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순례-삼덕의 길"
"은이성지-삼덕의 길-미리내성지" 답사기
남곡리-은이성지-신덕고개-와우정사-호동-
망덕고개-장촌-애덕고개-미리내성지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걸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 13:4~7 -
[답사코스]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남곡리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는 "미리내성지"까지 갑니다.
GPS 측정 거리로 14.2km 였습니다.
[남곡리 버스정류장] 11:10
2014년 12월 15일 (월) 흐림
오늘도 조금 늦은 시간에 길을 나섯습니다.
이곳은 "경기도 용인군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남곡리 버스정류장"입니다.
"수원역-기흥역-용인터미널-양지-백암"까지 운행하는 [10번 시내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용인터미널"에서 10분 정도 걸리더군요.
여기서 "은이성지"로 가는 길은 앞에 보이는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되더군요.
[은이성지 들머리]
"남곡리" 골목 도로로 들어 가면 전봇대에 "은이성지" 가는 안내판이 부착되 있어
길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안내도]
입구에는 "용인문수봉-성지순례너울길"의 안내도가 설치되 있는데
기독교 불교 등산로를 함께 아우러는 안내도입니다.
"삼덕의 길"은 오로지 "김대건신부"와 관련된 길이기에, 이곳 안내도의 코스와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이 안내도를 너무 믿으면 안되겠습니다.
['애경 용인물류센타'] 11:16
"남곡리 사거리"에서 6분여 진행하면 "(주)애경 양지물류센타"를 지나게되고
[공장지대]
공장이 밀집해 있는 공장지대를 따라 7분여 진행하면...
['은이3교' 앞] 11:23
[은이3교]라는 다리가 있는 곳에 좌측으로 "은이뜰마트"라는 편의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다시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은이성지' 가는 길]
공장지대를 다시 10여분 진행하면...
[은이성지] 11:33
"은이성지 隱里聖地"를 만납니다.
먼저 "은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은"은 한자로 "숨을 은 隱"이고, "이"는 "마을 리 里"로 표기하는데
그 의미는 세상의 학대를 피해 피난와 숨어 사는 마을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이름을 얻게된 동기는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까지 '조선조정'에서 펼친
'천주교 말살정책'으로 '서학-천주교'를 믿는 신도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핍박했다는것에서
시작되었다는것은 모두 아시지죠?
주로 경기도-충청도에 살던 천주교도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들어 살던 곳이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지나는 '용인-안성' 근처의 깊은 계곡이었답니다.
그러한 은신처의 대표적인 곳이 이곳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南谷里"의 "隱里"와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의 "미리내"였다고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신부"가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핍박을 피해 이사와서 사목활동을 하고, 순교한후에는 시신이 운구된
계곡길이어서 천주교도들에겐 순례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파란문'도 그 발자취를 한번쯤은 더덤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
눈이 내리면 한번 가보려고 남겨 두었던 "삼덕의 길"이었습니다.
['은이성지' 입구]
"은이성지"는 천주교에서 더욱 의미를 두는 곳이라고 하는데...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은 타민족이나 타국가에 귀감이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외국선교사에 의한 선교가 아닌 우리 민족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신앙 공동체를 성장시킨 역사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최초의 현장이 이곳 "은이성지"라고 한다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신부"가 사목활동을 한곳이라니 의미 있겠습니다.
[은이성지]
"은이성지"는 그러한 큰의미와 비교해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군요.
[은이성지]
"은이성지"에서 "신덕고개(별미고개-은이고개)"까지는 1,813m 거리라고 알리며
"미리내성지"까지는 10,314m 남았다는군요.
['남곡리' 통과]
"은이성지"에서 15분여 거의 외줄기 길을 따라 마을을 통과하면....
[삼덕의 길]
"삼덕의 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전봇대에서 길안내를 합니다.
[배려서당] 11:50
"남곡리 은이골"의 마지막 집은 "배려서당"이라는 곳이었고
"은이골캠핑장"이 있습니다.
['은이골 캠핑장']
"은이골캠핑장"을 지나 계속 넓은 길을 따라 직진해 진행합니다.
