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鷄龍山 山行記』

吉祥之地 鷄龍山에서 단지 山이라는 그 이유 하나로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고 오다

     
     [대전역]
     '한밭' - 그 밭 가운데 우뚝 솟은 鷄龍山 !
     그 동안 무척이나 올라보고싶었던 鷄龍山을 가기 위해
     2009년 3월 15일(일) 오전 9시 19분에 대전역에 내렸습니다
     모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대전역앞 광장]
     대전역앞 광장에는 전국에서 선택되어 초청된 산객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으며
     왠지 큰 즐거움을 한가득 안고 돌아 갈듯한 느낌이 吉祥之地 大田의 하늘에 포근하게 퍼집니다
     곧바로 오늘의 산행지 鷄龍山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오늘 대전의 鷄龍山을 찾아 오게 된 사연은 앞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만
     이 세상이 얼마나 살만한 세상인가를 봄볕처럼 알려주는 그런 만남이었습니다
 
     [대전역앞 노래비]
     대전역앞 광장에는 "대전사랑 추억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알만한 "대전 부르스"

     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기적소리 슬피우는 눈물의 플레트홈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들어 고요한 이 밤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나만이 소리치며 올줄이야                    눈물로 헤어지는 쓰린 심정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최치수선생이 작사한 "대전 부르스"는 김부해선생이 작곡하셨습니다.
     1959년 안정애가 불러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근간엔 조용필, 장사익씨등이 불렀습니다
     최치수선생은 아시는 분들이 별로이겠으나 '배호'가 부른  "안개낀 장춘단공원"과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을 작사하셨다면 어느 정도 그분의 성가를 알수 있겠지요?
     
     [대전특구 첨단 I.T 연구단지]
     대전역에서 계룡산으로 가는 길에는 
     "목포행 완행 열차"가 오가던 그런 옛날의 大田이 아니고
     첨단산업연구단지가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욱 알차게하려는듯 마천루들이 새로움으로 다가 옵니다
     대전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동학사 입구 - 박정자 삼거리]
     대전역에서 약 30분 정도 달려 오니 "박정자 삼거리"가 나왔습니다
     똑 바로 가면 '공주市'로 가며 왼쪽으로 "계룡산 동학사"로 가는 삼거리입니다.
     박정자여사와 무슨 관련이 있어 삼거리 이름을 '박정자 삼거리'라고 지었는 줄 알았더니
     朴氏 성을 가진 사람이 이곳에 亭子를 지었다고 朴亭子 삼거리가 되었다는군요
     박정자 여사와는 아무른 관계가 없더군요..ㅎㅎ
     
     [계룡산 장군봉]
    '박정자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동학사 방향으로 틀어 가면 
     우측에 우락부락한 岳山이 먼저 우리를 반겨 줍니다.
     이름하여 "장군봉"입니다.
     계룡산을 종주하려면 여기 "장군봉"에서부터 "신선봉", "삼불봉", "자연성릉", "관음봉",
     "쌀개봉", "천황봉", "연천봉", "문필봉"을 올라야 하겠더군요.
     다음에 기회가 오면 종주를 한번은 꼭 해야 겠습니다
     
     [동학사 가는 길]
     대전을 대표하는 진산 다웁게 계곡에는 많은 특징있는 업소들이 손님들을 유혹하고....
     멀리 계룡산의 주능선이 벌써부터 산객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동학사 입구 - 주차장 앞]
     차량은 더 이상 들어 갈수 없는 동학사 입구에 서니  "계룡산 천황봉"이 보입니다.
     국립공원 다웁게 깨끗하게 정리 정돈된 거리는 산객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약간의 바람을 제외하곤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까지 
     어서 빨리 계룡산의 품에 안기라고 산봉우리들이 손짓하고있습니다
     
     [함께한 "정암카페" 회원님들]
     오늘 제가 대전 계룡산까지 산행을 오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충남대 의대 교수님으로 오랜 세월 후진 양성에 힘쓰시다 2년전쯤 정년퇴임하신
     晶巖 김광진 교수님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晶巖카페회원님 중 우수(?)회윈님들을
     대전 계룡산으로 직접 초대를 해 주었습니다.
     인터넷에서만 만나다가 직접 만나 함께 산행을 할수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또한 참석해 주신 분들의 면면이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앞으로 산행을 하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진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雲山 김택근 詩人님, 晶巖 김광진 교수님, 내과의사 서지원님, 素山 김홍주 산행문화연구소장님,
     대구에서 오신 土含山 정용구님, 대구에서 오신 용담 김명자님, 부산에서 오신 心泉 정만옥님,
     서울에서 오신 세레나 권혜숙님, 필자 파란문
     
     [동학사 입구 - 천정골 갈림길]
     동학사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천정골 산행 코스" 들머리가 계룡산을 찾는 산객들을
     모두 불러 모아 계곡을 가득 메웁니다
     '동학사'는 출입하는데 문화재 관람료를 2,000원 내야 하기도 하지만
     동학사 산행코스가 너무 짧아 90% 이상의 산객들이 '천정골 코스'로 오르더군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동학사'로는 한명도 가지 않습니다
     
     [천정골 산행 들머리]
     오전 10시 30분경 처음으로 만난 분들과 "천정골 산행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천정골]
     많은 산객들로 계곡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서울에 북한산과 관악산이 엄청난 산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대전에선 계룡산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 넣어 주겠지요
     
