槐山 寶賠山-七寶山을 가다 서당골-보배산-청석재-칠보산-구봉능선-떡바위 11월 14일(토) 母校 京畿南部校友會 山岳會가 조금 발전된 산행을 주문하여 평소에 가 보고 싶었던 槐山의 寶賠山-七寶山으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槐山 雙谷溪谷을 찾아 가기가 의외로 쉽고 간단하더군요. 1.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안성 JC"에서 '평택-음성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대소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다시 바꿔 "증평IC"에서 나갑니다. 그리고 [34번 국도]를 타고 증평, 괴산을 지나 '연풍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윗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雙谷溪谷 入口가 나옵니다. 시간도 서울에서 약2시간30분이면 충분합니다. 2. 한편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연풍IC"에서 나와 괴산 방향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조금만 오면 雙谷溪谷 入口가 나옵니다. (괴산IC에서 나오면 좁은 국도를 많이 타야합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피서지로 계곡을 꼽으라면 어디를 우선시 하겠습니까 '화양동 계곡"?, "선유동 계곡"?, "雙谷溪谷"? 어디가 더 좋다고 따질 필용도 없이, 화양동계곡과 선유동계곡, 쌍곡계곡이 모두 괴산의 이곳에 있으니 괴산의 계곡 속으로 푹 잠기기만 하면 됩니다. [34번 국도] 雙谷溪谷 入口에는 제법 거창하게 雙谷溪谷 入口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雙谷溪谷 入口에서 계곡을 바라보니 우측으로 "군자산"이 위용을 자랑하며 구름 속에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측 봉우리리 뒤에 있는데 구름으로 가리워졌습니다) 좌측으로는 오늘 우리가 오를려고하는 "보배산과 칠보산"이 있는 산줄기의 출발점이 쬐끔 맛뵈기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雙谷溪谷 入口에는 '금호가든'이라고 하는 음식점과 수퍼, 주유소가 있습니다. 8시 45분쯤 도착해서 식사하고 9시 30분쯤에 이곳에서 아침을 '올갱이국'으로 하고 출발했습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괴산군 전체면적의 90% 가까이가 임야, 즉 산이라서 내 세울건 산과 계곡이 거의 전부라는 충청북도 槐山郡....그리고 여기 쌍곡계곡이 있는 칠성면...... 보이는건 온통 산과 계곡 그래서 산과 계곡을 안내하는 관광 안내판이 엄청 크게 걸려있습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은 원래 계획에서 길을 잘못들어 일반적인 길이 아닌 약간 어려운 길로 "보배산" 바로 옆 봉우리로 올랐습니다. "서당말"에서 "도마재"로 올라야 하는데, '송화팬션'을 약간 지나가는 바람에 일반인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을 개척하며 올라서, 이해를 돕기위해 먼저 '산행 개념도'부터 보여드리는것입니다. [산행 들머리] '서당말 마을회관'에서 300m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송화팬션'이 나오는데, '송화팬션' 앞, 즉 좌측으로 길을 틀어 올라가야하는데, 직진을 한것입니다. 직진을 약500m쯤하니 이런 수련원같은 영업집이 나오고, 조그만 운동장 뒤로 "보개산 산행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산행 시작] [입산금지]라는 경고판과 함께...."보개산 산행로"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어서 아무른 의심없이 이길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보배산"을 이곳에서는 모두 "보개산"으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엄청 쎈 된비알을 올랐고, 보배산 정상석은 못봤습니다. 에구~ 여하튼 9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마당바위] 약20분쯤 오르니 넓직한 바위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냥 이름하여 "마당바위"....칠보산에도 "마당바위"가 있더군요 산행후 집에와서 알게 ㄷ지만 이 산행코스는 "예당골"로 오르는 보배산 등로였습니다. 우리는 "도마재"로 오를려고 했는데 계획과 실제가 틀려져 함께 산행한 교우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산행 내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산은 이리도 올라보고 저리도 돌아가 보고 하는 것이니 반드시 계획 루트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당바위에서 내려다 본 '서당말'] 마당바위에 올라 내려다보니 '서당말'이 보입니다. 아마도 저곳에서 산행을 시작했나 봅니다. "서당말"은 이 마을에 '서당'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철조망을 덮어 쓴 무덤] '마당바위'에서 약10분쯤 다시 오르니 아주 특이한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은 거의다 파헤쳐져 있었고 철보망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잔듸 대신에 철조망 씌여져 있는 무덤은 처음 봅니다. 저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산짐승들, 특히 멧돼지들이 묘를 자꾸 파 헤치니까 주인이 철조망을 씌워 놓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뒤로 가운데 보이는 뾰쪽한 산이 "보배산" 인줄 알았는데, 보배산정상은 좌측 봉우리였습니다. 우리는 제일 멋있는 봉우리인 가운데 봉우리를 향해 올랐습니다. 앞으로 확실히 알게 되겠지만, "보배산"은 큰 봉우리가 세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게 두개 [휴식] 급경사를 약 35분 정도 오르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이곳부터는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원시림이었습니다. 물론 "보배산"은 '자연휴식연제', 상수원 보호등의 이유로 출입금지 지역이기에 산객들의 흔적 찾기도 어렵고, 등산로도 매우 희미했는데 경사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된비알] 입산금지 지역이라 사람들의 발자취도 없는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릅니다. 간혹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보입니다. [된비알] 경사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나시나요? 이런 된비알을 한시간 정도 오릅니다. [된비알] 산행 들머리에서 보았던 봉우리인 멋있는 봉우리로 오르니 암석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전망 바위 오르는 길] 보배산에는 3개의 큰 봉우리가 있었습니다. 가운데 봉우리로 오르는데, 산행 들머리에서 보았던 , 우리가 "보배산 정상"이라고 믿었던 급경사 대슬랩 구간을 옆으로 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슬랩 암봉 위에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서당말'] 전망대에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 보니 "쌍곡계곡"과 "서당말" "예당말"이 보입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군자산'] 우측으로는 "보배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줄기가 보이고, 건너편에 "군자산 君子山"이 보입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남군자산'] 南西쪽으로는 "작은 군자산"이라고도 하는 "남군자산"이 쌍곡계곡을 만들고 있습니다 "쌍곡계곡은 이렇듯 군자산 산줄기와 보배산-칠보산 산줄기가 만들어 내는 계곡입니다. 그러니 계곡은 깊고 수려할수 밖에 없는가 봅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가야할 '칠보산'과 '구봉능선'] 전망바위에 서니 南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칠보산 七寶山"이 "구봉능선 九峰稜線"을 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곱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七寶山 ~! 여기서 바라보니 정말 뭔가 있을듯하군요 이 암봉 전망대에서 四位를 모두 조망할수 있었습니다. [709m봉] 우리가 오른 봉우리는 '보배산 정상'이 아니라 "709m봉이었습니다. 3개의 큰 봉우리중 가운데 봉우리를 오른 것입니다. "709m봉 정상"이 다가 옵니다. [709m봉] "709m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보배산 정상"이라고 믿었던 봉우리입니다. 올라와 보니 아무래도 이상해서... [寶賠山] 좌측 능선을 따라 나아가니 더 높은 진짜 "보배산 정상"이 보였습니다. 775m 높이의 보배산이니 당연히 조금 더 높아 보입니다. 갔다 오려면 15분씩 왕복 30분 정도가 걸릴듯합니다. 오늘 산행을 함께한 교우들 중에는 위암 수술을 한 후배도 있어 무리하지 않도록 '보배산 정상'을 버리고, 바로 "칠보산"으로 전진해 갔습니다. 다른 분들의 산행사진을 보니 출입금지 지역이라 가봐야 좁은 정상이 있을 뿐이었기에 못 올랐다고 후회되지는 않습니다. [寶賠山 능선] "보배산 능선"이 예상외로 아름다웠습니다. 능선은 아주 얇은 칼날처럼 東西를 갈라놓고, 奇岩怪石과 절묘한 나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귀한 물건을 '보배'라고 하는데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쓰는 사람들은 흔치 않습니다 '보배 寶賠'의 '배'는 한자음으로 '패'...즉 '조개 패'를 말합니다 '보배'는 어느 나라에서 온 말일까요? '보 寶'자는 '보배 보寶'자라고 해서 한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배'는 무엇일까요? '배'도 역시 한자음인데, 우리나라 한자음으로는 '패'로 읽지요. 즉 '조개 패'자입니다. 이 '보패'가 중국음으로서는 '보배'가 되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래된 것이지요. 한자로 된 중국의 단어를 받아들일 때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의 발음을 원음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음운규칙에 따라 우리나라 음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의 두 가지가 그것입니다. '보배'는 바로 전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전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의 대표는 '다홍 치마'의 '다홍'입니다. '클 대大, 붉을 홍紅'이라서 우리나라 음으로는 '대홍'이지만, 중국음으로는 '다홍'입니다. [寶賠山 능선 위의 "고사목 봉우리"] 다음 봉우리로 올라 가니 아주 멋있는 古死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산봉우리를 올라보면 때론 허무하기도 합니다. 멀리서는 어떤 신비함마져 감돌던 산봉우리가 가보면 우리 주변에서 늘 보는 그런 나무와 돌맹이들입니다. 하지만 이 봉우리는 아주 오래된 古死木이 멋지게 서 있었습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고사목 봉우리에서 뒤 돌아 본 '보배산'과 '709m봉'] "古死木 봉우리"에서 뒤 돌아 보니 이제야 모든 의문이 확연해 졌습니다. 좌측 앞 봉우리가 우리가 올랐던 "709m봉"이고, 뒤의 높은 산이 "보배산"입니다. 이렇듯 "보배산"은 능선위에 여러 봉우리를 거닐고 있습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고사목 봉우리에서 하산] "古死木 봉우리"를 내려 가는 하산길도 꽤 급경사입니다. 이 암벽들이 멀리 산 아래에서 보았을때는 멋져부렸습니다. 직접 체험하면 힘들기만 합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고사목 봉우리에서 하산] "古死木 봉우리"는 우리가 쌍곡계곡 '서당말'에서 올려다 볼때엔 "보배산 정상"으로 오인하는 멋진 봉우리였습니다 [서당말에서 계곡따라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안부] "古死木 봉우리"에서 내려오니 안부가 있었는데 '서당말'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오는 登路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우리는 '서당말'에서 능선을 따라 709m봉으로 올랐습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칼날봉' 오르는 길] 안부에서 다시 봉우리를 오릅니다. 이와 같이 보배산에서 칠보산까지의 능선에는 많은 봉우리가 있습니다. '고사목 봉우리'에서 칼날같은 바위로 이루워진 '칼날봉'으로 오릅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칼날봉 정상'] 이렇게 생겨서 '칼날봉'이라고 임의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앞은 천길 낭떨어지 직각으로 서있는 봉우리입니다. 조심해야합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칼날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칠보산'] '칼날봉'에 서니 가야할 "칠보산"이 가까이 보입니다. 쌍곡계곡에서 올려다 볼때는 보배산과 칠보산 2개의 산봉우리만 있는듯하지만 올라와 보니 보배산에서 칠보산까지는 여러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가운데 봉우리와 '칠보산' 사이에 "떡바위"에서 칠보산으로 오르는 "청석재"가 있습니다. ['칼날봉' 내려가는 험로] '칼날같은 봉우리' 다웁게 내려가는 길도 험로였습니다. 여기서 옛날 군대시절 유격을 좀 하고.... ['칼날봉' 내려가는 험로] 네발을 이용해서 하는 산행도 재미있습니다. 무었보다 인적이 전혀없는 "보배산"을 우리가 완전히 전세내어 섭렵했으니 우리가 보배를 모두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예당고개' 가는 길] 이곳에는 소나무가 아주 많았으며 수령도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赤松이었습니다 모양새도 다양해서 그 수많은 세월을 한순간에 느낄려면 한참을 감상해야 했습니다 ['예당고개' 가는 길에서 뒤 돌아 본 '고사목봉'과 '보배산'] 이 사진으로 "보배산"의 전모를 어느 정도 알수 있습니다. 가운데 가장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古死木 봉우리"이고, 그 뒤로 "709m봉"이며 맨 끝이 "보배산 정상 봉우리"입니다. 이렇듯 "寶賠山"은 큰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칠보산으로 가서 조망하면 더욱 선명해 집니다. [예당고개] "칼날같이 생긴 봉우리"를 지나 전진하니 "예당고개"가 나옵니다. 이곳은 '쌍곡계곡'의 "예당마을"에서 올라 오는 산행로와 만나는 안부입니다. [청석재 가기전 봉우리] "예당고개"에서 "청석재"로 가는 사이에는 이름 모를 큰 봉우리가 있습니다. 이 봉우리를 넘어야 "청석재"로 갈수 있습니다. 산행로는 비교적 뚜렸하고 외줄기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청석재 가기전 봉우리에 있는 전망대] 청석재 가지전에 있는 이름 모를 봉우리도 아름다웠습니다. 운무만 없었으면 전망이 좋아 선명한 사진 촬영을 할수 있었을 텐데... [청석재 가기전 봉우리] 앞에는 천길 낭떨어지이고 쌍곡계곡은 잘 조망되었습니다. [청석재] 이름 모를 봉우리를 내려 오니 바로 "청석재"가 나왔습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12시 45분이었습니다. 서당말에서 약3시간 걸려 왔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정식으로 개방된 산행로입니다. "청석재"는 쌍곡계곡에서 "청석골"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 고개를 넘어 '청석골'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없고 쌍곡계곡 "떡바위"에서 "칠보산"을 오르는 산행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칠보산의 주 등산로" 입니다. [청석재] "청석재 이정표"가 서있는 뒤쪽 "보배산 능선"에서 왔습니다. 여기에도 "보배산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판이 있습니다. 칠보산 정상까지 600m라고 하는데 ... [청석재에서 '칠보산 가는 길] 이정표에는 "칠보산"까지 600m라고 표기해 놨습니다만 체감적으로는 훨신 먼 거리였습니다. 쉽게 볼 코스가 아닙니다. [안장바위] '청석재'에서 조금 오르니 "안장바위"가 나왔습니다. [안장바위] "안장바위"는 말 안장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인듯... 뒤로 지나온 "보배산 능선"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안장바위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보배산 능선'] "안장바위"에서 지나온 "보배산 능선"을 뒤돌아 봅니다. 오늘 산행을 실감하게 해 줍니다. 우리의 산행로는 도욱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많은 참고가 될것입니다. 글로 쓰는 산행기 보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진으로 보는게 더욱 확실합니다 [七寶山 오르는 길] "청석재 이정표"가 '칠보산'까지 600m라고해서 가까운지 알고 이번 오르막만 오르면 '칠보산'인줄 알고 올랐는데....정상은 그냥 쉽게 내 주지 않더군요. [바위 위로 뻗은 뿌리들] 칠보산으로 오르는 登路는 가파르기도 하지만, 赤松들의 나무 뿌리들이 암반위로 이리저리 지나가고 다양한 바위들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왔습니다. [중절모 바위] 조금 오르니 중절모를 닮은 "중절모 바위"가 나왔습니다. 중절모 같나요? [끈질긴 생명력] 암반위로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 뿌리들이 이리 저리 뻗어져 생명수를 끌어 올리고...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전혀 지루하지 않은 오르막을 오릅니다. [七寶山 마당바위] 여러 산행기에서 보았던 "칠보산 마당바위"가 나타났습니다. '마당바위' 뒤로 "칠보산 정상"이 보입니다. [七寶山 마당바위] '마당바위에서 동북쪽 방향의 "덕가산 산줄기"가 보입니다. 경치가 끝내 줍니다 [七寶山 마당바위에서 뒤 돌아본 "보배산 산줄기'] 뒤 돌아 보면 볼수록 "보배산"은 보배같았습니다.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마당바위'에서 한숨 돌리고 정상을 향해 갑니다. [岩盤 위의 무덤] 조금 올라 가니 정말 특이한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원~세상에 岩盤 위에 무덤을 만들어 놨습니다. 무덤은 거의 소실되어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는데.... 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岩盤을 파내어 암반 속에 안치했을까요? 아니면 가묘일까요.... 성묘 한번 하려면 이곳까지 올라야하는데 어찌 이런곳에 묘를 썼을까... [무덤같은 바위] 오늘은 보배산 오르는 중턱에서 철망을 씌어논 무덤을 보았는데, 기억나세요? 칠보산에서는 암반위에 있는 무덤을 보니 보이는 암봉들이 모두 무덤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바위는 진짜 무덤같지요? [?] 무덤을 만들려면 이런곳에 관을 안치하고 위에 봉분을 쌓으면 좋을 텐데...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막바지 정상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칠보산에서는 산객들을 제법 만날수 있었습니다.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어디쯤일까...정상은....하고 오르는데 [七寶山 정상] 아주 싱겁게 "七寶山 정상"이 나타났습니다. "七寶山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직진하면 "쌍곡폭포"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고, 우측으로 가면 "구봉능선"으로 가는 길입니다. [七寶山 정상석] "七寶山 정상석"은 칠보산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778m 높이 "七寶"는 일곱 가지 주요 보배를 말하는 단순한 단어인듯합니다만 일곱가지 보배가 무었이냐고 물으면 대답하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단순히 어렴푸시 "많은 보배"라고 느끼고 슬쩍 지나갑니다. 일곱가지 보배는 무었일까? [七寶山 정상에서 뒤 돌아본 "보배산 산줄기"] 오늘 여러 봉우리를 지나며 "보배산"을 뒤돌아 봤는데, "칠보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보니 "보배산"과 "칠보산"의 산줄기가 더욱 확연해집니다 앞 가운데 약간 흰 평평한 부분이 "칠보산 마당바위"입니다. [七寶山 정상에서 "구봉능선"으로 하산하는 길] 七寶山 정상에서 "구봉능선"으로 하산하는 길은 출입금지 지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곡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조금 어렵고 출입이 제한 된 곳이지만 "구봉능선"을 타고, "떡바위"로 내려 가기로 했습니다. [쌍곡폭포에서 오르는 登路] 쌍곡폭포로 내려 가려면 '칠보산' 정상까지 설치된 계단을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 가면 됩니다. 이쪽으로 가면 거북바위와 쌍곡폭포가 있습니다 [七寶山 정상에서 기념사진] 휘문고등학교 경기남부교우회 산악팀들입니다. 20명이 넘는데 오늘 산행에 함께하지 못한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七寶山 정상에 있는 이정표] [九峰능선] 九峰능선으로 나아가니 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 놨습니다. 하지만 재미없는 계곡길 보다는 비록 출입금지 지역이지만 구봉능선으로 갑니다. [九峰능선으로 하산] 처음부터 릿지코스입니다. 암벽을 타고 내려 갑니다. 네발로 하는 산행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힘도 덜듭니다. 네발로 힘을 분산 시키니까요 [九峰능선으로 하산] 아기자기한 암봉들을 타고 넘습니다. [九峰능선에 있는 奇岩怪石] 재미있게 생긴 바위들도 만나고... "七寶"는 불교적 용어로 '무량수경'에서는 금·은·유리·파리·마노·거거·산호를 이르며, '법화경'에서는 금·은·마노·유리·거거·진주·매괴를 이른다고 합니다. [九峰능선에 있는 안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안부도 만나고... 또한 "七寶"는 다른 용어로는 '전륜성왕'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보배를 말하는데 윤보, 상보, 마보, 여의주보, 여보, 장보, 주장신보를 이른다고 합니다. [九峰능선에 있는 奇岩怪石] 생각대로 생각하면 되고..... 제가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합니다만 불교용어들은 대부분 인도의 옛글자 '산스크리트語'를 한자로 音譯하고 음역된 한자를 다시 우리말로 音譯해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알수 없는 단어를 모르고 그냥 사용하고 있지요 "전륜성왕"에 대해 잠간 언급하자면, 한자로 "轉輪聖王"이라고 쓰는데 이 또한 산스크리트 cakra(輪)와 vartin(轉)이 합성되어 파생된 말로서 '자신의 전차바퀴를 어디로나 굴릴 수 있는' 곧 '어디로 가거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통치자를 뜻한 답니다. 간단히 이야기 해서 "전세계를 통치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九峰능선에서 바라본 남쪽방향 - 대야산] 남쪽으로 멀리 희미하게 "대야산 大耶山"이 "중봉"과 함께 보입니다. 지난해 9월에 "중봉"과 "대야산 大耶山"을 오르고 용추계곡으로 산행을 했지요 백두대간이 지나는 '대야산'입니다. [九峰능선을 버리고 계곡으로 하산] 九峰능선 중간에서 능선을 버리고, 계곡으로 떨어 졌습니다. 이 계곡이 "떡바위"에서 올라 오는 계곡이었습니다. [계곡 하산길] "떡바위 앞 계곡"도 다양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七寶"에 대한 또 다른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예가 있지요? 금, 은, 구리 따위의 바탕에 갖가지 유리질의 유약을 녹여 붙여서 꽃, 새, 인물 따위의 무늬를 나타내는 공예 또는 그 공예품을 "七寶"라고 하지요 [칠보산 하산 경로] 현재 내려가고 있는 산행로를 임의로 구성해서 보여드림니다. 원지도에는 '구봉능선'이 출입금지 구역이니 표기를 해 놓지 않았습니다. [계곡 하산길에서 내려다 본 "떡바위" 산행 날머리] ""떡바위" 산행 날머리겸 들머리가 보입니다. 좌측 '구봉능선'과 우측 청석재로 오르는 능선이 선명하며 "떡바위" 앞 팬션들이 보입니다. 그 뒤로 군자산이 보입니다. [슬랩] 계곡이라고 해서 물이 흐르는 계곡만 있는게 아닙니다. 슬랩구간도 있고.... [슬랩] 살슴 살금 슬랩구간을 내려 오고.... [떡바위로 하산하는 길] 계곡을 내려 갑니다. 알아두면 유식하다는 소리를 들을수 있는 흔치 않은 얘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고양이'를 왜 '나비야!'하고 부를까요? '고양이'를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양이의 어원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고양이'를 더 이상 분석해 보실 수 있나요? '고양 + 이'로 분석하시렵니까? '-이'가 붙는 단어가 많으니까 말입니다. '매미'가 '맴맴' 운다고 해서 '맴'에다가 접미사 '-이'를 붙여서 '매미'를 만들었으니까, '고양이'도 '고양고양'하고 우는 소리에다가 '-이'를 붙인 것은 아닌가 해서 위와 같이 분석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고양고양' 울던가요? 아니면 '야옹야옹'하고 울던가요? '고양이'는 어원적으로는 더 이상 분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절대로 '고양고양' 울어서 거기에다가 '-이'를 붙인 것이 아닙니다. '고양이'는 '괴 + -앙이'로 분석됩니다. 옛말에서 고양이는 '괴'였거든요. 그런데 이 '괴'는 '고이'로 발음되던 이중모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고이'와 발음은 같지 않았습니다.) '괴앙이'가 음운변화를 일으켜서 오늘날의 '고양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보통은 '나비야!'하고 부르는데, 이 '나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추측은 할 수 있겠지요. 고양이가 원숭이처럼 나무 등을 잘 타니까, 원숭이의 옛말인 '납'을 (지금은 잔나비, 또는 잰나비) 비유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은 금물입니다. 왜냐 하면 아직까지 그러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거든요 [떡바위로 하산하는 길] 절묘한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계단 시설] 새로운 시설들이 계속 산객들을 편하게 합니다. [떡바위 계곡 계단에서] 오늘 함께한 교우들은 경기남부산악회를 이끌고 나가는 열성파들입니다. ["떡바위" 산행 날머리]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떡바위"마을이 보입니다. [떡바위 계곡에서 족탕] 쌍곡계곡의 떡바위계곡에서 족탕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떡바위 산행 들머리겸 날머리] 다른 분들의 산행기에서는 이제까지 볼수 없었던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보입니다. [떡바위 앞 雙谷溪谷] 다리 위에서 "떡바위 앞 雙谷溪谷"을 바라봅니다. 말로만 들어 오던 "雙谷溪谷"을 직접 접하니 여름엔 피서를 오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자연이 살아있는 계곡인듯합니다 하지만 겨울의 문턱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큰 계곡이 아니군요. [떡바위 산행 날머리겸 들머리] 조금만 유명해 지면 그런곳엔 여지없이 화려한 팬션이 지어지고 규모가 큰 음식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쌍곡계곡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지어도 여름철엔 방 구하기가 어렵다고하지요? 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갈것이 아니라 이런 곳으로와서 가족들과 호젓한 산행도 즐기고 겨울 계곡도 음미하면 좋겠습니다. [떡바위] 앞에 보이는 넓직한 바위가 "떡바위"랍니다. 생각보다는 그다지 크지 않고 명성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보면 모두 저 물을 건너 떡바위로 산행을 시작했더군요. 지금은 멋진 다리를 놓아 길 찾기도 쉽고 건너기도 편리합니다. [뒤돌아 본 "떡바위 산행 날머리겸 들머리] "떡바위" 팬션 앞에서 지나온 계곡을 뒤돌아 보니 경치가 제법입니다. [떡바위에서 올려다 본 "七寶山"] "떡바위"에서 올려다 보는 "七寶山" 여인이 옷을 벗고 누워있는듯합니다. [떡바위에서 올려다 본 "寶賠山"] "寶賠山"의 모양이 쌍곡계곡에서 올려다 보니 또한 새롭습니다. 왼쪽 능선으로 올라야 할것을 가운데 봉우리 능선으로 올랐으니 경가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추억에 남는 "寶賠山"과 "七寶山"을 산행 했습니다. 특히 함께한 휘문경기남부교우회 교우들은 금지구역이나 길없는 곳으로의 산행이 처음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새로운 산행의 묘미를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떡바위에서 올려다 본 "君子山"] 조만간 "君子山"과 "南君子山" 종주를 할 예정입니다. 주로 겨울에 쌓여있는 눈길을 걷는 산행지로 유명하더군요. [구글어스로 본 산행 괘적도] 보배산을 붉은 선인 좌측선을 따라 "도마재"로 오르지않고 가운데 봉우리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측 "쌍곡계곡"으로 하산하지 않고 어려운 '구봉능선'과 "떡바위 앞 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 산행시작 : 오전 9시 50분 서당말 * 산행종료 : 오후 3시 45분 떡바위 * 총산행시간 : 5시간 55분 [뒷풀이] 괴산을 지나 증평으로 나와 증평시장 안 어느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산행을 함께한 교우 여러분들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길 빕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石城山 할미城山 遊山記 龍仁市廳-통화사-石城山-魔城터널위-할미城山-동백중학교 石城山을 넘어 할미城山으로 11월 7일(토) 내일 빗님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로 '계방지맥3구간' 산행이 연기되어 한주를 쉴수도 없고하여 가까운 곳으로 갑자기 산행계획을 잡았습니다 "한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경기도 龍仁의 鎭山인 '石城山'과 영동고속도로 상습 정체구간인 '마성 魔城터널' 위를 지나 '할미城山'으로 산행코스를 잡았습니다. 요즈음 날씨는 늦은 가을 날씨 답지 않게 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자주 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이 잔뜩 끼어 기분까지 음침하게 만들었습니다. [석성산 주변 지도] 오늘 산행코스는 붉은 선으로 "용인시청"에서 "동백지구" "동백중학교"까지 입니다. "漢南正脈"의 마루금을 대체로 걷는 것입니다. [산행 개념도] "漢南正脈"의 마루금은 "멱조고개(일명:메주고개)"로 통합니다만, 저는 일반 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따라 갑니다. "용인시청"에서 "통화사", "석성산 정상"을 오르고, "마성터널 위 "작고개"를 지나 "할미성산"을 다시 오르고 "향린동산" 정문 앞으로 난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를 통해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앞으로 갑니다. 거리는 약 10km정도로 대략 네시간이 걸렸습니다. [용인 시청] ‘山川開闢의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는 龍仁市廳 廳舍가 하늘을 찌르며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고로 크고 넓은 廳舍임을 자랑하며 솟아 있습니다. 아예 이름도 "용인행정타운"이라고 글자 그대로 '타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비아냥 소리를 들었을 법도 한 과도한 제집 만들기 행정관청은 근무지 사무실에 쏟아 부을 돈으로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하기를 기대합니다 갑작스런 산행으로 산행으로는 다소 늦은 오전 11시 30분에 "용인행정타운" 정문 앞에 내렸습니다. 일반 대중교통이 서울에서, 수원에서 분초를 다투며 다니기에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용인시청 본관앞에서 좌측] [용인 처인구 보건소] "석성산 등산로"는 "용인행정타운" 정문을 통해서 본관 앞으로 올라 갑니다. 그리곤 본관 앞에서 좌측으로 "용인 처인구 보건소" 건물로 갑니다. "보건소" 건물을 지나 나가면 도로가 나옵니다. [석성산 산행 들머리] "보건소" 건물 뒤에 "석성산 산행 들머리"는 찾기 쉽게 이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용인시청 본관 앞을 통과해 올것인지, 바로 이곳으로 올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하세요. 저는 초행길이라 시청본관 앞을 통해 보건소 뒤로 나왔습니다. [석성산 산행 들머리]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이 있고, 날로 발전하는 용인시 다웁게 세금이 많이 들어 온다죠? 그래서 이러한 문화 체육시설도 잘해 놨는가 봅니다. 제발 세금이 좋은 곳에 효과적으로 쓰여 지길 앙망합니다. 앞으로 오실 분들은 만남의 장소를 여기로 하면 편리하겠습니다. [산행 개념도] 조금더 확실하게 "석성산 산행코스"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제 이곳이 어디인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지시죠? 그러면 저와 함께 "석성산과 할미성산"으로 떠나 볼까요 11시 4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석성산 산행로] 용인시청 보건소 뒤 산행 들머리를 들어서면 이렇게 산행로가 잘 뚤려있습니다. 회색빛 콘크리트 도심 속에서 이렇게 自然의 맛을 느낄수 있는 山行路가 있다는 것이 용인시가 자랑 할수 있는 최고의 자랑거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큰 건물이 얼마나 많고, 인구가 얼마나 많고 하는 그런 것들 보단, 自然입니다. [첫번째 쉼터] 산행 들머리에서 약 15분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면 첫번째 쉼터가 나타납니다. 여기쯤 오면 약간 더워집니다. 두터운 겉옷은 여기서 벗어야 할것입니다. [첫번째 쉼터] "석성산"에 대해 안내를 하는 안내판이 있으며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와 고산자 김정호선생의 "대동여지도"등을 보여주며 친절한 설명인지, 용인 석성산의 자화자찬인지를 길게 해놨습니다. 山에 관심 없으신 분들은 뭔말인지 잘 모르는 大幹, 正脈, 枝脈등으로 설명해 놨습니다 제가 앞으로 산행을 하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해 드리도록하겠습니다. [두번째 쉼터로 가는 길] 용인시민들에겐 "건강 산행 코스"로 아주 적합한 코스라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숲으로 둘러 쌓여 조용하고, 낙엽들로 登路는 푹신푹신하고.... 첫번째 쉼터에서 두번째 쉼터까지는 매우 가깝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쉼터는 소개해 드리지 않습니다. [세번째 쉼터로 가는 길] 주말 가족 나들이에 최고!~ 주말이면 리모콘을 보물인양 거머쥐고 소파 위에서 뒤적거리며 채널 돌리기 하다 와이프와 말다툼이나 하시는 분들은 아이들 데리고 "석성산"으로 오세요 산이 시시껍질하다구요? 천만에~ 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 보시면 아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올겁니다. ㅎㅎ 꼭 높고 험준한 산을 가야 산을 가는건가요? [세번째 쉼터] 첫번째 쉼터에서 약15분 쯤 오르면 두번째 쉼터가 나옵니다. 두번째 쉼터에서 다시 10분쯤 가면 세번째 봉우리이자 쉼터가 나옵니다 정상까지 2km가 남았다는 친절한 안내가 보이는데, 초보 산객들은 아마도 여기쯤에서 물도 마시고, 휴식도 약간은 취해야 할것입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 登山路라고 해서 마냥 오르막만 있는게 아닙니다. 조그만 봉우리를 하나 오르면 다시 조금 내려 가고를 반복하면서 점차적으로 정상을 향해 감으로 석성산 산행은 건강산행코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메주고개 갈림길] 세번째 봉우리이자 쉼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메주고개"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漢南正脈" 마루금을 만나 마루금을 따라 "할미산성"까지 갑니다. "메주고개""멱조고개"라고 더 알려져 있는듯한데, 여기서는 "메주고개"라고 해 놨군요. 이 고개는 용인정신병원에서 용인시내로 들어 오는 고갯마루를 말하는 것인데, 한남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은 대부분 "멱조고개"라고 합니다. 이 고개에 얽혀있는 전설은 석성산 '군부대봉'에 올라 알려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메주고개 갈림길에서 바라본 '석성산 정상'] '메주고개 갈림길" 봉우리에 올라서면 드디어 "石城山 정상"이 보입니다. 제법 멀리 보이지만 2km가 채안되는 거리이니 염려할바는 못됩니다. 오늘 산행 중에서 저 '석성산 정상' 올라 가는 짧은 구간만 된비알입니다. [석성산 군부대-통화사 갈림길] '메주고개 갈림길"에서 다시 조금 전진하면 시멘트 포장 도로를 만납니다. 여기는 조금 중요한 곳이므로 설명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1.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軍通信部隊입니다. 원래 이 코스가 "漢南正脈" 마루금이며 쉽게 석성산 정상으로 갈수 있는 길이지만 軍通信部隊가 진을 치고 있어 갈수가 없습니다. 2. '석성산 정상'으로 쉽게 가려면 오른쪽 "통화사"입구로 가야합니다. 다시 말해 이 길은 군부대 우회로인 것입니다. [석성산 군부대-통화사 갈림길] 3. "통화사" 입구를 통해 "통화사 석탑삼거리"까지 가서 석성산 정상으로 쉽게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軍通信部隊 정문 앞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 "멱조고개", 즉 "메주고개"를 비롯해 용인시내와 지나온 산줄기를 조망하고 싶으신 분들은 "통화사 입구"로 가지 않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군부대쪽으로 약50m올라 갑니다. [석성산 군부대봉 가는 길] 4. 약50m쯤 올라 가면 오른쪽으로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은 등산로가 나옵니다. "漢南正脈" 마루금입니다만 軍通信部隊 정문까지만 갈수 있습니다. [석성산 군부대봉-통화사 갈림길] "漢南正脈" 마루금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Y자 삼거리가 희미하게 나옵니다. 왼쪽으로 군부대봉을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야합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통화사 입구 진입로"를 다시 만납니다. 이곳을 잘 기억해야 길을 잃지않을수 있읍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옛날 석성산 정상에는 한양 남산 봉수대와 통하는 "봉수대 烽燧臺"가 있었답니다. 지금은 초현대화된 軍通信部隊가 정상을 점령하고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석성산'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通信의 요충지임을 알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군부대 정문의 초병에게 길을 물어 이곳에서 용인시내를 조망하고 다시 아까 "통화사 진입로 갈림길"을 통해 "통화사"로 갔습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전망봉] 軍通信部隊 정문 앞에는 이러한 전망 봉우리가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 보고 가시기 바람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전망봉에서 본 지나온 능선] 軍通信部隊 정문 앞 전망봉에서 오늘 지나온 산줄기를 모두 볼수가 있었습니다. 雲霧가 껴서 희미하지만 그래도 용인시청이 멀리 보이고, 지나온 산줄기가 "龍仁'을 상징히는 의 몸체같이 꾸불거리고 있습니다. ['멱조고개' 방향] 軍通信部隊 정문 앞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漢南正脈" 마루금인 삼가리 '멱조고개', 일명 '메주고개"방향을 내려다 봅니다. 수원,신갈,동백지구에서 용인시내로 들어 오는 고개입니다. 지금은 편리한 자동차 교통을 위해 고갯길은 절개되어 큰 고개가 아닌듯 하지만, 길이야 어찌됐든 옛부터 내려오는 전설 속에 '멱조고개'는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답니다. 42번국도 멱조고개 뒤쪽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용인대를 감싸고 있는 "부아산 負兒山"입니다. "부아산 負兒山"도 한남정맥을 이루는 산중에 하나입니다. ★負兒山(부아산)과 覓祖峴(멱조고개) 효부이야기★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저 건너편 부아산(負兒山)에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이되어 찾아 나서다가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답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합니다. 이후 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 것을 걱정하여 겉으로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멱조고개 覓祖峴"는 이렇듯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연과 함께 '찾을 멱覓,할아버지 조祖,고개峴'으로서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데서 연유했답니다 그리고 '부아산 負兒山''업을 부負, 아이 아兒'로서 아이를 업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줌인한 삼가리 '멱조고개' 방향]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했다고하는 "멱조고개覓祖峴"을 줌인해 봤습니다 지금은 폭 넓은 차선의 큰 길로 쭉 뻗은 포장된 길이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예전에는 편도 1차선 도로로 꾸불꾸불 굽은 길이었습니다. 수원에서 인천까지를 연결하는 "水仁線 수인선"과 함께, 우리나라 첫 협괘열차인 수원에서 여주까지 연결하는 "수여선 水驪線"철도가 운행됐던 "멱조고개". 이 "멱조고개'는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운영하던 것으로 주로 이천쌀과 소금을 운반하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1930년 개통해 삼박골과 김량천교를 건너 용인으로 들어갔던 이 열차는 새로운 교통 메카니즘에 밀려 1972년 적자운영으로 모습을 감췄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 "멱조고개"가 높고 가파라 열차가 걷다시피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개를 절개하여 평평하고 큰 길이 새로 났으며, 성능 좋은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더더욱 그 길 위로는 고가도로에 첨단 모노레일 경전철 공사를 하고 驛舍를 짓고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경전철이 곧 완공 된다고하지요? [통화사-석성산 가는 길] 軍通信部隊 정문 앞 봉우리에서 조망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내려 옵니다. 그리고 軍通信部隊 봉우리의 옆구리를 따라 우회하여 갑니다. [통화사-석성산 가는 길] 그러면 아까 "통화사 입구 삼거리"에서 오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다시 만나고 "통화사"로 갑니다. [사당] "통화사"로 가는 중간에 사당이 하나 있습니다만, 안내판이 없어 누구의 것인지 모릅니다. [통화사 앞 '석탑삼거리'] 오후 1시 15분에 통화사 석탑삼거리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용인시청 들머리에서 1시간반이 걸렸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바로 "석성산 정상"으로 가는 登路입니다만, 여기까지 왔으니 "통화사"는 구경하고 가야겠지요? 오른쪽으로 가면 "통화사"로 갑니다. 아주 가깝습니다. 50m정도.... [통화사 석탑] 왜 "석탑삼거리"라고 했는지 이제 확실히 아시겠죠? 최근에 만든듯한 석탑이 하나 서 있고 우측은 주차장입니다. 이곳까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차량이 다니고 있다는걸 증명합니다. [통화사] 특별히 알려 드릴만한 얘깃거리가 없는 '통화사'도 제법 큰 절이더군요. 중요한것은 "석성산 石城山"이라는 地名이 이 있는 산 山이라는 것인데 그 城을 돌로 쌓은 城이라고 "석성산 石城山"이라고 한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이 있는데 그石城東門이 이 절 앞에 있었다고 합니다. [통화사] 특별히 할말이 없습니다 [석탑삼거리 '석성산 등로'] '통화사"에서 나와 다시 "석탑삼거리"로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조금 가파른 된비알을 오릅니다. 여느 산이나 정상부근은 경사가 가파른 깔닥고개가 있지요. [석성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石城山 정상부근에 오니 이제서야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샘터로 가는 길] 정상 바로 애래에는 샘터가 있었는데 샘터로 오르는 길입니다. [정상 아래 샘터] 저 위가 샘터가 있는 쉼터입니다. [정상 아래 쉼터, 샘터] 산성은 석성산 7부 능선에 축조됐다고 합니다. 산성축조에 필요한 석재도 널려 있는데, 군사들의 주둔을 위한 필수조건인 물이 있어야하는데 석성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샘"이 있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산객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이곳이 옛날 고구려시대에는 천연의 요새였겠지요? 현재는 이곳에서 산악인들이 매년초에 시산제를 지내는 곳으로 유명하다군요. [샘터] [정상으로 올라 가는 길] 城안에는 5개의 샘터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 할수 있는것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수질이 좋지않아 마실수 없다는 경고판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샘 위에있는 군부대 때문이 아닐까?? 이 샘에는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샘은 서울에 사는 벼슬아치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실 명당을 찾아 지관과 용인을 지나다가 석성산에서 명당을 발견하고 이곳에 묘를 쓰려고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날을 잡아 가묘를 쓰려고 땅을 팠더니 그 속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다는군요. 그 물이 그치지 않고 솟구쳐 산 아래는 홍수가 났답니다. 과장이 좀 심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벼슬아치는 크게 놀라 지관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산 형상이 호랑이 형상인데 호랑이의 눈인 눈물샘을 건드려 물이 쏟아진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냥두면 산 아래 마을에 물난리가 난다며 이일을 막으려면 저기 큰 바위로 막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위의 큰 바위로 물을 막았다고 합니다. 위에 누르고 있는 바위 보이시나요? 그러자 물은 막히고 바위틈에서 조금씩 물이 흘러 지금의 약수터가 됐다고 하는군요. ㅎㅎ [석성산의 유래] 사진 속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친절히 요약해 드리면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만든 성이라 추측된답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인 계단을 오릅니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더 이상 올라 갈곳이 없어 집니다. [석성산 정상 헬기장] 계단을 올라 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왼쪽 남쪽으로는 軍通信部隊가 점령한 봉우리가 있고... [石城山 정상] 헬기장 오른쪽으로는 석성산 石城山정상이 보입니다. "용인8경" 중에 제1경이 이곳 석성산 정상에서 日出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石城山 정상] 정상에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촬영했습니다. 구름이 잔뜩낀 날씨에도 산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군요. "용인8경" 중에 제2경은 "어비낙조"라고 합니다. 저의 산행기 "쌍령산-시궁산-미리내"를 참고 하시면 "어비낙조"에 대해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용인의 "시궁산"에서 "어비리"에 있는 저수지에 비치는 洛照를 말합니다. 저는 실제 봤는데 멋있더군요. 오후4시 이후 "시궁산"을 올라 보세요 [石城山 정상] 石城山 정상에는 정상석과 망원경까지 설치해 놨습니다. 더욱 독특한것은 '구급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산에서는 볼수 없는 것인데.... 石城山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1시 30분에 도착했으니 1시간 45분 걸려서 올랐습니다. [石城山 정상석] 471.3m 높이를 알려주는 石城山 정상석 [石城山 정상] 석성산 정상에는 가족끼리 오른 팀이 많았습니다. 정상에서 먹는 것들은 모두 맛있지요 땀 흘리며 오르지 않은 이들은 절대 느낄수 없는 맛입니다. 모두 정상에 올라 건강도 챙기고, 기막힌 이 맛도 느껴 보시길.... 그리고 새벽에 올라 日出광경을 감상하시기 바람니다. 용인8경중에 제1경이라하니... 저도 시간나면 한번 오겠습니다. [石城山 정상에서 바라 본 '할미산성'] 石城山 정상에서 조망해 보겠습니다. 먼저 북쪽으로 앞으로 가야할 "할미城山"과 그 뒤로 희미하게 "향수산"이 보입니다. '향수산' 뒤로 조측에 "법화산"이 쬐끔 보이는군요 앞에 보이는 능선이 "漢南正脈 마루금"입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입구가 보입니다. [용인 '동백지구'] 서쪽으로는 "동백지구"가 펼쳐지는군요. '용인행정타운'을 비롯해 '멱조고개'부터 '어정리'를 지나 '판교'로 이어지는 길 곳곳은 최근 입주한 "동백지구"로 연결되며 그길옆에는 온통 대규모 아파트들이 마천루처럼 솟아있습니다. 그러니 옛'영남대로'를 비롯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는 명당은 모두 용인에 있다고 하던 그 땅 구석구석에는 향수어린 정겨운 아름다움은 찾아 볼길 없고.그 정취는 간곳 없이 황막합니다. 옛날 그 마을 이름들은 지금의 아파트단지 이름으로 변했고, 마을 앞을 지키고 서있던 장승들은 간곳없고 장승들이 있던 길목엔 대형마트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삭막함과 애절함을 뒤로하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삼으려면 "석성산"에 올라 보시라~ 自然이 왜 보존되어야 하는지를 조금이라도 느낄수 있으리라~ 그리고 "석성산"에서나마 自然을 만끽하시라~! [영동고속도로 '용인 I.C.'] 동북쪽으로는 영동고속도로 "용인 I.C."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날씨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찰영하지 못해 아쉽군요 [石城山 下山] 석성산 정상에서 하산을 합니다. 가파른 곳에는 계단을 설치해 놔서 산행하기에 불편이 없습니다. 앞에 보이는 강아지도 석성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 갑니다. 누구나 즐겁게 오를수 있는 석성산입니다. 지금까지 올라 볼까 말까 망서리시던 분들은 이제 자신감을 갖고 오를수 있겠지요? 저한테 고맙다고 하셔야 하는데 돈은 받을수 없고..ㅎㅎ 댓글이나 달고 가세요 [동백지구 '호수마을' 산행로 갈림길]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동백지구 호수마을"과 "마성터널"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동백지구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이곳으로 건강 산행을 하더군요. 앞 사진의 강아지도 이곳으로 올랐더군요. 그 강아지도 오르니 왠만한 사람은 모두 오를수 있습니다. [뒤돌아 본 石城山] 다음 봉우리에 와서 "석성산 정상"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쪽에서 보니 삼각형이군요. [점심식사] 정상에서 볼때에 바로 앞에 볼록 솟은 봉우리에 와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좋은 자리는 다른 분들이 이미 차지했더라구요. 50분 정도 식사와 휴식을... [ 마성 I.C.와 향수산] 식사후 마성터널 방향으로 내려 가면서 조망합니다. 앞에 보이는 길이 옛'영동고속도로'이고, 그 뒤로 '할미성산'과 "향수산"이 보입니다. 틈나면 "향수산"도 한번 가보고.... 앞으로 시간 날때 "할미성산"에서 "88 C.C.클럽하우스"와 "향린촌" 사이 지맥 분기점으로 가서, "법화산"을 지나 "불곡산"으로 가 "태재"에서 끝나는 "검단지맥 1구간"을 갈 예정입니다. 2구간이 "태재"에서 '남한산성"까지이고, 3구간이 "남한산성"에서 "은고개"를 지나 "용마산" "고추봉" "검단산" "팔당댐앞"까지인데 1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2~3구간들은 이미 종주 한바있습니다. ['동백지구'와 '할미산성' 갈림길] 동백지구 산행로가 한군데 더 있습니다. 