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립공원 태백산을 찾아서"
"태백산" 산행기
백단사입구-반재-망경대-단종비각-천제단-장군봉-유일사입구
태백산 산신령이 된 "조선 제6대 왕-단종"의 哀史
태백산 천제단 아래로 장쾌하게 펼쳐지는 白頭大幹 洛東正脈
望鏡臺 앞으로 너울대는 東海
한강과 낙동강의 分水嶺
단군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는 天祭壇
태백산은 그렇게 솟아 있었다
[산행코스]
1989년 "강원도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총면적 17.44㎢의 육산인 "태백산 太白山"으로 갑니다.
산행코스는 여러곳이 있지만 쉬운코스 중에 하나인 "백단사입구-반재-망경대-천제단-장군봉-유일사입구"를
이용하였으며, 거리는 GPS측정으로 "9.4km"였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죽전 승하차장]
2015년 2월 1일 (일) 맑음
2015년 들어 처음으로 산행다운 산행을 하러 출발합니다.
오늘은 모교 산악회인 "휘산회"에 오랜만에 참가하여 동창생들과 함께 산행을 합니다.
먼저 '경부고속도로에 있는 "죽전버스승하차장"으로 나갔는데 휴일을 맞아 산행을 가는 산객들로
"죽전버스승하차장"은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백단사 입구] 11:08
"죽전버스승하차장"에서 7시 50분경 버스를 타고 3시간 15분 정도가 걸려
'강원도 태백시 혈동'에 있는 "백단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백단사입구 매표소 가는 길]
포장도로를 따라 약10분 정도 "백단사입구 매표소"로 올라 갑니다.
"휘산회" 참여 인원만도 230여명이라고 하는데 "태백산"으로 오르는 길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산객들로 뒤덮혀 이곳이 '강원도 산골짜기'인지
서울 도심지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백단사입구 매표소] 11:18~11:40
"백단사입구 매표소"
'강원도 도립공원'이라고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었으며, 옆에는 대형 주차장이 설치되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준비운동과 "휘산회" 임원진들의 인삿말을 듣고...
[약사사]
조금 늦은 시간에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번에 "태백산"을 세번째 찾습니다만, 이 코스로의 산행은 처음입니다.
"백단사입구 매표소"에서 "백단사" 방향으로 접어드니 바로 "약사사"라는 조그만 절간을 지나게 되고
4분여 조금 올라 가니....
[백단사 갈림길] 11:44
삼거리가 나오는데 "백단사 갈림길" 삼거리였습니다.
여기서 "천제단 방향"으로 직진해서 올라 갑니다.
[←천제단 4km]라고 알리는 이정표가 정상이 멀지 않다고 안심시켜주는군요.
이제부터 차도를 버리고 실질적인 등산로를 따라 '태백산'을 오르게 됩니다.
['반재' 오르는 길]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으로 자동차도 다닐수 있는 넓은 길이 정상까지 변함없이 이어지며
경사도는 완만하여 전혀 부담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1,567m 태백산"을 오르르면 상식적으로 체력 소모가 엄청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가파른 곳이 단 한군데도 없이 윗 사진에서 보시는바와 같이 전구간이 모두 완만하여
힘드는줄 모르고 쉬엄쉬엄 친구들과 잡담하며 올랐습니다.
1.8km를 약 40분이 걸려 하얀 눈을 밟으며 오르면....
[반재] 12:28~12:38
이정표와 쉼터가 있는 "반재 1,205m"를 만납니다.
지명의 유래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태백산 등산코스'의 중간 지점이라서 "반재"라 하지않나 여겨집니다.
이곳은 '태백산'을 찾는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용하는 갈림길입니다.
좌측길은 "석탄박물관"등 주요 위락시설들이 있는 "당골"로 통하는 갈림길입니다.
저는 예전에 "유일사입구"에서 '천제단'을 오르고 이곳을 통과하여 "당골"로 하산 한적이 있는데
이 코스가 일반인들에겐 가장 친숙한 코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골"과 "백단사"코스가 만나는 곳이니 산객들의 수는 더욱 늘어 납니다.
이곳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태백산 산행안내도]
산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도가 설치되 있었습니다.
