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걷는
[북한산 둘레길 44km 2부]
'평창마을길 구간 5km'
전심사 입구-사자능선 하단-평창동뒷길-평창공원 지킴터-형제봉입구 지킴터
"1부"에서 이어 집니다
2010년 9월 29일(수) 흐림
[평창마을길 구간 개념도]
"평창마을길 구간"은 5km로서 1시간 13분 걸렸습니다.
(공식 안내에서는 2시간 30분 걸린다고 해 놨는데.....)
["전심사" 입구] 오전 9시 30분
지난 1부 "옛성길 구간"에서 계속 이어지는데, 기억을 돕기 위해서 다시 이 사진을 올립니다.
["전심사" 입구-"평창마을길" 구간]
지난 1부-"옛성길 구간"을 지나 이곳에서부터는 "평창마을길 구간"이 시작됩니다.
지도상으로는 아직 "구기동"입니다만, 구간 구분을 위해서 "평창마을길"이라고 한듯합니다
["전심사"로 가는 길]
"전심사"는 조그만 주택으로 절간같지 않은 절간이더군요.
"전심사"가 막다른 골목에 있고, "전심사" 문앞에서 평창동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습니다.
[평창동으로 넘어 가는 길]
"전심사" 문앞을 통과해 오름짓을 조금합니다.
[평창동] 9시 34분 ★길 주의★
전심사에서 조금 올라 가면 주택가가 나오는데 길안내판에서 보는바와 같이
여기서 좌측으로 난 길로 가야합니다.
["사자능선"으로 가는 길] ★길 주의★
좌측길로 접어 들면 오솔길이 나오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모퉁이 쯤에
우측으로 올라 가는 "사자능선" 등로가 있으니 길주의를 해야 합니다.
["사자능선"으로 올라 가는 길] ★길 주의★
오솔길 모퉁이에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산속으로 올라 가는 길"이 있으니
유의하면서 올라 갑니다.
["사자능선"으로 올라 가는 길]
제법 경사가 있는 능선을 올라 가는데 "사자능선 하단부"입니다.
이 "사자능선이 "구기동"과 "평창동"의 행정구역 경계선이 되더군요.
["사자능선"으로 올라 가며 뒤 돌아본 '세검정'방향]
"사자능선"으로 올라 가며 뒤돌아 보니 "인왕산, 안산, 상명여대"가 조망됩니다.
'상명여대' 뒷산 능선으로 "인왕산"까지 연결되 있는 성곽이 "탕춘대성"입니다.
[사자능선 조망대로 가는 길] [사자능선 조망대] 9시 50분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올라 가면 "사자능선 조망대"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사자능선"은 휴식년제로 더 이상 올라 갈수 없습니다.
['사자능선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구기동'방향] 9시 50분
서쪽으로는 "족두리봉"이 "탕춘대성 능선" 뒤로 '북한산 서부능선'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가운데 마을이 구기동이고, 유명 빌라들과 "이북5도청'이 있습니다.
['사자능선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비봉", "사모바위", "승가사"]
북쪽으로는 "국보2호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 碑峰"이 솟아있고,
유명한 "사모바위"도 지척에 보입니다.
"사모바위" 아래에 "승가사"도 보이는데 유명한 절이지요?
"승가사"까지 절간과 관련있는 차량은 올라 갈수있습니다.
['평창동' 뒷길] 9시 57분
"사자능선 조망대"를 넘어 조금 내려 오면 바로 "평창동 뒷길"입니다.
['평창마을길' 구간 안내도]
"전심사"에서 "사자능선 하단부"를 넘어 "평창동"으로 넘어 와 "북한산 그린벨트"와
맞닿아있는 "평창동 뒷길"을 잘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사자능선'출구와 평창마을길]
사진의 앞 좌측이 "사자능선 전망대" 출입구가 되며,
여기서부터 실질적인 "평장마을길 구간"이 시작됩니다.
[평창동 뒷길에서 바라보는 "북악산"]
"북악산"과 인왕산"이 가까이 조망되는데 "한양城廓"을 이루는 산들입니다.
"북악산" 중턱에 "성곽"이 라인으로 보이시죠? 저 산 앞이 "청와대"입니다.
['청련사'] 9시 59분
"사자능선 출입구"에서 2분 정도 전진하면 "청련사"라는 절간이 나옵니다.
"둘레길"은 저 "청련사"안으로 들어가 정문으로 내려 갑니다.
['청련사' 정문 통과] 10시
"청련사" 마당에서 건물 옆으로 난 정문 계단으로 내려 갑니다.
[평창마을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북한산 그린벨트와 맞닿아 있는 평창동에서 제일 높은 뒷산길을 걸어 가며
이것 저것 구경합니다.
[평창마을길]
중간 중간 평창동에서 올라 오는 길들도 만나고....
[평창마을길] 10시 9분 ★길 주의 ★
"평창동 마을길 구간"은 북한산 그린벨트와 맞닿아 갈수 있도록 최대한 둘렛길을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 뚜렸하게 보이지만, 어쩔수 없이 마을 골목길로 가는 길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계단을 따라 급경사를 올라 가야 합니다.
[평창마을길]
그린벨트에 가능한 가깝게 하려고 이렇게 길을 만든듯 합니다.
"북한산 둘레길"에서 유일한 급경사 계단길입니다.
[삼거리]
급경사 계단을 올라 오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갑니다.
다시 그린벨트에 가장 가까운 둘레길로 왔습니다.
[평창마을길 현위치 안내]
길안내와 현위치를 잘 알려 줍니다.
[부잣집들]
평창동 부잣집들이 제각각 모양새를 갖추고 뽐내며 도열해 있습니다.
[달팽이 모양 주택]
특별한 인간들은 인간이 사는 집 속에서 살기 보다는 달팽이처럼 살고 싶은가 보죠?
별의 별 짓거리를 하며 나름대로 돈푼깨나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평창마을길'에서 바라보는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정릉터널" "북악터널"이 가까워 오는 가 봅니다.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이 지척에 보이는 것을 보니....
그러고 보니 "북악스카이웨이"를 가 본지도 오래 됐나보군요
조만간 걸어서 "평창동-북악터널 위-북악스카이웨이-북악산"으로 가볼까 합니다.
["일선사", 북한산성 "대성문"으로 가는 "평창출입구"] 10시 28분
새로 단장한 "평창공원지킴터"
여기서 "일선사", "대성문"방향으로 가는 북한산 등산로 출입구입니다.
[북한산 평창 출입구앞 이정표]
길 안내를 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릉"까지는 3,5km라고 알려 줍니다.
생각보다는 비교적 가깝습니다.
[평창마을길]
"형제봉"이 보입니다.
저 "형제봉" 등산로 입구까지가 "평창마을길 구간"입니다.
[평창마을길]
평창마을길 둘레길에는 절간, 기도원등 종교집단들이 운집해 있으며,
부잣집들도 북한산 산허리를 파먹으며 뚫고 들어와 있습니다.
[연화정사] 10시 38분
"蓮華精舍""精舍"는 주로 "유교 儒敎"에서 고명한 "유사 儒士"의 강학소로서 학문을 강의하고
정신을 수양하던 곳에 붙여지는 명칭인데, 요즘은 불도를 닦는 절간으로도 쓰이는가 봅니다.
[형제봉 입구] 10시 43분
"연화정사"에서 약5분 정도 가면 "형제봉 등산로 입구"가 나옵니다.
여기서 좌측 산속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형제봉 입구-"명상길"]
"형제봉 등산로 입구"까지가 "평창마을길 구간"이고,
이곳부터는 "명상길 구간"이 되겠습니다.
[형제봉 입구-"명상길"]
"형제봉 등산로 입구"에서 "평창마을길"을 버리고 산속으로 올라 갑니다.
"전심사 입구"를 9시 30분에 통과하여 "평창마을길 구간"을 지나 여기까지
1시간 13분이 걸려 왔습니다.
"3부"로 이어 집니다.
여유롭게 걷는
[북한산 둘레길 44km 1부]
"옛성길 구간" 2.7km
불광역-불광근린공원-장미공원-탕춘대성-구기동-전심사 입구
[옛성길 구간 개념도]
불광동 근린공원-장미공원-탕춘대성-구기동-전심사 입구,사자능선 하단까지 2.7km구간
[불광역 2번 출구] 8시 15분
9월29일(수) 오전 8시 15분에 "불광역 2번 출구"를 출발합니다.
[구기터널 가는 길]
불광동 사거리에서 '구기터널'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북한산 둘레길"을 알려주는 안내표지판은 불광역에서부터 아주 짧은 간격으로 설치되있습니다
한글을 알고, 장님이 아니면 "북한산 둘레길"을 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철저히 길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불광동 근린공원-북한산생태공원] 8시 26분
'불광역 2번 출구'에서 7~8분 '구기터널'방향으로 올라 가면 전에는 볼수없었던
새로이 만들어진 근린공원이 나오는데 "북한산생태공원"이라고 부르더군요.
공원 뒤로 "북한산 서부 능선"에 있는 유명한 "족두리봉"이 보입니다.
특히, 이 근린공원은 '북한산성 입구'방향으로 가는 둘레길의 시작점이기도하며,
우리가 "북한산 둘레길"을 돌고 종착지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북한산 생태공원 앞 이정표]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옛성길"이 시작됩니다.
[북한산 생태공원에서 장미공원으로 건너 가는 횡단보도]
불광동 근린공원 앞 구기터널로 가는 도로를 건너 가야합니다.
이곳의 신호등은 수동으로 작동시키는 신호등이므로,
필히 길을 건너는 본인이 버튼을 눌러 신호를 바꾸고 건너야 합니다.
[장미공원-거북약수터] 8시 29분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장미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에는 "거북약수터"로서 양질의 약숫물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물 길으러 오고,
"북한산 향로봉-비봉"방향 등산로 입구이기도 합니다.
['장미공원' 현위치 안내도]
현위치를 알려 주는 안내도가 곳곳에 설치되 있어 매우 편리합니다.
[장미공원에 있는 이정표]
돈을 많이 들여 거의 완벽하게 설치한 이정표
한글을 읽을 줄 알고 장님이 아니면 안개낀 날에도 찾아 갈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무지무지 발전한 우리나라
[장미공원에 있는 "옛성길" 들머리]
여기서 부터 된비알이 시작되는데 약15분 정도만 오르면 다시 평지가 됨으로
염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옛성길" 登路]
12~3분 정도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이 登路는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 '대남문'으로 가는 등산로이기도해서
많은 산객들이 이용하는 등산로이기에 유명합니다.
[쉼터] 8시 43분
12~3분 된비알을 오르면 "쉼터"가 나오며, 바로 앞에는 '산불감시초소'도 있는데
여기서 웃옷을 벗고, 간편한 차림으로...
[쉼터에서 북한산 조망]
'쉼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서부능선
정말 한폭의 동양화 같습니다.
"불광역 9번 출구"에서 '족두리봉'방향으로 올라 '대남문'까지 가서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등산로도 유명하지요?
[전망대로 가는 길]
쉼터, 산불감시초소에서 5분 정도 가면 '전망대'로 올라 가는 계단이 나옵니다.
이 계단도 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만든것이군요.
[전망대에서 북한산 조망] 8시 50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저 북한산을 한바퀴 삥 돌아 가는 '둘레길'을 오늘 가고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남쪽 "안산"조망]
전망대에서 남쪽을 보면 '안산'이 조망되고....
[전망대 아래 쉼터]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 가면 다시 쉼터가 나옵니다.
이 쉼터도 새로 만들었군요.
[詩]
이해인 시인은 천주교 수녀님이죠. 본명은 이 명숙이고, 교수님이기도하고,,,
건강이 않좋다는 소식도 있었는데...
[인왕산, 안산 조망]
이곳에서 남쪽으로 뒤돌아 보나, 인왕산과 안산이 한꺼번에 조망됩니다.
[탕춘대성 암문] 9시 9분
전망대에서 20분 정도 완만한 평지를 걸어 가면 "탕춘대성 암문"을 만납니다.
이 "탕춘대성 암문" 아래로는 "구기터널"이 뚫려있으며, 둘레길은 '구기터널'을
구기터널 위로 넘어 가는 것이 둘레길이 되고 있습니다. 이해가 가는지요?
[탕춘대성 안내]
"탕춘대성 蕩春臺城"은 이 근처에 "탕춘대 蕩春臺"라는 누각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蕩春臺"는 현재 "세검정" 바로 옆에 세워져 있던 '樓臺'인데, 지금은 그 터만 있습니다
'연산군'이 1506년에 산수 좋은 이곳에 연회장소로 지었고,.수많은 "흥청"들을 데리고
음주가무를 즐기며 방탕하게 놀았던 山水좋고, 경치 좋은 "蕩春臺"였다니....
"방탕할 탕 蕩"이니 상상이 갑니다.
"흥청망청 興淸亡淸"이라는 단어가 이때에 탄생되었으니.......모두 아시죠?
[탕춘대성 암문]
"탕춘대성" 暗門을 지나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흥청망청 興淸亡淸"이라는 단어에 대해 잠깐 언급합니다.
국어사전에는 '흥에 겨워 마음대로 즐기는 모양'
또는 '돈이나 물건 따위를 마구 쓰는 모양의 부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유래는 아시는바와 같이 "연산군 燕産君"에 의해 만들어졌지요?
[갈림길] ★길 주의★ 9시 13분
"탕춘대성" 暗門을 지나 20m쯤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둘레길'은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직진하면 "탕춘대성"을 옆에 끼고 "향로봉"으로 가는 등산로 입니다.
[구기동 으로 하산하는 길]
朝鮮은 숭유억불의 이념으로 출발하나 한양城안에는 절간을 하나 두었죠.
그 절이 "원각사"라는 절이지요?
현재의 종로2가 "탑골공원" 자리에 민간인 가옥 200여채를 헐고 "원각사"를 지었습니다.
성종때까지 왕족들이 자주 찾아 선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던 큰 절이었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보2호-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습니다.
국보1호만 기억하지 마시고, 국보2호도 기억해 주세요. 국보3호는 '북한산진흥왕순수비'인데,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ㅎㅎ
[구기터널] 9시 22분
"탕춘대성 암문"에서 내려오면 "구기터널"을 만납니다.
이곳에서 세검정 방향으로 조금 내려 갑니다.
19살에 임금이 된 연산군은 즉위 이듬해에 어머니 폐비 윤씨의 억울한 죽음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이 폭발하며, 이성을 잃은 연산군은 관련 신료와 성종의 후궁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교살하여 죽이고, 폭정과 과음과 쾌락에 빠져들었지요.
'연산군'은 선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던 "원각사"를 즉각 폐지하고 기생양성소로 개편하였습니다.
오늘날 국립대학-서울대에 해당하는 "성균관"도 학생들을 내쫓고 유흥장으로 만들어 버렸죠.
[구기동 "이북5도청"입구 삼거리] ★길 주의★
구기터널에서 조금 내려오면, "이북5도청"입구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바로 길을 건너 '세검정'방향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단, 길을 건너는 횡단보도가 "이북5도청"방향으로 2~30m 위에 있으니 약간 올라가서
돌아 길을 건너 가야합니다.
"이북5도청"방향으로 계속 올라 가면 절대 않됩니다. ★길 주의 ★
["이북5도청"입구 삼거리 횡단]
위에서 설명한바와 같이 북쪽을 보면 보이는 황단보도를 이용해 길을 건너 갑니다.
길안내판은 아주 잘되있습니다.
연산군은 채홍사를 전국에 파견하여 처녀든 기혼자든 미모를 갖춘 여성이면 무조건
차출하여 한양으로 뽑아올리게 하였는데, 그 숫자가 무려 만 명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또 다시 이 중에서 출중한 인물을 가려내어 3백여 명을 '흥청 興淸'이라는
특별한 쾌락의 집단으로 만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酒色에 빠져들었죠.
["세검정"방향으로 내려 감]
'흥청'이라고 다 같은 '흥청'이 아니었습니다.
'연산군'의 마음에 들어 잠자리를 같이 하면 "천과 흥청 天科興淸"이라 하여 급수를 높였습니다.
그렇지 못한 시다바리 '흥청'은 반대로 "지과 흥청 地科興淸"에 머물렀습니다.
이 '흥청'들의 왕에 대한 아부와 총애를 받을려는 아귀다툼은 극에 다다르기도 했지요.
그 정점에는 "장녹수"라는 뇨자가 있었지요? ㅎㅎ
['천지골 추어탕'] ★길 주의★ 9시 28분
조금 애려 가면 "천지골 추어탕"이라는 음식점이 나오고,
이 음식점 다음 골목길로 올라 가야 합니다.
'연산군'이 제일 좋아한 놀이가 "말타기"였지요? 진짜 말이 아니라 뇨자들 말...ㅎ
연산군은 매일 같이 천 명에 가까운 흥청을 불러 놓고 떠들썩하게 잔치를 베풀었고,
술이 한잔 취하면, 놀이를 시작했는데, 왕은 자신이 말이 되어 흥청들을 태우고 기어 다니지 않나
반대로 자기가 그녀들 등에 올라 타고 돌아 다니는 "말타기" 놀이를 즐겼답니다.
에구~ 부러워~
['천지골 추어탕' 옆 골목으로 진입]
관심을 가지고, 이정표를 유심히 봐야 전봇대에 붙어 있는 이정표의 방향을 볼수있습니다.
이런 곳의 길안내판은 조금 크게 했으면 더 좋았겠는데....옥의 티
["전심사" 입구] 9시 30분
'천지골 추어탕'이라는 음식점에서 약2분 정도 골목으로 올라 가면 "전심사"라는
조그만 절간 입구가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북한산 둘레길'의 "옛성길 구간"입니다.
'연산군'은 '흥청'들을 무척 아꼈는데 한가지 예를 들면,
이들 '흥청'이 이동할 때는 사대부들이 가마를 메게 해서 '흥청'을 모시고 다니도록했지요.
신분사회의 변화치고는 천지개벽의 수준이었습니다.
연산군은 그도 모자라 민간 유부녀도 예쁘다는 말만 들으면 강간을 일삼았죠.
심지어 큰 아버지인 월산대군의 부인, 즉 큰어머니까지 강간했으니......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 죽음에 대한 처절한 보복이었지요.
그렇게 흥청들과 놀아나다 망했다 해서 백성들 간에 "흥청망청 興淸亡淸"이란 말이 생겨났다죠.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흥청 興淸"은 한자 그대로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다"라는 뜻이었는데
"흥청 興淸"은 연산군의 비행으로 나쁜 뜻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가
서른살의 젊은 나이로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전심사" 입구-"평창마을길" 구간]
여기서 부터는 "평장마을길"이 시작됩니다.