     [천정골]
     저는 오늘  鷄龍山을 처음으로 찾아 왔습니다.
     그 명성이야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만 직접 찾아 흠뻑 젖어 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晶巖교수님 덕분으로 즐거운 산행을 하고있습니다
     사진의 가운데 앞을 바라 보시는 분이 晶巖교수님이신데 山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晶巖교수님의 어느 글을 보았더니 "山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쓰셨더군요.
     아마도 오랜 연구활동을 하시다 건강을 많이 헤쳤던 모양입니다. 
     등산을 하고나서부터 건강을 되찾고 삶의 활력을 얻어셨다고 하시더군요
     지금도 최소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산행을 하시고, 신문에 산행기도 연재하시고....
     詩人이자 수필가이시며, 특히 요즘 "대덕R&D특구합창단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답니다
     정년퇴임하셨지만 아직도 몇개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답니다
     晶巖교수님의 카페를 가실려면  여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cafe.daum.net/jeungam 여기 클릭☆ 
[천정골]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을 여유를 가지고 담소를 나누며 오릅니다 건강산행코스로는 알맞는 코스인듯합니다 [큰배재] 동학사입구에서 약 1시간20분 정도 오르니 "큰배재"라고하는 고갯길이 나옵니다. [큰배재] 계룡산에는 '큰배재'와 '작은배재'가 있는데, 이름의 내력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합니다만, '큰배재'는 동학사계곡과 갑사계곡 사이에 있습니다. 옛 전설에 의하면 이 고개가 옛날에는 "물 길"이어서 배(船)가 넘나 들었다고 "배재"라고 한다고 합니다. 晶巖교수님이 이곳 저곳 알아 봤으나 아는 분이 없었는데, 어느 분이 위와 같은 전설을 들려 주었다고 저에게 설명 해 주었으니 어느 정도 믿어도 되겠지요? ㅎㅎ 사실 이런 전설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런 전설이라도 산행길에는 청량제가 됩니다 [큰배재] 전설을 얼마나 믿느냐하는건 순전히 자신의 몫입니다만...제가 예를 하나 들께요 남극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가 떨어져 아시아 대륙으로 흘러와 부닥친 땅덩어리가 '인도'이고, 아시아 대륙과 충돌할때 솟아 오른 땅덩어리가 '히말라야 산맥'이며, 8,000m가 넘는 산들로 이루어진 히말라야가 옛날에 진짜로 바다였으니 큰배재, 작은배재의 전설이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리라......ㅎ 전설을 너무 허무맹랑한것으로만 생각하면 않된다는 주장입니다. ㅎㅎ [남매탑으로 가는 길] 고려시대 "이자겸의 난"에 대해 핵교 국사시간에 배웠지요? 그런데 '이자겸의 난'만 알고 그 내용은 잘 모르시죠?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입니다 "이자겸의 난"은 태조 왕건이 세운 高麗 王氏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실패한 쿠데타입니다. 이자겸에 대해선 제가 "천관산 산행기'에서 한번 쓴적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도 인터넷에서 저의 '천관산 산행기'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으니 찾아 읽어 보세요~ㅎㅎ) 고려 무신정권시대 초기에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던 이자겸 이자겸이 무지 울궈먹은 "十八子爲王" - 즉 李氏가 王이 된다는 도참설을 예언하고 놀다 사돈지간인 척준경에게 배반의 뒷통수를 맞고 죽어 갑니다. "十八子爲王" - 즉 李氏가 王이 된다는 도참설은 이미 이자겸이 오랫동안 울궈먹은 것인데 얼마후에 그러니까 고려말에 이성계가 뒤따라 또 울궈 먹고, 그 때는 성공을 하죠? 제가 "十八子爲王" - 즉 李氏가 王이 된다는 도참설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鷄龍山을 오를 때엔 "十八子爲王"說로 조선을 개국하는 이성계가 朝鮮의 首都를 이곳 鷄龍山에 세울려고 했기 때문이며.... 朝鮮의 멸망을 기원하는 "정감록(鄭監錄)"이라는 예언서를 뺄수없기에 먼저 "十八子爲王"설을 언급한것입니다 [남매탑 고개] 조선왕조를 괴롭혔던 모든 유언비어의 저수지는 '정감록(鄭鑑錄)'이었다고 합니다. 불교를 통치기반으로 정권을 유지한 고려시대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는 새로운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주자학(朱子學)을 근간으로하는 '유교'朝鮮王祖를 지키는 기본 이념으로 세우지요. 이 유교이념이 조선왕조의 '용천검'이었다면, 鄭鑑錄은 李氏가 망하고 鄭氏王祖를 고대했던 左派의 장풍과 같은 것이었답니다. 오늘 함께 산행을 하게 된 '素山 김홍주 산행문화연구소장님'의 설명을 토대로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용천검 유교사상과 장풍 정감록의 한판 대결. 장풍은 모래바람을 일으켰답니다. '鄭氏王祖說'에 노이로제가 걸린 조선왕실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좌파의 책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하여 부득이 좌파의 전매특허인 풍수도참을 역으로 동원했다고합니다. 그래서 鄭氏의 홈그라운드인 鷄龍山에 압정사(壓鄭寺)라고 하는 이름의 절을 세웠는데 좌파의 장풍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鄭氏를 누르는 절'까지 세웠겠는지 알만하지 않습니까? [남매탑 고개 이정표] '이자겸의 난'을 일으킨 고려의 이자겸은 조선시대의 한명회의 스승 쯤 되는 인간이죠. 딸 셋을 왕비로 만들고 특히 외손자인 '인종'에게 친딸 두명을 시집 보냈으니 전세계사에서도 빛나는 엄청난 역사적 인물이죠 무슨 말인가하면...'인종'의 엄마가 이자겸의 첫째 딸입니다. 그런데 인종의 와이프가 이자겸의 둘째 딸과 셋째 딸입니다. 그러니까 인종은 자기 엄마 여동생, 즉 이모 두명과 한방에서 같이 먹고 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자겸'이 어떤 위력적 인물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요? ㅎㅎ (더 궁금하신 분들은 저의 '천관산 산행기'를 읽어 보세요) 수양대군에 빌붙어 쿠데타를 일으킨 조선의 한명회는 딸 두명을 왕비로 만들었죠? 그래도 조선의 聖君에 속하는 성종과 예종의 왕비가 한명회의 딸들입니다 제가 저의 산행기에서 자주 얘기하는 "딸을 왕비 만들기"의 기네스북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자겸과 한명회입니다. 그런 이자겸이 만들어 낸 것이 "十八子爲王"이라는 도참설이고, 민중 속에서 특히 계룡산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도참설이 '정감록(鄭鑑錄)'이었답니다. [남매탑으로 가는 길] 제가 이글을 쓰기위해 조선왕조실록 태조편을 다시 몽땅 정독을 했습니다 그리고 '素山 김홍주 산행문화연구소장님'의 설명을 참고하여 이 글을 씁니다 1392년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王氏들이 아직까지도 우굴대는 개성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태조2년, 즉 1393년 음력 정월 직접 계룡산에 행차해 산세를 휘둘러 보았습니다. 풍수지리에 일가견을 가진 무학대사가 이때에 이 산의 이름을 "계룡산"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태조를 수행해 현지로 내려온 무학대사는 新首都 예정지 '신도안'의 좌우 산세를 살핀 다음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다." 라고 했답니다 여기서 말한‘金鷄'는 富의 상징,‘飛龍'은 현명한 임금을 의미한답니다. 즉, 이곳에 도읍하면 풍요한 태평세월이 보장된다는 말입니다. 무학대사는 金鷄의 '鷄'와 飛龍의‘龍'을 차용해 산 이름을 鷄龍山이라 부르자 했고 그 말대로 됐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곧바로 新首都를 이곳으로 정하고 공사 개시를 지시해 그해 3월부터 王都 건설의 삽질 소리가 계룡산 골짜기에 메아리쳤답니다. [동학사 갈림길] 남매탑고개와 남매탑 사이에 있는 "동학사 등산길"과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동학사에서 여기까지는 1.7km이니 매우 가깝군요. [남매탑] 12시 10분경에 남매탑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남매탑은 계룡산과 동학사를 대표하는 내력을 가진 곳임을 "동학사 홈 페이지"에서 알았습니다. 동학사 홈페이지 "창건"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 있습니다 동학사의 최초창건은 남매탑 전설에 전해지는 상원조사로 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에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신라 33대 성덕왕 23)그곳에 그의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사'의 원래 이름은 청량사였으며 남매탑 전설의 실제 인물이 '상원조사'였다는 것입니다 [남매탑] "남매탑"에 대해서는 동학사 홈페이지의 설명을 인용하겠습니다 동학사에서 북쪽으로 1.8km 쯤 오르면 나란히 서있는 2기의 탑이 있다.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량사지(淸凉寺沚)의 5층석탑과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는 7층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계룡산 삼불봉 아래 동쪽 8부능선, 해발 약 590m의 등산로 옆에 있는 이 탑의 사지는 근처에 [청량사淸凉寺]라는 '막새 기와'가 발견되어 청량사지라고 부르고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때 병화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일명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2기의 석탑들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사역내에는 현재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이 탑이 서있는 곳은 청량사(淸凉寺)가 있던 곳이었군요 [남매탑] 남매탑은 우측의 7층석탑, 즉 키가 큰 석탑이 오빠탑이고 좌측의 5층석탑, 즉 조금 작은 키의 탑이 여동생탑이라고 합니다 두개의 탑이 나란히 있다고 淸凉寺址雙塔이라고도 한답니다 [상원암] 옛 淸凉寺가 있던 곳에는 '上元庵'이라는 암자가 있고 많은 산객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남매탑 전설] "남매탑의 전설"은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때의 한 스님이 이곳에서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었답니다 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왜 수도를 할때 습기 많고, 벌레 많고, 더러운 환경의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는지..??.. 맑고 깨끗한 곳에서 수도를 해야 수도가 잘되지 않겠습니까? (가난하고 갈곳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굴속에 들어 가 살았지요) 여하튼 그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던 어는 날,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 입을 벌리고 울부짖고 있었답니다 그 스님이 - 그 스님은 청량사 개산자인 '상원조사' - 호랑이 입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있어서 가시를 뽑아 주었답니다. 며칠뒤, 호랑이는 아리따운 한 아가씨를 업고 와 놓고 갔답니다 스님의 은공에 보답하는 뜻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이곳 안내판에 써놓고 그림까지 그려 안내하고있습니다 호랑이 이쎄끼가 아무리 고마워도 그렇지 아리따운 아가씨를 납치해와 스님한테 상납을 해? 그것도 굴 파고 들어 앉아 수도하는 중에게 아릿따운 아가씨를 상납하는건 아무리 전설이라도 공식적으로 떠벌려 알릴 필요가 없고 오히려 숨겨야 할 전설인듯합니다. 교육적으로도... 아가씨를 잃어버린 그 가족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얼마전 인기 탈렌트 장자연양이 자살을 했지요? 자살 사유가 "성 상납 강요", 구타등이라고하는데... 호랑이 쎄끼가 그 때부터 벌써 성상납을 해? [남매탑에서의 달콤한 휴식] 호랑이에게 납치된 그 아가씨는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루는 날 밤에 납치되었다고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날에 더스틴 호프만의 '졸업'영화도 아닌데 인간도 아닌 호랑이에게 납치가 되? 그리고 아맀따운 아가씨, 그것도 결혼 첫날밤에 납치해서 스님에게 성상납을 하고... 그 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날씨도 무척 추웠다고 합니다 세월은 가고....추위가 물러 가고 따뜻한 봄이 왔답니다. 그 아가씨는 토굴 파고 수도하며 살고있는 스님하고, 한 계절을 첩첩산중에서 함께 살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 스님도 혼인 첫날밤에 납치되 온 그 아가씨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 어느 구석이 찔렸는지 이제와서 남녀의 연을 맺을수 없다고 아가씨를 집으로 돌려 보냈답니다 그러나 그 아가씨의 부모는 딸을 그 스님에게 다시 돌려 보냈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혼식 올리는 날 밤에 호랑이에게 납치되어 어느 산중 토굴 속에서 중하고 한 계절을 살다가 다시 돌아 온 딸을 다시 그냥 받아 들여 다른 남자에게 시집 보내랴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중에게 다시 돌려 보내겠습니까? 요즘이면 몰라도 그 당시라면 더더욱 돌려 보낼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호랑이한테 납치되어 중하고 살다 온 여자를 다시 어디로 시집을 보내겠습니까? 그 스님 - 상원조사-는 돌아 온 아가씨와 혼인 할수 없는 '스님'이었기에 부부의 연은 맺을수 없어 '男妹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살았답니다. 처녀 독수공방 시켰단 말인데....?? 그들이 죽고 난 다음 그들의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상원조사'의 제자 '회의화상'이 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학사에는 여승들만 사는가요? [삼불봉 가는 길] 태조 이성계의 "계룡산 신도안"에 대한 천도 건설사업은 1393년 연말 조선 개국 공신 "하륜(河崙)"의 맹렬한 반대로 파국을 맞습니다. 하륜(河崙)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계룡산을 반대했습니다. 첫째, 남쪽에 너무 치우쳐 한반도의 동쪽·서쪽·북쪽과 교통이 불편하다. 둘째, 주변에 큰 강이 없어 세금은 물론 물산을 운반할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한다. 셋째, 계룡산의 풍수는 중국의 풍수가 호순신(胡舜臣·송나라)이 말한 이른바 ‘수파장생쇠패입지(水破長生,衰敗立至)’의 땅이다. 즉, 흘러나가는 물이 땅의 기운을 약화시켜 나라가 곧 쇠망할 곳에 해당한다. 조정 대신들은 공방 끝에 하륜의 주장을 채택해 계룡산 천도 계획은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 공사 시작 1년만에 중단된것입니다. 참고로 동해안에 있는 양양의 "하조대" 아시지요?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한.... "하조대"의 "하"가 하륜(河崙)의 "하"이고, 조준의 "조"를 합쳐 "하조대"라고 이름 지었답니다 하륜과 조준은 조선 개국공신이었지만 "왕자의 난"으로 정권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 의해 정권에서 밀려나 강원도 양양 바닷가로 가 "하조대"에서 은거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지요 [삼불봉 - 금잔듸고개 갈림길] 조선의 수도가 한양으로 결정되자 계룡산 천도설은 한동안 잊혀졌다고 합니다. 계룡산의 풍수에 대한 평가도 신통치 않았다고하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인문과학지리서를 쓴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은 그의 30년 업적을 기록한 ‘택리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룡산은 웅장하기가 개성의 오관산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도 서울의 삼각산만 못하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계룡산 신화는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권 싸움과 붕당정치, 부패한 권력, 부정부패, 전쟁등으로 민심은 조선왕조를 이반하기 시작했고 그로 말미암아 다시 "계룡산 천도설"이 고개를 든 것 같다고 합니다. [삼불봉 - 금잔듸고개 갈림길]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 나오는 "금남정맥" 마루금이 계룡산 천황봉과 쌀개봉, 관음봉, 자연성능, 그리고 삼불봉을 지나 여기로 와 금잔듸고개와 수정봉으로 달려 부여의 부소산으로 가 맥을 다하는 그 중요한 "금남정맥" 갈림길에 온것입니다 [삼불봉 가는 길] 홍만종이라는 사람이 1678년에 지은‘순오지(旬五志)'라고 하는 책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해 놨다고 합니다.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 즉,鄭)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떠났다고... 이 설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고합니다. 이것으로만 보아도 계룡산에 정씨가 도읍한다는 이야기는 서민은 물론, 양반들 사이에도 이미 널리 퍼졌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정감록'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군요. [삼불봉 오르는 길] 삼불봉 오르는 "금남정맥' 마루금에 올라 타니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이 도도한 자태를 드러내고 몸통은 龍이요, 닭의 벼슬을 닮았다는 계룡산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삼불봉 오르는 길]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야 세분의 부처가 사는 '三佛峰'으로 갈수 있으니 힘들이지 않고는 정상을 밟을수 없나 봅니다 [삼불봉 정상] 불교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을 가진 三佛峰에 올랐습니다 이 때의 시간이 오후 1시경이었습니다 [삼불봉 정상] 삼불봉은 계룡산8경 중에 제2경으로 겨울철 雪花가 압권이라고합니다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의 삼불봉을 연상해 봅니다 [三佛峰 정상] 三佛峰 정상에 두 선생님이 포즈를 취했습니다 왼쪽이 素山 김홍주 선생님이시고, 오른쪽이 晶巖 김광진 교수님이십니다 오늘 저의 산행기 내용의 상당 부분을 알려 주신 분들입니다 [삼불봉에서 바라 보는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연천봉, 문필봉] 계룡산 천황봉은 군부대와 각 방송국, 통신사들의 송수신탑으로 뒤덮혀 일반인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어 갈수 없는 곳입니다. 천황봉 좌측 아래로 "계룡대"가 우리나라 방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삼불봉 하산] 가파른 삼불봉을 내려갑니다 [奇巖怪石과 바위위에 자라는 소나무] 우리 집에 가져 가면... 돈 좀 벌텐데... [삼불봉 아래 양지바른 계곡] 이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 오늘 점심식사 메뉴는 무척 다양했습니다. 다양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국 각지에서 식사를 준비해 왔기 때문에 '청도 生미나리'에서부터 부산의 생선요리까지..... 계룡산 삼불봉 아래에서 '청도 生미나리' 먹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슈~~ [점심식사] 술 마시는 사람이 저 밖에 없어서 혼자 마시기에 다소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계룡산을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한잔 하지 않을수 없지요 ㅎㅎ 전국에서 가지고 온 다양한 식사에 취하고...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정에 취하고... 계룡산의 아름다움에도 취했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삼불봉] 삼불봉 아래에서 바라보니 부처 세분이 앉아 있는듯하군요 [삼불봉 아래에서 바라 보는 관음봉, 연천봉, 문필봉] 명산 중의 명산 계룡산 조선 5대 명산을 꼽으라면 어느 산들을 꼽겠습니까 택리지를 쓴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을 덜먹이지 않아도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계룡산, 지리산이랍니다 [계룡 저수지] 甲寺 방향에 있는 계룡저수지가 흐릿한 안개 속에 비칩니다 [삼불봉] 자연성릉으로 가며 뒤 돌아본 '삼불봉' 저 봉우리 중턱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天關門] [自然城稜] 삼불봉을 지나 봉우리를 두어개 넘어 오니 펼쳐지는 계룡산! 특히 自然城稜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천황봉에서 관음봉까지의 능선은 전설속의 鷄龍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삼불봉에서 관음봉까지는 계룡산을 대표하는 능선이 자연적인 城郭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自然城綾 [自然城稜 가는 하산 길] 朝鮮十勝地들어 보셨지요?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피란(避亂)·보신(保身)의 장소 열군데...십승지(十勝地)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정감록 鄭鑑錄>〈징비록 懲毖錄〉〈유산록 遊山錄〉〈운기귀책 運奇龜責〉· 〈삼한산림비기 三韓山林秘記〉〈남사고비결 南師古秘訣〉〈도선비결 道詵秘訣〉· 〈토정가장결 土亭家藏訣>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데 대체적으로 공통되는 장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自然城稜 가는 길에 있는 기암괴석] 십승지(十勝地) 풍기의 금계촌-영주군 풍기읍의 금계동·욕금동·삼가동 일대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 동북쪽-? 공주의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공주군 유구면과 마곡면을 각각 흐르고 있는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의 지역 부안 호암(壺巖) 아래- ? 예천 금당동 동북쪽- 예천군 용문면 죽림동의 금당실(金塘室) 지역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인 시루봉 아래 안부(鞍部) 지역 남원 운봉(雲峯)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 안동의 화곡(華谷) - 봉화 내성면 지역, 단양(丹陽)의 영춘(永春)-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 부근 무주(茂朱)의 무풍(茂風) 북동쪽 -? [自然城稜] 앗! 이게 왠일입니까? 自然城稜이 아니고 人工城稜을 설치해 놨군요 自然城稜 위를 걷고 싶었는데.... 아마도 自然城稜은 보존도 해야하고, 위험하기도 해 일반 등산객들을 위해 이런 人工城稜을 설치 했겠지만 조금은 아쉽군요 [지나온 삼불봉을 뒤 돌아 봅니다] [自然城稜 가는 길] [自然城稜 가는 길] [自然城稜] 自然城稜의 아름다운 경치 [自然城稜] 天然요새같은 自然城이 펼쳐져 있습니다. 정말 멋집니다.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自然城稜] [自然城稜]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지 가희 짐작이 됩니다 얼마나 많은 바람과, 얼마나 많은 눈비와, 얼마나 많은 햇볕을 맞았을까 30억년의 역사를 보는 듯합니다 [自然城稜에서 바라 보는 관음봉] [自然城稜에서 내려다 본 동학사 계곡] 사진의 한 가운데, 계곡 가운데에 '동학사'가 조그마하게 보입니다 우측 산줄기에 '향적봉'이 있습니다 [自然城稜에서 바라 보는 관음봉] 오늘 마지막으로 힘을 들여 올라야하는 된비알입니다 [觀音峰 오르는 된비알]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觀音峰으로 올라 갑니다 하늘의 소리를 들어러 가는 길 - 觀世音路 [觀音峰을 오르며 뒤 돌아 본 自然城稜] 가운데 세개의 봉우리 중에 가운데 봉우리가 삼불봉인데 큰 봉우리가 세개가 있으니 이것도 삼불봉이 아닐까요? [觀音峰 정상에 있는 亭子] 觀音峰 정상에는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이렇게 높은 곳에 亭子를 만들어 놨습니다 [觀音峰에서 내려다 본 동학사 계곡] [觀音峰에서 뒤 돌아 본 삼불봉과 자연성릉] [觀音峰에서 바라 본 계룡산의 최고봉 천황봉] [觀音峰 정상] [觀音峰 정상석]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觀音峰이 계룡산의 정상입니다 해발 816m의 觀音峰 정상석은 오늘 저와 동행하신 素山 김홍주선생님이 건립하셨답니다 제가 오늘 얼마나 자랑스러운 날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저는 보통 이런 분들과 함께 산행을 합니다..ㅎㅎ [素山 김홍주 선생님] 素山 김홍주선생님은 정말 山에 대해서는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모두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素山선생님은 금년에 연세가 78세이십니다. 그런데 무척 건강해 보이시죠? 오늘 계룡산을 저와 함께 거뜬하게 올랐습니다 이제까시 쓰신 山에 관한 책만 아홉권이랍니다 산행문화연구소장님이시며 월간 '산'에서 "호서의 산"을 연재하시기도 합니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계시니 찾아 가 보시기 바람니다 http://blog.daum.net/taracode/10185327 [동학사-관음봉-연천봉 갈림길] 관음봉 바로 아래에 동학사로 하산하는 길과, 연천봉, 문필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쌀개봉과 천황봉도 여기서 가야하나 군부대 점령지로 갈수가 없습니다 [동학사-관음봉-연천봉 갈림길] [동학사로 하산하는 길] 동학사로 내려 가는 계곡길은 가파른 내리막이었으며 너덜이 많이 나딍굴고 있었습니다 [동학사로 하산하는 길에서 올려다 본 관음봉 암벽] [동학사로 하산하는 길에서 바라 본 향적봉 줄기의 기암괴석] [동학사로 하산하는 길] 오늘 連天峰을 꼭 갔다 오려고 했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그냥 내려 갑니다. 계룡산 연천봉(連天峯) 꼭대기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암각되어 있다고합니다 方百馬角 口或禾生 방백마각 구혹화생 이 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고합니다 방백(方百)은 네모진 100년으로 본다. 400년(四百年)이 네모진 100년이다. 그 다음에 마(馬)는 십이지로 환산하면 오(午)이다. 오를 파자하면 80(八十)이 된다. 각(角)은 뿔이 두개라는 소리다. 이를 전부 합치면 482년이라는 숫자가 도출된다. 뒷부분의 구혹(口或)을 합치면 국(國)자가 나온다. 역시 화생(禾生)을 합치면 이(移)자가 성립된다. 옛날에는 이(移)자를 화생이라고도 사용하였다. 앞뒤를 연결하면 ‘482년만에 나라(조선)를 옮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선왕조 창업이 1392년이니 여기에 482년을 합하면 1874년이 나온다. 일본의 조선침략이 시작되는 강화도조약이 1876년에 맺어졌으니 대략 이 무렵에 조선은 나라를 옮긴다. 즉, 망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뜻이라면 그것을 몰래 바위에 새긴 사람이 누굴지는 뻔합니다. 그는 조선왕조의 몰락을 염원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정감록’의 신봉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각석의 풀이는 한동안 민심을 동요시켰다고 합니다. [동학사 계곡의 고목] 方百馬角 口或禾生이라는 글자를 일본 학자들은 역으로 비결을 이용하여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 합병은 하늘의 뜻이라고 일본 학자들은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도참이 서울 삼각산 꼭대기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백운대에서 얼핏 본듯한데 관심있게 보지 않았는데 의미심장한 글이라는군요 ‘방부복과(方夫卜戈) 구혹화다(口或禾多)’라는 글씨가 있다고합니다. 방부(方夫)를 조립하면 경(庚)을 가리키고, 복과(卜戈)는 술(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경술(庚戌)년에 나라를 옮긴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는군요 따라서 1910년인 경술년의 한일합방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고합니다 朝鮮이 망한 날과 같은거지요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잠깐 한눈 팔면 코베어 가는 그런 세상입니다 [동학사 계곡의 고목] ↓ 隱仙폭포 - 설명은 사진 참고 하세요 ↓쌀개봉 - 설명은 사진참고하세요 [東鶴寺] 東鶴寺는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고 했으며,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했으므로 동학사라고 했다는 설도 있답니다. [東鶴寺] 東鶴寺는 女僧들이 수도하는 곳입니다. 수덕사와 같은 비구니들의 가람입니다 [東鶴寺] 東鶴寺는 임진왜란, 6.25를 거치며 완전히 불타없어졌답니다 현재의 건물들은 모두 1960년 이후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합니다 [東鶴寺 肅慕殿, 東鷄詞, 三隱閣] 素山선생님이 힘주어 설명해 주신 鷄龍山招魂閣址 素山선생님은 계룡산 동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적지는 바로 이곳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절간에 '홍살문'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곳 때문에 있다고 하더군요 肅慕殿은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모신 殿이라고하며 '단종' 복위를 꾀하다 참혹하게 처형 당한 사육신과 그외에 순절한 충신들의 원혼을 모신 곳이랍니다 세조2년에 매월당 김시습이 초혼제를 여기서 지내니, 세조도 감복받아 이들을 기리도록 허락하였답니다 [東鶴寺] 東鷄詞는 신라 19대 눌지왕 시절에 인질로 일본에 잡혀간 눌지왕의 아우 '매사흔'을 구출하고 왜지에서 산화해 간 박제상의 항일 추혼을 모신 곳이랍니다 [길상암] 三隱閣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고려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 즉 三隱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합니다 [鶴바위] 東鶴寺라는 이름을 짓게 해준 바위가 바로 이 "鶴바위"였다고합니다 鶴 같아 보입니까? 저는 그냥 암벽으로 보이는데...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대화에서 "부처의 눈엔 중생도 부처로 보이고, 개눈엔 똥만 보인다"고 했으니 저는 속세인간임에 틀림없나 봅니다..ㅎㅎ 길상전에서 조금 내려 오면 좌측에 있습니다 [국립공원 계룡산 관리사무소] [뒷풀이] 晶巖 선생님이 모두를 대전 제1의 참치회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오랜만에 참치회를 먹으니 입안이 혁명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晶巖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횐님들 무지 무지 반가웠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北漢山 입술바위』 우의동-도선사-상궁바위-입술바위-낙화암 암장- 쪽두리봉-백운산장-위문-대서문-산성입구 바야흐로 어두침침하고 황량한 겨울은 春三月 햇살에 얼굴을 밝게 폅니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이웃끼리 화기애애하게 大自然 속으로 旅行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붙들고 놓지 않으려해도 떠날 겨울은 떠나고 올 봄은 또 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봄나들이의 첫 산행은 말로만 듣고 다른 분들이 찍은 사진에서만 보던 『北漢山 입술바위』를 직접 찾아 보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우의동 시내버스 종점] 30년전이나 지금이나 특별히 변하지 않은 듯한 '우의동 버스 종점' 그 버스 종점에서 바라 보는 삼각산 -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 는 30년이 아니라 수십억년을 큰 변화 없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감싸고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2월28일(토) 적당한 기온, 잔잔한 바람은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씨였습니다 [우이동 버스종점에서 바라 보는 '우이암'] 앞 가운데 봉우리인 도봉산 남능선에 "소의 귀" 모양을 하고 우뚝서 있는 "牛耳巖" 가운데 봉우리의 약간 길죽한 바위가 '우이암'입니다만, 저 바위 때문에 이 동네 이름이 '우이동'으로 만들어 졌으니 저 바위의 위력과 명성을 알만하지 않겠습니까? 자세히 보면 저 봉우리가 "소"의 형상을 하고 우이암이 "귀"가 된다고 하는데.... 우이암 뒤로 도봉산의 주봉인 만장대와 자운봉이 보입니다 [도선사와 백운대 등로입구] 실질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도선사 앞입니다.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이곳까지 걸을려면 40분 정도 아스팔트 길을 올라와야합니다 북한산 등산을 하기도 전에 맥이 빠지는 그런 코스입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택시가 성업 중에 있습니다. 합승을 하는데 한사람당 1,500원입니다 내려 갈때는 1,000원 이곳에서 똑 바로 올라 가면 하루재를 지나 백운대와 인수봉, 그리고 영봉과 상장능선으로 갈수 있습니다 좌측 뒤로는 도선사로 갑니다 [도선사 입구] 북한산성 용암문 코스로 가려면 이곳 도선사 경내를 통과해서 가야합니다 오전 10시 30분에 산행을 본격 시작합니다 [도선사 일주문] 道詵寺는 매우 유명한 절이지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다닌 절이기에 유명해 졌습니다 그리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도 이 절에 다녔지요 박정희 육군 소장이 쿠데타 모의를 한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육영수여사의 佛心은 대단해서 이곳 도선사의 주지였던 '청담'대종사로부터 대덕화 大德華라는 佛名까지 받았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佛心이 등을 돌렸는지 두분 모두 총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청담스님] 도선사를 開山하신 분은 신라시대 道詵國師입니다 그러나 도선사가 重建되고 번창되게 한 스님은 앞에 보이는 "청담스님" 때였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에 박정희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이 절의 주지인 청담스님이 "한국불교정화유신운동"의 총수가 되면서 조계종 종정까지 되며 도선사를 최고의 절로 만들었습니다. 주변의 도로는 모두 박대통령이 만들어 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용암문 등산로 입구] 북한산성 용암문 코스로 오르는 등산로는 도선사 경내 좌측으로 나 있으며 "道詵橋"를 지나 갑니다 [용암문 등산로] 저도 이 코스로는 처음 와 봅니다 비교적 사람들이 없어 한적하며, 용암문까지 거리가 짧아 동네분들이 주로 이용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코스라고합니다 [도선사와 삼각산] 도선사의 규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대부분 현대식 철근 콩크리트로 지어진 많은 건물 뒤로 삼각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있습니다 [용암문으로 가는 등산로] 가파른 된비알이 나옵니다. 여기서 부터 정신 차리고 올라야 "상궁바위"를 보고 올라 갈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그냥 지나치기 일수입니다 [상궁바위] 도선사에서 급경삿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처음으로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큰 바위가 나옵니다 저 바위 뒤에 "상궁바위"가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올라야 합니다 [상궁바위] 큰 바위 오른쪽을 돌아 뒤로 가면 "상궁바위"가 나옵니다 정식 명칭은 "김상궁사리탑"이 있는 바위가 되겠습니다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칩니다 [상궁바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 이곳이 "사리함"이라하며 그 아래에 쓰여 있는 글자는 모두 알수 있겠죠? 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 同治癸酉十月日立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김상궁정광화지사리탑" '동치계유시월일립'이라고 읽겠습니다 "淨光花"는 金尙宮의 佛法名이라하며 '맑고 빛나는 꽃'으로 해석할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佛法名은 여성에게는 잘 붙여주지 않는다는데 金尙宮의 佛心이 상당하였나 봅니다. 저는 아직까지 여성에게서 "사리"가 나왔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여성에게서 '사리'가 나올 정도였으니 당시에도 획기적인 사건이라 여기에 "舍利塔"을 만들었겠지요 여성에게서 舍利가 나왔다니..... 舍利는 현대 과학으로도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합니다만, 주로 남성들이 성생활을 극단적으로 자제하여 발생되는 일종의 '담석'같은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여성에게는 발생될수 없다고 하는게 일반적 說인데..... 同治癸酉十月日立同治는 중국 靑나라의 연호이고 1862~1874 사이인데 조선에서는 철종 13년~고종 11년 사이 동안이라합니다. 癸酉十月日立의 癸酉는 60년에 한번씩 있는 해이지요. 그러니 癸酉年은 ... 1753, 1813, 1873, 1933, 1993 ....입니다 1862~1897년 사이의 계유년은 1873년 뿐입니다 그러므로 김상궁의 사리탑은 1873년 10월에 세웠다는 뜻이 되며 고종10년에 김상궁은 여성으로서는 특이하게 사리를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궁바위] 평생을 宮에서 王族들을 뫼시며 결혼도 못하고 살다가 갔을 金尙宮에게 淨光花라는 法名을 붙여 준 것은 필히 그 女人의 품격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일것입니다 金尙宮舍利塔을 바라 보니, 수많은 인간들의 사랑과 배신, 절개와 욕정 사이에서 그 옛날의 그 여인의 모습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 가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니겠지요 '맑게 빛나는 꽃'...... 이 정도의 자료가 있으면 얼마던지 조사가 가능하여 이 여인에 대해 잘 알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분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가?... 소설이나 드라마의 소재가 충분할듯합니다.... [입술바위 가는 길] 상궁바위를 지나자 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능선 올라 가는 길이 희미하게 있습니다 이 길로 올라 가야합니다 사진은 상궁바위를 지나와 뒤돌아 보면서 찍었는데, 능선으로 올라 가는 길이 보이시죠? 입술바위를 가려면 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저는 지나쳤다가 다시 내려와 올라 가는 것입니다. ㅎㅎ [입술바위 가는 길] 약간 희미하지만 그래도 알수 있는 능선 오르는 길을 오릅니다 "사리"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요? 대부분 佛徒들 사후 화장한 뒤에 유골에서 나온 동글 동글한 결정체를 의미 한다고 하죠 맞습니다. 뜻은 맞는데 왜 "사리"라고 하는 지는 아시는 분들이 거의 없더라구요. 사리를 한자로 쓰면 집舍자이로울 利입니다. "舍利"라는 한문이 부처님이나 스님들의 유골에서 나온 결정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까? 의미와 한자는 아무른 관계가 없습니다. 한문을 뜻글자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리(舍利)는 옛 인도말-산스크리트어의 Sarira를 중국에서 표기 할때 가장 중국어 원음에 가까운 舍利(중국 발음으로 [sheli])로 音譯한것을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문 舍利를 우리말 소리인 '사리'로 音譯한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리(舍利)'는 소리글자이지 뜻 글자가 아닙니다 [입술바위 가는 길] 능선에 올라 서면 좌측으로 능선길이 나있습니다 이 능선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입술바위 가는 길] 능선길을 조금 오르면 사진에 보이는 큰 바위가 나타납니다. 저 바위를 지나갑니다 [만경대] 삼각산의 '만경대'가 정면에서 펼쳐집니다. 萬가지의 경치가 펼쳐진다고 萬景臺라고 하는데 조선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개성에서 천도를 하기 위해 터를 보기 위해 올라가 지금의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고 "望京臺"라고도 합니다 [무당골] 큰 바위를 조금 지나 오면 아래쪽으로 소위 "무당골"이라하는 조그만 공터가 보입니다 [무당골 제단] 공터로 내려 오면 무당들이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습니다 북한산에서 촛불 켜고 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삼국시대 때부터 많았다고 합니다. 북한산진흥왕순수비에도 쓰여 있으니 지역토속신앙의 진원지가 북한산이었던 것이죠 10여년 전부터 국립공원에서 철저히 단속을 해 요즘은 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입술바위 가는 길] 제단의 오른쪽 계곡에 사진에서 보는 큰 바위가 있습니다. "입술바위"는 저 바위 오른쪽 계곡길로 올라 가야합니다. 여기서도 정신 바짝 차려야합니다.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입술바위 가는 길] 큰 바위 오른쪽 계곡길은 이렇게 나 있습니다 오늘이 3월로 가는 토요일인데도 이 코스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뭔말이냐하면 길을 모른다고 누구에게 물어 볼 사람도 없는 외진 곳이란 뜻입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저의 산행기를 잘 메모해 가야 산속에서 알바를 면할수 있습니다 [입술바위 가는 길] 계곡 좌측을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좌측으로 가는 길과 우측 계곡을 건너 계곡을 따라 올라 가는 길로 나뉘어 지는데 우측으로 건너 올라 갑니다. 여기서 좌측을 따라 올라 가면 "낙화암 암장"으로 갔다가 "입술바위"로 가고 우측으로 가면 다양한 바위를 구경하며 "입술바위"로 먼저 가는 길입니다 우측길을 추천합니다. "낙화암 암장"은 입술바위 후에 볼수 있습니다 [입술바위 가는 길] 太古의 신비를 간직한 바위들을 만나며 감상하며 오릅니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푹푹 밟으며 길없는 길을 오릅니다 [굴] 비가 오거나 비박을 할때 들어 갈수 있는 조그만 굴이 우측으로 보입니다 [굴속] 굴 속에는 이런 괴이한 모양의 돌이 굴을 찌르고 있습니다 [네로황제 바위] 네로황제가 여자를 겁탈하는 모양의 바위를 지나갑니다 [자라바위] 자라가 일어 서 있는 듯한 바이 사이로 지나가면.... [입술바위] 긴가민가하는 "입술바위"가 나타납니다. 보이시나요? 저 앞의 넓직한 바위에 붙어 있는 "입술" [입술바위] 드디어 "입술바위"가 나옵니다 '상궁바위'에서 약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수많은 바위들 중에 어느 한 바위에 "입술"이 달려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가야 볼수 있습니다 [입술바위] 조금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입술바위] 조금 더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百聞이 不如一見입니다. 정말 절묘합니다. 여기서 詩 한수 들려 드리겠습니다 입맞춤 이미란 분홍빛 입술 위 살포시 보드라운 촉감 더 가까이 나도 모르게 본능의 힘 다해 혀끝의 전율로 끌어 당겼어 이렇듯 사랑은 뜻하지 않은 입맞춤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 [입술바위] 이 코스에서 처음으로 만난 산객 부부. 고생해서 간신히 이 바위를 찾았다고 하더군요 특별히 '입술바위'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올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낙화암 암장 가는 길] "입술바위"까지 와서 "낙화암 암장"을 보지 않고 갈수는 없겠지요? "낙화암 암장"은 "입술바위"에서 30m 정도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입술바위" 좌측으로 희미한 길이 나 있습니다. 좌측 희미한 길을 따라 약 30m정도 갑니다 [낙화암 암장] "입술바위"에서 약30m 정도 오면 우측으로 큰 암벽이 보이는데 이 암벽의 뒷면이 "낙화암 암장"입니다 [낙화암 암장] 암벽의 뒷면이 암벽인지 황토흙인지 모를 황토색 암벽이 있는데 왜 사람들이 "낙화암 암장"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낙화암 암장] 황토흙을 발라 놓은듯한 암벽은 붉은 색의 꽃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도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초보 암벽등반가들의 암벽오르기 연습장으로 사용하고있더군요 온통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북한산에 황토색 암벽은 독특했습니다 [입술바위] "낙화암 암장"에서 다시 "입술바위로 돌아 왔습니다 다시 보아도 "입술바위"는 절묘했습니다 화강암 암벽에 화산암이 점을 찍어 입술을 만들고 있으니.... "백운산장"으로 가는 길은 "입술바위" 오른쪽 옆길로 올라 갑니다 여기서 "백운산장" 찾아 가는데 1시간이 걸렸으니 길 찾느라 조금 헤멨습니다 앞으로 이 산행기를 보고 가실 분들은 설명을 잘 메모 해 가셔야 덜 고생 합니다 [고래바위] "입술바위"에서 조금 올라 가면 "고래바위"가 나오는데 정말 고래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 고래바위에 잘난 낙서를 해논 바보 같은 인간이 있어서 고발합니다 [백운산장 가는 길] 백운대피소를 가야 위문을 지나 백운대를 가고 하산을 할수있기 때문에 백운산장은 꼭 가야합니다 [백운산장 가는 길] 계곡길로 계속 똑 바로 오르면 "만경대" 밑 "쪽두리봉"으로 오를수 있지만 길이 험난하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없어 길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입술바위"에서 오르다 오른쪽 능선으로 오릅니다. 그러면 제법 길 같은 길이 안내를 합니다 계속 능선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안부] 능선길이 끝나는 지점에 좌측에서 오는 길을 만나는 안부가 나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가 우측으로 오르면 바로 백운산장 넘어 가는 산마루가 나옵니다 그런데 저희는 여기서 우측으로 가는 바람에 고생을 했습니다 좌측길은 제법 내리막길입니다만 조금 내려 가서 우측으로 올라 가면 됩니다 좌측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우측길로 올라 갔습니다 알바를 한거죠. 그러나 이곳으로 가니 구경거리는 많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길은 "쪽두리봉"을 바로 치고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길이 험난해 초보산객을 데리고 갈수 없어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왔으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만경대] 능선에서 바라 본 "만경대" 정말 아름답습니다 요즈음 지각있는 분들이 북한산의 본명을 찾아 주자는 운동을 하고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北漢山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입니다. 한강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고 그냥 쓰여진 산이름입니다. '숭례문'을 南大門이라고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北漢山의 본명은 三角山입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이 작성한 "산경표"에는 "漢北正脈"에 "三角山"이라고 적고 있으며, 一名 "負兒山"이라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負兒는 아기를 업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在京北三十里 楊州南三十九里라고 위치까지 적어놨습니다 산경표 뿐만 아니라 모든 고지도에 모두 삼각산이라고 합니다 "백운산장"은 앞에 보이는 가운데 암봉 오른쪽 옆으로 올라야 합니다 [쪽두리봉] 북한산에는 "쪽두리봉"이 또 불광동쪽에도 있습니다 "수리봉"이라고도하고 "독바위"라고도 하는 불광동쪽 "쪽두리봉"이 더 유명하지요 이곳의 "쪽두리봉"은 저도 처음으로 접해 봅니다 저 쪽두리봉을 직접 릿찌로 넘어 갈수도 있으나 위험하더군요 쪽두리봉 좌측 능선계곡으로 올라 넘는 것이 정답입니다 저는 초보 산객을 데리고 "쪽두리봉"을 직접 넘다가 되돌아 왔습니다. ㅎㅎ [영봉, 도봉산] 우측으로 가운데 靈峰과 그 뒤로 도봉산이 줄기를 이루면서 자태를 뽑내고 있습니다 가운데 좌측 능선이 "상장능선"입니다 여기를 오르지 않고는 구경할수 없는 광경입니다 [쪽두리봉 능선] 靈峰에서 뻗어 오는 능선이 "쪽두리봉"으로 가고, 다시 "만경대"에 부닥칩니다 이 암벽을 넘어 가다가 되돌아 온것입니다 [쪽두리봉 오르는 길] 쪽두리봉을 거의 다 올랐다가 다시 내려 왔습니다 재미는 있었습니만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쪽두리봉과 만경대 사이 고개] 쪽두리봉 좌측으로 내려 갔다가 다시 계곡따라 올라 가니 "백운산장"으로 넘어 가는 고개가 나왔습니다 오른쪽이 "쪽두리봉"으로 가는 능선이고, 좌측이 "만경대 가는 길 [백운산장] "쪽두리봉 고개에 올라 서니 "인수봉"과 백운산장"이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백운산장 가는 길] 고개에서 좌측으로 조금 가니 "용암문"에서 오는 "낭만길"을 만나 오른쪽으로 내려 갔습니다 [백운산장] "백운대피소"와 인수봉이 동양화처럼 펼쳐집니다 쪽두리봉 고개에서 바라 보는 "인수봉"과 "백운산장"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백운산장] 12시 3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도선사에서 약2시간이 걸렸군요 백운산장을 가기전에 계곡에서 점심식사를 약 1시간반 동안 했습니다 [백운산장에 걸려있는 등산 안내도] [백운산장에서 바라 보는 쪽두리봉] 예전에는 무심코 지났는데, 오늘은 쪽두리봉을 지나 왔기에 쪽두리봉을 바라봤습니다 이쪽에서는 쪽두리봉 느낌보다는 상투를 틀어 놓은듯하군요 저 봉우리 옆 고개를 넘어 왔습니다 여하튼 백운산장 앞 "쪽두리봉"은 오늘 처음으로 눈에 집어 넣었습니다 [백운대 가는 길] 백운대 오르는 길은 역시 수많은 산객들로 만원입니다 [위문]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를 오르는 길이므로 북한산에서 제일 유명한 산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북한산성 위문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衛門"이 보입니다 [위문] 북한산성에는 13개의 門과 지금은 없어진 水門 하나가 있어 총 14개의 문이 있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北漢山城十二之門 종주 산행을 많이 합니다 물론 저도 종주를 했으며 저의 산행기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14개의 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문이 "衛門"입니다 해발 720m정도 되는 곳에 있습니다 [백운대 오르는 길] 오늘도 백운대 오르는 등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오르고 있습니다 병목현상으로 올라 갔다 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려 오늘은 생략합니다 [인수봉] 세계에서 최고로 꼽는다는 암벽등반코스 -- 仁壽峰 오늘은 등반가들이 별루입니다 [백운대 암봉] 바위들을 하나 하나 보면 동물원에 온듯합니다 [북한산성 안으로 하산하는 코스] [북한산성 안으로 하산하는 코스] [대동사] 오른쪽 "北門" 방향으로 대동사가 보입니다 北門과 원효봉을 가려면 대동사를 지나 올라 가면 됩니다. [약수터]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오면 시원한 계곡과 약수터가 기다립니다 여기서 시원하게 씻고 상쾌하게 하산합니다 [유흥업소가 있는 산성유락단지] 국립공원 안에서 연기를 피우며 장사를 하는 유흥업소들이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막걸리에 도토리묵을 먹고 봉고차 얻어 타고 쉽게 산성입구로 내려갔습니다 이 업소들도 금년 내로 모두 철거된다고하는군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원효봉] [산성입구에서 뒤 돌아 본 북한산] [산성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뒤 돌아 본 북한산] [연신내 지하철역] 연신내 시장안에 있는 "대구 볼탕집"에서 한잔 걸치고 취해서...ㅎㅎ [종로3가 단성사] 함께한 山友들이 또 한잔 더 하자고해 종로3가에서 내려 취할 정도로 마셨습니다 오랜만에 종로3가에 서니 단성사극장이 이렇게 변했더군요. 봉화 사는 친구가 얼마전 "전차타고 통학하던 종로3가"가 기억에 새롭다고 하길래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이 산행기를 볼래나? [종로3가] 2월28일 토요일 밤의 종로3가 사거리에는 시위대와 전투경찰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더군요. "조중동"이 "TV 방송"도 소유 할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시위를 막을려는 전투경찰들이 서로 고생하지 않도록 국회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텐데..... 오늘산행한 개념도입니다 '입술바위'에서 백운산장 넘어 가는 길이 어려웠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내장산 산행기 
          『정읍사』
                  - 작자미상 -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데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를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內藏山 조각공원에서 바라 본 "內藏山 西來峰"]
     동국여지승람에서 지리산, 천관산, 월출산, 변산과 함께 
     湖南地方 5大 名山으로 지정된 "內藏山" -
     2009년 2월의 첫날인 일요일에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내장산을 찾아 "휘산회"와 함께 길을 나섯습니다
     
     [內藏山 조각공원]
     '내장산 국립공원'은 "내장사"라고하는 볼품없는 절간이
     국립공원 내장산을 찾는 산객들에게도 무자비한 2,500원의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있더군요
     이곳, 內藏山 조각공원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차장에서 내장사 입구를 통과하여 백련암에서 시작하는 산행은
     우선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약 1시간 가까이 걸어 가서 산행을 시작하여야 함으로
     관람료 내고, 트렉킹으로 한시간을 길바닥에서 허비해야하기 때문에
     '內藏山 조각공원'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입니다
  
     [준비운동]
     휘문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산악회인 '휘산회'는
     발족한 이래 최대의 인원인 200여명이 이번 내장산 산행에 참가하였다고하며
     관광버스 다섯대가 동원되었습니다.
     특히 겨울인 2월달에 이런 참가인원은 미쳐 예상조차 할수 없었을 정도로 많았답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아마도 엄청난 교우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앞으로 1,000명 이상이 참석하리라~~
     
     [산행 개념도]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얼마나 먼지 아시겠지요?
     이곳을 산행 들머리로 잡은 집행부의 의도를 처음엔 오로지 입장료-돈 때문인줄만 알았는데
     내려 올때에서나 그 참뜻을 알았습니다
     내려 오는데도 약 1시간 걸렸으니 올라 가려면  고생께나 하겠죠?
     그리고 문화재 관람료 2,500원을 내야하고....
     
     [조각공원 산행 들머리]
     오전 11시 1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눈 덮인 내장산"을 기대하며 雪景에 대비하였는데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2월초 날씨로는 최고 높은 기온을 나타냈다고하니
     陰地와 高地 이외에선 눈을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조각공원 산행 들머리]
     등산로는 비교적 잘 정비되 있었습니다
     
     [조각공원 산행 들머리]
     등산로에 조금 들어와 산행 들머리를 뒤돌아 보았습니다
     '조각공원 등산로 입구'는 찾기 쉽습니다. 내장사로 올라 가다 첫번째로 넓은
     공터에 간단한 조각품이 있는 곳입니다
  
     [된비알]
  
     [된비알]
     등산로에 들어서면 곧바로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숨돌릴 틈도 없이 오르막은 서래봉까지 계속됩니다
     
     [내장 저수지]
     가뿐 숨을 몰아쉬며 30여분 오르면 '내장 저수지'가 흐르는 땀을 잠시 멎게 해줍니다
     오늘 산행중에는 계속 저 '내장 저수지'가 산객들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계단]
     내장산에는 친절하게도 곳곳에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누구나 쉽게 오를수 있도록 많은 공사비를 들여 설치하였겠지만
     산꾼들에겐 이런 인공시설물이 눈에 가시처럼 보입니다.
  