[삼덕의 길]
4분여 비포장도로를 진행하면....
['신덕고개' 입구] 11:54
"삼덕의 길" 안내판이 있으며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게 되고...
[← 1.33km 은이성지] [신덕고개 0.77km→] [미리내성지 9.23km→]
['신덕고개' 오름길]
"신덕고개 입구"에서 넓고 선명한 도로를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신덕고개] 12:07~12:11
"신덕고개 信德고개"에 오르게 됩니다.
이 고개의 오리지날 이름은 "은이고개-별미고개"입니다만, 순례객들에겐 "信德고개"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에서 '해곡리'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신덕고개]
"김대건신부 운구길"은 여기서 계곡을 따라 직진합니다만
"와우정사"를 둘러보고 가려면 우측 "형제봉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내려다 본 '신덕고개']
"형제봉 방향"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신덕고개"입니다.
['은이산' 오름길]]
"신덕고개"에서 우측으로 4분여 오르막을 오르면...
['은이산 정상' 조망] 12:15
"은이산 정상"이 조망되는 작은 봉우리에 오르는데
이 봉우리에 "산너울2길"이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은이산 정상' 오름길]
7분 정도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삼거리] 12:22 ★ 길조심 ★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 "와우정사"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은이산 정상 가는 길]
"산너울2길"은 "은이산 정상"으로 향하고 있군요.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은이산 정상"입니다.
[은이산 정상] 12:24
"은이산 隱里山 363.3m"
그 흔한 삼각점도 하나 없는 글자 그대로 숨어있는 산입니다.
[갈림길 조망]
"은이산 정상"에서 "와우정사"로 가는 길을 관심 가지며 가야하는데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 갈림길입니다.
[갈림길] 12:27 ★ 길조심 ★
"와우정사"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에는 바위가 하나있고
바위 위에 조그만 돌탑을 쌓아 놓은 곳이 되겠습니다.
우측 능선길을 따라 가면 "산너울2길"이 이어지더군요.
"와우정사"로 가려면 여기서 반드시 좌측 내림길로 내려 가야합니다.
[내림길]
비교적 선명한 내림길을 7분여 내려 가면....
[석가여래] 12:34
석가여래 불상을 만나고...
"와우정사" 안으로 들어 간것입니다.
['은이산' 조망]
석가여래 불상에서 "은이산"을 뒤돌아 보곤....
['와우정사' 내림길]
비포장도로 수준의 길을 따라 잠시 내려 가면....
[大覺展]
[大覺展]
"와우정사" 안으로 들어 가는데
먼저 "대각전 大覺展"이라는 곳을 만나 구경합니다.
[와우정사]
"대각전"에서 내려다 본 광경입니다.
"와우정사"는 "대한불교 열반종"의 총본산이라고 하네요.
"대한불교열반종(大韓佛敎涅槃宗)"은 고구려시대(서기623~650년경)에 보덕성사(普德聖師)가
창종(創宗)한 종단(宗團)이라고하는데, 신라시대에 고승(高僧)인 원효대사(元曉大師),
의상대사(義湘大師), 경흥대사(景興大師), 대현대사(大賢大師)도 대한불교열반종에서
수학(修學)한바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臥牛精舍"는 우리 민족의 염원인 남북평화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실향민인 "金海根 삼장법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유일한 도량"이랍니다.
1970년에 창건했다고하니 전통사찰은 아니군요.
[벽화]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게 특징이라면 특징.
주로 동남아시아 불교 성지에 있는 그림과 모양들입니다.
[500 나한]
석가의 제자를 "나한"이라고 하죠?
500명의 나한을 모셔 놓고 동참하는데 백만원씩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에휴~~ 난 돈이 없어서 종교의 혜택도 못받는군요..ㅎ
그런데 진짜 효험이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돈 내고 '소원성취' 하겠습니다만..ㅋㅋ
[불상]
곳곳에 조각 전시장처럼 시설을 해 놨습니다.
[돌탑]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돌탑도 많고...