마성과 할미산성은 계속 직진입니다. 길은 외줄기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漢南正脈] 호젓한 석성산 산행길 漢南正脈 마루금을 밟으며 어렵지 않게 내려 갑니다. 漢南正脈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분기하여, '안성의 칠장산'으로 금북정맥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칠장산에서 금북정맥과 헤어져 북서진하여 용인의 문수산 부아산 멱조고개를 지나 석성산과 할미성산을 하늘로 솟게하고, 수원의 광교산을 지나고, 인쳔의 계양산을 다시 지나, 김포반도의 끝 김포 문수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줄기 중에 하나입니다. 漢南正脈은 글자 그대로 "한강"의 남쪽 산줄기입니다. [작고개] [마성 톨게이트]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성고개"라고 하는 "작고개"가 보이고 "마성 톨게이트"도 가깝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성 톨게이트] "에버랜드" 출입구 같은 "마성 톨게이트"를 줌인해 봤습니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볼수 없는 독특한 톨게이트입니다. [작고개 - 마성터널 위 석성산 날머리] "석성산 산행 날머리"인 "작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 고개는 원래 ‘잣고개’로 잣나무로 만든 배가 지나갔다는 전설과 잣나무가 많았다는 고개로 한자로 "백현 栢峴"이라 합니다. 동백지구에 "백현"은 한자로 "백현 柏峴"으로 전대리에서 어정으로 넘던 고개라고 합니다. "잣고개"의 栢峴은 "잣마무 "이며, 동백지구 柏峴은 "동백나무 "이니 혼동하지 마시기 바람니다. 오후 2시 40분에 도착했으니, 석성산을 종주하는데 약3시간이 걸렸습니다. 식사시간이 50분 정도였으니 실제 걸은 시간은 2시간 10분이 되겠습니다. [石城山 들머리겸 날머리] "石城山 들머리겸 날머리"에는 "마가실 서낭"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할미성 원주 대동굿 보존회가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실 서낭' 표지석 뒷면] '마가실 서낭'은 원래 '터키군참전기념비'가 있는곳에 커다란 서낭목과 돌무덤으로 있었는데, 과거에 서울로 가던 행인이 삼남대로로 갈때 무사안녕을 빌던 곳이랍니다 "대동굿"에 대해 공부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대동굿"은 온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펼치는 굿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도당굿"과 같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용인 할미성 대동굿은 일반적인 경기도 도당굿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마을의 풍장패가 길놀이 풍물굿을 먼저 친 다음 他洞에서 동참하기 위해서 오는 풍물을 맞아 들이는 것이 색다른 모습인데 그 규모가 크다고 하여 "대동굿"이라 부른답니다. "할미성 도당굿"은 용인 석성산 산신령(魔姑仙人)을 받들어 모시고 내려와 모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한마당 "대동굿"을 펼치는 화합의 굿판으로 용인에 거주하는 무당 "전옥기"씨(女)에 의해서 수 년 동안 진행되다가 중단되었던 것을 그의 신아들 남무(男巫) "유성관"씨에 의해 보존 계승되고 있다합니다. *yahoo blog posbackho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굴다리] "영동고속도로"가 터널이 뚤려 이 "작고개"로 넘나드는 차량이 많지 않다 하더라고 고속도로는 고속도로이니 무단횡단하는것은 위법이며, 무엇보다 매우 위험합니다. 석성산 날머리인 "마가실 서낭 표지석" 앞에는 "영동고속도로 밑으로 지나 갈수 있는 왼쪽으로 굴다리가 있습니다. 반드시 이 굴다리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사진의 왼쪽에 '터어키軍 참전기념탑"이 보여서, 저곳으로 가 구경을 하고 다시 이곳으로 와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려고 합니다. [터어키군 참전 기념비] 자세한 내용은 사진 속의 설명을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터어키군 참전 기념비] 머나먼 이국땅에 까지 와서 왜 이토록 목숨을 바치며 싸워야 했는가 저들이 목숨 바치며 도와 준것을 그냥 잊고 살지는 않는지.... 전세계 역사 속에서 2,000,000여명이라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6.25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전쟁은 없어야 할텐데.... ['할미산성' 들머리] '터어키軍 참전 기념비' 고속도로 건너편에 "할미城山" 오르는 들머리가 보입니다. '한남정맥' 마루금이기도한 들머리임으로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앞의 '영동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할 필요없이 아까 '석성산 날머리' 옆에 있는 고속도로 밑의 굴다리를 통해서 건너편으로 건너면 비교적 안전합니다.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 [마성 톨게이트] 지하통로인 굴다리를 지나갑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마성 톨게이트"가 나옵니다. [마성 톨게이트에서 뒤돌아 본 '石城山'] '마성 톨게이트"에서 뒤 돌아 본 '石城山'과 한남정맥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할미성산' 산행 들머리] "할미성산" 산행 들머리는 영동고속도로 옆에 안내판도 없이 있습니다. "양보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올라 갑니다. 저의 山友가 올라 가는게 보이시죠? 오후 2시 50분에 "할미성산 들머리"를 오릅니다 [할미城山 오르는 길]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할미성산을 오릅니다. 제가 "할미성산"이라고도 하고 "할미산성"이라고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山을 지칭할때에는 할미城이 있는 山이라 할미城山이라하고, 을 강조할때엔 할미山에 있는 城이라 할미山城이라 하는것이니 구별해서 사용해야합니다. [할미山城] '할미城山' 들머리에서 약10분 정도 오르면 바로 할미山城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城인지 뭔지 모르고 보는데 가까이 가면 城임을 알수 있습니다. [할미山城 城壁] [할미산성은 사유지] "할미山城 城壁"이 윤곽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게 뭔 금지판입니까?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곳 "할미城山" 땅의 대부분이 "향린촌"이라는 곳의 사유지이더군요. 아무리 사유지라 해도 특별히 사람의 출입을 금지할 필요도 없는, 오히려 많이 와 달라고 홍보해야 할것 같은데 땅 많다고 땅 자랑하는지 '땅 땅'거리며 출입금지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허~참~ [할미山城] 어느 분이 출입금지판을 보고 읊은 글이 있어서 소개해 드림니다. "할미성산 오름길 성터를 막은 무지함이여 네 털 난 양심을 모아 이룬 가시 철망이 무섭고나 이 땅에 만들어진 私有란 본디 모든 이의 자유를 다치지 않아야하는 법이거늘 어찌하여 문화 유적의 길 마저도 홀로 차지하려는고.. 정의란 재능의 차이를 인정하고, 기회의 균등에서 나오는 법이거늘 어찌하여 조금 앞선 기회로 도덕을 무시하느뇨 오늘날 정의란 罪를 벌하고 功을 상주는 것만이 아닐터.. 공평하게 나누어 살게하고 제 몫은 되돌려 주어야 정의로운 법 저 개발의 일터에서 조금 힘들어도 맥길 살리는 지혜가 아쉽구나 어찌하여 그리도 잘 난 자들의 재산만 보호하는 자유주의런가.. 내 삶이 저리도 바쁜 길을 따라 오고 가야 하건마는 나는 내 영혼의 길을 잃고 또 어디서 그 길을 보상받을 수 있을꼬.. 원래 있었던 그 자연의 길을 찾아 헤매는 발길이 안스럽다" [할미山城] 뚜렸한 城郭의 흔적을 보며 할미성곽 입구에서 약15분 정도 오릅니다. 오늘 '할미山城'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할미城山 정상] 오후 3시 15분 '할미城山'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들머리에서 고작 25분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참 쉽지요~이-ㅇ '할미城山' 정상에는 할미산성의 유래 안내판이 있으며,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할미산성 개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아마도 "할미山城"을 개축 하려는가 봅니다. [할미城山 정상] 또한 정상에는 "한남정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걸려있으며, "향수산"까지 3.3KM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는 삼국지 산우회 표지판도 있습니다. 감사 [할미山城 유래] "할미山城 유래"에 대해서는 사진 속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모두 쓰잘데 없는 불확실한 이야기들이고,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만 알면 되겠습니다. [할미山城] 할미山城의 西쪽에는 성벽이 확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 진것이 이렇게 남아 있다니 놀랍습니다. [할미山城 下山] 내려 가는 길입니다. 사진은 않올립니다만, 이 능선에 "향린촌"에서 설치한 쓸모없는 철조망이 끝없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의미없는 철조망 - 오히려 이 철조망 속에 사는 자기들을 옭아 맨 철조망이었습니다. 그러면 "향린촌"이란 어떤 곳인가? [운동시설] '향린촌"은 우측 산골자기와 능선에 걸쳐 있는데 넓이가 76만344㎡이라고 하며, 단독주택과 빌라 300여 가구가 한가로이 들어서 있고, 야외 수영장과 테니스장, 운동장 등이 갖춰져 있어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할미城山 거의 대부분이 "향린촌" 소유라고 합니다. [이정표] 이곳에서 "향린촌" 사이의 포장도로로 '한남정맥길'을 가는데 저는 바로 "향린촌" 정문 앞으로 하산했습니다. [산행 날머리] '향린촌" 정문 입구와 "동백지구"로 나가는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로 내려 갑니다. [날머리에서 바라본 '石城山'] 새로히 영동고속도로를 2배로 확장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이곳에 "동백지구" 인터채인지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멀리 "石城山"이 용인의 진산 다웁게 우뚝 서 있습니다. [동백지구-향린촌 갈림길] 동백지구로 가는 굴다리 사거리가 앞에 보입니다. 사거리의 좌측이 "동백지구"로 가는 굴다리가 있는 곳이며, 우측이 "향린촌" 정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향린촌 정문] "향린동산"의 개발 역사는 무려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1970년 향린교회 교인 30명을 포함해 초기 회원 100여명이 개인당 회비 30만원씩 걷어 자금을 마련한 후 황무지였던 야산을 개간해 지금의 향린동산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정문의 경비 아저씨에게 물으니 현재 이곳에 사는 사람중에 수준이 가장 낮은 사람이 변호사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왕년의 군사정권시절의 실세였던 사람들이 주로 산다는군요. 완전히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자기들 끼리만 옹기종기 산다고 합니다. 누가 누구를 통제하는가!~ 들어 오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너희들도 나오지 마라~ [동백지구로 가는 영동고속도로 굴다리] 고속도로 굴다리로 나오면 "바로 "동백지구 아파트촌"입니다.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굴다리 앞에는 "동백중학교"가 있습니다. 3시 55분에 도착했습니다. 용인시청에서 이곳까지 4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식사시간 50분 포함) [동백지구에서 바라본 '石城山'] 동백지구 아파트촌 바로 옆에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자주 이용할수 있겠군요. [동백지구 중앙로] 동백지구 중앙로에 나와 치킨에 생맥주로 목을 추기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山友이며 외과의사인 "홍도토리님"이 제가 자기 동네에 왔다고 퇴근과 동시에 불이 나게 뛰어 왔습니다. 함께 시원한 쏘맥을 하며 동백지구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산행괘적] 이해가 쉽습니까? [동백지구 탁구 동호회 회원님들과...] 山友이며 외과의사인 "홍도토리님"은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모임의 회원이더군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도 많은 '파란문'은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모임 회원님들의 환영을 받고 늦게까지 한잔했습니다. 福도 많지요? ㅎㅎㅎ 모르는 사람을 알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여러분들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운동 계속하시며 건강도 챙기고 또한 두터운 이웃 사랑을 일궈나가시길 바람니다. 그리고 이 산행기를 참고하시어 앞으로 "石城山" 산행을 많이 하시기 바람니다 "石城山"은 여러분 곁에 있는 여러분들의 산입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大邱 八公山 遊山記 수태골입구-동봉-비로봉-삼성봉-서봉-수태골 저수지 八公山 낮과 밤을 묶어 하루라 하듯 즐거움과 괴로움을 묶어 인생이라한다니 그러니 이렇게도 살아 보고 또 저렇게 뒤집어서도 살아 보자 인생살이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 알아 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산에서 그런 즐거운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화려한 색갈로 터질것같은 팔공산에서 일어 난다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뛰어 가지 않을까요? [동대구역] 10월 18일(일) 오전 9시 14분 살면서 비교할수 없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나와 다른 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면면을 느끼는 것이니 오늘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 팔공산에서 하루를 함께 하고자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렸습니다. 날씨까지 도와줍니다 [동대구역] 정말 오랜만에 대구에 왔습니다. 십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동대구역은 크게 변한게 없는듯 하지만 감회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이렇게 이런식으로 다시 대구에 올줄은 몰랐으니까요. 모든것이 즐거운듯 동대구역은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팔공산] 대구 올뫼 산악회가 저를 팔공산으로 초대해 주었답니다. 대전 정암 카페와 함께 이번에는 대구 팔공산에서 하루를 보내며 이 가을의 깊은 맛을 느끼며 소풍같은 산행을 하려합니다. 팔공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팔공산'을 촬영했습니다. 팔공산 능선은 꽤 길었으며 대구의 진산 다웁게 높이와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팔공산 동화사로 가는 길] 팔공산 동화사로 올라 가는 진입로는 연인들의 드라이브코스로 손색이 없이 이제 새로운 야한 옷으로 갈아 입으며 도열해 있는 가로수들이 산객들을 어서 오라고 반기고 있습니다. [팔공산 동화사, 케이블-카 타는 입구] 동대구역에서 약30분정도 걸려 '팔공산 동화사'입구에 왔습니다. 주차장은 물론 도로 양쪽에는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으나 '팔공산 케이블-카'를 타는 이곳 '동화사' 입구는 한산 했습니다. 왠일인지 알아 보았더니 이곳에서는 '팔공산'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많지 않고 '수태골'로 주로 오르기 때문이랍니다. [수태골 - 등산로 입구] '동화사, 케이블-카' 입구에서 조금 올라 가니 "수태골" 등산로 입구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곳에서부터 팔공산 산행을 시작하더군요. 동화사 입구에서는 문화재 관람료 2,500원을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등산로는 이곳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랍니다. [팔공산 등산코스 안내도] 붉은 선이 오늘 산행 하는 코스입니다. 산행 거리는 약 10km 일반적으로 약 5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만, 오늘 우리는 유유자적 7시간을 걸으며 소풍을 즐겼습니다 [산행 시작] 오전 10시 3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八公山은 大邱의 진산으로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있는 규모가 매우 큰 산입니다 그래서 팔공산을 제대로 알려고 한다면 약18km정도되는 팔공산 산줄기를 종주해야 한다고 합니다. 최소한 '한티재'에서 파계재-파계봉-톱날바위-서봉-오도재-비로봉-동봉-염불봉-태실봉- 인봉-노족봉을 지나 '관봉'까지는 가야 팔공산을 올랐다고 할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수태골입구에서 동봉-비로봉-서봉을 오르고 서봉 아랫쪽 암봉능선을 따라 내려 오려고 합니다. [수릉봉산계 표석 - 綬陵封山界 標石] 제가 이제까지 여러 산을 돌아 보았으나 이런 標石은 처음 봅니다. "綬陵封山界 標石"이라고 하는데 '綬陵'은 조선왕조 헌종의 어버지인 "익종"의 릉을 말한답니다 '封山界'는 '綬陵'의 유지관리와 제사에 쓰이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이 산의 산림자원을 이용하여 그 비용의 확보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과 벌목을 막으려고 출입금지를 시키는 경계선 임을 알리는 푯말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왕릉 보존 비용을 이산의 나무를 팔아 조달함으로 여기 들어 오지 말라는 출입금지 표지판입니다. '팔공산'은 옛날엔 들어 가면 안되는 산이었군요. [슬랩 - 암벽등반 연습장] 25분쯤 평탄한 길을 오르니 암벽등반 연습장이라는 '슬랩'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연습하는 클라이머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넓적바위' 오르는 등로] 고도가 높아 질수록 나뭇닢은 화려한 색깔로 변해 갑니다. 자연의 섭리 인간은 추워지면 옷을 입는데 나무들은 거꾸러 옷을 벗습니다 그런데 나무들은 옷벗기 전에 이렇게 야한 색깔로 주면을 한번 유혹하고 벗지요? 옷벗는 것만 보자면... 어찌보면 인간이랑 별로 틀린게 없는듯하고.... 그래서 산은 남성이라기보다는 여성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넓적바위' 쉼터] 우리들은 산행중에 주로 넓은 바위가 나타나면면 쉼터로 이용하지요, 그리고 넓은 바위를 '마당바위'라던가 '멍석바위', '거북바위'등으로 부르는데 이곳의 넓은 바위는 대구 지방의 터프한 말투 다웁게 "넓쩍바위"라고 하더군요. ㅎㅎ 하여간 넓은 바위가 50분 정도 걸은 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줍니다 여기서 잠시 쉬며 과일도 먹고.... ['동봉, 서봉 갈림길] 12시 정각에 "東峰"과 "西峰"으로 갈라지는 약숫터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약숫터는 가뭄으로 메말라 약숫물을 볼수 없었습니다. 좌측으로 올라 가면 "西峰"으로 바로 간다고합니다만, 우리는 오른쪽으로 "東峰"을 오르고, "비로봉"을 거쳐 "西峰"으로 갈 예정입니다. [안부 - 동학사에서 오르는 직코스] 이 안부가 중요한 지점이 되겠습니다. 이 산줄기는 "팔공산 케이블-카"가 오르 내리는 곳의 능선이며, '동화사'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동화사와 케이블-카에서 올라 오는 산객들과 합류하는 지점이므로 이곳부터는 더욱 많은 산객들로 붐볏습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정상부근에 오르니 암벽들이 산의 모양을 바꾸어 줍니다. 단풍은 점점 더 화려해 집니다.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곡은 모두 잘 아시는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라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기의 추억"으로 더 알려져 있지요 그럴듯한 창작 가곡 한곡없던 시절에는 이런 외국노래를 번안하여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래를 부를때엔 이런 노래가 우리 전통 가곡인줄 알았지요. 평안하고 풍성할 틈이 없었던 시절까지 너무 어렵게 살아 노래를 부를만한 여유가 없었을테니 우리에 맞는 가곡을 창작해 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동안 전해 내려 오는 노래라 해봐야 거의 한맺힌 타령이 많았으니 이런 외국곡이라도 번안해서 현대적 음악세계를 접하는 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메기의 추억"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이 곡은 캐니다의 시인 '조지 존슨'이 1866년에 '단풍잎'이라는 시집을 통해 발표한 詩입니다. 이 詩는 '조지 존슨'이 일찍이 사별한 부인 '메기 클락'에 대한 추억을 그린 것이지요. '조지 존슨'은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토론토대학 교수로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이 학교에서 운명은 시작됩니다. '메기 클락'은 '조지 존슨'의 제자 였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사랑을 하게 되고 급기야 약혼까지 합니다. 그들은 자주 '메기 클락'의 집 근처 개울가에서 데이트를 즐겼고, 1864년 10월 결혼해서 오하이오주의 클리브랜드로 이사를 하고 '조지 존슨'은 그 곳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랑하던 '메기'는 결혼한지 1년도 못되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꽃다운 나이 겨우 24살때였습니다. '메기'를 잃고 난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 '조지 존슨'은 '메기'와의 추억이 어려있는 클리브랜드를 떠나서 다시 캐나다의 토론토로 돌아옵니다. '조지 존슨'은 사랑하는 '메기'에 대한 추억과 애상을 시로 써 냈으며,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친구 '제임스 버터필드'에게 이 아름답고도 슬픈 詩에 알맞은 멜로디를 붙여 줄 것을 부탁하는데, 그 詩를 '버터필드'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이 노래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메기의 추억' 입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않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동산수풀 없어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않아서 놀던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지금 우리는 늙어지고 메기 머린 백발이 다 되었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조우] 東峰이 가까워 오는 산중턱에서 대전에서 오신 '晶巖교수님'팀을 따라 잡았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조우를 하였습니다. 교수님은 원인 모를 배탈로 컨디션이 매우 나쁜데도 다른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저 도착하여 천천히 먼저 올랐던 것입니다. 저는 지난 갈기산 산행 이후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西峰] 東峰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좌측으로 西峰이 보입니다. 西峰에 갔을 때에 西峰에는 "삼성봉"과 "西峰"이 붙어서 있었는데, 산행기를 쓰면서 이 사진을 보니 이제서야 이해가 갑니다. [東峰] 조금 오르니 우측으로는 東峰이 보입니다. 가을에 많이 부르는 노래 중에 "깊어 가는 가을 밤"이라는 노래가 있죠" "깊어가는 가을 밤" 깊어가는 가을 밤에 낫설은 타향에 외로운맘 그지없이 나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형제 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고향 이 노래도 우리 가곡이 아닌 미국 카우보이들의 노래이지요 우리가 빌려와 우리 노래인듯 부르고 있지만.... 소몰이 직업을 가진 카우보이들이 고향을 떠나 미국 남부에서 북부로 가면 한해가 저물어 가지요. 머나먼 타향에서 고향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였습니다 미국놈이나 인디안이나 우리나 모두 같은 감성인 것입니다. [조망대] 대구공항이 조망되는 전망바위가 있어 잠시 머물렀습니다. 대구시내는 잘 보이지 않았고, 대구공항만 조금 보였습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대구의 '앞산'이라하는 '대덕산'이 보였습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登路는 점점더 가파라집니다. 힘들기 위해 오르는 것이니 오르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비로봉] 된비알을 치고 오르니 드디어 팔공산에서 가장 높은 "비로봉"이 모습을 드러 냅니다. 팔공산도 제일 높은 곳에는 방송국과 통신사들의 철탑이 온통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비로봉-東峰 갈림길]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곳 삼거리를 유의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우측으로 東峰을 올랐다가, 東峰을 구경하고 나서는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 '비로봉'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로봉-東峰 갈림길 이정표] 東峰을 구경하고 나서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비로봉'으로 갈수 있습니다. [東峰 오르는 길] 동봉으로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정상부근에는 낙엽이 벌써 떨어져 나무가지가 드러 나고 있습니다. [東峰 오르는 계단] 질서 정연하게 東峰 정상으로 오릅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나라 수준 높은 나라 산행문화, 교통문화 등등등...... 많이 발전했습니다. [東峰 정상] 12시 45분에 팔공산 東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수태골 입구'에서 2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소풍같은 산행이니 시간은 별 관심없습니다만.... [東峰 정상석] 東峰 정상은 초만원이었습니다. 팔공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이 약60년간 통제되어 들어 갈수 없었는데 이번 10월부터 일부 지역을 해제하여 정상까지 갈수 있도록 했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이곳 東峰이 팔공산을 대표해 왔다고 합니다. [東峰 정상에서 동쪽 '갓바위' 방향] 東峰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동쪽. 동남쪽 방향을 바라 봅니다. "팔공산 종주 코스"의 동쪽으로 염불봉, 태실봉, 인봉, 노족봉, 관봉등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東峰 정상에서 보아는 '팔공산 C.C'] '갓바위' 가는 방향으로 '팔공C.C'가 조망됩니다. 예전에 저곳에 가서 골프를 친적이 몇번 있는데 여기서 내려다보니 감회가 다르군요 [東峰 정상과 비로봉] 염불봉으로 가는 코스에서 뒤돌아 본 '東峰 정상'과 '비로봉' [東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비로봉'] 지난 10월초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한 "비로봉"이 철옹성 요새처럼 보입니다. 東峰과 비로봉은 매우 가까이 있으며 약700m정도 거리이라 합니다. [東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西峰] '비로봉'에서 '西峰'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선명합니다. 저 산줄기는 "팔공지맥 마루금"입니다. 가운데 西峰을 지나 '톱날능선', '파계봉', '파계재'를 지나 '한티재'로 가며 결국 상주시 중동면 새띠마을까지 가서 낙동강과 위천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끝나는 "팔공지맥"입니다. [東峰 정상의 이정표, 하산] '한티재'에서 '갓바위'까지는 15.6km이고, 갓바위에서 주차장까지 약2km이니 총 18km는 걸어야 팔공산 종주를 했다고 할수 있겠군요. 언제 시간 나면 '팔공산종주코스'를 완주하고 싶습니다.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동봉을 내려와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 이상한 바위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알고봤더니 이것이 유명한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이라는 것이었습니다. "藥師如來"는 불교에서 서열 5위쯤되는 神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석가여래"도 불교의 여러 神중에 하나이지요. "藥師如來"는 모든 중생들의 병을 고쳐주는 神입니다. 곳곳의 절간에 "藥師如來"가 있어도 병원은 언제나 환자들로 만원입니다.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뒤에서 보는 것과 앞에서 보는 것은 완전히 틀림니다. 앞에서 보니 완벽한 조각상입니다. 이 "藥師如來" 조각상은 약6m 높이라고하며, 대구유형문화재 20호라고하는군요. 조각된 여러 형태를 보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것으로 추정한다고합니다.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약사여래 조각상' 뒤로 東峰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약사여래 조각상'은 東峰과 '비로봉'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조그만 헬기장이 있고.... [목탁 바위] '약사여래 조각상' 앞에있는 일명 "목탁바위"라고 합니다. 이 바위는 두들기면 목탁소리가 났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님이 직접 두들겨 봤습니다. 신기하더군요. 바위의 울림이 목탁소리와 비슷했습니다. 약사여래가 사용하던 목탁인가봐요. ㅎㅎ 무지 큰 목탁이죠? [비로봉]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이번 시월부터 새로이 개방된 길이라고 합니다. 모두 처음으로 '비로봉'을 오릅니다. 사진 속의 노란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제가 서울말씨를 쓴다고 자기가 듣기엔 말투가 우습다고 웃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머니 깅상도 말투가 더 웃긴다고 했더니 서로 피장파장이라고 함께 웃었습니다. ㅎㅎ [비로봉 정상] 1시 20분에 '비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제천단 표석'이 있는 곳에서 '비로봉 정상'을 올려다 봅니다. 불과 얼마전 9월까지만해도 오를수 없었던 '비로봉'을 오릅니다. 저는 행운아인가 봅니다. [비로봉 정상] 비로봉은 한자로 毘盧峯이라고 씁니다 옥편을 찾아 보면 毘 도울 비,盧 성 로(노)/목로 로(노), 峯 봉우리 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毘盧峯'을 한문의 뜻을 찾아 접근하려고하면 무슨 말인지 알수없습니다 왜냐하면 毘盧는 제가 저의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하는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글자"인데 외국어를 한자로 音譯한것이기 때문입니다. 毘盧비로자나 毘盧蔗那를 줄인 말인데 인도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로서 Vairocana를 中國語로 音譯한 것입니다. 毘盧蔗那의 중국 발음으로는 Vairocana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中國語로 音譯한 毘盧蔗那를 우리말로 그대로 音譯하여 '비로자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자나'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산스크리트語' Vairocana의 뜻을 알면 됩니다 Vairocana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佛經에서는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입니다. 불교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불교에서 최고의 부처로 "비로자나佛"을 꼽습니다. '아미타佛' '관세음佛' '약사여래佛'등과 함께 종파에 따라 최고로 모시는 부처라는 말입니다. 毘盧峯은 이런 배경을 가진 최고의 봉우리라는 의미로 붙여진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금강산의 최고봉도 毘盧峯입니다. 소백산의 비로봉도 같은 한자인 毘盧峯입니다. 참고로 치악산의 "비로봉"은 한자가 "飛盧峯"입니다. [毘盧峯 제천단] 毘盧峯에는 초라한 돌무덤으로 제단을 쌓아 놨는데 이것이 "제천단"이랍니다. 옛날에 이곳에서 國泰民安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답니다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방향 - 西峰] 毘盧峯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서쪽으로는 아까 동봉에서 설명드린데로 '팔공지맥' 마루금이 지나고 있으며, 가운데 "西峰"이 완벽하게 조망됩니다. 우리는 저곳 "西峰"에서 좌측 능선으로 하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西峰"뒤로 멀리 '파계봉'까지 보이는군요.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 군부대 1,213m봉] 북쪽으로는 군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 1,213m봉우리가 보입니다. "팔공지맥"의 마루금이 오는 봉우리입니다. "팔공지맥"은 "낙동정맥"의 청송군 부근 "가사봉"에서 분기하여, 청송,영천,군위 경계인 석심산까지 와서 다시 '화산', '시루봉'을 거쳐 앞에 보이는 1,213m봉으로 와 비로봉을 오르고, 서봉, 한티재, 상주시까지 갑니다 조만간 '팔공지맥'과 '보현지맥'을 종주 하겠습니다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 군부대 1,213m봉]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 - 東峰] 동쪽으로는 당연히 "東峰"이 보입니다. 가운데 산허리에는 "약사여래 조각상"이 쬐끔 보입니다. [점심식사] 저는 점심을 준비 해 가지 않았습니다. 경험에 의하면 이런 모임에는 점심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준비해 가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됩니다. 왜냐하면 모두 정성껏 준비해 오기 때문에 선수는 젓가락만 있으면 되니까요. ㅎㅎ 그래야 이것 저것 골고루 여러 지방 특산물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쎌러드에서 들깨가 들어간 무우국까지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준비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말로나마 감사드림니다. [비로봉-동봉-서봉 갈림길 이정표] 약 1시간 정도 점심식사를 하고 西峰으로 향합니다. 2시30분에 다시 동봉, 서봉, 비로봉 갈림길로 내려 왔습니다. [西峰 가는 길] 팔공지맥 마루금을 따라 西峰으로 갑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西峰입니다. [西峰 오르는 계단] 친절하게 곳곳에 계단을 만들어놨습니다. [西峰 오르는 계단에서 뒤돌아 본 '비로봉'과 東峰] [119 구조헬기] 西峰으로 가는데 갑자기 119 헬기가 나타나 부상자를 실어 나릅니다. 알아보니 큰 부상은 아니고 아마도 인대가 좀 늘어난 모양입니다. 산에서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합니다. 그리고 하산길에는 스틱을 꼭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무릎관절 보호와 부상 방지를 위해서 필수입니다. 스틱은 두자루를 사용해야 효과가 있으며, 너무 비싼것 사지 마세요 이번에 오신 분들 스틱은 대부분 무지 비싼 독일제 "렉키"를 가지고 다니시더군요 "렉키" 두자루면 제것같은건 30자루 살수 있습니다 그런거 가지고 다닌다고 등산 잘하나? ㅎㅎㅎ [西峰 갈림길 이정표] 팔공산 종주 코스와 '팔공지맥 마루금은 '파계봉' 방향으로 가야하고, 서봉은 남쪽 '부인사' 방향으로 조금 갑니다. [삼성봉] 西峰에는 두개의 봉우리가 붙어 있는데 첫번째가 "삼성봉"입니다. 서울의 "숭례문"을 일반적으로 "남대문"이라고하는데 혹시 西峰의 본명이 "삼성봉"이 아닌지..... [西峰] 3시에 西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비좁은 정상에는 정상석이 모두 차지 하고 있는듯... [西峰 정상석] 팔공산에는 유명한 절들이 있습니다. 동쪽에는 '은해사'가 있고, 남쪽에는 '동화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에는 '파계사'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국보 109호인 "삼존석굴"이 있습니다 [西峰에서 보이는 '팔공C.C.'] 西峰 정상석과 함께 '팔공C.C.'가 조망됩니다. [西峰에서 바라보는 '비로봉', 東峰,] 팔공산에 오르며 지겹도록 본 방송국과 통신사들의 송수신 철탑. 그리고 군부대 어느 산을 가던 제일 높은 의미있는 산봉우리에 꼭 저런 쇠말뚝을 박는다니까요. 조금 비켜서 저런 말뚝을 박을수도 있을텐데..... 일본놈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정기를 끊는다고 산맥에 쇠말뚝을 박았다는데 이제는 우리가 우리나라 중요 산봉우리에 엄청난 쇠말뚝을 박고 있으니..... [西峰에서 기념사진] 오늘 함께한 여러 횐님들의 만남의 절창 언제나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12월에는 제가 주선하는 서울에서의 산행이 있겠습니다. 송년산행으로 12월20일(셋째주 일요일)로 잠정 정했으니 기억해 두시기 바람니다. (정암교수님이 꼭 주선하라고 등 떠밀려...ㅎㅎ) [西峰 巖陵코스] 西峰에서 하산하는 코스가 오늘 산행의 압권이었습니다. 암릉길이라 다소 위험했지만 서로 도우며 하산하는 재미가 더 있었습니다. 암릉길에 있는 奇岩怪石이 볼거리를 더욱 제공해 주었습니다. [西峰 巖陵코스] 오늘 산행을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詩 한수 선사합니다. 제가 산에 다니며 가장 잘 읊는 詩입니다.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수없어 내가 산을 찾아 가네 나무도 내게 올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을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 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 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西峰 巖陵코스] 아기자기한 암릉길을 내려 갑니다. 가운데 보이는 바위를 제가 이름 지었는데...."도깨비 바위"라고.... 비슷합니까? ㅎㅎ [도깨비 바위] "도깨비 바위"를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확실히 도깨비를 닮지 않았습니까? 도깨비를 본적이 없다구요? 그럼 저게 도깨비 입니다. [도깨비 바위에서 뒤돌아 본 西峰 巖陵코스] '도깨비 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암릉길과 좌측으로 서봉에서 한티재로 가는 '팔공지맥'의 "톱날능선"이 보입니다. [西峰 巖陵코스] 西峰에서 내려가는 巖陵코스 아랫쪽 계곡의 이름이 "바위골"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암릉코스 아래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西峰 巖陵코스] 생명력은 끈질기게 이 세상을 끌어안고 최선을 다해 살아 갑니다. 한포기 풀도 나무도.... [西峰 巖陵코스에서 바라 보는 '팔공산 케이블카'] 가운데 산줄기 봉우리에 있는 하우스가 "팔공산 케이블-카" 상부 정거장입니다. 하부 정거장은 저 아래에 주차장 같은 곳입니다. 팔공산을 쉽게 오를려면 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되겠군요 [西峰 巖陵코스]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듯 곳곳에 기암괴석이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西峰 巖陵코스에서 조망] [奇巖怪石] [랏지코스]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던 정암교수님이 유격대 폼을 잡고 내려 가고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아 지신듯...다행입니다. [사다리] 갖출건 다 갖추고 있는 팔공산 [계곡길 하산] 가을이 무러익어가는 계곡길도 환상적이었습니다. [하산하며 뒤 돌아 본 西峰] 5시 45분 산행들머리였던 "수태골입구" 저수지 옆으로 내려왔습니다 오늘 소풍 시간은 무려 7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ㅎㅎ 그래서 소풍이라고 하는것입니다. 함께한 횐 여러분 즐거웠고요..다음 12월에 서울 북한산에서 다시 만나요~~ 그때도 맛있는거 많이 싸 가지고 오시고~~ㅎㅎ [산행 개념도] 저녁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ㅎㅎ 저는 대전까지 와서 대전역에서 KTX타고 막차로 집에 들어 왔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 Foster & Allen
寶來峰-會靈峰 遊山記 9월 첫주에는 徽山會 정기산행에 참가했습니다. 특히 "봉평효석문화재"를 참관할수 있는 곳에 있는 山이기에 一石二鳥, 도랑치고 가재잡는 기회여서 다른 계획을 포기하고 강원도 봉평으로 갔습니다. [올림픽대로에서 바라보는 올림픽대교와 한강] 9월6일(일) 오전 7시50분경에 올림픽대로를 달려 강원도 봉평으로 가는 차안에서 한강과 올림픽대교를 촬영했습니다. [보래령 터널] 오전 10시30분경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보래동에 있는 "寶來嶺터널"에 도착했습니다 "寶來嶺터널"은 공사중에 있었으며 곧 개통될듯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래봉-회령봉 산행 개념도] 오늘 산행은 "寶來嶺터널"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寶來嶺"을 경유해서 "寶來峰"을 오르고, "한강기맥과 會靈峰 갈림길"을 지나 "會靈峰"을 돌아 "연지기"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입니다. 식사시간 포함해서 4시간 30분쯤 걸리는 짧은 코스이며, 경사도 완만해서 초보산객들도 쉽게 오를수 있는 그런 코스입니다. [보래령 터널앞] "寶來嶺터널" 바로 앞까지 버스가 올라와 산행시간이 더욱 단축되겠습니다. 평상시에는 "寶來峰"- "會靈峰"코스가 산객들에게 인기있는 산행코스는 아닙니다.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이 운두령에서 '보래령'-보래봉'을 거쳐 흥정산갈림길로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코스여서 봉평을 찾아 오르는 산객들은 별로 없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많이 왔는가? 그 이유는 9월4일부터 9월14일까지 열리는 "봉평효석문화제" 때문입니다. 이 효석문화제가 열리는 때에 등산도 하고 효석문화제도 구경하려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드는 것입니다. 저도 다른 산행계획이 있었으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봉평효석문화제"를 구경할수없어 만사 제쳐두고 "휘산회"에 따라 붙었습니다. 사실 저는 "보래봉-회령봉" 산행보다 "봉평효석문화제"에 더 관심이 있어 온 것입니다. [보래령 터널앞에서 바라 본 "보래봉"] 산행들머리인 '보래령터널' 앞에서 '보래봉 정상'은 바로 올려다 보입니다. [보래령 터널앞-산행 들머리] 오전 10시4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휘산회" 참여 교우들의 수가 조금 적은듯합니다. 버스가 4대만 왔으니까요 [보래령 터널앞-산행 들머리] 보래령터널 우측 옆으로 치고 오릅니다. 여기서 "보래령" 고개까지 약 30분 정도 걸리며 경사는 완만합니다. "보래령"에서 "보래봉"까지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30분정도 걸립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래봉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를수 있습니다. [보래령 오르는 산행 들머리] 봉평이라는 곳은 강원도 평창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하나의 面입니다. 그런데 왜 봉평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현대문학에서 도져히 뺄수없는 "이 효석"이라고하는 作家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최고 힛트작인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단편소설의 무대이기도 해서 일것입니다. [보래령 오르는 길] '보래령터널' 옆으로 접어 들면 바로 울창한 숲이 햇볕을 가려주며 시원한 등로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보래봉-회령봉을 산행 하는 모든 구간에서 외부를 전혀 조망 할수 없습니다. 숲속을 거닐다 오는 것이지요,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고 오로지 숲속을 거닐다 내려 오니 뒷동산을 걷는지...킬리만자로를 걷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경우는 이런 肉山에 올때는 주로 겨울에 옵니다. 그래야 외부를 조망할수있어 내가 어디에 왔는지 알수 있기때문입니다. 보래봉에서는 오대산과 계방산, 흥정산, 용문산등이 조망되는 곳입니다. 오늘은 여름철이라 숲으로 외부를 전혀 볼수 없어 산행기 쓸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이효석 빼고는 이야기 꺼리가 없어 산행기는 간단하게 마무리됩니다. 재미없는 산행기를 양해해 주시고....2부에 계속되는 "봉평효석문화제"를 기대해 주세요 [寶來嶺] 30분 정도 오르면 금새 "寶來嶺"에 오릅니다. 寶來嶺은 옛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던 곳이랍니다. 평창군 봉평면 사람들과 홍천군 내면 사람들이 험준한 산들을 피해 가장 빨리 넘나 들수 있는 고개여서 많이 이용하던 고개였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운두령"에 차로가 뚤려 이 산고개를 넘나 드는 사람들은 봉평 홍천 사람들은 한명도 없고, 오로지 멀리서 온 산꾼들만 찾는 곳이 되었답니다. 봉평 홍천 사람들은 현재 공사중에 있는 "보래령터널"이 개통되면 아예 이곳-보래령을 잊어 버릴것입니다. [寶來嶺] 이곳 - 보래령은 "漢江岐脈"의 마루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漢江岐脈"이란 북한강과 남한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줄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를 달리는 산줄기여서 "한중기맥(漢中岐脈)"이라고도 부르며, 두 물줄기를 더 강조하여 "양수기맥(兩水岐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寶來峰 오르는 된비알] "보래령"에서 "보래봉"까지 두 구간에 약간의 된비알이 있습니다. 7분짜리 하나와 5분짜리의 된비알이 있으니 아주 간단히 정상까지 갈수 있습니다. 어느 산이나 정상부에는 된비알 - 깔딱고개가 있는데 이곳은 아주 간단합니다. [寶來峰 정상] 잠시 오르면 금새 하늘이 열리고 "보래봉" 정상이 나타납니다. 정상같지 않은 정상이 성큼 다가 옵니다. 너무 쉽지요~이~잉~ㅇ [寶來峰 정상] '보래봉 정상'에는 정상석도 없습니다만, 대신에 이정표를 하나 세워 놨습니다. 보래봉과 회령봉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을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이며, 그 중 보래봉은 한강기맥 상에 있는 봉우리로서 봉평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山勢가 肉山이라 아기자기한 볼거리는 없고 더더욱 여름철에는 숲때문에 눈에 뵈는게 없습니다 [寶來峰 이정표] 이 이정표가 그래도 '보래봉 정상'을 알려 주는 표지라고 이곳을 오르는 산객들은 이정표를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1,324m높이이면 울나라에선 매우 높은 산입니다만, 보래령 터널의 표고가 해발 700m가 넘으니 간단하게 오를수 있는 것입니다. [점심식사] 즐거운 식사시간 우리 62회는 보래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시원한 숲속에서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한강기맥-회령봉 갈림길 가는 길] "漢江岐脈"은 오대산의 두로봉(1,422m)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오대산 비로봉(1,563.4m)과 호령봉(1,560m)을 지나 계방산(1,577.4m)을 거쳐 운두령과 보래령을 넘어 보래봉으로 이어져오는 산줄기입니다. 두로봉에서부터 보래봉까지는 공식적인 현대표기산맥으로 "차령산맥"과 일치합니다. 보래봉을 지나 계속 서남진하는 한강기맥은 "회령봉 갈림길"과 "흥정산 갈림길"을 지나 대학산(875.4m), 용문산(1,157m)을 거치고, 지난 7월 야유회 산행을 했던 어비산 옆에 있는 유명산(866m)과 소구니산(790m)을 거쳐 청계산(685.4m)에 도달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두물머리에서 한강 속으로 가라 앉는데 오대산 두로봉에서 양수리까지의 구간거리가 160km에 달합니다.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은 이 160km의 구간을 주로 10구간 정도로 끊어 산행을 합니다 [한강기맥-회령봉 갈림길 가는 길] 이처럼 우리나라 중부권을 가로지르는 한강기맥은 어느 정맥이나 대간 못지 않게 많은 명산을 거느리고 있으며, 영동고속도로와 대체로 나란히 달리고 있어서 접근하기도 용이하므로 많은 산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한강기맥-회령봉 갈림길] 보래봉과 회령봉의 산행은 봉평 보래령터널앞에서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도 있고, 계방산 들머리이기도 한 운두령에서 출발하여 1,381m봉을 지나 '보래령'을 통과하여, "보래봉"을 지나 이곳 -"한강기맥과 회령봉 갈림길"로 와서, "회령봉"을 돌아 "연지기-보래령터널"로 종주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차편만 마련된다면 운두령에서 유장한 한강기맥을 종주하면서 1,381m봉을 넘고, 다시 보래령을 지나 보래봉과 회령봉,두 봉우리를 차례로 거쳐 내려오는 게 산행의 묘미를 더할수 있겠습니다. 갈림길에서 한강기맥은 오른쪽 산로가 약간 희미한 길로 가며, 회령봉은 왼쪽 뻥뚤린 길로 갑니다 [회령봉 가는 길] "한강기맥과 회령봉 갈림길"에서 '한강기맥' 마루금을 벗어나 "회령봉"으로 갑니다. 외부는 숲으로 조망할수 없습니다. [會靈峰 정상] '한강기맥 갈림길'에서 '회령봉' 방향으로 조금 가면 금새 "회령봉"이 나옵니다 [會靈峰 정상표지] 會靈峰 1,331m 山神靈들이 모두 모여 會議를 하는 곳 근거 있는 얘기이냐구요? 대략 한자를 보면 알수 있는거 아니에요? 뭘 꼬치 꼬치 따집니까 저도 산에 좀 다니다 보니 대략 이런 정도는 감으로도 알아 차립니다. 山神靈들이 모두 모여 會議를 하는 곳이니 구름위 天上樂園 같아야 할텐데 이름에 비해 형편없는 산세와 정상석 하나없는 초라한 모습에 실망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會靈峰 정상에서 기념사진] 아니 ~ 山神靈들이 여기 있었군요 이제야 왜 이 산봉우리 이름을 會靈峰으로 지었는지 알겠군요..ㅎㅎ 요즘 山神靈들은 하고 다니는 폼도 각양각색이군요 ㅎㅎ 어~ 女山神靈들도 있네요? ㅋㅋ [하산] 숲으로 갑갑한 감옥같은 터널 안을 뚤고 하산합니다. 눈 덮힌 겨울에 오시면 외부도 잘 조망되고 걷는 운치도 더합니다 "봉평효석문화제"만 아니었다면 저는 이 산에 이 여름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산 갈림길] 조금 더 돌아 능선으로 하산하는 코스와 조금 빨리 하산하는 코스와 갈리는 갈림길입니다. [1,381m봉] 거의 다 내려 왔을 때에 "운두령 雲頭嶺"에서 "보래령 寶來嶺"넘어 올 때 넘는 산봉우리인 1,381m봉이 이제서야 쬐끔 조망되는군요. [하산] 다시 숲을 헤치고.... [급경사 하산길] 오늘 산행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급경사 내리막길을 줄을 서서 내려 갑니다. 이 구간이라도 있었으니 쬐끔 등산하는 기분이 났습니다. [급경사 하산길] 이 구간을 내려 오면 바로 날머리입니다 [보래령 터널로 회귀] 좌측으로 오전에 산행 들머리였던 "보래령터널"이 보이고.... 우측으로 '연지기' 앞으로 버스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시간이 오후 3시 30분경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봉평효석문화제"가 열리는 봉평행사장으로 가서 구경하고, 뒷풀이를 할 예정입니다. [보래령 계곡에서...] 1급수 맑고 시원한 개울물에서 깨끗하게 씻고 바로 "봉평효석문화제" 행사장으로 갑니다. "봉평효석문화제" 遊覽記는 별도로 올릴 예정이오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홍어와 무인도"를 찾아 보세요~ [보래봉-회령봉 산행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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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lo  -  Fantasia (Live)