     서래봉 정상부로 으르면 녹지 않은 눈이 조금있습니다
     
     [서래봉-불출봉 갈림길]
     이곳이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西來峰은 內藏山을 대표하는 봉우리이기에 꼭 올라 보고싶은 마음이 들지요
     내장사에서 찍는 사진에는 반드시 내장사 대웅전 뒤 배경으로 西來峰이 나옵니다
     그래서 내장산의 대표 봉우리가 된것인데 가장 화려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불출봉으로 가려면 西來峰을 갔다가 이곳으로 되 돌아 와야합니다
       
     [갈림길 이정표]
     불출봉은 그냥 우측으로 가면 되지만 西來峰을 갔다가 불출봉으로 가려면 
     西來峰을 갔다가 이곳으로 되 돌아 와야합니다   
     
     [西來峰 가는 길]
     갈림길에서 서래봉까지는 20분 정도 걸리므로 왕복 3~40분 정도 걸림니다
     그러나....
     
     [西來峰 가는 길]
     엄청나게 가파른 철제 계단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경사보다 실제는 훨신 더 가파릅니다.
     제 느낌에는 7~80도 정도 되는 경사도 같았습니다
     
     [西來峰 가는 길]
     내장사에서 백련암을 거쳐 '서래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서래봉'을 지나 이 철제 계단을 넘어 와 '불출봉'으로 갑니다
     그 코스로 오는 초보 아줌마산객이 가파른 경사도 때문에 내려오지 못하고
     낑낑대며 고생하고 있어 도와 주었습니다
     
     [西來峰]
     西來峰은 여러개의 봉우리로 병풍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만
     主峰을 오르려면 더 가파른 철제 계단을 하나 더 올라야 합니다
     西來峰은 멀리서 바라 보아야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으며 
     앞으로 연지봉 까치봉등 여러 봉우리를 돌며 얼마던지 구경할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곳에 왔다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西來峰 뒷봉우리에서 바라 본 "불출봉"]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입니다
     
     [西來峰 뒷봉우리에서 바라 본 "내장 저수지]
          
          [가파른 철제 계단]
          西來峰에서 다시 불출봉 갈림길로 돌아 가고 있습니다
     
     [불출봉 가는 길]
     서래봉에서 내려와 불출봉으로 올라 갑니다
     井邑市는 원래부터 마을 이름이 井邑이었기에 으로 고정 된듯합니다
     都市가 된 지금 井邑를 붙여 井邑市로 표기하니 느낌이 조금 야릇합니다
     序頭에 정읍사를 올렸습니다
     내장사가 있는 井邑에 오니 정읍사가 생각나서입니다
     고등학교때 '국어'시간이외에 별도로 '古文'시간이 있었죠?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古文'은 어려운 과목이라 '古文'시간이 오면 '拷問'시간이라고 하던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ㅎㅎ
     정읍사는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표기된 최고(最古)의 가요이지요?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가요중에 백제 가요로서는 또한 유일한 가요이기도 합니다. 
     핵교 때 배운 "정읍사"를 오늘 산행을 하며 복습해 보겠습니다
       
     [西來藥水]
     서래봉-불출봉 갈림길에서 불출봉 방향으로 조금 오르니 "西來藥水"터가
     길바닥에 덩그러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약숫물은 나오지 않았기에 빈 플라스틱 바가지만이 목마른 산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내장산 9개봉 능선]
     내장산 9개 봉우리 종주등산코스는 말발굽 모양을 하고, 거대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12시쯤에 능선에 오르니 내장산 안쪽의 '내장사'가 보이며 9개 봉우리가 환하게 조망됩니다
     새벽부터 집을 나선 교우들은 벌써 점심 식사를 옹기종기 모여 하기 시작합니다
     가파른 된비알을 오르는 등산은 대략 여기서 끝나고 높고 낮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1시간 10분정도 걸렸습니다
     
     [장군봉, 연자봉]
     내장산은 "호남정맥" 지나는 대표적인 산으로서
     산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하여 내장(內藏)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건너편 좌측 끝 봉우리가 '장군봉'이며 그 우측 조그마하게 뽈록 나온 봉우리가 '연자봉'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장군봉, 연자봉, 신선봉, 까치봉까지가 "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갑니다
     백두대간 장수군 영취산(주화산)에서 분기한 호남정맥은 진안 마이산을 거쳐
     완주의 만덕산, 정읍의 '옥정호'옆을 지나 내장산으로 와 '장군봉', '연자봉', 
     '신선봉'을 거쳐 '까치봉'에서 "백암산"으로 갑니다. 
     그리곤 광주 무등산을 지나 광양의 백운산에서 그 脈을 다합니다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우측 서쪽방향으로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이 조망됩니다
  
     [불출봉 가는 길]

     정읍사라는 가요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정읍(井邑)은 전주(全州)의 속현(屬縣)이었답니다.
     아주 옛날, 그러니까 백제시대 쯤으로 추정되는 정읍(井邑)에 한 장삿꾼이 있었답니다 
     어느날 이 장삿꾼이  행상을 떠났는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아내는 걱정이 많이 되겠지요?
     그래서 그의 아내가 산 위의 바위에 올라가 달빛 아래로 뻗친 길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흙에 빠지는 것에 비유하며 읖조리는 것이 가요가 되었답니다. 
     이것는 망부가(望夫歌)의 하나로 남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노래이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정읍 등점산에 망부석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불출봉 가는 길]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는 3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번째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달님에게 청원"하는 대목입니다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아~!, 멀리 멀리 비추어 주세요. 

     
     [불출봉 가는 길]  
     불출봉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를 몇개 넘어야하며
     내장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西來峰에서 불출봉사이"의 山路를 따라 갑니다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데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둘째절은 아내가 장사 떠난 남편에 대한 염려를 하는 대목입니다
        님은 전주시장에 가 계시옵니까 
       아, 진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져재"는 큰 시장인 전주시장으로...
     '진 곳'은 땅이 질퍽하게 진곳, 즉 위험한 곳을 의미하는데
     후에 조선시대에는 '질퍽한 곳- 여성의 거시기'를 의미하니
     '남편이 바람 피는 것'으로 해석하여
     이 "정읍사"를 퇴폐적이라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금지곡으로 지정까지 하기도 합니다
     중종 때의 일이죠.
     요즘같으면 전두환, 박정희 시대에도 금지되지 않는, 말도 않되는 금지이지요

     
     [불출봉 앞 무명봉]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를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세번째절은 아내가 "남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대목입니다
        아, 내 님이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남편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믿음의 이미지가 듬북 담긴 아내의 기원입니다. 
     이렇게 달에게 소망을 기원하는 우리의 민속 신앙과도 관련된다고 배웠습니다

     
     [불출봉 앞 무명봉]
     불출봉이 보입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핵교때 노트를 찾아 보았더니 이런게 있더군요
     노피곰, 머리곰 → '곰'은 '강세 접미사' 

     
     [불출봉]
     불출봉은 철제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불출봉 오르는 길]
     
     [불출봉 정상]
     전설에 의하면 불출봉에 안개나 구름이 끼면 그 해에 가뭄이 계속된다고 기록해 놨습니다
     이런 전설을  공식적으로 알려주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1년 365일 중에 구름이나 안개가 끼는 날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나 '가뭄'이어야하겠네요..어찌 이런 무식한 사람들이있는지...
     
     [불출봉 정상]
     불출봉 정상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놨기에 동서남북을 조망하기 좋았습니다
     
     [불출봉 정상에 뒤 돌아 본 지나온 '서래봉']

     "정읍"하면 떠오르는 것이 "정읍사"이외에도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슬픈 노래입니다

     
     [불출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내장저수지']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설이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때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자리 메김하고 있습니다

     
     [불출봉 정상에서 바라 본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
     망해봉, 연지봉이 보입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 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부지깽이 매맞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 새야
     아버지의 넋새보오 엄마죽은 넋이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는어이 날라왔니
     솔잎댓잎 푸릇푸릇 봄철인가 날라왔지

     
     [불출봉 갈림길]
     불출봉 밑에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내장사'로 바로 내려 갈수있는 지름길이 있기에, 컨디션이 나쁜 분들은 여기서
     山路를 탈츨할수 있습니다
     
     [점심식사]
     불출봉을 조금 지나 내장산 원적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능선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저의 동기동창이 14명이나 함께했으며 가장 많은 참석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불출봉을 내려가 망해봉으로 향합니다]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조선은 "勢道政治"시대로 들어 가지요.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할수 있다'는 
     외척세력인 안동김씨·풍양조씨등의 "勢道政治"는 조선의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운명을 갈라놓지요
     탐관오리들이 날뛰고 정의가 불의에 짖밟히는 세상에서 참다 참다 들고 일어 난 농민들의 봉기.
     바로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입니다. 불과 115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정읍군수가 "조병갑" 탐관오리였는데, 이 양반의 증손녀가 조기숙씨(50세)라고 밣혀졌으니
     정말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조기숙씨는 참여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이었으며, 이화여대 교수이지요
     그 동학혁명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 "정읍"이며 "녹두장군 전봉준"이 선봉에 섰지요

     
     [망해봉 앞 무명봉]
     불출봉과 망해봉 사이에도 이름 모를 큰 봉우리가 하나 있어 이 봉우리도 넘어야합니다

     전봉준의 외침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르름은 그 본의가 다른 데 있지 않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고자 함이다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키가 유난히도 작아 쬐끄만 "녹두"라는 별명을 얻은 "전봉준"이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이름하여 "녹두장군 전봉준"
           
              전봉준 - 녹두처럼 생겼지요? ㅎㅎ

  
     [망해봉 앞 무명봉]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던 농민들의 꿈은 깨어지고 
     결국 녹두장군 전봉준도 사로잡혀 목을 베이고 말았으나 
     사람들은 이 안타까운 일을 파랑새 노래에 담아 부르면서 좋은 세상이 오기를 꿈꾸었습니다

     
     [망해봉 앞 무명봉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불출봉'과 '서래봉']
     지나 온 불출봉과 서래봉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파랑새에 대한 의미는 크게 두가지 설이 있는데
     동학농민운동(1894) 때에 
     일본군이 푸른색 군복을 입어 파랑새는 일본군을 뜻하며 
     전봉준이 녹두장군이라 불리었던 점을 보아 
     녹두밭은 전봉준을 상징하고 
     청포장수는 백성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망해봉 앞 무명봉에서 바라 본 건너편 산줄기]
     건너편 좌측에서 우측으로 '장군봉', '연자봉', '신선봉'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내장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神仙峰'입니다
     "호남정맥"의 내장산 구간을 보고 계십니다
     
     [望海峰이 보입니다]
     이제 올라야 할 望海峰입니다

     "파랑새"는 또 다른 설이 있습니다.
     다름아니 "팔왕설"이지요
     전봉준은 전(全)자를 파자하여 팔(八)왕(王) 이라고도 불리었고 
     이것이 音韻변화되어 '팔왕새'가 "파랑새"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아이들에게 널리 불리는 동요이기도 한데, 
     아이들의 입을 빌린 어른의 동요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노래는 조수미등 몇몇 성악가들이 부르기도 하여 유명합니다

  
     [望海峰 오르는 길]
     望海峰 오르는 길도 가파릅니다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은 당시 정읍군수였던 "조병갑"이 탐관오리로서 백성들로부터
     무자비한 수탈을 해 전봉준등 농민대표들이 바른정치를 호소했으나 거부당하며 일어났습니다
     또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저의를 들어내면서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전봉준장군은 12만 명의 군사를 지휘 손병희의 10만 군사와 함께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지요. 
     동학 농민군은 중·남부 전지역과 함경남도, 평안남도까지 세력을 폈으나 
     유명한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최신식 무기 "캐틀링"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한 후 
     순창으로 잠적하여 재기를 꾀하다가 붙잡혀 1895년 3월 처형되었습니다
     우리민족의 울분은 그렇게 처참하게 짖밟히고 "일제강점기시대"로 갑니다.
     오호~ 통재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望海峰 정상]

     전봉준은 감옥에서 간수들에게 무수히 구타 당하자 그는 분연히 꾸짖기를,
     "선비는 가히 죽일 수는 있어도 치욕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국법을 어겼으면 마땅히 국법으로 다스려 죽여라! "
     그리고 그에게 참형(1894년 3월 9일)이 내려지자
     "나를 종로 네거리에서 죽여라. 백성들을 보고 싶다." 하면서 
     스스로의 죽음조차 선택하였으니 이때가 그의 나이 41세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녹두장군 전봉준. 
     이런 전봉준장군이었기에 그를 애도하는 한 소절의 슬프고도 암울한 노래가 
     아직까지도 전해져 내려와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입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을미적 - -        병신되면 못가느니.
     을미년에 적을 쳐부수지 못하면 
     병신년에는 병신되어 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望海峰 안내]
     
     [望海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서해 방향]
     望海峰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西海가 보인다고 합니다만
     오늘은 약간의 운무로 볼수없습니다. 
     정상에는 사용할수 없는 화장실이 하나 있더군요
     
     [望海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북쪽 정읍시내 방향]
     정읍시가지가 약간 보입니다
     
     [望海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지나 온 불출봉과 서래봉]
        
     [望海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가 줄을 서 잇습니다
     우측에서부터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연자봉'
          
          [望海峰 내려 가는 급경사 계단]
      
     [연지봉 정상]
     蓮池峰은 아마도 불교적 이름인듯합니다
     오늘 지나온 봉우리 중에서 내장산을 전체적으로 보기에는 가장 조망이 좋았습니다     
      
     [연지봉 정상]
     연지봉 정상은 내장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내장산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가 말발굽모양으로 생겼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수 있습니다
     오늘은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으로 시간 관계상 가지 못하고 
     다음 봉우리인 "까치봉"에서 가운데 능선을 따라 내려가 오른쪽
     "금선계곡"을 타고 내장사로 갔습니다
     
     [연지봉 안내판]
     여기도 상식적인 얘기를 무슨 특별한듯이 알리고 있군요
     "연지봉에 구름이 끼며는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불출봉에서와 같이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지요? 에구~ 그렇게 할 얘기가 없냐?
     
     [연지봉 정상에서 뒤 돌아 본 망해봉]  
        
     [연지봉 정상에서 바라 본  '까치봉',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 
     오늘은 우측 첫번째 높은 봉우리인 '까치봉'까지만 갑니다 
     "호남정맥" 내장산 구간을 모두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연지봉을 하산하여 까치봉을 오릅니다]
     
     [까치봉 정상]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까치봉'입니다
     '까치봉'은 내장산 "말발굽" 모양의 능선에서 가운데 봉우리에 해당됩니다
     
     [까치봉 정상]
     봉우리의 모양이 까치가 날개를 편 형상이라 '까치봉'이라 한다고하나
     정상에서는 그 형상을 촬영할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호남정맥을 따라 백양사까지 걸어 가는 트렉킹도 해볼만 하더군요
     
     [까치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서래봉']
     '西來峰'이 석양빛을 받으며 내장산 봉우리중에서 가장 아름바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가운데 계곡밑에 내장사가 쬐끔 보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능선을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 "금선계곡"으로 하산합니다
     
     [까치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서쪽 '입암산', '백양산']
     입암산도 유명한 산입니다. 백양산과 함께 내장산국립공원에 포함되 있지요
     
     [까치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남동쪽 호남정맥 '신선봉,'연자봉', '장군봉'']
     시간 관계상 저 봉우리들을 모두 돌아 보지 못하고 대신 가운데 금선계곡을 구경합니다
     오후3시 정각에 까치봉'에 올랐습니다만, 5시30분에 '휘산회' 버스가 출발한다고....
     특히 내장사에서 주차장까지가 1시간이 걸리기때문에 집행부가 가로 막아 
     하산을 독려하여 신선봉, 장군봉은 포기했습니다
  
     [까치봉 하산]
     급경사 내리막을 한시간 정도 내려갑니다
     
     [금선계곡]
     한시간 정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오니 금선계곡이 하얀 눈속에서
     해맑은 물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내장사까지는 거의 평지인데 30분 정도 내려갑니다
     
     [금선계곡]
     금선계곡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그니 10초를 못견디게 차겁더군요
     그러나 세수하고 발을 씻으니
     하루 산행의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날라 가 버렸습니다
     
     [금선계곡]
     조금 있으니 후미 그룹이 내려와 금선계곡에 발을 담금니다
     
     [금선계곡]
     정상부근에도 별루인 눈이 계곡에는 그대로 남아 있군요
     
     [내장사]
     30여분 내려 오니 '내장사' 후문이 나왔습니다
     내장사는 정말 볼품없는, 볼게 없는 조그마한 절간입니다
     가을 단풍 때문에 유명해져 원래 '영은사'라는 절간 이름을 '내장사'로 바꾼지도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내장사]
     내장사에 갔다 오신 분들은 거의 다 이 사진과 같은 사진을 찍고 옵니다
     뒤로 "西來峰"이 병풍처럼 내장사를 둘러 싸고 있읍니다
     내장사에서 볼거리는 이 경치 하나와 가을 단풍 뿐입니다.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지만 특별한 문화재는 없습니다
     모든 건물은 근간에 새로 지은 것들이여서 古風스런 건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 보러 문화재 관람료 2,500원 내기는 너무 아깝습니다
     
     [내장사]
     대웅전에서 정문방향을 보고 한컷했습니다
     탑도 근간에 만든 것이라 세월의 떼가 뭍지 않아 깨끗합니다
  
     [定慧樓]
     현판에 쉬운 한자를 어렵게 써놔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 봤습니다
     定慧樓를 저처럼 무식한 넘은 알아 보지 못하게 써놨는데
     은 禪定으로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하는것이라 하며
     는 바른 지혜를 일으켜서 理와 事를 밝게 관조하는 것을 말한다는군요
     이런 불교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절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입장료를 받는 것은 무엇을 '관조'하기 위함인가
     
     [단풍나무 숲]
     정혜루에서 일주문까지 촘촘히 서있는 단풍나무
     내장사는 내장사보다 이 단풍나무 숲이 훨씬 더 유명하지요
     이 단풍나무 때문에 가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림니다
     하지만 이 겨울에는 볼품없는 앙상한 裸木일뿐....
     
     [내장사 일주문]
     
     [내장사에 대한 공식적인 안내문]
     내장사는 백제시대에 '영은조사'가 세워 "영은사"라 했는데
     어느때인가부터 '영은사'를 '내장사'라고 호칭하게됬다고하니 자기들도
     '내장사'의 내력을 정확히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6.25때 모두 소실되어 1971년 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복원하고 있다고합니다
     
     [내장산 케이블카]
     내장산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운행하고 있더군요.
     물론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들어와 이런 시설을 또 사용료 내고 이용해야합니다
     저와 같이 '조각공원'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내장사 뒷문으로 들어 오면 관람료 면제입니다. ㅎㅎ
     
     [우화정]
     연못에 정자를 세워놨습니다
     
     [주차장 가는 길]
     내장사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한시간 가까이 걸림니다
     그리고 씨즌에는 관광마차를 운행하며 또 차비를 받는다는군요
     오늘은 겨울철이라 그런 운송수단을 운행하지 않아 무지무지 걸었습니다
     아스팔트길 트렉킹이 더 다리 아프지요
     하여간 호남지방 5대명산이라고 하는 내장산을 둘러 보았는데
     그다지 강한 인상은 남기 않았습니다
     가을에 단풍 구경을 와야 내장산의 명성을 느낄수 있으려는지.....
     우측 능선이 '호남정맥'인데....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도봉산 송추남능선-우이남능선 종주 산행기 
                 송추-여성봉-오봉-칼바위-우이암-우의동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우~~~꽃이 지네 우~~ 가을이 가네
          가을이 우수수 떨어지고 겨울로 얼어 붙는가 봅니다
          2008년의 가을도 入冬 지난지 벌써 2주가 되니 쓸쓸해져 갑니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산뜻하고 깨끗한 날 - 요즘 이런 날 찾기 어려웠는데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주는 11월16일(일)
          오랜만에 북한산국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날]
     지하철 3호선 불광역 5번 출구로 나와 불광시외버스터미날로 갔습니다
     오전 9시40분에 송추로 가는 34번 시외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습니다
     북한산을 찾는 많은 산객들이 이미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두대의 버스를 먼저 보내고서야 10시 정각에  편안한 좌석에 앉아 출발 했으니
     버스 배차 시간은 10분 정도로 원활하게 움직여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산행 들머리 송추 유원지 계곡 입구]
     대부분의 산객들은 북한산성 입구에서 내리고, 
     산에 대해 조금 폼을 잡는 산객들이 사기막골과 솔고개에서 내립니다
     상장능선은 요즘 산불예방기간이라 통제가 되는 듯합니다. 가실 때 확인 하고 가세요
     송추까지 가는 산객들은 몇명되지 않았습니다
     
     [송추계곡 입구에서 바라 본 사패산]
     한북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사패산이  제법 폼을 잡습니다
     오늘 산행은 갑자기 이루어졌습니다
     북한산 산행은 전혀 계획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곧 알려 드림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근간에 건설된 외곽순환고속도로 밑으로 지나 올라 갑니다
     승용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 주차장을 이곳에 크게 만들어 놨더군요
     
     [갈림길]
     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송추계곡으로 들어 가며, 
     산객들은 대부분 여기서 우측으로 "송추남능선" '여성봉', '오봉'코스로 갑니다
     우리도 "자운봉- 오봉"코스로 갑니다
               
               [이정표]
                여성봉 2.6km, 오봉 3.2km, 자운봉 4.5km
     
     여성봉, 오봉을 향해 송추남능선으로 진입합니다
     이틀전 관악산 "육봉-팔봉-삼성산-안양" 코스를 다녀 온지라 
     이번주는 일기예보도 시원찮아 쉴려고 했는데 토요일에 인터넷으로 쪽지가 하나 날라 왔습니다
     "선배님, 이번주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고...이러저러해서 쉴려고 하는데..."
     "비 온다는 예보는 없어졌는데요?"
     무척 산에 가고 픈 뉴앙스 아닙니까? ㅎㅎ
     사실 아직 만나 본적도 없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의 산행기를 읽고 꼭 동행 하고 싶었답니다
     
     [송추남능선 舊매표소]
     저의 산행기를 읽고 꼭 한번이라도 산에 함께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에게
     "오늘은 피곤해서 다음에 갑시다"라고 할수 있나요?
     사나이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고하는데...
     목숨은 못 바쳐도 같이 산행 한번 안해주면 이거 되겠습니까? ㅎㅎ
     그래서 어느 산을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선배님 가는 산이면 어떤 산이라도 좋다고합니다
     이런 대답이 사실 골 때리는 대답이거던요
     꼭 찝어서 어디를 갑시다~하면 저도 부담이 없는데 무조건 맡긴다고하면
     이거 부담 많이 갑니다. 특히 저의 산행기가 좋아 같이 산행 하고프다고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제가 산에 도사인줄 아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큼니다
     그럴수록 부담이 더 가는데.....자기 딴엔 저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배려가
     저에겐 더 부담이 되는 줄을 아마 모르고 그러했으리라~!!ㅎㅎ
     
     [오늘 산행 개념도]
     분홍색선이 오늘의 산행 코스입니다
     송추를 출발하여 여성봉 - 오봉 - 칼바위 - 우의암 - 그린파크 까지 입니다
     북에서 남으로 횡단하는 것입니다
     
     [송추남능선]
     오늘 저와 꼭 같이 산행을 하고 싶어한 사람은 저의 산행기 애독자이신 정현채님입니다.
     정현채님은 알고 봤더니 저의 대핵교 후배였으며
     저의 산행기 애독자라기 보다는 산행기를 집중 탐구하는 분이시더군요 ㅎㅎ
     산행기를 통해 이미 저라는 인간, 인간성까지 파악했더라구요
     이거 고마워 해야하나요? 앞으로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왠만하면 같이 산에 한번 가자고 쪽지도 보내고 하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거절하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죠. 
     이 세상에서 남에게 좋은 소리 한 마디 듣기도 힘든데, 
     인정 받는다는건 보통일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이 코스는 얼마 전 한번 왔었던 코스이나 산행기를 쓰지 못했고
     전부터 이 코스가 괜찮은 코스로 언젠가 한번 써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활용할만한 코스로 여겨져 이 기회에 다시 찾아 온것입니다
     저의 블로그 단골 손님 중에 "파죽지세"님이라고 아시는지요 
     이분 북한산을 너무 좋아해 북한산을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꼭 찾는 분입니다
     그 분의 산행기에서도 이 코스 안내는 못 보아서 산행기도 쓸겸 이 코스를 선택 했습니다
     그러면 저와 함께 올라 가 볼까요?
     
     [여성봉이 보입니다]
     여성봉은 유명한 봉우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송추에서 오르는 코스로 다녀 간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통등 접근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겠죠.
     
     송추 남능선에서 바라 보는 사패산-중간 가운데 능선은 송추북능선
     사패산은 漢北正脈의 마루금이 지나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첫번째 산입니다
     사패산은 552m의 높이이며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으로 도봉산과 연결되 있습니다.
     '포대능선'은 사패능선과 도봉산 자운봉 사이의 능선으로 능선상에 '포 진지'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포대능선'이라고 하는데 국립공원의 공식적 地名 치고는 좀 유치합니다
     사패산은 한자로 賜牌山이라고 쓰는데 
     사패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사연이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조선시대 선조의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 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 오점을 남긴 쪼다리 왕들은 평상시 하는 행동도 쪼다리 바보같습니다
     어찌 우리의 국토를 자기 사위에게 지맘대로 선물을 하나요?  닝기리~
     하긴 임진왜란 때 쪽바리가 쳐들어 오니까 한양 버리고 의주로 토낀 놈이니....
     세종대왕이 봤으면 선조 이씨끼 반 죽였을 텐데.....
     다른 하나의 설은, 쪼다리 선조가 사냥을 나가려고 신하들에게 사냥 장소를 물색케하여
     사패산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많은 산짐승을 사냥한 쪼다리 왕이 기분이 좋아
     이 山에게 감사패를 내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賜牌山이란 것입니다
     임금이 선물을 줄때 '하사'한다고 하죠? 이 때의 한자가 사賜입니다
     "牌(감사패)를 하사 한 山", 즉 賜牌山인 것입니다
     이 산을 사냥터로 추천 한놈이 유정량이라나 뭐래나...그래서 사위로 까지 삼고....닝기리~
     어떤 설이 유력하다고 보십니까? 글자 그대로 보면 백번 두번째가 유력한 설입니다
     
     제법 가파른 길을 오릅니다.
     숨이 차고 땀이 나는 곳 쯤에는 항상 쉼터가 나옵니다
     
     [쉼터]
     첫번째 쉼터에 올라 송추계곡을 내려다 봅니다
     계곡 끝에 외곽순환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제법 올라 왔군요. 여기서 가볍게 한잔 했습니다
     올라 온 능선이 S자로 너무나 뚜렸하고, 평이합니다
     
     여성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여성봉 오르기가 힘드는군요
     젊은 사람들도 오르기 힘드는데 나이 드신분들은 더 힘들겠지요
     여성봉이라는 산봉우리 오르는 일이나, 여성을 차지 하기 위해 오르는 일이나...
     어느 것이 힘들다구요? ㅎㅎ
     
     [여성봉]
     여성봉이 보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여성봉은 뒤덮였습니다
     오늘도 저 여성봉은 수많은 인간들 떠받치느라고 무지 힘들겠습니다
     
     [여성봉]
     많은 사람들이 여성봉을 밟고 지나 가고 있습니다
     여성봉을 지날 때 남녀노소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띄고 지나 갑니다
     모두 여성의 거시기를 본적이 있는듯이....ㅎㅎ
     오죽하면 공식적 지도에도 '여성봉'이라고 표기하겠습니까
     산행 들머리에서 여기까지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여성봉]
          사람이 없는 틈을 한참 기다리다 한컷에 성공 했습니다.
          일요일에 이런 全裸의 女姓峰을 촬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결국 한컷에 성공한것입니다
          오로지 '홍어와 무인도' 횐님들을 위해서...ㅎㅎ
          어떠십니까? 조금 얼굴 빨개지지않나요? ㅎㅎ
          정상적인 사람은 빨개지고 비정상적인 사람은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도~ 저곳은 통행을 제한 시켜 보존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민족이 보전 될려면....ㅎㅎ
     
     [여성봉]
     여성봉 위에 올라가 촬영했습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또 절묘한 자리에 자라고 있습니다
     여성봉의 가운데 부분 뭐라고 하더라? ㅎㅎ
     저기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아 다 닳아 없어 질까 걱정됩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 갔을까요?
     최소한으로 잡아도 수백만명은 저곳을 한번쯤 밟고 지나 갔을겁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튼튼하게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여성봉입니다. ㅎㅎ
     
     [여성봉]
     도대체 행열은 끊이지 않습니다
     아예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 보며 검토 하는 분이 있어 또 한컷했습니다
     하도 웃겨서....ㅋㅋ 뭘 보고 있는 걸까요? 나이도 좀 있는 분이신것 같은데...
     
