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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 순례기 2부 혜화문-와룡공원-숙정문-백악산-창의문- 인왕산-돈의문터-소덕문터-숭례문 1392년 7월 태조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고 1394년 '한양'으로 천도 할때 만 해도 "한양성"은 그 위용이 과히 천하를 욱박 지를듯 했으리라.... 하지만 현대 문명의 마천루 앞에 무릎 끓고 엎드려 보이지 않다가 이제서야 조금씩 우리들 앞에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번째로 "漢陽城" 순례길에 나섭니다. 2011년 4월 20일(수) 맑음 큰형님, 신발장님, 바부님, 방갑철님, 박유서님, 파란문이 참가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 10시 20분 [혜화문으로 가는 길] 오전 10시 20분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순례를 시작합니다. 혜화동 로타리 방향 고개로 조금 올라 갑니다 ['혜화문'입구] 10시 22분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에서 2분 정도 혜화동 로타리 방향으로 올라 오면 우측으로 "혜화문"이 보입니다. [혜화문] "혜화문 惠化門" - 동소문 東小門 "서울성곽"의 "四大門 四小門" 중에 북동쪽에 있는 小門으로 처음에는 "홍화문 弘化門"이었다는 군요 [惠化門] "은혜 惠"를 쓰는 "惠化門"은 원래 옆 도로에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전차길을 내면서 헐어버린것을 1992년에 이곳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惠化門 건너편 '낙산공원 입구'] "혜화문"에서 건너편 "낙산공원 성곽길 입구"와 성곽을 바라봅니다. 반대로 종주를 하시는 분들은 "낙산공원 성곽길 입구"를 잘 봐 두어야 합니다 [惠化門앞 쉼터에서 보이는 '서울시장공관'] "惠化門" 아래에는 쉼터가 있고 쉼터 바로 앞에는 "서울市長公館"이 있습니다. 요즘 관광 명소가 되어버린 "서울市長公館"입니다. 왜냐구요? '관광명소'라는게 멋있고 특이하고 아름다운 곳이어야만 관광명소는 아니죠? "서울시장공관" 스스로 세계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서울이 눈 빤히 뜨고 "숭례문"을 홀라당 태워 먹은 '서울시장'이 사는 집. 그 뿐인가.. 서울城郭 복원 보존에 앞장 서야할 '서울시장'이 성곽 위에서 문화재를 홰손하며 그 위에서 밥해 먹고, 밤에는 잠자고....하니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것이랍니다. 관사를 새로 지어 놓고도 이전 안하는 이유가 뭘까?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역대 대권 주자들이 풍수지리적으로 강북지역의 명당터를 찾아왔던 것에 비춰 오시장도 개인의 정치적 야망으로 혜화동을 고집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곽길] ['혜성교회' 담 밑으로 들어 가는 성곽] '서울성곽'은 '서울시장공관' 담 축대를 지나 '혜성교회' 담장 밑으로 사라집니다. [경신고 후문] [경신고 담축대] '경신고등학교 후문'을 지나 '경신고 학교 건물' 축대로 성곽은 다시 나타나 이어 가다가 성북동에서 혜화동 넘어 가는 고갯길에서 끊기고..... ['서울과학고' 후문] 10시 39분 성북동에서 혜화동으로 넘어 가는 고갯길에는 "서울과학고 후문"이 있습니다 "서울과학고"는 예전에 "보성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이지요 이곳에 있는 "왕돈까스"집에서 안주로 돈까스 2인분을 사고..소주 막걸리도 사고.. 북악산으로 돌라 갑니다. ['와룡공원'으로 올라 가는 성곽길] 10시 53분 "성북동 쉼터"에서 "와룡공원"으로 올라 갑니다. 돈까스 준비하는라 10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주엔 벗꽃이 쬐끔 피어 아쉬웠는데 일주일이 지난 오늘은 피었다가 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지난주 보다는 성곽길을 봄꽃들이 繡놓고 있습니다. ['와룡공원'으로 올라 가는 성곽길] 아름답지요? 