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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6길 거무내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6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6길 구글어스' 실트랙]                         
  <평해길6코스>는 <양평역>에서 출발하여 <남한강변>을 따라 <흑천-남한강 합수부>에 설치된 <현덕교>를
  경유하여 <흑천 제방길>을 따라 <원덕역>으로 가고, 다시 <흑천>을 따라 <용문역>까지 총 17.7km를 갑니다.
  이번 코스는 대체로 <흑천>을 따라 걷는 코스여서 <흑천>의 지역 방언인 <거무내 길>로 명명된듯 합니다.
  또한 이번 구간을 "시간이 머무른 계절의 정취가 시작되는 낭만의 길"이라고 소개하고 있더군요.


  ['양평역']                  10:42          
  2021년 5월 12일 (수)  대체로 맑음                          
  <양평역>에서 <평해길 제6길 거무내길>을 출발합니다.


  ['양평역' 앞] 

  ['안내도']                
  <양평역 1번출입구> 앞에 <평해길>과 <양평물소리길> 안내판이 경쟁적으로 설치되 있는데
  이번 구간은 대부분 <물소리길>과 <평해길>이 동행하더군요.


  ['양평시장' 가는 길]                         
  <양평역1번출입구>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양평시장>으로 가면


  ['양평시장 입구']                  10:45              
  "양평물맑은시장"이라고 이름을 예쁘게 바꾼 <양평시장>의 [1번 gate]를 만납니다.
  <평해길>은 시장 안으로 시장을 둘러보며 물건도 좀 사며 가라고 하는군요.



  ['양평시장']                  
  오늘은 장날도 아니고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의 왕래는 뜸하군요.
  저는 커피점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아이스' 한잔 사서 먹으며 시장 구경값으로 대체했습니다. ㅎㅎ



  ['양평회전사거리']                 10:52           
  <양평시장>을 벗어나면 <양평회전사거리>를 만나 <양평대교>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고


  ['양평대교' 사거리]                    10:55           
  그러면 <양평대교> 앞 회전사거리를 만나는데, 
  <평해길>은 <양평대교 입구> 우측 계단으로 내려 가라고 합니다.
  화살표로 표기한 계단으로 가면...


  ['양평대교' 밑으로 내려 가는 길]               10:57      
  <평해길>은 <양평대교> 아래로 내려 가라고 하는데, 공사중이어서 통행금지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언제 또 다시 올까 싶어 금줄을 넘어 내려 가니 공사하는 곳은 없었는데도 금지를 시켜놨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다리 밑으로 가지않고 앞에 보이는 <갈산>으로 직접 가도 아무 후회없는 곳이더군요.


  ['양근나루' 조망]                     
  여하튼 금줄을 넘어 다리 밑으로 내려 갔습니다만,
  <양평대교> 밑으로 길을 만든 이유가 <양근나루>를 구경하라고 한듯한데
  이유를 모르고 가면 편한 길 놔두고 뺑뺑이를 돌린다는 소릴 들을수 있는 듯...
  "갈산 葛山 64.5m"은 <양근나루>의 상징같은 조그마한 동산이기도 하지만
  <갈산면>→<양근면>→<양평군>으로 지명이 바뀌는 토대가 되는 의미있는 산이랍니다.


  ['갈산공원' 입구]                10:59       
  <갈산공원> 입구에는 "양근나루 표지석"이 다리가 없던 옛날을 회상하며 서 있는데
  <서울 마포나루>에서 실려온 새우젓 소금 등 생필품들이 하역되어 내륙 곳곳으로 팔려 나가는 곳이었다고


  ['반달과 토끼' 조형물]                11:01       
  <갈산>과 <갈산 주변>에 <양평>을 대표하는 "갈산공원-생활체육시설"을 조성했답니다
  '반달과 토끼'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키로십자가' 조망]                 11:02     
  무심히 지나면 볼수 없는 "키로십자가"가 접근이 어려운 곳에 설치되 있습니다.
  아마도 <양평>이 카도릭 <권철신 권일신 형제>들의 고향이라 설치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키로"는 영어 스펠링 "PX"를 겹합한 것 처럼 보이지만
  이 아이콘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Χριστοσ (키로스토스)"라는 히브리어의 첫번째와 두번째의
  알파벳인 "Xp"를 결합시켜 놓은 것인데, "X"를 히브리어로 [키], "P"를 [로]로 발음하기에 
  "키로 십자가"라고 부르죠.
  이 아이콘은 기독교를 '로마'의 공인 국교로 삼은 '콘스탄티니우스 황제'가 꿈에서 본 것을
  깃발로 만들어 전쟁터에 나갔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문장입니다.
  성당 다니는 분들에게는 친숙한 문장이지만 무신론자나 타종교 믿는 분들에게는 생소한 문장이죠.
  요즘 로마 교황이나 성당의 주교들이 미사 때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 같은게 "키로십자가"


  [전망대 조망]

  [전망대]                  11:06       
  <키로십자가>를 지나면 <한강>으로 돌출된 전망대가 기다립니다.
  전망대에는 책 한권이 조형물로 있는데 몰상식한 놈들이 낙서를 많이 해 놔서 볼썽 사나웠습니다.
  여기서 조망을 하면...


  [뒤돌아 본 '양평대교' 방향]            
  지나온 서쪽 방향으로는 <양평대교>와 <백병산>이 한가로이 조망되고


  [진행방향 조망]              
  진행방향인 동쪽으로는 <남한강>이 펼쳐집니다.


  ['갈산공원']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                    11:09

  [안내문]                             
  계속해서 <갈산공원>이 이어지며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도 있고....
  <갈산>에는 일제강점기 시대 <신사 神社>가 세워진 곳이었다네요.
  항일투쟁이 강렬한 지역이어서 최우선적으로 <신사 神社>를 건립했답니다.

  ['갈산공원']

  [야외무대]

  [운동장]                          
  야외공연장과 운동장 등이 이어지고


  ['(구)물소리길']              11:17          
  <갈산공원>을 벗어나면 <옛 물소리길>은 우측 아래 <한강변>으로 안내되었었습니다.
  지금은 <평해길>과 함께 그냥 제방길로 가라고 하는군요.
  부록에 제가 쓴 <물소리길 3코스 답사기>를 올려 놨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고...
  7년전 <물소리길>과 요즘 <물소리길>은 변경된 곳이 제법 많더군요.


  ['양평생활체육공원']                 11:27        
  한강고수부지에는 <양평생활체육공원>이 펼쳐지며 뒤로 <양평역> 앞에 있는 <코와루>라는 빌딩이
  잘 보입니다.


  ['한뼘갤러리']                11:29       
  이어서 쉼터를 만나는데 옆에는 <한뼘갤러리>라는 쬐끄만 갤러리가 설치되 있습니다.
  전시된 작품도 앙증맞게 조막조막 몇점이 나그네를 반깁니다.


  [갈림길]                    11:47        
  <한뼘갤러리>에서 제방길인 <자전거길>을 20여분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10여분 더 진행하면..


  ['현덕교' 조망]                 11:56        
  "현덕교"를 만납니다.
  <양평역>에서 여기까지 5.2km이니 1/3 정도 걸었습니다.
  건너편에 <개군산>이 조망됩니다.
  이곳은 <흑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합수부입니다.
  그리고 <현덕교>는 자전거용 용도로 세워진 다리랍니다.


  ['현덕교'에서 '흑천-한강 합수부' 조망]                    
  <현덕교> 중간에서 남쪽 방향인 <흑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곳을 조망합니다.
  이곳이 '양평군 양평읍 회현리'인데 옛날 <회현나룻터>가 있었답니다.
  제가 [양평물소리길3코스]를 답사 할때 '양평군 양평읍 회현2리' 마을회관에 있는 "가소정 可巢亭"에서
  뜻하지 않게 [단종 유배]에 대한 색다른 내용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조선 제6대왕 단종"이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영월'로 귀양 갈때에 남한강을 따라
  배로 압송되었는데, 그런데 운항 중에 홍수를 만나 이곳 "회현나룻터"에 피해있다가 갔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단종>은 1451년 6월 21일 한밤중에 궁에서 쫒겨나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북대문인 [숙정문]으로 
  나가 '성북동'을 거쳐 [낙산] 城밖에 았는 "청룡사 우화루 雨花樓"로 가서 [정순왕후]와 마지막 하룻밤을
  보냈답니다. 그래서 '꽃비가 내렸다'는 "우화루 雨花樓"랍니다.
  그리곤 "청계천 영도교"로 가서 폐서인이 된 [정순왕후]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곧바로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앞>에 있는 [행당중학교]에 있었다는 공용 여관인 [전관원]에 도착하고...
  당시엔 [살곶이다리]가 건설 중이어서 배를 타고 [중량천]을 건너  "화양정"에 도착하였다는데...
  손톱끝 많큼의 죄책감은 남아 있었는지 [수양대군-세조]는 "화양정"으로 내시인 "안노"를 보내 전송했다고
  [세조실록]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날 [세조]가 보낸 내시 "안노"의 전송을 받으며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여주'까지 이동하여, '여주'에서 '영월'로는 육로를 이용해 유배를 갔다고 하는데....
  도중에 홍수를 만나 이곳 <회현나루>에 정박해 있다가 갔다고 하니 그 옛날 <단종>의 슬픈 여정이
  가슴 아프게 다가 옵니다.


  ['현덕교'에서 '흑천' 조망]                     
  북쪽으로는 "흑천 黑川"이 펼쳐집니다. 
  개천 바닥의 돌과 모래가 검은 색이라 물빛조차 검게 보인다고 <黑川>이며 이 지방 방언으로 <거무내>라
  해서 이번 코스 <평해길>의 이름을 <거무내길>로 지었답니다.
  지금부터 <흑천 제방길>을 따라 <용문역>까지 "평해길 제6길 거무내길"이 이어 집니다.


  ['현덕교' 동쪽 끝지점]             12:00       
  <현덕교>를 지나면 <양평군 개군면>을 만납니다.
  <물소리길 스탬프함>이 설치되 있군요. 앞으로 <물소리길 스탬프함>은 자주 만나게 되더군요.



  ['흑천' 제방길]                         
  <현덕교>에서 <흑천제방길>을 따라 20여분 진행하면...


  ['용문산' 조망]              12:21       (약간 줌인 한 사진) 
  "용문산 1,157m""백운봉 941.2m"이 양평시내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추읍산' 조망]                 12:27          
  진행방향으로는 "추읍산 583m"이 점점 다가 옵니다.


  ['흑천교' 조망]                     12:30           
  이어서 <37번국도>가 지나는 <흑천교>를 지나면


  ['양평신내서울해장국' 조망]                        
  <양평해장국거리>에 있는 <양평신내서울해장국집>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양평신내서울해장국']               12:33~12:57          
  전국의 해장국 중에서 저는 제일 싫어하는 해장국이 이 집 해장국인데 본점이라고 해서 뭐가 좀 다를까?
  해서 들어 가 봤습니다만 제 입맛에는 역시 맞지 않았습니다.
  선지 한덩어리와 소 위 썰은게 해장국의 전부인데 값은 10,000원 
  취향이 다르니 먹고 말고는 각자가 판단 할일입니다.


  ['흑천' 방향]                         
  <신내해장국집> 앞에서 <평해길>은 좌측 <흑천>으로 다시 나가야 합니다.


  ['흑천' 제방길-'세르빌온천호텔' 조망]              1:-02      
  다시 <흑천>을 만나 북쪽으로 잠시 진행하면
  <세르빌 온천호텔>을 지나고



  ['소노문리조트']                 1:07          
  이어서 <소노문리조트> 옆을 통과합니다.
  예전에 <대명콘도>였는데 이름을 바꿨나 봅니다.


  ['공세리' 통과]               1:14           
  <해장국거리>에서 부터 이 지역이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입니다.
  옛날 세금으로 곡물을 거둬드리는 세관이 있었다는거죠.
  <공세리>는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공세리> 마을을 통과하면


  ['원덕초등학교' 조망]               1:18         
  <흑천> 건너편에 <원덕초등학교>가 조망되며. <추읍산>도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추읍산>이 가장 <추읍산> 답게 보입니다.
  "추읍산 趨揖山 582.6m"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는 이 산을 칠읍산이라고도 했는데 이 산에 오르면 양평군내 일곱개 읍이
  내려다 보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추읍산>을 찾는 산객들은 <용문산>을 향해 "잘 봐 달라고 절을 하며 읍소하는 모양"으로 해석합니다.
  진짜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모양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임신한 여자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보는데 동의 하나요? ㅎㅎ


  ['원덕초등학교']                1:21       
  <원덕초등학교> 앞을 지나면


  ['원덕리' 통과]                   1:22     
  느티나무가 있는 <원덕리> 마을을 지나고


  ['원덕역' 앞]                      1:26        
  이어서 "원덕역 元德驛"에 도착합니다.
  이번 코스 스탬프함이 있는 곳인데 역 앞에 있으니 유의해야 하더군요.
  <평해길>은 앞에 보이는 굴다리로 갑니다.


  [삼거리]                     1:32            
  굴다리를 통과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평해길>과 <물소리길>은 모두 우측으로 안내 합니다.
  7년전 <물소리길>은 여기서 직진해 갔는데....
  앞에 보이는 <추읍산>은 "임신한 여자가 누워 있는 모습" 아닙니까? ㅎㅎ
  <개성의 송악산>하고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사거리]                 1:35        
  다시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뺑뺑이를 돌리고


  ['흑천' 제방 삼거리]                   1:38           
  <흑천>을 다시 만나면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추읍산 등산로' 입구]                     1:45              
  이어서 <추읍산 등산로 입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면 <추읍산>으로 갑니다.


  ['경의중앙선' 조망]                   
  15분 정도 제방길을 진행하면 


  ['경의중앙선' 밑]                  2:00        
  <경의중앙선> 밑을 통과하고...
  (예전 물소리길은 원덕역에서 철길을 따라 여기로 바로 왔었음)


  ['삼성2리' 통과]                   2:02     
  말(馬)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많다는 <양평군 용문면 삼성2리(三星里)>를 지나면....


  ['삼성교' 조망]                         
  <삼성2리>와 건너편 <삼성1리>를 이어주는 <삼성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삼성1리'와 '추읍산' 조망]                   2:06       
  <삼성교>를 건너 가며 <추읍산>을 바라보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임신한 여자가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ㅎㅎ


  [진행방향 '흑천']         
  <용문역>으로 가는 <흑천>을 바라보며


  [제방길]

  ['수진원']                  2:19      
  13분 정도 제방길을 진행하면
  "수진원 修眞園"이라는 농원을 만나는데 <평해길>은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수진원' 내부]                   
  "수진원 修眞園" 내부를 흘깃 보고 갑니다.
  "수진원"은 "허영만화백"이 그린 "식객"이라는 만화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졌다죠?
  옛날 "말표 구두약" 창업주가 전통 간장, 된장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농장이라는데
  지금은 구두약 대신에 된장 간장을 팔아 돈을 많이 벌었는지 규모가 엄청나며, 
  된장 간장 판매 뿐만 아니라 펜션까지 지어 운영하는군요.


  ['수진원' 옆길]                          
  <수진원> 옆길을 따라 <흑천>으로 나가면...


  ['흑천길']

  ['파라다이스' 조망]                          
  <흑천> 수변길이 이어지며 
  부도가 나 폐허가 된 <파라다이스호텔>이 아직도 흉물로 남아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소리길 쉼터']               2:29~2:40        
  <물소리길 쉼터>에서 좀 쉬었다 갑니다.


  ['백산교']                   2:47         
  쉼터를 지나면 <백산교>라는 <흑천다리>를 건너 부도가 나 폐허가 되어 '유령의 집'이 된
  <옛 파라다이스호텔> 앞으로 건너가 우측으로 다시 <흑천제방길>을 진행합니다.
  풍차로 유명했던 <파라다이스호텔>은 야외 결혼식을 올리는 곳으로 유명했고 영화촬영 장소로도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졌었는데 <新6번국도>가 저 앞으로 개통되며 손님이 완전 줄어 부도가 났답니다.


  [폐업한 온천]                 2:53       
  건너편엔 <옛 양평월드스파>가 보이는데 <파라다이스호텔>과 같은 맥락으로 폐업하여 흉물로 남아 잇습니다.


  ['경의중앙선']                 2:58          
  계속해서 <추읍산>을 뚫고 오가는 <경의중앙선>이 <용문역>으로 이어지는 다리 밑을 지나면


  ['연수천' 합수부]                 3:04         
  <연수천>이 <흑천>에 합류하는 합수부를 만나는데
  <물소리길>은 여기서 <연수천>을 건너 <용문역>으로 가고
  <평해길>은 여기서 좌측으로 <용문시내>를 통과해 <용문역>으로 가더군요.
 

  ['다문교']                3:08          
  <다문교>라는 다리를 건너면 <용문시가지>가 시작됩니다.


  ['용문회전교차로']                  3:09                    
  <다문교>를 건너면 <용문파출소>가 있는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가면 바로 <용문역>으로 갑니다만, <평해길>은 가운데 중앙통로로 안내됩니다.
  6분여 진행하면....


  ['(구)용문버스터미널']                     3:15         
  제가 이 근처 산들을 다니느라 많이 이용했던 <용문버스터미널>이 이젠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옛 버스터미널을 그리워하며 졸고 있습니다.


  ['용문사거리']                   3:16         
  <용문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용문역']                   3:18    
  좀 독특한 모양의 "용문역 龍門驛"에 도착하며 답사를 마침니다.


  ['양평역-원덕역' 구간]

  ['원덕역-용문역' 구간]             
  오늘 걸은 거리는 17.7km로서 4시간 3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예전 걸었던 <물소리길>를 추억하며 "시간이 머무른 계절의 정취가 시작되는 낭만의 길"이라는
  <평해6길 거무내길> 답사를 마침니다.
  
  <<부록>>
  1. 양평물소리길 3코스  답사기. 여기 클릭
  2. 양평물소리길 4~5코스  답사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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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5길 물끝길 (양근나루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5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5길 구글맵' 실트랙]

  ['제5길 구글어스' 실트랙]                         
  <신원역>에서 출발하여 <도곡터널>을 지나 <복포천>을 거슬러 올라 <국수역 입구>를 지나고
  <원복터널> <기곡터널>을 통과하여 <아신갤러리>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아신역>을 지나 <옥천면 입구 사거리>로 가서 <양근성지>와 <물안개공원>을 둘러 보고
  최근에 만들었다는 <양강섬 부교>를 조망하고 <양평역>으로 갑니다. 14.2km


  ['신원역']                  10:45        
  2021년 5월 7일 (금) 비-흐림-연무                            
  오전까지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11시경부터 갠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길을 나섯습니다.
  예보는 적중해서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많은 비가 내렸지만 <신원역>에 내리니 비는 그치고
  구름만 많이 낀 날씨가 이어져 나무 그늘 없는 강변길을 걷기에 적합했습니다.
  승객이 별루인 <신원역>을 나가면 [물소리길 안내도]와 <평해길 안내도>가 도보여행객을 반겨 줍니다.


  ['안내도']

  ['신원역' 앞]                 
  <평해길 물끝길 (양근나루길)> 안내도를 촬영하고 역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나가 
  <6번국도>를 건너 <한강 강변>으로 나갑니다.


  ['월계초부' 이야기]                         
  역 앞에는 "정초부 (월계초부)"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있어 읽어 보고
  어떤 인물인지 검색을 해 보니 "이곳 신원리 월계마을 노비 출신 여류 시인"이었으며 
  {KBS역사스페셜}에서 다룬 인물이더군요. "초부"라는 말은 "나뭇꾼"이라는 뜻이지요?
  이곳 <신원리 월계마을>에 살며 나뭇꾼으로 살며 詩를 썻다고...
  "KBS역사저널 그날" 관련 기사에서 인용합니다.
  
   "KBS역사저널 그날"
    - 김홍도의 그림에 실린 노비의 시
    한 척의 나룻배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묘사한 김홍도의 ‘도강도’의 상단에는 김홍도가 영감을 
    받았다는 시가 쓰여 있다.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필치로 쓰인 시는 ‘동호범주’다.
    그런데 최근 이 시와 동일한 작품이 실린 시집인 ‘초부유고’가 발굴됐다. 
    조선 후기 천재 화원의 마음을 움직인 시인은 초부, 그는 다름 아닌 ‘나무꾼’이었다!
  - 노비 시인, 양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조선 후기 최고 시인들의 작품을 실은 ‘병세집’에는 정초부의 시가 무려 11수나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초부는 동원아집과 같은 양반들의 시회에 초대받아 그들과 함께 시를 지었다.
    그의 시에 감명받은 양반들은 그가 살던 양근(지금의 양평)의 월계협으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월계초부’ 정초부의 시가 실린 조선시대의 시선집은 발견된 것만 10여 권에 이른다. 