'불광역2번 출구'에서 여기까지 1시간 15분이 걸렸습니다.
["전심사"로 가는 길]
"2부"로 이어집니다.
서울市界종주5구간
지축역-응봉-앵봉-벌재-봉산-
수색교-가양교-궁산-방화역
3월 23일 (화)
때늦은 꽃샘추위가 눈까지 몰고와 기승을 부린 다음날
다른 곳에 사는 분들은 정말 한번 가보기 어려운
서울의 서쪽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를 다녀 왔습니다.
한번쯤은 가봐야 할곳이란 생각을 가지고 돌아 왔는데
정말 가볼만한 곳인지 저와 함께 가 볼까요?
[서울市界의 서쪽부분 구글어스]
오늘 우리가 가려고 하는 "서울市界"는 지축역에서 은평구의 경계이기도한 서쪽 부분입니다.
"서울市界"를 완벽하게 따라 갈수는 없고 최대한 가까이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얀 점선이 "서울市界"입니다.
[지축역 앞] 오전 9시 15분 [창릉천 통일교]
전철3호선 지축역에서 9시 15분에 출발하였습니다.
지축역 앞에는 '서울市界'를 이루고 있는 "창릉천"이 있고
그 '창릉천' 위에 있는 다리 이름이 "통일교"였습니다. 통일교를 건너 갑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응봉"으로 산봉우리에 헬기장이 있으며 "서울市界"가 되겠습니다
"지축역'은 한자로 "종이 紙","감탕나무 추杻"를 쓰는데
한문사전에 나와 있는대로 발음을 하면 "紙杻驛 지추역"이 되어야 하는데
왜? "지축역"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도 뜻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옛날에 이곳에서 '종이'를 많이 생산 했나봅니다.
['지축역'에서 '창릉천 통일교'를 건너 '응봉'으로 가는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서울市界"는 '붉은 선'이며, 우리가 걸은 길은 '초록색'입니다.
즉 "서울市界"를 완벽하게 따라 갈수는 없어 다소 편리하고 간단하게 갔음을 알려 드림니다.
[창릉천 통일교에서 바라본 '삼각산']
'창릉천 통일교'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구름에 휩쌓여 신비감을 더하며, 앞에는 3호선 전철이 달리고 있습니다
[1번 국도 구파발 위 市界] 9시 28분
'지축역'에서 약10분정도 걸어 "1번 국도-통일로"를 건너 가면
구파발에서 문산으로 가는 1번 국도에 '은평구界 표지판'이 나옵니다.
이 표지판이 "서울市界 표지판"이기도 합니다.
이 표지판에서 약2-30m 앞에 좌측으로 "서울市界" 들머리가 있으니 이 표지판은 매우 중요합니다
[市界 들머리]
'은평구界 표지판'에서 약2-30m정도 올라 가면 좌측으로 철문이 있는 들머리가 나옵니다.
철문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현재 이 앞에 주유소를 짓고 있더군요.
[市界 '응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지축역']
자동차도 다닐수 있을 정도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며 뒤돌아 서서
'지축역'에서 온 길을 촬영했습니다.
사진의 가운데 '창릉천 통일교'도 보이는군요. 이해하기 쉽죠?
사실 오늘 '서울市界 5구간'의 길찾기는 여기까지가 유의해야 할 구간이고
앞으로는 매우 쉽습니다.
['응봉' 오르는 市界 능선] 9시 38분
들머리에서 약10분 정도 오르면 '서울市界'인 능선이 나옵니다.
오른쪽 계곡에서 올라왔습니다
꽃샘추위로 겁을 먹고 옷을 많이 입고 와서 이곳에서 다시 벗습니다. ㅎㅎ
위로 난 길이 '응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이곳에서 바라보는 "三角山"이 "서울市界"를 더욱 선명하게 알려 줍니다.
백운대에서 북한산성 주능선을 타고, '문수봉'에서 '의상봉'으로 내려와
'창릉천'을 끼고 '지축역'으로 와서 이곳으로 오른 것입니다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이 가깝게 보입니다.
['응봉' 오르는 登路]
약10분 정도 다소 급경사를 오릅니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응봉' 정상 헬기장] 9시 48분
1번국도 들머리에서 약20분 정도 오르면 "응봉" 정상이 나오며,
정상은 헬기장이었습니다.
꽃샘추위로 어제 내린 눈이 아직도 쌓여 있습니다.
하여간 이번 겨울에는 겨울 내내 눈구덩이 속에서 산행을 했습니다 ㅎㅎ
['응봉'에서 바라보는 '앵봉']
"응봉"에서 바라 보는 앞으로 가야 할 "앵봉"이 잘 보이며,
稜線이 선명하게 S자로 '서울시계'를 알려 줍니다.
이제부터는 등산로(산책로)가 잘 나 있고 이정표도 잘 설치되 있어 길을 못찾을 염려는 없습니다
"앵봉"에는 軍안테나 철탑이 있어 사방 어디서나 찾을수 있는 방향틀이 되겠습니다.
['앵봉'으로 가는 길]
비교적 넓은 산책로를 따라 갑니다.
오늘 날씨가 흐려 시야가 트이지 않아 촬영을 못했는데,
능선의 우측 계곡에는 "1.2.3. Golf C.C."가 있습니다
[무명봉] 10시 2분
'응봉'에서 약10분쯤 걸으면 이름을 알수 없는 조그만 봉우리가 나옵니다.
주민들을 위한 간단한 운동시설도 있는 봉우리입니다.
['앵봉'으로 가는 길]
'서울市界' 능선 좌측으로는 "갈현동", 우측으로는 "고양시 창릉동"이며,
"1.2.3.골프장"이 있습니다.
["서오릉" 뒷 능선] 10시 14분
연두색 철책이 "서오릉 西五陵" 담장입니다.
다시말해 '서울市界'는 "서오릉 담장"인것입니다.
['앵봉'으로 가는 "서오릉" 뒷 능선]
"서오릉 담장"을 따라 "앵봉"까지 쭈-우-ㄱ 갑니다.
['앵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응봉']
'앵봉'정상 근처에서 뒤돌아 보니 헬기장이 있던 "응봉"정상이 보입니다.
우리가 걸어 온 길, 즉 '서울시계'도 확실히 가름할수 있군요
['서오릉'과 군부대]
오른쪽으로 "西五陵"과 군부대가 내려다 보이는데
"西五陵"은 흩어져 있어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오릉(西五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서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다섯 능을 말하며
西쪽에 있는 다섯 릉이라해서 서오릉이라 한다는건 모두 아시지요
그리고 하나 더 아주 무지무지 유명한 "대빈묘(大嬪墓)"가 있지요
경릉(敬陵)은 덕종과 정비 소혜왕후 한씨의 릉인데 일찍 죽어 추존왕이며,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이죠.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왕인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입니다.
북한산성에서부터 흘러 이곳을 감싸고 흐르는 '창릉천'과
이 동네 이름을 '창릉동'이라 하게 되는 '예종'의 능입니다
익릉(翼陵)은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이고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왕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는 "대빈묘(大嬪墓)"는 숙종의 후궁 "장희빈"의 묘이지요
'숙종'옆에는 많은 女人들이 서로 '숙종'을 차지하려고 하다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네명의 왕후....특히 "장희빈"...........
홍릉(弘陵)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입니다.
['앵봉' 정상] 10시 20분
軍부대와 軍안테나 시설이 있어 찾기 쉬운 "앵봉"에 다가 왔습니다.
"장희빈 張禧嬪"
우리나라 국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여인입니다.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의 빈(嬪)이자 결국 왕비까지 오르고......
그녀의 본명이 "장옥정 張玉貞"이라고 알려진 "장희빈"은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며
구중궁궐 한밤중에 '숙종'을 어떻게 끝내주게 주물렀는지 하룻밤만 자고 나면 권력이 바뀌고
또한 귀하고 귀한 '숙종'의 아들까지 낳으니 그녀가 바로 '제19대 숙종'에 이어 등극하는
조선 제20대 왕인 "경종 景宗"의 어머니 입니다.
얼마나 독한 여인인지....남편이자 왕인 숙종이 자기를 죽이려하자....
숙종의 아들이자 자신의 아들인 경종의 성기를 잡아 당겨 결국 후손을 낳지 못하게 한...
['앵봉' 정상 헬기장] 10시 25분
영화와 TV드라마에서 수없이 조명한 "장희빈"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것들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장희빈'의 죽음에 대해선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는 '자진'했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모두 사사되었다고 알고 있죠?. 그것도 사약을 내 던지고 않먹겠다고 난리 부루스를 떨며....ㅎㅎ
물론 '연려실기술'과 '인현왕후전'에는 사사되었다고 기록되 있습니다만...
드라마는 재미있게 연출을 해야 시청률을 올릴수 있으니 갖은 묘안을 찾아내 재미있게 꾸미지요?
['벌고개'로 가는 길]
'서울市界'의 좌측은 은평구 갈현동입니다.
'갈현 葛峴'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 인근에 칡뿌리가 많아 칡고개, 혹은 갈고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꾸어 '갈현 葛峴'이라 한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칡 葛'과 '고개 峴'이니 순수 우리말로는 "칡고개"가 맞는 표현인듯합니다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이 지역을 '갈고개'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갈현동 대성고 갈림길] 10시 40분 [갈현동, 대성고로 내려 가는 길]
'앵봉'에서 15분 정도 전진하면 "갈현동 대성고등학교"로 내려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市界길은 직진입니다
[갈림길 - 주의를 요하는 중요한 갈림길] 10시 50분
'갈현동 대성고등학교' 갈림길에서 약10분 정도 직진하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갈현동'으로 내려 가는 넓은 길이고, 직진은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서울市界길"입니다.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직진길로 내려 가야하니 주의를 요합니다.
[갈림길에서 '벌고개'로 가는 길]
삼거리 갈림길에서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직진길로 내려 가면 송전철탑을 만나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軍참호시설이 있습니다. 전쟁시 서울을 사수하는 시설들입니다.
[벌고개 방호벽]
갈현동에서 서오릉으로 넘어 가는 도로에 있는 '軍방호벽'이 나타나면 정확히 市界를 따라
온 것입니다.
[벌고개 방호벽] 10시 55분
'軍방호벽' 옆으로 내려 가면 됩니다.
이곳을 지도에는 "벌고개"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그 내력은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갈현동에서 서오릉 넘어 가는 고개"가 더 익숙합니다.
[벌고개 - 서울市界 표지판]
서울市界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면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더군요.
"흐음...내가 서울市界를 잘 돌고 있구먼..."이라고 생각하며.....ㅎㅎ
[벌고개 - 경기道界 표지판]
서울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가는 방향에는 "경기道界 표지판"이 보이고,
저 앞에 '軍방호벽'도 보입니다. 저 방호벽 오른쪽에서 내려 왔습니다
"지축역"에서 여기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군요.
예상보다 빨리 왔습니다.
[벌고개 - '봉산'방향 들머리]
"경기道界 표지판" 건너편에 사진에서 보는 '안보관련 입간판'이 있습니다.
[하나되는 안보, 다가오는 평화]
이곳이 '다음 "봉산"으로 가는 들머리입니다.
이 들머리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구산동 갈림길] 11시 17분
도로에서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없는 길을 따라 조금 올라 오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가면 "은평구 구산동"입니다.
[구산동 갈림길에서 바라본 '龜山洞']
갈림길에서 서울 방향으로는 '구산동'입니다.
지하철6호선 "구산역"이 있지요?
['봉산' 오르는 길]
약간의 경사가 있는 산을 오릅니다.
이 산의 이름이 지도에는 "봉산"으로 나와 있고,
이 산을 오르내리는 주민들은 "거북이산"이라고 말하더군요.
['봉산' 체육공원] 11시 25분
조금 오르니 "봉산" 정상부근에 체육공원이 있으며, 정자도 하나 있더군요
[봉수정]
이곳에서 건강산행을 하는 주민 어른들에게 물어 보니, 옛날에는 이 산에 "熢燧臺"가 있어서
이 산의 이름을 "봉산 熢山"이라고 하는데.....이것은 공식적 이름이라 하고...
그러나 동네에서 올려다 보면 이 산의 형상이 "거북이 모양"이라고 "거북이산".
즉 한자로 "龜山 구산"이라 하며, 그래서 이 동네의 이름이 "구산동 龜山洞"이라 하게
되었답니다.
['봉산' 정상]
'봉산 熢山' - '구산 龜山'은 같은 산이며 그 정상에는 또한 軍부대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봉수대'가 있던 산봉우리는 지금도 통신대들이 현대화 되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은 똑 같다고 볼수 있습죠
['봉산' 정상 우회로]
軍부대 건물을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지나 갑니다.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가면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이 보입니다.
이 곳이 곧 아파트촌으로 변모 할 예정이라네요.
서울과 바로 인접해 있어 인기가 있을듯한데.....
[은평구 역촌동, 신사동 방향]
좌측으로는 은평구 역촌동, 신사동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덕산 德山] 11시 52분 [德山亭]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나 아는 산 이름 "덕산 德山"
그리고 "德山亭"이라는 쉼터
[德山亭] ['서울시립서북병원' 갈림길]
비교적 주민 편의시설이 잘되있습니다
[思德亭] 12시 32분
德山亭에서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 조금 가니 "思德亭"이 나옵니다.
[신사동 방향]
좌측으로는 "은평구 신사동"이 보입니다.
서울에는 "신사동"이 세군데 있지요
강남구 신사동은 "新沙洞"으로 쓰며 '모래'와 관련이 있는 곳이고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신사동은 "新士洞"으로 쓰니 '선비'와 관련이 있고
이곳 은평구 신사동은 "新寺洞"으로 쓰기 때문에 '새로운 절'을 지었다는 것에서
유래하는 것이니, 발음은 같아도 뜻은 완전히 틀리는 동네 이름들 입니다.
[신사동 '숭실고등학교' 갈림길] 12시 50분
新寺洞 '숭실고등학교'로 내려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숭실고등학교]
'숭실고등학교' 건물이 조금 보입니다. 아주 가깝게 있습니다
[繒山 - 水香亭]
'은평구 증산동'이라는 이름을 만든 "증산 繒山"이 조그마하게 있군요
그리고 "水香亭"이라는 정자를 만들어 놨습니다.
"水色洞"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水香"과 "水色"......후각과 시각적인 표현인듯
[水香亭] 오후 1시
嗅覺的 냄새를 풍기는 "水香亭"에 오면 "수색 水色"의 뒷동네에 온 것입니다.
"水香亭"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가면 삼각점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길은 비교적 잘 나 있습니다.
[수색동(水色洞) - 水色驛]
앞에 "수색역"이 보이며 뒤로 상암동이 보입니다.
[용미모정] 1시 15분
水香亭에서 약15분 정도 서쪽으로 가면 한자도 어려운 "龍尾茅亭"이 나옵니다
이곳이 중요한 곳으로 설명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서울市界"는 이곳에서 직진하여 더 가서 좌측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바로 90도 각도로 좌측으로 나있는 큰길을 따라 가면 바로 "수색역" 방향으로 갑니다.
가장 적합한 길은 "11시 방향"으로 나있는 샛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사진에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분 뒤로 난 길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 길은 정확한 "서울市界'는 아닙니다. 오로지 종주에 편리한 길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경의선 철로"가 한강 방향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아, "수색교"를 건너야
'가양대교'로 갈수가 있기때문입니다.
"수색교"로 쉽게 바로 갈수 있는 길이 이 길입니다.
[용미모정] [수색교로 가는 길]
한자도 어렵고 해서 옥편을 오랫동안 뒤져서 "용미모정 龍尾茅亭"이라는걸 알았습니다
"茅"자가 "띠 모"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茅+尾"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에구 어려워라~
여하튼 "수색교"로 가는 길입니다.
[水色橋로 가는 길]
龍尾茅亭에서 조금 내려 가면 바로 주택가가 나옵니다.
[水色橋로 가는 길]
주택가로 내려가 처음 나오는 아주 좁은 골목으로 나갑니다.
골목이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를 정도로 좁은 골목입니다.
[水色橋] 1시 20분
좁은 골목을 나오면 바로 "수색교"가 앞에 보입니다.
[水色橋] [가양대교 가는 길]
길을 건너 '수색교'를 다시 건너 "가양대교"로 갑니다.
[水色橋에서 뒤돌아 본 "市界"에서 내려 온 길]
'水色橋' 위에서 뒤돌아 본 "市界"에서 내려 온 길
실제 '서울市界'는 저 산능선 좌측, 화정방향으로 훨신 더 가서 "軍방호벽"이 있는 곳입니다만
다시 이곳 '수색교'로 돌아 와야 하기 때문에 편의상 그냥 이길로 가는 것입니다.
[가양대교 - 加陽大橋] 1시 28분
加陽大橋 북단입니다. 좌측으로 "난지도"가 보입니다.
[가양대교 위에서 보는 "자유로"]
가양대교 위에서 "자유로"를 촬영했습니다.
멀리 "행주산성"이 보이는 군요.
저는 약20년 정도 이길을 이용했었습니다
[가양대교 자전거 엘리베이트]
'가양대교' 위에는 특이한 "자전거 엘리베이트"가 있었고,
많은 자전거 애호가들이 현재 이용하고 있다는 군요.
높이가 장난이 아닙니다만, 한강 둔치로 쉽게 접근 할수 있도록 설치해 놨군요
[가양대교 위에서 바라 보는 "한강"] 2시
'방화대교'가 보입니다.
좌측에 보이는 조그만 산봉우리가 앞으로 우리가 가는 가양동의 "궁산"이고,
"궁산" 뒤로 약간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개화산"입니다.
우측에 보이는 조그만 산봉우리 유명한 '행주산성'입니다.
'서울市界'는 이 한강의 가운데를 지나 행주대교 부근까지 갑니다.
[가양대교 위에서 기념사진]
'가양대교'를 걸어서 건너 갈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서울市界종주'라는 미명하에 '가양대교'를 걸어서 건너 가는 군요. ㅎㅎ
여하튼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의 옆에 서있는 검은색으로 중무장한 분은 저와 동갑이며 같은 해병대 출신인데, 저보다 고참.
이분은 저도 모르는 "해병대 북파공작 특수임무부대"출신이더군요. 에구 무셔버라~ㅎㅎ
현재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종로지회 조직국장을 맡고 계시더군요.
아마도 북파공작원 중에서도 해병대 북파공작원이 제일 무시무시하지요?