[불상]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이 곳곳에 설치되 있습니다.
[내림길]
중앙 통로를 통래 내려 가면...
[관세음보살]
무척 날씬해진 "관세음보살" 상이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천주교에서 "법정스님"의 "길상사"에 선물한 "관세음보살상"과 비슷하군요.
[전경]
"관세음보살상"에서 주차장 방향을 내려 다보고....
[똥배 나온 비만형?]
가난한 나라 인도에선 배불리 먹고 배 나온 인간이 최고였답니다. 우리도 그랬죠?
똥배는 인품이라고 한적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똥배가 나올 정도로 배불리 먹는 인간이 神으로 추앙받는 곳이 아직도 있습니다
[석가모니]
"와우정사"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관광코스로도 제법 유명하다고하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는 동남아시아 불교도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와우정사' 입구] 12:57
"와우정사" 출입구에서 뒤돌아 본 "와우정사"입니다.
"와우정사"를 20여분 걸려 구경하며 "은이산"을 하산했습니다.
우측 골목길이 "신덕고개"로 직통하는 길입니다.
"와우정사"를 구경하기 싫으신 분들은 이 길을 이용하면 시간 단축이 많이 되겠습니다.
['57번 국지도'-'와우정사 입구 삼거리'] 1:00
"와우정사"에서 100여m 나가면 [57번국지도]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안내판을 참고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해곡동]
['57번지방도']
[57번국지도]를 따라 8분여 '해곡동'을 통과하면...
[석유비축기지 삼거리] 1:08
"호3통 자연해실마을"로 갈수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 삼거리는 "한국석유공사 석유비축기지" 삼거리이기도 합니다.
['해실마을' 가는 길]
"한국석유공사" 방향, 즉 "호3통 자연해실마을"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7분 정도 진행하면....
[갈림길] 1:15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 "호3통 자연해실마을" 방향으로 갑니다.
['해실마을' 가는 길]
7분 정도 논밭을 지나면....
[해실마을] 1:22
"해실마을"을 지나고...
[마지막 집] 1:27
"해실마을"의 마지막 집을 지나면...
[농로]
논두렁을 잠시 지나가야 하더군요.
[삼덕의 길]
논두렁을 지나면 어디서 연결되는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넓은 길을 다시 만나며
"삼덕의 길"이라는 것을 다시 알려 줍니다.
[묘지]
조금 올라 가면 이렇게 묘지가 있는 곳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가야 했던것 같습니다.
눈이 내려 길이 보이지 않았고, 넓은 길이 계속 직진하고 있어 직진했더니...
[임도]
계속 너른 임도가 이어지는데 묘지가 있는 곳이 나타납니다.
첫번째 우측 계단으로 오르지 말고 앞에 보이는 표지기 있는 곳으로 가서 우측으로 오르면...
[묘지] 1:40
묘지가 나오는데 직진해 내려가면...
['망덕고개' 가는 길]
좌측에 "망덕고개"로 오르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으로 내려 가서....
[계단]
조금 가파른 계단을 5분 정도 오르면...
[망덕고개] 1:47~1:50
"망덕고개 望德고개"에 오르게 됩니다.
[망덕고개]
"望德고개"는 원래 이름이 "용해곡고개" 또는 "해실이고개"랍니다.
특히 "한남정맥"이 지나는 고개로서 세개의 고개 중에는 가장 높은 고개로서
해발 230m 정도 되더군요.
[한남정맥]
추억의 "한남정맥 망덕고개"입니다.
'한남정맥'을 종주하신 분들은 저와 같은 기분이겠죠? ㅎㅎ
여기선 길조심을 해야 하는데 화살표를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애덕고개 3,872m→. 미리내성지 4,372m→] 남았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비포장도로] 1:51
"망덕고개"에서 좌측 '한남정맥" 으로 20m쯤 올라 가면 비포장도로를 만납니다.
좌측 직진 계단길은 "문수봉"으로 가는 '한남정맥'이고,
"삼덕의 길"은 우측 비포장도로 내림길입니다.