  [강변길]                10:50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듯한 먹구름이 여전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신원역> 앞에서 잠시 강변길을 진행하면....


  [갈림길]                10:54         
  <양평물소리길>과 헤어지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예전 제가 다녀온 <물소리길>은 현재 <평해길>과 같이 직진했었는데 바뀌었나 봅니다.


  ['4대강수변공원']              11:00         
  이어서 <4대강수변공원>이라는 강변 공원이 길게 이어지고


  ['수청리나루']                       11:08

  [안내문]                               
  공원 중간에 "수청리나루"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현재도 나룻배가 운행되고 있다는 나루라는데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군요.
  <수청리>는 강 건너편에 있는데 '광주시 남종면 수청리'이며 <앵자지맥 정암산> 아래 있는 마을입니다.


  ['수청리' 조망]                     
  나루터가 있나 해서 <한강>과 건너편 <수청리 水淸里>를 바라 보는데 나룻터가 어디인지는 안보이는군요.


  ['양서초' 앞 육교]                   11:12             
  수변공원이 끝나는 곳 쯤 <6번국도>에 육교가 하나 나타납니다.
  <양서초등학교> 앞에 있는 육교인데 육교를 건너 가야 합니다.


  [육교에서 '부용산' 조망]                       
  육교에 올라 지나온  <신원역> 방향 <6번국도>와  <부용산>을 조망하고


  [육교에서 '양서초' 조망]                   
  육교 위에서 <양서초등학교>를 조망합니다.
  주변에 마을도 없는데 초등학교만 제법 큰 규모로 있군요.


  ['옛 중앙선'-자전거도로]                 11:16           
  육교와 <양서초등학교 정문> 사이에 있는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로  올라 진행합니다.
  7분여 진행하면...


  ['도곡터널' 입구]                      11:23

  ['도곡터널' 안]                         
  "도곡터널"을 통과합니다.
  '양서면 도곡리'와 '양서면 국수리'의 경계가 되는 터널이더군요.


  [갈림길]                   11:26            
  <도곡터널>을 통과하면 길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예전 <물소리길>도 이 길로 진행했는데 <물소리길>은 내륙 마을로 변경되었나 봅니다.
  우측으로 나가면...


  ['복포천']               11:27        
  <옛 중앙선 철길>에서 내려 가면 바로 "복포천 福浦川"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강기맥 청계산> 유역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5.63km의 하천이라는데
  예전엔 이 하천을 따라 배가 운항해서 <복포 福浦>라는 포구가 있었다는군요.
  사진에 제가 "흥경단과 안소공 묘"라고 표기 한 곳이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입니다.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형제들에 대해 아시는 분 있습니까?
  바로 저 곳이 <태조 이성계의 형>인 <완산대군 이원계>의 사당이 있는 곳이어서 간단하게 알아보며
  지나 가도록 하겠습니다.


  ['카카오 위성지도' 캡쳐]                
  지도에 표기한 <현위치>가 바로 윗 사진 <도곡터널> 앞 갈림길입니다.
  <흥경단>과 <안소공묘>의 위치와 조금 전에 안내판에서 본 <수청리나루 선착장>의 위치를 확인하고...
  <남한강>에 떠 있는 제법 큰 섬인 <거북섬>과 <대하섬>이 눈길을 끄는데 특히 <대하섬>이 좀 알려졌죠.
  <대하섬>은 사유지로 1960~70년대 유명 배우였던 본명이 <이순임>인 <문희>씨의 별장이었다죠?
  위에서 언급한 "태조 이성계의 형제들"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세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정실과 소실 두명이었습니다.
  정실 부인인 <최씨>에게서 딸과 <이성계>를 낳았는데 딸은 <이성계>의 유일한 동복 친누나가 되며 
  <이성계>보다 5살 위 인데 나중에 <정화공주>로 추존되었지요.
  <이자춘>의 첫번째 소실은 <이자춘>의 종이었는데 세컨드가 된 <내은장>이라는 여자였습니다.
  여기서 탄생한 아들이 '서장자'인 "이원계"이며, <이성계>보다 5살 많은 이복형이 됩니다.
  <이원계>의 무덤은 현재 <함흥>에 있는데 남북 분단으로 갈수 없는 자손들이 <이원계의 장남>인
  <이양우의 묘>가 있는 이곳 '양서면 대심리'에 "흥경단"이라는 사당을 지어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며 추모하고 있답니다. 아들 <이양우>가 <안소공>이며 조선왕조 초기 <태종 이방원>이를
  도와 <왕자의 난>등 권력의 기틀을 세우는데 동참 한 사람이지요.
  <이자춘>의 두번째 소실도 종이었는데 써드가 된 <고음가>라는 여자였답니다.
  이들 사이에서 아들을 낳는데 그가 <이 화>이며 <이성계>의 이복동생이 되며 5살 아래입니다.

  [<이원계>의 장남인 <안소공 이양우>의 묘]  (예전 촬영한 사진)

  ["흥경단"  <태조 이성계>의 이복형 <이원계>의 사당] (이양우 묘 옆에 있음)
  "완풍대군 이원계"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유일한 이복형인 <완풍대군 이원계>
  위에서도 언급 했드시, 고려 말 <이자춘>의 큰아들로 태어난 <이원계>는 문무를 겸비하여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덕망이 높았답니다. 그런데 동생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자
  <이원계>는 동생과 뜻을 함께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갈등에 빠지게 되는건 당연지사이었겠죠?
  동생의 뜻에 동조하면 고려의 신하로서 불충이 되고, 동생의 뜻에 반대하면 형제간의 불화로 가문과
  가족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자신의 한 목숨은 두렵지 않으나 가문의 맏이로서 책임도
  막중하기 때문에 국가와 가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있었었답니다. 
  깊은 고뇌 끝에 <이원계>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의 네 아들에게는 작은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데 힘을 다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답니다.
  고려의 영원한 충신으로 남기를 바라면서도, 가문을 지키고자 했던 지식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지요.
  형제지간의 피와 땀까지도 합쳐져 <역성혁명>이 성공을 거둘수 있었다는 사실도 관과 할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누가 더 훌륭한지 <이성계>와 그의 형 <이원계>를 비교해 볼수 있는 대목입니다.
  <완풍대군 이원계>의 후손들 중에 요즘 많이 회자되는 분이 <이낙연씨>이죠.
  <완풍대군>의 21대손 <이낙연 의원>이 국회의원을 3선한 뒤 전남도지사가 되고, 
  2017년에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가 민주당 당대표가 되기도 했죠. 차기 유력 대권 후보중에 한분이지요.
  그리고 22대손 <이원태>는 금호그룹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고, 
  24대손 <이기권>은 2014년 노동부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학계와 재계에 명망 있는 분들이 다수 있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한말 고종황제의 
  특사로 헤이그 만국박람회에 참석하여 순국한 <이준열사>는 완풍대군 17대 손이랍니다


  ['복포천']               11:27        
  <도곡터널>에서 내려 서면 <복포천> 옆으로 <평해길>은 이어지고


  ['복포천' 제방길]                         
  이어서 <복포천 제방길>을 15분여 진행하면


  ['국수교']                  11:43         
  <6번국도>와 <국수역>을 잇는 <복포천 다리>인 <국수교>를 만나고


  ['국수역' 조망]                    11:45       
  <국수역 菊秀驛>이 보이는 이곳 <국수교> 앞에서 <평해길>은 우측으로 안내되고


  ['농협' '국수보건지소' 앞]               11:46          
  이어서 <농협>과 <국수보건지소>를 만나고


  ['청계산' 조망]          
  <한강기맥 청계산>과 <형제봉>이 멋지게 조망됩니다.
  제가 쓴 산행기가 있으니 참고 하시고


  ['복포리' 통과]                     
  <복포리>를 여유롭게 통과하면...


  ['복포9교' 앞]                11:57          
  <복포천>을 건너는 다리인 <복포9교>가 있는 곳을 만나면 올라 가 다리를 건너 갑니다.


  ['복포9교'에서 조망]                 11:59           
  <복포9교>를 건너 가면 진행방향에 있는 <복포1리마을회관>과 <원복터널>이 조망됩니다.


  ['복포1리 마을회관']                  12:00                
  <복포1리마을회관>을 지나면


  ['옛 중앙선'-'자전거도로']               12:01         
  다시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를 만납니다.
  <아신역>까지 2.6km 남았다는 안내핀을 보며 옛철길을 잠시 진행하면...


  ['원복터널' 입구]                     12:04

  ['원복터널' 출구]                    12:07          
  <원복터널>을 만나 통과합니다.
  오리지날 <복포>라고 <원복>이라 한다네요.


  ['옛 물소리길']                    12:14           
  <원복터널>을 통과하여 7분 정도 진행하면 <물소리길>이 마을을 돌아 와 만나는 지점을 통과하고


  ['6번국도' 밑 통과]                   12:19            
  <6번국도>가 지나는 <복포과선교> 밑을 통과하면...


  ['기곡터널' 입구]                     12:21

  ['기곡터널' 안]                         
  "기곡터널"을 만나 통과하는데 
  <기곡아트터널>이라고 해서 뭐가 있나? 하며 걷는데 특별한 예술적인건 없었고


  ['양평군 옥천면']                       12:29           
  <기곡터널>을 통과하면 이제부터 <양평군 옥천면>이 시작 된다고 하며


  ['아신갤러리']                    12:32            
  이어서 "아신갤러리"가 있는 쉼터를 만납니다.
  자전거 쉼터와 <물소리길> 쉼터가 함께 있는데 이 구간에서 제일 큰 쉼터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양평가는 길']                  


           
              ['푸른물이 흐른다']                     
  이 조각품은 작가 스스로도 고백하드시  "파도 같지 않은 파도를 망친 작품"이라고...ㅎㅎ
  제가 보기엔 동맥경화에 걸린 핏줄 단면도 같네요.
  이걸 보고 누가 <푸른물이 넘실대는 파도>라고 감상하겠습니까...그런데도 작가는 우기겟다는군요. ㅎ



  ['아신갤러리']      
  예술가들을 위한 갤러리가 무료 개방하고 있고


  ['물소리길 스탬프함']      
  <물소리길 2코스 스탬프함>이 이곳에 설치되 있습니다.


  ['쉼터']                 12:37~1:00     휴식       
  여기서 23분간 휴식을 취하고 출발합니다.


  ['아신역' 조망]                 1:01   
  <아신갤러리 쉼터>를 지나면 철길은 끊어지며 <아신역>이 조망되기 시작하며


  ['아신역']                 1:05                   
  "아신역 我新驛" 앞에서 우측으로 나가면


  ['아신역교차로']                  1:07        
  <6번국도>가 지나는 <아신역교차로>를 건너 강변으로 나갑니다.
  여기서 강변으로 나가는 길은 우측 다리 밑으로 연결되 있으니 길조심을 해야 하고


  [강변길]                    1:11         
  강변 자전거도로로 나가면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양평대교>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백운봉' 조망]                   
  이어서 <옥천면>에서 흘러 내리는 <서탄천>을 만나 <고읍교>라는 다리를 건너 가면


  ['옥천교차로']                1:19         
  <6번국도>에서 <옥천면>으로 연결되는 교차로를 만나는데 <옥천냉면 황해식당>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평해길>은 좌측 <옥천냉면 황해식당> 뒤로 연결됩니다.


  ['옥천냉면' 스토리텔링]                        
  <옥천냉면> 스토라텔링 안내판을 지나면


  ['큰맘할매순대국']                1:24         
  <큰맘할매순대국집>을 만나고


  ['옛 중앙선'-자전거도로]                 1:30        
  이어서 다시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를 만나 진행합니다.
  5분 정도 진행하면....


  ['덕구실육교']                  1:35         
  <덕구실육교>를 만나는데 <6번국도>를 다시 건너 강변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물소리길>과 동행합니다.


  [육교에서 조망]                    
  <덕구실육교> 위에서 <양평시내> 방향을 조망하고
  

  ['강변길 접속']                   
  강변으로 연결되는 육교를 내려 가면...


  ['코아루' 조망]                1:39           
  <양평>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주상복합빌딩인 <코아루>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코아루> 옆에 <양평역>이 있으니 <코아루>만 바라보며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양평들꽃수목원' 앞길]                  1:50

  [수목원 내부]

  [수목원 내부]                            
  <양평들꽃수목원>이라는 수목원을 통과하면



  ['오빈역' 스토리텔링]                1:54       
  "오빈역 娛賓驛"이 근처에 있었다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판을 흘깃 보고 계속 5분여 더 진행하면...


  ['양근성지' 조망]                  1:59       
  <양근성지>가 보입니다.
  <양근성지>로 가면...


  ['양근성지' 정문]                        2:05

  [안내문]                          
  "양근성지 楊根聖地"
  우리나라 천주교의 창립 주역인 "권철신 권일신 형제"들의 고향이군요.
  <양근면>과 <지평면>등을 통합하여 <양평군>이 만들어 질때 한 글자씩 따와 <양평군>이 되었다지죠.



  ['양근성지' 내부 조망]      
  성경에 보면 <예수>는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당했고 사형 형틀이 십자(十) 모양이라 십자가라 한것인데
  사형장의 十자 형틀에서 사형 당하는 예수의 모습은 처참한데도 예수 믿는 분들은 자랑스러운지
  어딜가나 이런 모습을 재현하며 세워 놨습니다.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 동정순교부부는 누구인지 처음...
  '동정부부'라는 말이 '성관계가 없는 부부'라는 뜻인데...말이 되는 부부인감? 그렇다면 부부가 아니지요?
  목숨을 영원히 보전하기 위해 믿는게 종교인데 목숨 바쳐 믿는게 합리적인지...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를 미화하는건 아닌지...
  무신론자의 관점에서도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양근성지' 정문 앞]                      
  <양근성지> 정문 앞에는 <물안개공원>이 펼쳐집니다.
  좌측엔 <양평생활문화센타>가 있고, 정면엔 <물안개공원>의 <고산정>이 조금 보입니다.
  그리고 우측엔 <양강섬>으로 건너 가는 <양강섬 부교>가 있습니다.


  ['황명걸 시비']                   
  <황명걸 시인>의 詩碑 뒤에 있는 작은 동산에는 <고산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예전에 <물소리길>를 탐방 할때 올라 봤던 사진과 안내문을 보면...
 

  ['고산정']

  [안내문]                
  <물안개공원>의 정상에 있는 <고산정>이며 생활체육시설등이 있고 <양강섬> 조망도 좋더군요.  


  ['양강섬 부교']                  
                 
                   [안내문]                    
  우측 한강변으로 잠깐 나가보면 "양강섬""양강섬 부교"가 조망됩니다.
  최근에 <양강섬>을 공원화 했다는군요.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김종환 노래비>와 <스탬프함>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고...


  ['물안개공원']                 2:16~2:23        
  "물안개공원"으로 들어 가는데 <스탬프함>이 좌측 <6번국도> 길가에 있더군요.
  자칫 놓치기 쉬우니 유의해야겠고...


  ['김종환 노래비']

  [안내문]                          
  "김종환 노래비"가 제법 독특한 모양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IMF 시절' 생활이 어려워서 <김종환>은 와이프가 사는 홍천과 생계를 위한 서울을 오가며 살았는데
  오가다가 피곤하면 이곳에서 쉬다 가곤 했답니다. 어느날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사랑을 위하여>라는 노래의 가사와 곡을 쓰게 됬다고...


  ['스탬프함']                       
 자칫 지나치기 쉬운 <스탬프함>에서 <물안개공원>을 조망하고...


  ['물안개공원' 스토리텔링]               
  위에서도 언급한 내용의 스토리텔링을 보고 물안개공원을 떠나 갑니다.


  ['양평역' 가는 길]                   2:24            
  맑끔하게 단장된 <양평읍내>가 이어 집니다.
  7분여 진행하면...


  ['양근리사거리']                    2:31           
  <양근대교>로 연결된 <양근리사거리>를 만나는데
  <평해길>과 <물소리길>은 우측으로 돌아 <양근교> 다리 밑 <양근천> 개천변으로 가라고 합니다만


  ['양근교'에서 '양근천' 조망]                          
  저는 <양근교> 다리를 건너 <양근천> 개천길이 아닌 둑방길을 이용해 나란히 진행합니다.
  개천길은 예전 <물소리길>을 할때 진행해 보기도 했지만 개천으로 내려 가면 주변 모습을 감상할수 없기에..
  이렇게 조망하며 가는게 훨씬 볼거리가 많지요.


  [느티나무]                   
  <평해길>과 <물소리길>은 좌측 아래 느티나무 있는 곳에서 개천을 벗어나 <코아루> 옆에 있는
  <양평역>으로 올라 갑니다.


  ['양평역']                    2:45            
  "양평역"에 도착하여 <평해길 제5길 물끝길>을 마칩니다.
  "양치질"의 어원을 아시나요?
  <버드나무 양 楊>과 <이빨 치 齒>가 합쳐져 <버드나무 가지>로 이빨을 닦는 행위를 "양치질"이라했죠.
  칫솔이 없던 시절엔 <버드나무 가지>로 이빨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양치질"이라는 말이 나왔지요.
  <양평>에 올 때면 항상 생각나는 <양치질>입니다. ㅎㅎ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공식적으로 14.2km이지만 제가 실제 걸은 거리는 GPS  기준으로 14.8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뒤풀이]               
  <양평>에 가면 <양평해장국>을 먹는게 즐거움인데 이번엔 <양평시장> 안에 있는 여기서 순대국 한그릇...
  보통 7,000원, 특 8,000원인데 비교적 괜찮은 편입니다. 이 집 찾기가 좀 어려운데 전화로 알아 보세요. ㅎ
  
  <<부록>>
  1. 양평물소리길 2코스 강변이야기길 답사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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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4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4길 구글어스' 실트랙]                      
  <운길산역>에서 출발하여 <북한강철교>를 건너 <두물머리>를 둘러 보고
  <가정천>을 거슬러 올라 <이덕형선생 신도비>를 거쳐 <샘골고개>를 넘고
  <여운형선생기념관>을 지나 <신원역>까지 15.2km를 갑니다.


  ['운길산역']              10:27                     
  2021년 5월 2일 (일) 맑음
  <태조 이성계>가 "저 산은 구름도 쉬어가는 吉地"라고 언급한데서 "운길산 雲吉山 610m"이라고 했다는
  그 <운길산>이 바로 뒤에서 호위하고 있는 "운길산역"에서 [경기옛길-평해길]의 제4길을 출발합니다.


  ['운길산역 앞']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 안내판]                 
  <운길산역> 앞에는 [예봉산-운길산 산행안내도]  [남양주 다산길 안내도] 등과 함께
  "경기옛길-평해길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의 안내도도 함께 있습니다.
  <남양주 다산길 4코스 종점><남양주 다산길 5코스 출발지>이며 
  <양평물소리길 1-1코스>의 출발지이기도하고 <예봉산-운길산-수종사>를 다니는 산객이나 
  관광나드리객들이 수없이 이용하는 <운길산역>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당연 많이 이용 한바 있습니다. 
  관련 산행기와 답사기는 이 산행기 끝에 링크 하겠으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역앞 '세미원' 가는 길]                         
  <운길산역>에서 <북한강철교>로 가는 길은 도로가 아닌 샛길로 안내 합니다.
  빨간선으로 표시한 샛길을 따라 6분여 진행하면....


  ['북한강철교']                        10:34              
  "북한강철교 564m"를 만나 건너게 됩니다.
  <중안선 열차>가 다니던 기찻길이 이젠 자전거가 다니는 자전거 도로로 탈바꿈 했습니다.
  저도 앞으로 걷는게 힘들어 질때 자전거를 타고 다닐 예정입니다.
  하지만 걸을수 있을때 까지는 걸어야지요.


  ['철교 입구']                  
  <북한강>을 경계로 <남양주시>와 <양평군>의 행정구역이 나뉘어지고
  이제 <양평군 양서면> 속으로 들어 갑니다.