하여간 같은 해병대라도 저는 말로만 듣던 "해병대북파공작원"과 함께 '가양대교'를 건너 가는
특별한 경험도 했습니다. ㅎㅎ
[가양대교 위에서 바라 본 "난지도"]
"난지도"라는 명칭의 유래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러 자료를 검토해 보니
난(蘭)과 지(芝)는 그윽한 향기가 난다는 '난초 蘭草'와 '지초 芝草'를 가리키는 말로
"난지도"는 때로는 꽃섬, 오리섬, 압도(鴨島)라 불리기도 한 아름다운 곳이였더군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는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고 해서 '중초도(中草島)'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이 쓴 세계최고의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에는
"蘭芝島 난지도"를 사람이 살기에 좋은 풍수조건을 가진 땅으로 기록하고 있더군요.
'삼각산' 불광동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인 "연신내"와, '삼각산'의 평창동, 구기동에서
내려 오는 "모래내"가 이곳으로 내려와 하나의 섬 모양을 만들었다고 "난지도 蘭芝島"가
되었다는데, '모래내'는 하천에 하얀 모래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저희 나이 또래들까지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래내'에서 멱을 감으며 여름철 피서를 즐겼다고 합니다.
1978년 쓰레기를 매립하기 직전에는 땅콩과 수수가 재배되던 한강 어귀의 낮은 평지였다고하며.
그러나 이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어 산업화 과정 동안 서울의 급속한
팽창과 더불어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적재되어 "섬 島"이 "쓰래기 山"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장이 되기 바로 전까지는 알려진 "신혼여행지"였다고 합니다.
"蘭芝島 난지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젠 없어져 갑니다.
[가양대교 남단] 2시 14분
'가양대교'를 건너는데 약40분이 걸렸습니다.
순수 교량의 길이만 2.5km라고 하며 접속부까지 합치면 3km는 충분히 되겠습니다.
[구암공원 "허준박물관"] 2시 43분
가양동 아파트단지 안에 "구암공원"이 있었고, 그곳에 "허준박물관"이 있었습니다
"구암"은 "허준"의 호이지요.
이곳이 '허준선생'의 고향이라는데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허준선생'의 고향은 공식적으로는 경기도 파주로 알려져 있고,
이은성씨가 쓴 "소설 동의보감" 평안도로 나오는데.....소설은 소설이니 그렇다치고...
여하튼 안내원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이곳이 허준의 고향이라고 강조 강조하더군요
'허준선생'의 출생, 고향, 서출문제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지자체들은 유명 인사들을 자기 고장출신으로 만들어 기념관을 짓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이런 저런 자기들에게 유리한 자료들을 발굴하여
자기 고장 출신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한 가장 큰 이유는 중앙 정부로 부터 엄청난 액수의
건립비를 타 낼수 있기 때문이지요. 모두 돈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고암 이응로화백"의 고향 문제로 '홍성군'과 '예산군'이 대법원까지 가는
송사를 했지요? 기억하시나요? 물론 그 이유는 60억원에 달하는 기념관 건립비 때문에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우겼기 때문입니다.
최영장군은 홍성군, 고양시, 철원군이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예들은 무지 많습니다.
[동의보감 특별전]
이 박물관은 지은지 5년되는데 오늘 개관5주년 기념식을 한다고 무료 입장이라네요
그래서 들려 보기로 했습니다.
선거철이라 후보자들이 많이 들려 인사를 하고 가더군요
[허준 像]
'허준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아는 이야기라 생략하고.....
조선 역사에서 가장 쪼다리 왕이라고 제가 주장하는 "선조"의 御醫였죠?
임진왜란 중에 다 죽어 가는 "선조"를 두번씩이나 살려 냈는데...
그래서 의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정1품 양평부원군'에 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선조"가 고령으로 죽자 왕을 살려내지 못했다고 귀양까지 가는 형벌을 받지요.
하여간 이 나라는 정말 웃기는 나라였던 거지요. 지금도 그런 사례들은 없는지...
하지만 귀양살이를 하며 그동안 집필해 오던 "동의보감"을 최종 완성하여
'광해군'에게 올리니 현명한 '광해군'은 감사하다며 '허준선생'을 사면 복권을 해줍니다.
77세까지 사셨으니 당시로는 의사 다웁게 무지무지 장수 하신 것이지요.
[공암 나룻터] [공암바위]
[孔巖바위 - 許哥바위] 아래 사진의 안내 설명을 참고 하세요
[孔巖바위 - 許哥바위 안내판]
[궁산 근린공원] 3시 30분
'허준박물관'에서 나와 조금 올라 가니 "궁산근린공원"이 나왔습니다.
올림픽대로를 오가며 무슨 산인지 궁금했는데 오늘 오르게 되었습니다.
[궁산 위에 있는 "小岳樓"]
궁금하게 여기던 정자는 "소악루 小岳樓"였으며 '궁산' 위에 있었습니다.
[궁산 궁산공원]
산 아래 입구에서 2~3분 올라 가니 '궁산' 정상이었으며, '소악루'가 보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체육공원이었습니다.
[小岳樓]
[小岳樓 설명]
[小岳樓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난지도']
[小岳樓에서 바라 보는 "삼각산"]
[양천고성지 - 陽川古城址]
小岳樓 바로 윗쪽에는 "陽川古城址"가 있더군요.
[陽川古城址 - 궁산 정상]
陽川古城址-궁산 정상은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되있었습니다.
[궁산 전망대]
전망대를 배 모양으로 만들어 놨군요
[궁산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행주산성"]
"행주산성"이 잘 보입니다.
모두 적군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한강변에 설치되었던 城이 촘촘히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긴가민가 잘못 알고 있는 것중에 하나가 "행주산성"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 임진왜란 때에 '부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싸웠다'고 "행주산성"이라고 한다고
알고 있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행주산성'이라하는 그런 것들은 속설이고....
'행주치마'로 돌을 날랐다면 "행주치마산성"이라고 해야하지 않나요?.
"행주"와 "행주치마"는 완전히 틀림니다.
분명한 것은 "행주산성"은 "다행할 幸, 고을 州"를 쓰는 "幸州山城"입니다.
"행복한 고을"이란 뜻이지요
[마곡레포츠센타] 4시 15분
"궁산"에서 나와 "방화동"으로 가는 도중에 '마곡레포츠센타'가 있더군요.
이곳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가양대교에서 방화역까지 실제 걸은 루트]
[방화동] [방화역] 오후 5시
'방화역"에 오니 오후 5시 정각이었습니다.
여러곳을 구경하며 왔기는 하지만 여하튼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종주출발시간 : 오전 9시 15분
방화역도착 시간 : 오후 5시
총 7시간 45분이 걸렸습니다.
총 거리는 알수 없고...
[뒷풀이]
산행도 하며, 세계적 대도시를 한바퀴 도는 "서울市界종주"는 여러모로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다섯구간으로 나누어 서울의 강북지역을 둘러 보았습니다.
다음 6-7구간은 김포,인천,부천,광명,시흥,안양등과 접해 있는 곳으로
일반도로와 주택가가 대부분이고, 특히 김포공항 활주로등 市界를 온전히 따라 가기도 어렵고,
특별한 얘깃꺼리도 없어 저는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5월에 계속되는 8-9구간인 "삼성산-호암산-관악산-남태령-청계산-인릉산-송파"구간에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서울市界종주 네번째 구간
우이동-육모정고개-영봉-하루재-백운산장-위문-용암문-동장대-
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청수동암문-부왕동암문-증취봉-
용혈봉-용출봉-가사당암문-의상봉-산성입구-은평뉴타운-지축역
"서울 찬가 "
길옥윤 작사 작곡, 페티킴 노래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처음 만나서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 낙엽은 지고 눈보라쳐도
변함 없는 내 사랑아 내곁을 떠나지 마오
헤어져 멀리 있다 하여도 내품에 돌아오라 그대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우이동에서 바라보는 '우이암'] 오전 8시 35분
3월 9일(화) 맑고 흐리고 눈비오고....
"서울市界종주 4구간"
약속시간 9시보다 조금 일찍 우이동에 도착하여 "북한산 국립공원"의 대표 산중에 하나인
"道峰山"을 바라 봤습니다.
"道峰山"의 名物 "牛耳岩"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우뚝 솟아있고
그 앞으로 지난 3구간에 하산한 "牛耳南稜線"이 선명합니다.
'서울市界' 능선이 좌측 '우이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이동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북한산 국립공원"은 "삼각산", "도봉산", "사패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중에 대표산은 누가 뭐래도 "三角山"일 것입니다.
"백운대 白雲臺", "인수봉 仁壽峰", "만경대 萬景臺 (망경대 望京臺)"
저기 보이는 세 봉우리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三角山"이 서울의 鎭山으로
그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서울시내를 굽어 보고 있습니다
[산행 괘적도]
지난 3구간인 도봉산 구간에서 "서울시계"를 완전하게 종주 하지 못했습니다.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에서 "우이령"으로 내려와 "상장능선 왕관봉"을 지나
"육모정 고개"로 가야 했으나 '출입제한지역'으로 갈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4구간도 '우이동'에서 우이령길로 올라 "육모정 고개"에서 부터 "서울市界"를
종주 합니다.
그리고 "의상봉"에서 불순한 날씨 때문에 "의상봉-대서문-산성입구"구간을
약간 우회하여 종주 하였음을 미리 알려 드림니다.
[산행 들머리 - 우이령으로 가는 길] 오전 9시 15분
오전 9시 15분에 종주를 시작합니다.
"우이령 牛耳嶺"으로 가는 길로 올라 갑니다.
"육모정 고개"로 오르는 코스를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대부분의 산객들은 "도선사-하루재-백운대"로 오르는 코스를 이용하므로
"육모정 코스"는 저 같이 대부분 잘 모르실겁니다.
[실제 "서울市界"]
"우이령 고갯길"을 오르며 실제 "서울市界"를 바라 봤습니다.
오른쪽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우이령 - 가운데 계곡"을 지나
좌측 '상장능선'으로 가는 "市界"가 뚜렸합니다.
저 "市界"는 "한북정맥 漢北正脈"이기도 합니다.
['육모정고개' 산행 들머리 가는 길] 오전 9시 25분
[사진1]
우이동에서 약10분 정도 올라 가면 삼거리 다리를 만납니다.
다리에서 직진하면 '우이령'으로 가는 길이고,
[사진2]
좌측 다리를 건너 들어 가면 규모가 제법 큰 음식점이 있는데........
음식점으로 들어 가기가 좀 꺼림칙 하지만 음식점 정문을 통해 올라 가는 길이
정상적인 '육모정 고개"로 오르는 등산코스입니다.
['육모정고개'로 가는 길]
음식점 정문을 통해 들어가 좌측 계단을 올라 갑니다
['육모정고개' 입구] 오전 9시 31분
음식점을 통해 올라 가니 진짜 "육모정고개" 등산로 입구가 나왔습니다.
['육모정고개'로 오르는 길]
"영봉 靈峰"까지 2.6km라는 이정표를 보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제단 바위] 오전 9시 55분
'육모정고개' 입구에서 약25분 정도 오르니 "제단바위 祭壇바위"가 나타납니다.
오늘도 '구라청'의 일기예보는 구라청 다웠습니다.
春三月 다웁지 않게 오전부터 눈비가 엄청나게 올것이라고 했는데.....
날씨는 맑고 너무 더워 여기서 겉옷은 벗고.......
[육모정 고개] 오전 10시 3분
"육모정 고개"에 쉽게 올랐습니다.
우이동에서 약45분만에 올랐으니 의외로 가까웠습니다
"육모정"은 근처에 육각형의 정자가 하나 있었나 봅니다.
오른쪽 '상장능선'으로 가는 길은 갈수 없다는 안내판과 함께 막아놨습니다.
['육모정 고개' - '서울市界']
"육모정 고개"에 올라 이제부터 다시 정식으로 "서울市界"를 종주하게 됩니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땐 "이창렬박사"의 추모비가 이곳에 서 있었는데
철거 되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육모정 고개" 북쪽으로는 군사지역으로 들어 가면 위험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이창렬박사" 추모비]
옛날에 찍은 사진을 참고자료로 올립니다
노산 이은상선생이 산행중에 운명을 달리한 김창렬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70년대에 한국산악회장이었군요
산에 갈때엔 언제나 조심해야 합니다. 아차 하면 갑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합니다
['육모정 고개]에서 바라 보는 '수락산', '불암산']
'육모정고개'에서 조금 올라가 첫번째 봉우리에서 바라 보는 "수락산"과 "불암산"
지난 2월 23일 겨울비 내리던 '서울시계3구간' 수락산과 불암산입니다.
그때는 雲霧로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고, '삼각산'과 '도봉산'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았는데
['육모정고개' 위에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오전 10시 17분
가운데 뒷 능선에 좌측으로부터 '오봉' '오봉산' '칼바위'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우측 앞 봉우리에 '우이암'이 있으며 남쪽으로 '우이남능선'이 이어집니다.
또한 우측 가운데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 가운데 "우이령"이 있으며,
좌측에 상장능선의 '왕관봉'이 '육모정고개'로 이어져 이곳으로 '서울市界'를 이루고 있습니다.
['육모정고개' 위에 있는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우이령 계곡길"]
"우이령" 계곡길이 확연하며,
우리가 올라온 '우이동'에서 "육모정고개 등산코스"가 가운데 계곡으로 나 있습니다.
['영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영봉"과 "인수봉", "만경대"] 오전 10시 24분
'영봉'으로 가는 길에는 헬기장이 하나있고....
'삼각산'이 성큼 성큼 다가 옵니다.
[뒤돌아 본 "서울시계"]
도봉산의 자운봉에서 칼바위를 지나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에서 '우이령'을 건너
육모정고개를 지나 여기까지 오는 "서울市界"가 선명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붉은 선으로 서울시계를 표시해 봤습니다
["도선사" 일주문]
"도선사"의 일주문이 보입니다.
"道詵寺"는 매우 유명한 절이지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다닌 절이기에 유명해 졌습니다
그리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도 이 절에 다녔지요
박정희 육군 소장이 쿠데타 모의를 한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육영수여사'의 佛心은 대단해서 이곳 도선사의 주지였던 '청담'대종사로부터
"대덕화 大德華"라는 佛名까지 받았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佛心이 등을 돌렸는지 두분 모두 총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영봉-하루재 갈림길] 오전 10시 42분
"영봉 靈峰"에 올랐습니다.
"인수봉" 암벽타기를 하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는 비석들이
이곳에 많이 있었는데 모두 철거되고 하다못해 '영봉 정상석'까지 철거했더군요
잘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국립공원이
사설 공동묘지같은 느낌을 주어서는 않되겠지요
예전에 제가 찍은 '영봉 정상석'을 참고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옛 영봉 정상석] 자료사진
靈峰 정상석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山을 어디라 손을 대려 하느뇨
山에 들면 가득한 靈氣에 감사할지니
山의 精氣 있으매 푸른 氣運 솟고
山의 自然 있으매 맑은 물도 흘러
우리 생명 더불어 모든 生命 사노니
山이여, 靈峰이시여 萬古不變하여라
시 鄭孔采
서 農庵 鄭祥玉
靈峰命名人 尹柱廣
['영봉'에서 바라 보는 "인수봉"]
전 세계에서 암벽타기 최고의 코스라 불리워지는 "인수봉 仁壽峰"
암벽타기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위험을 앞세워 저런 곳은 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암벽타기 메니아들은 주말이면 쌔까맣게 개미처럼 인수봉에 붙어 오릅니다.
그 동안 저곳에서 암벽타기를 하다가 산화되어 간 젊은이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영봉 앞에는 노산 이은상선생의 추모비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詩碑]
제가 예전에 찍은 자료 사진-지금은 철거되었더군요
백운대 푸른 하늘에
그대들 산새되어 날고
인수봉 바위틈에
그대들 산꽃으로 피고
우리는 여기 올적마다
그대들 이름 부르마
노산 이은상
['영봉'에서 '하루재'로 내려 가는 길]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갑니다
[하루재] 오전 11시 2분
靈峰에서 10분정도 급경사를 내려 오면 "하루재"를 만납니다.
'하루재'는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오르는 코스입니다.
'백운대'를 가장 빨리 쉽게 오르는 코스이지요
['인수암'에서 보는 "인수봉"] 11시 8분
어질 仁, 수명 壽, 봉우리 峰
[북한산 산악구조 경찰대] 11시 9분
'인수암'을 지나면 바로 "북한산 산악 구조대"가 상주하는 건물이 나옵니다.
[인수봉] 11시 13분
보는 각도에 따라 엄청나게 다르게 보이는 '인수봉'입니다.
대부분의 크라이머들이 '인수봉' 암벽타기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오늘은 화요일이고 특히 일기예보가 아주 더러워 아무도 없습니다.
이래 저래 구라청을 욕하는 사람들 많았겠습니다.
['백운산장'으로 오르는 길]
계곡을 따라 백운산장으로 올라 갑니다
['백운산장' 오르는 길]
된비알을 20여분 정도 올라 갑니다
[백운산장]
'인수암'에서 약20분 정도 오르면 城같은 "백운산장"이 나타납니다
['白雲의 魂' 탑] 11시 30분
"백운산장" 앞에는 '白雲의 魂' 탑이 세워져 있고....
[백운산장]
'백운산장' 앞에서 시위를 하는 젊은 아가씨들이 있었습니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오가는 산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현재 '자연공원법'을 개정하여 여러 관광시설을 국립공원 안에 설치 할수 있도록
법을 고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였습니다.
[북한산 케이블-카 반대 시위]
저도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우리 인류 역사상 토목공사를 많이한 정권은 모두 단명으로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그 대표적 정권이 중국의 "진시황"이었습니다.
현재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는 지구의 대규모 구축물이 "만리장성"있지요?
"아방궁" "만리장성"등 엄청난 토목공사를 하여 정권을 굳건히 지키려고 토목공사에
그의 인생을 다 보냈지만 '진시황'의 "진 나라'는 공사만 하다가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정권을 연장해 주는 것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민심 民心"이었기 때문입니다.
국립공원도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 보며 "돈을 벌기 위해" 자연을 홰손해 가며
케이블-카, 위락시설을 지을수 있게 법을 고치려고하는 자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경제적 효과만을 주장하며 좁은 한반도의 가운데 배를 째서 자연 강을 강제로 이을려는
단편적인 발상들도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토목공사를 마구 시도한 정권들은 모두 단명했음을 명심해야 할것입니다.
[백운산장 안에서 점심식사]
약간 이른 점심식사를 '백운산장'에서 했는데.....
'백운산장' 안에서 파는 국수는 4,000원 했는데 먹을만 했습니다.
음식재료들을 이곳까지 운반하기도 어려워 비쌀줄 알았는데....
비싸면 장사가 않되는 시대이지요? 미리 준비를 해버리니...
[족두리 바위]
'백운산장' 앞에는 '족두리 바위'가 있습니다.
