 줌인한 사진은 거리를 혼돈 시킬수 있어 잘 올리지 않습니다만,
           이 경우는 의미가 있을 것같아 줌인한 사진을 올립니다
           "鑄錦山. 雲岳山. 개주산"
           京畿五岳에 들어 가는 雲岳山의 위용이 느껴집니다.
           이름 다웁게 雲岳山은 오늘도 구름을 이고 있습니다.
           
           ["축령지맥"의 '서리산과 축령산']
           "天摩枝脈"의 鑄錦山에서 분기하여 청평댐이 있는 "한강"에 머리를 쳐박는 "축령지맥"
           鑄錦山-불기산-서리산-축령산-깃대봉
           그 가운데 "서리산과 축령산"이 神靈스럽게 자태를 뽑냅니다
           
           [鐵馬山 오르는 길에서 바라 보는 "불암산. 수락산. 삼각산, 도봉산"]
           이 사진도 정말 빼 놓을수 없는 광경입니다
           앞에 보이는 마을이 남양주시 진접읍 진벌리입니다
           그 뒤로 사진의 맨 끝에 "三角山(北漢山)"과 "道峰山"이 어렴푸시 보이고
           바로 그 앞에 "불암산"과 "수락산"이 보입니다
           
           [삼각산. 수락산. 도봉산]
           이 경치도 줌인했습니다.
           가운데 "수락산". 그 뒤로 "三角山(北漢山)"과 "道峰山"
           
           [鐵馬山 오르는 길의 진달래]
           산의 높이가 780m가 되니 정상부근엔 아직도 진달래가 지천에 깔려있습니다
           
           [남양주시 진접읍 진벌리]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높은 산인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삼각산  네개가 보이는군요.
           인왕산과 작은 산인 "목멱산(남산)과 안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동대문 옆에 '낙산'도 있지요
           
           [鐵馬山 오르는 길]
           775m봉을 힘겹게 오르면 鐵馬山 北峰이 성큼 다가 옵니다
           
           [鐵馬山 오르는 길]
           鐵馬山 北峰 바로 못미쳐 있는 775m봉을 올랐습니다.
           휴~ 이제 한숨 돌림니다
           
           [鐵馬山 北峰]
           鐵馬山 北峰이 드디어 보입니다   
           鐵馬山은 南峰과 北峰, 두개의 큰 봉우리와 6~7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길게 뻗어 누워있는 듯한 큰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더군요
           
           [鐵馬山 北峰 정상]
           鐵馬山 北峰 정상에는 정상석도 없고 어떠한 안내도 없어
           그냥 지나치면 鐵馬山 北峰 정상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헬기장과 탁트인 조망이 힘겹게 오른 산객들을 위로해 줍니다
           鐵馬山은 北峰이 780.8m로서 南峰 710m보다 높습니다
           
           [鐵馬山 北峰 정상에서 바라 본 "축령지맥 서리산과 축령산"]
           "축령산"은 한자로 祝靈山이라고 씁니다.
           신령한 기운이 충만한 산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879m의 높은 산으로서, 고려말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사냥 왔다가 
           한 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하고 돌아온 후, 몰이꾼들의 말이 
           "이산은 신령하니 산제를 올려야 한다"고 하여 
           이튿날 산정상에서 제를 지낸 후 사냥을 하고 사냥을 많이 했다는 사실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서리산"은 글자 그대로 일년 내내 서리가 서려있는 산이라고 "서리산"이랍니다
           832m 높이로서 산 북서쪽이 급경사로 이루어져 항상 응달이 져 서리가 내려도 
           쉽게 녹지않아 늘 서리가 있는 것 같아 보여 서리산이라 칭하게 되었답니다
           
           [鐵馬山 北峰 정상에서 바라 본 가야할 "天摩枝脈"]
           가야할 天摩枝脈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듯 길게 뻗어 있습니다
           가운데 天摩山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되겠습니다
           가까운듯 보이는 天摩山까지 앞으로 4시간반이 걸려 갑니다.
           왜냐하면 직선 거리가 아니고 커다란"S"자를 그리며 가기 때문에 거리가 엄청 깁니다
           
           [鐵馬山 北峰 정상에서 바라 본 "용문산"]
           멀리 '명지지맥의 끝 호명산' 뒤로 구름을 이고있는 "용문산"까지 조망됩니다.
           오늘은 가시거리가 길어 주변의 많은 산들을 조망하는 덤을 얻었습니다
           
           [鐵馬山 北峰 주변 경치]
           鐵馬山과 天摩山에는 赤松이 제법 많이 자라고 있으며 수령이 오래된것들이 많았습니다
        
           [진벌리. 팔야리 갈림길]
           鐵馬山北峰에서 조금 내려오면 진벌리와 팔야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팔야리는 "八夜里"로서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 가있다가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한양으로 돌아 오는 도중에 이곳에서 여덟밤을 묵었다고 "八夜里"가 되었다고합니다
           天摩山과 鐵馬山 주변에는 태조 이성계와 수양대군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남양주시 수동면 수산리]
           水東골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
           
           [760m봉 헬기장]
           鐵馬山北峰에서 南峰까지도 거리가있습니다.
           많은 봉우리를 넘고 넘어야 갈수 있습니다.
           유머 하나 소개해 드릴까요?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냥 재미로 읽어 보며 산행을 하자꾸여
           영어에 관한 실수담이람니다
           본인 중1때 영어 교과서 한줄씩 읽는 순서 때,
           "HI, JANE" 을  "하이, 자네" 라고 읽어 쪽팔렸던 적있었소..
           그 뿐만이 아니라 프로야구단 해태(HAITAI)를 "하이타이"로 읽었어요 
           또한 Slazenger를 '쓰러진거'라고 읽어 매도 많이 맞았지요. ㅎㅎ
           어떤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POLO" 티셔츠 입고 갔다가
           수학선생님에게 "포로" 취급 당한적 있소.
           그 후론 셈에 약하답니다 
           
           [鐵馬山 北峰에서 南峰 가는 길]
           내 친구 술마시구 호프집 가더니 자신있게 주문 합디다.
           여기 "오비레이저"루 세병 주세요!!~........ Lager=레이저........ㅋㅋ
           우린 뒤집어 졌다오!! 
           
           [鐵馬山 北峰에서 南峰 가는 길]
           자동차안에 보면 A/C (에어컨) 버튼을 
           내친구넘이 "에프터 서비스"라고 하네요....
           그거 누르면 a/s 맨이 온다구하더군여....ㅎㅎ
           
           [鐵馬山 北峰에서 南峰 가는 길에서 바라 본 '진벌리'] 
           아름다운 경치입니다.
           
           [729m봉]
           요즘 UCC가 폭발적으로 유행하면서 어딜가나 개인카메라와 
           CCTV가 감시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어느 남자가 神을 만났는데 神이 한가하게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요즘 神께서 한가해지신것 같습니다?"하고 말하자, 神이 대답했습니다. 
           "요즘은 니들끼리 서로 다 보고 있으니 내가 쫓아다니며 자세히 볼 일이 없어졌어..." 
           그 남자가 이번엔 악마를 만났는데 神과는 달리 악마는 모니터를 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 하는데 그렇게 정신없느냐고 묻자... 
           악마가 대답했습니다. 
           악마 왈  
           "말 시키지마. 요즘 악플 다느라 바쁘다고!" 
           
           [鐵馬山 北峰에서 南峰 가는 길]
           
           [天摩山]
            커다란 "S"자 모양을 한 "천마지맥"의 중심부 "天摩山"이 보입니다.
                     
                     [진벌리 갈림길]
                     鐵馬山은 우리나라 國軍의 鐵馬部隊의 본거지랍니다
                     그래서인지 山岳行軍路 표지가있습니다
           
           [鐵馬山 北峰에서 南峰 가는 길]
           남양주에는 조선왕조의 왕릉이 많이 있습니다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7대왕인  수양대군 세조의 무덤이 "광릉光陵"이지요
           세조의 와이프 "정희왕후"도 함께 뭍혀있는데, 이 여자가 조선왕조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여자 대장부였지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이, 형님인 문종의 장남인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었지요
           세종대왕이 죽으며 이런 일이 발생할것을 이미 우려해서 후사를 단단히 부탁하고 갔는데도
           수양대군은 무자비하게 조카를 죽였습니다.
           조카인 "단종"의 편에 서서 충성을 다한 "사육신"이 지금의 용산역 뒤 "새남터"에서
           사형을 당하고 한강 건너 노량진에 뭍쳤지요
           
           [天摩枝脈과 天摩山]
           이제 "天摩枝脈"의 天摩山은 좌측으로 보입니다.
           
           [鐵馬山 南峰 가는 길]
           남양주에는 조선 제 15대 왕인 "광해군"의 무덤도 있습니다
           제 산행기에 宣祖는 아주 쪼다리 나쁜 놈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제 산행기를 읽으시는 분들 중에 宣祖를 너무 씹지 말라고 하는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도져히 왕이 될수 없는 족보에서 왕이 된 宣祖는 "임진왜란"이라는 戰火를 백성에게
           안겼고, 자신은 도망 갔다가 오고.... 아들인 "광해군"보다 9살이 적은 19살짜리 "인목왕후"를
           51세에 새로 계비로 맞아 들여 '영창대군'을 낳아 후에 '인조'세력들의 쿠데타 구실을 주었으니
           그리고 다시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비극을 잉태했으니 어찌 제가 宣祖를 씹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광해군은 자신보다 9살 아래인 엄마(계모)를 대왕대비로 모시며 살았답니다
           宣祖는 양주시에있는 "목릉"에 첫째부인 의인왕후와 둘째부인 인목대비와 함께 잠들고 있습니다
           
           [鐵馬山 南峰 정상]
           鐵馬山 南峰 정상이 보입니다.
           
           [鐵馬山 南峰 정상]
           12시 25분경에 도착했으니 '비월교'에서 2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鐵馬山 南峰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鐵馬部隊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표하는 글이 있습니다
           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고, 정상석도 없었습니다
           
           [남양주시 오남읍과 멀리 '북한산'이 보이는 정경]
           수락산. 불암산. 도봉산. 북한산이 보이는 경치는 일품입니다.
           
           [鐵馬山 南峰 정상에서 발 보는 한북정맥 수원산]
           "천마지맥"을 분기하는 한북정맥 '수원산'이 멀리 조망됩니다
        
           [鐵馬山 南峰 정상]
           鐵馬山 南峰 정상은 태극기가 있는 곳에서 조금 옆에 있는 봉우리로서 
           삼각점으로 표시되 있습니다
             
           [天摩山]
           앞으로 가야할 "천마지맥"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좌측의 높은 산이 "天摩山"이고, 멀리 스키 슬루프가 보이는 산이 "백봉"이며
           그 산 아래 "마치고개"까지 가야합니다.
           앞으로도 6시간 30분 이상을 걸어야 합니다
        
           [674m봉 가는 길]
            철마산과 천마산 사이에는 웅장한 댐같은 산줄기가 천마지맥을 잇고 있습니다
           
           [天摩山]
           天摩山이 점점 다가 옵니다
        
           [天摩枝脈]
           철마산에서 천마산으로 가는 중간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과라리 고개]
           처음으로 고개 다운 고개가 나왔습니다
           "과라리고개"
           과라리의 의미는 알수 없었고, 다만 이 고개 아랫쪽 마을 이름이 "과라리"였습니다.
           
           [과라리 고개]
           "과라리고개"에는 돌무덤을 만들어 놨으며, 
           작자를 알수 없는 "과라리 아리랑"이라는 글을 볼수 있습니다
                
                [과라리 아리랑]
                이 고개를 넘어 다니던 사람이 고갯길에 앉아 느낀 감상을 적은듯한데
                ..........감상은 각자의 몫입니다
           
           [지나 온 "鐵馬山 南峰과 北峰"]
            '과라리고개'를 지나 이름을 알수 없는 봉우리를 오르며 뒤 돌아 보았습니다.
            지나 온 "鐵馬山 南峰과 北峰"이 긴 능선을 만들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입니다.
            좌측 봉우리가 鐵馬山 南峰이고 우측 봉우리가 鐵馬山 北峰입니다.
                
