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여행 1
한라산 山行記
성판악-진달래밭대피소-백록담-삼각봉대피소-관음사
'산을 사랑합니다'라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高校 校友會 山岳會 - 徽山會
2월의 산행지는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제주도와 한라산 산행...그리고 '올레'
저와 함께 제주도 구경 가 볼까요?
[인천항 연안여객 터미널] 오후 5시 45분
2010년 2월 5일(금) 맑음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가보는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오후 5시 4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큰 空航같은 배타는 곳이었습니다.
[인천항 연안여객 터미널]
배타는 항구는 비린내가 나는 좀 지저분한 곳으로 선입견이 있었는데
터미널 안도 고속버스터미널이나 공항같은 느낌을 주는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오하마나호] 오후 6시
200여명의 교우들이 함께하는데도 오후 5시 40분경에 집합하여
20분 정도에 모든 승선 절차를 마치고 아무른 잡음없이 승선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타고 가는 여객선은 "오하마나호"
길이가 141.5m, 선폭이 22m, 총톤수 6,322t
속도 21Knot (약40Km)
정원 945명, 콘테이너 180ea, 승용차 50대, 자동화물(5t) 40대
대단히 큰 선박입니다.
[승선] [에스컬레이트]
아파트 2층 이상 높이의 철계단을 올라 배 안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곤 바로 에스컬레이트로 갈아 탑니다.
[선실 로비]
에스컬레이트를 내리면 바로 '船室 로비'이며 이 선박의 중심부가 되겠습니다
이곳에서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아 지정된 船室로 들어 갑니다.
徽山會는 대부분 3층 3등실을 배정받았습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西海] 오후 6시 15분
船室에 짐을 풀고 인천항을 구경하기 위해 바로 갑판으로 나와 조망을 했습니다
西쪽 방향으로는 노을이 물들어 곧 어둠이 세상을 집어 삼킬듯 日沒이 그림같습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터미널]
엄청나게 큰 '오하마나호'에서 내려다 보는 여객터미널 방향으로는
이제 이 배가 오늘 마지막으로 출항하는 배인듯 거리는 쓸쓸해져 갑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월미도']
인천항에서 '월미도'를 바라봅니다.
원래는 섬이었지만 매립을 해서 육지와 붙어버린 월미도는 "月尾島"이지요
섬의 모양이 "반달 꼬리처럼 휘어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月尾島"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섬이기도 하지요.
동족상잔의 6.25전쟁 때에 "인천상륙작전"의 전초지여서, 수많은 함정에서 쏘아대는
함포 사격으로 "月尾島"는 초토화 되고, 그로 인해 섬의 높이가 1m 이상 깍였다고 하니
그 때의 상황을 직접보지 않고도 충분히 상상할수 있겠습니다.
[오하마나호에서 바라 보는 '연안 여객선들']
밤에는 운항을 하지 않는지 연안여객선들은 조용히 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있는듯합니다.
[3등 선실에서] 오후 6시 45분
3등 선실을 가득 메운 徽山會 교우들
어떤 분위기 였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겠습니까?
크게는 40년 이상씩 나이 차이가 나는 선후배들이 꽉찬 3등실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하고 있습니다.
[船室에서 건배]
하지만 밤새 항해를 하고 내일 한라산을 등반하려면 가볍게 한잔씩하고
충분한 수면이 필수이겠지요
각 기수, 가까운 기수들끼리 한잔씩 합니다.
'휘문여고생들'도 함께하며 분위기는 더욱 무르 익어 갑니다.
[船室에서 건배]
누가 누구인지는 저의 여행기에서 알릴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 徽山會 교우들입니다.
[船室에서 건배]
술판이 벌어져도 아주 절제된 행동으로 어떠한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船室에서 건배]
어휴~ 이 분들은 안주로 '회'를 미리 무지 많이 준비했군요.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동창들 끼리 확실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봅니다
저도 양주에 광어회를 대접 받았습니다.
