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마루 정기산행]  
   불광역2번출구-거북샘-탕춘대성-포금정사 
     2011년 2월 20일(일) 
     억세게 추웠던 기나긴 겨울도 
     60억년의 법칙 앞에선 어쩔수 없었나 봅니다.
     금년들어 가장 좋은 날씨-봄이 온 듯한 느낌을 주는 화창한 날씨가 
     북한산 자락을 뒤덮는 날
     이런 날에 "휘마루 정기산행"이 북한산에서 있었습니다.


   [불광역 2번 출구]

   오전 10시 20분경
   지하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
   엄청난 등산객들이 모여드는 불광역 2번출구에는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조우]

   멀리 분당에서도 한걸음에 달려오고...


   [구기터널 방향]

   불광동 사거리에서 구기터널방향으로 북한산을 향하는 산객들이 줄을 잇습니다.
   건물 뒤로 북한산 '족두리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행 들머리-장미공원/거북샘] 11시

   불광동 사거리에서 구기터널 방향으로 올라가면 구기터널 앞에 "장미공원"이 있고,
   이 공원 안에 "거북약수터"가 있습니다.
   이곳이 오늘의 산행 들머리가 됩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쉼터] 11시 23분

   "거북약수터"에서 23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쉼터가 나오는데
   오늘 산행길과 북한산 서부능선이 한눈에 조망됩니다.
   날씨가 완연한 봄날씨로 더워서 추위에 대비해 껴입은 옷을 하나 둘 벗기 시작합니다.


   [조망대 오르는 데크]

   "북한산 둘레길"중에 "옛성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길에는 많은 편의시설이 설치되
   있어 역시 "국립공원" 다운 면모를 과시합니다.


   [조망대에서 북한산 조망] 11시 30분

   '서울시 선정 좋은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서부능선- - -
   오늘 우리는 "비봉"과 "사모바위"를 오를려고 했습니다만,
   산행 경험 격차가 큰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모두가 함께 할수 있도록 
   산행거리를 조금 줄여 "비봉" 바로 아래에 있는 "포금정사"터 까지만 했습니다


   [탕춘대성] 11시50분

   조망대에서 20분 정도 전진하면 "탕춘대성 암문"을 만납니다.
   "탕춘대성 蕩春臺城"은 이 근처 세검정에 "탕춘대 蕩春臺"라는 누각이 있어서 
   그 이름을 따와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蕩春臺"는 현재 "세검정" 바로 옆에 세워져 있던 '樓臺'인데, 지금은 그 터만 있습니다
   '연산군'이 1506년에 산수 좋은 이곳에 연회장소로 지었고,.수많은 "흥청"들을 데리고 
   음주가무를 즐기며 방탕하게 놀았던 山水좋고, 경치 좋은 "蕩春臺"였답니다.... 
   "방탕할 탕 蕩"이니 상상이 갑니다.
   "흥청망청 興淸亡淸"이라는 단어가 이때에 탄생되었으니.......모두 아시죠?
   '연산군'이 제일 좋아한 놀이가 "말타기"였지요? 진짜 말이 아니라 뇨자들 말...ㅎ
   연산군은 매일 같이 천 명에 가까운 '흥청'을 불러 놓고 떠들썩하게 잔치를 베풀었고, 
   술이 한잔 취하면, 놀이를 시작했는데, 왕은 자신이 말이 되어 '흥청'들을 태우고 
   기어 다니지 않나 ,반대로 자기가 그녀들 등에 올라 타고 돌아 다니는 "말타기" 놀이를 
   즐겼답니다. 에구~ 부럽 부럽 ~ ㅎ


   [막걸리 타임] 12시 5분

   "탕춘대성 암문"에서 "향로봉"방향으로 "탕춘대성"을 따라 15분 정도 가면 
   '마당바위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씩하고...


   [탐방안내소] 12시 17분

   다시 10분 쯤 올라 가면 탐방안내소가 나옵니다.
   이곳부터는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거리는 짧습니다.


    [지난 온 길]

    "포금정사"로 올라 가며 뒤돌아 본 "탕춘대성"과 "인왕산" "안산"
   지나온 산행길이 거의 평지 수준이라 누구나 쉽게 걸을수 있습니다.
   대부분 "북한산"이라고 해서 힘들까봐 걱정했는데, 오늘 산행길은 편해서 좋았다고...
   특히 요즘 산행에 맛을 들인 몇몇 친구들은 너무 쉬워 재미없다고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앞으로는 '비봉', '사모바위'까지 가자!~"라고... 


   [점심식사] 12시 55분

   즐거운 식사시간.
   약 1시간 가까이 남~냠하고, 빠질수 없는 막걸리와 소주.....상상만 하시라~
   "휘마루"가 정기산행지로 "청계산"을 떠나 "북한산"으로 온것은 처음입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산행코스를 개발해 다니자고....


    [포금정사에서 단체기념사진] 1시 47분

   "사랑해!~~"


   [족두리봉을 배경으로]

   하산 하는 길-탕춘대성 위에서 "족두리봉"을 배경으로 ........
   아무도 맡아주지않은 "휘마루 산짱 산총 자리"를 흔쾌히 맡아준 신임 산짱 산총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고생 좀 더 해주시길 바람니다

   뒤풀이는 불광역 근처 음식점에서 있었습니다
   앞으로 "휘마루 정기산행"에 많은 동기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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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눈물-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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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산 망월사코스 산행기]  
    망월사역-신흥대-망월사-포대능선-망월사역 
     2010년 11월 21(일) 맑음  
     도봉산 망월사 코스
     30여년전에 한번 가 보고는 아직까지 가 보지 못한 "망월사"
     "휘마루" 정기산행을 "청계산"을 벗어나 "도봉산"으로 갑니다.
   
 
     [도봉산 망월사 코스 구글어스]
  
     "휘마루" 정기산행지가 "청계산"에서 처음으로 "도봉산 망월사 코스"로 바뀌었습니다.
     초보산객들을 더 우선시하는 동창회 산악회여서 언제나 "청계산"이었습니다.
     이러한 "청계산"을 벗어 나기는 쉽지 않았는데 ......
   

     [도봉산 망월사코스 탐방안내소] 11시 14분
   
     "전철 1호선 망월사역 3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엄홍길 전시관"이 있고
     2~30m 정도 가면 "신흥대학교" 정문이 나옵니다.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외곽순환고속화도로" 밑을 지나가 조금 더 가면
     사진에서 보는 "도봉산 망월사 등산로 탐방 안내소"가 나옵니다.
     '망월사역"에서 약20분 정도 걸립니다.
   

     [의정부시 호원1동]
   
      아직도 단풍이 남아 있는 의정부시 호원동을 지나 갑니다.
   

     [원도봉 계곡] 11시 24분
   
     오늘 산행하는 코스는 좌측 "다락능선"을 끼고 "원도봉계곡"을 따라 "포대능선"까지
     올라 가는 아주 짧은 거리로서 경사도 완만해 건강산행코스 이더군요
   

     [계곡 쉼터] 11시 37분
   
     40분 정도 오르면 땀이 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 곳엔 언제나 쉼터가 산객들을 반겨줍니다.
     이 계곡에 우리나라의 대표 산악인인 "엄홍길"씨의 생가터가 있더군요.
     "엄홍길"씨는 우리보다 10여년 후배인데도 이곳에 살았다면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나 봅니다.
   
      
      [현위치 안내도]
   
      이곳의 산행 개념도는 완벽합니다.
     "망월사역"에서 "망월사"를 지나 "포대능선 산불감시초소"까지 왕복하는 코스입니다.
   

     [망월사로 오르는 길] 12시 12분
   
     된비알을 오름짓을 하며 35분 정도 오르면 300m앞에 "망월사"가 보이기 시작하는
     이정표 안부에 도착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망월사"에 오릅니다.
   

     [망월사] 12시 26분
   
     300m를 15분 정도 걸려 오르면 장엄한 "망월사"가 나옵니다.
     매우 큰 절간이라 미로찾기를 하듯 한칸 한칸 올라 갑니다.
     점심식사를 무료로 주는 식당을 지나 갑니다.
     무료가 어디 있겠습니까? 먹으면 보시를 해야죠...
   

     [망월사]
   
     "망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639년)에 해호스님이 여왕의 명에 의해 
     신라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하였다고합니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정권 안위가
     주 목적임을 "망월사"는 스스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겠지만....
     "망월사"라는 이름도 당시 서라벌 "월성月城"을 향해 기원하는 뜻에서 "망월사"라 했답니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운수 납자의 대선사들이 많이 거쳐갔는데 고려시대의 혜거, 영소대사와 
     조선시대의 천봉, 영월, 도암 등 많은 명승들이 지냈고,
     근대의 도인이라 불리우는 만공, 한암, 성월 등 선지식들이 지내던 곳이랍니다.
   

     [망월사에서 인증샷]
   
     열성 산악인들(?)이 망월사를 오르고 인증샷을 합니다. ㅎㅎ
     큰 산은 못가도 작은 산은 언제나 열심히 다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듯.....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
   
     '망월사'옆에서 막걸리 한잔하고 "포대능선"정상을 향해 다시 올라 갑니다.
     '망월사'에서 '포대능선'까지는 약500m정도로 아주 가깝습니다.
     앞에 구글어스를 보면 더욱 쉽게 알수 있습니다.
   

     [마지막 급경사를 오르며]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로 여기도 마지막 100m정도는 급경사 오르막이었습니다.
   

     [포대능선 삼거리 이정표] 1시 4분
   
     "망월사"에서 20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포대능선" 정상에 도착합니다.
     "망월사"와 "포대능선" 삼거리에 서있는 이정표.
   

     [포대능선에서]
   
     동창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니 산행기가 아니고 추억의 앨범이 됩니다.
     "파이팅"
   

     [포대능선 산불감시초소]
   
     북쪽으로는 "포대능선"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가 조망됩니다.
     저 능선을 따라 계속 가면 "사패산"이 나옵니다.
   

     [도봉산 정상-자운봉,선인봉,만장봉]
   
     남쪽으로는 도봉산의 정상인 "자운봉","선인봉","만장봉"이 
     神仙의 나라인듯 신비롭게 보입니다.
   
           도봉(道峯)   
                       박 두 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혀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먼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하산] 2시 54분
   
     '포대능선'에서 막걸리를 한잔씩하고 바로 하산합니다.
   

     ['신흥대' 정문] 2시58분
   
     '포대능선'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려 '신흥대' 정문까지 내려 왔습니다.
     '신흥대' 정문 바로 옆에 "신흥 이모네집"이라는 음식점에서 뒷풀이를 하는데....
     현'휘마루' 산짱인 이완근교우가 세상의 돈을 모두 쓸어 담을려는지 음식점을 개업했답니다.
     '이완근'교우는 현재 모 강관회사에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데도 돈을 더 벌어야 하는지 
     와이프로 하여금 음식점을 개업하게 했나 봅니다. 혼자 너무 많이 벌기 없기...ㅎ
     오늘 우리의 산행코스가 이곳으로 변경된 이유 중에 하나라고도 할수 있겠씁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신흥대 정문'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찾기는 매우 쉽습니다.
   

     [신흥이모네집]
   
     많이 찾아 주시고....
   

     ['신흥이모네집' 맛깔스런 안주]
   
     형제지간이라도 음식 맛이 없으면 찾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시식을 해 본 결과 대만족입니다.
     그렇기에 "파란문"이 자신있게 강력 추천합니다. 
     친수씨가 직접 조리를 하기에 화학조미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으며
     천연조미료로 절대맛에 도전하고 있더군요.
   

      ['신흥 이모네집'에서 뒷풀이]
   
      "신흥 이모네집"의 번창을 기원하며 뒷풀이를 화려하게 했습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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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출산 산행기]  
    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도갑사  
     2010년 11월 6(토)~7일(일) 안개 맑음
     중부지방은 벌써 초겨울로 접어 들지만
     南道地方은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처럼 와이프와 동행하여, 모교 산악회 "휘산회 徽山會"가 가는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 사이에 있는 "월출산 국립공원"으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워지는 "달 뜨는 月出山"으로 저와 함께 구경 가 볼 까요?
  

     [목포 북시장] 6일밤 8시 45분경
  
     6일 오후 3시45분경 서울 양재를 출발하여 5시간 정도 걸려 "목포 북시장"에 도착했는데...
     "안개 낀 목포의 밤"
     저녁식사겸 "목포는 항구다"라는 정취를 직접 느끼며 술 한잔 하라고 
     비린내가 물신 물신 풍기는 "목포 북시장"에 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멱고 싶은대로 골라 마음껏 드세요~"라는 안내와 함께....
  

     [안개 낀 목포북시장] 6일밤 10시 15분경
  
     약 1시간반 동안 6명이서 160,000원에 싱싱한 회와 酒님, 식사를 잘 했습니다.
     그리고 숙소인 "월출산온천관광호텔"로 갑니다.
     엄청나게 큰 "목포북시장"의 "회 센타"여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한거번에 몰려와도
     모두 수용 할수 있는 목포의 대표 "회 센타"인가 봅니다.
     목포에 가면 '목포북시장'의 "회 센타"를 찾으세요~
  

     [월출산온천관광호텔] 7일 오전 7시 30분
  
     "월출산온천관광호텔"에서 하룻밤을 푹 쉬고 일어 났습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는 "우거지 해장국"이었고...그런데로 먹을만...
     그리고 집행부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하나씩 받아 들고 안개 낀 "영암"을 지나
     "월출산 국립공원 천황사 지구 입구"로 출발 합니다.
  

     ['월출산 국립공원 천황사 지구'쪽 입구] 오전 8시 5분
  
     무시 무시 할 정도로 앞을 가리는 안개를 뚫고 
     "월출산 북쪽 산행 들머리"인 "천황사"입구로 왔습니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하니 어떤 신비감 같은 느낌도 드는군요
  

     [준비운동]
  
     이번 산행에는 평상시 참여 인원의 반 정도가 참여해서 약100여명의 교우들이
     준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안전제일"을 다짐하며....
  

     [단체기념사진]
  
     오늘 산행은 "안개"가 가장 걸림돌이 될거라고 예상을 하겠지요?
     하지만 안개는 地表面에서 100여m내외에 깔리고, 안개는 좋은 날씨를 예보하며,
     특히 산 위로 고도를 100m 이상 높이면 안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안개 위로 걷는 더욱 아름다운 산행이 될것이라고 경험상 확신합니다.
     기대하시라~
  

     [탐방로 입구로 올라 가는 길] 8시 20분
  
     月出山 秘景 속으로 출발 합니다.
     월출산국립공원관리소를 지나고.....
  

     [거북바위] 8시 28분
  
     공원관리소를 조금 지나면 "거북바위"가 나옵니다.
     거북이 같지요?
     '월악산'을 산행 할때엔 '거북이'처럼 느릿 느릿 걸으라고 암시 하는듯...
     그렇습니다. '월악산'은 대표적 岳山이므로 천천히 조심 조심 걸어야 합니다.
  

     [탐방로 입구] 8시 29분
  
     "거북바위"를 지나면 바로 본격적인 산행길이 시작되는 들머리가 나옵니다.
  

     [이정표] 8시 30분
     "구름다리 → 1.4km"
     "천황봉 → 3.1km"
  
     모두 이 거리 표시에 안도감을 갖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 거리 표시는 "圖上거리"를 알려 주는 것이기에 실제 거리와는 차이가 납니다.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삼각형의 밑변의 거리를 표시하는 게 "도상거리"입니다.
     우리가 실제 걷는 거리는 삼각형의 윗변 2개를 걸으므로 밑변거리 보다는 훨씬
     많이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사가 있으니 힘은 더 들고...
     그러니 '도상거리'는 참고용일 뿐이고, 실제 걷는 거리는 보통 '도상거리'에 25%를 
     더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월출산은 경사가 심해 더 더해야 할듯....
     아주 옛날 학창시절 배웠던 "피타고라스 정리..." 알지요? ㅎㅎ
  

     [登路]
  
     '탐방로 입구'에서 부터 바로 된비알은 시작됩니다.
     "구름다리"까지 숨돌릴 틈을 주지 않으며, "바람계곡"을 타고 오르막을 오릅니다.
  

     [바람계곡 삼거리] 9시 7분
  
     8시 20분에 "월출산 입구"를 출발하였으니 47분이 걸려 "바람계곡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좌측으로 올라 가면 "구름다리"로 가서 "천황봉"으로 가는 登路이고,
     우측으로 올라 가면 "바람폭포","천황봉"으로 가는 비교적 쉬운 길입니다.
     일반적으로 좌측 "구름다리"로 올랐다가, 우측으로 내려 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합니다.
     저는 "천황봉"을 지나 "구정봉" "도갑사"로 종주를 할 예정입니다.
  

     [구름다리로 오르는 길]
  
     "바람계곡 삼거리"에서 부터는 경사가 더욱 가파라 집니다.
     계단을 설치 하지 않았다면 일반등산객들은 오를 수 없는 급경사입니다.
  

     [구름다리 밑으로]
  
     삼거리를 벗어나 조금 올라 가니 머리 위로 월출산의 명물이라고 하는
     "구름다리"가 보이기 시작 합니다.
     좌측 "시루봉 앞 봉우리"와 우측 "매봉"을 연결하는 "월출산"을 상징하는 듯한 "구름다리"
     (앗!~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라는 별명을 가진, 같이 늙어 가는 후배 '이 용주교우'가
     사진에 살짝 잡혔네여 ㅎㅎ)
  

     ['구름다리'로 오르며 뒤 돌아 본 "장군봉'과 안개]
  
     불과 30여분 전 월출산 공원 입구에 드리웠던 안개는 고도를 높이니 발 아래에 깔리고
     좌측 "장군봉"이 가을 아침 햇살을 흠뻑 받으며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오늘 산행에 걱정을 주었던 안개는 이제 地表面에 붙어 있는 한낱 수증기에 불과하고
     그 안개는 이제부터 속세를 벗어나게 해 주는 無限의 세계를 만들어 주며
     "월출산"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 주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바람계곡과 구름다리]
  
         南道地方은 이제 가을이 무러익어 가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행락객들까지 가세해 '월출산'은 입추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 하나 하나가 즐거움을 안겨 줍니다.
  

     ['구름다리'로 오르는 된비알]
  
     인공 계단을 설치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인파가 '구름다리'로 절대 오를 수 없고
     그래서 툭 하면 나오는 얘기지만 "케이블-카" 운운하는 돈벌이 발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땀 흘린 많큼 더 많은 것이 보인다"
  

      [구름다리 앞 쉼터] 9시 26분
  
     급경사 오르막을 1시간 정도 올라 "구름다리 앞 정자"에 도착 했습니다.
     올라 오느라고 힘들었을 산객들을 위한 배려 이겠지요
  

     [쉼터 정자에서 바라본 '구름다리' 입구]
  
     쉼터 정자 앞에서 바라보는 "구름다리 입구"입니다.
     '월출산'을 찾아와서 이곳에 오르지 않고는 '월출산'을 얘기 할수 없겠지요
     이 봉우리가 '시루봉 앞 봉우리'입니다.
  

     [구름다리]
  
     우리나라에서 最高높이 120m에 있는 길이 54m, 폭 1m의 다리로서
     "시루봉 앞 봉우리"와 "매봉"을 잇는 "월출산의 명물"이랍니다.
  

     ['구름다리'에서 내려다 본 '바람계곡']
  
     '구름다리' 위에서 아까 올라 왔던 "바람계곡"을 내려 다 봅니다.
     아찔 합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하기는 하지만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매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구름다리']
  
     '구름다리' 뒷쪽 뾰쪽 솟아 있는, '구름다리'와 붙어 있는 듯한 봉우리가 "시루봉"입니다.
     이제 안개는 완전히 벗어나 안개를 깔고 산행을 합니다.
  

     [안개 속에 뭍힌 '전남 강진군'] 9시 49분
  
     안개는 이제 속세를 단절시켜주는 고마운 가림막이 되었습니다.
     전라남도 강진군 방향입니다. 멀리 "호남정맥"이 조금 보입니다.
     山群들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같이 보이죠?
     저 안개 아래 속세는 아직도 "五里霧中"이리라~
  

     [천황봉으로 가는 길]
  
     "매봉"과 "사자봉" 사이 계곡으로 완전 하산(?)했다가 다시 "사자봉"앞 "천황봉"능선으로
     올라 가야하는 조금 더러운 구간입니다.
     이유는 우측 "사자봉"이 완전 '대슬랩' 암봉이어서 걸어서는 올라 통과 할수 없기에
     "사자봉"을 우회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下山]
  
     '매봉"과 "사자봉" 사이 계곡으로 下山하드시 내려 갑니다.
     "구름다리"를 오르며 이제 큰 오르막, 내리막은 없겠지~라는 기대를 완전히 깨부수는
     더러운 코스 입니다....ㅎㅎ
  

     [登山]
  
     내려 갔다가는 다시 낑낑거리며 급경사 오르막을 기어 오릅니다.
     30분간을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갑니다.
     우측 "사자봉"은 멀리서 보기엔 멋있지만, 산객들에겐 애물단지.
  
       
       [뒤돌아 본 구름다리에서 온 길]
  
     "사자봉"과 "매봉" 사이를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왔습니다.
     이 구간에 걸린 시간이 약30분인데 예상을 못한 된비알이라 무지 힘들었습니다.
     "사자봉"은 대슬랩이라 일반산객들은 오를수 없고 우회해야 하기에 고생을 합니다
     이 산행기를 보고 다음에 가시는 분들은 미리 대비하고 가시기 바람니다. 
  

     ['천황봉'으로 가는 능선] 10시 28분
  
     능선에 올라 탓습니다.
     크게 힘든 코스는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천황봉'을 오를려면 한번 더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땅끝기맥" 마루금에 오르면 보이는 '천황봉'] 10시 41분
  
     "천황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갈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 사진을 촬영한 고갯마루가 좌측에서 올라 오는 "땅끝기맥"과 만나는 곳입니다.
  

     [능선에서 보이는 '천황봉' 뒤에 있는 '향로봉'과 '구정봉']
  
     "천황봉"을 지나 우리가 가야할 "구정봉"과 "향로봉"도 보입니다.
  

     ["바람폭포 갈림길"에서 '천황봉'으로 오르는 登路] 10시 53분
  
     "땅끝기맥 마루금"이자 "월출산 주능선"을 타고 최고봉 "천황봉"으로 올라 갑니다.
     "통천문 通天門"이 있는 위치를 미리 점지 해 두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가운데 안부가 "바람폭포-천황사"로 오가는 갈림길입니다.
  