     [여성봉]
     남녀노소가 줄을 서서 오르고 내립니다
     여성봉을 바라 보고 속만 태우다 돌부처가 된 '부처바위'가 저 쪽에 있습니다
     몇천년을 그냥 바라만 보다가 아예 굳어져 버렸다네요
     
     [여성봉]
     사람들이 없는 틈을 노려 옆에서도 한컷했습니다
     '홍어와 무인도' 횐님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오늘 다양한 각도에서 여성봉의 거시기를 보고 있습니다. ㅎㅎ
          
          [여성봉]
          어느 곳에서 보나 거시기는 거시기입니다.
          남자들은 얼굴이 붉어지지만, 여자분들도 웃고 지나는 것을 보면
          확실이 거시기를 닮은 모양입니다. ㅎㅎ
     
     [여성봉]
     여성봉 거시기 계곡을 올라 오면 뒷쪽으로 더 높은 바위 봉우리가 있습니다. 부처바위
     저 바위에 올라 가 "여성봉"을 내려 다 보겠습니다
     
     [여성봉]
     제가 왜 이곳에 올라와 여성봉을 내려다 보며 촬영하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됩니까?
     가운데 여성봉을 바라 보는 무수한 암봉들이 보이십니까?
     벌떡 일어 서서 모두 여성봉만 바라 보고 침을 흘리고 있는듯 하지 않습니까?
     정말 한폭의 그림입니다. 아름답고 멋있습니다.
     전세계 모든 건설회사를 모두 데려다가 만들려고 해도 절대 만들수 없는 예술입니다
     윗쪽에 보이는 봉우리들이 五峰稜線입니다
     
     여성봉 부처바위에서 내려다 본 송추 산행 들머리
     송추남능선의 산행길을 잘 알수 있군요
     
     여성봉에서 바라 본 사패산과 우측으로 사패능선, 포대능선....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의 경계가 가운데 폭 파인 고개입니다
     
     여성봉 부처바위 정상에서 오늘 산행을 함께한 '정현채'님 기념 사진을 한컷했습니다
     저의 산행기엔 개인 사진이 잘 실리지 않지만 오늘은 여러 컷을 올리고 싶은데...
     왜?인줄은 모두 아시죠?ㅎㅎ  저를 그렇게 인정해 주었으니 목숨 바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데
     개인 사진 산행기에 올리는거야 엿장사 맘대로 아입니까? ㅎㅎ
     정현채님은 국내 굴지의 'H'증권 지점장, 임원까지 하고, 
     현재 셋톱박스 생산업체이며 코스닥 상장 기업인 'H'社의 감사로 재직 중에 있다는 군요
     이런 분이 저의 산행기 볼게 뭐가 있다고 매료되었다고하니 앞으로 더 신중하게
     알찬 산행기를 써야겠습니다..에구~휴~ㅎㅎ
     
     여성봉을 지나 五峰으로 갑니다
     
     [五峰] 전망대
     여성봉에서 오봉으로 가며 뒤에서 오봉을 담았습니다
     신비한 瑞氣가 어림니다
     이러니 이산 저산 돌아 다녀도 결국 북한산 만한 산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五峰으로 가는 전망대에서 女姓峰을 내려다 봅니다
     女姓峰에서 五峰으로 오는 능선을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五峰 오르는 길에도 암벽구간이 조금 있습니다만
     모두 안전시설을 해놔 문제 없습니다
     
     [五峰의 첫번째 봉우리]
     五峰의 첫번째 봉우리가 제일 높으며, 산불 감시 카메라가 세워져 있습니다
     660m 높이의 오봉은 아시다시피 다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봉산의 대표적 산봉우리 중에 하나입니다
     
     [五峰의 1봉에서 바라 보는 2,3,4,5봉]
     기괴하고 장엄하다고 할까요?
     바라 보는 감상을 각자 표현 해 보세요
     이런 곳 놔두고 총알 맞아 가며 금강산 관광 가는 분들이 안타 깝습니다
     금강산 관광 가셨던 분들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얼마던지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도 경비 들이며 외화 낭비하며
     멀리 가야 관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암벽을 기어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五峰에서 바라 보는 북한산의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바로 앞의 능선이 漢北正脈의 마루금이 지나는 "상장능선"입니다
     상장능선 뒤로 북한산 국립공원의 핵심부인 三角山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수도 서울의 자존심을 내 보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진흥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백제의  근초고왕,  태조 이성계 까지
     저 삼각산을 차지하지  않고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차지 하려고 무지무지 노력한 한반도의 중심 山인 북한산입니다
     아시다시피 "北漢山國立公園"은 북한산과 도봉산, 사패산 세개의 산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오늘은 도봉산에 와 있으며, 현재 도봉산에서도 2류급에 속하는 五峰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으니 北漢山國立公園에는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五峰]
     五峰의 1봉에서 2봉쪽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일반 산객들은 더 이상 갈수 없습니다. 
     '위험지대'이기 때문에 공익 근무요원들이 지키고 강제로 제지하고 있습니다
     단, 암벽등반 장비를 갖춘 꾼들은 들어가 모든 봉우리를 오를 수 있습니다
     내려가서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 보여 드리겠습니다
     
     [五峰]
     五峰의 2,3,4,5봉우리를 가장 가까이서 촬영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장비를 갖춘 암벽등반 애호가들이 곳곳에서  五峰을 즐기고 있군요
     저도 다음에 전문가를 모시고 한번 도전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생생한 산행기를 쓰겠습니다
     
     [五峰에서 바라 본 도봉산 정상]
     五峰에서 바라 보는 도봉산 정상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두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봉산은
     紫雲峰이 가장 높은 정상봉우리로서 740m의 높이입니다
     그리고 옆에 萬丈峰이 718m, 仙人峰이 708m입니다
     서울의 동남쪽에서 바라 보는 道峰山稜線은 정말 멋있습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능선이지요
               
               [삼거리 이정표]
               송추남능선으로 올라 "여성봉"과 "오봉"을 구경하고,
               자운봉 방향으로 조금 가면, "송추계곡"으로 하산 할수 있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시간이 없거나 원점 회귀 하실 분들은 
               여기서 "송추분소"로 하산하면 송추계곡을 따라 50분 정도면 내려 갈수 있습니다
     
     도봉산의 정상인 자운봉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오봉과 칼바위 사이에 이름 모를 봉우리가 하나 있습니다
     제법 높은 봉우리인데 이름을 모르겠습니다
     이 봉우리를 오릅니다
     
     [무명봉에서 점심 식사]
     오봉과 칼바위 사이의 무명봉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우선 경치부터 구경하겠습니다
     앞에 보이는 능선이 '칼바위'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가는 "道峰主稜線"입니다
     맨 끝의 산봉우리 좌측에 삐쭉 솟은 바위가 그렇게도 유명한 "우이암"입니다
     앞으로 저 능선을 따라 하산 할것입니다. 
     "우이암"은 근접 촬영을 해서 자세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나 저나 최고로 전망 좋은 곳에 레스토랑을 차리고 점심 식사를 합니다
     이곳을 "홍어와 무인도 레스토랑"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도봉산 레스토랑 - "홍어와 무인도"
     정현채님이 저와의 첫만남을 위해 고심해서 준비한 메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홍어"가 눈에 확~들어 옵니다. 
     길 지나는 산객들이 홍어 냄새를 맡고 좀 달라고합니다. 
     오늘 도봉산에는 홍어 냄새가 진동하며 특별한 만남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습니다
     돼지고기 삶은거와 김치, 새우젖, 마늘, 상추, 막걸리, 소주, 맥주까지......
     저의 블로그 이름이 "홍어와 무인도"이니 아마 제가 분명히 "홍어"를 좋아 할꺼라고....
     정현채님은 홍탁삼합을 준비했습니다
     이 고마움을 무어라 표현 하겠습니까....
     저의 산행기를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부터 저로서는 어쩔줄을 모르겠는데
     지극정성으로 준비한 홍어 한점을 입에 넣었을 때..그리고 쇠주 한잔 들이킬 때...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부족한 인간도 때론 이렇게 넉넉해 지는구나...
     세상은 그렇게 허무한것도 아니고 최진실이 처럼 갈 필요도 없는
     제법 살만한 세상이란걸 느꼈습니다
     
     무명봉에서 바라 보는 '칼바위'
     "홍어와 무인도"를 사랑해 주시는 정현채님에게
     졸필인 저의 글보다 제가 좋아하는 詩 한수를 읊어 드리며 고마움에 땜빵합니다

                       낙화, 첫사랑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 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칼바위'를 우회해서 "우이암"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칼바위]
     '칼바위'의 모습입니다. 
     도봉산 주능선상에서 '한북정맥'이 사패산에서 포대능선을 따라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을 따라와 '우의남능선'과 '오봉능선'으로 분기하는 지점에 "칼바위"가 있습니다
     이 "칼바위"에서 남쪽으로 한북정맥이 지나는 "도봉주능선-우이남능선"입니다
     '칼바위'를 우회해서 "우이암'으로 갑니다
     
     [칼바위 아래에 있는 안부 이정표]
          
          우이암을 향해 날카로운 한북정맥 마루금을 지나 갑니다
          경치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도봉주능선의 마루금도 온통 奇岩怪石들로 가득입니다]
     
     칼바위를 지나와 뒤 돌아 보며 칼바위를 조망합니다
     늘어서 있는 '칼바위'는 여기서는  '칼'모양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좌측의 봉우리가 이름을 알수 없는  점심식사를 한 봉우리입니다
     앞으로 저는 "홍어와 무인도 레스토랑" 봉우리라 부르렵니다
     
     [道峰主稜線]
     道峰主稜線에 나란히 있는 봉우리들 -
     좌측으로 부터 '칼바위', '주봉',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앞으로 더 자세히 道峰主稜線상의 봉우리에 대해 사진과 설명이 있겠습니다
     멋있습니다
     
     꽃가마 타고 시집 가듯 펼쳐지는 道峰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저의 능력으로는 모두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앞으로 이 코스를 몇번 더 와 보고 다시 산행기를 써야 하겠습니다
     
     캬~! 운치 있습니다
     어디서 어디 한곳 눈을 땔수 없는 구경거리가 널려 있습니다
     이런 곳을 다녀 보지 않고는 다른 산을 평할 자격이 없지 않을까요?
     
     [五峰]
     '도봉주능선'에서 바라 보는 "五峰"
     와우~ 죽입니다~!!!
     여기서 바라 보니 五峰의 1봉은 두리뭉실하고 
     2,3,4,5봉이 암봉으로 멋을 더욱 살리는군요
     그런데 오봉능선 앞에 능선이 하나 더 있어 여기에선 오봉의 머리부분만 보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전망대의 바위도 절묘합니다.
     제가 좀 절묘한 연출을 했습니다..ㅎㅎ 보기 좋죠?
     
     [五峰]
     夕陽에 물들어 가는 五峰을 줌인 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三國誌의 주인공들이 나란히 줄을 서 있는듯....
     오봉 앞에 능선이 하나 가로 막고 있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道峰山의 정상 - 자운봉이 나무 가지 사이로 웅장하게 보입니다
          
          道峰主稜線의 끝인 우이암 바로 못미쳐 도봉역으로 탈출하는 안부가 있습니다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로 올라 가는 다리
     
     [도봉산 전망대]
     우이암으로 올라 가는 다리 중간에
     도봉산을 전체적으로 조망 할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이 곳을 놓치면 않됩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봉산이 가장 멋있다고도 할수 있겠습니다
     
     道峰山 主峰인 칼바위,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
     칼바위에서 지나 온 '도봉주능선'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전망대에는 꼭 올라야 겠군요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 중턱에서 바라 본 五峰
     바라 보는 각도에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보는 五峰의 몸체는 무지하게 커서 장중하게 보입니다
           
           [牛耳巖]
     여기 보이는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이 지역의 이름까지 만들어 낸 유명한 바위입니다
     "소의 귀"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6-70년대엔 서울 시민들의 여름 피서지이기도 했던 우이동과 우이동계곡이
     이 牛耳巖으로 인해 생겨난 이름이니 이 암봉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 암봉인지 아시겠죠?
     저도 오랬동안 서울에서 살았어도 牛耳巖을 직접 보기는 처음입니다
     확실히 등잔불 밑이 어둡군요
     
     牛耳巖을 돌아 나가며 바라 본 五峰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은 학교때 국어 (고문)시간에 "서울"에 대한 어원을 배웠을 것입니다
     서라벌>셔블>서울로 음운변화가 있었다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런 반론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서라벌>셔블>서울은 터무니 없는 말도 않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牛耳巖을 돌아 나가는데 通天門이 있습니다
     서라벌>셔블>서울의 서벌은 한자로 徐伐로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현재 우리나라의 '서울'이라는 것이 위치상으로도 문제가 있고
     음운변화로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정말로 서울은 서라벌>셔블>서울의 음운변화를 거치며 탄생된 것일까?
     저와 함께 추적 해 볼까요?
     
     通天門을 돌아 나가 牛耳巖 정상에서 
     道峰山 主峰인 칼바위,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을 바라 봅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서울"에 대한 명칭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첫째가 우리가 이미 학교 때 배운 서라벌>셔블>서울이라는 것이고....
     
     牛耳巖이 있는 牛耳峰에서 바라 보는 牛耳巖
     1884년에 일어 난  갑신정변과 그 이후 外勢들의 침탈 음모들이 난무하는 세상을 거치고
     결국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한일합방 이후에는 이런 비참한 說도 있었습니다.
     "러워 고있는 도시니까 서울로 부른다..."
     이 說은 백성들의 입에서 나온 한탄의 말이겠지만 이 또한 하나의 說입니다
          
          牛耳巖은  산 아래에서 바라 봐야 "소의 귀"를 닮았다고 느낀답니다
          윗쪽에서는 어느 방향에서도 "소의 귀" 모양이라고는 보이지 않는군요
     "서울"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정식 명칭으로 사용한것은
     해방후 1946년 8월 16일 미국군정하에서 미국식 직제 개편으로 경성부→서울특별자유시로
     경기도에서 분리되면서 '서울'이라는 이름이 새로이 탄생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조선 개국과 동시에 한성-한양이라 불리워져 왔고
     일제 강점기 시대엔 "경성"으로 명명되어 왔습니다.
          
          牛耳巖은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대해 제가 여러 참고 문헌들을 읽어보고 그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설을 지금 부터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특히 백승현씨가 쓴 '어디서 마음을 구하랴'라는 책을 주로 참고하여 알려 드리도록하겠습니다
     
     牛耳南稜線은 암릉지대로 릿지코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회로를 이용해 하산 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왜 한자가 없을까?
     서울은 한문상의 표기가 없고 대신에 한양(漢陽) 또는 漢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천도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 건국과 함께 탄생된 도시가 오늘의 '서울'이 되었는데
     탄생 될때의 이름이 漢陽이고 한양의 외곽에 을 쌓고 난 다음에 漢城으로도 불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을려면 漢陽의 탄생 과정을 추적해 보아야합니다
     
     牛耳南稜線을 하산하고 있는데
     이곳 산행을 많이 하신듯한 산객들이 길안내를 해줘서 쉽게 내려 갈수 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다음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으려 할 때 
     그 성곽을 쌓는 기준선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던 어느 날
     태조 이성계가 삼봉 정도전, 무학대사와 함께 협의를 하고 있는데 큰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한양을 둘러 싸고 있는 산능선을 따라, 
     능선 밖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고, 능선 안쪽에는 눈이 조금 쌓여졌답니다
     그 상황을 눈여겨 살펴본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무학대사는 성곽을 쌓을 윤곽을 그리고
     눈이 많이 쌓인 곳과 적게 쌓인 곳의 경계선을 따라 도성을 쌓게 했다고 합니다
     한양과 한양 밖에 내린 눈이 경계선을 그어 준 것입니다
     이렇게 쌓은 도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북악산-인왕산-남산-동대문에 있는 낙산을 연결하는 것으로 둘레가 40리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한양의 울타리를 만들었다고하여 눈雪자를 써서 '설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은 도성으로 한 때 설성雪城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다시 '설울'로 불리워 지면서 '설울'의 "ㄹ" 복음이 묵음화 되면서 서울로 발음 되어진 것이랍니다
     요약하자면 서울雪울타리 →雪울 → 설울 →서울로 된 것이라 합니다
     저는 이 이론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생각 되며
     또한 이것은 각종 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牛耳南稜線에도 벌써 그림자가 지고있습니다
     유격훈련 코스를 내려 갑니다
     
     牛耳巖稜의 유격훈련코스는 여기 한곳 뿐이었습니다
     쉽게 어려운 코스를 탈출하였습니다
     
     牛耳巖稜의 유격훈련코스를 탈출하니 바로 쉼터였습니다
     앞에 보이는 분들의 길안내와 牛耳巖에 얽힌 이야기들도 많이 들을수 있었습니다
     저의 블로그 '홍어와 무인도'를 알려 드렸는데 찾아 오셨는지....
     길안내 감사 드림니다. 언제나 건강하게 즐거운 산행 하시기 바람니다
     
     [우이동 그린파크 앞]
     우이동 버스 종점으로 내려 오니 어느듯 해는 지고 어둠이 내려 앉습니다
     저의 산행기를 읽고 감명 받았다고
     저와의 人緣을 만들기 위해 다가와 주신 정현채님에게 감사를 드림니다
     山은 언제나 모두에게 가식을 벗게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어 주는가 봅니다
    
