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市界從走記 두번째구간 담터사거리-삼육대후문-삼육대-불암산-덕릉고개- 수락산 철모바위-진달래능선-수락리버시티아파트-도봉산역 2월9일(화) 흐리고 비 2월5-7일까지 제주도 한라산과 올레를 다녀와 바로 "서울市界종주 두번째구간"에 참여했습니다. 겨울비도 내려 산행하기에는 나쁜 조건이었습니다. [서울市界2구간] [태릉입구역] 겨울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태릉입구역" 7번 출구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나오면 "담터4거리"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이 정류장에 서는 버스는 대부분 "담터4거리"까지 가니 아무 버스나 타면 됩니다. "서울市界2구간"은 「담터4거리」에서 "삼육대" 통과하는 방법과 수락산 「진달래 능선」에서 "도봉산역" 가는 길만 알면 길찾기는 쉽습니다 ["담터4거리"에서 "삼육대" 통과하는 방법] 『삼육대』를 통과해서 "불암산"으로 올라 가는 길이 조금 모호하니 유의해야합니다 "담터4거리"에서 길을 건너 북쪽 큰길로 올라 갑니다. 윗 지도에서 보는바와 같이 붉은 선을 따라 "삼육대"를 통과해야합니다 [삼육대학교 후문 입구] 10시 40분 "담터4거리"에서 북쪽 대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삼육대 후문" 입구가 나옵니다. [삼육대학교 후문 가는 길] "삼육대 후문 입구" 주변엔 '논골편의점'과 '한사랑 한의원'이 있습니다. 골목은 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 길찾기는 쉽습니다. [삼육대학교 후문] 10시 43분 "삼육대" 후문안으로 들어 갑니다. [삼육대학교] "삼육대"안 학교 정중앙을 통과해서 시계탑 앞으로 계속 직진합니다. [삼육대 교내 갈림길] 10시 49분 후문에서 계속 직진해서 오면 이렇게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길을 따라 올라 가야 합니다 여기서 산행 준비를 해도 좋습니다. [삼육대 - 제명호] 10시 57분 갈림길에서 좌측길을 따라 조금 올라 오면 삼육대 호수 "제명호"를 만납니다. 이곳에서 우측길로 가야합니다 [기념사진] 오늘은 기념 단체 사진을 삼육대 "제명호" 앞에서 찍었습니다. [삼육대 교내 갈림길2] 11시 5분 "제명호"를 좌측에 두고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사진 좌측에 보이는 건물이 화장실입니다. [삼육대 교내에서 불암산 가는 길] 제법 넓은 불암산 오르는 길을 5분 정도 올라 갑니다. [삼육대 담장] 11시 11분 "제명호"에서 불암산 오르는 길로 오르면 "삼육대" 담장을 만남니다. 담장 밖으로 나가면 불암산 등산로이며 '서울市界'입니다. [불암산] '삼육대 담장 문"을 나오면 雲霧 속으로 "불암산"이 보입니다. 우측 뾰쪽한 봉우리가 "불암산 정상 봉우리"이고, 좌측 뭉뚱한 봉우리가 "불암산성"이 있고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중계본동-별내동 갈림길] 11시 21분 삼육대 담장문에서 오르는 길 좌측으로는 "강릉"과 "태릉"이 있으며, 중계본동에서 오르는 등산로를 만남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태릉"은 알아도 "강릉"은 잘 모릅니다. 또한 그러면서도 "태릉"을 '왕릉'으로 아는 분들이 많지요? '왕릉'이 아닙니다. [정자] 11시 25분 조선왕조 오백년에 女王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女王같은 권력을 누린 여인들은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 여인이 세명있지요? 이 세 왕비는 모두 "수렴청정 垂簾聽政"을 하여 실제적으로는 "女王"이었습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수양대군 세조'의 부인인 "7대 정희왕후" 쿠데타 정권 '중종'의 두번째 계비인 "11대 문정왕후" 15살때 66세의 영조에게 시집와 왕비가 된 "21대 정순왕후" 이 세여인은 실제 "女王"이었습니다. [불암산성 오르는 길] 정자를 지나면 본격적인 불암산 등반이 시작됩니다. 이 불암산 등산로 좌측에 있는 "태릉 泰陵"은 중종의 세번째 부인인 "문정왕후"의 무덤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강릉"이 王陵인데, "태릉 泰陵"보다 초라하며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강릉"은 "문정왕후"의 아들인 "조선 13대 명종 明宗"의 무덤입니다. 왕의 무덤보다 왕비의 무덤이 더 크고 알려져있으니..... 무덤만 보아도 "문정왕후"의 위세가 그 당시 어떠하였는지 가히 짐작 할수 있습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농단한 '철의 여인' - 女王이었습니다. [천보사 갈림길을 지나] 11시 43분 '천보사 갈림길'을 지나 된비알을 오르면.... 연산군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왕권을 장악한 '중종'은 처자식 福이 지지리도 없었습니다. 