[船室에서 건배]
여하튼 술을 준비하지 않은 기수는 없군요 
[인천대교] 저녁 7시 12분
船室에서 酒宴이 벌어 지고 있을 때 재빨리 갑판으로 나와 "인천대교"를 구경했습니다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하는 이런 광경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볼수 없습니다.
[인천대교] 저녁 7시 13분
총길이 21.38km
인천 송도와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며, 제2경인고속도로와 연결된다는
바다 위에 떠있는 우리나라 최장의 海橋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고 있습니다.
6,300톤급 '오하마나호'가 쉽게 다리 밑으로 통과하고 있으니 그 높이를 짐작할수 있겟지요?
[취침]
포로 수용소 같은 3등실입니다만......
착하기도 하지.... 한잔씩 걸친 교우들은 모두 한꺼번에 잠들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술에 취하면 여러 불상사가 일어 나는데 徽山會 교우들은 절대 예외이란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무지 착하지 않습니까? 취침!~하면 바로 잠니다..ㅎㅎ
특이한 것은 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술에 취해 잠들면 코 고는 소리가 진동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코 고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역시 선후배를 배려하는 마음 가짐을 가진 좋은 핵교 출신들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침식사] 오전 7시 5분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가니 이미 대부분 식사를 하고 나갔더군요
"오하마나호"의 메뉴는 오직 한가지이고 6,000원을 받았습니다.
6,000원 짜리 아침 식사는 정말 형편 없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미역국에 밥, 반찬은 길거리 포차보다 못합니다.
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침을 때우고....
(다음에 가실 분들은 도시락을 준비해 가세요~)
[黎明] 오전 7시 15분
이 배가 제주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한라산을 올라야 하기에 꾸역꾸역 식사를 하고
갑판으로 나오니 하늘에는 반달이 휘영청 떠있고, 무인도와 고기잡이 배들의
불빛이 간혹 황량한 바다를 비춥니다.
이렇게 조용한 아침 바다를 보신적 있으십니까?
[오하마나호]
"오하마나호" 이름이 특이 합니다.
'오하마나'는 깅상도 사투리에서 연유했다는 군요
깅상도 말로 "오!~ 하마나 왔나!~"에서 연유한다는데,
표준어로 하자면 "아니 벌써 왔나!~"라는 뜻이 되겠지요?
어느 깅상도 할머니가 이 배를 타고 감탄사로 한 말이 배 이름이 되었답니다.
독특하고 특징있게 지은 대표적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日出과 제주도] 7시 46분
아!~ 이런 광경은 착한 일을 무척 많이한 사람들이 아니곤 볼수 없는 광경이리라~ ㅎㅎ
바람 한점없는 바다!~
떠 오르는 태양!~
비교적 쾌청한 날씨~
포근한 기온~
그리고 제주도 濟州島 !!~~
"제주도"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나요?
"濟"는 "물을 건너간다"라는 뜻을 가진 "濟"입니다.
"州"는 "고을"이라는 뜻이지요. 좀 큰 고을을 주로 의미합니다
"물 건너 섬 고을"이란 뜻이 "濟州島"이지요
앞에 보이는 제주도를 바라 보니 정말 "물 건너 섬 고을"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船上에서 바라보는 제주도] 7시 55분
한라산은 아직 자신의 秘景을 감추고 있습니다
땀 흘리고 올라와야 보여 주겠다고 하는 듯 합니다.
제주항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濟州道와 濟州島는 구별해야지요
濟州道는 행정구역 표시이므로 제주섬은 濟州島라 해야 합니다
[제주항] 오전 8시 23분
濟州港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배는 다른 화물선들 때문에 약30분 정도 늦게 도착되었다고 합니다.
[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오전 8시 32분 오전 8시 45분
한라산을 오르려면 좀 서둘러야 하는데
'오하마나호'가 30분 정도 지연되었는데도 주차장에서 버스 나눠 타는데 또 지체되고...