불광동에서 오르는 서부능선에는 북한산국립공원의 명소인 "족두리봉"이 있고
이곳에는 규모가 작은 "족두리 바위"가 있습니다
[백운대로 오르며 뒤돌아 본 '백운산장']
'백운산장' 전체를 촬영했습니다.
오늘은 화요일이라 한산 합니다만 주말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입니다.
[백운대 오르는 길]
'백운산장'에서 약10분정도 된비알을 오릅니다.
[북한산성 "衛門"]
'백운산장'에서 약10분정도 된비알을 오르면 "北漢山城"을 만납니다.
["衛門"앞 이정표] 12시 10분
'만경대'와 '백운대' 사이에 "北漢山城"의 "衛門"이 있으며
그 앞에 이정표가 여러 곳의 방향과 거리를 알려 줍니다.
["衛門"에서 올려다 보는 "白雲臺"]
"北漢山城"의 "衛門"은 우이동 방향에서 오르는 산객들이
필수적으로 넘나 들어야 하는 門입니다.
그리고 삼각산의 최고봉인 '白雲臺"를 오르는 들머리 이기도 합니다.
["衛門"]
"北漢山城"에는 13개의 門이 있습니다.
"水門"이 있어 14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현재는 있었던 흔적만 있고,
사람이 왕래하는 門은 13개입니다.
"衛門"은 그 중에 하나이며 이 門을 통과하면 "北漢山城"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 되며,
또한 '서울'에서 '고양시'로 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산성 안]
"衛門"을 통과해서 아랫쪽으로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 갑니다.
'서울市界'는 "衛門" 좌측 "만경대" 능선을 따라 갑니다만, 위험해서 갈수가 없습니다
[만경대 우회로]
"衛門"을 통과해서 아랫쪽으로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 가면 계단이 끝나는 곳 좌측으로
"만경대" 우회로가 있습니다.
"만경대"의 옆구리를 따라 전진합니다.
[만경대 옆구리에서 바라보는 "원효봉"]
'만경대' 옆구리에서 내려다 보면 "원효봉"과 그 아래 "상원사"가 보입니다.
오른쪽 봉우리는 "염초봉"인데 사진에는 짤렸군요
"원효봉" 위로 "北漢山城"이 선을 그으며 지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만경대 옆구리에서 바라보는 "노적봉"] 12시 20분
'노적봉"을 뒤에서 보면 노적가리를 쌓은 모양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보입니다.
"노적봉" 뒤로 오늘 가야할 "의상봉 능선"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구라청의 일기예보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다소 맑은 날씨를 보여 줍니다.
약 3시간 40분후 의상봉 근처에 갔을때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萬景臺(望京臺) 하산]
"만경대" 옆구리를 내려 가는 코스입니다.
[露積峯 갈림길] 12시 30분
"만경대" 옆구리를 내려 오면 "露積峯" 갈림길이 나옵니다.
[露積峯 갈림길에서 뒤 돌아 본 "白雲臺"]
오늘 제가 '서울시계종주기'를 쓰며 시종일관 "삼각산 三角山"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 요즈음 지각있는 분들이 북한산의 본명을 찾아 주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산"은 실제 이름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불리워지는 '아이디'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北漢山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입니다.
'한강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고 그냥 편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름입니다.
예를 들자면 '숭례문'을 '南大門'이라고 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北漢山의 본명은 三角山입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이 작성한 "산경표"에는 "漢北正脈"에 "三角山"이라고 분명히 적고 있으며,
一名 "負兒山"이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負兒는 아기를 업고 있다는 뜻이지요?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을 북쪽에서 보면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합니다.
그리고 在京北三十里 楊州南三十九里라고 위치까지 적어놨습니다
산경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고지도에는 "삼각산"이라고 합니다.
청와대 뒷산을 "북악산 北岳山"으로 표기하고 부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돈의문"을 "서대문", "흥인지문"을 "동대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잘못된 표기입니다. 청와대 뒷산 "북악산 北岳山"의 본명은 "백악산 白岳山"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일반명사와 고유명사를 구분하여 본명을 불러 주시길.....
[용암문] 12시 47분
'만경대' 옆구리를 지나 오면 북한산성의 "용암문 龍岩門"을 만나며
용암문 앞에는 "북한산 대피소"가 있고, 이 대피소 자리는 옛날에 "龍岩寺"라는 절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龍岩門]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도선사를 통과해 오르면 이곳으로 오릅니다.
[北漢山城 城廓]
"龍岩門"에서 부터 단장된 "北漢山城 城廓"이 "문수봉"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들은 이 北漢山城 城廓을 "北漢山城 主稜線"이라고 부릅니다.
[曲城에서 바라 보는 "萬景臺"]
"만경대"는 불리워 지는 이름이 두개 있습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모양새가 萬개가 넘는 다고 萬景臺"라고 부르기도 하고,
조선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개성에서 천도를 하기 위해
地勢를 관찰하러 올라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고 "望京臺"라고도 하지요
[東將臺] 오후 1시 10분
'용암문'에서 약25분 정도 성곽을 따라 가면 "동장대 東將臺"가 나옵니다.
[東將臺]
"東將臺"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작전 지휘소', 영어로 하자면 "commend center"입니다.
북한산성에는 東將臺 이외에도 두개의 작전 지휘소가 더 있었다는데,
남쪽에 "南將臺", 북쪽에 "北將臺"가 있었다고 하며 현재는 그 자리만 남아 있습니다.
"동장대"에선 북한산성 전체를 볼수 있는 곳이어서 가장 중요한 작전 지휘소였다고 하네요
[東將臺에서 바라보는 "大南門"]
"大南門"이 "보현봉"과 "문수봉" 사이에 보입니다.
[처녀 총각바위]
성곽은 원래 이 바위들을 이용해 함께 있었는데 복원을 할때, 바위를 살리려고
성곽을 뒤로 물렸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없고 그냥 불리는 이름입니다.
[大東門] 오후 1시 20분
東將臺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大東門"이 나옵니다.
"大東門"은 주로 수유리 방향에서 오르는 등산 코스입니다.
그리고 大東門 앞에 있는 능선이 유명한 "진달래 능선"입니다.
[大東門]
한양에 호랑이가 나타나 민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호랑이가 경복궁 궁궐에까지 침입하여 소란을 떨었다는 사실까지 조선왕조실록에 나옵니다.
그런데 고종황제 때이니 최근이라고 해도 될 1879년 8월 24일에는
이곳 "북한산성 大東門"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물어 죽여, 사살하러 군대가 동원되었다는
"승정원 일기"도 있으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승정원 일기 : 고종 16년 기묘(1879, 8. 24 광서 5)]
○총융청이 말로 아뢰기를,
“방금 본청 관할 북한산성 관성장(北漢山城管城將) 조존승(趙存昇)의 보고를 보니,
'이번 8월 22일 사시(巳時)쯤에 본성(本城) 대동문(大東門) 안의 민가 근처에 호랑이가
들어와 사람을 물어 죽였습니다.’하였습니다. 아병(牙兵) 30명을 장교가 거느리고
사냥을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승정원 일기 : 고종 16년 기묘(1879, 9. 2 광서 5)]
○ 총융청이 아뢰기를,
“본청의 자내(字內)인 북한산(北漢山) 대동문(大東門) 안에 호환(虎患)이 있어 아병(牙兵)을
보내어 사냥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초기를 하였습니다.
이달 1일 신시(申時)쯤에 동장대(東將臺) 근처에서 표호(豹虎) 한 마리를 잡았기에
삼가 이를 봉진(封進)합니다. 범을 잡은 군사는 전례를 살펴서 시상(施賞)하고
계속 사냥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일주일이 걸려 호랑이를 잡았군요..ㅎㅎ
적군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城이 호랑이에겐 무용지물이었단 말인가? 흐-ㅁ 모호하네요
[칼바위 능선 이정표] 오후 1시 27분
"북한산성" 주능선에는 세개의 유명한 능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에서 안내해 드린 '대동문 앞' "진달래능선"이고
다음이 '대동문'과 '보국문' 사이에 있는 "칼바위 능선"입니다.
그리고 '대성문'과 '대남문' 사이에 있는 "사자능선"과 "형제봉 능선"입니다
[칼바위 능선]
칼날같이 날카롭게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칼날' 같나요?
"칼바위 능선"은 '수유리'와 '정릉' 사이에 있어 그곳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스입니다.
[北漢山城]
"北漢山城 主稜線"은 옆으로 평평하게 뻗은 평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느낌이 그럴뿐 여러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락 내리락 해야합니다
[輔國門] 오후 1시 30분
"칼바위 능선" 입구에서 2~3분 정도 아주 쪼끔만 가면 "輔國門"이 나옵니다.
大門이 아니고 小門입니다.
[輔國門]
이 문으로 난 등산코스는 주로 "정릉"에서 계곡길을 이용해 오르는 코스입니다.
[輔國門 윗 봉우리에서 뒤돌아보는 "三角山"]
지난온 "三角山"의 主峰들이 한눈에 보입니다.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멋있습니다.
우측 멀리 "道峰山"이 산수화 같군요..모두 '서울市界'입니다.
[大成門으로 가는 城廓]
북한산성의 둘레는 약9.7km이며 성곽의 둘레는 약8.4k 정도 된다고 합니다.
등산 메니아들은 "북한산성 12문 종주"를 하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종주를 하는데 제법 힘이 들기 때문이겠죠?
물론 저도 여러번 종주 한바 있습니다.
도전 의욕이 생기시는 분들은 제가 쓴 "北漢山城十二之門從走記"를 참고 하세요
[大成門] 오후 1시 53분
輔國門에서 20여분 정도 산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大成門"이 나옵니다.
[大成門]
북한산성에는 大門이라 할수 있는 큰문이 6개가 있습니다.
'大西門', '大南門', '大成門', '大東門', '北門', '中城門' 입니다
크기는 서로 비슷비슷하지만 그 중에서 '大成門'이 가장 크다고 하네요
그리고 小門이 4개 있는데, '衛門', '龍岩門', '輔國門', '屍軀門 시구문'입니다.
또한 비밀 출입구가 3개 있는데 이러한 門을 "暗門"이라고 합니다.
'청수동 암문', '부왕동 암문', '가사당 암문'이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13개의 문이 있지요?
그런데 또 하나가 있는데 지금은 흔적만 있고 홍수로 사라져 버린 "水門"이 있습니다
"水門"은 '大西門' 아래 계곡에 설치 되 있었는데 1900년대 초 대홍수 때에 없어 졌답니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은 13개입니다.
"북한산성 14문 종주"에 도전 해 보세요~ 약8시간 30분~10시간 정도 걸릴겁니다.
[서울시 종로구-성북구-고양시 경계표지석]
'보현봉'에서 '형제봉능선'을 따라 '북악터널' 방향으로 "종로구"와 "성북구" 경계를 이루고
북한산성 성곽 안쪽으로는 "고양시"를 알려 주는 市區경계석입니다.
'서울市界'를 따라 종주를 잘 하고 있습니다
[大南門] 오후 2시 8분
구기동 방향에서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의 정점인 "大南門"입니다.
주말에는 불광동이나 구기동에서 엄청난 산객들이 몰리는 곳입니다.
[大南門에서 바라보는 "보현봉"]
"보현봉"은 서울시내 광화문 방향에서 바라볼때 앞으로 돌출되 있기 때문에
제일 높게 보이는 봉우리입니다만 높이는 724m이며 普賢峰으로 씁니다
[문수봉] 오후 2시 16분
'북한산성 주능선'의 끝봉우리인 "문수봉"에 올랐습니다.
높이는 732m로서 보현봉 보다 높습니다
"북한산성"은 이곳에서 직각으로 꺽여 북쪽으로 이어집니다.
['문수봉'에서 바라보는 "비봉능선"]
'문수봉"은 규모가 매우 큰 봉우리입니다.
奇岩怪石으로 이루어진 '문수봉'은 "문수사"라는 천년 고찰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산국립공원의 서쪽방향의 중추적 역활을 하는 봉우리입니다.
여기서 부터 불광동 방향으로 '향로봉'까지 뻗어 있는 능선을 "비봉능선"이라 합니다
맨끝에 보이는 봉우리가 "향로봉"이고 그 앞에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이 있습니다
다른 산에는 "비봉"을 "날 飛"자를 쓰는 "飛峰"으로 표기합니다만,
삼각산의 "비봉"은 "비석 碑"를 쓰는 "碑峰"으로 표기합니다
왜냐하면 이 봉우리에 그 유명한 "진흥왕 순수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순수비"의 뜻을 잘 모르고 그냥 지나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지요
"순수비"는 "순회할 巡", "사냥할 狩", "비석 碑"를 씁니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내 사냥터 영역"을 나타내는 표시이며,
고대 국가들의 "국경"을 표시하는 아주 중요한 비석이지요
신라 고구려 백제가 서로 코피 터지게 싸우며 먼저 차지 할려고 했던 요충지 였던거지요
우리나라 국보 1호는 알아도 2호, 3호는 모르시지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ㅎㅎ
"진흥왕 순수비"가 우리나라 국보 3호이며,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비봉에는 모조품이 전시되 있습니다
['문수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문수사"]
정상에서 아찔 어질하게 내려다 보면 "문수사"가 보입니다.
[청수동 암문] 오후 2시 24분
'비봉능선"으로 가고 오는 중요한 관문이 "청수동 암문"입니다.
옛날엔 비밀통로로 이용되던 暗門입니다.
[청수동 암문]
이제는 비밀 통로가 아니라 수 많은 산객들이 넘나 드는 문이 되었습니다.
['청수동 암문'에서 바라본 "문수봉 정상"]
"문수봉"에서 "의상봉코스"를 내려 갑니다.
북한산성 등산코스에서 가장 힘이 든다는 코스입니다.
[의상봉 능선]
'나한봉'에서 바라보니 "의상봉 능선"이 쫙~펼쳐집니다.
릿지도 해야하고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해야 하는 아주 재미있고 제법 힘든 코스입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나월봉"이고,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이 이어지고,
맨끝에 제일 낮은 봉우리가 "의상봉"입니다. '의상봉'이 의외로 낮게 보이지요?
[나월봉 "제비 바위"] 오후 2시 50분
"의상봉 코스"의 하일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저는 "나월봉 제비 바위"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나월봉이지만 "제비 바위" 조각상을 구경하지 않고 그냥 가면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보이시나요? 정말 절묘한 자연조각품입니다.
[나월봉 "제비 바위" 사이로 오르는 '거인산악회 횐님들']
"제비" 옆으로 좁은 계곡을 올라 내려다 보며 올라 오는 횐님들을 한컷했습니다
좌측 "제비"를 위에서 보면 이런 모양입니다.
[부왕동 암문] 오후 3시 17분
"부왕동 암문"으로 나가면 '삼천사 계곡'으로 내려 갑니다.
[용혈봉 오르는 길]
[용혈봉] 오후 3시 34분
이곳에 오니 날씨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합니다.
구라청의 일기예보가 맞아 가려고 합니다.
[冠帽바위]
'의상봉 코스'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습니다.
冠帽같은 바위가 자태를 뽐냅니다.
[용출봉 오르는 길] 오후 3시 42분
'용출봉'을 오르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용출봉] 오후 3시 45분
'용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는 3년전쯤에 낙뢰 사고가 있었던 봉우리입니다.
여름철 비올때에는 가능한 이 코스로 오지 마세요
[國寧寺]
용출봉과 의상봉 사이에 있는 "국녕사 國寧寺"
칼라풀한 불상은 여기 뿐이 아닌지....
['용출봉'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원효봉"]
바로 앞 봉우리가 "의상봉"이고 그 뒤로 "원효봉"이 보입니다.
'북한산성' 입구를 '의상봉'과 '원효봉'이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습니다.
['용출봉'에서 바라보는 "三角山"]
용출봉이나 의상봉에서 바라보는 "三角山"의 정상부가 가장 완벽한 조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산성' 안에는 '노적봉'에서 내리 뻗은 산줄기가 두개의 계곡을 만듭니다
옛날 '행궁 行宮"은 오른쪽 계곡에 있었습니다
[가사당 암문] 오후 4시
'가사당 암문'으로 나가도 '삼천사 계곡'입니다.
[의상봉 정상] 오후 4시 7분
우이동에서 의상봉 정상까지 약7시간이 걸렸습니다.
의상봉 정상에서 늦은 간식을 약35분에 걸쳐 먹고......
[北漢山城 城廓] 오후 4시 50분
"서울市界"는 의상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북한산성 성곽"을 만나는 곳에서 우측으로
"성곽"을 따라 "대서문"으로 가야합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눈이 내리는 불순한 날씨로 위험한 대서문코스를 피하여
약간 좌회하여, 직진하여 내려 가다가 우측으로 市界를 종주 합니다.
[의상봉 능선의 기암괴석]
[급경사 내리막 '의상봉 능선']
의상봉 능선은 어디로 가나 마찬가지로 급경사 암벽코스입니다.
[北漢山城 입구] 오후 5시 22분
눈비 내리는 '의상봉코스'를 힘들게 내려와서 '산성입구' 도로로 나갑니다.
'산성입구 구매표소'가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 갑니다.
[北漢山城 입구에서 기념사진] 오후 5시 36분
산성입구 구 매표소 앞에서 기념사진
[비내리는 北漢山城]
산성입구 큰 도로로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의상봉' '원효봉'은 구름에 보이지 않고...
[창릉천] 오후 5시 45분
"서울市界"인 "창릉천" 옆을 따라 "지축역" 방향으로 갑니다.
[은평 뉴타운] 오후 6시 7분
'은평 뉴타운'으로 지형이 변했습니다만, 창릉천을 옆에 끼고 "지축역"으로 갑니다.
"지축역" 앞 "아구찜"집에 오후6시 30분경에 도착하여 뒷풀이를 하고.....
총산행 시간 : 9시간 15분
총산행 거리 : 잘 모르겠음. 걸린 시간으로 보아 대략 20km정도 될듯...
[지축역] 저녁 8시
뒷풀이를 마치고 지축역에 오니 밤 8시 였습니다
[구파발-지축역 부근 "서울市界"]
이곳의 市界가 다소 모호하여 구글어스로 市界를 표시했습니다
[구파발-지축역 부근 "서울市界"]
다음 구간에 참고하여 가야 하겠습니다
['파란문' 아파트 벤치]
집에 돌아 오니 벤치에는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하루에 지나간 그런 날씨였습니다.
서울市界從走記 세번째구간
도봉산역-안골-은석암-다락능선-포대능선-
도봉산 자운봉-칼바위-우이암-우이동
2월23일(화) 맑음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
그 중에 대표적 산을 꼽으라면 '삼각산', '도봉산', '관악산'을 꼽지 않을까요?
