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과 역사』 『동구릉의 가을』 속으로 ['실트랙']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왕릉-동구릉 東九陵"으로 간다. "동구릉 東九陵"은 "동쪽에 있는 아홉기의 왕릉"이라고들 알고 있죠? 반은 맞고 반은 틀림니다. <東九陵>에는 일곱명의 왕을 모신 "왕릉 7기"와 열명의 왕비를 모신 "왕후릉 10기"가 있어 "총 열일곱명의 왕-왕후릉"이 있는데....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 가면... 1. 단릉: 왕이나 왕후의 능을 단독으로 조성한 릉으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健元陵>과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의 휘릉 徽陵>, <경종>의 정비인 <단의왕후의 혜릉 惠陵>이 있다. 2. 합장릉: 하나의 릉에 왕과 왕후를 같이 모신 릉으로 <조대비>로 유명한 구한말 <신정황후>와 그의 남편 추존왕인 <문조(효명세자)>의 합장릉인 <수릉 綬陵>이 있고 3. 쌍릉: 왕과 왕비를 옆으로 나란히 모신 릉인데,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 元陵>과 <현종>과 <명성왕후>의 릉인 <숭릉 崇陵>이 있다. 4. 동원이강릉: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릉을 말하는데, <선조>와 정비인 <의인왕후>, 계비인 <인목왕후>의 <목릉 穆凌><과 <세종대왕의장남>인 <문종>과 <현덕왕후>의 릉인 <현릉 顯凌>이다. 5. 삼연릉: 왕과 두 왕후의 릉을 나란히 3봉분으로 조성한 릉을 말하는데 <24대 현종>과 그의 정비인 <효현왕후>, 계비인 <효정왕후>의 릉인 <경릉 景凌>이 있다 이렇게 그룹으로 릉을 묶으면 9개가 되어 <東九凌>이라 하고, 그룹으로 묶지 않고 <합장릉>을 하나의 봉분으로 계산하면 16기의 무덤이 된다. ['동구릉역'] 1:25 2024년 11월 12일 (화) 맑음 <지하펄 8호선>이 <별내>까지 연장되어 교통이 무척 편리해진 "8호선 동구릉역3번축구"로 나가 직진하며 8분여 진행하면... ['동구릉' 입구] 1:33 "동구릉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정문'] 1:35 매표소가 있는 정문을 통과해 들어 가면... ['홍살문'] 1:38 <東九陵> 전체 홍살문을 통과하게 되고 ['재실'] 1:42 이어서 <東九陵>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齋室"이 있습니다 조선왕릉 최대의 <동구릉>의 재실로는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재실>에서 우측 길로 200m쯤 올라 가면.... ['수릉'] 1:46 제일 먼저 만나는 릉이 "수릉 綬陵"이다. <대한제국> 때에 황제로 추존된 <문조>와 <신정황후 조씨>를 모신 합장릉(合葬陵)이다.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인물들인데, 그냥 이름만 말하면 아는이가 거의 없는 인물이죠? <문조>는 <순조>의 아들로 유명한 <효명세자>인데 '대리청정'을 할 많큼 강인한 세자였는데 일찍 죽었고 세자빈이었던 <신정왕후 조씨>가 낳은 아들이 <현종>이 되자, "왕비"는 못되었지만 바로 "왕대비"가 되며, 그 유명한 "조대비"로서 권력실세가 되어 국정을 주도하며 <흥선대원군>과 <고종>에게 권력을 넘겨 주며 '세도정치'에서 벗어나게 했는데 그녀의 무덤이 바로 "수릉 綬陵"이란걸 알면 아!~ 그래? 라는 소리가 나오겠죠? ㅎ ['현릉'] 1:50 <수릉>에서 200m쯤 더 올라 가면 "현릉 顯陵"을을 만나다. 제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라시고 ['현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현릉顯陵"은 알기 쉽게 <세종대왕의 장남>인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릉인데,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현릉' 조망] <제5대 문종>에 대해선 나의 여러 답사기에서 많이 언급된바 있다. <세종대왕>의 자식복, 며느리복등 가정사의 비극을 말 할때마다 대표적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문종>의 무덤을 바라보니 <세종대왕>이 먼저 생각 난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모두 아시져? 그런데 '세종대왕'은 "治國平天下"는 최고인데 "修身齊家"는 빵점이란거 아시나여?. 자식들은 권력싸움으로 서로 헐뜯고 죽이고, 며느리들은 동성애에 빠지거나 미친년이었고 사위도 술주정뱅이등 제대로 된 인간들이 없어 정치는 잘했지만 가정사는 최악이었다우. ['현덕왕후릉'] 이미 몇번 언급한 내용을 한번 더 언급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의 성욕은 똑 같습니다. 정상적 남성 100%가 자위를 하고, 여성도 별반 차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동성애를 하는 자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세자빈 김씨'는 학문에만 열중할 뿐 자신을 모른 체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압승술 壓勝術"을 행하다가 시아버지 '세종대왕'에게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압승술"이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일종의 민간 미신이랍니다. 구체적으로 "압승술"은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 뒷굽을 태워 가루를 내고 나서 그것을 술에 타 남편에게 먹이는 일종의 미신인데요. "세자빈 김씨"는 세자가 자주 출입하는 궁녀의 신을 훔쳐다가 그 신을 태워 세자의 술이나 차에 섞어 마시게 하거나,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를 만들어 먹이는 등 세자를 곁에 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되지만 당연히 이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오히려 그녀의 행각은 탄로 나서, '세종대왕'은 장차 왕비가 될 큰며느리가 그런 요상한 짓을 한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고 국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큰며느리 '김씨'를 곧바로 쫓아내 버렸지요. 그러나 '김씨'가 쫓겨난 후 들어온 두번째 큰며느리 '봉씨'도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은 여자이니 마찬가지였답니다. .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 "세자빈 봉씨" 이 여자가 세종실록에 아주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세자빈이 궁녀와 동성애-레즈비안을 한것이죠. 궁녀들 사이의 동성애를 그 당시 보통 <대식 對食>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대식'은 궁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드러나곤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하겠죠?ㅎ 이렇듯 은밀하게 행해지던 궁녀들의 동성애가 겉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가 주인공이었던 사건입니다. 세종대왕은 궁녀들 사이의 '대식'이 적발되면 곤장 70대~100대씩 때려서라도 금지시키려고 했답니다. 당시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정관료들의 성 윤리가 대단히 엄격하여 동성애를 절대 용납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만,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성욕은 왕의 위력으로도 막을 길이 없었던 것이죠.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인 '세자빈 봉씨'가 궁녀와 동성애를 벌이다 적발되어 쫓겨나는 이 사건에 대해 『세종실록』에 자세하게 기술되 있는데 세자빈과 궁녀의 동성애에 관한 기록은 이때의 상황이 처음이랍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이 큰며느리 '봉씨'를 내치면서 부득이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다 보니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록에 기록된 것이죠. 세종이 큰며느리를 내친 이유는 근본적으로 아들, 즉 '문종'에게 있었답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여색을 멀리한 모범적인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일 밤 독수공방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다만 '봉씨'는 '김씨'처럼 "압승술"을 쓰는 대신 동성애에 빠져 궁녀들과 성욕을 불태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노발 대발 난리가 났고 결국 폐서인을 시켜 추방합니다. 쫏겨난 '봉씨'는 반성은 커녕 성욕을 해결한게 뭔 죄가 되냐고 항변하다가 결국 자기 친아버지로 부터 비참하게 목 졸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남자 구실 못하는 '문종'이 이혼 대상이고 위자료를 줘야 할텐데... 이러한 와중에 '문종'이 꼴깝을 합니다. 자신의 부인들이 성욕을 해결 못해 "압승술"이나 '동성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궁중의 어느 궁녀와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유일한 아들 "단종"이며, 그 궁녀가 "단종"의 어머니인 "양원 권씨"로서 '문종'의 세번째 부인인 "현덕왕후"가 됩니다. 바로 윗 사진의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여인입니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단종'을 더욱 인정하려하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왕권찬탈의 빌미를 찾으려 혈안이었는데 이것은 좋은 미끼여서.... 이로서 '세종대왕' 자식들과 며느리들의 불행은 극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큰며느리들은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압승술" "동성애"를 하다 쫏겨나고 "모락산"이라는 산 이름을 만든 "임영대군"의 와이프는 정신질환자로 시아버지인 '세종대왕'에게 반말 막말을 하는 등 '미친년'이었으니 지지리도 '며느리 복'이 없는 '세종대왕'이었던 것입니다. ['건원릉'] 1:58~2:08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이 <동구릉>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적인 안내문을 참고하시고... ['건원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아랫쪽에선 <건원릉>을 촬영하기가 어려워 항공사진을 쎄비해 왔다. ['건원릉 비문'] [건원릉 신도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이 분 많큼 불행하고 자식 복 없기로는 <세종>보다 더 불행한 왕이었던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태조 이성계>는 목숨 걸고 탈취한 권력을 고작 6년여 향유하다 자식 <이방원>이 한테 통째로 빼앗긴 불행한 아버지이고, 본 부인인 <신의왕후>에게서 낳은 아들들과 사랑하는 여인 <신덕왕후>에게서 낳은 아들들을 거의 몽땅 <이방원>이 한테 죽임을 당했으니 <역성혁명>으로 얻은 기쁨보다 자식들을 잃은 슬픔이 하늘을 찌를 것이리라~~ 그래서 왕위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 가 조용히 살려고 까지 했는데 뒤 따르는 '함흥차사' 이야기가 더욱 그의 아픈 가슴을 느끼게 해 준다. ['건원릉'] [건원릉 신도비'] "내가 죽으면 고향 함흥의 억새로 덮어 주라~"라고 유언을 한 "태조 이성계" 조선 왕릉 중에 유일하게 "억새"로 봉분을 한 릉이 바로 "건원릉"이다. 억새 봉분이 특별한 운치와 의미가 있어 보이나요? 아니면 하늘거리는 억새처럼 조선왕조의 미약한 앞날을 보는 듯 한가요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그래도 고향의 억새풀과 함께 잠들고 있어 덜 애처롭구나 그러기에 쿠데타는 왜 일으켰냐~♪ ['목릉] 2:09~2:19 <조선 14대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목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목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정자각>에서 두 왕비로 가는 "신로 神路"가 선명히도 조성되 있다. X새끼 <선조>에겐 과분한 왕릉으로 보이는건 나 뿐일까... ['선조'와 '의인왕후'릉] <목릉 정자각>은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일하게 "다포식 공포"로 지어져 있고, 17세기의 건축 연구 자료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단다. <정자각>에서 <의인왕후릉>과 <인목왕후릉>으로 "신로 神路"가 연결된게 특이하다. ['선조릉'] 조선왕조 최악의 군주중에 첫손가락에 꼽히는 <선조>의 무덤인데 조선왕조에선 도저히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최초의 서자 출신 왕이며 <임진왜란>의 책임을 져야할 인간인데, 저만 살겠다고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북으로 북으로 도망간 나쁜놈이다. <경복궁>을 불태운 자들은 침략자 쪽바리가 아니라 열받은 우리 백성들이란거 아시나요~ ['의인왕후릉'] "선조의 정비-의인왕후" <의인왕후>는 성품이 온화하여 자애로운 면모를 지녔으나, <선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하여 후궁의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폈다. 특히 <공빈 김씨>의 소생인 <광해군>을 친아들처럼 대해주었고, 훗날 왕세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도 하였는데... 에휴~ 왕자를 낳지 못하는 왕비는 찬밥신세.... 애를 못 낳은 천추의 한을 안고 잠들고 있다. ['인목왕후릉'] "인목왕후 김씨" <의인왕후>가 죽자 18살에 왕비가 된 소녀 ...그 유명한 <김재남의 딸>인 <인목왕후>의 능이다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의 새엄마가 되는데 아들<광해군>보다 열살 가량 적은 엄마가 있을수 있나~ <영창대군>이란 아들을 낳았지만 <광해군>에게 살해 당하고 유패되어 살다가 <인조반정>으로 복수를 하는 "복수의 화신"으로 유명하죠. ['건원릉' 앞 사거리] 2:22 다시 <건원릉> 앞 사거리로 돌아 와 직진하면.... (앞으로 가실 분들은 이 사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휘릉'] 2:24 "휘릉 徽陵" <조선 16대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역사를 아시는 분들에겐 유명한 여인이죠. ['휘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휘릉'] "휘릉 徽陵" <조선 16대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왕비로 10여년, 왕대비로 10여년, 대왕대비로 30여년을 산 파란만장한 여인이다. 무려 50여년을.... <인조>와의 사이에 <효종>을 낳았는데, 아들 <효종>이 먼저 죽자 장례를 치루며 <장렬왕대비>가 "상복"을 입을 기간을 두고, 그 유명한 "예송논쟁"이 벌어졌다. 내용은 "장남"이 죽으면 3년 동안 상복을 부보가 입고, "차남"이하는 1년 동안 부모가 상복을 입기로 <성리학>에 나와 있는데..... <효종>은 "장남"이 아니고 "차남"이기에 당시 정치세력인 <서인>과 <남인> 사이에 논쟁이 벌어 진것. <서인>의 두목은 그 유명한 <우암 송시열>이 대표고, <남인>의 대표는 <미수 허목><윤선도>등이었다. 겉으론 단순한듯 하기도 하지만 속으론 당파싸움이 들어 있어 사활을 걸고 싸웠다. 결국 <효종>이 "차남"이므로 1년간 상복을 입는 것으로 <서인>의 승리로 끝나며 <서인>이 정권을 잡았다. 이를 "1차 예송논쟁"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고 문제는 <효종>의 와이프 <인선왕후>가 죽었을 때 다시 <예송논쟁>이 불붙었다. 차남의 와이프, 즉 <장령왕후>의 둘째 며느리 임으로 9개월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서인>과 왕위에 적법하게 오른 <효종>임으로 적장자로 보아야 하니 그의 와이프도 적법한 "왕비"였으니 <장령왕후>가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논리로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번엔 <남인>의 승리로 끝나며 <남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를 "2차 예송논쟁"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고.... 여하튼 <장령왕후>는 <인조>의 왕비, <현종>의 왕대비, <숙종>의 대왕대비로 3대에 걸쳐 50여년간 왕실의 큰어른으로 자리 메김했으니 파란만장하다고 할수 있겠다. ['원릉'] 2:34 "조선 제21대 영조"와 두번째 부인 "정순왕후"의 쌍릉이다. 공식 안내는 안내문을 참고하고 ['원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정순왕후 김씨" 15세의 어린 나이로 51세 연상인 66세의 <영조>와 '창경궁'에서 가례를 치르고 왕비로 정식 책봉되었다. 왕비가 되는 <정순왕후>의 할아버지가 남편이 될 <영조>보다 5살이 적었으니...ㅎㅎ 간택 당시 <영조>와 <정순왕후>의 면접대화가 유명하다 <영조>: (왕비 후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 (왕비 후보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고 대답했지만,...) <정순왕후>: 인심이 가장 깊다고 생각합니다. <영조>: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가 무엇이냐? <정순왕후>: 보릿고개라 여겨집니다. <영조>: 호~~ 기특하구나. (66세의 영조는 15살 애를 와이프로 맞이했습니다) ['원릉'] "정순왕후 김씨" <정순왕후>는 의붓아들인 <사도세자·혜경궁 홍씨>(둘다 1735년생)보다도 10살이나 어리며, <정조(1752년 생)>의 '계조모'지만 실제 두 사람의 나이는 겨우 7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심지어 결혼할 당시에는 <정순왕후>의 할아버지인 <김선경>도 생존해 있었는데, 1699년생으로 <영조>가 5살 더 많았다. 조선의 역대 왕비들 중에 가장 국왕과의 나이 차가 큰 관계이다. ['동구릉의 가을'] 東九陵의 가을은 깊어 가고..... 내가 동구릉에 처음 왔던 기억은 <교동국민학교> 다닐 때 소풍을 간 것인듯 한데... 대학 때 미팅을 왔던 기억도 난다. 그 때 제일 야한 게임은 파트너와 다리 묶고 뛰기 시합이었던 걸로..ㅎㅎ ['경릉'] 2:41 "24대 헌종" 황제로 추존된 <문조(효명세자)>와 <신정황후 조씨>의 아들로 8살의 어린 나이에 "24대 헌종"이 되고 <안동 김씨 세도정치> 치하에서 허수아비 왕으로 살다가 22살에 후사 없이 요절했다. ['경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경릉'] "경릉 景陵" <조선 24대 헌종>과 첫 번째 왕비 <효현황후 김씨>, 두 번째 왕비 <효정황후 홍씨>의 능이다. <경릉>은 세 개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의 형식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앞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황후>, 오른쪽이 <효정황후>의 능이다 <효정왕후>는 1906년까지 살아 73세로 장수 한 것으로 유명하다. ['혜릉'] "혜릉 惠陵"은 <조선 20대 경종>의 첫 번째 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이다 ['혜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20대 경종>은 유명한 <장희빈>의 아들이죠. <장희빈>이 죽을 때 아들 성기를 잡아 당겨 성불구자로 만들어 후사가 없다는 설이 있다. <단의왕후>는 세자빈 시절에 죽어 왕비가 되지 못하고, 후에 왕비로 추존된 여인이다. ['숭릉'] 2:52 "숭를 崇陵"은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헌종>은 <효종>의 아들로 외국에서 태어난 유일한 조선 왕이죠. <병자호란> 패전으로 인질로 잡혀간 <봉림대군-효종>이 북경에서 낳은 아들이다. 앞에서 <장렬왕후-인조 왕비> 릉에서 언급 한 <예송논쟁> 때의 왕이었다. 아버지 <효종>의 '북벌정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폐기했는데 34세로 일찍 죽었다. ['숭릉' 항공사진] (출처:궁릉유적본부-조선왕릉) ['숭릉'] "명성왕후 明聖王后"는 <19대 숙종>의 친어머니가 된다. <명성왕후>라는 이름은 두명이 있는데 <고종>의 왕비도 <명성왕후> ['동구릉역' 3번 출입구] 3:26 <동구릉역 3번출입구>로 돌아와 귀가했다. 오늘 걸은 거리는 6.3km였으며 2시간이 걸렸다."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전체 글