  [철교 위에서 조망]                 
  <북한강철교>를 건너며 조망을 하는데 오늘 넘어 가야할 <샘골고개>가 <부용산> 뒤에 있는데...


  ['두물머리' 조망]                  
  약간 우측으로는 <양수대교>와 <두물머리>가 조망되고


  ['북한강철교']                     
  <위키백과>에서 인용 합니다. 
  "북한강철교"
  1939년 4월 1일에 중앙선의 청량리역-양평역 구간이 개통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6.25 전쟁 초기에 한 번 파괴된 것을 1950년 12월까지 수리했다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전으로 1·4 후퇴를 하는 등 북한강변이 다시 전쟁터가 되면서 파괴된다.
  이렇게 파괴된 다리는 1952년 2월에 완전히 복구되었다.
  중앙선의 복선 전철 공사를 시작하며 양수역이 능내역 대신 운길산역과 이어지게 되면서 새로이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를 양수철교라고 부르고 있다. 
  과거에 사용되던 북한강철교는 현재까지 남한강 자전거길 자전거 전용도로의 다리로 활용되고 있다


  ['두물머리' 가는 길]                10:43              
  <북한강철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평해길>은 우측 <두물머리>로 가라고 알립니다.
  안내판에는 <세미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지만 <두물머리>를 구경하고 가라는 뜻인듯...


  ['양수리환경생태공원']

  ['두물머리 물래길' 안내도]                        
  철교에서 내려 가면 바로 "양수리환경생태공원"이 이어지며 
  "두물머리 물래길" 안내도도 있습니다.
  안내도는 참고용으로 하고 이곳저곳 취향에 맞게 <두물머리>를 돌아 보고 가는게 좋습니다.
  안내도에 그어진 선을 철길 걷듯 걷는 것은 선에 예속되는 것이기에 도보여행의 자유로움을 잃게 됩니다.


  [호변길]                   

  ['예빈산' '예봉산' 조망]                 
  이제부터 <두물머리>의  <팔당호> 호변길을 4km 정도 걷게 되겠습니다.
  강 건너 <예빈산 예봉산>도 멋지게 조망되며


  ['북한강철교' '운길산' 조망]                   
  조금 전에 건너 왔던 <북한강철교>와 그 뒤로 <운길산>과 <수종사>까지 그림 같습니다.


  ['양수대교' 통과]                    10:52          
  <양수대교> 밑을 통과하면...


  [철쭉 영산홍]                
  이 계절에만 만날수 있는 꽃길을 지나고


  ['한강물환경연구소']

  [물환경연구소]

  ['한강물환경생태관' 입구]                  11:05         
  "한강물환경생태연구소"를 지나면




    [생태공원]                             
  노을이 질때 오면 더 좋은 생태공원을 여유롭게 지나갑니다.


  ['신양수대교' 밑]                    11:12       
  그러면 <6번국도>가 지나는 <신양수대교> 밑을 통과하게 되며


  ['두물머리 공원' 입구]                     
  <두물머리 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 됩니다.
  그런데 <평해길 앱>은 여기서 <두물머리>로 가지 않고 바로 좌측 나루터로 길안내를 하는데...
  여기까지 왔으면 실제 <두물머리>를 찾아 보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관계기관이 그어 놓은 선을 반드시 따라 갈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그어 놓은 <평해길>을 벗어나 직진성 우측길로 들어 가서 <두물머리>를 구경하고 갑니다.



  ['두물머리']                   11:20           
  "두물머리 兩水頭"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곳을 <열수>라고 했고 자신이 귀양 생활 후 돌아 와서는 자신의 호도 <열수>
  라고 했습니다, 컴 자판기에는 나오지 않는 한자 이지만 "洌水" 입니다.
  <삼 水변>에 <벌일 열 列>이 붙은 한자인데 <兩>과 비슷한 의미이지만 강물이 합쳐지는 의미로는
  <洌水>가 더 뜻깊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정약용선생>도 자신의 호로 사용했겠죠.
  <정약용선생>이 귀양생활 중에 고향을 그리워 하는 詩가 있어 소개해 드림니다.
   
                              酉山之下 爰有我廬 
                              洌之洋洋 有牣其魚 
                        저 유산 아래는 내가 사는 집이 있고 
                        끝없이 넓은 열수에는 물고기가 가득하네 
  이곳 <두물머리>에는 <두물경>이라는 안내석이 있으며 
  뒤에는 <족자도>가 <북한강>과 <남한강>의 만남을 굽어 보고 있습니다.


  ['검단지맥''검단산', '족자도' 조망]                     
  제가 이곳을 들릴 때 마다 인용하는 詩가 있는데 오늘도 인용 하겠습니다.
   
       두물머리에서  
                       박후자  
          만남의 절창이다
          물속으로 숲과 구름이 만나고
          파란 하늘의 풍금 소리
          고요한 오후와 만난다
          강물 일렁이는 슬픔
          햇볕이 다독이는 강변에
          물방개 발자국 따라 퍼져가는 동심원
          파장이 크다
          저기 떠내려온 붉은 잎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동심원에 갇혀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다가
          물결 따라 떠내려가는
          이별의 선창가다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꼭 제가 살아온 인생길을 말해주는듯....
     여기 두물머리에서 지나온 세월을 한번쯤 추억하고 떠나는 이별의 선창가 - "두물머리"
     제가 "두물머리"에만 오면 언제나 되뇌이는 이 詩는
     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 "박후자 詩人"의 "두물머리에서"라는 詩인데
     <문예한국>을 통해 등단한 "박후자 詩人"은 <이대문인회>,<한국시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그림자를 세워 집을 짓는다"등이 있습니다.


  ['두물머리 공원']                 11:25         
  <두물머리>에서 <두물머리나루터>로 가는 길입니다.


  ['두물머리 나루터']

  ['두물머리나루터' 표지석]                11:29         
  "두물머리 나루터"
   이 나루는 건너편 '광주시 남종면 우천리'나 '분원리' '귀여리/로 건너 다니던 나루였는데, 
   '광주시'의 <경안장>이 소시장으로 유명했을 때는 사람을 태우는 작은 나룻배 외에도 열 마리 이상의
   소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커다란 나룻배도 있었답니다. 
   더 옛날에는 세곡선과 장삿배가 정박하는 남한강 물길의 정류장이기도 했답니다.
   또한 지금은 <팔당호>에 수몰되었지만 예전에는 나루 근처에 <쏘갈바위>가 있었답니다. 
   곡물을 싣고 가던 배가 부딪쳐 파손되어 <삼백 가마를 먹은 바위>라고 부르기도 한 악명 높은 바위랍니다.


  ['겸재 정선선생'의 '독백탄']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 <독백탄 獨柏灘 보물 제1950호>를 바위에 재현해 놨습니다.
  <독백탄>에 관해선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에서 자세히 알아 봤기에 여기선 생략합니다.
  다만 그림을 다시 보여 드리면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 <독백탄 獨柏灘 보물 제1950호>



  ['포토존']                                  
  포토존에는 사진 촬영을 하려는 나드리객들이 줄을 잇고



  ['두물머리 느티나무']                      11:35

  [안내문]                
  <두물머리의 수호신>이라는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이 느티나무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고


  ['두물머리 고인돌']

  ['두물머리 고인돌']                    
  여러번 이곳을 방문 한적이 있습니다만, 느티나무 아래에 "고인돌"이 있는건 처음 봤습니다.
  후답자들은 곡 보고 가세요~~ㅎ


  [호반의 풍경]                               
  어린이가 애완견과 함게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이나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한컷.
  팔당호에는 물고기들이 우굴우굴 하더군요.
  그런데 잉어도 아니고 물고기 종류가 뭔지는 모르겠더군요.



  [蓮池]                    11:38         
  <세미원> 방향으로 조금 올라 가면 <연지 蓮池>가 있는데 연꽃 피는 여름철에 절경을 이루겠고


  ['배다리' 조망]

  ['스탬프함']                   11:46       
  이어서 "세미원"으로 건너 갈수 있는 "배다리 입구"에 도착하는데
  이곳에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세미원 배다리' 입구]          
   "세미원 洗美園"으로 건너 갈수 있는 "배다리 입구"입니다.
   입장료가 5,000원이고 노인들도 3,000원을 내야 합니다.
   <평해길>은 <배다리>를 건너지 않고 <양수역>으로 갑니다만, <세미원>을 관람하고 싶은 분들은
   여기서 <배다리>를 건너 <세미원>을 구경하고 정문으로 나가도 <평해길>과 다시 만나니 참고 하시고


  ['배다리' 조망]

  ['세미원' 안내문]                   
  옆에서 <배다리>를 조망하고 <세미원 안내문>을 읽어 봅니다.


  ['양수역' 가는 길]                  
  '양수리' 시내로 가는 길입니다.
  150m 정도 진행하면...


  ['양수리 중앙도로']                   12:00            
  <양수리 중앙도로>를 만나는데 <양수대교>에서 이어지는 <양수리 관통도로>입니다.


  ['체육공원삼거리']                     12:04       
  <양서도서관> 앞에 있는 <체육공원삼거리>를 지나는데...우측에는...


  ['양서문화체육공원' 정문]                    12:05       
  <양서문화체육공원> 정문이 있으며 이어서 <세미원 정문>도 있습니다.


  ['양수역' 가는 길]              12:07       
  <세미원 정문>을 지나면 건너편에 <양수역>으로 가는 길 표지판이 보입니다.
  조금전 <세미원 정문>에서 길을 건너야 했는데 모르고 지나처 여기서 무단횡단 ㅠ


  ['물래길']                    
  <두물머리 물래길>과 함께 가는 <평해길>입니다.



  ['가정천' 합수지]           
  우측은 <가정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입니다.
  앞으로 이 <가정천>을 따라 <한음 이덕형 선생 신도비>까지 진행해야 합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양수역' 조망]                  12:17        
  <양수역>이 보이기 시작하고


  ['중안선 굴다리']              12:18         
  이어서 <양수역> 옆에 있는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하게 됩니다.


  ['한음 이덕형 신도비' 가는 길]               12:21      
  굴다리를 지나면 이정표가 "한음 이덕형 신도비 4.3km"로 바뀌며
  여기서부터는 "양평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이 <평해길>과 동행합니다.
  그래서 이 구간에 대한 답사기는 부록에 첨부한 <양평물소리길>을 참고 하면 됨으로 
  여기선 간단히 기술하니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양평물소리길>을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가정천']                 12:24     
  <양수역 굴다리>에서 우측으로 조금 나가면
  "가정천"을 만나 다리를 건너 <가정천 제방> 우측을 따라 진행합니다.




  ['가정천' 개천길]                         
  33분여 <가정천>을 따라 진행하면...


  ['한강기맥 청계산' 조망]                 12:57          
  <한강기맥 청계산>이 조망되는 곳 쯤에서 '양서면 부용리'가 펼쳐지며
  <에듀셀파기숙학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용리 芙蓉里>는 우측 <부용산 芙蓉山 366m>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부용2교' 앞]                12:58          
  <부용2교>를 만나면 <물소리길>과 <평해길>은 다리를 건너 <에듀셀파기숙학원>으로 가라고 합니다.


  ['에듀셀파기숙학원' 앞]                 1:04        
  <에듀셀파기숙학원> 정문 앞에 이정표가 있는데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입니다.
  이 학원은 예전에 제가 <물소리길>을 걸을 때엔 <정진기숙학원>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논두렁 통과]                 1:07     
  기숙학원을 지나면 바로 이런 논두렁을 지나야 하는 좀 낮선 길이 나타나며
  

  ['가정천']                   
  다시 <가정천> 상류를 만나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가는데 <이덕형 선생 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덕형선생 묘' 조망]               1:13         
  다리를 건너 농로를 따라 가는데 <이덕형 선생 묘>가 다가 옵니다.
  선생의 묘는  <신도비>에서 왕복 600m로 좀 멀고 
  가봐야 어느 곳에서나 만나는 무덤이라 생략하고 진행했습니다.


  [숲길]                  1ㅣ15              
  숲길을 잠시 지나 나가면...


  ['이덕형선생 신도비' 앞]               1:17~1:51           
  <한음 이덕형 선생 신도비>에 도착 합니다.
  이곳에 <스탬프함>이 있는데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에는 <스탬프함>이 두군데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한음 이덕형 선생 신도비각']

  [안내문]                          
  <오성과 한음>으로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특별히 언급 할 내용이 없습니다.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더 자세한 얘기는 제가 쓴 <물소리길 1코스 답사기>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이덕형선생에 관한 얘기]        
  선생에 대한 공식적인 이야기도 안내하고 있습니다.


  ['물소리길 스탬프함']                1:51      
  <이덕형선생 신도비> 옆에는 <물소리길 스탬프함>도 있는데 
  여기 벤치에서 빵으로 점심을 먹고 쉬었다 갔습니다. <평해길>은 <물소리길>과 동행합니다.



  ['목왕리' 산허리길]                   
  산허리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詩碑]               2:06           
  <이덕형 선생>이 썻다는 詩 한편이 길섶에 있는데
  그가 살던 곳의 위치를 간접작으로 알려 주고 있는 詩라고 생각 됩니다.
  <월계 月溪>가 <가정천>의 지류로 옆에 흐르고 있는 이 계곡 시냇물이랍니다.
  그래서 건너편에 있는 산이 <달구덩이산>이라고...


  ['목왕2리']              2:09      
  산허릿길을 벗어나면 <목왕2리 안내석>이 길을 안내하는데 <동막골>이라고도 한다고...
  동쪽의 막장 고을이란 뜻이겠죠.


  ['느티나무']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별장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부러움을 주는데
  앞에 큰 느티나무가 길 안내를 합니다.
  느티나무로 가면...


  ['느티나무' 앞 갈림길]                 2:14         
  느티나무 앞에서 <평해길>은 우측 산길로 안내됩니다.
  <몽양 여운형 생가>까지 2.7km라고 알려 주는데 <샘골고개>를 넘어야 하는 코스가 되겠습니다.


  ['샘골고개' 가는 길] 

  ['샘골고개' 입구]                 2:20         
  <물소리길>과 동행하는 <평해길>이라서 <물소리길>만 따라 가면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샘골고개>를 넘는 고갯길이 시작 됩니다.



  ['샘골고개' 오름길]                                 
  <샘골고개>로 오르는 길이 이어지는데 약간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아 13분 정도만 오르면 됨으로
  매우 쉬운 고갯길이 되겠습니다.
  제가 <물소리길>이 조성되고 초창기에 넘었던 <물소리길>하고는 좀 바뀐듯하군요.
  그때는 <부용산약수터>라는 약수터가 있는 고개를 넘어 <샘골고개>로 갔는데
  <부용산약수터>에 <스탬프함>이 있어 확실히 기억하는데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수 없고...


  ['샘골고개']                       2:33  
  "샘골고개"
  이 고개는 세번째 방문하게 되는군요.
  2010년 1월 16일 <형제봉-청계산-부용산-하계산> 산행을 할때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 했었으며
  2015년 8월 27일 <양평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을 할 때엔 넘어 갔었습니다.
    좌측으로 가면 <형제봉-청계산-국수역 등산로>로 갈수 있고
    우측으로 가면 <부용산-하계산-양수역>으로 가는 등산로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제가 쓴 산행기를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이정표]                  
      이정표에 영어 표기가 좀 어색해 한마디 첨언합니다.
      <청계산 정상>을 영어 표기로 [Top of  MT Cheonggye]라고 했는데 "정상"은 "Top"이라 하지 않고
      "summit" 라고 하지요.



  [내림길]                          
  <샘골고개>에서 10여분 내려 가면 


  [철문]              2:43                   
  철문을 통과하는데 전에는 없던 문입니다.


  ['물소리길 스탬프함']                2:44          
  이어서 <물소리길 스탬프함>을 지나 가는데 변경된 스탬프함 위치군요.
  앞에서도 언급 했다시피 전에는 <부용산약수터 고개> 근처에 있었습니다.



  ['신원리']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의 <신원1리 新院1里>가 펼쳐 집니다.
  이 고을엔 조선시대까지 <역원 驛院>이 있다가 없다가 했는데 새로 생긴  <역원 驛院>이 있었다고
  <신원리 新院里>가 되었다고 합니다.


  [뒤돌아 본 '샘골고개']               2:52        
  <신원1리 新院1里>를 지나며 <부용산>과 지나온 <샘골고개>를 뒤돌아 봅니다.
  <부용산> 정상에는 고려시대 폐위된 왕비와 아들에 대한 설화가 전해 내여 오더군요.
  그 내용을 참고로 보여 드리면....
                 


  ['되는턱고개']              2:57          
  <되는턱고개>라는 좀 독특한 이름의 고개를 넘어 가면...


  ['여운형 선생 생가'와 '기념관' 조망]              2:59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와 기념관>이 보이기 시작하고


  ['여운형선생 생가']

  ['여운형 기념관']                  3:00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와 기념관"
  여기도 지난 <물소리길 답사기>에서 자세히 알아 봤으므로 여기선 생략하고


  [쉼터]

  [내림길]                       
  10여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신원역']                  3:10                
  "신원역 新院驛"에 도착하며 답사를 마침니다.
  이곳 근처에는 조선시대까지 <평해로>의 공공 여관인 "월계원 月溪院"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없어지고 새로운 院이 생겨서 <新院>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하네요.
  다음 구글어스를 보며 추가로 알아 보면....


  ['구글어스' 실트랙]                    
  <신원리>에서 <남한강> 옆으로 난 <부용산> 옆구리의 절벽길을 통과하기가 무척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평해길>을 오가는 나그네들이 묵었다 가는 공공여관인 "월계원 月溪院"이 있었다는 것인데
  <월계원>이 없어지고 새로운 <역원>이 생겼다고 <新院里>라는 마을이 생겼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공식적으로 15.2km이나 <두물머리>등 추가로 조금 더 걸어 15.8km로 GPS에 찍혔으며
  4시간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평해길 제4길 두물머리길>은 <양평물소리길 1-1코스>, 그리고 <1코스>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물소리길>이 제가 6년 전에 걷던 길과는 약간의 변경이 있더군요.
  
  <<부록>>
  1. 양평물소리길 1-1코스 두물머리 물래길 답사기. 여기 클릭
  2. 양평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 답사기. 여기 클릭
  3. 국수역-형제봉-청계산-부용산-하계산-양수역 산행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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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평해길 남양주구간' 종합안내도]

  ['두물머리' 부근 지도]

  ['3코스 실트랙']                        
  <남양주시의 예봉산(천마지맥)> <양평군의 청계산(한강기맥)> <광주시의 정암산{앵자지맥)>
  <하남시의 검단산(검단지맥)>이 주축을 이루는 산줄기들이 그 맥을 다하고 한곳에 모여
  고개 숙여 인사하며 서로 지난 얘기 조잘대는 "팔당호 八堂湖"로 <평해로>는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평해로 3코스>는 <남양주시 다산길>과 함께 가는 길이며, 우리 민족의 자랑인 불세출의 지식인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生家마을을 돌아 가는 길이어서 더욱 의미있는 <평해길>이 되겠습니다.


  ['팔당역']                  10:51            
  2021년 4월 14일 (수) 맑음
  <경의중앙선 팔당역>에서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을 시작합니다.
  역 뒤로 "예빈산 禮賓山 589m"이 조망되는데 "견우봉" "직녀봉"으로 이루어진 산입니다.
  잠시후 예전 저 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는 <능내마을 다산유적지> 사진을 보여 드립니다.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 안내도']                 
  <팔당역> 앞에 있는 <평해길 제3길 안내도>를 확인하고 바로 출발합니다.


  ['팔당역' 앞]                 10:52      
  <팔당역> 앞 광장에는 <다산길 안내판>도 함께있습니다.
  <검단산>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진행하면


  ['남양주시립박물관 입구']                10:54            
  곧바로 <남양주시립박물관> 정문 앞을 지나고


  ['예봉산' 조망]                  
  "예봉산 禮峰山 683m"을 조망하는데 축구공 모양의 기상레이다가 보이고


  ['예봉산 등산로 입구']               10:56    
  이어서 <팔당2리 입구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예봉산 등산로 입구>입니다.
  <평해길>과 <다산길>은 직진합니다.


  [삼거리]                  11:00         
  진행하는 이 길은 [옛6번국도]이고 우측에 [新6번국도]가 지나고 있는데 서로 옮겨 탈수 있는 곳인데
  <평해길>은 [옛6번국도]로 진행합니다.