물론 '수락산'이나 '불암산'도 끼워 주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오늘은 "서울市界종주" 세번째 구간으로 "도봉산 구간"이 되겠습니다.
산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최소 한번 이상은 올라 보았을 "도봉산".
그래서 저도 산행기가 이미 여럿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도봉산' 보다는 '서울市界'에 촛점을 맞춰 종주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산행 괘적]
도봉산역에서 출발하여 "안골 통제소"를 산행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도봉산역-안골통제소-은석암-다락능선-포대능선 정상-자운봉-
칼바위-도봉주능선-우이암-우이남능선-우이동"
[도봉산역에서 바라 보는 도봉산] 오전 10시 15분
도봉산역에서 바라보는 도봉산의 主峰들인 "仙人峰", "萬丈峰", "紫雲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도봉산' 산행을 하는 코스는 아시다시피 무지무지 많고 쉽습니다만,
"서울市界3구간"의 "市界"를 따라 가기는 조금 어려운 구간입니다.
왜냐하면 市界는 이곳 초입에서 5~600m정도 갈수 없는 길이 있어서 입니다.
그리고 "우이암" 부근에서 "우이령"으로 꺽여져 "상장능선 8봉"을 지나
"육모정"까지는 출입제한지역이라 갈수 없습니다.
이 길 이외에는 모두 잘 알려져 있는 도봉산 등산로이기에 "시계종주"라기 보다는
"도봉산 산행"입니다.
[구글어스]
도봉산역에서 '서울市界'로 가는 길을 구글어스를 통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서울市界'는 윗 사진의 붉은 선입니다.
우리는 도봉산역에서 3번국도를 건너 "도봉산역 환승주차장"을 지나 첫번째로 나오는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초록색 선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서울市界] 10시 23분
저는 '서울市界'까지 뛰어 가서 '서울市界 표지판'을 촬영하고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서울市界'에서 무리를 하면 좌측 "서울인강학교' 담벼락을 타고 갈수도 있겠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할 필요도 없고 일행들이 이미 '환승주차장' 골목으로 가버려
되 돌아 왔습니다.
[도봉산 "안골" 산행 들머리]
좌측 '환승주차장'을 끼고 약200m쯤 올라 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측 길로 올라 갑니다
[기념사진]
우측 길로 들어서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도봉산 "안골 통제소"] 10시 35분 [산행 들머리]
다시 조금 올라 가면 "안골 통제소"가 나옵니다.
통제소 뒷편 등산로로 올라 가면 됩니다.
[군 참호 시설 - 서울市界] 10시 36분
이곳부터 "서울市界"를 다시 만나 종주가 계속됩니다.
['은석암'으로 가는 길]
군진지가 있는 곳에서 부터 '서울市界'를 다시 만나며,
이 등산로를 따라 '자운봉' 까지 계속 전진만 하면 '서울市界'를 종주하게 됩니다.
['도봉계곡' 녹야원쪽에서 만장봉 오르는 갈림길] 10시 54분
도봉산 주 등산로인 '도봉계곡'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안부입니다.
'은석암' '만장봉' 가는 길로 갑니다. 오로지 외길이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은석암] 11시 13분
登路 왼쪽으로 '은석암'이 보입니다.
'은석암'은 유서 깊은 절은 아닌듯....
[다락능선으로 오르는 길]
'은석암'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아기자기한 도봉산 등산로가 펼쳐집니다.
"다락능선"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다락능선 만나는 안부] 11시 24분
'은석암'에서 10분쯤 오르면 "다락능선"을 만납니다.
"다락능선"은 "망월사역"에서 오르는 코스입니다.
[다락능선]
"포대능선 정상부"까지 "다락능선"을 타고 갑니다.
'서울市界'입니다.
['다락능선'에서 바라보는 '망월사'] 11시 33분
'다락능선'에 올라 서니 "포대능선" 아래에 있는 "망월사"가 중국의 '소림사'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계곡이 "원도봉계곡"입니다.
"망월사 望月寺"는 지금으로부터 약 1,360년전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開山하였으며
"망월사 望月寺"라는 이름은 절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봉우리인 "월봉 月峰"이 있어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는데서 유래하였다는 일화가 있더군요.
의정부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합니다. '다락능선' 윗쪽은 경기도 의정부시입니다
[다락능선(서울市界)과 도봉산 정상]
앞에 보이는 산줄기가 '서울市界'인 "다락능선"이며, "다락능선"이 가 닿는 곳이
"포대능선"과 "도봉주능선"이 만나는 "포대 진지"가 있는 사진 우측 봉우리입니다.
그 좌측으로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道峰山"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도봉계곡에서 올라 오는 코스와 만나는 안부]
도봉산 주 등산로인 "도봉계곡"에서 올라 오는 안부를 만나면
화려한 도봉산 산행길이 열립니다.
[수락산]
'다락능선'에서 바라 보는 '수락산 水落山'
지난 2월 9일 겨울비를 맞으며 산행한게 엊그제 같은데......
雲海가 도시를 덮어버린 그날과 많이 비교됩니다.
[도봉산 정상부]
도봉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왔습니다.
오른쪽 끝봉우리가 '포대 진지'가 있는 '포대능선'과 '도봉주능선'의 경계입니다.
가운데 삐쭉 솟은 봉우리가 '자운봉'
['우이암'과 '삼각산']
아!~
그림같은 "우이암"과 그 뒤로 "三角山"
어느 것이 '우이암'인지 모두 아시죠?
가운데 능선 봉우리 좌측으로 삐쭉 솟은 바위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도봉산 道峰山"
神仙이 道를 닦는 山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암릉코스]
'다락능선'에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암릉코스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암릉코스]
'다락능선에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는 팔운동을 많이 해야합니다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도봉산 정상 봉우리들이 가까이 다가 옵니다.
[포대능선으로 가는 길] 12시 30분
'다락능선'에서 '포대능선'으로 가는 마지막 릿지코스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산객들이 줄을 서 오르고 있습니다.
[포대능선 진지] 12시 42분
드디어 '포대능선' 최고봉인 "포대 진지"에 올랐습니다.
'포대능선'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도봉산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포대 진지'가 이 능선에 있다고 지어진 "포대능선"은
시대에 걸맞게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軍시설물을 大自然의 이름으로 하는건 그만하고..
개인적으로는 望月寺를 감싸는 능선이니 "望月陵線"이라고 하는게 어떨지....
[포대능선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안내도]
[포대능선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이제 도봉산의 정상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청록파 시인이신 박두진선생의 詩중에 道峰에 대한 詩가 있어 소개해 드림니다
도봉(道峯)
박 두 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혀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먼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포대능선 진지에 있는 이정표]
'포대능선'에 올라 서면 친절하게 이정표를 세워놨습니다.
여기서 부터 '자운봉'까지는 300m이나 암벽 릿지코스로 가는 길이 제법 험한 코스입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엄청나게 병목현상이 일어나 지나는데 한시간 이상씩 걸리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우회로가 있으니 우회로를 이용하면 됩니다.
[자운봉 오르는 암릉코스]
'자운봉'으로 오르는 암벽코스는 제법 험하기는 해도 도봉산 산행의 하일라이트 구간입니다
오늘은 평일이라 정체현상이 덜하여 오랜만에 암벽코스로 올라 갑니다.
위험을 느끼는 분들은 '포대능선' 정상부에서 우회로가 있으니 우회하면 간단합니다
[자운봉 오르는 암릉코스]
암벽 하나를 내려 갑니다.
[자운봉 오르는 암릉코스]
그리곤 다시 올라 갑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한번 왔었는데 여학생의 엉덩이를 밀어 올려주던 일이 기억나네요
난생 처음으로 여자 엉덩이를 만져 봤지요. 그 때는 짜릿짜릿했는데...ㅎㅎ
그때는 쇠줄등 보조 시설이 없어서 오로지 自力으로 올라야 했습죠
[자운봉 오르는 암릉코스]
재미있다면 재미있고, 짜릿하다면 짜릿할수 있는 코스입니다.
['도봉주능선'에 올라 뒤돌아 본 '포대능선 정상'] 1시 6분
'도봉주능선'에 올랐습니다.
뒤돌아 보니 아까 올랐던 '포대능선' 정상부의 포대진지가 보입니다.
저곳에서 이곳 사이의 계곡 암벽코스를 지나 온 것입니다.
[도봉 주 능선에 올라 바라 본 '자운봉']
앞으로는 '자운봉'이 정상부를 조금 보여 줍니다.
도봉산의 최고봉까지 거의 오른 샘입니다
[도봉 주 능선에 올라 바라 본 '칼바위'와 삼각산']
경치가 끝내 줍니다.
왼쪽에 '자운봉', '주봉 柱峰', '칼바위'가 줄을 서 있고,
그 뒤로 '상장능선'과 삼각산의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가 웅장한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제가 좋아하는 詩 한수 읊지 않을수 없군요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수없어
내가 산을 찾아 가네
나무도 내게 올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을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 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 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자운봉' 아래에서 점김식사]
즐거운 점심식사
오늘은 특별한 story나 history가 없는 곳을 산행하기에 쓸 얘기가 별루입니다
그래서 "사랑 받는 女人", 제가 좋아하는 女人은 어떤 女人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분명히 다음과 같은 女人은 있을 것입니다. 없다구요? ㅎㅎ 있어요~~
컴을 어느정도 만질 줄 알고
인터넷을 사용해 필요한 정보 검색하고
"홍어와 무인도"
블로그 드나들며 맘에 들면 태그써서 영상시와
멋진 음악 올리며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여인
비싼돈 주고 구입한 핸드폰인데
단순 기능에 만족하지 않고
그 깨알 같은 핸폰 문자받침 찾아
메시지 띄울 줄 알아 남편. 자식.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문자 메세지 날릴 줄 아는 여인
[도봉 주 능선]
'자운봉' 아래 식사하는 곳에서 바라본 '포대능선'에서 '도봉주능선'으로 가는
저 가운데를 내려 갔다가 오르는 암벽코스를 조금 전에 탓던 것입니다.
베스트 드라이버는 아니더라도
운전석에 앉아 선그라스 끼고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자기가 가고 싶은 곳 운전할 때
교통법규 잘 지키면서도 주위차 흐름에 잘 맞춰가
알짱거린다고 빵빵소리 안듣게 운전하는 여인
[칼바위 아래 '자운봉''오봉''우이암''도봉계곡' 갈림길 이정표] 2시 30분
우회로로 '칼바위'를 지나 '칼바위' 아래 갈림길에 왔습니다.
'칼바위' 아래 이곳 갈림길은 매우 중요한 곳이지요?
'도봉산역', '도봉계곡'으로 바로 내려 갈수 있는 곳이고,
'오봉', '여성봉'으로 '송추남능선'으로 가는 코스이기도 하고,
'한북정맥'이며 '도봉주능선', '우이남능선'으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서울市界"도 이곳에서 '우이남능선' 방향으로 갑니다
['우이암'으로 가는 '도봉주능선'에 있는 전망대] 3시 20분
"道峰山"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고하는 조망대에 왔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오봉 능선']
'도봉산'의 자랑 "오봉 五峰"이 쥐잡기를 하고 있습니다.
옅은 화장에 머리도 신경써 만질 줄 알고
멋에 대한 감각도 좀있어 작은소품으로도 세련미를 풍기며
큰 돈들이지 않으면서 자기관리 잘해
그렇게 몸이 많이 안퍼진 여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정상부']
'도봉산'의 정상부를 이루고 있는
좌측으로 부터 "칼바위", "신선대",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돈 쓸 줄도 알며
자신의 미래와 성공에 투자할 줄 알고
우리집 재산도 조금씩 불려가는 여인
[기암괴석]
곳곳에 이름 모를 奇岩怪石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아직도 아가씨 때의 지적 호기심을
잊지 않고 책을 가까이 하며 시도 좋아해
아름답고 감동적인 구절은 한 두소절쯤 기억해 뒀다가
적절하게 구사할 줄 아는 여인
[통천문] 3시 30분
하늘가 통한다는 "通天門"을 지나고....
길섶에 핀 풀꽃 한송이에도
눈 맞춤 할 줄 아는 녹슬지 않은 감수성을 가지며
작은 일에도 감동을 잘하여 눈을 보고 감동하고
예쁜꽃을 보면 발길을 멈추며
지는 석양이 아름다워 살며시 눈물흘리는 여인
[서울市界-원통사-우의남능선 갈림길] 3시 32분
'원통사', '우이남능선'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으로 '원통사'로 내려가는 길이며 직진이 '牛耳南陵線'으로 가는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울市界"가 여기서 우측으로 "牛耳嶺"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서울市界'를 종주하는 우리는 우측으로 市界를 따라 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이령'-상장능선8봉'-'육모정고개'까지는 출입제한지역으로 갈수가 없습니다.
저는 한번 위험을 무릅쓰고 지나간 '漢北正脈'이기도 합니다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출입금지 지역을 우루루 市界를 따라 가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牛耳南陵線'을 따라 내려 가고 다음 구간때엔 "육모정고개"로 市界종주를 이어 가기로
했습니다. 市界를 벗어 날수 밖에 없어서 약간은 아쉬웠지만 ...할수 없죠? ㅎㅎ
[바위 틈에 자라는 소나무]
'牛耳南陵線'을 따라 내려가는 도중에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소나무 한그루
바위가 이기느냐...소나무가 결국 이기느냐.....
결국은 소나무가 바위를 쪼개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 한다고 하지요
퇴근길 남편손에 들려진
2,000원어치 붕어빵 한봉지에도
마음의 욕심을 비워낸 편안하고
그윽한 표정으로 진한 감동을 표현 할 줄 알아
남편에게 행복한 가정임을 알려주는 우아한 여인
[우이남능선 우회로]
'牛耳南陵線' 마루금을 밟아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회로로 갑니다만.....
공공장소나 버스안에서
친구랑 같이 이야기 하거나 핸드폰을 받을 때
주위를 의식해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며
평범한 일과속에 격한 감정을 섞지 않는...
그렇게 보일듯 말듯한 교양도 좀 있는 여인
[유격훈련]
'牛耳南陵線' 우회로에도 유격코스가 하나는 있습니다.
이날 54년 말띠분들 다음날 어깨가 좀 뻐근거렸을 텐데...ㅎㅎ
그래도 재미있었죠?
[원통사-우이동 갈림길 쉼터] 4시 3분
'牛耳南陵線' 유격코스를 내려 오면 '원통사 갈림길' 쉼터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는 우이동까지 고속도로입니다.
[우이암]
원통사 갈림길 쉼터에서 바라 본 "牛耳巖"
"牛耳巖" 아래 "圓通寺"가 기도빨이 센 곳이라고 알려져있지요?
그래서 이성계도 왕이 되기 전에 이곳에 와서 왕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결국 왕이 되었으니 기도빨이 쎈곳은 맞는건가요? ㅎㅎ
특히 "牛耳巖"이 根力이 쎄서 그렇다는 설도 있더군요
[牛耳嶺길] 4시 30분
완전히 하산을 하여 우이동으로 내려 갑니다.
이 길은 '우이령'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요
[우이동 '그린파크' 앞 다리에서 뒤돌아 본 '牛耳岩'] 4시 35분
'그린파크 호텔' 입구에서 바라본 "牛耳巖"
이곳의 地名까지 "牛耳洞"이라고 하게 한 바위
그 뒤로 도봉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조금 보입니다
[뒷풀이]
'거인산악회', '54년말띠 트렉킹동호회', '월간 산 취재진'이
서울市界종주 세번째만에 함께 뒷풀이를 했습니다
산행 총 거리 : 10.5km (GPS측정)
총 산행 시간 : 6시간 20분
다음 구간은 "서울市界"의 하일라이트 "北漢山國立公園"의 "三角山"이 되겠습니다.
이번에 주왕산-소백산-도봉산을 연이어 산행 하느라 지쳤었습니다.
그래서 산행기를 정성스럽게 쓰지못해 산행기도 잼없습니다. 이해 하시죠? ㅎㅎ
다음 구간은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아마 즐거움을 드릴수 있을 것입니다
많이 참가하세요~~
서울市界從走記 두번째구간
담터사거리-삼육대후문-삼육대-불암산-덕릉고개-
수락산 철모바위-진달래능선-수락리버시티아파트-도봉산역
2월9일(화) 흐리고 비
2월5-7일까지 제주도 한라산과 올레를 다녀와
바로 "서울市界종주 두번째구간"에 참여했습니다.
겨울비도 내려 산행하기에는 나쁜 조건이었습니다.
[서울市界2구간]
[태릉입구역]
겨울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태릉입구역"
7번 출구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나오면 "담터4거리"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이 정류장에 서는 버스는 대부분 "담터4거리"까지 가니 아무 버스나 타면 됩니다.
"서울市界2구간"은 「담터4거리」에서 "삼육대" 통과하는 방법과
수락산 「진달래 능선」에서 "도봉산역" 가는 길만 알면 길찾기는 쉽습니다
["담터4거리"에서 "삼육대" 통과하는 방법]
『삼육대』를 통과해서 "불암산"으로 올라 가는 길이 조금 모호하니 유의해야합니다
"담터4거리"에서 길을 건너 북쪽 큰길로 올라 갑니다.
윗 지도에서 보는바와 같이 붉은 선을 따라 "삼육대"를 통과해야합니다
[삼육대학교 후문 입구] 10시 40분
"담터4거리"에서 북쪽 대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삼육대 후문" 입구가 나옵니다.
[삼육대학교 후문 가는 길]
"삼육대 후문 입구" 주변엔 '논골편의점'과 '한사랑 한의원'이 있습니다.
골목은 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 길찾기는 쉽습니다.
[삼육대학교 후문] 10시 43분
"삼육대" 후문안으로 들어 갑니다.
[삼육대학교]
"삼육대"안 학교 정중앙을 통과해서 시계탑 앞으로 계속 직진합니다.
[삼육대 교내 갈림길] 10시 49분
후문에서 계속 직진해서 오면 이렇게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길을 따라 올라 가야 합니다
여기서 산행 준비를 해도 좋습니다.
[삼육대 - 제명호] 10시 57분
갈림길에서 좌측길을 따라 조금 올라 오면 삼육대 호수 "제명호"를 만납니다.
이곳에서 우측길로 가야합니다
[기념사진]
오늘은 기념 단체 사진을 삼육대 "제명호" 앞에서 찍었습니다.
[삼육대 교내 갈림길2] 11시 5분
"제명호"를 좌측에 두고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사진 좌측에 보이는 건물이 화장실입니다.
[삼육대 교내에서 불암산 가는 길]
제법 넓은 불암산 오르는 길을 5분 정도 올라 갑니다.
[삼육대 담장] 11시 11분
"제명호"에서 불암산 오르는 길로 오르면 "삼육대" 담장을 만남니다.