"반재"는 '천제단'까지 중간쯤 되는 곳이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겠죠?
['망경대' 가는 길]
"반재"에서 "망경대"로 가는 길도 넓고 완만하여 불편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산하는 산객들과 교차하는 산행로여서 더욱 많은 산객들로 길은 붐볏습니다만...
25분여 뽀드득~뽀드득 소리... 상쾌한 태백산 산신령의 효과음을 들으며 올라 갑니다....
그래서 눈이 내리면 더욱 좋겠구나~ 싶어 제가 강제로 눈이 내리게 했습니다. ㅎㅎ
어때요 보기 좋은가요?
['천제단' '장군봉' 조망] 1:02
능선을 넘어가면서 드디어 '태백산'의 정상인 "천제단"과 "장군봉"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태백산'의 높이가 "1,567m"가 맞어?라고 할 정도로 쉽게 오르게 됩니다.
100m 정도 더 진행하면....
['망경대' 조망] 1:04
해발 "1,470m"에 있는 "망경대-망경사"가 "천제단"과 "장군봉" 사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東海를 '望鏡'하고 있는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세종대왕'의 손자인 "조선 제6대 왕-단종"의 비각이 슬픔을 못이겨 몸부림치고 있는듯
눈을 뒤집어 쓰고 허옇게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습니다.
[삼거리] 1:07
이어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나 다시 만납니다만, "망경대" 방향인 우측길로 가는게 좋더군요.
우측길로 4분여 진행하면...
['망경사' 해우소] 1:11
"망경사"의 '해우소'가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며 나타납니다.
그런데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의 규모가 같아 남자화장실은 로테이션이 잘되는데
여자화장실에는 여자들이 2~30m 줄을 서서 발을 굴리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서 싸는 남자와 앉아서 싸는 여자들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규모를 조절할수도 있었을텐데...ㅎ
[망경사]
이어서 절묘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망경사 望鏡寺"가 겨우살이를 준비하고 늘어서 있습니다.
1,470m나 되는 곳에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현대식 시설을 만들어 놨는데....
이곳에서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면 소원성취한다고 전국에서 불자들이 많이 찾아온다죠?
사실 '태백산'은 우리나라 토속신앙의 진원지라고 해도 될 정도로 토속신앙이 난무하던 곳입니다.
아시다시피 "단군"에게 제사를 올리는 "천제단"이 있는 곳이고,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조선 제6대 왕-단종"의 넋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앞에 "단종비각"이 보이지요?
[뒤돌아 본 '망경사']
"망경사"를 지나와 뒤돌아 보고...
이곳엔 '매점' '산상주점'등이 있어 먹거리를 무겁게 미리 준비 할 필요도 없겠더라구요. ㅎ
['망경사' 석불]
"망경사 望鏡寺"
사진 좌측 비석을 보면 "太白山 望鏡臺 文殊大佛 功德碑"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원래 이 절의 이름은 "망경사"가 아니라 "망경대"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허목선생"이 쓴 "미수언기 眉叟言記"에 나오더군요.
"미수 허목선생"은 모두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허목선생"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 '의정부우의정'까지 오른 불세출의 영재이었지요.
"우암 송시열"과 쌍벽을 이루던 "남인'의 거두였습니다. '황희정승' '퇴계 이황선생'의 계보를 잇는 분이죠.
그 뒤를 다시 '번암 채재공선생' "다산 정약용선생"이 잇고...
그런 정치적인것은 생략하고 제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름이 아니라
"허목선생"은 등산을 무지무지 좋아한 우리나라 최고의 등산가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방촌 황희선생' '퇴계 이황선생' '번암 채재공선생' '다산 정약용선생'등 성리학파들은 모두 등산가였으며
등산을 좋아했으니 당연 모두 엄청 장수하셨습니다.
요즘도 산행에 관심이 깊은 산객들은 "미수 허목선생"의 산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새기며 다닌답니다
우리나라 왠만한 유명산들은 모두 섭렵하시고 기록을 남기셨는데, 무었보다 산행기를 남기셨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이곳 '태백산'도 올라 당시 이곳의 경관과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셨더군요.
저의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되며 제가 인용하는 글들이 제법 많습니다.