         『魚飛山』 遊山記
         
               물고기를 타고 산을 넘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칠월 첫주 일요일에는 "휘산회 정기산행"에 따라 붙었습니다.
     주말이면 산에 다니기 바쁜 필자는 원래 다른 산행계획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산행은 산행이라기 보다는 먹고, 마시고, 노는 여름 피서 여행 같은 것이어서 
     이 기회에 보고싶었던 선후배님들을 만나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특히 모처럼 "띠동갑 50회" 선배님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또한 몇몇 후배님들과 한잔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띠동갑 74회" 후배님들도 요즘 참여하는 인원이 많이 늘었고
     "86회 띠동갑"들까지 참여하고 있으니 이곳에 가면 정말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그런 "나의 과거와 미래"가 상존하는 그런 곳이니 어찌 지상낙원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오전 8시에 잠실 롯데월드 시계탑을 출발한 약250여명의 교우님들이 관광버스 6대에 분승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魚飛溪谷"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물고기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산을 넘나든다는 魚飛山을 간단하게 오르고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1급수 맑은 물의 魚飛溪谷에서 휘문교우 선후배님들이
     친목 야유회를 연다고 하니 이곳으로 가지 않고 어디로 떠돌아 다니겠습니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산행에 앞서 준비운동과 산행대장의 산행안내를 간단히 들었습니다.
     한가지 하고픈 말은 250여명의 제법 많은 인원이고, 70대 나이의 선배님들부터
     30대 나이의 후배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운집해 있는 속에서 산행안내를 하는
     산행대장이 그다지 목청을 높이지 않고 이야기 하는데도 모두가 조용히  경청하는
     선후배님들의 학습태도와 질서의식은 역시 좋은 학교이구나 하는 느낌을 새삼 받았습니다
     다른 핵교들은 거의 대부분 스피커를 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도 듣는둥 마는둥 하는데
     무지 비교되지 않습니까? 
     이 산행기는 다른 핵교 나오신 분들도 많이 보시기 때문에 그런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쬐끔 자랑하는거 이해해 주실수 있죠?.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기념사진]