     ['천황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땅끝기맥']
  
     좌측 봉우리가 "사자봉"으로 "구름다리" 위에 있는 봉우리이고,
     우리가 "구름다리"를 지나 내리막 오르막을 힘들게 걸어 저 "사자봉"을 우회하여 왔고,
     앞에 펼쳐진 산줄기가 "호남정맥"에서 분기하여 오는 "땅끝기맥"입니다.
  

     [구름다리] 11시 3분    ☆20% 줌인한 사진☆
  
     "사자봉" 뒤로 "구름다리"가 살짝 보입니다.
     저 다리를 건너 "매봉"을 올랐다가 다시 하산하여 다시 여기까지 올랐으니
     어떤 식으로 올랐는지 대충 짐작하겠지요? ㅎㅎ
  

     [통천문 通天門] 11시 11분
  
     "天皇"에게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 해야한다는 "통천문 通天門"이 나타납니다.
     "월출산"의 유명 명소 중 하나
  

     [통천문 通天門]
  
     비교적 넓은 "通天門"을 통과하여 하늘나라로 '천황'을 만나러 갑니다
  

     [天皇峰 頂上] 11시 20분
  
     月出山의 最高峰인 "天皇峰"에 도착했습니다.
     "천황사 주차장"에서 8시 20분에 출발했으니 3시간이 걸렸습니다.
     "도상거리 3.1km"는 실제 5km 이상이고 高低差가 커 체감적으론 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특히 등산객들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많아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天皇峰 頂上石]
  
     "809m 높이", 더 정확히는 "808.7m 높이"
     南韓 西部地方에서는 가장 아름답다는 "月出山"
     그래서 "작은 금강산 金剛山"이라고 불리워 진다는 "月出山"
     그 최고봉인 "천황봉 天皇峰"에 섯습니다.
  
           
           [에구~ 힘들어~]
  
         이렇게 쎈 산행은 처음인 할머니가 천신만고 끝에 "월출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제가 생각컨데 이건 사건입니다. 무릎관절이 시원찮아 수영이나 하는 사람이니...
         그래서 기념으로 "파란문의 산행기"에 오늘 처음으로 마눌 사진을 올리는 것입니다. 
         자손만대에 길이 남는 업적 기념으로.... 
  

     [증명사진]
  
     좌측 '차기 휘산회 회장-이 승도'와 우측 필자 '파란문'도 기념사진 한장 
  

  
     지리산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산봉우리 중에 "천황봉 天皇峰"이라는 봉우리는 
     거의 모두 "天王峰"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아직 그대로 이군요.
     이 기회에 이 문제에 대해 제 생각을 나름대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天皇峰'을 '天王峰'으로 바꾼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일본 쪽바리들의 한반도 침탈시대에 쪽바리들의 우두머리인 '천황'을 우리 산봉우리의
     최고봉에 창씨개명 하듯 바꿔 붙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주창되어 변경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도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자칫 "국수주의 國粹主義"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天皇'은 일본놈들만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지 않습니까?
     서양놈들도 "King"대신에 "Emperor"라고 사용했지요
     특히 우리가 전래적, 전통적으로 사용한 "天皇'은 최고 높은 "옥황상제 玉皇上帝", 
     즉 하느님을 의미 한것이지 일본놈 쪽바리들의 "천황"을 의미 한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이젠 쪽바리들에게 열등감이라던지 치욕스런 생각에서 벗어 나야하지 않을까요?
     '삼성전자'가 '쏘니'를 상대도 않되게 까뭉개고, '현대자동차'가 '도요타'를 위협하는
     이젠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압도하는 우위에 올라선 선진국가가 되었는데....
     다행히 "月出山"은 아직까지도 우리 고유의 이름 "天皇峰'을 고수 하고 있어 뜻 깊습니다.
     이제 열등감이나 國粹主義에 빠지지 말고 떳떳하게 살자구여~
  

     [천황봉 하산]
  
     아직 점심식사 시간으로는 일러 "천황봉"을 하산하여 "구정봉"으로 향합니다.
     엄청 급경사 내리막 입니다.
  

     [뒤돌아 본 '천황봉'] 11시 38분
  
     내려온 '천황봉'을 뒤돌아 봅니다.
     급경사 내리막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지요?
  

     [가야할 '구정봉'과 '향로봉']
  
     그리고 앞으로는 가야 할 "구정봉"과 "향로봉"이 펼쳐집니다.
     햐!~
     아름답습니다.
     힘들게 오른 보상이 이런 것이죠
  

     [유명한 '영암 소나무'] 11시 46분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은 한자로 "靈巖"이라고 표기하더군요.
     풀이하자면 "신령스런 큰 바위"라는 뜻 아닙니까?
     "月出山"이라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神靈스러워 나온 地名이라고도 한답니다
     월출산을 다녀 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 바위의 저 나무를 촬영해 왔습니다
     神秘한 生命力을 보여 주는 나무이기에....
  

     [돼지바위로 가는 안부]
  
     평평한 능선 같습니다만 높낮이가 있는 능선 이라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산입니다.
  

     [협곡] 11시 50분
  
     날씬한 사람만 지나 갈수 있는 바위틈
     마눌이 지나 가고 있으니....ㅎㅎ 날씬한 할머니이죠? 
  

     ['돼지바위'로 가며 뒤돌아 본 '천황봉']
  
     '여암 신경준 선생"이 작성한 "산경표 山經表"에 나오는 우리나라 산줄기
     "1大幹, 1正幹, 13正脈"
     그리고 여기서 다시 分岐하는 지맥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땅끝기맥"이 펼쳐집니다.
  

     [기암괴석들]
  
     "돼지바위 조망대"가 있는 곳으로 가며 보여지는 奇岩怪石들....
     특히 여기서 보는 "구정봉 장군 얼굴"이 확연합니다.
  

     [돼지바위]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
     역광으로 촬영하니 더욱 재미있습니다.
  

     ['돼지바위 조망대'를 지나 뒤돌아 본 '천황봉']
  
     "천황봉" 근처는 이 고장의 이름이 왜 "靈巖"인지를 확실히 알려 줍니다.
     가히 "小金剛山"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게 없습니다.
     이런 곳을 놔 두고 외국으로 관광 갈 필요가 있을까...
  

     ['남근바위'로 가는 둔덕] 12시 1분
  
     또 다시 둔덕을 하나 넘어 갑니다.
     오르락 내리락의 연속 입니다.
  
        
        [남근바위] 12시 8분
  
       유명한 "남근 男根바위"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남근바위"가 보이지 않고 저 암봉을 옆으로 살짝 넘어야 보입니다.
  

     [남근바위]                                  [뒤돌아 본 '남근바위']
  
     마눌이 속칭 "남근바위" 옆으로 지나 가고 있습니다.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암봉을 의미 부여를 해놨습니다.
     지나가서 뒤돌아 보면 더욱 아닙니다.
  

     ['남근바위'를 지나 뒤돌아 본 '남근바위']
  
     "구정봉"으로 가며 다시 뒤돌아 본 "남근바위"입니다.
  

     ['남근바위'를 지나면 펼쳐지는 '구정봉']
  
     점심식사를 "경포대 갈림길"에서 합니다.
     "경포대"는 "강릉 경포대"와는 다른 "강진 금릉 경포대"라고 하는 군요
     한자가 틀리는데 "鏡布臺"로 쓰는 강진에 있는 월악산의 유명 계곡이랍니다.
  

     [도시락] 12시 30분
  
     이번 도시락은 내용이 훌륭했습니다.
     대부분의 교우들이 칭찬하더군요.
     약 45분간 식사 겸 휴식을 취하고.....
  

     ['장군바위'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구정봉 장군바위'] 1시 15분
  
     "구정봉 장군바위"를 조망하는 곳을 지나갑니다.
  

     [향로봉-구정봉 갈림길]
  
     '장군바위 조망대'를 지나면 바로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반드시 우측으로 가야 "월출산의 진수"인 "베틀굴"과 "구정봉"을 오를수 있습니다
  

     ['구정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지나온 길]
  
     많이 걸었습니다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베틀굴'과 '구정봉'] 1시 22분
  
     "구정봉"으로 전진하니 "베틀굴'이 보이기 시작 합니다.
     "베틀굴"의 위치를 잘 보아 두세요
  

     [베틀굴]
  
     임진왜란 때에 여자들이 피난 와 이 굴에서 베를 짰다고 "베틀굴"이라 한답니다
     그런데 이 굴이 여성의 거시기를 닮았다고....ㅎ
     굴 속을 들어 갔다 나오는 여자들도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이는 걸로 봐서.....
     닮기는 닮았는가 봅니다. ㅎㅎ
  
           
           [베틀굴 내부]
 
     제가 "베틀굴" 내부를 확실하게 촬영 했습니다.
     이제 속이 시원 하십니까?  

     [베틀굴 안내]
  
     "베틀굴"에 대한 상세한 안내는 사진을 참고 하시고...
  

     [구정봉 오르는 로프구간]
  
     '베틀굴'에서 로프를 타고 "구정봉"으로 오릅니다.
  

     [구정봉 정상] 1시 31분
  
     "구정봉" 정상 아래에 올랐습니다.
     다시 정상으로 오르르면, 길이 하나만 있는데....
     앞의 정상 바위 좌측으로 돌아 가면 올라 가는 "굴"이 하나 있습니다.
  
           
           ['구정봉 정상'으로 가는 굴]
  
           '구정봉" 정상에 오를려면 반드시 이 굴을 통과 해야 합니다요
            사람 한사람이 간신히 빠져 나갈수 있는 좁은 굴입니다.
            베낭은 벗어 놓고 올라 갔다 오는 것이 편합니다.
            '월출산'에는 이런 굴이 많더군요. 
  

     [구정봉 정상] 1시 35분
  
     "구정봉 정산'은 거대한 세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그 거대한 바위들이 움직인다고 "삼동석 三動石"이라 하고
      그것이 신비로와 "신령암 神靈岩"이라고도 한답니다.
  

     [九井峰 頂上]
  
     정상에는 "아홉개의 우물"이 있다고 "九井峰"이라고 한답니다.
     우물은 아니고 웅덩이가 있을 뿐이지만,
     龍이 이 바위를 뚫고 승천 할때 만들어진 것이래나 뭐래나....ㅎㅎ
     "靈巖'이라는 地名이 실제 이 "九井峰"에서 부터 나왔다는 설도 있더군요
  

     [九井峰 頂上에서 바라보는 '天皇峰']
  
     햐~
     金剛山 萬物相을 보는 듯 하군요.
  

     [九井峰 頂上에서 바라보는 서쪽방향]
  
     서쪽 방향으로도 기암괴석들이 움집해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 영암읍내가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입니다.
  

     [九井峰 頂上에서 바라보는 '향로봉']
  
     남쪽으로는 "향로봉'이 손에 잡힐듯 있고....
     "땅끝기맥"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저 산줄기는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는 저 암봉 옆구리로 안전하게 "미왕재"로 갑니다.
  
               
               ['구정봉' 통과하는 굴]
  
                다시 "구정봉 굴"을 통과하여 내려 갑니다.
  

     [현위치] 1시 44분
  
     "향로봉' 아래 "미왕재-억새밭"으로 가는 안부에 있는 현위치 안내도입니다.
  

     ['향로봉' 옆구리를 돌아 내려와 뒤돌아 본 '향로봉'] 2시
  
     "향로봉"은 오르지 않고 옆구리로 돌아 내려 와서 뒤돌아 봤습니다.
  

     ['억새밭'으로 가는 길]
  
     "억새밭"이 있는 곳에 "미왕재"라는 갈림길이 있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면
     "도갑사"로 가며 오늘 산행의 종착지가 되겠습니다만 아직 갈길이 멀고 멉니다.
  

     [억새밭이 보이는 언덕] 2시 15분
  
     어느 둔덕에 도착하니 멀리 "억새밭"이 보입니다.
     저곳에 "미왕재"가 있으며 "도갑사"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있는 곳 입니다.
     여기서 보니 "억새밭"이 멀어 보이는데 실제는 13분만에 갔습니다.
  

     [억새밭-미왕재] 2시 28분
  
     멀어 보였는데 금새 억새밭에 도착했습니다.
     다리가 아파 상이군인이 된 마눌이 그래도 끝까지 걷고 있습니다. ㅎㅎ
     에휴~ 걷기에 힘들어서 아름다운 이 억새밭이 눈에는 들어 오지도 않을듯....ㅎ
  

     [억새밭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미왕재']
  
     바위가 있는 곳이 "미왕재"라는 고개 삼거리입니다.
     직진하면 "도갑산"으로 가는 "땅끝기맥"이고,
     우측 계곡길이 "도갑사"로 내려 가는 하산길입니다.
     산에 억새가 이렇게 자라면 그곳은 주로 산불이 났었던 곳입니다.
     산불이 났었던 어떻던 간에 가을 억새는 아름답게 하늘 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인용하는 '정일근 시인'의 '가을 억새"중에 일부를 들려 드림니다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억새밭 조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갑저수지']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도갑사" 아래 "도갑저수지"가 보입니다.
     가까워 보이는 저곳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으니 하산길이 무척 피곤했습니다.
  

     ['도갑사'로 하산]
  
     '미왕재"에서 "도갑사"로 하산 합니다.
     강진은 우리나라 詩文學의 거장 "김영랑"시인이 태어나 많은 詩를 쓴 곳입니다.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휘문고등학교"로 유학을 오신 대선배님이시죠
     우리나라 대표 시인이시만 "독립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휘문의숙 3학년 재학 시절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들고, 
     강진으로 몰래 내려와 그해 4월 4일 강진 장날 만세운동을 기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도 하였습니다.
     친일행위를 노골적으로 한 최남선, 이광수, 노천명, 서정주 등이 일제에 빌붙어 
     아부 할때, "김영랑 선배"는 끝까지 변치 않고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만산홍엽 滿山紅葉]
  
     하산길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데 고도가 낮아지니 "滿山紅葉"이 화려합니다.
     "滿山紅葉"을 보니 "김영랑선배"가 쓴 詩 한수가 생각납니다.
     교과서에 나온 詩들은 모두 아시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을에 대한 詩' 한수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 → 장독대
          *파란문의 감상 →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가며 가을을 노래 합니다
            단풍과 누이의 마음....누이가 시집 갈 때가 되었는지 더욱 이쁘지는...
  

     [도갑습지] 3시 40분
  
     '월출산'의 또다른 생태지 "도갑습지"도 지나고....
     "김영랑 선배"의 최후는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1950년 6·25 동란이 발발하자 서울에서 은신하였으나,
     "9·28 서울수복" 때 복부에 포탄 파편을 맞아,
     그 다음 날인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의 젊은 나이로 멀리 떠나셨습니다.
     월출산 자락에서 쓴 詩가 60여편이나 되시는 "순수한글파 시인"이셨습니다.
     천재들은 이렇게 빨리 가는가 봅니다.
  

     [道詵國師碑閣] 3시 47분
  
     "도갑사 道岬寺"를 개산했다는 "道詵國師"의 碑閣을 지나고...
     "영암"은 백제의 "왕인박사"와 신라말 "도선국사"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
  

     [龍水폭포] 3시 51분
  
     "龍水폭포"라는 폭포 앞에 있는 정자도 지나고....
  

     [도갑사] 3시 53분
  
     "도갑사 道岬寺"에 내려와 뒤돌아 보며 '월출산'을 촬영했습니다.
     "도갑사 道岬寺"는 매우 큰 절이더군요.
  

     [도갑사 일주문] 3시 58분
  
     "도갑사 道岬寺" 一柱門을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산행도 마감됩니다.  
  

     [구정봉에서 도갑사까지 안내도]

     [나이 450년 보호수] 4시 정각
  
     "도갑사 道岬寺" 一柱門 앞에 있는 '450년 수령'의  보호수를 보며 
     "靈巖 月出山 종주"를 마칩니다. 
  
     천황사 주차장 출발 → 오전 8시 20분
     도갑사 주차장 도착 → 오후 4시 정각
     마눌에겐 총 7시간 40분이 걸린 힘든 월출산 구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산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을 걸로 생각되어 큰 소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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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올레 코스를 가다
       삼매봉 휴게소-외돌개-수모루소공원-법환포구소공원     
     2월 7일(일)  흐리고 가끔 비
     지난 2월 5일(금) "휘산회"와 함께 인천에서 '오하마나호'를 타고 
     2월 6일(토) 제주도에 도착하여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산행하고 
     2월 7일(일) "제주 올레 코스"를 트렉킹하였었습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일로 여행기를 미뤄 오다가 이제서야 씁니다
     
     
     [제주 올레 7코스 위치 안내판]
     
     현재 제주도에는 15코스의 올레를 개발하여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답니다.
     하나의 코스는 대략 15km정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올레'를 모두 다닐려면 열흘 이상이 걸릴것입니다.
     그래서 '제주 올레'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하는 몇개 코스만 인기가 있어
     대부분의 답사자들은 이곳만 돌고 간다고 하는군요
     
     
     [삼매봉 휴게소에 있는 길안내판]
     
     15개의 '올레'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하는 '올레'는 서귀포 서쪽에 있는
     "7번 코스"라고 합니다.
     오늘 오전에는 "7번 코스"중에 일부를 돌고, 점심 식사를 하고 나머지를 도는데
     답사기는 오전에 도는 '7번 코스 일부'를 소개합니다.
     
     
     [삼매봉-외돌개 주변 구글어스]
     
     가장 아름답다는 "7번 올레 코스"의 주변을 구글어스로 참고 하시고....
     
  
     [삼매봉 공원 안내판]                              ['대장금 촬영지']
     
     "7번 올레 코스"는 "삼매봉 소공원"에서 출발합니다
     "삼매봉"은 서귀포 중심지에서 서쪽에 있습니다.
     '대장금' 촬영지임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아 '대장금'은 아직도 유명세를 타는가 봅니다
     
     
     [삼매봉 공원]
     
     주차장에서 내려 오면 "삼매봉 공원"이 우리나라가 아닌 이국같은 느낌이 물씬 와 닿습니다
     우선 나무들이 서울에서는 볼수 없는 것들이서 남쪽 나라임을 실감합니다
     
     
     [삼매봉 공원 길]
     
     삼매봉 공원으로 내려가 바닷가로 내려 갑니다.
     모든 길은 잘 정비되 있으며, 自然美를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삼매봉 공원에서 바라보는 '서귀포항 입구 다리']
     
     태평양이 펼쳐지며, 좌측에 '서귀포항'으로 들어 가는 다리가 보입니다.
     이런 곳에 별장을 짓고 살고픈 생각이 문득 나는 군요
     
     
     [삼매봉 공원 앞 바닷가]
     
     망망대해........태평양
     
     
      [삼매봉 공원 앞에서 바라 보는 '법환포구'방향 바닷가]
     
      우측으로 해안선이 구불구불 그림 같습니다.
     
     
     [서귀포 '호랑교' 연수원]
     
     '호랑교'라고 들어 보셨나요? 조금 독특한 종교라고 생각되는데....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연수원이 초특급 호텔보다 더 멋지게 전망 좋은 자리에 있습니다
     관광 가이드 아가씨의 설명에 따르면 '호랑교' 믿는 사람들도 안내를 해 봤는데
     일반 사람들하고 특별히 다른 점은 못 느꼈다고 하더군요.
     저는 저런 종교를 믿는 분들은 조금 무서워서 물어 봤는데.....
     
     
     ['외돌개'로 가는 길]
     
     '삼매봉 공원'을 돌아 나가면 "외돌개"로 이어집니다.
     "올레"라는 말은 제주도의 방언이라는데
     자기 집에서 큰길까지 나가는 골목길을 의미 한다고 합니다.
     너 집에 갈래?  올래...할때의 의미와 같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올레"는 골목길을 의미하는데, 이곳 "7번 올레 코스"는 
     진정한 "올레"는 아니고, '관광 코스'이라고 생각 됩니다.
     
     
     [외돌개]
     
     '삼매봉 공원'에서 해안을 따라 나아 가면 "7번 올레 코스"의 꽃이라 할수 있는
     "외돌개"가 나타납니다.
     "외돌개"는 "고석포 孤石浦"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바위를 말하는데...사진에 보이시죠?
     
     
     [외돌개 앞 공원]
     
     "7번 올레 코스"는 진정한 의미의 '올레'가 아니고 제주도를 대표하는 관광코스 입니다.
     해안선을 따라 온통 공원과 잘 정비된 길이 南國의 香氣를 한층 더 맛깔지게 합니다
     
     
     [외돌개]
     
     "고석포 孤石浦" 
     "외돌개"를 가운데 두고 감싸고 있는 조그만 浦口입니다.
     글자 그대로 "孤石, 즉 외로운 바위"라는 뜻이며 
     제주도 방언으로, 순수 우리말로 "외돌개"라고 한다는군요
     "외롭게 솟아 있는 바위"
     
            
            [외돌개 안내]
     
     
     
     [외돌개]
     
     "고석포 孤石浦" 가운데 외롭게 솟아 있는 "외돌개"
     250만년 전 화산이 폭발할때 용암이 奇奇하게 굳어 만들어지고
     숱한 세월의 풍상을 격으며 새로운 조각품으로 탄생한 "외돌개"
     "7번 올레 코스"의 하일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외돌개"입니다.
     
     
     [외돌개 앞 공원]
     
     여하튼 곳곳에 공원은 잘 조성되 있습니다.
     
     
     [올레 길 표지기]
     
     "올레 코스 표지기"
     '올레 코스'에는 길안내를 하는 표지기가 곳곳에 있어 길 찾기가 쉽습니다.
     푸른색 리본이 바닷가 코스를 의미하며, 오렌지색이 한라산쪽 코스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결국 양방향을 의미하니, 이런 리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외돌개]
     
     "孤石浦"를 빙 돌며 각도에 따라 "외돌개"의 다양한 모양을 볼수 있습니다
     
     
     [외돌개에서 '수모루 소공원 가는 길]
     
     "집에서 큰길까지 나가는 골목길을 "올레"라고 한다는데
     이곳 "7번 올레 코스"는 "올레"가 아니고 정말 멋진 잘 단장된 태평양 해안길 입니다
     좌측 바다에 떠있는 섬이 유명한 "범섬"입니다.
     이제부터 "외돌개" 대신에 저 "범섬"을 옆에 두고 "법환포구"까지 갑니다
     "범섬"은 모양이 호랑이 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아직
     호랑이를 닮았는지 알수 없으나 앞으로 더 가면 어느 정도 호랑이 모습이 나옵니다
     
     
     [외돌개에서 '수모루 소공원 가는 길]
     
     "7번 8번 올레 코스" 이외의 다른 "올레 코스"는 못 가봐서 잘 모르겠으나 
     "7번 올레 코스"는 제주도에 가면 한번쯤은 가 볼만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외돌개에서 '수모루 소공원 가는 길]
     
     南國의 정취가 흠씬 풍깁니다
     돌담길
     
     
     [섹스폰 연주 조각품]
     
     단순히 自然美만 풍기는 것이 아니고
     곳곳에 적절히 조각품들을 설치하여 길을 걷는 이들에게 새로운 맛을 느끼게도 합니다
     
     
     [중간 휴게소]
     
     중간 중간 화장실을 갖춘 휴게소가 있습니다
     
  
     [올레 길표시]
     
     바닷가 관광코스를 벗어나 진짜 "올레"길로 들어 서면 길안내를 윗 사진과 같이 합니다
     역시 푸른색은 바닷가 코스를 의미 하며, 오렌지색은 한라산 쪽을 의미합니다
     올레 길안내는 잘 되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올레]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 섭니다.
     그러나 옛 제주 섬마을 정취는 오간데 없고 주로 펜션이나 숙박업소들로 탈바꿈한
     현대식 건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올레에서 바라 보는 "한라산"]
     
     "7번 올레"에서 유일하게 "한라산'을 볼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한라산 산행 오늘은 '올레'를 구경하고 서울로 갑니다.
     