    [오늘 산행 개념도] 
     보라색선이 오늘 지나온 길입니다
파란문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도봉산 송추남능선-우이남능선 종주 산행기 송추-여성봉-칼바위-오봉-우이암-우의동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우~~~꽃이 지네 우~~ 가을이 가네 가을이 우수수 떨어지고 겨울로 얼어 붙는가 봅니다 2008년의 가을도 入冬 지난지 벌써 2주가 되니 쓸쓸해져 갑니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산뜻하고 깨끗한 날 - 요즘 이런 날 찾기 어려웠는데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주는 11월16일(일) 오랜만에 북한산국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날] 지하철 3호선 불광역 5번 출구로 나와 불광시외버스터미날로 갔습니다 오전 9시40분에 송추로 가는 34번 시외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습니다 북한산을 찾는 많은 산객들이 이미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두대의 버스를 먼저 보내고서야 10시 정각에 편안한 좌석에 앉아 출발 했으니 버스 배차 시간은 10분 정도로 원활하게 움직여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산행 들머리 송추 유원지 계곡 입구] 대부분의 산객들은 북한산성 입구에서 내리고, 산에 대해 조금 폼을 잡는 산객들이 사기막골과 솔고개에서 내립니다 상장능선은 요즘 산불예방기간이라 통제가 되는 듯합니다. 가실 때 확인 하고 가세요 송추까지 가는 산객들은 몇명되지 않았습니다 [송추계곡 입구에서 바라 본 사패산] 한북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사패산이 제법 폼을 잡습니다 오늘 산행은 갑자기 이루어졌습니다 북한산 산행은 전혀 계획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곧 알려 드림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근간에 건설된 외곽순환고속도로 밑으로 지나 올라 갑니다 승용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 주차장을 이곳에 크게 만들어 놨더군요 [갈림길] 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송추계곡으로 들어 가며, 산객들은 대부분 여기서 우측으로 "송추남능선" '여성봉', '오봉'코스로 갑니다 우리도 "자운봉- 오봉"코스로 갑니다 [이정표] 여성봉 2.6km, 오봉 3.2km, 자운봉 4.5km 여성봉, 오봉을 향해 송추남능선으로 진입합니다 이틀전 관악산 "육봉-팔봉-삼성산-안양" 코스를 다녀 온지라 이번주는 일기예보도 시원찮아 쉴려고 했는데 토요일에 인터넷으로 쪽지가 하나 날라 왔습니다 "선배님, 이번주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고...이러저러해서 쉴려고 하는데..." "비 온다는 예보는 없어졌는데요?" 무척 산에 가고 픈 뉴앙스 아닙니까? ㅎㅎ 사실 아직 만나 본적도 없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의 산행기를 읽고 꼭 동행 하고 싶었답니다 [송추남능선 舊매표소] 저의 산행기를 읽고 꼭 한번이라도 산에 함께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에게 "오늘은 피곤해서 다음에 갑시다"라고 할수 있나요? 사나이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고하는데... 목숨은 못 바쳐도 같이 산행 한번 안해주면 이거 되겠습니까? ㅎㅎ 그래서 어느 산을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선배님 가는 산이면 어떤 산이라도 좋다고합니다 이런 대답이 사실 골 때리는 대답이거던요 꼭 찝어서 어디를 갑시다~하면 저도 부담이 없는데 무조건 맡긴다고하면 이거 부담 많이 갑니다. 특히 저의 산행기가 좋아 같이 산행 하고프다고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제가 산에 도사인줄 아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큼니다 그럴수록 부담이 더 가는데.....자기 딴엔 저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배려가 저에겐 더 부담이 되는 줄을 아마 모르고 그러했으리라~!!ㅎㅎ [오늘 산행 개념도] 분홍색선이 오늘의 산행 코스입니다 송추를 출발하여 여성봉 - 오봉 - 칼바위 - 우의암 - 그린파크 까지 입니다 북에서 남으로 횡단하는 것입니다 [송추남능선] 오늘 저와 꼭 같이 산행을 하고 싶어한 사람은 저의 산행기 애독자이신 정현채님입니다. 정현채님은 알고 봤더니 저의 대핵교 후배였으며 저의 산행기 애독자라기 보다는 산행기를 집중 탐구하는 분이시더군요 ㅎㅎ 산행기를 통해 이미 저라는 인간, 인간성까지 파악했더라구요 이거 고마워 해야하나요? 앞으로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왠만하면 같이 산에 한번 가자고 쪽지도 보내고 하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거절하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죠. 이 세상에서 남에게 좋은 소리 한 마디 듣기도 힘든데, 인정 받는다는건 보통일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이 코스는 얼마 전 한번 왔었던 코스이나 산행기를 쓰지 못했고 전부터 이 코스가 괜찮은 코스로 언젠가 한번 써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활용할만한 코스로 여겨져 이 기회에 다시 찾아 온것입니다 저의 블로그 단골 손님 중에 "파죽지세"님이라고 아시는지요 이분 북한산을 너무 좋아해 북한산을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꼭 찾는 분입니다 그 분의 산행기에서도 이 코스 안내는 못 보아서 산행기도 쓸겸 이 코스를 선택 했습니다 그러면 저와 함께 올라 가 볼까요? [여성봉이 보입니다] 여성봉은 유명한 봉우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송추에서 오르는 코스로 다녀 간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통등 접근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겠죠. 송추 남능선에서 바라 보는 사패산-중간 가운데 능선은 송추북능선 사패산은 漢北正脈의 마루금이 지나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첫번째 산입니다 사패산은 552m의 높이이며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으로 도봉산과 연결되 있습니다. '포대능선'은 사패능선과 도봉산 자운봉 사이의 능선으로 능선상에 '포 진지'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포대능선'이라고 하는데 국립공원의 공식적 地名 치고는 좀 유치합니다 사패산은 한자로 賜牌山이라고 쓰는데 사패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사연이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조선시대 선조의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 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 오점을 남긴 쪼다리 왕들은 평상시 하는 행동도 쪼다리 바보같습니다 어찌 우리의 국토를 자기 사위에게 지맘대로 선물을 하나요? 닝기리~ 하긴 임진왜란 때 쪽바리가 쳐들어 오니까 한양 버리고 의주로 토낀 놈이니.... 세종대왕이 봤으면 선조 이씨끼 반 죽였을 텐데..... 다른 하나의 설은, 쪼다리 선조가 사냥을 나가려고 신하들에게 사냥 장소를 물색케하여 사패산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많은 산짐승을 사냥한 쪼다리 왕이 기분이 좋아 이 山에게 감사패를 내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賜牌山이란 것입니다 임금이 선물을 줄때 '하사'한다고 하죠? 이 때의 한자가 사賜입니다 "牌(감사패)를 하사 한 山", 즉 賜牌山인 것입니다 이 산을 사냥터로 추천 한놈이 유정량이라나 뭐래나...그래서 사위로 까지 삼고....닝기리~ 어떤 설이 유력하다고 보십니까? 글자 그대로 보면 백번 두번째가 유력한 설입니다 제법 가파른 길을 오릅니다. 숨이 차고 땀이 나는 곳 쯤에는 항상 쉼터가 나옵니다 [쉼터] 첫번째 쉼터에 올라 송추계곡을 내려다 봅니다 계곡 끝에 외곽순환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제법 올라 왔군요. 여기서 가볍게 한잔 했습니다 올라 온 능선이 S자로 너무나 뚜렸하고, 평이합니다 여성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여성봉 오르기가 힘드는군요 젊은 사람들도 오르기 힘드는데 나이 드신분들은 더 힘들겠지요 여성봉이라는 산봉우리 오르는 일이나, 여성을 차지 하기 위해 오르는 일이나... 어느 것이 힘들다구요? ㅎㅎ [여성봉] 여성봉이 보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여성봉은 뒤덮였습니다 오늘도 저 여성봉은 수많은 인간들 떠받치느라고 무지 힘들겠습니다 [여성봉] 많은 사람들이 여성봉을 밟고 지나 가고 있습니다 여성봉을 지날 때 남녀노소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띄고 지나 갑니다 모두 여성의 거시기를 본적이 있는듯이....ㅎㅎ 오죽하면 공식적 지도에도 '여성봉'이라고 표기하겠습니까 산행 들머리에서 여기까지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여성봉] 사람이 없는 틈을 한참 기다리다 한컷에 성공 했습니다. 일요일에 이런 全裸의 女姓峰을 촬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결국 한컷에 성공한것입니다 오로지 '홍어와 무인도' 횐님들을 위해서...ㅎㅎ 어떠십니까? 조금 얼굴 빨개지지않나요? ㅎㅎ 정상적인 사람은 빨개지고 비정상적인 사람은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도~ 저곳은 통행을 제한 시켜 보존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민족이 보전 될려면....ㅎㅎ [여성봉] 여성봉 위에 올라가 촬영했습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또 절묘한 자리에 자라고 있습니다 여성봉의 가운데 부분 뭐라고 하더라? ㅎㅎ 저기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아 다 닳아 없어 질까 걱정됩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 갔을까요? 최소한으로 잡아도 수백만명은 저곳을 한번쯤 밟고 지나 갔을겁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튼튼하게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여성봉입니다. ㅎㅎ [여성봉] 도대체 행열은 끊이지 않습니다 아예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 보며 검토 하는 분이 있어 또 한컷했습니다 하도 웃겨서....ㅋㅋ 뭘 보고 있는 걸까요? 나이도 좀 있는 분이신것 같은데... [여성봉] 남녀노소가 줄을 서서 오르고 내립니다 여성봉을 바라 보고 속만 태우다 돌부처가 된 '부처바위'가 저 쪽에 있습니다 몇천년을 그냥 바라만 보다가 아예 굳어져 버렸다네요 [여성봉] 사람들이 없는 틈을 노려 옆에서도 한컷했습니다 '홍어와 무인도' 횐님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오늘 다양한 각도에서 여성봉의 거시기를 보고 있습니다. ㅎㅎ [여성봉] 어느 곳에서 보나 거시기는 거시기입니다. 남자들은 얼굴이 붉어지지만, 여자분들도 웃고 지나는 것을 보면 확실이 거시기를 닮은 모양입니다. ㅎㅎ [여성봉] 여성봉 거시기 계곡을 올라 오면 뒷쪽으로 더 높은 바위 봉우리가 있습니다. 부처바위 저 바위에 올라 가 "여성봉"을 내려 다 보겠습니다 [여성봉] 제가 왜 이곳에 올라와 여성봉을 내려다 보며 촬영하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됩니까? 가운데 여성봉을 바라 보는 무수한 암봉들이 보이십니까? 벌떡 일어 서서 모두 여성봉만 바라 보고 침을 흘리고 있는듯 하지 않습니까? 정말 한폭의 그림입니다. 아름답고 멋있습니다. 전세계 모든 건설회사를 모두 데려다가 만들려고 해도 절대 만들수 없는 예술입니다 윗쪽에 보이는 봉우리들이 五峰稜線입니다 여성봉 부처바위에서 내려다 본 송추 산행 들머리 송추남능선의 산행길을 잘 알수 있군요 여성봉에서 바라 본 사패산과 우측으로 사패능선, 포대능선....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의 경계가 가운데 폭 파인 고개입니다 여성봉 부처바위 정상에서 오늘 산행을 함께한 '정현채'님 기념 사진을 한컷했습니다 저의 산행기엔 개인 사진이 잘 실리지 않지만 오늘은 여러 컷을 올리고 싶은데... 왜?인줄은 모두 아시죠?ㅎㅎ 저를 그렇게 인정해 주었으니 목숨 바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데 개인 사진 산행기에 올리는거야 엿장사 맘대로 아입니까? ㅎㅎ 정현채님은 국내 굴지의 'H'증권 지점장, 임원까지 하고, 현재 셋톱박스 생산업체이며 코스닥 상장 기업인 'H'社의 감사로 재직 중에 있다는 군요 이런 분이 저의 산행기 볼게 뭐가 있다고 매료되었다고하니 앞으로 더 신중하게 알찬 산행기를 써야겠습니다..에구~휴~ㅎㅎ 여성봉을 지나 五峰으로 갑니다 [五峰] 전망대 여성봉에서 오봉으로 가며 뒤에서 오봉을 담았습니다 신비한 瑞氣가 어림니다 이러니 이산 저산 돌아 다녀도 결국 북한산 만한 산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五峰으로 가는 전망대에서 女姓峰을 내려다 봅니다 女姓峰에서 五峰으로 오는 능선을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五峰 오르는 길에도 암벽구간이 조금 있습니다만 모두 안전시설을 해놔 문제 없습니다 [五峰의 첫번째 봉우리] 五峰의 첫번째 봉우리가 제일 높으며, 산불 감시 카메라가 세워져 있습니다 660m 높이의 오봉은 아시다시피 다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봉산의 대표적 산봉우리 중에 하나입니다 [五峰의 1봉에서 바라 보는 2,3,4,5봉] 기괴하고 장엄하다고 할까요? 바라 보는 감상을 각자 표현 해 보세요 이런 곳 놔두고 총알 맞아 가며 금강산 관광 가는 분들이 안타 깝습니다 금강산 관광 가셨던 분들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얼마던지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도 경비 들이며 외화 낭비하며 멀리 가야 관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암벽을 기어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五峰에서 바라 보는 북한산의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바로 앞의 능선이 漢北正脈의 마루금이 지나는 "상장능선"입니다 상장능선 뒤로 북한산 국립공원의 핵심부인 三角山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수도 서울의 자존심을 내 보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진흥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백제의 근초고왕, 태조 이성계 까지 저 삼각산을 차지하지 않고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차지 하려고 무지무지 노력한 한반도의 중심 山인 북한산입니다 아시다시피 "北漢山國立公園"은 북한산과 도봉산, 사패산 세개의 산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오늘은 도봉산에 와 있으며, 현재 도봉산에서도 2류급에 속하는 五峰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으니 北漢山國立公園에는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五峰] 五峰의 1봉에서 2봉쪽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일반 산객들은 더 이상 갈수 없습니다. '위험지대'이기 때문에 공익 근무요원들이 지키고 강제로 제지하고 있습니다 단, 암벽등반 장비를 갖춘 꾼들은 들어가 모든 봉우리를 오를 수 있습니다 내려가서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 보여 드리겠습니다 [五峰] 五峰의 2,3,4,5봉우리를 가장 가까이서 촬영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장비를 갖춘 암벽등반 애호가들이 곳곳에서 五峰을 즐기고 있군요 저도 다음에 전문가를 모시고 한번 도전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생생한 산행기를 쓰겠습니다 [五峰에서 바라 본 도봉산 정상] 五峰에서 바라 보는 도봉산 정상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두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봉산은 紫雲峰이 가장 높은 정상봉우리로서 740m의 높이입니다 그리고 옆에 萬丈峰이 718m, 仙人峰이 708m입니다 서울의 동남쪽에서 바라 보는 道峰山稜線은 정말 멋있습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능선이지요 [삼거리 이정표] 송추남능선으로 올라 "여성봉"과 "오봉"을 구경하고, 자운봉 방향으로 조금 가면, "송추계곡"으로 하산 할수 있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시간이 없거나 원점 회귀 하실 분들은 여기서 "송추분소"로 하산하면 송추계곡을 따라 50분 정도면 내려 갈수 있습니다 도봉산의 정상인 자운봉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오봉과 칼바위 사이에 이름 모를 봉우리가 하나 있습니다 제법 높은 봉우리인데 이름을 모르겠습니다 이 봉우리를 오릅니다 [무명봉에서 점심 식사] 오봉과 칼바위 사이의 무명봉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우선 경치부터 구경하겠습니다 앞에 보이는 능선이 '칼바위'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가는 "道峰主稜線"입니다 맨 끝의 산봉우리 좌측에 삐쭉 솟은 바위가 그렇게도 유명한 "우이암"입니다 앞으로 저 능선을 따라 하산 할것입니다. "우이암"은 근접 촬영을 해서 자세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나 저나 최고로 전망 좋은 곳에 레스토랑을 차리고 점심 식사를 합니다 이곳을 "홍어와 무인도 레스토랑"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도봉산 레스토랑 - "홍어와 무인도" 정현채님이 저와의 첫만남을 위해 고심해서 준비한 메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홍어"가 눈에 확~들어 옵니다. 길 지나는 산객들이 홍어 냄새를 맡고 좀 달라고합니다. 오늘 도봉산에는 홍어 냄새가 진동하며 특별한 만남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습니다 돼지고기 삶은거와 김치, 새우젖, 마늘, 상추, 막걸리, 소주, 맥주까지...... 저의 블로그 이름이 "홍어와 무인도"이니 아마 제가 분명히 "홍어"를 좋아 할꺼라고.... 정현채님은 홍탁삼합을 준비했습니다 이 고마움을 무어라 표현 하겠습니까.... 저의 산행기를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부터 저로서는 어쩔줄을 모르겠는데 지극정성으로 준비한 홍어 한점을 입에 넣었을 때..그리고 쇠주 한잔 들이킬 때...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부족한 인간도 때론 이렇게 넉넉해 지는구나... 세상은 그렇게 허무한것도 아니고 최진실이 처럼 갈 필요도 없는 제법 살만한 세상이란걸 느꼈습니다 무명봉에서 바라 보는 '칼바위' "홍어와 무인도"를 사랑해 주시는 정현채님에게 졸필인 저의 글보다 제가 좋아하는 詩 한수를 읊어 드리며 고마움에 땜빵합니다 낙화, 첫사랑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 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칼바위'를 우회해서 "우이암"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칼바위] '칼바위'의 모습입니다. 도봉산 주능선상에서 '한북정맥'이 사패산에서 포대능선을 따라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을 따라와 '우의남능선'과 '오봉능선'으로 분기하는 지점에 "칼바위"가 있습니다 이 "칼바위"에서 남쪽으로 한북정맥이 지나는 "도봉주능선-우이남능선"입니다 '칼바위'를 우회해서 "우이암'으로 갑니다 [칼바위 아래에 있는 안부 이정표] 우이암을 향해 날카로운 한북정맥 마루금을 지나 갑니다 경치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도봉주능선의 마루금도 온통 奇岩怪石들로 가득입니다] 칼바위를 지나와 뒤 돌아 보며 칼바위를 조망합니다 늘어서 있는 '칼바위'는 여기서는 '칼'모양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좌측의 봉우리가 이름을 알수 없는 점심식사를 한 봉우리입니다 앞으로 저는 "홍어와 무인도 레스토랑" 봉우리라 부르렵니다 [道峰主稜線] 道峰主稜線에 나란히 있는 봉우리들 - 좌측으로 부터 '칼바위', '주봉',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앞으로 더 자세히 道峰主稜線상의 봉우리에 대해 사진과 설명이 있겠습니다 멋있습니다 꽃가마 타고 시집 가듯 펼쳐지는 道峰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저의 능력으로는 모두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앞으로 이 코스를 몇번 더 와 보고 다시 산행기를 써야 하겠습니다 캬~! 운치 있습니다 어디서 어디 한곳 눈을 땔수 없는 구경거리가 널려 있습니다 이런 곳을 다녀 보지 않고는 다른 산을 평할 자격이 없지 않을까요? [五峰] '도봉주능선'에서 바라 보는 "五峰" 와우~ 죽입니다~!!! 여기서 바라 보니 五峰의 1봉은 두리뭉실하고 2,3,4,5봉이 암봉으로 멋을 더욱 살리는군요 그런데 오봉능선 앞에 능선이 하나 더 있어 여기에선 오봉의 머리부분만 보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전망대의 바위도 절묘합니다. 제가 좀 절묘한 연출을 했습니다..ㅎㅎ 보기 좋죠? [五峰] 夕陽에 물들어 가는 五峰을 줌인 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三國誌의 주인공들이 나란히 줄을 서 있는듯.... 오봉 앞에 능선이 하나 가로 막고 있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道峰山의 정상 - 자운봉이 나무 가지 사이로 웅장하게 보입니다 道峰主稜線의 끝인 우이암 바로 못미쳐 도봉역으로 탈출하는 안부가 있습니다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로 올라 가는 다리 [도봉산 전망대] 우이암으로 올라 가는 다리 중간에 도봉산을 전체적으로 조망 할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이 곳을 놓치면 않됩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봉산이 가장 멋있다고도 할수 있겠습니다 道峰山 主峰인 칼바위,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 칼바위에서 지나 온 '도봉주능선'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전망대에는 꼭 올라야 겠군요 우이암이 있는 봉우리 중턱에서 바라 본 五峰 바라 보는 각도에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보는 五峰의 몸체는 무지하게 커서 장중하게 보입니다 [牛耳巖] 여기 보이는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이 지역의 이름까지 만들어 낸 유명한 바위입니다 "소의 귀"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6-70년대엔 서울 시민들의 여름 피서지이기도 했던 우이동과 우이동계곡이 이 牛耳巖으로 인해 생겨난 이름이니 이 암봉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 암봉인지 아시겠죠? 저도 오랬동안 서울에서 살았어도 牛耳巖을 직접 보기는 처음입니다 확실히 등잔불 밑이 어둡군요 牛耳巖을 돌아 나가며 바라 본 五峰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은 학교때 국어 (고문)시간에 "서울"에 대한 어원을 배웠을 것입니다 서라벌>셔블>서울로 음운변화가 있었다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런 반론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서라벌>셔블>서울은 터무니 없는 말도 않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牛耳巖을 돌아 나가는데 通天門이 있습니다 서라벌>셔블>서울의 서벌은 한자로 徐伐로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현재 우리나라의 '서울'이라는 것이 위치상으로도 문제가 있고 음운변화로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정말로 서울은 서라벌>셔블>서울의 음운변화를 거치며 탄생된 것일까? 저와 함께 추적 해 볼까요? 通天門을 돌아 나가 牛耳巖 정상에서 道峰山 主峰인 칼바위,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을 바라 봅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서울"에 대한 명칭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첫째가 우리가 이미 학교 때 배운 서라벌>셔블>서울이라는 것이고.... 牛耳巖이 있는 牛耳峰에서 바라 보는 牛耳巖 1884년에 일어 난 갑신정변과 그 이후 外勢들의 침탈 음모들이 난무하는 세상을 거치고 결국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한일합방 이후에는 이런 비참한 說도 있었습니다. "러워 고있는 도시니까 서울로 부른다..." 이 說은 백성들의 입에서 나온 한탄의 말이겠지만 이 또한 하나의 說입니다 牛耳巖은 산 아래에서 바라 봐야 "소의 귀"를 닮았다고 느낀답니다 윗쪽에서는 어느 방향에서도 "소의 귀" 모양이라고는 보이지 않는군요 "서울"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정식 명칭으로 사용한것은 해방후 1946년 8월 16일 미국군정하에서 미국식 직제 개편으로 경성부→서울특별자유시로 경기도에서 분리되면서 '서울'이라는 이름이 새로이 탄생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조선 개국과 동시에 한성-한양이라 불리워져 왔고 일제 강점기 시대엔 "경성"으로 명명되어 왔습니다. 牛耳巖은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대해 제가 여러 참고 문헌들을 읽어보고 그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설을 지금 부터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특히 백승현씨가 쓴 '어디서 마음을 구하랴'라는 책을 주로 참고하여 알려 드리도록하겠습니다 牛耳南稜線은 암릉지대로 릿지코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회로를 이용해 하산 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왜 한자가 없을까? 서울은 한문상의 표기가 없고 대신에 한양(漢陽) 또는 漢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천도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 건국과 함께 탄생된 도시가 오늘의 '서울'이 되었는데 탄생 될때의 이름이 漢陽이고 한양의 외곽에 을 쌓고 난 다음에 漢城으로도 불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을려면 漢陽의 탄생 과정을 추적해 보아야합니다 牛耳南稜線을 하산하고 있는데 이곳 산행을 많이 하신듯한 산객들이 길안내를 해줘서 쉽게 내려 갈수 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다음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으려 할 때 그 성곽을 쌓는 기준선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던 어느 날 태조 이성계가 삼봉 정도전, 무학대사와 함께 협의를 하고 있는데 큰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한양을 둘러 싸고 있는 산능선을 따라, 능선 밖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고, 능선 안쪽에는 눈이 조금 쌓여졌답니다 그 상황을 눈여겨 살펴본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무학대사는 성곽을 쌓을 윤곽을 그리고 눈이 많이 쌓인 곳과 적게 쌓인 곳의 경계선을 따라 도성을 쌓게 했다고 합니다 한양과 한양 밖에 내린 눈이 경계선을 그어 준 것입니다 이렇게 쌓은 도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북악산-인왕산-남산-동대문에 있는 낙산을 연결하는 것으로 둘레가 40리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한양의 울타리를 만들었다고하여 눈雪자를 써서 '설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은 도성으로 한 때 설성雪城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다시 '설울'로 불리워 지면서 '설울'의 "ㄹ" 복음이 묵음화 되면서 서울로 발음 되어진 것이랍니다 요약하자면 서울雪울타리 →雪울 → 설울 →서울로 된 것이라 합니다 저는 이 이론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생각 되며 또한 이것은 각종 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牛耳南稜線에도 벌써 그림자가 지고있습니다 유격훈련 코스를 내려 갑니다 牛耳巖稜의 유격훈련코스는 여기 한곳 뿐이었습니다 쉽게 어려운 코스를 탈출하였습니다 牛耳巖稜의 유격훈련코스를 탈출하니 바로 쉼터였습니다 앞에 보이는 분들의 길안내와 牛耳巖에 얽힌 이야기들도 많이 들을수 있었습니다 저의 블로그 '홍어와 무인도'를 알려 드렸는데 찾아 오셨는지.... 길안내 감사 드림니다. 언제나 건강하게 즐거운 산행 하시기 바람니다 [우이동 그린파크 앞] 우이동 버스 종점으로 내려 오니 어느듯 해는 지고 어둠이 내려 앉습니다 저의 산행기를 읽고 감명 받았다고 저와의 人緣을 만들기 위해 다가와 주신 정현채님에게 감사를 드림니다 山은 언제나 모두에게 가식을 벗게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어 주는가 봅니다 [오늘 산행 개념도] 보라색선이 오늘 지나온 길입니다

파란문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無等을 기다리며 無等山을 오르다  

          너와 나 비교해 무었하랴
          온갖 욕심 다 가지고 살아 가면서 아닌척하는 사람들아 ~
          無等山으로 가라
          손바닥 안에서 넙죽넙죽 대며 잘난체하며 사는 사람들아 ~
          無等山으로 가라
          그 곳엔 等數가 없으니 너와 나 비교되지 않는다
          똑같이 한걸음 한걸음 오르지 않고는 無等을 알수 없고
          똑같이 땀방울 흘리지 않고는 오른이의 감상을 접할수 없도다
          無等山 장불재에 펼쳐지는 육천오백만년의 비밀
          그 비밀이 '無等'이로다
                                 파란문

     금년도 벌써 시월로 접어 들어 어떤이들은 가을맞이로 싱글벙글하고
     어떤이들은 가는 시간을 매몰차게 느껴며 한순간 한순간을 아끼려합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 시월에도 모교 산악회 '徽山會'를 따라
     民主化의 聖地 - 빛고을 光州의 鎭山 無等山을 찾아 나섰습니다
          
     [무등산 공원관리 사무소 - 원효사 앞]
     무등산의 높이가 1186.8m이라 하니 무척 높은 산입니다
     1186.8m의 산을 오르려면 보통 실력으로는 많은 시간이 걸리며, 힘도 듬니다
     그러나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광주시내의 교통체증을 어렵사리 뚤고, 무등산을 마냥 올라갑니다
     3일간의 황금연휴 첫날인 10월 3일(금)이라 교통체증으로 12시가 되어서나 광주에 도착하여
     시간이 없어 등산코스를 단축시킬려는 집행부의 의도가 있는지 의심할 정도로
     무등산 중턱까지 버스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곳 - 공원관리사무소 - 원효사 앞이 일반 등산인들을 위한 산행 들머리였습니다
     꽁짜로 해발 450m정도까지 올라 와서 산행을 시작하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1186.8m를 낮 12시에 출발하여 등정하고 서울까지 다시 간다는건 누가봐도 무리였는데
     이렇게 450m를 깍아주니 북한산 비봉 정도 오르는 기분으로 올라 갈수 있었습니다
     
     [산행 들머리 - 공원관리 사무소 앞]
     산행 들머리에서 보이는 무등산이 그 높이와 크기를 자랑하듯 폼잡고
     '흐흠~ 아해들아! 빨리 오너라~'하는듯합니다
     '짜씩~! 無等이라 해 놓고  오르기도 전에 벌써 等數 메기며 사기를 죽이는군~'
     '그러나 오늘 분명 너와 나 無等임을 증명하고 가리라~!'
     
     [준비운동]
     약 120여명의 교우들이 산행 준비 운동을 합니다
     無等山과 無等이 되기 위해선 준비운동을 많이 해야 겠죠? 
     
     [준비운동]
     무등산 중턱에서 하는 체조는 여느 때와 달리 신중해 보이는듯했습니다
     無等山과 맞짱뜨기 위해...
     
     [공원관리소 앞 이정표]
     오른쪽 장불재로 올라 무등산을 한퀴 삥 돌아 규봉암을 거쳐 
     좌측 꼬막재로 내려와 다시 이곳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입니다
     
     [산행도]
     붉은 선이 오늘 산행코스입니다
     
     [산행 들머리]
     교통체증으로 이곳 도착이 다소 늦어 서둘러
     무등산 산행 들머리를  출발합니다
     무등산은 정상까지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있어 차도를 따라 올라 갈수도 있더군요
     등산로는 앞에 보이는 자동차가 있는 곳의 좌측으로 나 있습니다
     12시 1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등산로 입구]
     車路가 아닌 등산로는 좌측으로 나있습니다
     대부대가 이동을 시작합니다
     다른 여느 산악회와는 차림새부터 차이가 납니다.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핵교 출신 다웁게 깔끔하고 세련돼 보임니다만
     산에 가면 산을 잘 타야지, 산에 가서 페션 자랑이나 수영실력 자랑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산행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유심히 지켜 보겠습니다. ㅎ ^*^
     
     등산로는 車路를 가로질러 감으로 車路로 가는것보다 시간은 많이 단축됩니다만
     경사도가 있어 힘은 많이 듭니다
     
     [늦재 삼거리]
     등산로를 조금 오르면 돌아오는 車路를 다시 만나고
     車路를 건너 다시 등산로로 접어 듭니다
     
     [늦재 삼거리] 해발 490m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등산코스는 무척 단순했습니다
     공원관리사무소에서 '동화사터'까지가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었고
     '동화사터'에서 '중봉' - '장불재'까지는 거의 평지였으며
     장불재에서 '꼬막재'까지는 무등산의 옆구리를 질러 가는 코스이고
     꼬막재에서 다시 공원관리사무소까지는 내리막이었습니다
     길찾기도 쉬워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었습니다
     단순 간단한 무등산 등산코스 - 어쩌면 단순 무식한 코스란 느낌도 들었습니다
     
     동화사터까지는 제법 경사가 가파랐습니다
     그러나 선배 일수록 잘 오르시는데
     후배들이 오히려 땀을 더 흘리는 듯했습니다
     휘산회에 참가하시는 선배님들은 오랫동안 등산을 즐겨 오신 경험이 많은 분들이실테고....
     후배들 - 특히 7자 기수들이 땀을 많이 흘리는 듯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엔 7자 기수들은 한참 세상살이에 몰두해야하는 사십대 나이이다 보니
     평상시 운동보다는 벌어 먹고 사는 문제에 치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임에도 선배님들 보다 더 힘들어 하는듯합니다
     그래도 '휘산회'에 참가하는 후배들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합니다
     세상살이에 바쁜 틈을 아껴 이런 산행에 참가하려는 그 의지가 보통 정신상태가 아니고는
     저의 경험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행의 즐거움' - 표현이야 쉽지만 젊었을 땐 쉽고 간단한 얘기가 아니죠
     늙어 봐야 젊음의 의미를 안다는게 산행을 해봐야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는군요
     
     여느 산에나 소위 '너덜'이라고 하는 '너덜겅'은 있습니다만
     무등산엔 더 많은 듯했습니다
     너덜을 조금 정비해 등산로를 만들어 놔 걷기에 도움이 많이 됬습니다
     
     無等이란 반야심경의 절대평등인 無等等에서 유래된것이라고 하는데 
     평등이상의 평등 즉, 完全한 平等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完全한 平等을 향한 노력
     독재정권에 맞짱 뜬 光州市民들의 平等主權을 향한 투쟁은
     세계사에도 남는 자랑스런 민주화 운동이라 생각됩니다
     빛고을 光州의 아픔과 기쁨을 감싸며 묵묵히 우뚝 서 있는 무등산은 
     산 모양새처럼 어머니와 같은 넉넉한 포근한 산인 듯 하더군요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100만이 넘는 인구가 있는 도시내에 
     이처럼 1,100미터가 넘는 산이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답니다. 
     
     [동화사 하단]
     1시 10분에 이 곳에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이곳까지 55분이 걸렸군요
     
     [동화사터]
     동화사 하단이라는 이정표에서 15분 정도 오르막을 올랐습니다
     肉山의 숲터널을 뚤고 오르느라 외부 전망은 커녕 하늘 한번 쳐다보지 못했는데
     이곳 동화사터에 오니 가슴이 확 터이며 天地가 열리는 듯합니다
          
          [동화사터 이정표]
          오늘 등산 오르막 고생은 여기서 1시간 10분만에 싱겁게 끝나더군요
          하지만 트랙킹이 약 다섯시간 정도 더 있으니 힘들기 보다는 다리가 아프더군요
          동화사가 얼마나 큰 절이었는지 관심은 '동화사'라는 절이었습니다만
          어느 곳에서도 설명 안내판을 볼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동화사터에서 바라 보는 빛고을 광주시내]
     光州市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光州廣域市의 면적은 501.31㎢라 하며  인구는 142만명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라는군요
      光州 사람들은 여러 분야에서 자부심을 많이 갖고있어
      '전라도 광주'라고 말하는 걸 매우 싫어 한다는군요
      光州는 光州이지 '전라도 광주'가 아니라는거죠.
      그러면서 서울 사람들에게 '경기도 서울'이라고 하면 좋겠냐?하더군요 ㅎㅎ 
     한때...지금도 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地域感情이 팽배하던 시절에
     光州나 전라도 사람들 중에 부모님 고향은 전라도인데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은 서울사람이라고 술먹다 우기는 사람들이 좀 있었죠?
     그때 제가 말 한마디에 조용하게 만들었는데....ㅎㅎ
     "진돗개가 서울 오면 서울개 되냐?  진돗개는 서울에서 태어 나도 진돗개라구~"
     
     ['동화사터'라는 곳에서 바라 본 '중봉'과 무등산 정상]
     동화사는 아까 '동화사 하단'이라는 곳에서 걸어 이곳까지 15분 걸렸을 정도로 먼데
     이곳에서 다시 사진의 저 앞 중간의 다소 흰색을 띄는 억새가 많은 조그만 봉우리까지
     동화사가 있었다니 얼마나 큰 절이었나 짐작케 했습니다만.....
     
     동화사터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뒤 따라 오는 분을 자연스럽게 촬영해 저의 산행기에 올립니다
     저의 산행기엔 개인 사진은 잘 올리지 않는다는것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번 '무등산 산행기'에 특별히 이 사진의 주인공들을 소개해 드림니다
     특별히 이분들을 올리는 이유는 아마 몇몇분들만 아시리라...ㅎㅎ
     "여인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을수 있고
     사나이는 자기를 인정 해 주는 이를 위해 죽을수 있다" ㅎㅎ
     
     중봉을 향하여 갑니다
     앞에 방송송신탑이 있는 봉우리가 '중봉'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바와 같이 무등산은 중봉과 좌측의 천왕봉이 있는 무등산 정상으로
     크게 두 봉우리로 나눌수 있을듯합니다
     
     [동화사터]
     옛날 '동화사'가 얼마나 큰 절이었는지 중봉이 있는 이 산마루는 '동화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산에 억새가 널려있으면 그곳은 불이 났었던 곳이랍니다.
     물론 전부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거의 대부분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이곳은 분명 동화사라는 엄청 큰 규모의 절이 있었고, 그 절은 화재로 소실 되었을
     가능성이 거의 100%일것입니다.
     