특히 '관악산'을 팔십사세에 완주하고 "遊冠嶽山記"를 기록으로 남기시고 팔십칠세에 돌아가셨는데
조선 '효종'시대에 그런 나이에 '관악산등산'이라면 상상 할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건강백세를 추구한다는 현대에도 84세에 관악산을 종주하는 사람은 찾을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84세에 다시 이곳을 오를수 있을려는지....
['망경대'에서 동해방향' 조망] 1:39
이곳이 "망경대 望鏡臺"였다는 것을 웅변으로 대변해 주는 조망입니다.
오늘 날씨까지 좋아 '태백산 산신령 단종대왕'이 우리를 굽어 살피셔서 이런 광경을 보도록 해 주었나 봅니다.
'태백산-소백산'에서 이런 날씨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ㅎ
추가로 제가 다시 강제로 눈을 내리게 했습니다. ㅎㅎ
"태백산"은 우리나라 토속신앙의 진원지였으며, 토속신앙이 난무하던 곳이었습니다.
神靈있는 山이라고 삼국사기에까지 나와있으니 새로운 세계와 더 나은 세계를 갈망하는 민초들에겐
이 산이 믿음이고 희망이었던 것이겠죠.
앞에 펼쳐지는 계곡이 "당골 堂谷"입니다.
토속신앙이 화려하게 움트던 곳이어서 계곡의 이름까지 "당골"인 것이지요.
이런 곳에 불교를 믿는 절간을 짓는다는 것은 토속신앙인들에게 맞아 죽는 일이어서 절간을 짓지 못하다가
"조선 효종 8년"에 "충학스님"이라는 분이 토속신앙의 상징인 "천왕사"에 불을 지르고 절을 지었는데
"절 寺"를 사용하지 못하고 "대 臺"를 사용하는 "망경대 望鏡臺"가 되었답니다.
요즈음 일반인들이 절간이니까 "망경대"라기보다는 그냥 "망경사"라고 부르고 있다는군요.
이런 내용이 위에서 언급한 "미수 허목선생"이 쓴 "미수언기"에 나와 있습니다.
['龍井']
['龍井' 안내문]
"망경대"에 오르면 반드시 마시고 가야하는 약수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용정 龍井" 해발 1,470m
자세한 내용은 위 안내문을 참고하시고....
재미 있는 것은 '낙동강' 잉어가 龍井 수맥을 타고 이곳 태백산으로 올라 龍이 되었다는군요. ㅎ
그리고 그 龍은 모든이들에게 소원성취를 하게 해 준다고...ㅎ 믿거나 말거나...
['단종비각'] 1:22
[설명문]
"망경대"를 지나 조금 가파른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단종비각 端宗碑閣"을 만납니다.
'세종대왕'의 친손자인 "조선 제6대 왕-단종"의 비각이 있는 곳입니다.
"계유정란"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수양대군".
그 원한을 태백산에 뿌리고 있는 어린 "단종"의 이야기를 우리는 "端宗哀史"라고 하지요.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나와 있으니 읽어 보시고....
우리나라 왕들 중에 왕다운 왕은 두분이었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세종대왕"과 "정조대왕"....그 중에서도 단연 "세종대왕"이 최고이지요?
여러분은 혹시 "세종대왕"을 훌륭한 왕으로만 기억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정치, 경제, 문화, 예술적으로는 전세계를 통틀어 이런 정치지도자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시지만
개인적 인생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왕중에 한분이었다는 것 아시나요?
['천제단' 오름길]
'세종대왕'이 얼마나 불행한 왕이었는지를 지금부터 간략하게 알아 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모락산 산행기"에서 한번 언급한적이 있습니다.
부모로서의 존재가치를 최고로 만들어 주는 것은 자식들이지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자식福이라곤 개털많큼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버지 중에 한분이였습니다.
그러면 '세종대왕'의 자식들부터 자세히 알아 보자구요.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청송 심씨)'와의 사이에서 8남 2녀를 낳았습니다.