  
     [서귀포 여고]
     
     '올레'에서 큰길로 나오니 "서귀포 여고"가 나옵니다.
     역시 이곳에도 명문대학교 합격이 가장 큰 자랑거리인가 봅니다.
     
     
     [수모루 소공원 가는 길]
     
     큰길에서 다시 '올레'를 따라 바닷가로 나갑니다.
     이 길이 "수모루 공원" 가는 길입니다.
     멀리 "법환포구"가 보입니다.
     
     
     [수모루 소공원]
     
     징검다리도 건너며 '수모루 공원'으로 갑니다.
     
     
      [奇岩과 선인장]
     
     '수모루 공원'에 있는 奇岩怪石과 선인장.
     남국의 태평양을 향해 꽃망울을 터트릴려고 하는 선인장이 새롭습니다.
     神仙의 손바닥을 본 적이 없는 분들은 '仙人掌'을 보면 됩니다.
     "神仙의 손바닥"을 닮았다고 '仙人掌'이라 하지요?
     
     
     [수모루 공원에서]
     
     정말 모처럼 함께한 여행이었기에 '수모루 공원'에서 
     옆지기와 기념 사진 한장 찍었습니다.
     싱가폴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수모루 공원 표지석]
     
                    "수모루"라는 말의 뜻은 조사해 보니 "수레 모루"라는 의미이더군요
                    수레들의 주차장 같은 의미로 생각됩니다.
     
     
     [범섬]
     
     이제 "범섬"이 어느 정도 호랑이 모습을 갖춰 갑니다.
     
     
     [뒤돌아 본 지나 온 길]
     
     지나 온 길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외돌개"가 있는 "孤石浦"가 돌출되 있는 곳 뒤로 "서귀포항 입구 다리"가 아련히 보이고
     그 오른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 "새섬"이 곧 날라 오를 듯한 새처럼 보입니다
     
     
     [해안 초소]
     
     사용한지 아주 오래 된듯한 해안초소가 이 아름다운 태평양 해안에서 늙어 가고 있군요
     완전히 없어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공물"에서 바라 보는 '범섬']
     
     이제 "범섬"이 호랑이처럼 보이시나요?
     "범섬" 보다도 이 앞 바닷가가 유명한 "공물"이라는 곳입니다.
     제주도는 하나의 커다란 정수기라고도 하지요?
     비가 내리면 화산암으로 흘러 들어 밑으로 내려가 다시 이런 바닷가에서 솟아 나온답니다.
     "공물"은 한라산에 내린 빗물이 정수가 되어 바닷가에서 다시 솟아 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제주도 생수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지요?
     
     
     ["망다리"에서 보이는 '법환포구']
     
     "법환포구"를 가기 바로 전에 "망다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법환포구" 바로 옆에 있는 "망다리"는 옛날부터 이곳에서 "달을 바라 보는 정취"가 일품이라고
     "망 望", "달 月"이 제주도 사투리 마음대로 "망다리"라고 한답니다
     "법환포" 마을이 아담하네요.
     
     
     [법환포구 우물]
     
     이 우물도 "공물"인데 마을에서 '음료수개발'에 기여한 분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고 하네요. 오십오환을 기부한 뜻을 기리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지금은 주로 세탁을 한다고 하네요
     
     
     [법환포구 소공원]
     
     '법환포구 소공원'에 왔습니다.
     
     
     [조각품]
     
     
           
           [비바리]
     
            옛부터 제주도를 "삼다도 三多島"라고 했지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제주도에 여자가 가면 대우 받고, 남자가 가면 쓸쓸하다네요
            관광 가이드 아가씨가 '여자는 밤에 100% 북킹', '남자는 북킹 어려움'이라고
            안내하더군요. ㅎㅎ
     
     
     [비바리]
     
     
     
     [법환포구]
     
     비 내리는 법환포구........
     낭만이 있었습니다.
     약 3시간에 걸친 "7번 올레 코스 일부" 트렉킹을 마치고.......
     
     
      [법환포구 주변 구글어스]
     
     
     
     [제주국제평화센타]
     
     시간이 남는지 관광버스는 "제주국제평화센타"로 안내를 하더군요
     
     
     [정주영 회장]
     
     "제주국제평화센타" 안으로 들어 가니 제주도의 평화를 상징하는 여러 조형물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유명한 분들의 조형물들이 눈길을 끌어
     몇분을 소개해 드림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밀납 인형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의 밀납인형도 있었는데 무척 젊어 보입니다.
     사실 31세에 순국했으니 .....
     
     
     [배용준]
     
     욘사마로 일본에서 인기를 더 누리고 있는 배용준이도 보이고...
     
     
     [조수미 정명훈]
     
     한국의 대표적 뮤지션 - 조수미와 정명훈도...
     
     
     [음식점 '덤장']
     
     '덤장'이라는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덤장'은 고기를 잡아 가두어 두는 바다 속 그물 같은 것으로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옛날에 설치했던 것이라 하더군요
     
     
     [고등어 조림 정식]
     
     이제까지 제주도에서 먹은 점심 중에선 제일 맛있었던 '고등어 조림 정식'이었습니다.
     
     
     [마라도와 가파도]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섬이고, '가파도'는 "하멜의 표류기"에 나오는
     "하멜"이 처음으로 표류한 섬이기도 하지요.
     '마라도'와 '가파도'를 바라 보며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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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에서 별을 따다
       죽령-제2연하봉-소백산 천문대-연화봉-
       제1연화봉-비로봉-비로사-삼가리    
     2월 20일(토) - 21일(일) 맑음
     낙동정맥 11구간 황장재에서 주왕산까지 약20km를 완주하고
     다시 '백두대간 소백산 죽령'으로 왔습니다
     ♪ 오늘도 걷는다 마는 ~ ♬
     ♬정처없는 이 발길~~♪
     

     [구글어스로 본 소백산 산행 괘적]
     