성판악에서도 신속치 못한 진행으로 또 조금 지체 되어
한라산 산행을 하는데 시간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玉에 티"였습니다.
[성판악] 오전 9시 32분
해발 750m 성판악 고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城板岳"은 제주도 5.16도로가 지나 가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름"으로
한라산 백록담으로 가는 대표적 등산로 입구 입니다.
[성판악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한라산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멀리서 우리를 부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城板岳"이라는 "오름"입니다.
높이는 1,215m
"城板岳"은 한라산 동쪽 산록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성화산'이라 합니다.
'단성화산'은 일회의 분화활동을 통하여 형성되는 소형 화산체로서 제주에선 '오름'으로 불립니다.
"城板岳"은 산 중턱에 암벽이 널 모양으로 둘려 있는 것이 성벽처럼 보이므로
"성널오름", 또는 한자어로는 "城板岳"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성판악 산행 들머리] 9시 45분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미 올라 가 들머리는 한산했습니다.
시간이 없는 데 이제와서 인원 파악을 한다는둥... '玉에 티'가 있었습니다
[한라산 등산 안내도] 9시 50분
이곳에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12시 이전에 통과하지 않으면 백록담 출입을 금지 한답니다
그리고 거리가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7.3km이기 때문에 2시간 이내에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둘러야 하는데 부두에서, 그리고 이곳에서 30분 정도 진행이 늦어져 마음에 큰 부담이 됩니다
[登路]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백록담'을 오르지 못하고 간다는 건 치욕이기에
한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다행이 登路는 평지와 다름없을 정도로 완만하여 빠른 걸음으로 오를수 있었습니다
[속박대피소] 오전 10시 48분
'성판악 휴게소'에서 약1시간 정도 거의 평지를 올라 가니 첫번째 대피소가 나옵니다
화장실이 많이 있는 중간 쉼터였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르는 길]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등산이 아니라 트렉킹이었습니다.
눈밭을 오르는 기분은 상쾌해 바쁜 걸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르는 길]
오로지 "백록담"을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빠른 걸음을 합니다.
12시~! 12시 이전에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해야 한다~!!
이제 1.2km 남았군요. 빠른 진행입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르는 길]
'진달래밭 대피소'가 가까워 오니 멀리 한라산 정상이 조금 보이기 시작 합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오전 11시 50분
휴~ 11시 50분에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성판악 휴게소'에서 약2시간만에 7.3km를 주파했습니다.
다른 교우들도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더군요..ㅎㅎ
아무리 평이한 코스라 해도 이렇게 서두루며 산행하기는 처음이라고 투덜대며...
['진달래밭 대피소' 통과] 11시 53분
다른 구경 할 틈도 없이 '진달래밭 검문소'를 우선 통과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백록담"까지 1시 30분 이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시 "백록담" 출입을 못하게 한다고 빨리 올라 가라고 방송을 합니다.
이래 저래 쪼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두와 성판악휴게소에서 지체 되었던 30분이 더욱 아까웠습니다.
30분만 더 있었어도 이렇게 서두러지는 않았을 텐데....
[백록담 오르는 길]
해발 1,600m 쯤 오르니 다소 경사가 가파라집니다.
"성판악"의 해발이 약750m정도 이나 거리가 길어 아주 완만한 오름길을 올랐는데
이제부터는 제법 가파라지기 시작합니다.
[백록담 登路에서 뒤돌아 보니...] 12시 40분
뒤돌아 보니 어느듯 많이 올랐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최고 입니다. 가시거리가 제주도 전역을 카바합니다.
[백록담 오르는 길]
해발 1,800m 정도에 오르니 한라산의 정상이 확연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해발 1,800m] 오후 1시 3분
한라산의 높이가 1,950m이니 많이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산이나 그렇듯 지금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백록담 오르는 길]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이렇게 행렬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20여년만에 새로이 개방했다는 "돈내코 코스"로 간 산객들이 많아서
이곳 "성판악 코스"가 비교적 한산해 졌다는 것이 이 정도 이랍니다.