'소헌왕후'는 조선 왕비 중에 자식을 가장 많이 낳은 왕비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지요
'세종대왕'은 후처들에게서도 10명의 아들을 추가로 두어, 합쳐서 18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아들 많이 낳은 왕으로 단연 1위를 차지하며 기네스북에 올라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종대왕'은 政事도 잘 보았지만 情事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서자들은 놔두고 정통파 '소헌왕후'에게서 낳은 아들들을 알아 보면....
첫째 아들 : "문종" (외아들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일찍 죽음)
둘째 아들 : "수양대군=세조" (삼촌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함)
셋째 아들 : "안평대군" (형인 '수양대군'과 권력 다툼을 벌이다 '계유정란'때 형한테 사형당함)
넷째 아들 : "임영대군" ('수양대군'의 편으로 왕위찬탈에 협조하여 '세조'의 신임을 얻음)
다섯째 아들 : "광평대군" (스무살에 요절)
여섯째 아들 : "금성대군" ('수양대군' 반대파로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형한테 죽임을 당함)
일곱째 아들 : "평원대군" (천연두로 어려서 사망)
여덟번째 아들 : "영응대군" ('수양대군'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보좌하여 천수를 누림)
"세종대왕"의 친자식들은 형제들끼리 권력다툼으로 형제들과 조카까지 죽였습니다.
형제들끼리 살인을 하는 콩가루집안 자식을 둔 아버지 ... 그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대왕은 살아 있는 종합병원이었답니다.
평생 당뇨병과 함께, 풍질과 부종, 수전증 같은 병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35살 이후에는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였다고하며
당뇨 후유증 때문에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부종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 누울 수도
없어 잠을 잘수도 없을 정도 였답니다.
여기에 후궁들만 다섯명이나 되었으니 상상하지 않아도 성생활은 문란 할수 밖에 없었을거고
이런 과정에서 '세종대왕'은 성병인 '임질'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였다니....
이런 것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사실이겠죠?
"세종대왕"은 며느리 복도 지지리도 없었답니다.
기록으로 나와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동성연애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 "문종"의 와이프 "봉씨"였습니다.
이 여자가 '세종실록'에 아주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여성동성애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세자빈'이었을때 궁녀와 동성애를 한것이죠.
궁금해요? ㅎ 그러면 조금 있다가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천제단'] 1:30~2:45 (1시간 15분간 식사및 조망)
"靈峰 天王壇 1,560m"
"태백산"은 "장군봉-영봉-부쇠봉-문수봉"등으로 이루어진 산입니다.
그리고 "태백산"에는 세개의 "천제단"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인 "천왕단"이 있는 "영봉"에 오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곳이 "태백산 정상"인줄 압니다만, 여러 봉우리중에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태백산 영봉 천왕단"은 수많은 산객들로 뒤덮혀 정상은 보이지 않고 사람만 보입니다.
['天王壇']
['천제단'과 '천왕단' 안내문]
'태백산'에 있는 세개의 "천제단 天祭壇" 중에 이곳 "靈峰"에 있는것이 "천왕단 天王壇"입니다.
그러니까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일반명사이고, "천왕단"은 고유명사가 되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장군봉"에 있는데 "장군단"이라고 하고, 또 하나는 "부쇠봉" 근처에 "하단 下壇"이라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종주 하신 분들은 세개를 다 볼수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코스에선 두개를 볼수 있습니다.
[북쪽 방향 조망]
"천왕단"에서 四位를 조망하겠습니다.
오늘 날씨가 좋아 필자인 '파란문'뿐만 아니라 이 산행기를 보시는 모든 애독자분들도 복 받은 것이겠죠? ㅎㅎ
먼저 북쪽을 바라보면....
"백두대간" 산줄기가 북으로 굽이치며 흘러 가는데 마치 龍이 꿈틀대는듯 하지 않습니까?
앞에 보이는 "함백산 1,573m"에는 군부대 민간통신시설들이 있어 어디서나 알아 볼수 있는 대간길이죠.
그리고 대간은 "풍력발전시설"이 있는 "매봉산"으로 이어집니다.
"매봉산"은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을 분기시키고 있는 分岐峰입니다.
그러니까 "매봉산" 좌측으로는 "한강의 水界"가 되고, 앞쪽으로는 "낙동강의 水界"가 되며,
그 뒤로 동해 방향으로는 "오십천의 水界"가 되는 三水嶺이 되는 곳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리시간에 배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분기하는 곳이 되기도 하죠.