                [과라리 고개에서 天摩山 가는 길]
                 된비알을 힘겹게 오릅니다.
                 사진에는 경사가 별루인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경사가 심합니다
           
           [天摩山 산길에서 만난 여대생들]
           '과라리고개'를 지나 봉우리 몇개를 넘었는데, 운동화 차림의 여대생 둘이
           길을 물었습니다. 천마지맥길에는 등산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길을 잃으면
           물어 볼 사람 만나기도 힘든데 이 아가씨들 길을 잃고 알바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광사"로 내려 가야 한다는데, 지도를 보니 "보광사"는 천마산 정상 바로 밑에 있었습니다
           천마산 바로 아래 "배랭이고개"에서 하산해야하는데.......
           그러므로 이 여대생들은 약 1시간 정도를 지나 온것입니다.
           그래서 알바를 2시간 정도를 하고 뒤돌아가 "배랭이고개"에서 
           "보광사"로 내려 보냈는데 잘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여대생들은 관광학과를 다닌다는데 과제물이 등산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 관광 가이드를 잘 하려면 체력도 튼튼히 키워야겠지요? ㅎㅎ
           고생을 많이 했을텐데....다리는 괜찮은가? ㅎㅎ
           
           [天摩山 가는 길]
           '과라리고개'에서 '배랭이고개'까지도 무척 먼 거리였습니다
           이 여대생들 산행 경험도 전혀 없이 이 산속을 2시간 이상 헤멧으니 그 심정 알만합니다
           아차산 정도로 알고 천마산을 왔다는데...
           그래서 제가 '아차산'은 "아차" 실수해서 나온 쬐끄만 산이이다~라고 했더니
           천마산에 비교하면 정말 그런것 같다고 ..ㅎㅎ
           
           [배랭이 고개]
           "배랭이고개"도 별 특징없는 고개였습니다
           천마산 일반등산 코스입니다.
           
           [배랭이 고개]
           "배랭이고개"에서 여대생들을 화도읍 가곡리 '보광사' 방향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잘 갔는지 여부를 알려 준다더니 아직 소식이 없군요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요?
        
           [天摩山 '보구니 바위' 오르는 길]
           '배랭이고개'에서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보구니 바위" 가는 길입니다
           
           [보구니 바위]
           "보구니"는 "바구니"의 경기도 지방 사투리라고 국어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가까이서는 이 바위가 "바구니 모양"인지 알수 없습니다
           
           [보구니 바위]
           
           [보구니 바위 이정표]
           
           [보구니 바위]
           "보구니 바위"를 지나 와서 뒤돌아 보니 "바구니" 처럼 보이는 듯하군요.
           사실 이런 바위 이름은 꿈보다 해몽이니....
           
           [보구니 바위에서 뒤 돌아 본 "천마지맥"]
           지나온 철마산 북봉과 남봉 능선이 선명하게 보이며
           철마산과 천마산을 잇는 댐 같은 능선이 城을 이루고 있습니다
           
           ["멸도봉"에서 바라 보는 天摩山 정상]
           천마산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가 "멸도봉"이더군요
           멸도봉에서 바라 보는천마산 정상
           
           [梧南邑 과라리, 팔현리]
           '멸도봉'에서 바라 보는 梧南邑 과라리, 八賢里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이 아련히 보입니다
           
           [멸도봉에서 바라 보는 天摩山 정상]
           서울 청량리에서 중량교를 지나면 "망우리 고개"를 넘어 구리시, 남양주시로 올수있습니다
           "紅衣天降將軍 忘憂堂 郭再祐 將軍" 이야기를 진양기맥5구간 산행기에 썼는데
           郭再祐 將軍의 호가 忘憂堂이라고 그 의미를 알려 드린바 있는데.....
           오늘은 제가 오래전에 쓴 글인 望憂里라는 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天摩山 정상 가는 길] 
      
                忘憂里
                             파란문 
           모든 사람 사는 일에는 걱정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 모든 사람 사는 일에 걱정이 없다면...
           그건 사람 사는 일이라 말하지 않는다
           청량리 지나 중량교...그리고 망우리가 나온다
           조선 왕조의 시조 이성계는 서울에 도읍을 정한 후
           자신의 묘자리를 물색하게 했다.
           무학대사와 하륜으로 부터 받은 음택(陰宅)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東九陵인 자기의 묏자리를 이쪽 산위에서 바라 보며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었다"하여 망우리라 하였는데 
           그곳이 지금 망우리 공동묘지가 되었다.
          현재의 망우리는 수도 서울의 공공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葬地이다
           그러나 그 망우리는 그 면적을 다해 
           지금은 더 이상 그곳에 누울래야 누울수 없다
        
            
            [天摩山 정상 가는 암릉길] 
      
           망우리(望憂里)
           그 뜻이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고
           사람이 죽어 뭍치는 곳 정도로 안다
           망우리 --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해 주는 곳 --
           정말 선조들은 선견지명이 있어 산 이름도 잘 지었다
           그렇다! 망우리에 들어 누우면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된다
           까마귀 우는 소리..아귀다툼 짖꺼리는 소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잠을 자도 아무도 깨우지 않는다
           자연의 품 안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흙으로 변한다
           그 곳에 빨리 가고 싶으신가여~~~
           아무도 빨리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天摩山 정상 바로 아래 쉼터]
      
           근심 걱정 없이 산다는게 살아 있다는 얘긴가?
           망우리 공동 묘지에 들어 누워 있다는 얘기 아닌가?
           근심 걱정을 가지고 사는게 얼마나 인간적 삶인가!~~
           근심 걱정을 두려워하지마라
           근심 걱정!~
           그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근심 걱정을 사랑할줄 알아야한다
        
           
           [天摩山에서 내려다 본 '마석'과 "백봉"]
           天摩枝脈 3구간인 "백봉"이 보입니다.
           앞으로도 3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마치고개"까지 갈수있습니다
           6시간 정도 왔군요
           
           [天摩山 정상 오르는 암릉구간]
           天摩山 정상부근은 모두 암릉이었습니다
           그리고 山勢는 칼처럼 얇았습니다
           
           [天摩山 정상 오르는 암릉구간]
           天摩山 정상부근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칼날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天摩山 정상]
           오후 4시가 넘어 天摩山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비좁은 칼날같은 꼭대기에 올라 갑니다.
           
           [天摩山 정상에서 뒤 돌아 본 天摩枝脈] 
           우선 제일 중요하다고 할수 있는 天摩枝脈의 산줄기를 뒤 돌아 봤습니다
           鑄錦山, 鐵馬山南峰, 鐵馬山北峰, 산줄기가 살아서 움직이듯 꿈틀대는 듯합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많이 걸었습니다.
           특히 雲岳山이 멀리서 손짓합니다
             
           [天摩山 정상]
           天摩山 정상은 칼날같은 얇은 비좁은 공간위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天摩山어루만질 摩를 쓰는 山인데
           일반인들은 대부분 天馬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天摩山은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만들어 놓은 산 이름이라 합니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 오는 길에  "산이 하늘을 어루 만질듯 높고 웅장하여 
          하늘에 닿을 듯 하다"하여 “天摩山”이라 하게되었다고합니다
           
            [天摩山 정상에서 내려다 본 화도읍 가곡리]
           가곡리(嘉谷里)(가오실, 가곡)는
           지형이 가오리처럼 생겼으므로 '가오실' 또는 '가곡'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天摩山 정상석]
           天摩山이라는 이름 치고는 정상석이 초라했습니다
           또한 이곳 天摩山과 백봉 사이의 "마치고개" 일대에서 조선 명종시대의
           소위 의적이라고 불리운 도둑놈 "임꺽정"이가 활동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임꺽정이 도둑질 하기 좋은 고개가 있고, 숨기 쉬운 천마산이 있어서 이곳에서
           자주 활동을했다지요. 물론 주로 관가의 재물을 훔쳤다죠? 
           그리고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天摩山 정상에 있는 남양주시 관광 안내도]
        
           [天摩山 하산]
           
           [마치고개와 호평동 갈림길]
           천마산 정상에서 조금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에 보이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호평동' 방향으로 가면 "마치고개"로 갈수 없습니다.
           앞 갈림길에서 직진해야하는데 낭떨어지로 길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직진해서 낭떨어지로 내려 가면 길이 잘 나있습니다
           바로 앞에 "천마산 스키장"의 "스키 슬루프"가 보이고,
           건너편 "백봉" 산 중턱에는 "서울 리조트"의 "스키 슬루프"가 보입니다
           
           [이정표]
           우리도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 알바를 조금하고 되돌아와 "마치고개"로 갔습니다
        
           [급경사 하산길]
           天摩山을 하산하는 코스는 급경사입니다.
           
           [급경사 하산길]
           
           석양 나그네들
           산이 좋아 하루 종일 산속을 헤메는 사람들
           
           [501m봉]
           "마치고개"까지도 많은 봉우리를 넘습니다
           
           [마치터널 뒤 천마지맥3구간 "백봉"과 '서울리조트 스키 슬루프']
           
           [뒤 돌아 본 天摩山]
           天摩山 정상은 점점 멀어지고....
           
           [405m봉 - 전망대 봉우리]
           마치고개와 호평동이 훤하게 조망되는 전망대 봉우리에 왔습니다
           이제 99% 걸었습니다.
           태양은 서산으로 넘어 가고.....
           
           [405m봉 - 전망대 봉우리에서 바라 본 "백봉"과 '서울리조트 스키 슬루프']
           건너편 "백봉"의 서울 리조트 스키 슬루프가 가까이 보입니다.
           아래에는 "마치고개"가 현대화 되어 고개와 터널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天摩枝脈 3區間이 저 건너편 "백봉"으로 갑니다.
           5월10일(일)에 지하철 청량리역 4번 출구에서 만나
           330-1번 좌석버스를 타고 다시 이곳 마치고개로 올것입니다
           
           [405m봉 - 전망대 봉우리에서 바라 본 "호평주공아파트"]
           남양주시 "호평지구 주공아파트 타운"이 공사중인 전철역을 앞에 두고
           석양에 물들어 가고있습니다. 
           전철이 개통되면 천마산은 더욱 각광받는 등산코스가 될것입니다
           멀리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군요
           
           [405m봉 - 전망대 봉우리에서 바라 본 "호평주공아파트"와 멀리 북한산이 보이는 풍경]
           
           [마치 고개]
           46번 국도가 새로이 건설되 "마석터널"과 "마치터널", "마치고개"로 나뉘어
           각기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있습니다
           
           [천마산 스키장 슬루프]
           전망대봉에서 조금 가니 "천마산 스키장" 슬루프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
           "천마산스키장"의 이름이 "스타힐리조트스키장"으로 바뀌었군요
           
           [천마산 스키장 슬루프와 "천마산"]
           "스타힐리조트스키장"의 휴게소가 여름으로 가는 봄날엔 문을 닫고 썰렁하게 있습니다만
           겨울에는 스키 디딜틈이 없이 복잡한 곳이지요.
           오래전에 저도 와이프랑 애들 데리고 자주 찾던 곳인데 스키장이 '천마산 기슭'에 있는게
           아니고 405m 전망대봉과 356m봉 사이에 슬루프가 있군요.
           여기서 와이프가 야간 스키 타다가 어떤 남자와 부닥쳐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적이 있는데...ㅎㅎ
           
           [천마산 스키장 옆구리를 돌아 하산]
           
           [마지막 헬기장]
           '마치고개' 바로 위 헬기장에 도착하니 오후 6시 45분이었습니다
           
           [마치 고개]
           "마치고개"는 옛 문헌을 보면 '마치현(磨峙峴)','마치(馬峙)','마치(摩峙)'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고개]
           "마석고개"는 磨石으로 맷돌이라는 뜻입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맷돌이 많이 생산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뒷풀이]
           호평동 주공아파트 입구에 있는 "왕십리곱창"에 도착하니 오후 7시 10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뒷풀이를 하고 天摩枝脈2區間 산행을 마칩니다
           총산행 시간 : 9시간 25분
           총산행 거리 : 약 20km (비월교에서 호평동 왕십리곱창까지)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애증의 강 -
      728x90
      728x90