담장 밖으로 나가면 불암산 등산로이며 '서울市界'입니다.
[불암산]
'삼육대 담장 문"을 나오면 雲霧 속으로 "불암산"이 보입니다.
우측 뾰쪽한 봉우리가 "불암산 정상 봉우리"이고,
좌측 뭉뚱한 봉우리가 "불암산성"이 있고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중계본동-별내동 갈림길] 11시 21분
삼육대 담장문에서 오르는 길 좌측으로는 "강릉"과 "태릉"이 있으며,
중계본동에서 오르는 등산로를 만남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태릉"은 알아도 "강릉"은 잘 모릅니다.
또한 그러면서도 "태릉"을 '왕릉'으로 아는 분들이 많지요?
'왕릉'이 아닙니다.
[정자] 11시 25분
조선왕조 오백년에 女王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女王같은 권력을 누린 여인들은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 여인이 세명있지요?
이 세 왕비는 모두 "수렴청정 垂簾聽政"을 하여 실제적으로는 "女王"이었습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수양대군 세조'의 부인인 "7대 정희왕후"
쿠데타 정권 '중종'의 두번째 계비인 "11대 문정왕후"
15살때 66세의 영조에게 시집와 왕비가 된 "21대 정순왕후"
이 세여인은 실제 "女王"이었습니다.
[불암산성 오르는 길]
정자를 지나면 본격적인 불암산 등반이 시작됩니다.
이 불암산 등산로 좌측에 있는 "태릉 泰陵"은 중종의 세번째 부인인 "문정왕후"의 무덤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강릉"이 王陵인데, "태릉 泰陵"보다 초라하며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강릉"은 "문정왕후"의 아들인 "조선 13대 명종 明宗"의 무덤입니다.
왕의 무덤보다 왕비의 무덤이 더 크고 알려져있으니.....
무덤만 보아도 "문정왕후"의 위세가 그 당시 어떠하였는지 가히 짐작 할수 있습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농단한 '철의 여인' - 女王이었습니다.
[천보사 갈림길을 지나] 11시 43분
'천보사 갈림길'을 지나 된비알을 오르면....
연산군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왕권을 장악한 '중종'은 처자식 福이 지지리도 없었습니다.
첫 왕비인 '단경왕후'가 역모와 관련된다고 폐위되고, 제1 계비인 '장경왕후'를 얻었는데,
'장경왕후'는 아들 "인종"을 낳고 산후조리하다 바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운도 좋게 제2계비로 등장한 여인이 집요하게 권력을 추구한 부패정치의 대명사인
"태릉"에 뭍혀있는 "문정왕후"입니다. "문정왕후"는 아들을 하나 낳는데 그가 바로 "明宗"입니다.
"인종파"와 "명종파'가 치열한 覇權 싸움을 하여,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승리하여
왕위에 오르지만, 불행이도 "인종"은 왕으로 즉위한지 9개월만에 죽습니다.
드라마로도 많이 알렸지만 아시다시피 '문정왕후'는 '인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자 인종'을 죽이려고
여러 방법을 썻지요. 침전에 불도 지르고...결국 '인종'은 "문정왕후"에 의해 일찍 죽었다고 봅니다.
'인종'이 일찍 죽고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12살의 나이에 즉위하자 조선은 "문정왕후"의 나라가
됩니다. "女王'이 나타난 것이지요. 수렴청정을 시작하며 반대파들을 싹쓸이 죽여 버리고..을사사화.
무소불위의 권력 뒤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민생은 파탄에 빠지고.....
수렴청정을 물린 이후에도 명종의 뒤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조선의 측천무후, 철의 여인"등 현세에 와서 수많은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운도 무지 좋았던 여인이지요.
[불암산성 위] 11시 54분
"佛岩山城"이 나옵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이곳이 山城인지 쉼터인지 알수 없습니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농단 할때
『명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 있습니다.
『여러 지방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다.”』는 보고를 받은 내용이 여러 차례 올라와 있습니다
'문정왕후'를 빗대어 조선의 암닭이 숫닭으로 변한다는 상소가 올려진 것이지요.
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문정왕후'는 자기 꼴리는대로 놀아 났습니다.
아들 '明宗'이 말을 잘 안들으면 왕의 뺨도 때리고, 종아리도 때렸습니다.
양주 회암사에 있던 중 "보우'를 지금의 삼성동 무역센타 뒤 "봉은사" 주지로 앉히고
썸씽을 일삼으며 숭불억유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봉은사'가 아직도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절간이 되는 것입니다.
[불암산성] [문화재 지정 예정 안내]
이런 안내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佛岩山城" 자리라는 것을 압니다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에서 보았던 "보루" 정도인듯 합니다.
'문정왕후'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가지고 오는 것은 부정부패였습니다.
독재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중과세는 물론, 몇몇 상공인들에게 특혜를 줘서, 요즘말로 '정경유착'으로
엄청난 정치자금을 끌어모아 정권유지에만 골몰했으니 백성들의 민생은 몰락해 갔습니다.
이 때에 나타난 도둑놈이 '조선의 3대 도둑놈' 중에 한명인 "임꺽정"이었던 것입니다.
"문정왕후"와 "임꺽정" --- 이제 긴가민가 하던 그때 시대상들이 조금 이해되지요?
'문정왕후'의 섭정이 "임꺽정"이라는 도둑놈을 의적 - 영웅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실 "임꺽정의 난"은 가난해진 천민들의 봉기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 - '문정왕후'의 무덤이 저 옆에 있는 "태릉"입니다.
그 옆에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왕릉인 자기 아들 명종의 무덤인 "강릉"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 생각으로는....
저 여인은 우리나라 역사를 짓밟은 능지처참 해야 할 여인이라고 생각되는데....
[불암산성 위 헬기장] 11시 56분
"佛岩山城" 바로 위에는 헬기장이 있습니다
'문정왕후"의 외척정치로 피폐화된 백성들의 삶은 "임꺽정"같은 도둑놈을 영웅으로 만들고
일종의 농민들의 봉기로 까지 연결 되어 졌으니 나라는 완전히 사유화 되었던 것입니다.
"홍길동" 같은 새로운 국가건설의 꿈을 가진 반역세력들이 계속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급기야 다음 선조 때에는 쪽바리들의 조선 침략 - 임진왜란의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만들어 낸 그 여인이 저기 "태릉"에서 잠들고 있습니다
그런 "태릉"에 조선왕릉 전시관까지 만들고 성역화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체육 국가대표선수들의 훈련소를 "태릉 선수촌"이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또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의 역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좀 찜찜해 지셨죠?
그렇습니다. 좀 알고 놉시다~~!!
[불암산성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하루 종일 겨울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즐거움을 안겨 준 것이 雲海위에 떠 있는 "서울市界山들"이었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의 "삼각산"이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구름을 뚫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경치는 이런 날씨가 아니고는 볼수 없는 특별한 경치이니 비가 와도 본전 뽑았습니다
"태릉"의 "문정왕후"로 부터 찜찜하던 머리가 雲海에 떠있는 북한산국립공원을 바라보니
조금은 맑아 지시지요?
이제 암닭 '문정왕후'는 잊고 불암산과 수락산 등산을 하자구요....
[불암산성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겸재 정선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 같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의 "도봉산"이 복잡한 서울을 깔고 조용히 상념에 잠긴듯합니다
"나도 이젠 세상만사를 잊고 조용히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듯....
세상에 이렇게 세계적 대도시 서울을 깜쪽같이 덮어 감출수가 있습니까?
대단한 장관입니다.
[불암산성 헬기장에서 보는 "불암산 정상"]
산꼭대기 암석이 부처를 닮았다고 붙여졌다는 佛岩山이 가까워 옵니다.
[불암산 정상을 오르며 바라본 "수락산 水落山"]
불암산 정상을 오르며 바라본 앞으로 가야할 "수락산"도 雲海 위에 떠있습니다.
[불암산 깔딱고개 전망대] 12시 10분
정암사, 공원관리사무소에서 오르는 "깔딱고개" 위에 있는 전망대를 지나 갑니다
[불암산 정상 오르는 길] 12시 16분
모두 암반으로 이루어진 불암산 정상을 향해 가파른 암릉을 오릅니다.
[거북바위]
정상으로 오르는 암릉길 초입에 "거북바위"가 나옵니다.
거북이 같나요? 거북등은 벌집 모양 육각형으로 갈라진 문양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라'라고 해야 할텐데....
[거북바위]
옆에서 보니 거북이를 닮았다고 할수 있는데 거북등이 민밋하군요
[불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가파른 계단을 오릅니다.
[삼각산과 도봉산]
구경거리는 雲海에 떠있는 섬같은 삼각산과 도봉산입니다.
다닥다닥 붙은 헤아릴수 없는 집들을 보지않고 평온한 구름위의 산들만 보니
모처럼 망망대해에 온듯한 느낌이 듭니다.
[약간 줌인한 도봉산 자운봉]
도봉산 '자운봉' '만장봉' '신선대'를 약간 줌인해 봤습니다.
다음 구간에 가야할 서울市界입니다.
바로 앞 봉우리의 정자를 보면
정말 "겸재 정선선생"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합니다.
[불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계단의 길이가 제법 깁니다.
그리고 가파릅니다.
[불암산 정상] 12시 50분
드디어 불암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겨울비는 계속 오락가락하는데 암릉길은 미끄러워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불암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본 "불암산성 헬기장 봉우리"]
'불암산성'이 있었던 헬기장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삼육대에서 오는 산줄기가 보입니다.
이 산줄기를 "수락지맥 水落枝脈"이라고도 합니다.
아까 지나온 "불암산성"이 있던 '헬기장 봉우리'가 조금은 멀군요
[불암산 정상석]
지난해 11월 12일에 노원구에서 이 곳 불암산의 명예산주로 탈런트 최불암씨를 위촉해
'불암산이여!'란 詩碑를 제막했다고 합니다.
불암산 佛岩山과 최불암 崔佛岩씨의 한자가 같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
어떤 공무원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살다보니 별의별 얘기도 다 듣습니다.
유명한 탈랜트라고 스스로 광대라고 말하는 사람을 詩人으로도 만들고, 명예산주로도 만드니...
그리고 최불암씨의 본명은 "최영환'이지요? 불암산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되는 사람은 뭘해도 되고 않되는 사람은 뭘해도 않됩니다.
일등만 생각해 주는 더러운 세상!!` ㅎㅎ
웃기던 재미있던 하여튼 개그같은 일이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최불암씨가 직접 쓴 글이던 어떻던 崔 佛 岩씨가 쓴 詩랍니다. ㅎㅎ
불암산(佛岩山)이여!
崔 佛 岩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廉恥)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歲月), 영욕(榮辱)의 세월
그 웅장(雄壯)함과 은둔(隱遁)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대를 거쳐 노원(蘆原)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雄志)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 없이 불암산(佛岩山)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容恕)하십시오.
詩라기 보다는 반성문 같습니다. ㅎㅎ
본명이 '최영환'인 사람이, 가명으로 '최불암'이라고 좀 했다고 뭔 반성문까지 쓰는지....
어쩌 보면 쑈~를 하는 것 같지요?
[불암산 정상 삼각점]
508m높이
산의 형상이 마치 "송낙", 즉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를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불암산 佛岩山이라 이름 지어 졌다는 유래를 갖고있습니다.
[불암산 정상에서 바라 본 "천마자맥"]
철마산 鐵馬山, 천마산 天摩山, 백봉산 栢峰山이 연이어 있습니다.
[불암산 정상에서 바라 본 "수락산"]
앞으로 가야할 "수락산"도 구름 위에 솟아 있습니다.
[두꺼비바위]
불암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두꺼비 바위"
두꺼비 같나요? ?
['다람쥐공원'으로 가며 뒤돌아 본 "불암산 정상"]
정상을 내려와 뒤돌아 본 불암산 정상
[쥐바위]
'다람쥐 공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쥐 바위"
[다람쥐 공원] 오후 1시 3분
이 공원이 있는 봉우리가 406m 높이의 "석장봉'입니다
뭔 유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람쥐 쳇바퀴' 하나 만들어 놓고 "다람쥐 공원"이라...
["덕릉고개"로 가며 바라보는 "수락산"]
[덕릉고개 갈림길] 오후 1시 40분
다람쥐 공원에서 약40분 정도 하산을 하면 "덕릉고개"가 나옵니다.
"덕릉고개"는 불암산과 수락산을 갈라 놓는 고갯길이기도하고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과 남양주시 별내동을 구분하는 "서울市界"이기도 합니다
[덕릉고개 에코브릿지]
"덕릉고개"에 얽힌 이야기를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문정왕후"의 무소불위 부패정권의 꼭두각시 왕 "13대 明宗"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습니다.
뒤따라 등장하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쪼다리 왕이라고 제가 늘 이야기하는 왕이 14대"선조"입니다.
도저히 왕이 될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선조'였습니다만, 붕당정치세력들의 도움으로 왕이 됩니다.
다시말해 비정상적으로 왕이 되어 언제나 왕권을 유지하는데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비협조적이거나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자들을 정적으로 간주하고 처단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 전란 속에서도 국가의 안위보다 왕권의 안위를 먼저 생각 할 정도로
소심한 쪼다리 왕이어서 많은 충신들이 처형 당하고, 나라는 망신창이가 되었지요
쪽바리들이 쳐들어 오니까 백성들은 그냥 놔두고 북쪽으로 도망을 가질 않나....
적군과 열심히 소신껏 싸우는 사람들을 죽일려고 하질 않나...대표적인 사람이 '이순신 장군'입니다
[덕릉고개 서울市界 표지판]
쪼다리 왕 "선조"는 자신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이 근처 별내면 덕송리에 봉했습니다.
'덕흥대원군'은 조선왕조 최초의 대원군이며 '중종'의 일곱번째 아들로 서출로부터 태어 났습니다.
'선조'는 도저히 왕이 될수 없던 족보 위치에 있다가 붕당정치세력들의 도움으로 왕이 되어
언제나 의심 많고 왕권 안위를 걱정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고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선조'는 자기 아버지를 왕으로 권위를 높여야 자기도 위상이 높여 질것으로 생각하고
왕이 아니었던 아버지의 묘도 왕의 묘를 부를 때 쓰는 "릉 陵"으로 부르기 위해
술수를 썼다고 전해져 옮니다. 기록으로도 전해져 옮니다.
그 술수가 성공하여 "덕릉"으로 불리워지게 되었고,
이 고개의 이름도 "덕묘 德墓고개"가 아닌 왕릉을 칭하는 "덕릉 德陵고개"가 된 것입니다.
[덕릉고개 수락산 들머리]
쪼다리 왕 "선조"가 사용했던 술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답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아버지 덕흥군의 '묘 墓'를 "릉 陵"의 수준으로 높이고 싶었으나
신하들은 끝내 불가하다는 대답 뿐 이었답니다.
선조는 할 수 없이 신하들을 설득하는 일을 단념하고 대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믿을 만한 내시를 동문밖에 있는 가게로 내보내어, 별내면에서 나무와 숯을 실은 수례를 끌고 오는
장사꾼에게 어디를 지나서 이곳까지 왔느냐 물어서 그가 “덕흥대원군의 '묘'를 지나서 왔다”고 하면
장사를 못하게 돌려 보내고, 만일 "덕흥대원군의 '릉'을 지나서 왔다"고 하면 가게 안으로 불러들여
술과 밥을 후하게 대접하고 나무와 숯을 후한 값으로 쳐 모두 사들여 주도록 하였답니다.
이 소문은 한 사람 두 사람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불길처럼 퍼져 나갔겠지요.
그리하여 사방에서 나무와 숯을 끌고 온 장사꾼들이 모두 덕흥대원군의 '릉'을 지나왔다고 떠들어 대니
정식으로 '릉 陵'이라 반포한 것보다 효과가 커서 후세 사람들은 저절로 이 묘소를 "덕릉 德陵"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니, "선조"를 효자라 해야겠습니까? 아니면 에구~ 쪼다리라고 해야겠습니까
[송전철탑] [수락산 登路]
154,000볼트의 송전철탑을 지나면 "수락산" 등산이 시작됩니다
[도솔봉 갈림길] 2시 45분
"덕릉고개"에서 약1시간 정도 오르면 "도솔봉 갈림길 이정표"가 나옵니다.
그냥 수락산으로 지나 갈수도 있습니다만, 멀지 않으니 "도솔봉"을 갔다가 옵니다
[도솔봉] 2시 47분
갈림길 이정표에서 2분 정도 좌측으로 오르면 "도솔봉 정상"이 나옵니다.
[곰바위]
도솔봉에 "곰바위"가 있다고 표기되 있는데 어떤게 "곰바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솔봉에서 뒤돌아 본 "불암산"]
도솔천에에서 내려다 보는 듯 불암산이 神仙臺 같군요.
하지만 '송죽'을 쓴 부처를 닮았다는 말은 무얼두고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도솔봉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이제 도봉산은 정면이 아닌 옆면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많이 북진했다는 걸 증명합니다.
["치마바위"로 가는 길] 2시 53분 [치마바위 밑 이정표]
수락산의 명소 "치마바위"로 갑니다.
[수락산의 대표 바위봉들]
수락산의 대표 바위봉우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우측에서 부터 '치마바위' '하강바위' '코끼리바위' '철모바위 '배낭바위'.....
["치마바위"로 오르는 登路]
암릉구간이 시작되면 '치마바위'로 오르는 등로가 아기자기한 바위들로 가득합니다
["치마바위" 바로 아래 '女深바위']
'치마바위' 오르는 곳엔 희안하게도 치마 밑에 이런 바위가 있습니다.
'개눈엔 똥만 보이는 이들"이 "女深바위"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ㅎㅎ
[치마바위] 3시2분
'치마바위'에 올랐습니다.
올라서 볼때엔 치마인지 뭔지 알기 어렵고 멀리서 봐야 치마바위 임을 알수 있답니다.
[치마바위]
치마바위에 사람들의 낙서가 이채롭습니다.
[치마바위에서 뒤돌아 본 "도솔봉"]
치마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도솔봉"과 그 뒤로 "불암산"이 그림같습니다
[치마바위에서 바라보는 "코끼리바위"와 "베낭바위"]
[코끼리 바위, 종바위] 3시 8분
제가 사진을 잘 못 찍어 "코끼리바위"와 "종 鐘바위"는 실제 이 사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
코끼리는 바위 꼭대기에 조그마하게 있답니다.
[철모바위-서울市界 갈림길]
코끼리 바위에서 "철모바위"로 올라 갑니다.
이곳은 "서울市界"를 종주 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철모바위] 3시 22분
수락산의 대표 바위인 "철모바위"에 왔습니다.