     중봉 근처에 와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옛 동화사터에 구름지어 피어있는 억새가 부귀영화 흥망성쇠를 알려 주는듯하군요
     이곳에 언젠가 산불이 났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방송 송신탑]
     중봉에는 방송송신탑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등산객들의 위치도 알려주고있습니다
     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으니 여기까지 1시간반이 걸렸군요
     
     [중봉의 송신탑이 있는 곳에서 바라 보는 무등산 정상]
     무등산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김덕령 장군'으로  유명한 곳이더군요
     김덕령장군을 '무등산의 사나이'라고 한다는군요
     앞에 보이는 무등산과 중봉 사이의 원효계곡 중간쯤에 "주검동"이라는 곳이 있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전인 1590년에 이미 國難을 예견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
     김덕령 장군이 이곳에 세개의 대장간을 만들어  칼과 창, 화살, 갑옷등 무기를 만들고
     장정들을 모아 전투훈련을 시킨 곳이랍니다
     '주검동'은 죽음을 의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만들었다는 鑄劍洞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계곡에는 쇳덩어리가 출토된다는군요
     또한 "광주읍지 고적조"라는 책에는
     "주검동은 무등산 서석대 밑 계곡에 있는데 김덕령장군이 거사할 때 여기서 칼을 치니 
     뇌성과 같은 소리가 산에 울리고 흰 기운이 계곡에서 하늘에 솟아올라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기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무등산 정상]
     무등산 정상을 줌인하였습니다
     무등산 정상은 天王峰, 地王峰, 人王峰등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벌써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봉우리 이름에서 무등산은 "天地人"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것입니다. 오로지 제 개인 생각입니다만....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은 평등"하다는걸 상징하는 듯 합니다
     한국인들의 애창곡 '울고 넘는 박달재'에 나오는 천등산. (천둥산으로 아는 분들도 많더군요)
     제천 넘어가는 박달재 고개 위에 있는 이 천등산은 노래 때문에 '천등산'만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으나
     天登山, 地登山, 人登山 세개의 산이 서로 삼각형을 이루며 天地人山으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우리나라의 '천하명당'중에 하나라고 옛부터 首都를 세울 곳으로 수없이 검토된 곳이랍니다
     여기 무등산의 정상 봉우리도 天,地,人을 의미하니 예사스럽게 보이지않는군요
     
     중봉의 방송송신탑에서 멀리 장불재 위 송신탑을 바라 봅니다
     무등산이 높고 전라남도의 중앙부에 있어서인지, 모든 방송국의 방송송신탑과
     이동통신회사들의 무선통신 송수신탑들이 모두 모여 있더군요
     自然美를 심히 홰손시키고 있습니다만, 이정표 역활 많큼은 확실히 하고 있더군요
     
     중봉의 남쪽면을 즐기는 사람들
     무등산의 증심사와 조선대학교가 있는 방향을 바라 보았으나
     엷은 안개로 잘 보이지 않는군요
     
     중봉의 방송송신탑에서 바라 보는 경관
     멋쪄부려~   우웅이 아~~범 멋쪄 부려~
     "갈대와 억새"
     구분 못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오늘 이 기회에 확실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갈대와 억새"는 모두 "외떡잎식물 벼목 벼과의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갈대와 억새" 차이점은
     "억새"는 들판이나 산에서 자라며 머리(꽃수술)가 비단결 같이 부더럽고 하얗습니다
     그리고 키가 1~2m로 갈대에 비해 많이 작습니다. 무등산에 있는 것은 모두 '억새'입니다
     "갈대"는 냇가, 습지, 모래밭에서 주로 자라며 키가 2~3m로 사람 키 높이 보다 높아
     억새보다 훨신 크고, 머리(꽃수술)가 적갈색을 띄고 있습니다.
     영어로 reed라고 하는게 갈대이며, 줄기는 수공예품이나 돗자리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합니다
     
     눈부신 억새밭에서.....
     무등산의 억새밭에 오니 하얀 눈이 내린 겨울 같았습니다
     햇빛에 빤짝이는 억새꽃을 보니 정 일근 시인의 詩가 생각 납니다

                           가을 억새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중봉의 군부대입구 삼거리 봉우리]
     무등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수 있는 평이한 산입니다
     칠천만년의 풍상을 격으며 살아 온지라... 산은 늙어서 어느 곳이나 모진데 없고, 
     산은 온통 둥글고 부드럽습니다만 
     몇곳엔 질긴 수명을 자랑하며 솟아 있는 늙은 柱狀絶理가 서 있습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무등산 정상을 바라 봅니다
     天地人 세개 봉우리가 있는 정상부 '서석대'와 오른쪽 '입석대'가 있는 봉우리가 잘 보입니다
     앞에 나있는 길이 있는 곳엔 옛날에 군부대가 있었는데 산객들을 위해 철거했다고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선 자화자찬하는 안내판이 있는 곳이 실제 '중봉'의 봉우리인듯합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뒤돌아 본 중봉의 방송 송신탑]
     언제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는지 잊어 버리고
     펼쳐지는 억새평전을 감상합니다
     이곳에 못 오신 분들은 이 산행기를 보며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이번 기회에 따라 갔다 오는건데...닝기리~" ㅎㅎ
     "다음 천관산 산행에는 꼭 따라 붙어야지~!"라고 결심 맹세하고 있습니까? ㅎ
     11월 첫번째 일요일에는 이 근처 '천관산'을 간답니다
     저도 참가 할 예정이니 많이 오세요~~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내려다 본 증심사, 조선대 방향]
     토끼등 중머리재에서 오는 길이 이곳에서 만나더군요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가야할 옛 군부대 자리 억새밭]
     無等山은 백제이전 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으로 불리웠고,
     통일신라때는 무돌의 이두音인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표기하다가,
     고려때 부터 瑞石山이라는 별칭과 함께 無等山으로 불리게 된것으로 본답니다
     先人들의 무등산 산행기는 대부분 遊瑞石山記로 되있습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무등산 억새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평화롭습니다. 
     감상을 하며 산행을 해야하는데 무조건 전진만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 억새길은 장불재에서 바라 보니 거대한 '댐'처럼 보이더군요
     기억해 두셨다가 제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세요~~기억력 테스트
     
     옛 군부대터를 건너와 중봉 군부대입구봉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억새와 함께 부더러운 늙은 능선이 평화롭군요
     무등산이 無等을 나타내 주는 듯.......
     
     [장불재 가는 길]
     중봉에서 옛군부대터를 건너 오니 공원관리사무소 입구에서 오는 車路를 만납니다
     많은 산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장불재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중봉 능선]
     지나 온 억새 길이 '댐'같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장불재 가는 길]
     초등학생들까지 무리를 지어 장불재까지 올랐더군요
     완만한 차로를 따라 15분정도 갑니다
     
     [장불재]
     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장불재가 나타납니다
     
     [장불재]
     이 고개는 무등산의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가는 고개이더군요
     오른쪽이 '스님 머리'를 닮아 '중머리재'라고 하는 증심사로 가는 고갯길로 가는 길이며
     직진이 호남정맥길인 '백마능선'과 '안양산'으로 가는 길이며
     왼쪽이 '지공너덜'과 '규봉암'으로 해서 꼬막재, 공원관리 사무소로 돌아 가는 길입니다
     
     [장불재]
     장불재는 한자로 "長佛재"입니다. 
     장불재는 무등산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 공원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더군요
     해발 900m 이니 정상까지는 120m 정도의 높이로 더 가야 겠습니다
     불교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長佛재'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했습니다
     교우님들은 각 기수별로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 산행과 휴식, 식사를 하더군요
     저는 무등산을 감상하며 사진 촬영을 하느라 외톨이로 산행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행을 하면 잡담하느라 산행기를 쓰는데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한 곳에서는 '홀로 산행'을 하고 그냥 놀때에만 어울릴수밖에 없습니다
     
     [장불재]
     장불재에서 바라 보는 무등산 정상부
     無等山이 있는 자리는 원래 거대한 '湖水'였답니다
     육천오백만년전 호수에서 엄청난 요동을 치며 火山이 솟아 올랐답니다
     검은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고 붉은 용암이 솟아 흘러내렸답니다. 
     호수 위로 흘러 내리는 용암은 급격한 온도변화로 냉각수축하여 용암은 수직의 균열이 생기고,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겪으며 지금의 無等山과 瑞石臺, 立石臺, 廣石臺(圭峰)등의  
     남한 최대의 柱狀節理帶를 만들어 냈습니다. 
     무등산은 유문암과 안산암, 석영안산암 등 화산활동 때 분출된 용암으로 이뤄져 있으며, 
     특히 석영안산암질로 이뤄진 柱狀節理帶는 해발 1,100미터를 전후해 형성이 돼 
     당시 이 일대가 호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입니다
     화산암은 일반적으로 현무암, 즉 개스 분출로 구멍이 숭숭 난 물에도 뜨는 돌들이 주를 이룹니다만
     무등산 화산은 원자탄처럼 펑하고 폭발한것이 아니라 호수에서 용암이 분출되며
     호숫물로 바로 냉각수축하여 쌓여지며 견고한 석영안산암이 주를 이뤄
     瑞石臺, 立石臺, 廣石臺(圭峰)등의 柱狀節理帶가 만들어 질수 있었답니다
     오늘 무등산의 역사와 지질등 별의 별것들을 다 공부하지요?
     이런 걸 저는 어떻게 잘 아느냐구요? ㅎㅎ
     제가 우리나라 최대의 모 광업회사 해와자원개발실에 근무한적이 있어 지질에 대해
     쬐끔 줏어 들은게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 검토를 거쳐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瑞石臺]
     瑞石臺와 立石臺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 늙어서 온몸이 부실해 고사위기에 놓여있답니다
     그래서 주로 희귀 동식물들에게나 지정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천연기념물'로 돌덩어리인
     瑞石臺, 立石臺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늙어 비틀여져 가는  瑞石臺, 立石臺에 일반인 접근금지를 시키고, 
     여러 보호망 시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갈수 없어 할수 없이 줌인하여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瑞石臺가 정상부에 있어 고려시대 이후 상당 기간을 무등산을 瑞石山이라했으며
     수많은 先人들이 무등산 산행기를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1533(중종 28)~1592(선조 25).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6 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싸우다 전사한 고경명(高敬命)장군이 쓴
     「서석 유람록遊瑞石錄」이 유명합니다
     또한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茶山 정약용선생이 쓴 遊瑞石山記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저의 이 山行記도 후대에 유명해지겠죠? ㅎㅎ
     
     [立石臺]
     瑞石臺와 立石臺를 보호하기 위한 공사로 가까이 가 볼수 없어 무지무지 아쉬웠습니다
     이제 언제 다시 무등산을 찾아 올지 모르기에 왠만하면 출입금지를 무시하고 갔다 오려했습니다만
     무단으로 들어 가다간 벌금이 오십만원이라고 경고하고 있어 돈이 아까워 포기했습니다 ㅋㅋ
     우리나라에는 한탄강과 포항, 제주도 중문 앞 바다 등등 여러 곳에 주상절리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柱狀節理帶중에는 뭐니뭐니해도 금강산 해금강의 총석정이 최고라고하죠?
     그곳에 저는 못 가봤습니다만 사진과 '겸재 정선'선생의 그림으로 봤습니다
     송강 정철선생이 쓴 그 유명한 '관동별곡'에서 이렇게 총석정의 柱狀節理를 노래하죠
     고등학교 고문시간에 골머리를 아프게 했던 송강 정철선생의 글 소개합니다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은 모두 뭔 뜻인지 알겠지만, 
     불행이도 핵교 때 시간이 없어 공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실력없는 제가 해석을 해 드림니다
     친절도 하셔~
     금강산 총석정에 柱狀節理가 우뚝 솟아 있는 광경을 보고 송강 정철선생이 노래 하는 대목입니다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에 올라가니, 
        옥황 상제가 거처하던 백옥루의 기둥이 네 개만 서 있는 듯하구나. 
        옛날 중국의 명장(名匠)인 공수(工垂 )가 만든 작품인가? 
        조화를 부리는 귀신의 도끼로 다듬었는가? 
        구태여, 육면으로 된 돌기둥은 무엇을 본 떴는가?
     해석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만한 사람이 없을터이니 믿거나 말거나 제 맘대로 해석했습니다 ㅎㅎ
     (마지막줄 '구태여 육면으로 된 돌기둥은 무엇을 본 떴는가?'는 남자의 그것을 은연중 암시? ㅎㅎ)
     
     [장불재의 KBS 송신소와 KT 이동통신 송수신철탑]
     장불재에서 '호남정맥'의 마루금을 잇는 '백마능선'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송수신소
     
     [KBS, KT 송수신소에서 바라 본 무등산 정상부]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이 쓴 世界最古最高 인문과학지리서 "택리지"에 따르면 
     無等山은 산 위에 긴 바위가 가지처럼 뻗은 것이 수십개나 공중에 배열되어 있어 
     훌륭한 '홀'같고 산세가 지극히 준엄하여 온 도를 위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홀'은 왕과 사대부가 정복 차림으로 큰 행사나 제향을 할때 손에 쥐는
     길죽한 주걱처럼 생긴 것으로서, 요즈음 군대 지휘관의 지휘봉 같은 역활을하는 것이 '홀'입니다
     왕은 옥으로 만든 '홀'을 쥐었는데 이것을 '圭'라하고 
     그 밑의 신하들이 쥐는게 '홀'이었습니다.
     앞으로 갈 규봉(圭峰)이 玉으로 만든 '홀'처럼 생긴 돌들로 이루어져 圭峰이라합니다
     규봉에서 다시 설명 드림니다
     
     [KBS, KT 송수신소에서 바라 본 중봉과 옛군부대터 능선]
     중봉에서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옛군부대터의 능선이 '댐'처럼 보이지 않나요?
     기억하세요? 중봉에서 기억해 두시라고햇는데...기억력 테스트 한다고...ㅎㅎ
     억새와 함께 멋진 풍경을 연출합니다
     이곳에 집짓고 살고 싶어요~
     
     동남쪽 방향으로 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백마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사진에 보이는 봉우리가 '안양산'인줄 알았는데....
     저 봉우리는 백마능선의 한 봉우리이고 '안양산'은 저 봉우리 뒤에 있더군요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시작하여 전북 장수의 장안산을 거쳐 서북쪽으로 뻗어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으로 이어져 무주의 주화산까지 약 65~70Km에 이르는 줄기가
     '금남호남정맥'입니다.
     '호남정맥'은 '금남호남정맥'의 무주의 주화산에서 다시 南西방향으로 내려가 내장산을 만나며 
     내장산에서 계속 남진을 하여 장흥의 재암산에 이르며, 무등산 천왕봉과  장불재를 지나
     저 백마능선과 안양산을 지나갑니다
     다시 남해를 끼고 동북쪽으로 진행을 하다 광양 백운산까지 이르는데 
     이 산줄기를 '호남정맥'이라하며 거리는 약 380~420Km이르는 긴 정맥입니다
     '호남정맥'은 섬진강을 감싸고 뻗어내리는 산줄기를 말합니다
     즉 백두대간과 호남정맥 사이에 '섬진강'이 있는 것입니다
     
     [장불재에서 줌인하여 바라 본 立石臺]
     고경명(高敬命)장군이 쓴「서석유람록遊瑞石錄」에 나오는 立石臺에 관한 글을 인용해 드림니다

     "석양에 立石庵에 닿으니 양사기(중국 명나라 초의 문인, 정치가)의 시에 이른바 十六峰藏寺라는 곳이
     바로 여기로구나 싶다. 암자 뒤에는 마치 봄에 죽순이 다투어 머리를 내미는듯하고,희디 희어서
     마치 연꽃이 처음 필때와도 같다. 멀리서 보면 마치 높은 관모를 쓰고 몸이 큰 귀인이  단정하게
     홀을 쥐고 공손히 읍하는 모습같기도하다. 가까이 가서 보면 마치 철옹성과도 같은 튼튼한 요새에 
     일만의 병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 (중략)
     생각컨데, 혼돈에서 천지개벽이 이루어질때 기가 무심하게 엉켜 우연히 이렇게도 괴상하게 만들어진것일까?
     아니면 神工鬼匠이 바람과 우뢰를 명하여서 이런 교활한 농간을 부린 것일까?  아 아, 누가 구어냈으며
     누가 지어부어 만들었는지 , 또 누가  갈고 누가 잘라냈단 말인가? 
     아미산의 옥으로 된 문이 땅에서 솟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성도의 석순이 海眼을 둘러 진압한 것이 아닐까?  알수 없는 일이로다"

     
     [광주와 화순 경계]
     2시 20분에 장불재에 도착하여 '백마능선'을 갔다 오고
     장불재에서 머무르며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있다가
     3시 20분에 장불재에서 규봉암으로 갑니다
     백마능선에 있는 900m가 넘는 멋진 봉우리가 '안양산'으로 착각하게합니다
     장불재를 넘어서면 전남 화순군입니다
     이 고갯길은 단순히 등산로가 아니고 옛부터 일반인들이 광주와 화순을 넘나드는 지름길 고개였다는군요
     
     장불재를 지나 규봉암으로 가는 길은 무등산 옆구리를 가로질러 가기에
     경사가 거의 없어 걷기에는 편합니다
     
     무등산은 肉山이기에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숲입니다
     
     [너덜겅]
     일반적으로 우리가 '너덜'이라고하는 말은  '너덜겅'이 정확한 말이더군요
     너덜은 국어사전에 분명히 '너덜겅'의 속어로 나와 있습니다만 모두 너덜이라하니 저도 너덜이라 합니다
     또한 사전에는 '너덜'이 '너덜거리다'의 어간으로 나와있습니다
     무등산 정상부의 柱狀節理가 무너져 산 계곡으로 솥아져 내린 것이 '너덜', '너덜겅'입니다
     
     무등산에는 너덜지대가 크게 '덕산너덜'과 지공너덜'이 있는데 
     이곳이 지공너덜지대입니다
     무등산의 동쪽은 대부분 너덜지대이며
     장불재에서 규봉사이의 모든 너덜이 "指空너덜"입니다
     
     장불재와 규봉암 사이에 조그만 암자와 약수터가 있습니다
     쉬어 가기도 좋아 사람들로 북적댐니다
     
     [지공너덜]
     너덜이 가장 많이 쏟아져 있는 곳에 "指空너덜"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설명의 내용을 간추리면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명명한것으로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개의 돌을 깔았다"라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안내판을 만들어 설치 할때에는 아무리 전해 오는 전설이라해도
     또 아무리 재미로 하는 얘기라 해도, 어느 정도는 사실에 가까운 안내를 해야하는데
     이것은 터무니 없는 속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지공너덜]
     '指空스님'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指空스님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인디안'입니다. 
     指空스님의 본명은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提納薄陀)"로 인도의 마가다국(摩竭提國) 출신입니다
     당시 인도에는 불교가 거의  몰락하고 힌두교가 성행 할때여서 
     아직도 불교를 믿는 나라로 탈출여행을 한것인데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원나라 수도 연경을 거쳐 충숙왕 13년(1326년)에는 고려에 들어와 
     불교를 國敎로 믿는 고려에서 ‘환생한 부처’로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은 우리나라에 약3년 정도만 머물렀습니다
     바빠서 이곳 저곳 다닐 시간도 없었고 특히 당시의 교통수단으로는 개성에서 광주까지 오기도 힘들었고
     오지도 않았으며, 무등산에 들어가 굴 속에서 좌선 수도할 여가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이 양반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우리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指空의 행적은 '목은색'이 지은 '지공의 회암사 부도비명 병서'에 자세히 전합니다
     '회암사(檜巖寺)'는 경기도 양주시 등산코스로도 유명한 천보산에 있으며,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대의 절이었는데 소실되어 현재 복원하기 위한 발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와 碑가 보물로 지정되어 남아 있습니다
     기록에는 '지공스님'의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하성(蝦城)에서는 이교도들로부터 얻어맞아 이가 부러졌으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속하는 대독하(大毒河)에서는 도적을 만나서 알몸으로 도망가기도 했답니다
     그도 많고 많은 이 세상의 한 인간이었을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불교도들은 저의 이런 글들을 싫어하시겠지만 아무리 종교라 해도 뭘 좀 알고 믿어야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민족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도 
     많이 뒤떨어지는 '인디안'을 神으로 모시는 분들이 엄청 많습니다. '석가모니'도 인디안이죠?
     
     [지공너덜]
     고려시대 말년에 지공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을 배운 제자가 유명한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입니다
     지공스님은 우리나라에 3년 정도만 머무르고 중국의 연경으로 갔기에 이들은 지공스님을 따라가
     공부하고 지공스님이 죽자 고려로 돌아와 '나옹선사'는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고,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策師가 되어 조선 건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지요
     사실 기록으로 보면 공민왕의 王師인 나옹선사가 개성에서 왕을 보필 하기도 바빳을 텐데
     멀고 먼 무등산 산삐알 너덜지대까지 와 그 돌더미 속에서 수도 할 시간과 여유가 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직무유기죄'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나옹선사'가 쓴 유명한 시조는 저도 무척 좋아 합니다
     '홍어와 무인도'를 사랑해 주시는 횐님들을 위해 특별히 읊어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말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普照石室]
     지공너덜 사이엔 한국 불교에 큰 빛을 남긴 普照國師가 송광사를 창건하기 전에
     이곳에서 좌선했다고해서 普照石窟이라고 한다는군요
     아니 이런 사람들은 건강에도 좋지않은 더럽고 어둡고 습기 많은 굴같은 곳에 들어 가서 座禪을 할까요?  
     禪이 아니라 오히려 병걸려 죽겠는데...
     거지들이나 들어 가 사는 곳에 國師가 궂이 들어가 수도 할 까닭이 있을까요?
     
     [廣石臺-圭峰]
     무등산의 三大 柱狀節理帶중에 하나인 圭峰에 왔습니다
     그 양반들 이런 곳에서 座禪 修道를 하면 얼마나 좋아!~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곳을 바로 옆에 두고 빙신들 굴속에서 뭘하냐구~ㅎㅎ
     이해가 않되죠? ㅋㅋ
     그런데 대략 제 생각에는 후세의 땡중들중 상당수가 
     위대한 스님들이 자기와 무슨 큰 상관이 있는 것처럼 묶어 제자인척해야
     信徒들이 모이니 벌어 먹고 살기 위해 先師들을 팔아 묵은게 아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은 '원효, 의상'이 지었다고 자랑하는데, 
     원효와 의상은 중이 아니고 절지으러 다니는 목수입니까? 이산 저산 돌아 다니는 산꾼입니까?
     너 나 할껏없이 원효 의상이 거의 모든 절을 창건했다고 하니 원~
     이쪽 동네는 또 지공이니 나옹이니를 많이 팔아 묵고 있군요
     
     [廣石臺-圭峰]
      고경명(高敬命)장군이 쓴「서석 유람록遊瑞石錄」에 나오는 廣石臺-圭峰에 대한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산을 휘감아 동쪽으로 나오니 곧 圭峰이다. 
     '김극기'의 "비단을 마름질하여 암석 모양을 만들었고, 홀을 쪼아 봉우리의 기세를 이루었다"라는 
     싯구가 정말로 헛말이 아니었다. 돌의 기이하고 오래됨이 立石과 대등하지만, 
     그 자리의 넓고 높음과 모양의 빼어남과 훌륭함은 역시 立石이 감히 흉내 낼 바가 아니었다"
     
     [廣石臺-圭峰]
     "천관산, 팔전산, 조계산, 모후산등 여러 산들이 모두 눈 아래에 있다. "
     정말 아름답습니다
     고경명 장군도 입석대와 서석대보다 이곳 圭峰이 훨신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규봉암 들어 가는 길]
          규봉암을 정문으로 들어 가지 않고 옆문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중국 少林寺를 들어 가는 듯 신비롭게만 느껴집니다
     
     [규봉암]
     규봉암과 뒤에 정렬 해 있는 廣石臺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무등산 제일의 경관을뽐내고 있습니다
     규봉암은 의상대사가 규봉에 왔다가 규봉 사이의 암벽에서 셈이 솟아나 기이하게 여겨
     규봉암을 지었다는군요. 의상대사 원효대사 안들어 가면 절이 장사가 않되나 봅니다
     
     [규봉암]
     제가 닮고 싶은 분 茶山 정약용선생 (저의 '예봉산-적갑산-운길산-수종사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그분이 쓴 遊瑞石山記에서
     "가운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날듯이 세상을 가볍게 보고 홀로 특별히 다른 길을 가는 기분이 들어
     인생의 고락은 마음에 둘것이 못됨을 깨닫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황산에 와 있는 듯합니다
     
     [문바위]
     문바위에는  김덕령장군과 애마에 얽힌 전설이 있더군요
     임진왜란 시 의병대장 김덕령 장군이 무술을 연마할 때 일로, 자신의 愛馬에게 
     “내가 큰일을 하려면 너부터 잘 달려야 할 것인즉 이제 내가 활을 쏠 터인데 
     화살이 건너편   마실리에 이르기 전에 네가 먼저 거기에 당도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네 목을 치겠노라”고 하였답니다. 
     백마도 주인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합니다. 
     마실리는 문바위에서 5리가량 되는 화순땅이랍니다. 
     이윽고 화살이 김덕령장군의 활시위를 떠나자마자 백마도 김장군을 태운채 쏜살같이 달렸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김장군은 화살이 보이지 않자 화살이 말보다 먼저 날아와 어딘가에 박혀있는 줄 알고 
     칼을 뽑아 애마의 목을 치려고 하였답니다. 김장군도 성질 더럽게 급한 양반인가 봅입니다
     그 순간 허공에서 “윙‘하는 소리와 함께 그때서야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愛馬를 
     죽일뻔했다는 전설이 있더군요.
      아무리 김덕령장군을 미화 시킬려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뻥이 너무 쎄죠? ㅎㅎ
     
     가까이서 촬영한 문바위
     요즘같으면 자연홰손으로 잡혀 갈 낙서가 많았습니다
     이 글자 중에 김덕령장군의 愛馬이야기가 쓰여있다는군요
     
     [범종루와 일주문]
     규봉암을 옆문으로 들어와 정문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범종루와 일주문]
     고경명장군도 인용했던 고려시대의 문인 김극기(金克己)는 규봉암에 오른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합니다. 
     “돌 모양은 비단을 말하는 듯 봉우리는 옥을 다듬어 낸 듯,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좌틀고 무상을 배우노라"
               
               [범종루와 일주문]
               규봉암은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합니다만 이제 믿거나 말거나 이죠? ㅎㅎ
               저의 산행기를 많이 읽으면 無神論者가 됩니다 
               圭峰菴을 圭峰寺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저의 지난 산행기에서 여러번 알려 드린바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알려 드리면 菴은 수련을 목적으로 지은 것이고, 寺는 종교활동을 위해 지은 것입니다
               圭峰菴은 종교활동 하는 곳이 아니고 스님들의 수련장이란 걸 이름에서도 알수 있습니다
     
     [규봉암에서 바라 본 화순 방향]
     저 곳 화순에 赤壁이라는 경치 좋은 곳이 있다는군요
     
     규봉암을 나와 꼬막재 방향으로 가는 길의 너덜지대에서 바라 본 화순 방향
     한가로운 듯한 가을 정취가 흠벅 느껴집니다
     赤壁은 삼국지에서 조조가 되지게 깨지는 赤壁大戰의 赤壁과 같은 이름인데....
     