      [진양기맥 5구간] 자굴산-한우산-산성산 산행기 4월 11일(토) 경남 의령군과 합천군에 걸쳐있는 자굴산 - 한우산 - 산성산을 종주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봄향기 흩날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갑니다 ["금산" 휴게소]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있는 "금산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인삼의 고장 다웁게 인삼제품을 파는 코너가 많았고... ["금산" 휴게소] 금산 휴게소에는 에스컬레이트가 설치되있어 휴게소로는 좀 독특했습니다 아랫층에는 전통식당과 분수대등 휴게시설이 시골 풍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금산 휴게소를 가면 아랫층도 한번 내려가 보세요 [머릿재]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단성 I.C.'로 나와 경상남도 진주시와 의령군의 경계인 "머릿재"에 10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진양기맥 5구간'의 산행 들머리입니다 [머릿재] "머릿재"는 의령군 七谷面에서 大義面으로 넘어 가는 고갯길입니다 [구글어스 산행괘적도] 편리한 시대 - 위성의 신호를 받아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을 표시해 주는 GPS 산행 괘적도입니다 [진양기맥 5구간 산행 들머리] "머릿재"는 頭峴을 우리말로 풀어 쓴것이라 하는데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는 豆峴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우리마라 地名을 새로이 지정할때 아마도 같은 발음이라고 오리지날 고개 이름을 콩 豆에서 머리 頭로 잘못 표기하고 순수 우리말로 고쳐 쓸때 다시 머리 頭를 그대로 "머릿재"로 표기하게 된듯합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흔히 볼수있는 것들이지만 이제는 다시 바로 잡아야 하는데 지방자치 단체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로 사료됩니다 [머릿재] 산행 들머리로 올라와 "머릿재"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머릿재" 건너편 진주시를 뒤로하고 의령군으로 갑니다 [머릿재] 의령군 칠곡면이 내려다 보입니다. 지금부터 그 유명한 "호암 이병철"씨가 태어나 자라고 때돈을 버는 밑거름이 된 "정미소"를 경영했던 곳 - 의령 宜寧땅을 밟으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된비알] "머릿재"에서 "좌골재"까지는 野山이 몇개 있으며 1시간 45분이 걸렸으니 워밍업으로 제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산행을 시작할때는 힘이 듭니다 [자굴산] 427m봉을 오르니 왼쪽으로 "자굴산"이 아득히 보입니다 오늘 진양기맥 5구간의 하일라이트 山입니다 "자굴산"은 의령의 진산이며, 높이가 거의 900m가 되는 높은 산입니다 조그만 안부를 지나고 봄냄새 풍기는 산길을 유유자적하며 걷습니다. "머릿재"에서 "좌골재"까지에는 높은 봉우리가 세개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평범한 산행길입니다 진주, 의령 지방은 이미 진달래는 지기도 했겠지만 이 구간에는 꽃 구경하기가 어렵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리를 반깁니다 [좌골재 가는 길] 오늘은 우리나라 경제 이야기에서 빼 놓을수 없는 인물 - "호암 이병철선생""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장군"에 대해 생각해 보며 산행을 하겠습니다 이병철선생에 대해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이가 없겠지만..... [자굴산] 384m봉, 500.9m봉 을 차례로 오르니 "자굴산'이 점점 더 가까이 오는 듯 합니다 湖巖 李秉喆先生 대한민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부러워한 "돈 병철"로 대변 되었던 李秉喆先生. 李秉喆先生은 1910년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부친 이찬우공과 모친 안동 권씨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의 집안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병철 선생은 강직한 가풍속에서 비교적 유복한 소년시절을 보냈다고합니다 [좌골재] 의령군 칠곡면과 저수지가 보이는 풍경 - 아름답습니다 이병철선생은 정규 학교를 온전히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진주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와서, 서울 수송국민학교를 다니고, 중동중학교 2년 중퇴, 일본 와세다대학으로 유학도 갔으나 졸업까지는 못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돈병철"이 되고 난 이후엔 명예박사학위는 대학들이 서로 주려고 했습니다 에구~ 인간 대접 받을려면 돈 벌고 잘되고 봐야지요. 특히 돈을 많이 벌고 봐야합니다 [좌골재] 의령에서 합천으로 넘어 가는 1013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 "좌골재"입니다 이런 저런 지도에 "좌골티재"로 표기 되있습니다. "티"가 "재, 고개"라는 말이지요. 같은 말을 두번 사용하는 것이니 "역전앞"과 같은 것입니다. '좌골고개'. '좌골재', '좌골티', 좌골치'등으로 표기해야합니다 [자굴산] '좌골재'에 오니 자굴산'이 그 일부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병철선생은 의령에서 '정미소' 사업으로 재벌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지요 옛날엔 시골에서 정미소와, 누에고치로 실을 뽑는 '제사공장'이 기계가 돌아 가는 유일한 "공장"이었지요. "제사공장"이 製絲工場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됫습니다만..... [좌골재] '좌골재'와 건너편 '자굴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입니다. 이병철선생은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쌀가마를 운반하는 것에서 부터 運輸業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벌써 부동산을 알고 부동산 사업도 하지요. 그리고는 무역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의령은 좁아서 대구로 진출하고 "삼성상회"를 대구에 설립하며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섭니다 [좌골재] 우리를 "머릿재"에 내려 놓았던 버스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성상회'로 돈을 벌어 대구에서 "조선양조"를 인수하며 최초로 제조업에 뛰어듭니다. '조선양조'가 실질적인 "삼성그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조선양조'에서는 막걸리, 청주, 소주는 물론 사이다까지 만들어 팔았습니다 6.25 전쟁통에 피난민으로 '조선양조'의 술은 더 잘 팔렸답니다 [좌골재] 의령군 칠곡면에서 대의면으로 넘어 가는 1013번 지방도의 고갯길입니다 해방이 되자 부산에 설립한 "삼성물산"을 넓은 서울로 사업장을 옮김니다 그리고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지요 홍콩과의 직교역을 하며 무역이라는 글자를 조선엽전들에게 알려 줍니다. 하지만 6.25라는 복병을 만나 재산을 상당량 날려버림니다 [GPS 산행 괘적도] [자굴산 산행 들머리] 자굴산 들머리에는 오늘 따라 '산불예방'을 위한 통제관이 나와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령군청에 가 입산허가를 받아 자굴산을 올랐습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뒤 돌아 본 좌골재]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가난한 나라 백성의 입맛을 달콤하게 만들며 돈을 벌기 시작하고 영국 신사들이 입는 양모로 만드는 신사복지 "골덴텍스" 기억하시나요? "골덴텍스"로 만든 양복을 입는게 출세의 상징 같았던 때를 연세가 조금이라도 되는 분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떠 오를 것입니다. 저도 울 아버지가 제가 모 대학에 합격했다고 기뻐하면서 맞춰준 양복이 "골덴텍스"로 만든 쪼끼가 있는 양복이었답니다. 많은 친구들이 부러워했습죠. ㅎㅎ 제일모직의 "골덴텍스"가 성공하자 뒤따라 경남모직, 한국모방, 대한모방 ...기억 나시죠? [자굴산 오르는 등로] 이병철선생이 6.25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사업자금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전쟁이 터지자 그 동안 번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부산에서 주류도매업을 하고 있던 사람에게 맡기기로 하고 궤짝 두 개에 3억원 가량의 돈을 담고 서류뭉치로 위장해 조선양조의 자동차에 실어 보냅니다. 당시 3억원이면 어마 어마한 돈이지요. 그런데 그 차는 부산에 도착하지 못하고 돈 궤짝과 함께 행방불명이 되었답니다. 전쟁 통에 알아볼 길이 없는 직원들은 돈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운전기사가 돌아 옵니다. 짜~잔~ 클린트 이스트 우드처럼... 그는 경북 영천에서 미군에게 강제 징집되었고 급한 김에 길가의 정미소에 돈 궤짝을 감춰두었던 것입니다. 직원들은 운전기사와 함께 영천의 궤짝을 숨겨두었다는 정미소로 달려갔으나 정미소는 불에 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답니다. 않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지만, 되는 놈은 죽은 고목나무에서도 꽃을 피우는 법. 잿더미를 헤치자 다행스럽게도 궤짝은 타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고 궤짝 안의 돈도 그대로 있었답니다. 나하고는 왜이리 반대일까~ 닝기리~ 전쟁 통에 사업자금을 모두 잃어버린 호암선생은 이 돈으로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할 수가 있었답니다. [자굴산] 자굴산이 다가 옵니다. "이병철선생의 매년 정초 사업 구상" 이병철선생은 매년 정초가 되면 사업구상을 하러 일본 동경으로 간것 기억나시죠? 가난하고 별 볼일없는 우리나라에선 새로운 구상을 할 건덕지가 없어서 선진국 일본으로 가 일본의 TV와 언론매체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세계의 변화하는 경제상황을 느끼며 사업구상을 한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 오면 새로운 사업이 하나씩 시작되었지요 [594m봉 오르는 길] '좌골재'에서 '594m봉'까지 심한 된비알입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594m봉' 근처에 오르니 바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594m봉] '594m봉'에 올랐습니다. 자굴산 정상이 가까워 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경사이므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오를수 있습니다 독립투사 김좌진장군의 아들 "김두한" 깡패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그의 딸 '김을동여사'도 국회의원이 되었지요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국무총리석으로 똥물을 투척한 사건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실겁니다. 당시 국무총리가 '정일권'씨였고, '장기영' 부총리등 각료들이 똥물을 뒤집어 썻지요 이 똥물은 종로2가에 있는 "파고다공원(탑골공원)" 공중변소에서 퍼 온것이라 더 유명했죠 수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 1966년의 國會汚物投擲事件 그런데 왜? 똥물을 국회에 퍼 부었는지는 아십니까? [암릉구간] 594m봉에서 자굴산 정상까지는 암릉구간이었습니다. "한국비료공장'과 "사카린 밀수 사건" 삼성 재벌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건설 자재를 가장해서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것이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을 통해 폭로되면서 언론계와 정치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발전을 하려는 가난한 대한민국에 밀수는 민족적 범죄였습니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캐치프레이저로 군사 쿠데타 정권이라는 오명을 경제발전으로 덮으려했던 개발독재정권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지에 똥칠을 하는 반민족적 범죄였지요 그러나 "사카린 밀수사건"은 한달 뒤 벌금 좀 물고 유야무야되자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었던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원이 더러운 놈들에게 국회에서 똥물을 퍼붓게되는 것입니다. "에라잇!~ 똥물보다 못한 놈들아!!~~ 똥이나 쳐 먹어라~!!" 요즘도 똥물을 쳐 먹을 놈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암릉구간] 당시 김두한의원이 똥물을 투척하면 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밀수 사건을 두둔하는 장관들은 나의 '피고들'이다!!~" "사카린 좋아하는 피고인들에게 사카린을 선사한다"는 말과 함께 파고다공원 공중변소에서 퍼온 똥물을 국무위원들을 향해 투척한 것입니다. 그 이후 국회에는 석달 이상 똥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카린 밀수 사건'은 이병철씨가 '한국비료주식회사'의 주식 51%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군사정권과 야합을 한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일 많이 한 '호암 이병철선생'이 죽을 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 치욕스런 이미지가 바로 '사카린 밀수'와 같은 방법으로 富를 국민들로부터 착취했다는 멍에를 쓴것이었습니다 [GPS 산행 괘적도] [바람덤] 오늘 산행 중에 처음으로 모양새가 있는 암릉이 나왔는데 바로 "바람덤"이었습니다 "바람덤"의 이 무슨 뜻인지 경상남도 지역 이외의 지역 사람들은 모를것입니다 은 경남지방 특히 경남 내륙지방의 사투리로 바위라는 말입니다 제가 경남 함양이 고향이라 이것은 확실히 압니다. ㅎㅎ [바람덤] 특히 이곳은 "자굴산 주 등산로"로서 칠곡면 내조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좌굴재'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가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바람덤] "바람덤"은 바람이 바위 사이로 많이 분다고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실제로 이곳에 서니 시원한 바람이 의령으로 부터 많이 불어 옵니다. 펼쳐지는 경치도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바람덤"의 의미를 확실히 아시겠지요? 