[철모바위-서울市界 갈림길]
철모바위 앞에는 삼거리 갈림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서울市界"는 좌측 능선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우측으로는 "수락산 정상 봉우리"로 가는 길입니다.
[철모바위-서울市界 갈림길 이정표]
이정표가 가리키는 "수락산역(수락골)"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수락산 정상]
하지만 '철모바위'에서 '수락산 정상'은 멀지 않아서 갔다가 되돌아 와도 됩니다.
용마산 정상, 불암산 정상, 이 곳 '수락산 정상'에도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하산길]
'수락산역(수락골)'방향으로 나아 가면 낭떨어지 같습니다만,
나아가 보면 계단이 설치되있어 그나마 내려 가기가 쉽습니다.
여기서 부터 급경사 슬랩구간을 내려 가야하니 다소 위험합니다.
[배낭바위] 3시 28분
첫번째 계단을 내려 오면 '배낭바위"가 있습니다.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바위 이름이 되나 봅니다.
[배낭바위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봉우리들]
불암산이 동양화 속의 神仙臺 같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와 "도봉산"]
오늘은 무지무지 많은 회색빛 콘크리트 아파트들과 빌딩들은 하나도 보이지않고
망망 대해를 항해하는듯하여 겨울비가 야속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수리바위] 3시 35분
왜 독수리바위라고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독수리바위에서 바라보는 "매월정"]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에 정자가 하나 보이시지요?
저 정자가 "매월당 김시습"을 덜먹거리며 지었다고 "매월정"이라 한답니다.
저곳까지 가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급경사 슬랩구간을 내려가 다시 올라 가야합니다.
[독수리바위에서 매월정 가는 길]
겨울비가 내려 암벽은 미끄럽고, 우산은 쓰고, 경사는 가파르고....
[매월정] 4시 18분
매월정에 왔습니다.
비가 내리니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곳입니다만....
'매월당 김시습"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의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문을 닫고 대성통곡하며, 그 동안 보던 모든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에 들어서, 곳곳을 두루 방랑하면서 글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은 '생육신 生六臣'의 한 사람입니다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강건한 성격 소유자의 대명사이지요.
[매월당 김시습]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작가이지요.
김시습 사후에 중종에 의해 '이조판서'로 추서됩니다
안내판에서도 알려주는 바와 같이 '매월당 김시습'은 수락산의 동쪽편, 즉 별내면의
'내원암'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니, 기념 정자는 이곳이 아닌 별내면쪽에
지어야 하겠지요? 아무데나 먼저 짓는 놈이 임자라구요? ㅎㅎ
[매월당 김시습의 詩]
[매월당 김시습의 詩]
[수락골-진달래능선 갈림길] 4시 35분
"매월정"에서 약5분 정도 "수락역" 방향으로 내려오면 "진달래능선-수락역 갈림길"이 나옵니다
'서울市界'는 여기서 우측 "진달래 능선"으로 가야 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수락골-진달래능선 갈림길 이정표]
이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으니 "진달래 능선"을 찾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진달래 능선]
제법 넓은 진달래능선을 내려 갑니다.
[서울市界로 가는 길]
"진달래 능선"을 내려 오면, 길 가운데 나무로 길을 막아놨습니다.
더 이상 직진하지 말라는 친절하신 분들의 배려입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수락산터널'로 진달래 능선은 더 이상 가지 못합니다.
그곳에서 윗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좌측 계곡쪽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 갑니다
[소공원] 5시 5분
희미한 계곡길을 따라 내려 오면 소공원이 나옵니다.
[수락산에서 도봉산역까지]
수락산 소공원으로 내려와 "육교"를 건너 "도봉산역"으로 가는 지도입니다
이 지도를 참고하여 다음 사진을 보세요~
[서울市界]
소공원에서 큰길로 내려오면 "상계동"에서 "의정부"로 넘어 가는 6차선 국도를 만납니다
사진의 좌측 "육교"로 지나 가야합니다.
앞에 보이는 아파트가 "수락리버씨티 1단지"입니다.
육교를 건너, 우측 1단지와 좌측3단지 사이의 개천 산책로로 가면 됩니다.
[육교 위에서 보는 서울市界 표지판] 5시 11분
서울市界"를 정확히 종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도봉산역' 가는 길]
市界 육교에서 직진하여 "수락 리버씨티 아파트 3단지"로 들어가 우측 개천 산책로로 내려가
앞에 보이는 다리 밑을 지나 갑니다.
[도봉산역 가는 길]
개천 산책로를 나가면 새로 만들어진 "도봉산역" 가는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도봉산역' 방향으로 갑니다.
[서울 창포원] 5시 24분
다리에서 우회전하여 2~3백미터 올라 가면 "서울창포원"이 나옵니다.
"서울창포원" 안으로 들어 갑니다. 창포원 구경도 하고....
꽃창포를 비롯한 여러 식물들을 키우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생태공원이라고 합니다.
['서울 창포원'에서 보이는 '도봉산역'과 도봉산']
"서울창포원" 안으로 들어 오면 "도봉산역"과 그 뒤로 "도봉산"이
멋진 자태를 뽐냅니다.
[도봉산역] 5시 30분
총산행 시간 : 6시간 50분
총산행 거리 : 약16km
서울市界從走記 첫구간
광나루역-서울*구리市界-아차산-용마산-망우리공동묘지-망우리고개-
망우산-큰망우리굴-구룡산-새우개고개-담터사거리
1월 26일(화) 날씨 맑음
市界, 道界 從走는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만,
정작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서울특별시 市界從走"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서울 市界從走"를 하고
다음에 종주 하실분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도록 從走記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서울 市界從走"는 앞으로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에 계속 됩니다.
그러면 '제1구간'으로 함께 떠나 볼까요?
[1구간 개념도]
'1구간'은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에서 출발하여
구리방향으로 가서 서울-구리 경계에 있는 "고구려대장간마을"로 아차산을 올라
용마산, 망우리공동묘지-망우리고개-망우산-큰망우굴고개-구룡산-새우개고개-담터사거리 까지
제법 긴 코스가 되겠습니다.
[광나루역 1번 출구 - 기념사진] 오전 10시 15분
"지하철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
'거인산악회'와 '54트레킹 동호회', '월간 山'취재진과 함께 "서울 市界從走"를 시작합니다
[광나루]
'광나루역1번출구'에서 九里방향으로 걸어 갑니다.
"광나루"는 '강나루'로 알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넓을 廣"으로 꽤 넓었던 나루여서 붙여진 이름이며, 모두 한자로 쓰면 '廣津'이 되겠지요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망우리 고개를 넘어 장호원으로 피신 할때도 이 나루를 이용했다죠?
헐레벌떡 도망가는 중이라 뱃삯이 없어서 그 때 뱃사공에게 자기 금반지를 몰래 주고 건넜답니다.
[워커힐 정문 앞] 10시 30분
'워커힐' 입구를 지나 갑니다.
저는 이 '워커힐'을 지날때 마다 치졸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만들었던 5.16군사정권시절의
"4대 의혹 사건"이 생각납니다.
"증권파동", "워커힐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빠찡고사건"을 가리키는 4대의혹사건은
당시 김종필의 중앙정보부가 주동이 된 비리 횡령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던 60억환을 들여 건설하는 '워커힐'을 군인들을 동원하여 건설하여
거의 꽁짜로 짓고, 공사대금과 불법 대출금을 중앙정보부가 횡령한 사건이었죠.
그 핵심 인물인 김종필씨는 아직도 살아서 숨쉬며 가끔 TV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워커힐 아래 구리로 가는 차도를 따라]
그런데 "워커힐"이라고 이름 짖게 된 사연을 아시나요?
원래 이 자리는 "이 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쿠데타에 성공한 5.16군사정권의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씨가
“한국에는 적당한 미군 위락시설이 없어 연간 3만여 명의 미군이 일본으로 휴가를 간다”는
멜로이 유엔군사령관의 말을 듣고 미군 위락시설 건립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외화 벌이를 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호텔을 지었는데, 비밀리에 연 2만여 명의 軍공병병력과
4000여 대의 軍중장비를 동원, 토목공사를 진행하여, 실제는 앞에서도 언급한 '공화당' 창당자금
마련을 위한 중앙정보부의 횡령사건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여하튼 "워커힐"이라고 이름 짖게 된 사연은 의외로 미국에 아부하는데 있었습니다
"Walton H. Walker"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Walker Hill"이라고 했답니다.
이 Walton H. Walker는 6.25전쟁 때 참전한 美軍의 장군이었습니다.
'워커 장군'은 본래 탱크부대를 지휘한 기갑병과 출신으로 평소 자동차에 올라타면
과속 스타일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날따라 아들 '샘 워커'에게 직접 훈장을 달아주기 위해
지프를 타고 8군의 전방지휘소인 서울대(현 한국방송대)를 출발, 의정부 미 제9군단 사령부를 향해
과속으로 달리다가 의정부에서 남하 중인 국군 제6사단의 GMC 트럭과 충돌,
현장에서 즉사하였으며, 그 대가 50년 12월23일이었고, 향년 61세였다고 합니다.
6·25전쟁에서 전쟁하다가 순직한 것도 아니지만, 교통사고로 순직한 "워커"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즉 미국에 아부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 "워커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워커힐'을 민간에게 이양 할때도 말이 많았었죠"
선경그룹(현 SK그룹) 최종건 초대회장에게로 넘겨 졌는데, 이 양반이 당시 중정부장이었던
이후락이와 사돈 지간이라서 의혹의 눈길은 끝이 없었습니다.
.
[서울市界] 10시 53분
"서울 市界"에 왔습니다만, 좌측은 '워커힐'이 가로 막아 직접 "市界"로 갈순 없습니다
그래서 "市界"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 '워커힐' 담장이 끝나는 곳까지 갑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 입구까지 갑니다.
[서울市界 入口 - 들머리] 10시 46분
'워커힐' 담장이 끝나는 곳에 좌측으로 골목이 나옵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로 올라 가는 길입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로 가는 길]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태왕사신기"라는 TV드라마를 촬영한곳으로
하나의 셋트장인데 촬영후 구리시에 넘겨져 관광명소가 되었다는데
저는 처음 와 봅니다.
[장승들]
장승, 특히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의 장승이 눈길을 끌고....
저는 '평강공주'를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온달이가 바보가 아니라 평강공주가 바보 아닌가?라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자들이 시집 갈때 얼매나 '남자의 조건'을 따집니까?
집안은 괜찮은지...학벌은 어떤지...생활능력은 있는지...무슨 직장인지...건강한지...
그런데 당시에 "바보 중에 바보"라고 하는 온달이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시집을 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여자였는지, 아니면 신체에 이상이 있는 여자였는지 의심이 듭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 10시 53분
구리로 가는 큰길의 '고구려대장간마을 입구'에서 7-8분 오르면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나타납니다. 그 뒤로 워커힐 골프연습장도 보입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 안내도]
대장간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습니다.
그리고 입장료를 3,000원이나 받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일본인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태왕사신기"를 촬영한 셋트장이 이곳이엇고, 주인공이 "욘사마"로 불리는
"배 용준"이어서 지금도 그 흔적을 찾아 보기 위해 일본인 팬들이 많이 찾아 온다는 군요
[고구려 대장간 마을 전경]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라는 얘기에서 저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떠 올립니다.
그 유명한 '오드리 헵번' 주연의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라는 영화 기억하시나요?
그 당시 '오드리 헵번'의 머리 스타일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무지 무지 인기 있어서
'오드리 헵번' 신드롬이 생겼을 정도 였지요. 그 영화가 유명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버나드 쇼"가 쓴 희곡 '피그말리온'을 영화한 것이었지요
우리나라로 치자면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라는 스토리와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칭찬"은 아무리 바보도 현인으로 변모시킨다는 ....
'피그말리온'은 조각 여인상을 엄청 사랑하여 결국 조각이 여인으로 탄생되죠?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의 사랑과 믿음으로 훌륭한 장군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단어는 현대 교육학에서 최고로 치는 교육방법으로 자리메김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칭찬" 아무리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칭찬"에 인색하지 맙시다!!~
[아차산 종합 이정표] 10시 55분
고구려 대장간 마을 주차장에서 등산로 들머리에는 이런 이정표가 친절히 서 있습니다
'아차산성' '제1보루'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아차산 "큰바위 얼굴" 안내판]
'큰바위 얼굴'을 올라 가 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며 안내판을 촬영했으니 참고 하세요
[서울市界로 붙는 곳] 11시
'아차산성' 방향으로 조금 올라 가면 "강신, 용천 약수터" 안내 이정표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좌측 약수터 방향으로 올라 가야 서울시계를 최대한 붙어 올라 갈수 있습니다
[서울市界로 붙어 올라 가는 들머리]
개울 건너 돌계단을 따라 올라 가면 '워커힐' 경계 철조망을 만나게 됩니다.
[알바한 코스]
우리는 약간의 실수로 직진하여 '배드민튼 장'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
좌측으로 길없는 길로 올라가 '서울시계', 즉 워커힐 담장에 붙었습니다.
다음에 가실 분들은 아까 "강신, 용천 약수터" 안내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올라 가세요~
[서울市界 - 워커힐 담장] 11시 8분
배드민튼 운동장에서 좌측으로 길없는 길로 올라 서면
"강신, 용천 약수터" 안내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오르는 登路를 만납니다.
[서울市界 - 워커힐 담장]
워커힐 담장 철책을 따라 올라 갑니다.
[아차산성 갈림길 - 워커힐 오름길] 11시 26분
20분 정도 워커힐 담장 철책을 따라 오르면 삼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은 '워커힐'에서 직접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좌측 펜스 안이 "아차산성"입니다.
[아차산 가는 길]
'아차산성'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아차산-용마산" 등산로가 펼쳐집니다.
주변 동네사람들의 생활체육공간으로, 또한 관광지로 깨끗하게 정비해 놨습니다.
[안부]
아차산 입구 주차장에서 오르는 登路와 만나는 안부를 지나 갑니다.
그런데 여기를 지날 때에는 희귀한 것이 있으니 관심을 가지시기 바람니다
[連理根]
이곳에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連理根"이 있습니다.
저도 실제 連理根은 여기서 처음 봅니다.
대부분 외부에 나와있는 것은 連理木이나 連理枝여서 외부에서 볼수있지만
連理根은 뿌리이니 찾기가 쉽지 볼수 없어 희귀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더군요.
[아차산 오르는 길]
連理枝는 저의 산행기에서 몇번 언급된바 있습니다.
아들의 와이프, 즉 며느리를 시아버지가 빼앗아 자기 마눌로 만들어 유명한 당나라 '현종'과
그 며느리....아시지요? 그 유명한 "양귀비"
'현종'과 '양귀비'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낮이면 낮이나, 밤이면 밤이나 連理枝처럼 붙어
헥헥 거렸다고......? ? 국가가 망해 가도 밀실에서 連理枝가 되어 헥헥거렸지요? ㅎㅎ
連理枝 - 서로의 영양분까지 공유하며 사는 나무...현종과 양귀비를 생각해 봅니다
[고구려정]
山路를 따라 가는데 좌측으로 정자가 하나 보이더군요.
그래서 다시 가 보았습니다. 이런건 놓치면 꼭 후회하니까요
[高句麗亭] 11시 35분
정자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高句麗亭이라는 정자였습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 편의를 위해 최근 2009년에 새로 지었다고 하는 군요
[광진구청장 인사비]
'아차산 1보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곳에 碑가 하나 잇는데 자세히 보니
광진구청장의 인삿말이더군요. 좋은 말 써놨겠지요? ㅎㅎ 다시 표좀 달라고...
이곳에서 우리 팀은 단체 기념촬영을 하였답니다.
[광진구청장 인사비에서 바라 본 강남]
한강의 '올림픽 대교', 건너편 잠실방향이 내려다 보입니다.
또한 오른쪽 멀리 서울시계의 남쪽 산인 관악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광진구청장 인사비에서 바라 본 암사동, 하남시]
동남쪽으로는 들머리였던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워커힐 골프 연습장'이 보이고...
한강 건너편으로 암사동, 그 뒤로 '검단산'이 보입니다.
[약간 줌인한 '고구려 대장간']
가운데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약간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아차산 1보루] 11시 45분
"아차산 1보루"가 나타납니다.
"보루"는 "堡壘"로서 우리가 흔히 "최후의 보루"라는 말을 쓸때 사용하는 "보루"입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콘크리트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을 말하는데
'山城'이 생기기 전에, 즉 아주 옛날에 축조해서 적을 막아내던 곳이 '堡壘'였으니
'堡壘'는 대체로 삼국시대 이전에 만들어 졌습니다만
인구가 늘어 나면서 거주 목적과 방어목적으로 규모가 큰 "城"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차산 5보루]
서울市界의 東쪽 산, 즉 수락산,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에는 17개의 "堡壘"가 있다는군요
그러나 '서울시계종주'코스에서 벗어 나 있는 곳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어 모두 가 볼수는
없었고 지나 가며 보이는 것들만 촬영했습니다.
[아차산 명품 소나무1호]
아차산은 285m높이의 작달막한 산이지만 실제 올라 와 보니 정이 많이 가는 산입니다.
"아차산 名品 소나무 1호"
['아차산 명품 소나무1호'에서 바라 본 "용마산"] 11시 50분
"아차산 名品 소나무 1호"가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용마산 龍馬山"
이 사진을 잘 봐 두어야 앞으로 진행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서울市界'는 앞에 보이는 "용마산2헬기장"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바로 갑니다.
즉, '龍馬山' 정상은 지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쉽게 갔다 올수 있으니 龍馬山 정상을 밟고 망우산으로 가세요~
'용마산2헬기장 밑에 있는 송전철탑을 지나 용마산으로 올라 갑니다.
[아차산 명품 소나무2호]
이런 형태의 소나무는 대체로 원산지가 일본입니다.
영어로 쓰면 Jananess Red Pine Tree
소나무가 위로 쭉~뻗지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생긴것이 특징입니다.
원산지가 기후가 별루인 일본에서 주로 자라는 소나무임을 아시고,
쭉쭉 뻗은 우리나라 금강송에서는 볼수 없는 소나무이기에 사람들이 희귀하게 생각할뿐
분재같은 볼거리로나 보면 몰라도 실생활에서는 땔감으로나 쓸까 아무 쓸모없는
소나무임을 알고 감상하시기 바람니다.
ㅎㅎ 너무 심했나요? 그래도 보기 좋다구요? 맘대로 생각하세요. 다만 알고 감상하시길..
[아차산 3보루]
백제 고구려 신라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넓히려고 남의 땅을 빼앗기 위해 개거품 물고
처절하게 싸웠다는 아차산 ....