     저의 산행기를 계속 보신 분들은 "徽山會"가 어느 정도 위상을 가지고 있는
     산악회인지 아시지만....추가 설명 필요없이 이 사진을 보시면 대략 아시겠죠? ㅎㅎ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교가 부러워하는 "徽文高 졸업생들의 山岳會"입니다
     지금까지 177회 산행에 약16,000여명이 참여했다고하니 그 열기를 짐작 할수 있습니다
     매월 첫째주에 한번 하는 산행이니 開山한지가 어느듯 15년정도가 되는군요
     얼마나 단합이 잘되는지 아시겠죠? 이런 동문 산악회는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 산행은 결과부터 말씀들여 魚飛山 정상까지 1시간 15분 걸려 올랐습니다
     하산하는데 45분 걸렸으니 2시간짜리 산행이었고, 이미 언급했다시피 魚飛계곡에서
     '야유회'가 주목적인 그런 산행이었기에 무척 간단한 산행이었습니다.
     魚飛山을 산행 하려면,어비산(822m)-유명산(864m)-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연계해서 돌아야 산행다운 산행이 됨으로 앞으로 오실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산행 들머리]

     10시 2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행대장의 안내에서 먹고 마시는데 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올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만, 모두  魚飛山을 오릅니다.
     또다시 魚飛山을 별도로 찾아 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보시는 바와 같이 산행 들머리에서 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魚飛山의 이 등산코스는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가파른 코스였습니다.
     워밍업 할 겨를도 없이 들머리부터 된비알이니 체감적으로는 무척 힘드는 어려운
     등산코스로 느껴집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날씨는 안개가 많이 낀 맑은 날에, 기온은 높고 바람 한점없는 전형적인 무더운 
     여름 날씨였습니다. 계곡도 아닌 능선을 타고 오르는데도 바람 한점 없었으니 
     초보 산객들에게는 무척 힘든 산행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정상까지 오르지않은 교우들이 제법 많이 있는듯했습니다.
     즐겁기 위해 하는 등산인데 괴로우면 빨리 중단하는게 최상책이며 현명한 판단입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산행들머리에서 제1봉화대가 있는 725m봉우리까지가 가파른 된비알입니다
     바람 한점없어 더욱 땀을 많이 흘리게 한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약40분 정도 오릅니다

     
     [725m봉-제1봉화대]

     약 40분 정도 쉬지 않고 오르면 처음으로 봉우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이 봉우리가 725m봉으로 제1봉화대가 있었다는 봉우리입니다.
     이 봉우리까지만 오르면 약간의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니 한결 편해 집니다

     
     [725m봉-제1봉수대]

     "725m봉"에는 옛날 봉화대가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올라가 보니 흔적은 있는듯하고
     구체적인 시설은 확인할수 없었습니다.
     이 봉화대는 서울 경복궁과 같은 위도에 놓여져 있어 강원도 '정동진' 방향 지역과
     연락을 하던 봉화대였다라고 합니다.
     그런 내력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산객들은 휴식을 취하는 쉼터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725m봉-제1봉수대에서 바라 보는 "유명산"]

     "725m봉"에 올라 서니 건너편에 그 유명한 "유명산"이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명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유명산"이라는 지명에 있습니다. 
     원래 지형도상에는 "유명산"이라는 산이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는 동기가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1973년 당시 '엠포르 산악회'라고 하는 산악회가 '국토자오선종주'를 하면서 
     그 산악회의 일행 중에 유일한 여자였던 '진유명'씨라고 있었던가 본데 그 여자의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 "유명산"이라는 이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산"이 유명하게 된것은 오로지 산 이름이 '유명산'이라서 유명해 진것이니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이름을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 일대에서 "말을 길렀다"하여 '마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니, 근간에 어떤 여자가 올랐다고 산이름을 그 여자 이름을 따 마음대로 
     지을 게 아니라, 역사적인 기록을 토대로 본명을 찾아 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제1봉화대에서 제2봉화대 사잇길]

     725m봉에서 정상까지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내리막과 오르막을 걷는
     매우 편한 능선길입니다. 이곳까지 오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사진을 보고
     "에구~ 올라 갈껄~, 조금만 더 갔으면 되는건데..."라고 아쉬워 하실겁니다. 

     
     [785m봉-제2봉화대]

     725m봉-제1봉화대에서 약 10분쯤 더 가면 두번째 봉우리인 "785m봉-제2봉화대"가 나옵니다
     이곳에서도 봉화대의 흔적을 발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단지 봉우리임으로 산객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다음 봉우리가 정상 봉우리이니, 어비산 등산코스에는 세개의 봉우리가 있는 셈입니다
     "725m봉-785m봉-829m정상"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赤松이 눈길을 끌었으며, 이제서야 산행을 즐깁니다.
     청개구리는 시키는 일에 반대로만 한다는 이야기를 초딩때부터 들으며 살아 오셨죠?
     그 이야기가 최초로 나온 곳이 바로 이곳 "가평군 옥천면"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의 원본을 들려 드리며 산행을 하겠습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고등학교 때에 "이괄의 난"이라고 배웠지요? 가방 끈이 짧다구요?
     듣긴 들은 듯한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시겠다구요? 정답입니다.
     대부분 "이괄의 난"은 아는데 "이괄의 난"의 내용은 모르실겁니다. 
     벌어 먹고 살아 가는데 별로 도움도 주지 않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겠지요? ㅎㅎ
     "이괄"이 이 동네 출신인듯합니다. 그러니 전래동화가 있겠지요.
     먼저 "이괄"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지요.
     "이괄"은 무지 똑똑해서 과거시험의 무과에 급제를 하고 정치계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바로 조선 선조때입니다. 그리고 광해군 시절에는 높은 관직에 오르고
     잘 아시는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로서 성공한 쿠데타 세력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 끼리의 자리 싸움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니 기분이 더럽게 나빳겠죠? 몇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만
     "이괄"은 자신이 쿠데타로 만든 왕에게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이괄의 난"입니다
     이 쿠데타는 성공을 합니다만, 성공한 다음날 바로 반격을 당해 실패로 끝나고 말지요.
     간단하게 말해 "이괄의 난"은 조선 인조시절에 실패한 쿠데타입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쿠데타 역사는 勝者의 전유물로 남고 패자는 혹독하게 비하 당합니다.
     실패한 쿠데타 "이괄의 난"으로 "이괄'은 철저히 나쁜 놈으로 묘사 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이 "청개구리 이야기"이고 역사의 勝者가 패자를 역사적으로
     매장 시키게 됩니다. 역사의 勝者가 만들어 낸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려 드림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 돌무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청개구리 이야기"는 당연히 여러분들도 아는 얘기인데
     이것이 "이괄"을 비하시키기 위해 역사의 勝者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괄은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여서 아버지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반대로 하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죽게되자 이괄의 아버지는 또 이괄이 반대로 할 줄 알고,
     "내가 죽거든 바로 묻어다오."하고 죽었다.
     이괄의 아버지는 반은 용이고 반은 사람이라 거꾸로 묻으면 죽어서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이라, 
     바로 묻어 달라고 하면 이괄이 거꾸로 묻어 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괄은
     "내가 여태까지는 무조건 반대로 하였지만, 아버지 마지막 길인데 내가 반대로 나갈수가 있느냐?"
     하고, 아버지를 부탁대로 바로 묻어 드렸다.
     이렇게 해서 이괄의 아버지는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뒷날 "이괄의 난"이 실패하였다

      이 이야기는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경기도 가평군 옥천면 옥천리'의 전래동화입니다.

     
     [魚飛山 정상]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합니다
     1시간 15분이 걸려 "魚飛山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특별히 정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 평평한 정상이었습니다.

               
               [魚飛山 정상 이정표]

                "魚飛山 정상'에는 이정표가 서 있었으며, 
                '유명산"으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했습니다

     
     [魚飛山 정상]

     魚飛山 정상에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우리 교우님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빛 물고기는 우리 교우님들이 날아 오른 후 환생한듯 보입니다.
     魚飛山 정상에서 약50분 정도 머무르며 주로 후배님들이 따라 주는 차가운 막걸리로
     魚飛山 등정을 만끽했습니다

     
     [魚飛山 정상석]

     魚飛山은 한자만 봐도 알수 있드시 '물고기가 날라 다닌 산"이라는 뜻입니다
     魚飛山은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는 산인데 남한강에 홍수가 나면 남한강의 물고기들이
     이곳의 "魚飛계곡"을 따라 올라 "魚飛山'을 넘어 북한강으로 건너 가고, 북한강에 홍수가 나면
     반대로 이곳을 날아 남한강으로 건너 간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디서 확인한 설이냐구요? 제가 쬐끔 상상의 날개를 펴 봤습니다. 따지지 맙시다~

               
               [魚飛山 정상석]

               829m높이의 산이면 제법 높은 산입니다
               그런데 1시간 15분만에 올라 왔다면, 이 산은 뾰쪽한 산이라  산행거리는 짧고,
               경사는 매우 가파르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산객들이 싫어하는 등산코스가 이런 코스입니다.
               魚飛山은 山보다 계곡이 좋더군요.

     
     [魚飛山 정상에서 총동창회장님과...]

     100년이 넘는 역사의 휘문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님과 단둘이 사진촬영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휘문고 총동창회장 하기가 보통 인물로는 어림도 없는 자리이기에 그 위엄을 생각하면
     왠만한 후배는 함께 사진 박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함께 사진을 박았으니 저도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강조 하고싶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우회를 위해서 아주 말뚝 박고 계속 회장직을 수행해 주시면 어떨지요
     농담입니다. 언제나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회장님께 감사 드림니다

     
     [魚飛山 정상 근처 전망대에서 바라 본 "유명산"]

     하산하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유명산"이 안개 속에서 신비한 모습을
     살짝 보여 줍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안개로 "용문산"을 촬영하지
     못한 것이었고, 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또한 촬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산행에 일가견을 가지신 분들은 魚飛山에 올때에 "魚飛山(826m)-유명산(864m)-
     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연계해서 종주 하시면 산행의 기쁨이 배가된다고
     선답자들이 알려 주더군요. 약 6시간 정도 소요 된다고 하니 그렇게 긴 코스가 아니랍니다

     
     [갈림길]

     어비산장 들머리에서 올라 오던 길로 내려 가다 삼거리를 만나는데
     친절한 후배 산행 리더들이 길 안내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은 안내해 주지 않으면 바로 알바를 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갔습니다.

  
     [늘푸른쉼터로 하산하는 길]

     '늘푸른쉼터"로 하산하는 코스는 올라 올 때의 경사도를 유지 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가파랏습니다.

     
     [늘푸른 쉼터]

     정상에서 약45분쯤 걸려 하산하니 "늘푸른쉼터"가 바로 나왔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늘푸른쉼터"가 있는 "魚飛계곡"에는 야영을 할수 있는 시설들이 많이 있었고,
     벌써부터 여름 휴가를 온 가족들이 방갈로를 모두 차지하여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260여명의 교우들을 위한 야유회 장소입니다.
     집행부에서 미리미리 준비를 잘 해서 아무른 불편함없이 바로 먹고 마시고 놀수 있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전문 출장 부페업을 하는 교우가 준비한 점심식사가 부페식으로 차려져 있고
     특히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L.A갈비가 지글지글 연기를 내며 굽혀지고 있습니다.
     "魚飛계곡"을 오염시키는 갈비 냄새....L.A.갈비 무지 많이 먹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각 기수별로 때론 선후배가 합석하여 따뜻한 정을 나누었습니다.
     저를 알아봐 주시는 선배님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 올림니다. 내내 건강하소서~~

 
     [아직도 건재 하다구...]

     아직도 청춘이시라구 힘겨루기를 하시는 선배님들도 있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아직도 질수 없다는 선배님들이나, 이제는 않된다는 후배님들의 힘겨루기는
     보는 이들에게 훈훈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셔도 왠지 즐겁지 않습니까?

     
     [魚飛계곡에서 휴식]

     魚飛계곡에서 260여명이 부페식으로 점심식사와 반주를 하고 魚飛계곡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추억의 학창시절 애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늘푸른 쉼터]

     늘푸른쉼터에서의 야유회는 즐거웠습니다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집행부에 거듭 감사를 드림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띠동갑 50회 선배님"들이었습니다.
     오늘 소풍 가는 기분으로 참석하셨다고 하시며 "50회 동창회"를 자랑하셨습니다.
     6.25전쟁중에 미아리고개에서 건물도 아닌 천막 학교에서 공부한 기수 중에 한 기수이랍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SKY대학에 제일 많이 들어 간 기수이고, 250여명이 졸업했는데
     현재 150여명이 연락이 되어 활발한 동창회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국회의원이 2명, 육군 대장이 한명, 경찰청장 한명, 재벌 경영인 6명을 배출했다고
     저에게 자랑하셨습니다. 정말 자랑해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50회 동창회"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70세 생신 축하연"을 공동으로 개최하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물고기가 하늘을 날라 다닌다는 魚飛山을 遊山하면서
     저의 과거와 미래를 볼수 있었습니다.
     후배님들은 저의 과거의 모습이고
     선배님들은 저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국적은 바꿀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수 없는 것이지요
     끈질긴 인연, 도저히 땔수 없는 이 인연은 영원 할것입니다.
     훈훈한 정이 魚飛山과 魚飛계곡을 가득 채워 넘쳐 하늘로 날라 가는데
     나의 과거와 미래를 마음 속에 안고 아쉬움을 남기며 7월 첫주 산행을 마감했습니다
     '띠동갑' 4代가 함께한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Ich liebe dich




         『갈기산』 遊山記
         
         간이 주차장-헬기장-갈기산 정상-말갈기능선-558m봉-
         545m봉-차갑고개-소골 계곡-간이 주차장

     
     [산행 개념도]
     충청북도 영동군 양현면 호탄리에 있으며, 충청남도 금산군의 경계에 있는
     "갈기산"
     미리 말씀 드리자면, "갈기산" 산행기는 재미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얘깃거리도 없고, 경치가 수려해 볼거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시고 산행기를 접하시기 바람니다. ㅎㅎ
     
     [대전역]
     2009년 6월 21일(일) 오전 8시 15분
     금년들어 두번째로 대전역에 내렸습니다.
     전날까지 많은 비가 쏟아졌고, 남쪽에는 장마가 시작 된다는 날.
     하지만 막 쏟아질듯 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고, 
     푹푹 찌는 삼복 더위처럼 숨쉬기도 어려운 날씨였는데
     때맞춰 일년중에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인 날이었습니다
     
     [대전역 광장]
     대전역 광장으로 나와 바로 택시를 타고 "충남대 의과대학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정확히 8시 30분에 도착하여  초대해 주신 鼎巖교수님의 환영을 받으며
     일행들과 함께 "갈기산"으로 향하는 승용차를 탓습니다
     
     ['금산' 톨게이트]
     대전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남대전 톨게이트"를 들어 서 대진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금산 톨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금산 톨게이트" 뒤로 오늘 오르려고 하는 "갈기산"이 오른쪽 끝에 보입니다
     대전지역에서 山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山戰水戰 다 겪으신 素山선생님이 함께 동행하셔서
     이 한장의 사진을 건질수 있었습니다
     "갈기산"은 충북 영동군에 있지만, 영동읍에서 갈기산으로 가는 것보다, 
     금산에서 가는 게 보시는 바와 같이  훨씬 가깝고, 
     그러므로 대전에서 금산I.C.를 통해 가는게 시간이 덜 걸린다고하니 위치를 짐작할수 있겠습니까?
     
     [자지산]
     "금산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잠깐 동쪽 영동방향으로 진행하니 말로만 듣던 "자지산"이
     좌측에 보였습니다.
     발음이 좀 그렇지만 무척 아름다운 말이라고 素山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자지산"紫芝山으로 "자줏빛 영지버섯"을 의미하는 산이니
     인류가 그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해준 '거시기'로 생각하면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니
     꼭 알아 두어야 할 산이름입니다. ㅎㅎ
     
     [갈기산 간이 주차장 - 산행 들머리]
     8시 40분에 충남대 의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이곳 갈기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40분 걸렸군요.
     
     [갈기산 간이 주차장 - 산행 들머리]
     "갈기산" 입구는 이렇게 간이 주차장만이 있는  조그만 곳이었으며,
     그 흔해빠진 가게 하나 없는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아시겠지만 단체 등산객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뒤로 "갈기산 정상"이 보입니다.
     
     [기념사진]
     오늘 산행은 충남대 의대 鼎巖 김광진교수님이 주선하였으며,
     대구의 "올뫼 산악회" 회원님들과 대전에 사시는 鼎巖교수님 지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저는 이런 뜻깊은 자리에 초대받아 고맙기 그지 없었구요
     그래서 이른 새벽부터 전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ㅎㅎ
     
     [산행 들머리]
     "산행 들머리"에서 素山선생님의 갈기산 산행 정보와 유의사항을 듣고 출발합니다
     9시 55분 출발
  
     [된비알]
     산행 들머리로 들어 서자마자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게...왜 기분 더럽게 나쁜 그런 날씨 있죠
     땅에서는 습기와 함께 地熱이 올라 오고, 바람 한점 없고......
     거기에 처음부터 워밍업 할 겨를도 없이 급경사 오르막...... 휴~
     악조건은 모두 갖추고 갈기산을 오릅니다
     
     [안자봉과 월영산]
     조금 오르니 우측으로 시야가 열림니다.
     그리고 "월영산"이 바로 조망됩니다.
     저는 갈기산을 오르고 '성인봉을 지나, 저 "月迎山"을 오르고 원점 회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산행이 정암교수님을 아시는 분들의 친선산행이라 혼자 별도 행동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되어 함께 생사고락을 하기로 했습니다. ㅎㅎ
     "月迎山"은 다음 기회를 위해 남겨 두고...
     "月迎山" 앞 봉우리가 "안자봉"이며, "안자봉"에서  "月迎山 정상"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된비알]
     다시 급경사 오르막을 오릅니다.
     처음으로 하늘이 보이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헬기장]
     산행들머리에서 20분 정도 오르니 처음으로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30여분 올라야 이런 쉼터가 나오는데 '갈기산 헬기장'은
     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찍 나와 주는가 봅니다
     헬기장에서는 남쪽과 서쪽방향이 조망되었는데...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갈기산 정상"입니다.
     그러니 "갈기산"까지만 오르는 건 참 쉽지~요~ㅇㅣㅇ
     
     [헬기장에서 바라 본 '성인봉'과 '자사봉']
     헬기장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聖人峰"과 "자사봉입니다.
     갈기산은 말발굽 모양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할수 있는 좋은 산입니다.
     제가 지금 올라 온 길로 올라와 '갈기산'-말갈기 능선'-'558m봉'-'545m봉'-
     '차갑고개'-'성인봉'-'자사봉'-'안자봉'-'월영산'-'안자봉'-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면 적당한 산행코스라고 생각됩니다.
     이 코스를 돌면 약 5시간 정도 걸리겠더군요
     
     [헬기장에서 바라 본 '안자봉'과 '월영산']
     서쪽으로는 "월영산"이 "안자봉"과 포개져 하나로 보입니다
     
     [첫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금강']
     헬기장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조금 가니 좌측 동쪽으로 그 유명한 "금강"이
     나무가지 사이로 엷은 미소를 띄며 땀이 흐르는 산객들을 반깁니다
  
     [두번째 전망대 오르는 길]
     전망대와 전망대 사이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과  "호탄리"]
     조금 더 오르면 좌측으로 전망대가 또 나오며 "금강"이 다른 각도에서 펼쳐집니다
     좌측의 마을이 영동군 양현면 호탄리이며, 금강 가운데 다리가 "호탄교"라고합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과  "호탄리"]
     영동군이 "영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통일신라시대 때 부터라고 합니다
     "영동"은 "永同"으로 영동읍내를 흐르는 주곡천 主谷川양정천 陽亭川의
     두 물줄기, 즉 二水가 합쳐 永同川을 이루고 있는데, 
     이 二水를  하나의 글자로 표기하면 "永"자가 된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吉同'"吉"도 이두문자로 발음하면 "吉=永"이 되어
     永同二水'吉同'에서 유래하였답니다.
     신라초에는 '吉同'으로 불리워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永同으로 불리워졌답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천태산"]
     "갈기산"과 마주보며 있는 산이 유명한 "천태산"입니다.
     천태산은 고려시대 불교 천태종의 본산이었기 때문에 산 이름도 ‘천태’가 된 영동의 명산으로 
     ‘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난 산이라고 하는데 저는 아직 못 가 봤습니다
      천년사찰인 영국사(寧國寺)가 자리 잡고 천년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다는데.....
     
     [세번째 전망대로 오르는 길]
     이제부터는 경사가 다소 완만해 지며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 오니 피로를 잊기 시작합니다
     정상 부근으로 다가 갈수록 기암괴석들이 나타납니다
     
     [세번째 전망대로 오르는 길]
     함께 산행을 시작한 일행들은 보이지 않고 
     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산객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경상도 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인듯
     
     [세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
     이제 높은 곳으로 올랐으니 조망이 더욱 좋아 집니다.
     갈기산의 최고 구경거리가 "금강 錦江"을 보며 오르는 것이 하나이고,
     "말갈기 능선"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좋게 말하면 구경거리가 두개이고, 뒤집어 말하면 구경거리가 두개 밖에 안됩니다
     
     [세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과 "호탄리"]
     "호탄리"
     그냥 지나 갈수는 없지요? 그래서 조사를 해 봤습니다.
     충청북도 영동군 양현면 호탄리이며, 내력은 다음과 같더군요.
     "호탄리"는 전래되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주 김씨 금희라는 효자가 이곳에 살고 있었답니다 
     효성이 극진하기로 소문난 사람으로 연로하신 부친이 병이 들었는데 이 양반  동지섣달 추운 겨울에 
     아들에게 딸기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부모로서 할 말이 아닌것 같은데.....
     하지만 부모 명을 거역한 일이 없는 효자는 딸기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갈기산 산속을 헤맵니다. 
     헤매는 중 갑자기 그 효심을 알았는지 친절한 곰이 나타나 곰의 인도로 딸기를 구하는 행운을 얻습니다
     해는 저물고 금강은 얼어 붙어 금강을 건널 수 없어서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짠~어떤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호랑이 자신의 등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 집 앞에 내려주고 사라졌다는군요 
     곰과 호랑이 덕택으로 병안 중의 그 아버지는 딸기를 먹고 병이 낳았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보다, 욕심 많은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요즘이야 겨울에도 딸기를 구할수 있지만 옛날에는 말이나 되는 요구사항입니까?
     에구~ 나는 늙으면 그러지 말아야지~ (장담 할수 없지만...ㅎㅎ)
     그후 3년을 호랑이는 여막에서 김효자를 보호했다하여 
     "범 호虎, 여울 탄灘"을 써  "호탄리 虎灘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그후 함창 김씨 상진 처 '단양우씨'가 남편의 뒤를 따라 순절하는 열녀가 태어나므로
     마을에 효의 표본으로 비문을 새겨 후세에 남기며 "효의 마을"이라고 자랑하고 있답니다.
     
     [세번째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갈기산 정상]
     세번째 전망대에서 정상은 지척에 있습니다.
     
     [갈기산 정상 오르는 길]
     잠시 걸어 올라 갑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상이 멀지 않습니다.
     단지 날씨가 더워 땀이 많이 났습니다.
     
     [갈기산 정상]
     갑자기 예고도 없이 조그만 암벽 릿지 코스가 나오는데 이곳이 "갈기산 정상"입니다.
     이곳에 10시 50분에 도착했으니 산행 들머리에서 55분 걸렸습니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일행을 한시간 가까이 기다리며.....
     그런데 이곳은 처음 오는 산객들에겐 혼동을 주기에 충분한 곳이더군요.
     느낌상으로는 암벽으로 오르지 않고 오던 방향에서 직진을 해야 할듯한 느낌을 줍니다.
     많은 산객들이 직진을 해서 여기서 교통정리를 하며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직진이 아니고 좌측으로 "갈기산 정상"을 오르고, 
     갈기산 정상을 넘어 "말갈기 능선"으로 바로 가야 합니다
     
     [갈기산 옆 봉우리에서 바라 본 '갈기산 정상']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건너편 산봉우리에 가서
     "갈기산 정상"을 촬영했습니다.
     갈기산 정상은 암벽 위에 솟아 있는 좁은 공간이라 매우 협소합니다.
     
     [갈기산 옆 봉우리에서 바라 본 "말갈기 능선"]
     옆봉우리에서 바라 보는 "말갈기 능선"이 전체적 조망이 좋다고해서 한컷 했습니다
     '말갈기' 같은 가요?
     신록이 우거져 여기서는 '말갈기'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갈기산 정상]
     일행들이 도착하여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갈기산 정상]
     좁은 정상에는 많은 산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갈기산 정상석]
                    예쁘장한 정상석이 이채롭습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본 "금강"과 "호탄리"]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합니다
     "금수강산"이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대변하는 말이라는 건 모두 알아도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하라면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金水江山이 아니고 錦繡江山입니다
     "비단 錦"에 "수 놓을 繡"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江과 山"이라는 뜻인데........
     이 한장의 사진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바로 이것을 두고 錦繡江山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錦江마을이 어우러져 진짜 錦繡江山을 보여 줍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본 "금강", "천태산"과 "서대산"]
     북쪽으로 "천태산"이 마주 보이며 그 너머로 충청남도에서 제일 높다는 "서대산"이 보입니다
     그림 같습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본 "말갈기 능선"]
     앞으로 가야할 "말갈기 능선"이 펼쳐집니다.
     '갈기산'의 백미라 할수있는 "말갈기 능선"을 이제부터 집중 탐구 하겠습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백두대간"과 "민주지산"]
     호~ 좋은 것 알았습니다.
     素山선생님이 주변 산들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동쪽으로 끝에 검은 능선이 보이시죠?
     바로 "백두대간"이며 "민주지산"이 보이고 옆에 뾰쪽 솟은 산이 "석기봉"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설명 없이는 알수 없는 것입니다
     김천과 영동 사이의 "괘방령"에서 황악산 우두령 민주지산 덕유산으로 가는 백두대간이
     검푸른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하늘을 떠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토의 등뼈입니다.
     
     [素山 김홍주선생님과 鼎巖 김광진 교수님]
     지난 "계룡산" 산행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 이번에는 두 선생님과 함께 잊지 않고 한컷..
     무척 유명하신 분들이시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素山 김홍주선생님(붉은 티셨츠)은 아직 일흔여섯 밖에 않되시는 "산 사나이"이십니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시며 후진 양성에 청춘을 불 사르시고
     현재 '산행문화연구소'를 운영하시며 올바른 산행문화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리십니다
     각종 등산 잡지와 특히 월간 "산"에 산행기를 연재하시는데 여러모로 바쁘신 중에도 
     오늘 시간을 내 주셔서 함께한 모든 일행들에게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鼎巖 김광진 교수님(검은 색 옷)은 재작년까지 충남대 의대 교수님으로 재직하시다 정년 퇴임하셨는데
     아직도 몇개 대학에 강의를 나가시며, 최소 일주일에 한번 이상 산행을 하십니다
     鼎巖교수님의 '산 사랑'은 素山선생님 못지 않습니다.
     "山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정도로 산행을 즐기시며, 
     그러니 저 같은 '산 날라리'도 초대해 주셔서 높은 산행의 즐거움과 건강생활을 배우고 느낍니다
     鼎巖교수님은 또한 문학에도 경지에 도달해 詩人이자 수필가이십니다.
     여러 매체에서 鼎巖교수님의 감칠 맛 나는 산행기를 접했을 것입니다.
     어휴~ 또한 성악에도 프로이신데 현재 '대전 대덕R&D특구 합창단'에서 맹활약 중이십니다
     의학은 물론이고 산과 문학과 성악에서도 프로이시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대단하다구요? ㅎㅎ
     鼎巖교수님의 카페 주소는 http://cafe.daum.net/jeungam 이니 찾아 들어 가
     다양한 산행기와 글들을 접해 보시기 바람니다. 꽁짜입니다. ㅎㅎ
     
     [갈기산 하산]
     갈기산 정상을 탈출하여 갈기산의 백미라는 "말갈기 능선"으로 향합니다
     
     [말갈기 능선]
     무언가 멋진 것들이 펼쳐질듯한 예감을 받으며 "말갈기 능선'으로 조심스럽게 나아 갑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뒤 돌아 본 "갈기산 정상"]
     '말갈기 능선'으로 조금 나아 가 뒤돌아 보며 "갈기산 정상"을 바라 봤습니다.
     그냥 "갈기산 정상'을 촬영해도 되지만 이 기회에 대구에서 오신
     "대구 올뫼 산악회" 회장님(오른쪽, ID 용담)과 회원님을 소개해 드림니다.
     원래 산행기에 개인 사진들을 올리면 다른 많은 독자들이 개인 기록담이냐고 싫어하는데....
     이분들은 美人들이라 괜찮지요? ㅎㅎ
     산악회 회장님이 미인이라 그런지 "대구올뫼산악회"는 아주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답니다
     대구에 사시는 분들은 "대구올뫼산악회"에 참여하시고요.
     카페 주소는 "여기 클릭 http://cafe.daum.net/allmoeaplihe" 이니 찾아가 보세요
     
     [말갈기 능선]
     '말갈기 능선"은 글자 그대로 "말갈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다른 산의 "칼바위 능선"이나 계룡산의 "자연성능"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말갈기 능선]
     '말갈기 능선"에는 두개의 큰 봉우리가 있는데 별도의 이름은 없고
     첫번째 높은 봉우리가 "558m봉"이고, 두번째가 545m봉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558m봉"이며 저곳에서 점심 식사를 합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바라 본 "성인봉"]
     '말갈기 능선'을 지나 "차갑고개"에서 계속 능선을 돌아 가려면 저 앞의 "성인봉"을
     지나 "자사봉" 안자봉" "월영산'으로 갑니다.
     오늘은 "차갑고개"에서 계곡 "소골"을 따라 하산하니 저곳은 가지 못합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바라 본 "안자봉"과 "월영산"]
     윗 사진의 "성인봉"에서 게속 가면 "안자봉"과 "월영산"이 나옵니다.
     다음 기회에 종주를 해 보겠습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말갈기 능선]
     암릉이 날카롭게 뻗쳐져있어 말(馬)이 달릴때의 "말갈기" 같은 모양을 나타낸다고
     붙여진 이름인듯 합니다.
     