- [구리시] 동구릉의 가을 속으로 2024.11.15 5
- [경기둘레길] 시흥54코스 시흥연꽃테마파크에서 호조벌과 시흥은행동을 지나 부천소사역으로 2024.10.16 10
- [경기둘레길] 시흥53코스 배곧한울공원-월곶-소래철교-갯골공원-관곡지 2024.10.07 2
- [군산] 탁류길을 따라 군산시간여행 2024.10.02 8
- 하루에 가는 밀양 아리랑길 여행 2024.09.04 8
- 『올림픽아리바우길 제7코스』 어명을 받든 소나무길에서 만난 명주군왕릉 2024.07.27
-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 안반데기-바람부리-배나드리마을 2024.06.18
-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0코스 두타연길 2024.06.06 2
- 『남원 여행 Ⅳ』 춘향테마파크 2024.06.03 1
- 『남원 여행 Ⅲ』 광한루원 2024.05.31 1
[구리시] 동구릉의 가을 속으로
2024. 11. 15. 13:57
[경기둘레길] 시흥54코스 시흥연꽃테마파크에서 호조벌과 시흥은행동을 지나 부천소사역으로
2024. 10. 16. 17:12
『경기둘레길』 『시흥54코스』 시흥관곡마을에서 호조벌을 지나 부천소사역으로 관곡마을-시흥연꽃테마파크-호조벌-시흥원도심-여우고개-부천소사역 ['시흥54코스 안내도'] [실트랙] "경기둘레길 시흥54코스"는 "시흥연꽃테마파크"에서 "부천소사역"까지 가는 "14.9km" 거리란다. 지도에서 <초록색 선>은 <한남정맥>이며, <한남정맥>의 일부를 지나게 된다. ['관곡마을 동아아파트 버스정류장'] 9:30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맑은후 흐림 <사당역4번출구>에서 <3301번 광역버스>를 타고 20여분만에 "관곡마을 동아아파트 버스정류장"에 내려 <시흥54코스>를 시작합니다. <사당역>에서 이곳이 첫번째 정거장이니 놀랍다. 버스 진행방향에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들어 가면... ['관곡공원'] <관곡마을 동아아파트> 입구에 있는 "관곡공원"을 지나고 [삼거리] 9:38 이어서 <관곡지로>를 만나 조금 진행하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앞에 <관곡지>가 있는 조그만 동산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 농로로 진행한다. <관곡지>는 지난 <53코스>에서 둘러 봤음으로 오늘은 생략하고 <54코스 시점>으로 바로 간다 ['보통천변길'] 지난 <53코스>에서 <시흥연꽃테마파크>로 가며 지났던 사거리를 만나면 직진한다 ['54코스 출발지'] 9:41 그러면 <물왕호수>에서 내려 오는 <보통천>의 다리 건너에 "54코스 안내판과 스탬프함"이 있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됨★ 안내도에는 <시흥시 3개 구간> 전체 안내도가 있으니 클릭하여 큰 화면으로 참고하고 ['호조벌'] 지금부터 "호조벌 戶曺"을 약30여분 통과한다 앞에 펼쳐지는 들판은 옛날 <서해 갯벌>이었단다. 그러니까 바닷물이 들락거렸다는것이다. 그래서 <조선 20대 경종> 때에 방죽을 쌓아 갯벌을 간척하여 농지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조선 20대 경종>은 유명한 <장희빈>과 <숙종>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이죠? 그리고 <조선왕조>의 마지막 "적장자 출신 왕"이었다. 앞에 보이는 농로 사거리에서 좌회전 해야 하는데 길안내가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소래산' 조망] 9:49 좌회전하면 <시흥시의 진산>이라 할수 있는 <소래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시흥시>의 "원도심"이 다가온다. ['마유로' 굴다리] 9:53 <월곶>과 <시흥 원도심>을 연결해 주는 <마유로>에 있는 굴다리를 통과하고 ['은행천'] 10:00 다시 <호조벌>을 7분여 더 진행하면 "은행천"을 만나 둑방길을 진행하게 된다. [다리] 첫번째 만나는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로 진행하게 되는데 여기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호조벌'] 출발지였던 <관곡마을 동아아파트>가 보이고, <서해 갯벌>을 간척하여 평야를 만든 "호조벌"이 펼쳐진다. "호조벌 가을 들판의 물결치는 벼"는 <시흥8경> 중에 <제6경>이라고 한다. ['은행천' 둑방길] 10:05 <은행천>의 서쪽 둑방길을 20여분 더 진행하면 [쉼터] 10:20~10:32 쉼터를 만나는데 10여분 쉬고 ['제2경인고속도로'] 10:37 이어서 <제2경인고속도로>를 만나는데 도로 옆으로 계속 직진하면 ['늠내길'] 10:41 <시흥 늠내길> 안내판이 있는 샛길로 올라 가 좌측으로 진행한다. ['안현지하차도'] 그러면 <제2경인고속도로>가 지나는 "안현지하차도"를 지나고 ['안현교차로'] 10:47 <안현교차로>를 만나면 좌회전한다. [육교] 10:50 그러면 <시흥 은행동>이 완전 변하여 신도시가 된 <시흥원도심>을 만나게 되는데 첫번째 만나는 육교로 올라 가서 [육교에서 조망] 육교 위에서 진행 방향을 알아 보고 ['은행동' 통과] 눈이 휘둥거려질 정도로 변모한 <은행동>을 30여분 진행하면.... [사거리] 11:19 <은행동>에서 <대야동>으로 넘어가는 사거리를 만나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 <시흥대야역>으로 간다. ['시흥대야역' 앞] 11:22 <시흥개야역> 앞에서 직진하여 좌회전 해도 되고 ['시흥대야역'] "시흥대야역"은 <서해선>이 지나는 역으로 두번째 방문이다. 2018년 <시흥늠내길3코스>를 할때 왔던적이 있다. 지하철역 입구가 좀 특이하고 여기서 직진하여 우회전 해도 된다. ['소래산' 조망] <대야역>에서부턴 <시흥>과 <부천소사>를 이어주는 도로를 진행하게 되는데 13분 정도 <소래산>을 옆에서 바라보며 진행하면 ['상대야 삼거리'] 11:35 <상대야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앞에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직진해도 되지만, 우측으로 10m 지점에 ['시흥늠내길3코스 시종점'] "시흥늠내길3코스 시종점"이 있으며, <경기둘레길> 표지기도 보인다.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11:38 이어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의 <대야교> 아래에서 우회전 하여 계속 직진하면... [고속도로 굴다리] 11:45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U"턴하여 고개로 올라 가고 ['봉매산 능선길' 입구] 11:47 고개엔 <봉매산 등산로> 입구가 있으며 <늠내길> 이정표가 있다 15분여 진행하면 ['지중 송전탑'] 12:02 고압선이 지중으로 들어 가는 송전탑을 지나고 ['방아다리'] 12:09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부천시-시흥시 경계>인 "방아다리"라는 곳이다 [뒤돌아 본 '소래산'] <소래산>이 이젠 뒤에 있고... ['한남정맥 마루금'] 12:13 계속해서 <한남정맥> 마루금과 만나는 곳을 만나는데 옆에 "소래정 쉼터"가 있다. 앞에 있는 봉우리같지 않은 봉우리가 바위가 있는 "봉매산 120.8m이다. 이곳은 <한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이기도 하고 "시흥시-부천시 市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성주산>까지는 <시흥시-부천시 市界>와 <한남정맥> 마루금이 함께하며 그리고 <시흥늠내길3코스-옛길>과 <부천둘레길2코스-산림욕길>도 함께한다. 이 길들에 대해 자세한걸 알고 싶으신 분들은 <파란문>이 쓴 답사기를 참고 하시고... ['갈림길] 12:19 <소래정 쉼터>에서 5분여 <한남정맥 마루금>을 진행하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우고개>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여우고개' 조망] 12:21 <여우고개>와 <142.9m봉>이 보이고 ['여우고개'] 12:23 "여우고개"엔 에코브릿지가 설치되 있는데 오래되어 아랫쪽 고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우고개"는 여우들이 많이 서식해서라기 보단 "여우같은 놈들", 즉 "산적"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제가 전국의 산줄기들을 많이 다니며 느낀 결과다. 우리나라엔 산적들이 많았던 고개들 중에 <여우고개>라고 붙여진 고개가 가장 많이 산재해 있다. 여우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거의 주지 않지만, 정작 피해를 주는 동물은 나쁜 인간들이니까. 산이나 고개에서 만나는 가장 두려운 존재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부천둘레길2코스'] 12:24 <여우고개>를 건너가면 바로 "부천둘레길2코스 산림욕길" 아치를 만나고... [오름길] 제법 가파르고 긴 오름길을 5분 정도 오르면... ['142.9m봉'] 12:29~12:37 정자가 있는 "142.9m봉"에 도착하는데 청명한 가을에 일요일을 맞아 산객들이 많다. ['시흥' 조망] <시흘시- 부천시 경계>이므로 <시흥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운동시설] ['한남정맥' 마루금] 10여분 능선길을 진행하면 ['늘솜당'] 12:48 <늘솜당>이라는 베이커리 카페가 능선 꼭대기까지 침범해 있고... [주택] 주택들도 市界까지 들어 와 있다 [갈림길] 12:54 이어서 삼각점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좌측으로 가면 <하우고개>로 가는 <한남정맥><시흥늠내길>이며 <경기둘레길>은 여기서 우측 <성주산약수터>방향으로 진행한다. ['성주정'] 12:58 조금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면 이번 코스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164.4m봉"에 오른다. 이곳엔 "성주정 聖柱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운동시설이 있다. [운동시설] 1:13 주민들의 건강산행코스여서 길도 넓고 각종 운동시설도 곳곳에 비치되 있다. ['갈림길'] 1:15 이번 코스에서 처음으로 <경기둘레길 길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내려 가면 ['청심약수터'] 1:21 "청심약수터-성주산둥지유아체험숲"을 통과하고 [유아숲 들날머리] 1:24~1:27 이어서 날머리에 도착하는데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으며, <서울신학대>도 보인디.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면... ['서울신학대 담장길'] <서울신학대 담장길>이 이어지는데 <정지용 시인>의 詩 <고향>과 <향수>등이 벽면에 쓰여 있다. <정지용 시인>은 <충북 옥천>이 고향이고, <휘문고>와 <일본 도시샤대>를 나왔는데 <서울신학대>와 뭔 관계가 있나? ['서울신학대 정문'] 1:33 <서울신학대학교> 정문에서 ['소사사삼거리'] 1:38 <소사삼거리>로 나가면 <경인국도>를 만나고 ['소사역'] 1:43 이어서 "부천 소사역"에서 "경기둘레길 시흥54코스"를 마친다. 오늘 걸은 거리는 접속 거리 포함하여 15.6km였으며, 4시간 15분 정도가 걸렸다."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경기둘레길] 시흥53코스 배곧한울공원-월곶-소래철교-갯골공원-관곡지
2024. 10. 7. 17:35
『경기둘레길』 『시흥53코스』 배곧한울공원, 월곶, 갯골공원을 지나 관곡지로 한울공원-월곶-예수인선-시흥갯골공원-관곡지 ['시흥53코스 안내도'] [실트랙 구글어스] "경기둘레길 시흥53코스"는 "한울공원"에서 "관곡지"까지 가는 "17.5km" 거리입니다. ['오이도역'] 8:31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맑음 <수인분당선>을 타고 <오이도역>에 내렸다. 여기서 <경기둘레길 시흥53코스 시점>이 있는 "배곧한울공원"으로 가려면 제일 편한 방법은 <99-3번> 시내버스를 타면 <한울공원해수풀장>앞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99-3번>은 자주 없기에 시간이 맞지 않으면, <122번>이나 <123번>을 타고 "국궁장앞" 버스정류장에 내려 조금 더 걸으면 된다. ['국궁장' 앞 버스정류장] 8:48 나는 <122번>버스를 타고 다섯정거장을 지나 "국궁장앞"에 내려 답사를 시작한다. 버스 진행방향으로 150m 정도 직진하면.... [사거리] 8:52 첫번째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한울공원' 입구 사거리] 8:55 <한울공원해수풀장 입구 사거리>를 만나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들어 가면 ['서해랑길-경기둘레길 표지기'] 9:00 <오이도>에서 이어지는 "서해랑길과 경기둘레길"임을 알리는 표지기를 반갑게 만나며 우측으로 조금 들어 가면... ['해수풀장'] 9:04 "한울공원 해수풀장" 앞에 도착하는데 ['경기둘레길 시흥53코스' 시점] 9:06 <해수풀장> 우측 옆에 "서해랑길과 경기둘레길"의 시종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경기둘레길53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됨★ "서해랑길"은 <93코스>이며, "경기둘레길"은 <시흥53코스>라고 알리고 있다. 이 두길은 <옛 소래철교>에서 헤어진다. ['배곧한울공원'] "배곧한울공원" 여기서부터 <월곶>까지 바닷가에 조성된 매우 큰 공원이 이어진다. ['송도신도시' 조망] 서쪽 건너편엔 <송도국제신도시>가 가까이 있고 ['문학산' 조망] 북서쪽으론 <문학산>이 보이는데 <인천>의 진산이라 할수 있겠다. ['배곧한울공원'] 9:19 <배곧신도시>의 공원이 <배곧한울공원>인데 넓이가 약5백만㎡라고 한다. ['한울공원 안내도'] 9:24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이 안내도를 숙지하고 가야 더 많은 시설물을 볼수 있다. 안내도를 지나면... ['위인테마초소1-헬렌켈라 미로'] 9:25 "헬렌켈라의 미로"가 먼저 나타나는데 <위인테마초소1>로 조성되 있고... ['위인테마초소2-세종대왕'] 9:31 이어서 "새종대왕의 한글 조형물"이 반기는데 <위인테마초소2>이다. ['노을전망대'] 9:33 서해안이다보니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란걸 알수 있는데 몇군데 이런 "Sunset 전망대"가 설치되 있고 ['배곧신도시'] 9:35 "배곧"이라는 말은 "배우는 곳", 즉 "학교"라는 의미란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위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우측엔 <서울대학교 배곧캠프스>가 들어 설 예정이란다. ['위인테마초소-라이트형제'] 9:38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를 알리는 <위인테마초소>가 이어지며 ['배곧생명공원 육교'] 9:40 <배곧생명공원>과 연결되는 육교가 특별한 모양으로 서있다. <배곧신도시>는 원래 1985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화약(현재 한화)>에서 매립해 1997년 1월에 준공, 군용 화약류 성능시험장으로 사용하던 것에서 유래하여 '한화매립지' 또는 '군자매립지'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시화신도시> 조성 이후 주민 민원이 잇따르고 시험장 면허가 취소되면서 나대지로 방치됐던 땅이었단다. 그러다가 수도권 내 대규모 개발 가능지 중 최적의 개발 가능지로 평가받으면서 2006년 <시흥시>가 <한화>로부터 토지를 매입한 뒤, 직접 개발계획을 수립하게 되면서 오늘날 신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어린이놀이터'] 9:47 어린이 놀이터도 규모가 상당하고 ['위인테마초소-제임스 와트'] 9:48 "증기기관차의 제임스 와트"의 업적을 알리는 위인테마초소도 있고 ['위인테마초소-이순신'] 9:51 "임진왜란의 영웅-이순신장군"을 기리는 조형물도 있다. 조형물은 <판옥선>을 형상화했고... ['군자대교' 조망] <제3경인고속도로>가 <인천공항>으로 이어지는 <군자대교>가 조망되고 ['어린이놀이터'] 10:00 <군자대교> 밑을 지나 <어린이놀이터>를 지나면... ['위인테마초소-베토벤'] 10:03 "운명교향곡의 베토벤"도 리마인드하고 가라고 설치해 놨습니다. 여기는 소규모 야외공연장같군여. ['쿠키하우스'] 10:06 <쿠키하우스> 뒤로 <시흥 배곧신도시>와 <인천 논현신도시>를 이어주는 "해넘이다리"가 조망되고 ['자전거 쉼터'] <자전거 쉼터>를 지나면... ['해넘이다리'] 10:07 "해넘이다리"는 <인천 논현신도시>와 <시흥 배곧신도시>를 이어주는 육교란다. 길이는 318m라고 **<서해랑길 93코스>는 여기서 <해넘이다리>를 건너가며 <경기둘레길>과 헤어진다. ['월곶' 조망] 10:11 <월곶>이 보이면 <배곧한울공원>은 끝난다. <소래산> 뒤로 <서울 북한산>이 훤히 보이는데... ['북한산' 줌인] 약간 줌인해 보면...햐~~<서울 북한산>이 <소래산> 뒤로 선명하게 보여 새삼스러웠다. ['월곶' 가는 길] <배곧>에서 <월곶>으로 건너 가면.... ['월곶 중심지'] 10:32 <월곶> 중심지에서 다시 남쪽 바닷가로 나가야한다. ['월곶어시장'] 10:34 그러면 수도권에선 알아 준다는 <월곶 어시장>이 이어지고 ['월곶미래탑광장'] 10:35 <월곶역>에서 <어시장-회센타>로 직접 통하는 중앙통에 있는 <월곶미래탑관장>이 있으며 ['월곶회센타'] 회센타가 손님맞이를 하며 널어서 있다. ['월곶'에서 조망] 10:43~11:00 회센타에서 <월곶>으로 나가면 고래 한마리가 노니는 곳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진짜 "월곶 月串"이다 "곶串"은 바닷가로 돌출된 곳을 의미하는데 건너편 <배곧>과 우측 <송도>등의 갯벌을 매립하여 신도시를 만들어, 이곳 "월곶 月串"은 돌출된 곳이 아니라 매립지에 의해 숨겨진 곳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의 지형도 인간에 의해 바뀌고 있다. ['소래' 가는 길] <월곶>의 서쪽 <소래포구>로 잠시 진행하면.... ['수인분당선' 조망] 11:06 <월곶>과 <소래>를 이어주는 <수인분당선>이 지나는 다리가 보이기 시작하며 그 뒤로 <옛 수인선 소래철교>도 보이기 시작한다. ['옛 수인선 소래철교'] 11:09 "옛 수인선 소래철교" 일제강점기시절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던 협괘열차가 달리던 <수인선 소래철교>가 추억을 머금고 <소래포구>와 <월곶>을 연결하고 있다. 일제강점시시대 <소래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이곳 <소래역>에서 싣고 <수원>으로 가 <경부선>으로 <부산>까지 운송하여 일본으로 반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시절 <소래염전>의 소금을 운송하기 위한 용도로 <수인선>을 개설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옛 수인선 소래철교' 조망] <옛 소래철교>는 육교가 되었으며 <소래포구>의 명물로 남아 있고.... ['소래대교' 앞 갈림길] 11:13 ★길조심★ <수인선 소래철교>를 지나면 길조심해야 하는 곳을 만나는데 안내표판이 없으니 유의해야한다. 앞을 막고 있는 도로는 <소래로>와 <영동고속도로>여서 좌측 <소래대교> 밑으로 진행해야 하고... ['소래대교' 밑 통과] 11:16 <소래대교> 밑을 통과하면... ['제방'] <소래습지생태공원>이 펼쳐지며 ['방산대교'] 11:25 이어서 <방산대교> 밑을 통과하면... ['자전거다리' 조망] 11:28 <시흥갯골공원>의 명물 중에 하나인 "자전거다리"가 보이는데 <경기둘레길>은 저 다리로 가지 않는다. ['관악산' 조망] <서울 관악산>도 조망되기 시작하는데 이 외줄기 제방길을 20여분 진행하면 ['무명교'] 11:45 <무명교>라는 이름 없다는 이름을 가진 다리를 만난다. 앞으로 <4.5km >만 더 가면 된다고 알려 준다. ['맨발길'] 11:47 <무명교>를 지나면 <시흥갯골공원>의 "맨발길"이 이어지고 10여분 진행하면... ['모새달다리'] 11:56 갯골을 가로지르는 "모새달다리"를 만나게 되며 ['흔들전망대' 조망] 11:59 "시흥갯골고원"을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 "흔들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염전창고'] 12:04 <옛 염전 소금창고>가 보이면 <시흥갯골공원>의 중앙에 도착하게 되는 것인데 ['흔들전망대'] 12:05 바로 <흔들전망대> 주변에 도착하는데 ['염전'] <소래포구>에서 이어지는 <갯골>은 예전 "소래염전"이었는데, 우리나라 소금생산의 3~40%를 이곳에서 생산했단다. 그래서 그런 시설들이 아직도 구경거리로 재탄생시켜놨고... **이곳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내가 쓴 "시흥늠내길 2코스 갯골길"을 참고하면 되겠다. ['후드트럭'] 12:08 이런 대공원에선 <후드트럭>이 제일 인기있다. 우측엔 <해수풀장>이 있고 [숲길] 12:11~12:20 숲길도 조성되 있는데 잠시 휴식을 취하고 ['흔들전망대'] 12:21 "흔들전망대" 높이는 27m이고 바람이 불면 실제 느낄수 있을 정도로 흔들거리는데, 약10mm정도 흔들거린다고 ['부흥교'] 12:22 <부흥교>를 건너가면 <갯골공원>은 끝난다. ['옛 염전'] 12:25 이곳은 경기도 유일의 "내만갯골"이라고 한단다. 