저곳에서 "태백산맥"은 "낙동정맥" 방향인 '부산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그러니까 "매봉산"에서 이곳 '태백산'으로 와서 '소백산-지리산'으로 가는 산줄기는 "소백산맥"인 것이죠.
그러므로 "태백산"은 "태백산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백산맥"에 있습니다. 조금 웃기는데 이해가 가시는지? ㅎ
[동쪽 방향 조망]
동쪽으로는 우리나라 토속신앙의 진원지라고 할수 있는 "당골"을 감싸고 있는 "문수봉"이 조망됩니다.
"태백산"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실제 봉우리는 저 "문수봉"이라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태백산'에서 "문수봉"만이 암봉으로 색깔이 하얗게 보여서 랍니다.
동쪽 멀리에는 공식적으로 "태백산맥"이라고 불리지만,
저 같은 산객들은 "낙동정맥"이라고 부르는 산줄기가 '부산 다대포'를 향해 뻗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파란문'은 두발로 발품을 팔아 '낙동정맥'을 완주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저의 산행기를 참고 하시고...
[남쪽 방향 조망]
남쪽 방향으로 눈길을 주면 "지리산"에서부터 오는 '백두대간'이 "소백산"을 지나
성난 파도처럼 일렁이며 밀려오고 있습니다.
더 늙기 전에 '백두대간'을 한번 더 하고 싶어 지는군요. ㅎ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장쾌하지 않습니까? ㅎ
조금 우측 남서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남서쪽 방향 조망]
"소백산" "선달산" "구룡산"을 거치며 "백두대간"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이 대간 우측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한강'으로 흘러 가는데 '영월군'입니다.
"소백산"과 "선달산"사이의 대간길에 "고치령"이라고 있습니다.
그곳을 "양백지간 兩白之間"이라고 하는데, "소백산"과 "태백산"의 분기점이라는 뜻이지요.
그곳 "고치령"에도 "단종"을 기리는 산신각이 있는데,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형인 "수양대군"에
대항하여 "단종복위"를 도모하며 넘나들던 고개여서 산신각을 세웠다고 하더군요.
우측 계곡에 보이는 비행장 같은 것은 뭔지 모르겠습니다.
['장군봉' 조망]
북쪽으로 곧 가야할 "장군봉"이 보입니다.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저곳에 '천제단' 세개 중에 하나인 "장군단"이 있으며, 이곳 "영봉"보다 7m 더 높습니다.
도토리 키재기이지만...
['장군봉'] 2:50
"장군봉 장군단 1,567m"
"장군봉"에는 <태백산 최고봉>이라는 정상석과 세개의 '천제단' 중에 하나인 "장군단"이 있습니다.
[인증샷]
함께한 동창생들과 한컷 했습니다.
개인 앨범용 사진은 산행기에 잘 올리지 않지만 세월이 더 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기위해 한장 올림니다.
'파란문'은 키가 작지 않은데 아랫단에 서서 옆의 총무님과 바란스를 맞추려고 한것입니다. ㅎㅎ
옆 사람 키까지 감안 할줄 안다니까요~~ㅎ
명찰 달고 있는 사람은 '파란문' 밖에 없군요. 항상 모법생이야요~~ ㅋ
['將軍壇']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천제단 天祭壇"이며 이름은 "장군단 將軍壇"입니다.
산객들로 만원을 이뤄 사진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잠깐 비는 찬스를 이용하여 촬영에 성공 ㅎ
['함백산' 조망]
"장군봉"에서 "유일사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함백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 오는군요.
"함백산"에는 우리나라 스포츠 국가대표훈련장이 있지요.
[주목 군락지역]
"장군봉"에서 "유일사쉼터 갈림길"이 있는 곳 까지 "주목과 철쭉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집니다.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되는 곳이죠.
"주목 朱木"
백제 무열왕릉에서 출토된 베게가 주목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무덤 속에서 천년이 지나서도 본모양을 하고 있어 우리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었죠.
그래서 아시다시피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간다는 말을 탄생시킨 주목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입니다.