     죽령-제2연화봉-천문대-연화봉-제1연화봉-
     비로봉-비로사-삼가리 주차장
     
[竹嶺에 어둠은 내리는데...] 오후 6시 45분
周王山에서 뒷풀이까지 마치고 관광버스는 풍기I/C근처에 우리를 내려 주고 횡하니 떠나 갔습니다 시내에서 몇가지 준비물을 준비하고 택시를 이용해 '竹嶺'으로 왔습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죽령'에 이렇게 올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이젠 문을 닫고 있는 가게의 불빛과 죽령 옛길을 넘는 몇 않되는 자동차의 불빛만이 나그네 같은 산객들의 마음을 어쩐지 외롭게 하는 듯 합니다
[竹嶺 이정표]
연화봉 까지 7.2km 어두운 백두대간의 밤길이지만 새벽 5시 40분부터 걸었지만 또 다시 걸어서 가야 합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산행 출발]
날씨는 무척 맑았습니다. 하지만 엄청 많이 내린 눈길은 걸음을 더디게 만듭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강제로 눈이 내리게 했습니다. 소백산 산신령에게 부탁을 했더니 눈을 내려 주더군요 ㅎㅎ
[불빛만 깜박이는 竹嶺을 뒤로 하고...] 7시 35분
50분 정도 걷고 난 다음 뒤 돌아 보니 희미한 죽령의 불빛이 아른 거립니다. 강제로 내리는 눈 속에 보이는 죽령의 불빛........... [제2연화봉] 8시 30분 죽령고개에서 '제2연화봉'까지 1시간 45분이 걸려 올랐습니다 소백산에는 죽령에서 '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등 대체적으로 다섯개의 큰 봉우리가 연이어 있으며 '고치령'까지 갑니다.
[햐~ 눈 내리는 소백산 천문대 가는 길]
하~아얀 눈 위를 뽀드득 뽀드득 거리며 걷는 기분 저의 짧은 감상으로는 이 기분을 표현 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광균 시인의 "雪夜"를 소개해 드림니다. 오늘 같은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詩라고 생각됩니다 雪夜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히 서리다
[국립 소백산 천문대] 9시 20분
하룻밤을 묵고 갈 "소백산 국립 천문대"에 도착했습니다. 정암카페 횐님들과 '파란문'을 기다려 주는 님들과 반가운 조우를 하고 곧 바로 천문대에서 제공하는 "별 보기"로 들어 갔습니다. [별과 달을 보다] 밤 10시 백두대간 소백산의 밤 바람 한점없고 하늘은 수정처럼 맑았습니다. 천문대 직원이 이런 날은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福받은 분들이라 이런 좋은 날씨 속에서 별을 볼수 있다고..... 오늘 소백산 천문대에 초대해 주신 김광동박사가 하늘을 설명합니다. '별 볼일 없는 놈'이 오늘 별을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별 볼일 있는 놈'이 되었답니다. [별을 보다] 세상에 태어나서 직접 이렇게 가까이서 달과 별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못 보는 놈이 머나먼 하늘 나라의 별을 보고 이 세상의 조그만 구성원이지만 더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저~ 별까지도 걸어 가고픈...... [소백산 천문대 주 망원경] 2월 21일(일) 오전 7시 천문대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천문대의 주망원경을 구경했습니다. 24인치 반사 망원경이라고 합니다. 모두 컴퓨터 제어식이라 눈으로 들여다 보는 망원경이 아니고 컴퓨터로만 볼수 있는 대형 망원경이라 합니다 [소백산 천문대 본관] 오전 7시 15분 日出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와 보니 소백산 천문대의 시설을 알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눈사람도 만들어 찾는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소백산 천문대에서 바라 본 '제2연화봉'] 첨성대 모양을 한 건물 뒤로 '제2연화봉'이 보입니다. '제2연화봉'은 정상부에 'KT이동통신탑'이 점령하고 있어 찾기 쉽지요 [日出] 7시 21분 소백산 연화봉 바로 아래에 있는 "국립 소백산 천문대"에서 일출을 본다는 것도 전후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福받은 날 - 바람 한점 없고 해맑은 하늘...... 아~~! [출정식] 오전 7시 50분 두달에 한번씩 만나 함께 산행을 하는 횐님들과 소백산 출정식을 했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에서 모였습니다. ('거인산악회' 김종운대장과 함께 했었습니다. 사진 맨 윗줄 좌측에 보입니다) [소백산 천문대] 어젯밤엔 밤중에 오느라 정문에 있는 이것을 못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곧 천문분야에서도 세계 최고가 되실 거라 확신하며 "소백산 천문대" 연구진들의 정진을 기대합니다 [잘 있거라 소백산 천문대여~!] 낮에는 별 볼일 없이 초라해 지는 천문대.... 철죽이 피면 언젠가 다시 한번 오리라~ ['연화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천문대'와 '제2연화봉'] '천문대'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연화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봤습니다. 오른쪽 "소백산 천문대"와 왼쪽 멀리 "제2연화봉"이 보입니다. 백두대간은 '제2연화봉'에서 좌측으로 뻗은 산줄기로 '죽령'으로 가고 다시 "도솔봉"으로 갑니다. [연화봉 정상] 오전 8시 5분 연화봉은 높이가 1,383m 제2연화봉은 1,357m 제1연화봉은 1,394m 비로봉은 1,439m 국망봉은 1,429m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구글어스] [연화봉에서 바라 본 '비로봉'] 펼쳐지는 백두대간 소백산 좌측에 높은 봉우리가 "제1연화봉"입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비로봉" "비로봉" 약간 좌측 뒤에 "국망봉"이 조금 보입니다. 장관입니다.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 '연화봉'을 내려와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오르막 길입니다. 가장 가파른 된비알이 이 정도이니 '소백산'은 누구나 쉽게 갈수 있는 큰 산입니다 [제1연화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연화봉''천문대''제2연화봉'] 그림 같습니다. 한가한 목장 같은 분위기 이래서 소백산은 만인의 연인같은 산입니다. [連理木] 오전 9시 5분 나무와 바위를 구경하기 어려운 소백산에도 갖출건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連理木이 소백산 '제1연화봉' 정상부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가운데 있는 나무는 두그루의 나무 줄기가 서로 붙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영양분까지 공유합니다. 사랑나무 [백두대간] 오전 9시 20분 눈 내린 소백산 능선 아기자기한 것들은 없고 우리 국토의 등뼈로 강건한 체력을 과시하는듯 하지 않습니까? [소백산 주능선] 몇번 소백산을 찾았었지만 이런 모습 처음입니다. 아~ [바위] 소백산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퇴계 이황선생님이 넘나 들던 유서 깊은 산입니다. 지난 저의 '소백산 산행기'에서도 소개해 드렸던 퇴계선생님의 등산에 관한 글을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讀書는 유산(遊山)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글의 오리지날 원문을 직접 올려드리겠습니다 讀書如遊山 讀書人說遊山似 사람들은 글읽기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더니 今見遊山似讀書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구나 工力盡時元自下 공력을 다하면 스스로 내려오는 법 淺深得處摠由渠 얕고 깊음을 아는 것 모두가 자기에게 달려있네 坐看雲起因知妙 조용히 앉아 일어나는 구름을 보고 오묘함을 알고 行到源頭始覺初 발길이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시초를 깨닫네 - 퇴계 이황 선생님이 쓰신 "讀書如遊山"에서 [눈길] 오전 10시 15분 산으로 갑시다. 우리나라의 산부터 다니고 감상하고 외국으로 가시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변모하는 우리 금수강산 錦繡江山 아름답고 아름다워라.... [비로봉 정상] 오전 10시 25분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에 왔습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이 인연 영원하여라!~ 만나면 만날 때마다 반가운 사람들 ♬ [비로봉 정상석 뒷면에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겸 정치인인 徐居正, 호가 四佳亭,亭亭亭입니다 徐居正은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시며 6조판서를 모두 지낸 엄청난 인물입니다. 대구 출신이지요? 그가 쓴 "소백산"이라는 글이 비로봉 정상석 뒷면에 새겨져 있더군요 아마도 대구에서 한양을 오르 내릴때 소백산을 많이 올랐나 봅니다 [비로사로 하산 하며 뒤돌아 본 '비로봉'] 12시 '毘盧'는 '비로자나 毘盧蔗那'를 줄인 말인데 인도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로서 Vairocana를 中國語로 音譯한 것입니다. 毘盧蔗那의 중국 발음으로는 Vairocana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中國語로 音譯한 毘盧蔗那를 우리말로 그대로 音譯하여 '비로자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자나'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산스크리트語' Vairocana의 뜻을 알면 됩니다, Vairocana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佛經에서는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입니다. 불교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불교에서 최고의 부처로 "비로자나佛"을 꼽습니다. '아미타佛' '관세음佛' '약사여래佛'등과 함께 종파에 따라 최고로 모시는 부처라는 말입니다. 毘盧峯은 이런 배경을 가진 최고의 봉우리라는 의미로 붙여진듯합니다. 아시다시피 금강산의 최고봉도 毘盧峯입니다. 소백산의 비로봉과 같은 한자입니다. 참고로 치악산의 "비로봉"은 한자가 "飛盧峯"입니다. [비로봉에서 삼가리 주차장까지 구글어스] [비로사로 하산 하는 길] 12시 50분 비로봉에서 가장 가까운 '비로사'로 하산합니다 [비로사 일주문] 오후 1시 15분 총 산행 거리 : 17km 죽령-연화봉 : 7.2km 연화봉-비로봉 : 4.3km 비로봉-상가리 : 5.5km [뒷풀이] 그냥 헤어 질수 없지요? 영주시내 복어집으로 가서 '복어 샤브샤브'로 영양 보충을 하고.... [뒷풀이]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습니다 주왕산에 이어 소백산을 계속 산행을 해 좀 힘들었습니다만 반가운 님들과 푸근한 소백산이 있어 너무나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다시 '서울시계종주'로 .....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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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1 한라산 山行記 성판악-진달래밭대피소-백록담-삼각봉대피소-관음사 '산을 사랑합니다'라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高校 校友會 山岳會 - 徽山會 2월의 산행지는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제주도와 한라산 산행...그리고 '올레' 저와 함께 제주도 구경 가 볼까요? [인천항 연안여객 터미널] 오후 5시 45분 2010년 2월 5일(금) 맑음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가보는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오후 5시 4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큰 空航같은 배타는 곳이었습니다. [인천항 연안여객 터미널] 배타는 항구는 비린내가 나는 좀 지저분한 곳으로 선입견이 있었는데 터미널 안도 고속버스터미널이나 공항같은 느낌을 주는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오하마나호] 오후 6시 200여명의 교우들이 함께하는데도 오후 5시 40분경에 집합하여 20분 정도에 모든 승선 절차를 마치고 아무른 잡음없이 승선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타고 가는 여객선은 "오하마나호" 길이가 141.5m, 선폭이 22m, 총톤수 6,322t 속도 21Knot (약40Km) 정원 945명, 콘테이너 180ea, 승용차 50대, 자동화물(5t) 40대 대단히 큰 선박입니다. [승선] [에스컬레이트] 아파트 2층 이상 높이의 철계단을 올라 배 안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곤 바로 에스컬레이트로 갈아 탑니다. [선실 로비] 에스컬레이트를 내리면 바로 '船室 로비'이며 이 선박의 중심부가 되겠습니다 이곳에서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아 지정된 船室로 들어 갑니다. 徽山會는 대부분 3층 3등실을 배정받았습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西海] 오후 6시 15분 船室에 짐을 풀고 인천항을 구경하기 위해 바로 갑판으로 나와 조망을 했습니다 西쪽 방향으로는 노을이 물들어 곧 어둠이 세상을 집어 삼킬듯 日沒이 그림같습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터미널] 엄청나게 큰 '오하마나호'에서 내려다 보는 여객터미널 방향으로는 이제 이 배가 오늘 마지막으로 출항하는 배인듯 거리는 쓸쓸해져 갑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월미도'] 인천항에서 '월미도'를 바라봅니다. 원래는 섬이었지만 매립을 해서 육지와 붙어버린 월미도는 "月尾島"이지요 섬의 모양이 "반달 꼬리처럼 휘어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月尾島"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섬이기도 하지요. 동족상잔의 6.25전쟁 때에 "인천상륙작전"의 전초지여서, 수많은 함정에서 쏘아대는 함포 사격으로 "月尾島"는 초토화 되고, 그로 인해 섬의 높이가 1m 이상 깍였다고 하니 그 때의 상황을 직접보지 않고도 충분히 상상할수 있겠습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연안 여객선들'] 밤에는 운항을 하지 않는지 연안여객선들은 조용히 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있는듯합니다. [3등 선실에서] 오후 6시 45분 3등 선실을 가득 메운 徽山會 교우들 어떤 분위기 였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겠습니까? 크게는 40년 이상씩 나이 차이가 나는 선후배들이 꽉찬 3등실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하고 있습니다. [船室에서 건배] 하지만 밤새 항해를 하고 내일 한라산을 등반하려면 가볍게 한잔씩하고 충분한 수면이 필수이겠지요 각 기수, 가까운 기수들끼리 한잔씩 합니다. '휘문여고생들'도 함께하며 분위기는 더욱 무르 익어 갑니다. [船室에서 건배] 누가 누구인지는 저의 여행기에서 알릴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 徽山會 교우들입니다. [船室에서 건배] 술판이 벌어져도 아주 절제된 행동으로 어떠한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船室에서 건배] 어휴~ 이 분들은 안주로 '회'를 미리 무지 많이 준비했군요.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동창들 끼리 확실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봅니다 저도 양주에 광어회를 대접 받았습니다. [船室에서 건배] 여하튼 술을 준비하지 않은 기수는 없군요 [인천대교] 저녁 7시 12분 船室에서 酒宴이 벌어 지고 있을 때 재빨리 갑판으로 나와 "인천대교"를 구경했습니다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하는 이런 광경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볼수 없습니다. [인천대교] 저녁 7시 13분 총길이 21.38km 인천 송도와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며, 제2경인고속도로와 연결된다는 바다 위에 떠있는 우리나라 최장의 海橋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고 있습니다. 6,300톤급 '오하마나호'가 쉽게 다리 밑으로 통과하고 있으니 그 높이를 짐작할수 있겟지요? [취침] 포로 수용소 같은 3등실입니다만...... 착하기도 하지.... 한잔씩 걸친 교우들은 모두 한꺼번에 잠들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술에 취하면 여러 불상사가 일어 나는데 徽山會 교우들은 절대 예외이란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무지 착하지 않습니까? 취침!~하면 바로 잠니다..ㅎㅎ 특이한 것은 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술에 취해 잠들면 코 고는 소리가 진동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코 고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역시 선후배를 배려하는 마음 가짐을 가진 좋은 핵교 출신들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침식사] 오전 7시 5분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가니 이미 대부분 식사를 하고 나갔더군요 "오하마나호"의 메뉴는 오직 한가지이고 6,000원을 받았습니다. 6,000원 짜리 아침 식사는 정말 형편 없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미역국에 밥, 반찬은 길거리 포차보다 못합니다. 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침을 때우고.... (다음에 가실 분들은 도시락을 준비해 가세요~) [黎明] 오전 7시 15분 이 배가 제주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한라산을 올라야 하기에 꾸역꾸역 식사를 하고 갑판으로 나오니 하늘에는 반달이 휘영청 떠있고, 무인도와 고기잡이 배들의 불빛이 간혹 황량한 바다를 비춥니다. 이렇게 조용한 아침 바다를 보신적 있으십니까? [오하마나호] "오하마나호" 이름이 특이 합니다. '오하마나'는 깅상도 사투리에서 연유했다는 군요 깅상도 말로 "오!~ 하마나 왔나!~"에서 연유한다는데, 표준어로 하자면 "아니 벌써 왔나!~"라는 뜻이 되겠지요? 어느 깅상도 할머니가 이 배를 타고 감탄사로 한 말이 배 이름이 되었답니다. 독특하고 특징있게 지은 대표적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日出과 제주도] 7시 46분 아!~ 이런 광경은 착한 일을 무척 많이한 사람들이 아니곤 볼수 없는 광경이리라~ ㅎㅎ 바람 한점없는 바다!~ 떠 오르는 태양!~ 비교적 쾌청한 날씨~ 포근한 기온~ 그리고 제주도 濟州島 !!~~ "제주도"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나요? "濟""물을 건너간다"라는 뜻을 가진 "濟"입니다. "州""고을"이라는 뜻이지요. 좀 큰 고을을 주로 의미합니다 "물 건너 섬 고을"이란 뜻이 "濟州島"이지요 앞에 보이는 제주도를 바라 보니 정말 "물 건너 섬 고을"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船上에서 바라보는 제주도] 7시 55분 한라산은 아직 자신의 秘景을 감추고 있습니다 땀 흘리고 올라와야 보여 주겠다고 하는 듯 합니다. 제주항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濟州道와 濟州島는 구별해야지요 濟州道는 행정구역 표시이므로 제주섬은 濟州島라 해야 합니다 [제주항] 오전 8시 23분 濟州港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배는 다른 화물선들 때문에 약30분 정도 늦게 도착되었다고 합니다. [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오전 8시 32분 오전 8시 45분 한라산을 오르려면 좀 서둘러야 하는데 '오하마나호'가 30분 정도 지연되었는데도 주차장에서 버스 나눠 타는데 또 지체되고... 성판악에서도 신속치 못한 진행으로 또 조금 지체 되어 한라산 산행을 하는데 시간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玉에 티"였습니다. [성판악] 오전 9시 32분 해발 750m 성판악 고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城板岳"은 제주도 5.16도로가 지나 가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름"으로 한라산 백록담으로 가는 대표적 등산로 입구 입니다. [성판악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한라산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멀리서 우리를 부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城板岳"이라는 "오름"입니다. 높이는 1,215m "城板岳"은 한라산 동쪽 산록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성화산'이라 합니다. '단성화산'은 일회의 분화활동을 통하여 형성되는 소형 화산체로서 제주에선 '오름'으로 불립니다. "城板岳"은 산 중턱에 암벽이 널 모양으로 둘려 있는 것이 성벽처럼 보이므로 "성널오름", 또는 한자어로는 "城板岳"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성판악 산행 들머리] 9시 45분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미 올라 가 들머리는 한산했습니다. 시간이 없는 데 이제와서 인원 파악을 한다는둥... '玉에 티'가 있었습니다 [한라산 등산 안내도] 9시 50분 이곳에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12시 이전에 통과하지 않으면 백록담 출입을 금지 한답니다 그리고 거리가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7.3km이기 때문에 2시간 이내에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둘러야 하는데 부두에서, 그리고 이곳에서 30분 정도 진행이 늦어져 마음에 큰 부담이 됩니다 [登路]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백록담'을 오르지 못하고 간다는 건 치욕이기에 한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다행이 登路는 평지와 다름없을 정도로 완만하여 빠른 걸음으로 오를수 있었습니다 [속박대피소] 오전 10시 48분 '성판악 휴게소'에서 약1시간 정도 거의 평지를 올라 가니 첫번째 대피소가 나옵니다 화장실이 많이 있는 중간 쉼터였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르는 길]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등산이 아니라 트렉킹이었습니다. 눈밭을 오르는 기분은 상쾌해 바쁜 걸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르는 길] 오로지 "백록담"을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빠른 걸음을 합니다. 12시~! 12시 이전에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 이제 1.2km 남았군요. 빠른 진행입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르는 길] '진달래밭 대피소'가 가까워 오니 멀리 한라산 정상이 조금 보이기 시작 합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전 11시 50분 휴~ 11시 50분에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성판악 휴게소'에서 약2시간만에 7.3km를 주파했습니다. 다른 교우들도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더군요..ㅎㅎ 아무리 평이한 코스라 해도 이렇게 서두루며 산행하기는 처음이라고 투덜대며... ['진달래밭 대피소' 통과] 11시 53분 다른 구경 할 틈도 없이 '진달래밭 검문소'를 우선 통과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백록담"까지 1시 30분 이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시 "백록담" 출입을 못하게 한다고 빨리 올라 가라고 방송을 합니다. 이래 저래 쪼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두와 성판악휴게소에서 지체 되었던 30분이 더욱 아까웠습니다. 30분만 더 있었어도 이렇게 서두러지는 않았을 텐데.... [백록담 오르는 길] 해발 1,600m 쯤 오르니 다소 경사가 가파라집니다. "성판악"의 해발이 약750m정도 이나 거리가 길어 아주 완만한 오름길을 올랐는데 이제부터는 제법 가파라지기 시작합니다. [백록담 登路에서 뒤돌아 보니...] 12시 40분 뒤돌아 보니 어느듯 많이 올랐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최고 입니다. 가시거리가 제주도 전역을 카바합니다. [백록담 오르는 길] 해발 1,800m 정도에 오르니 한라산의 정상이 확연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해발 1,800m] 오후 1시 3분 한라산의 높이가 1,950m이니 많이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산이나 그렇듯 지금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백록담 오르는 길]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이렇게 행렬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20여년만에 새로이 개방했다는 "돈내코 코스"로 간 산객들이 많아서 이곳 "성판악 코스"가 비교적 한산해 졌다는 것이 이 정도 이랍니다. 그러니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산객들이 한라산으로 등반을 했는지 짐작할수 있겠지요. 딴에는 산꾼이라고 하는 필자 '파란문'이 한라산을 오늘 처음 오르니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오히려 늦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많은 산객들로 한라산은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백록담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보니....]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들 ..... 해발 1,800m 이상에는 나무가 전혀 자라지 못하는데 그 빈 자리를 사람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한라산 정상] 오후 1시 23분 드디어 한라산 정상이 보입니다. 앞에 보이는 집이 정상관리사무소이고 주변으로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한라산 정상의 인파] 성판악 휴게소에서 약3시간 30분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한라산 정상의 인파] 아직도 올라 오는 산객들이 많습니다. 수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무한대로 뻗어 갑니다. [한라산 정상의 인파] 엄청나지요? ㅎㅎ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올라 한라산의 높이가 좀 낮아 졌을거라고 할 정도 한라산 정상에는 출입금지 구역이 대부분이어서 오로지 동쪽 벽면 윗쪽 이곳만이 산객들이 있을수 있는 좁은 구역이라 더욱 번잡합니다. [백록담 남벽] 백록담의 남쪽 돌출 암석들이 화산 폭발 때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대변하고 있습니다 [백록담] 오후 1시 30분 아!~ 백록담 白鹿潭 예부터 제주지역 사람들은 한라산의 백록담에 산다는 백록白鹿은 神仙이 타는 동물이라고 믿었답니다. 한라산은 원래 神仙이 놀던 산이고, 神仙들은 '흰 사슴', 곧 백록白鹿을 타고 구경을 다니며 정상에 있는 백록담의 맑은 물을 '흰 사슴'에게 먹인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白鹿潭의 이름은 이 白鹿, 즉 "흰 사슴"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입니다. [백록담 동북벽] 백록담을 에워 싸고 있는 벽들 중에 가장 높은 정상이라 생각됩니다. [백록담 동북벽에서 보는 '백록담'] 지금으로부터 약250만년전 그러니까 "제4기 플라이스토세"시대인 신생대에 폭발했다는 한라산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高麗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한라산에서 크고 작은 화산이 분출되었다고 『고려사』『동국여지승람』『조선왕조실록』에 화산폭발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옛날이 아닌 고려시대 목종 5년(1002년)과 10년(1007년)에 있었으니, 한라산은 아직도 '휴화산'인 것입니다. "고려사"에 나오는 화산폭발에 대한 원문 穆宗 五年六月 耽羅山 開四孔 赤水湧出 五日 而止 (목종 5년 6월,탐라산에 네 개의 구멍이 열리고 붉은 물이 샘솟았는데 5일만에 멈추었다.)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 오후 1시 40분 "詩人世界"라는 季間誌에서 한국의 시인 109명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설문의 주제는“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詩句”를 하나씩 꼽아달라고 주문했답니다 그런데 뽑힌 詩句중에 저희 학교 대선배님이자 영어교사였던 "정지용선배님"의 詩句가 보여 메모를 해 뒀었는데 그 詩의 제목이 "白鹿潭"이었고 이 기회에 소개하게되어 기쁩니다. [백록담 동북 방향에서 보는 '백록담'] 우리나라 최초의 新詩중에 하나인 정지용선생님의 "백록담"이라는 詩의 全文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백록담(白鹿潭) 정지용 - 한라산 소묘 1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 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尺) 위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 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매 - 움매 -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덩쿨 기어간 흰돌배기 꼬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避)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이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색이며 취(醉)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어 산맥 위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어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백록담 동북벽에 있는 용처럼 생긴 용암] 정지용선생은 휘문고보가 校費로 일본 도샤시대학 영문과로 유학을 보낸 수재였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몇년간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셨고, 40회대 기수 선배님들은 직접 수업을 받으셨다고 술회하고 계십니다. 그 이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서울대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화려한 경력을 쌓지요 하지만 6.25 때 월북인지 납북인지....이로써 소식이 끊깁니다. 정지용詩人이라고 하면 모두 "향수 鄕愁"를 먼저 떠 올릴것입니다 노래가 워낙 유명해져 정지용선생의 대표작이 "향수 鄕愁"라고 생각 할것입니다. 그러나 정지용선생이 가장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것은 위에서 보여드린 "백록담"이었습니다. 그래서 펴낸 詩集 이름도 "백록담"이었던 것입니다. [제주시 전경] 날씨가 좋아 선명한 제주시를 볼수 있었습니다 카메라가 디지털이라 잘 나오지 않지만 멀리 전라남도 "추자도"가 어렴풋하군요 날씨가 더 좋으면 전라도 땅끝 마을까지도 보인다는데..... [개미목] 관음사로 내려 가는 탐라계곡 왼쪽 위로는 "개미의 목"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능선이 있습니다. 지도에 따라서는 "장구목"이라고도 하더군요. 개미나 장구나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미목 능선"아래에는 雪面 등반 연습을 하는 산객들이 많이 있습니다 [백록담 북벽] 정지용선생의 "백록담 白鹿潭"이라는 詩는 우리나라 현대문학을 여는 新詩입니다. 漢詩의 틀을 깨고 새롭게 등장한 최남선의 "海에게서 소년에게"등의 新詩등과 함께 등장하는 詩이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꼭 이야기 하고 싶었던 정지용선생의 詩 "白鹿潭"을 이제부터 감상 해 보겠습니다 저는 시인도 문학 평론가도 아니며 학자도 아닙니다 정지용선생을 대선배로서만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너무 좋아 하기 때문에 감상문을 씁니다 세상살이 속에 묻어있는 그들의 체취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느끼고 해석하고 평가하고...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인건 다 이해하는 바이시죠? ㅎㅎ 시집 "白鹿潭"은 첫번째 시집을 발간하고 여섯해 후에 발표됩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 시집 "白鹿潭"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학의 핵심이라 할 언어의 조형성(造形性)을 그것대로 견지하면서도 감각의 놀이를 넘어서 산인(散人)으로서의 어떤 달관을 품위 있게 드러내고 있다" 휘문고보 출신 또 한분의 대선배 김영랑 시인, '모란이 피기 까지는...' 정지용선배의 시문학파 한해 후배 김영랑선배의 시가 순수언어의 音樂이었다면, 정지용선배의 시는 언어의 美術, 곧 이미지의 織組였다고 합니다. 시에 대한 이 두분 태도 차이는 그들의 언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수 있습니다. 김영랑선배가 영어나 한자어를 극도로 절제하며 고유어 한글의 교향악을 만들어냈던 데 비해, 정지용선배는 뉘앙스의 섬세함을 위해서라면 어휘의 본적지를 따지지 않았다합니다. [하산길과 제주시] 이제부터 "백록담"이란 詩를 한줄 한줄 감상해 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감상은 감상하는 자의 자유이니 잘잘못이 있더라도 따지지 맙시다 1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 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우선 이詩는 한라산 백록담을 등산하는 과정을 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처음으로 등산을 하는 듯한 정지용 선배는 산행이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향해 오르며 힘겨운 육체적 피로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듯합니다 "뻐꾹채"는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힘들어서 허리가 꾸부러지니 키가 작아지는 것을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모가지가 없고..나중엔 얼굴만 갸웃』라고 합니다. ㅎㅎ 힘들어 하는 체력을 정말 절묘하게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한라산 정상부근에 부는 바람이 아주 차거워도 한여름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듯 땀을 흘린다는 듯... 그러면서도『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 든다』로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드는지 알려 줍니다. 머리가 어지러워 하늘에 별이 오락가락한다는..ㅎㅎ 하지만 정신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동경은 남겨 두는 듯 합니다 시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고조되는 욕망과는 달리 그의 육체가 소진됐다는 것은 시적인 자기 자신과 한라산 백록담의 자연이 일체화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지며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느낄수 있습니다 한라산 절정 근처의 자연 풍경을 절묘하게 관찰하여 교묘하게 자신의 체력을 묘사했다고 감상합니다 [백록담 서북벽]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조금 쉬며 오르니 피곤했던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다시 오를수 있음을 말하는 듯 합니다 이런 것을 그는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라고 표현했으니 저같은 놈도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巖古蘭'은 암벽 사이에서 자라는 한약재료로 쓰이는 보양강장재 蘭이라고 하지요? ['용진각 대피소'로 하산하는 길] 오후 2시 33분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인간의 근원적 본질을 통찰하는 듯 합니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즉 인간의 생노병사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뜻이며 누구나 늙는 것인데...등산을 하며 힘들어 헥헥거린다고 챙피 할것까지는 없다는 듯... 