첫 왕비인 '단경왕후'가 역모와 관련된다고 폐위되고, 제1 계비인 '장경왕후'를 얻었는데, '장경왕후'는 아들 "인종"을 낳고 산후조리하다 바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운도 좋게 제2계비로 등장한 여인이 집요하게 권력을 추구한 부패정치의 대명사인 "태릉"에 뭍혀있는 "문정왕후"입니다. "문정왕후"는 아들을 하나 낳는데 그가 바로 "明宗"입니다. "인종파"와 "명종파'가 치열한 覇權 싸움을 하여,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승리하여 왕위에 오르지만, 불행이도 "인종"은 왕으로 즉위한지 9개월만에 죽습니다. 드라마로도 많이 알렸지만 아시다시피 '문정왕후'는 '인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자 인종'을 죽이려고 여러 방법을 썻지요. 침전에 불도 지르고...결국 '인종'은 "문정왕후"에 의해 일찍 죽었다고 봅니다. '인종'이 일찍 죽고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12살의 나이에 즉위하자 조선은 "문정왕후"의 나라가 됩니다. "女王'이 나타난 것이지요. 수렴청정을 시작하며 반대파들을 싹쓸이 죽여 버리고..을사사화. 무소불위의 권력 뒤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민생은 파탄에 빠지고..... 수렴청정을 물린 이후에도 명종의 뒤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조선의 측천무후, 철의 여인"등 현세에 와서 수많은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운도 무지 좋았던 여인이지요. [불암산성 위] 11시 54분 "佛岩山城"이 나옵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이곳이 山城인지 쉼터인지 알수 없습니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농단 할때 『명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 있습니다. 『여러 지방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다.”』는 보고를 받은 내용이 여러 차례 올라와 있습니다 '문정왕후'를 빗대어 조선의 암닭이 숫닭으로 변한다는 상소가 올려진 것이지요. 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문정왕후'는 자기 꼴리는대로 놀아 났습니다. 아들 '明宗'이 말을 잘 안들으면 왕의 뺨도 때리고, 종아리도 때렸습니다. 양주 회암사에 있던 중 "보우'를 지금의 삼성동 무역센타 뒤 "봉은사" 주지로 앉히고 썸씽을 일삼으며 숭불억유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봉은사'가 아직도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절간이 되는 것입니다. [불암산성] [문화재 지정 예정 안내] 이런 안내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佛岩山城" 자리라는 것을 압니다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에서 보았던 "보루" 정도인듯 합니다. '문정왕후'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가지고 오는 것은 부정부패였습니다. 독재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중과세는 물론, 몇몇 상공인들에게 특혜를 줘서, 요즘말로 '정경유착'으로 엄청난 정치자금을 끌어모아 정권유지에만 골몰했으니 백성들의 민생은 몰락해 갔습니다. 이 때에 나타난 도둑놈이 '조선의 3대 도둑놈' 중에 한명인 "임꺽정"이었던 것입니다. "문정왕후"와 "임꺽정" --- 이제 긴가민가 하던 그때 시대상들이 조금 이해되지요? '문정왕후'의 섭정이 "임꺽정"이라는 도둑놈을 의적 - 영웅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실 "임꺽정의 난"은 가난해진 천민들의 봉기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 - '문정왕후'의 무덤이 저 옆에 있는 "태릉"입니다. 그 옆에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왕릉인 자기 아들 명종의 무덤인 "강릉"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 생각으로는.... 저 여인은 우리나라 역사를 짓밟은 능지처참 해야 할 여인이라고 생각되는데.... [불암산성 위 헬기장] 11시 56분 "佛岩山城" 바로 위에는 헬기장이 있습니다 '문정왕후"의 외척정치로 피폐화된 백성들의 삶은 "임꺽정"같은 도둑놈을 영웅으로 만들고 일종의 농민들의 봉기로 까지 연결 되어 졌으니 나라는 완전히 사유화 되었던 것입니다. "홍길동" 같은 새로운 국가건설의 꿈을 가진 반역세력들이 계속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급기야 다음 선조 때에는 쪽바리들의 조선 침략 - 임진왜란의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만들어 낸 그 여인이 저기 "태릉"에서 잠들고 있습니다 그런 "태릉"에 조선왕릉 전시관까지 만들고 성역화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체육 국가대표선수들의 훈련소를 "태릉 선수촌"이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또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의 역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좀 찜찜해 지셨죠? 