     [말갈기 능선]
     능선길은 칼날 위를 걷는듯 아주 좁았습니다
     
     [릿지 코스]
     "갈기산"에는 릿지코스가 있는데 이 지역 유일의 릿지코스라고 합니다.
     '관광농원'에서 갈기산으로 오르는 암벽타기 코스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말갈기 능선]
     날씨가 아주 더워 땀을 많이 흘립니다.
     날씨 얘기가 나오니 이 기회에 자동차와 에어컨에 대해 몇자 적고자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바로 에어커을 켜지 말라고 하는데 왜일까? 특히 여름철에는 더...
     생활의 지혜 하나를 과학적 근거와 함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발암물질인 "벤진"때문입니다.
     "벤진'은 우리가 주로 환경호르몬이라고 하며 석유화학제품이지요.
     자동차 속의 플라스틱 제제에 열이 가해질때 나는 냄새가 벤진 냄새입니다.
     자동차의 계기판이나 의자, 공기 방향제는 벤진을 발생시키죠.
     허용 벤진양은 50mg/sq.ft 으로 알고있는데요, 
     하지만 자동차 문을 닫은채 실내 그늘에 주차했을때 차 안의 '벤진'양은 400 ~ 800mg이였고, 
     화씨60도이상 옥외의 햇볕에 자동차를 주차했을 때, 벤진 양은 2,000 ~ 4,000mg로 
     허용치의 40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여기에서 벤진은 우리몸에 치명적입니다. 
     암 뿐만아니라, 빈혈 및 백혈병, 임산부에게는 유산의 원인이 되기도 하구요. 
     간이나 신장에도 나쁜영향을 미칩니다.
     에어컨을 켠다고 창문을 모두 꽉꽉 닫아 밀폐시키면 
     차안의 사람들은 이런 "벤진의 독"을 흠뻑 들이 마시게 되는 거거든요..
     차를 타면 반드시 창문을 열어두고 환기를 시킨후에 에어컨을 틀어주세요~
     그리고 중간 중간에도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 주어야합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뒤 돌아 본 "갈기산 정상"]
     자동차 에어컨은 어느 정도 연료 손실을 가져 오는가
     손등에 알코올을 묻히면 알코올이 기화되면서 열을 빼앗아가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에어컨은 내부의 냉매가스가 응축됐다가 다시 기화되는 일을 반복하며 실내 온도를 낮춥니다. 
     이때 냉매가스를 압축시키는 기계장치 ‘컴프레서’가 필요한데, 
     바로 이 장치 '컴프레서'를 돌릴 때 많은 동력이 소모된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에어컨을 켰을 때 준중형·중형차는 0.82~8.54마력, 
     2,000cc급 디젤SUV는 1.03~9.38마력의 동력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정도 출력이면 125cc급 오토바이가 전속력으로 달릴 때의 힘 정도를 
     자동차 에어컨 돌리는 데 전부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고 합니다.
     
     [말갈기 능선의 "558m봉" 정상]

     기름값 아끼는 카에어컨 사용법
     1. 에어컨 모드는 ‘내부 순환’으로 놓을 것 
     2. 처음 켰을 때는 창문을 열고 세게 튼 뒤 창문 닫고 저단으로 바꿈 
     3. 언덕이나 추월 때는 잠깐 꺼둔다 
     4. 내리기 10분쯤 전에 미리 에어컨을 끈다 
     5. 엔진 회전수가 3000~4000rpm 이상일 때 껐다 켰다 하지 않는다 
     6. 가능하면 땡볕인 야외에 주차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연료를 최대 20% 정도 줄일수 있다고 하니
     이번 여름에는 꼭 실천 해 보시기 바람니다

     
     ["558m봉"에서의 점심식사]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궁극적 목적은 이런 저런 좋은 말 많이 붙이며 유식한척 하지만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산에 오릅니다.
     대구 대전 에서 모이신 산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는듯....ㅎㅎ
     
     [점심식사]
     저도 쇠주 한잔하고....
     약 한시간에 걸친 식사와 환담
     정말 괜찬은 만남이었습니다.
     공자의 인생삼락을 들먹이지 않아도
     세상에 와서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것을 말하라면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알고 느껴 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 넓은 세상의 바다에서 만나 서로를 알수 있었겠습니까
     자리를 만드신 정암교수님과 함께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림니다
     저도 산을 이곳 저곳 다녀 보니 우리나라가 그렇게 넓지는 않아 어느 곳에서나 만날수 있더군요
     앞으로도 어느 곳에서나 자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말갈기 능선의 "545m봉" 가는 길]
     오늘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詩 한수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 詩를 모르면 대포집에서 대화가 힘들었을 정도로 유명한 詩이죠 
     "서정윤님의 홀로서기"
                   
                    홀로서기   
                                   서정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545m봉"으로 가는 "말갈기 능선"]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뒤돌아 본 "갈기산 정상"과 지나온 "말갈기 능선"]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차갑고개"로 내려 가며 바라 본 "월영산"]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차갑고개" 내려 가는 길에서 바라 본 "서대산"]
     가운데 제일 먼곳에 검게 보이는 산이 충남에서 제일 높다는 "서대산"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차갑고개]
     오른쪽이 "소골"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이며
     직진은 "성인봉" - "자사봉" - "안자봉" - "월영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소골" 계곡으로 하산]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소골"에서 물놀이]
     무지 무지 무더운 날 갈기산의 계곡 "소골"에서
     차가운 맑은 계곡물에 더위를 식혔습니다
     
     ["소골"에서 물놀이]
     보시는 분들도 시원해 지시나요?
     산행 후 이런 물놀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약 30분 정도 더위를 식히고....
     
     ["소골" 내려 가는 길]
     계곡길을 따라 내려 갑니다
     
     ["소골" 야영장]
     갈기산 계곡 "소골"에는 조그만 야영을 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습니다
     여름 피서철에는 아는 사람들만이 몰래 찾아와 피서를 즐기고 갈듯합니다.
     
     ["소골" 입구]
     "차갑고개"에서 하산 하는데는 물놀이 시간 약 30분을 합쳐 1시간30분 정도 걸렸습니다.
     
     [갈기산 간이 주차장 - 원점 회귀]
     오후 3시 30분에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했으니
     오늘 산행 총 시간은 5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어느 정도 산행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면 월영산까지 종주를 하는데 5시간 정도 걸리겠더군요
     
     ["자지산" 앞쪽 인공폭포]
     이쪽에서 유명한 "자지산" 앞 부엉이산에는 인공폭포가 물줄기를 흩날리고 있습니다
    "갈기산"과 "자지산" 사이의 錦江변에는 음식점들이 많은데
     대부분 "어죽"을 파는 음식점들이었습니다.
     
     [도리뱅뱅]
     인공폭포 앞 어느 유명한 "어죽"을 파는 음식점에 들어가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죽"이 나오기 전에 "도리 뱅뱅"이라는 피래미졸임이 사진과 같이 나오는데
     피래미를 동그랗게 돌려 놓았다고 "도리뱅뱅"이라고 하더군요.
     하여간 이지방의 맛자랑 메뉴이랍니다.
     
     [우주여행비]
     대전으로 돌아와 대전역에서 열차를 타려고 하는데
     鼎巖교수님이 '세종대왕' 두분을 주머니에 넣어 주시는데
     이런 문화에 익숙치 못한 필자는 극구 사양했는데도 제가 졌습니다.
     앞으로 우주를 여행할때 긴요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진달래*

진정으로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金鶴山-高臺山 遊山記
         
         동송시외버스터미날-철원여고-금학정-매바위-金鶴山-
         대소라치-보개봉-高臺山-삼각봉--보광봉-말등바위-주차장-신탄리역
        일시 : 2009년 6월 6일(토)
        총산행시간 : 8시간

     
     [산행 개념도]
     
     [수유역 4번출구]
     오전 8시 '수유역 4번 출구'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철원방향 시외버스 터미날"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山友와 "금학산-고대산"을 다녀 오기 위해서입니다
     날씨는 의외로 맑고 시원하였으며 가시거리도 길고 바람도 적당했습니다
     초여름 날씨 치고는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
     
     [수유역 시외버스터미날]
     "금학산-고대산 종주"를 하기 위한 대중교통수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수유역 4번출구 옆 "동송"행 직행버스를 타고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바로 금학산을
         오르는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오늘 이 방법으로 갑니다.
         버스 요금은 8,100원. 
         운행 시간은 약 1시간 40분
         배차간격은 다음 버스 시간표 참고
     2. 전철 1호선을 타고 "동두천역"까지 가서 "경원선 열차"로 갈아 타고 "신탄리역"까지 갑니다.
        경원선 열차는 동두천역에서 매시 50분에 출발합니다. 
        한시간에 한번이니 시간을 잘 맞춰야합니다.
        운임은 1,000원이니 매우 쌉니다.
        신탄리에서 고대산으로 산행을 시작하여 금학산으로 가면됩니다
        금학산부터 먼저 산행을 시작하려면 신탄리역 앞에서 "동송행 시내버스"가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한시간 간격으로 있으니 이 버스를 타고 동송으로 가 
        산행을 시작하여 금학산-보개봉-고대산-신탄리역으로 다시 오면 됩니다.
        신탄리역에서 동송까지 시내버스 운행 시간은 약 30분입니다
               
               [수유역 버스운행시간표]
               8시 20분 출발하는 동송행 무정차 직행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동송행 버스는 자주 있습니다
     
     [동송 시외버스터미날]
     무정차 하고 동송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 몇군데 서고 동송으로 가더군요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 정확히 10시 정각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꼭 1시간 40분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곳 터미날에서 바로 걷기 시작합니다
     오늘 산행 시작은 10시 정각이 되는 것이고, 
     신탄리역에서 기차를 타는 시각이 오후 6시였으니 정확히 8시간을 걸었습니다
     
     [동송시내]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 앞 거리 모습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구철원"이 더 익숙한 "동송"이라는 도시
     "신철원"을 "철원"이라 하고, "구철원"은 "동송"이라고 한답니다
     
     [산행 들머리 - 철원여고 입구]
     "동송시외버스터미날"에서 나와 바로 오른쪽 방향으로 약 30m정도 가면
     "철원 여자 중*고등학교"와 "금학체육공원" 가는 길안내 표지판이 보이는
     들머리를 만납니다. 길찾기 참 쉽지요~~이~잉
     
     [산행 들머리 - 철원여고 가는 길]
     "철원 여자 중고등학교" 가는 길로 끝까지 가면 됩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길이 똑 바로 잘 나있지요? 끝까지 가면 됩니다
     길 찾기 참 쉽지요 ~~이~잉
     
     [金鶴山]
     "철원여고"를 향해 가면 "철원여고" 뒤로 "金鶴山"이 우뚝 솟아있으며
      드디어 "金鶴山"이 산꾼들의 마음을 들썩거리게 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山勢가 가파릅니다
      파란문의 산행기를 보고도  다음에 금학산을 찾지 못하시는 분은 집에서 쉬세요
      파란문의 산행기를 즐겨 찾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산행기 보고 정작 댓글 하나 달아 주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보고 그냥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아직 댓글 습관이 정착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아유~ 왠만하면 댓글도 하나 남겨 주시고 가세요. ♬ ㅎㅎ
     댓글 남겨 주시면 제가 즐겁지요..
     
     [철원여고 교문]
     철원여고 교문 좌측 "금학정" 가는 길로 올라 갑니다
     "동송"에 "철원 여자 중고등학교"가 있으니, "동송"이 오리지날 "철원"입니다.
     
     [산행들머리 - 금학정 가는 길]
     철원여고 교문 좌측 바로 옆으로 "金鶴亭" 가는 길로 계속 올라 갑니다.
     길은 계속 쭉~ 뻗어있습니다
     
     [산행들머리 - 금학정 가는 길]
     공사중인 갈림길이 나오는데, 공사중인 길로 바로 올라 갈수도 있으며 시간은 단축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金鶴亭"을 구경하고 올라 가려면 좌측으로 갑니다
     
     [金鶴亭]
     "金鶴亭"에 왔습니다.
     "金鶴亭"은 체육시설인데 "國弓場"이었습니다. 활쏘는 곳이란 말입니다
     요즈음 양놈들 올림픽에 가면 국산 엽전들 때문에 자존심에 똥칠하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에서 西洋활을 제일 잘 쏘지요
     國弓은 세계대회가 없으니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당연히 세계 1위일겁니다.
     "로빈 훗"보다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이 더 잘 쏘니 대단한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金鶴亭]
     "金鶴亭"은  "國弓場"으로 우리나라 활을 쏘는 곳이었는데....
     아마도 제 추측에는 이곳이 옛날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도읍을 정하고
     "태봉국"을 세워 역사 속에서 "궁예"가 아직도 숨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궁예"는 한자로 "弓裔"이기때문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아시다시피 "궁예"는 "신라 47대 헌안왕"의 아들이니 "신라의 왕자"였습니다.
     신라의 왕자가 "고구려"를 계승하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弓裔"라고 했으니
     그가 얼마나 신라에 대한 원한이 많아 복수의 칼날을 세웠는지 알수 있습니다
     "弓裔""궁 弓""활"이라는 뜻이고, "예 裔""후손"이라는 뜻이지요. "활의 후손"
     의 종주국은 高句麗였으니 新羅에 강력히 대항하는 의미로 이름까지 "弓裔"라 한것입니다
     "弓裔"를 지역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시키고있는 철원이니 이런 "國弓場"이 "金鶴山" 아래에
     있는듯했습니다. "弓裔"는 바로 이곳에 "태봉국" 도읍을 지을려고 했었습니다.
     
     [金鶴亭 뒤에서 동송 방향으로 촬영]
     金鶴亭 뒤 주차장으로 가면 등산로 올라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올라 가 金鶴亭을 조망했습니다.
     옛날 "궁예"가 '태봉국'을 세울때 어느 선사가 "궁예"에게 도읍을 "金鶴山" 아래에 정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나라의 운명이 300년은 가고, 그렇지 않을 경우 30년도 못 간다고 조언을 해 줍니다
     그러나 "궁예"는 그 말을 듣지 않고 현재 휴전선 안에 있는 곳에 "궁예산성"을 쌓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태봉국"은 정권이 18년만에 "왕건"에게 작살이 나버립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이곳 "동송"에 도읍을 정했다면 .......
  
     [금학체육공원 가는 길]
     금학정 뒤 주차장 위로 올라가 다시 포장도로로 올라 갑니다
     삼국사기에 공식적으로 나온 궁예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원문을 인용해 검토해 보겠습니다
     "弓裔 新羅人 姓金氏 考第四十七憲安王誼靖 母憲安王嬪御 失其姓名 
      或云 “四十八景文王膺廉之子” 以五月五日 生於外家 "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 의정(誼靖)이며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 성과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또는 48대 경문왕 응렴(膺廉)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다]
     위의 삼국사기에서 궁예를 "47대 헌안왕의 아들일수도 있고 48대 경문왕의 아들일수도 있다"고 했는데
     한 나라의 '왕자'인 궁예의 아버지도 고의적으로 애매하게 기록하는 불분명한 역사책, "삼국사기" 
     김부식이는 왜 유독 "궁예"에 대해 이런 불명확한 기록을 남겼을까요?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왕건의 高麗' 입장에서 쓴 기록이니 
     그러하다 할수 있겠죠. 즉 勝者의 기록이기에 敗者인 '궁예'를 비하 시킨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의 "명성지맥2구간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금학체육공원]
     "금학체육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여기까지 약 30분이 걸렸습니다.
     산행에 필요한 물건도 사고, 금학정 구경도 하며 왔기 때문입니다.
     "산행에 필요한 물건"이 뭔지 궁금하세요? ㅎㅎ ......쇠주 ㅋㅋ
     
     [약수]
     금학산에 올때는 집에서 미리 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금학산-고대산 종주 코스에는 여기에만 샘물이 있으니 여기서 충분히 준비 해야 합니다
     요즘같은 초여름엔 3리터 정도의 물을 준비 해야합니다
     
     [산행 들머리]
     금학산은 이곳 정자를 지나 정자 뒤로 올라 갑니다
     정자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10시 30분에 출발합니다
     
     [된비알]
     체육공원 정자에서 무척 가파른 된비알을 약 10분 정도 치고 올라 갑니다
     갑자기 경사가 심해 당황합니다
     이런 경사라면 금학산 정상까지 갈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드는데 염려하지 마세요
     
     [비상도로 사거리]
     약 10분 정도 오르면 "비상도로"를 만납니다
     이곳은 휴전선 근방이기에 군작전도로가 잘 나 있고, 이 도로는 아마도 정상 부근까지
     이어져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비상도로 사거리 이정표]
     산객은 비상도로를 버리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여기서 947m높이의 金鶴山 정상까지 쉴틈없는 급경사 오르막이었습니다
     단단히 마음 먹고 출발해야합니다.
  
     [매바위 진입로]
     비상도로에서 등로로 처음엔 완만한 길을 오르지만....
  
     [매바위 오르는 된비알]
     숲속에 갖혀 외부 조망도 없는 터널을 오르는데 엄청 경사가 심합니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그저 꾸준히 걷고 걸어야 덜 갑갑합니다
     
     [처음 만나는 바위]
     숲으로 둘러 쌓인 숲터널을 뚤고 올라 가면 처음으로 이런 바위를 만납니다
     중간 기착지점인 "매바위" 근처에 온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바위에서 올려다 보는 "매바위"]
     登路에서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고 갑갑한 가슴이 시원해 지는 곳이 "매바위"입니다
     처음 만나는 이름 모를 바위에서 위쪽을 바라 보면 "매바위"가 보입니다
     이제서야 한숨 돌립니다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여기까지 1시간 35분 걸렸습니다
     
     [매바위]
     '매바위"
     "매"처럼 보이십니까?
     보는 사람들 마음대로 감상해도 무방합니다
     제 눈에는 "강아지"가 서서 저를 반기는 둣 했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실겁니다. ㅎㅎ
     
     [매바위에서 조망하는 "동송시내"]
     "매바위"가 "강아지 바위"로 보이지 않나요? ㅎㅎ
     金鶴山의 "매바위"는 매우 유명합니다. 
     모든 금학산 산행기에는 반드시 이 "매바위"는 등장하기에 유명한것으로 느낍니다만
     그 이유는 제 생각에는 金鶴山에서 볼거리는 "매바위"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궁예"의 옛 활동지역인 "동송"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위치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바위' 자체는 그저 그렇습니다
     
     [매바위에서 조망하는 "동송시내"]
     "弓裔"의 넋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듯합니다
     오른쪽으로 바로 "궁예"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해서 붙여 졌다는 유명한 "명성산"이 보이고
     가운데 멀리 한북정맥의 "광덕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광덕산-각흘산-명성산-여우봉-사향산-관음산-불무산-보장산으로 이루어진 '명성지맥"의 대표산인
     "명성산"에 대해서는 저의 옛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매바위에서 올려다 본 "금학산"]
     금학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상까지도 엄청 된비알이었습니다
     
     [매바위에서 금학산 정상 오르는 길]
     매바위에서 부터는 가끔 바위들이 나타났습니다.
     구경거리들이 좀 있어 지루하지는 않더군요
  
     [매바위에서 금학산 정상 오르는 길]
     최근에 등로를 인공시설로 많이 개선했더군요
     급경사에는 계단을 만들어 놨습니다
               
               [금학산 정상 오르는 계단]
               제법 긴 계단이 튼튼하게 설치되 있습니다
               이런 계단이 없었을 때에는 고생이 심했을듯....
  
     [금학산 정상부 능선 이정표]
     급경사와 계단을 오르면 능선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능선에는 이정표도 있습니다. 여기서 한숨 돌리고....
     
     [능선에서 올려다 본 금학산 정상]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금학산 정상에 오를수 있겠습니다
     "금학산-보개봉-고대산" 종주에는 금학산 오르는 등로가 제일 힘듭니다.
     경사가 심하고 높이가 947m이니 대략 짐작이 가시죠?
     나머지 구간은 비교적 쉽습니다
     여기만 오르면 오늘 고생 끝 ~
     
     [금학산 정상 오르는 길에 있는 "무명 바위"]
     여기에도 "매바위" 같은 바위가 있숩니다
     금학산에는 산객들이 많지 않았습니다만 이 부근에서 벌써 하산하는 산객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여자 들이었고, 고등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있었는데...부지런하기도 하시지...
     
     [군 토치카]
     하늘이 열리는 것으로 보아 정상 부근에 왔다는 것을 직감할수 있습니다
     군 토치카가 곳곳에 설치되 있는데....
     
     [군 토치카 위의 화생방 타종시설]
     군 토치카 위에 오르니 화생방 타종시설이 있으며
     "동송" 시가지가 잘 조망되었습니다
     
     [금학산 정상 - 헬기장과 토치카]
     드디어 金鶴山 정상부에 올랐습니다
     정상부 아래에는 모두 군시설들이었습니다
     
     [금학산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정상]
     정상에 오르니 헬기장이 제일 먼저 반기고
     정상석이 있는 곳에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곳곳에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송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금학정'에서는 두시간 정도 걸린샘입니다
     
     [모노레일 카]
     헬기장 바로 옆에 "모노레일 카"가 있더군요.
     그러니까 이곳 정상까지 화물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 있는 것입니다.
     군부대의 여러 물품들과 음식물을 실어 나르는 "모노레일 카"가 신기합니다.
     "요즘 군대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편리해 졌으니.....
     이런 "모노레일 카"가 없었던 시절에 군복무를 한 사람들은 그 당시 얼마나 고생 했겠는지 
     가희 짐작이 가시나요? 먹어야 싸울수 있으니 먹기 위해 식자재들을 지고 
     이 높은 금학산을 오르 내렸을 테니....에구~
     겨울에는 이곳의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 가는 곳이란거는 모두 아시죠?
     옛날에 비하면 요즘은 꽁짜로 여행 온듯한 기분으로 군대생활한다니...
     아무튼 잘된일입니다
  
     [헬기장에서 정상 가는 길]
     군부대 시설을 만들고 있는듯 '금학산 정상'은 온통 공사판이었습니다
     금학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는 군부대가 있어 갈수 없고 정상석을 이곳에 세워 놨습니다
     군부대 안에 갔다가 돌아 왔습니다
     
     [金鶴山 정상]
     헬기장 바로 윗 봉우리에 정상석을 세워 놨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한 山友입니다. 멋있죠?
     이 사진 보고 또 소개 시켜 달라는 여자분들이 많겠는걸...
               
               [金鶴山 정상석]
              金빛을 내는 鶴이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지었다는 金鶴山
              947m로 제법 높은 산이며, 특히 궁예가 도읍을 정하려고했던 鎭山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金鶴山 정상에서 바라 보는 高臺山]
     金鶴山 정상에 서니 앞으로 가야할 高臺山이 확실하게 조망됩니다.
     이제까지 막연하기만 했던 金鶴山-보개봉-高臺山이 펼쳐집니다
     이 광경을 보고 나니 쉽게 고대산까지 갈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 산행기를 보시는 분들도 자신감이 생기시죠? ㅎㅎ 
     
     [金鶴山 정상 헬기장에서 高臺山 가는 길]
     金鶴山 정상에서 高臺山으로 가려면 다시 헬기장으로 내려와 西北쪽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다른 분들의 산행기에서 알바를 많이 하는 곳이라고 주의를 주고 있으니 참고 하시길...
     
     [金鶴山 정상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동송']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궁예의 理想을 알아 보면
     "天復元年辛酉, 善宗自稱王, 
     謂人曰: "往者新羅請兵於唐, 以破高句麗, 故平壤舊都鞠爲茂草, 吾必報其"
     [천복(天復: 唐 昭宗의 연호) 원년(서기 901년) 신유(辛酉)년에 선종(善宗=궁예)이 
     왕을 자칭하고 사람들에게 일렀다. 
     "옛날에 신라가 당(唐)에 군사를 청하고 고구려를 파(破)하였기 때문에 
     평양 옛 도읍이 황폐하여 풀만 무성하다.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리라!"]
     궁예의 법명이 선종善宗입니다
     외세를 끌어 들여 자신들의 정권 연장에 이용한 신라 왕조에 대한 반감이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신라의 왕자인 자신을 버린 신라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金鶴山을 하산하며 뒤돌아 본 金鶴山 정상]
     "궁예"가 애꾼눈이 된 사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명성지맥2구간 산행기"에 올렸던 글인데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올려드립니다
     
     [보개산에서 고대산으로 뻗은 능선]
     '보개봉'에서 '고대산'까지는 완만한 능선으로 쉽게 갈수 있을듯 보이는데
     직접 가보니 여기서 보는것과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는 평이했습니다

     궁예가 애꾸눈이 된 사연
     궁예의 아버지는 신라 제47대 헌안왕이고,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후궁이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48대 경문왕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록은 47대 헌안왕이 48대 경문왕에게
     완전이 호구 잡혀 꼭두각시 왕만 하다가 왕위를 48대 경문왕에게 그냥 물려줬기 때문입니다
     궁예의 탄생은 삼국사기에서 5월 5일에 외가에서 출생하였다고 기술해 놨습니다 
     탄생 설화에 나타나 있는 이 때의 상황을 제가 시나리오로 꾸며 보겠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140여년전 5월5일 단오날이었습니다
     일관(日官)이라고 하는 나랏일에 대해 점(占)보는 일을 맡아보는 벼슬을 가진 놈이 
     신라 왕실에 허겁지겁 뛰어 옵니다. 그리고 후에 48대 왕이 되는 예비 경문왕에게 아룁니다
     日官 : (뛰어 와 허리를 굽히고 숨을 헐떡이며...) 전하!!~~ 큰일 났습니다
     王   : 호들갑 떨지 말고 자세히 아뢰어라!
     日官 : 아이구 숨차~ 전하! 기이한 점괘가 나왔습니다
     王   : (놀라며) 무슨 점괘냐?
     日官 : (건너편 왕궁을 가리키며) 저쪽 47대 헌안왕 세칸드 침소에서 왕자가 한명 탄생했습니다
     王   : 무어라?  아들 하나 낳은게 뭔 큰일이라고 호들갑이냐? 내가 그깟 아들 하나를 무서워 하겠냐?
     日官 : 아닙니다. 전하!~ 47대 헌안왕의 아들이 탄생하면서 부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王   : 어떻게 예사롭지가 않다는것이냐? 궁둥이에 뿔이라도 있느냐?
     日官 : 이 왕자 쎄끼가 나면서 부터 이빨이 나고, 얼굴에는 이상한 瑞光이 비취고
             아이큐가 무지 좋아 벌써부터 또릿또릿한게 큰 인물이 될것 같습니다
     王   : (놀라며) 그래? 앞으로 내가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될것이란 말이지?
     日官 : 넵! 그렇게 사료 되옵니다
     王   : (벌떡 일어 서며 화낸 목소리로) 여봐라!~~ 이거이 않되겠다. 그 애새끼 죽여버려!!~~
     (호위병들이 급하게 뛰어 나간다)

 
     [금학산 정상에서 "대소라치"고개로 하산]
     급경사 내리막인데 "모노레일'이 인상적입니다

     (장소가 바껴 47대 헌안왕의 세칸드 침실)
     (호위병들이 침입하는 소리가 들린다)
     (위기에 처한 왕후가 아들을 강보에 싸서 부랴 부랴 안고 방안의 숨을 곳인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군사들이 방문을 박차고 쳐 들어 온다)
     (다급해진 왕후가 다락문을 열고 밖에 있는 유모에게 아이를 던진다)
     (유모가 아래에서 아이를 받는데, 이때 유모가 잘못하여 손가락이 아이의 눈을 찌른다)
     (눈에서 피가 나는 아이를 안고 허겁지겁 도망을 친다)
     궁예가 애꾸눈이 되는 과정을 제가 기록을 토대로 이해하기 쉽게 꾸며 봤습니다
     이해가 쉬운가요? ㅎㅎ
     궁예는 엄마가 다락에서 유모에게 던질때에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애꾸눈이 됩니다

     
     [대소라치]
     金鶴山과 高臺山의 경계인 "대소라치" 고개가 보입니다.
     건너편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보개봉"입니다.
     高臺峯은 오른쪽 끝에 보입니다
  
     [대소라치 군시설]
     최전방이기에 군사시설이 곳곳에 있습니다
     
     [대소라치]
     "대소라치" 고개로 내려 갑니다
     이 도로들은 모두 군사도로입니다.
     
     [대소라치에서 바라보는 "담터계곡"과 "지장산"]
     "대소라치'에서 남쪽으로 "담터계곡"이 길게 뻗어 있으며 
     오른쪽 끝으로 "지장산"이 보입니다.
     "지장산 - 보개봉 - 고대산" 종주를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대소라치 방호벽]
     인적이 없는 고갯길에도 전쟁을 염두에 둔 방호벽은 육중한 모습을 하고 서 있습니다
     탱크들이 못 넘어 오게 설치한 방호벽은 이젠 익숙한 시설물이지요
     
     [대소라치에서 보개봉 가는 길]
     이 길은 산 입구에서 군 참호통로로 끊겨있어  참호통로를 건너 가야 합니다
     직접 가 보시면 뭔말인지 알수 알수있습니다
     
     [보개봉 올라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대소라치"와 金鶴山]
 
     "궁예"의 와이프 "강씨왕후"에 대해 쬐끔 알려드립니다
     "강씨왕후"는  무지무지 미인이었고 똑똑한 여자였답니다
     그렇기에 '왕건'의 쿠데타 세력들은 "궁예와 강씨왕후"를 폄하 시켜야 자신들의 돋보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궁예와 강씨왕후"를 씹어 댔습니다
     高麗史에서도 여러 군데서 "강씨왕후"를 폄하시키고 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니 패망한 "궁예"라 할지라도 "궁예"가 무척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고
     "강씨왕후"는 파란문의 추측으로는 "빼어난 미모에 지성까지 갖춘 여인"이어서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高麗의 사학자들은 "궁예와 강씨왕후"를 폄하하기 위한 설화를 지어내 퍼뜨렸습니다
     '후고구려'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이죠
     그 대표적인 것이 <"궁예와 구미호">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승자가 패자를 어떻게 폄하하는지 그 단면을 확실히 들여 다 볼수 있는 "궁예와 구미호"
     "궁예와 구미호"에서 궁예가 사람을 많이 죽인 이유를 
     구미호가 "강씨왕비"를 잡아먹고 그 탈을 쓴 구미호가 왕인 궁예를 홀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인이 생기길 천하일색으로 생겼는데 웃는 벱이 없어. 좋아하는 벱이 없어. 
     거 사람 죽이는 것만 보면 깔깔 웃어,”
     왕비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궁예가 사람을 계속 죽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궁예는 본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한 폭군은 아니라는 것인데 
     이렇게도 나쁜 놈을 만들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대단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둔갑을 자유자재로 하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일 수도 있고, 
     또는 왕을 홀려 정치를 등한시하게 하여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요사스런 여인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구미호가 어떤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든, 이것은 임금으로서의 궁예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보다는 여색에 빠져 정치를 등한시한 망국의 군주로서의 궁예를 파렴치한 놈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파렴치하고 권모술수에 능했던 인간은 오히려 쿠데타 정권인 "왕건"이었다고 전해져 내려 옵니다
     궁예와 강씨왕후를 폄하 시키고 '삼족구'라는 세개의 다리를 가진 개를 등장시켜 구미호를 제압하는데
     여기서 '삼족구'는 '왕건'을 암시하며, 난세에 영웅 출현을 의미하며 '왕건'을 띄웁니다
     이야기가 요즘 정치판하고....좀 ..그렇지요? ㅎㅎ
 
     
     [보개봉 가는 길에 처음 만나는 갈림길]
     "대소라치"에서 "보개봉" 올라 가는 길에는 두번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모두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알바 많이 하는 곳이니 주의해야합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는 곳이 "왼쪽"이니 꼭 "왼쪽"으로 가세요
     느낌으로는 꼭 직진해야하는 것으로 느껴지기에 알바를 많이하는거죠
     
     [점심식사]
    지금까지 산에 다니며 준비한 점심식사 중에 최고였습니다
    김밥, 불고기, 청양고추, 피클, 토마토, 던킨 도넛, 쇠주......
    약 1시간 정도 쇠주에 점심식사를 하고....
  