산을 오르며 무척 힘들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니 어떠냐하는 표현인듯 합니다 [개미목 능선]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이 행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이 詩가 현대시인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 앞에서도 언급한 "시인세계"라는 계간지에서 『현역시인 109명이 선정한 최고의 詩句-"이 詩句 하나에 ‘감전’..난 죽었고 다시 태어났네!』라는 詩句중에 자랑스런 정지용선배님의 詩 "白鹿潭"의 이 4행의 詩句가 선정되었답니다. 짝짝짝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라는 詩句를 읽고 현대시인들이 모두 '전기에 감전된듯 죽었다 깨어 났다'고 할 정도 였으니 이 표현을 음미해 보세요. 백록담을 향해 오르다가 길섶 모퉁이에서 외로이 피어있는 도체비꽃이 얼마나 외롭게 보였으면 이렇게 표현 해야했을까요. 쓸쓸하고 황량하고 으시시한 계곡에 피어 있는 도체비꽃을 보지 않아도 훤하게 보는 듯 합니다 [개미목 능선 밑에서 雪面훈련중인 알피니스트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尺) 위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 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드디어 백록담 정상에 오릅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겠습니까. 우리네 등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공감할것입니다 정상에 오른 안도와 평안함을 자유롭게 뛰어 노니는 소와 말들을 인용하는 듯 합니다 목장이 등장하는 걸로 보아 정지용선배는 아마도 "성판악 코스"로 오르지 않고, "돈내코 코스"로 등산을 한듯하지요? [용진각 대피소] 오후 2시 56분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매 - 움매 -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앞에서도 언급했드시 아마도 정지용선생님은 등산이 이번이 처음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첫 새끼를 낳느라 몹시 혼이 났다고 한듯합니다. 힘들어서 다시는 등산 가지 않을려는 듯 한데....ㅎㅎ 정말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6행을 읽어 보시고 또 읽어 보세요 산 정상을 오르면 다시 내려 가야 한다는 이치를 소와 말들의 어미와 새끼의 헤어짐으로 표현 한듯 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사 이별의 연속, 즉 下山을 무척이나 아쉬워 하는 듯 합니다 오를 때 아무리 힘들어도 오르고 나면 내려 가기 싫은게 등산이지요 [용진각 대피소 터] [용진각 대피소 터 안내] 불과 3년전 태풍 "나리"가 용진각 대피소를 덮쳐 사라지게 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 계곡에 "용진굴"이 있어 "용진각"이 되었다지요 [다리] 오후 3시 "용진각 대피소" 바로 아래에 있는 다리입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덩쿨 기어간 흰돌배기 꼬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避)하지 않는다. 산을 올라 올때는 힘이 들어 모든 자연이 4행에서 보듯 외롭고 괴롭고 황폐하게 보였는데 내려 갈때는 힘이 들지 않으니 모든 자연이 아름답고 풍요롭고 즐거웁게 보이는 듯 합니다 자연에 도취되 걷다가 '알바'도 하고...ㅎㅎ 하여튼 한라산의 자생 식물들에 대한 고찰도 상당한듯합니다. [다리에서 뒤돌아 본 "왕관릉"] 저 위에 보이는 오름은 ‘왕관릉’ 또는 ‘왕관바위’라 한답니다. 그러나 옛 지도에는 ‘구봉암(九峯岩)’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본래 ‘아홉 개의 바위 봉우리’라는 뜻으로 쓴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은 그 형상이 왕관과 같다고 하여 ‘왕관바위’라 부르며, 저 일대가 능선을 이루고 있어서 왕관릉(王冠陵)이라 하고 있답니다. [삼각봉 대피소로 가는 길]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이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색이며 취(醉)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어 산맥 위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어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백록담에 비친 백록담 주위의 주변 경관들, 즉 산봉우리들의 모습을 절묘한 필치로 그리며 소나기에 젖어 찬란한 무지개를 만나며 정신의 상승과 함께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 하는 듯 합니다 [삼각봉 대피소] 3시 11분 9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백록담'에서 자족한 상태에 취해 세상과 현실의 모든 욕망을 망각하고, 자연과 완전한 일체를 이룬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상에 몰입하여 주객합일의 경지를 이룬 동양 사상의 본질이겠습니다. 청정한 백록담에서 자연과의 완전한 동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삼각봉] 詩로 표현하는 이렇게 멋진 산행기는 이 세상에 없다고 저는 느낍니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이 산행기 같은 詩 - 정말 독특하죠? 이런 형태로 쓰여진 詩는 이 詩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래서 이 詩를 제가 좋아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저 같은 놈은 정말 뭐라고 평할수 없습니다만, 山行을 하는 과정을 산문같은 詩로 쓰셨기 때문입니다 산꾼들은 꼭 기억해 둬야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詩라 여겨지지않습니까? [삼각봉 대피소에서 올다 본 '백록담'] '삼각봉 대피소'에서 바라보는 백록담 정상부는 이별을 고합니다. 이 계곡이 탐라계곡이며 관음사 등산코스이기도 합니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탐라계곡 대피소로 가는 길] 삼각봉 대피소에서도 부지런히 내려 가야합니다. 하산하는 일이 한라산을 오르는 일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탐라계곡 대피소] 오후 4시 10분 '삼각봉 대피소'에서 약1시간 정도 내려 가니 "탐라계곡 대피소"가 나왔습니다 대피소에는 아무것도 없고, 주변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탐라계곡 대피소에서 '구린굴' 가는 길] 하산하는 거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구린굴 가는 길] 탐라계곡을 지나 "구린굴" 가는 길 [구린굴 전망대] 오후 4시 51분 '탐라계곡 대피소"에서 아주 빠른 걸음으로 약40분 정도 내려 가니 "구린굴 전망대"가 나옵니다. [구린굴] "구린굴"의 길이는 442m라고 하네요 옛날에 얼음 창고로 사용했다는 안내는 다음 사진 속의 안내를 참고하세요 [구린굴 안내판] [관음사 계곡] 부지런히 내려와야 합니다. 관음사 하산코스는 거리가 길고 경사가 심해 어두워지면 곤란하겠더군요 [관음사 주차장] 드디어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관음사 주차장에 왔습니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는 등산코스로는 평이한 코스인데, 오늘은 시간에 쫏껴 호덜갑을 떨었습니다 [관음사 주차장] 오후 5시 12분 총 산행 거리 : 18.3km 성판악-백록담 9.6km 백록담-관음사 8.7km 총 산행 시간 : 약7시간 20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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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徽마루' 청계산 新年山行記 원터골-매봉-혈읍재-망경대-옛골 "병든 사람" 병든 사람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엿장사라구? 아니야~ 병든 사람을 가장 좋아하는 인간은 의사들이라구~ 에구~ 내가 제일 싫어하고 만나기 싫은 인간이 의사인데.... 그런데 이 의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 중에 최고래! 하루 종일 병들어 아파 찡그리는 환자들하고 노는데 뭐가 그리 존경스러울까? 언제나 웃고 명랑한 친구들하고 놀아도 가는 세월이 아까운데.... 꼴 보기 싫은 의사 만나지 않으려면 평상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친구들도 만나고 함께 등산도 할수 있는 "휘마루" 동창 산악회 신년산행에 만사 제쳐두고 뛰어 갔습니다 어제는 양평 청계산, 오늘은 과천 청계산..... [원터골 산행 들머리] 10시 2010년 1월17일(일) 오전 10시 날씨는 무지 맑아 그 동안의 한파가 언제였는가 잊어버릴 정도로 산행하기 좋은 날 - 高校 동창들의 산행모임인 "徽마루" 新年山行에 참가하기 위해 오늘도 늘어진 걸음을 재촉하며 만남의 장소인 청계산 원터골 정자 앞으로 갔습니다. 청계산에는 "원터골"이 두군데 있습니다. 가장 많은 산객들이 몰리는 이곳 "원터골"과 안양 인덕원쪽에서 가는 "청계사" 방향으로 "하오고개"를 넘어 가기 바로 전에도 "원터골"이 있습니다. "원터골"이란 地名은 쉬운 말을 어렵게 만들어 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그냥 사용합니다. "원터골"에 대해 알려 드릴까요? 옛날에는 한양에서 삼남지방을 갈때 "달래내고개"를 걷거나 말을 타고 넘어야 했습니다. 특히 말을 타고 넘는 사람들 - 즉 관리들이 이곳에서 말을 빌려 타고 넘는 "驛院"이 있었답니다. 그 "驛院" 자리가 이곳에 있었다고 "驛院터"라고 하다가 "驛"은 빼고 쉽게 "院터"라고만 하였고 "院터"가 있는 마을을 "원터골"이라 하게 되었으니, 전국에 "원터골"은 이곳뿐만 아니라 중요한 고개가 있는 곳엔 많이 있었습니다. 말을 타고 "달래내고개"를 넘는 사람은 이제 찾아 볼수 없으니 "원터골"이 무슨 의미인지 알 필요도 없이 잊혀져 가버리고 있습니다 [원터골 정자 앞] 벌써 부지런한 교우들이 도착하여 산행차비를 차리고 있었으며, 또한 오랜만의 만남을 서로 반가워했습니다. [단체 기념 사진] 저는 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딴에는 다른 산들을 다니느라 이곳에 올 시간이 없어서라고 이유를 댑니다만... 몇몇명 모이지 않을거라는 예상을 깨고 제법 많이 모였습니다. 아마도 新年부터는 건강관리와 친구들 만나는 시간을 늘리려는 가 봅니다. 작심삼일이 않되길 바라며..... [갈림길] 10시 20분 바로 산행을 시작하여 "매봉"을 향해 올라 갑니다. 오늘은 좌측 코스를 이용하여 "돌문바위"를 지나 "매봉"으로 갑니다. [돌문바위로 오르는 길] 하얀 눈이 뒤덮힌 청계산을 오르며 맑은 공기로 허파를 뒤집어 놓고 겨울에도 땀을 흘리며 심장을 요동치게 합니다. 잘 걷는 사람-못 걷는 사람, 있는 놈-없는 놈, 잘 생긴 놈-못 생긴 놈 키가 크던 작던 그 어떤 인간도 모두 똑같이 걸어야 정상에 올라 갈수 있습니다 산에서는 모두 無等입니다. [쉼터] 10시 45분 청계산 매봉코스는 경사가 가파릅니다. 청계산을 우습게 보는 분들이 많은데 절데 평범한 산은 아닙니다. 특히 '원터골'에서 '매봉'까지는 숨돌릴 틈 없이 올라야하는 힘든 코스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30분마다 쉼터가 있어 가쁜 숨을 몰아치며 오르다가 쉴수 있어 좋습니다 [돌문바위를 향해 오르며] 오늘은 동창들이 힘이 솟는 듯 모두 뒤 떨어지지 않고 일렬로 잘 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사진촬영에 매우 협조적이어서, 찍사하기가 쉬운 하루였습니다. 세월 가니까 작지만 이런 기록이라도 하나 더 남기려는 뜻이겠지요 [돌문바위를 향해 오르며]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이제 "돌문바위"가 다가 옵니다. [登路에서 뒤돌아 본 '검단지맥'] 돌문바위를 향해 오르며 뒤돌아 보니 가운데 "인릉산"이 서울과 성남의 경계를 이루고, 그 뒤로 멀리 "검단지맥"이 하남 검단산에서부터 남한산성을 지나 분당 뒷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 [登路에서 뒤돌아 본 '서울시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시꺼먼 공해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가운데 남산과 그 뒤로 북한산이 보입니다만 역시 도시를 뒤덮는 서울의 공해 - 이런 산에 올라야 얼마나 더러운 곳에서 숨쉬며 살고 있나를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이런 산에 올라 찌들은 허파를 청소해 주어야 하겠지요? 모두 아시다시피 등산은 다양한 것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아!~ 건물은 높아졌지만 우리들의 인격은 더 낮아졌습니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우리들의 시야는 더 좁아졌습니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아무리 사도 기쁨은 줄어들었습니다 [登路 오른쪽으로 보이는 '관악산'] 약간 줌인하여 관악산을 촬영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업그레이드하여 관악산과 북한산도 자주 등산하시기 바람니다. 정말 아름다운 산들입니다. 아무리 가도 싫증나지 않는 산들입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습니다. 모든게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습니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졌습니다 [돌문바위] 11시 35분 청계산 "매봉코스"의 名所 "돌문바위"에 왔습니다. 저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돌문바위"라는 이름이 다소 거슬립니다. 전부 한자로 쓸려면 한자로 통일하는게 일관성이 있는데 한자와 한글이 혼재되어 좀 그렇지요? 한자로 쓰려면 "石門岩"..... 한글로 쓸려면 "돌틈바위".....에휴~ 또 반론 들어 올라~ 그만합시다 ㅎㅎ [돌문바위] 청계산도 肉山이라 볼거리가 별루입니다. 그래도 이 '돌문바위'가 볼거리라고 안내판까지 설치하고 언제나 이 자리를 자신의 영업장소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키고 있는 스님 자세히 보니 순수 불교 승려는 아니고 뭔 이상한 교리를 펴는 사람인데 돌틈새로 한바퀴 돌고 가라며....그리고 돈좀 내고 가라는 ...그러면 소원성취한다고... 저 돌틈새를 돌고 간다고 소원성취를 하면 저는 이미 '워렌버핏'이 되었겠죠 [돌문바위에서 올려다 본 '매바위'] 돌문바위를 지나면 '매봉코스'에서 유일한 능선이 나오고, 능선에 서면 "매바위"가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습니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내지는 않습니까? 가진 것은 몇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매바위 정상석] 청계산에는 "매바위"가 있고 "매봉"이 있습니다. 여기는 "매봉" 앞에 있는 "매바위"입니다. '매바위'에서 '매봉'까지는 약100m쯤 됩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습니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분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매봉 정상] 11시 42분 오늘 청계산 산행의 하일라이트인 "매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원터골 산행 들머리에서 약 1시간 20분 걸렸습니다. [매봉 정상석] "매봉" 정상석 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 아무것도 가진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산으로 들로....지친 육신을 보담아 주는 大自然 속으로 여행을 자주 갑시다 [매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서울특별시 서초구와 성남, 과천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입니다. 부자 동네 서초구에서 제법 돈을 발라서 "매봉"에는 전망대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대기 오염은 그 도를 넘고 있습니다. [망경봉을 오르며] "매봉"을 지나 "혈읍재"에서 다시 전열을 재정비한 휘문62회 휘마루팀은 "혈읍재"에서 처음으로 "망경대"를 올라 "석기봉"방향으로 산행길을 잡았습니다. "望京臺"갈림길로 오르며 찰깍!~ '청계산"의 망경대는 "서울 경 京"을 씁니다. 왜냐하면 고려말 '조견선생'이 권력을 찬탈한 이성계일파들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었다가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며 서울을 바라 보는 곳이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망경봉을 오르며] 청계산에는 "국사봉"과 "이수봉"이 또 있습니다. 國思峰은 540m 높이이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고려의 충신 조윤(趙胤)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망경봉 정상부근 갈림길 이정표] 12시 03분 청계산 레이다 기지는 미군이 관할하고 있습니다. 기지 철조망 바로 아래 갈림길이 있는데, 오른쪽은 "망경대"로 가는 길이나 위험해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에는 모두 '혈읍재'에서 우측 '마왕굴' 방향으로 삥~둘러 '석기봉'헬기장으로 갔지요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쉽게 '석기봉' 헬기장으로 갈수 있습니다. [망경봉에서 뒤돌아본 매봉] "이수봉"은 "二壽峰"으로 쓰며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번이나 넘겼다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二壽峰"이라 하였답니다 [망경봉 군부대 밑 공터] 12시 35분 석기봉 헬기장 올라 가는 길 중턱, 즉 미군 레이다 기지 바로 아래에 있는 공터에 자리를 잡고, 산행의 하일라이트 점심식사를 시작합니다. 이 시간을 위해 산을 오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한잔을 위해 오른다고도 할수 있습니다 [점심식사] 친구들과의 新年山行이라고 먹거리를 각자 제법 많이 싸 왔습니다. 라면도 끓이고...막걸리 잔도 오가고.... [점심식사는 계속되고] 즐거운 시간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점심식사시간은 우리가 하나이란걸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옛골로 하산] 군사용 도로를 따라 아주~아주 쉽게 옛골로 하산합니다. '꼰대' 우리가 학창시절에 현재의 우리 나이의 어른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말 기억하시나요? 에구~ 우리가 이런 호칭의 대상이 벌써 됬다고 세월이 무상함을 한탄하는 친구도 있었고.. [옛골로 하산] 에휴~ '꼰대' 꼰대' 하지 말자구~ 듣는 '꼰대' 기분 니쁘다구~ 닝기리 ㅎㅎ [옛골로 하산] 햐~ 아름다운 눈길....... 집에서 소파에 파뭍혀 TV 리모콘 서로 돌리려고 와이프와 티격대고 있는 분들 많지요? 함께 가까운 산으로 가세요. 그리고 가벼운 산행을 하고 순두부라도 한그릇 사주시랴요 그러면 저녁 반찬이 화~ㄱ 달라 집니다. [뒷풀이 장소] 옛골 첫번째 음식점에서 뒷풀이를 했습니다. 오늘은 新年 첫山行이라 기대되는 뒷풀이.... [건배] 2시 45분 친목과 건강을 위해 건배!!~ [전임 회장의 회고] [신임 총무 인사] 전임 '徽마루' 산짱님의 회고와 신임 산총님의 인삿말이 있었습니다. 인삿말이 너무 짧아서 뭘 인용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대략 '그동안 함께해서 즐거웠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그런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신임 회장 인사] 신임 산짱의 인삿말이 이어졌습니다. 이 양반도 인삿말이 너무 짧아 인용할게 별루입니다. 사실 뭔 긴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모두 아는...귀가 따갑도록 들은 그런 이야기들이니 간단하게 줄인 것이겠지요. '앞으로도 많이 참여하여 친목과 건강을 챙기자!~'..... [뒷풀이를 끝내고] 큰 선물을 한아름 받아 들고 가는 소년들처럼 오늘 하루는 수학 공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큰 보람이었습니다 난 그냥 니가 왠지 좋아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아 난 너를 사랑하고 싶어 사랑에 빠지고 싶어 사랑은 이런 건가 봐 가슴이 저려 오네요 그리움이 이런 건가 봐 자꾸만 눈물이 나요 오렌지 빛 노을 창가에 와인 잔에 입맞춤으로 사랑을 마시고 싶어 사랑을 꿈꾸고 싶어 난 그냥 니가 정말 좋아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아 난 너를 모두 알고 싶어 벗어 버린 아담과 이브처럼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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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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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漢山 送年山行 불광역9번출구-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 승가봉-통천문-문수봉 옆 청수동 암문-대남문-중성문-오복장 세월은 빠르구나 아무리 매달려도 말없이 가버린다 간다고 하더라도 잡을건 잡아야지 따뜻한 사람들을 北漢山 送年山行 많은분 오셨으니 즐겁게 맞아야지 불광역 9 번출구 누구를 닮았는가 독바위 쪽두리봉 향로봉 기슭에서 서울을 깔고앉아 맛있게 점심식사 진흥왕 순수비는 비봉에 솟아있고 누구를 기다리나 사모곡 불러대며 외로운 사모바위 애처런 마음으로 승가봉 올라서서 문수봉 바라보니 갈길이 아주멀어 여기서 하산하자 아우성 애걸복걸 여기서 포기하면 않오니 못하지요 통천문 통과하여 문수봉 옆구리로 청수동 암문지나 대남문 기념사진 중성문 내려가니 다리가 아파오고 오복장 들어가서 막걸리 한잔하고 뒷풀이 하기위해 뜰안채 옮겨가서 즐거운 저녁식사 안녕히 잘가세요 만나서 즐거웠고 보내서 아쉬웠소 내년엔 하시는일 모두다 소원성취 또다시 만나기를 [산행 개념도] 불광역9번출구에서 붉은 선을 따라 "쪽두리봉" - "향로봉", - "비봉", - "사모바위", - "승가봉", - "통천문", - "문수봉 옆 청수동 암문", - "대남문", - "중성문", - "오복장"까지 국립공원 북한산의 西部地域을 산줄기 따라 종주를 했습니다. [불광역 9번 출구] 오전 10시 2009년 12월 20일 (일) 오전 10시 지역감정 해소 - 학연, 지연을 배척하며 그저 따뜻한 맘 하나 가지고 山을 사랑하며 아름답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가꾸는데 앞장서는 '정암카페' 회원님들이 오늘은 처음으로 서울에서 2009년 송년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KTX를 타고 지하철을 두번씩이나 갈아타며 이곳에 모였습니다. [산행 들머리로 가는 길] 불광역 9번 출구에서 북한산 방향으로 조금 "ㄱ"자 방향으로 올라 가서 '불광하나마트'에서 우측 골목으로 틀어 골목을 따라 약200m쯤 올라 갑니다 [산행 들머리로 가는 길] 10시20분 약200m쯤 올라오면 사진에서 보는바와 갗은 "三煥그린 파크"라는 아파트 옆으로 북한산 쪽두리봉 방향 산행 들머리가 나옵니다. [산행 시작] 10시 30분 아파트 골목을 올라 서면 바로 북한산 등산로입니다. 깨끗하게 자연이 잘 보존된 "국립공원 북한산"이 품에 들어 옵니다 어제까지 불어 닦친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은 언제였냐?하며 날씨까지 도와줍니다 모두 福받은 분들이라 하늘까지 반가워 이렇게 산행하기 좋은 날씨를 만들어 주었나 봅니다. [족두리봉 오르는 登路] 10시 45분 소나무 숲을 지나면 아직도 젊음을 과시하는 북한산 바위들이 든든한 받침목이 되며 登山이 아니라 大自然 속으로 旅行이 시작됩니다. [족두리봉 오르는 登路에서 뒤돌아 본 불광역 방향] 이마에 땀이 맺힐때쯤 되면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세상살이에 찌들은 갑갑하던 가슴이 확 뚫리며 천하가 내것 같아 집니다. [첫번째 봉우리로 오르는 길] 등산은 언제나 처음 30분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새벽부터 준비해서 부산, 대구, 대전에서 올라 오신 횐님들은 피로의 기색도 없이 잘 오릅니다. 아직까지는 ...ㅎㅎ [첫번째 봉우리에서 기념사진] 10시 55분 부산에서 한분, 대구에서 두분, 대전에서 네분, 서울에서 두분, 그리고 저와 백두클럽 세분.... 지난 시월의 대구 팔공산 이후 두달만에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두번째 봉우리에 올라 내려다 본 첫번째 봉우리] 앞에 보이는 첫번째 봉우리에서 단체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해하기 쉽지요~잉 촬영을 하고 있는 이곳이 두번째 봉우리인 "쪽두리봉"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가파른 암벽코스를 오르는 정암교수님] 정암교수님이 열심히 메모하며,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사진찍으며, 가파른 된비알을 오르고 있습니다. 요즈음 공사다망하여 산행을 할 기회가 별루여서, 오늘 쬐께 힘드신다고... 그래도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족두리봉 앞 쉼터] 11시 18분 족두리봉 바로 아래 까지 올라 휴식을 취합니다. 커피도 한잔하고 물도 마시며 여유를 부립니다. 저는 그제 밤에 경북 영양으로 출발하여 버스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어제 새벽부터 "낙동정맥7구간- 검마산휴양림-갈미산-검마산-백암산-백암온천"을 헤메며 추위 속에 떨며 다녀와 다시 오늘 북한산으로 온것입니다. 엄청난 체력이지요? ㅎㅎ [족두리봉 입구] 11시 23분 족두리봉은 이쪽, 즉 서쪽방향에서는 급경사가 아닙니다. 동쪽방향에서 올려다 봐야 이 봉우리가 "족두리"처럼 생겼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우회로를 이용하여 향로봉으로 갈 예정입니다. [족두리봉 정상으로 오르는 산객들] 많은 산객들이 쪽두리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족두리봉 정상에 있는 기암괴석들] 족두리봉 정상에는 많은 奇岩怪石들이 있습니다. 수십억년을 버티고 서있는 바위들이 찰라를 사는 우리들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변치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 줍니다. [족두리봉 정상] 11시 30분 "족두리봉"은 닉네임입니다. 지도에는 "수리봉"이라고 나와 있으며, 지명의 유래에는 "독바위"라고 나와 있습니다. "수리봉"은 '독수리'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독바위"는 '독'이 "대머리 禿"으로 머릿부분이 벗겨졌다고 붙여졌다는데, "독수리"도 '독'이 "대머리 禿"이니 비슷한 의미라 할수 있겠습니다. 물론 바라 보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모양이 다르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겠지요. [족두리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할 '향로봉', '비봉', '문수봉'] 앞으로 가야할 산봉우리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향로봉", "비봉", "문수봉"..... 족두리봉" 정상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제가 좋아하는 詩한수 전해 드리겠습니다 * 산을 닮은 사람 * 송재익 나는 산 보다 더 큰 고뇌를 버리려고 길도 없는 산을 오른다 푸른 잎 사이사이 주저리 열린 하늘을 따 먹으며 가쁜 숨 돌려 세우면 절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토끼를 만나게 되고 슬픔을 모르고 노래하는 산새를 만나게 되고 낮은 곳을 향하여 제 한 몸 기꺼이 바치는 폭포를 만나게 된다 고뇌의 끝을 잡고 하늘이 돌아앉은 폭포 그쯤에 가만히 발을 담그면 어느새 나는 오간 데 없고 내 속에 산이 들어와 앉는다 고뇌가 있던 그 자리 하늘이 들어와 앉는다 [족두리봉 하산] 11시 38분 족두리봉은 직진하여 갈수가 없습니다. 낭떨어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위험을 무릎쓰고 내려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안전하게 우회해서 갈수 있는 길이 있으니 우회길을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눈 내리는 족두리봉] 우회로를 돌아와 뒤돌아 본 '족두리봉' 오늘은 가끔 눈빨이 날렸습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보이는 족두리봉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이시나요 [족두리봉을 배경으로...] 12시 족두리봉을 내려와 우회하여 여기서 바라보는 족두리봉이 眞景입니다. 그래서 대전에 살다 서울로 이사왔다는 '세레나님'과 친구분이 진짜 "족두리봉"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었습니다. [걸레바위] 12시 18분 족두리봉을 뒤로하고 '향로봉'으로 향합니다.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조금 지저분한 바위들이 있는데 이름하여 '걸레바위'입니다. 걸레 같나요? ㅎㅎ [향로봉] 향로봉이 보입니다. 걸레바위를 지나면 '향로봉' 직벽을 오르는 곳이 나오는데, 빈번한 추락사고 때문에 오르지 못하도록 공익요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올라가지 못하게 하면 올라 가지 말아야하는데, 더 올라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죠? 이런곳에서 초상을 치루기는 인생이 너무 아깝습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왜 초상을 치뤄요? 아름다운 곳을 즐겨야지~~ [향로봉 옆구리를 우회하며] 12시 53분 향로봉 옆구리를 돌아 안전하게 올라 갑니다. 여기서부터는 '탕춘대성'방향에서 올라 오는 산객들과 합쳐져 더 복잡해 집니다 [향로봉 옆구리 전망대에서 점심식사] 1시 6분 이렇게 전망이 좋은 곳에서 점심 먹어 본 사람있으면 나와 보세요. 인왕산과 북악산이 글래머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이는 향로봉 중턱에서 각지방에서 올라온 다양한 음식들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일 즐거운 시간 [향로봉 옆구리 전망대에서 점심식사] 저는 전날 '낙동정맥7구간' 경북 영양군에서 울진군 백암온천까지 종주를 하고 늦게 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북한산으로 오는데 점심 준비를 해 달라고 옆지기한테 못하겠더군요. ㅎㅎㅎ사실 준비 할 필요가 없어 안심하고 왔습니다. 얻어 먹을려고... 이것만 들고 왔시유~~ [향로봉 옆구리 전망대에서 점심식사] 정암교수님은 산에 갈 때에는 빵을 준비해서 가시더군요. 저는 주님을 모시고 밥을 먹어야 산에 가는 의미를 느끼는데....ㅎㅎ 酒님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 1시 42분 식사후 다시 향로봉을 오릅니다. 향로봉을 오른다는것은 북한산 주능선으로 오른다는 의미이고, 북한산 주능선은 걷기에 편한 능선이어서 실제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바라보는 "비봉"] 우리나라 높은 산에는 "비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봉우리가 많습니다. 다른 산은 대부분 "비봉"이 "날 飛"를 쓰는 "飛峰"입니다만, 유별나게 북한산의 "비봉"은 "비석 碑"를 쓰는 "碑峰"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국보 3호인 "진흥왕 순수비 巡狩碑"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흥왕 순수비 巡狩碑"는 비봉 아래로 떨어져 없어진줄 알았는데 "추사 김정희"가 찾아 냈지요 "巡狩碑"는 한자로 표기해야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수 있지요? '순회 할 巡', '사냥 할 狩'이니 "내가 언제나 이용하는 나의 사냥터"를 강조한 것이고 현대적 의미로 "국경"을 표시하는 중요한 碑石이라 할수 있습니다. 핵교 시절에 다 배운건데 그냥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라고만 외웠지요? 뜻도 모르고... ㅎㅎㅎ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입니다. 오로지 점수 따기 위해 뭔뜻인지도 모르고 외우기만 하는 ...그리고 시험 끝나면 몽땅 잊어버리는.... [향로봉 오르는 우회로] 향로봉 우회로를 잘 정비해 놨습니다. 최근에 정비 한듯... [비봉을 배경으로] 2시 18분 북한산 주능선에 올라 '비봉' 가기전의 봉우리에서 '비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부산에서 오신 '지혜적님'과 대구에서 오신 '용담님'. 용담님과 남영님은 비봉 정상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구경하고 왔다고 자랑했습니다. 백두클럽 산행대장이 점심식사시간에 합류하여 안내를 해 주었답니다. 그렇지요. 언제 또 온다고 그냥 지나치나요. 잘 하셨습니다. 원래 계획에는 있었으나 눈빨도 가끔 흩날리고, 힘도 들고 하는 것 같아 생략했는데... 못 가신 분들은 다음엔 꼭 올라 보세요. 비봉 꼭대기에 보이는 '진흥왕 순수비'는 모조품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사모바위] 2시 35분 '비봉'을 지나면 바로 "사모바위"가 나옵니다. '사모한다' '그리워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바위입니다. 망부석 같은 것이지요. 북한산의 서쪽 산행지의 중간 지점이라 언제나 많은 산객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사모바위 아래 물개바위] 물개 같나요? 옆에 새끼도 한마리 댈구 다니지요 [승가봉에서 뒤돌아 본 "비봉"과 "승가사"] 사모바위를 지나 승가봉으로 올라 가며, "비봉"을 바라봅니다. 비봉 아래 "승가사"도 보셨나요? 매우 유명한 절이랍니다. "승가대학"도 가지고 있는 부자 절이랍니다. [승가봉] 2시 51분 화강암 암반을 밟으며 승가봉을 오릅니다. 북한산의 최초 명칭은 부아악(負兒岳)입니다. 부아악이란 명칭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망경대,국망봉)의 어느 암봉 뒤에 애를 업은 형상의 바위가 붙어있다 해서 불렀다는 설(說 )과 山峰이 뿔처럼 뾰족하게 생겨 불렀다는 [부아 →불→뿔]설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 부아(負兒) 또는 횡악(橫岳)으로 불렀던 북한산은 고려시대 성종(成宗) 이후부터 1900년대까지 약 1천년동안 정상의 세 봉우리를 의미하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워져 왔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중기까지 화산(華山), 화악(華嶽)으로도 불렸답니다. 북한산이란 명칭은 1711년 조선 중기의 숙종이 축조한 北漢山城을 염두에 두고 南漢山城과 대비하여 "한강 북쪽의 큰 산" 이란 의미로 1900년대 초 일제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답니다. 아시다시피 쪽바리들은 어떻게던 우리나라 정기를 까부실려고 주로 山을 홰손시켰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지각있는 분들이 북한산의 본명을 찾아 주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北漢山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입니다. '한강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고 그냥 쓰여진 일반명사 산이름입니다. '숭례문'을 南大門이라고하는 것과 '흥인지문'을 東大門, '돈의문'을 西大門, '숙정문'을 北大門이라 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北漢山의 본명은 三角山입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이 작성한 "산경표"에는 "漢北正脈"에 "三角山"이라고 분명히 적고 있으며, 一名 "負兒山"이라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負兒는 아기를 업고 있다는 뜻이지요. '업을 負', '아기 兒' 그리고 在京北三十里 楊州南三十九里라고 위치까지 적어놨습니다 산경표 뿐만 아니라 모든 고지도에는 모두 삼각산 三角山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앞으로 "三角山"이라고 불러 주세요~~ [승가봉] 이 봉우리 아래에 '승가사'라고 하는 절이 있어 여기를 "승가봉"이라 하는듯..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나타 나니 힘든줄 모르고 계속 전진합니다만... [승가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문수봉 옆 "청수동 암문"] 2시 53분 여기까지 오니 힘들어 하는 횐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척 힘겨워하시고, 여기서 내려 가야 겠다고 하거나.... 하지만 가장 쉽고 빠른 길이 저 앞에 보이는 문수봉 옆 "청수동 암문"을 넘어 북한산성 안으로 들어 가야 차량을 이용해 하산 할수가 있기 때문에 "청수동암문"까지는 가야 더 편하게 하산을 할수 있어서.... 그래서 여기서 선의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가지 않는다고..... 그러나 모두 결국 저 앞에 보이는 "청수동 암문"을 넘어 "大南門"으로 갔으니, 모르고 넘어 가긴했으나 ㅎㅎ 가면 갈수 있는데 미리 겁을 먹은것 뿐이지요 넘고 나서 모두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 놀랐을 것입니다. 앞으로 왠만한 산은 우습게 보게 될것입니다. 이젠 저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지요? 흐음~ [승가봉 하산] 유격대처럼 암벽을 타고 승가봉을 내려 갑니다. 정말 재미있는 산입니다. 다양한 코스가 있어 매일 와도 싫증나지 않게 하는 산입니다. 북한산 국립공원에는 알려진 산행코스만 해도 3,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평생 북한산국립공원에만 다녀도 모든 코스를 다니기가 쉽지 않겠지요? [通天門] 3시 2분 카이스트 안병태 교수님이 하늘로 통한다는 "通天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처음으로 북한산을 찾았고, 북한산의 매력에 흠뻑 빠지셨다고.... 