그렇습니다. 좀 알고 놉시다~~!! [불암산성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하루 종일 겨울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즐거움을 안겨 준 것이 雲海위에 떠 있는 "서울市界山들"이었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의 "삼각산"이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구름을 뚫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경치는 이런 날씨가 아니고는 볼수 없는 특별한 경치이니 비가 와도 본전 뽑았습니다 "태릉"의 "문정왕후"로 부터 찜찜하던 머리가 雲海에 떠있는 북한산국립공원을 바라보니 조금은 맑아 지시지요? 이제 암닭 '문정왕후'는 잊고 불암산과 수락산 등산을 하자구요.... [불암산성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겸재 정선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 같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의 "도봉산"이 복잡한 서울을 깔고 조용히 상념에 잠긴듯합니다 "나도 이젠 세상만사를 잊고 조용히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듯.... 세상에 이렇게 세계적 대도시 서울을 깜쪽같이 덮어 감출수가 있습니까? 대단한 장관입니다. [불암산성 헬기장에서 보는 "불암산 정상"] 산꼭대기 암석이 부처를 닮았다고 붙여졌다는 佛岩山이 가까워 옵니다. [불암산 정상을 오르며 바라본 "수락산 水落山"] 불암산 정상을 오르며 바라본 앞으로 가야할 "수락산"도 雲海 위에 떠있습니다. [불암산 깔딱고개 전망대] 12시 10분 정암사, 공원관리사무소에서 오르는 "깔딱고개" 위에 있는 전망대를 지나 갑니다 [불암산 정상 오르는 길] 12시 16분 모두 암반으로 이루어진 불암산 정상을 향해 가파른 암릉을 오릅니다. [거북바위] 정상으로 오르는 암릉길 초입에 "거북바위"가 나옵니다. 거북이 같나요? 거북등은 벌집 모양 육각형으로 갈라진 문양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라'라고 해야 할텐데.... [거북바위] 옆에서 보니 거북이를 닮았다고 할수 있는데 거북등이 민밋하군요 [불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가파른 계단을 오릅니다. [삼각산과 도봉산] 구경거리는 雲海에 떠있는 섬같은 삼각산과 도봉산입니다. 다닥다닥 붙은 헤아릴수 없는 집들을 보지않고 평온한 구름위의 산들만 보니 모처럼 망망대해에 온듯한 느낌이 듭니다. [약간 줌인한 도봉산 자운봉] 도봉산 '자운봉' '만장봉' '신선대'를 약간 줌인해 봤습니다. 다음 구간에 가야할 서울市界입니다. 바로 앞 봉우리의 정자를 보면 정말 "겸재 정선선생"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합니다. [불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계단의 길이가 제법 깁니다. 그리고 가파릅니다. [불암산 정상] 12시 50분 드디어 불암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겨울비는 계속 오락가락하는데 암릉길은 미끄러워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불암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본 "불암산성 헬기장 봉우리"] '불암산성'이 있었던 헬기장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삼육대에서 오는 산줄기가 보입니다. 이 산줄기를 "수락지맥 水落枝脈"이라고도 합니다. 아까 지나온 "불암산성"이 있던 '헬기장 봉우리'가 조금은 멀군요 [불암산 정상석] 지난해 11월 12일에 노원구에서 이 곳 불암산의 명예산주로 탈런트 최불암씨를 위촉해 '불암산이여!'란 詩碑를 제막했다고 합니다. 불암산 佛岩山최불암 崔佛岩씨의 한자가 같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 어떤 공무원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살다보니 별의별 얘기도 다 듣습니다. 유명한 탈랜트라고 스스로 광대라고 말하는 사람을 詩人으로도 만들고, 명예산주로도 만드니... 그리고 최불암씨의 본명은 "최영환'이지요? 불암산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되는 사람은 뭘해도 되고 않되는 사람은 뭘해도 않됩니다. 일등만 생각해 주는 더러운 세상!!` ㅎㅎ 웃기던 재미있던 하여튼 개그같은 일이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최불암씨가 직접 쓴 글이던 어떻던 崔 佛 岩씨가 쓴 詩랍니다. ㅎㅎ 불암산(佛岩山)이여! 