그러니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산객들이 한라산으로 등반을 했는지 짐작할수 있겠지요.
딴에는 산꾼이라고 하는 필자 '파란문'이 한라산을 오늘 처음 오르니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오히려 늦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많은 산객들로 한라산은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백록담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보니....]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들 .....
해발 1,800m 이상에는 나무가 전혀 자라지 못하는데
그 빈 자리를 사람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한라산 정상] 오후 1시 23분
드디어 한라산 정상이 보입니다.
앞에 보이는 집이 정상관리사무소이고 주변으로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한라산 정상의 인파]
성판악 휴게소에서 약3시간 30분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한라산 정상의 인파]
아직도 올라 오는 산객들이 많습니다.
수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무한대로 뻗어 갑니다.
[한라산 정상의 인파]
엄청나지요? ㅎㅎ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올라 한라산의 높이가 좀 낮아 졌을거라고 할 정도
한라산 정상에는 출입금지 구역이 대부분이어서 오로지 동쪽 벽면 윗쪽 이곳만이
산객들이 있을수 있는 좁은 구역이라 더욱 번잡합니다.
[백록담 남벽]
백록담의 남쪽 돌출 암석들이 화산 폭발 때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대변하고 있습니다
[백록담] 오후 1시 30분
아!~ 백록담 白鹿潭
예부터 제주지역 사람들은 한라산의 백록담에 산다는 백록白鹿은 神仙이 타는 동물이라고 믿었답니다.
한라산은 원래 神仙이 놀던 산이고, 神仙들은 '흰 사슴', 곧 백록白鹿을 타고 구경을 다니며
정상에 있는 백록담의 맑은 물을 '흰 사슴'에게 먹인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白鹿潭의 이름은 이 白鹿, 즉 "흰 사슴"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입니다.
[백록담 동북벽]
백록담을 에워 싸고 있는 벽들 중에 가장 높은 정상이라 생각됩니다.
[백록담 동북벽에서 보는 '백록담']
지금으로부터 약250만년전
그러니까 "제4기 플라이스토세"시대인 신생대에 폭발했다는 한라산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高麗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한라산에서 크고 작은 화산이 분출되었다고
『고려사』『동국여지승람』『조선왕조실록』에 화산폭발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옛날이 아닌 고려시대 목종 5년(1002년)과 10년(1007년)에 있었으니,
한라산은 아직도 '휴화산'인 것입니다.
"고려사"에 나오는 화산폭발에 대한 원문
穆宗 五年六月 耽羅山 開四孔 赤水湧出 五日 而止
(목종 5년 6월,탐라산에 네 개의 구멍이 열리고 붉은 물이 샘솟았는데 5일만에 멈추었다.)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 오후 1시 40분
"詩人世界"라는 季間誌에서 한국의 시인 109명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설문의 주제는“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詩句”를 하나씩 꼽아달라고 주문했답니다
그런데 뽑힌 詩句중에 저희 학교 대선배님이자 영어교사였던 "정지용선배님"의 詩句가 보여
메모를 해 뒀었는데 그 詩의 제목이 "白鹿潭"이었고 이 기회에 소개하게되어 기쁩니다.
[백록담 동북 방향에서 보는 '백록담']
우리나라 최초의 新詩중에 하나인 정지용선생님의 "백록담"이라는 詩의 全文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백록담(白鹿潭)
정지용
- 한라산 소묘
1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 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尺) 위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 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매 - 움매 -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덩쿨 기어간 흰돌배기 꼬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避)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이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색이며 취(醉)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어 산맥 위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어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백록담 동북벽에 있는 용처럼 생긴 용암]
정지용선생은 휘문고보가 校費로 일본 도샤시대학 영문과로 유학을 보낸 수재였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몇년간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셨고,
40회대 기수 선배님들은 직접 수업을 받으셨다고 술회하고 계십니다.