     너덜지대를 지나니 山路가 한결 좋아 집니다
     
      화순 이성영평 방향으로 가는 안부를 만나고....
      이곳에서 화순 이성영평 방향으로 내려가면 무지무지 유명한 곳이 있답니다
      화순의 赤壁에 있는 "勿染亭"이라는 곳이 있다는데 그곳의 경관이 무척 좋다고합니다. 
      저도 아직 못 가봤지만 조만간 꼭 가 보고 여행기를 써야 할 곳으로 점 찍어 놓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방랑시인 김삿갓 아시죠? 본명이 김 병연이지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세상을 등지고 방랑하며 살다가
      생을 마치기 전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눌러 앉아 죽은 곳이  赤壁의 "勿染亭"이랍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하다 전라남도 화순땅에서 죽은 방랑 시인 김삿갓
      그의 詩한수 읊어 드림니다

     배를 띄우고 취해서 읊다                           (泛舟醉吟 - 범주취음) - 난고 김병연 지음 - 
     강은 적벽강이 아니지만 배를 띄웠지.                (江非赤壁泛舟客 - 강비적벽범주객) 
     땅은 신풍에 가까워 술을 살 수 있네.                (地近新豊沽酒人 - 지근신풍고주인 )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으랴, 돈이 바로 항우이고  (今世英雄錢項羽 - 금세영웅전항우) 
     변사가 따로 있으랴, 술이 바로 소진이지.            (當時辯士酒蘇秦 - 당시변사주소진 )
     
     무등산 동쪽 옆구리를 돌아 서쪽으로 틀기 시작하는 북쪽에 신선대가 있습니다
     "무등산 사나이"라고 하면 김덕령 장군입니다
     김덕령장군은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으로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는데도
     의심 많기로 전세계 최고인 '선조'에게 역모에 가담했다는 오해를 받아 엄청난 고문으로 옥사하고 맙니다
     이순신장군도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어 왕권이 위협 당한다고 견제한 '선조'이니 우리나라 왕들 중에 최고 죠다입니다
     김덕령장군은 스물아홉살에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데 나중 정조대왕이 사면 복권시켜주지요
     김덕령장군은 감옥에서 자신의 무죄를 끝까지 주장하다가 죽기전에 詩한수를 남기는데
     그 詩가 유명한 취시가(醉時歌)입니다

     醉時歌                       한 잔 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此曲無人聞                  듣는 사람 아무도 없네
     我不要醉花月                나는 꽃이나 달에 취하고 싶지도 않고
     我不要樹功勳                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아
     樹功勳也樹浮雲              공훈을 세운다니 이것은 뜬 구름
     醉花月也是浮雲              꽃과 달에 취하는 것 또한 뜬 구름
     醉時歌                      한 잔 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此曲無人知                  이 노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네
     我心只願長劍奉明君          내 마음 다만 원키는 긴 칼로 밝은 임금 받들고자
     醉時歌에 답하는 詩가 권필에 의해 부리워집니다
     
      將軍昔日把金戈           지난 날 장군께서 쇠창을 잡으셨더니
      壯志中최奈命何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을 어찌하리
      地下英靈無限恨           돌아가신 그 넋의 그지없는 눈물
      分明一曲醉時歌           분명한 한 곡조 취시가로 읊으셨네
     
     신산대 로 나아 갑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北山입니다
     저 北山을 지나 이곳으로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지나와 
     다시 무등산을 지나 백마능선 안양산으로...계속 광양 백운산으로 갑니다
     
     [神仙臺]
     이제까지 무등산을 오르며 아직까지도 꼬불쳐 온 쇠주 한병을 꺼냈더니 
     동기동창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저의 산행기에선 잘 올리지 않는 개인 사진입니다만 
     참가한 62회 전원의 사진을 기념으로 남깁니다
     쇠주 한잔씩 걸치고 억새밭에서 '나 잡아 봐라~' '쪼아~ 냅따 오슈~~' '조아부려~'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ㅎ
     
     [꼬막재]
     무등산 옆구리를 돌아 오는 길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길은 평이하지만 거리가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꼬막재의 내력]
     에구~ 글쓰기도 힘듭니다. 꼬막재의 내력은 사진 속에 쓰여 있는 글을 참고 하세요
     
     [공원관리사무소 앞]
     산행 들머리였던 '공원관리사무소'와 원효사 앞으로 회귀했습니다
     꼬막재에서 이곳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리더군요
     오후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써비스
     개인적으로 무등산을 찾을 분들은 광주역까지 오시면 [1187번 시내버스]를 타시고
     무등산 중턱인 이곳 공원관리사무소까지 바로 올수 있으니 대중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북한산 피서 산행 

     교통체증, 바가지 요금, 뙤양볕, 엄청난 비용.....고생
     이런 단어를 접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여름 휴가", "피서"일겁니다
     물론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을 탈출하여
     일년에 한번있는 여름 휴가를 멀리 좋은 곳으로 가려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좀더 숙고하여 효과적인 여름 피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람니다....
     그래서 오늘은 초간편, 최저비용, 최고효율을  올릴수 있는 피서지를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지하철 1호선 불광역 2번 출구]
     여름 휴가 시즌의 절정기인 8월3일 일요일 
     요즈음 주말이면 비가 내려 좋아하는 등산도 못하고 빈둥대다가
     몇몇 동창들과 여름 피서 산행을 하자고 合心하고
     멀리 바다나 산이 아닌 도심 속으로 피서 산행을 떠났습니다
     
     [불광역 2번 출구 구기 터널 방향]
     불광역 2번 출구는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역일것입니다
     최고로 더운 8월3일이라 산객들이 별루인게 이 정도 이니 꽃피는 봄이나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는
     그야말로 人山人海를 이루는 그런 곳입니다
     
     [불광동 사거리에서 구기터널 방향]
     여기서부터 구기터널 방향으로는 산객들의 행렬로 인간띠를 이루는 곳이죠
     오늘은 이곳 [불광역2번출구]에서 구기터널 방향의 오른쪽 길 건너편 보도를 걸어 올라갑니다
     
     구기터널 조금 못 미쳐서 오른쪽에 '장미 슈퍼'가 나오며 이곳이 산행 들머리입니다
     '장미슈퍼'를 끼고 오르쪽 골목으로 올라 가다가 왼쪽 산길 아무 산길이나 찾아 올라 가면
     위에서 모두 만나니 염려 할바 없습니다
     
     오늘은 습도가 높아 산행하기엔 매우 안좋은 기분 나쁜 날씨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워밍업 정도로 산행을 하고 시원한 계곡에 퍼질러 앉아 퍼 마실 예정입니다 ㅎㅎ
     
     이 코스는 사실 '구기터널' 위로 넘어가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 대남문으로 가는
     긴 등산로입니다만, 중간에 어디서나 옆으로 등산로를 탈출 할수 있으며
     좌측 계곡으로 들어가 시원한 여름을 보낼수 있기도 합니다
     
     첫번재 쉼터
     여기서 등산 준비를 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죠
     한 여름인데도 산객들이 많군요
     
     쉼터 뒤로 '수리봉' 일명 '쪽두리봉'이 구름 속에 살짝 가려져 있군요
     
     첫번째 봉우리이자 마지막 봉우리...ㅎㅎ
     오늘 산행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ㅎㅎㅎ
     오늘은 등산이 목적이 아니고 피서가 목적이기 때문에 향로봉이나 비봉으로 가지 않고
     옆으로 살짝 탈출해 계곡에서 퍼 마실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ㅎㅎ
     
     오늘 등산에서는 정상인 조그만 봉우리에서 '쪽두리봉'을 바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어서 빨리 내려가 술한잔 해야지~~
     
     지금 이 사진의 아랫쪽은 '구기터널'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향로봉 아래 까지는 거의 평지로 '맨발 산책 코스'입니다
     
     쪽두리봉이 구름을 탈출하여 그 모습을 뽐내고 있군요
     
     봄 가을에 이 코스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산객들이 몰려 드는 곳입니다
     '탕춘대성'이 지나 가는 곳인데 '탕춘대성'은 이번에 촬영을 못했군요
     '탕춘대성'을 아시는 분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탕춘대성'은 한양성의 외곽성으로 인왕산 꼭대기에서 구기터널 위를 지나
     북한산 향로봉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城은 우리나라 城중에서 가장 불필요하게 건설된 성이라는군요
     공사비만 들였지 무용지물이었다고하네요. 그래서 특별한 역사적 사건도 없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나 봅니다
     
     '파란문의 날씬한 다리' ㅋㅋ
     이 코스는 '맨발산책' 코스라고 말씀드렸다시피 맨발로 걷기에 아주 좋습니다
     왼만한 여자 다리보다 훨 낫지요? ㅎㅎ
     인간이 발명한 발명품 중에 최고로 非自然親和的인 것이 무었인지 아십니까?
     "신발"입니다. 신발은 인간과 자연을 격리 시킨 최고의 졸작품인것이죠
     친환경적 친자연적 식품을 먹어야 한다는둥 별 방정을 다 떨지만
     가장 자연친화적인 생활은 신발을 벗고 자연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 속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을 害치는 물질들이 길바닥에 나뒹굴어
     신발을 벗고 다닐수 없게 스스로 만들어 놨지만....
     하지만 가능하다면 
     신발을 벗고 자연을 딛고 걷는다면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될것입니다
     IMG src="https://t1.daumcdn.net/cafefile/pds85/12_cafe_2008_08_04_11_49_48966d26e0d89" 
     에구~ 저만 신발을 벗었군요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한것이 아니라 신발이 닳을까봐 벗었나 봅니다 ㅎㅎ
     뒤에 쪽두리봉이 어여쁜 여인의 젖꼭지 처럼 보이네요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입니다
     
     향로봉 구매표소에서 좌측 계곡으로 10분 정도 내려 가면
     요즘 비가 많이 와서 계곡물이 풍부한 시원한 곳이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자리를 펴고 바로 한잔씩 걸치기 시작합니다
     정말 시원했습니다
     
     등산은 쬐끔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물장구 치고 술 한잔하고..를 반복했습니다
     오늘의 주목적을 성취한것이지요
     
     이런 곳에서 나이나 체면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들의 통행도 없고, 조용하고, 간단하게 올수있고...맘대로 놀수 있고...
     
     이곳 저곳에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우산으로 가리고 뭘하지? 
     
     '너무 시원해서 춥다고 느끼는 사람'
     여기도 북한산인데 왜 구경거리가 없겠습니까
     날 좀 보슈~~하고 있는 너무 오래 이곳에 있다보니 춥다고 인상 쓰는 바위
     
     저 분들 좋은 자리 잡고 앉아 노는군요
     
     [계곡 입구 구매표소]
     요즘은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지 않지만 2년전만해도 입장료를 받았지요
     
     구매표소 앞의 시원한 폭포
     돈들이고, 시간 낭비하며, 교통체증에 바가지 요금에 여름 휴가 망치지 마시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얼마던지 깨끗하고 시원한 피서를 할수 있습니다
     
     [계곡 입구]
     오늘 다녀 온 계곡의 출구이자 입구는 바로 '구기터널' 앞입니다
     산행을 않고 바로 계곡에 가실 분들은 불광역 2번 출구에서 걸어 구기 터널 앞까지
     오면 됩니다. 그리고 좌측으로 가면 계곡은 널려있습니다.
     
     오늘은 산행이라기 보다 동창들과 한잔하며 피서를 했습니다
     먼 곳으로 가시지 마시고 가까운 북한산 계곡이나 관악산 계곡으로 가 보세요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파란문印
             
北漢山城十二之門從走 우리민족 역사에 새로운 학생운동의 본보기를 보여준 4.19 독재권력은 어떤 형태로던 민중의 힘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지만 학생들에 의해 대통령이 물러 나는 일은 세계역사에서도 찾아 보기 힘듭니다 당시 주역들이 현재의 대통령이나 주요 관직에 올랐으니 세월은 물과 바람 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을 흘려 보내고 있는가 봅니다 뜻깊은 4.19 날에 나의 山友와 산행길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산행기를 쓰기 위해서도 꼭 다시 가고 싶었던 북한산성12문을 종주하기로하고 일찍이 집을 나서 전철3호선 구파발역1번출구를 나와 북한산성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북한산성 입구] 오전 8시반경이라 서북쪽에서는 이른 아침인듯 합니다 오늘도 제법 긴 코스를 걸어야 함으로 서둘렀는데도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아침식사도 못하고 부랴부랴 오느라 산성입구의 오뎅집에서 간단한 속풀이를 하고 계곡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계곡 산행로] 北漢山城十二之門을 종주 하려면 두 코스가 있습니다 효자리에서 '시구문'을 시작점으로 하여 원효봉 코스로 가는 방법과 오늘 가려고 하는 '대서문'을 시발점으로 하여 의상봉코스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의상봉코스를 먼저 오르는 코스가 더 힘듭니다. 저의 山友는 3주연속 北漢山城十二之門從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의 山友의 얼굴을 공개할 예정이오니 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 주세요..^*^ [水門] 北漢山城에는 현재 13개의 城門이 있으나 원래 14개였다고 합니다 이 사진이 없어진 그 하나의 門인 水門자리입니다. 이곳은 산성입구에서 계곡길을 따라 15분정도 오르면 나타나며 관심 없으신 분들은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그런 곳입니다 좌측 암벽위에 끊어진 山城의 성벽이 보입니다. 그리고 빗장을 걸수 있는 홈을 파논 흔적도 보입니다 분명 성벽은 이곳을 지나 대서문쪽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뒷쪽에서 바라 본 水門 자리 조금 더 뒷쪽에서 바라 본 水門 자리 이제 여기에 수문이 있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양쪽 바위를 수직으로 절단하여 빗장을 걸어 사람의 통행을 막았을 겁니다. 아쉽게도 이곳의 수문은 1915년(?)경의 대홍수 때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산행기의 제목이 北漢山城十二之門從走이지만 실제는 없어진 水門을 포함하고 오늘은 산성 가운데에 있어 갈수 없는 "中城門"을 빼면 北漢山城十三之門從走가 되는 것입니다 [大西門]
水門에서 우측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나타나는 북한산성의 핵심문
오늘의 출발지가 될 大西門입니다
北漢山城十二之門從走를 하는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에서 출발합니다만
北漢山城十二之門從走를 하시는 분들은 산행에 대해선 방귀깨나 뀐다는 분들이
도전함으로 운동겸 하시는 분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지요

[大西門(十二之門의 첫번째 문]
대서문--> 가사당 암문--> 부왕동 암문--> 청수동 암문--> 대남문
-->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 위문--> 북문--> 시구문
일반적으로 산행 시간은 약8시간30분으로 예상하고 떠나지만 개인차도 있고
중간에 백운대를 오른다거나 쐬주를 한잔 하면 더 걸릴수도 있습니다
   

대서문 좌측 의상봉 등산코스 진입로
14문 종주도 종주이지만 의상봉코스 산행을 즐기시려면 中城門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물론 中城門으로 해서 가사당 암문으로 오르는 쉬운 14문종주 코스도 있습니다만
의상봉을 오를수 없기 때문에 재미 없습니다. 
등산으로는 의상봉이 하일라이트이기 때문입니다

[초입의 의상봉코스]
성벽을 따라 길고 긴 산행을 시작합니다

[조금 올라서 내려다 본 大西門]
사진 속에 올라 오는 등산마니아가 저의 山友인데 매주말 산에 가는 일과
교회 가는일이 삶의 유일한 樂이라고 합니다

[의상봉 코스]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성12문종주나 의상봉코스를 자주 간다고 합니다만
대서문에서 시작하는 의상봉 코스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별루입니다.
그 많큼 경사도가 높고 험난하여 일반인들의 출입이 없기 때문입니다
城을 쌓기에는 천혜의 요새가 되기도 하겠지요

[의상봉 중턱에서 바라 본 백운대]
앞으로 이 의상봉 코스를 돌아  북한산의 최정상인 저 백운대 꼭대기까지 오를 예정입니다

대서문에서 의상봉을 오르는 길은 암벽과 나무가지로 길을 못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으며 호젓한 릿지를 즐길수 있습니다

깍아지른 암벽 밑으로 산성 내부가 보입니다.

이곳을 가지 않고는 감상할수 없는 자연경관이 흐르는 땀을 닦아 줍니다

의상봉 정상이 다가오고 있는 듯 합니다
왜냐면 의상봉 다음 봉우리인 '용출봉'이 보이기 시작 하기 때문입니다

[의상봉 정상]
우리나라 대표산에는 '원효봉'과 '의상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많습니다
불교를 얘기하자면 절간을 얘기해야하고, 절간을 얘기하려면 원효와 의상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지요
그러한 유명 절간은 대부분 名山들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곳 북한산에도 좌측엔 원효봉, 우측엔 의상봉이 있습니다
원효와 의상 -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불교에서는 석가보다 이 분들이 더 유명하지요?

[의상봉에서 바라 본 용출봉]
우측 멀리 비봉이 조그마하게 보이는군요
힘들게 오른 의상봉에서 거의 하산 수준으로 내려 갔다가 다시 용출봉을 올라야 합니다
의상봉 코스를 능선으로 생각하고 가면 혼줄 납니다
오르라ㅏㅏㄱ 내리라ㅏㅏㄱ을 여덟번 정도 합니다. 앞으로 소개 됩니다

[의상봉에서 용출봉으로 가는 중간쯤에 있는 국녕사]
이 절은 새로 증축한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몇년전 까지만 해도 없었으니까요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그런 의미의 절이겠죠?
엄청나게 큰 불상이 인상적입니다

[가사당 암문(十二之門의 두번째 문)]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에 있는 가사당 암문
여기서 北漢山城의 城門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하고 가겠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북한산성에는 14개의 성문이 있는데, 크게 大門과 暗門의 형태로 나누워지고
북문, 대동문, 대서문, 대성문, 중성문등이 大門에 해당되고, 
문의 높이가 11척~13척, 넓이가 13~14척으로 홍예와 문루가 설치되 있습니다
1척은 요즘 단위로 33cm정도라니 환산해 보세요
한편 암문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조그마하게 설치하여 비밀통로로
이용하는 그런 용도의 문이며 암문의 암은 어두울 暗입니다
이런 암문이 있는 곳에는 절을 지어 승려로 하여금 守門도 하고 생활터전도 되게하여
일거양득을 노렸는데, 전쟁이 없을시에 정규군을 배치하려면 많은 경비가 들기때문에
그런 방법을 썼다고 하는군요
          

[가사당 암문에서 용출봉 오르는 길]
용출봉 오르는 길은 암벽보다는 흙길이 많습니다만 정상 부근은 모두 암벽입니다
경사가 심해 의상봉에서 힘을 뺀 상태라 더 힘들게 올라야 합니다

우측으로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진 산성의 성벽이 함께 따라 올라 갑니다

용출봉 정상을 향하여

용출봉 정상 부근에서 뒤돌아 본 의상봉
북한산의 자랑 적송 사이로 의상봉이 보입니다만, 산성 입구에서 올려다 본 모습과는
자못 다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잡았던 흔적이 소나무 가지의 광택으로도 짐작 갑니다

[용출봉 정상]

[용출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응봉"]
가운데 응봉이며 우측 계곡에 조그마하게 삼천사가 보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저 응봉코스를 오를 땐 무척 힘들었는데 용출봉에서 내려다 보니 초라하게 보이는 군요
응봉능선코스에 대해선 저의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용출봉에서 바라 본 용혈봉]

용출봉에서 용혈봉을 가기 위해선 다시 하산 수준의 내리막을 가야 합니다
이런 인공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의상봉코스를 찾게 되었습니다만
자연경관은 홰손되고 말았습니다

[용출봉을 뒤돌아 보며...]

용출봉과 용혈봉 사이에 있는 멋진 조물주의 조각품
감상은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거시기가 생각 납니다..ㅎㅎ

더 와서 뒤돌아 본 용출봉

용혈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용혈봉 정상]
뒤로 용출봉이 빼꼼이 얼골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곳 용혈봉은 지난해 여름에 낙뢰 사고가 있었던 곳입니다.
당시 조선일보 신문기사를 보여 드리오니 산에 가실 때는 언제나 조심 하시기 바람니다

◆낙뢰 사고 현장
29일 오전 11시55분쯤 ‘산비둘기 산우회’ 회원 10여명이 북한산 용혈봉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전날 북한산 인수봉의 산장에서 야영을 했던 회원들은 이날 오전 8시쯤부터 서둘러 등반에 나섰다. 
       
           
선두에 섰던 남녀회원 4명이 20㎡ 가량 넓이의 바위 꼭대기 정상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작스런 낙뢰(落雷)가 봉우리 바위를 내리쳤다. 
황모(여·38)씨 등 3명은 몸에 낙뢰를 맞고 그대로 쓰러져 숨졌고, 
안모(57)씨는 낙뢰를 맞고 튕겨져 나가 15m 아래 바위에 부딪혀 숨진 채 발견됐다. 
정상 부근에 도착한 나머지 회원들도 낙뢰를 맞고 숲 속으로 튕겨져 나가거나 등산로에서 쓰러져 부상을 입었다. 
일부 회원들은 하반신이 일시적으로 마비돼 움직이지 못했다. 
비옷을 챙겨 입느라 선두와 100m가량 떨어진 채 등반하고 있었던 회원 강한철(55)씨는 
“갑자기 눈 앞에서 불이 번쩍하면서 충격을 받아 내 몸이 뒤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1년 7월 히말라야의 K2(8611m)를 정복한 뒤 하산길에 실종된 박영도 회원을 추모하는 
제(祭)를 올리기 위해 북한산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날 용혈봉 정상을 향해 걷던 20여명의 다른 등산객 중 일부는 등산로 계단에 심어놓은 
쇠말뚝과 쇠줄을 잡았다가 감전돼 부상당했다. 
왼쪽 발등에 2도 화상을 입은 양동훈(57)씨는 “용혈봉 못 미친 곳에서 쇠줄을 잡는 순간 왼쪽 발목에 
전기가 찌릿하고 통하면서 의식을 잃었다”며 “깨어나 보니 양말이 찢어지고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용혈봉은 북한산 의상능선 구간에 있는 봉우리들 중 하나로 암릉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용혈봉에서 뒤돌아 본 용출봉과 의상봉]

[용혈봉에서 바라 본 백운대와 만경대, 노적봉...]
저곳을 오르는 일이 오늘 산행의 피크입니다. 부지런히 가야합니다

용혈봉에서 증취봉을 향해...진달래는 정상 부근에서 만개하고 있습니다

[증취봉 정상]
삼천사에서 의상봉 코스를 올려다 봤을때, 증취봉이 가장 우람하고 멋있게
삼천사의 배경이 되어 줍니다만, 이곳에선 삼천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암문들은 곳곳에 있습니다

증취봉에서 나월봉으로 가고 있습니다

증취봉을 내려 가는 길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증취봉에서 나월봉 중간에 있는 "부왕동암문"(十二之門의 세번째 문)
앞으로 가야할 문이 아직도 아홉개가 남았습니다

부왕동암문에서 산성 안쪽으로 50m 정도 내려 가면 약수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북한산 대피소 약수터까지는 물이 나오는 곳을 못봤습니다
의상봉 코스를 오다 보면 물을 많이 마셔 물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물을 보충해서 갑니다. 하지만 성질 급한 사람은 물을 받는데
인내심이 많이 필요합니다. 물이 쬐끔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맛은 매우 시원하고 좋습니다
옛날엔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고 기록으로 남아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은 제 눈에는 몇개 안보입니다

부왕동암문에서 나월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나월봉 정상을 향해....

나월봉 정상엔 릿지를 해야하기 때문에 올라 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정상 표지판도 없기 때문에 처음 가시는 분들은 나월봉이 어디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나월"이나 "나한"은 석가모니의 제자들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월봉이니 나한봉이니 하는 봉우리 이름들도 우리나라 여러 명산에서 볼수 있는 것은
의상봉과 원효봉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셔도 무관 할듯합니다

나월봉 정상 옆구리를 타고 나한봉을 가기 위해 내려갑니다

나월봉 옆구리에 이런 바위틈을 타고 내려가야만 나한봉으로 갈수 있습니다
저의 山友가 사진을 찍고 서 있는 저 바위가 냐려가서 보면 정말 절묘한 조각품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바위틈을 내려와 뒤돌아 보지 않고 그냥 갑니다
정말 절묘하지요? 보는 사람들에 따라 "제비"를 닮았다고 하거나 "참새"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같은 값이면 "제비"를 닮았다고 합니다만...
          어떻게 날개 모양까지 정확히 만들어졌는지 감탄사만 나옵니다

나월봉에서 바라본 오늘 산행의 피크가 될 백운대의 모습이 아직도 아득합니다

완전 돌덩이 위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 뿌리가 돌덩이 위로 옆으로 뻗어 아래 흙이 있는 곳까지
내려서 물을 가져 오는 듯합니다. 존경스런 소나무

[나한봉 정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며 식사하는 장소로 유명합니다

나한봉에서 문수봉으로 가기전에 이름을 잘 모르는 큰 봉우리를 넘어야 합니다
우측 뒷쪽에 문수봉 정상이 보이기 시작 합니다

비봉과 사모바위 쪽에서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을 오르는 문수봉 암벽코스가 보입니다

[뒤돌아 본 나한봉]

[청수동암문(十二之門의 네번째 문)]
비봉, 사모바위쪽에서 문수봉 암벽코스를 우회해서 오면 이 "청수동암문"을 통과하게 되있습니다
가장 많은 등산객이 통과하는 門중에 하나 입니다

이 청수동암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북한산성 주능선을 다닐수 없습니다

청수동암문의 성벽을 타고 문수봉으로 갈수 있습니다만, 좌측에 인도가 있으니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인도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청수동암문에서 바라본 문수봉 정상]

저의 산행기를 계속 읽으신 분들에게는 익숙해진 문수봉 정상의 태극기입니다
     
대남문이 보입니다. 저의 산행기에서 여러번 보셨죠? 이렇듯 북한산 서부지역에서 산행을 하면 대부분 대남문을 거치게 되있습니다 [대남문] [대남문(十二之門의 다섯번째 문)] 대남문 근처까지 오르면 대체로 점심시간이 됩니다 점심식사를 하는 산꾼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이 다정스럽습니다 [대성문] 대남문을 지나 동쪽으로 山城주능선을 따라 조금 가면 대성문이 나옵니다 대성문이 대남문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대성문(十二之門의 여섯번째 문)] 대남문은 구기동 쪽에서 올라 오는 문이며, 대성문은 평창동쪽에서 올라 오는 문입니다 다시 주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 갑니다 산성의 주능선은 동쪽에서 남쪽까지의 서울을 모두 조망 할수있습니다 산성 주 능선은 평이한 능선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합니다 뒤돌아 보고.... 또 오르막을 오르고... 저 앞의 성곽의 돌출부분이 '곡성'이라고 성곽의 바같 상황을 관측하기 위해 만들어 놨답니다 [곡성을 지나면 "보국문"이 나옵니다(十二之門의 일곱번째 문)] 보국문은 북악터널이나 국민대쪽에서 올라 오는 문입니다 성벽을 따라 또 봉우리를 넘습니다 그러면 그 유명한 "칼바위 능선" 표지판이 보입니다 북한산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중에 이 칼바위 능선과, 진달래 능선이 유명합니다. 칼처럼 보이시나요? [대동문(十二之門의 여덟번째 문)] 칼바위능선 입구를 지나 조금 가면 大東門이 나옵니다 대동문은 정릉쪽에서 주로 올라 옵니다 [대동문] 대동문 앞은 제법 넓직한 마당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곳 근처 숲속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쐬주도 한잔 했습니다 다시 봉우리를 넘습니다 중간에 이름 붙이기 나름인 바위가 있는데 저는 처녀총각 바위라고 부름니다 [東將臺] 산성 주능선에선 제일 높은 곳에 東將臺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북한산성 내부 구석구석을 모두 관측할수 있는 가장 조망이 좋은 곳입니다 [東將臺] 그래서 이곳이 북한산성 수비 총사령관이 작전지휘를 하는 곳입니다 유식하게 영어로 하자면 command center인 셈이죠 다시 용암문을 향해 걷습니다. 오늘 무지하게 걸었습니다만. 이제 반쯤 걸었으니 어느정도 거리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죠? 북한산 가장 높은 곳에서 샘물이 나오는 '북한산 대피소'입니다 원래 이곳은 '용암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었답니다 가사당암문에서 설명 드렸다시피 이런 암문 근처엔 절간을 만들어 전쟁이 없을 때엔 정규군 대신에 승려들로 하여금 守門도 하고 또 벌어 먹고 살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를 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준 절들이었습니다 북한산 대피소 실제 추위를 피하긴 어려운 문도 없는 환경이나 명목상 있는듯�니다 북한산 대피소에서 보는 노적봉의 옆 모습 앞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옆모습을 보고는 반쪽 가리라고 합니다 북한산 대피소에 백운대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용암문"이 나옵니다 [十二之門의 아홉번째 문] 이쪽 용암문은 서울의 수유리쪽에서 올라 오는 문입니다 조금 더 가까워진 노적봉의 옆모습 노적봉을 향하여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깁니다 노적봉 정상은 아닙니다만, 정상부근의 갈림길에 올랐습니다 우측의 만경대를 끼고 백운대로 향합니다 우측의 만경대와 좌측의 백운대가 그 자태를 뽐내며 위용을 들어 냅니다 북한산의 최고봉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백운대를 가기 위해선 다시 암벽을 올라야 합니다 여기쯤 오면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많이 힘들어 합니다 [백운대] 30억년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그리고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백운대 --- 이제까지의 저의 산행기에선 이 백운대를 먼 발치에서만 보여 드렸는데 이번엔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 즉 삼각산을 완전히 정복해 드리겠습니다 [백운대] 북한산성12지문종주에는 백운대 정상을 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오로지 저의 산행기를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힘들지만 오릅니다..ㅎㅎ 만경대와 백운대 사이의 계곡에 열번째 성문인 "위문"이 있습니다 "위문"을 향하여 다시 오릅니다 [北漢山城十二之門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衛門"입니다(十二之門의 열번째 문)] 만경대와 백운대 사이를 막아 출입을 통제하던 곳이랍니다 "위문"쪽은 주로 우의동쪽에서 오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인수봉, 영봉, 상장능선, 도봉산, 우의동쪽으로 갈수 있습니다 [위문밖 성곽] 이곳 위문의 높이가 625m이니 백운대 정상까지는 해발로 200m가 넘게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십이지문종주 하시는 분들은 시간관계상 백운대 정상을 오르지 않고 바로 北門으로 갑니다만 오늘 저는 백운대 정상을 올라 못 오르신 분들을 위해 사진을 몇장 찍어 올리려합니다 깍까지른 백운대 암벽을 해발 200m이상을 다시 오른다는 것은 왠만한 산을 하나 더오르는것과 같습니다 [백운대를 오르며 바라 본 "인수봉"] 점점이 암벽에 개미처럼 붙어있는 수많은 락클라이머들이 보이시나요? 저는 저런 곳을 오를 능력도 없지만 만수무강에 큰 영향을 줄까봐 저런 곳은 처음부터 갈 생각을 않습니다만 저분들은 무척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사고도 많이 일어나 인수봉 아래의 靈峰에는 백사십여개의 추모碑가 공동묘지처럼 세워져 있습니다. 공원화를 위해 5월말까지 강제 철거 한다지요? 가파른 백운대를 오릅니다. 일요일에는 산객들이 많아 교통체증이 엄청나게 일어 나는 곳입니다 일요일에 이곳 백운대를 오르려면 한시간 정도 이상 시간 낭비를 해야 할겁니다 [만경대] 만경대는 조선 건국의 실세 삼봉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한양천도를 위해 풍수지리에 입각해 한양땅을 살피러 올라 서울을 조망 했다고 하며 펼쳐지는 그 경치가 만개가 넘어 불려졌다는 말도 있더군요 어떻게 이름이 붙여졌던 그런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운대 정상의 모습입니다 두세평정도 될까요? 아주 좁아 대여섯명만 올라도 꽉 찰 정도이니 일요일엔 오를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백운대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성입구를 출발한지 7시간반만에 이곳까지 왔습니다 북한산의 최초 명칭은 부아악(負兒岳)입니다. 부아악이란 명칭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국망봉)의 어느 암봉 뒤에 애를 업은 형상의 바위가 붙어있다 해서 불렀다는 설(說 )과 산봉이 뿔처럼 뾰족하게 생겨 불렀다는 (부아 →불→뿔)설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 부아 또는 횡악(橫岳)으로 불렀던 북한산은 고려시대 성종(成宗) 이후부터 1900년대까지 약 1천년동안 정상의 세 봉우리를 의미하는 삼각산(三角山), 또는 조선시대 중기까지 화산(華山), 화악(華嶽)으로 불렸습니다. 북한산이란 명칭은 1711년 조선 중기의 숙종이 축조한 북한산성을 염두에 두고 남한산(성)과 대비하여 "한강 북쪽의 큰 산" 이란 의미로 1900년대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답니다. 백운대 정상에 새겨진 삼일운동관련 글입니다 백운대 정상 바위에 새겨 논 글의 내용을 설명해 놨습니다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 본 남쪽의 만경대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 본 남쪽의 노적봉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 본 동쪽의 인수봉 엄청나게 많은 락클라이머들이 개미처럼 인수봉에 붙어 있습니다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 본 서쪽의 염초봉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 본 그 유명한 "숨은 벽 능선" 숨은벽 능선은 저의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통일 기원 정상석 백운대를 내려 와서 나머지 두개의 門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북문을 가기 위해선 백운대를 반쯤 내려와 우측 대동사와 상원사쪽으로 오르면 길이 많이 단축됩니다 [대동사] 백운대에서 계곡으로 조금 내려와 우측으로 '대동사' 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상운사] 대동사를 지나면 곧 상운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원효봉과 염초봉 사이의 北門을 향해 또 오릅니다 이때는 걷는것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종주를 위해 열심히 걸었습니다 북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북문의 누각은 불타 없어지고 홍예와 성벽만이 쓸쓸히 남아 있습니다 (十二之門의 열한번째 문) 어서 빨리 복원이 되길 바람니다. 北漢山城十二之門의 열한번째 문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인 시구문은 원효봉을 올랐다가 완전히 하산 하는 곳 쯤에 있어 매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합니다 원효봉 정상을 향해 다시 또 걷습니다 [원효봉 정상] 오늘 오전에 종주한 '의상봉 코스'가 보이시나요? 무지무지하게 걸었습니다 저 의상봉 코스를돌아 다시 산성 주능선과 백운대 정상을 오르고, 이 원효봉 정상에 왔습니다 원효봉 정상 - 누워 자고 싶었습니다 이젠 지루한 원효봉을 하산 하는 중입니다 북한산 원효봉의 '원효암'하면 제법 큰 절이겠지하는 생각은 '원효암'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너무 초라한데 왠일인지 모르겠습니다 北漢山城十二之門의 마지막 문인 "시구문"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성안에서 죽은 시체들을 내다 버리는 문이라 시구문이라 한답니다 (十二之門의 마지막 열두번째 문) 여기까지 오는데 아홉시간이 걸렸습니다 백운대도 오르고 점심식사와 쇠주 한잔을 한시간 이상 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만 저 정도의 산행 능력으로는 그래도 잘 걸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많이 걸어 정말 시구문으로 나오는 느낌이 묘했습니다. 하산하여 북한산성입구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 한그릇 훌훌 마시고 소주 한잔 하고 돌아 왔습니다 걷기도 힘들었고 산행기 만드느라 또 힘들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림니다 언제나 즐산 안산 하세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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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상장능선과 영봉 