崔 佛 岩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廉恥)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歲月), 영욕(榮辱)의 세월 그 웅장(雄壯)함과 은둔(隱遁)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대를 거쳐 노원(蘆原)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雄志)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 없이 불암산(佛岩山)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容恕)하십시오. 詩라기 보다는 반성문 같습니다. ㅎㅎ 본명이 '최영환'인 사람이, 가명으로 '최불암'이라고 좀 했다고 뭔 반성문까지 쓰는지.... 어쩌 보면 쑈~를 하는 것 같지요? [불암산 정상 삼각점] 508m높이 산의 형상이 마치 "송낙", 즉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를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불암산 佛岩山이라 이름 지어 졌다는 유래를 갖고있습니다. [불암산 정상에서 바라 본 "천마자맥"] 철마산 鐵馬山, 천마산 天摩山, 백봉산 栢峰山이 연이어 있습니다. [불암산 정상에서 바라 본 "수락산"] 앞으로 가야할 "수락산"도 구름 위에 솟아 있습니다. [두꺼비바위] 불암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두꺼비 바위" 두꺼비 같나요? ? ['다람쥐공원'으로 가며 뒤돌아 본 "불암산 정상"] 정상을 내려와 뒤돌아 본 불암산 정상 [쥐바위] '다람쥐 공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쥐 바위" [다람쥐 공원] 오후 1시 3분 이 공원이 있는 봉우리가 406m 높이의 "석장봉'입니다 뭔 유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람쥐 쳇바퀴' 하나 만들어 놓고 "다람쥐 공원"이라... ["덕릉고개"로 가며 바라보는 "수락산"] [덕릉고개 갈림길] 오후 1시 40분 다람쥐 공원에서 약40분 정도 하산을 하면 "덕릉고개"가 나옵니다. "덕릉고개"는 불암산과 수락산을 갈라 놓는 고갯길이기도하고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과 남양주시 별내동을 구분하는 "서울市界"이기도 합니다 [덕릉고개 에코브릿지] "덕릉고개"에 얽힌 이야기를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문정왕후"의 무소불위 부패정권의 꼭두각시 왕 "13대 明宗"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습니다. 뒤따라 등장하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쪼다리 왕이라고 제가 늘 이야기하는 왕이 14대"선조"입니다. 도저히 왕이 될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선조'였습니다만, 붕당정치세력들의 도움으로 왕이 됩니다. 다시말해 비정상적으로 왕이 되어 언제나 왕권을 유지하는데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비협조적이거나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자들을 정적으로 간주하고 처단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 전란 속에서도 국가의 안위보다 왕권의 안위를 먼저 생각 할 정도로 소심한 쪼다리 왕이어서 많은 충신들이 처형 당하고, 나라는 망신창이가 되었지요 쪽바리들이 쳐들어 오니까 백성들은 그냥 놔두고 북쪽으로 도망을 가질 않나.... 적군과 열심히 소신껏 싸우는 사람들을 죽일려고 하질 않나...대표적인 사람이 '이순신 장군'입니다 [덕릉고개 서울市界 표지판] 쪼다리 왕 "선조"는 자신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이 근처 별내면 덕송리에 봉했습니다. '덕흥대원군'은 조선왕조 최초의 대원군이며 '중종'의 일곱번째 아들로 서출로부터 태어 났습니다. '선조'는 도저히 왕이 될수 없던 족보 위치에 있다가 붕당정치세력들의 도움으로 왕이 되어 언제나 의심 많고 왕권 안위를 걱정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고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선조'는 자기 아버지를 왕으로 권위를 높여야 자기도 위상이 높여 질것으로 생각하고 왕이 아니었던 아버지의 묘도 왕의 묘를 부를 때 쓰는 "릉 陵"으로 부르기 위해 술수를 썼다고 전해져 옮니다. 기록으로도 전해져 옮니다. 그 술수가 성공하여 "덕릉"으로 불리워지게 되었고, 이 고개의 이름도 "덕묘 德墓고개"가 아닌 왕릉을 칭하는 "덕릉 德陵고개"가 된 것입니다. [덕릉고개 수락산 들머리] 쪼다리 왕 "선조"가 사용했던 술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답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아버지 덕흥군의 '묘 墓'를 "릉 陵"의 수준으로 높이고 싶었으나 신하들은 끝내 불가하다는 대답 뿐 이었답니다. 