성곽길 순례는 봄꽃이 활짝 피는 날에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곽길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 갑니다. ['와룡공원'으로 올라 가는 성곽길] 성곽도 잘 복원되 있고 조경도 좋습니다 "와룡공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와룡공원'] 11시 8분 성곽길을 따라 올라 가니 "와룡공원" 정상이 나옵니다. "와룡공원"은 "삼청공원"과 붙어 있는 공원인데, 삼청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 가는 차로가 있어 이곳까지 차를 타고 오를수 있습니다 ['와룡공원'] 11시 8분 좌측 굴다리가 성북동으로 넘어 가는 통로 '삼청터널'은 아닙니다. ['와룡공원'에서 바라보는 '서울'] 바로 앞에 '성균관대학교'가 있습니다.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안내소' 가는 길] 북악산으로 올라 가는 출입구인 "말바위 안내소" 가는 길은 성 밖으로 나가서 성벽을 따라 올라 갑니다. ['말바위 안내소' 가는 성곽길] 북쪽, 즉 북악산 부근의 서울성곽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말바위 안내소' 가는 길에 보이는 '삼청각'] 우리나라 기생문화의 근거지였던 "삼청각"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린 곳으로 유명하죠? 그 위로 "북악 스카이 웨이 팔각정"도 아주 가까워 집니다. [말바위 안내소] 11시 38분 북악산은 '청와대 뒷산'이기에 과거 정권들이 문을 잠구고 출입을 금지했었습니다. 다행이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도 국민의 것이니 국민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해서 개방되었습니다. 저는 개방 되고 나서 바로 "인왕산-북악산 종주"를 한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지금도 단지 경비를 위해 신분을 확인한 사람들에 한해 출입을 시키고 있습니다. [말바위 안내소 출입 조건] 신분증은 꼭 가지고 가야 출입을 할수 있습니다. 전에는 한사람이 신분증 미지참시에 다른 사람들의 신원보증으로 출입을 시켜 주었는데 지금은 신분증이 없는 사람은 일체 출입을 시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한사람이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아 사정~사정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진 촬영을 해야하는 저는 성곽길로 가고, 신분증 미지참자와 일행은 성밖으로 나가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으로 올라가, 스카이웨이를 따라 "창의문"으로 내려와 "창의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 길도 나름 멋있었다는 후담이 있었음을 참고하세요~~이 정보는 무척 유용한 정보이지요? ㅎㅎ ['말바위 안내소'에서 바라보는 '숙정문' 방향]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면 바로 "북대문"인 "숙정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숙정문'으로 올라 가는 성곽길] [숙정문 肅靖門] 11시 45분 서울성곽의 北大門인 "숙정문 肅靖門"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고풍당당 위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四大門 중에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 있는 문이랍니다 [숙정문 肅靖門] "숙정문 肅靖門" 안내문에는 "엄숙하게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 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靖"은 "평안할 정 靖"이죠 "숙정문" 바로 앞에 "삼청각"이 있고, 그 아래 "대원각"이 있지요. 안내판 설명에도 있드시 "숙정문을 열어 두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해지므로 항시 문을 닫아 두게 하였다"고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시 고것(?)이 문제...ㅎ [숙정문 肅靖門] "숙정문 肅靖門"의 윗층 [숙정문에서 성북동 조망] 성북동이 잘 조망됩니다. 