[비포장도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8분정도 고도를 낮추며 내려 가면...
['오지힐링'] 1:59
"오지힐링"이라는 캠핑장 정문을 지나고....
그러니까 "오지힐링"은 "망덕고개" 아래에 있는 것이고...
[장촌마을]
이어서 "장촌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온누리자연학교]
"온누리자연학교"라는 곳을 지나면...
['시궁산' 조망]
"시궁산 時宮山 514m"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시궁산"은 두번 올랐으며 산행기가 두개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 읽어 보시고
[장촌교] 2:19
"장촌교"를 만나 좌측으로 나가면...
['장촌버스종점' 가는 길]
"묵리"에서 "문수산터널"을 지나 "원삼면"으로 가는 도로를 만나는데
"문수산터널"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5분 정도 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장촌 버스종점] 2:25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장촌버스종점"입니다.
"쌍령지맥"을 종주 할때 제일 많이 이용하는 버스종점이 되겠습니다.
제가 쓴 "쌍령지맥 산행기"도 있으니 참고하시고....
[장촌버스종점-미리내골 가는 길]
"용인터미널"에서 이곳까지 운행하는 [22번시내버스]의 종점이기도합니다.
"미리내성지"로 가는 "애덕고개" 이정표도 세워져 있으니 길찾기는 쉽습니다.
['문수산터널' 조망]
몇년전에 개통한 "문수산터널"이 보이는군요.
저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이 지역이 진짜 심심산꼴이었답니다.
이름도 "은리" "묵리" "장촌" "미리내"....등등
'한남정맥'과 '쌍령지맥' 사이의 계곡이어서 숨어 살기 좋은 곳이었죠.
그래서 그 옛날 천주교도들은 엄청난 종교탄압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와
하나님을 믿으며 고행스러운 삶을 살았던 천주교도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순례지가 된것이지요
[마을 통과]
몇가구가 사는 마을을 통과하면...
[갈림길] 2:35
갈림길이 나오는데 보시는바와 같이 좌측 "시궁산 등산로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애덕고개' 오름길]
넓은 비포장도로를 10여분 올라 가면...
[오두재] 2:45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애덕고개 愛德고개"입니다.
이 고개의 오리지날 이름은 "거문정고개 또는 오두재"라고 한답니다.
[애덕고개] 2:45~2:50
'묵리 장촌'에서 '미산리' 방향을 보며 찍은 "愛德고개"입니다
"김대건 신부"와 어렵게 피난살이를 하던 서학 신도들을 생각하면 이 고개의 이름을
저는 "哀悼고개"로 하고 싶습니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갔던 시절의 우리나라....
쪽바리들한테 나라를 뺏기지 않을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수구꼴통정치권력들의 횡포를
이 고개에 서면 생각하지 않을수 없군요.
여기서 참고로 우리나라 수구꼴통정권의 천주교 박해에 대한 외국의 보복을 말하고 싶습니다
"병인양요 丙寅洋擾"
1866년 9월 16일
"로즈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는 전함 3척, 포함 4척, 병사 1,000여 명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해왔습니다. 프랑스 함대는 순식간에 강화도를 점령하고 김포반도의 끝이며
'한남정맥'의 끝인 "문수산성"을 침략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 시피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
중요 도서를 약탈하여 프랑스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함대는 왜 조선을 침공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야합니다. 이유없이 침공 할수는 없지요?
조선 조정은 프랑스 신부 아홉명을 요즘 말로 하자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죽여버렸습니다.
그때 사형 당한 신부들은 '관악산' 옆 "삼성산 성지"에 뭍혀 있지요.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에서 천여명의 천주교도들을 사형시키는등 전국적으로 우리나라 백성
몇만명을 죽이거나 감옥에 넣고 고문을 가했습니다. 단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병인양요"의 원인은 "프랑스 신부 9명을 조선 조정이 학살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천주교를 잔인무도하게 탄압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외규장각 도서를 강력하게 돌려 달라고 못하는 이유를 이제 조금 알겠습니까?
대략 이 정도에서 이 이야기는 끝내겠습니다.