     [보개봉 올라 가는 길]
     '보개봉'까지 경사가 다소 심한 오르막을 3~40분 정도 오릅니다.
     숲으로 뒤덮힌 肉山이라 외부를 조망할수 없어 길을 잃을 염려가 많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 드린데로 갈림길 두군데에서 "왼쪽"으로만 가면
     보개봉 정상으로 어렵지 않게 갈수 있습니다
     
     [보개봉 정상]
     어느 산이나 하늘이 보이면 대체로 정상입니다
     '보개봉' 정상도 시멘트 포장이 되있는 헬기장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高臺山"]
     보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헬기가 앉을수 있는 넓은 시멘트 포장 공간이 있으며
     앞으로 가야할 "高臺山"이 가깝게 보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뒤 돌아 본 "金鶴山"]
     "金鶴山"이 작지만 가파른 높은 산이란걸 느낄수 있습니다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있는 곡은 모두 잘 아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이 곡은 멕시코 출신의 3인조 트리오 "로스 트래스 디아멘테스"가 발표하여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라틴음악의 고전이죠?
     맥시코의 '트리오' 라고 하면 'Trio Los Panchos 트리오 로스 판초스'가 먼저 생각 납니다만
     사실 Los Tres Diamantes도 만만치 않은 라틴음악의 대표들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장산"]
 
     이 노래의 원명은  "Luna Llena"로서 영어로 하자면 "Full Moon"이며
     우리말로 직접 번역하자면 "滿月"이라고 해야겠지요
     "滿月"을 '불루벨스'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번안 했는데 번안 하는 사람 맘대로 이겠지만
     '불루벨스'가 부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순전히 우리식으로 번안한 것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담터계곡"과 "지장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푸른 저 달빛은 호숫가에 지는데
          멀리 떠난 그 님의 소식 꿈같이 아득하여라
          차가운 밤이슬 맞으며 갈대밭에 홀로 앉아
          옛사랑 부를때 내 곁엔 희미한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여 
          차가운 밤이슬 맞으며 갈대밭에 홀로 앉아
          옛사랑 부를때 내 곁엔 희미한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여 
    
     이 곡은 세계의 여러나라에서 나름대로의 감성에 맞게 개사되어 불려지는 노래이며 
     듣는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으로 
     언제 들어도 감미롭고 아름다운 노래로 느껴집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도 모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있지요? ㅎㅎ
     없으신 분들은 인간도 아녀~~누구나 있는 벱이여~ㅎㅎ
     
     [보개봉 정상에서 "高臺山" 가는 길]
     "보개봉"에서 "고대산" 가는 능선은 겉으로는 평평해 보이지만
     직접 가 보니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고대산 가는 능선]
     다른 산객들은 거의 만나기 어렵고 산객들의 흔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고대산'과 "금학산"을 종주 하지 않고 고대산이나 금학산만 오르고
     가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이 능선에선 산객 두사람을 만났을 뿐입니다
     
     [고대산 가는 능선에서 뒤돌아본 "보개봉"과 "금학산"]
     고대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뒤돌아 보니 '보개봉'과 "金鶴山'이 그림같습니다
     
     [高臺峯]
     능선에서 숲 사이로 보이는 "高臺山"의 "高臺峯"
    
     오늘은 요즘 유행하는 "워매... G랄이야~"라는 유머를 전하겠습니다
    
     여름철에 베짱이는 놀기만하고 개미는 열심히 일했는데, 
     겨울이 오니까 개미들이 전부 얼어죽고.... "워매... G랄이야~"
    
     
     [高臺峯]
     우측이 高臺山의 정상인 "高臺峯", 좌측이 "삼각봉", 그 좌측이 "대광봉"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 
     나무꾼한테 숨겨달라고 애원하고숨었는데 나무꾼 고자질하고.... "워매... G랄이야~"
    
  
    [高臺峯 올라 가는 길]
     高臺峯 올라 가는 마지막 오르막을 오릅니다.
     
       광한루에서 그네타는 아리따운 춘향이를 불러오라구 
       방자에게 시켰더니 향단이를 데려오고 ....  "워매... G랄이야~"
    

     [高臺峯]
      高臺峯 턱 밑에 까지 왔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하는 소리에 춘향이가 기뻐서 고개를 들었는데 
     암행어사가 이도령이 아니고 박문수고.... "워매... G랄이야~"

     
     [高臺峯 오르는 길]
     高臺峯 정상은 우측으로 돌아 올라 갑니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들었는데, 
     그 때 바닷물이 갈라지고.... "워매... G랄이야~"

     
     [高臺山 제3코스]
     우측으로 돌아 올라 오면 "高臺山 제3코스"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하다가 그만 도끼를 연못에 빠뜨렸는데
     이 도끼가 연못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뜨고  .... "워매... G랄이야~"

     
     [高臺山 정상]
     高臺峯으로 올라 갑니다
     이곳에도 '모노레일"이 깔려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는데... 
     토끼가 낮잠을 안자고 .... "워매... G랄이야~"

     
     [高臺山 정상 갈림길]
     高臺峯 바로 아래에 갈림길 이정표가 있으며,
     高臺山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서 제2등산코스를 따라 하산해야합니다
     
     [高臺山 정상]
     南쪽에서 北으로 갈수 있는 등산이 허용된  휴전선에 가장 가까이 있는 高臺山정상에 올랐습니다.
     高臺山은 철원군과 연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인데 
     高臺山은 주로 '연천군 신탄리'에서 오르기 때문에 연천군의 산으로 느껴지고있습니다
     
     [高臺山 정상석]
     高臺山 정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산은 역시 "金鶴山" 입니다
     철원평야와 한국전쟁 때의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를 비롯하여 ,"지장산"등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高臺山은 골이 깊고 산이 높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만
     원래는 "방고래"에서 유래했다는 군요.
     옛날 온돌방에는 불이 들어 가는 아궁이에서 방바닥 밑으로 '방고래'가 지나가지요?
     그 '큰 방고래'에서 유래하여 "고대산"이 되었다고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高臺山 정상석 아래에 있는 '열쇠부대' 팻말]
     
     [高臺山 정상에서 뒤돌아 본 "보개봉"과 "金鶴山"]
     
     [高臺山 정상에서 바라 본 "담터계곡"]
     
     [高臺山 정상에서 바라 본 北쪽 방향 "고대산 제3등산코스"]
     북녁으론 "백마고지", 우측으로는 철원평야와 동송의 '학저수지'가 보이는군요
               
               [삼각봉 이정표]
               高臺峯에서 제2등산코스를 따라 조금 오니 바로 "삼각봉"이었습니다
               高臺山에는 등산코스가 세개 있었는데, 주로 "제2등산코스"를 이용하더군요.
               제1등산코스는 대광리에서 오르는 길이고
               제3코스는 高臺山의 북쪽 계곡을 따라 오르는 코스였습니다
               제2코스가 신탄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는 가장 유명한 코스였습니다.
               처음으로 고대산에 가시는 분들에게는 "제2등산코스"를 추천해 드림니다
     
     [삼각봉에서 뒤돌아 본 "高臺峯"과 "金鶴山"]
     삼각봉에서 뒤돌아 보니 "高臺峯"과 "金鶴山"이 가깝게 느껴지는군요
      
     땅으로 떨어진 제비새끼의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가 애써 치료해줘서 날려 보냈는데 이듬해 안오고.... "워매... G랄이야~"

     
     [삼각봉에서 내려다 본 "대광봉"]
     앞으로 가야 할 "대광봉"이 보입니다.
      
     별주부가 온갖 천신만고끝에 토끼를 찾았는데 
     아 이 토끼 경주 하자고.... "워매... G랄이야~"

               
               [대광봉 이정표]
               "대광봉"에 왔습니다
               "고대봉"과 "삼각봉", 그리고 "대광봉"은 나란히 가까이 있습니다
     
     [대광봉]
     '고대산 제1등산코스"인 대광리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대광봉"입니다.
      
     겨우 용궁에 데리고 가서 토끼를 데려왔다고 알리니 
     아.. 용왕이 벌써 죽고.... "워매... G랄이야~"

     
     [대광봉에서 뒤돌아 본 "삼각봉"]
      
     나무꾼이 선녀옷을 훔칠라고 선녀탕에 몰래 숨었는데
     웬..수염난 산신령이 목욕하고 있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하산]
     하산은 팻말을 보고 "제2등산로"를 따라 가야합니다.
      
     다음날 나무꾼이 젤 이쁜 선녀옷 감추기에 성공했는데 
     빨가벗은채 하늘로 걍 올라가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하산]
     제2등산로는 좁은 능선길입니다
     아기자기한 코스이며 "신탄리와 고대봉"을 조망하기에도 좋은 코스였습니다
      
     춘향이 옥에 갇혀서 이도령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넘이 과거에 떨어져 재수 삼수 계속하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하산하는 길]
     좁은 능선인 "제2등산로"를 따라 내려 가면 "신탄리"가 잘 조망 됩니다.
     신탄리 新炭里는 연천군 신서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무지 무지 유명한 곳이지요
     왜냐하면 서울과 북한의 원산을 잇는 철로 "경원선"의 남쪽 마지막 역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금강산 가는 철길 - 경원선의 마지막 역.......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한시간이면 갈수 있는 금강산을 오고 갔으면.....
     
     [제2등산로 하산하는 길]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하산합니다
     경치가 아주 끝내줘요~~
     
     [신탄리]
     "신탄리"는 한자로 "新炭里"로서 6.25 이전까지는 이곳에 "참숯"이 많이 생산되어
     "참숯"으로 유명하였답니다. 그래서 신탄리라고 했다는 군요.
     이는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숯을 만들수 있는 산림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라합니다
     
     [제2등산로 전망대]
     능선 중간에는 친절하게 조망대를 만들어 놨기에 구경하기에 좋았습니다
      
     이도령이 드뎌 장원급제해서 남원으로 내려왔는데 
     춘향이 변사또하고 이미 살림차리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전망대에 있는 안내도]
      
     지나가던 스님이 공양미 삼백석만 바치면 눈 뜰수 있다고 했는데 
     심봉사가 그 말에 놀라 바로 눈 뜨고.... "워매... G랄이야~"

     
     [高臺山 내력]
      
     심청이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인당수에 뛰어 들라고 하는데 
     청나라 상인이 뒤에서 껴안더니 타이타닉 흉내내고.... "워매... G랄이야~"

     
     [말등바위 가는 길]
      
     심청이 왕비가돼서 심봉사를 궁궐로 초청했는데 
     뺑덕어멈이 대신오고.... "워매... G랄이야~"

               
               [말등바위 이정표]
     
     [말등바위]
     "말등바위"?  
     말馬은 어림 짐작할수 있지만 "말등'을 직접 관심있게 본 사람 있나요?
     그리고 "말등"이 어떤 특징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 이름 짓는 사람 맘대로 지은게 아닌지~~
     
     [말등바위]
     말갈기 같네요
     
     [제2등산로 들머리겸 날머리]
     高臺山 산행을 끝내는 날머리에 왔습니다.
     신탄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들머리가 되겠습니다
     
     [고대산 주차장 가는 길]
     고대산 날머리에 5시 45분경에 도착하여 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고요?
     동두천 가는 경원선 기차가 매시 정각에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6시 이전에 도착해야하니 뛸수밖에...8시간 걷고 또 뛰고...ㅎㅎ
     
     [고대산 매표소와 주차장]
     신탄리에서 고대산을 오를려고하면 입장료를 내야한답니다
     금학산은 입장료가 없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高臺山 入口와 高臺山]
     지나온 高臺山을 바라 보며 뿌듯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신탄리역 가는 길]
     6시 기차를 타려면 뛰어야합니다. 아니면 또 한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신탄리역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습니다
     
     [신탄리역]
     남쪽에서 북으로 가는 경원선 마지막역 "신탄리역"
     
     [신탄리역]
     철로는 여기서 끈겨있고
     동두천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려고 부르릉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별의 종착역 같은 느낌이 괜히 드는데.....
     묘한 느낌을 주는 "신탄리역"입니다
      
     [경원선 열차안]
     경원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연천군의 경치를 감상하며 산행을 마침니다
     경원선은 차비가 전구간 1,000원으로 매우 쌉니다.
     동두천에서 전철1호선으로 갈아 타고 의정부 부대찌개집에서 뒷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佛谷山 山行記 양주시청-제1보루-제2보루-불곡산 상봉-상투봉- 임꺽정봉-약수터-대교아파트 [불곡산 산행 지도] 불곡산 종주는 양주시청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양주시청의 왼쪽 "양주시의회" 건물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양주시청 동두천쪽 끝지점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양주역] 4월5일(일) 오전 10시 30분에 양주역에 도착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山友와 만나 佛谷山 산행을 시작합니다 양주역에서 불곡산 산행 들머리인 "양주시청"까지는 1-2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객들이 양주역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양주시청"이나 "백화암", "대교아파트"등 산행 들머리로 가더군요 [양주역에서 바라 보는 불곡산] 멀리 佛谷山이 토끼 귀 모양을 하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있습니다. 오늘도 약간의 안개가 끼어 시야가 흐릿해 사진이 선명하지 못합니다 [양주시청 가는 3번 국도] 우리는 양주역에서 걸어서 "양주시청"까지 이동합니다. 산행 들머리까지 약 15분 정도 걸으면 됩니다 동두천에서 의정부-서울 잠실-성남 갈마터널을 지나 이천-장호연-충주-문경새재-상주- 김천-거창-안의-산청-진주-삼천포로 빠지는 "3번국도"가 지나고 있습니다 [양주시청 가는 '3번국도'에서 바라 본 '불곡산'] 佛谷山 산행 산줄기가 뻗어 있습니다. 우측 "양주시청" 뒷산으로 올라 저 멀리 "토끼 귀"처럼 생긴 불곡산으로 갑니다 [양주시청] 이곳에서 등산로 입구는 양주시청에서 좌측 "양주시의회" 뒷길로 올라도 되고, 동두천 쪽으로 올라가 양주시청이 끝나는 지점의 등산로 입구로 올라도 됩니다. 우리는 동두천 쪽 양주시청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들머리로 갑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산객들은 "양주시의회" 뒷길로 오르더군요. 어느 쪽으로 가나 결국 다시 곧 만납니다 [산행 들머리] 동두천 방향 양주시청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산행 들머리에 왔습니다 [불곡산 등산 안내도] 불곡산 등산로는 여기까지만 안내하면 더 이상 안내해 드릴 필요가 없이 간단합니다 능선을 따라 오직 하나의 길 밖에 없으니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전혀 없습니다 [등산로 입구] 등산로에 접어 들어 뒤 돌아 보았습니다. 이 산행기만 읽으면 불곡산은 혼자서도 얼마던지 갈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일사천리입니다. 오로지 외길 11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양주시청 뒤를 돌아 가서 만나는 등산로] 양주시청 뒤를 돌아 가면 "양주시의회"에서 올라 오는 등로와 만납니다 [등산로] 등산로로 접어 들면 "양주시의회"에서 올라 오는 산객들과 만나므로 산객들의 수가 부쩍 늘어 납니다 [불곡산 제1보루] 약25분 정도 오르면 불곡산의 자랑 보루堡壘가 나옵니다 불곡산 9개의 보루堡壘중에 "제1보루"입니다 [불곡산 보루에 대한 안내판] 佛谷山 보루(堡壘)에 대한 안내가 있습니다 佛谷山에는 9개의 보루(堡壘)가 있는데 오늘 산행하는 코스에서는 6개를 볼수 있습니다 보루(堡壘)는 山城의 일종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때의 그 '보루'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콘크리트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 [불곡산 제1보루] 불곡산 보루는 작은 산성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보루의 흔적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불곡산 제1보루 봉우리] 양주시청에서 오르면 처음으로 오르는 봉우리가 "제1보루 봉우리"입니다 240.6m봉우리이며 양주시청에서 약 25분 정도 걸렸습니다 [불곡산 제1보루 봉우리에서 바라 보는 불곡산 정상] 제1보루봉에 오르니 佛谷山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佛谷山 정상인 "상봉"과 "임꺽정봉"은 "토끼 귀"인지 "고양이 귀"인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이 어디인지 얼마나 왔는지 알아보기 쉽습니다 "상봉"과 "임꺽정봉"이 하나의 이정표 역활을 하기때문이죠 [불곡산 제1보루 봉우리에서 제2보루로 가며 바라 보는 불곡산 정상] 제1보루봉에서 제2보루봉으로 가면서 '불곡산정상'을 바라봅니다 점점 정상이 다가 옵니다 [제2보루봉 오르는 등로] 佛谷山은 주말 나들이 산행으로 적합한 코스라고 생각됩니다 登路가 완만하고, 길지 않아 오르기 쉽습니다 물론 정상부근에는 암벽코스가 많습니다만, 그곳엔 또 우회로가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2보루봉 오르는 등로 중간에 있는 "마당바위"에서 뒤 돌아 본 제1보루] 넓직한 마당바위는 대부분의 산에 있습니다. 佛谷山 제1보루봉을 뒤 돌아 봅니다 [제2보루] 佛谷山 '보루'는 고구려시대에 축조된것으로 보고 있다니 무척 오래된 山城이지요 그래서 이곳 '보루'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있어 설명이 없으면 단순히 지나칠수밖에 없습니다 [제2보루 봉우리 정상] 제2보루 정상에 왔습니다 여기까지 약40분 걸렸습니다 오늘 날씨가 제법 더워서 여기서 겉옷을 벗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불곡산 제2보루 봉우리에서 바라 보는 불곡산 정상] 활짝 핀 진달래꽃 사이로 정상은 점점 더 다가 오고 있습니다 [양주 별산대놀이 공연장에서 올라 오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 불곡산 옆구리 '양주별산대 공연장'에서 올라 오는 삼거리를 만나고... [송전 철탑] 엄청난 규모의 송전철탑을 지나면.... [임꺽정 생가터에서 올라 오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 헬기장] 헬기장을 만나는데 '임꺽정 생가'에서 올라 오는 등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아이스키끼'를 사먹었는데 무척 맛있더군요 [임꺽정 생가터에서 올라 오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 헬기장] [헬기장에서 바라본 제5보루] 앞으로 넘어야할 봉우리인 제5보루봉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佛谷山 제3보루와 제4보루는 주능선에 있지 않아 볼수없습니다. 주능선에서 만나는 보루는 제1.2.5.6.7.8보루 여섯개입니다 [백화암에 올라 오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 불곡산 옆구리 '백화암"에서 올라 오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이곳에서 오르는 산객들도 많았습니다. 이곳으로 오르면 약30분이면 올라 올수 있겠더군요 [백화암] "백화암"의 원래 이름이 "佛谷寺"였답니다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개산했다는군요 [제5보루 오르는 길] 佛谷山 堡壘중에서 가장 옛날 원래 모양새를 그대로 갖추고 있는 堡壘가 제5堡壘인듯합니다 적당한 경사를 따라 오릅니다 [제5보루] 제5보루 안내판이 나오고.... [제5보루] 제5보루 봉우리에 오르는 길엔 철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구경거리가 많아 집니다 [제5보루] 老松과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제5보루] 堡壘다운 면모를 제5堡壘에서 느낌니다 [제5보루] 제5堡壘 봉우리는 소나무로 뒤덮혔습니다 [제5보루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불곡산 정상 "상봉"] 佛谷山 정상이 이제서야 본 모습을 드러냅니다 佛谷山 정상의 이름은 "상봉"이라고 하더군요 [제5보루에서 가며 올려다 보는 불곡산 정상 "상봉"] [불곡산 "상봉" 오르기 바로 전에서 바라 본 "임꺽정봉] 멀리 "임꺽정봉"이 보입니다 [불곡산 "상봉" 오르기 바로 전에 있는 술집] 행상이라기 보다는 酒店이라 할 정도로 규모를 갖추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불곡산 정상인 "상봉"은 암릉으로 다소 위험합니다. 암벽타기에 겁을 먹는 사람들은 여기서 좌측으로 편안한 우회로가 있으니 이용하시길... [불곡산 "상봉" 오르는 길] "상봉"은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친절하게 계단을 만들어 놨기에 누구나 오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은 위험하니 자신 없으신 분들은 조금전 우회길로 우회하면됩니다 우회길은 아까 酒店이 있는 곳에 좌측으로 이정표가 있습니다 [불곡산 "상봉" 오르는 암벽 위에 있는 기암괴석] 하지만 佛谷山에 와서 정상인 "상봉"과 "임꺽정봉"을 오르지 않는다면 佛谷山에 올 필요가 없겠지요 [불곡산 "상봉"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능선] 양주시청에서부터 올라온 봉우리 세개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제1보루봉, 제2보루봉, 제5보루봉이 나란히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나온 송전철탑도 보이고요~ [불곡산 "상봉"정상 오르는 길] 남녀노소 누구나 오르내림니다 [불곡산 "상봉"정상 오르는 길] 오르는 일보다 내려 오는게 문제입니다. 내려 오는 길은 "상봉"에서 다시 이리로 오지 않고 바로 서쪽으로 넘어 갑니다 그곳이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하는 코스가 있으니 자신 없으신 분들은 여기서 아까 酒店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 우회로를 이용해 "임꺽정봉"으로 가시기 바람니다 [불곡산 "상봉"정상] 드디어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 "불곡산 정상 "상봉"에 올랐습니다 정상부는 매우 협소하고 암벽으로 이루어져있어 통행이 불편합니다 [불곡산 "상봉"정상석] 불곡산에서 제일 높은 곳 470.7m "상봉"입니다. 그런데 정상석과 정상목에 표시된 불곡산의 높이가 서로 다르게 쓰여있군요 정상목에는 468.3m라고 한듯합니다 모든 지도에는 470.7m라고 표시되있습니다 [불곡산 "상봉"정상에서 바라 본 "임꺽정봉"] 임꺽정봉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가운데 조그만 능선 봉우리가 "상투봉"입니다. [불곡산 "상봉"에서 하산 하는 길] 이 로프를 타고 내려 가지 못하면 또 우회로가 있더군요. 조금만 정신집중하면 "상봉"에 오를수 있으니 너무 겁 먹지 마세요 [불곡산 "상봉"에서 하산 하는 길] 직벽 하산코스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회로가 있으니 우회로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저의 山友도 모두 우회길로 "불곡산 상봉" 정상을 밟고 내려왔습니다 [불곡산 "상봉"에서 하산 하는 길] 물론 깡다구있는 여자분들은 로프를 타고 내려 옵니다 [불곡산 "상봉"에서 하산 하는 길에서 바라 본 "상투봉"] "상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상투봉"이 자기도 불곡산의 한 봉우리라고 알려줍니다 중간에 이런 봉우리는 "상봉"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내려 오니 제법 높은 봉우리입니다 [불곡산 "상봉"에서 "상투봉"으로 가는 길] ["상투봉"으로 가는 길에서 뒤 돌아 본 불곡산 "상봉"] 암벽 사이로 내려왔는데, 겁이 많은 분들은 오른쪽 우회로로 내려 오면 안전합니다 ["상투봉"의 아름다운 모습] "상투봉"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상투봉"과 "임꺽정봉" 우회길 갈림길] "상투봉"도 암릉구간이기에 위험해서 여기서 좌측으로 우회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녀 본 결과 그다지 위험하지 않더군요. "상투봉"은 꼭 올라야 할 봉우리로서 경치가 매우 좋았으니 꼭 올라 보시길... ["상투봉"을 오르면서 뒤 돌아 본 불곡산 "상봉"] 북한 괴뢰군들이 우리 관광객에게 총을 쏘아 죽이는 "금강산"에 비싼 입장료와 관광비 내고 구경 가시렵니까? 쓰나미, 지진, 테러, 바가지, 총기난사하는 외국으로 비싼 비용 들이며 구경가시렵니까? 그런곳에 가기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錦繡江山부터 모두 섭렵하시고 부족하면 외국으로 떠나십시요 佛谷山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상투봉"을 오르는 암벽에 있는 하마 모양의 기암괴석] 바다 거북들이 짝짓기 하남? ["상투봉" 정상] 드디어 "상투봉 정상"이 모습을 드러 냅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오릅니다 "상투봉"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살포시 살짝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새악씨가 수줍어하는 듯 합니다 ["상투봉" 정상석] 이곳에도 정상석과 정상목의 높이 표기가 다릅니다. 뭔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특이합니다 ["상투봉"에서 뒤돌아 본 "상봉"] 멋쪄부려~ ["상투봉"에서 바라 본 "임꺽정봉"] 여기서부터 "임꺽정봉"까지의 암릉구간이 설악산 "공룡능선" 축소판 같았습니다 암릉구간을 다니기 시작하면 그 묘미에 흠뻑 빠지기 쉽습니다 ["상투봉"과 "임꺽정봉" 사이의 암릉능선] 외국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무지 무지 많습니다 그런데 "외국유학"이란 말의 뜻이 뭡니까?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제 우리나라에선 더이상 배울게 없을때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 외국 유학 가는 애들.... "외국유학"의 의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로 외국으로 가지요? 공부를 하지않아 우리나라에선 공부를 따라 갈수 없어 진학을 할수 없으니 일종의 현실도피 행각을 아까운 외화를 낭비하며 외국으로 외국으로 갑니다 거기라도 가서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간다고 새지 않나요? ["상투봉" 내려 가는 길] 관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명승고적을 모두 다녀 보고 모자르면 외국으로 떠나야지요 서울 남산도 올라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느나라 어느 곳을 따지는데 눈뜨고 못보겠더군요 ["상투봉" 내려 가는 길에서 바라 본 "도락산"] "불곡산"-"도락산" 연계 산행을 하면 좋겠더군요. "漢北正脈"이 저 "도락산'을 지나와 이곳의 임꺽정봉을 지나 호명산, 한강봉, 첼봉,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상장능선, 노고산, 고봉산, 파주의 장명산으로 이어 집니다 ["상투봉" 내려 가는 길] 사진에는 매우 어려운듯 보입니다만 간단한 릿지 산행을 불곡산에서 즐길수 있습니다 ["임꺽정봉 능선에 있는 기암괴석] "임꺽정 林巨正" 佛谷山 임꺽정봉이 다가 오니 임꺽정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수가 없군요 우리나라 성인 국민치고 "임꺽정" 모르는 분은 않계실겁니다 그러나 '임꺽정'은 의적 정도로만 알고 그 더 이상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또한 대부분일것입니다 오늘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번 등장하는 실존인물 "임꺽정"을 도둑놈 "임꺽정"에서 새로운 각도로 그의 삶을 재조명한 위대한 작가 "홍명희 선생"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大河歷史小說 - "임꺽정 林巨正"을 토대로 요약해볼까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리고 주관적 생각이 많이 포함되므로 반론이 있을수 있는데, 저와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른 곳에 자신의 생각을 밝히시기 바람니다 여기는 저의 블로그이거던요~~ㅎㅎ ["임꺽정봉" 가는 안부에서 뒤돌아 줌인한 "상투봉"의 "상투"] 이제서야 왜 "상투봉"인지 알수 있었습니다 상투를 틀어놨군요. ㅎㅎ 보는 사람에 따라선 男根을 닮았다고도 하더군요. 개눈엔 X만 보이죠 ["임꺽정봉" 오르는 길]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선생이 쓴 大河歷史小說 - "임꺽정 林巨正"이라는 소설을 이야기 하기 전에 역사 속의 "임꺽정"을 우선 추적해 보겠습니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때의 인물이지요 그러니 조선왕조실록의 "명종 실록 25권 14년 3월 기해"에 나오는 얘기를 먼저 알려드림니다 명종시대의 시대 상황을 극명하게 알려 주는 어느 사신의 상소입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의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끝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피와 땀을 짜내어 권세가를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과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진실로 조정이 청명하여 재물만을 좋아하지 않고 어진 사람을 가려서 수령으로 임명한다면, 칼을 잡은 도적이 송아지를 사서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니 어찌 이토록 거리낌없이 사람을 죽이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도적을 뒤쫓아 잡기만 한다면, 아마 잡는 대로 또 일어나 장차 다 잡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가렴주구'란 관리가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이용해 금품갈취를 하는 행위를 말하지요 윗글은 정치기강에서부터 사회혼란까지 총체적 개판이었던 명종시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상소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는 도둑놈이 있었지요 "임꺽정" 명종실록에는 임거질정(林巨叱正)으로 나와있습니다 ["임꺽정봉" 오르는 길] "임꺽정봉" 오르는 사면이 오늘 산행의 최고 재미입니다. 바위 하나 하나 생각하며 오르면 무척 재미있습니다 임꺽정은 16세기 중엽(명종때) 이곳 양주의 불곡산 '임꺽정봉' 아래 계곡에서 백정으로 태어나 가렴주구, 탐관오리들의 수탈에 못이겨 도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명종조는 을사사화 등으로 중앙 정치가 문란해져 지방 통치가 소홀한 틈을 타고 관리들에 의한 농민 수탈이 극성을 부리던 때이고, 관수 관급제의 실시로 관료들의 토지 소유욕이 증가하여 농장이 확대되는 속에서 농민들이 몰락하던 때였으며,왕실과 관료들의 사치가 날로 심해지고 방납 등의 폐단으로 공물의 양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던 때였으며, 각종 부역과 군역에 시달려 농민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고향을 등지기 일쑤인 때였기에 “백리 사이에 밥 짓는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농민의 생활은 피폐하였답니다. 즉,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모순이 심화되면서 몰락한 농민과 유랑민들을 배경으로 도적은 들끓을 수밖에 없었고 그 중 대표적 인물이 "임꺽정"이라는 도둑놈이었는데,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도적으로 유명하다는건 모두 아는 바와 같습니다 ["임꺽정봉" 오르는 길]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도둑놈 "임꺽정"을 재조명한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선생을 간략히 얘기해 드려야 겠습니다 '홍명희'선생은 대단한 가문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시대에 항일운동을 극렬하게 한 애국독립지사입니다. 그리고 휘문고등학교 교사(당시 휘문의숙), 연세대 교수(당시 연희전문), 오산고보 교장, 時代日報 사장,....... 그리고 불후의 명작 "임꺽정전"을 쓴 작가. 이러한 출중한 인물인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선생을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은 해방과 동시에 北으로 월북했기 때문입니다. ["임꺽정봉" 오르는 길] 북한에서의 홍명희선생의 지위는 하늘을 찌를듯했답니다. 김일성주석과 아주 각별한 사이로 북한에서 과학원장, 부수상까지 지냈습니다 홍명희선생의 아들 "홍기문"은 북한에서 "이조실록"을 완역한 유명 국학자이고, 둘째 아들 "홍기무"도 북한 사회과학원 소장을 역임했다고합니다. 손자인 "홍석형"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함경북도당 책임비서이고 손자 "홍석중"은 ‘황진이’를 쓴 소설가입니다. ["임꺽정봉" 오르는 길] 기암괴석으로 "임꺽정"의 위용을 알리고 있는듯합니다 소설 "임꺽정"의 문학사적 의의 첫째, 당시 사회 변동의 전모를 그림으로써 역사소설의 독특한 성격을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답니다. 둘째,<임꺽정>은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로서 인물 설정과 세부 묘사가 1930년대의 다른 소설과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답니다. 셋째, 조선 시대 민중들의 삶에 대한 의식과 정조를 일관되게 형상화한 작품이랍니다. 넷째, 상류층 사회의 타락에 대한 반성과 하층 사회의 변혁 의지를 통한, 사회 개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민중 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라고하는군요. 이러한 사실은 1930년대에 성행한 한국 역사 소설을 현실 도피나 비유적 장치, 복고주의로만 특징지을 수 없는 근거가 되기도 한답니다. 또한, 이 작품의 리얼리즘 정신은 1970년대에 들어서 <장길산>이나 <객주> 등의 장편 역사 소설로 계승되었다고하는군요. ["임꺽정봉" 오르는 길] 소설 "임꺽정" 핵심정리 갈래 : 장편 소설. 대하 소설. 역사 소설 배경 : 시간(조선 명종 때). 공간(황해도 청석골) 성격 : 저항적. 민중적. 토속적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표현 : 이야기를 구연하는 형식으로 사건을 진솔함 구성 : 봉단편,피장편,양반편,의형제편,화적편 등 5편으로 구성 발단 - 임꺽정의 출생과 성장 과정 전개 - 전국을 유랑하던 임꺽정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도적이 됨 위기 - 서림이 관군에게 잡히는 바람에 꺽정의 무리가 위기를 맞음 절정 - 꺽정은 소굴을 분산하고 관군과 싸워 승리함 결말 - 미완 제재 : 임꺽정의 난 주제 : 모순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 출전 : <조선일보> ["임꺽정봉"을 오르며 뒤 돌아 본 "상투봉"과 "상봉"] 지나온 상봉과 상투봉 능선이 그림 같습니다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전"은 벽초 홍명희선생이 1928부터 1939까지 10여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연재소설입니다. 그러나 그는 북으로 간 다음 그 소설을 끝까지 쓰지않고 미완으로 남겨 놨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는 '임꺽정'의 결말부분과 최후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임꺽정'의 사형은 진짜 역사를 알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임꺽정봉" 오르는 길에 있는 조각품] 물개가 소리치고 있는듯합니다. "나좀 어떻세 해죠~~" 옆에 있는 넘이 "좀 참어~" "않돼!~ 급하다구~" ["임꺽정봉"] 드디어 "임꺽정봉"이 실체를 드러냅니다. ["임꺽정봉" 오르는 길] [제8보루 - 임꺽정봉] 임꺽정봉이 불곡산 제8보루였습니다 천연의 요새입니다 ["임꺽정봉" 정상부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상봉"과 "상투봉" 능선] ["임꺽정봉"에서 바라 본 "호명산", "홍복산", "은봉산", "한강봉"] 임꺽정봉은 "漢北正脈"이 지나는 마루금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漢北正脈"은 앞에 보이는 "호명산"을 지나, "한강봉"으로 달려 갑니다 그리곤 "첼봉"과 사패산 도봉산을 지나고, 북한산 '상장능선'을 지나 일산의 고봉산으로 가 파주의 장명산에서 끝냅니다 지난달에는 "漢北正脈"의 "감악지맥", 즉 한강봉-은봉산-팔일봉-감악산=마차산-도감포까지를 완주했었지요. 여기서 보니 그 지맥이 확연히 보입니다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 "임꺽정봉"에 올랐습니다 제법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 무선햄을 할수 있는 시설 안테나와 돌탑, "임꺽정 안내판"도 있습니다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 "임꺽정봉"은 이 근처 "감악산'에도 있지요 "감악산 임꺽정봉"은 임꺽정이 관군에 쫏겨 피신 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불곡산 임꺽정봉"은 임꺽정의 生家가 이 봉우리 아래에 있어 붙여진듯 하군요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석] 이곳에도 정상석과 정상목의 높이 표기가 다름니다. 뭔 이유가 있으니 이렇게 했겠지요. 단순히 실수로 보기에는 너무 일관성이 있으니....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의 전망 벤치] 최고의 전망 벤치까지 만들어 놔서 가슴이 확 터입니다. 도봉산과 북한산이 잘 조망된다고하는데 오늘은 안개로 보이지 않습니다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제9보루] 앞으로 내려 갈 코스입니다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도락산"과 "백석읍 방성리 저수지"] "漢北正脈"은 저 도락산을 돌아 이곳 불곡산 임꺽정봉으로 옴니다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에 있는 암봉 전망대] [뒤 돌아 본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 [불곡산 제9보루]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계단] [불곡산 "임꺽정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계단]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이곳엔 밧줄을 타고 내려왔어야 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계단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다닐만합니다. [대교아파트로 하산 하는 갈림길] [제9보루] 불곡산 제9보루는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어 더 이상 출입할수 없습니다 ["임꺽정봉"] 마지막 조망대에서 뒤 돌아 본 "임꺽정봉" ["임꺽정봉"에서 "대교아파트"로 하산 하는 길] [약수터] 약숫물이 제법 시원하더군요 [약수터에서 뒤 돌아 본 "임꺽정봉"] 大東詩選2卷에 '이무적'이 쓴 詩 한수 들려드림니다 조선 명종시대에 읊은 한서린 詩입니다 유랑하는 백성 - 이무적 - 백성들 살기 어려워라 백성들 살기 어려워라 해마다 흉년 들어 먹을 것 없으니 너를 도와 주고 싶은 내 마음 간절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구나 백성들 살기 어려워라 백성들 살기 어려워라 날이 추워도 입을 것이 없으니 저들은 너를 건져 줄 힘이 있건만 너를 도와 줄 마음이 없구나 현재 이 시대도 조선 명종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백성을 위하는 정치 世道政治가 펼쳐져야 하는데 자신의 정치적 세력만 키울려는 勢道政治가 왕왕거리고 있는듯합니다 백성을 위하는 정치 世道政治가 펼쳐지길 고대하며 "林巨正"을 생각해 봅니다 ["대교아파트"로 하산 하는 길] 하산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주 완만한 경사로 걷기에 편하고 거리도 짧아 약 30여분만에 하산 할수 있었습니다 [임꺽정 생가 터] 자료사진 "임꺽정 생가"에는 아무것도 없고 생가였다는 표지석만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가보지 못하고 자료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아~ 새로운 임꺽정은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그를 기다리는 민중이 지천에 깔렸는데.... ["대교아파트"로 하산 하는 길] 초보산객들 모시고 꼭 다시 오고 싶은 산으로 기억하며 봄날에 찾은 불곡산에서 옛날의 임꺽정과 놀다 갑니다 ["대교아파트"로 하산 하는 길] [산행 날머리 - 대교 아파트 앞] 3시 정각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불곡산 종주 하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4시간이었습니다 산행 날머리 앞에는 "대교아파트"가 우뚝 서있어 길안내를 잘하고 있습니다. 건너편 대교아파트앞에서 의정부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갑니다 함께한 山友와 "의정부 명물거리"에서 "부대찌개"와 소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Daveed - Tango
                 
