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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市界종주5구간 지축역-응봉-앵봉-벌재-봉산- 수색교-가양교-궁산-방화역 3월 23일 (화) 때늦은 꽃샘추위가 눈까지 몰고와 기승을 부린 다음날 다른 곳에 사는 분들은 정말 한번 가보기 어려운 서울의 서쪽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를 다녀 왔습니다. 한번쯤은 가봐야 할곳이란 생각을 가지고 돌아 왔는데 정말 가볼만한 곳인지 저와 함께 가 볼까요? [서울市界의 서쪽부분 구글어스] 오늘 우리가 가려고 하는 "서울市界"는 지축역에서 은평구의 경계이기도한 서쪽 부분입니다. "서울市界"를 완벽하게 따라 갈수는 없고 최대한 가까이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얀 점선이 "서울市界"입니다. [지축역 앞] 오전 9시 15분 [창릉천 통일교] 전철3호선 지축역에서 9시 15분에 출발하였습니다. 지축역 앞에는 '서울市界'를 이루고 있는 "창릉천"이 있고 그 '창릉천' 위에 있는 다리 이름이 "통일교"였습니다. 통일교를 건너 갑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응봉"으로 산봉우리에 헬기장이 있으며 "서울市界"가 되겠습니다 "지축역'은 한자로 "종이 紙","감탕나무 추杻"를 쓰는데 한문사전에 나와 있는대로 발음을 하면 "紙杻驛 지추역"이 되어야 하는데 왜? "지축역"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도 뜻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옛날에 이곳에서 '종이'를 많이 생산 했나봅니다. ['지축역'에서 '창릉천 통일교'를 건너 '응봉'으로 가는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서울市界"는 '붉은 선'이며, 우리가 걸은 길은 '초록색'입니다. 즉 "서울市界"를 완벽하게 따라 갈수는 없어 다소 편리하고 간단하게 갔음을 알려 드림니다. [창릉천 통일교에서 바라본 '삼각산'] '창릉천 통일교'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구름에 휩쌓여 신비감을 더하며, 앞에는 3호선 전철이 달리고 있습니다 [1번 국도 구파발 위 市界] 9시 28분 '지축역'에서 약10분정도 걸어 "1번 국도-통일로"를 건너 가면 구파발에서 문산으로 가는 1번 국도에 '은평구界 표지판'이 나옵니다. 이 표지판이 "서울市界 표지판"이기도 합니다. 이 표지판에서 약2-30m 앞에 좌측으로 "서울市界" 들머리가 있으니 이 표지판은 매우 중요합니다 [市界 들머리] '은평구界 표지판'에서 약2-30m정도 올라 가면 좌측으로 철문이 있는 들머리가 나옵니다. 철문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현재 이 앞에 주유소를 짓고 있더군요. [市界 '응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지축역'] 자동차도 다닐수 있을 정도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며 뒤돌아 서서 '지축역'에서 온 길을 촬영했습니다. 사진의 가운데 '창릉천 통일교'도 보이는군요. 이해하기 쉽죠? 사실 오늘 '서울市界 5구간'의 길찾기는 여기까지가 유의해야 할 구간이고 앞으로는 매우 쉽습니다. ['응봉' 오르는 市界 능선] 9시 38분 들머리에서 약10분 정도 오르면 '서울市界'인 능선이 나옵니다. 오른쪽 계곡에서 올라왔습니다 꽃샘추위로 겁을 먹고 옷을 많이 입고 와서 이곳에서 다시 벗습니다. ㅎㅎ 위로 난 길이 '응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이곳에서 바라보는 "三角山"이 "서울市界"를 더욱 선명하게 알려 줍니다. 백운대에서 북한산성 주능선을 타고, '문수봉'에서 '의상봉'으로 내려와 '창릉천'을 끼고 '지축역'으로 와서 이곳으로 오른 것입니다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이 가깝게 보입니다. ['응봉' 오르는 登路] 약10분 정도 다소 급경사를 오릅니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응봉' 정상 헬기장] 9시 48분 1번국도 들머리에서 약20분 정도 오르면 "응봉" 정상이 나오며, 정상은 헬기장이었습니다. 꽃샘추위로 어제 내린 눈이 아직도 쌓여 있습니다. 하여간 이번 겨울에는 겨울 내내 눈구덩이 속에서 산행을 했습니다 ㅎㅎ ['응봉'에서 바라보는 '앵봉'] "응봉"에서 바라 보는 앞으로 가야 할 "앵봉"이 잘 보이며, 稜線이 선명하게 S자로 '서울시계'를 알려 줍니다. 이제부터는 등산로(산책로)가 잘 나 있고 이정표도 잘 설치되 있어 길을 못찾을 염려는 없습니다 "앵봉"에는 軍안테나 철탑이 있어 사방 어디서나 찾을수 있는 방향틀이 되겠습니다. ['앵봉'으로 가는 길] 비교적 넓은 산책로를 따라 갑니다. 오늘 날씨가 흐려 시야가 트이지 않아 촬영을 못했는데, 능선의 우측 계곡에는 "1.2.3. Golf C.C."