대단한 경험을 해서 앞으로 "산꾼"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고...ㅎㅎ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쾌케한 연구실에서 벗어나 산을 다니시면 머리가 더욱 신선해져 더욱 기발한 연구와 발명이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만나게 되겠네요 [通天門 下山] 절묘하게 생긴 通天門을 내려 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볼거리들이 나타나는 북한산 북한산의 서쪽 일부인데도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덤북 안겨 주었습니다. 모두 좋아해서 산행 안내를 한 저도 돈을 많이 번 기분이었습니다. [문수봉으로...] 마지막 된비알 문수봉 "청수동 암문'으로 올라 갑니다. [청수동 암문] 3시 53분 멀고 높게만 느껴졌던 문수봉 "청수동 암문"에 오릅니다. 오늘 산행 중에 가장 힘든 코스이지요 그러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게 산입니다. [청수동 암문에서 기념사진] 어휴~~ 고생 하셨어요~ 올라보니 오를만 하지요? 오르막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래서 기념사진은 꼭 찍어 둬야 증명이 되겠지요? ㅎㅎ "청수동암문"이 빛납니다. 이제 어디 가서도 "나도 북한산을 등산 했다~!!"라고 말해도 됩니다. [청수동 암문에서 기념사진]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올랐습니다. "노익장을 과시한 정암교수님"....좀 힘드셨죠? ㅎㅎ "별 볼일 있는 김박사님"...이제 자주 서울 주변 산들을 다녀야겠지요? 그리고 2월 셋째주에 간다는 "소백산 천문대" 엄청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3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는 서원장님".....등산이 얼마나 즐거운지 점점 더 알게 되지요?. 잘하면 또 한명의 "산꾼"이 탄생될거라 확신합니다. 산의 묘미가 솔솔~~ 나도록 마들어 준 '파란문'에게 서원장은 찐하게 술한잔 사야하겠죠? [대남문 앞에서 기념사진] 4시 15분 오늘 북한산 산행의 하일라이트는 "大南門"입니다. 북한산성에서 남쪽 구기동 방향으로 통하는 대문입니다. 北漢山城 "大南門"을 가 보지 않고는 북한산 야그를 하지 말아야합니다. 대부분 "백운대"를 가야 북한산을 가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늘 함께한 산행코스가 더욱 즐거움을 주는 알뜰코스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대남문에서 바라보는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 진짜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가 여기도 왔다 가라고 손짓하네요... 북한산을 어느 정도라도 구경하려면 앞으로 최소 10번은 더 와야 할것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백운대 코스"도 기획하여 안내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입술바위", 산행의 진가를 알려 주는 "의상봉 코스" 스릴 넘치는 "칼바위 능선", 꼭꼭 숨어 있다는 "숨은 벽 능선" 30억년의 영겁의 세월을 버텨온 세계 제일의 암벽등반코스 "인수봉" 봄에는 꼭 한번은 가봐야할 "진달래 능선"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상장능선" 도봉산 주능선, 포대능선, 오봉, 우의암능선, 여성봉 등등등 가야 할 코스는 무궁무진 [북한산성 안 하산길] 北漢山城 안으로 들어와 하산 합니다. 이곳이 옛날 城안에 行宮이 있던 곳인데 모두 불타 없어졌습니다. 城 안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무척 깁니다만, '오복장'이라고 하는 음식점에서 막걸리 한잔 먹어 주고 차량을 얻어 타고 하산 하려고 합니다. [북한산성 안에 있는 '오복장' 주막] 5시 38분 '오복장'에서 5만원어치 안주와 막걸리를 먹어 주고, 차량을 얻어 타고 산성입구까지 나왔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횐님들이 좀 좋아 하더군요. 차를 타고 북한산을 내려오니... [일영 유원지에 있는 "뜰안채"] 6시 5분 저녁식사를 예약한 일영유원지의 "뜰안채"에서 준비한 차량으로 바꿔타고 "뜰안채"에 가서 한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송년산행을 마쳤습니다. 횐님들 모두 만나서 반가웠고, 소생이 산행 안내를 하게 해 주어 고마웁고, 즐겁게 산행해 주셔서 제 마음은 더욱 즐거웠습니다. "三角山아 잘 있거라" "다시 보자~!! 北漢山!아!" [산행 개념도] 산행 시작 : 10시 20분 산행 종료 : 5시 40분 총 산행 시간 : 7시간 20분...무지무지 빠르네요~~ㅎㅎ 산행 거리 : 약 12km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 한영애 아침에 보던 그 밝은 햇살과 당신의 고웁던 참사랑이 푸른 나무가지 사이사이로 스며들던 날이 언제일까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 놓고 말은 한마디도 못한 것은 당신의 그 모습이 깨어질까봐 슬픈 눈동자로 바라만 보았소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낙엽이 지고 또 눈이 쌓이면 아름답던 사랑 돌아오리라 언제 보아도 변함없는 아름답던 사랑 그대로를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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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白山 山行記 慶尙道라는 地名이 엄연히 있는데도 또다시 嶺南地方이라는 새로운 地名을 만든 白頭大幹 중에 하나의 山인 『小白山』을 찾아서 화창한 5월의 첫주에 "휘산회"와 함께 길을 나섯습니다 [치악휴게소]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따라 "북단양 I.C."까지 가는 길에 있는 '치악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5월초 황금연휴 기간 가운데 5월3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새밭계곡 河日川]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새밭계곡"에 흐르는 물은 小白山의 '國亡峯'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데 " 河日川"이라고 한답니다 이 河日川의 맑은 물은 南漢江으로 흘러 강화도 앞 西海로 멀고 먼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준비운동] "어의곡리"를 산행들머리로 小白山을 등산하는 산객들은 많지 않은듯합니다 오늘은 참가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徽山會" 교우들은 1,439m 높이의 "小白山비로봉"을 오르기 위해 산행들머리인 "어의곡리" 주차장에서 준비운동을 합니다 [소백산 등산로 입구] "어의곡리 소백산 산행 들머리"는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습니다 비로봉 5.1km라는 팻말이 벌써부터 압박감으로 다가 옵니다 10시 45분경에 출발합니다 "소백산국립공원"은 우리나라 20개의 국립공원중에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등산로] 小白山 山行은 "죽령"이나 "희방사"에서 주로 시작하는데 오늘은 색다른 小白山의 맛을 느끼기 위해 이 코스를 선택했나 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제까지 많은 산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시시한 등산코스는 처음입니다. 小白山은 완전한 肉山으로 볼거리가 거의 없는데다, 계곡을 오르니 시야까지 꽉막혀 외부를 조망할수도 없으니 뒷동산을 오르는 것과 무슨 다름이 있겠습니까.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정말 눈에 뵈는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산행기는 산행기가 아니라 이런 저런 얘기로 채워야 할것같습니다 [어의곡 마을] 등로를 조금 올라 "어의곡 마을"을 뒤돌아 봤습니다. "어의곡 산행 들머리"에는 조그만 주차장과 가옥 몇채가 있을 뿐인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어의곡"이란 말의 유래는 두 골짜기가 어우러져 있어 엉이실, 응실 또는 어의곡(於儀谷)이라 했다고하는군요. 그리고 소백산 비로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마을이라 비로봉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되겠습니다 [등로] '어의곡리'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비교적 넓게 잘 정비되있습니다.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경상북도 영주시로 넘어 갑니다. 그래서 이곳 단양과 풍기에서 군수를 지내신 퇴계 이황선생님의 이야기가 많아 퇴계 이황선생님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소백산 어의곡 탐방 지원소] 퇴계선생님은 "등산"을 매우 좋아 하셨고, 많은 山行記를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퇴계선생님이 남기신 유명한 산행에 대한 名言이 있지요? 아십니까? 제가 오래전에 쓴 登山과 遊山이라는 글을 다시 한번 올려 드리겠습니다 [산행 안내도] [등로] 우리나라 역사속 인물중에 가장 존경하는 분 있으십니까? 많은 분들중에서도 저는 퇴계 이황선생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학,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갖추신 분이시지만 제가 특히 좋아하는 연유는 선생께서 "등산"을 매우 좋아하셨기 때문입니다 퇴계선생님에 대해선 아시는 분들이 매우 많으실것같아 이런 글을 쓰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한때 퇴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분의 향기를 느끼러 이곳 저곳 많이 다니다 나름대로는 매우 인상 깊었던 그 분의 새로운 면모를 깊이 느꼈기에 몇자 적습니다. 어려서부터 가냘픈 몸매에 허약했던 선생은 집안 살림살이까지 어려워 영양상태가 매우 안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주야를 가리지 않고 독학에 열중하여 더욱 허약해졌는데도 그 어려움을 이기고 일찍이 모든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하지요?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 중에 높은 관직을 고사하시고 사표를 가장 많이 제출하신 분이 바로 퇴계 이황 선생님이시랍니다. 총 오십여회라나...칠십회라나ㅎㅎ 王들이 제발 관직을 맡아 달라고 애원을 하였으니 선생님의 위상을 짐작 하실만 하지요? 영의정등 높은 관직을 사양하신 이유 중에는 치졸한 당파싸움하는 꼴을 직접 대하기도 싫었겠지만 핑개인지는 모르지만 건강이 시원치않아 사양한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래서 관직에서 물러나 나이 들어서는 건강을 무지하게 챙기셨는데 주로 안동과 봉화사이의 청량산을 비롯해 소백산, 태백산, 월악산, 주흘산등, 많은 산에 등산을 함으로서 건강을 챙기시고 특히 청량산엔 "청량정사"에 기거하시며 많은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뭇 강호의 유생들은 퇴계선생님을 만나려면 청량산이나 소백산을 올라야 했으니 등산 못하는 강호의 유생들은 퇴계선생님을 만나 뵙기도 힘들었답니다 퇴계선생님의 등산에 관한 유명한 명언이 있죠? "讀書는 유산(遊山)이다" 퇴계선생님은 산을 오른다는 표현인 '登山'이라 하지 않고 "유산(遊山)"이라 하였습니다. 즉, 登山은 산을 오른다는 의미 밖에 없지요? 힘들게 산을 오르는것만이 아니라 산을 오르면 내려 가기도 해야하고, 또한 산행 도중 식사도 하고 계곡에 발도 담그며 경치를 즐겁게 즐기며 산행도 해야겠죠? 퇴계선생님은 이미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아시고 登山이라 하지 않고 유산(遊山)이라 했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앞으로 登山이라 하지 마시고 遊山이라고 하실거죠? 讀書에 대해선 더 설명할 필요 없겠지요? "책 속에 삶의 지혜와 지식이 모두 들어 있으니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 곁에 올 생각말아라!" 선생은 讀書많큼 즐겁고 중요한 일이 없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책 속에 인생사 모든 섭리가 있고, 책 속에 자연의 천라만상의 이치가 들어 있으니, 책 읽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遊山과 讀書를 동격으로, 讀書많큼 즐겁고 의미있는 인생사가 "遊山"이었던게죠 [계단] "讀書는 유산(遊山)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글의 오리지날 원문을 직접 올려드리겠습니다 讀書如遊山 讀書人說遊山似 사람들은 글읽기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더니 今見遊山似讀書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구나 工力盡時元自下 공력을 다하면 스스로 내려오는 법 淺深得處摠由渠 얕고 깊음을 아는 것 모두가 자기에게 달려있네 坐看雲起因知妙 조용히 앉아 일어나는 구름을 보고 오묘함을 알고 行到源頭始覺初 발길이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시초를 깨닫네 - 퇴계 이황 선생님이 쓰신 "讀書如遊山"에서 [계단] 사계절이 뚜렸한 우리나라는 계절따라 금수강산이 화려한 변모를 합니다. 여러분 어느 산이던 산으로 아주 자주 "遊山" 떠나지 않을래요? 퇴계선생님은 어려서부터 허약하였지만 遊山으로 칠순까지 건강하게 사셨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장수이지요 확실히 뭘 아시는 분들은 遊山을 한다니까요~ 퇴계선생의 遊山계보는 미수 허목선생, 번암 채재공선생, 다산 정약용선생등으로 이어집니다 모두 산을 좋아하셔서 산행기를 많이 남기신 분들입니다 [계단 쉼터] 단양 丹陽은 鍊丹調陽에서 온 말로서 '연단鍊丹'은 神仙이 먹는 환약을 뜻하고, '조양調陽'은 빛이 골고루 따뜻하게 비춘다는 의미로 神仙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이랍니다 우리나라 각 고을이 어느 한곳 나름대로 특징없는 곳이 어디있겠습니까만, 단양 丹陽은 특히 충주호로 수몰되어 사라진 고을이며, 현재의 고을은 새로이 계획적으로 이전하여 만들어진 고을이라 어쩌면 新都市라고 해야 할듯합니다 [계단] '어의곡리'에서 오르는 코스엔 계단이 의외로 많고 길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계단만 오르면 거의 정상부에 가까이 가는 것이니 힘든 구간은 계단 오르는 일이라 할수도 있겠습니다 [소백산 능선] '등산'이 아니고 '계단 오르기'를 하고나면 바로 소백산 능선이 펼쳐집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 않됩니다. 여기서도 엄청 가야합니다. 여기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고, 식사시간 포함해서 앞으로도 1시간 정도 더 갑니다 [소백산 능선] 소백산 비로봉으로 가는 능선은 완만한 경사로 심하게 헐떡거리지는 않습니다 구경거리 없는 지루한 산길을 따라 갑니다 [국망봉 國亡峯] 지루한 능선길을 벗어나 시야가 트일쯤에 웅장한 산줄기가 장엄하게 다가 옵니다 바로 "白頭大幹"입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이 만든 "산경표"에 우리나라 골간을 이루는 핵심이 "白頭大幹"이라고 새로운 圖式으로 표기해 놨습니다. 요즘 국토지리원에서 펴낸 지도에는 "太白山脈"과 "小白山脈"으로 표기되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왼쪽 봉우리가 "국망봉 國亡峯"입니다. [소백산 정상부 이정표] 소백산은 한반도의 중심에 우뚝솟아 백두대간의 장대함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민족의 명산입니다 형제봉을 시작으로 신선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등 명봉들이 웅장함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북에서는 1970년 속리산, 1984년 월악산에 이어 1987년 세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입니다. 소백산의 사계는 봄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의 야생화, 만산홍엽의 가을단풍과 백색 설화가 만개한 정상 풍경은 겨울 산행의 극치를 이루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1,439m 비로봉 정상의 넓은 초지가 사시사철 장관을 이루어 한국의 알프스를 연상케 하며 1,349m 연화봉에 자리한 국립천문대는 우리나라 천문공학의 요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5월말에서 6월 초면 소백산과 단양군 일원에서 전국적인 축제인 철쭉향기 그윽한 "소백산 철쭉제"가 성대히 개최되고 있습니다 [소백산 정상부로 오르는 길] 이름만 듣고 "소백산"을 찾는 산객들이 타고온 관광버스가 죽령 옛길을 가득 메우지만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는 "소백산" 산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늙은 肉山이어서 생동감이 없이 펑퍼짐한 山勢가 夕陽 속으로 떠나가는 나그네같은 느낌을 주어 왠지 쓸쓸해 보여서입니다. [소백산 정상부] 소백산 비로봉 근처 정상부에 올랐습니다. 광활한 평전이 펼쳐집니다. 오로지 평전만..... [소백산 정상으로 가는 길] 우리 민족의 靈山은 白頭山입니다. 글자 그대로 머리가 하얀 산이라는 뜻인데 산정상부에는 나무가 없어 대머리같은 산이라는거죠?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白頭大幹은 太白山을 지나 이곳 小白山으로 옵니다 그리고 흘러 흘러 智異山으로 갑니다. 그래서 '지혜가 남다르게 뛰어나다'고 智異山이라 했는데, 智異山을 얼마 전까지 頭流山이라고 했지요 白'頭'가 흘러 와 생긴 산이라고 '頭'流山이라고 한것입니다 곧 白頭大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소백산 정상으로 가는 길] 백두산이 머리가 허옇다고 白頭山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쓴 이유는 小白山의 산마루가 나무 한포기 찾아 보기 힘든 민둥산이된 믿거나 말거나하는 전설이 있어 이해를 돕기 위해 白頭山-太白山-小白山-頭流山(智異山) 이야기를 한것입니다 "小白山" 정상부는 왜 민둥산일까? [소백산 산봉우리들] 천년 사직을 말아 먹고, 금은보화를 실은 우마차가 십리를 이루며,竹嶺을 넘어, 王建이 새로 세운 高麗의 首都 개성으로 항복하러 가는 新羅의 마지막 王 - 경순왕 현명한 王인지, 비굴한 王인지, 王建의 딸 낙랑공주를 마눌로 얻고 新羅를 넘겨 주지요 [국망봉과 백두대간] 앞에 보이는 국망봉은 한자로 國亡峯이라고 씁니다 新羅의 마지막 王 - 경순왕이 현명하던 비굴하던 王建이 새로 세운 高麗에 항복을 합니다. 얻은 것은 목숨을 부지하고, 王建의 딸 낙랑공주를 마눌로 얻은 것이지요 경순왕으로부터 세자 책봉을 받은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高麗에 항복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라를 왕건의 고려로부터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벌만 걸치고 亡國의 恨을 달래며 금강산으로 들어 들어갔습니다. 거지가 되어 삼베 옷을 걸쳤을 수도 있겠지만, 고려 군사들에게 체포될까봐 변장하기 위해 麻依를 입었다고 보는게 더 합당하겠습니다. 이 세자의 이름은 옛 프로레스링 선수 김일선수와 같은 "金一"이며, "마의태자"는 '삼베옷을 입은 태자'라고 붙여진 닉네임이지요. 麻依太子 그후 마의태자는 이곳 小白山 국망봉에 올라서 갈수없는 멀리 옛 신라의 도읍 서라벌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합니다 그래서 저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의 이름이 國亡峯이 되었다는데 麻依太子가 너무나도 슬피울어 뜨거운 눈물에 나무가 다 말라 죽어서 국망봉을 비롯한 소백산에는 나무가 자라지 아니하고 억새와 에델바이스등 목초만이 무성할 뿐이라고 옛부터 슬픈 내력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소백산 정상 - 비로봉] 白頭山이 머리가 벗겨져 붙여졌다면 小白山도 白頭山의 아우이거나 새끼인가 봅니다. 정상부에는 나무 찾아 보기 힘든 광활한 평전이 펼쳐지는데 보는 사람들에 따라 느껴지는 감상은 다르겠습니다. 저는 麻依太子의 전설 때문이 아니라도 왠지 아름답다기 보다는 황량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小白山을 夕陽 속으로 떠나는 나그네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서두에서 말했습니다 [비로봉]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 왔습니다. 정말 구경거리 없는 산행길이었습니다 이 봉우리만 넘으면 바로 내려 가야합니다. 하지만 저의 산행기가 아직 소백산을 찾아 보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오고 싶으세요? ㅎㅎ [비로봉 정상] 비로봉 정상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고, 공터 밖으로는 나가지 말라고 울타리를 쳐 놨습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돌무덤과 정상석이 서있습니다. 小白山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온 것입니다 [비로봉 정상석] 비로봉은 한자로 毘盧峯이라고 씁니다 옥편을 찾아 보면 毘 도울 비,盧 성 로(노)/목로 로(노), 峯 봉우리 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毘盧峯'을 한문의 뜻을 찾아 접근하려고하면 무슨 말인지 알수없습니다 왜냐하면 毘盧는 제가 저의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하는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글자"인데 외국어를 한자로 音譯한것이기 때문입니다. 毘盧비로자나 毘盧蔗那를 줄인 말인데 인도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로서 Vairocana를 中國語로 音譯한 것입니다. 毘盧蔗那의 중국 발음으로는 Vairocana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中國語로 音譯한 毘盧蔗那를 우리말로 그대로 音譯하여 '비로자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자나'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산스크리트語' Vairocana의 뜻을 알면 됩니다 Vairocana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佛經에서는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입니다. 불교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불교에서 최고의 부처로 "비로자나佛"을 꼽습니다. '아미타佛' '관세음佛' '약사여래佛'등과 함께 종파에 따라 최고로 모시는 부처라는 말입니다. 毘盧峯은 이런 배경을 가진 최고의 봉우리라는 의미로 붙여진듯합니다. 아시다시피 금강산의 최고봉도 毘盧峯입니다. 소백산의 비로봉과 같은 한자입니다. 참고로 치악산의 "비로봉"은 한자가 "飛盧峯"입니다. [비로봉 정상석과 이정표] "毘盧峯" 정상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어서 정상석이 두개있습니다 충북과 경북에서 각각 세워놨으니 한 걸음으로 兩道를 왕복 할수 있습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국망봉"] 麻依太子가 너무나도 슬피울어 뜨거운 눈물에 나무가 다 말라 죽어 저렇게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 "國亡峯" 넘어 "고치령"이 있는데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이 그곳에서 竹嶺까지 區間으로 끊어 종주를 하루에 하지요. "고치령"은 "단종복위운동"을 한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금성대군"의 밀사들이 오르내린 숨은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합니다. 이 복위운동이 수양대군에게 발각되어 금성대군 뿐만이 아니라 이 일대의 백성들까지 초죽음을 당해 영주가 피바다를 이루었답니다. 또한 "고치령"은 "태백산"과 "소백산"을 분리시켜 경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지요.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백두대간 "연화봉"] 白頭大幹이 장엄하게 뻗어있습니다. 제1연화봉, 연화봉, 제2연화봉(천문대)이 순서대로 누워있습니다. 저 산줄기를 따라 가면 竹嶺이 나옵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백두대간 "죽령"방향] 소백산 죽령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선생님과 쌍벽을 이룬 성리학의 대가 "주세붕선생"이 형조참판을 거쳐 호조참판으로 73세 되는 해에 드디어 병을 핑계로 은퇴 낙향하는 "이현보선생"과 죽령에서 조우하며 읊은 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현보선생이 먼저 환영 나온 주세붕선생에게 한수 날립니다 草草行裝白首郞(초초행장백수랑) 秋風匹馬嶺途長(추풍필마령도장) 莫言林下稀相見(막언림하희상견) 落葉歸根自是裳(낙엽귀근자족상) 초라한 행장에 흰 머리카락 휘날리는 사내가 가을바람 부는데 한 필의 말로 멀리 고개를 넘어 수풀 아래에서 서로가 드물게 만난 것에 대해 말하지 말라. 우리 인간들이 낙엽과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스스로 늘 그러한 것이니라. -이현보- 주세붕선생이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飄飄歸興 ?漁郞(표표귀흥진어랑) 直沂驪江玉帶長(직기려강옥대장) 今日竹領回首意(금일죽령회수의) 乾坤萬古是綱常(건곤만고시강상) 깃발을 나부끼면서 흥겨운 마음으로 돌아온 사내는 여강을 거슬러 긴 옥대를 찬 채 줏대 있게 똑바로 온 것이오. 오늘날 죽령으로 머리를 되돌린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옛날과 고금에서 늘 이렇게 변함없는 진리일 뿐이오. -주세붕-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지나온 "어의곡 등산로"] 지나온 '어의곡' 등산로가 서부영화 "O.K목장의 결투"의 O.K목장 같습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영주시 순흥면"] 이제 내려 가야할 영주시 순흥면 삼가리가 펼쳐집니다. 뭉게 구름이 피어 오르는 광경이 여름 날씨 같습니다 오르면 또 내려 가는것. 이제부터 하산합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하산길과 영주시 순흥면] 경북 영양 출신인 청록파 시인 "조지훈"선생은 처가가 이곳 영주여서 이곳에서 쓴 시가 있는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詩입니다. 別離 조지훈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 말 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 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님아…… 조지훈선생은 "향수"라는 詩를 쓴 "정지용선생님"이 등단시켰습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구요? ㅎㅎ "정지용선생님"이 저의 휘문고등학교 출신 선배이기도 하며, 또한 영어교사로도 재직하셔서 쪼끔 자랑겸 ...ㅎㅎ 4자 기수 선배님들은 '정지용선생님'에게서 수업 받던 시절을 잘 기억하시고 계셨는데 무척 엄하셨다고 하더군요. [하산하며 뒤 돌아 본 "비로봉"] 구경거리는 없고.... 국립공원 소백산엔 인공시설물만이 정상을 쳐받히고있고.... 그래서 "퇴계선생을 사랑한 여인 - 杜香"에 대해 얘기하며 산행기를 마치렵니다. 퇴계선생은 우리에게 근엄하고 학식이 풍부한 관료로 각인되 왔습니다. 그래서 퇴계선생의 "러브 스토리"를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퇴계선생을 퇴계선생이 죽을 때까지 사랑한 여인 - "두향" 죽을 때까지 "두향"을 그리워했던 퇴계 이황선생 로미오와 주리엣의 러브 스토리보다 더 찐한 감동을 주는 "두향 아씨"와 "퇴계선생"의 러브 스토리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로서 정비석선생이 쓴 "名妓列傳" "杜香편"에 나와있는 글을 요약하고 나름대로 쬐끔 해석을 덧붙여 전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주머니 속에 들어 오면 우리를 행복하게하고, 나가면 슬프게 하는게 있지요. 바로 "돈"입니다. 요즘 새로나온 만원짜리에는 '세종대왕'이 그려져 있지만, 舊券에는 퇴계 이황선생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그 둘레에 스무 송이의 매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매화를 관심있게 보신 분은 아마 없으실겁니다. 우리가 수없이 만지고 본 그 "돈"에 매화가 그려진 사연이......."두향 아씨"와 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그동안 "두향아씨"를 수없이 이미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산길] 조선조 중종 년 간에 단양에는 이름난 기생 '두향'이 있었답니다. 다섯 살 되면서 그 아비를 잃고, 열 살 되던 해에 그 어미마저 사별하자 그녀의 빼어난 자태를 아까워한 한 퇴기(退妓)에 의하여 길러지면서 기적에 오르게 됩니다. 몸매도 아름다웠거니와 거문고에 능하였으며 시문에도 능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특히 난(蘭)과 분매(盆梅-화분에 매화를 기름) 솜씨가 있었다고합니다 두향의 어미는 죽기 전에 화분 속에 매화 한 그루를 잘 길러 냈는데, 매년마다 그 분매에서 꽃이 피고 있었답니다. 두향은 그 어미가 죽자 기적에 오를 때까지 고이 잘 길러 냈다고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매화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고하네요. 전신응시명월(前身應是明月) 기생수도매화(幾生修到梅花)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이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하산길] 운명이 운명 다울려면 모티베이션이 있어야지요 때마침 듣자하니 단양의 제 15대 군수로 퇴계 이황선생이 부임한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때 이미 단양의 官妓가 되 있었던 두향은 퇴계라는 신임 군수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여 수소문하여 보았습니다. 약삭 빠르다고 해야겠죠? 그리곤 퇴계선생이 매화를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퇴계선생이 매화에 대해 쓴 詩는 118편이나 있는데 최초로 매화에 관헤 쓴 詩를 입수하여 음미해 봅니다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두향은 이 詩가 퇴계선생이 매화를 두고 읊은 詩이기는 하나 나라의 어지러움을 개탄하는 우국지정이 어린 詩임을 느낌니다. 비록 조정의 벼슬자리에 앉아 있으나, 바다같이 넓은 세상일이 좁은 연못 속에 뒤 엉겨 있는 듯, 어지럽고 산란함을 매화나무에 빗대어 읊은 시를 두고 두고 음미하였습니다 두향은 어느 사이 퇴계선생의 매화 시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하산하며 뒤 돌아 본 "비로봉"] 퇴계선생은 48세 되던 무신년(1542년) 정월에 단양군수로 부임하게됩니다. 운명적 만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당시 두향은 단양의 官妓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官妓로서 두향은 신임 군수 퇴계 이황을 가까이 모시게 됩니다. 두향은 사별하던 어미로부터 물려받아 그동안 애지중지 기르던 매화를 퇴계의 처소에 옮겨놓았습니다. 제가 생각 할때는 두향이가 약삭 빠른 잔머리를 돌린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때마침 퇴계가 단양으로 부임하던 시기는 이른봄이라 화분 속의 매화도 곱게 피어 은은한 향기를 내 뿜고 있었습니다.처소에 든 퇴계선생은 환하게 피어난 매화를 보고 반기는 듯 하였으나, 이내 곧 매화 분을 가져온 사람에게 돌려 줄 것을 명하였습니다. 이에대해 두향은 매화분에 관한 자초지종을 아뢰고, 6년전의 퇴계선생이 읊은 매화 시를 외우면서, 매화는 고상하고 아담하여 속기(俗氣)가 없고, 추운 때에 더욱 아름다우며, 호젓한 향기가 뛰어나고, 격조가 높으며, 운치가 남다르며, 뼈대는 말랐지만 정신이 맑고, 찬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면서도, 곧은 마음을 고치지 않기 때문에 이 매화꽃과 함께 심신의 안정을 되찾고, 선생께서 단양 고을을 잘 다스려 줄 것을 아뢰었습니다. 이 정도면 천하의 퇴계선생이라도 홀리지 않을수 없겠지요? 미모까지 갖추었으니.... [하산길] 퇴계가 두향의 말을 듣고 생각을 해보니, 두향의 속마음이 진실 된 듯 한데, 고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기위해 왔는데, 스스로가 백성으로부터 재물이나, 금전을 뇌물로 받는 것은 자기 스스로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 처소에 가져온 것을 차마 물리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두향레게 마음이 동해서 그랬는지는 현재로선 알수 없습니다. ㅎㅎ 왜냐하면 이 때에 퇴계선생은 첫 부인과 재취부인마저 사별하고, 아들도 이미 한 명이 유명을 달리한 때라, 인생의 깊은 고뇌와 함께 심신은 많이 쇠약하여 있었기때문입니다. 무척 외로웠던 퇴계선생. 그도 퇴계선생 이전에 男子이었기에..이겻이 중요하지요? ㅎㅎ ㅎㅎ이 때부터 두 사람은 시화(詩話)와 음률을 논하고, 지금의 단양팔경과 강선대를 거닐며 인생을 즐기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산길] 하지만 달콤한 사랑 뒤에는 반드시 애달픈 이별이 있는 법이지요 퇴계선생이 단양 군수로 부임한지 10개월만에 단양 땅을 떠나야만 할 일이 생깁니다. 그 해 10월에 퇴계선생의 친형인 '대헌공'이 직속상관인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해 옵니다. 형과 아우가 직속상하관계로 있으면 나라 일에 공평을 기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세인들로부터 오해를 받게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퇴계는 그 날로 사표를 제출합니다, 청렴 결백한 그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의 성품을 알아차린 조정에서는 그를 충청도가 아닌 경상도 풍기 군수로 임명하게됩니다. 이렇게 되어 퇴계선생과 두향은 애달픈 이별을 하게 되는거지요. 삼류 소설같다구요? ㅎㅎ 인간지사가 모두 그렇고 그런거 아닙니까? 퇴계선생은 단양을 떠나 풍기 군수로 옮겨가면서 두향으로부터 받은 靑梅 한 그루도 함께 가져가서 고향인 안동의 도산서원에 심었다고 합니다 한편 퇴계선생이 떠난 후 두향은 부유함과 호사스러움을 앞 새우는 시중잡배들과 어울리는 것이 단 10개월 동안이나마 모시던 그 어른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하고 아예 기생에서 물러 날 것을 결심하고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그 사연을 말하고 허락을 요청하였습니다. 신임 사또의 허락을 받아 기생에서 면천되어 물러난 두향은 오로지 퇴계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함께 노닐던 강변을 혼자서 거닐기도 하고, 수많은 사연들을 추억하면서 외롭게 살아갔습니다 [하산길] 헤어진지 어언 4년이 되는 어느 봄날에 문안 여쭈러 보낸 인편에 퇴계선생은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두향에게 보내주었습니다. 黃卷中間對聖賢(황군중간대성현) -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속식) -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햑요금탄절현) -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이 시문의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분명히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임이 분명합니다 [小白山 毘爐寺] 그 후 20여년이 흘러 갔습니다. 1570년 어느 겨울날 퇴계선생은 방안의 梅花을 가리키며 "매형(梅兄)에게 물 잘 주라"는 말을 남기고 임종하였습니다. 퇴계선생은 죽을 때까지 梅花,, 즉 두향을 그리워하며 잘 챙겨 달라고 부탁하며 갔습니다 두향은 퇴계선생의 부음을 예측하고 사흘을 걸어서 찾아갔지만 신분이 기생이라 드러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세 번 절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는 신변을 정리하고 시신은 강선대 아래 묻어달라는 마지막 유언과 함께 거문고 부여잡고 초혼가를 부르면서 부자탕을 마시고 세상을 하직합니다 두향杜香의 묘는 단양팔경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구담봉, 옥순봉' 근처 충주호 위에 떠있는 말목산 자락에서 퇴계선생과 노닐던 '강선대'가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현재 그녀의 墓에는 다음과 같은 詩碑가 있는데 조선 숙종때의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의 작품이라합니다 孤墳臨官道(고분임관도) - 외로운 무덤 하나 국도변에 있는데, 頹沙暎紅 (퇴사영홍악) - 거치른 모래 밭엔 꽃도 볽게 피었네. 杜香名盡時(두향명진시) - 두향의 이름이 사라질 때면, 仙臺石應落(선대석응낙) - 강선대 바윗돌도 사라지리라 [휴식] [뒷풀이] 이번 산행에는 집행부에서 특별히 간편 부폐를 차려 교우들을 즐겁게했습니다 이곳에는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 이렇게 상을 차렸답니다. [뒷풀이] 앞으로도 가능하면 이렇게 해주면 교우들이 더 좋아 할텐데...ㅎㅎ 經師易遇 경사이우 人師難逢 인사난봉 "글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쉬워도, 사람 만드는 인격이 높은 어진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 퇴계선생을 생각하며...............소백산 산행을 마침니다 [산행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道峰山 女性峰에서 晶巖교수님과 함께