즉, 바다 해안선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지역이라고 "내만갯골"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소래포구"에서 [수인선]을 이용하여 '수원'으로 가 <경부선>으로 '부산'으로 이동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었단다. 요즘 쪽바리들의 한국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는데 지난 역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천근만근....복수를 해야 할텐데... ['북한산'과 '관곡지' 조망] <북한산>과 <관곡지>가 있는 동산이 조망되는데 <북한산>을 줌인해 보면... ['북한산' 조망] <북한산>의 <백운대-만경대-노적봉-원효봉-의상봉-향로봉>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앞에 보이는 철길은 <서해선> 전철이다. [황금들판] 추수의 계절 가을이 실감나는 황금들판을 20여분 진행하면.... [다리] 12:43 이름 모를 다리를 하나 건너 <서해선>이 지나는 좌측 굴다리로 진행한다. ['하중2교'] 12:46 <하중2교>를 지나 ['하중교'] 12:50 ['연성교'] 12:54 <하중교><연성교>를 통과하면... ['관곡지' 조망] 12:59 드디어 종점인 <관곡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관곡지>는 개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야산에 있다. ['53코스 종점'] 1:02 <관곡지연꽃테마파크> 조금 못미쳐 좌측으로 다리가 하나있는데 다리 건너에 <53코스 종점>과 <54코스 시점>이 있는데, <54코스> 할때 가기로 하고 <관곡지>로 가면 ['관곡지연꽃테마파크'] 1:04 "관곡지 연꽃테마파크" 철 지난 연꽃밭은 황량하기만 하다. 여름철에 와야 펼쳐지는 연꽃을 만끽 할수 있을텐데 아쉽다. ['관곡지'] 1:07 토종과 재래종의 차이를 아시나요? 토종은 본래부터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의미한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데 재래종은? 재래종은 원래 우리나라엔 없었는데 외국에서 들여와 우리나라에 토착화 된 동식물을 의미하죠 <연蓮>은 재래종이라걸 알수 있는데, 조선 초기 <강희맹>이 중국에서 들여 온것이다. ['강희맹 사위 권만형' 종가'] 1:09 <관곡지>는 <강희맹>의 사위였던 <권만형>의 가문(안동 권씨 화천군파 종중)에서 오늘날까지 소유-관리해오고 있는데, 조선 전기에는 재산에 대한 자녀의 균분 상속이 이루어졌고 <관곡지> 일원의 토지가 <강희맹>의 딸에게 분재(分財) 되어 사위 가문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란다 ['관곡 베실구지'] 1:16 <관곡지>에서 5뷴여 걸어 <관곡마을>로 나가면 <베실구지>라는 마을 안내석이 있는 곳에 <서울 사당>가는 <3301번광역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성원.동아아파트 버스정류장>이다. 여기서 <사당>까지 35분 걸렸는데 예상보다 무척 가까웠다."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경기둘레길 > 경기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둘레길] 안성43코스 안성천을 따라 평택으로 (1) | 2024.05.16 |
---|---|
[경기둘레길] 안성42코스 서운산성의 탕흉대를 오르다 (0) | 2024.05.07 |
[경기둘레길] 안성41코스 마둔호수-서운산. 청룡사와 그리운 바우덕이 (0) | 2024.04.17 |
[경기둘레길] 안성40코스 칠장사-칠현산-덕성산-금광호수-박두진문학길 (2) | 2024.04.05 |
[경기둘레길] 안성39코스 칠장사에서 용설호수를 지나 광천마을까지 (1) | 2023.10.17 |
[군산] 탁류길을 따라 군산시간여행
2024. 10. 2. 18:36
하루에 가는 군산여행 『탁류길을 따라 군산시간여행』 군산역-채만식문학관-진포전적비-금강하구둑-군산3.1운동기념관-경암동철길마을- 째보선창-진포해양테마공원-구조선은행-해빈원-미두장터-구일본18은행-장미공연장- 군산근대역사박물관-구군산세관-해망굴-군산수시탑-히로쓰가옥-초원사진관-구군산시청- 월명동-여미랑-월명동성당-동국사-일제강점기군산역사관-명산시장사거리 ['구글어스'] <군산역>에서 출발하여 <금강하구둑>으로 가 <채만식문학관>과 <진포대첩기념비>를 둘러 보고 <구암산>에 있는 <군산3.1운동100주년기념관>을 거쳐 <경암철길마을>로 향했고 그후 <째보선창>에서 부터 <군산시간여행코스>를 따라 <일제강점기시대>의 <군산유적>을 답사했다. 거리는 약18.5km였으며 5시간반 정도 걸렸다. ['군산역'] 9:03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용산역>에서 5:32에 출발하는 열차를 <수원역>에서 6:04에 타고 <군산역>에 9:01에 도착해서 그 동안 아껴 뒀던 <군산시간여행>을 바로 시작한다. <군산역>을 나가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진행하면... ['군산내흥119안전센타'] 9:05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무지였던 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고 <119안전센타>까지 있다 이 길을 따라 끝까지 나가면... ['강변로'] ['채만식문학관'] 9:17~9:28 4차선 강변로를 만나 10여분 진행하면 <채만식문학관>을 만난다 "채만식문학관" <군산>이 가장 자랑하는 문학인인 <백릉 채만식>을 기념하는 문학관이란다. [문학관 입구] 입장료는 500원이며 경노는 무료이고, 다행이 9시부터 관람이 가능했다. ★군산시간여행을 오늘 함께 하려면 여기서 <통합입장권>을 구매하면 저렴하고 편리하며 모든 박물관과 유적을 관람 할수 있다. ['백룡 채만식'] "백릉 채만식 白菱 蔡萬植"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서 1902년7월에 태어나 <6.25>가 발발하기 2주전인 1950년6월에 폐결핵으로 47세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인물이지만 그의 문학은 아직도 우리들의 심금을 울린다. 사진은 프랑스 문학 작품에 나오는 백작의 모습을 평소 모방해서 입고 다닌 것으로, 돈이 없어도 언제나 감색 외투에 회색 바지, 중절모를 갖추고 다녀서 주위에서 "불란서 백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층 전시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서울중앙고>를 졸업하고, <일본와세다대학>으로 유학까지 다녀와 <동아일보 기자>등 엘리트들이 가는 코스를 밟았지만, 형의 금광에 돈을 투자했다가 쫄딱 망하고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단다. 짧은 기간에 200여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레디메이드인생>과 <탁류>를 꼽는다. ['채만식' 집필모습 재현] <백릉 채만식>은 우리 민족 삶의 바닦에 흐르는 애환을 풍자적으로 표출해 낸 풍자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독서회 사건>으로 잡혀 들어간 이후 변절하여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춘원 이광수><육당 최남선><미당 서정주><김동인>등등등 반민족친일행위자들과는 달리 <백릉 채만식>은 해방후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를 빌은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가 남긴 <민족의 죄인>이라는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 "당신, 죄 지셨잖아요? 그 죄, 지신 채 그대루, 저생 가시구퍼요?" 아내가 나를 죄인이라고 부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울면서 그 말을 하였다. 나를 죄인이 아니라 여기려고 아니하는 이 낡아빠진 아내가, 나는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 채만식, 「민족의 죄인」.- 윗 사진은 <'채만식' 집필모습 재현>이라고 설치해 놨는데, 오디오를 통해 설명도 나오는데 그 내용은... 향년 47세. 그의 48번째 생일을 40일 앞두고 있었고, <6.25 전쟁>을 정확히 2주 앞둔 1950년 6월 11일 오전 11시 반이었다. 사인은 폐결핵이었다. 그는 죽기 두어 달 전에 김제 출신 시인 장영창(1920~1995)에게 "장 군(君), 인편이 허락하는 대로 원고지 20권만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내가 건강이 좋아져서 글이라도 쓰려고 하는 것 같이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네. 나는 일평생을 두고 원고지를 풍부하게 가져본 일이 없네.[14] 이제 임종이 가깝다는 예감을 느끼게 되는 나로서는 죽을 때나마 한 번 머리 옆에다 원고 용지를 수북히 놓아 보고 싶은 걸세." [2층 계단] 건축미까지 곁들인 문학관 2층으로 올라 가면 [2층 전시실] 뭐~그렇게 눈여겨 볼만한 것들은 띄지않는다. 복도에 <채만식>이 묘한 포즈를 취하며 서 있다. '어서 오라고 하는지, 날 용서하라고 하는지...' [문학관 공원] 9:28 문학관을 둘러 보고 나가면 공원이 있는데 한켠에 그의 유서 일부가 눈길을 끈다. <백릉 채만식>은 일제강점기시대 우리 백성들이 격는 식민지배의 아픔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물질만능주의의 폐해를 그려내며 나아갈 길을 제시하다가 <독서회사건>으로 경찰서에 잡혀 간 다음부터 어찌 된 일인지 친일작품을 쓰기 시작했지만 수많은 친일작가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반성과 용서를 구한 인물이란것을 강조하고 싶다. 평가는 애독자 여러분이 하시길.... ['금강하구둑' 조망] 9:32 문학관에서 강변으로 나가면 <금강변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이어지며 <금강하구둑>이 다가 온다. <금강시민공원>으로 가면... ['진포대첩사적비'] 9:35 "진포대첩사적비 鎭浦大捷史積碑"가 있다 고려 말 <우왕6년,1380년>에 왜놈들이 500여척의 선박을 이끌고 이곳 <진포>로 침략해 약탈했다죠 그때 <해도원수 나세>와 <심덕부·최무선> 등이 "진포"에 도착하여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사용하여 왜적의 배를 불사르고, 그곳을 지키던 왜적을 무찔러 크게 승리한 전투가 <진포대첩>이라죠? ['진포대첩 기념비'] "진포대첩 기념비" <진포대첩> 이후를 아시는 분은 별로 없을거라 여겨 제가 짧게 언급하면.... <진포>에서 크게 패한 쪽바리들은 내륙지방으로 숨어 들어 갔는데 그곳이 <남원 운봉>이었다. 그곳에서 약탈과 악행을 저지르는 쪽바리들을 완전 소탕한게 바로 <이성계>의 <황산대첩>인데 <남원>의 <운봉-인월>에 가면 <황산>이라는 조그만 산이 <지리산> 품안에 있는데 그 산에서 쪽바리 대장 <아지발도阿只抜都>를 화살로 쏘아 죽였다고 <이성계의 황산대첩>이라고.... <인월 引月>이라는 지명은 "이성계가 쪽바리들을 토벌하는데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자 지는 달까지 끌어 올려 밝히고 소탕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단다. 멸망해 가는 고려 말에 호시탐탐 새로운 군주를 노리는 <이성계>를 영웅화하려한 것으로 보이며 모두 이곳 <진포대첩>과 <황산대첩>이 연결되는 것이니 참고하면 좋겠다. [조형물] <진포대첩기념비> 옆에 이런 조형물이 하나 더 있는데, 오픈카를 탄 젊은 여성이 있는 조형물이다. 그런데 고려 말 <진포대첩>과 뭔 관련이 있는 조형물인지 궁금하다. ['금강시민공원'] <진포대첩기념비> 뒤로 나가면 <금강시만공원>이 있고 ['생태학습장'] 9:42 <금강하구둑>엔 "생태학습장"이 있는데.... ['어도'] 바다와 강 사이를 막아 놓은 둑 때문에 물고기들이 왕래 할수 없기에 왕래 할수 있도록 "어도 漁道"를 만들어 놨다. 물고기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니 새들이 물고기를 잡아 먹기 위해 도열해 있어 아이로니...ㅎㅎ ['어도 안내'] "어도 漁道"에 대한 안내문도 참고 하고 ['금강하구둑'] 9:45 "금강하구둑" 난간엔 수많은 새들이 앉아 있는데 주로 <가마우찌>같아 보인다. 식사 준비하는거 겠죠? ㅎㅎ ['금강하구'] 이제부터 강변산책로를 따라 멀리 보이는 <월명산>까지 오늘의 여정이 시작된다. <금강하구>는 때마침 밀물 때여서 바다같은 느낌을 주는데 ['금강하구'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과 <전라북도 군산시>의 경계가 되는 <금강하구>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 濁流"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 첫 페이지에는.... 금강..... 이 강은 지도를 펴 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등께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한강이나 영산강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변산책로] <금강하구 강변길>을 45분 정도 진행하면.... ['구암산' 조망] 10:33 해발 34m의 조그마한 "구암산 龜岩山"을 만나는데, 이 산에 <군산3.1운동 100주년기념관>과 <영명학교> 유적이 있다고해서 들려 보련다. 정문은 멀리 있어 후문으로 들어 가는게 단축되는데...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구암역사공원' 입구'] 10:35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후문을 만나 잠깐 올라 가면... ['구암역사공원'] <군산3.1운동100주년기념관> 뒤로 오르는데, 먼저 좌측 계단으로 올라 간다. ['군산3.1운동 발상지'] "군산3.1운동 발상지" <군산>은 독특한 개성있는 도시 임에 틀림없다. <한강> 아랫쪽에선 최초로 <3.1운동>을 거행한 지역이며, 바로 이곳에서 시작했단다. <유관순>의 <아우내 장터:천안 병천> 보다도 먼저라고.... ['기념관'] "군산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은 1903년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선교회 '전킨' 선교사 부부가 설립한 "영명학교"라는 사립학교란다. <영명학교>는 현재 "군산제일고"로 이름이 바뀌고 <조촌동>으로 이전하고 이곳은 기념관으로 쓴다고 [독립운동] <군산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성을 널리 알리고,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선조들의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을 배우는데 목적을 두고 있단다. ['구암교회'] "구암교회" 기념관 앞에는 <영명학교>를 세운 <젠킨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한 교회라고 한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태리 프랑스등 유럽에서 주로 왔는데 미국에서 온 선교사 흔적은 이채롭다. ['구암역사공원' 정문] 10:47 후문으로 들어가 정문으로 나간다. ['연안사거리'] 10:58 <3.1운동기념관>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연안사거리>를 만나는데 대각선 방향에 <경암동철길마을>이 있으니 유의 하고... ['경암동철길마을' 입구] 11:00 "경암동 철길마을"을 철길따라 진행한다. [군산역' 모형] <군산역 모형>이 설치되 있는데 <(구)군산역>은 이 철길의 끝에 있었고 현재는 <역전시장>이다. 이 철길은 <군산선> 본선이 아니고, <옛 군산제지공장>까지 연결하는 공장용 지선이었단다. [추억의 조형물] 옛 철길에서 놀던 분들에겐 추억이 남다를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철길 옛 사진] 실제 기차가 다니던 때의 옛 사진도 쉼터에 걸려 있더군 ['경암동 철길마을'] 주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알사탕 알고나등을 파는 가게들과 옛교복을 대여해 주는 가게가 있는 철길을 10여분 통과하면... ['진포사거리'] 11:11 <진포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이 철길은 <옛 군산역>으로 가지만, 지금부턴 우측 도로를 이용한다. ['군산화력발전소'] 11:16 LNG로 발전을 하는 <군산화력발전소>를 지나고... ['군산경찰서'] 11:18 이어서 "군산경찰서"를 지나면 ['경암사거리'] 11:23 <경암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우측길을 따라 바닷가로 나간다. ['군산시간여행마을'] 11:31 지금부터 "군산시간여행마을"이 이어 진다. <군산여행>의 본거지를 가는 것이다. ['구글어스'] 먼저 다녀온 구글어스 실트랙을 참고하면 현위치는 <째보선창>이며 <동국사>를 거쳐 <명산시장>까지 근현대 群山을 도보여행하는 것이다. ['째보선창 버스정류장'] 11:33 <째보선창 버스정류장>을 만나면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간다. ['군산비어포트'] [안내문] "군산비어포트-군산콘텐츠펙토리"라는 건물을 만나는데 안내문을 참고하고 우측 바닷가로 나가면.... ['옛 째보선창'] <군산비어포트> 앞이 "째보선창"이 있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때에 <군산항>을 본격적으로 개발 하면서 이곳에 <동부어판장>이란 어판장을 만들었는데 그 어판장 건물을 현재 <군산비어포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살표 방향으로 <군산비어포트> 윗층 <전망대>로 올라 가서 조망을 하면... ['금강하구뚝' 조망] 먼저 지나온 <금강하구둑>과 <구암산역사공원>을 뒤돌아 본다. 그 사이 바닷물이 나가 모래톱이 보이기 시작한다. "째보선창"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이 근처엔 대나무숲이 울창해 <죽성포구>라고 불렸단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째보(언챙이)" 객주가 이근처 어판장의 상권을 장악했다고 <째보선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금강하구' 조망] 11:39 서쪽으로는 <서해>와 맞닿는 <금강 하구>가 펼쳐지는데 <전북 군산>과 <충남 장항>을 잇는 "동백대교"가 조망된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출발지점이기도 한데 <정주사>라고 하는 주인공 <초봉>의 아버지가 건너편 <서천 장항>에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풍운의 꿈을 안고 이 <금강하구>를 건너 <째보선창>으로 건너온 곳이며, 요즘으로 하면 <주식 선물시장>쯤 되는 <미두장>에서 재산을 몽땅 탕진하고 자살을 하려한 곳이기도 한 <째보선창>이 발 아래 있는데 현재는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옛 대폿집'] 11:41 번성했던 옛 항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째보선창>을 지나며 스쳐가는 것들.... 이곳의 빈 건물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시절 "쌀창고"였단다. ['옛 일본인 장미동 창고'] 11:45 "장미동 구 일본인 창고" 일제강점기 시대 대표적 쌀창고 중에 하나인 건물이 먼저 나타난다. 쌀창고였던 이 건물은 그후 <호남제분><제일사료><동아제분>등으로 우리나라 밀가루 공장을 선도하며 승승장구하던 <동아원그룹>의 본거지였다니... ['백년광장''] 11:48~12:03 "(구)조선은행 군산지점" <째보선창>의 폐 쌀창고등이 널어서 있는 선창가를 통과하면 "(구)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있는 곳을 만나는데 "백년광장"과 붙어 있으며 <군산시간여행>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먼저 뒷쪽 <진포해양테마공원>부터 둘러 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온다. ['진포해양테마공원'] "진포해양테마공원" <군산>은 옛날에 <진포 鎭浦>였다는거 앞에서도 언급했다. 군사적 요충지여서인지 육해공군 무기들이 전시되 있고.... [옛 '군산항'] ['부잔교'] [안내문]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건설한 "군산항"인데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 3,000톤급 기선이 접안하여 쌀을 선적하기가 어려워 물에 뜨는 부두를 6개 만들어 신속히 선적 하역을 했단다. 현재는 그때의 부두 "부잔교浮棧橋"가 원형 그대로 3개가 남아 있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11:04~12:12 "군산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나와 있다. <탁류>에서 <초봉>과 결혼하는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이다 은행 공금을 횡령해 흥청망청 쓰며 <한참봉>의 와이프와 간통하다 <한참봉>에게 맞아 죽는다. [은행 1층] 은행 내부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고 옆에 '지점장실' '응접실' '금고실'이 있다 ['은행 금고실'] 쪽바리들에겐 싼 이자로 돈을 빌려 주어 우리 농토를 무더기로 사 들이고 우리 백성들에겐 고리대금업을 한 <조선은행>의 금고이다. 