城의 북쪽에 있다고 "성북동 城北洞"이죠? "숙정문" 바로 뒤에 기생문화의 산실 "삼청각" "대원각"이 있었으니 음란을 염려하여 "숙정문"을 닫아 두었다는 예기가 아닐까요? ['숙정문'에서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조망] 신분증 미지참자는 저곳으로 올라가 스카이웨이를 따라 "창의문"으로 가면 간단합니다. ['촛대바위'를 지나는 데크] 유명한 "촛대바위"가 있는데 성곽길에선 "촛대바위"를 의미있게 볼수 없습니다 [곡성 曲城] 12시 4분 "촛대바위"가 있는 둔덕에 "곡성 曲城"이 있습니다 성곽 안에선 성곽 밖 아랫쪽 상황을 볼수 없겠지요? 그래서 성곽에서 돌출부를 만들어 성곽 밖을 감시 할수있도록 한 곳이 "곡성"입니다 ['곡성'에서 조망] "곡성"에서 바라보는 성곽길과 "북악산", "인왕산" 城밖도 잘 보이지요? [曲城에서 바라보는 '삼각산'] '곡성'에서 삼각산을 조망하며, 막걸리 한잔 했습니다. 그런데 경비병들이 막걸리도 술이라고 못마시게 하더군요. 그런다고 음료수인 막걸리를 안 마실 '파란문'이 아니죠? ㅎㅎ 딱 한잔 했습니다 [城 밖으로 나가서] 12시 26분 城밖으로 나가서 시대별 성벽축조 방법 차이도 보고... [시대별 성벽축조 방법 차이 안내도] 설명이 잘 되 있으니 참고하여 공부하세요~ [城 안팍을 오가며...] [청운대 靑雲臺] 12시 34분 전에는 없던 "청운대 靑雲臺"를 만들어 놨습니다. ['靑雲臺'에서 조망 - 경복궁과 남산] '청와대'는 잘 보이지 않고, "경복궁"이 아주 가까이 보입니다. "경복궁"과 "목멱산" "경복궁"은 "남산"을 정면으로 향하지 않고 약간 우측으로 향하고 있지요? 모두 풍수지리설에 의해..... ['1.21 사태' 소나무] 12시 39분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청와대에 공비들이 침공했는데, 이게 뭔 자랑인가요? 챙피한 일이지요 [백악산 白岳山 정상] 12시 43분 우리가 일반명사로 "북악산 北岳山"이라고 하는 산의 정식 명칭은 "백악산 白岳山"입니다. "백악산" 정상에는 주먹바위가 최정상을 알리고... [백악산 白岳山 정상석] "백악산 白岳山 342m" 본명을 알고 속명을 사용합니다 "북쪽에 있는 岳山"이라고 "北岳山"이라고 부릅니다만, "숭례문"을 "남대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본명을 알고 속명을 사용합니다. 앞으로는 "백악산 白岳山'이라고도 불러 주세요 [白岳山 정상에서 서울 조망] [白岳山 정상에서 '인왕산' 조망]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선명합니다. [白岳山 정상에서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 "백악산 정상"에서 "창의문"으로 내려 가는 길은 급경사 계단길입니다. 반대로 올라 오시는 분들은 이 구간이 무척 힘든 구간이 되겠습니다. [白岳山 정상에서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 ['창의문 안내소'에서 바라보는 '인왕산 성곽길'] 1시 16분 "북악산 출입 안내소"인 "창의문 안내소"에 내려와 "인왕산" 가는 길을 조망합니다. "창의문"에서 "인왕산"으로 가는 길이 다소 까다롭습니다. 앞에 보이는 "윤동주 공원"으로 우선 올라 가야 합니다. [창의문 彰義門] 북악산 출입 안내소에서 나오면 바로 "창의문"입니다. 건너편 인왕산으로 가는 길 표시 보이나요? 붉은색 화살표를 따라 올라 가야합니다. [창의문 彰義門] "창의문 彰義門" 일반인들에겐 "자하문 紫霞門"으로 알려져 있는 "소북문 小北門"입니다. "자하문 紫霞門"은 '자주빛 자紫'에 '노을 하霞'를 쓰는데 이 문이 '北小門'이지만 西北쪽에 있는 門이기 때문에 "西小門"에 가깝고, "西小門"은 있으니 "西小門"과 구별하며 '西小門'을 나타내는 "노을 문"으로 부른 선조들의 멋이 느껴지지 않나요 "창의문"에는 "인조반정"의 주요 공신들의 이름이 게시되 있는게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쿠데타 공신이었던 '이귀, 김류'등이 광해군을 폐위 시키고 '세검정'에서 칼을 씻었다죠. 우리는 이곳에서 신분증 미지참자들과 다시 합류하여 '창의문'에서 '남대문'까지 성곽길 종주를 다시 결의 하며 칼을 갈고... [창의문에서 세검정 가는 골목] ["J 손만두집"] 점심식사를 위해 유명한 "J손만두집"으로 갑니다. 창의문에서 세검정 방향으로 20m쯤 나가면 북악스카이웨이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약50m지점에 있습니다. ["J 손만두집"에서 점심식사] "J손만두집"은 만두값이 좀 비싸지만 값어치를 한다는 평가들이었습니다. 만두 한접시 10,000원. 생채수육 33,000원...점심 먹는데 여섯이서 100,000원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계신 '신발장님'이 점심을 쏘셨습니다. 감사 '신발장님'은 휘문고 총동창회장님이십니다. 