가 있습니다 [무명봉] 10시 2분 '응봉'에서 약10분쯤 걸으면 이름을 알수 없는 조그만 봉우리가 나옵니다. 주민들을 위한 간단한 운동시설도 있는 봉우리입니다. ['앵봉'으로 가는 길] '서울市界' 능선 좌측으로는 "갈현동", 우측으로는 "고양시 창릉동"이며, "1.2.3.골프장"이 있습니다. ["서오릉" 뒷 능선] 10시 14분 연두색 철책이 "서오릉 西五陵" 담장입니다. 다시말해 '서울市界'는 "서오릉 담장"인것입니다. ['앵봉'으로 가는 "서오릉" 뒷 능선] "서오릉 담장"을 따라 "앵봉"까지 쭈-우-ㄱ 갑니다. ['앵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응봉'] '앵봉'정상 근처에서 뒤돌아 보니 헬기장이 있던 "응봉"정상이 보입니다. 우리가 걸어 온 길, 즉 '서울시계'도 확실히 가름할수 있군요 ['서오릉'과 군부대] 오른쪽으로 "西五陵"과 군부대가 내려다 보이는데 "西五陵"은 흩어져 있어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오릉(西五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서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다섯 능을 말하며 西쪽에 있는 다섯 릉이라해서 서오릉이라 한다는건 모두 아시지요 그리고 하나 더 아주 무지무지 유명한 "대빈묘(大嬪墓)"가 있지요 경릉(敬陵)은 덕종과 정비 소혜왕후 한씨의 릉인데 일찍 죽어 추존왕이며,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이죠.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왕인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입니다. 북한산성에서부터 흘러 이곳을 감싸고 흐르는 '창릉천'과 이 동네 이름을 '창릉동'이라 하게 되는 '예종'의 능입니다 익릉(翼陵)은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이고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왕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는 "대빈묘(大嬪墓)"는 숙종의 후궁 "장희빈"의 묘이지요 '숙종'옆에는 많은 女人들이 서로 '숙종'을 차지하려고 하다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네명의 왕후....특히 "장희빈"........... 홍릉(弘陵)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입니다. ['앵봉' 정상] 10시 20분 軍부대와 軍안테나 시설이 있어 찾기 쉬운 "앵봉"에 다가 왔습니다. "장희빈 張禧嬪" 우리나라 국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여인입니다.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의 빈(嬪)이자 결국 왕비까지 오르고...... 그녀의 본명이 "장옥정 張玉貞"이라고 알려진 "장희빈"은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며 구중궁궐 한밤중에 '숙종'을 어떻게 끝내주게 주물렀는지 하룻밤만 자고 나면 권력이 바뀌고 또한 귀하고 귀한 '숙종'의 아들까지 낳으니 그녀가 바로 '제19대 숙종'에 이어 등극하는 조선 제20대 왕인 "경종 景宗"의 어머니 입니다. 얼마나 독한 여인인지....남편이자 왕인 숙종이 자기를 죽이려하자.... 숙종의 아들이자 자신의 아들인 경종의 성기를 잡아 당겨 결국 후손을 낳지 못하게 한... ['앵봉' 정상 헬기장] 10시 25분 영화와 TV드라마에서 수없이 조명한 "장희빈"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것들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장희빈'의 죽음에 대해선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는 '자진'했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모두 사사되었다고 알고 있죠?. 그것도 사약을 내 던지고 않먹겠다고 난리 부루스를 떨며....ㅎㅎ 물론 '연려실기술'과 '인현왕후전'에는 사사되었다고 기록되 있습니다만... 