  [뒤돌아 본 '팔당대교']                     
  <옛 팔당역>이 있던 곳에서 지나온 <新팔당역>이 있는 곳을 뒤돌아 보면
  <팔당댸교>와 <하남시>가 보이고...
  8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                    11:08         
  [옛6번국도]에서 좌측에 있는 <옛 중앙선 철길>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 <남원추어탕집>이 있습니다.


  ['옛 중앙선 철길']                   11:09       
  <남원추어탕집>에서 <도께비박물관> 방향으로 50m 정도 올라 가면
  "옛 중앙선 철길-현 국토종주자전거길"을 만나 <평해길-다산길>은 이어 집니다.


  {옛 철길]                   

  [쉼터]                        11:24                   
  <옛중앙선-자전거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팔당댐>이 조망되기 시작하는 곳에 쉼터가 있습니다.
  "팔당리 八堂里" 지명의 유래를 모르고 가면 감흥이 없습니다.
  '팔땅 구땅 장땡'...이런 걸로 알고 있지는 않나요? ㅎㅎ
  '북한강'과 '남한강'이 '경안천'과 합류하여 <검단산>과 <예봉산> 사이의 협곡인 "두미협 斗尾峽"으로
  흐르는데 강 양쪽의 산세가 험준하고 수려하여, 여덟명의 <선녀 仙女>가 내려와 놀던 명당자리가
  여덟 곳이나 있었답니다. 그 자리에 <仙女>들이 여덟 개의 堂을 지어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팔당리>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내용을 알고 보면 이곳 한강변의 경치가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현재는 <팔당댐> 건설로 의미가 빛을 바랬지만....


  ['팔당댐과 팔당호' 안내문]                   
  댐 건설하기엔 최적의 장소로 <팔당호>를 만들어 우리나라 인구의 반 이상이 사용 할수 있는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이며, 홍수 조절, 수력발전등 없어서는 절대 않될 <팔당댐> 입니다.


  ['검단산' 조망] 

  ['팔당댐' 조망]               11:42     
  지금의 <팔당댐>부터 <팔당대교> 사이를 "두미협 斗尾峽"이라고 한다고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협곡을 지나는 한강의 거센 물쌀은 큰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답니다. 
  이곳의 팔당 마을 사람들은 겨울이면 전부 모여 긴 쇠사슬을 가로치고 큰 민물고기를 몰아서 잡았다는군요.
  이 물고기 잡는 광경은 겨울의 큰 구경거리였답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기 고향의 사계절을 읊은 <소천사시사> 중에 있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두미협(斗尾峽)의 고기 구경"
        수정 물결 만 구멍 깊이 뚫린 곳    俯鑿玻瓈萬孔
        일천 길 쇠사슬이 가로로 쳐져      橫施鐵銷千尋
        날씨 추워 두건에 눈이 쌓이고      天寒綠帽盈雲
        햇살 쏘아 고기들 금빛 빛나네      日射紅鱗耀金


  ['팔당댐' '봉안터널']                 11:46      
  <팔당댐> 옆으로 <옛중앙선>이 통과하던 터널이 있습니다.


  ['팔당댐']                      
  "팔당댐"
  1966년에 착공하여 1973년에 완공되었다는데, 댐의 높이는 29m, 제방의 길이는 575m,
  총저수용량은 2억4,400만t이며, 유역면적은 2만3,800㎢라고 합니다
  수력발전으로 년간 2억5,600만kW의 전력을 생산하여 공급한다고...


  ['봉안터널' 입구]

  ['봉안터널']                      11:48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봉안마을'에 있어서 <봉안터널>이라 하는듯,,,,
  길이는 250m 정도 되는 <옛중안선> 철길이었지만 지금은 자전거 도로


  ['봉안마을']                    11:52      
  <봉안터널>을 통과하면 "봉안마을"이라고 안내합니다.
  <정약용 선생 집>에서 서쪽으로 <봉안역> 부근은 '청주 한씨'가 대대로 세거하던 곳이었답니다. 
  한수, 임숙영, 서유구, 여운형 선생등이 전후로 은거하던 곳으로도 알려졌다하며
  <정약용 선생>은 여름날 석양이 물들면 이곳의 매미 노래 소리 듣기를 좋아해서 시를 지었답니다.
               
              "유곡(酉谷)의 매미 소리"
              동으론 맑은 못물 내려다 보고  東壓澄潭止水
              서로는 숲 속 매미 소리를 듣네 西臨碧樹涼蟬
              새벽엔 듬성듬성 노래 박자요   曉日疏歌緩節
              석양엔 시끌시끌 피리 거문고   斜陽促管繁絃


  ['팔당호']                     
  <팔당호>가 펼쳐지며


  ['팔당댐']                 11:58          
  뒤돌아 보는 <팔당댐>과 좌측 <검단산>과 우측 <예빈산>입니다.
  가운데 계곡 "두미협 斗尾峽"이 댐 건설하기에 최적지로 모르는 제가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우측 <예빈산> 아랫마을이 <봉안마을>이라는군요.



  ['봉쥬르' 음식점]                12:04        
  <봉안터널>에서 12분여 <팔당호>를 진행하면 <봉쥬르>라는 한식당 앞을 지나는데
  음식점 입구에 좀 재미있는 조형물이 서 있고...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정약용유적지' 입구 쉼터]

  ['정약용유적지' 입구 사거리]               12:09    
  <옛6번국도>에서 <정약용유적지>로 들어 가는 길 입구를 만나는데, 자전거길과 교차하는 사거리입니다.
  자전거도로를 직진하면 <능내역>입니다만 <정약용 유적지>를 돌아 보고 <능내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여기서 자전거길을 버리고 우측 도로를 이용합니다.


  ['정약용유적지' 가는 도로]                      
  <정약용 유적지>로 가는 도로를 잠시 진행하면....


  ['스탬프함']                12:11~12:17       
  <평해길>과 <다산길>은 도로를 버리고 우측 둘레길로 안내되며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여기 <스탬프함>은 좌측 옆에서 열더군요. ㅎ <합수머리세월교>에 있는 스탬프함은 뒤에서 열어
  여기는 위에서 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ㅎ


  ['현위치' 안내도]               

  [현위치'와 '다산유적지' 상세지도]                    
  이곳에 설치된 안내도를 보면 여기서부터 "쇠말산 鐵馬山 79.4m"을 중심으로 <팔당호>에 뻗어 있는
  <능내리>의 "다산유적지" 위치를 잘 알수 있군요.


  ['머루터널']

  ['연꽃마을' 유래]                           
  <연꽃마을의 유래>를 알리는 별 의미없는 안내판은 건너 뛰고
  <머루터널>이라고 하는 꽃길을 통과하면


  [호반둘레길]

  ['아조타농원']                   12:23          
  호수 옆으로 낸 산길을 잠시 통과해 나가면
  <아조타농원>이 보입니다. 이름이 재미있는데 잠시후 우측 동산을 빙 돌아 <아조타농원 정문>앞으로
  <평해길>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뒤돌아 보면...


  ['팔당댐'과 '예빈산' 조망]                               
  <팔당댐>과 <예빈산>이 기가 막히게 좋은 경관을 보여 주는군요.



  [둘레길]                             
  다시 호수 옆을 통과하면 <조류관찰소>가 있고


  [철문]              12:32         
  이어서 철문을 통과합니다.


  ['아조타농원' 정문]                 12:34          
  그러면 조금 전에 보았던 <아조타농원>의 정문 앞을 통과하고


  [내림길]                  12:36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내림길로 내려 갑니다.
  이곳 좌측 산이 "쇠말산 鐵馬山"인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마을 유래에 대해
  이 산에서 부터 유래한다고 기록으로 남겨 놨더군요.


  ['조류생태습지' 앞]                  
  다시 팔당호 호변으로 나가면 <조류생태습지>와 음식점들을 만나며


  ['다산생태공원' 후문 입구]                     12:42   
  "다산생태공원 후문 입구"를 만납니다.
  <남양주시 八景> 중에 으뜸이라는 곳이 이곳 "정약용유적지"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다산생태공원']        
  공원 안에서는 <평해길>이나 <다산길>이거나 트랙을 따라 움직일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곳저곳 자유롭게 둘러 보고 정문으로 나가면 되니까요.
  저는 호숫가를 따라 진행합니다.



  [생태공원']                         
  공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공원 남단 끝으로 나가면....



  [공원 남단 끝]             12:52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가 조망되며 "경안천 京(慶)安川"이 <한강>과 합수하는 "팔당호"가 펼쳐지는데
  앞으로 나가 조망하면...


  ['소내섬'과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조망]                    
  <팔당호> 가운데에 "소내섬"이 조망됩니다.
  이곳 <팔당호>에는 세개의 섬이 있는데 앞에 보이는 <소내섬>과 잠시후 보게될 <족자섬>, 
  그리고 <큰섬>이 <양수리 남한강> 방향에 있는데 <소내섬>이 제일 크고 <큰섬>이 제일 작습니다. ^.^
  이렇게 수평으로 보면 잘 알수 없으니 제가 예전 2009년 5월 24일에 <천마지맥> 마지막 구간을 진행하며
  <예빈산>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주변 지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 사진을 보여 드리면....


  ['2009년 5월 24일 '천마지맥' 마지막구간 "예빈산 견우봉"에서 찍은 사진]    
  더 설명이 필요 없죠? ㅎ
  "경안천 京(慶)安川"은 예전에 "우천 牛川"이라고 했고 우리말로 "소내"였답니다.
  <경안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지점에 생겨난 섬이 "소내섬"이라는 걸 개천 이름에서 알수 있습니다.
  이곳에 대한 <국토지리원> 상세지도를 참고 하면...  


  [이 곳 상세지도]               
  [현위치]에서 <소내섬>과 <분원리>, 그리고 <족자섬>의 위치를 기억해 두고 다음 사진으로 넘어 가면...


  ['소내섬'과 '분원리' 약간 줌인 해 조망]                          
  윗 지도의 [현위치]에서 약간 줌인하여 <소내섬>과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왜 이 사진을 촬영했냐하면 그 유명한 <겸재 정선 선생>이 이곳 <분원리>의 어느 곳을 <진경산수화>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우천 牛川']               
  우리나라 <보물 1950호>로 지정된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우천 牛川"이라는 그림입니다.
  예전엔 <경안천>을 <우천>이라고 했다는 것은 이 그림의 이름을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
  그림 가운데 보이는 기와집은 "사옹원 분원"이랍니다.
  조선시대엔 국가에서 도자기 생산을 관활하는 "사옹원"이라는 관청이 있었답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조선 백자>의 핵심 생산 기지인 <광주 관요>가 있어 그 관요를 관리하는 
  "사옹원""분원 分院"까지 있었는데 바로 그림 속의 큰 기와집이랍니다.
  우측이 현재의 <경안천>인 <우천>이고...<팔당댐>이 없던 시절이니 감안해서 그림을 감상해야 합니다.
  <팔당댐>으로 이 그림의 상당부분 지역은 수몰되었답니다.
  현재 <분원리>라는 동네 이름까지 만들어 준 <分院>은 폐교된 <분원초등학교>에 자료관으로 남아 있고
  <조선백자>를 만들던 화려한 동네는 아시다시피 <붕어찜 음식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공원]         
  주차장으로 나가는 공원에는 주차장이 가까워서인지 관광객들이 이쪽에 많이 있더군요. ㅎ


  [정자]                        1:02

  ['김훈'의 '흑산' 소설에서 인용]         
  <정약용 선생>은 형제 자매와 함께 천주교를 공부했죠.
  자신은 천주교를 공부만 했지 믿지는 않았다고 국가의 탄압에 항거 했지만 결국 유배길에 올랐지요.
  그들 형제들은 앞에 보이는 <한강>을 건너 건너편 <퇴촌 천진암>으로 가 <서학>, 즉 <천주교>를 공부했죠.
  <팔당댐>이 없던 옛날엔 겨울철에 이 강을 걸어서 건널수 있었답니다.
  소설가 <김훈>의 <흑산>이라는 소설에 언급된 이곳은 윗글을 참고하고


  ['정약용유적지 주차장']               1:07            
  <다산생태공원>을 둘러 보고 <다산 생가>로 가는 길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면...



  ['정약용유적지' 입구]              1:09   
  "정약용 유적지"
  여길 다녀 간 적이 없는 분은 안 계시죠? ㅎ
  그런데 깊이 있게 선생의 인생을 들여다 보신 분은 많지 않겠죠?
  르네상스시대를 이끈 <레오날드 다빈치>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우리나라의 <정약용 선생>을 꼽습니다.
  저는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정약용 선생>을 생각하고 닮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그림자 끝도 따라 가지 못했습니다.



        


  ['다산 유적지' 정문]                         
  선생의 생가 안으로 들어 가면...


  ['여유당' '묘' '문도사' 전경]                  
  우측에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이 있고, 생가 뒤에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엔 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문도사 文度祠"가 있습니다.


  ['여유당']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생가를 복원한 "여유당 與猶堂"입니다.
  <남양주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용합니다.
  당호(堂號)인 여유(與猶)는 선생이 1800년(정조24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으로 여유당기(與猶堂記)를 통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智謀)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 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 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 한다.(중략)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 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 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깎는 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여유당 與猶堂"이라고 지은 이유를 조금 쉽게 해석하자면
  "與猶"의 <與>는 <머뭇거릴 '여'>이며, <猶>는 <망서릴 '유'>로 
  즉, 주변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듯이 조심하면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라 할수 있죠.
  정적들이 자신을 죽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은 의미있는 집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여유당' 안채]                           
  <정약용 선생>의 심정을 조금 더 알기 위해선 당시 정치상황을 알아 봐야 하겠죠.
  선생이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있던 1799년(정조23년)에는 선생에 대한 노론(老論)의 공격이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는 선생을 비롯한 남인의 정치적 스승이었으며 <정조>의 충직한 신하였던
  영의정 <번암 채제공 선생>이 돌아가신 해이기도 했는데, 이 무렵 <정조>는 <다산>을 무한히 신뢰하고
  있었으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흔한 광경으로 <다산>이 판서(判書)가 되고 재상(宰相)이 되어 
  <제2의 채제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노론>에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노론 벽파>는 선생을 제거하려고 꼬투리를 잡아 보려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꼬투리 하나를 부상시키는데, <노론>은 교활하게도 형 <정약전>을 <서학>을 믿는다는 꼬투리로
  공격해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는데, 가족이 물러나면 벼슬자리에 있는 다른 가족도 사직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귀양 가 <자산어보>라는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해양 생태계 학술지를 집필하고 그곳에서 죽었지요.
  <정약용 선생>은 분노했고 세상이 혐오스러웠습니다.
  벼슬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선생은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관직을 그만 두기를 청하였습니다.
  <정조>는 계속 만류하였지만 선생이 벼슬을 거부하자 할 수 없이 그해 7월 26일 이를 허락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1800년(정조24년) 봄에 아버지 정재원이 낙향했던 것처럼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서 집의 문미(門楣)에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은신하였습니다.
  그 해 6월 12일 달밤에 <정조>의 유시를 전하려 규장각 아전이 한서선(漢書選) 10질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5질은 남겨서 가전(家傳)의 물건을 삼도록 하고, 나머지 5질은 제목의 글씨를 써서 돌려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를 부르리라." 하니 선생은 가슴이 벅차 눈물을 흘렸답니다. 
  <노론> 틈에 <정조>를 홀로 남겨놓고 온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은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으나
  2주 후인 6월 28일 <정조>는 <노론>에 둘러싸여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지요.
  이로써 선생은 지은 죄도 없이 정치보복인 정적으로 몰려 마흔살에 18년간의 귀양길에 오르며 
  나라를 개혁하여 발전시키려던 꿈은 <정조대왕>과 함께 산산조각이 납니다.
  이 시기에 세계는 <르네상스시대>와 <산업혁명>의 새 시대로 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시대"로 직행하며, 식민지 시대를 여는 암흑시대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묘지 입구]                  
  선생은 죽기 전에 자신이 죽으면 집 뒤 동산에 뭍어 달라고 유언했기에 <여유당> 바로 뒤에 묘를 썻습니다.
  선생의 아버지는 진주부사라는 관직까지 한 <정재원>이라는 분이며, 본부인은 <정약현>을 낳고  일찍 죽어
  세칸드인 <海南 尹氏>에게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그리고 누이 까지 네명이 태어 납니다.
  물론 다른 여러 형제가 있으나 모두 일찍 죽었습니다.
  어머니 <海南 尹氏>는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 윤선도"의 6세손이고,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詩·書에 두루 능했던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입니다.
  이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정약용선생은 어려서 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살 때에 선생의 최초의 漢詩인 "山"이라는 詩를 지었으니 천재임을 입증해 줍니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네'
     
  그 옛날 어린 나이에 벌써 원근법을 깨우쳐서 천재라 했고 한자 실력이 장난이 아니죠.

 
 

  ['정약용선생' 요약 일대기]                           
  선생의 일대기를 요약하여 알기 쉽게 만든 삽화가 있어 첨부했으니 읽어 보시고


  ['다산 정약용선생 묘']        
  <茶山 정약용선생>은 1762년에 이곳 <능내리 마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5살이 되던 해에 <풍산 홍씨>와 혼인하여 6남 3녀를 낳았는데 4남 2녀는 일찍 죽고
  2남 1녀만 살아 남았는데 장남이 <농가월령가>을 지은 <정학유>이고 동생이 <정학연>이며
  딸은 <이승훈>에게 시집가서 우리나라 천주교 개척에 큰 역활을 한 신여성이지요.
  정약용선생의 가족 사랑은 끝이 없었습니다
  18년간의 유배생활
  유배지에서 그리워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 표현은 극치를 이룹니다
  <如夢令寄內>라는 사랑 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如夢令寄內 - 꿈속에서 본 아내에게 
          하룻밤 사이에 지는 꽃이  헤아릴수 없는데 
          산비둘기와 어미제비가 지붕을 맴도네. 
          외로운 나그네 돌아간다 말 못하니 
          언제나 침실에서 아름다운 인연 맺을까나. 
          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 
          슬프고 서글픈 표정의 꿈속에서 본 아내 얼굴을

  58세에 유배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75세가 될때까지 다시 아내와 잉꼬부부로 살았답니다.
  75세까지 사는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장수 한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60주년까지 사시는데 이런 것을 <회혼 回巹>이라고 하지요.
  부부가 함께 결혼60주년까지 살아야 하니 매우 어려운 경우입니다
  결혼 60주년에 "회혼례식"을 올리는게 가문의 영광이죠. 
  요즘은 결혼도 늦게해서 부부가 동시에 결혼 60주년까지 살기도 어려워 "회혼례식"을 하는 부부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만, 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회혼례식"을 하였고 동네 잔치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은 불행이도 <회혼례 回巹禮>를 올리려는 날 아침에 돌아 가십니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는 없죠.
  선생은 돌아 가시기 전에 <회혼시 回巹詩>를 남겼습니다.
 
             回巹詩
            六十風輪轉眼翩 穠桃春色似新婚
            生離死別催人老 戚短歡長感主恩
            此夜蘭詞聲更好 舊時霞帔墨猶痕
            剖而復合眞吾象 留取雙瓢付子孫
 
                   회혼시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 갔는데도
           짙은 복사꽃, 봄 정취는 신혼 때 같구려.
           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사람 늙기를 재촉하지만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이 밤 〈목란사〉 소리 더욱 좋고
           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은 아직도 남아 있소.
           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니
           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 줍시다



  ['자찬묘지명']                         
  선생은 죽기 전에 자신의 묘에 넣을 <묘비명>을 스스로 작성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자신의 일대기를 스스로 거짓없이 기술했습니다.
  너무 길어 생략하고  일부분만 사진으로 소개 합니다.


  [묘소에서 '여유당' 조망]

  [묘소에서 내려 가는 길]

  [묘소에서 '문도사' 조망]                    
  저는 선생이 쓴 글중에서 <유산 遺産>에 대해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집니다.
  자식에게 <유산 遺産>을 남겨 주는데 현금이나 부동산등을 남겨 주지 않고
  "글자"를 <遺産>으로 남겨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마도 <정약용선생> 뿐일 것입니다
  그 유명한 선생의 <遺産> 전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논밭을 너희들에게 남겨 줄 만한 벼슬을 못했으니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을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이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부지런함>과 <검소함>,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이나 기름진 토지보다 나은 것이니 
     평생을 두고 필요한 곳에 쓴다 할지라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근(勤) 부지런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 때까지 미루지 말라.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늦추어서는 안된다. 
     집안 식구들이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한순간도 게으름이 없는 것을 <부지런함>이라 한다. 
     또 <검(儉) 검소함>이란 무엇인가.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이 옷을 먼 훗날까지 입을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 
     가는 베로 만들면 머지않아 해어지고 말테니 질박한 천으로 만들어 입으라. 
     음식도 목숨을 이어가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거라.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탐하면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모할 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조건을 극복하는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여유있는 가정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다. 
     그러니 가슴깊이 새겨 두라고 거듭 당부한다."
 