그 이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서울대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화려한 경력을 쌓지요
하지만 6.25 때 월북인지 납북인지....이로써 소식이 끊깁니다.
정지용詩人이라고 하면 모두 "향수 鄕愁"를 먼저 떠 올릴것입니다
노래가 워낙 유명해져 정지용선생의 대표작이 "향수 鄕愁"라고 생각 할것입니다.
그러나 정지용선생이 가장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것은 위에서 보여드린 "백록담"이었습니다.
그래서 펴낸 詩集 이름도 "백록담"이었던 것입니다.
[제주시 전경]
날씨가 좋아 선명한 제주시를 볼수 있었습니다
카메라가 디지털이라 잘 나오지 않지만 멀리 전라남도 "추자도"가 어렴풋하군요
날씨가 더 좋으면 전라도 땅끝 마을까지도 보인다는데.....
[개미목]
관음사로 내려 가는 탐라계곡 왼쪽 위로는 "개미의 목"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능선이 있습니다.
지도에 따라서는 "장구목"이라고도 하더군요. 개미나 장구나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미목 능선"아래에는 雪面 등반 연습을 하는 산객들이 많이 있습니다
[백록담 북벽]
정지용선생의 "백록담 白鹿潭"이라는 詩는 우리나라 현대문학을 여는 新詩입니다.
漢詩의 틀을 깨고 새롭게 등장한 최남선의 "海에게서 소년에게"등의 新詩등과 함께
등장하는 詩이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꼭 이야기 하고 싶었던 정지용선생의 詩 "白鹿潭"을 이제부터 감상 해 보겠습니다
저는 시인도 문학 평론가도 아니며 학자도 아닙니다
정지용선생을 대선배로서만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너무 좋아 하기 때문에 감상문을 씁니다
세상살이 속에 묻어있는 그들의 체취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느끼고 해석하고 평가하고...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인건 다 이해하는 바이시죠? ㅎㅎ
시집 "白鹿潭"은 첫번째 시집을 발간하고 여섯해 후에 발표됩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 시집 "白鹿潭"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학의 핵심이라 할 언어의 조형성(造形性)을 그것대로 견지하면서도
감각의 놀이를 넘어서 산인(散人)으로서의 어떤 달관을 품위 있게 드러내고 있다"
휘문고보 출신 또 한분의 대선배 김영랑 시인, '모란이 피기 까지는...'
정지용선배의 시문학파 한해 후배 김영랑선배의 시가 순수언어의 音樂이었다면,
정지용선배의 시는 언어의 美術, 곧 이미지의 織組였다고 합니다.
시에 대한 이 두분 태도 차이는 그들의 언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수 있습니다.
김영랑선배가 영어나 한자어를 극도로 절제하며 고유어 한글의 교향악을 만들어냈던 데 비해,
정지용선배는 뉘앙스의 섬세함을 위해서라면 어휘의 본적지를 따지지 않았다합니다.
[하산길과 제주시]
이제부터 "백록담"이란 詩를 한줄 한줄 감상해 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감상은 감상하는 자의 자유이니 잘잘못이 있더라도 따지지 맙시다
1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 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우선 이詩는 한라산 백록담을 등산하는 과정을 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처음으로 등산을 하는 듯한 정지용 선배는 산행이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향해 오르며 힘겨운 육체적 피로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듯합니다
"뻐꾹채"는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힘들어서 허리가 꾸부러지니 키가 작아지는 것을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모가지가 없고..나중엔 얼굴만 갸웃』라고 합니다. ㅎㅎ
힘들어 하는 체력을 정말 절묘하게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한라산 정상부근에 부는 바람이 아주 차거워도 한여름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듯 땀을 흘린다는 듯...