드라마는 재미있게 연출을 해야 시청률을 올릴수 있으니 갖은 묘안을 찾아내 재미있게 꾸미지요? ['벌고개'로 가는 길] '서울市界'의 좌측은 은평구 갈현동입니다. '갈현 葛峴'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 인근에 칡뿌리가 많아 칡고개, 혹은 갈고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꾸어 '갈현 葛峴'이라 한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칡 葛''고개 峴'이니 순수 우리말로는 "칡고개"가 맞는 표현인듯합니다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이 지역을 '갈고개'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갈현동 대성고 갈림길] 10시 40분 [갈현동, 대성고로 내려 가는 길] '앵봉'에서 15분 정도 전진하면 "갈현동 대성고등학교"로 내려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市界길은 직진입니다 [갈림길 - 주의를 요하는 중요한 갈림길] 10시 50분 '갈현동 대성고등학교' 갈림길에서 약10분 정도 직진하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갈현동'으로 내려 가는 넓은 길이고, 직진은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서울市界길"입니다.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직진길로 내려 가야하니 주의를 요합니다. [갈림길에서 '벌고개'로 가는 길] 삼거리 갈림길에서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직진길로 내려 가면 송전철탑을 만나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軍참호시설이 있습니다. 전쟁시 서울을 사수하는 시설들입니다. [벌고개 방호벽] 갈현동에서 서오릉으로 넘어 가는 도로에 있는 '軍방호벽'이 나타나면 정확히 市界를 따라 온 것입니다. [벌고개 방호벽] 10시 55분 '軍방호벽' 옆으로 내려 가면 됩니다. 이곳을 지도에는 "벌고개"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그 내력은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갈현동에서 서오릉 넘어 가는 고개"가 더 익숙합니다. [벌고개 - 서울市界 표지판] 서울市界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면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더군요. "흐음...내가 서울市界를 잘 돌고 있구먼..."이라고 생각하며.....ㅎㅎ [벌고개 - 경기道界 표지판] 서울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가는 방향에는 "경기道界 표지판"이 보이고, 저 앞에 '軍방호벽'도 보입니다. 저 방호벽 오른쪽에서 내려 왔습니다 "지축역"에서 여기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군요. 예상보다 빨리 왔습니다. [벌고개 - '봉산'방향 들머리] "경기道界 표지판" 건너편에 사진에서 보는 '안보관련 입간판'이 있습니다. [하나되는 안보, 다가오는 평화] 이곳이 '다음 "봉산"으로 가는 들머리입니다. 이 들머리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구산동 갈림길] 11시 17분 도로에서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없는 길을 따라 조금 올라 오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가면 "은평구 구산동"입니다. [구산동 갈림길에서 바라본 '龜山洞'] 갈림길에서 서울 방향으로는 '구산동'입니다. 지하철6호선 "구산역"이 있지요? ['봉산' 오르는 길] 약간의 경사가 있는 산을 오릅니다. 이 산의 이름이 지도에는 "봉산"으로 나와 있고, 이 산을 오르내리는 주민들은 "거북이산"이라고 말하더군요. ['봉산' 체육공원] 11시 25분 조금 오르니 "봉산" 정상부근에 체육공원이 있으며, 정자도 하나 있더군요 [봉수정] 이곳에서 건강산행을 하는 주민 어른들에게 물어 보니, 옛날에는 이 산에 "熢燧臺"가 있어서 이 산의 이름을 "봉산 熢山"이라고 하는데.....이것은 공식적 이름이라 하고... 그러나 동네에서 올려다 보면 이 산의 형상이 "거북이 모양"이라고 "거북이산". 즉 한자로 "龜山 구산"이라 하며, 그래서 이 동네의 이름이 "구산동 龜山洞"이라 하게 되었답니다. ['봉산' 정상] '봉산 熢山' - '구산 龜山'은 같은 산이며 그 정상에는 또한 軍부대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봉수대'가 있던 산봉우리는 지금도 통신대들이 현대화 되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은 똑 같다고 볼수 있습죠 ['봉산' 정상 우회로] 軍부대 건물을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지나 갑니다.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가면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이 보입니다. 이 곳이 곧 아파트촌으로 변모 할 예정이라네요. 