아무리 바빠도 역사순례길은 간다고 평일임에도 함께했습니다. ['최규식 서장' 동상] 3시 10분 약 1시간 40분간의 점심식사와 술 한잔을 끝내고 다시 '창의문'을 통과하여 인왕산으로 가는 길에 "최규식 서장" 동상이 있는 곳을 지나 갑니다. '최규식 서장'은 "1.21 사태"때에 종로경찰서장이었는데 검문 중 무장공비들과 총격전으로 전사하고, 이틈에 군이 출동해 공비들을 제압하게 되어 '태극무공훈장'이 주어졌습니다 ['인왕산 길'에 올라 서서 뒤돌아 본 '창의문'] 3시 17분 인왕산길로 올라 가며 뒤 돌아 본 "창의문"입니다. ['인왕산 길'에 더 올라 서서 뒤돌아 본 '창의문'과 주변] ['윤동주 시인' 공원] ['윤동주 시인 공원'에서 뒤돌아 본 '북악산'] [윤동주 시인의 "序詩" 詩碑]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인왕산 등산로 입구'로 가는 길] 인왕산 스카이웨이를 따라 올라 갑니다. [인왕산 등산로 입구] 3시 29분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오른쪽 인왕산 밑에 철문이 하나 보이는데 이 철문이 이쪽에선 인왕산으로 오르 내리는 유일한 출입문입니다. 이 철문 이외에는 어느 곳으로도 들어 갈수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들어 가다가는 잘못하면 경비병들로 부터 총 맞을 수도 있으니 조심 하세요 [인왕산 성곽길] 인왕산 출입문인 철문 안으로 들어 가면 바로 인왕산 성곽길이 나옵니다. [인왕산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북악산'] 3시 43분 [인왕산 성곽길 안팍] [초소] 3시 58분 [서울 전경] 세계적 도시 "서울"이 펼쳐집니다. ['청와대' 조망] 이 사진은 약30% 줌인한 사진입니다. ['경복궁'과 '종묘' 조망] 이 사진도 약30% 줌인한 사진입니다. 경복궁과 다음 사진 "치마바위"를 의미있게 봐 두시기 바람니다. 유명한 "중종"과 "단경왕후"의 플라토닉 사랑이 서려있는 "경복궁↔치마바위"이기 때문 ['치마바위'] "인왕산" 정상 아래에 유명한 "치마바위의 전설"이 있는 암벽이 있는데 이름하여 "치마바위" 이 바위에 서려있는 "중종"과 "단경왕후"의 사랑 얘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12살의 나이에 "진성대군"에게 시집와 애뜻한 정을 나누었던 소녀. 그 "진성대군"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왕이 되고..그녀는 졸지에 왕비가 되고 조선 제 11대 왕 "중종"-그가 바로 그 소녀의 서방인 "진성대군"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연산군 아래에서 좌의정을 지내던 "신수근 愼守勤"의 딸이었으니 운명은 이렇듯 기묘하게 찰라에 의해 바뀌고.... 박원종을 비롯한 쿠데타 세력들은 연산군의 와이프-거창신씨의 외질녀이기에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를 왕비로 남겨 둘수가 없었지요. 후환이 두려워.... 그래서 꼭두각시 얼굴마담 '중종'을 족쳐서 "단경왕후"를 폐위 시키고 새로운 왕비들을 급하게 옹립합니다. 새로 뽑은 왕비들 중..그 유명한 "문정왕후"..등에서 부터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울수 없는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 전란으로 가는 불씨가 태동 됩니다. ['인왕산' 정상] 4시 13분 "중종"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준 쿠데타 세력들에게 꼼짝도 못하고 강제적으로 사랑하는 "단경왕후"를 눈물로 떠나 보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중종"은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그녀가 보고 싶어 경복궁 경회루 앞에 나와 그녀가 산다는 "인왕산"방향을 바라보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폐서인이 되어 쌩과부로 홀로 사는 '단경왕후'는 그 사실을 소문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궁궐에서 입던 자신의 다홍치마를 인왕산 바위에 걸쳐 놓아 자신의 입지를 알리곤 하였답니다. 왕이여~~ 날 보러 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이후 단 한번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 바라만 볼수 밖에 없는 사랑......"