       
        강당골-廣德山-望京山-雪華山-외암민속마을 산행기
       
           눈이 내리면 꼭 가고 싶은 山이 있었습니다
           무성한 숲이 울창한 지난 여름에서부터 생각해 두었던 山입니다
           눈 내리는 날이 아니면 그 멋을 아름다움을 더하지 못한다고
           눈이 내리면 꼭 찾아 보려고 아껴 두었던 산입니다
           특히 雪華山...
           이름에서부터 눈을 연상시키는 雪華山...
           지금부터 충절의 고장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에 있는 雪華山으로
           저와 함께 떠나 볼까요?
           
           [산행 개념도]
           아산시 온양온천역에서 송악면 강당골로 가 광덕산에서 설화산을 거쳐
           외암리 민속마을 앞으로 한바퀴 도는 제법 긴 거리의 종주코스입니다
        
           [온양온천역]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연장 개통되어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서 
           단 한번에, 그리고 저렴한 교통비로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온천까지 쉽게
           갈수 있으니 발전된 교통시설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名所를 만들어 줍니다
           설 명절 연휴의 첫날인 1월 24일(토)에 온양온천역에 내렸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이곳을 스쳐 지나 도고온천을 간적이 한번 있었을 뿐
           처음으로 온양온천역에 내려 나왔습니다
        
           [온양온천역앞]
           온양온천역앞은 제법 번화한 거리로 많은 자동차들이 길을 메우고
           지난 밤새 내린 눈으로 절묘한 경관을 보여 주고 있는데
           하얀 눈이 쌓였는데도 溫泉이 솟아 나는 곳이라 생각하니 
           땅도 하늘도 사람들도 모두 따뜻한 느낌을 주는 듯 합니다
           광덕산-설화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역에서 나와 좌측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합니다
           길 건너편으로 건너지 말아야 합니다. 건너지 말고 바로 좌측 버스 정류장입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버스 시간표]
           광덕산 강당골까지 가는 버스는 오로지 "120번" 하나 뿐입니다
           그리고 운행하는 시간이 오전엔 8시와 10시, 12시 단 세번 뿐입니다
           저는 온양온천역 앞에서 정확히 10시 5분에 120번 버스를 탓습니다
           이 버스 시간표를 잘 메모해 두어야합니다. 산행을 끝내고 역으로 돌아 올때도
           이 시간표를 활용해야 하기때문입니다. 버스는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나올때엔 오후 5시 버스를 '외암민속마을'앞에서 5시 8분에 탓습니다
           그리고 교통비는 카드로 1,050원인데 은행신용카드는 결재가 않되어
           현금으로 1,100원을 냈습니다. 서울과는 다른 점입니다
           
           [설화산과 데이콤 기지국]
           버스는 온양온천역에서 30~40분 정도 걸려 광덕산 등산로입구인 '강당골'까지 갑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온양의 案山인 雪華山'이 위용을 드러내며
           데이콤 기지국의 커다란 위성 안테나를 볼수 있습니다
           광덕산-망경산을 돌아 저 앞에 보이는 설화산으로 올 예정입니다
        
           [강당골]
           광덕산의 산행 들머리인 '강당골 버스 종점에는 주차장과 '여울목 화장실'이
           예쁘게 단장을 하고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덕산 산행 들머리] 강당골 주차장의 '여울목 화장실' 뒤로 광덕산 산행로는 잘 정비되어 세파에 찌든 사람들을 어서 오라고 부릅니다. 더 넓은 廣德을 베풀겠다고..... 오전 10시 40분에 눈 덮인 廣德山-望京山-雪華山 산행을 시작합니다. 사진에는 눈 내리는게 보이지 않아 눈이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강당골] 강당골은 이름있는 아산의 名所 광덕산내의 계곡인 강당골은 일명 양화담이라고도 한답니다. 이곳은 물이 맑고 계곡의 주변은 울창한 노목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심산유곡의 정취를 맛 볼 수 있으며 개울바닥이 암반으로 되어 있어 물과 숲 돌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여름철 피서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답니다. 또한 강당골이 있는 송악면은 전국에서 사슴을 제일 많이 사육하는 지역이라는군요. 그래서 현지에서 다양한 사슴제품을 구입을 할 수 있다는군요 [登路앞 정자] 이곳에서 산행 준비를 합니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날' 연휴 첫날이고 눈이 많이 내려서인지 광덕산을 찾은 산객들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눈"을 한도 끝도 없이 만끽하며 산행을 하겠군요 [광덕산 산행 안내도] 강당골 계곡으로 오르지 않고 '철마봉 코스'로 오릅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계곡보다는 능선을 좋아합니다 [산행 들머리] 조금 올라와서 산행 들머리인 정자를 뒤돌아 봤습니다 등산로는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철마봉 입구] 광덕산 정상까지 3.2km라고 안내해 주네요. 여기서 정상까지 1시간 25분 걸렸으니 평범한 오르막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철마봉 오르는 길] 온양온천역에서 10시 버스를 함께 탄 산객들이 앞에 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날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가는데 지난밤에 내린 눈으로 고속도로, 특히 서해안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해 완전히 움직일수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안것은 집에 돌아와 본 뉴스에서였습니다 [철마봉 오르는 길] 광덕산 오르는 산길은 조용하고 한산합니다 일년중에 이런 날을 만나 산에 오르기도 쉽지 않으니 오늘 광덕산-망경산-설화산에 온것은 특별한 행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철마봉 오르는 길] 아산시 온양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溫泉湯이 생긴 곳으로 유명하여 일반 국민들 뿐만 아니라 일찍이 많은 王들이 피부병 치료와 휴가를 위해 행궁을 짓고 즐겨 찾았던 곳이지요? 산행과 온천욕....정말 좋은 궁합입니다 [철마봉 정상] 철마봉 정상에는 산불감시 초소가 하나 덩그렇게 놓여있을 뿐이고 철마봉을 알리는 어느 표지도 없어서, 철마봉 봉우리인지 알기 어렵더군요 아산시 온양에 오면 생각나는 인물은 뭐니 누구니 해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장군은 전국민이 존경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 중 한분으로 자리 메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대한 영웅이십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어 왔으며, 특히 드라마로 여러번 방영되어 그의 생과 업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어 오늘은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 해 볼까 합니다 [철마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광덕산] "이순신장군의 죽음"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맞아 戰死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날이 1598년 11월 19일이며 이순신장군의 나이가 54세였던 해입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이런 저런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이순신장군에 대한 평가도 임진왜란이 끝난후 200여년이 지난 1792년에 정조대왕이 공식적으로 "이충무공전서" 편찬을 지시하고 장군을 영의정에 추종하며 '어제신도비'를 세우고 나서 1975년에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니 이순신장군은 정조대왕에 의해 새로운 빛으로 우리 역사 속에 우뚝 서게됩니다. 그리고 근데에 와서는 '5.16 군사쿠데타 정권'에 의해 "軍人 이순신장군"으로 더욱 영웅화 됩니다 광화문 앞 "세종로"에 있던 "세종대왕 동상"이 어느 날에 갑자기 없어지고 "충무로"에 있어야 할 "충무공 동상"이 "세종로"에 우뚝 서는 일이 생겨난것도 군사정권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이 없고, 충무로에는 충무공이 없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것이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이순신장군의 죽음"은 영웅적 죽음인 戰死처리 되었습니다 그러나......의문은 1598년 11월19일부터 계속되 오고 있습니다 저는 영웅 이순신장군의 위대함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가 되게하려는 취지가 아니고 오로지 수많은 세월 속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들의 내용을 알려 드리려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의도도 없음을 미리 알려 드리오니 그저 재미로 읽어 보시길 바람니다 [철마봉을 하산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戰死했다는 공식적 죽음 이외에 크게 두가지의 說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살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은둔설"입니다 이순신장군이 戰死했던 자살했던, 또 은둔했던 그것이 뭔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괜히 까발려 문제없이 존경 받는 이순신장군의 명예를 실추시킬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고 항변하시는 분들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러한 의문이 뭔지를 그냥 생각해 보는 것이라 생각해 주시고 오늘 산행을 하며 함께 생각해 보자는 취지이니 단순히 재미로라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그리고 이러한 說을 아시는 분들도 무척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林道 쉼터] 철마봉을 내려 가면 林道를 만나며 쉬어 갈수 있는 정자가 나옵니다 "이순신 장군 자살설"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이순신장군은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당시 우연히 戰死한 것이 아니라, 戰死의 형식을 빌어서 자살하기 위해 갑옷마저 벗어 두고 함대의 선두에 서서 지휘하다가 장열하게 전사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자살설"은 실제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200여년에 걸쳐 많은 이들에 의해 끈임없이 설왕설래 된바 있으며 아직까지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林道 쉼터] 李敏敍(1633∼1688)가 쓴 김덕령장군의 전기 속에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李舜臣方戰 免甲自中丸以死" "이순신은 한참 싸울 적에 갑옷을 벗고 스스로 적탄에 맞아 죽었다" 李敏敍는 누구인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심각해진 사회적·경제적 위기를 균역법과 대동법의 실시로 헤쳐나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이의 실현을 적극 주장하기도 한 李敏敍. 李敏敍는 효종·현종·숙종의 3대에 걸쳐 승지·대사간·대제학·이조판서·우참찬 등을 거쳐 지돈녕부사까지 역임한 대단한 조선의 文臣입니다 이 사람이 쓴 임진왜란의 또 다른 영웅 "김덕령 장군"의 전기에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 기록해 놨으니 그냥 단순히 간과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林道 쉼터에서 광덕산 정상으로 가는 길] 이순신장군은 사천해전 당시 어깨 관통으로 고생한 이래 새로이 개발된 방탄 조끼 '환삼'도 있었는데 노량해전에는 방탄쪼끼 '환삼'은 커녕 아예 처음부터 갑옷도 입지 않고 삼도수군통제사의 붉은 융복만을 입은 채 아침 8시의 빛나는 태양 앞에서 왜군의 조총 정조준거리 4∼5m 앞에 우뚝 선 것이라니 스스로 죽기를 결심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林道 쉼터에서 보이는 광덕산 정상] 금산군 이성윤[1570∼1620]이 "노량 충렬사"에 써 붙인 시의 문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心知功大 終難賞志 決身殲 意露肝" "공로 커도 상 못탈것 미리 알고서 제 몸 던져 충성 뵈러 결심했던가" 전쟁에서 이겨도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政派들과 백성들의 우상이 된 이순신으로 인해 왕권의 위협을 느끼는 선조(宣祖)임금으로 부터 분명 '토사구팽(狡兎死良狗)' 당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자살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지금까지의 "이순신장군 자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논거입니다 [광덕산 정상으로 가는 된비알] 광덕산 정상으로 오르는 깔딱고개를 오릅니다 [광덕산 정상] 드디어 廣德山 정상이 먹구름을 뚤고 환하게 나타납니다 땀 흘리며 오른 것에 대한 보상을 완전히 해 줍니다 [광덕산 정상] 12시 5분에 광덕산 정상에 올랐으니 강당골에서 1시간 25분 걸렸습니다. 廣德山 정상은 산이름 그대로 넓직한 공터가 모든 산객들을 보담아 주는 듯 합니다 이런 날에도 막걸리 장사는 두명이나 두군데에 자리를 펴고 산객들에게 막걸리를 제공합니다 지난 5월 꽃피는 계절에 찾았던 감상보다 눈 덮인 겨울이 더 정감이 갑니다 [광덕산 정상석과 天地正氣] 광덕산은 높이가 699m로서 이쪽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광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광덕사 방향] 지난해 5월에는 이 코스로 광덕산을 올랐었습니다 저 아래 "광덕사"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두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광덕산 정상에서 바라 본 금북정맥이 지나는 각흘고개 방향] 이 산줄기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금북정맥이 지나는 '각흘고개'로 갑니다 그리고 '아산지맥'이라고하는 아산시를 감싸고 있는 봉수산과 도고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광덕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雪華山] 앞으로 가야 할 雪華山이 변덕스런 날씨에도 잠깐 화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눈 속에 빛나는 雪華山" 이 사진을 오늘의 Photo로 선정했습니다 [광덕산 정상에서 장군바위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 이순신장군은 戰死한것도 아니고, 더더욱 자살한 것도 아니며,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우연히 맞아 죽은 것도 아니며 그 이후 70세가 될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은둔설"을 믿는 편입니다. 오로지 개인적 생각임을 강조합니다 [광덕산에서 장군바위까지 능선]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야기 하기 전에 당시 상황과 조선의 제14대 왕인 宣祖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宣祖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셋째아들입니다. 도저히 왕위에 오를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중종은 누구입니까? 연산군을 무력으로 내몰고 권력을 장악한 쿠데타 정권 아닙니까? 그러한 대물림으로 오를수 없는 왕위에 오른 宣祖는 언제나 왕권에 대해 불안해 하였습니다 원래 宣祖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정치적 배경으로 항상 불안해 하고 정통성 없는 왕이었기에 항상 정적에 대해 의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백성들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이순신장군을 宣祖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광덕산에서 장군바위까지 능선]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이 끊임없이 제기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 "宣祖實錄"만이 유일하게 "수정宣祖實錄"이 다시 쓰여지고 두개의 판이하게 다른 내용의 實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순신장군에 대한 기록도 다르게 기록되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에 대해 하나 하나 근거가 되는 것들을 함께 생각해 보자구여 [장군바위앞 갈림길] 광덕산 정상에서 약 30분 정도 걸려 장군바위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면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로 가는 길이며 좌측은 아산시 송악면 강당골로 내려 가는 길입니다. 제가 산행을 시작했던 곳으로 원점회귀할수 있지요 천안 광덕사를 기점으로 하던, 아산 오양 강당골을 기점으로 하던 "광덕산" 등산 코스는 광덕산 정상을 올라 여기 장군바위에서 대부분 하산합니다 "광덕산" 등산코스의 마지막 갈림길이라 할수 있습니다 망경산과 설화산은 직진합니다 [장군바위] 광덕산은 肉山이기에 바위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광덕산에선 이 장군바위가 제일 큰 바위이라 합니다 [장군바위 내력] [장군바위 뒷모습]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을 잘 뜯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이 일어 나는 날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이미 죽어 조선 침략 전쟁을 포기하여 철군의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으며 조선과 明나라에 의해 이미 패배한 일본군은 대부분 도망갔는데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도 전라도 순천에서 그 근처의 해안 지역인 왜교(倭橋)로 이동하여 해상 경로를 통해 철수하려 하였는데 퇴각하는 적을 노량 앞바다에서 섬멸작전을 벌이던 이순신장군은 불행이도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 1598년 11월 19일 퇴각하는 적과 노량 앞바다에서 대전을 치르는 선상에서 장군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며 죽음의 순간에도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며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위와 같은 말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말은 "이충무공행록"에 기록되 있읍니다. 그러나 이 유언 속에 "은둔설"의 실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용묘 갈림길] 퇴각하는 적군들이 도망 가기도 바쁜데 사정거리가 10m도 않되는 조총에 맞아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조총에 맞았다면 정말로 자살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도져히 있을수 없는 상황이란것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전사하는 광경을 본 사람이 맏아들 '회'와 조카 '완', 몸종 김이(金伊) 이외에는 본 사람이 지금까지도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순신장군은 그 동안의 전투에서 데리고 다니지 않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을 데리고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까지 데리고 이미 끝난 전쟁터로 나가 싸웠을까요? 그리고 왜 친족인 맏아들과 조카, 몸종 김이(金伊)만이 장군의 죽음을 보았을까요? [장군바위에서 망경산 가는 길] 장군바위를 지나 가면 바로 앞에 커다란 산봉우리가 나타납니다 대부분 망경산으로 착각하게합니다만 망경산은 저런 봉우리를 두어개 지나가야 나옵니다 노량해전에 나갈 때 이순신장군은 이미 마지막 전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조선이 왜놈들에게서 승리 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가는 마지막 놈들을 소탕하러 갔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었답니다 그 동안 宣祖는 이순신장군을 두번이나 죽일려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이순신장군이 육군일때 모함으로 그렇게 된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부산항에 진을 치고 있는 일본군들을 쳐 부수라는 宣祖의 어명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부산항에 쳐들어 가는 것은 휘발유통을 메고 불속에 뛰어 드는 것과 같다고 어명을 어깁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조선 해군이 몽땅 사라진다고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더더욱 뿔따구가 난 宣祖로 부터 국문을 당해 거의 죽다시피 하고서 쫄병으로 강등 당하고서야 풀려났습니다 그것도 이순신장군 대신에 어명을 받든 '원균'이 부산항을 공격하다가 조선 해군 모두와 함께 작살이 나고서야 사형을 시키려던 이순신장군을 감옥에서 석방하지요 모두 알다시피 그래서 '白衣從軍'을 두번이나 하게 된것입니다. 사람들의 흔적이 없는 길을 따라 호젓한 산행을 합니다만 바람이 매우 세차게 불었습니다 노량해전이 끝나면 전쟁이 완전히 끝나므로 이순신장군은 살아서 육지에 올라 가나, 죽어서 올라 가나 결국 宣祖와 붕당세력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것이란 사실을 똑똑한 이순신장군은 스스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어명을 따른 '원균'에 의해 초토화되버린 조선해군에 남아있는 배 겨우 13척으로 승리를 일구면 이순신을 반대했던 인간들로부터 다가 올 위험은 불을 보듯 뻔한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노량해전 선상에서 만들어 세상에는 죽은 것으로 만들고 자신은 몰래 조용히 아무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16년 후에 70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 옆에는 많은 참모들이 항상 명령을 기다리며 함께 있어야하는데도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오로지 맏아들 '회'와 조카 '완',몸종 김이(金伊) 이외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이해하시겠습니까? [강당골 갈림길] 좌측으로 내려가면 쉽게 강당골로 탈출 할수 있습니다 망경대는 직진입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이야기들은 "이충무공 전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이순신의 조카인 이분(李芬)이 기록한 행록(行錄)에 나오는데 이순신의 최후의 모습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기록에는 이순신장군이 적의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을 당시 이순신의 사망을 알았던 인물은 아들 '회'와 조카 '완',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밖에 없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사망한 뒤 임시로 함대의 지휘를 맡은 이 역시 아들 '회'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참모들과 부하 장수들로 가득한 기함 지휘소에서 함대 사령관이 저격을 당해 사망하였는데도 그것을 단지 3명밖에 알지 못했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 해야하겠습니까? 더더욱 삼도수군절도사의 지휘권이 고참 부하 장수가 아닌 신출내기인 아들과 조카에게 돌아갔다는 점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극히 의심스러운 점입니다. "이충무공 전서"의 "행록(行錄)"을 미루어 보면 결국 이것은 이순신장군의 은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조작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믿던 말든 생각과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광덕산 능선] 뒤 돌아 보니 지나온 광덕산 능선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이순신장군은 아시다시피 1598년 11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사망'하여 그 시신은 20일 뒤인 12월 10일에 고향인 아산으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국가가 장례비용을 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는 그로부터 80일이 경과한 다음 해 2월 11일에 치러지며 가묘에 이순신장군을 모십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1614년에 정식으로 묘를 만들어 장군을 안치합니다. 이것은 이순신장군이 노량 해전 이후 宣祖와 붕당세력들을 피해 은둔하여 살다가 1614년에 실제로 사망하여 장례를 치렀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라고 "은둔설"을 주장합니다. [설화산] 멀리 설화산이 보입니다. 아직도 갈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순신장군이 쓴 詩 한수 속에서 장군의 마음을 읽을수 있습니다 아득하다 북쪽 소식 들을 길 없네, 외로운 신하가 때를 잘못 만나 한이구나. 소매 속엔 적을 꺾을 병법 있건만, 가슴 속엔 백성 구할 방책이 없네. 천지는 캄캄하여 서리 엉키고, 산과 바다엔 피비린내 진동하네. 말을 풀어 화양으로 돌려보낸 뒤, 복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이순신장군은 노량해전 이전에 이런 詩를 지었습니다. 이미 장군은 자신의 처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예견하고 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저의 앞에는 두사람이 지나간 발자욱만이 길안내를 하고 있는데 눈과 바람은 때때로 앞에간 산객들의 발자욱을 지웠다 말았다 합니다 "은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도 들춰냅니다 "조선 수군은 원거리 포격전을 주로 구사하였기에, 야간보다는 주간에 해전에 임하였다. 하지만 노량 해전만큼은 야간에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야음을 틈타 이순신을 도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망경산] 우측으로 망경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망경산은 望京山으로 쓰며 이곳에서 "서울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라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에 올랐었을 때에 서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을 그리워하는 산"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망경산-설화산 갈림길 삼거리] 설화산은 직진하면 됩니다만 망경산은 이곳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1시 25분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강당골에서 2시간 45분이 걸렸으며 광덕산 정상에서는 1시간이 걸렸습니다 [망경산-설화산 갈림길 이정표] 설화산은 세출리방향으로 갑니다 망경산을 갔다가 설화산을 가려면 망경산을 갔다가 반드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야합니다 망경산에서 설화산으로 직접 가는 길은 없으니 참고하셔야합니다 이곳에서 망경산을 갔다 오려면 약 한시간 정도 걸림니다 저는 오늘 망경산을 갔다 오려 했으니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늘은 망경산을 생략하기로 합니다. 망경산과 태화산에 대해선 저의 지난해 5월17일 산행기를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광덕산 林道가 나 있는 세출리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눈이 내리다가 다시 햇빛이 나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설화산이 예쁘게 나타납니다. 맨 끝의 봉우리가 설화산입니다 눈 내린 雪華山이 글자 그대로 눈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발자욱을 지우며 쌓였던 눈까지 날려 보냅니다 망경산 갈림길에서 세출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 갑니다 [林道 쉼터] 철마봉에서 광덕산 정상 오르는 길에 있었던 林道가 광덕산 허리를 가로질러 여기까지 뻗어 있습니다. 오른 쪽으로 '수철리' 가는 길입니다 1시 40분경 이곳에 도착하여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林道 쉼터] 설화산은 산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가야합니다 [雪華山 가는 길]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강력히 반대하는 정통 학자들이 대다수라는 것도 알려드림니다 앞서 제가 언급한 여러 근거들은 근본적으로 잘못됫다는 것이며 이순신장군은 戰死 한것이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宣祖實錄"과 "수정宣祖實錄"에 기초를 두고 하는 正說입니다 "不滅의 이순신장군" - 어떻던 이순신장군은 우리 민족의 영웅이십니다 23전 23승, 13대 133에서도 이긴 세계사를 다시 쓰게한 인물
      [雪華山 가는 길] 雪華山이 점점 다가 오며, 오른쪽으로 배방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雪華山의 모습은 점점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닺고있습니다 눈 내리는 날이 아니고는 맛볼수 없는 경치는 極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雪華山 가는 길] 광덕산과 설화산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남쪽지방에는 소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고하는데 광덕산과 설화산에는 거의 소나무로 덮여 있어 名山임을 증명해 줍니다 소나무가 길 양옆에서 호위를 하는 하얀 눈길을 따라 마냥 걷고 또 걷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산행은 처음입니다 [강당골 갈림길] 광덕산 설화산 종주 코스는 좌측으로 내려 가면 무조건 '강당골'임으로 긴급한 일이나 피로를 느낄 때엔 언제나 탈출이 쉬우니 부담없이 걸을수 있어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雪華山 가는 길]
      현재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비롯해 전 세계 23개국의 사관 학교에서 "이 순신 전략"이 "사막의 여우 롬멜"과 함께 군사교육 필수전공 과정에 포함 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이순신장군이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지 단적으로 알수 있습니다 [무덤이 있는 산봉우리] 설화산 가는 길에는 제법 높은 산봉우리가 세개가 있는데 무덤이 있는 이 봉우리가 첫번째로 나타나며 설화산이 조망됩니다 앞에 눈에 덮여 있는 것이 무덤입니다 [무덤이 있는 봉우리에서 뒤 돌아 본 "望京山"] "望京山"이 확실한 모습을 더러내고 있군요 좌측 어렴푸시 보이는 산이 泰華山입니다 지난해 5월 "광덕산-망경산-태화산" 종주를 했습니다 [자연보호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 높은 봉우리 중에 두번째로 넘는 봉우리엔 "자연보호" 안내판이 매우 크게 설치되 있습니다 '자연보호'를 외치고 있는 안내판이 자연을 홰손 시키고 있습니다 [雪華山 가는 길] '자연보호'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雪華山코스로 들어 섭니다 이제부터 광덕산-망경산-설화산코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진정한 雪華山입니다 [雪華山 가는 길] 설화산이 점점 다가 옵니다만, 아직도 높은 봉우리를 넘어야 다시 설화산 정상으로 갈수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경사가 심한 마지막 두개 봉우리를 넘습니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설화산이 보입니다 [눈꽃] 예쁜가요? [雪華山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 설화산 바로 앞에 있는 높은 봉우리를 오릅니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雪華山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에서 뒤 돌아 본 망경산과 태화산] 이 봉우리에서 남쪽 방향이며 좌측이 泰華山이고 우측이 望京山인데, 가운데 계곡에 있는 고개 이름이 "넋티고개"입니다 광덕산에서 망경산을 지나 '넋티고개'를 통과해 태화산으로 오른 지난 5월이 생각납니다 [雪華山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에서 바라 본 동쪽 방향에 있는 "배방산"] 배방산과 태화산은 산줄기로 연결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아산지맥"은 저 앞의 '배방산'에서 태화산을 오르고 '넋티고개'를 건너 '망경산'과 '광덕산'을 지나 금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각흘고개'와 봉수산,도고산을 잇는 산줄기를 말합니다. "아산지맥"은 산경표에 나오는 지맥이 아니고 아산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지맥이라합니다. 하루에 종주하기에는 어려우나 여름철에는 하는 사람들도 있나봅니다 [雪華山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에서 남서쪽 광덕산] 지나온 광덕산 산줄기가 그림 같습니다 가운데 맨끝 봉우리가 광덕산 정상입니다. 철마봉 능선도 잘 보이는군요 지나온 저런 산줄기를 지나와 바라보면 뿌듯한 성취감이 들지요 [雪華山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에서 서쪽 방향 - 온양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이 있는 송악면 외암리 이 봉우리에서 산객 세사람을 만났습니다 최대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 짧지 않은 거리인 강당골-광덕산-망경산-설화산-외암민속마을 코스를 찾은 이 분들...진짜 산꾼들이지요? 장군바위 이후에서 처음 만난 산객들입니다. 반가웠습니다 [기념 사진] 기념 사진을 한컷했습니다. 앞에 마스크를 한 사람은 이곳 아산에 사시는 분인데 아산의 산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분이더군요 아산의 산들과 '아산지맥', 그리고 설화산에 대한 많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철1호선이 온양까지 연장 개통되고 난 이후의 온양온천의 변한 모습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요즈음 온양온천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합니다. 노인네들이 차비가 꽁짜인 전철을 타고 온양으로 와 온천욕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가는 유명코스가 되어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어 난다고하는군요 작년 한해에 온양의 인구가 10,000명이 늘었다고 온양온천역앞에 커다란 현수막으로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뒷편의 두분은 요즈음 정맥을 종주 중이라하는데 설연휴를 이용해 이곳을 찾았다고합니다 이 두분과는 온양온천역까지 함께 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즐겁고 안전한 산행 많이 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야 할 설화산] 눈이 많이 내립니다 눈 내리는 雪華山으로 이젠 네명이서 함께 출발합니다 진짜 산꾼들이지요? [안부 사거리] 봉우리를 내려오면 안부 사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면 설화산으로 오릅니다 우측으로는 '초원 아파트'와 '맹씨행단'으로 가는 길입니다 좌측으로는 오전에 버스를 타고 지나쳤던 외암리 민속마을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초원아파트나 외암민속마을로 가려면, 설화산 정상에 올랐다가 여기로 되돌아 와야합니다 '초원아파트'방향은 시내버스가 자주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더군요 맹씨행단(孟氏杏亶)은 본래 최영장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이웃집에 살던 맹사성의 사람됨을 눈여겨 본 최영장군이 맹사성을 손녀사위로 삼고 집까지 물려주어 맹사성 일가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맹사성 정승이 심은 600여년 된 은행나무와 고택이 있는데,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민가라고 하는군요. 고택 뒤에는 맹 정승과 그의 부친인 희도, 조부 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세덕사가 있다고합니다.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서 행단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하나, 공부하던 자리의 의미인 행단이 된 것으로도 추정된다합니다 [설화산] 폭설이 내리는 설화산을 오릅니다 혼자 걷다가 여럿이 걸으니 또 다른 느낌을 주는군요 [설화산] 설화산 정상부에는 내리는 눈이 차곡차곡 쌓여 雪景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雪華山 정상] 雪華山 정상에 오르니 세차게 부는 바람에 선명한 색깔을 띄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눈도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雪華山 정상] 雪華山 정상은 좁은 공간인데 친절하게도 산객들을 위해 평상을 설치해 놨습니다 雪華山은 다섯 봉우리가 솟아서 오봉산이라고 한다는군요 [雪華山 정상] 雪華山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雪華山은 산꼭대기의 모양이 붓끝을 닮았다고 文筆峰이라고도 한다고하며 山勢가 매우 영특하고 장관을 이뤄 이 주변 마을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네요 대표적 인물이 '이순신장군, 맹사성, 이간 선생'이랍니다
      [雪華山 정상]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던데....... 시간도 보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맞기 위함이라하던데..... 눈으로 뒤덮히는 雪華山에 서니 또 흘러 간다 소중한 나의 날들이...... [雪華山 정상에서 바라본 지나온 봉우리] 다시 저 봉우리 사이의 안부로 내려 가야합니다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설화산 정상에서는 먼곳을 조망할수 없었습니다 [雪華山을 하산합니다] 눈..눈..雪..雪..雪 [雪華山을 하산합니다] 눈..눈..雪..雪..雪 [雪華山 내려 가는 길] [雪華山] 내려와 뒤 돌아 본 雪華山..... 아름답습니다
      [외암민속마을] 외암마을은 충청도의 대표적 양반 마을로서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1999년 12월 28일) 국가에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마을이랍니다 [외암민속마을] 약5백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씨 일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 살고 있다고합니다 [외암민속마을] 최근에는 이곳에서 사극이나 영화 촬영이 종종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답니다
      영화 사상 최단기간에 전국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필름 제작·쇼박스 배급)의 촬영지 중 한곳이 외암리 마을이다.손예진, 조승우, 조인성 주연의 흥행 영화 '클래식' 의 배경 중 한곳 역시 외암리 마을이다.
      그 외의 영화로는 [소릉],[동첨]등이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외암리 마을의 건재 이상익의 고택이 영화 [취화선] 속 이응헌의 집 배경이 됐다. 장승업이 머슴살이를 하면서 그림에 대한 꿈을 펼치기 시작한 곳이며 소운이라는 학처럼 고운 여인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SBS 드라마 [옥이이모]SBS 드라마 [임꺽정]
      KBS 드라마 [찬란한 여명]KBS 드라마 [당신]
      SBS 드라마 [덕이]KBS 드라마 [꼭지]
      KBS 드라마 [소문난 여자]KBS 드라마 [새엄마]
      SBS대하드라마 [야인시대]삼성생명 CF
      [외암민속마을]