서울과 바로 인접해 있어 인기가 있을듯한데..... [은평구 역촌동, 신사동 방향] 좌측으로는 은평구 역촌동, 신사동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덕산 德山] 11시 52분 [德山亭]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나 아는 산 이름 "덕산 德山" 그리고 "德山亭"이라는 쉼터 [德山亭] ['서울시립서북병원' 갈림길] 비교적 주민 편의시설이 잘되있습니다 [思德亭] 12시 32분 德山亭에서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 조금 가니 "思德亭"이 나옵니다. [신사동 방향] 좌측으로는 "은평구 신사동"이 보입니다. 서울에는 "신사동"이 세군데 있지요 강남구 신사동은 "新沙洞"으로 쓰며 '모래'와 관련이 있는 곳이고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신사동은 "新士洞"으로 쓰니 '선비'와 관련이 있고 이곳 은평구 신사동은 "新寺洞"으로 쓰기 때문에 '새로운 절'을 지었다는 것에서 유래하는 것이니, 발음은 같아도 뜻은 완전히 틀리는 동네 이름들 입니다. [신사동 '숭실고등학교' 갈림길] 12시 50분 新寺洞 '숭실고등학교'로 내려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숭실고등학교] '숭실고등학교' 건물이 조금 보입니다. 아주 가깝게 있습니다 [繒山 - 水香亭] '은평구 증산동'이라는 이름을 만든 "증산 繒山"이 조그마하게 있군요 그리고 "水香亭"이라는 정자를 만들어 놨습니다. "水色洞"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水香"과 "水色"......후각과 시각적인 표현인듯 [水香亭] 오후 1시 嗅覺的 냄새를 풍기는 "水香亭"에 오면 "수색 水色"의 뒷동네에 온 것입니다. "水香亭"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가면 삼각점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길은 비교적 잘 나 있습니다. [수색동(水色洞) - 水色驛] 앞에 "수색역"이 보이며 뒤로 상암동이 보입니다. [용미모정] 1시 15분 水香亭에서 약15분 정도 서쪽으로 가면 한자도 어려운 "龍尾茅亭"이 나옵니다 이곳이 중요한 곳으로 설명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서울市界"는 이곳에서 직진하여 더 가서 좌측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바로 90도 각도로 좌측으로 나있는 큰길을 따라 가면 바로 "수색역" 방향으로 갑니다. 가장 적합한 길은 "11시 방향"으로 나있는 샛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사진에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분 뒤로 난 길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 길은 정확한 "서울市界'는 아닙니다. 오로지 종주에 편리한 길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경의선 철로"가 한강 방향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아, "수색교"를 건너야 '가양대교'로 갈수가 있기때문입니다. "수색교"로 쉽게 바로 갈수 있는 길이 이 길입니다. [용미모정] [수색교로 가는 길] 한자도 어렵고 해서 옥편을 오랫동안 뒤져서 "용미모정 龍尾茅亭"이라는걸 알았습니다 "茅"자가 "띠 모"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茅+尾"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에구 어려워라~ 여하튼 "수색교"로 가는 길입니다. [水色橋로 가는 길] 龍尾茅亭에서 조금 내려 가면 바로 주택가가 나옵니다. [水色橋로 가는 길] 주택가로 내려가 처음 나오는 아주 좁은 골목으로 나갑니다. 골목이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를 정도로 좁은 골목입니다. [水色橋] 1시 20분 좁은 골목을 나오면 바로 "수색교"가 앞에 보입니다. [水色橋] [가양대교 가는 길] 길을 건너 '수색교'를 다시 건너 "가양대교"로 갑니다. [水色橋에서 뒤돌아 본 "市界"에서 내려 온 길] '水色橋' 위에서 뒤돌아 본 "市界"에서 내려 온 길 실제 '서울市界'는 저 산능선 좌측, 화정방향으로 훨신 더 가서 "軍방호벽"이 있는 곳입니다만 다시 이곳 '수색교'로 돌아 와야 하기 때문에 편의상 그냥 이길로 가는 것입니다. [가양대교 - 加陽大橋] 1시 28분 加陽大橋 북단입니다. 좌측으로 "난지도"가 보입니다. [가양대교 위에서 보는 "자유로"] 가양대교 위에서 "자유로"를 촬영했습니다. 멀리 "행주산성"이 보이는 군요. 저는 약20년 정도 이길을 이용했었습니다 [가양대교 자전거 엘리베이트] '가양대교' 위에는 특이한 "자전거 엘리베이트"가 있었고, 많은 자전거 애호가들이 현재 이용하고 있다는 군요. 높이가 장난이 아닙니다만, 한강 둔치로 쉽게 접근 할수 있도록 설치해 놨군요 [가양대교 위에서 바라 보는 "한강"] 2시 '방화대교'가 보입니다. 