이곳 "바람덕"을 설명한 사람은 모든 인터넷에서 "파란문" 밖에 없습니다. ㅎㅎ [바람덤 이정표] "바람덤"에 오면 정상까지 약 15분 정도면 갈수 있더군요. '절터샘'에는 石間水가 흘러 나온다는데.... [바람덤에 올라 내려다 본 지나온 504m봉] 우리나라 근대사에 경제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을 세 사람 꼽으라면 삼성그룹 "이병철씨" 현대그룹 "정주영씨" 대우그룹 "김우중씨"를 꼽는데 반대 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그들이 활동하던 시절에 "대한민국 주식회사"에 고급직원을 배치하라고 한다면 '경리부장 이병철', '공장장 정주영', '무역부장 김우중'이 제격이다"라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바람덤에서 내려다 본 내조리 小溜池] 그 많은 재산과 돈을 단 한푼도 못가지고 떠난 이병철씨와 정주영씨, 아직 살아 남은 김우중씨는 12조원이 넘는 빚을 지고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것을 두고 人生無常이라고 하지요? 너무 욕심 내지 말고 삽시다. 갈때 주머니 없는 수의 입고 한푼도 못가지고 떠나갑니다. [바람덤에서 바라보는 "한우산"과 "자굴산순환관광도로"] 의령군에서 어마 어마한 자금을 들여 "자굴산순환관광도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의령읍에서 자굴산과 한우산을 직접 오를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어 포장했다고합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와야 할텐데 도로에서 자동차 구경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례면에서 오르는 자굴산 능선 등산로] 자굴산의 주 등산로인 써래봉 능선입니다. 이 능선은 조금있다가 만납니다 [산행 괘적도] [써래봉 갈림길] 자굴산 주 등산로인 써래봉 능선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자굴산 정상에는 그늘이 없어 여기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병철회장의 세가지 불가사의가 있었지요. "미풍이 미원을 못 꺽는 것" "자식 마음대로 못하는것" "골프 뜻대로 않되는 것" 이외에도 "백설표 식용유가 해표 식용유를 못 이기는 것"이 있었고 "중앙일보가 동아일보를 넘지 못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써래봉 갈림길] 조선초 단종 복위 운동으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사육신" 그 "사육신" 중에 박팽년이 있지요? 그 박팽년의 후손인 "박두을 여사"와 이병철회장이 결혼하여 이건희씨를 낳았으니 자식 농사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이병철회장의 가업 계승은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와 비슷하지요? 태종 이방원이는 장남 양녕대군에게 왕권을 물려 주려고 세자 책봉까지 했지만 여러 이유로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주지요. 그리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세종대왕"이 되었습니다 이병철회장도 장남 이맹희씨에게 물려 주려했으나 능력이 없다고 셋째 아들인 이건희씨에게 삼성그룹을 넘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들 이건희씨는 삼성그룹을 세계 제1의 IT기업으로 발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건희씨의 후계자 '이재용'이는 좀 아닌것 같은데..... [자굴산 정상 가는 길] 써래봉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잠깐이면 갑니다 여기서 부터 일반 산객들을 많이 만날수 있었습니다 [자굴산 정상 가는 길] 좌굴재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으며 머릿재에서 3시간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자굴산 정상] 자굴산 정상은 매우 넓은 공간이 있으며, 의령에서 직접 오른 산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방이 확 터여 조망하기에 좋았습니다만, 오늘은 운무로 가시거리가 짧아 지리산 천왕봉과 황매산, 집현산등을 조망할수 없었습니다. 이제 언제 다시 온다고..에구 아쉬웠습니다 [자굴산 정상] "자굴산"을 한자로 표기해야하는데 컴퓨터 자판에는 없는 한자이라 쓸수가 없네요 "자"는 門 속에 者가 들어가 있는 글자인데 , 성곽의 망루를 뜻한다고합니다 "굴"은 山변에 屈이 합쳐진 글자인데 산 우뚝 솟을 "굴"이라합니다 이것은 제가 인터넷에 올리려고 어렵게 찾아 온 闍崛山 漢文입니다 [자굴산 정상석과 이정표]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는 "자굴산 闍崛山"이라는 산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산경표'에는 혼굴산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혼"의 한자가 또 컴퓨터에는 없습니다 "혼"의 한자는 門 속에 昏이라는 한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자굴산 闍崛山"의 "자闍"와 매우 유사하지요? 혼굴산 의 "굴"은 "자굴산 闍崛山"의 "굴" 山변에 屈과 같습니다 틀림없이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이 혼굴산을 자굴산으로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이 큼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를 한번이라도 들여다 보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굴산 안내] 어느 누가 이 산 이름을 "자굴산 闍崛山"이라고 지었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옛 선인들이 "혼굴산"이라고 한것을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바꾼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설명을 어떻게 느껴야 할지 묘한 생각이 듭니다 [자굴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의령읍']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지금 우리가 임의로 "진양기맥"이라고 하는 산줄기를 다음과 같이 표기해 놨습니다. 간단합니다 鳳凰山 - 月峯 - 金遠山 - 旗白山 -鳥嶺 - 官述峙 - 鳥谷嶺 - 鳥谷山 - 密岾 -黃梅山 葛項山 - 馬壯山 - 花旨山 - "혼굴산" - 德山 - 豆峴 - 道峴 - 集賢山 - 廣濟山 - 飛鳳山 이렇게 간단 단순하게 표기해 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다니는 소위 "진양기맥"이라는 산줄기가 맞는 것인지 틀리는 것인지 확실히 알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해석 하는 사람마다 약간씩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알수 없는 산이름과 고개도 있습니다. 모두 유추 해석해서 주로 각 고을 경계선을 따라 다닌다고 할수 있습니다. [자굴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한우산'] '진양기맥' 마루금이 지나는 한우산과 산성산이 조망됩니다 산경표에 나오는 산이름과 현재 지도상에 나오는 이름을 중요한 것들만 대조해 보겠습니다 산경표에 鳳凰山이라고 되있는 산이 현재는 南德裕山입니다 月峯月峰山이고 金遠山은 현재도 같은 이름인 金遠山입니다 旗白山은 현재는 箕白山으로 旗 → 箕로 바뀌어있습니다 鳥嶺은 안의에서 거창 넘어 가는 고개 초동리에 새재 마을이 있습니다 안의가 제 고향이라 잘압니다 [자굴산 하산] 자굴산에서 하산 하는 길에는 진달래가 아직도 활짝 피어 있으며 많은 산객들의 표지기가 매달려 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자굴산 정상에서 '쇠목재' 가는 길] 관술치(官述峙)는 삼각점이 있는 관술령(官述嶺 :606.1m)이고 조곡령(鳥谷嶺)으로 표기되었다가 뒷장에서 조곡산((鳥谷山)으로 나오는 지명은 지형도에는 비슷한 이름이 보이지 않으나 함양에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춘전재'와 그 동쪽으로 올라간 덕갈산으로 생각되어집니다 밀점(密岾)은 거창에서 산청으로 넘어가는 1006 지방도 고개가 '밀치(密峙)'로 표기되어 있어 혼돈되지 않습니다 황매산(黃梅山)은 지금의 이름과 변함 없이 같습니다.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이 마을이 매우 유명한 마을입니다. "가례면 甲乙里" 자굴산과 '우봉분맥'이 감싸고 안고 있는 듯한 甲乙里는 아무리 쎈 태풍이 불어와도 안전할듯합니다 [자굴산 정상에서 '쇠목재'로 하산 하는 계단] 경상남도 중앙에 자리한 '의령군'은 사실 크게 자랑할만한 産業이나 농업이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은 많이 배출했다고 자랑이 대단한데 대표적인 인물이 "紅依將軍 곽재우"와 "이병철회장"이랍니다. 이병철회장에 대해선 앞에서 아는대로 알려드렸으니 "곽재우 장군"에 대해 나름대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진주 남강댐에서 내려 오는 강이 의령읍 앞으로 흘러 삼랑진으로 가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낙동강과 합쳐져 남해 바다로 흘러 갑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에 "남강"은 일본군 병력과 군량미등을 운반하는 중요한 運送路였습니다 의병인 곽재우를 '임진왜란 3대 名將" 중에 한사람으로 만들게 되는 바탕이 "남강"이라고하는 일본군 運送路가 있어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곽재우 의병은 "남강"을 통행하는 일본군들을 주로 무찔렀으니까요. [진양기맥 마루금] 자굴산과 한우산을 연결하는 진양기맥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곽재우(郭再祐) 임진왜란을 떠 올리면 누가 생각납니까? 아마도 모두 불멸의 이순신 장군이 떠 오를것입니다 23전 23승. 不敗의 신화를 만들어 낸 "이순신장군" - 두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海戰歷史에 최고의 勝戰을 이룬 불가사의한 인물이지요. "이순신장군" 위대합니다. 그러나...... [자굴산에서 한우산으로 가는 마루금] "임진왜란 3대 명장"에는 이순신장군 뿐만 아니라 일본 쪽바리들로부터 직접 "紅衣天降將軍"이라는 칭호를 받은 忘憂堂 郭再祐 將軍이 있습니다 또한 전라도 광주지방에서 맹활약한 "감덕령 장군"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한결같이 오로지 求國의 一念으로 적과 싸웠는데 조선 왕조에서 최고 의심 많은 쪼다리 王인 "宣祖"로부터 그 功을 높이 평가 받기는 커녕 오히려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하거나 옥고를 치뤄야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두번의 옥고와 백의종군을 하고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김덕령 장군은 감옥에서 처참한 고문으로 옥사했습니다(제가 쓴 '무등산 산행기'를 찾아 읽어보세요) 곽재우장군은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이곳 의령의 "望憂堂"에서 生食을 하며 조용히 은거하며 살다 갔습니다. "임진왜란 3대 명장"은 이렇듯 쓸쓸한 최후를 보냈습니다 [자굴산에서 한우산으로 가는 마루금] 郭再祐 將軍을 우리는 紅依將軍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곽재우장군이 전쟁을 할때에 '붉은 옷'을 입고 싸웠다고 붙여진 별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곽재우장군이 '붉은 옷'을 입게 되는 동기를 알려 주고 있는 기록이 있어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야사 이야기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野史이기에 그냥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를 어느 누군가가 이야기 책으로 만들어 재미로 읽도록 한것이기에 믿어도 그만 않믿어도 그만인 그런 이야기 임을 미리 알려드림니다 그리고 필자인 '파란문'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가 가미될수 있도록 조금 꾸몄으니 오해 없으시기 바라니다 [쇠목재] 조선 선조시대 어느날..... 郭再祐는 문경에서부터 밤새 호랑이를 잡으려 좇아서나 한없이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불현듯 호랑이가어느 굴속으로 들어가 버리자 郭再祐는 남감해 졌습니다. 지금 까지 좇아 온것이 아쉬어 굴 속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으나 워낙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못하면 호랑이에게 당할까싶어 더이상 굴속을 들어갈수도 없었습니다. "아 이썅~ 밤새 이곳까지 쫒아 왔는데 그냥 가야 한단 말인가?" 郭再祐는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우선 급한 것은 산을 내려가 고단한 몸을 쉴곳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곽재우는 거져 호랑이를 좇아 정신없이 이곳까지 달려왔기 때문에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도 없었답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산을 내려가던 곽재우는 산골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를 발견하고 무작정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자굴산에서 한우산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쇠목재' 가는 길] 다 쓰러저가는 초가집에서는 아침 밥을 짓는지 여전히 매운 연기가 눈을 찔렀습니다. "여보시오 주인장 계시요?" 잠시후 부엌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처자가 나오더니 조심스럽게 밖을 살피며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밖에 누가 오셨는가?" 처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집이 거대한 사내가 나오며 말했습니다. 곽재우는 사내가 범상치 않음을 한눈에 알아 차렸습니다. 그는 사내에게 지난 밤 일을 설명하고는 잠시 쉬기를 청하였습니다. "그 호랑이가 문경에서 이곳 울진까지 좇아 오다니 형씨의 재주가 비상 하구려." 사내의 말에 곽재우는 잠시 아연질색했습니다. 조금은 뻥이 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울진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놈은 원래 중국 산동성의 태산에서 살다가 이곳까지 온 백년묵은 백호지요." 그 사내는 원래 중국 사람으로 자신의 아비가 유명한 포수였는데 그만 백호에게 목숨을 잃었답니다. 그래서 선친의 원수를 갚고자 백호를 잡으러 좇아다니다가 백호가 울진에 있는 이 산속의 동굴에 자리를 잡자, 그 또한 산골짝에 집을 지어 그 놈을 잡기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산행 괘적도] [쇠목재] '자굴산'과 '한우산' 사이에 잇는 "쇠목재"에 왔습니다 사내는 그동안 수차례 백호와 겨루었으나 서로의 힘이 비슷하여 어느 한쪽도 승부가 나지 않아 지금까지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답니다. 사내는 말을 마치자 불현듯 곽재우에게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곽재우는 겸손하게 사내의 청을 사양 하였습니다. "허허 형씨같은 분도 이기지 못하는 백호를 어찌 제가 상대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저 내가 백호와 싸우고 있을 때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한번만 큰소리로 호통을 쳐주시면 됩니다." 