씁쓸하다. [은행 2층] 2층에서 내려다 본 은행 내부 ['백년광장 조형물'] 은행을 뒷문으로 나가면 "백년광장"이라는 작은 공원을 만나는데 조형물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미두장 터' 조망] <백년광장> 남쪽 건너편에 빈 공터가 보이는데 저곳이 다음 사진의 "미두장"이 있었던 곳이라 건너가 본다. [옛 '미두장' 사진] "미두장"은 요즘으로 치자면 <선물거래소> 또는 <주식시장>쯤 되는 곳이라는데 '쌀 미米'에 '콩 두豆'자를 쓰는데 우리나라 "쌀,콩"등을 선물로 거래하는 거래소였는데 자본력과 정보에 능한 일본놈들에게 우리나라 기회주의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가산을 탕진했단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 속의 <정주사>도 여기서 재산을 탕진하고 <째보선창>가에서 자살하려했다. ['미두장' 안내문] 함 읽어 보샘 ['빈해원'] "빈해원" <군산>에 처음 가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중국집이 바로 이곳 <빈해원>이라죠? <군산>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식당이자 <국가등록문화재 제723호>인 유서 깊은 곳이다. 나는 얼마전에 유명하다는 이 집 '짬뽕'을 먹어 봤는데, 다른 집과 비교 할때 별다른 특징은 못 느꼈다. 단 실내는 중국무협영화에 나오는 중국집 그대로 특이했다. ['구 일본18은행 군산지점'] 12:22 다시 <백년광장>으로 건너가면 "(구)일본18은행 군산지점"이 있는데 안내문 참고하고... ['미즈카페'] <일본18은행 군산지점> 옆에는 "미즈카페"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시대에 쪽바리들의 무역회사였단다. ['장미갤러리'] 이 주변의 행정지명은 "장미동"인데 꽃'장미'가 아니라 '저장할 장藏'과 '쌀 미米'로 쌀창고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장미공연장'] 12:25 "장미공연장"은 쌀창고를 공연장으로 개보수하여 사용하고 있다는데 <채만식>의 소럴 <탁류>의 주요인물들이 조형물로 설치되 있어 흥미롭다 ['탁류'의 주인공들] 가운데가 아버지 <정주사>와 좌측 큰딸 <초봉>이고, 우측이 둘쨋딸 <계봉>이다. <미두장>에서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를 대신해 <초봉>이가 열심히 생활을 꾸려 나가는데 무척 이쁘고 착해 뭇 남성들의 쟁취 표적이 되고.... ['고태수'] ['장형보'] <조선은행 군산지점> 행원이던 <고태수>는 은행 돈을 횡령해 난잡한 생활을 하는데 그는 <초봉>이를 좋아해 결혼을 원하지만 <초봉>은 거부한다. 하지만 돈이 필요했던 <정주사>는 <고태수>의 돈에 <초봉>을 팔아 넘기다시피해서 결혼시킨다. 그런데 쌀가게 <한참봉>의 여편네와 내연관계를 이어 가다가, <초봉>을 좋아하던 곱추 <장형보>가 간통현장을 <한참봉>에게 밀고하여 <한참봉>이 <고태수>를 때려 죽인다. 과부가 된 <초봉>은 떠돌다 결국 <장형보>와 살게 되지만 악마같은 <장형보>의 행패를 견디다 못해 <장형보>를 죽여 버리지만 죄의식을 갖지 않는데 죽일 놈을 죽였다는 것이다....... 여자는 너무 이쁘면 사내들의 표적이 되어 인생이 고행길이 되니... 너무 이쁜것도 마냥 부러워 할 일은 아닌듯...ㅎ ['군산근대역사관'] 12:30~12:40 "군산근대역사관" 앞에는 "임병찬 의병장 동상"이 서 있다. 선생은 74세의 노구였지만 나라가 망하는 꼴을 지켜보면서 나이 탓이나 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라고 항일운동의 선봉에 선 호남지방 의병장이었답니다. ['근대역사관'] 근대역사관 내부를 횡하니 둘러 보고 나가면 ['구 군산세관'] 12:41 "(구)군산세관 본점"이 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현 군산세관> <국가사적 제545호>로 근대건축물 사료가치가 있다고... ['구 군산세관 창고'] 12:43 <(구)군산세관본관> 뒤로 들어 가면 "(구)군산세관 창고"가 있는데 근대 이후 가장 오래된 트러스 구조의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정담">이라는 카페로 사용되고 있고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12:49 <세관>에서 남쪽으로 길을 건너 들어 가면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국가등록문화유산>이 있는데 쌀 수탈의 본거지였다고 ['수덕산공원 입구'] [첫 선교지] 12:52 <조선식량영단>에서 동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수덕산공원> 입구를 만나는데 조금 올라 가면 <구암산 군산3.1운동100주년기념관>인 <영명학원>을 설립한 <전킨.드루 선교사>가 첫 선교활동을 한 곳이 있고 ['공원 정상'] 12:53 <수덕산공원>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 가면.... ['군산해양경찰서'] 12:56 "군산해양경찰서"가 있으며 ['군산서초등학교'] 12:58 이어서 "군산서초등학교"를 만나는데 <해망굴 입구>이기도 했다. ['월명공원' 입구'] 1:00~1:07 <월명공원>으로 올라 가야 하는데 우측 <해망굴>을 다녀 온다. ['해망굴'] "해망굴 海望屈" <국가등록문화유산> 일본인들의 거주지인 <금동-월명동-신흥동>과 바닷가인 <해망동>을 잇는 터널 ['월명산공원' 오름 계단] 제법 긴 계단을 오르면... ['해병대 전적비'] 1:12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가 있고 ['장항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전적비에서 건너편 "장항 長港"을 조망한다. 옛날엔 "기벌포 伎伐浦"라고 했단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전 중국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쳐부수고 "통일신라"를 세우려 했던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끌어 들여 소위 [나당연합군]을 만들어 [백제 사비성]을 침공 했지요.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상륙한 곳이 저곳 '기벌포 伎伐浦".라고 하죠. 그후 당나라가 약속을 어기고 우리나라를 통째로 먹으려 하자 이번엔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죠? 그때엔 당나라 "설인귀"가 '신라'와 싸우기 위해 또 상륙한 곳이기도 하단다. ['수시탑'] 1:17 "군산 수시탑 群山守市塔" <수시탑>이 뭔가 했더니 <군산시>를 수호하는 탑이군요. ['월명공원'] "월명공원 月明公園" <군산>에선 <서울 남산>같은 <월명산>이었다. ['바다조각공원'] 1:20 "바다조각공원"을 잠시 지나 [삼거리] 1:29 10여분 공원길을 진행하면 첫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 가면... ['군산여고'] 1:35 "군산여고"를 지나고 ['월명터널'] 1:38 <월명터널>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가는데 ['신흥동' 골목] 부유한 쪽바리들이 모여 살았던 <신흥동 新興洞> 골목이 이어지며 ['히로쓰 가옥'] 1:39~1:42 <일제강점기> 시대 미곡상이며 대지주였던 "히로쓰 기치사브로 廣津繼伊三郞"가 1925년에 지어 살았던 집이란다. <국가등록문화유산 제183호> 그후 <장미동>에서 보았던 <호남제분-한국제분>의 설립자 한국인 <이용구>가 살기도 했다고... ['히로쓰 가옥'] "히로쓰 기치사브로 가옥"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등 일본관련 영화를 촬영한 영화촬영지로 유명하다니 상당한 일본가옥 이란걸 실감 할수 있다. [정원수] [가옥 뒷면] 이 일본식 가옥은 일본식-서양식-한국식을 함께 믹쓰한 것이라고한다. ['군산 말랭이마을'] 1:43 "군산 말랭이마을" <히로쓰 가옥> 뒷문으로 나가면 "군산 말랭이마을"이 있는데.... <6.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와 바위 위에 판자집을 '다닥다닥 대어' 집을 지었고 세월이 흘러 이곳은 초가지붕 가득한 동네가 되었는데, 산비탈을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인 '말랭이'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사람들이 말랭이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이곳에 옛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이네>로 나왔던 <김수미씨>의 생가도 있는데 시간상 가 보지는 못했다. ['영화거리'] ['초원사진관' 앞] 1:47 이어서 <영화거리>로 들어 서는데 먼저 <초원사진관>과 <한일옥>을 만난다. ['초원사진관'] <영화거리>에서 제일 유명한 "초원사진관"인데 안내문을 참고하고 ['한일옥'] "한일옥"은 <소고기 무우국>이 유명하죠? <초원사진관> 덕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뭇국집인데 현지인들은 잘 안간다나 뭐래나.... ['근대쉼터'] 1:55 <군산 원도심>인 <월명동> 거리를 진행하면 <근대쉼터>를 만나는데 뒷쪽 건너편엔... ['관광안내소'] 1:57 "군산시간여행 관광안내소"가 있다. 아곳은... ['옛 군산시청 터'] "옛 군산시청"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공원이 되었다 분수대에는 <어청도 등대> 모형이 설치되 있고 건너편엔 ['이성당']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성당 빵집"이 있다 <군산>에 가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꼭 들리지요? ㅎ 현지인들은 잘 안간단다. ['월명동 행정복지센타'] 2:02 다시 남쪽으로 <월명동 거리>를 진행하면 <월명동행정복지센터>를 만나는데... ['지산한의원'] 2:05 <월명동행정복지센타> 뒷쪽에 <지산한의원>이 있어 들려 봐는데 오늘따라 휴진이란다. 여기를 방문한 이유는 필자의 고교 동기동창이 원장이어서 온김에 함 만나보고 가려했는데...아쉽다. 원장은 <안재규>로 <대한한의사현회> 회장을 두번 연임한바 있다. ['관광안내센타'] 2:08 이어서 다시 관광안내센타를 만나는데 <군산>엔 관광안내센타도 많다. ['여미랑'] 2:09~2:11 ['여미랑' 안내문] "여미랑" 일본식 적산가옥의 체험공간인 여미랑은 1930년대 근대 군산 생활모습을 복원한 공간으로 다다미방을 체험 할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군요 ['여미랑'] 일제강점기 시대 부유한 쪽바리들의 생활을 체험 할수 있는 곳인데,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주변 도보여행객들에게 좋은 곳이더군요. 2인실은 45,000원 "잊을 여悆", "못할 미未", "사량채 량廊" 아픈 역사를 잊말고 하룻밤 묵어 가라고....ㅎ ['월명동 성당'] 2:12 <여미량> 옆에는 "월명동성당"이 있고 길을 건너 골목으로 조금 들어 가면... ['동국사' 입구] 2:15~2:18 ['동국사 대웅전'] 일제강점기 시대 1913년 쪽바리 <우치다(內田佛觀)>가 지은 "동국사 東國寺"는 종교적이라기 보다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신도들을 포섭하기 위함이었다고... ['대웅전'] 현재는 <조계종>이 운영하는 일반 법당이란다. ['소녀상'] <소녀상>도 의미있게 설치되 있다.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 2:19 <동국사> 앞에는 "일제강점기 군산 역사관"이 있는데 들어가 보지 안해도 대략 알것 같아 패스 ['명산사거리'] 2:26 <명산사거리>에 있는 <명산시장>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군산역'] 택시를 타고 <군산역>으로 가 오후3시20분 열차를 타고 귀가했다. 걸은 거리는 약18.5km였으며, 구경거리가 많아 5시간30분 정도가 걸렸다. 필자가 갈은 실트랙은 GPX트랙은 <카페 홍어와 무인도>에 첨부되 있으니 아래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홍어와 무인도☆]를 클릭하여 가져 가면 길찾기에 도움이 될것이다."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하루에 가는 밀양 아리랑길 여행
2024. 9. 4. 11:57
하루에 가는 밀양여행 『밀양 아리랑길』스탬프투어 밀양역-용두교-천경사-용두보전망대-용두산-구단방우-금시당-활성교-용평터널- 월연정-성황사-추화산봉수대-밀양아리랑대공원-밀양우주천문대-동문-밀양관아- 박시춘 옛집-영남루-천진궁-아랑각-무봉사-사명대사동상-밀양교-삼문동-용두교 ['밀양 아리랑길 종합안내도'] "밀양 아리랑길"은 <밀양시 공식홈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어 인용하면... 제1코스는 <영남루 수변공원길>로 <밀양관아-영남루-삼문동>을 도는 6.2km 구간이고 제2코스는 <추화산성길>로 <밀양향교-밀양아리랑대공원-추화산-천문대-빅물관>을 도는 4.2km이며 제3코스는 <금시당길>로 <용두산-금시당-월연정-추화산성-밀양강>을 다녀 가는 5.6km 구간으로 총16km 라고 하는데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 가기엔 좀 벅찬 거리라고 생각된다 ['부산일보 안내도'] 그래서인지 <부산일보>가 독자적으로 하루에 다녀 갈수 있는 코스를 안내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타지 답사객들은 이 코스를 이용하는듯 하다. ['밀양 스탬프투어 공식 안내도'] 한편 <밀양시 공식홈페이지>에는 없지만 <밀양관광안내소>가 만든 듯한 "밀양아리랑길 스탬프투어"라는 코스를 만들어 홍보하며 완주자들에겐 완주증과 기념 메달을 수여하고 있는데, <부산일보 안내도>와 거의 같다. 그래서 나는 3개 코스가 합쳐져 거리도 조금 짧고, 핵심 명소들을 한번에 다녀 올수 있는 액기스 코스라 생각되어 이 코스를 따라 걷기로 했다. ['파란'문 실트랙] 필자가 <밀양역>에서 출발하여 걸은 실트랙이니 후답자들은 참고 하면 되겠고... ['밀양역전 로터리'] 11:30~11:35 2024년 8월 31일 일요일 맑음 35도 이상으로 무지 더웠음 <죽전>에서 <서울청마산악회> 버스로 3시간 50분 정도가 걸려 <밀양역전 로터리>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하는데 답사라기 보다는 "밀양여행"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낙동정맥>을 할때 일부 지역을 스쳐 지나 갔던 기억 뿐 "密陽" 여행은 처음이다. ['밀양역'] ['밀양관광안내소'] <밀양역>은 현재 증개축을 하고 있고, 옆에 있는 <밀양관광안내소>에선 "밀양스탬프투어"를 하면 완주증과 기념메달을 증정한다고 한다. 출발 할때 신고 하면 <스탬프북>을 주니 꼭 신고 하고 다녀와야 완주증과 메달을 받을수 있다고 ['가곡동' 통과] <밀양역전>에서 우측, 즉 북쪽으로 난 <밀양중앙로>를 따라 10여분 <가곡동>을 진행한다 ['용두교' 앞] 11:46 그러면 <용두교 龍頭橋> 앞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회전 하면 ['밀양강 제방-가곡제'] 11:47 <밀양강 제방길>이 이어지는데 우측에 보이는 조그만 봉우리가 <용두산龍頭山>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의 끝인 "용두목-용머리봉"이란다. <용두산 산줄기>가 龍이 꿈틀대는 모양이고 그 龍의 머리 부분이 바로 저 봉우리라는 것이다. 저 산봉우리에 잠시 후 만날 <천경사天鏡寺>가 있다. ['징검다리'] 11:50 <밀양>은 <서울>과 비슷한 지형으로 <서울>의 축소판 같은데.... <밀양강>을 <한강>이라고 한다면 사진 가운데 좌측에 보이는 <삼문동三文洞>은 <여의도>와 같은 섬이고 우측 <밀양철교>가 지나는 섬은 <밤섬>과 같아 보이는데 이곳의 지명은 <섬벌>이라고 한다. 앞에 보이는 징검다리가 있는 <밀양강>은 옛날엔 이곳 <가곡동>과 붙어 있어 건너편 <삼문동>은 반도형 육지 였는데 1920년대 대홍수로 <밀양강>이 이곳으로 직진하며 뚫어 버려 <삼문동>이 <여의도>같은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통에 <영남루> 앞으로 흐르던 <밀양강>이 여기로 흐르자 <영남루> 앞 본류엔 강물이 완전 줄어 들어 <밀양 풍경>이 완전히 이상해지고 특히 <영남루>의 풍경이 그 위용을 잃어버리자 인위적으로 이곳에 보를 만들어 물줄기를 <영남루> 앞으로 흐르게 한다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산행대장은 역순으로 가는지 어쩐지 앞서 가지만 나는 순서대로 우측 <천경사>로 진행한다 ['천경사' 입구] 징검다리에서 잠시 수변길을 따라 진행하면 <천경사> 입구를 만나고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천경사'] "천경사 天鏡寺"를 만난다. '하늘 천天'에 '거울 경鏡'을 사용하는 절이어서인지 곳곳에 '거울'이 많이 설치되 있다. 맑은 하늘이 거울처럼 보이는 곳이라고 강조하는건 아닐까 이 절은 베트남과 교류를 하는 절이라고 ...그래서인지 '동남아 불교' 느낌이 많이 든다. [갈림길] <천경사> 부터 <금시당 갈림길> 까지는 "龍등"을 타고 걷는 듯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중간에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성 좌측으로 잠시 진행하면... ['용두보' 전망대] "용두보 전망대" 를 만나는데 두번째 <스탬프함>이 있는 곳이다. <용두보>는 <밀양강>의 수위를 높여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일제시대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근대식 수리시설의 효시라고 한단다. <밀양>에는 우리가 잊고 사는 특별한 것이 많은 곳이라는데~ 우리나라 고대 삼한시대부터 만들어진 수리시설 중에 유명한 3대 수리시설은 <김제 벽골제>와 <제천 의림지>, 그리고 <밀양 수산제>가 있다고 학창시절 외웠던 기억이 난다. <밀양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삼량진> 부근에 있었던 <수산제>는 현재는 완전 파기되어 농지화 되었단다. ['용두산' 정상] 이어서 "용두산 龍頭山 116m" 정상을 만나는데 선답자들의 표지기만 반길뿐 산 정상같지 않은 정상이었다. ['구단방우'] "구단방우 巫岩" 무당들이 굿을 하며 치성을 드리던 곳이라고.... [내림길] <용두산 능선>에서 하산하면.... ['금시당-백곡재' 입구] 세번째 <스탬프함>이 있는 "금시당.백곡재 今是堂 栢谷齋"에 도착한다 ['금시당'과 '백곡재'] "금시당.백곡재 今是堂 栢谷齋"는 밀양 지역 "여주이씨(驪州李氏)" 가문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실용성을 강조한 영남 지방의 별서(別墅) 건물의 특징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금시당'] "금시당 今是堂" 조선 명종 때 학자로서 좌승지를 지냈던 금시당(今是堂) 이광진(李光軫)[1513~1566]이 1565년(명종 20)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휴양하면서 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1566년에 지은 건물이다. "금시당"이라는 명칭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중 "지금은 옳고 지난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는 <覺今是而昨非>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곧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지금이 옳은 선택이고, 이전의 벼슬 생활은 잘못이었다는 깨달음을 빗댄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백곡재'] <금시당 이광진선생>은 조선 최초의 급진진보개혁파였던 <조광조선생>과 뜻을 함께했던 분이죠. 봉건왕조국가에서 개혁 추진은 자살행위 였지만 실천에 옮기다가 <조광조선생>은 사약을 받고 나머지들은 이렇게 낙향하여 후진이나 양성하며 조용히 살았으니...개혁은 어려워~ ['활성교'와 유원지] <밀양강>을 건너는 <활성교 活成橋>를 건너는데 이곳 사람들은 "살내다리"라고 부른다고 ['활성교' 앞 안내판] 12:27 <활성교> 서편 도로로 나가서 ['장선나루'에서 조망] <월연정>으로 향하면 우측에 누가 알려 주지 않으면 알수 없는 경치가 펼쳐진다. 유명한 <밀양 얼음골>이 있는 <가지산><천황산> 계곡에서 흘러 오는 "단장천"이 <밀양강>에 합수하는 곳을 만나는데 이곳이 "월연 月淵"이라 지칭되는 곳이며, 잠시후 만날 "월연정"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한 곳이라니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낙동정맥>을 종주하며 <가지산 정상>에서 바라보던 <밀양>을 <밀양>에서 <가지산>을 바라보니 감회가 또 남다르구나~ ['최초 경부선 흔적'] 1905년 최초로 건설된 <경부선>이 지나던 철길이 이젠 도로가 되어 칙칙폭폭 소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나 같은 여행객들이나 그 시대를 연상하며 다니는 길이 되었다. 옛 <경부선> 철길 옆으로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용평터널'과 '월연정' 입구] 12:34~12:36 옛 <경부선> 기차가 통과하던 "용평터널"과 <월연정 입구>를 만난다. 