그러면서도『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 든다』로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드는지 알려 줍니다. 머리가 어지러워 하늘에 별이 오락가락한다는..ㅎㅎ
하지만 정신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동경은 남겨 두는 듯 합니다
시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고조되는 욕망과는 달리 그의 육체가 소진됐다는 것은 시적인 자기 자신과
한라산 백록담의 자연이 일체화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지며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느낄수 있습니다
한라산 절정 근처의 자연 풍경을 절묘하게 관찰하여 교묘하게 자신의 체력을 묘사했다고 감상합니다
[백록담 서북벽]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조금 쉬며 오르니 피곤했던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다시 오를수 있음을 말하는 듯 합니다
이런 것을 그는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라고
표현했으니 저같은 놈도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巖古蘭'은 암벽 사이에서 자라는 한약재료로 쓰이는 보양강장재 蘭이라고 하지요?
['용진각 대피소'로 하산하는 길] 오후 2시 33분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인간의 근원적 본질을 통찰하는 듯 합니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즉 인간의 생노병사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뜻이며
누구나 늙는 것인데...등산을 하며 힘들어 헥헥거린다고 챙피 할것까지는 없다는 듯...
산을 오르며 무척 힘들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니 어떠냐하는 표현인듯 합니다
[개미목 능선]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이 행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이 詩가 현대시인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 앞에서도 언급한 "시인세계"라는 계간지에서
『현역시인 109명이 선정한 최고의 詩句-"이 詩句 하나에 ‘감전’..난 죽었고 다시 태어났네!』라는
詩句중에 자랑스런 정지용선배님의 詩 "白鹿潭"의 이 4행의 詩句가 선정되었답니다. 짝짝짝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라는
詩句를 읽고 현대시인들이 모두 '전기에 감전된듯 죽었다 깨어 났다'고 할 정도 였으니
이 표현을 음미해 보세요. 백록담을 향해 오르다가 길섶 모퉁이에서 외로이 피어있는 도체비꽃이
얼마나 외롭게 보였으면 이렇게 표현 해야했을까요.
쓸쓸하고 황량하고 으시시한 계곡에 피어 있는 도체비꽃을 보지 않아도 훤하게 보는 듯 합니다
[개미목 능선 밑에서 雪面훈련중인 알피니스트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尺) 위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 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드디어 백록담 정상에 오릅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겠습니까. 우리네 등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공감할것입니다
정상에 오른 안도와 평안함을 자유롭게 뛰어 노니는 소와 말들을 인용하는 듯 합니다
목장이 등장하는 걸로 보아 정지용선배는 아마도 "성판악 코스"로 오르지 않고,
"돈내코 코스"로 등산을 한듯하지요?
[용진각 대피소] 오후 2시 56분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매 - 움매 -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앞에서도 언급했드시 아마도 정지용선생님은 등산이 이번이 처음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첫 새끼를 낳느라 몹시 혼이 났다고 한듯합니다.
힘들어서 다시는 등산 가지 않을려는 듯 한데....ㅎㅎ
정말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6행을 읽어 보시고 또 읽어 보세요
산 정상을 오르면 다시 내려 가야 한다는 이치를
소와 말들의 어미와 새끼의 헤어짐으로 표현 한듯 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사 이별의 연속, 즉 下山을 무척이나 아쉬워 하는 듯 합니다
오를 때 아무리 힘들어도 오르고 나면 내려 가기 싫은게 등산이지요
[용진각 대피소 터]
[용진각 대피소 터 안내]
불과 3년전 태풍 "나리"가 용진각 대피소를 덮쳐 사라지게 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 계곡에 "용진굴"이 있어 "용진각"이 되었다지요
[다리] 오후 3시
"용진각 대피소" 바로 아래에 있는 다리입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덩쿨 기어간 흰돌배기 꼬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避)하지 않는다.