곽재우는 사내의 부탁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쇠목재] "쇠목재"는 '자굴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등산객과 관광객을 위한 펴의시설의 대명사 화장실을 잘 지어 놨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길을 넓히고 포장을 해서인지 깨끗했습니다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백호가 있는 동굴로 갔습니다. 곽재우는 바위뒤에 숨어서 사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굴 속에서 거대한 몸집의 백호가 성큼 뛰쳐나오더니 사정없이 사내를 향해 덤벼들었습니다. 사내는 연신 창을 휘둘러 댔고 백호는 날렵하게 몸을 굴려 자신을 찌르는 창을 잇발로 물고 흔들어 댔습니다. 곽재우는 바위뒤에서 호통 칠 생각조차 까맣게 잊고 싸우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잠시후 백호가 지쳤는지 어슬렁 어슬렁 굴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사내는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습니다. 곽재우는 그때서야 사내가 부탁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곽재우는 사내에게 달려갔습니다. "미안하오! 내가 그만 싸우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 호통 치는것을 잊었소." 그 말을 들은 사내가 신경질을 낼줄 알았는데 점잖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괜찮소. 그러나 내일은 꼭 호통치는 것을 잊지 마시오." [쇠목재 정상에 있는 '에코브릿지'] 다음날 곽재우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사내와 백호가 싸우는 싸움을 지켜 보았습니다. 싸움이 어느정도 진척될 무렵 곽재우는 바위뒤에서 뛰쳐나와 백호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네 이놈~!!!" 그러자 백호는 곽재우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사내는 이 기회를 놓치지않고 창으로 힘껏 백호의 뒷통수를 찔렀습니다. 백호가 괴로워 몸을 뒤트는 사이 사내가 백호의 목에 한번더 일격을 가하자 백호는 그대로 나가 떨어졌습니다. "이제야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 되었소 이모두가 형씨의덕이오.!!" 사내는 곽재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처자를 옆에 앉히고 말했습니다. "형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수 있었겠소? 사실 이 아이의 모친도 백호한테 목숨을 잃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와 함께 지내게 되었소이다. 이 아이가 자신의 원수를 갚아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평생 형씨를 모시고져 하니 거절 하지말고 거두어주길 바라오. 그럼 난 이만 갈 길을 가야겠소." 곽재우는 사내에게 이름이라도 알려 달라고 하였으나 그는 다시 보게 될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굴산 입구 안내석] 곽재우는 처자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왔습니다. 호랑이 잡으러 갔다가 예쁜 아가씨를 얻어 왔군요. 오히려 더 좋은거 아닌가요? 그후 몇년이 지나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곽재우는 의병을 일으켜 함안에서 적군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의병으로 나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농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전경험도 없거니와 군사 훈련도 받지않아 왜병들과 싸우기는 역 부족이었습니다. 곽재우가 더이상 왜병과 대적하기에는 무리일 것이라 생각하고 후퇴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붉은 옷'을 입은 장수가 어디선가 말을 타고 나타나더니 왜병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습니다. '클린트 이스트 우드'가 황야의 무법자들을 연발 따발총으로 쑥대밭을 만들때처럼 왜병들의 목이 가랑잎처럼 하나 둘 땅에 떨어졌습니다 [쇠목재 정상에 있는 '에코브릿지' 위로 건너 갑니다] 그 전투로 인해 왜병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결국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붉은 옷'의 장수는 후퇴하는 것을 보고서는 곽재우에게 다가왔습니다. "오래만이구려" 곽재우는 목소리가 귀에 익어 자세히 보았더니 백호를 잡았던 그 사내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뉘시오..!! 참으로 오래만이외다,"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아무 말없이 자신의 옷을 벗어 곽재우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을 왜 내게 주시오?" "이것을 입고 전쟁을 치러면 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외다." 사내는 그렇게 말한 다음 곽재우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후 곽재우는 사내가준 '붉은 옷'을 입고 전투에 나가면 매번 승리했습니다. 그 뒤 사람들은 곽재우를 일러 "紅依將軍 홍의장군"이라 부르게되었답니다. 그는 임진왜란이 끝나자 나라에서 부르는 것도 사양하고 자신의 식솔을 데리고 의령으로 가서 그곳에 "望憂堂"을 지어 거취하며 초야에 뭍혀 여생을 보냈습니다. - 끝 - [쇠목재 정상에 있는 쉼터 정자] 의령군은 자굴산과 한우산을 관광지화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리는 듯합니다 곳곳에 편의 시설을 만들고, 관광객과 등산객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주어야 할텐데...... 아직까지는 '쇠목재'에서 차량과 사람들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우산 오르는 된비알] '쇠목재'에서 한우산 방향으로 오르는 곳이 가파른 급경사 지역이었습니다 [마당바위에서 내려다 본 '갑을리'방향 "자굴산관광순환도로"] "紅衣天降將軍"이라는 칭호를 받은 忘憂堂 郭再祐 將軍에겐 몇가지 특별한 일화가 있습니다. 첫번째가 과거에 2등으로 급제하였으나 의심 많은 쪼다王 "宣祖"가 내용이 너무 비판적이라고 합격을 취소하는 사건이 벌어졌었지요. 아 무슨 X같은 경우입니까? 요즘 같았으면 王이 탄핵을 받을 일이었지만 당시엔 御命이 헌법이었으니 어쩔수 없었지요 그 일로 郭再祐는 다시는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고, 낙담한 郭再祐는 고향에서 백수 생활을 하며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답니다 [마당바위에서 바라 본 '쇠목재'와 자굴산]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不敗神話를 만들었다면 육지에선 유일하게 "의병대장 郭再祐"만이 백전백승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의병"으로서 단 한번도 敗하지 않은 유일한 將軍이 郭再祐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적군인 일본놈들에게서 "紅衣天降將軍"이라는 칭호를 받은 忘憂堂 郭再祐 將軍입니다 [마당바위에서 내려다 본 '대의면 신전리'방향 "자굴산관광순환도로"] 세번째 일화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宣祖"가 벼슬을 내립니다 과거시험에서 2등으로 합격한 자신을 직권으로 낙방시킨 "宣祖"가 내리는 벼슬을 郭再祐가 받겠습니까? "쪼다리 王인 너나 잘 먹고 잘살아라~!! 난 니가 주는 벼슬은 싫다!" 무려 29번이나 벼슬을 내렸는데 모두 거절한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열 받은 宣祖가 곽재우를 귀양까지 보내 3년 동안 귀양살이를 시켜도 벼슬을 받지 않았습니다 벼슬의 내용 중에는 많은 높은 벼슬이 있었습니다만, 이순신장군이 맡았던 "삼도수군통제사"라는 벼슬까지도 있었습니다 [페러글라이딩] 의령군 공식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이곳에 있더군요. 페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이 부릅습니다. [우봉지맥 갈림길] "진양기맥"에서 분기하는 "우봉지맥"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진양기맥 종주자들이 '우봉지맥'으로 가 알바를 한다는군요. [우봉지맥 갈림길] 이곳에서 알바를 하는 종주자들은 대부분 北에서 南으로 종주하는 사람들이겠지요 갈림길 표지판이 있으니 "우봉지맥"으로 가지 마시고 우측 '진양기맥'으로 가세요~ [한우산 오르는 길] "한우산" 오르는 길은 평이합니다. 무슨 O.K목장을 가는듯합니다 [한우산을 오르며 뒤돌아 본 지나온 길] 서울의 공동묘지 - 망우리 망우리에 대한 글을 예전에 쓴적이 있는데..... 망우리는 그뜻이 공동묘지로 느껴질 정도로 죽음 같은 것을 연상시킴니다 하지만 '망우리'는 무척 의미있는 뜻이지요 "望憂里"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해 주는 곳입니다 그곳에 누워 잠들면 아무도 깨우지 않습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잎도 보이지 않고 까마귀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더러운 아웅다웅 싸우며 살겠다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편히 누워 한줌의 흙으로 변해 갑니다 [한우산 오르는 길에서 뒤 돌아 본 '쇠목재'와 '자굴산'] 제가 새삼스럽게 한우산을 오르며 "望憂里"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紅衣天降將軍"이라는 칭호를 받은 郭再祐 將軍의 호가 "望憂堂"입니다 자신의 아호를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수 없는 "望憂堂"이라고 지었으니 그는 그 당시의 정치,경제,사회현상이 얼마나 잊어버리고 싶도록 더럽게 느껴지는 세상이었는지 그의 처신에서도 가늠해 볼수 있겠습니다 어명을 여겨 귀양을 갈 지언정 29번의 벼슬도 사양하고, 生家를 "望憂堂"이라고 이름짓고 자신의 호 까지도 "望憂堂"이라고 칭하며 조용히 살다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공격해 왔을 때 정규군이 무참히 패배 할때에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우리나라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백전백승의 전공을 세우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한우산 주차장에서 바라 본 "찰비골"] '한우산'은 韓牛山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소와 관계있는게 아니냐고 뭍습니다만 한 여름에도 찬 비가 내린다고 차가울 寒비 雨를 사용하여 寒雨山입니다 寒雨山에서 흘러 내리는 차가운 물이 계곡을 이룬다고 "찰비계곡"이라 한답니다 이 계곡에서는 여름에도 계곡물에 5분 이상 발을 담구고 있지 못한다고 하니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라고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한우산 오르는 길에서 뒤 돌아 본 '한우산 주차장'] '우봉지맥'이 분기하여 나가는 산줄기가 뚜렷이 보입니다 [한우산 정상] 한우산 정상으로 유유히 올라 갑니다 [한우산 정상석] 836m - 상당히 높은 산인데도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마도 山勢가 둥글고 나무나 암릉이 없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듯합니다 차가울 寒비 雨가 합쳐진 寒雨山입니다 자굴산이 의령의 형님산이고, 한우산이 동생산이라 하는군요 [한우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진양기맥 마루금] 지나온 마루금 좌측으로도 "자굴산관광도로"가 깨끗하게 포장되어 벽계리 까지 뻗어 있습니다. 한우산과 자굴산은 이제 쉽게 오를수 있게 되었답니다 [한우산 정상에서 바라 본 '자굴산'] 자굴산이 897m이고 한우산이 836m이니 자굴산이 61m 더 높군요 [한우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대의면 신전리'방향 ] 평온한 산골 마을이 산줄기를 병풍 삼아 길게 뻗어 있습니다 [한우산 정상에서 바라 본 '산성산'] 진양기맥 마루금이 지나는 '산성산'입니다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 하고 버스를 타고 하산합니다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에서 올려다 본 '산성산'] 한우산에서 내려와 의령군에서 합천군으로 들어 왔습니다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에서 바라 보는 산성산이 岩山으로 보입니다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에서 올려다 본 '산성산']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 마을] 쌍백면 외초리는 고향의 멋을 한껏 풍기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정리 정돈이 된 산골 마을입니다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 마을 지킴목] 언제 다시 와 볼려나~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를...... 이곳에서 뒷풀이를 하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서울백두클럽 회장님과 외초리 이장님] 이 마을을 그냥 지나가는 산객들이라하더라도 우리 마을을 찾아 주어 반갑다고 이장님이 나와 반겨 주었습니다 산행기에 우리 외초리 마을을 잘 소개해 달라고 했는데 제가 아는 자료가 없어 사진 몇장 올렸습니다. 이장님 연세가 1945년생이라니 나이에 비해 무척 젊게 보이시죠? 감사합니다. 이장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한북천마지맥1구간] 명덕삼거리-서파고개-주금산-금단이고개 漢北正脈 雲岳山에서 수원산 사이의 "굴고개" 올라 가는 "명덕삼거리"에서 鑄錦山(814m)-鐵馬山北峰(787m)-鐵馬山南峰(711m )-天摩山(810m)- 백봉(587m)-적갑산(561m)-예봉산(683m)-율리봉(597m)-예빈산(590m)- 능내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입니다 [天摩枝脈]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일요일에 4구간으로 나눠 종주할 예정입니다 [한북천마지맥1구간] 오늘은 제1구간으로서 "명덕삼거리"에서 서파사거리를 건너 주금산을 오르고 "금단이고개"에서 비월교로 하산할 예정입니다 [포천 서파 사거리] 4월12일(일) 오전 8시20분 상봉터미날에서 사창리행 직행버스를 타고 "천마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포천 "서파고개"에 9시15분쯤 내렸습니다 버스 요금은 3,900원이었고 약55분 걸렸습니다 오늘부터 "천마지맥"을 시작합니다. 