이곳에 네번째 <스탬프함>이 있다. ['용평터널'] "용평터널" 1905년 최초의 <경부선> 기차가 다니던 터널이란다. <부산>에서 출발한 <경부선>은 <삼량진>을 지나 <밀양><청도><대구><김천>을 지나 구름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을 넘어 <경성>으로 그 <영남대로>를 따라 <임진왜란> 때엔 <고니치 유끼나가 小西行長>이 이끄는 쪽바리 제1진은 <밀양>을 초토화 시키고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진격했다지. 왕은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경복궁>을 불태운건 쪽바리가 아니라 도망친 왕에 대해 열 받은 백성들이 <경복궁>을 불살랐고. ['월연터널'] "용평터널"은 <월연터널><백송터널>이라고도 한단다. 120여년 전 증기기관차가 내뿜는 석탄연기와 수증기가 터널 안을 새까맣게 굴뚝화 했을텐데 지금은 맑끔하게 단장되 있구나 ['월연정' 가는 길] 터널을 구경하고 우측으로 난 강변길을 아주 잠시 걸어 가면... ['월연정' 입구] 12:37~12:54 "월연정 月淵亭"이 배롱나무꽃(백일홍)과 함께 반겨 준다. [안내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월연정' 정문] 정문으로 들어 가면... [안채] 가운데에 안채가 보이는데 최근에 개보수 한듯하고 좌측으로 들어 가면 ['쌍경당'] "쌍경당 雙鏡堂" "월연(月淵) 이태(李迨)[1483~1536]가 세운 밀양 월연정(月淵亭)의 건물 중 하나이다 '이태'가 함경도 도사 재직 중 기묘사화를 예견하여 사직하고 귀향한 이듬해인 1520년 용평의 월영사(月影寺) 옛터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기초를 닦아 창건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쌍경당'에서 조망] <쌍경당>에서 조망을 한다. "雙鏡堂"은 '거울 경鏡'을 사용하는데..... 앞에 흐르는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수하는 호수같은 "월연月淵"의 물결이 거울 표면처럼 맑고, 달이 중심을 비추면 "물"과 "달"이 '쌍'으로 맑게 보이는 절경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백일홍(배롱나무꽃)과 월연.....쌍으로 어우러지는 경치를 감상하며 좀 쉬었다 간다. [샛문] 정문 우측으로 샛문이 보이는데 샛문으로 나가면.... ['제헌'] "제헌 齊軒" <월연정>을 지은 <이태>의 맏아들인 <이원량>을 추모하는 곳이라고... 다시 앞에 보이는 샛문으로 나가면.... [돌다리] <쌍경당>과 <월연대>을 이어주는 앙증맞은 "돌다리"가 오작교 마냥 걸려 있는데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월연대' 조망] <월연대>는 조금 높은 곳에 있는데, 여기서 <백송>을 보고 가려면 우측으로 갔다 와야하는데 볼품없는 백송이라 생략하고 <월연대>로 바로 올라 가면... ['월연대'] "월연대 月淵臺" 깊어 가는 가을에 이곳에 홀로 앉아 "달과 강"을 쌍으로 바라보며 시를 읊으면 어떨까.... 난 어여쁜 마나님과 술을 마시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ㅎ ['월연대'에서 조망] <쌍경당>에서 바라보는 경치보다 이곳 <월연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더욱 아름답구나 백일홍은 백일간이나 꽃을 오래 피운다는데 벌써 그 백일홍도 서서히 지고 있고... ['추화산' 등산로 입구] 12:47 <월연대> 정문을 나와 우측으로 <추화산 등산로>가 열린디. [오름길] 비교적 완만한 등로를 30여분 오르면... ['밀양아리랑길2코스'] 1:17 <밀양아리랑길2코스>가 <추화산성> 밑을 빙 돌아 나가는 길을 만난다. 좌측으로 5분여 진행하면... [갈림길] 1:22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알바를 많이 하는 곳이라고 선답자들이 표지기를 여럿 부착하여 우측으로 길안내를 한다. 다시 5분여 오름짓을 하면... [사거리] 1:23~1:27 이정표가 설치된 사거리를 만나는데 <밀양아리랑길2코스>가 좌측 <섬벌마을>로 이어지는 곳이란걸 알수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름길] 이정표에서 추화산까지는 500m라고 알리고 있는데, 8분 정도 올라 가면... ['추화산성 남문지'] 1:35 "추화산성 남문터"를 만난다. 여기서 <성황사>와 <추화산 정상>을 들리려면 우측으로 올라 가야하는데 <성황사>만 다녀와 편한 길로 진행한다. ['성황사'] "성황사 유지" 산꼭대기에 독특한 건물이 있어 흥미로운데 <밀양손씨 密陽孫氏>들의 집성촌이 이 산 아래 <교동>에 있어 그들의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을 매우 튼튼하게 건립했는데 처음엔 <현충사>라고 했단다. 이 사당을 지을 때 중국 벽돌을 수입하여 몽골 건설기술자가 지었다고 하는군. <밀양손씨> 가문이 옛날엔 무척 부유해서 이런 사당도 지었지만 지금 폐건물로 남아 있는걸로 보아 요즘은 가문이 별루인듯...ㅎ ['추화산성'] 1:39~1:45 "추화산성 推火山서城" 다섯번째 <스탬프함>이 있는 곳이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이곳이 옛날엔 <밀양읍성>으로 사용되었다는게 특이 하다. 邑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심에 있어야 각종 행정업무를 신속히 처리 할수있어 도심에 있어야 하는데 ['추화산 봉수대'] "추화산 봉수대" "추화推火"라는 말은 "봉화熢火"와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봉화산烽火山"이라고도 한단다. <밀양密陽>이라는 이름도 <추화推火>, 즉 "밀불"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추화산 봉수대'에서 조망] <가지산><천황산><재약산> 방향을 조망하고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5분여 내려 가면 [사거리] 1:51 장의자 두개가 있는 고개에 도착하는데 부채를 준비해 뒀더군요.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림길] 10여분 더 내려 가면... ['아리랑고개'] 2:01 실제 아리랑고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정표에 <아리랑고개길>이라는 안내가 있다 <천문대>는 직진하면 지름길인데, 우측 <밀양아리랑대공원>을 잠시 들렸다 간다. 산악회 횐님들 중 후미가 이제서야 역방향으로 올라 오고 있다. 에휴 언제 가려고~~ 정방향으로 진행했어야지~ ['밀양아리랑데공원'] "밀양아리랑대공원" 이 펼쳐 집니다. <현충탑>과 미사일 등 무기들도 보이고.... ['밀양아리랑 노래비'] 2:04 우리나라 토리, 즉 "토종소리" 중에는 "아리랑"이 대표적 이라 할수 있죠. 수없이 많은 <아리랑> 중에 대표 아리랑 3개를 꼽는다면 잘 아다시피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을 꼽는다. 제 나름대로 느끼는 <아리랑>을 언급 하면 <정선아리랑>은 이별의 슬픔을 노래 하는 듯 하고 <진도아리랑>은 삶의 애환을 토해 내는 듯하고 <밀양아리랑>은 애틋한 연정을 노래 한다고 생각한다 <아리랑>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아리랑>을 끝까지 부를수 있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그저 후렴부나 따라 부르지 핵심 노랫말까지 끝까지 부를수 있나여? 애국가도 끝까지 부르는 분 많지 않지요? ㅎㅎ ['천문대 후문'] 2:10~2:18 <밀양아리랑 노래비>에서 다시 올라가 <천문대>로 가면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 에 도착합니다. <누리호>와 <밀양>은 관계가 없는데도 <누리호> 모형을 볼거리로 전시해 놨다. ['추화산' 조망] 여섯번째 <스탬프함>은 <천문대 정문> 앞에 있다. 지나온 <추화산>을 뒤돌아 보는데 낮은 산이지만 더운 날씨에 제법 힘들었다. ['국립밀양기상과학관'] "국립밀양기상과학관" 너무 더워 목도 마르고해서 과학관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밑에서 좀 쉬며 냉수도 벌컥벌컥 마시고 수통에 냉수도 좀 담아 나와.... ['교동' 조망] 2:19 천문대 진출입로로 내려 가면 건너편에 <밀양향교>가 있어 <교동校洞>으로 불리는 동네가 조망된다. 조금전 <추화산 성황사>에서 보았던 <밀양손씨>등 <밀양>에서 방귀 깨나 뀌던 부잣집 가문들이 모여 살던 동네가 <교동校洞>이어서 현재도 유명한 <손씨古家>등 여러 古家들이 보인다. 시간이 넉넉하면 <향교><古家>등을 둘러 보고 가겠는데 아쉽다. ['밀양성당] 과학관 입구엔 <밀양성당>이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로마 콜로세움경기장 모형? ㅎ ['밀양대공원로'] <천문대>를 나와 이제 <밀양대공원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아스팔트의 열기가 빤스까지 올라 오는듯 덥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동문' 입구 로터리] 2:33~2:46 <동문입구삼거리>에 도착하는데 다시 이곳 우측 그늘에서 좀 쉬고... ['동문 고갯길'] <밀양읍성 동문>으로 가는 고갯길을 잠시 오르면... ['밀양읍성 동문'] 2:50~2:54 "밀양읍성 동문 密陽邑城東門" 에 도착하여 門樓로 올라 가면... ['동문루'] <부산일보 안내도>에는 이 성곽을 따라 올라 가 <영남루>로 가게 되 있지만 나는 시내로 들어 가 <밀양관아>를 답사하고 <영남루>로 가기로 한다. ['동문루'에서 조망] <동문>에서 뒤돌아 본 <추화산>이고 ['밀양읍성 내동' 조망] <밀양시>의 중심지인 <내동內洞>을 조망하고 직진하여 <밀양관아>로 간다. <내동內洞>은 <읍성 안 마을>이라는 한자 표기란다. [담장] 관아로 가는 도로변 담장을 물고기로 치장해 놔서 인상 깊었고... [''밀양관아'] 2:58~3:10 "밀양관아 密陽官衙" <밀양 3.13 만세운동지>이기도한 <밀양관아>에 도착했습니다. ['공덕비'] [안내문]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다 나와 있고... ['응향문'] 한자도 어려운 '향기가 물씬물씬 풍긴다'는 "응향문凝香門"을 통과해 들어 가면 ['근민헌'] 사또가 업무를 집행하는 <동헌>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 <동헌>의 이름은 '백성들과 더 가까이 있다'라는 의미의 "근민헌近民軒"이다. ['매죽당'] 우측에는 사또 부부가 거처하던 관저가 있는데 관람객들을 위해 포토존이 설치되 있고 우측엔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곤장을 치는 형틀과 노거수도 있었다. [관아 정문에서 조망] 3:10 관아 정문인 <응향문>에서 바라보는 <밀양중앙로>이다 ['밀양아리랑시장'] 3:11 전통시장인 <밀양아리랑시장>이 눈길을 끌고 ['영월남루' 주차장] 3:13 <밀양아리랑시장> 건너편에 <영남루 주차장>이 있는데 좌측 후문으로 올라 가면... ['영남루 후문 입구'] 3:16 후문 입구 위에 "작곡가 박시춘선생 동상"이 보인다. ['박시춘선생 옛집'] 1931년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을 작곡하면서 우리 가요의 핵심 작곡가로 등극했단다. 이후 <송민도의 고향초>,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 <현인의 신라의 달밤>,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 <백난아의 낭랑 십팔세>, <신세영의 전선야곡>, <군가 전우야 잘자라>,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현인의 럭키서울> 등 무려 3천여곡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이 때문에 <박시춘선생>을 "한국 가요의 뿌리이자 기둥"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연예협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으며, 198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서훈받으며, 대중가요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서훈을 받게 되었다. 한편으론 친일행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어 아쉬움도 있다 나는 선생의 많은 노래 중에 <백설희>가 불러 공전의 힛트를 친 <봄날은 간다>를 잊을수 없다. 특히 황혼길로 접어드는 요즘은 더욱 그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영남루 후문'] 3:17~3:34 <영남루 후문> 앞에선 길을 잘 알고 이동해야 하더군요. 순서는 각자 알아서 정하면 되는데 <사명대사 동상><무봉사><아랑각>은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한다. ['영남루'] "영남루 嶺南樓" <밀양>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영남루>이다 현재 <밀양향토예술단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안내문] <영남루>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고 ['밀양민속놀이 공연'] <밀양 모심기> 전통놀이 공연이 진행되고 있고 ['영남제일루'] <영남제일루>라는 현판이 중앙에 있고 그 외에 많은 편액들이 걸려 있더라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몇달전 지난 2023년 12월 28일에 <국보>로 재 승격되었단다. [조망1] 답사를 시작하며 <징검다리>에서 언급한바 있는데 한번 더 언급하면... <밀양강>은 본래 이 앞으로 지금처럼 흘렀는데, 1920년대 대홍수로 <삼문동>과 <가곡동> 사이로 본류가 바뀌며 이곳 <밀양강>으론 물이 흐르지 않아 <징검다리> 있는 곳에 보를 만들어 이곳으로 물이 흐르게 인위적으로 만들었단다. <서울 한강>의 <수중보>와 같은 역활을 하게 한 것이란다. 그래서 이곳엔 항상 <한강> 같이 물이 일시 고여 있어 <영남루>의 풍광을 더욱 빛나게 한다. [조망2] 잠시후 건너 갈 <밀양교>도 보이는데, <밀양교> 우측엔 <유람오리배>를 타는 곳도 보인다. ['천진궁' 조망] <영남루>에 걸터 앉아 오리지날 <밀양아리랑> 노래 소리도 감상하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본드시 날 좀 보소~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 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긋~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 건너편 <만덕문>이라고 표기되 있는 <천진궁>으로 향한다. ['천진궁'] "천진궁 天眞宮" <단군> 할아버기를 비롯해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시조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란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안내문을 참고 하시라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엔 우리나라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위패를 땅에 뭍고 일본헌병대가 감옥으로 사용 했다고 하니 어찌 우리 잊으랴 쪽바리들의 만행을..... [안내문] ['사명대사 동상] "사명대사 四溟大師" <밀양>이 자랑하는 역사적 인물, <밀양>이 고향인 <사명대사> <사명대사>는 출가하여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성 건봉사>로 내려가 승병을 규합하여 훈련시키고, <평양>으로 진군하여 쪽바리들을 쳐부수는데 일조 하고 서울로 내려와 현재의 <노원구 수락산> 전투에서 큰 승리를 안겨 주었죠. 승려이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된 군인이며, 왜란 이후 외교관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정부와 담판을 해 포로 3,500명을 송환 한것으로도 유명하다. 요즘 말 많은 <뉴라이트>의 주장대로라면 <사명대사><이순신><안중근>도 일본놈들을 죽였으니 애국열사가 아니라 테러리스트다. 어찌 그런 발상을 하는지..... ['아랑각' 내림계단] 다시 <영남루 후문>으로 돌아 와 <아랑각>으로 내려 가서... [외삼문] [안내문] <정순문>이라는 외삼문을 통과해 올라 가면 ("아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세요) ['아랑사'] "아랑사 阿娘祠" <아랑>에 대해선 위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밀양 여인>을 대표하는 "정절의 표상"으로 추앙 받고 있는 전설적 여인이란다. 내가 덧부치고 샆은 말은 "천재와 미인은 박명薄命"하다는 속설이다. <아랑>은 너무 예쁜게 크나큰 흠이라고 생각된다. 적당히 예뻣으면 오래 살았을 텐데..... 여러분 ~ 오래 사시는 여러분~ 천재가 아니어서 다행이죠? ~~ ^*^ 여성분들~~ "아랑"처럼 미인이 부럽나요? ㅎㅎ 미인보단 오래 살아야죠? ㅎㅎ 美人이면서 오래 살고 싶다구요? 에라이 욕심도 많으셔~ 더 일찍 가는 수가 있어요~~ㅋㅋ ['아랑사'에서 조망] <아랑사>에서 <밀양강>을 바라보며 <아랑>을 생각한다 모든 남자는 <아랑>같은 여인을 좋아 하고, 모든 여인들은 <아랑>을 좋아하는 남자를 싫어 한다 ㅎ ['아랑 순절지'] <아랑사> 옆에는 <아랑>이 투신자살한 순절지를 별도로 보존하고 있는데.... 여성들에게 <아랑>처럼 살라는 의미여? 뭐여? 요즘 정절을 지키기 위해 투신자살하는 여자 있나요? 투신 자살터를 왜 성역화 하는거여? ['무봉사 석조여래상'] "밀양 무봉사 석조 여래 좌상 [密陽舞鳳寺石造如來坐像] 보물 제493호". 신라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석조여래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무봉사>를 빛내고 있다. ['무봉사 태극나비' 전설] <밀양강> 강변 가로등엔 <태극나비>가 있는데 그 전설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밀양교 앞'] 3:38 <영남루> 정문을 통해 내려가면 <밀양교>를 만나고 ['밀양교'] <밀양교>를 건너 <삼문동> 섬으로 들어 가면서 ['영남루' 조망] 지나온 <영남루>를 뒤돌아 보고 [서쪽 조망] <밀양교> 서쪽 <오리배> 타는 곳도 조망하며 다리를 건너면... ['삼문동' 통과] 3:40~3:54 ['밀양시립도서관'] <밀양시>의 신흥 중심지인 <삼문동三文洞>의 <밀양중앙로>를 15분 정도 통과한다. ['용두교'] 3:55 <삼문동>에서 <가곡동>으로 <용두교>를 건너 가면서 좌측을 보면... ['밀양철교' 조망] 대홍수로 밀양강 본류가 바뀌고 보를 만들어 <영남루> 앞으로 물길을 돌린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용두목-용머리봉>이 이젠 추억 속으로 가며 언제 다시 찾을지 기약없는 이별을 한다. 우측 둔치에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가곡동 용두교 앞'] 4:00 <가곡동 용두교> 앞에서 좌측 둔치로 내려가 식사 후 버스를 타고 ['밀양관광안내소'] 5:30 <밀양역> 앞에 있는 <밀양관광안내소>에서 완주증과 메달을 받고 귀가"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올림픽아리바우길 제7코스』 어명을 받든 소나무길에서 만난 명주군왕릉