자기 있는 땅이나 잘 일구고 개간하는데 모든 힘을 쏟지않고, 남들이 힘들여 만들어 놓은
땅을 있는 힘 다해서 죽기 살기로 빼앗아 살아 가려고 했던 그 종족들이 경멸스럽습니다.
전쟁할 힘으로 농경지를 일구지....
수없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기 버릇 개 못주고 남의 떡을 노리는 인간들이 많지요?
에구~ 언제나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갈려나.......
[아차산 4보루 가는 길]
서로 동족 끼리 싸우고 싸워서 남은게 뭐가 있습니까?
외국놈의 씨끼들이나 덕 봤지....
[아차산 4보루] 12시 3분
'아차산4보루'에서 아차산은 끝나고 이제 용마산으로 갑니다.
['아차산4보루'에서 '용마산5보루' 가는 길] 12시 6분
'아차산명품소나무1호'에서 바라보던 사진의 송전철탑을 지나 "용마산"으로 갑니다.
[용마산5보루 오르는 등로]
아차산에서 용마산으로 오르는 登路는 제법 가파릅니다.
['용마산5보루' 오르는 등로에서 뒤 돌아본 '아차산 4보루']
용마산으로 오르는 登路에서 뒤돌아 보니 "아차산4보루"가 잘 보입니다.
[용마산 5보루 오르는 길]
용마산5보루로 오르며 땀을 조금 흘립니다.
[용마산5보루]
"고구려의 혼"이 서린 곳이라는 "용마산5보루" 봉우리에 왔습니다
요즘에 와서 이 동네는 왜 고구려를 울궈 먹기 시작했을까요?
역시 다른 동네와 차별화를 위해서이겠지요
한쪽에서 "고구려의 혼"을 들먹거리면 다른 쪽은 또 "신라의 혼", "백제의 혼"을 덜먹거리는데..
조금 더 폭 넓게 보지않고 자기 앞에 놓인 것만 들먹거리지는 않는지....
[용마산5보루 - 용마산 제2헬기장] 12시 15분
"용마산5보루"는 "용마산 제2헬기장"으로도 쓰는 곳이었으며
'서울市界'가 지난 가는 곳입니다. 오른쪽은 경기도 구리시, 왼쪽은 서울 광진구.
'서울市界'는 오른족으로 직진합니다.
다만 "용마산 정상"을 갔다 오려면 서쪽으로 가야하는 갈림길입니다.
[용마산 제2헬기장에서 바라본 '용마산1헬기장']
용마산2헬기장에서 용마산 정상 방향으로 1헬기장 봉우리가 보입니다.
저 봉우리 다음 봉우리가 "용마산 정상"입니다.
[용마산5보루(2헬기장)에서 용마산 정상 가는 길] 12시 30분
여기까지 왔는데 "龍馬山 정상"을 가 보지 않을 수 없지요"
가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모두 갔다가 오세요~
[용마산 제1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용마산" 정상]
1헬기장 봉우리에 오면 정상 봉우리가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용마산 정상 바로 아래]
정상 바로 아래에는 체육시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오릅니다.
[龍馬山 정상] 12시 37분
태극기가 계양되 있는 龍馬山 정상
348m높이의 산이지만 중요한 서울 외곽 산입니다.
[龍馬山 정상에서 바라 본 남쪽 "아차산"]
龍馬山 정상에서 서울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남쪽으로는 지나 온 "아차산"이 전체적 모습을 드러냅니다.
[龍馬山 정상에서 바라 본 남서쪽 "관악산"방향]
남서쪽으로는 매연으로 뒤덮힌 관악산이 보입니다.
관악산도 '서울市界'이므로 앞으로 지나야 할 산입니다.
[龍馬山 정상에서 바라 본 서쪽 "남산" 방향]
서쪽으로는 '목멱산'이라는 본명은 잊어버리고 일반명사 '남산'이라고만 하는 南山이
콘크리트 빌딩에 둘러 싸여있습니다.
[龍馬山 정상에서 바라 본 북서쪽 "북한산"방향]
북서쪽으로는 수도 서울의 진산이며 제가 언제나 天下名山이라고 하는 "삼각산"이
공해에 기침을 하고 있습니다.
저 "삼각산"도 '서울市界'이므로 가야할 산입니다.
[龍馬山 정상에서 바라 본 북쪽 "불암산" "수락산" 방향]
북쪽으로는 또한 '서울市界'인 "불암산"과 "수락산"이 보입니다.
오른쪽 산줄기를 따라 '수락산'으로 '서울市界'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오른쪽 산줄기를 따라 불암산 밑까지 가야합니다.
[龍馬山 정상에서 바라 본 가야할 북동쪽 방향 "망우리 공동묘지"]
북동쪽으로는 이제 가야할 망우리공동묘지가 있는 "망우산"이 줄을 서 있습니다.
[무덤 안내판]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 있는 유명 인사들의 명단과 위치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천재화가,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로 불리우는 "이중섭"의 묘를
찾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글은 저의 블로그에 가서 읽을수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클릭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시인, 서른살에 요절한 불운의 詩人이었죠
천연두 퇴치에 앞장선 '지석영선생,
어린이의 아버지 '소파 방정환'선생,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스님,
우리나라 진보주의 시조라 할수 있는 '조봉암선생', 우리나라 사법살인의 억울한 희생자
기억나는 분들이 망우리에 뭍혀있습니다.
[회귀 : 용마산5보루 - 용마산 제2헬기장] 12시 52분
'용마산2헬기장으로 되 돌아 왔습니다.
용마산 정상에 가서 조망하고 돌아 오는데 22분 걸렸습니다.
[용마산5보루 가는 길]
이제 망우리공동묘지로 향합니다.
['암사대교'와 "용마터널" 공사 현장]
오른쪽 그러니까 동쪽으로는 한강에 "암사대교"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암사대교'를 잇는 "용마산 터널"이 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일대도 개발 바람이 불겠군요...벌써 불었다구요?
항상 버스 떠나면 손드니 ㅎㅎ 돈은 못벌고 산이나 다니지...
[용마산5보루]
용마산에도 많이 있는 "용마산5보루"를 지나 망우리로 갑니다.
[용마산 하산 - 망우산 가는 길] 오후 1시
용마산 하산길도 하산이라고 경사가 있어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펼쳐지는 '망우리공동묘지']
용마산을 내려서며 보이는 망우리공동묘지......공식명칭은 "망우리공원묘지"
"망우리"는 그 뜻이 몹시 의미심장하지요?
'망우리'는 한자로 "忘憂里"로 씁니다. 이제 뭔뜻인지 알수 있겠지요?
모든 근심 걱정을 잊는다는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뭍히면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모두 잊어 버립니다.
빨리 잊어버리면 좋겠다구요? 그러면 빨리 땅속에 누우세요~~
[동쪽으로 보이는 '예봉산' '예빈산' '검단산']
동쪽으로는 "천마지맥"의 끝 '예봉산' '예빈산'이 보이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 '검단지맥'의 끝 '검단산'이 보입니다.
저는 저 枝脈들을 모두 종주했습니다.
[망우산5보루] 1시 16분
망우리공동묘지에 왔습니다.
망우리공동묘지가 있는 산에도 '보루'가 있군요.
이곳에는 "남으로 창을 내게소"라는 詩를 쓴 감상용선생도 뭍혀있습니다
학창시절에 많이 암송하던 詩여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月波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메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을랴오
강냉이 익걸랑
드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망우산 갈림길 이정표]
여기서 필자인 '파란문'이 썼던 글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忘憂里파란문
모든 사람 사는 일에는 걱정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 모든 사람 사는 일에 걱정이 없다면...
그건 사람 사는 일이라 말하지 않는다
청량리 지나 중량교...그리고 망우리가 나온다
조선 왕조의 시조 이성계는 서울에 도읍을 정한 후
자신의 묘자리를 물색하게 했다.
무학대사와 하륜으로 부터 받은 음택(陰宅)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東九陵인 자기의 묏자리를 이쪽 산위에서 바라 보며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었다"하여 망우리라 하였는데
그곳이 지금 망우리 공동묘지가 되었다.
현재의 망우리는 수도 서울의 공공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葬地이다
그러나 그 망우리는 그 면적을 다해
지금은 더 이상 그곳에 누울래야 누울수 없다
망우리 忘憂里
그 뜻이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고
사람이 죽어 뭍치는 곳 정도로 안다
망우리 忘憂里--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해 주는 곳 --
정말 선조들은 선견지명이 있어 산 이름도 잘 지었다
그렇다! 망우리에 들어 누우면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된다
까마귀 우는 소리..아귀다툼 짖꺼리는 소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잠을 자도 아무도 깨우지 않는다
자연의 품 안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흙으로 변한다
그 곳에 빨리 가고 싶으신가여~~~
아무도 빨리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근심 걱정 없이 산다는게 살아 있다는 얘긴가?
망우리 공동 묘지에 들어 누워 있다는 얘기 아닌가?
근심 걱정을 가지고 사는게 얼마나 인간적 삶인가!~~
근심 걱정을 두려워하지마라
근심 걱정!~
그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근심 걱정을 사랑할줄 알아야한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클릭
[망우리 공동 묘지 순환로] 1시 28분
아스팔트로 포장된 망우리공원묘지 순환로를 만납니다.
이곳 쉼터 정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떠납니다.
[망우산 제2보루]
망우산 보루들은 묘지 때문에 복원을 못하고 있답니다.
[서울市界를 따라]
망우리공동묘지 안에 있는 市界는 "수락지맥"과 같습니다.
공원묘지관리사무실로 내려 가면 됩니다.
[망우리 공동묘지 관리 사무소] 2시 23분
공원묘지 순환로를 따라 내려 가면 묘지관리사무소가 나옵니다.
[서울 市界를 따라 "망우리 고개"로]
관리사무소에서 차로로 내려 가지 않고
사무소 뒤 우측 능선을 따라 내려 갑니다.
그러면 바로 망우리공동묘지 입구가 나오며 "망우리 고개"입니다.
[망우리 고개] 2시 35분
'망우리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광나루역에서 오전 10시 15분에 출발했으니 여기까지 4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市界 해태상]
해태가 서울과 구리의 경계를 확실히 알려 주고 있군요
이곳을 횡단하려면 무단횡단을 해야합니다.
준법정신과 안전을 제일로하는 분들은 횡단보도까지 가서 돌아 건넙니다.
市界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파란문은 무단횡단을 했습니다.
시간이 20분은 단축됩니다. ㅎㅎ
[망우리 市界 들머리]
망우리 고개를 횡단하여 건너면 "극락사"로 올라 가는 길이 보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저 '극락사' 가는 길로 올라 갑니다.
[망우리 市界 들머리]
망우리 고개에서 '극락사' 가는 길로 올라가면 아스팔트 포장 도로를 만나고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거리가 나옵니다.
왼쪽으로는 '극락사', '중량구청 잔디구장' 가는 길이고, 市界는 오른쪽 길로 올라 갑니다.
[망우리 서울市界]
'극락사' 갈림길에서 산능선으로 올라 가면 다시 묘지群이 나옵니다.
[망우리 건너편에서 바라 본 '망우리 공동묘지'] 2시 52분
묘지群에서 뒤돌아 보면 "망우리공동묘지"가 보이고....
[망우산 지나 '큰망우리굴고개' 가는 길]
지도상에는 이곳 산 이름이 "망우산"으로 나와 있습니다.
여하튼 이곳 망우산 능선을 따라 가는데 오른쪽엔 군부대 철조망이 계속 이어집니다.
[망우산 지나 '큰망우리리굴' 가는 길]
우측에 군부대 사령부의 철조망을 따라 계속 끝까지 갑니다.
이곳에서는 군부대 철책만 따라 가면 됩니다. 참 쉽지요~이-ㅇ
[서울내부순환로에서 구리로 빠지는 고속화도로 가는 길]
"큰망우리굴고개' 가는 길
군부대 철책만 따라 가면 됩니다.
[서울내부순환로에서 구리로 빠지는 고속화도로] 3시 7분
군부대 철책이 끝나는 곳엔 이렇게 "큰망우리굴고개"가 가로 막습니다.
태능에서 구리로 넘어 가는 고속화도로이기 때문에 '로보캅'이 아니면
무단횡단 할수가 없습니다. 이곳 통과하는 방법이 오늘의 하일라이트입니다.
두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하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내부순환로에서 구리로 빠지는 고속화도로]
이곳에서 직접 건널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는 내려 갈수도 없었습니다.
가운데 도로는 내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이니 고속도로입니다.
막힌 길이니 다음 설명을 잘 들어 두어야 고생을 덜합니다.
저쪽 구리시에 보이는 마을이 "양원리"입니다.
"양원리"의 마을 유래는 또한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는군요.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능묘 자리로 건원릉 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고개를 넘다가
목이 말라 이 곳 우물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어찌나 좋은지 이 우물물을 양원수(養源水)라고
하였으며, 이후부터 마을이름도 우물이름을 따서 양원리(養源里)라 하였다 합니다.
현재의 양원리우물은 마을 논 가운데에 남아 있지만 주택이 늘어나면서 수질이 오염되어
식수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군요
[고속화 도로 건너는 법]
군부대 철책 좌측으로 가면 시멘트 구조물이 서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이 구조물 아래에 철계단이 있었습니다. 아주 가파른 계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계단을 찾지 못하고 좌측 능선으로 내려 갔습니다.
['아리수' 조압수조 타워]
좌측 능선을 '길없는 길'로 내려 가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타워가 보입니다.
이 타워가 "서울시 '아리수' 조압수조"라고 하는데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타워를 찾아 무작정 내려 가면 됩니다.
다음에 오실 분들은 이 방법을 권장 합니다.
['아리수' 조압수조]
조압수조 타워를 끼고 내려 옵니다.
[아리수 조압수조 앞길] 3시 15분
조압수조 타워 앞길입니다.
오른쪽엔 "태능에서 구리로 넘어 가는 고속화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려 가면 옆 고속화도로 굴다리가 있으니 그 굴다리로 지나가면 간단합니다.
[굴다리 통과]
사람들의 흔적이 없는 굴다리를 밑으로 지나 갑니다. 쉽지요?
하지만 이길을 찾아 내기 까지는 고생좀 했습니다. ㅎㅎ
이 종주기를 읽고 가시는 분들은 행복하신줄 아셔~
[옛 철도 터널]
굴다리 옆으로는 옛 중앙선 철도 길이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옆에 새로 더큰 굴을 뚤어 중앙선 복선 전철이 다니고 있지요?
이래서 "큰 망우리굴 고개"라고 했나 봅니다.
[굴다리 아래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집]
굴다리 아래에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진 속에 앞에 집이 하나 보이지요?
저 집 앞마당을 통과 해야합니다. 제가 초록색으로 "↓통로"라고 표시해 놨습니다.
우리 일행이 가고 있는 행렬이 보이시죠?
저 집에는 개를 많이 키우고 있어 통과 할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 납니다
[개 많은 집] 3시 20분
시꺼러운 개소리를 들으며 개많은 집을 통과하면 다시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큰망우리굴 고개] 3시 22분
개많은 집에서 조금 올라 오면 다시 '서울市界'를 만납니다.
이렇게 '큰망우리굴 고개'를 지났습니다.
그리곤 좌측길로 8시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큰망우리굴 고개 절개지 계단]
그런데 내려 와서 보니 건너편에 철계단이 보이지 뭡니까? ㅎㅎ
위에 시멘트 구조물도 보이네요. 위에서 봤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파르고 사람이 다니지 않아 가시덤풀이 많은 저 계단으로 내려 와도
앞의 고속화도로를 무단횡단 할수는 없기에 결국 굴다리를 이용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이용 할것인지는 다음에 오실 분들의 선택입니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가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과는 천지차이 입니다.
[구룡산 오르는 길] 3시 35분
서울市界 능선에 다시 오르면 '군부대 철책'이 또다시 나옵니다.
이곳 군부대는 XX사단 사령부이더군요.
철책에 올라 간단하게 쇠주 한잔씩 하고....
[구룡산 군부대]
'구룡산'을 오릅니다. 전국에 구룡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이 있으나
이곳 '구룡산'은 처음입니다.
이곳도 군부대 철책을 따라 올라 가면 됩니다.
[군부대 철책 끝나는 곳] 4시
군부대 철책이 끝나는 곳 - 이곳이 중요합니다.
실제 '서울市界'는 어디인지 잘 모르겠으나 편리한 길은 왼쪽으로 갑니다.
[구룡산 삼각점] [구룡산 하산 길]
군부대 철책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봉우리를 오르면 삼각점이 있으며
이곳이 '구룡산' 정상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하산 길을 따라 내려 갑니다.
비교적 길 찾기는 쉽습니다.
[안부] 4시 8분
구룡산을 내려 오면 사거리 안부를 만납니다.
여기서 직진
[삼거리 갈림길] 4시 14분
사거리 안부에서 조금 올라 가면 "T"자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아차하면 '아차산'으로 되돌아 갈수 있으니 깊이 명심해 두어야 할곳입니다.
[삼거리 갈림길] 4시 17분 [새우개 고개로 하산]
"T"자 삼거리에서 조금 오면 다시 "ㅏ"자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가야 합니다
[육사 교장]
산봉우리를 내려 가면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보입니다.
[새우개 고개] 4시 32분
37번 국도
태능에서 퇴계원으로 가는 47번 국도가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새우개 고개"
우스게 소리
'이곳에서 함부러 세우면 않됩니다.'
'뭘 세우느냐구요?'
'지나 가는 차를 아무나 세우면 않된다는 얘기라구요'
'헤헤 거시기를 세우면 않되는 줄 알았는데...'
'거시기는 차 세우고 난 다음 차 타고 세우면 된다구요~'
[새우개 고개] [옛길]
'새우개 고개'를 건너 옛4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좌측은 '육사 담장입니다.
[육사 태릉 골프장 입구] 4시 45분
육사 태릉골프장 입구를 지나 갑니다.
[담터 사거리로 가는 길]
경춘선을 복선 전철화 공사하고 있는 곳을 지나고....
[경춘선 철도 건널목] [담터 사거리로 가는 길]
47번 국도에서 복선 전철화 경춘선 밑으로 "경춘선" 철로 건널목을 지나 갑니다.
그리고 '담터사거리'로 골목을 따라 올라 갑니다.
이 일대는 옛날에 대부분 배밭이었지요
[담터 사거리 바로 앞] 5시 10분
담터사거리를 불과 100m정도 남겨 두고 카메라 배터리가 소진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서울市界 첫구간 종주도 끝났습니다.
태능 갈비집에서 버스로 우리를 픽업하러 왔기에 여기서 접고....
다음 두번째 구간에서 만나요~~
다음 구간은 여기서 누구나 최소 한번쯤은 올라 봤을 불암산과 수락산을 지나
도봉산역까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