3월16일 일요일에는 북한산의 동쪽 "상장능선과 영봉을 다녀왔습니다. 
상장능선으로 가려면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1번출구로 나와 송추 의정부 방향 버스를 다시 타야합니다. 
삼천사 입구, 북한산성 입구, 효자리, 사기막골(숨은벽코스입구)을 지나 "솔고개"에서 내리면 됩니다. 
 
솔고개 버스 정류장 
 
솔고개 버스 정류장 우측 상장능선 입구 
멀리 상장봉이 보입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우측으로 상장능선 가는 길이 있어 입구를 찾기가 쉽습니다. 
멀리 상장봉이 보이고, 앞의 좀 낮은 능선의 봉우리가 '폐타이어봉'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3~400m정도 들어 갑니다 
 
워밍업 할 겨를도 없이 바로 등산을 해야합니다
상장능선은 잘 알려지지않아 산객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산행을 즐길수 있습니다. 
3월의 북한산 주요 등산로는 아시다시피 초만원을 이룹니다 
 
폐타이어봉
20여분정도 걸어 도착한 '폐타이어봉'은 폐타이어를 활용하여 
군 방어참호인 벙커를 만들어 놓아 '폐타이어봉'이라 한답니다 
이곳에서 두꺼운 옷들을 벗고, 물도 조금 마시며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합니다. 
 
폐타이어봉에서 바라 본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인수봉이 멀리 보입니다 
 
폐타이어봉에서 내려다 본 송추 
 
폐타이어봉에서 올려다 본 '상장봉'
상장능선은 저 상장봉까지만 가면 힘든 구간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장능선에는 아홉개의 봉우리가 횡으로 있어 제1봉인 상장봉에서 제9봉인 '왕관봉'까지 
옆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며 진행하기에 한결 편합니다. 
어떤 내력이나 특징이 없기 때문에 오늘 산행기는 정말 재미 없습니다.이제 시작 해 볼까요? 
 
상장봉까지는 끝까지 오르막이라 제일 힘든 구간입니다 
앞에 가는 山友를 언젠가는 소개 해 드릴겁니다만 
신비주의의 달인인 제가 궁금증을 더 키워 잡아 먹어야지요...ㅎㅎ
오늘 산행이 끝날때까지 저 山友의 뒤를 따라 갑니다
 
중간 중간 등산객들이 벌써 부터 퍼져 앉아 한잔씩 하는 광경이 목격됩니다 
 
제1봉 '상장봉'산행 시작 한시간여만에 상장능선의 제1봉인 상장봉이 보입니다. 
좀 싱겁지요?  이런저런 고생을 하며 올라야하는데 
특별한 험난한 코스 없이 무난하게 가장 힘들다는 코스를 올랐습니다. 
 
상장봉 옆구리
상장봉을 릿지로 올라 가는 곳이 있으나 
만수무강을 위해 옆구리로 우회로를 따라 봉우리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 보니 천길 낭떨어지

좌측 봉우리가 '여성봉'이며 그 능선이 송추남능선입니다.
가운데 능선이 오봉능선이며 우측 저 멀리 도봉산 주봉인 자운봉 신선대등이 보입니다
여성봉 뒤에 하얀 봉우리가 사패산입니다.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을 합쳐 북한산국립공원이라 합니다.

우스개 소리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오봉과 석굴암절 사이의 '부처바위'가 보이시죠.
이 부쳐바위는 '여성봉'만 곁눈질로 훔쳐 보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봉은 절묘하게도 여성의 그곳을 쏙 빼 닮았다해서 붙여진 지도에도 나오는 공식 지명입니다.
여성의 거시기라면 '여성봉'으로 표기 할게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표기 해야죠? ㅎㅎ
하여튼 부처도 인간이었으며 남자였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수 있겠으나
30억년을 바라 보기만하며 욕정을 눌러 수도했기에 부처가 될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모든 욕망을 다스릴때 나온다는 설도 있지요?
믿거나 말거나...산행시 유머로 써 먹으세요
   
여성봉
이 사진은 전에 갔을 때 찍어 둔 것입니다. 절묘 오묘하죠?
 
앞으로 가야할 제2봉부터 순서대로 있으며 맨 끝에 제9봉인 '왕관봉'이 보입니다
상장능선은 아홉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봉우리 '상장봉'과 아홉번째 끝봉우리인 '왕관봉'을 제외하고는 
각봉우리들의 이름도 없을 정도로 그져 그런 봉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봉우리들은 그냥 지나치며 간혹 사진으로만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온 길을 뒤돌아 보며.....많이 지나 왔습니다. 
 
산행기를 쓸땐 카메라 쥼을 당겨 촬영을 하지 않는 다는군요
왜냐하면 가지도 않은 길을 간것으로 오해 할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오봉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카메라 성능도 그렇고 황사도 좀 있어서 사진이 별루네요 
 
오봉과 자운봉, 신선대등의 봉우리들이 새로운 각도에서 가깝게 다가 옵니다. 
 
상장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왕관봉' 
 
 
 
 
마지막 봉우리인 '왕관봉'을 끝으로 '상장능선'은 끝납니다
왕관봉에서 육모정고개까지는 내리막 길입니다 
 
육모정 고개
육모정 고개에는  고려대 교수였던 이창렬 박사의 추모비가 이정표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70년대에 한국산악회장이었군요 
 
영봉을 바라 보며..여기 육모정 고개에서 다시 영봉을 오르기 위해선 등산을 새로 시작해야합니다 
지금까지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다시 가파른 영봉을 오르려니 무척 힘들었습니다. 
 
중턱쯤 올라왔습니다. 영봉 뒤로 '인수봉'이 아련히 나타 납니다. 
 
우의동과 상계,중계,하계동의 아파트촌이 한눈에 들어 오며, 멀리 불암산이 보입니다 
앞의 바위가 '코끼리 바위'인데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영봉 중턱은 몇년전 산불이 나 많은 나무들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습니다.시간이 많이 흘러 어스럼 저녁때가 되 가고 있습니다. 
특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있기에 산의 이쪽편은 그림자가 짖게 깔립니다. 
 
영봉 정산 부근에 다달았습니다. 
 
 
靈峰 정상 

 靈峰 정상석
靈峰 정상석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山을 어디라 손을 대려 하느뇨 
     山에 들면 가득한 靈氣에 감사할지니 
     山의 精氣 있으매 푸른 氣運 솟고 
     山의 自然 있으매 맑은 물도 흘러 
     우리 생명 더불어 모든 生命 사노니 
     山이여, 靈峰이시여 萬古不變하여라 
           시 鄭孔采 
           서 農庵 鄭祥玉 
           靈峰命名人 尹柱廣 
 
거대한 인수봉이 가장 장엄하게 잘 보이는 곳이 바로 靈峰입니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암벽타기'의 최고의 코스랍니다
제가 대학 1학년때쯤 친구들과 여기 산행을 온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날 저 인수봉에 많은 산꾼들이 갑자기 불어닥친 차가운 바람으로 로프들이 엉켜
저 인수봉에 대롱대롱 매달려 저 세상으로 떠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는 이 인수봉에 오지 않았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서서 그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숱한 산꾼들이 더 산화해 갔군요
 
그렇습니다
靈峰은 저 인수봉을 암벽 등반하다 다시는 돌아 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리는 곳이라 붙여졌으리라
그 동안 수많은 산꾼들이 이곳을 오르다 산화해 갔습니다 
그래서 인수봉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 영봉에 수많은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40여개라네요
저승에 가서라도 마음껏 북한산을 즐기라고..... 
  
  
 
 
  
노산 이은상 선생의 詩碑가 눈길을 끕니다

         백운대 푸른 하늘에
         그대들 산새되어 날고
         인수봉 바위틈에
         그대들 산꽃으로 피고
         우리는 여기 올적마다 
         그대들 이름 부르마 
 
영봉 주변으로 세워져 있는 추모비는 관련 당사자들에겐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국립공원이 사설 공동묘지 같은 느낌을 주어 마음이 좀 상했는데 
도선사 입구에 내려와 보니 추모비 철거 계획을 알리는 팻말이 보이더군요
금년 3월말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5월15일까지 강제 철거 하겠다고 하는군요 
잘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다음 산행시에는 추모비들을 못 보겠네요
 
영봉에서 도선사, 우의동 버스 종점으로 하산하는 길은 짧고 편안했습니다. 
 
도선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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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8일 토요일 오늘은 북한산 응봉코스를 시작으로 사모바위, 문수봉을 돌아 대남문을 거쳐
북한산성 안으로 들어가 내려 올 예정으로 11시경 일산에서 지하철3호선을 타고 나섰습니다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1번출구
북한산 국립공원의 서쪽에서 산행을 하려면 
이곳 구파발역1번출구와 불광역2번출구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합니다
특히 송추, 사패산 방향 산행을 하려면 이곳이 제격입니다.
일요일 이곳은 등산객들로 초만원을 이루는 곳이나 오늘이 토요일 11시반경이라 한산하기만 합니다
북한산 응봉코스를 가려면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몇정거장 가야합니다.

삼천사 입구 삼거리
구파발에서 북한산성입구 방향으로 몇정거장 가면 삼천사 입구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하차하여 우측으로 약10분정도 걸어갑니다
뒷쪽으로 북한산 주봉의 위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산꾼들은 가슴 설레게 됩니다

삼천사 입구 삼거리에서 10분정도 큰길을 따라 올라 오면 좌측으로 삼천사 입구가 나옵니다

옛 북한산 매표소 - 현재는 주차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대당3,000원/일) 

삼천사까지 차로가 있으나 모두 이 등산로를 이용합니다

육군전투수영훈련장
삼천사 쪽으로 조금 올라 오면 이런 수영장이 하나 나옵니다.
국립공원 안에 이런 철골 시멘트로 육중하게 만들어진 군수영훈련시설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입니다
이제까지 오래토록 다녔지만 군인들이 훈련받는 광경을 목격한적이 없습니다
물론 휴일에 주로 다녀서 그런가하고 앞의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 봤더니
군사정권- 즉 노태우시대 때까지는 여름에 계급이 높은 고위 장교들의 하계휴양소로 
고기 구워 먹으며 놀자 판 피서지로 사용�으나
그 이후- 즉 문민정부부터는 거의 텅빈채로 방치되 있다고 합니다.

수영장에서 삼천사 올라 가는 길
앞의 하얀 자동차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응봉코스"가 시작 되므로 이 수영장을 잘 기억 해 두어야합니다.
오늘은 삼천사를 구경하고 다시 내려와 저곳에서 응봉코스로 갈 예정입니다

삼천사 -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 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고 합니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합니다.
저는 금수강산 삼천리에서 온줄 알았습니다

삼천사 일주문
정식 명칭이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라고 되 있습니다.
寂滅寶宮이라는 단어는 아무 절에서나 사용해서는 안되는 단어이지요?
寂滅寶宮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절"에서만 사용 할수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나라 5대 寂滅寶宮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를 칭하는데
어떻게 이곳 삼천사가 寂滅寶宮이 되었는지는 ......

寂滅寶宮은 부처님상을 모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곧 부처님을 의미하므로 별도로 법당에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불상은 불상대로 모시고 寂滅寶宮이라 합니다. 앞뒤가 좀 맞지 않는 듯합니다.
불교 신자도 아닌 무신론자인 저는 상관 없는 일이기에 더 조사 해 보지 않았습니다

좌측이 부처님 진신사리함, 가운데 바위에 마애불상이 조각 되 있습니다.
"진신사리"에 대해선 이 기회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진신사리"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요? 
대부분 부처님 사후  화장한 뒤에 유골에서 나온 동글 동글한 결정체를 의미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뜻은 맞는데 왜 "사리"라고 하는 지는 아시는 분들이 거의 없더라구요.
사리를 한자로 쓰면 집舍자에 이로울 利입니다. "舍利" 이 한문이 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까?
의미와 한자는 아무른 관계가 없습니다. 한문을 뜻글자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리(舍利)는 옛 인도말의 Sarira를 중국에서 표기 할때 가장 원음에 가까운 舍利(중국 발음으로 [sheli])로
音譯한것을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문 舍利를 우리말 소리인 '사리'로 音譯한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리(舍利)'는 소리글자이지 뜻 글자가 아닙니다.
교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基督敎"라는 말의 "基督"도 소리글자이지 뜻글자가 아닌것과 같습니다
"基督"의 "基는 터라는 뜻이고, 督"은 살필 독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과 基督은 아무른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원어가 중국어로 音譯되고 그 중국어를 다시 한국어로 音譯하면서 탄생된 전세계에 유일한 소리 글자일 뿐이죠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基督敎"라는 말이 무언지 처음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진신사리를 정확히 쓰려면 "眞身사리"라고 써야 정확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 합니다
우리나라 불교와 기독교의 國譯된 불경이나 성경에는 "사리"와 같은 이런 소리 글자 뜻글자 구분을 안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들이 무지무지하게 많이 있더군요. 종교계는 이것부터 바로 잡아 나가야 할것입니다 

|보물 제657호| - 마애여래불상
삼천사의 자랑인 고려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마애여래불상입니다.
마애여래불상도 바위의 단면을 음각으로 갈거나 깍아 조각한 불상을 말하는 것이죠? 
특별한 말이 아니고 조각된 그 형태를 보통명사로 표현해논 것인데, 
바위단면음각조각불상이라하면 좀 쉬운가요? 왜 어려운 표현을 쓰는지..신비주의? 

삼천사에서 구경을 마치고 전투수영장 쪽으로 50m정도 다시 내려와
본격적으로 "應峰능선코스"를 遊山하려합니다

등산 시작 30분이 제일 힘들다는 것은 모두 아시지요?
여기 응봉능선은 경사도가 심해 더욱 힘이 듬니다. 짧고 굵은게 특징인거죠..ㅎ

응봉 중턱에서 바라 본 삼천사, 
제법 올라 왔습니다. 뒤에 용출봉, 증취봉이 보입니다

응봉 정상입니다.

응봉 정상에서 바라 본 삼천사

응봉 정상에서 바라 본 "진관사" - 진관사도 매우 유명한 절입니다
응봉 능선의 우측이 진관사 계곡이며, 좌측이 삼천사 계곡입니다
이 삼천사 계곡의 좌측이 그 유명한 "의상봉코스"입니다
 
사모바위로 향하는 중턱에서 
암벽코스에는 대부분 우회도로가 있스니다만 없는 곳엔 이렇게 철제 손잡이를 만들어 놔서 큰 불편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의상봉 코스의 용출봉 근처에서 이런 철제 손잡이를 잡고 가다 낙뢰가 떨어져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당했습니다. 내구성은 차지 하고 식물성 로프로 바꿔야 할텐데...

지난주 불광역9번출구에서 시작하여 사모바위를 오르는 곳에 있었던 "비봉"이 보입니다.
이제 '사모바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사모바위 가는 중턱에서 바라 본 북한산의 상징 "백운대" "만경대""노적봉"이 보이기 사작합니다

응봉코스에는 조막조막한 암벽코스가 좀 있습니다

북한산의 뒷쪽 즉 북쪽에서 남쪽으로 산행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시나요?


이제 '사모바위'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상을 넘어 서니 '사모바위'가 불끈 '이 대근'이 처럼 나타 납니다. 반갑지요.
지난주엔 여기까지가 산행의 정점이었습니다만
오늘은 오늘 산행의 3분의1 지점에 도달 한것 뿐입니다
험난한 문수봉 코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모바위'의 내력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습니다
바위가 사각이긴 하지만 그래서 사모바위라고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의미라면 "네모바위"라고 해야지 "사모바위"라고 하는 건 
세발낙지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리 없기 때문이지요. 
'가는발' 낙지나 '세족'낙지라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워하는 마음"  - 그런 의미로 해석 합니다...저는

사모바위에서 바라 본 비봉
어느 곳에서 보나 민족의 얼이 듬북 담겨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사모바위를 지나 문수봉 쪽으로 가다 보면 "승가봉"을 만납니다
좌측 아래 승가사가 보이고 가운데가 비봉 우측이 사모바위입니다
승가봉 암벽 옆구리에 자리를 잡고 오늘은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산 입구쪽의 김밥집들은 맛도 없고 값도 비싸서 동네에서 미리 사 옵니다
그런데 일산 백석역앞 김밥집에서 김밥 두줄을 사는데 지난주엔 이천원을 냈는데
삼천원을 내라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50%를 올렸습니다. 에궁~
요즘 물가가 장난이 아니라는걸 실감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먹는 김밥은 오늘따라 모래 씹는 듯 했습니다
참치 통조림에 쇠주도 한병 가져 왔습니다만 오늘은 오랜만에 문수봉 암벽 코스를 오를려고
쐬주 한잔 크~를 못했습니다. 끝내고 북한산성 안에서 한잔 하려합니다.
사실 쐬주 한잔~~크~를 위해 산을 오는지도 모르는데.....

승가봉 정상부근도 제법 쌕시합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이 通天門을 지나면 문수봉 코스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뒷쪽에서 본 통천문 "구멍"...ㅎ....
북한산은 진정 금강산을 약간 축소 해 놓은 그런 명산입니다.

구멍을 빠져 나오면 펼쳐지는 문수봉
오늘은 오랜만에 암벽코스를 릿지로 오르려고 맘 먹고 왔습니다

문수봉 암벽코스 앞에 위험 경고판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위험 경고판을 무시하고 이곳으로 갑니다.
암벽타기가 두려우신 분들은 좌측으로 가면 계곡으로 해서 문수봉을 오를 수 있습니다만
아름다운 경관은 포기 해야 합니다.

숨이 콱 막히게 앞을 가로 막는 문수봉 암벽

예전에..청춘 때 다니던 릿지코스로 들어 섰더니 전문가들이 버거운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의 좀 쉬운 코스로 옮겼더니 이게 왠일입니까!!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궁뎅이를 머리로 받으며 오르고 있었습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어려운 코스마다 인공 손잡이를 친절하게 설치 해 놔서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초보들에겐 잘한 일일거고...방귀깨나 끼는 놈들에겐 욕먹고..

이젠 문수봉 암벽 오르는게 식은 죽 먹기가 �습니다.
잘 하는 짓인지 못하는 짓인지는 차지해 놓고 왠만한 사람들은 모두 오를 수 있게 �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칭 선수인데 손잡이 잡고 오를 순 없지~하여 손잡이가 없는 
옛날에 오르던 릿지 코스로 올랐습니다

이런 아슬아슬한 스릴은 느껴보지 못하신 분들은 당연히 모르시겠죠
오랜만에 하는 릿지여서 사실 속으로 겁도 많이 냈습니다..ㅎㅎ 오줌도 마렵고..
 
올라와 위에서, 올라 오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니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ㅎ
좋은 길 놔두고 왜 저리 위험한 곳을 오르는지~

문수봉 정상 바로 아래 봉우리에 올라서 문수봉을 찍었습니다.
올라서 내려다 보는 것보다 아래서 바라 보는 것이 그 위용을 더 잘 느낄수 있습니다.

암벽 뿐인 문수봉에서 그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소나무
놔사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을  사람들이 '식물인간'이라고 표현하죠?
저는 이 표현이야 말로 가장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소나무를 보세요!!~~
암벽 뿐인 문수봉 꼭대기 조그만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꿋꿋이 하늘 향해 대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저 소나무 --
꽃 피우고 열매도 맺고 - 즉 종족 보전을 하며 - 
많은 이들에게 시원한 산소를 제공하고 있는 저 소나무를
어찌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인간과 동일시 할수 있다는 말인가!!~~
저 소나무가 들으면 심한 모욕감을 느끼리라~~

자연은 하나하나 그 어떤 것도 무시 되어서는 않되라~

문수봉에서 본 "보현봉"

문수봉에서 바라 본 비봉

문수사와 북한산성의 상징 "대남문"이 산성과 함께 드디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오늘은 저기 까지가 등산의 정점이 되겠기에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문수봉 정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북한산성의 성벽이 보이기도 합니다
북한산성이 이곳으로 돌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산에는 태극기가 두군에 꽂혀 있습니다. 바로 이곳 문수봉과 백운대입니다.
그많큼 중요하고 의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문수봉 태극기 밑에서 증명사진 한장 박았습니다. 
인물이 시원찬아 쬐끄마하게 축소 시켜 보일락 말락하게 올린다는게 그래도 잘 보이네요
워낙 모델이 좋아선인가? ㅎ

이제 하산길입니다
북한산성 성벽위를 걸어 내려 가고 있는데 옆으로 길을 내서 성벽을 보호 해야 할듯..
나중에 또 거금 들여서 복구 하지 말구...닝기리

북한산성의 꽃 - 大南門
멋있죠?
저곳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가면 구기터널, 이북오도청이 바로 나옵니다
좌측으로는 산성 안이 되겠습니다

대남문

대남문에서 본 백운대 - 백운대 앞에 노적봉이 있는데 사진에서는 하나로 보이네요

산성 안으로 하산을 하려 했더니 온통 눈밭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못신"을 꺼내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북한산성 안에는 유적지가 많지는 않고 조금 있습니다만, 절간을 제외하고는
모두불타고 없어져 그 흔적만 횡하니 남아 있습니다

옛 화려했던 모습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이런 표지판만이 역사의 그늘을
비추고 있습니다


산속에 갈대가 자라면 그곳은 집이 있었던 자리이며 그 집이 화재로 소실 �을 경우라 하죠?
대남문에서 중성문 사이에는 이렇게 갈대 밭이 드문 ㅡ드문 있습니다.
옛 행궁들이 불타 없어진 자리들인거죠

산성 안에서 바라 본 노적봉 - 노적가리 쌓아 논듯한 형상이라고 노적봉이라 한답니다
다 아시죠?

중성문
여기서 대남문까지가 북한산성 속의  행궁이 있었던 핵심 城입니다

중성문에서 대서문으로 내려 가는 길

북한산성 한가운데 이런 호화 유흥업소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국립공원안에 이런 상가가 있다는게 어떻게 느껴 지십니까
국립공원 안에서 취사행위를 하면 엄청난 벌금이 부과 되고
특히 불 피우면 감옥 갑니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죠?
여기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 마시면 저 아래 버스 타는데 까지 승합차로 태워다 줍니다
얄팍한 상술로 초보 산꾼들을 유혹하는거죠
저는 걷기 위해 왔는데 차타고 북한산을 내려 갈순 없다고 핑개대며
여기선 아무것도 사먹지 않고 걸어서 내려 갑니다...속으론 사실 무척 먹고 싶고 차타고 싶고..

대서문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서문입니다
이 대서문을 시발점으로 하여 우측 의상봉 코스를 시작으로하여 
산성의 12문을 종주하는 코스가 매우 유명합니다.
그리고 약8시간반정도 걸리는 힘든 코스이기도 합니다
또한 염초봉에서 백운대를 오르는 릿지코스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오르기 힘들기도 합니다
저는 2번의 경험만을 자랑으로 삼고 북한산을 오르는 초보들에게 큰소리로 우쭐대기도 하죠
다음번에는 "北漢山城十二之門" 종주 코스를 오랜만에 시도 하려 합니다.
이곳의 山行記는 옛선조들에서 부터 많이 쓰여져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다음 산행기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하는 산행이 되겠습니다
흠~ 역사 얘기 많이 쓰야겠군요..아는 것도 별루이면서..ㅎ

대서문

북한산성 입구에 내려 왔습니다
땅거미가 내려 앉기 시작했습니다
앞에 원효봉, 뒤에 노적봉 사이로 만경대가 보이며 백운대는 원효봉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날이 많이 어두워졌습니다..저녁 6시경
버스 정류장에서 보는 의상봉

오늘 산행한 코스를 요약 정리 했습니다
주황색으로 표시 된 코스가 오늘 걷고 또 걸은 코스가 되겠습니다.
이제까지의 산행로는 아기자기한 코스였습니다만, 동쪽으로 갈수록 웅장해지기 시작합니다
30억년의 풍상을 한눈으로 볼수 있는 곳....그 규모는 가히 짐작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 염초봉...........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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