2024. 7. 27. 12:55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7코스 어명을 받든 소나무길에서 만난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산불감시초소-술잔바위-어명정-보현사입구 ['7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창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보현사 입구"에서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명주군왕릉"까지 가는 약"12km" 거리라고 합니다.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오늘 직접 걸은 실트랙입니다. 일반적으로 <보광사 입구>에서 <어명정><술잔바위>로 올라 <명주군왕릉>으로 진행 합니다만 오늘은 몇몇 이유로 <명주군왕릉>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주군왕릉 입구'] 10:12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흐린 후 맑음 <복정역>에서 7시 20분에 출발하여 약2시긴 50분이 걸려 "명주군왕릉"에 도착했습니다. "명주군왕릉 暝州郡王陵"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왕릉마을' <신라 제37대 왕 "선덕왕 宣德王">에 이어 제38대 왕위에 등극 할뻔 했던 인물 "김주원의 묘역"입니다. 입구에서는 "김주원의 神道碑"가 봉안 된 "명왕비각 暝王碑閣"이 답사자를 맞이합니다. 신도비에는 "신라 명주군왕 신도비 新羅溟州郡王神道碑"라고 쓰여 있는데 이 신도비의 비문은 1960년 <이승만대통령>이 짓고, 비각은 당시 국회의원 <김진만씨>가 세웠답니다. 묘역으로 들어 가는 입구 정문은 홍살문으로 단장되 있군요. [사당] 묘역으로 들어 가면 먼저 세개의 사당이 연이어 서 있는데 <청간사> <숭열전> <숭의재>가 연이어 서 있습니다. ['청간사'] 먼저 "청간사 淸簡祠"라는 사당을 만나는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 이 묘역의 주인인 신라시대 <명주군왕 김주원>의 23세손인 "매월당 김시습"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합니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으로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자 그 불의를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고 항거하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며 지금의 <경주 금오산(남산)>에 들어가 <금오신화>등 집필활동을 하기도 한 유명한 <생육신> 중에 한분이죠. ['숭렬전'] "숭열전 崇烈殿" <신라>는 크게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중대-통일신라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죠. <성골>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선덕여왕-진덕여왕>이 처녀들이었으니 아들을 못 낳아 대를 잇지 못하쟈 <진골>이 지배하는 나라로 바꾼 이가 바로 <김춘추>로 <통일신라시대>를 활짝 연 인물이기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은 신라지역 가는 곳마다 종종 있습니다. 이 묘역의 주인인 <명주군왕 김주원>이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직계로 6세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명주군왕 김주원>은 <강릉김씨 시조>이기 전에 <경주김씨 진골집안>이었던거죠. ['숭의재'] "숭의재 崇義齎" 이곳이 바로 "강릉김씨 시조-명주군왕 김주원 暝州郡王金周元"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신라화백회의>에서 <제38대 신라왕>으로 만장일치 추대된 인물인 현재의 국무총리급인 <김주원>인데 왕위대관식 날에 비가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기괴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알아 보기로 하고 ['명주군왕비'] "명주군왕비" <강릉김씨> 중에 <강릉>을 연고로 출세한 인물들이 자신의 뿌리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더군요. 국회의원을 다섯명 배출했는데 잘 아시는 <김진구><김진만><김인기><김택기><김흥기>... 장관급 이상의 정치인은 <김진선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다수가 있더군요. 그밖에 코미디언 <김학래>씨와 축구선수 <김남일>씨도 <강릉김씨>더군요.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날개>를 쓴 <이상>이 있는데 그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강릉김씨> ['홍살문'] 10:16 <명주군왕릉>으로 들어 가는 입구엔 다시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데 100m쯤 올라 가면 ['명주군왕릉 주차장'] 10:18 주차장을 만나며 제사를 올리는 <능향전>과 무덤이 보입니다. 여기서 꼭 알고 올라 가야 하는 것은 "명주군왕"의 의미입니다. 먼저 띄워쓰기는 "명주군 왕"일까요? 아니면 "명주 군왕"일까요? "명주溟州"는 현재의 <강릉 지역>을 의미하는 지명이고, "군왕郡王"은 '고을郡'에 "왕王"입니다. 그러니까 "명주지역 제후"를 의미하기에 띄워쓰기는 "명주 군왕"이라 해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군유사>에선 <군왕>이라는 직위는 단 한줄도 없고, 그런 직위를 내렸다는 기록도 전혀 없는데, 조선시대에 쓰여진 <동국여지승람>에서나 등장한답니다. <동국여지승람>은 각 자역의 지형, 관습, 전설등을 엮은 인문지리서여서 역사책으로 보진 않으니 <명주군왕>이라는 직위가 실제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없고, <강릉김씨 족보>에나 나온답니다. 잠시후 관련 <삼국사기><삼국유사> 원문을 보여드림니다. 당시 <신라>는 <9개의 州>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명주溟州>이며, 그곳의 댓빵으로 <김주원>이 간것이기에 우리가 아는 "王"하곤 거리가 있습니다. ['능향전'] 어려운 한자 "제사 지낼 향享"을 사용하는 "능향전 陵享殿"과 그 뒤로 묘가 보입니다.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태종무열왕-김춘추>의 6세손 "김주원 金周元의 묘"입니다. 陵은 왕과 왕비묘에만 씁니다. 필자인 <파란문>의 아버님 존함과 한자까지 같아 언젠가 한번은 오고 싶었던 곳입니다. 당시 <신라>의 정치 상황을 쬐끔 알아 보겠습니다. <성골>들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는 <선덕여왕-진덕여왕>시대를 마지막으로 끊기고 <진골세력>들에 의해 정권이 바뀌는데 <29대 태종무열왕-김춘추>시대가 열리며 <김유신>등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로 접어 들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죠. 잘먹고 잘살며 평화로워지면 부정부패와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은 세계 다른 역사와도 같습니다. 혼돈 속의 신라 왕위 쟁탈전 <36대 혜공왕> 때에 <김지정의 난>이 일어 나 <혜공왕>이 죽임을 당하고, 그 난을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그의 동생 <이찬 김경신(金敬信)>등이 힘을 합쳐 난을 진압합니다. 그리고 <상대등 김양상>이 <37대 선덕왕>으로 즉위합니다. <상대등>은 요즘의 국무총리격이라고... 그런데 <37대 선덕왕>은 오래 살지 못하고 왕위에 오른지 5년여만에 후사도 없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선덕왕>은 <삼국사기>에 두명이 나오는데 편이상 <27대 선덕왕 善德王>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덕여왕>으로 표기하고, <37대 선덕왕 宣德王>은 남자이니 그냥 <선덕왕>으로 호칭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국회와 비슷한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상대등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왕위대관식하는 날에 비가 넘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대관식에 참석을 못하고 있을 때, <선덕왕>의 동생인 <김경신>이 무력으로 궁궐을 장악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38대 원성왕 元聖王"입니다 이렇게 오른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무척 미안했겠죠? 그래서 <명주溟州 (강릉지역)>를 식읍으로 주어 그 지역을 통치하라고 한것입니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卷第二 紀異 第二>의 원문을 보면 "未幾 宣德王崩 國人欲奉周元爲王 將迎入宮 家在川北 忽川漲不得渡 王先入宮卽位 上宰之徒衆 皆來附之 拜賀新登之主 是爲元聖大王 諱敬信 金氏 蓋厚夢之應也 周元退居溟州" "선덕왕(宣德王)이 돌아가시자, 나라 사람들은 주원을 왕으로 삼으려고 그를 궁궐로 맞이하려고 하였다. 집이 개천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이 먼저 궁으로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주원을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와서 따르며 새 왕에게 절을 하고 축하하였다. 이가 원성대왕으로 이름이 경신(敬信)이고 성은 김씨이다. 좋은 꿈이 들어맞은 것이다. 주원은 명주(溟州)로 물러나 살았다." "왕위 대관식"에 지각해서 왕이 못되고 지방 토후가 된 불우한 사람이 <명주군왕-김주원>인 것이죠. [조망] <김주원의 묘>는 부부묘로서 두개의 봉분으로 되 있는데 어느쪽이 <김주원 묘>인지는 모른다고... "김헌창의 난"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4년 3월의 원문을 보면... "三月 熊川州都督憲昌 以父周元不得爲王 反叛 國號長安 建元慶雲元年" "3월, 웅천주(熊川州) 도독 헌창(憲昌)이 그의 아버지 주원(周元)이 임금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역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이라하고 연호를 경운 원년이라 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둘째 아들이 <김헌창>입니다. 신라 역사에서 <김헌창의 난>은 신라의 존망을 뒤흔든 어마무시한 반란이었습니다. <김헌창>이 도독으로 있던 지역은 <명주(강릉)> 지역이 아니라 <옛 백제지역>인 <웅천주(현재의 공주)> 지역이었으며 그가 점령한 지역이 전라도 충청도 였으니....바로 <옛 백제 지역>이죠? 태평성대를 이루던 통일신라시대는 저물고 <후삼국시대>로 분열되는 효시였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니 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바로 <명주군왕>의 아들 <김헌창의 난>이었으니 지금 여기서 바라보는 <명주군왕-김주원묘>는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 것이리라~ [둘레길 들날머리] 10:24 <명주군왕릉>을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아리바우길7코스> 트랙킹을 역방향으로 시작합니다. 이 임도길은 <강릉바우길3.4.10구간>과 <아리바우길7코스>가 함께 하는 출입구군요. 5분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10:29 <강릉바우길10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강릉바우길10코스>는 다음에 진행 할 <아리바우길8코스>와 함께 하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는 <강릉바우길4구간> 방향인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4분 정도 올라 가면... [삼거리] 10:33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은 <강릉바우길4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곳이고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으로 연결 됩니다. [삼거리] 10:41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며 곳곳에 임도가 분기하는 삼거리가 있으나 앞으로는 <술잔바위><어명정>방향으로만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임도] 26분정도 완만한 임도 오름길을 진행하면... ['송병골'] 11:07 "송병골 삼거리"를 만나는데 <명주군왕 주차장>이 있는 마을 이름이 <왕릉마을>이던데 그곳과 바로 연결되는 길이 있는 삼거리였습니다. 우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오름길] 조금씩 경사도가 있어지는 임도를 10여분 진행하면.... ['산불감시초소'] 11:18 "산불감시초소"와 "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산림청>이 수목관리를 하는 지역이라고 차량통행을 제한하고 있고 ['등산로 입구'] 11:20 <기상관측소> 옆으로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술잔바위>가 있는 산봉우리를 오르고 "어명정"으로 가는 산길인데, 지도를 보니 여기서 좌측 임도를 따라 가면 바로 "어명정"으로 쉽게 갈수 있더군요. 등산이 힘드신 후답자들은 여기서 좌측 임도를 이용해도 무방하겠으니 참고하시고... [산길] 40여분 등산코스를 진행하면.... [바위] 11:57 구경거리 없는 산길에서 처음으로 볼거리(?)라고 할수 있는 구멍 뚫린 바위를 만나는데, 이 바위가 <술잔바위>는 아니고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술잔바위'] 12:04~12:12 억지 춘향이처럼 이름을 붙인 "술잔바위"라고 표기한 바위를 만나는데 바위 위로 올라 가면.... ['술잔'] 바위에 구멍이 난 곳이 있는데 이걸 <술잔바위>라고 하는듯 합니다. ㅎㅎ 바위에 패인 구멍에 물이 고이면 바위 온도 때문에 증발을 하지 않으니 항상 물이 고여 있죠 ['술잔바위'] 볼거리 없는 이 코스에선 그나마 유일한 자연 조각품이라고 기념 사진도 찍고 ['적송'] 능선길을 잠시 160m 정도 진행하는데 "적송赤松" 군락지가 이어집니다. 산림청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라고 ['송이거리'] 12:15 <술잔바위>에서 160m 정도 진행하면 "송이거리"라고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소나무가 많은 곳이니 송이버섯도 많이 자생하는가 봅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직진하면 <백두대간 곤신봉>으로 올라 가는 코스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내림길] 내림길을 17분정도 내려 가면.... ['어명정'] 12:32~12:37 "어명정 御命亭"을 만납니다. <올림픽아리바우길7코스>의 이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을 만들어준 정자입니다. ['그루터기'] 지난 2007년에 <광화문> 복원에 사용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어명이요~!"를 세번 외치고 베어낸 금강소나무의 그루터기랍니다. ['위령제' 사진] 2007년 11월 29일 당시 금강소나무를 베어내기 위한 위령제를 지내는 사진이 정자에 걸려 있더군요. 이 소나무는 현재 <광화문>의 한 기둥으로 서 있을겁니다. ['어명정'] <술잔바위>에서 내려온 좌측 계단인데, <산불감시초소>와 <기상관측소>가 있었던 곳에서 임도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힘드신 분들은 이 임도를 이용하면 편하겠습니다. 단, <술잔바위>를 못 보는데...그거 볼거리도 아녀요~ ['강릉' 시내 조망] 이제 <강릉시내>와 <동해>가 보이고... ['거북등'] 12:45 <어명정>에서 임도를 8분여 진행하면 "거북등"이라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임도를 진행해도 되겠습니다만, 좌측 산길이 지름길이며 정코스더군요.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7분여 내려가면... ['바위와 소나무'] 1:02 소나무가 바위를 뿌시고 자랐는지...바위 틈으로 자랐는지... 자연의 신비함을 잠시 느끼고...10여분 내려 가면... [임도] 1:11 다시 임도를 만나 직진하는데 ['대관령' 조망] <백두대간>이 펼쳐지며 <능경봉-대관령-선자령>으로 이어지는듯... [내림길]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13분여 내려 가면... [등산로 들날머리] 1:24 등산로 날머리를 만나며 <보광사 입구>가 보입니다. ['어명정' 들날머리] 1:25 등산로 날머리를 바라보며 정방향으로 올랐으면 체력소모가 클 것으로 생각되어 미소를 머금고...^.^ ['보현사' 입구] 1:25 <보현사 입구>를 바라보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답사를 마쳤습니다. ['뒷풀이'] 1:28 오늘은 <빠담님>이 <삼계탕>을 특별히 제공해 주셔서 피로와 삼복더위를 맑끔히 잊게 해 주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만 해서 미안해요~~ 조만간 원수를 갚아야지~~ㅎ ['보광천'] <삼계탕> 한그릇을 뚝딱 해치운 다음 <보광천>으로 내려 가니, 피서 온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시원한 계곡물에 더위를 씻고 돌아 왔습니다. ['고도표'] 오늘 진행한 코스가 어디쯤인지 구글어스로 확인하고 <고도표>를 보면서 역방향 진행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다시금 확인 할수 있었습니다. 거리는 약11km였으며 3시간10분정도 걸렸습니다. ['월화정'과 '神漁'] 마지막으로 <강릉 중앙시장> 앞 <남대천> 옆에 있는 <해파랑길 38코스>의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에 얽힌 전설을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인 "무월랑 김유정 無月郞金惟靖"과 강릉아가씨 "박연화 朴蓮花"의 사랑이야기를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를 요약 인용합니다. 신라 화랑이었던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 <무월랑 김유정>이 <강릉>에서 근무할때 강릉아가씨 <박연화>를 알게 되어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라벌로 돌아 간 <김유정>은 그후 반년이 지나도 소식도 없었답니다. '남자는 다 그래~'라며 낙담하던 <박연화>는 혼기가 차 다른 사람과 강제결혼을 하게 되자 자살까지 하려하며 낭군만을 그리워하는데.... 어느날 <남대천> 어느 곳에서 자신의 일편단심 마음을 비단에 적었는데 황금잉어가 갑자기 뛰어 올라 그 비단편지를 물고 사라졌답니다. 그 상황을 재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윗 사진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입니다.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에 기록되 있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妾不敢背約 而父母之命 將不得違 郞若不棄盟好 趁某日至 則猶可及已 不然則妾當自盡以從郞也" "저는 감히 혼약을 위배하지 않을 것이나, 부모님의 명령을 장차 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낭께서 만약 맹약을 버리지 않으시고 달려서 아무날까지 도착하시면 그래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는 마땅히 자살하여 낭을 따르겠습니다." 그 다음날 <신라 서라벌>에서 <무월랑 김유정>이 물고기 회가 먹고 싶어 <알천閼川-현재의 경주북천)>에서 잉어를 잡아 왔는데, 잉어는 펄쩍 뛰면서 재빨리 움직여 마치 호소하는 것이 있는 듯했으며 잠시 후 거품을 한 되쯤 토했는데 그 속에 흰 편지가 들어 있어, 이상히 여기고 읽어 보니 <蓮花낭자>가 손수 쓴 것이었답니다. <김유정>은 즉시 그 편지와 잉어를 가지고 왕에게 아뢰었는데.... 왕은 크게 놀라며 <무월랑 김유정>에게 어서 빨리 <명주>로 가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 날로 달려간 <김유정>은 <박연화>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날에 도착하여 극적으로 재회하여 <서라벌>로 돌아 와 결혼하여 아들 <명주군왕-김주원>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신라판 춘향전" 같은 이야기는 강릉을 대표하는 전설로 자리 잡고 있더군요."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강원 도보여행 > 대관령 옛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 안반데기-바람부리-배나드리마을 (0) | 2024.06.18 |
---|---|
[강릉바우길] 대관령 옛길 답사기 (0) | 2020.06.06 |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 안반데기-바람부리-배나드리마을