다양한 반론을 펴실 분들도 많겠으나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 봅시다
무조건 상대방의 침공에만 촛점을 마추지 마시고 그 이유도 함께 아시면 여러 생각이 듭니다
'정조대왕' 이후 어린 '순조'를 왕위에 올려 놓고 수렴청정을 하며
여자의 치마폭을 피비린내 나게 휘두른 "정순왕후"부터 "안동김씨 세도정치"까지
그리고 '대원군'의 척화쇄국정책 아래에서도 수없이 살해 당한 조선과 외국 천주교도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 역사를 한번쯤 더 되돌아 봐야합니다
[김대건신부 약력]
"김대건신부"는 지금으로부터 168년전, 그러니까 1846년 9월 16일
지금 서울 용산의 한강철교와 인도교 사이의 "용산역" 건너편 "새남터"라는 조선시대 사형장에서
'군문 효수형(軍門梟首刑)'이라는 처참한 방법으로 사형 당하며 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입니다....그때 나이 26세였습니다
['쌍령산' 조망]
"쌍령지맥"의 대표산인 "쌍령산 雙嶺山 502.5m""이 조망됩니다.
['미리내성지' 가는 길]
"김대건신부"는 어려서부터 프랑스어를 잘해서 '마카오'로 유학을 가게되고 프랑스 함대
사령관의 통역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프랑스 "페레올주교"로 부터 한국인 최초의
사제품을 받아 귀국하여서는 이곳 "삼덕의 길"을 오가며 사목활동을 5개월 정도 하고,
프랑스 신부들의 밀입국을 돕기 위해 '백령도'로 갔다가 조선 조정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석달간 고초를 당하곤 '군문효수형'이라는 처참한 방법으로 사형 당하며 순교했습니다.
그의 시체는 한강 모래 백사장에 가매장 되었는데 40일 후,
그의 제자인 신도 이민식(빈첸시오1829-1921)이 몰래 시신을 빼내 업고 백오십리를 밤에만
운구하며, 일주일이 걸려 오늘 제가 넘어온 "삼덕의 길"을 지나
이 "미리내 고개-애덕고개"를 넘어 '미리내'로 운구하여 현재의 위치에 묘를 썼답니다
['미리내성지' 입구] 2:57
"미리내聖地"에 도착했습니다.
"은이聖地"로 가는 출발점이기도한 곳입니다.
앞에 "김대건신부"의 묘소가 있는 '경당'이 보입니다.
[안내도]
"삼덕의 길"
"믿음 소망 사랑"을 한자로 "信德 望德 愛德"이라 쓰니 "三德의 길"이라고 한답니다
[경당]
'경당'은 추모하는 곳입니다.
경당 앞에는 다음 사진에서 보는 석관묘가 있습니다.
[강도영신부 묘] [김대건신부 묘]
[페레올주교 묘] [최문식신부 묘]
위 우측 石棺묘가 김대건 신부의 묘입니다
그런데 이 묘에는 김대건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만을 모셨다고하며
다른 유해는 카도릭신학대학(성신교정) 성당 안에 안치 되있다고 합니다
[경당 내부]
경당 내부도 잠시 들려보고...
[미리내성지]
"미리내 銀河水"
'미리내'는 모두 아시다시피 '銀河水'의 순 우리말입니다
'서학' 즉, 천주교가 170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와 '봉건수구정치세력'들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지요. 자유 평등 사랑을 모토로 확산일로에 있는 천주교를 우리나라
수구정치세력들은 그냥 둘수가 없었습니다. 아니면 정권이 흔들거리니....
현재의 북한 정권처럼 그래서 천주교도들을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의 천주교 신도들이 죽임을 피해 숨어 들어 火田을 일구며 산곳이
이곳 쌍령산과 시궁산 계곡이었답니다. 밤이면 이 피난민 신도들이 켜 놓은 등불이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고해서 "미리내"라고 했다는군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고 뭍힌 곳이 또 이곳이라
이곳을 "미리내 聖地"라고 부른답니다
[김대건신부 상]
요즘으로 치자면 '김대건 어린이'가 중학교 2학년에 다닐즈음 그는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6개월이 걸려 압록강에서 중국대륙을 남하하여 '마카오'까지 갔답니다.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명이 함께 유학을 떠났는데 "최방제"는 일찍 죽고....