선조는 할 수 없이 신하들을 설득하는 일을 단념하고 대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믿을 만한 내시를 동문밖에 있는 가게로 내보내어, 별내면에서 나무와 숯을 실은 수례를 끌고 오는 장사꾼에게 어디를 지나서 이곳까지 왔느냐 물어서 그가 “덕흥대원군의 '묘'를 지나서 왔다”고 하면 장사를 못하게 돌려 보내고, 만일 "덕흥대원군의 '릉'을 지나서 왔다"고 하면 가게 안으로 불러들여 술과 밥을 후하게 대접하고 나무와 숯을 후한 값으로 쳐 모두 사들여 주도록 하였답니다. 이 소문은 한 사람 두 사람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불길처럼 퍼져 나갔겠지요. 그리하여 사방에서 나무와 숯을 끌고 온 장사꾼들이 모두 덕흥대원군의 '릉'을 지나왔다고 떠들어 대니 정식으로 '릉 陵'이라 반포한 것보다 효과가 커서 후세 사람들은 저절로 이 묘소를 "덕릉 德陵"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니, "선조"를 효자라 해야겠습니까? 아니면 에구~ 쪼다리라고 해야겠습니까 [송전철탑] [수락산 登路] 154,000볼트의 송전철탑을 지나면 "수락산" 등산이 시작됩니다 [도솔봉 갈림길] 2시 45분 "덕릉고개"에서 약1시간 정도 오르면 "도솔봉 갈림길 이정표"가 나옵니다. 그냥 수락산으로 지나 갈수도 있습니다만, 멀지 않으니 "도솔봉"을 갔다가 옵니다 [도솔봉] 2시 47분 갈림길 이정표에서 2분 정도 좌측으로 오르면 "도솔봉 정상"이 나옵니다. [곰바위] 도솔봉에 "곰바위"가 있다고 표기되 있는데 어떤게 "곰바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솔봉에서 뒤돌아 본 "불암산"] 도솔천에에서 내려다 보는 듯 불암산이 神仙臺 같군요. 하지만 '송죽'을 쓴 부처를 닮았다는 말은 무얼두고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도솔봉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이제 도봉산은 정면이 아닌 옆면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많이 북진했다는 걸 증명합니다. ["치마바위"로 가는 길] 2시 53분 [치마바위 밑 이정표] 수락산의 명소 "치마바위"로 갑니다. [수락산의 대표 바위봉들] 수락산의 대표 바위봉우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우측에서 부터 '치마바위' '하강바위' '코끼리바위' '철모바위 '배낭바위'..... ["치마바위"로 오르는 登路] 암릉구간이 시작되면 '치마바위'로 오르는 등로가 아기자기한 바위들로 가득합니다 ["치마바위" 바로 아래 '女深바위'] '치마바위' 오르는 곳엔 희안하게도 치마 밑에 이런 바위가 있습니다. '개눈엔 똥만 보이는 이들"이 "女深바위"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ㅎㅎ [치마바위] 3시2분 '치마바위'에 올랐습니다. 올라서 볼때엔 치마인지 뭔지 알기 어렵고 멀리서 봐야 치마바위 임을 알수 있답니다. [치마바위] 치마바위에 사람들의 낙서가 이채롭습니다. [치마바위에서 뒤돌아 본 "도솔봉"] 치마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도솔봉"과 그 뒤로 "불암산"이 그림같습니다 [치마바위에서 바라보는 "코끼리바위"와 "베낭바위"] [코끼리 바위, 종바위] 3시 8분 제가 사진을 잘 못 찍어 "코끼리바위"와 "종 鐘바위"는 실제 이 사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 코끼리는 바위 꼭대기에 조그마하게 있답니다. [철모바위-서울市界 갈림길] 코끼리 바위에서 "철모바위"로 올라 갑니다. 이곳은 "서울市界"를 종주 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철모바위] 3시 22분 수락산의 대표 바위인 "철모바위"에 왔습니다. [철모바위-서울市界 갈림길] 철모바위 앞에는 삼거리 갈림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서울市界"는 좌측 능선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우측으로는 "수락산 정상 봉우리"로 가는 길입니다. [철모바위-서울市界 갈림길 이정표] 이정표가 가리키는 "수락산역(수락골)"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수락산 정상] 하지만 '철모바위'에서 '수락산 정상'은 멀지 않아서 갔다가 되돌아 와도 됩니다. 용마산 정상, 불암산 정상, 이 곳 '수락산 정상'에도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하산길] '수락산역(수락골)'방향으로 나아 가면 낭떨어지 같습니다만, 나아가 보면 계단이 설치되있어 그나마 내려 가기가 쉽습니다. 여기서 부터 급경사 슬랩구간을 내려 가야하니 다소 위험합니다. [배낭바위] 3시 28분 첫번째 계단을 내려 오면 '배낭바위"가 있습니다.