치마바위"의 내력입니다 [인왕산 정상] 그 유명한 '중종'과 '단경왕후'얘기는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 오며 영화나 드라마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연산군과 장녹수"의 사랑이 에로스적 사랑이라면, '연산군과 거창신씨"의 사랑과 "중종과 단경왕후"의 사랑은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그렇지요? 에로스...플라토닉...어떤게 더 좋은 건지도 저는 잘 모릅니다만...ㅎ 둘 다 같이 하면 왔따인데.. ['인왕산' 정상에서 휴식] 인왕산 정상에서 '중종과 단경왕후'의 좀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를 안주로 한잔 걸치고.... [인왕산 정상에서 북악산 조망] "경복궁"과 "치마바위" 줌인한 사진이 아닌데도 가깝지요? '단경왕후'가 이 바위에 널어 놓은 다홍치마를 보며 '중종'이 그녀를 그리워 했을수 있다는 느낌이 드시는지요. 충분히 보일듯 하지요? 중요한 것은 '중종'은 '단경왕후'와 강제 이별한 후에는 '단경왕후'를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는 겁니다. '중종'이 매일 '단경왕후'를 돌려 달라고 쿠데타 세력들에게 하소연하니 쿠데타 세력들은 조선천지에 이쁘다는 여자는 모두 데려다 '중종'과 쌕쌕거리게 했답니다 '단경왕후'를 잊도록 하기 위해서죠. '중종' 이놈도 남자 인지라 주색에 쩔어 살며 점차 '단경왕후'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누군가 노래로 "남자는 다 그래!~"라는 노래를 불렀나? 에구~ "여자는 더 그래!~" [인왕산 정상에서 남산 조망] [인왕산 정상 위치표시점] [인왕산 정상 이정표] [인왕산 정상에서 '안산'과 '한강' 조망] "안산"은 북쪽과 연락을 하는 봉수대가 있던 곳이죠 "남산"의 봉수대는 남쪽과 연락하는 곳이었고 [인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성곽길] '인왕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복원 중에 있습니다. 제가 4년전에 왔을 때엔 저 성곽길 옆으로 오르 내렸는데... [성곽 복원공사 중] 5시 7분 직진하면 간단히 사직터널 윗쪽 성곽길로 갈수 있는데 갈수 없습니다. 성곽 복원공사 중으로 좌측으로 새로 길을 내 놨군요 전에는 없던 길입니다 어쩔수 없이 좌측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성곽 복원공사로 우횟길] 길은 외줄기이니 길찾기는 쉽습니다. [성곽 복원공사로 우횟길] ★길조심★ 내려 가다가 이런 화장실 같은 것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가기만 하면 길찾기는 간단합니다 [무속 제단] 5시 17분 [성곽 복원공사로 우횟길] [인왕산 스카이웨이] 5시 21분 ★길조심★ 복원 공사중인 성곽 갈림길에서 약15분 정도 내려 오면 "인왕산 스카이웨이"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 '사직근린공원 성곽길'을 찾아 가는 길을 알려 드림니다. [인왕산 스카이웨이] ★길조심★ "인왕산 스카이웨이"에 내려 오면 우측, 즉 남쪽으로 갑니다. [인왕산 스카이웨이 "삼거리 초소"] 5시 26분 ★길조심★ "인왕산 스카이웨이"를 따라 약5분 정도 가면 초소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 삼거리에 '호랑이 상'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측길로 가야 합니다. 좌측길은 사직공원으로 내려 가는 길입니다. ["삼거리 초소"에서 성곽길로 가는 길] ★길조심★ 우측 인왕산에 붙어 조금 올라 가면 ... [성곽길과 다시 만나는 곳] 5시 31분 ★길조심★ '독립문'으로 넘어 가는 고갯길에서 다시 성곽을 만납니다. 우측 철문은 제가 몇년전에 왔을 때에 이곳에서 성곽을 따라 인왕산으로 올라 갔던 문인데 복원공사로 문이 닫혀있습니다. 복원공사가 끝나면 다시 이 문으로 다녀야 할듯.. 성곽은 좌측 "사직근린공원"으로 나 있습니다. [사직근린공원] 완벽한 모습을 되찾은 성곽과 아름다운 서울이 조화를 이루며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사직근린공원'에서 뒤돌아 본 '인왕산 성곽길'] 뒤돌아 봅니다. 완벽합니다. 우리가 우회하여 들어 온 곳은 전봇대가 있는 곳입니다. [城밖 '무악동'] 城밖의 '무악동'도 구경하고... 城밑으로 터널이 있나? 주차장을 만들어 놨나? 