2024. 6. 18. 12:46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 안반데기-바람부리-배나드리마을』 안반데기마을회관-피덕령-도암호-바람부리마을-배나드리마을 ['4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창올림픽 아리바우길 4코스"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배나드리마을"에서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의 "안반데기 마을"까지 가는 약"15km" 거리라고 알려줍니다.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가 역방향으로 직접 걸은 실트랙을 <국토지리원지도>에 표기했는데..... 지도에 <파란색선>이 보이는 것은 오리지날 루트이며 지름길인데, 길이 나빠 도로를 이용했습니다. ['안반데기 마을회관'] 10:15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맑음 <복정역>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들어가 <고려 우왕>의 유배지 "왕산골 王山골"을 부르르렁 거리며 오르면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닭목령 鷄項嶺"을 넘게 되는데...이곳부터 '너른 큰터'라는 의미의 "대기리 大基里" 품속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즉, '왕산면 대기1리 王山面 大基一里'에 도착하는데, <강원도 감자>의 <감자원종장>이 있는 마을입니다. 그리곤 다시 "대기리 大基里"의 마지막 "큰터"인 '대기4리'의 "안반데기"로 꾸불꾸불 오르면 나타나는 "대기4리 안반데기 마을회관"에 도착합니다. 평균해발 1,100m에 있는 산간오지에 있는 마을로는 제법 부티가 나는듯한 마을이 펼쳐집니다. 관광지화 되었으니... 좌측 오름길을 100m 정도 올라 가면.... ['와우! 안반데기'] 10:18 "카페: 와우! 안반데기" "고냉지농촌문화관"이라고 합니다만 그냥 단순한 카페더군요. <용평리조트>를 찾는 사람들이 주로 다녀 가는 관광코스로 <용평스키장>에선 약20분이면 도착 할수 있는데 오늘도 몇몇 손님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는 4,500원하더군요. 싸지도 않고 ['안반데기' 조망] 카페에서 바라보는 "안반데기" 아랫쪽 방향입니다. 출발지였던 마을회관도 보이는군요. 평균해발 1,100m에 있는 축구장 280배 크기의 우리나라 최대 "고냉지 배추밭"이라서 유명하죠. <안반데기>에 대해선 다음 <5코스>에서 더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하고... ['피덕령'] <카페: 와우! 안반데기>가 있는 이 고개의 이름은 제법 유명한 "피덕령"이랍니다. <평창>에서 <강릉>으로 넘나드는 고개 중에 하나로 <대관령>이나 <선자령>이 <강릉>에서 오르기엔 너무 가파라서 <강릉>에서 <평창>으로 갈때는 주로 이 고개를 이용했답니다. 이 근처에 "피"가 넓은 지역에 퍼져 많이 자생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강릉시'와 '평창군' 경계] 10:20 "피덕령"은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법정 경계이기도 하답니다. [내림길] 해발 1,100m를 오를려면 체력소모를 많이 해야겠죠. 그래서 오늘도 편하게 역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조금 내려 가면.... ['발왕산' 조망] 10:24 <황병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발왕산 發王山 1,459m"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발왕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용평스키장이 있는 산이고, <2018년 평창올림픽 스키대회>가 열린 곳이죠. 정상엔 스키장 리프트 승강장과 꼭대기 레스토랑이 있는데, 최고 난이도 코스입니다. 흰눈이 내리는 겨울에 올라 오뎅에 정종대포 한잔 마시고, 스키를 타고 내려 갈때의 기분은 야호~ [내림길] ['도암호'] 11:08 <피덕령> 고갯길을 50여분 내려 가면 고갯길은 안정을 찾으며 <백두대간>과 <황병지맥>이 만들어 내는 "송천 松川"이 다시 만들어 내는 "도암호 道岩湖"를 만나는데 <대관령>은 우측으로 가고 ['도암댐' 가는 길] <도암댐>은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20여분 진행하면... ['옥류정'] 11:27 "도암호 道岩湖"의 절경을 감상하라는 "옥류정 玉流亭"에 도착합니다. ['옥류정'에서 조망]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옥류정>에 올라 조망을 합니다. ['도암호' 조망] "도암호 道岩湖"는 "길 도道"에 "바위 암岩"을 쓰는데 옛 선비들이 <한양>을 오갈때 쉬어가던 바위가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고.... ['도수터널 취수탑' 조망] "도수터널 취수탑" <도암호>에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취수탑>입니다. <도수터널>은 "道水터널"로 이곳의 물을 <강릉>으로 이동시키는 "물 이동 水路"를 의미하는데 <백두대간>을 수로터널로 "15.6km"를 뚫었답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사진을 참고하세요~~~ ['강릉수력발전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사진을 클릭하면 읽기 쉽게 확대 됩니다. 이곳의 위치와 <강릉 남대천>의 위치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한다고... 학창시정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왼손법칙>등이 새삼 기억나는군요. ㅎ [전기 생산량] <강릉수력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량이 상당했답니다. 어서 빨리 친환경 전력생산을 해서 "RE100" 시대에 대비해야 겠습니다. ['댐 관리사무소'] 11:36 <도암호>는 <용평리조트>등 <횡계>에서 내려 오는 생활하수와 <안반데기>등 주변 산지 개발로 흙탕물과 농업오염수가 너무 많이 흘러 들어 수질이 매우 나쁘기로 악명 높답니다. 그래서 수력발전도 중단된 상태라죠? 현재 수질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는데 상당히 좋아 지고 있다고.... ['댐 상부'] ['댐 옆면'] 11:38 "도암댐"의 상부와 측면을 조망하고 [내림길] 댐 아랫쪽으로 내려 가면... ['도암댐' 전경] 11:45 "도암댐" 전경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발왕산 용평스키장 정상>이 여기서도 보이는군요. 댐의 길이는 300m이며, 높이는 72m라고 하는군요. 1990년에 완공된 댐인데, <강릉수력발전소>용으로 건설되었지만, 2001년에 발전 중지 되었답니다. ['바람부리 마을'] 11:50 댐을 바라보고 5분여 내려 가면 "바람부리 마을" 안내판이 반겨 주는데 "신배나무와 백로마을"이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과 <황병지맥> 사이 계곡으로 흐르는 "송천 松川"가에 자리 잡고 있어 특히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 "바람불이 마을"은 "3無마을"로 유명하다는군요. 첫째: 여름에도 "모기"가 없고, 둘째: "모기"가 없을 정도로 시원하니 "선풍기"가 필요 없고, 셋째: 산간오지 계곡이라 "논"이 없다고 합니다. [사과 과수원] 12:00 <바람부리 애플700 펜션>이라는 사과 과수원과 펜션을 겸업하는 아담한 집도 보이고 [잠수교] "송천 松川"을 건너 다니는 다리는 모두 잠수교더군요. <한양 경복궁>을 건축 할때 이 지역의 "금강소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운송하던 개천이라고 "송천 松川"이라고 한답니다. 여름철 수위가 좀 높을 때 주로 이용 했을거고, 갈수기나 홍수 때는 이용 할수가 없었겠죠. ['발왕사' 조망] 12:24 "발왕사 發王寺"라는 조그만 절도 보입니다. ['새터'] 간간이 사람사는 집도 보이는데 지도에 <새터>라고 표기되 있더군요. [잠수교] 마지막 잠수교를 건너면... [고개 오름길] 고개 오름길이 이어 집니다. 이번 코스 유일한 오름길...ㅎ ['배나드리 고개'] 1:00 이정표가 있는 <배나드리고개>에 도착합니다. <배나드리>로 가는 오리지날 코스는 우측 산길로 "1.08km"라고 알려 줍니다. 그런데 여름철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산길은 걷기 싫지요? 뱀도 나올거 같고...ㅎ 그래서 조금 돌아 가는 길이지만 도로를 따라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안반데기>로 가는 길이 좌측이라고 하며 "5.54km"라는데 아마 <옥류봉>으로 질러 가는 길인듯 [삼거리] 1:04 고개를 내려 가면 <415번지방도>가 지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 <415번>도로는 오전에 버스를 타고 통과했던 <닭목령>으로 가는 길이더군요. ['대기천'] "대기천 大基川"은 <왕산면 대기리 닭목령> 등에서 흘러 내려 오는 개천이고 <배나드리>까지 10여분 진행하면... ['노추산' 조망] 중간에 "노추산 魯鄒山 1,322m"이 이젠 추억 속에서 노닐고 ['배나그리 마을' 입구] 1:15 "배나드리 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엔 이곳까지 <한강>을 운행하는 배가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배나드리마을' 조망] "송천 松川"이 흐르는는 "배나드리교"에서 "배나드리마을"을 조망하고... ['대기천'-'송천' 합수부] "배나드리교" 아랫쪽엔 "대기천 大基川"이 "송천 松川"에 합수하는 곳이 보입니다. <대기천>은 여기서 그 이름을 <송천>에 넘기고... ['정선' 가는 길] <정선 구절리>로 향하는 <415번지방도>를 조금 더 진행하면 ['노추산 모정의 탑' 주차장] 1:25 <청마산악회>가 정성을 다해 제공하는 뒷풀이 장소인 "노추산 모정의 탑 주차장"에 도착하여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를 종료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5.8km 였으며 3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강원 도보여행 > 대관령 옛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아리바우길 제7코스』 어명을 받든 소나무길에서 만난 명주군왕릉 (0) | 2024.07.27 |
---|---|
[강릉바우길] 대관령 옛길 답사기 (0) | 2020.06.06 |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0코스 두타연길
2024. 6. 6. 13:12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0코스 두타연길』 금강산가는길 안내소-두타연-두타연갤러리-협동교 ['10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10코스"는 <두타연갤러리>에서 <두타연>을 지나 <팔랑리>까지 가는 "21.6km"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타연>에서부터 <팔랑리>까지 "12.3km"는 아직 군사상 문제가 있다고 개방하지 않아 <두타연갤러리>에서 <두타연>까지만 진행합니다. 오늘은 한마디로 "두타연 관광"입니다. ['두타연'의 위치] <두타연 안내 매표소>에는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과연 <금강산>과 <두타연>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휴전선>이 코 앞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이 길은 <금강산>의 <내금강산>으로 가는 길이고, 영남지방 옛 선인들이 많이 이용한 길인데 <한양>에서 제일 많이 이용한 길은 <철원>에서 <금강산철도>가 있었던 길로 다녀 왔답니다. ['두타연출입신고소'] 9:45 2024년 6월 2일 일요일 맑음 "두타연출입신고소"는 <두타연매표소>이기도 한데,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전국 곳곳에 있지만 <양구군에서 가는 길>이겠죠? ㅎ ['두타연 매표소'] <민통선> 출입문이 있는 "두타연 매표소"에 도착하여 입장료와 출입신고서를 제출하고 출입팻말을 받아 목에 걸고, 다시 버스를 타고 <두타연>으로 들어 갑니다. 입장 시간이 오전, 오후 각3번씩이니 시간을 맞춰야 하겠습니다. ['두타연 입구'] 10:12 버스를 타고 잠시 진행하면 <두타연>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으며 <두타연안내도>가 있는 <두타연 트랙킹코스>로 들어 가면 ['두타연' 안내] 입구에서 해설사가 <두타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는데 특별한 얘기는 없고 ['두타연' 안내도] "두타연 트랙킹코스 안내도"를 참고 합니다. 현재 진행 할수 있는 코스는 안내도의 <푸른색선> 뿐입니다. 거리는 약1.5km 정도로 여유있게 진행해도 45분 정도 걸렸습니다. ['두타연' 실트랙 구글어스] <금강산 가는 길>과 <두타연 코스>를 좀 더 확실히 알아 보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먼저 <수입천>과 <사태천>이 합수 하는 지점에 있는 "이목교 梨木橋"를 알아야 하는데 <금강산 가는 길>은 <수입천>이 흐르는 좌측 <수입천>으로 올라 가고 <두타연>이 있는 우측 개천은 <사태천>으로 <성골지맥>이 지나는 <비득고개>로 가서 <팔랑리>로 가는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이며, 이어서 <11코스>인 <돌산령>을 넘어 <펀치볼>로 가는데 <11코스>는 이미 답사 한바 있습니다. 이런 분석을 한 사람은 <파란문> 밖에 없지요? ㅎㅎ ['통일기원바위' 조망] <두타연 안내도>에서 뒤돌아 보면 조금 모양있는 바위가 보이는데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통일 기원 바위"라고 부른다고... ['두타연 트랙킹 입구'] 10:20 <두타연 트렉킹 코스 입구>로 들어 가서 [사거리] 10:24 200여m 숲길을 진행하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측길은 <양구전투위령비>로 가는 길인데, 갔다가 돌아 와야 하고 직진길은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로 가는 길이더군요.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조각공원'] "조각공원"이 펼쳐지는데 조각품과 탱크, 미사일등 군사무기가 전시되 있습니다. 여러 조각품 중에 유명한 조각품만 촬영했는데... ['잃어버린 신발'] "잃어버린 신발-홍영표 작" "신발 한짝은 어디로 갔나?" 분단된 현실의 아픔을 표현하는 듯 하고...... ['슬픔 기다림'] "할미꽃-슬픔.기다림" 제일 인기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할미꽃"이라는 꽃 자체가 슬픈 노년의 슬픔을 표현하는 꽃이니 .... ['두타연 입구'] 10:28 <조각공원>을 지나면 <두타연 입구>를 만나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 <두타정><두타폭포>가 있고 [안내문]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사진을 클릭하면 안내문이 읽기 쉽게 확대 되는데, 이 안내문만 읽어 보면 <두타사>와 <회정선사>에 얽힌 역사를 모두 알수 있습니다. ['두타사 옛터' 입구] 10:33 "두타사 頭陀寺"가 있었던 옛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그 흔적 조차 찾기 어렵고.... "두타 頭陀"라는 단어를 알아야 이곳의 의미를 알수 있겠지요.. 한자의 의미로 <두타 頭陀>의 뜻에 접근하려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옛 인도 북부지방, 네팔등에서 사용하던 "산스크리트語"이기 때문입니다. 漢字는 '뜻글자'라고들 알고 계시죠? 반드시 그런건 아닙니다. 뜻글자로 접근하면 우스게 소리로 "골 때린다"로 접근되지만 그런 뜻일리야 있겠습니까? "頭陀"는 인도 북부-내팔 등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 "dhuta"를 한자로 音譯한것입니다. 그리고 "dhuta"를 한자로 音譯한것을 다시 우리말로 바로 音譯을 하였기에 "두타"가 되었는데 '산스크리트語'의 "dhuta"를 알아야 뭔 뜻인지 알수 있는 것입니다 "dhuta"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불교용어입니다. ['두타사 옛터'] "두타 dhuta 頭陀"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데...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알아 보면 "불교 佛敎"는 <대승불교 大乘佛敎>와 <소승불교 小乘佛敎>로 대별되죠. <석가모니>의 불교는 처음엔 <소승불교 小乘佛敎>였습니다. <소승불교 小乘佛敎>는 "끊임없는 자기수행"으로 해탈의 경지로 가는데 역점을 두고 <대승불교 大乘佛敎>는 <소승불교>로는 우선 당장 먹고 살수 없으니 "포교활동"을 해 중생을 구제하여 함께 해탈의 경지로 가자는데 역점을 둔것이죠. 그래서 <소승불교 小乘佛敎>는 "자기수행"을 위해서 심산유곡 속으로 들어 갔고 <대승불교 大乘佛敎>는 "포교활동"을 위해 도시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타 dhuta 頭陀"는 <소승불교 小乘佛敎>가 추구하는 목표라 할수 있습니다. 요즘은 스스로 수행하는 <소승불교>는 거의 몰락하고, <대승불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죠.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 10:36 <옛 두타사터>를 지나면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로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데 통행 할수 없고 ['징검다리'] 10:37 이어서 <사태천>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만나는데, 비가 조금만 내려도 건너기 어렵겠습니다. ['비득고개' 방향 조망] 상류를 조망하는데 느낌은 북쪽인듯 하지만, 북동쪽이더군요. <어은지맥>과 <성골지맥> 사이 <비무장지대>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물은 정말 깨끗합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가 가까이 있으니 요즘 세상이 더욱 하수상 하게 느껴집니다. ['두타연' 방향 조망] 하류 방향엔 <두타연>의 하일라이트인 <두타정>과 <두타폭포 전망대>가 보이며 그 뒤로 주차장에서 보았던 <통일기원바위>도 조망되는군요. [전망대] 10:41 <징검다리>에서 200여m 숲길을 진행하면 <두타연전망대>가 있는데 숲이 우거져 폭포는 잘 보이지 않고 ['두타정' 조망] 건너편 <두타연전망대>와 <두타정>은 보이는데 잠시후 저곳으로 건너가 조망하겠고... ['샛길'] 10:43 전망대에서 100m 정도 더 진행하면 이런 "주의" 안내판을 만납니다.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닌데 비가 오거나 하면 위험 할수 있으니 출렁다리를 이용하라고 하니 "금지"는 아니니 아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선 여기로 들어 가 봐야 겠다고 생각해 들어 가 봤습니다. ['두타폭포'] 속세와 떨어져 "자기수행" 하기엔 좋은 장소라 생각되는군요. ['두타교'] 10:47 다시 트랙킹코스를 따라 조금 더 내려 가면 "출렁다리"인 "두타교"를 만납니다. [조망] 다리 중간에서 <두타연> 방향을 조망하는데 <두타폭포>는 보이지 않고 [조망] <수입천>으로 흘러 가는 하류도 바라보고 건너 가면... [전망대] 10:50 또 다른 전망대가 있는데 ['박수근 그림 항아리'] "박수근 그림 항아리"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아무리 항아리에 넣어 숨겨 놨다지만 종이에 그린 그림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을까? ['지뢰체험장'] 10:51 "지뢰 체험장"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체험 할게 없다고 해도 "지뢰까지 체험해?" "그렇게 죽고 싶어?" ㅋㅋ "지뢰 체험하고픈 분 계세요?" ㅎㅎ 관계자들은 이런 단어 하나 쓰는데도 신중해야 합니다. 꼭 쓰고 싶다면 "지뢰 위험성 알림장"으로라도 바꾸세요~~ ['전망대] 10:52 "소지섭의 길" 또 다시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엔 <소지섭의 길> 안내판이 있군요. <소지섭>이 영화촬영차 왔다가 경관에 심취해서 수필 화보집을 냈다죠? <양구군>이 그걸 보고 <소지섭의 길>이라고 관광홍보를 한다고...ㅎ ['두타폭포' 조망] <두타폭포>와 <두타연>을 가운데 두고 한바퀴 도는 코스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두타폭포' 조망] 가까이 다가 가서 다른 각도에서 다시 <두타폭포>와 <두타연>을 조망하고 <두타정>으로 올라 갑니다. ['두타정'] 11:03 <두타연> 위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두타정 頭陀亭"입니다. 조금 전에 지났던 <두타사 옛터> 바로 옆에 있습니다. ['두타폭포' 상부] <두타폭포> 상부를 바라보고 ['두타폭포' 중앙부] 낙차 큰 절벽폭포가 있던 자리는 오랜 침식작용으로 골이 패여 폭포다운 면모를 많이 잃고 ['보덕굴'] <희정선사>가 수행했던 "보덕굴"이 바로 옆에 있으며... ['두타연'] 진짜 "두타연 頭陀淵"이 펼쳐지는군요. 폭포가 폭포로서 위용이 사라지니 폭포수가 떨어지며 만들어 낸 웅덩이를 지명화 했다고 보이는군요. "연못 연淵"이니 [출구] 11:05 45분 정도 <두타연 트랙킹코스>를 돌아 보고 주차장으로 나가면 <열목어>가 <두타연>의 상징으로 있고 버스를 타고 <금강산 가는 길 매표소>로 돌아 갑니다. ['금강산 가는 길'] 11:45 <두타연 출입신고소-매표소>로 돌아 가서 [안내소 정문] <두타연 출입신고소-매표소> 부턴 "강원도 평화누리길 10코스"인 <두타연→두타연갤러리>를 도보 답사 합니다. ['고방산리']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를 34분여 진행하면 ['두타연갤러리'] 12:19 "두타연갤러리"에 도착하고 ['고방산 사거리'] <고방산사거리>에서 뒷풀이 장소가 있는 <협동교>까지 더 진행합니다. ['두타연터널'] 12:21 <두타연터널>을 통과하면 ['송현2리 버스정류장'] 12:30 <송현2리 버스정류장>을 만나고 [협동교'] 12:32 이어서 <수입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있는 <협동교>에 도착하여 [뒷풀이] <삼겹살 항정살>과 각종 술을 무제한 제공하는 산악회는 <서울청마산악회> 뿐일겁니다. 감사 드리고... <강원도 평화누리길>을 모두 완주하고 많은 횐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뒷풀이를 했습니다 "秋風辭" "歡樂極兮哀情多 환락극혜애정다"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 제가 요즘 씹어 보고 또 곱씹어 보는 구절입니다. 한(漢)나라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漢武帝)가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가 읊은 '추풍사 秋風辭'의 한 대목입니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권력의 쾌감이었을까? 궁궐 미인들과 누려본 성적(性的) 오르가즘이었을까? 슬픈 정(哀情)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었인가? 필자 '파란문'은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고... 횐님들 건승하시고 담에 또 만나요~~ - 파란문-"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강원 도보여행 > [강원도 평화누리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6코스 울산바위비경길 (2) | 2024.04.27 |