4년반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조선천주교의 사활을 짊어지고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아
우리나라에 들어와 약 5개월 정도 이 부근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외국선교사들의 밀항을 돕기위해 백령도 등지로 갔답니다.
하지만 국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불행이도 체포되어 26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대건 신부'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종교
15세에 중국대륙을 걸어 개고생하며 '마카오'로 유학을 가서 신학공부를 하고
그 고생과 노력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26세의 나이에 목숨 바쳐 가며 믿은 종교...
목숨까지 바칠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이 종교인가!
그의 소원대로 이 세상은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었는가!
16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교적으로 그 때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느끼는
'파란문'은 씁쓸한 마음을 안고 하산하고 있습니다
[미리내 성당]
오늘 "와우정사"와 "은이성지-미리내성지"를 둘러 보았습니다.
보란드시 건물을 크게 세우고 神을 믿고 있지만
세상은 "인간의 욕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神은 우리를 돌보고 있단 말인가.
"믿음-소망-사랑"도 바라기만 할뿐 자신이 남을 위해 행하지 않습니다.
[성지]
언젠가 인터넷에서 회자된 .....
우루과이의 한 작은 교회 벽에 주기도문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고
한동안 인터넷에 많이 떠돌아 다녔죠. 그래서 저도 우연찮게 본적이 있어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는 듯 하여 올려 드림니다
"하늘에 계신"이라 하지 마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 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며"라고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라고 하지 마라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예수 사망]
[예수 탄생]
며칠 있으면 예수 탄생일, 즉 크리스마스입니다
저는 이런 모형도가 일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갑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 난게 자랑스러운 일로 보는 듯합니다
저는 자랑할만한 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지무지 챙피한 일로 생각 되거던요
무식한 무신론자여서일까
마리아는 목수였던 남편 '요셉'이 있었고, 그렇게 가난하지 않아 집도 있었는데
왜? 왜? 위생상 매우 열악한 환경의 마굿간에 들어가 말 밥그릇에다 애를 낳았단 말인가
그렇게 애 낳을 곳이 없었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神을 낳으면서.....
분명 피치 못할 사연이 있긴 있었을 텐데..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 밥그릇에 애를 낳습니까?
그리고 여자가 애를 낳는데 왠 외간 남자 셋이 애 낳는 마굿간에 오는가
남편인 요셉은 오지않고....이제까지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물으면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답변이 돌아 옵니다. 뭔 믿음이 부족한지도 모르겠고
애 낳는것하고 믿음하고 뭔 관계가 있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부족한 인간의 의문이라 생각해 주시고....
예수님은 누구나 사랑한다고 했으니 사랑으로 감싸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미리내성지 입구]
"미리내성지"를 통과하는데에도 15분 정도가 걸리는 군요.
주차장을 나서면 버스종점이 나옵니다.
[뒤돌아 본 '미리내성지'] 3:10
"미리내성지" 주차장에서 성지를 뒤돌아 보며 오늘 답사를 마침니다.
[미리내성지 버스시간표]
3시 25분 버스를 타기 위해 모든 산행시간을 조정하였습니다.
계획대로 이곳에서 3시 20분에 버스를 타고 25분에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10여분 만에 "난실리"에서 내려 "용인터미널"로 가는 [22-1번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귀가하였습니다.
[거리-고도표]
GPS로 측정한 거리는 14.2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눈 내리는 날 걸을려고 했는데 일기예보와 달리 눈은 내리지 안아서 아쉬웠습니다.
['난실리 사거리] 3:35
"미리내성지 종점"에서 [60번 시내버스]를 타고 10여분이 걸려 "난실리"에 내려
바로 우측에 있는 "용인"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22-1번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용인터미널"로 갔습니다.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but rejoices with the truth.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Love never fails.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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