  <정약용선생>의 아들 <정학유>와 <정학연>은
  아버님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후에 조선시대 大學者가 되지요?
  위에서도 언급 했드시 선생의 아들 "정학유 丁學游"는 그 유명한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를 지었지요


  ['문도사']
          
              [영정]                    
  선생의 영정은 유리 액자 속에 있어 빛반사로 사진이 좋지 않습니다만 제 카메라 성능은 좋지요?ㅎ
  선생은 자신을 "삼미자 三眉子"라고도 하고 10살 이전에 쓴 시를 모아 <三眉子集>를 냈답니다.
  "三眉"라는 말에서 "眉"는 눈섶이라는 뜻이죠. 눈섶이 세개라는 의미이니,
  선생은 자신을 "三眉子"라고도 했던 것입니다. 속칭으로 '눈섶이 세개인 놈"이라는 말이지요
  선생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눈섶 사이에 흉터가 생겨 눈섶이 떨어져 
  눈섶이 세개로 보여 해학적으로 스스로를 "三眉子" '눈섶이 세개인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선생은 천연두로 곰보 였던 모양입니다.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천연두로 곰보가 된 사람이 많았지요?
  그후 천연두가 요즘 <코로나19>보다 더 무섭게 번지자 <천연두 예방과 치료법>을 책으로 펴냈는데
  그 책의 이름이 <마과회통 麻科會通>이니 의학까지 섭렵했습니다.


  ['실학박물관']               
  <실학박물관>은 밖에서만 흘깃 보고 유적지를 떠납니다.


  [시내버스]                  1:30        
  <운길산역>에서 <다산유적지>를 운행하는 좀 독특한 모양의 시내버스가 여전히 다니고


  [고개 오름길] 

  ['마재고개']                 1:37           
  유적지 입구에서 7분여 고개를 오르면 <마재고개>에 오르는데
  <평해길>과 <다산길>은 좌측으로 가라고 합니다.


  [지명의 유래]         
  지명의 유래 안내판이 있고



  ['마재성지' 앞 갈림길]                1:42          
  <마재고개>에서 잠시 내려 가면 "마재성지"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내려 가면..


  ['마재성지' 정문]                     1:43


  [성지 안 조형물]         
  "마재성지" 정문을 만나 들어 가 보고
  5분여 골목을 빠져 나가면...


  [자전거도로]                      1:48

  ['능내역' 앞 음식점]                          
  <다산유적지 입구 사거리> 스탬프함이 있던 곳에서 헤어졌던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를 다시 만나며
  <능내역> 앞 음식점에 도착합니다.


  ['능내역']               1:48            
  "능내역 陵內驛"
  마을 뒤에 작은 언덕이 있어 <능내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기고 이 마을에 기차역이 들어 섯는데
  이젠 폐역이 되어 그 옛날의 추억만 서려 있답니다.




  ['능내역' 안]                    
  폐역이 된 역 안엔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을 뿐....


  ['행복행 추억 열차']                  1:53       
  낡아서 페인트 껍질이 더덕더덕 일어나 흉물스런 기차 카페가 외롭게 "행복"을 추억하고...
  이 기차 옆 자전거 도로를 따라 7분여 진행하면...


  ['다산유적지' 들날머리']               2:00~2:18      (조망및 휴식)   
  <옛6번국도>에서 <다산유적지>로 통하는 동쪽 들날머리를 만나는데


  ['쉼터']

  ['족자섬' 조망]                 
  이곳에 쉼터가 있으며 유명한 "족자섬"이 조망됩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며 여울치는 물쌀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두물머리>에 있는 섬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소내섬> 다음으로 큰 이 지역 섬이죠.
  <정약용 선생>은 이곳 앞에서 물고기를 잡고,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형제들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곳이라고 그 내용을 시로 남겼습니다.
  <남자주 藍子洲>는 <족자섬>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남자주에 당도하여 [行次藍子洲]    (다산시문집 제2권)

                맑은 골짝 강물에 배 저어 오니      移舟汎淸壑
                좋은 누대 그 모양 처량도 하다      惆悵好亭臺
                환하게 핀 꽃가지 숨어 있다면       故故花枝隱
                하늘하늘 버들 언덕 감돌았구나      輕輕柳岸廻
                물가의 고을이라 송별이 많고        水鄕多送別
                인간의 세상이라 설움도 많다        人世足悲哀
                지난 옛날 어머님 사시던 문 밖      舊倚門閭外
                지금 이 몸 쓸쓸히 오락가락해       於今自去來


  [약간 줌인한 사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만 사진의 한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약간 줌인해 봅니다.
  <정약용선생>도 올라 산행기를 남긴 <용문산 백운봉>이 <한국의 마테호른> 답게 솟아 있습니다.
  선생은 등산을 무척 좋아한 메니아였죠. 전국 각지의 산행기가 남아 있습니다.


  ['족자섬' 안내문]

  ['겸재 정선 선생'의 '독백탄']                          
  <족자섬> 주변에 대한 진경산수화를 <겸재 정선 선생>이 남겼습니다.
  제목은 "독백탄 獨柏灘"으로 <보물 제1950호>로 지정된 그림입니다.
  <겸재 선생>이 그린 그림으로는 <한강>  최상류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모두 <양천현감>일 때 그렸죠.
  <독백탄>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족자섬> 옆으로 급하게 흐르는 여울을 일컷는 답니다.
  그리고 우측 제일 높은 산이 <운길산>이며 <수종사>도 그려놨습니다.
  가운데 마을이 '새들도 편안하게 쉬어 간다'는 <조안리>이며
  강 가운데 섬이 <족자섬>이랍니다. 
  이 그림을 그린 위치는 이곳이 아니고 다음 사진을 보면서 추측해 보면....


  ['2005년 5월 24일 천마지맥을 하며 '예빈산(직녀봉)'에서 찍은 사진] 
  <족자섬>의 위치와 모양이 알기 쉽게 보이죠? ㅎ
  윗 그림 <독백탄>은 <족자섬> 뒤에 있는 <앵자지맥의 끝-정암산>이 있는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에서
  이쪽을 보고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운길산>과 <수종사>의 각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운길산' 조망]              2:18                
  쉼터에서 <족자섬>을 조망하고 다시 길을 나서니 <운길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운길산 雲吉山 610m"은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는 구름이 많아 구름도 쉬어 가는 吉地"라고 지어진 이름이라 합니다.
  이 지역의 지명은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많다고 여러번 언급한바 있습니다.


  [자전거도로]

  ['신양수대교'로 가는 6번국도]                        2:24

  ['조안1리 사거리]                2:32               
  쉼터에서 15분여 진행하면 <조안면 면사무소>가 있는 <조안1리 사거리>를 지나고


  ['양수대교' 조망]                  2:38       
  <양수대교>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조안2리' 입구]                     2:45

  ['예봉산' 조망]                           
  이어서 <조안2리> 입구를 지나며 <조안2리>와 <예빈산> <예봉산>을 조망하고


  ['청계산' 조망]                     2:49     
  <양수대교> 뒤로 <한강기맥>이 지나는 <청계산>과 <평해길4코스>와 <양평물소리길1코스>가 지나는
  <부용산>이 조망되는군요.


  ['운길산' 조망]

  ['다산'의 정원이었던 '수종사' 조망]                    
  <운길산역>에 다가가면 <운길산>과 <수종사>가 아주 가까이 보입니다.
  <수종사>는 <정약용선생>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등 많은 문인, 예술가들이 
  즐겨 찾아 그림과 시 등을 남긴 곳이기도 하지요.
  <정약용선생>은 <수종사기>를 지어 <수종사>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는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운길산역']                  3:07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 도착하며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과 <남양주 다산길>을 함께 마침니다.


  ['다산길']

  ['제3길 정약용길' 안내도]                           
  안내도에는 12.9km라고 하지만 저는 지그재그로 둘러 보며 걸어 13.6km를 걸었고
  4시간 15분 정도가 걸렸군요.
  <다산 정약용선생>의 발자취를 살펴 보며, <겸재 정선 선생>의 진경산수화 속으로 여행하여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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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2길 미음나루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평해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관동대로>라고 부르는 길로서 <서울>에서 <원주><강릉><삼척>을 지나
  [관동팔경 월송정]이 있는 '경북 울진군 평해'까지 이어지는 길이랍니다..
  <평해길> 중에 <경기도 구간>만을 [경기도]가 걷기코스로 개발하였답니다.
  그러므로 실제 <옛길 경기 평해로>와 <걷기코스>로 새로 개발된 길은 다릅니다.
  걷기코스로 새로 개척한 길이니 <옛길>이 아니라 <新作路>...


  ['합수머리세월교']                    1:07             
  <제1길 망우왕숙길>의 종점인 "합수머리세월교"에서 계속해서 <제2길 미음나루길>을 진행합니다.
  이 간이 다리는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市界가 되기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건너편은 '남양주시' 입니다.


  ['합수머리세월교'에서 북쪽 조망]                 
  <합수머리세월교>를 건너 가며 조망을 합니다.
  <합수머리세월교> 중간에서 먼저 북쪽을 바라보면 지나온 <제1코스>의 <왕숙천> <구리타워>가 보이고...
  가운데 보이는 산은 <남양주시 황금산>이라는데 여기도 <황금산>이 있군요.


  ['합수머리' 조망]                       
  남쪽으로는 <왕숙천>이 <한강>과 만나는 <합수머리>가 보이며 그 위로 서울강변북로 연장선이 지나는
  <수석교>가 보입니다.


  ['제2코스 출발지]                  1:09         
  2021년 4월 8일 목요일 맑음
  <합수머리세월교>를 지나면  "제2길 미음나루길"의 출발지가 반겨 줍니다.
  이곳에는 <평해길 경기도구간 안내도>와 <제2길 스탬프함>이 설치되 있습니다.
  이곳 <스탬프함>은 뒤에서 열어야 하더군요. ㅎ ㅎ앞에선 안열립니다.
  <망우리>에선 옆에서 열도록 하더니 여긴 뒤에서...ㅎ다음 스탬프함은 또 어쩔려나..위에서 열어야 할까? ㅋ


  ['평해길 남양주구간' 종합안내도]
  <평해길 남양주시 구간>은 2개 구간으로 여기서 <운길산역>까지 "24.9km"라고 알려 줍니다.


  ['평해길 2코스 실트랙'] 
  이 지도는 제가 실제 진행한 <제2길 미음나루길>의 실트랙 지도이고


  ['제2코스 안내도']                           
  그리고 "평해길 제2길 미음나루길"은 <합수머리세월교>에서 <한강변>을 따라 <팔당역>까지 
  "12km"라고 공식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수석교']

  ['합수머리 전망대']                    1:17          
  <수석교>를 통과하면 <합수머리 전망대>가 설치되 있어 조망을 하고 갑니다.


  ['강동대교' 조망]                             
  서쪽으로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지나는 <강동대교>가 보이고


  ['남한산성' 조망]                          
  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과 <남한산>등이 보입니다.


  ['미음나루' 방향 조망]                   
  동쪽으로는 앞으로 진행해야할 방향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특히 이 길의 이름을 <제2길 미음나루길>이라고 만들어 준 <미음나루>가 가까이 있습니다.


  ['미음나루음식문화특화거리']               1:26      
  여기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水石洞'이며 "미음나루 음식특화거리"라고 합니다.
  <수석한강공원>과 함께 먹자거리를 형성하고 있어서 저도 한번 밥먹어러 와 본 적이 있습니다.


  [한정식집 '초대']           
  여기에 <초대>라는 한정식집이 있는데 저는 아들들 덕분으로 한번 다녀 간 적이 있습니다.
  이 한정식집에 대해 제가 다녀와 포스팅 한게 있으니 궁금하시면 클릭해서 보세요
                   "가족나드리-"초대"


  ['미음나루']                         1:33

  [안내문]                      
  "미음나루 渼陰津"
  옛날 강원도에서 한양으로 배와 땟목이 운송수단으로 쓰일때 뱃사공, 나그네들이 여기서 쉬며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가던 나룻터였답니다.
  지금은 음식특화거리로 조성되어 손님을 끌고 있고...


  ['미음나루' 앞 전경]                           
  <미음나루> 앞에는 차단 가드레일이 설치되 있어 나룻터였다는 흔적은 사라지고
  한강 건너편엔 <하남시> 아파트 단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습니다.
  이곳 <한강>이 <미호 渼湖>라고 하는 <한강 옛 이름>인데 "미음나루 渼陰津"라는 나룻터의 이름을
  만드는 지명이었으니 잠시 후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미음나루 음식카페거리' 통과]                           
  10여분 <미음나루 음식특화거리>를 통과하면...


  ['미음나루고개' 오름길]

  ['미음나루고개']                   1:45             
  <평해길>과 <한강자전거길>은 강변을 벗어나 고개로 올라 갑니다.
  고갯마루의 이름은 <미음나루고개>라 하는데 여기서 <자전거길>을 버리고 좌측 산으로 올라 갑니다.
  입구에 <조말생 묘> 안내판이 있습니다.


  ['조말생 묘' 조망]                           
  산으로 잠시 올라 가면 우측에 <조말생 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상당한 크기의 봉분이어서 금방 알아 볼수 있었습니다.




  ['조말생 묘']                  
  "조말생 趙末生 1370~1447 고려말 공민왕19년~조선 세종29년"
  1370년(고려 공민왕 19년) 생입니다. 이름이 좀 재미있죠? 
  이름이 <끝 말(末)>, <날 생(生)>이지만 막내는 아닙니다. ㅎㅎ
  부모가 애들 이젠 그만 낳자고 <말생 末生>이라고 지었다가, 하나가 더 생겼던지 막내 이름은 <조종생>으로
  <마칠 종(終)> 자를 사용하여 <趙終生>이었으니 형제가 너무 많았던게 틀림없습니다. ㅎㅎ
  <조말생>은 <태종1년>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수재인데, <태종 이방원>이 무척 좋아하고 아낀 인물로
  <태종>이 후궁 사이에서 낳은 옹주와 <조말생>의 장남을 결혼시키고, <태종>의 아들과 <조말생>의 딸을
  다시 결혼 시켜서 <태종>과 <조말생>은 겹사돈이 되는 관계였죠. 
  조선왕조 최대의 권혁형 뇌물 스캔들인 <조말생의 권력형뇌물사건>
  그 사건을 감추려하는 치졸한 술수...2차 범죄...
  <조말생>은 무지 똑똑한 머리로 잘 한 일도 많지만, 정말 치졸한 방법으로 뇌물을 받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한 술수가 더 치졸해 요즘 정치 스캔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방법으로 감추려 해
  수사를 했던 의금부 관리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듯 했고 사헌부가 사형을 구형했지만 
  <세종>은 큰 벌을 내리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세종>은 그를 의금부 제조로 임명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뇌물 전과자가 대법원장 혹은 
  검찰총장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헌부 관리들이 항의의 표시로 집단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한데 
  "세종은 <조말생> <황희>등 범죄사건에 연루된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능력을 중시한 실용적 판단"이라고들 평가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
  ㅎ 저는 아직도 훌륭한 <세종대왕>이 왜 그랬는지 지금도 전혀 이해 못합니다.
  그리하여 <조말생>은 78세까지 장수하고 <양주 조씨>의 중시조가 되었죠.


  ['조말생 묘'에서 조망]                              
  <조말생의 묘>는 원래 이곳이 아니고 현재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고종의 홍릉>이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고종>이 그 묘터를 빼앗아, 1900년에 <조말생 묘>는 이곳으로 이장하였으니 
  이곳으로 이장 한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이곳의 묫자리는 그 어느 곳 보다도 정말 명당 자리같지 않나요?
  아 ~~ 권력과 富....모두 허망한 것이리라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가는 인생에 욕심은 치욕을 남길 뿐....
 <세종실록 116권, 세종 29년 4월 27일 무오 2번째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 있습니다. 
  "諡文剛, 學勤好問文, 追補前過剛。 末生氣度恢洪, 處事寬厚, 太宗重器之。 然玷汚其身, 終不任國事"
  "시호를 문강(文剛)이라 하였으니, 문(文)은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함을 뜻하고,
  강(剛)은 지난 허물을 뒤쫓아 고쳐 기움을 뜻한 것이다. 말생(末生)은 기개와 풍도가 크고 너르며
  일을 처리함에 너그럽고 후덕하여 태종이 소중한 그릇으로 여겼으나, 
  옥에 티가 신상에 오점(汚點)이 되어 끝끝내 국무 대신이 되지 못하였다."
    
  "기개있고 도량이 크며 일처리 방식이 너그럽고 후덕했지만,
  뇌물 사건의 오점이 커서 정승이 되지는 못했다"는 평을 <세종실록>에도 남겼습니다


  ['석실서원 터']                   1:53         
  <조말생 묘> 우측 앞에는 석물을 나열해 놨는데 뭔지 잘 모르겠고
  앞에 옛날 "석실서원 石室書院"이 있었던 곳이라고 표지석을 세워 놨는데 깜빡 촬영을 못했습니다.
  <석실서원>에 대해선 잠시 후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제2길 미음나루길>의 하일라이트이니까요.


  ['영모재' 조망]

  ['영모재']                        1:58             
  <조말생 묘> 아래에는 <양주 조씨 중시조>인 <조말생 선생>을 배향한 사당인 "영모재"가 있습니다.
  1997년에 후손들이 창건했다고 하네요.
  <영모재>에서 마을을 통과해 내려 가서 뒤돌아 보면....


  ['석실마을']                    2:03          
  "석실마을 石室마을"
  그 치욕의 역사 <병자호란>의 핵심인물 중에 주전파로 꼿꼿한 절개를 지켰던 
  "청음 김상헌 淸陰 金尙憲" 선생이 은거하며 말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손자들이 그들의 고향인 '안동'을 떠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영조시대>에 영의정 등 숱한 고위 관직에 올라 국정을 운영하는 집안이 살던 곳이였죠.


  [안내문]                         
  그런데 안내문에는 <청음 김상헌 선생>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군요.
  "병자호란과 김상헌"
  1636년12월 14일 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간
  유난히도 춥고 눈도 엄청 많이 내렸고 일식도 나타나는 겨울에
  <남한산성>에는 [인조]라는 쪼다리 임금이 있었고,
  체찰사로서 난국의 해결을 시간에 맡기는 양다리의 명수 영의정 '김류'가 있었고,
  의로움과 충성심으로 절대 굴복은 없다며 오로지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  예판 '김상헌'이 있었고,
  매국의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임금이 살길은 화친이라고
  말이 화친이지 실제는 항복이라는 말을 비틀어 화친이라고 말 하는 이판 '최명길'이 있었습니다.    
      "죽어서 살것인가, 살아서 죽을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옥신각신 말싸움만 하다가  <남한산성 西門>을 통해 내려가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며
  그들은 결국 대한민국 역사에 도리킬수 없는 오점을 남기며 
  얼마나 더 오래 살지도 모를 목숨을 부지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에서 삶과 죽음을 오갔던 <인조>는 치욕의 삶을 감수하고 살아 남았습니다.
  <병자호란> 한달쯤 후인 1637년 2월 27일 <청음 김상헌>은 보따리를 싸서 고향 '안동'으로 낙향했답니다.
  그리고 '안동'의 거처를 '청나라를 멀리 한다'라는 의미의 <청원루 淸遠樓>라 하고 살았는데
  그로부터 2년여 후인 1639년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 군대의 출병을 요구하자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 <심양>으로 압송되었는데,
  이때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훗날의 효종)>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습니다.
  또한 항복을 주도했던 <최명길>도 2년후 '명나라'와 비밀외교를 하다 적발되어 <심양>으로 압송 
  되었으니 주전파 주화파가 모두 '청나라'의 볼모가 된거죠.
  이렇게 오랜기간 '심양'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김상헌>은 <장동 무속헌(無俗軒)>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선영이 있는 <덕소>로 돌아왔습니다. 몇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사양하고 이곳에 은거했답니다.
  *<장동 무속헌(無俗軒)>*은 현재 청와대 옆 옛 안기부의 안가였던 <궁정동 안가> 자리에 있었는데
  <궁정동 안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 난 곳이죠.
  지금은 안가를 허물고 <무궁화동산>으로 변모한 곳이 <김상헌선생의 자택>이었답니다.
  현재 공원화 되었고 선생의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과 시비가 세워져 있더군요.