사직터널은 여기서 더 가야 있는데... ['사직근린공원'] 서울城과 공원, 그리고 서울을 모처럼 만끽하며 걷습니다. [城밖으로 나가는 문] [城밖 성곽길] 城밖으로 나갔다 올수 있는 암문도 있어 나가 보기도 하고... ['사직근린공원' 성곽길] ['사직근린공원' 입구] 5시 46분 "사직근린공원"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길찾기를 유의해야 합니다. ['사직근린공원'입구 앞 '옥경이 가게'와 '권율장군 집터' 가는 길] 공원을 나오면 앞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보이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 "옥경이 슈퍼"라고 표기한 조그만 가게입니다. 지금은 간판도 없습니다. 성곽길은 가게 옆으로 바로 가야합니다만, "권율장군집터"를 구경하고 가려면 전봇대 옆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갔다간 다시 되돌아 와야 합니다. ['권율장군 집터' 가는 길] [골목] 전봇대 옆으로 내려 가면 좌측에 성곽이 있고 빌라 주차장인데, 주차장 가운데에 조그만 골목이 있습니다. 이 골목으로 들어 가면... [권율장군 집터]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장군'보다 계급이 더 높았던 "권율 도원수"의 집터 ['옥경이 가게' 옆 성곽길] 5시 53분 "권율 도원수"의 집터를 보고 다시 '옥경이 슈퍼'로 올라 옵니다. 그리고 성곽을 따라 내려 갑니다. [상록수 어린이 집] 5시 56분 '옥경이 슈퍼'에서 약3분 정도 성곽을 따라 내려 가면 "상록수 어린이집"을 만납니다 "사직터널' 위를 지나 온것입니다. "상록수 어린이 집"을 끼고 우측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삼거리 슈퍼] 5시 58분 "상록수 어린이 집"에서 우측으로 틀면 앞에 "삼거리 슈퍼"가 보이고, 좌측으로... ['홍난파' 가옥] 6시 "삼거리슈퍼"를 돌아 나가면 바로 "홍난파 가옥"이 약간 고풍스럽게 보입니다 ['홍나파' 가옥 윗층-흉상] ['홍난파' 안내] "蘭坡 洪永厚" 우리나라 음악사에 없어서는 안될 우리나라의 유명한 음악가입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 이 분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자라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우리나라 최고"라는 칭호를 갖는 서양음악의 한국화에 노력한 선구자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우리나라 최초의 'KBS관현악단' 조직, 지휘. '봉선화' '고향의 봄' '옛동산에 올라' ' 성불사의 밤' '고향생각' '오빠생각'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곡을 만들어, 판소리나 읊던 우리나라에 새로운 음악 파라다임을 선도한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빼 놓을수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엄청난 친일행위를 하여 안타갑습니다. "森川潤 모리가와 준"이 그의 일본 이름이었습니다. 41살의 젊은 나이에 늑막념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천재는 단명이라는 것도 함께 남겼습니다 [서울복지재단 옆 골목] [서울복지재단 정문] [서울시 교육청] ['강북삼성병원'방향으로...] [경교장] 6시 10분 '홍난파 가옥'에서 구경하고 5분 정도 걸어 내려 오면 "강북삼성병원"이 나옵니다 병원을 들어서면 바로 "경교장"이 보입니다. ['강북삼성병원'내에 있는 '경교장'] "경교장 京橋莊" '백범 김구선생"의 개인 사저였습니다. '안두희'에 의해 권총으로 살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곧 완벽하게 복원한다고 합니다. [강북삼성병원 남문] [남문을 나와 좌측으로...] "돈의문, 속칭 서대문 가는 길" 삼성병원 남문으로 나와 좌측, 즉 광화문 쪽으로 조금 올라 갑니다. [삼성병원 응급센타 앞 "돈의문 터" 표지] 6시 17분 "돈의문" 속칭 "서대문터"는 '삼성병원 응급센타'앞에 초라하게 있습니다. ['돈의문터'에서 '소덕문'으로 가는 길] "돈의문터"라고 알리는 '삼성병원응급실'앞에서 건너편 정동길로 가야합니다. ['정동길' 초입에 있는 '창덕여중'] "돈의문터"에서 "소덕문-서소문"까지는 빌딩들이 차지하고 있어 갈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동길"로 들어섭니다. 