      외암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예안이씨가 온양에 들어와 살게 된지 이미 5세가 되었다" 고 하였는데,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연은 6대조이고, 이사종은 5대조가 된다. 그렇다면 이사종 때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외암기]에서는 선조 이사종이 그의 부친인 이연의 묘를 송악의외록에 정하면서, 별업을 외암에 지어 열승정(閱勝停)의 위치에 대해 읍지에서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안이씨는 전의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10세손인 익(翊)이 예안이씨의 시조가 된다. 7세손인 이연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둘째 아들 이사종 계열만 번창하고 있는데, 이사종부터 예안이씨 온양파가 시작되었다.
      [외암민속마을]

      외암 이간 선생은 조선후기의 문신ㆍ학자로 본관은 예안, 자는 공거(公擧),호는 외암 외에 추월헌(秋月軒)이라고 하였다.

      숙종 36년(1710)순무사 이만성(李晩成)에 의하여 장릉참봉(葬綾參奉)으로 천거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6년뒤인 숙종 42년(1716)에 다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자의가 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젊은데도 벼슬이 뛰어오름을 논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숙종실록에서도 '호서사인(濠西士人)이간'이라는 표현이 보이듯

      이 온양 향리에서 주로 지낸 이간은 31세 되던 해 권선재를 건립하여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영조 3년 51세로 일생을 마감했는데 정조는 이조참판과 성균관 좨주를 증직하였으며 순조는 이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시호는 문정공이고 저서로는 [외암유고]가 있다. 마을에는 외암 이간의 학문적 유업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매년 외암 이간 선생이 사망한 음력 3월14일 불천위제사를 지낸다. 외암 선생의 묘소는 외암리 오른쪽 산기슭에 있으며 입구에 신도비가 남아있다
      [외암민속마을] [외암민속마을 입구] 외암민속마을은 입장료를 어른 2,000원을 받고 있었으나 설화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 갈수 있더군요 이곳에서 120번 버스를 5시 5분에 탓습니다 총산행 시간은 6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온양온천역앞 광장] 이곳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오뎅 몇점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온양온천역] 정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눈이 내리는데 - 유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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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든고개-文殊山-미리내고개-時宮山-
                    三峰山-時美里 山行記
      
           2009년 1月17일(토)
           구름과 안개가 많이 끼고 눈이 조금 내린 날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곱든고개에서 문수산과 시궁산, 삼봉산을 지나 
           시미리로 하산하는 제법 긴 코스를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수원역]
           먼저 전철1호선을 타고 수원역으로 갔습니다.
           예정보다 약간 늦은 오전 8시10분경에 수원역을 나와 
           수원역 광장 좌측 건너편 버스정류장으로 갔습니다.
           수원역은 '애경백화점'이 들어서 발전하는 수원의 모습을 상징이라도 하는듯합니다
           
           [수원역 버스 정류장]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타려고하는 버스가 떠나버렸습니다
           수원역에서 에버랜드까지 가는 6000번 직행좌석 버스는 다행이 10분 간격으로
           배차되고 있어 8시23분에 버스를 타고 "용인 재래 시장 앞"에서 내렸습니다.
           9시10분에 내렸으니 수원역에서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용인재래시장앞"에서 내려야 "용인시외버스터미날"로 2-3분만에 걸어 갈수 있습니다
           
           [곱든고개]
           "용인시외버스터미날"에서 벙개산행에 함께하기 위해 나오신 두분을 만나
           승용차로 '와우정사'를 지나 곱든고개에 간단하게 이동했습니다
           원래 용인시외버스터미날에서 시내버스 10-4, 11번을 이용하려했는데
           한분이 운전을 해주는 기사가 있는 승용차를 가지고 와 쉽게 곱든고개까지 갈수 있었습니다
           용인시외버스터미날에서 곱든고개까지는 10분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이더군요
           
           [곱든고개]
           용인시내에서 원삼면 사암리로 넘는 이 고개가  하도 꼬불꼬불하고 길고 높아
           굽은고개, 곱등고개, 곱든고개라고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는데 
           공식적으로는 곱든고개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2차선 포장도로로 남쪽 북향 길에서 북쪽 남향으로 고갯길을 바꾸고 
           길도 많이 폈다고 하지만 지금도 다소 험하긴 합니다
           
           [곱든고개]
           곱든고개 정상에는 야생동물횡단로(에코브릿지)를 만들어 놨습니다
           예부터 이 고개가 험하여 호랑이가 출몰했다고해서 
           고개 아래에 범암굴, 虎里란 지명도 생겼답니다. 
           그리고 이 고개가 유명한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소설인 "임꺽정"에 
           이 고갯길이 등장해서이기도합니다. "임꺽정"은 홍명희씨가 쓴 소설입니다만 
           홍명희씨는 월북하여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 위원회 부의원장을 지내고 
           1968년 사망하였는데 김일성주석 다음가는 정도의 높은 지위까지 올랐던 인물이라 
           남한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인물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엄청난 인물이지요
           
           [문수산 등산안내도]
           곱든고개 터널을 지나 가서 오른쪽으로 문수산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등산안내도입니다만, 우리는 곱든 고개위로 가기 위해 되돌아와 터널 위로 올랐습니다
           이 안내도가 있는 곳으로 오르면 길 찾기가 쉽습니다.
           
           [곱든고개 산행 들머리]
           등산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되돌아와 터널 옆으로 오릅니다
           '앵자지맥' 마루금을 따라 가기 위해서입니다.
           내린 눈 위로 동물들의 발자욱이 있었습니다
           9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곱든고개]
           곱든고개 위에 오르니 '상고대'가 나무들을 뒤덮고 있습니다
           약간의 눈발도 날리는 절묘한 날씨에 곱든고개에 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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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든고개]
           곱든고개 터널 위에서 내려다 본 '곱든고개'
           용인 팔경중에 세번째로 곱든고개와 곱든고개에서 바라보는 원삼면 사암리의 풍경이 
           용인팔경중에 하나라고하는데 오늘은 雲霧로 볼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 고개를 지나 안성의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는 "칠장산"에 있는 "칠장사"까지에는
           홍명희선생의 소설 "임꺽정"의 일곱도적과 병해스님 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임꺽정이 안성 칠장사에 있는 스승 가파치(병해대사)를 만나러 이 곱든고개를 넘어 갈때에
           까짜 임꺽정이 나타나 진짜 임꺽정이를 털려고했던 일화가 있는 고갯길이기도 합니다.
           
           [벙개산행에 함께하신 분들]
           오늘 산행은 제가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벙개산행 안내를 했는데
           세상에 한사람도 연락이 없더라구요. '파란문'의 인기는 거품이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홀로 수원역에서 용인시외버스 터미날로 가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사진의 좌측에 서 계신 분인데 함께 하고져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더 넓은 바다에서 은빛 고래 한마리를 건져 올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용인 시외버스 터미날에 도착하니, '서울백두클럽'의 회원이신
           사진의 우측분이 또 기다리고 있는게 아닙니까. 무척 반가웠습니다
           한명도 않나올줄 알았는데 두분이나 나왔으니 ...... 닐리리~~
           
           곱든고개에서 남쪽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문수산 오르는 길은 조심해야합니다.
           저의 특기가 알바이지만 
           이런 곳에서 특히 雲霧로 시야가 트이지 않을때엔 더욱 조심해야합니다
           
           [첫번재 갈림길]
           곱든고개에서 조금 올라 가면 사진에서 보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느낌으로는 우측 같지만 반드시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우리는 우측으로 갔다가 알바하고 한참만에 되돌아 왔습니다. ㅎㅎ
           
           [두번째 갈림길]
           이곳에서도 느낌으로는 직진해야 하는듯하지만
           또 좌측 내리막 길로 가야합니다. 좌측으로만 가면 됩니다
        
           [삼성 레포츠 입구 갈림길]
           처음으로 이정표가 나오며 '레포츠입구'임을 알려 줍니다
           문수봉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문수봉 가는 길]
           이런 자연 경치를 구경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운 좋게도 雲霧속에서 상고대를  만끽하며 문수봉을 오릅니다
           환상적입니다
           
           [문수봉 정상]
           무릉도원을 가는 듯한 길을 걷다보니  문수봉 정상은 쉽게 다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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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봉 정상]
           10시 30분에 문수봉 정상에 너무 쉽게 올랐습니다
           알바를 하지 않았으면 25분 정도에 오를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문수봉은 있었습니다
           정자와 운동시설들이 있어 용인 시민들의 아침 저녁 건강 운동코스로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고합니다
                     
                     [문수봉 정상석]
                     요즈음 용인시의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 나고 있다고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을 가지고 있으며 늘어 나는 인구로
                     재정 자립도가 최상그룹에 속한다고 하는 돈이 많은 도시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富티를 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듯합니다
           
           [문수봉 정상]
           문수봉은 "한남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봉우리로도 유명합니다
           문수봉에 올랐다가 "마애보살상"을 구경하지 않고 그냥 가면 후회합니다
           문수봉에서 한남정맥 마루금이 오는 '매봉재' 방향으로 약200m 내려 가면
           "문수마애보살상"을 볼수있습니다. 왕복 20분 정도.
           
           [문수마애보살상 가는 길]
           '문수마애보살상'을 보러 가는 길은 급경사입니다
            땀 흘리지 않고는 좋은 구경을 할수 없으니.....
           
           [문수마애보살상 입구]
           조금 내려 가면 우측으로 안내판이 길안내를 해 줍니다
           
           [문수마애보살상]
           큰 바위에 음각으로 조각해 놓은 '마애불상'을 볼수있습니다
           
           [문수마애보살상]
           제가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하는 얘기중에 어려운 한문을 제발 이젠 알아듣기 쉽게
           사용하자는 것인데, 그 중에 "마애"가 하나입니다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마애'는 '갈 摩'에 '낭떨어지 崖'입니다
           바위의 단면에 음각으로 조각해 놓은 것을 "摩崖"라고 하니 쉽게 표현할수있습니다
           '마애보살상'은 "바위단면조각불상"으로 쓰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안그래요? ㅎㅎ
           이곳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두 보살을 조각해 놨습니다   
           좌측이 '문수보살상'이고 우측이 '보현보살상'입니다 
           
           [문수마애보살상]
           文殊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보살"도 산스크리트語로서 "보리살타 bodhisatta"를 줄여서 부르는 소리글자입니다  
           산스크리트語로 "bodhisatta"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확정된 이'라는 뜻
           쉽게 이야기 하자면 '무지무지 똑똑한 이를 말하는 것이지요. 즉 神
                
                [보현마애보살상]
               '보현보살'은 자비와 다스림을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이 불상들은 고려 초기 시대에 만들어 진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요즈음 절간에서 '보살'이라는 호칭으로 절간에 와 헌신적으로 일해 주는 
                여신도를 가리켜 스님들이 "보살"이라고 불러 주더군요. 
                그들에겐 이런 여신도가 보살이겠으며..혹시 '보살'이라는 말로 이용하는건 아닌지....
           
           [안내판]
           
           마애보살상에서 문수봉 정상으로 되돌아 올라 갑니다
           경사가 심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마애보살상'을 직접 구경하기가 쉽지않기에
           왠만하면 이런 구경거리는 다녀와야합니다
                
      [문수봉 정상] 문수봉 정상은 구름과 안개로 뒤범벅이 되있으나 멋진 풍경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강제로 눈이 내리게 했습니다 눈 내리는 문수봉....... 문수봉에서 시궁산을 향하여 하얀 세상 속으로 들어 갑니다 온통 하얀 숲속을 거니는 기분은 느껴보지 않았으면 말들을 하지 마세요~ㅎㅎ 정말 끝내 줬습니다 man204.gif [대한석유공사 석유비축기지] 오늘 산행에서 가장 좋은 점은 상고대와 눈으로 뒤덮인 경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쁜 점은 시야가 가려 바같 세상을 조망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옆에는 대한석유공사 석유비축기지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있는데도 볼수가 없어 보여 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대한석유공사 석유비축기지] 오늘 함께한 이분은 정형외과 의사입니다. 백두대간과 9정맥을 완주한 그야말로 엄청난 경험을 가진 분이죠 저와는 여러번 '서울백두클럽'에서 주관하는 지맥 종주에서 함께한 구면인 분입니다 오늘 사전에 예고도 없이 '벙개산행'에 불쑥 나타나 저를 놀래켰습니다. 특기가 불쑥 나타났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거라나~뭐래나~ㅎㅎ 하여간 이산 가족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홍원장님은 결혼식장 들어 오는 듯하군요... 이 분은 그동안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였답니다 '벙개산행'에 이번에 한번 동참할까 말까 많이 망서리다가, 분당에 살기에 거리도 가깝고해서 용기를 내 합류하게 됬다고 하는데 오늘이 초면인 분입니다. 현대자동차 관련 회사에 다니며 산행 경험이 아직 적다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앞으로 산꾼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엄청나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성격이 다소 내성적인 편이라 다른 사람들과 이런식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고하며 오로지 '파란문'만을 믿고 다소 쑥스럽지만 용기를 내 왔다고하시는데 오늘 더 넓은 세상의 바다에서 고래 한마리를 낚은 기분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산에 가는데 뭔 꺼리낌이 있겠습니까. 산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고.... 산에 가면 모두가 산친구인 것을.... 그렇게 그런 사람들 만나고, 걷고....그것이야말로 삶의 활력소 아니겠습니까 [한남정맥과 쌍령지맥 갈림길 삼거리] 이곳이 중요한 곳으로 '한남쌍령지맥'이 시작하는 분기점입니다 이곳에서 쌍령지맥이 분기하여 쌍령산을 지나 안성과 평택의 금병산, 봉황산, 천덕산, 백련봉, 덕암산, 불악산을 지나 '평택 진위천' 우측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 거리 43.6 킬로미터 거리의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좌측으로는 "쌍령지맥" 마루금이며, 우측으로는 "한남정맥" 마루금입니다 11시 40분에 이곳을 지나갑니다 [한남쌍령지맥] 정자가 있는 분기점에서 사진에서 기리키는 "삼덕의 길"로 가야합니다 "삼덕의 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시신이 운구된 "望德", "神德", "愛德"을 말하는 '三德의 길'입니다 '미리내 성지'를 가는 길을 말합니다 [임도] 한남쌍령지맥 분기점이 있는 정자에서 조금 나아가면 '임도'를 만납니다 좌측으로 이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 가야합니다. 능선으로 올라 가면 않됩니다. [임도 앞의 이정표] 임도가 나오는 곳에 이정표가 있는데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임도]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 갑니다. 약100m정도? 하여간 조금 갑니다 [쌍령지맥 길]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 가면 오른쪽으로 제법 넓은 '쌍령지맥길'이 나옵니다 안개가 없을 때는 송전철탑이 보일것입니다 [송전철탑] 쌍령지맥길을 따라 조금 들어 가면 엄청난 규모의 송전철탑을 만납니다. 전기 흘러 가는 소리가 찌르르르 하고 크게 납니다. 이런 곳은 빨리 지나쳐야합니다. 전자파의 영향으로 건강을 헤칠수도 있으니까요 [쌍령산-시궁산 갈림길] 송전철탑에서 다시 조금 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쌍령지맥의 쌍령산은 왼쪽으로 가야하며, 미리내고개, 시궁산, 삼봉산은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12시25분에 이곳을 지나므로 곱든고개에서 여기까지 2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12시를 넘으니 '상고대'가 아슬아슬한 자기 수명을 다하려하고 온도가 조금 더 올라 가니 우수수 녹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生이로군요 man204.gif 미리내고개를 향해 갑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미리내고개-애덕고개] 쌍령지맥 갈림길에서 약20분 정도 걸으면 '미리내고개'에 도달합니다 '미리내고개'에 대해선 지난 "쌍령산-시궁산 산행기"를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미리내고개 - 愛德고개] 지난 2008년 12월21일에 오고 다시 한달만에 다시 오는 미리내고개입니다 그때보다 더 쓸쓸해 보입니다. [愛德고개-미리내고개] 특별히 오늘 벙개산행에 홀홀 단신으로 용기를 내 참여하신 차동수님의 사진 한장을 기념으로 올려 드림니다. 차동수님은 천주교 신자라고하는데 열성파는 아닌듯...ㅎㅎ 제가 종교는 모두 멀리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아시기에 종교 얘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ㅎㅎ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신부가 죽어서 넘은 이 고개를 기리며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愛德고개-미리내고개] 愛德고개 돌의자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愛德고개-미리내고개] 이제 언제 또 다시 올지 기약할수 없는 천주교 순례고개 - 미리내고개 아쉬움을 달래며 시궁산으로 출발합니다 오후 1시 10분에 미리내 고개 출발 man204.gif [시궁산 가는 길] 미리내고개 비석 오른쪽에 이정표가 있으며, 능선으로 바로 올라 갑니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시궁산으로 갈수도 있습니다만 등산로가 아닙니다 다소 급경사 등로를 따라 오릅니다 [갈림길 이정표] 20분 정도 우르면 이정표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가면 '미리내 성지' 뒷산인 '갈미봉'과 '묘봉'으로 갑니다 우측으로 가면 시궁산 정상으로 가고, 우측 계곡따라 밑으로 내려 가면 아까 지나온 미리내 고개와 묵리,장촌으로 갈수 있습니다 [시궁산 가는 길] 갈림길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놨으므로 시궁산 가는 길은 쉽게 찾을수 있습니다 햇볕이 드는 곳에는 상고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헬기장] 계단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조그만 봉우리를 두어개 넘어야 시궁산 정상으로 갈수 있으니 다 왔다고 생각하면 않됩니다 봉우리를 두어개 넘으면 "시궁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궁산 정상] 시궁산 정상이 가까워 오는군요 [시궁산 정상] 시궁산 정상에는 '산불감시카메라탑'이 있어 주변 어느 곳에서나 시궁산 정상을 찾을수 있습니다 [시궁산 정상] 시궁산에 대해서도 지난번 "쌍령산-시궁산" 산행기에서 이미 설명했으므로 자세한 사항은 지난 산행기를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시궁산 정상석] 時宮山은 옥황상제가 사는 宮殿에 있는 하나의 宮인데 주로 仙女들이 목욕을 하는 宮이라고합니다 옛날 아주 옛날에 선녀들이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는 연못이 있어서 "時宮山'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답니다 [시궁산 정상] 시궁산 정상에선 의사선생님이며 저의 후배되는 홍원장님의 사진 한장 올림니다 기념으로.... [시궁산 정상 헬기장] 지난번에 왔을 때 보았습니다만, 시궁산 헬기장에서는 페라글라이딩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더군요 차동수님과 저도 기념으로 한장..... 김용택 시인의 詩 한수 올리겠습니다
      김용택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시궁산 하산] 시궁산에서 삼봉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상당히 급한 경사길입니다. 올라 오려면 힘들겠더군요 하얗게 피어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 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삼봉산 가는 길] 오늘 이 코스 등산의 하일라이트는 시궁산에서 삼봉산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히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 주었습니다 연보라색 구절초 곁을 지날 때 구절초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가 지는 꽃이야 너도 나처럼 이렇게 꽃 피어봐 [삼봉산 가는 길] 삼봉산 가는 길에서 바라 보는 삼봉산 三峰중에 조금 작은 두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삼봉산의 제1봉을 갈수 있는데 아득히 보입니다. 삼봉산이 압박으로 다가 옵니다. 시궁산에서 삼봉산은 제법 먼 거리였으며 오르는 경사도 가파랐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사는 거야 너도 나무처럼 뿌리를 내려 봐 [삼봉산의 南峰] 삼봉산의 세개 봉우리중에 제일 남쪽에 있는 南峰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아래를 지날 때 구름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별 게 아니야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정처없이 떠돌아 봐 [삼봉산의 南峰] 삼봉산은 第1峰을 제외하고는 사실 큰 의미가 없는 봉우리들인데 三峰山이라는 이름때문에 쉼터 정도의 봉우리에 이름을 붙인듯합니다 내 평생 산 곁을 지나다녔네 산은 말이 없네 한마디 말이 없네 [南峰 이정표] 영보수녀원과 영보자애원 방향으로 하산하는 방향을 알리고 있습니다 [삼봉산의 南峰] 남봉 쉼터에서 시궁산이 멀리 보이는데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군요 문수산과 시궁산, 삼봉산에서는 소나무 구경하기 어려운데 이 봉우리 꼭대기에만 이렇게 소나무가 멋을 부리며 서 있습니다 남봉-쉼터를 내려 가며 바라본 三峰山 第1峰 第1峰 오르는 일이 제일 힘든 구간입니다 이제가지 많이 걸렀기에 앞에 새로운 높은 산이 나타나면 숨이 막힙니다 [안부] 시궁산에서 삼봉산으로 가는 능선길의 좌측은 "화산 C.C"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화산 C.C.나 묵리,영보자애원으로 하산 할수도 있더군요 [삼거리 갈림길] 삼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펫말을 설치해놨습니다 펫말을 따라 직진하여 급경사를 치고 올라 가야합니다 [삼봉산 정상 가는 길] 사진에서 보는 경사보다 실제는 더 가파릅니다 [삼봉산 정상 가는 길] 상고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삼봉산이 제법 높은 산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경치도 좋습니다. 이 코스를 추천하고 싶군요 아~~ 환상적입니다. 역시 肉山은 겨울에 좋습니다 man204.gif [삼봉산 정상 오르는 길] [삼봉산 정상 오르는 길] [삼봉산 정상] 삼봉산 정상이 보입니다 [삼봉산 정상] 삼봉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삼봉산 정상은 넓직한 헬기장이며 전망이 좋은 곳인데 오늘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트이질 않아 주변 경관을 많이 촬영하지 못해서 제일 아쉬웠습니다 [三峰山 第1峰 정상석] 오후 3시 15분에 삼봉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곱든고개'에서 5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삼봉산 정상] 다행이 오후가 되니 안개가 다소 없어져 몇장 박았습니다 삼봉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보니 지나온 "시궁산"과 "三峰山 第2-3峰"이 보입니다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 時宮山이며 시궁산 뒤로 미리내성지 뒷산인 '갈미봉'과 '묘봉'이 보입니다 [삼봉산 정상] 삼봉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화산 C.C." [삼봉산 정상 갈림길] 삼봉산 헬기장에서 북쪽으로 10m정도 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으로는 "시미리 時美里"로 하산 하는 길이며 직진은 "굴암리"와 "묵리 墨里"로 하산하는 길입니다 墨里는 이곳에서 벼루와 묵을 많이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라는군요 [이정표] 시내버스 교통편이 편리한 "시미리 時美里"로 하산합니다 [시미리 산행로] 이곳의 등산로는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시미리 산행로] 경사가 제법 심합니다 [獨幕峴] 급경사 하산로를 따라 내려오면 "독막재 獨幕峴"라는 안부를 만납니다 운동시설들이 있는 것으로보아 주민들의 건강산책로인듯합니다 [獨幕峴] man204.gif "독막재 獨幕峴"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 갑니다 [시미리 時美里] 마을이 나타나며 산행로는 끝납니다 [시미리 時美里 들머리 산행안내판] 산행안내판에 오늘 걸어 온 코스를 연두색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여기에 도착하니 오후 3시 55분이었으니 곱든고개에서 여기까지 정확하게 6시간 걸렸습니다 여기에서 버스 타는 곳인 "45번 국도"에 있는 "시미리 정류장"까지는 약20분 정도 더 걸어 나가야하는데, 다른 산객의 승합차를 얻어 타고 "45번 국도"까지 나갔습니다 약 20분 정도 절약했습니다 [시미리- 삼봉산 산행 들머리] [45번 국도 - 시미리 버스 정류장] 45번 국도는 고속화도로와 舊道路가 함께있으며 舊道路에서 버스를 탑니다 용인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무조건 용인시외버스터미날로 가며 시간은 15분 정도 걸린듯합니다. 버스요금 900원. 우리는 24번버스를 탓습니다 [45번 국도 '시미리 버스 정류장'에서 삼봉산 산행 들머리로 가는 길에 있는 안내판] [45번 국도 '시미리 버스 정류장'에서 삼봉산 산행 들머리로 가는 길] 이곳을 산행 들머리로 해도 아주 좋은 하루 등산코스가 되겠습니다 [뒷풀이] 용인시외버스터미날 부근 돼지갈비집에서 뒷풀이를 했습니다 홍원장님을 픽업하러 오신 분과 함께 성공적인 "벙개산행"을 마감했습니다 함께하신 차동수님과 홍원장님 모두에게 감사 드림니다 [산행 개념도] 곱든고개-문수봉-한남쌍령지맥 갈림길-쌍령산 시궁산 갈림길-미리내고개- 시궁산- 삼봉산-시미리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눈은 내리는데 - 유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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