天摩枝脈이 분기하는 漢南正脈 명덕삼거리를 찾아 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앞에 보이는 "서파 입체교차로" 지하차도로 들어가 좌측으로 "포천시청방향"으로 약10분정도 올라 가면 됩니다 [포천 서파 사거리] 저희는 漢南正脈 명덕삼거리를 직접 마루금을 따라 갔다가 되돌아 오려고합니다 길 건너편 "죽여주는 동동주 비빔밥집"(무지무지 유명한 비빔밥집입니다) 옆 골목으로 올라 가면되는데 그 길이 "천마지맥 마루금"입니다. 비빔밥집 뒤로 한북정맥 수원산이 보입니다 [천마지맥 분기점-명덕 삼거리 가는 길] '죽여주는 동동주 비빔밥집' 뒤에 산줄기가 보이시죠? 그 산줄기가 천마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산줄기입니다 [천마지맥 분기점-명덕 삼거리 가는 길] 서파입체교차로 지하차도를 지나 올라 가는길 보다 이길이 더 빠르고 오리지날 길입니다 [천마지맥 분기점-명덕 삼거리 가는 길] 民家를 지나면 바로 마루금입니다. "명덕삼거리까지는 약 10분정도 걸립니다 가는 길의 사진은 여기까지 보여드리고 올때 나머지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천마지맥"은 여기 길만 알면 나머지는 고속도로입니다 [명덕삼거리] 약10분이 걸려서 "명덕삼거리"에 왔습니다 실제 와서 보니 삼거리가 아니고 사거리였습니다 바로 앞 이정표가 서있는 옆 산줄기가 "한북정맥 운악산"에서 오는 마루금이며 명덕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 "한북정맥 수원산"으로 이어집니다 "천마지맥"은 이 "한북정맥"에서 좌측으로 분기하여 팔당댐까지 내리 뻗어있습니다 [한북정맥 운악산구간 날머리] 한북정맥의 운악산에서 오는 마루금이 명덕삼거리로 나오는 "날머리"입니다 한북정맥을 종주한 산객들은 모두 여기를 통과 했을 것입니다 [명덕삼거리] 한북정맥의 운악산에서 오는 마루금이 수원산으로 가려면 이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 앞에 보이는 산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천마지맥"은 좌측 산줄기입니다 [한북정맥 수원산 가는 들머리] [굴고개 가는 길] [천마지맥 분기점] 천마지맥은 서쪽으로 난 좁은 길로 약 20m정도 들어 가면 좌측에 보이는 전봇대 뒤로 올라 가면 됩니다 [천마지맥 들머리] 전봇대 옆 "천마지맥" 들머리 9시 40분에 기나긴 "天馬枝脈"을 start합니다 [서파 사거리로 가는 마루금] 마루금은 비교적 확연하게 잘 나 있습니다 이제 이 길을 따라 다시 서파 사거리로 돌아 가면 됩니다 [서파 사거리로 돌아 가는 마루금] 올라 올때 사진이 여기 무덤 바로 직전까지의 사진이 있습니다. 무덤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가면 올라 올때 마루금입니다 마루금을 버리고 오른쪽 마을길로 갑니다 [서파 사거리로 돌아 가는 마루금] 올라 올때 마루금을 버리고 마을길로 서파 사거리 건널목으로 갑니다. 시간 단축을 위해서.... [서파 사거리] 서파 사거리 '죽이는 동동주 비빔밥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서파 사거리]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바로 진입하면 오늘 길찾기는 끝나고 오로지 외길을 따라 길잃을 염려 없이 계속 걷기만 하면 됩니다 [천마지맥 주금산 가는 길] 오늘 '천마지맥 1구간 산행기'는 간단합니다 걸어야 할 거리는 약17km이지만 길안내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얘깃꺼리도 없고 구경꺼리도 없어 단순 할수 밖에 없으니 산행기를 쓰는 필자 '파란문'은 편하고, 애독자 여러분들은 재미없을 것입니다 ㅎㅎ [천마지맥 주금산 가는 길] 구경꺼리 거의 없는 산길을 외롭게, 혹은 호젓하게 7시간 30분을 걷습니다 열심히 걷는 일 이외에는 별로 할일이 없으니.....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까 고심 중입니다. ㅎㅎ [천마지맥 주금산 가는 길] 천마지맥은 다른 곳의 지맥과 달리 서울 근교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많은 산객들이 다녀 갔기에 길이 잘 뚤려있습니다 [개주산] 서파사거리에서 30~40분 걸으면 좌측으로 시커먼 산봉우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개주산"이라고하는 이름이 조금 괴상한 산이 시꺼먼스로 보입니다. 높이가 675m이며 앞으로 계속 개주산을 옆에 끼고 전진합니다 [천마지맥 주금산 가는 길] 길을 횟갈리게하는 안부는 없습니다. 조그만 안부를 몇개 지나칠 뿐입니다. 모두 직진하면됩니다 [천마지맥 주금산 가는 길] 이런 枝脈 마루금에는 일반등산객이 찾지 않기 때문에 엄청나게 조용합니다 조용한 산행을 좋아하는 산꾼들이 주로 枝脈 을 다닙니다 [임도] 처음으로 새로운 길을 만나는데 '林道'입니다. 낙옆만 밟고가다가 새로운 것이란게 조금 넓은 '林道'입니다. ㅎ [임도] 林道'를 따라 한동안 걷습니다 [임도 갈림길] 처음으로 유의하여야할 갈림길이 나옵니다 새로운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를 버리고 가운데 산길로 직진하여 나아 가야합니다 [헬기장] 처음으로 헬기장이 나옵니다. 헬기장을 지나면 암릉구간이 이어집니다. 조금 경치가 좋아질려고합니다. [한북정맥 수원산 구간] 헬기장을 지나면 산마루에 올라섯다는 걸 의미하기에 좌우를 조금씩 조망 할수 있습니다 우측으로는 "한북정맥"의 "수원산"이 잘 조망됩니다만, 날씨가 좀 않좋아 흐릿하게 사진이 나오는군요. 아랫쪽 마을이 포천시 내촌입니다 [주금산이 아득히 보입니다] 이곳에서만 천마지맥 주금산까지의 산줄기가 조망됩니다 사진에서는 역시 흐릿합니다만 실제는 "주금산"까지 볼수있습니다 [583m봉] 수많은 봉우리를 넘습니다만 제법 높은 봉우리인 583m봉에 오릅니다 [583m봉] 10시 4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아직까지 한번도 쉬지않았습니다. 이곳에서 한숨 돌리고.... [개주산] 멀리만 보이던 "개주산"이 이젠 바로 옆에 와 있습니다 많이 온것입니다. '개주산' 뒤로 "서리산"이 전설처럼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잇습니다 [무명봉] [642m봉] '개주산' 갈림길이 있는 642m봉을 오릅니다. 이곳에도 "防火線"을 만들어 놨는데, 실효성 없이 만들어 놨군요 최소한 각흘산에 있는 防火線 정도는 되어야 산불을 어느 정도 차단할수 있을것입니다 [642봉에서 내려다 보는 내촌] [642봉에서 바라 보는 개주산] [642봉에서 바라 보는 694봉과 "주금산" 정상] 이제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인 "주금산" 정상이 가까워졌습니다 뒷쪽에 보이는 산이 "주금산"입니다. "주금산"이라니까 발음적으로는 '주검' 같은 뉘앙스가 풍기는군요. 그러나 "주금산"은 鑄錦山으로 비단산으로 불리워진답니다 여하튼 힘들게 왔습니다 [개주산 갈림길] "防火線"이 끝나는 지점이 "개주산 갈림길"입니다 좌측이 개주산으로 가고 우측이 주금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11시 45분경에 이곳을 통과합니다 [개주산 갈림길에서 바라 보는 694봉과 주금산 정상] '주금산'정상이 더 가까워 옵니다 [사기막골 갈림길] 684m봉을 넘으면 "사기막골 등산로"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기서부터 주금산 일반 등산코스"입니다 [사기막골 갈림길] 베어스타운 옆 사기막골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주금산' 일반등산객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생각하면됩니다 [암릉구간] '주금산'을 肉山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정상부는 岩山이더군요 [점심식사] 685m봉을 넘어 가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주금산 정상 바로 못미쳐서 점심식사를 한것입니다 12시 20분경입니다 [정상을 향하여] 식사를 하고 오르막을 오르면 힘이 더 듬니다 그러나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오르니 한결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베어스타운 갈림길] 정상을 코 앞에 두고 "베어스타운"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베어스타운 갈림길] 정상까지 90m남았다고 하는군요. 정상이 보입니다 [주금산 정상] 드디어 "주금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주금산 정상] 1시 10분에 도착했으니, 서파 사거리에서 명덕삼거리를 갔다가 여기까지 오는데 3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鑄錦山 정상은 제법 넓은 공간에 정상석이 독특한 모양을 하고 힘겹게 오른이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주금산 정상석] 는 쇳물을 부어 용기를 만든다는 의미이고, 은 '비단'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산 아래 동네이름이 "비금리"로 "선비들이 놀러와 거문고를 숨겨 놓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가야금은 한자로 伽倻琴이라고 쓰는데 비단 錦가야금 琴은 틀리는데... 가야금과 거문고의 차이점 아세요? 단순비교를 하면 가야금은 12줄이고 거문고는 6줄이죠. ㅎㅎ [주금산 정상 이정표] [등상코스 안내도] [정상 헬기장] 정상에서 철마산 방향으로 넓은 헬기장이 있습니다. 주금산 정상에는 헬기장이 두군데나 있더군요. [주금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베어스타운] 오른쪽 계곡이 포천시 내촌에 있는 "베어스타운"입니다 [독바위] 鑄錦山 정상 우측에 鑄錦山을 대표하는 봉우리인 "독바위"가 우뚝 솟아있습니다 禿은 '대머리'라는 뜻이지요 서울 금천구에 '독산동'이라고 있지요. 요즘 그곳에 가면 미국 수입 쇠고기가 100g당 1,000원에 살수있는 푸줏간이 움집해 있습죠. 그 '독산동'이 禿山洞'입니다 [주금산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불기산 서리산 축령산] 주금산에서 분기하는 축령분맥이 확연하게 산줄기를 보여줍니다 '축령산' 뒤에 아스라이 보이는 산이 명지지맥의 끝 청평 호명산의 건너편에 있던 깃대봉 사진의 우측 마을이 수동면입니다 수동면의 계곡을 통칭해서 "수동골"이라고 알려져있지요? 여름엔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난 1998년도 폭우로 홍수가 나 '수동골'이 완전히 초토화 되었지요 아름답던 '수동골'이 自然美를 많이 잃고, 시멘트 콩크리트들로 보수되었더군요. [주금산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주금산 정상과 "운악산", "개주산"] 간신히 "雲岳山" 사진 한장 건졌습니다 앞 좌측이 "주금산 정상부"이고 가운데 있는 산이 "개주산"이며 가운데 멀리 한북정맥"雲岳山"이 보입니다. '개주산' 오른편에 "가평베네스트 C.C."가 보입니다. 제가 자주 다니던 골프장이지요 [군 방카] [주금산 팔각정] '주금산 팔각정'은 정상에 있지않고 바람이 덜부는 곳에 세워져있습니다 [팔각정에서 바라 보는 독바위] 포천시 문화원이 설명하는 지명의 유래에서 이 바위는, 옛 사람들이 德의 상징이라 하여 德岩(덕바위)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근처에서 보면, 기이하면서도 웅장하게 생겼지만, 친근감을 주어 무엇인가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고 하여 德이 있는 바위라고 지어졌다고합니다 달리 독바위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바위의 형상이 먼 곳에서 보면 흡사 독(甕)과 같이 생겼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禿바위라고도 하는데 禿은 '대머리'라는 뜻이지요? 서울 금천구에 '독산동'이라고 있지요. 요즘 그곳에 가면 미국 수입 쇠고기가 100g당 1,000원에 살수있는 푸줏간이 움집해 있습죠. 그 '독산동'이 禿山洞'입니다 [팔각정 옆 헬기장] "천마지맥 2구간"에 가야할 "철마산과 "천마산"이 보입니다 [헬기장에서 바라 본 독바위] 독바위에 머리카락이 조금 나 있네요. ㅎㅎ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가야할 철마산 북봉 아래 금단이고개] 오늘 가야할 산행 구간의 끝이 "금단이 고개"인데 "금단이 고개"는 앞에 보이는 "철마산 북봉" 바로 앞에 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이제까지 온 길 많큼 남았습니다. [헬기장 아래에서 휴식] 오늘은 선두가 앞에서 후미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서울백두클럽' 횐님들이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무러익어 가고 있습니다 [주금산 하산] 주금산을 내려 갑니다. 앞으로도 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금단이고개까지 갈수 있습니다 [비금리 하산 갈림길] 일반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주금산 등산로 "비금리 방향"으로 가는 안부입니다 [비금리 하산 이정표] 비금산을 찾은 일반 산객들은 모두 이곳에서 하산합니다만 우리는 枝脈을 감으로 계속 '철마산'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걷고....또 걷고.... [주금산 정상] 주금산 정상은 점점 멀어집니다 [650m봉] 650m봉우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주변 경관을 감상합니다 이제 큰 봉우리는 대부분 넘었습니다. [광릉 C.C.] 650m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광릉 C.C.가 잘 보입니다. "광릉C.C."가 있는 곳이 "팔야리 八夜里"라는 곳인데,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 있다가 귀환하는 도중 이곳에서 여덟 밤을 묵고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천마지맥 2구간] 가운데 시커먼 산이 "철마산 북봉"이고 그 뒤 제일 먼곳에 있는 산이 "천마산"입니다 다음 구간은 오늘보다 더 높은 산을 더 많이 넘어야합니다 하지만 오늘 구간은 이제 끝나 갑니다 [주금산 정상] 주금산 정상은 완전히 멀어져 갑니다 "광릉"은 세조의 무덤이지요? [헬기장] 1구간 마지막 헬기장입니다. 이곳에서 주금산을 찾은 산객들을 만났는데 지맥을 종주하는 중이라고 하니까, 지맥이 뭐냐고 물어 보는 초보산객들이었습니다 백두대간, 정맥의 새끼 산줄기라니까 이해하기 쉽다고...깔깔깔 웃었습니다 '서울백두클럽 카페'와 '홍어와 무인도'를 방문하겠다고 했는데....왔으면 손 들어요! ㅎㅎ [금단이 고개 가는 길] "철마산"이 다가 옵니다. 금단이 고개도 다가 옵니다 [금단이 고개] 이름이 그럴듯하여 대단한 고개인줄 알았더니 그렇고 그런 고갯길 '천마지맥 1구간' 마루금 종점입니다 3시 3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금단이 고개 이정표] '금단이 고개'에서 오른쪽은 광릉내 팔야리로 내려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수동면 금단계곡으로 '비월교'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좌측 '금단계곡' - '비월교'료 내려 갑니다. 다만 다음 제2구간 들머리가 될 이곳 '금단이고개'는 광릉내에서 오를려고 했는데 거리가 길고 엄청 괴롭다고하네요. 그래사 다시 '비월교'에서 오를 예정 [금단계곡 하산] [금단계곡] [금단계곡] 금단계곡에서 차가운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씻고, 휴식을 취하고.... [금단계곡] [비월교] 오늘 산행의 마지막 [비월교 산행 날머리] 이곳에서 330-1번 청량리에서 비금리까지 다니는 좌석버스를 타고 상봉터미날에서 내려 회식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총 이동거리 16.3km 전체 이동시간은 7시간 26분 전체 평균 이동속도는 2,2km [산행 개념도] 다음 제2구간에서 다시 만나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728x90