처음으로 "창덕여중"이 나오고.... [예원학교] "서울"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정식 명칭으로 사용한것은 해방후 1946년 8월 16일 미국군정하에서 미국식 직제 개편으로 경성부→서울특별자유시로 경기도에서 분리되면서 '서울'이라는 이름이 새로이 탄생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조선 개국과 동시에 한성-한양이라 불리워져 왔고 일제 강점기 시대엔 "경성"으로 명명되어 왔습니다. [이화여고] '서울'은 왜 한자가 없을까? '서울'은 한문상의 표기가 없고 대신에 '한양(漢陽)' 또는 '漢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천도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 건국과 함께 탄생된 도시가 오늘의 '서울'이 되었는데 탄생 될때의 이름이 '漢陽'이고 '한양'의 외곽에 '城'을 쌓고 난 다음에 "漢城"으로도 불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을려면 漢陽의 탄생 과정을 추적해 보아야합니다 [이화여고 돌담길]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다음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으려 할 때 그 성곽을 쌓는 기준선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던 어느 날 태조 이성계가 삼봉 정도전, 무학대사와 함께 협의를 하고 있는데 큰 눈이 내렸답니다 눈이 한양을 둘러 싸고 있는 산능선을 따라, 능선 밖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고, 능선 안쪽에는 눈이 조금 쌓여졌답니다 그 상황을 눈여겨 살펴본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무학대사는 성곽을 쌓을 윤곽을 그리고 눈이 많이 쌓인 곳과 적게 쌓인 곳의 경계선을 따라 도성을 쌓게 했다고 합니다 한양과 한양 밖에 내린 눈이 경계선을 그어 준 것입니다 [신아일보 별관]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곳과의 경계선을 따라 쌓은 都城은 산의 능선을 따라 북악산-인왕산-남산-동대문에 있는 낙산을 연결하는 것으로 둘레가 40리에 이르렀습니다 즉 한양성곽은 "눈 雪" 경계선을 따라 건설된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이 "한양의 울타리"를 만들었다고하여 '눈 雪'자를 쓰고, 울타리 '울 鬱'자를 붙여 '설울 雪鬱'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은 도성으로 한 때 '설성 雪城'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다시 '설울'로 불리워 지면서 '설울'의 "ㄹ" 복음이 묵음화 되면서 '서울'로 발음 되어진 것이랍니다 요약하자면 '서울'은 "雪울타리 →雪鬱 → 설울 →서울"로 된 것이라 합니다 저는 이 이론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생각 되며 또한 이것은 각종 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정동극장] [정동제일교회 앞 로타리] 6시 26분 ★길조심★ 우측 '정동제일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야 합니다. [배재학당]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배재정동빌딩] [서소문로 횡단] [중앙일보 방향으로...] "배재정동빌딩"을 지나면 서소문로가 나오는데 '외환은행'앞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중앙일보 방향으로 100m정도 갑니다. ["소덕문" 터 표지석] 6시 35분 '중앙일보' 가기 바로 전 '중앙빌딩 주차장' 담벼락 위에 "소덕문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문화재가 이렇게 주차장 담벼락에...에구 [중앙일보] [순화동길] 순화동길로 접어 들어 숭례문을 향해 갑니다. [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아래에 서울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숭례문] 6시 40분 오전 10시 20분 "한성대입구역"을 출발하여 오후 6시 40분에 '숭례문'에 도착했습니다 8시간 20분이나 걸렸군요. 시간에 구애됨없이 먹고 놀며 여유롭게 걸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 의미있는 하루였습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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