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바위 이름이 되나 봅니다. [배낭바위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봉우리들] 불암산이 동양화 속의 神仙臺 같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와 "도봉산"] 오늘은 무지무지 많은 회색빛 콘크리트 아파트들과 빌딩들은 하나도 보이지않고 망망 대해를 항해하는듯하여 겨울비가 야속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수리바위] 3시 35분 왜 독수리바위라고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독수리바위에서 바라보는 "매월정"]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에 정자가 하나 보이시지요? 저 정자가 "매월당 김시습"을 덜먹거리며 지었다고 "매월정"이라 한답니다. 저곳까지 가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급경사 슬랩구간을 내려가 다시 올라 가야합니다. [독수리바위에서 매월정 가는 길] 겨울비가 내려 암벽은 미끄럽고, 우산은 쓰고, 경사는 가파르고.... [매월정] 4시 18분 매월정에 왔습니다. 비가 내리니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곳입니다만.... '매월당 김시습"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의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문을 닫고 대성통곡하며, 그 동안 보던 모든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에 들어서, 곳곳을 두루 방랑하면서 글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은 '생육신 生六臣'의 한 사람입니다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강건한 성격 소유자의 대명사이지요. [매월당 김시습]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작가이지요. 김시습 사후에 중종에 의해 '이조판서'로 추서됩니다 안내판에서도 알려주는 바와 같이 '매월당 김시습'은 수락산의 동쪽편, 즉 별내면의 '내원암'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니, 기념 정자는 이곳이 아닌 별내면쪽에 지어야 하겠지요? 아무데나 먼저 짓는 놈이 임자라구요? ㅎㅎ [매월당 김시습의 詩] [매월당 김시습의 詩] [수락골-진달래능선 갈림길] 4시 35분 "매월정"에서 약5분 정도 "수락역" 방향으로 내려오면 "진달래능선-수락역 갈림길"이 나옵니다 '서울市界'는 여기서 우측 "진달래 능선"으로 가야 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수락골-진달래능선 갈림길 이정표] 이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으니 "진달래 능선"을 찾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진달래 능선] 제법 넓은 진달래능선을 내려 갑니다. [서울市界로 가는 길] "진달래 능선"을 내려 오면, 길 가운데 나무로 길을 막아놨습니다. 더 이상 직진하지 말라는 친절하신 분들의 배려입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수락산터널'로 진달래 능선은 더 이상 가지 못합니다. 그곳에서 윗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좌측 계곡쪽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 갑니다 [소공원] 5시 5분 희미한 계곡길을 따라 내려 오면 소공원이 나옵니다. [수락산에서 도봉산역까지] 수락산 소공원으로 내려와 "육교"를 건너 "도봉산역"으로 가는 지도입니다 이 지도를 참고하여 다음 사진을 보세요~ [서울市界] 소공원에서 큰길로 내려오면 "상계동"에서 "의정부"로 넘어 가는 6차선 국도를 만납니다 사진의 좌측 "육교"로 지나 가야합니다. 앞에 보이는 아파트가 "수락리버씨티 1단지"입니다. 육교를 건너, 우측 1단지와 좌측3단지 사이의 개천 산책로로 가면 됩니다. [육교 위에서 보는 서울市界 표지판] 5시 11분 서울市界"를 정확히 종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도봉산역' 가는 길] 市界 육교에서 직진하여 "수락 리버씨티 아파트 3단지"로 들어가 우측 개천 산책로로 내려가 앞에 보이는 다리 밑을 지나 갑니다. [도봉산역 가는 길] 개천 산책로를 나가면 새로 만들어진 "도봉산역" 가는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도봉산역' 방향으로 갑니다. [서울 창포원] 5시 24분 다리에서 우회전하여 2~3백미터 올라 가면 "서울창포원"이 나옵니다. "서울창포원" 안으로 들어 갑니다. 창포원 구경도 하고.... 꽃창포를 비롯한 여러 식물들을 키우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생태공원이라고 합니다. ['서울 창포원'에서 보이는 '도봉산역'과 도봉산'] "서울창포원" 안으로 들어 오면 "도봉산역"과 그 뒤로 "도봉산"이 멋진 자태를 뽐냅니다. [도봉산역] 5시 30분 총산행 시간 : 6시간 50분 총산행 거리 : 약1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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