"朱木"이라는 말이 "붉은 나무"라는 뜻이니, 열매 뿐만 아니라 나무의 속까지 붉답니다.
요즘 '주목'에서 축출하는 "탁솔"이라는 성분이 기적의 항암제로 알려지면서 세계가 법석을 떨고있죠?
그래서 '주목나무'가 도벌되는등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데 여기는 아직 훔쳐가는 놈들이 없나 봅니다.
[내림길]
'주목'은 성장 속도가 무지 느리지만 오래 사는 식물 1위에 속한답니다.
1만2천년을 산다나 뭐래나....지구 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 중에 제일 오래 사는 생명체가 되겠군요.
주목과 '함백산'....그리고 雪雪雪
그리고 동해 바닷물 색깔같은 하늘....
정말 좋은 날에 태백산 산행을 합니다.
그래서 또 눈이 내리도록 명령을 내렸더니 진짜로 눈이 내리지요? ㅎ
['망경대' 갈림길] 3:07
'주목군락지' 중간 쯤에 "망경대"와 통하는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있는데
[유일사매표소] 방향으로 직진해 내려 갑니다.
[주목 자생지역]
고도를 조금 낮추면 살아있는 주목나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의 '지리산'이나 '덕유산구간' '태백산구간' 등에서 볼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기록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동성애자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궁녀들 사이의 동성애를 보통 '대식'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대식'은 궁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드러나곤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하죠?ㅎㅎ
이렇듯 은밀하게 행해지던 궁녀들의 동성애가 겉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가 주인공이었던 사건입니다.
세종대왕은 궁녀들 사이의 '대식'이 적발되면 곤장 100대~70대씩 때려서라도
금지시키려고 했답니다. 당시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정관료들의 성 윤리가 대단히
엄격하여 동성애를 절대 용납하지 못했던 때이랍니다.
자기들은 첩을 여러명씩 두고 개판으로 성생활을 하면서 ...
그런데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인 '봉씨'가 궁녀와 동성애를 벌이다
적발되어 쫓겨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는데,『세종실록』에서 궁녀의 동성애에 관한
기록은 이때의 상황을 가장 자세하게 기술해 놨습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이 큰며느리 '봉씨'를 내치면서 부득이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다 보니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록'에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세종이 큰며느리를 내친 이유는 근본적으로 아들, 즉 '문종'에게 있었답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여색을 멀리한 모범적인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일 밤 독수공방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문종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세자빈 김씨'는 학문에만 열중할 뿐 자신을 모른 체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압승술 壓勝術"을 행하다가 시아버지 '세종대왕'에게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압승술"이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일종의 민간 미신이랍니다. 구체적으로
"압승술"은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 뒷굽을 태워 가루를 내고 나서 그것을 술에 타
남편에게 먹이는 일종의 미신인데요. 휘빈 김씨는 세자가 자주 출입하는 궁녀의 신을
훔쳐다가 그 신을 태워 세자의 술이나 차에 섞어 마시게 하거나,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를 만들어 먹이는 등 세자를 곁에 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되지만
당연히 이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오히려 그녀의 행각은 탄로 나서,
'세종대왕'은 장차 왕비가 될 큰며느리가 그런 요상한 짓을 한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고
국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큰며느리 '김씨'를 곧바로 쫓아내 버렸지요.
그러나 '김씨'가 쫓겨난 후 들어온 두번째 큰며느리 '봉씨'도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은
여자이니 마찬가지였답니다. 다만 '봉씨'는 '김씨'처럼 "압승술"을 쓰는 대신 동성애에
빠져 궁녀들과 성욕을 불태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노발 대발 난리가 났고 결국 폐서인을 시켜 추방합니다.
쫏겨난 '봉씨'는 반성은 커녕 성욕을 해결한게 뭔 죄가 되냐고 항변하다가
결국 자기 친아버지로 부터 비참하게 목 졸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남자 구실 못하는 '문종'이 이혼 대상이고 위자료를 줘야 할텐데....
이러한 와중에 '문종'이 꼴깝을 합니다.