  ['겸재 정선 선생'의 '미호']                             
  "미호 渼湖" 보물 제1950호-'겸재 정선' 作 
  <겸재 정선 선생>은 <양천현감> 시절 한강을 거슬러 올라 가며 <김상헌 선생>이 여생을 보낸 <石室마을>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미호 渼湖"는 이 마을 앞 <한강>을 이르는 당시 명칭이었답니다.
  그림의 제목은 "미호 渼湖"이지만 <청음 김상헌선생>이 기개와 지조를 지키며 사신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양주 선비'들이 세운 서원인 <석실서원>을 그린 것이랍니다.
  <겸재 선생>의 이 그림이 아니었다면 글로만 전해질 그 모습들을 실물에 가깝게 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이 들어 있는 <경교명승첩>을 우리나라 <보물 제1950호>로 지정하였겠지요.
  <겸재 선생>은 화가이지만 <감상헌선생 가문 김씨>들의 힘으로 관직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릴수 있어서
  특별히 <장동 김씨(안동 김씨)>들에 대한 그림이 많다는군요.


  [현재의 '미호']                                
  "미호 渼湖"에 대해선 잠시후 "당정섬"에 가서 언급하겠습니다.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에서 삶과 죽음을 오갔던 <인조>는 치욕의 삶을 감수하고 항복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병자호란> 한달쯤 후인 1637년 2월 27일 <김상헌>선생은 보따리를 싸서 고향 '안동'으로 낙향했답니다.
  그리고 '안동'의 거처를 '청나라를 멀리 한다'라는 의미의 <청원루 淸遠樓>라 하고 살았는데 현재도 있습니다.
  그로부터 2년여 후인 1639년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 군대의 출병을 요구하자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 <심양>으로 압송되어 볼모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청나라 심양'으로 압송 될때 읊은 시조가 그 유명한 이 시조이죠.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병자호란> 때에 살길은 오직 항복이라고 항복을 주도했던 <최명길>도 
  2년후 '명나라'와 비밀외교를 하다 적발되어 <심양>으로 압송 되었으니 주전파 주화파가 모두 포로가 된거죠.
  '심양감옥'에서 다시 조우한 <김상헌>과 <최명길>
  여기서 <김상헌>이 <최명길>에게 한 말이 오히려 더 의미있습니다.
      成敗關天運(성패관천운)  성공과 실패는 천운에 달렸으니
      須看義與歸(수간의여귀)  모름지기 모든 것은 의로 돌아가야 하느니.
      雖然反夙暮(수연반숙모)  아침과 저녁은 바꿀 수 있을망정
      未可倒裳衣(미가도상의)  웃옷과 아래옷을 거꾸로 입을소야.
      權或賢猶誤(권혹현유오)  權권은 어진  이도 그르칠 수 있으나
      經應衆莫違(경응중막위)  經경은 사람들이 어길 수 없느니.
      奇言明理士(기언명리사)  이치 밝은 선비에게 말하노니
      造次愼衡機(조차신형기)  급한 때라도 저울질은 삼가할진저


  ['덕소' 조망]              2:04            
  <석실마을>을 뒤로 하고 <덕소>를 향해 <평해길>을 진행합니다.
  <청음 김상헌 선생 묘>는 이 사진의 좌측 <덕소> 뒷쪽 선영에 있는데
  주소는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 5번지' 입니다.
  20여분 강변길을 진행하면.....


  ['한강공원 삼패지구']                   2:26          
  "한강시민공원 삼패지구"
  약 240,000㎡ 크기의 한강시민공원으로 2015년에 개장했답니다.
  자전거공원, 대규모공연장, 피크닉장, 생활체육시설, 물놀이장, 음악분수, 테마초 화원...등등이 있다고


  ['평구마을']                      
  "평구마을 平丘마을"은 고교학창시절 고문시간에 배운 <정철선생>이 지은 <관동별곡>에도 등장하는
  <평해로>에서 매우 중요한 驛인 "평구역 平丘驛"이 있던 곳인데 이제서야 현장을 찾아 봅니다.
  그 유명한 <관동별곡>의 첫구절 다시 한번 감상해 볼까요? ㅎ
  
           江강湖호애 病병이 깁퍼 竹듁林님의 누엇더니,
           關관 東동 八팔百백里니에 方방面면을 맛디시니,
           下하直직고 믈너나니 玉옥節졀이 알패 셧다
           延연秋츄門문 드리다라 慶경會회南남門문 바라보며,  
.          平평丘구驛역  말을 가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昭쇼陽양江강 나린 믈이 어드러로 든단 말고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 관찰사>라는 직책을 제수 받아 강원도로 가며 <평구역>에서 말을 갈아 타고
  <여주><원주><춘천><철원><화천>을 지나 <금강산>으로 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많큼 <강원도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驛이었다는 것을 <관동별곡>에서도 알수 있죠.
  이런 얘기로 '스토리텔링' 안내판을 만드는게 좋지 않을까요?


  ['다산길1코스' 출발지]                      
  "한강시민공원 삼패지구"
  이곳은 "남양주시 다산길1코스 한강나루길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다산길>은 13개 코스로 되 있는데 저는 2016년에 몇개 코스를 다녀 온바 있습니다.


  ['미사대교']                 2:32~2:49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한강다리인 <미사대교>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고래]                  2:51         
  강 가에 왠 고래? ㅎ
  고래는 이쁘고 상어는 무섭고...


  ['덕소역' 앞]                  2:55        
  이어서 <덕소역> 앞에 있는 <6번국도>가 지나는 <덕소강변대로> 밑에 도착합니다.
  <덕소역>은 여기서 200m 정도 거리인듯....
  다리 아프신 분들은 여기서 <평해길 구간>을 끊어 진행하면 접속구간을 줄일수 있겠더군요.


  ['6번국도' '덕소강변대로']                         
  <6번국도>인 <덕소강변대로> 밑을 40여분 진행하면....


  ['강북아리수정수센타']                 3:33       
  <강북아리수정수센터>를 지나고
  다시 25분 정도 더 진행하면....


  ['한강공원 팔당지구']                   3:59          
  <한강시민공원 팔당지구>에 도착합니다.
  더디어 <팔당대교>와 <검단산>이 가까이 조망됩니다.


  ['당정섬' 조망]                      4:11

  [안내문]                           
  <한강시민공원 팔당지구> 앞에는 "당정섬"이라는 섬이 있습니다.
  뒤에는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있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한강>이라는 이름이 실제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 <한강>은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는 <교하 交河>까지만 이어지고 
  그 이후 <강화도> 앞 바다까지는 <조강 祖江>이라고 하지요.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 협곡을 빠르게 통과한 <한강>은 <팔당대교(옛 도미나루)>를 지나면
  강폭이 넓어지면서 유속은 느려지고 퇴적물인 모래가 주로 쌓이는데, 
  이렇게 쌓여 만들어진 섬이 "당정섬(堂亭섬)"이랍니다.
  이 섬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에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고 한강제방공사와 도시개발을 위한 모래 채취로
  사라지기도 했으나 자연은 다시 모래섬을 만들었습니다.
  이 한강 물이 흘러 <왕숙천> 물길과 만나는 <합수머리>까지의 <한강>을 "渼湖"라고 했답니다.
  江이지만 湖水같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조금전 <석실서원> 그림의 제목이 "渼湖"인 이유랍니다.
  그리고 건너편 동네가 "미사리 渼沙里"가 된 사연이지요.
  <渼>라는 한자는 "물놀이 할 渼" "물이 아름다울 渼"이더군요.
 조선시대까지는 <한강>의 지역별 이름을 별도로 구분지어 호칭했답니다.
 <미호 渼湖>를 지나면 <압구정> 앞에 흐르는 <한강>을 <동호(東湖)>라 부르고, <서강>을 <서호(西湖)>,
 <행주산성> 앞 강을 <행호(幸湖)>라고 불리워 졌으니 <옛 한강>은 <미호 渼湖> <동호 東湖> 
 <서호 西湖> <행호 幸湖>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팔당대교' 앞]

  [갈림길]                       4:16           
  <당정섬> 조망처를 지나면 <팔당대교>를 만나는데 여기서 <팔당역>은 매우 가깝습니다만
  <팔당대교 날개부분>을 통과 할수 없어 먼 길을 우회해야 했습니다.
  안내판은 "1.7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갈림길]                      4:20~4:28         ★ 길조심 ★         
  <팔당대교> 북단 날개 부분을 4분 정도 진행하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기서 알바를 했습니다.
  무심결에 직진했더니 더 이상 길이 없어서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여기선 좌측 골목으로 가야 하더군요. 안내표지기가 나뭇닢 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팔당리' 골목]                           
  한 끗빨하는 분들의 별장인듯한 화려한 집을이 늘어선 골목을 5분여 진행하면....


  [삼거리]                  4:33          
  삼거리를 만나 우회전 하고


  ['6번국도' 굴다리]                           
  이어서 <6번국도> 굴다리를 통과하면...


  ['경의중앙선' 굴다리]                 4:36          
  다시 <경의중앙선> 철도 굴다리를 직진해 통과하게 됩니다.
  따마침 전철이 지나 가고 있었습니다.


  ['경의중앙선' 옆길]

  ['경의중앙선' 굴다리]                   4:43         
  철길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7분 정도 진행하면 다시 <경의중앙선> 굴다리를 지나고


  ['팔당역' 옆길]

  ['팔당역']                          
  이어서 <팔당역> 옆으로 나가더군요.


  ['팔당역'과 '남양주시립박물관']                    4:50        
  <남영주시립박물관>이 함께 있는 <팔당역>에서 <평해길 1~2코스>를 종료하고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제1~2코스 실트랙']

  ['평해길 2코스 실트랙']                           
  <2코스>의 실트랙 거리는 12.1km였으며 3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2코스>는 <한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어서 다소 지루 할수 있으나 역사의 흔적을 느끼며 걸으면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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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1길 망우왕숙길』    

  ['경기옛길 종합 개념도']                              
  조선시대까지 서울에서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가 6개 있었답니다.
  <의주길><경흥길><평해길><영남길><삼남길><강화길>... 요즘 같으면 고속도로같은 길이었다죠.
  그 중 3개 <영남길><삼남길><의주길>은 걷기코스로 2012년 부터 이미 개발되어 다녀 온바 있습니다만
  이번 2020년 12월 20일에 <평해길>을 개통 했다고 해서 부랴부랴 길을 나서 '옛길'이 아닌 '新作路'를 갑니다.
  앞으로 <강화길>과 <경흥길>이 금년에 개통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평해길 좀합안내도']                       
  <평해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관동대로>라고 부르는 길로서 <서울>에서 <원주><강릉><삼척>을 지나
  [관동팔경 월송정]이 있는 '경북 울진군 평해'까지 이어지는 길이랍니다.
  <경기도>는 이 <평해로>의 "평해길 경기도 구간" 만을 개통했다는 것입니다.
  <구리 1개 구간>, <남양주 2개 구간>. <양평 7개구간> 등 총 10개 구간으로 "125km"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강원도 원주시>와 만나는 경계선인 "솔치고개"까지가  "평해길 경기도 구간"이랍니다.


  ['평해길 1~2코스 실트랙']                           
  <평해길1코스>만 하루에 걷기엔 너무 짧아 <평해길2코스>와 함께 진행한 실트랙 지도입니다.
  그러니까 이 지도와 트랙은 <파란문>이 이번에 진행한 <1~2코스를 합친 지도>로서 
  공식적 안내에는 20.8km라 하지만 저는 약간의 알바를 포함해서 "21.3km"를 걸었습니다.


  ['평해길 제1코스 실트랙']                     
  <평해길1코스>만 별도로 표기한 실트랙입니다.
  오늘은 <1코스>만 포스팅하고 <2코스>는 별도로 바로 이어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덕마을' 입구]                 10:10               
  2021년 4월 8일 목요일 맑음
  <평해길1코스>의 출발지점인 이곳 '경기도 구리시 교문1동'에 있는 "상덕마을 입구-딸기원"입니다.
  여기까지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습니다만, 저는 <7호선 상봉역 5번출구>에서 [201번시내버스]를 타고
  '망우리고개'를 넘어 "딸기원(중)정류장"에 내려 이곳으로 이동했는데 <딸기원(중)버스정류장>은
  사진에 표기했습니다. 시내버스는 <상봉역>에서 [201번]뿐만 아니라 많이 있더군요.


  ['딸기원' 마을버스 종점]                       
  선답자들의 답사기를 보면 <평해1길>의 출발지는 앞에 보이는 <마을버스 종점>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출발지 안내판이 없어져 주변을 찾아 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찾기를 포기하고 <망우리고개>로 조금 올라 가니


  ['제1코스 출발지']               10:14            
  <삼봉사>입구에 있는 <흙염소요리집> 앞에 <출발지 안내판>을 새로 이전하여 설치해 놨더군요.
  그러니까 이젠 여기가 <평해길>의 출발지가 되겠습니다.


  ['제1코스 안내도']

  ['구리시청' 까지 2.8km 이정표]               
  "평해길 제1길 망우왕숙길"의 출발지 안내판입니다.
  안내도에는 8.8km로 표기되 있는데 공식 홈페이지에는 9.9km로 되있더군요.
  여하튼 <125km 평해길 경기도구간>을 시작합니다.


  ['딸기원 이야기']                
  <망우리고개> 아랫 마을의 이름이 "딸기원"이라는데 '딸기'를 많이 심었었다고...


  ['망우고개']                  10:16                 
  출발지점에서 100m 정도 고개로 오르면 <서울시-구리시 市界>가 지나는 "망우리고개"를 만납니다.
  "평해길"은 <한양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안암오거리>에 있었던 [보제원]이라는 공영여관을 통과하여
  <청량리 떡전교 사거리>를 지나 <중량천>을 건너 이곳 <망우리고개>로 이어졌었던걸로 알고 있는데
  <경기도>는 <경기도구간>만 길을 만들었기에 <서울구간>은 관할 밖이라고 길을 만들지 않고
  여기서부터 <평해길 경기도구간>을 시작하여 <강원도>와 만나는 접경지인 "양평군 솔치"까지만 길을
  개척했을거라 생각됩니다. 또한 <강원도구간>은 또 <강원도>가 알아서 할일이겠고...ㅎ
  <평해길 경기도구간>을 마치고 제나름대로 <서울구간>을 진행해 볼 예정입니다.


  ['망우공원' 입구]                   10:17        
  <평해길 경기도구간>의 실제 출발지점인 <망우리고개>에서 <옛 망우리공동묘지>였던 <망우공원> 안으로
  들어 갑니다.


  ['북한산' 조망]                   
  <망우공원> 입구에서 <북한산>이 가까이 조망되는군요.
  망우리공원길을 5분여 올라 가면....


  ['망우공원 관리사무소' 앞]                 
  <망우공원관리사무소>가 있는 입구 주차장 앞에 도착합니다.
  <경기도 평해길 안내도와 스탬프함>이 설치된 곳이 바로 앞에 보이고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잠자고 있는 묘역이 <망우산 정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1코스 스탬프함']                    10:24~10:27           
  이곳은 "1코스 스탬프함"이 설치된 곳이니 완주 인증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서 '패스포트'를 챙겨
  스탬프를 찍어야하겠죠? 저는 이 답사기가 더 확실한 인증이니 꼭 찍어야 할 필요까지 없겠습니다만...
  스탬프함은 앞에서 열려고 하니 안열리더군요. ㅎㅎ 옆에서 열어야 했습니다.


  ['망우리공동묘지' 입구]                   10:27           
  [경기옛길 패스포트]에는 <경기옛길>에 설치된 안내판이나 이정표, 표지기의 모양이나 색깔을 설명하며
  도보여행에 도움이 되도록 여러 안내들이 들어 있더군요.


  [삼거리]                   10:30            
  공원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삼거리를 만납니다.
  <망우리묘역>을 한바퀴 도는 순환로의 들날머리입니다.
  <평해길>은 좌측으로 안내되더군요. <구리시청>까지 2km라고 알려 줍니다.


  ['순환로]                           
  벚꽃을 비롯한 봄꽃들이 만발하는 4월초에 <평해길>을 시작하여 또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킴니다.
  10여분 묘역 순환로를 따라 올라 가며
 