좌측에 보이는 조그만 산봉우리가 앞으로 우리가 가는 가양동의 "궁산"이고, "궁산" 뒤로 약간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개화산"입니다. 우측에 보이는 조그만 산봉우리 유명한 '행주산성'입니다. '서울市界'는 이 한강의 가운데를 지나 행주대교 부근까지 갑니다. [가양대교 위에서 기념사진] '가양대교'를 걸어서 건너 갈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서울市界종주'라는 미명하에 '가양대교'를 걸어서 건너 가는 군요. ㅎㅎ 여하튼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의 옆에 서있는 검은색으로 중무장한 분은 저와 동갑이며 같은 해병대 출신인데, 저보다 고참. 이분은 저도 모르는 "해병대 북파공작 특수임무부대"출신이더군요. 에구 무셔버라~ㅎㅎ 현재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종로지회 조직국장을 맡고 계시더군요. 아마도 북파공작원 중에서도 해병대 북파공작원이 제일 무시무시하지요? 하여간 같은 해병대라도 저는 말로만 듣던 "해병대북파공작원"과 함께 '가양대교'를 건너 가는 특별한 경험도 했습니다. ㅎㅎ [가양대교 위에서 바라 본 "난지도"] "난지도"라는 명칭의 유래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러 자료를 검토해 보니 난(蘭)과 지(芝)는 그윽한 향기가 난다는 '난초 蘭草'와 '지초 芝草'를 가리키는 말로 "난지도"는 때로는 꽃섬, 오리섬, 압도(鴨島)라 불리기도 한 아름다운 곳이였더군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는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고 해서 '중초도(中草島)'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이 쓴 세계최고의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에는 "蘭芝島 난지도"를 사람이 살기에 좋은 풍수조건을 가진 땅으로 기록하고 있더군요. '삼각산' 불광동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인 "연신내"와, '삼각산'의 평창동, 구기동에서 내려 오는 "모래내"가 이곳으로 내려와 하나의 섬 모양을 만들었다고 "난지도 蘭芝島"가 되었다는데, '모래내'는 하천에 하얀 모래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저희 나이 또래들까지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래내'에서 멱을 감으며 여름철 피서를 즐겼다고 합니다. 1978년 쓰레기를 매립하기 직전에는 땅콩과 수수가 재배되던 한강 어귀의 낮은 평지였다고하며. 그러나 이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어 산업화 과정 동안 서울의 급속한 팽창과 더불어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적재되어 "섬 島""쓰래기 山"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장이 되기 바로 전까지는 알려진 "신혼여행지"였다고 합니다. "蘭芝島 난지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젠 없어져 갑니다. [가양대교 남단] 2시 14분 '가양대교'를 건너는데 약40분이 걸렸습니다. 순수 교량의 길이만 2.5km라고 하며 접속부까지 합치면 3km는 충분히 되겠습니다. [구암공원 "허준박물관"] 2시 43분 가양동 아파트단지 안에 "구암공원"이 있었고, 그곳에 "허준박물관"이 있었습니다 "구암"은 "허준"의 호이지요. 이곳이 '허준선생'의 고향이라는데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허준선생'의 고향은 공식적으로는 경기도 파주로 알려져 있고, 이은성씨가 쓴 "소설 동의보감" 평안도로 나오는데.....소설은 소설이니 그렇다치고... 여하튼 안내원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이곳이 허준의 고향이라고 강조 강조하더군요 '허준선생'의 출생, 고향, 서출문제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지자체들은 유명 인사들을 자기 고장출신으로 만들어 기념관을 짓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이런 저런 자기들에게 유리한 자료들을 발굴하여 자기 고장 출신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한 가장 큰 이유는 중앙 정부로 부터 엄청난 액수의 건립비를 타 낼수 있기 때문이지요. 모두 돈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고암 이응로화백"의 고향 문제로 '홍성군'과 '예산군'이 대법원까지 가는 송사를 했지요? 기억하시나요? 물론 그 이유는 60억원에 달하는 기념관 건립비 때문에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우겼기 때문입니다. 