 

 

 

 

 





 
             道峰山 山行記  
        정의공주묘-燕山君墓-
        우의동-圓通寺-牛耳巖-칼바위-五峰-女性峰-송추 
     
     [수유역 3번 출구]
     대전 충남대 의대 晶巖교수님이 도봉산 산행을 제안하시고 어려운 발걸음을 서울로 옮겼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또 지하철을 두번씩 환승하며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 오셨습니다
     지난 3월15일 계룡산 산행을 주관하여주시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서울의 진산 중에 하나인 "道峰山"에서 그날의 감흥을 한번더 함께 하시자고
     대전에서 서울로 오신것이었습니다
     특히, 雲山 김택근 詩人님이 가까우신 분과 함께 "도봉산 산행"에 함께하시며 
     대전에서 오신 晶巖교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산행 지도]
     
     [정의공주 묘]
     수유역에서 [130번 시내버스]를 타고 방학동에 있는 "燕山君 墓"를 먼저 찾아 갔습니다
     "燕山君 墓" 들어 가는 길가에는 "정의공주 墓"가 먼저 보였습니다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이며, 매우 똑똑한 여자였습니다.
     "정의공주 묘"에는 남편인 良孝 安孟聃 양효 안맹담의 묘가 함께 있습니다
         
          [良孝 安公 神道碑]
          良孝 安孟聃은 세종대왕의 사위이니 출중한 인물임에는 틀림없겠습니다
          초서를 잘 써 서예가로도 이름이 높았고 활도 잘쏘고 음악,의학등 다방면에 능통했다고 합니다
          하기사 그 정도 수준이 되니 왕의 사위가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양반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바로 酒님을 무지 좋아했다고합니다
          지나치게 술을 좋아한 안맹담.
          그래서 세종대왕이 '안맹담'과 함께 술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혼줄을 냈다고 할 정도였다네요
          그리고 처남이 되는 '수양대군'에 빌붙어 수양대군의 형인 "문종"의 아들인 "단종"을 죽이고,
          즉 조카를 삼촌이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사건에 적극 가담하여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으니, 처세술(?)도 있는 기회주의자로 볼수도 있겠습니다
     
     [정의공주 묘]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한글을 만든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지시해서 '집현전'에서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반대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집현전 학자들은 맹렬한 반대를 하였습니다
     小國인 朝鮮이 자기 글을 만들어 가지면 大國인 中國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므로 한글 창제를
     극렬히 반대한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반대를 하는 집현전 학자들을 감옥에 까지 보내며 반대 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직접 철저한 비공개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도운 사람은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인 "문종"과 둘째 아들 "수양대군", 그리고 둘째 딸 "정의공주"였습니다
     '정의공주'는 한글 창제의 한 주역이었으니 어찌 쉽게 잊고 살수있겠습니까?
     이곳 근처 창동에 "정의여자고등학교"가 있는데 혹시 "정의공주"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연산군 묘]
     지금까지 일반인들에겐 아득한 옛날의 전설처럼 되 버린 暴君 燕山君이 우리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고 은폐하고 있었던 "燕山君 墓"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暴君이던 聖君이던 우리의 역사 속에 있었던 王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燕山君 墓"를 찾아 보려고 나선것입니다
     정암교수님도 흔쾌히 수락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연산군 묘]
     '연산군 묘'는 '정의공주 묘' 바로 앞으로 난 골목으로 조금 들어 가면 나옵니다
      아파트 단지 한켠에 이런 王陵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이때까지 이곳에 "연산군 묘"가 있다는 사실을 제가 모르고 있었던 것도 놀랍습니다
      "연산군 묘"를 관람하는데  입장료는 없으며, 다만 방명록을 작성하면 되더군요.
     
     [연산군 묘]
     "연산군 묘"는 현재 봉분에 잔디를 입히고,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있었던 "정의공주 묘"와는 무척 대조적이었습니다
     비록 폐출된 王이지만 죽어서까지 어찌 공주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연산군 묘"는 방치되 왔었다는 증거이기도합니다
     王陵이라고도 못하고 오로지 라고 해야하는 기구한 운명을 자초한 燕山君
     "燕山君 墓"는 맨 위 좌측 봉분이며, 
     그 우측 옆에는 燕山君의 부인인 廢妃 "거창愼氏"의 묘가 있습니다
     
     [연산군 묘]
     朝鮮王朝 최초의 폐왕(廢王)인 燕山君은 王 대신에 王子君의 예우로 조성되었기에 
     곡장(曲墻)과 상석(上石),장명등(長明燈),망주석(望柱石),문인석(文人石)만으로 
     조촐하게 만들어져있다고 합니다.
     왼쪽이 '연산군 묘' , 오른 쪽은 부인 '거창신씨 묘'
     
     [연산군 묘]
     연산군의 부인인 '거창愼氏'는 아무리 어렵고 고달퍼도 지아비를 끝까지 섬기는 
     조강지처[糟糠之妻]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녹수"라는 창녀같은 여자의 치맛폭에서 온갖 쌕스로 노닥거리며 국정을 문란케하였는데도
     투기하지 아니하고 왕비로서 체통을 지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왕(廢王)이 된 暴君인 燕山君을 끝까지 모시고  살았으며, 
     燕山君이 죽고 난 다음, 燕山君은 유배지 강화도 교동(喬桐)에 비참하게 쓸쓸히 뭍혔는데 
     폐비가 된 거창愼氏부인이 중종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추어 달라고 하소연하여 
     묘를 이장하고 '王子의 묘'에 해당하는 수준까지 '墓'를 만들수 있게 되었다고합니다
          
          [연산군 묘비]
          "연산군 묘"에서 가장 처절한것은 碑石입니다.
          폐위된 王이었기에 봉분 앞의 비석 전면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만 
          쓰여있는데, 이 碑名을 보면 애처롭게 까지 느껴집니다. 
          에구~ 살아서 잘하지....
     
     [연산군 묘]
     '연산군 묘'의 뒷쪽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방학동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연산군 묘'는 쓸쓸히 역사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묘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 갑니다.
     
     [방학동 은행나무]
     燕山君 墓에서 바라보면 아파트 앞으로 거대한 나무가 한그루 서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을 자랑하는 860살 되는 나무랍니다
     
     [방학동 은행나무]
     
     [방학동 은행나무]
     은행나무 옆에는 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군요.
     
     [방학동 은행나무]
     은행나무 뒤로 三角山이 "三角"임을 확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망경대, 백운대, 인수봉.
     