  ['천마산' 조망]                        
  <망우산> 중턱에서 "천마산 天摩山 812m"이 조망됩니다. <천마지맥>의 대표산이기도 하죠.
  <천마지맥>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를 찾아 읽어 보시고...
  이 지역은 그러니까 <남양주><구리><의정부> 지역에는 
  "太祖 이성계"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 오고 있는 곳이죠.
  <천마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天馬山>으로 '하늘을 나는 天馬'를 연상하지요.
  그러나 <천마산>은 "太祖 이성계"가 고향인 '함흥'으로 귀향하면서 
  "저 산은 높아 하늘을 어루만지는 듯 하구나"라고 언급 한데서 유래한답니다.
  그래서 <말 馬>자가 아니라 <어루만질 摩>자를 쓰며 "하늘을 어루만지는 산"이라는 뜻으로 
  "천마산 天摩山"이 되었다고 전해 내려 옵니다.
  그리고 "太祖 이성계"가 근심걱정을 잊고 영원히 잠들고 있는 "건원릉"이 이 근처 <동구능>에 있죠.
  <동구능>과 <망우리고개>에 대해선 제가 15년 전에 쓴 글이 있어 참고로 첨부합니다.
忘憂里 파란문 사람 사는 일에는 걱정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 사람 사는 일에 걱정이 없다면... 그건 사람 사는 일이라 말하지 않는다 청량리 지나 중량교...그리고 망우리가 나온다 조선 왕조의 시조 이성계는 서울에 도읍을 정한 후 자신의 묫자리를 물색하게 했다. 무학대사와 하륜으로 부터 받은 음택(陰宅)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東九陵인 자신의 묫자리를 이쪽 산위에서 바라 보며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었다"하여 망우리라 하였는데 그곳이 지금 망우리 공동묘지가 되었다. 현재의 망우리는 수도 서울의 공공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葬地이다 그러나 그 망우리는 그 면적을 다해 지금은 더 이상 그곳에 누울래야 누울수 없다 오히려 모두 방을 빼고 있다. "망우리 望憂里" 그 뜻이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고 사람이 죽어 뭍치는 곳 정도로 안다 그리고 묘지를 무서운 곳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죽은 자가 영원히 잠자고 있는 곳이 왜 무서운가 산자들이 득실거리며 어러렁거리며 싸우고 있는 저 도시가 진짜 무서운 곳이다. "망우리 望憂里"--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해 주는 곳 -- 정말 선조들은 선견지명이 있어 산 이름도 잘 지었다. 그렇다! 망우리에 들어 누우면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 된다 까마귀 우는 소리..아귀다툼 짖꺼리는 소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잠을 자도 아무도 깨우지 않는다 자연의 품 안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흙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근심 걱정 없이 산다는게 살아 있다는 얘긴가? 망우리 공동 묘지에 들어 누워 있다는 얘기 아닌가? 근심 걱정을 가지고 사는게 얼마나 인간적 삶인가!~~ 근심 걱정을 두려워하지마라 근심 걱정!~ 그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근심 걱정을 사랑할줄 알아야한다
[쉼터] [갈림길] 10:41 공원입구에서 10여분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며 순환로를 오르면 처음으로 쉼터를 만나며 이어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기서 <구리시청 1.3km →>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이정표엔 <형제약수터 →>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철망 문] 10:45 갈림길에서 내림길을 4분여 내려 가면 철망 문을 만나는데 계속 <구리시청> 방향으로 직진해 내려 갑니다.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5분여 더 내려 가면.... [화장실] 10:50 화장실이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형제약수터>는 여기서 우측으로 가고, <평해길>은 계속헤서 <구리시청>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철망 울타리] [철망 문] 10:59 철망 울타리를 따라 10여분 더 내려 가면 철망 문을 벗어 나게 되는데 이정표가 있습니다. <구리둘레길>은 우측으로 460m 떨어진 <구리시청>으로 가고 <평해길>은 직진해서 700m 떨어진 <구리시청>으로 가라고 합니다. [내림길] [갈림길] 11:03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경기옛길 평해길 앱>이 안내하는 루트와 <공식홈페이지 GPS트랙>이 다른 곳이더군요. 이정표는 그냥 직진하라고 안내하는데 <안내 앱>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요란스러웠습니다. <경기옛길 관계자>께서는 앱을 변경해야 하겠습니다. 앱이 가리키는 길로 갔더니 공사중인 길이 나와서 다시 아랫길로 내려 갔더니 바로 다음 이정표가 안내하는 길과 다시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헛걸음만 5분 정도 했습니다. [이정표] 11:08 앱이 가리키는 길로 갔다가 내려와 다시 앱과 GPS트랙, 이정표가 만나는 곳입니다. 조금전 갈림길에서 넓은 길로 그냥 진행하는게 이정표가 안내하는 길인데 앱 때문에 혼동 [나무다리] 11:10 <망우산>을 벗어 나는 곳에 나무다리가 있으며 ['43번국도'] 11:13 이어서 [43번국도]를 만납니다. 전봇대에 이정표가 <구리시청>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구리아트홀' 앞] 11:15 <구리아트홀> 앞을 지나면 우측엔 <구리시청>, 좌측엔 <이문안호수공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리시청'] ['구리시청' 앞 횡단보도] 11:17 "구리시청" 정문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이문안호수공원>으로 들어 가면... ['이문안 호수공원'] "이문안 호수공원" "이문안 里門안"은 한자와 한글이 합쳐진 지명으로 "마을 안" "안골"이라는 뜻이랍니다. 도시 개발이 되기 전까지 이 지역은 온통 과수원(배밭)과 채소밭이었답니다. 그래서 <망우산>에서 흘러 내려 오는 물을 가두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도시화로 주민들의 휴식처로 공원화 했다고... <평해길>은 공원의 남쪽 끝 지점으로 이어지는데... ['공원 남측 문'] 11:21 공원 남쪽에서부턴 길안내판이 <구리시청 → 구리전통시장 1.2km> 방향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7분 정도 <구리시립체육굥원> 방향으로 진행하면 ['구리시립체육공원 인공폭포'] 11:28 <구리시립체육공원 배드민튼장> 앞에 있는 인공폭포에 도착하여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4분 정도 진행하면... ['세무서사거리'] 11:32 <세무서사거리>를 직진해 건너고 ['구리전통시장 입구'] 11:36 이어서 <365일 약국>에 도착하는데 전봇대에 있는 [주차금지 표지판]이 <평해길 안내판>을 완전 가려서 <평해길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GPS 트랙이 있어서 숨어 있는 안내판을 찾았습니다만 관계자는 안내판 위치를 변경해야겠습니다. [꿀꽈배기] <구리전통시장>으로 들어 가며 <꿀꽈배기 집>에서 꽈배기와 도너츠를 삿는데 꽈배기 3개 2,000원이고 도너츠는 1개에 1,000원, 도너츠 2개와 꽈배기 3개를 삿더니 꽈배기 1개를 더 주는 바람에 제가 이 가게를 소개해 드리게 됬습니다. ^*^ ㅎㅎ 덤에 홀려서... 맛은 제 입맛에는 그런데로 좋았습니다. ['구리전통시장' 입구] ['구리전통시장' 출구] 11:48 <구리전통시장>을 통과해 나가면 길은 좌측으로 안내됩니다. ['검배로'] 11:49 <구리전통시장> 출입구 앞부터는 <구리역 방향>을 안내하기 시작합니다. [검배로]라는 길을 잠시 진행하면 ['돌다리사거리'] "돌다리사거리"를 만나 우회전 합니다. ['돌다리공원'] 11:51 사거리 우측엔 "돌다리공원"이 있고 돌다리 모형이 설치되 있었습니다. 여기가 "교문리 橋門里"인데 돌다리가 있어 붙여진 지명인가 봅니다. ['6번국도-경춘로'] <6번국도-경춘로>를 5분 정도 진행하면.... ['롯데백화점' 앞] 11:56 <롯데백화점 구리점>을 만나 좌측 백화점 뒤에 있는 <구리역>으로 건너 갑니다. ['구리역'] <경의중앙선 구리역>을 통과하면... ['구리광장'] 11:59 <구리광장>이 있으며 길은 <합수머리세월교3.8km↑> 방향으로 안내됩니다. 이 광장 입구에는 [현위치] 현위치를 알리며 각 방향 별 거리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소녀상'] 또한 <소녀상>도 있어 쪽바리들의 만행을 다시 한번 더 상기하고 ['구리광장'] <구리광장>을 조망하고 ['구리광장 동쪽 끝 지점'] 12:03 <구리광장> 동쪽 끝 지점까지 가면 이정표가 좌측으로 길안내를 하는데 여기서 <평해길 공식 GPS 트랙>은 우측으로 가라고 하고, 앱의 트랙은 좌측으로 가라고 하며 서로 달랐는데 저는 이정표를 따라 진행했습니다. 관계자는 수정하시기 바람니다. ['인창유수지'] ['인창빗물펌프장'] <구리광장>에서부터 <왕숙천 제방>까지 '유수지'가 이어지는데 비가 오지 않을 때엔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인창고'] 12:09 <인창빗물펌프장> 옆에는 <구리인창고등학교>가 있는데 <서울인창고등학교>와는 다른 학교이더군요. <서울인창고>는 서대문에 있고 100년 전통의 학교로 배구를 잘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펌프장 정문'] 12:10 <인창빗물펌프장> 정문 앞으로 나가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왕숙천> 위를 통과하고 있으며 ['왕숙천' 접근하는 길] 12:10 우회전 하면 서울-춘천을 잇는 <경춘로>가 지나는 <왕숙교>가 보이며 <왕숙교> 밑을 통과하여 <왕숙천>으로 진행합니다. ['왕숙천'] 12:13 <왕숙천 둔치 공원>을 진행합니다. <왕숙천>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이 지역의 지명은 대부분 <태조 이성계>와 관계 되는게 많다고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제가 쓴 "[남양주] 광릉 수목원길"을 참고 하시고 ['구리둘레길 스탬프함'] 12:17 이어서 "구리둘레길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제가 쓴 <구레둘레길 답사기>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 하시고 [쉼터] 12:24~12:42 쉼터에서 <구리전통시장>에서 산 도너츠와 꽈배기를 여기서 먹으며 쉬고 ['왕숙천1교'] 12:47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지나 가는 <왕숙천1교> 밑을 통과하면 ['왕숙천둔치공원'] <왕숙천 둔치 공원>이 계속 이어지며 ['토평교'] 12:55 이어서 토끼 모양을 한듯한 <토평교>를 지나면 ['구리타워' 조망] 12:58 <구리타워>가 가까이 보입니다. <구리타워>는 '구리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소각장의 굴뚝이죠. 친환경 소각장 굴뚝으로 전망대와 레스토랑이 있으며 조망이 좋아 '구리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지요. ['합수머리세월교' 조망] <구리타워>를 지나면 <제1길의 종점>인 <합수머리세월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월교 洗越矯"라는 단어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이죠. <세월교>는 주로 水位가 다른 논에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 대는 水路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한 水路橋로 주로 산간지역에 많이 있지요. 여기에 있는 <세월교>는 현재 그런 용도는 아닌듯하지만 아무튼 그런 비슷한 의미인 간이다리로 <세월교 洗越矯>라는 단어를 사용한듯 보입니다. 그래서 <왕숙천>이 <한강>에 합수하는 지점에 있는 간이다리를 고유명사화 하기 위해 <합수머리세월교>라고 한듯 합니다. 제 생각이므로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합수머리세월교'] 1:07 "경기옛길-평해길"의 제1코스 "망우왕숙길"의 좀점인 "합수머리세월교"에 도착했습니다. 알바도 하고 이곳저곳 둘러 보며 3시간 정도가 걸려 "제1길 망우왕숙길"을 종료하고 계속해서 <합수머리세월교>를 건너 "제2길 미음나루길"을 진행합니다. 여기서 답사를 종료 하실 분들은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수석동>으로 가는데, 그곳엔 <잠실>로 가는 버스가 수두룩 하니 <수석동>으로 가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 할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좀 멀기에 추가로 더 걸어야 하겠습니다. ['1코스 지형도'] 1코스의 거리는 8.8km라고 하지만 여기저기 돌아 보느라 제가 걸은 거리는 9.2km였으며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계속해서 "제2길 미음나루길"로 진행하며 답사기는 별도로 포스팅 합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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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에 머무른 세월』  
   죽령 옛길 답사기  
     북하리-대강면사무소-장림사거리-당동-용부원1리-죽령계곡출렁다리-죽령폭포-
     용부사입구-죽령옛고개마을-보국사터-터널환기통-산신당-죽령-희방사역

                             


  ['국토지리원 지도']

  ['단양지역' 죽령 지형도]

  ['영주지역' 죽령 지형도]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에서 출발하여 "죽령 竹嶺 해발696m"를 넘어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있는 "희방사역"까지 "약15km"를 갑니다.


  ['단양역']                 10:00

  2020년 6월 5일 (금) 맑음 
  [청량리역]에서 7시38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정확하게 2시간22분이 걸려 [단양역]에 내렸습니다.
  [단양역] 정문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은 '단양시내'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고
  '죽령'방향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역 정면 건너편에 있으니 유의해야 하더군요.


  ['만천하스카이워크' 조망]

  '단양'의 명소라고 알려진 "단양 만천하 스카이워크"가 조망됩니다.
  금년 가을엔 꼭 찾아 보리라


  ['죽령' 방향 버스정류장]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죽령'방향 버스 정류장은 [단양역 정문] 건너편에 있으니 절대 유의해야 합니다.


  ['단양역' 버스시간표]                  10:12

  시간표의 10:05분 버스가 10:12에 도착해서 탓는데, 이 버스는 [상선암] [도락산] 가는 버스여서
  [북하리 입구]에서 내려 [죽령옛길출발지점]까지 약1.8km를 더 걸어야 했습니다.
  시간표의 10:15 버스를 타면 [죽령옛길출발점]인 [장림]까지 바로 갈수 있으니 후답자들은 참고하세요.
  더 쉬운 방법은 택시를 타면 될거고...역앞에 택시들이 줄서 있더군요.


  ['단성면 북하리' 입구]                  10:18

  약6분 정도 시내버스를 타고 [북하리입구]에 내려 걷기 시작합니다.


  ['죽령 단양지역' 구글어스]

  제가 친절하게 구글어스를 편집하여 "죽령옛길 단양구간"을 보여 드림니다. ㅎ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죽령"이 [소백산]과 [도솔봉] 사이 가장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고
  선조들은 [한양]에서 "한강"을 배로 이동하여 여기서부터 [죽령]을 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단성면 북하리']

  [북하리 입구]에서 [북하리]를 흘깃 보고 출발합니다.
  이 길로 조금 더 들어가면 유명한 "두향묘"가 있는 "강선대"가 있죠.
  "정비석선생"이 쓴 "명기열전"에도 등장하는 우리나라 대표 기생 중에 한명인 "두향"은
  "퇴계 이황선생"이 '단양현감'으로 있을 때에 선생의 품격에 푹 빠져 죽을 때까지 홀로 선생을 사모하였다죠.
  선생이 자주 들려 풍류를 즐겼다는 "강선대" 밑에 뭍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곳에 묘가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근처로 이장했더군요.


  ['단성면 북상리' 입구]                  10:33

  [북하리입구]에서 15분여 진행하면 [북상리입구 삼거리]를 지나는데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가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8분 정도 직진하면...


  ['대강면 장림리']                  10:41

  '대강면 장림리'가 좌측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죽령옛길' 출발지점]                    10:43

  "죽령옛길 제1번 표지목""죽령옛길 출발점"임을 알려 줍니다.
  이 표지목의 번호는 [13번]까지 확인되었는데 그 이후의 번호를 가진 표지목은 못봤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죽령옛길]을 탐방 하실 분들이 [단양역]에서 택시를 타는 경우에는
  이곳 "북하리입구 삼거리"에서 내려 출발하면 풀코스를 종주 할수 있겠습니다.
  윗 사진 교통표지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장림사거리] 500m 이전입니다.


  ['대강면사무소']          

  길 좌측 건너편에는 "대강면사무소"가 보이는데,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로서 "장림역 長林驛"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영남관문] 중에 대표 관문 중에 하나인 [죽령]이라는 큰 고개를 넘어려면 말을 갈아 타는 驛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는거 모두 아시죠. 이곳이 [죽령]의 '단양'방향에 있었던 驛인 "장림역 長林驛"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따라서 "죽령옛길의 출발지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119안전센타']

  면사무소를 지나면 "119 안전센타"가 있고


  ['다자구할매 장터']                    10:48

  이어서 "장림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에 "다자구할매 장터"가 눈길을 끕니다.
  [다자구할매]는 [죽령 산신령]이 되었다는데 자세한 내용은 죽령 고갯길에서 알아 보기로 하고


  ['장림사거리'에서 '사인암' 방향]                   10:48

  [장림사거리]에서 서쪽으로는 유명한 "사인암"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으며
  그 위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습니다.
  이 길로 계속 가면 [백두대간 저수령]을 넘어 [예천]으로 가게 됩니다.


  ['당동' 버스정류장]                    10:58

  [장림사거리]에서 10여분 직진하면 [당동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단양역]에서 10:15 버스를 타면 여기까지 올수 있더군요.
  이런 정보를 미리 알려준 사람들이 없었으니 나그네들은 이제서야 알고 약간 후회하기도 합니다만
  2km 정도 더 걸어 [죽령옛길]에 더욱 충실할수 있어서 나름 위안을...ㅎ
  여기선 횡단보도를 건너 건너편 보도를 이용합니다.
  길 건너 5분여 직진하면....


  ['소백산자락길4구간 출발지']                 11:03

  [자락길 안내도]

  ['소백산자락길 단양구간' 안내도]

  "소백산자락길4구간"의 출발점이 되며 [3구간]의 종점이 되기도 하는 곳에 도착합니다.
  사실 저는 이 길을 걸을려고 조사를 하다가 [죽령옛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이 길도 걸어야 하는데....


  ['단양 I/C 입구']                    11:12

  이어서 [중앙고속도로]의 [단양톨게이트] 입구를 지나 갑니다.
  좌측 산에는 유명한 "중앙선 또아리터널"이 있지요.
  [중앙선] 철도가 [죽령]을 넘기 위해 경사도를 줄여주는 뱀또아리 모양의 터널이라고 붙여진 닉네임이죠.


  ['용부원리' 입구]                   11:15

  [죽령] 자동차 도로와 옛길이 나뉘는 곳인 "용부원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우측 가운데 길로 들어 가면...


  ['용부원공원']                    11:22~11:33

  [용부원리 음지마을]로 가는 길입니다.
  소공원이 조성되 있고 쉼터 정자도 있어서 10여분 쉬었다 갑니다.


  ['용부원1리' 버스정류장]                   11:35

  "용부원1리(음지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앞에는 [음지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큰 고개가 있는 곳엔 반드시 "역 驛"과 "원 院"이 있지요. "驛"은 조금 전에 지났던 "장림역"이었고,
  이곳이 나그네들이 쉬었다 가는 여관을 의미하는 "院"이 있었던 곳인데 그 이름이 "용부원 龍夫院"이어서
  이 마을 이름이 "용부원리 龍夫院里"가 되었답니다.


  ['음지마을' 안내석]

  ['음지마을' 안내도]

  [용부원1리]는 닉네임이 "음지마을"이라고 한답니다.
  [죽령계곡]에 푹파무쳐 있어서 일조량이 매우 적어 "빨래를 하고 3일간 햇볕에 말린 다음 다시 화롯불에
  말린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지여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라고...


  ['죽령옛길 13번 표지목']

  ['용부원리' 통과]

  본격적으로 "죽령옛길"이 시작되는데 [13번 이정목]이 눈길을 끕니다.
  [13번 이정목] 이후로는 이런 이정목을 볼수 없었습니다.
  7분여 진행하면...


  [쉼터]                     11:42

  이정표가 특별히 길안내를 하는 쉼터를 만납니다.
  여기서 우측 계단을 이용해 내려 가야하는데....
  좌측에 있는 [정기대 불망비]를 하마트면 놓칠뻔 했습니다.
  자칫 그냥 지나칠수 있으니 유의해야 겠더군요.


  ['정기대 불망비']

  [안내문]

  "정기대 영세 불망비"
  조선조 말 1874년에 "정기대"가 [단양군수]로 4년간 재직하며 여기로 행차했다고 세운 불망비라는군요.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이곳 [죽령계곡]에서 오가는 손님들을 환영 환송하던 곳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곳에 자주 왕림하게 되어 이곳 바위에 각서를 남겼나 봅니다.


  [계단]

  쉼터에서 계단을 내려 가면...


  ['죽령천']

  "죽령천 竹嶺川"을 만나 이 계곡개천을 따라 올라 갑니다.
  [백두대간 죽령]에서 발원하는 이 개천은 '한강'으로 흘러가 '강화도 연미정' 앞에서 西海에 잠기죠.
  5분 정도 올라 가면...


  ['출렁다리' 조망]

  ['죽령옛길 출렁다리']                  11:49

  "죽령옛길 출렁다리"를 건너고...
  다양하게 꾸며놨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길 강추합니다.


  [옛길]

  [출렁다리]를 건너 조금 올라 가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출렁다리']                11:53

  [용부원 입구]였던 [중앙고속도로]와 또다른 볼거리인 [출렁다리]가 보이는데...
  [죽령]을 넘기위해 준비를 하며 쉬어가는 여관을 의미하는 "院"이 있었던 "용부원 龍夫院"이 있었던 자리엔
  [중앙고속도로]의 웅장한 교각이 옛날 걷거나 말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을 비웃고 있는듯...







  ['죽령계곡길']                    12:47

  잘 조성된 "죽령계곡길"을 한시간여 올라 갑니다.
  옛길은 새로이 조성되어 걷는데 불편함이 없고 아름다웠습니다.
  완만한 경사에 위험구간은 모두 데크시설로 뒤덮어 옛길인지 현대의 길인지..미래의 길인지 모를 정도
  중간 중간 벤치를 설치해 쉬어 가기도 편했는데....
  단지 계곡길이 좀 길어 시간이 좀 많이 걸린다는게, 먼데서 오신 분들에겐 좀 부담이 되겠더군요.
  거리가 부담이 되는 분들은 [단양역]에서 택시를 타고 [용부원1리 버스정류장]까지 와서
  걸으면 비교적 간단하겠더군요. 참고하시고...


  ['죽령터널' 관리사무소]                      12:48

  [죽령옛길 출렁다리]에서 [죽령계곡길]을 한시간 정도 오르면
  [중앙선 죽령터널] 입구에 있는 터널관리사무소가 보이고...
  때마침 열차가 요란한 소리로 계곡을 울리며 [죽령터널] 속으로 사라지더군요.


  ['죽령터널' 입구-'죽령폭포' 조망]

  ['죽령폭포' 약간 줌인]                 12:52

  이어서 [중앙선 죽령터널]이 시작되는 곳에 "죽령폭포"가 보입니다.
  이 계곡 유일의 대형 폭포라는데 폭포 소리가 계곡을 제압 할듯했습니다.


  ['죽령폭포' 위 다리]                  12:54

  [죽령폭포]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며 [죽령폭포]를 내려다 봤는데 잘 보이지 않았고

 
  ['죽령계곡길']

  계속해서 계곡길을 8분여 더 올라 가면...


  ['용부사' 입구]                   1:02~1:08

  "용부사 龍夫寺"로 가는 길을 만납니다.
  우측 길로 직진하면 매우 가까운 곳에 [용부사]가 있다고 하는데 볼품없는 절이라고 해서 생략하고
  좌측 길로 5분여 올라 가면...


  ['죽령 사과 과수원']                  1:13

  [죽령 사과 과수원]을 만납니다.
  사과들이 아직 제철이 아니라 자두 크기만하게 메달려 있더군요.


  ['죽령' 조망]                    1:16

  과수원을 지나가면 [죽령] 고갯마루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용부사' 입구 삼거리]                   1:18
 
  이어서 자동차 도로에서 [용부사]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나고


  ['죽령옛고개마을']                   1:21

  화장실과 주차장까지 설치한 "죽령옛고개마을"을 만납니다.
  2013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는군요.