산을 올라 올때는 힘이 들어 모든 자연이 4행에서 보듯 외롭고 괴롭고 황폐하게 보였는데
내려 갈때는 힘이 들지 않으니 모든 자연이 아름답고 풍요롭고 즐거웁게 보이는 듯 합니다
자연에 도취되 걷다가 '알바'도 하고...ㅎㅎ
하여튼 한라산의 자생 식물들에 대한 고찰도 상당한듯합니다.
[다리에서 뒤돌아 본 "왕관릉"]
저 위에 보이는 오름은 ‘왕관릉’ 또는 ‘왕관바위’라 한답니다.
그러나 옛 지도에는 ‘구봉암(九峯岩)’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본래 ‘아홉 개의 바위 봉우리’라는 뜻으로 쓴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은 그 형상이 왕관과 같다고 하여 ‘왕관바위’라 부르며,
저 일대가 능선을 이루고 있어서 왕관릉(王冠陵)이라 하고 있답니다.
[삼각봉 대피소로 가는 길]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이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색이며 취(醉)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어 산맥 위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어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백록담에 비친 백록담 주위의 주변 경관들, 즉 산봉우리들의 모습을 절묘한 필치로 그리며
소나기에 젖어 찬란한 무지개를 만나며 정신의 상승과 함께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 하는 듯 합니다
[삼각봉 대피소] 3시 11분
9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백록담'에서 자족한 상태에 취해 세상과 현실의 모든 욕망을 망각하고,
자연과 완전한 일체를 이룬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상에 몰입하여 주객합일의 경지를 이룬 동양 사상의 본질이겠습니다.
청정한 백록담에서 자연과의 완전한 동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삼각봉]
詩로 표현하는 이렇게 멋진 산행기는 이 세상에 없다고 저는 느낍니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이 산행기 같은 詩 - 정말 독특하죠?
이런 형태로 쓰여진 詩는 이 詩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래서 이 詩를 제가 좋아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저 같은 놈은 정말 뭐라고 평할수 없습니다만,
山行을 하는 과정을 산문같은 詩로 쓰셨기 때문입니다
산꾼들은 꼭 기억해 둬야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詩라 여겨지지않습니까?
[삼각봉 대피소에서 올다 본 '백록담']
'삼각봉 대피소'에서 바라보는 백록담 정상부는 이별을 고합니다.
이 계곡이 탐라계곡이며 관음사 등산코스이기도 합니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탐라계곡 대피소로 가는 길]
삼각봉 대피소에서도 부지런히 내려 가야합니다.
하산하는 일이 한라산을 오르는 일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탐라계곡 대피소] 오후 4시 10분
'삼각봉 대피소'에서 약1시간 정도 내려 가니 "탐라계곡 대피소"가 나왔습니다
대피소에는 아무것도 없고, 주변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탐라계곡 대피소에서 '구린굴' 가는 길]
하산하는 거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구린굴 가는 길]
탐라계곡을 지나 "구린굴" 가는 길
[구린굴 전망대] 오후 4시 51분
'탐라계곡 대피소"에서 아주 빠른 걸음으로 약40분 정도 내려 가니
"구린굴 전망대"가 나옵니다.
[구린굴]
"구린굴"의 길이는 442m라고 하네요
옛날에 얼음 창고로 사용했다는 안내는 다음 사진 속의 안내를 참고하세요
[구린굴 안내판]
[관음사 계곡]
부지런히 내려와야 합니다.
관음사 하산코스는 거리가 길고 경사가 심해 어두워지면 곤란하겠더군요
[관음사 주차장]
드디어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관음사 주차장에 왔습니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는 등산코스로는 평이한 코스인데,
오늘은 시간에 쫏껴 호덜갑을 떨었습니다
[관음사 주차장] 오후 5시 12분
총 산행 거리 : 18.3km
성판악-백록담 9.6km
백록담-관음사 8.7km
총 산행 시간 : 약7시간 20분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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