최영장군은 홍성군, 고양시, 철원군이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예들은 무지 많습니다. [동의보감 특별전] 이 박물관은 지은지 5년되는데 오늘 개관5주년 기념식을 한다고 무료 입장이라네요 그래서 들려 보기로 했습니다. 선거철이라 후보자들이 많이 들려 인사를 하고 가더군요 [허준 像] '허준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아는 이야기라 생략하고..... 조선 역사에서 가장 쪼다리 왕이라고 제가 주장하는 "선조"의 御醫였죠? 임진왜란 중에 다 죽어 가는 "선조"를 두번씩이나 살려 냈는데... 그래서 의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정1품 양평부원군'에 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선조"가 고령으로 죽자 왕을 살려내지 못했다고 귀양까지 가는 형벌을 받지요. 하여간 이 나라는 정말 웃기는 나라였던 거지요. 지금도 그런 사례들은 없는지... 하지만 귀양살이를 하며 그동안 집필해 오던 "동의보감"을 최종 완성하여 '광해군'에게 올리니 현명한 '광해군'은 감사하다며 '허준선생'을 사면 복권을 해줍니다. 77세까지 사셨으니 당시로는 의사 다웁게 무지무지 장수 하신 것이지요. [공암 나룻터] [공암바위] [孔巖바위 - 許哥바위] 아래 사진의 안내 설명을 참고 하세요 [孔巖바위 - 許哥바위 안내판] [궁산 근린공원] 3시 30분 '허준박물관'에서 나와 조금 올라 가니 "궁산근린공원"이 나왔습니다. 올림픽대로를 오가며 무슨 산인지 궁금했는데 오늘 오르게 되었습니다. [궁산 위에 있는 "小岳樓"] 궁금하게 여기던 정자는 "소악루 小岳樓"였으며 '궁산' 위에 있었습니다. [궁산 궁산공원] 산 아래 입구에서 2~3분 올라 가니 '궁산' 정상이었으며, '소악루'가 보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체육공원이었습니다. [小岳樓] [小岳樓 설명] [小岳樓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난지도'] [小岳樓에서 바라 보는 "삼각산"] [양천고성지 - 陽川古城址] 小岳樓 바로 윗쪽에는 "陽川古城址"가 있더군요. [陽川古城址 - 궁산 정상] 陽川古城址-궁산 정상은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되있었습니다. [궁산 전망대] 전망대를 배 모양으로 만들어 놨군요 [궁산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행주산성"] "행주산성"이 잘 보입니다. 모두 적군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한강변에 설치되었던 城이 촘촘히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긴가민가 잘못 알고 있는 것중에 하나가 "행주산성"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 임진왜란 때에 '부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싸웠다'고 "행주산성"이라고 한다고 알고 있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행주산성'이라하는 그런 것들은 속설이고.... '행주치마'로 돌을 날랐다면 "행주치마산성"이라고 해야하지 않나요?. "행주"와 "행주치마"는 완전히 틀림니다. 분명한 것은 "행주산성"은 "다행할 幸, 고을 州"를 쓰는 "幸州山城"입니다. "행복한 고을"이란 뜻이지요 [마곡레포츠센타] 4시 15분 "궁산"에서 나와 "방화동"으로 가는 도중에 '마곡레포츠센타'가 있더군요. 이곳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가양대교에서 방화역까지 실제 걸은 루트] [방화동] [방화역] 오후 5시 '방화역"에 오니 오후 5시 정각이었습니다. 여러곳을 구경하며 왔기는 하지만 여하튼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종주출발시간 : 오전 9시 15분 방화역도착 시간 : 오후 5시 총 7시간 45분이 걸렸습니다. 총 거리는 알수 없고... [뒷풀이] 산행도 하며, 세계적 대도시를 한바퀴 도는 "서울市界종주"는 여러모로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다섯구간으로 나누어 서울의 강북지역을 둘러 보았습니다. 다음 6-7구간은 김포,인천,부천,광명,시흥,안양등과 접해 있는 곳으로 일반도로와 주택가가 대부분이고, 특히 김포공항 활주로등 市界를 온전히 따라 가기도 어렵고, 특별한 얘깃꺼리도 없어 저는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5월에 계속되는 8-9구간인 "삼성산-호암산-관악산-남태령-청계산-인릉산-송파"구간에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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