자신의 부인들이 성욕을 해결 못해 "압승술"이나 '동성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궁중의 어느 궁녀와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유일한 아들 "단종"이며, 그 궁녀가 "단종"의 어머니인 "양원 권씨"로
'문종'의 세번째 부인인 "현덕왕후"가 됩니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단종'을 더욱 인정하려하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왕권찬탈의 빌미를 찾으려 혈안이었는데 이것은 좋은 미끼여서....
이로서 '세종대왕' 자식들과 며느리들의 불행은 극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큰며느리들은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압승술" "동성애"를 하다 쫏겨나고
"모락산"이라는 산 이름을 만든 "임영대군"의 와이프는 정신질환자로 시아버지인
세종대왕에게 반말 막말을 하는 등 '미친년'이었으니 지지리도 며느리 복이 없는
'세종대왕'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비하인드스토리가 더 잼있죠? ㅎㅎ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세종대왕'은 세상을 잘 살게 하는 "治國平天下"는 했지만,
자신 건강과 생활을 다스리고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修身齊家"는 빵점이었으니,
우리는 "세종대왕"을 어떻게 평해야 할까요?
"修身齊家" 다음에 "治國平天下"가 있는 것인데 .....
정말 비련의 "세종대왕"이라고 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가?
[철죽-주목 자생지역]
이곳엔 주목들만 있는게 아니고 철쭉 군락지도 있습니다.
'소백산' 철쭉보다는 못하지만 '태백산 철쭉'도 제법 유명하지요?
이곳은 높은 곳이라 철쭉이 피려면 6월 중순이 되야 한다고....그 때 한번 더 와야겠습니다.
[주목]
살아있는 '주목'을 주목하지 않을수 없군요.
정말 멋집니다. 아쉬운 것은 주목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것입니다.
[내림길] 3:20
'주목 철쭉 군락지'를 지나 계단을 내려 서면 "유일사매표소 갈림길"을 만나는데....
'백두대간'은 여기서 직진하여 "유일사"를 지나 "화방재 花房재"로 가서 "함백산"으로 이어집니다.
"유일사"는 직진하여 조금 더 내려 가면 '백두대간' 좌측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방재"로 하산 할수도 있으나 오늘은 "유일사매표소"에서 우리가 타고온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
우측 "유일사매표소"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유일사매표소입구'로 내려 가는 길]
"유일사 갈림길"에서 자동차도 다니는 넓은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내려 갑니다.
산객들 중에는 비닐봉지를 궁둥이에 깔고 미끄럼을 타며 내려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많큼 내려 가기 편한 완만한 경사도여서 유유자적하며 내려 갈수있어 산행 초급자들에겐 안성맞춤코스입니다.
['유일사매표소입구' 주차장 조망]
"유일사입구매표소"에 있는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화방재' 조망]
좌측으로는 '백두대간' "화방재"가 조망됩니다.
['유일사입구' 매표소] 4:10
"유일사입구매표소"에 내려가 태백산군들을 뒤돌아 보며 산행을 마침니다.
눈 내리는 '태백산'을 다시 한번 갈수 있을려나!~~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진행한 태백산 산행코스를 정리하였습니다.
GPS로 측정한 거리는 "9.4km"였으며 산행시간은 총 5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걸은 시간은 3시간 정도였으며, 먹고 구경하는데 2시간을 보냈더군요.
"태백산"은 높이가 1,576m여서 느낌으로는 엄청 고생을 해야 정상에 오를듯 여겨지지만
등산의 시작을 해발 800m 정도에서 시작하고, 등로는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넓어 고속도로 수준이며
거리도 4km 정도로 짧아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수 있는 쉬운 산행코스였습니다.
이번 코스는 '백두대간' '태백산구간코스'와는 비교도 않되는 쉬운코스이더군요.
저의 산행기를 통해 쉬운 코스임을 확인하셨을테니 "태백산"으로 나들이를 해 보지 않시렵니까? ㅎ
태백산 산신령이 된 "조선 제6대 왕-단종"의 哀史
'세종대왕'의 슬픔은 여기서도 느껴지며
태백산 천제단 아래로 장쾌하게 펼쳐지는 白頭大幹 洛東正脈
望鏡臺 앞으로 너울대는 東海
한강과 낙동강의 分水嶺
단군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는 天祭壇
태백산은 그렇게 솟아 있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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