      [진양기맥3구간]晋州 集賢山을 가다 청현고개-삼면봉-집현산-삼면봉-무너미고개-진주 집현산- 내리실고개-서낭재-동현고개-막고개

      晋州라 天里길 - 이천구년 봄바람이 급하게 불어 오는 晋州라 天里길을 달려 갔습니다 晋州의 鎭山 "集賢山"을 정점으로 [진양기맥3구간]을 찾아 보고 '길없는 길'에서 봄향기와 함께 남쪽나라 晋州에 안기고 왔습니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
           2009년 3월28일(토)
           꽃 소식과 함께 봄향기 불어 오는 南쪽 나라 晋州를 향해 떠났습니다
           대전과 통영을 잇는 고속도로 휴게소 "덕유산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진양기맥3구간"으로 신나게 달렸습니다
           
           [서울백두클럽]
           오늘도 "진양기맥"을 종주하고 있는 "서울백두클럽"과 함께 합니다
           오늘이 진양기맥의 3구간이라 1 - 2구간은 참여하지 못하고 3구간부터 참여합니다
           앞으로도 모든 구간은 참여하지 못하고 몇 구간은 빠질수 밖에 없으며
           가지 못하는 몇구간은 다음에 시간을 내어 별도로 가야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오지 산행을 주특기로 하는 "서울백두클럽"은
           정말 특징있는 산악동호회입니다.
           산객들로 뒤범벅이 된 유명한 산으로 산행을 하는 것보다 오지 지맥길을 더욱 사랑하며
           산행의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진짜 산 나그네 들이지요 
           
           [靑峴 고개]
           서울에서 약4시간을 달려서 진주에 도착하였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서,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로 넘어 가는 고개인
           靑峴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전 11시 30분경 출발~~!! 산으로~
           
           [靑峴 고개]
           靑峴 고개는 진주의 산악마라톤코스의 반환점이 되는 곳이더군요
           晋州에서 가장 높은 山인 集賢山의 고갯길  靑峴으로 마라톤 건강달리기를 하는 곳
           
           [靑峴 고개]
           '靑峴'의 이 '고개'라는 뜻이므로 "靑峴고개"라 하는 것은 "驛前앞"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므로 그냥 '靑峴'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峴, 峙. 재, 坡등의 고개를 의미하는
           단어에 다시 '고개'를 붙이는 습관이 생겨 이제는 일반화 되었습니다
           문헌을 찾아 보니 靑峴은 임진왜란 때에 큰 승리를 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더군요
           임진년 10월 9일 김준민장군이 이끄는 500여 군사가 진주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군하는 길에 
           이곳에서 커다란 승전고를 올렸더군요
           임진왜란하면 이순신장군의 海戰만 생각나는데, 陸地에서도 곳곳에서 피흘리며 싸웠습니다
           진주 근처에 와 봐야 그 때 그 처절했던 임진왜란을  상기하기 쉽습니다
           
           [첨단양돈연구소]
           청현고개 아래 계곡에는 경상남도 첨단양돈연구소가 83ha 넓이의 면적에 개설되어 
           이 지역 양축농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상남도는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 단체가 125억원을 투입하여 관내 양돈농가들의 품종개량, 
           유전자 및 생명공학연구, 냉장육 중심의 고품질 돼지고기 생산과 선진기술보급 등을 목적으로 
           첨단 양돈연구소를 2001년 10월 26일 준공하고, 주로 지리산 흙돼지 종자의 보존과 증식으로
           일본으로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는군요
           오른쪽 능선이 집현산 정상에서 내리 뻗은 줄기입니다
        
           [靑峴고개 '진양기맥3구간' 들머리]
           진양기맥2구간 '광제산'에서 흘러온 산줄기는 이곳 "청현"에서 집현산으로 옮겨갑니다
                
                [송전철탑]
                 급한 된비알을 잠시 치고 오르면 송전철탑이 앞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송전탑에서 바라보는 '광제산']
           '진양기맥2구간'의 대표산인 "광제산 廣濟山"이 조망됩니다
           
           [송전탑에서 바라보는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
           조금전 '청현'에서 보았던 '첨단양돈연구소'와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가 보이며
           오른쪽 멀리 아득히 "황매산"이 보이는군요.
           앞으로 저 '황매산'을 통과하여 남덕유산으로 갈것입니다
           '남덕유산'에는 아마 가을쯤 도착할것입니다
        
           [集賢山 오르는 된비알]
           오늘 산행에서 가장 경사가 심한 된비알을 30분정도 치고 오릅니다.
                
                [쉼터 무덤]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되니 무덤이 있는 쉼터가 나옵니다
                죽으란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쉼터는 나옵니다. ㅎㅎ
        
           [集賢山 오르는 된비알]
           무덤에서 약15분정도 다시 된비알을 오릅니다
             
           [三面峰]
           '靑峴'에서 45분정도 급한 경사면을 오르니 "삼면봉 三面峰"이 길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12시 15분경에 도착했으니 '청현'에서 45분 걸렸습니다
           集賢山은 7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래서 七峰山이라고도 한답니다.
           이 三面峰 봉우리도 7개 봉우리 중에 하나입니다.
           이 봉우리는 553m봉우리로서, 진주시 명석면과 산청군 생비량면, 산청군 신안면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라고 일명 三面峰이라고한답니다
        
           [三面峰 이정표]
           集賢山 정상은 좌측으로 500m 지점에 있어, 集賢山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와야합니다. 약 10분정도 걸리더군요. (왕복 20분)
           集賢山 정상은 진양기맥 마루금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集賢山에 와서 集賢山정상을
           밟아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集賢山 정상 가는 길]
           集賢山 정상 가는 길은 오솔길 같았습니다.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에 갔다 옵니다
           
           [集賢山 정상]
           集賢山 정상이 신선한 모양으로 다가 옵니다
           神仙이 앉아 놀기 쉽도록 친절하게 암봉 위에 평상까지 만들어 놨습니다
           
           [集賢山 정상]
           老松이 그늘을 이루고 集賢山 일곱봉우리가 뱅그르 보이는 集賢山 정상의 모습입니다
           남쪽지방에 소나무 숲이 인상적입니다
                
                [集賢山 정상석]
                集賢山의 높이가 577m라고 큼지막하게 표기해 놨습니다
                集賢山의 높이는 572.2m인데 577m라고 표기한 이유가 있더군요.
                集賢山은 산청군과 진주시에 걸쳐 있는 산인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이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산청군에 있습니다.
                진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앞으로 갈 集賢山의 진주集賢山이 가장 높은 산인데, 
                그 봉우리의 높이는 실제 548m입니다. 그런데 진주시에서 그곳의 정상석에 572,2m로
                표기해 놨습니다. 진주의 鎭山을 더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허위 표기를 한것이죠
                기분이 나빠진 산청군은 진짜 集賢山의 최고봉인 이곳의 높이를 "진주集賢山"의
                거짓 높이 보다도 높은 577m로 또 거짓으로 표기하게 됬다고합니다.
                지방자치단체 끼리 감정싸움으로 산높이가 허위로 표기된 사연이랍니다
           
           [集賢山 정상]
           '三面峰'에서 후미 그룹이 올라 오고 있습니다
           
           [集賢山 정상에 바라 보는 集賢山 봉우리들]
           集賢山은 말발굽 모양으로 생겻습니다.
           가운데 분지를 뱅그르 돌아 가면서 일곱개의 봉우리가 솟아있습니다
           우측의 봉우리가 진주사람들이 우기고 높이까지 548m를 572.2m로 표기하며 자랑하는
           "진주 집현산"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집현산 東峰"입니다
           
           [集賢山 정상에서 점심 식사]
           集賢山 정상은 점심식사 장소로는 최고 神仙名堂이더군요
           
           [三面峰으로 회귀]
           진양기맥 다음 길을 가기 위해 三面峰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무너미 고개]
           '진주 집현산'으로 가는 고갯길의 이름이 "무너미 고개"입니다
           무너미에 대해 혹시 아시나요?.
           '무너미'라는 단어는 실제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입니다
           논에 물을 데고 일정 水位가 되면 넘쳐 흘러 나가도록 논뚝보다 약간 낮게
           만들어 놓은 '물빼는 곳'이 있지요?. 즉 "물 넘어 가는 곳".
           물 넘어 가는 곳이 순수 우리말로 "물넘이"입니다.
           "물넘이"가 지방에 따라 음운변화를 거쳐 "무너미"로 불리워 진것입니다.
           "무너미"는 전국의 곳곳에 있는 일반명사인것이죠.
           이곳 "무너미"는 천지개벽 당시에 물이 넘나 들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무너미 고개]
           '무너미'를 지나 가파른 526m봉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526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集賢山과 三面峰]
           526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좌측의 三面峰과 우측의 集賢山정상이 보입니다
        
           [526m봉 삼거리]
           526m봉 봉우리는 집현산의 五峰이라 부리워진다는데,
           특별히 봉우리라고 느껴지지않고, "진주 집현산 등산로" 삼거리가
           526m봉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오르는 길]
           526m봉에서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오르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정상]
           12시 25분경 "晋州集賢山"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불감시초소에 감시원 아저씨가 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동서남북이 확터여
           주변 경치를 모두 감상할수 있었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정상석과 안내도]
           "晋州集賢山"의 실제 높이는 548m입니다. 
           조금전, 진짜 572.2m 높이의 집현산 정상에서 설명 드린바와 같이 높이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지방자치단체들간의 감정싸움의 결과입니다
        
           [晋州의 眞山 "晋州集賢山"  제단]
           晋州集賢山 정상은 옛부터 "기우제"를 주로 지내던 곳이었답니다.
           전설도 있었는데 '기우제'에 관한 소설같은 말도 않되는 이야기들이라 생략합니다
           제단은 헬기로 최근에 옮겨와 설치했다고 산불감시원이 알려줬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전망도]
           晋州의 산객들이 즐겨찾는 등산코스라고 하는데 등산객은 몇명 정도만 보였습니다
           
           [晋州의 眞山 "集賢山"에서 바라 본 南쪽 "晋州"]
           아주 희미하게 멀리 남쪽으로 보이는 산이 "사천의 와룡산"이라고 합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南海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晋州에 왔는데 논개가 생각 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촉석루로 유명한 晋州城에 논개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의기사(義妓祠)"에서 많은 사람들이
           '논개'의 영정을 구경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논개'를 기생으로 알고있을 것이며, 좋게 말해 "義妓" 정도로 알고 있을것입니다
           오늘은 "논개"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며 산행을 하겠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에서 바라 본 東쪽 "의령 자굴산"]
           "자굴산"은 앞으로 가야할 산입니다.
           "논개"에 대해선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593(선조 26).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1593년(선조 26) 진주싸움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1593년 6월 김천일(金千鎰)·최경회·황진·고종후(高從厚) 등 관군과 의병의 결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등이 
           이끄는 일본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의분한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서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이때부터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義巖)이라 부르게 되었다
      
           
           [晋州의 鎭山 "진주集賢山"에서 바라 본 北쪽 "산청 황매산"]
           황매산도 지척에 보입니다. 앞으로 넘어야할 산입니다
      
           論介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論介는 경상도 진주 여자가 아닌 전라도 덕유산 밑에 있는 장수에서 태어난 전라도 여자입니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여자도 아니고 소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죽은 나이가 18살이었으니까요. 물론 옛날엔 일찍 시집을 갔지만....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나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같은 성장발육을 함으로 같다고 봐야합니다
           백과사전에 까지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만, "KBS역사스페샬"과 모 대학교수의 논문을
           참고하여 제가 요약 정리를 하여 論介의 삶을 간략히 알려드리겠습니다
      
           
           [晋州의 鎭山 "진주集賢山"에서 바라 본 西쪽 "지리산 천왕봉"]
           아~~!!
           지리산~!! 천왕봉~!! (반드시 "천왕봉"이라고 해야합니다. 쪽바리들이 '천황봉'이라한것입니다)
           똑똑한 산이라고 智理山이라고 하며,
           白頭山에서 부터 흘러 왔다고 頭流山이라고도 한다지요?
           