---|---|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8코스 화천평화의 길: 비수구미에서 평화의 댐으로 (0) | 2024.02.21 |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20코스 화진포석호둘레길: 통일전망대-화진포-이승만 이기붕별장 (1) | 2024.02.07 |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9코스 통일로 가는 길: 제진검문소에서 화진포를 지나 거진항으로 (2) | 2024.01.24 |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8코스 거진 명태 고향길 (2) | 2024.01.10 |
『남원 여행 Ⅳ』 춘향테마파크
2024. 6. 3. 15:20
『당일치기 남원 도보여행』 『남원시내 도보여행 Ⅳ』 춘향테마파크 ['실트랙'] 「1부-2부-3부」에 이어 「4부」는 "남원의 관광지"인 "춘향테마파크"를 둘러 봅니다. ['광한루원 동문'] 2024년 5월 23일 (목) 대체로 맑음 "광한루원 廣寒樓苑"을 둘러 보고 다시 동문을 나서 "춘향테마파크"로 갑니다. ['춘향테마파크' 실트랙] 먼저 실제 진행한 <춘향테마파크>의 실트랙을 참고하고 ['춘향테마파크' 가는 길] <광한루원 동문> 건너편에 <승월교-춘향테마파크> 가는 길이 있는데, 올라 가면 ['요천 제방길'] 이 길은 <남원의 강>인 "요천 蓼川"의 제방길입니다. ['요천 고수부지 공원'] 고수부지엔 다양한 꽃잔치가 벌어지고 있고 ['승월교' 조망] <춘향테마파크>로 가는 "승월교 昇月橋"가 <오작교> 마냥 보이는데 <무지개다리>라고 ['승월교'] "승월교 昇月橋"는 팔월 한가위 보름달빛이 아름다운 밤이면 높은 누각에 드리운 황금 달빛 기둥을 타고 내려온 선녀들이 <광한루원>에서 새벽닭이 울 때까지 춤과 노래로 즐기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승월대> 근처에 세운 다리라 하여 <승월교>라고 부른답니다 ['요천' 남쪽 조망] "요천 蓼川"은 남원시의 <지리산> 산지와 구릉의 물을 모은 다음, <섬진강>으로 들어간 후 <남해>로 흘러 가는 <남원의 젖줄>이랍니다. 남쪽 <곡성군>의 산줄기들이 조망되고... ['요천' 서쪽 조망] 서쪽으로는 <교룡산성>이 있는 <교룡산>이 조망되고 ['요천'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춘향테마파크> 입구가 있는 <춘향교>고 보입니다. ['요천' 북동쪽 조망] 동북쪽에 잠시후 탐방하게 될 <춘향테마파크>가 조망 됩니다. <승월교>를 건너 가면... ['남원요천 벚꽃길'] <요천>의 동쪽 제방길이 이어지는데 <벚꽃길>로 유명하다는군요. 길에는 안내판들이 여럿 설치되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춘향이 이야기'] <춘향이 첫날밤 밥상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켄싱턴리조트'] "켄싱턴리조트" 앞을 지나는데.... <켄싱턴>은 <영국 런던> <템즈강> 근처에 있는 부자 동네인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강남-서초구> 같은 곳이라 알고 있는데....우째 리조트 이름으로는 좀 그렇네요. ['사랑의 광장'] 이어서 <음악분수>가 있는 <사랑의 광장>을 만납니다. 공연이 없어 썰렁해서 그냥 통과하고 ['춘향테마파크' 입구] <춘향교>에서 이어지는 "춘향테마파크" 입구에 도착합니다. 좌측엔 <님원에어라인>이라고 하는 모노레일 관광열차 승강장이 있는데 오늘은 운행을 않는군요. 안으로 조금 올라 가면... ['만남의 광장'] <춘향테마파크>는 입장료가 있으며 입구는 우측 에스컬레이트나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 갑니다. 좌측 <춘향촌>은 무료로 음식점을 비롯해 여러 공연시설들이 있더군요. 저는 우측 <춘향테마파크>를 둘러 보고 좌측 <춘향촌>으로 내려 올 예정입니다. [입장요금] <춘향테마파크> 입장 요금을 참고하고... ['에스컬레이트'] 올라 가는 길은 계단도 있고 엘리베이트도 있습니다만, 저는 에스컬레이트를 이용했습니다. 잠시 올라 가면... ['남원향토박물관'] "남원향토박물관"을 먼저 만나는데 패스하고 ['맹약의 문'] 조금 더 올라 가면 <춘향이와 이도령>이 천년의 사랑을 맹세하며 증표로 준 <옥지환>이 지금부터 <춘향테마파크>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여기서 우측을 보면.... ['심수관 도예관'] "심수관 도예관 沈壽官陶藝館"이 있는데 꼭 들리고 가는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도자기 문화>를 완전히 바꾼 우리나라 도공인 <심수관> 기념관이기 때문입니다. ['심수관 도예관'] "심수관 도예관 沈壽官陶藝館" <정유재란> 때에 쪽바리들이 자기 나라에는 없는 "조선의 고급 도자기"를 만들려고 많은 <남원의 도공들>을 납치해 갔답니다. 납치되 간 <남원의 도공>들이 일본에서 강압에 못이겨 도자기를 만들면서도 고향을 그리며 생존을 위해 어쩔수 없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도자기 문화를 현지에 맞게 더욱 발전시켜 세계적 도자기로 올려 놓았답니다. 그래서 일본국민들로 부터 단연 최고로 추앙받은 인물이 도공 <심수관 선생>인데 현재 대를 이어 15대가 활동하고 있다는군요. ['정유재란과 도공 이야기']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사쓰마도자기'] "일본 사쓰마 도자기의 기원" 안내문에 자세히 설명되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자기와는 또 다른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다고....그러나 그 뿌리는 우리나라 ['맹약의 장'] <에어라인>이 <춘향타워>로 이어지는데 <테마파크>로 들어 서면 ['춘향테마 조형물'] <춘향전>을 테마로 조형물과 영화촬영셋트장이 이어지는데.... ['동헌' 앞 갈림길] 관아의 담장이 있는 삼거리에 포졸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관아>로 바로 가고, 우측으로 가면 영화세트장이 이어지는데 저는 우측으로 돌아 좌측으로 내려 오려고 우측으로 갑니다. ['춘향뎐 셋트장'] "춘향뎐 영화 셋트장" <춘향뎐> 촬영 세트장이 이어지면... ['단심정'] "단심정 丹心亭"을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 가야 <관아>로 갈수 있는데 저는 모르고 계속 더 올라 갔더니... ['이별의 장'] 장원급제하여 다시 돌아 오겠노라 약속하고 <한양>으로 떠나는 <이도령>의 말에 매달려 이별의 슬픔을 표출하는 <춘향이> ['후문'] 그리고 <후문>이 있더군요. 제 생각에 <후문> 밖에 있는 <천문대>와 <춘향타워> <김병종미술관>을 다녀 오는게 시간을 절약 할수 있겠다 싶어 문을 열고 나갔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앗! 이 문은 나갈수는 있지만 다시 들어 올수는 없는 문이었습니다. 잠시후 알게 됩니다. ㅎ ['천문대 가는 길'] 여하튼 안내도 잘 되있고 최단거리여서 <천문대>로 올라 가면.. ['남원항공우주천문대'] "남원항공우주천문대"를 만납니다. <춘향테마파크>에선 제일 높은 곳에 있더군요. 기차 시간이 4시50분이어서 천문대까지 구경할 시간은 없어 도로 따라 조금 내려 가면... ['에어레일 천문대역'] <에어레일 천문대역>을 만나고 ['춘향타워'] "춘향타워"에 올라 가 보려고 했는데 영업을 않고 문을 닫아서 내려 가면... [김병종미술관'] "김병종미술관"은 그림에 대한 것보다 건물이 멋져 건물에 더 관심이 가더군요. [미술관 내부] 잠시 미술관람을 하고 나가면 ['덕음산 솔바람길] <춘향테마파크> 뒷산은 "덕음산 289m"이었는데 등산로가 있고 ['천문대'] 다시 <춘향테마파크-관아>로 되돌아 가기 위해 다시 <천문대>로 올라 가서 ['후문'] 조금전 나왔던 <테마파크 후문>에 도착하여 다시 들어 가려고 했더니 안에서 문이 잠겨 들어 갈수 없더군요. 으음~ 이럴땐 어쩔수 없이 월담을 해야죠?. ㅎㅎ ['테마파크-시련의 장'] 후문을 월담하여 <단심정> 정자 아래로 조금 내려 가면 "테마파크-동헌"이 보이기 시작하며 ['신관 사또 부임'] <신관 사또-변학도>가 동헌으로 행차하는 광경을 모형으로 재현해 놨군요. 이런걸 놓치지 않으려면 월담 하지 않을수 없죠? ㅎ ['시련의 장'] <동헌> 앞마당에선 "수청을 들라~~!"는 명을 거역해 고초를 당하는 <춘향이>가 묶여 있는데 ['변사또'] "변학도 卞學道"라는 신관 사또의 이름에 대해 한번 생각 해 보겠습니다. <변학도>의 이름은 "배움의 길"이라는 의미의 "學道"이니 이름은 괜찮은데...ㅎ 하는 행실은 시정잡배 만도 못하죠? "어사출두시" "변학도"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놓은 음식과 술로 잔치를 벌이며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할때 나타난 허럼한 차림의 <이몽룡>이 <변학도>에게 써준 글이죠. 이 글을 본 <변학도>가 혼비백산 도망치려 할때 "암행어사 출두요~~"가 울려 퍼지며 전세역전의 통쾌한 팡파레 속에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는 <춘향>과 <이몽룡>의 포옹~~~ㅎㅎ "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금잔의 맛좋은 술은 만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옥쟁반의 맛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니)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낙시민루낙: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이 눈물 쏟고) 歌聲高處 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더라)" ['장원급제'] ['꽃가마 타고'] "인생역전 ~~" 모두 잘 아시죠? ㅎㅎ ['국립남원국악원'] "남원국립국악원" <춘향테마파크>를 헤피엔딩으로 끝내고 내려 가면 국악원을 만나고 ['춘향문화예술회관'] 이어서 <춘향전>등 공연을 하는 "춘향문화예술회관"을 지나 ['춘향촌 거리'] 관광지인 <춘향촌 거리>를 통과하여 <관광안내소>에서 택시를 불러 <남원역>으로 갔습니다. 택시비는 8,000원 나오더군요. 4시50분발 "ITX새마을호"를 타고 집으로..... 당일치기 <남원여행>은 여유로웠습니다."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전라도여행 > 남원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원 여행 Ⅲ』 광한루원 (1) | 2024.05.31 |
---|---|
『당일치기 남원 도보여행 Ⅱ』 구남원역-유애묘-용성관터-남원관아터-황희유배지-남성재-광한루 (1) | 2024.05.29 |
『당일치기 남원 도보여행Ⅰ』 만복사지-남원읍성-사직단-만인의총-남원향교-충렬사 (2) | 2024.05.27 |
『남원 여행 Ⅲ』 광한루원
2024. 5. 31. 15:36
『당일치기 남원 도보여행』 『남원시내 역사유적 도보여행Ⅲ』광한루원 ['실트랙'] 「1부-2부」에 이어 「3부」는 "남원의 시그니쳐"인 "광한루원"을 둘러 봅니다. ['광한루원 동문'] 2024년 5월 23일 (목) 대체로 맑음 "광한루 정문 廣寒樓동東門" "광한루원 廣寒樓苑"의 정문에는 "청허부 淸虛府"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황희 정승>이 귀양 와 지은 <광통루>로 시작되었는데 하늘나라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이 "광한청허부 廣寒淸虛附"라고 해서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신선이 되고파 이상향으로 "달나라 월궁 月宮"의 "광한청허부"와 견줄려고 지은 이름이라고 ['광한루' 지도] <광한루> 전체 규모를 네이버 지도로 미리 알아 보고 정문인 동문을으로 들어 가면... ['옥지환'] 먼저 조형물 하나가 너른 광장 가운데에 설치되 있는게 보입니다. "옥지환 玉指環"이라는 조형물인데 "옥으로 만든 가락지"랍니다.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춘향>에게 장원급제하여 돌아 오겠노라고 징표로 준 가락지랍니다. 하늘나라 궁전을 상징한다는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첫삽을 뜨고 <정인지 충신> <송강 정철>등이 완성 시켰지만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가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지는 <광한루>입니다. ['충혼불멸비'] <광한루>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가면 <광한루>엔 어울리지 않는 "충혼불멸비"가 설치 되있습니다. <6.25전쟁>시 지리산등에서 저항한 공비들과 싸우다 전사한 민간인과 청년들을 추모하는 비라고 ['단심문'] "춘향사당"의 정문인 "단심문 丹心門" 안으로 들어갑니다. ['춘향 사당'] 그러면 "춘향사당 春香祠堂"을 만나는데 "열녀춘향사 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춘향 영정'] <춘향 영정>이 봉안되 있습니다. ['비석군'] <춘향사당> 옆에는 "비석군"이 있는데 <남원>과 관련있는 인물들의 칭송비들이었습니다. <이몽룡>의 실존인물 <성이성>의 아버지인 <성안의>는 제일 오랜 기간 재임한 <남원부사>로 여기에 공덕비가 있다는데 찾아 보았습니다만 실력없어 찾을수 없었고.... ['광한루'] 이어서 <광한루 북문> 앞에 "광한루 廣寒樓"가 <달나라 궁전> 같은 위용을 보이며 나타나는데 "湖南第一樓"라고 하는군요. "광한루 廣寒樓"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 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 랍니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광한 廣寒>은 달나라 궁전을 뜻하지만, <춘향과 이몽룡>이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는게 더 알려져 있죠. ['광한루 측면'] <광한루> 옆에서 바라보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詩가 있더군요. ['다산 정약용 시'] ['광한루 전면'] "광한루 廣寒樓"는 <보물 제281호>랍니다. ['광한루' 앞] <광한루> 앞 연못에는 전설 속의 靈山인 <삼신산 三神山>을 세개의 섬으로 만들어 놨는데 <진시황>의 명령으로 <불노초>를 찾아 나선 중국의 <서불>이 우리나라 대표산을 탐험한데서 <한라산=영주산> <금강산=봉래산> <지리산=방장산>을 지칭한답니다. ['영주각'] 연못에 있는 세개의 섬 중에 좌측 섬이 "한라산"을 의미하는 "영주산"이며 <영주각>이라는 전각을 세워 놨고 ['방장정'] 우측에는 "지리산"을 의미하는 "방장산"이 있는데 <방장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방장정'에서 '광한루' 조망] <방장정>에서 <광한루>를 조망합니다. <황희 정승>이 <광통루>를 세우고 난후 1592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요천>의 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어 "은하수"같다고 했답니다. ['김삿갓의 시']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난고 김병연 선생"도 다녀 가셨군요. ['방장정'에서 '오작교' 조망] "송강 정철" 선생이 '전라관찰사' 시절 "오작교 烏鵲橋"를 놓았다는데 전설 속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표현 한것이라고... ['송강 정철의 시'] 우리나라 국문학사에서 최고로 꼽는다는 <송강 정철 선생>의 시도 한수 읊어 보고 갑니다. ['자라돌'] 다시 <광한루> 앞으로 나가면 "자라돌 鰲石"이 있는데 거북이 같은 큰 "자라"가 연못으로 입수하려는 듯한 바위가 눈길을 끌고 ['오작교'] "오작교 烏鵲橋" "까마귀"와 "까치"가 줄을 서 만든 전설 속의 "새다리"라죠.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오작교>에서 만나 한맺힌 사랑을 나눈다는 다리이죠. '오작교'가 한자로 "烏鵲橋"라고 쓰니 "까마귀와 까치가 만드는 다리"라는 의미이죠 '직녀'는 체중이 가볍고 날씬했으니 '까치 머리'를 사뿐히 밟고 지나가고, '견우'는 빨리 '직녀'를 만나고 싶어 무거운 체중으로 '까마귀 머리'를 마구 밟고 지나 갔다죠? ㅎㅎ 그래서 까마귀는 대머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실제 대머리 새입니다. ['오작교']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청춘 남녀의 애닮은 사랑 이야기라고들 알고 계시죠? 이 전설의 핵심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교훈적 이야기"입니다. "견우와 직녀 설화"는 중국 한국 일본에만 있는 설화인데 농경사회의 대표적 설화이죠. "牽牛와 織女"이니 한자를 풀이하면 "소 키우는 청년"과 "베 짜는 아가씨"이죠 이 청춘 남녀는 서로 사랑을 하게 됬는데 사랑도 좀 적당히 해야 하는데 너무 심했답니다. 농경사회에서 젊은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는데,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져 일은 내팽개치고 사랑놀이를 하며 놀아 났답니다. "소는 누가 키우냐!" "베는 누가 짜냐!" (개그맨들의 유명한 멘트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참다 못해 이들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너희들은 일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일년에 한번만 비오는 칠월칠석날에 잠시 만나거라~" 젊은이들이여 열심히 일하라~ 그렇지 않으면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라는 교훈적 얘기이죠. ['완월정'] "완월정 婉月亭" <완월정>은 1971년에 신축된 수중누각으로 '춘향제 행사'의 주요 무대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남문'] <완월정>에서 <남문> 방향으로 나가면 좌측에 <월매집>이 보입니다. ['월매집''] "월매집 月梅宅" <춘향이>의 엄마 <월매>는 "관기 官妓"였음이 틀림없지요. 그러니까 <광한루> 안에서 생활 할수 있었을테니까 ['월매집 본채'] "본채와 마당" 대문을 들어 서면 마당이 제법 넓고, 본채가 앞에 있으며 우측에 <부용당>이 있습니다. 부엌과 각 방을 돌아 보면.... ['부엌-'방자와 향단이'] "방자와 향단이" 부엌에서는 <방자>와 <향단이>가 썸타고 있고...^*^ ['월매방'] "사랑의 약속" 큰방인 <월매방>에는 <춘향이>에게 <이몽룡>이 '사랑의 약조'를 하고 있습니다. ['춘향이 방']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춘향이 방>이 눈길을 끌고 ['부용당' 앞]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 앞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 있는데 ['백년가약'] <부용당>에서는 첫날밤을 보내는 <춘향>과 <몽룡>이가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몽룡>이는 실존 인물이란게 이미 밝혀졌죠 기록을 토대로 연구한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본래 이름은 "성이성 成以性 1595∼1664"으로 조선조 <광해군><인조>때의 실존 인물이랍니다..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는데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이미 죽고 없었다는 것이 기록인데 소설이나 판소리는 미화하고 약간 꾸며서 기록과는 좀 다르지요? <춘향이>의 성은 알수 없는데 소설에선 <성이성>의 성으로 바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장원급제 기원단'] <춘향>이와 <월매>가 한양 간 <이도령>의 장원급제를 기원하던 우물가 기원단이라고... ['춘향이 그네'] <월매집> 옆에는 <춘향이 그네>가 있고 ['춘향관'] <춘향관>을 둘러 보고 나오면 [영화 속의 '춘향이'] 벽에는 <춘향이>를 연기한 유명한 배우들이 열거 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은 <춘향이>가 되었었군요. ['광한루원' 정문] 오후 1시53분부터 2시38분까지 약45분 정도 <광한루원>을 둘러 보았습니다. <광한루원 동문> 앞에서 <Ⅲ부>를 마치고.... 『남원시내 역사유적 도보여행』은 <Ⅳ부>로 이어 집니다."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전라도여행 > 남원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원 여행 Ⅳ』 춘향테마파크 (1) | 2024.06.03 |
---|---|
『당일치기 남원 도보여행 Ⅱ』 구남원역-유애묘-용성관터-남원관아터-황희유배지-남성재-광한루 (1) | 2024.05.29 |
『당일치기 남원 도보여행Ⅰ』 만복사지-남원읍성-사직단-만인의총-남원향교-충렬사 (2) | 2024.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