     [우이동 버스 종점]
     '연산군 묘'에서 우이동 산행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한 정거장입니다
     그러나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함으로 걸어서 우이동 산행 들머리까지 오기엔 조금 멀어
     다시 버스를 타고 우이동 정거장으로 왔습니다
     오늘 올라야 하는 "牛耳巖"이 보입니다
     여기서 우이암까지는 약 2.5km정도이니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닙니다
  
     [우이암 이정표]
  
     [우이암 등산로]
     처음에는 완만한 경사로 워밍업을 하며 오릅니다
     
     [우이암 등산로]
     중간 중간 몇개의 암벽 오르막을 지나 갑니다
     "牛耳南稜線"을 따라 오르는 것입니다
     
     [방학동 갈림길]
     30분 정도 오르면 "방학동 등산로 갈림길"을 만납니다
                
               [방학동 갈림길 이정표]
               牛耳巖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 갑니다
     
     [圓通寺 갈림길]
     "방학동 갈림길"에서 조금 오르면 牛耳巖, 圓通寺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이 "우이남능선"을 따라 牛耳巖으로 직접 오르는 길이고,
     우측이 圓通寺를 경유하여 牛耳巖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하루 전날이므로 圓通寺를 구경하고 우이암으로 가려합니다
  
     [圓通寺 가는 길]
     평이한 등로를 따라 조금 갑니다
     
     [牛耳巖]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신록 사이로 牛耳巖이 보입니다.
     이 지역의 이름을 만든 牛耳巖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합니다
          
          [圓通寺]
          圓通寺가 城郭처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어서 올라 오라고 하는군요
          이 골자기가 "무수골"입니다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이야말로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고 하여 무수골 無愁골로
          이름 지어졌다는군요
     
     [圓通寺]
     원통사는 예로부터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잡은 수행기도처로 알려져 왔다고합니다. 
     조선초기의 무학대사를 비롯해서 근대에는 만공·동산·춘성스님 등 선지식이 
     이곳에 머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관음기도 도량으로도 유명하다는군요
     
     [圓通寺 앞 샘터]
     원통사 입구에는 샘터가 있으며 '감로수'라고하는데 水量이 풍부했습니다.
     암벽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곳에 풍부한 샘물이 솟아나니, 절터로는 안성맞춤이겠지요
     이곳에는 제가 본것만 두군데 샘물이 솟아났습니다
     물맛도 아주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이곳으로 가실 분들은 베낭이 무거우니 물을 조금만 준비하시고 이곳에서 보충하세요
     
     [圓通寺 입구]
     천년사찰인 원통사 입구는 일주문도 없고 범종루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圓通寺 입구에서 올려다 본 "牛耳巖"]
     원통사 옆에서 뒷쪽의 牛耳巖을 촬영했습니다.
     "소의 귀"를 닮아 "牛耳巖"이라 한다는데 저는 눈씻고 다시 봐도 "쇠귀"모양은 아니었고
     보시는바와 같이 틈실한 男根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男根 모양을 한 바위들이 옆에도 여럿 있습니다
     
     [圓通寺 凡鍾樓]
     신라 경문왕3년(863)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 고려 문종 7년 관월 운개 스님이 중창하였고 
     본전인 관음보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 건물로 불단에는 아미타여래상과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있고 불화는 아미타탱화가 모셔져 있고 
     신중탱화 1점과 소종 1점이 있다고합니다.
     뒤로 '우이암'이 절모한 조화를 이루며 서 있습니다
     
     [圓通寺 안에서 올려다 본 "牛耳巖"]
     원통사는 우이암 바로 아래에 지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奇岩怪石이 병풍을 두른듯 원통사를 감싸안고 있습니다.
     뒤의 바위들은 두꺼비, 학, 독수리, 거북등 108종류의 형상을 갖춘 바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데
     속세의 때를 벗지 못한 저는 "108"이라는 번뇌의 숫자와 동물형상과 물고기들의 모양이
     눈에 비쳐지지는 않지만 기암괴석들로 둘러 쌓인 광경은 아름답게 느껴 집니다
     숨은 그림찾기 해도 되겠습니다.
     
     [三聖閣 뒤의 奇岩怪石]
     하늘의 七星과 山의 山神, 홀로 천라만상을 깨우친 獨聖이 있다는 三聖閣.
     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神들을 절간에 모셔 놓은 것은 
     불교를 믿지않고 오리지날 토속 신앙을 가진 조선사람들 까지 끌어 들이기 위한 것이지요
     결국은 불교도 "돈"을 벌기 위해 고육지책을 쓴 것이라고 할수있습니다
     
     [나한전]
     원통사 좌측 위로 올라 가니 엄청난 바위 밑에 동굴이 있으며
     이 굴에 "나한전"이 있습니다.
     "나한"은 석가의 제자들이죠?
     특히 열여섯 제자를 "나한"이라하고 산스크리트語를 漢譯한것이고,
     다시 그 漢文을 韓譯한것이지요.
     
     [나한전 내부]
     궁금해서 '나한전' 안을 문을 열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키케한 향냄새와 습기로 숨쉬기도 힘들겠더군요.
     석가 제자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나한전 옆 "藥師殿"]
     藥師殿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곳이지요
     세상의 병을 모두 고쳐주는 부처입니다.
     하지만 곳곳에 "약사여래"를 모신 藥師殿이 수없이 있지만 아직도 병은 만연하고 있습니다
     
     [藥師殿 앞 "相公岩"]
     이곳이 어쩌면 원통사의 하일라이트하고 할수 있는 역사적 증거가 있는 곳입니다
     藥師殿 앞에 있는 바위에 "相公岩"이라고  새겨진 글자가 보이시지요?
     이 글자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의 석굴에서 기도를 많이 했다고하는데,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던 어느날 天上의 相公[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어
     이곳 藥師殿 앞 바위에 "相公岩"이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합니다
     한가지 배울 점은 "天上의 相公"이 옥황상제 밑에 있는 높은 벼슬의 정승을 의미한다는것..
     하나 배웠죠? ㅎㅎ
     
     [三聖閣]
     佛敎와는 전혀 무관한 神들을 모시는 三聖閣이 여느 절이나 맨 위에 있습니다
     원통사 삼성각은 주변 기암괴석들로 더욱 신비로워 보입니다.
     하늘의 七星과 山의 山神, 홀로 천라만상을 깨우친 獨聖이 
     곧 뛰어 나올듯합니다
  
     [牛耳巖 오르는 길]
     원통사 바로 뒤로 "牛耳巖" 오르는 등산로가 있더군요
     아주 짧은 거리에 있으므로 쉽게 오를수 있습니다
     
     [自然城門]
     "牛耳巖"으로 오르는 등로에는 대문같은 바위를 통과하여
     신성한 인물들만 오르라고하는듯합니다
     
     [牛耳巖]
     5분도 걸리지 않고 "牛耳巖" 밑으로 왔는데
     "牛耳巖"으로 불리워지는 이 바위는 원래 "관음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원래는 <觀音峯> 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개눈엔 똥만 보인다"는데.....제 눈엔 아무리 봐도 "쇠귀"나 '觀音峯' 같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X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여러분들도 X개 아닙니까? ㅎㅎ
     저걸 보고 어찌 "쇠귀 牛耳, 觀音峯"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옆에 서릿발 같은 핏줄까지....정말 뭇남성들이 부러워할 거시기 같고
     저걸 보는 여성들이 저걸 보고서도  성적 욕구가 살아 나지 않는 다면 .......
     평범한 인간이 아니겠지요? ㅎㅎ 石女
          
          [牛耳巖]
           우이암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원통사에서 바라 보는 우의암은 男子 거시기 같지만....
           가까이서 보니 한낱 암벽에 불과하네요
          
           [牛耳巖옆 바위]
           牛耳巖옆에는 조금 작은 거시기들이 몇개 있습니다
           나이에 따라 골라~~ 골라~~ ♪  
     
     [道峰主稜線]
     牛耳巖에서 아주 쬐끔 올라 오면 "우이남능선"과 "道峰主稜線"이 만나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이곳에서 우이동쪽으로는 "우이남능선"이며, '칼바위' '자운봉'까지는 "道峰主稜線"입니다
     백두대간의 한북정맥이 지나가는 마루금이기도 하며, 광주산맥을 이루는 주요 산줄기이기도합니다
     
     [道峰主稜線 이정표]
     이곳에서 '우이남능선'을 타고 바로 하산 할수도 있고, 
     제가 올라 올때처럼 원통사를 들려 우회해서 갈수도 있습니다
     
     [道峰主稜線]
     道峰主稜線은 山勢가 아주 얇은 마루금이 칼처럼 서있는 稜線입니다
     그러므로 기암괴석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牛耳巖]
     道峰主稜線에 올라와 牛耳巖을 내려다 봅니다.
     이곳에서는 또한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보여집니다.
     마음 속에 품었던 야릇한 욕망이 사라지고 "소의 귀"처럼 보이려합니다.
     에구 남자는 눈에 보이는 외모에 주로 욕망이 왔다 갔다 한다니까요~
     여성이 知德 아무리 높아도 외모에 더...........솔찍히 ㅎㅎ
     다른 분들도 저와 같지요?
     조물주는 절묘하게 인간을 만들어 놨습니다
     
     [道峰主稜線에서 바라 보는 道峰山 정상]
     道峰主稜線에 올라 오니 이제 시야가 확트이고 東西南北이 모두 조망됩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는 道峰山정상입니다.
     道峰山 정상은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 주봉, 칼바위로 화려한 자태를 뽐냅니다
     
     [道峰主稜線에서 바라 보는 五峰]
     道峰山의 三大 名所는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과 [五峰], [牛耳巖]이라 할수 있습니다
     "五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군요
  
     [通天門]
     道峰主稜線에는 돌문이 하나있습니다.
     사람들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지만 저는 通天門이라고 합니다
     "하늘로 통하는 門"
     어지러워 짜증나는 이 세상을 멀리하고 하늘로 올라 가는 門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버리고 평안한 곳으로 가는 門
     그리고 이 門을 통과함으로서 자신의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이 세상에 내려 갈수 있는 그런 門이기를 기대하는 門......
     
      [조망대]
     
     [牛耳巖]
     이제는 牛耳巖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보여집니다.
     
     [기암괴석]
     
     [수락산]
     노원구 뒤로 '수락산'이 보입니다.
     안개가 끼여 사진이 선명하지 못합니다
     
     [불암산]
     '수락산' 옆으로 '불암산'이 보입니다
     
     [三角山]
     北漢山의 本名 찾아주기 운동이 전개 되고 있습니다
     모두 동참하여 앞으로는 北漢山의 本名 인 "三角山"으로 불러 주시기 바람니다
     제가 자주 언급합니다만
     北漢山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입니다.
     "崇禮門"을 "南大門"이라고 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한강의 북쪽에 있다고 그냥 일반적으로 부르던 北漢山이라는 地名이 어느듯 고유명사화 되었습니다
     제발 "三角山"이라고 불러 주세요~~!! (이덕화)부탁해요~
     
     [道峰主稜線]
 
     燕山君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하고싶습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사육신'을 비롯한 수많은 충신들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
     불행은 여기서 부터 시작되지요
 
     
     [道峰主稜線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五峰]
 
     燕山君을 이야기 하려면  燕山君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燕山君의 아버지는 조선 제9대 왕인 "成宗"입니다.
     成宗은 수양대군 '세조'의 큰 아들 '덕종'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리고 예종의 양자로 들어 가지요
     成宗의 正妃는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恭惠王后)이고, 둘째 妃가 燕山君의 어머니가 되는
     윤기무의 딸인 "폐비 윤씨"입니다. 그러나 燕山君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우의정 윤호(尹壕)의 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어머니인줄 알았습니다.
     폐비가 되어 "폐비 윤씨"로 조선왕조실록을 피로 물들게 만듭니다.
     "폐비 윤씨"는 후에 "齊獻王后"로 연산군에 의해 추존됩니다
     "폐비 윤씨"의 본명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윤소화"라고 하는데.....글쎄요
     우리나라 역사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 "燕山君"
     燕山君을 이야기 하기 전에 "폐비 윤씨"가 된 齊獻王后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에 의해 暴君 "燕山君"이 잉태되니까요
 
     
     [道峰主稜線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道峰- 칼바위,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능을 '품을 회(懷)', '돌이킬 회(懷)'를 써서 회릉(懷陵)이라 한 것은 
     그리운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 다시 안기고 싶었던 사모곡이었을까? 
     새삼 연산군이 폭군 이전에 시인이었다는 기억을 懷陵회릉에서 곰곰 생각해 볼수있습니다. 
     "폐비 윤씨" 齊獻王后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청량리 지나 경희대가 있는 "회기동"이 생각납니다
     왜냐하면 그곳, 즉 경희대에 "폐비 윤씨" 齊獻王后의 陵이 있었고, 그 릉의 이름이 "懷陵"이었습니다.
     齊獻王后가 '폐비 윤씨"가 되고 릉 이름은 "懷墓"로 바뀝니다.
     그래서 동네 이름이 "懷墓洞 회묘동"이 되었는데 동네이름으로 좋지 않다고 후세 사람들이 "墓묘"를
     비슷한 한자 "基기"로 바꾸어 부르다가 이제는 완전히 한자가 틀리는 "회기동"이 되었답니다
     "폐비 윤씨" 齊獻王后의 墓는 고양시 서삼릉에 이장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五峰-칼바위 갈림길]
     道峰主稜線 길이 갈라지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五峯으로 바로 갈수 있으며
     직진을 하면 "칼바위"로 갑니다
     우리는 "칼바위"로 갔다가 "五峯"으로 갑니다
     
     [三角山]
 
     "폐비 윤씨" 齊獻王后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민요가수 김영임씨가 부른 "회심곡"이 생각 납니다.
     燕山君의 어머니 "폐비 윤씨" 齊獻王后를 기리며 부르는 노래가 '회심곡懷心曲'입니다.
     는 폐비 윤씨의 무덤 이름이 되는 마음에 품을 회懷, 돌이 킬 회懷입니다.
     恨많은 女人의 상징이라 할 "폐비 윤씨" 齊獻王后, 그리고 회릉(懷陵)
     母子가 모두 廢妃, 廢王이 되고 죽어서도 설움을 받는 비극의 주인공들입니다
 
     
     [三角山]
 
     成宗 성종 -
     수양대군 '세조'의 妃이고 연산군의 할머니인 정희왕후 윤씨와 
     어머니 소현황후(훗날 인수대비)한씨와 구 공신들과의 정치적 야합으로 13살에 탄생된 王이
     조선 9대 왕 成宗(자을산군)입니다.
     막강한 여성파워 앞에 제대로 자기의 정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조선 최대의 폐륜아 연산군을 만든 불행한 왕입니다.
     물론 역사적 평가는 聖君으로 자리 메김하고 있습니다만....
 
  
     [칼바위 가는 길]
 
     燕山君의 어머니 "폐비 윤씨" 齊獻王后는 "고부간의 갈등"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남편인 성종의 얼굴을 할키고..등등 이유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와의 "조선 최대의 고부간의 갈등"으로 희생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폐비 윤씨"의 아들 燕山君에 의해 복수의 피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도봉주능선에서 바라 보는 "五峰"]
 
     성종이 왕이었을 때를 "女人天下"라고들 하지요
     과부들의 천국이었지요.
     과부들이란 정희대비(세조妃), 인수대비(성종 어머니), 안순대비(예종의 계비) 세 과부를 지칭하는데
     정희대비만 빼고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 제헌왕후'와 이 과부들이 나이가 거의 같았습니다
     성종이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에 인수대비는 연산군의 친할머니이면서도 법적으로는 큰할머니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폐비 윤씨' 사이의 나이가 8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며,
     다른 대비들과는 나이가 같거나 오히려 며느리인 '폐비 윤씨'가 시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성종은 어머니 인수대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12살이나 위인 연상의 여인이자 
     집안이 별 볼일 없는 윤씨를 왕비로 책봉했고 그해 연산군이 탄생합니다. 
     정희대비, 인수대비, 안순대비의 세 과부 대비들의 비호 아래 성종의 여성 섭렵은 
     조선조 제왕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화려했습니다. 
     최고로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러니 일찍 죽지요 ㅎㅎ
     그래서 齊獻王后가 남편인 성종을 위하여 오죽했으면 옥체를 보존하라고 잔소리를 많이하고 
     급기야 부부싸움이 잦아 어느날 우연히도 成宗의 얼굴을 할키기까지 했겠습니까
     이 사건으로 꼬투리가 잡혀 齊獻王后는 廢妃가 되며 "폐비 윤씨"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힘이 되어줄 마땅한 배경이 없는 "齊獻王后 윤씨"는   
     명문가를 등에 업은 과부 여성들과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칼바위와 "쥐바위"]
     "쥐바위"를 자세히 봐 두세요. 아시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저 바위 위로 올라 갑니다
     우특이 "칼바위"인데, "한북정맥"이 五峰방향으로 가지 않고 道峰主稜線으로 
     꺽여지는 곳입니다.
 
     (이 당시에 "어우동"이 맹 활약하던 때이지요?
     본래 어우동(어우을동)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손자며느리입니다. 
     시문에 뛰어 났으나 너무 남자를 밝히는 호색여자로서
     남편에게 소박을 당한 후 당대의 한량들하고 한 세상 풍미하다 사형을 당한 조선의 옹녀이지요)
 
     
     [칼바위와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
     칼바위와 紫雲峰, 萬丈峰, 仙人峰이 道峰山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수락산]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수많은 영화로, 또한 드라마로 만들어져 모두다 알고 있는 얘기이리라. 
     성종이 가장 사랑한 여인이 '齊獻王后 폐비 윤씨'였으나 
     자신의 남편에 의해 죽음을 당한 '齊獻王后 폐비 윤씨'는 
     오직 한 남자의 사랑을 갈구했던 불행한 여인이었을 뿐입니다.
     12살이나 어린 아들같은 成宗을 사랑한 女人이었을 뿐입니다 
     성종이 소년 시절 12살이나 연상이었던 윤씨를 왕비로 책봉할 만큼 사랑한 것은 무엇일까? 
     소년 시절에 빠졌던 윤씨의 미모였을까? 
     아니면 절대권력을 가진 제왕이라 그런 나이 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일까. 
     21살에 청상과부가 된 시어머니 인수대비와 불과 8살의 차이에 시샘 당한 여자들의 다툼이었을까. 
     동갑내기 시어머니 안순대비의 질투 때문일까.
     여자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알수가 없습니다
 
     
     [칼바위 갈림길]
     "칼바위" 바로 밑에까지 왔습니다.
     여기서도 왼쪽으로 가면 "칼바위"를 오르지 않고 쉽게 "五峰"으로 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도봉역"이 나옵니다
     우리는 "칼바위-쥐바위"를 올랐다가 "五峰"으로 갑니다
  
     [칼바위 갈림길의 약도와 이정표]
 
     성종이 1494년 12월24일 창덕궁에서 38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자 
     29일 연산군이 20세의 젊은 왕으로 즉위합니다. 
     국장기간이던 1495년 3월16일 성종의 능에 묻을 지석(誌石)의 초안이 발단이 되어 
     연산군은 비로소 자신이 "폐비 윤씨"의 자식임을 알게 됩니다.
     지석誌石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생몰연도, 행적을 숨김없이 적어 상석과 능상 사이에 묻습니다.
     지석의 초안에서 폐비 윤씨의 아버지 윤기무의 이름이 드러나면서, 
     연산군은 생모로 알았던 '윤 호'의 딸 '정현왕후'의 아들이 아니고 
     '윤기무'의 딸 '폐비 윤씨'의 아들이 자신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로부터 피바람은 몰아쳤습니다.
     여러분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저 같아도 아마도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칼바위 오르는 계단]
     "칼바위"는 이름같이 매우 위험한 릿지구간입니다
     그래서 친절하게도 초보산객들을 위해 계단을 만들어 놨습니다
 
     연산군의 복수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 과정에 '폐비 윤씨'의 시어머니 '인수대비'는 손자에게 머리를 받혀 죽고 
     시어머니에게 쫓겨나 죽음을 당한 '폐비 윤씨'는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존되고 회릉으로 격상하게 됩니다. 
     이 덕분에 '폐비 윤씨'는 어느 왕릉 못지 않은 능상과 석물로 단장했으나, 
     고작 2년 후에 '중종반정'으로 아들이 쫓겨나고 비참하게 죽게되니 
     과연 '한삼의 피'에 서린 원한이 풀렸을지는 의문입니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 가장 많은 출연을 한 왕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모두 알만한 이야기이지만 나름대로 숨어 있는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읽을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칼바위에 붙어 피는 진달래]
          생명의 존귀함과 끈질김을 음미하면서 힘든 계단을 오릅니다
     
     [앞으로 가야 할 "五峰山과 五峰"]
     "칼바위"에 올라 가야할 "五峰山과 五峰"을 조망합니다
     능선의 오른쪽 앞에 있는 봉우리가 "五峰山"이고 뒷쪽이 "五峰"입니다.
     "五峰山과 五峰"은 구별해야합니다
     
     [칼바위에서 뒤 돌아 본 "道峰主稜線"과 "牛耳巖"]
     
     [칼바위에서 바라 보는 三角山과 "상장능선"]
     "한북정맥"이 "도봉주능선"과 "우이남능선"을 거쳐 "상장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한북정맥" 마루금은 "삼각산"으로 가지않고 "상장능선"으로 가 "솔고개"를 넘고
     예비군 훈련장 뒷산인 "노고산"을 지나 일산의 "고봉산"을 거쳐 파주의 "장명산"에서
     그 脈을 다합니다
     
     [쥐바위에서 바라보는 "칼바위"]
     700m가 넘는 곳이여서인지 아직도 진달래가 피어있습니다
     
     [쥐바위]
     
     [五峰 가는 길]
     晶巖교수님이 道峰山을 山行하시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晶巖교수님은 "산은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정도로 산을 사랑하시고 즐겨찾으시는
     山客이신데 스스로 닉네임을 "夕陽 나그네"라고 합니다.
     
     [五峰에서 바라 보는 "牛耳巖"]
     
     [五峰]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봉우리들입니다.
     암벽등반을 할수있는 장비를 갖춘 사람들에게만 개방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 산객들은 여기서 구경만 하고 가야합니다
       
     [五峰에서 바라 보는 "三角山"과 "상장능선"]
     가운데 "상장능선"이 "한북정맥"이 지나는 산줄기입니다.
     저의 "상장능선 산행기"도 있으니 참고 하시고 못 가보신 분들은 가 보세요~
     
      [五峰에서 바라 보는 "三角山"]
     
     [女性峰]
     五峰에서 女性峰까지는 가깝습니다.
     女性峰은 지나번 산행기에서 자세히 탐구하였기에 오늘은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아니 女性峰은 설명 할 필요도 없습니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누가 이름 지었는지는 몰라도 생각이 조금 부족한것같습니다
     이것은 女性峰이 아니고 女性의 거시기를 닮은 바위가 있는 봉우리입니다
     이 바위가 어떻게 女性을 통칭하는 봉우리가 될수있겠습니까
     女性身體의 일부일 뿐인데.....아마 말하기가 조금 곤란해서 그런게 아닌지...
          
          [女性峰]
          牛耳巖과 女性峰
          道峰山에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모든 여자분들도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 가더군요
     
     [女性峰에서 바라 보는 五峰]
     모든 인간들은 女性의 이곳으로 부터 나왔느니라~
     그래서 五峰이 주위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철저히 호위하고 있습니다
     
     [송추로 하산하는 중간에 뒤 돌아 본 "女性峰"]
  
     [송추로 하산 하는 길]
     
     [송추 산행 들머리겸 날머리]
     晶巖교수님이 대전에서 올라오셔서 함께한 산행이었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이렇게 가까운 곳인데 서울-대전이라는 거리적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이제서야 찾아 봤다는게 부끄러울 뿐이지만, 아름다운 "북한산국립공원"을
     늦게나마 만끽할수 있어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대전에서 서울 근교 산을 당일로 얼마던지 다닐수 있다는 융통성 있는 관념으로 바꾸시고
     앞으로 서울 근교 산들을 섭렵하실 태세로 귀향하셨습니다
     서울 주변의 산들이 남아 나지 않을수도 있겠습니다. 교수님이 모두 점령하시면...
     즐겁고 아름다운 산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행 지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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