           [晋州의 鎭山 "集賢山"에서 바라 본 東쪽 "集賢山 東峰"]
      
           논개가 1574년 9월 태어나 1593년 7월 죽었으니 18살에 남강 의암에서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論介의 성은 氏이므로 이름은 朱 論介입니다. 
           논개의 성을 처음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주 달문"이고 어머니가 "함양 박씨"입니다
           집안이 가난한 천민이라는 설이 난무하지만 아버지 "주달문"은 漢學에 능통해서
           장수에서 청년자제들의 훈학에 종사한 훈장이어서 천민이 아니라는것입니다
           논개는 양반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천민도 아니었다는 반증입니다
           더더욱 기생은 아니였답니다
      
           
           [集賢山 東峰으로 가는 길에 있는 헬기장]
           멀리 '의령의 진산 자굴산'이 보입니다
      
           論介가  진주 촉석루에서 임진왜란 때에 쪽바리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論介가 14살 나던해 1587년, 아버지가 돌아 갔습니다.
           집안 살림이 당연히 어려워졌지요. 
           논개의 작은 아버지 - 주문달이라는 천하건달이 있었는데
           이 틈을 이용해 숙부인 주문달이 논개를 부자집에 팔아 먹었다고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논개의 어머니가 관아에 고발을 했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이 사건을 맡은 현감이 다름아닌 당시 무주-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崔慶會이었습니다
           최경회가 논개의 사건 전말을 알아보고, 가정생활이 어려운 '논개'를 찾아 자신의 집에서
           병약하여 병상에 누어있는 자기 부인의 병 간호를 맡게했다고 합니다
      
        
           [集賢山 東峰으로 오르는 길]
      
           논개는 열심히 일하고 부인의 병간호를 정성껏 하였답니다
           최경회의 부인이 논개의 외모와 마음 씀슴이에 감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병으로 목숨이 다해 가는 부인은 남편인 현감 최경회에게 
           논개를 소실로 맞을 것을 제안하였고,
           부인이 죽고 난 다음 최경회는 논개를 소실로 맞아 들였답니다
           소녀는 졸지에 현감의 와이프가 되었으니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밀물처럼 몰려와 썰물처럼 사라지는 것이란 말인가~ 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회는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하여 
           진주로 떠나는데 논개도 함께 따라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말이 승진이지 전장터로 가는 것이 승진이겠습니까?
           전라도 장수의 시골 소녀가 경상도 진주로 가게 되는 사연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쪽바리들의 戰力은 陸地에서 막강하여
           임진왜란 3대 大戰인 진주성전투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등이 이끄는 쪽바리軍에게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논개의 남편인 최경회도  전사합니다.
           에구~ 슬퍼라~
      
           
           [중요한 갈림길]
           集賢山 東峰으로 오르면 集賢山 東峰정상으로 가는 길과 하산하는 길 - 갈림길이 나옵니다
           集賢山 東峰정상은 직진하지만, 진양지맥길은 오른쪽으로 90도 꺽어 내려 가야합니다 
        
           [集賢山 하산하는 길]
      
           남편을 잃은 論介는 슬픔을 넘어 분노로 변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쪽바리들에게 짖밟힌 조국과 비참하게 죽어 간 남편의 복수를 위해 
           기생으로 변장하여 촉석루 연회장에 참석한답니다
           "너 죽고 나 죽자"고 외장 "게야무라 후미스케 (主谷村六助)"를 껴안고
           강낭콩꽃 보다도 더 푸른 남강에 몸을 던집니다
           몸 바쳐서~
      
        
           [集賢山 하산하는 길]
           논개의 행동은
           핵교 때 모두 열심히 읽고 외우고 했던 "변영로 시인"의 詩를 탄생 시킵니다
      
                  논개  
                            변 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集賢山 하산하는 길에서 내려다 본 '응석 저수지]
      
           논개의 행동을 후세에 "義妓"라고 칭송합니다
           그러나 당시 논개의 나이가 18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여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수 있는 애국심을 가졌었단 말인가!~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처절하게 할 정도의 무서운 집념의 괴기 소녀였단 말인가!~
           사실이라면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은 섬짓한 소녀이지만
           여하튼 좋게 해석한 후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복수심과 진정한 애국심으로 믿겠습니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ㅎㅎ
      
           
           [林道]
           집현산을 벗어나니 林道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갑니다
           
           [월명암 갈림길]
      
           우리나라의 '논개'와 비슷한 여인으로는 이스라엘에도 있었고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우리나라의 논개와 같이 추앙을 받는 여인이 있습니다
           "유디트"
           무척 유명한 여인이지요?
           특히 신정아 사건 기억 나시나요? 
           미국 예일대 박사학위 받았다고 허위 학력으로 동국대 교수까지 된 처녀.
           청와대 정책기획실장 변양균과의 연애 편지 속에 등장해서 저도 알게 됬습니다만....
           편지 속에 이런 구절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저도 그에 대한 글을 쓰기도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The Kis"와 같이 당신과 키스하고 싶고, "유디트"와 같은 정사를
           하고 싶어요"
           제가 쓴 글 "신정아가 하고 싶었던 그 키스"라는 글을 제 블로그에서 찾아 볼수있습니다
           신정아의 편지 속에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라는 그림 속의 인물 "유디트"
           '유디트'라는 여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태인 과부로 
           아시리아군(軍)에 포위되었던 페르시아의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장인 호로페르네스에게 접근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호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연회에 초대했답니다. 
           연회가 끝나고 단둘이 있게 되자 유디트는 호로페르네스를 술 취하게 하고 
           그의 목을 짤라 포대에 넣어서 페르시아로 가져왔다고합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섬짓한 이런 여자를 유태인들은 
           '유디트'를 충성스럽고 고귀한 여성으로 여기고있답니다.
           우리나라 '논개'와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되겠죠?
           하기사 "안중근"도 일본놈들 입장에서는 한낱 비겁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선 "義士"로 불리워 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信念있는 테러리스트는 義士"라고 하지요
      .
                
                지난 2005년 5월 진주 촉석루 의기사에 있던 논개영정이 시민단체들에 의해 떼내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정을 그린 화가가 친일파 "김은호 화백"이 그렸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일본놈들을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며 산화해간 "논개"의 영정을 친일파가 그렸다는 것은
                논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참지 못할 수치였던 모양입니다.
                사실 18살의 소녀치고는 성숙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윤여환 화백"이 그린 영정이 걸려 있다는군요
      
        
           [월명암 갈림길 이정표] 
           이곳이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진양기맥 마루금은 정수리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집현산의 명소라는 "月明庵"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고 다시 이곳으로 옵니다  
           
           [月明庵]
           月明庵은 조그마한 암자였습니다
        
           [진양기맥 마루금 가는 길]
           마루금은 '정수리 가는 길'인 林道를 따라 갑니다
           
           [진양기맥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月明庵']
           마루금 비포장로를 따라 가다가 뒤 돌아 보았습니다
           
           [진양기맥 마루금 중요한 갈림길]
           길찾기 어려운 '진양기맥 마루금'이 이곳에서 좌측 조그마한 능선으로 가야하기에
           조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똑바로 가면 진주 집현면으로 가버립니다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 가야 미천면 "내리실 고개"로 갈수 있으니 매우 유의 해야할 곳입니다
           
          [길 없는 길 - 진양기맥 마루금]
           길없는 길을 헤치고 나아 갑니다
           이번 진양기맥3구간에서 지도의 필요성을 매우 느꼈습니다
           앞으로 독도법을 공부하여 이런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최소한 나침판과 지도는 필수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진양기맥 마루금 - '내리실 고개' 가는 길]
           좌측 임도를 아래에 두고 계속 가야합니다
           결국 '내리실고개'에서 이 임도와 만나더군요.
       
           [진양기맥 마루금 - '내리실 고개' 가는 길]
           산객들의 자취가 거의 없는 마루금을 따라 
           길을 찾으며 가야합니다
           
           ['내리실 고개' - 33번 국도]
           내리실고개가 드디어 보입니다.
           
           ['내리곡 고개' - 33번 국도]
           잡풀숲을 헤치고 고개로 내려 갑니다
           
           ['내리실 고개' - 33번 국도]
           33번 국도는 아직 공사중에 있었으며, 차량들은 아직 구도로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곧 개통을 하겠더군요.
           
           ['내리실 고개' - 33번 국도]
           내리실고개 구도로와 공사중인 신도로를 건너 건너편 210m봉으로 갑니다
                 
                [210m봉 오르는 길]
                벌써 몇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다리가 힘들어 지기 시작합니다
           
           [210m봉 오르는 길]
           
           [210m봉에 오르며 뒤 돌아 본 '내리실 고개'와 지나온 마루금]
              
           ['서낭재'와 210m봉 오르는 길]
           
           [서낭재]
           '서낭재'라고 하기에 제법 멋있는 곳인줄 알았더니 이런 쬐끄만 고개였습니다.
           실망~
           
           [서낭재에서 바라 본 "33번국도"와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경상남도 중앙부에 자리 잡은 오지입니다.
           정말 아주 시골이지요.
           경상도는 이렇게 지형이 농업에 적합하지 않아 
           먹을 게 항상 부족하여 옛부터 전라도를 쳐들어 갔나 봅니다
           
          [가야할 221m봉]
           
           [東向고개와 가양할 221m봉]
           
           [東向고개]
           東向고개는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였으며 마을 이름이 東向里여서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東向 저수지]
           221m봉을 오르며 내려다 본 東向 저수지
           
           [221m봉 부근]
           이곳에서 휴식과 쇠주 한잔했습니다.
           이제 한 고개만 넘으면 종착지이기 때문입니다
           
           [막고개 가는 길]
           오른쪽 '250m봉'을 넘어야 합니다
           
           [250m봉 정상]
           이곳에서 알바하기 쉽습니다.
           왼쪽으로 가야 "막고개"로 갈수 있습니다.
           우리 일행 일부도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 가 알바를 했으니 유의 해야합니다
           
           [막고개 - 1007번 지방도]
           드디어 막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싣고온 관광버스가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습니다.
           
           [뒷풀이]
           
           [뒷풀이]
           "서울백두클럽"의 독특한 뒷풀이는 오늘따라 더욱 독특했습니다.
           여느 산악회에서는 느껴 볼수 없는 따뜻한 사랑이 뭍어있는 뒷풀이이니까요
           오늘은  산거북님과 봉자언냐가 맛있는 육계장 20명분을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진주 미천면 "막고개"에서 펼치는 육계장 뒷풀이는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서울백두클럽"만의 자랑이겠습니다.
           
           [생일 축하 파티]
           또한 오늘이 산거북님 생일이라 생일 축하 파티도 함께 열였습니다.
           어둠이 깊어 가는 "막고개"에서 생일 축하를 받는 "산거북님"은 무척 즐거워 보였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 이런곳에서의 생일파티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색다른 생일파티까지 함께한 "산거북님과 봉자언냐님"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산을 아끼시고 즐기시길 기원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파란문 올림-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총산행 거리 : 약 14km
           총산행 시간 : 약 6시간 40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