  ['죽령옛고개마을' 통과]

  2013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죽령옛고개마을]을 4분여 통과하면...


  ['제2연화봉' 조망]                  1:25

  [백두대간 소백산] "제2연화봉""소백산기상레이다관측소"가 조망됩니다.
  [연화봉 소백산천문대]는 보이지 않는군요.


  ['자락길']

  [소백산자락길3구간]과 함께 진행하며 10여분 올라 가면...


  ['죽령터널환기통' 조망]                   1:35

  "죽령터널 환기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국사 터' 고갯길]                  1:36~1:46

  이어서 "보국사"가 있었다는 고개에 도착하는데...
  좌측을 보면


  ['석조여래입상' 조망]

  ['석조여래입상']

  [안내문]

  머리가 잘려 나간 [석가여래불상]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죽령터널 환기통']                    1:54

  [보국사 터]에서 8분여 오름짓을 하면 "죽령터널 환기통" 옆을 지나게 됩니다.
  지금이야 전기로 움직이는 전동차가 다니기에 터널 안의 공기 상태가 그런데로 괜찮겠지만
  석탄을 때며 물을 끓여 그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던 기차들은 당시 최장 터널이었던 이 [죽령터널]을
  통과하면 터널 안이 어떻게 되었을지 불을 보듯 뻔하게 상상됩니다.
  그래서 엄청난 크기의 환기통을 만들어 석탄연기를 빼냈습니다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터널을 통과한 기차는
  새까메졌다는거 아닙니까. 벌써 옛날 얘기가 되었지만 저는 그런 기차를 타고 다닌 적이 있으니...
  잠시후 [희방사역]의 역장에게서 들은 얘기를 미리 언급하면...
  그런데 이 [중앙선]의 [죽령터널]은 앞으로 4개월 후인 10월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답니다.
  [영주]에서 [단양]까지 직선으로 터널을 새로 뚫어 복선전철이 다니는 터널이 개통된답니다.
  칙칙폭폭 기차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저 환기통은 이젠 구경꺼리로만 남게 되겠군요.


  ['죽령마을']                 2:01

  이어서 "죽령음식점마을"을 만납니다.
  식사를 하려면 [죽령 고갯마루]에서 여기로 내려 와야 하겠더군요.
  그 이유는 잠시 후 알게 됩니다.


  ['죽령마을'과 '산신당']                  2:04

  ['산신당']

  [안내문]

  산신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죽령마을' 차량출입구]

  ['죽령마을' 사람 통행로]

  죽령 고갯마루에서 음식점마을로 연결되는 자동차도로와 인도를 이용하여 올라 가면


  ['죽령 전망대']                  2:09~2:30

  [죽령 고갯마루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완만하지만 끊임없는 [죽령계곡] 오르막을 3시간50여분이 걸려 [죽령] 고갯마루에 도착한 것입니다.
  조망을 하며 20여분 휴식을 하고...


  ['죽령옛길'과 '월악산' 조망]

  올라온 [죽령계곡]과 멀리 [월악산]이 조망됩니다.
  바로 아래엔 산신당과 음식점들이 있고....


  ['소백산' 입구]

  [소백산국립공원 죽령분소]가 있고 옆에는 [소백산등산로] 출입구가 있습니다.
  저는 이곳을 네번 방문했군요.


  ['죽령휴게소']

  고갯마루엔 음식점등 휴게소가 있었는데 철거하고 새로 건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어쩔수 없이 굶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휴 ~~
  정보가 부족하면 다리와 몸이 고생...


  ['죽령'-'도솔봉' 입구]             

  "죽령 竹嶺 해발 696m"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이 고개는 우리 역사에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공사를 해 만든 두번째 고개인데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에 만들어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는 [영남의 관문]입니다.

  "삼국사기 제2권 신라본기 제2(三國史記 卷第二 新羅本紀 第二)"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 있습니다.

  阿達羅尼師今立 逸聖長子也 身長七尺 豊準有奇相 母朴氏 
  支所禮王之女 妃朴氏內禮夫人 祗摩王之女也
  아달라 이사금(阿達羅尼師今:신라8대왕)이 왕위에 올랐다. 일성왕(逸聖王)의 맏아들이다,
  키가 일곱 자이고 콧마루가 우뚝하여 기이한 모습이었다.
  어머니인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내례부인(內禮夫人)으로 지마왕(祇摩王)의 딸이다.

  元年三月 以繼元爲伊飡 委軍國政事
  원년(서기 154) 3월, 계원(繼元)을 이찬으로 삼아 군무와 정사를 맡겼다.

  二年 春正月 親始祖廟 大赦 以興宣爲一吉飡
  2년(서기 155) 봄 정월, 몸소 시조묘에 제사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흥선(興宣)을 일길찬으로 삼았다.

  三年 夏四月 隕霜 開雞立嶺路
  3년(서기 156) 여름 4월, 서리가 내렸다.
  계립령(雞立嶺)의 길을 열었다.

  四年 春二月 始置甘勿馬山二縣 三月 巡幸長嶺鎭 勞戍卒 各賜征袍
  4년(서기 157년) 봄 2월, 처음으로 감물(甘勿)과 마산(馬山) 두 현을 설치하였다.
  3월, 장령진(長嶺鎭)을 두루 살피어 지키는 병졸들을 위로하고 각각에게 군복을 주었다.

  五年 春三月 開竹嶺 倭人來聘
  5년(서기 158) 봄 3월, 죽령(竹嶺)을 열었다.
  왜인이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이곳 여기저기에 설치된 [죽령 안내판]에는 "죽죽 竹竹"이라는 사람이 "죽령"을 개통했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그 어느 곳에도 "죽죽'이 [죽령]을 개통했다는 구절은 없읍니다.
**단지 [동국여지승람]에 "죽죽"이 개통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인데, 
  [동국여지승람]은 1480년경 [조선 성종] 때에 만들어진 것이니 1,300여년 후의 기록입니다.
**또한 "죽죽"이라는 사람은 [삼국사기 제47권 열전 제7]에 별도로 '화랑관창' '계백장군'등과 함께
  특별인물로 열전을 소개하고 있는데, 서기158년에 '죽령'을 개통한 이후 500여년 후인 '선덕여왕' 때의
  장군이었습니다. [삼국사기 죽죽편]에는 '죽죽'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의 아버지가 나를 죽죽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차가운 날씨에도 시들지 말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뜻이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살아 항복하겠는가?”
  [죽령]을 "죽죽"이가 개통했다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과연 믿어야 할까요?
  "죽죽"이는 죽령 도로공사를 하던 사람이 아니고 '선덕여왕' 시절 '김유신'과 함께 유명한 장군이었습니다.


  ['충북'과 '경북' 경계]                  2:33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영주시'를 잇는 고개로서 지금부터 'TK지역'으로 들어 갑니다.
  [선비의 고장]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조선'은 어쩌면 잘못된 '선비'들에 의해 말아 먹었다고도 하는 비판도 높습니다.


  ['죽령주막'과 '죽령루']

  죽령 고갯마루 '영주' 쪽에는 주막과 "죽령루 竹嶺樓"가 있습니다.
  [죽령루]에 올라가 조망을 하면...


  ['죽령루'에서 '영주시' 조망]

  사진에는 멀리 보이지만 실제는 아주 가까이 [영주시]가 조망되었습니다.


  ['죽령루']                   2:36

  "죽령루 竹嶺樓"를 뒤돌아 보고...
  [죽령옛길]의 '영주시 구간'은 [죽령루]부터 [희방사역]까지 랍니다.


  ['죽령옛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진행합니다.
  역사의 애환을 간직하며 2천년 가까운 세월, 
  영남 내륙을 이어온 [죽령]의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려는 뜻에서 
  1999년 영주시가 [희방사역]에서 [죽령주막]까지 1시간 정도(2.5km)걸리는 길을 복원하였답니다.
  울창한 숲의 나무와 산새, 다람쥐 등이 반기는 산길을 걸으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다고...
  그래서 2007년 12월에 우리나라 [명승 제30호]로 지정 되었다고 하네요.


  ['퇴계'와 '온계']

  ['兄弟愛 詩']

  "퇴계 이황선생"은 형이 여섯이고 누나가 한명 있었습니다.
  형들 중에 '퇴계선생'이 가장 존경하고 우러러 모신 형은 넷째 형인 "온계 이해선생"이었습니다.
  '퇴계선생'의 명성에 가려져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온계선생'은 더욱 훌륭하신 분이었습니다.
  '온계선생'은 '중종' 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도승지.대사헌.대사간.예조참판.등 중요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 하여 '명종' 대에는 황해도관찰사. 충청도관찰사, 한성부우윤이 되기도 했습니다.
  '퇴계선생'이 단양군수로 제수 받아 근무를 하는데, 형인 '온계선생'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형제가 같은 지역에서 중요 관직을 맡는게 부적절하다고 느낀 '퇴계선생'은 풍기군수로 옮겨 갔습니다.
  훌륭한 판단이어서 오늘날 까지도 칭송 받는 대목입니다.
  당시 정치상황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윤원형'을 비롯한 소윤파들이 날뛰며 부정부패가 극을 이루었죠.
  도둑놈이 백성들로부터 더 칭송받는 시대였으니 알만하죠? 그 당시 '임꺽정'이 대표 도둑놈이었죠.
  이런 어지러운 정치상황 속에서 '온계 이해선생'은 정적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충청도관찰사 2년만에
  한성부우윤으로 좌천 당해 올라 가게 되는데, 이때 고향인 '안동'을 들렸다가 한양으로 올라 가며
  이곳 '죽령'에서 '풍기군수'였던 동생 '퇴계'와 이별주를 나누며 불안한 미래를 싯귀에 담아 주고받게 되는데
  그때 주고 받은 마지막 詩가 윗 사진 속의 詩입니다.  꼭 읽어 보세요~
  '온계 이해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자마자 정적들로 부터 모함을 받아 귀양길에 올랐고
  모진 고문으로 귀양길 '양주'에서 객사하게 되었는데 '임꺽정'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주었다고 합니다.
  '온계 이해선생'은 이곳 죽령에서 "好待明年來有期 내년에 다시 올테니 기다리게나"라고 한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하고 정적들의 보복을 받고 한많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숲길]

  숲길을 15분여 더 내려 가면...



  ['이현보'와 '주세붕'의 詩]

  조선시대 중종 37년(서기 1542년) "이현보선생"이낙향을 하는 길에 당시 풍기 군수로 있던 "주세붕"이
  죽령 길로 마중을 나와 선배인 "이현보선생"과 우정을 나누며 주고받았던 詩도 삽화와 함께 있습니다.
  "이현보선생"이 1467년생이고 "주세붕선생"은 1495년생이며, "퇴계선생"은 1501년생입니다.
  "이현보선생"이나 "주세붕선생"은 나이는 서로 차이 나지만 모두 "퇴계 이황선생"시대에 함께한 인물들이죠.
  특히 "이현보선생" 가문은 장수 가문으로 유명하죠? 
  "이현보선생"이 89세, 그의 아버지가 98세, 아들이 84세...등등등. 당시엔 쎈세이션이었답니다.


  ['주점주막거리 터']                  2:52

  [안내문]

  [죽령옛길]에는 여러곳에 주막거리가 있었다는데
  가장 규모가 컷던 곳이 현재의 "희방사역" 근처에 있던 "무쇠다리 주막거리"였답니다.
  그리고 "고갯마루 주막거리", "느티정 주막거리", 그리고 이곳 "주점 주막거리" 등 이었답니다.




  ['죽령옛길']

  18분여 옛길을 눌루날라 거닐면


  ['다자구할머니' 전설]

  ['희방사역'에 걸려 있는 '다자구할머니' 설화]

  "다자구할머니"에 대한 설화가 눈길을 끌고....


  ['풍기' 조망]                 3:10

  드디어 "풍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죽죽' 이야기]                3:12

  [과수원]                    3:15

  [죽령]엔 사과 과수원이 많았습니다.


  [비포장도로]

  ['죽령옛길' 안내도]                   3:22

  ['죽령 안내판']

  [죽령옛길]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안내판이 있는데 등장인물 묘사가 재미있습니다.
  어딜가나 뭇남성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여인들이 있었죠? ㅎㅎ


  ['중앙고속도로' 조망]                    3:24

  [죽령터널]을 빠져 나온 [중앙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죽령옛길]도 이제 평지로 접어듭니다.


  ['죽령터널' 입구]                     3:27

  우측 계곡을 내려다 보니 [중앙선 죽령터널 입구]가 보이는데 하얀 탑 같은 건물이 눈길을 끕니다.
  옛날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탱크인듯....터널을 통과 하려면 물이 많이 필요했을테니...
  터널 안에서 물이 떨어져 기차가 멈춰서면...상상만해도 끔찍...
  그러니 미리 물을 충분히 넣고 갈수 있는 급수탱크가 있는듯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3:32

  [뒤돌아 본 '죽령옛길']          

  [죽령옛길]의 들날머리인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도착하여 지나온 [죽령옛길]을 뒤돌아 봅니다.
  [소백산맥]이자 [백두대간]인 "소백산"이 아련합니다.
  [백두대간]이자 [소백산맥]인 저 산줄기가 [충청도]와 [경상도]를 분리 시키고
  그리하여 관습과 풍습..언어와 행동거지까지 다르게 만든 어쩌면 장애물이지요.


  ['희방사역(소백산역)']                    3:33

  "희방사역 喜方寺驛"
  [죽령옛길]의 종착지이자 출발지입니다.
  驛舍에는 "무쇠달다방"이라는 간판이 눈길을 끄는데...


  ['무쇠달 다방']

  "무쇠달""무쇠다리"의 경상도식 줄임말이랍니다.
  이곳이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인데 옛날 무쇠로 만든 다리가 있어서 붙여진 동네 이름이랍니다.
  그 [무쇠다리의 전설]에 대해서는 생략합니다.
  특히 [죽령옛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주막거리가 있었던 "무쇠다리 주막거리"였답니다.
  그러니까 '영주 풍기'방향에 있었던 "院"이 있던 곳이고, 
  "驛"은 현재 '풍기온천리조트'가 있는 "풍기역" 근처였다고 하는데 '영남 서북지방' 최대의 "驛"이었답니다.


  ['소백산' 조망]

  [약간 조망한 '소백산']

  [희방사역] 정문에서 바라보는 [소백산]과 [수철리]입니다.
  사진에는 희미하지만 실제는 또릿또릿 보이는 [소백산 천문대]가 [연화봉]에 보입니다.
  저는 [소백산천문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천체를 망원경으로 조망한 경헙이 있습니다.
  "소백산천문대"에 관심이 있으세요?
  그러면 제가 10 여년전에 방문하여 하룻밤을 보내며 쓴 다음 글을 한번 읽어 보세요.
    "소백산에서 별을 따다" http://cafe.daum.net/paraanmoon/NRkX/6 여기 클릭 


  ['희방사역' 플랫홈]

  ['희방사역']

  ['무궁화호']                    4:02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희방사역 플랫홈]에 서울 청량리로 가는 열차가 들어 오고 있습니다.
  [죽령터널 환기통]에서 언급 했던 얘기 한번 더 언급하면...
  [중앙선]의 [죽령터널]은 앞으로 4개월 후인 10월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답니다.
  [영주]에서 [단양]까지 직선으로 터널을 새로 뚫어 복선전철이 다니는 터널이 개통된답니다.
  그래서 현재의 [죽령터널]과 [희방사역]은 폐쇠가 된다니 어쩐지 서글퍼지는군요.


  [고도표]

  ['영주'에서 '죽령'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15km였으며 5시간이 걸렸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죽령터널]과 [희방사역].....
  "죽령옛길"을 걸으며 선조들의 체취를 느껴 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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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의주길]을 따라서... '중에교'에서 '임진각'까지 답사기 중에교-선유교-선유삼거리-이세화선생묘입구-파주정수장- 화석정-임진나루-장산리-마정리-임진강역-임진각 *인생이라는 여행* 잘 난 청춘도 못난 청춘도 스쳐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도 저 잘 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진대, 어느 날 세상 스쳐 가다가 또 그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가는 생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그 무엇이 인생이라고 따로 말을 하리까? "경기옛길-의주길"의 종합안내도입니다. [의주길]은 다섯구간으로 총52.1km이더군요. [제1길-벽제관길]은 "삼송역"에서 "벼제관지"까지 7.6km이고 [제2길-고양관청길]은 "벽제관지"에서 "용미3리"까지 6.2km [제3길-쌍미륵길]은 "용미3리"에서 "신산5리"까지 14km [제4길-파주고을길]은 "신산5리"에서 "선유삼거리"까지 11.6km [제5길-임진나루길]은 "선유삼거리"에서 "임진각"까지 12.7km랍니다. [구글지형맵] 오늘은 [경기옛길-의주길]의 마지막 구간으로 [제4길-파주고을길]의 일부와 [제5길-임진나루길]을 진행합니다. "중에교"에서 출발하여 [제5길-임진나루길]의 하일라이트인 "화석정"을 들리고 "임진각"까지 GPS 측정으로 13.6km를 갑니다. ['중에교' 앞] 10:43 2016년 10월 27일 (목) 구름 약간낀 맑음 [서울역 버스환승센타]에서 [703번 시내버스]를 타고 약2시간이 걸려 [703번 시내버스]의 종점인 "자이안트부대"에 내려 진행방향 뒤로 50m정도 가면 "중에교"가 있습니다. "중에교"는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3리'와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의 행정구역 경계였습니다. 그러니까 "파주읍"과 "문산읍"의 경계인데, "동문천"이 경걔선 역활을 하고 있더군요. ['동문천' 둑방길] 오늘은 "중에교"에서 출발하여"동문천" 둑방길을 진행합니다. 이 둑방길을 따라 15분 정도 직진하면... ['선유교'] 11:58 "선유교"를 지나 갑니다. 다리 앞에서 좌측을 바라보면...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조망]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마을 정경이 조망되는데 시골 풍경이라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큰 도시이군요. ['동문천' 둑방길] 다시 둑방길을 계속 5분 정도 더 직진하면.... ['선유삼거리'앞 현수교] 12:03 아치형 철교를 만나는데, 철교 앞에서 좌측으로 조금 나가면.... ['선유삼거리'] 12:05 "선유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이곳이 [경기옛길-의주길]의 [제5길-임진나루길]의 출발지점이 되겠습니다. ['제5길 임진나루길'] [제5길-임진나루길]의 공식 안내문입니다. 이번 구간에선 "화석정"과 "임진각" 이외에는 볼거리가 없었습니다만... 그냥 걷기 여행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선유리'] "선유리" 중심도로를 뒤돌아 보고 ['선유삼거리'에서 '화석정' 가는 길] [선유삼거리]에서 "화석정"으로 가는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측으로 가도 되고, 다리를 건너 좌측길로 가도 되더군요. 안내표시가 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측으로 가라고 하는듯 해서 다리 건너기 전에 좌측으로 갔습니다만, 정식 길은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가더군요. [다리 건넘] 다리 건너기 전에 좌측으로 가면 바로 또 다른 다리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건너 가면 되겠습니다. [둑방길] 개울 둑방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5~6분 올라 가면... ['이솝어린이집'] 12:12 [연천 44km] [전곡 35km]라는 도로 안내판이 보이고 그 뒤로 "이솝어린이집"이 보입니다. 자동차 도로로 나가지 않고 계속 이 농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이세화선생묘' 입구 가는 길] 그러면 "이세화선생 묘 입구"를 지나며 앞에 삼거리 고개가 보이기 시작하고... 5분여 진행하면 ['화석정' 가는 삼거리] 12:17 이정목이 있는 고개위 삼거리를 만납니다. 직진하면 "전곡-연천"으로 가고, "화석정"은 좌측으로 갑니다. ['중앙어린이집'] "중앙어린이집"을 지나고... 이런 시골에 어린이집은 많군요. 이 지역은 출산율이 높은가 봅니다.ㅎ ['예담요양병원'] "예담요양병원"을 지나는데 "장례식장"과 함께 있어 조금전 어린이집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오는 인생과 가는 인생.... ['파주정수장' 앞 통과] 12:28 이어서 "파주시 수도 정수장 입구" 앞을 지나 가는데 ['화석정로'] 이 도로가 [화석정로]이더군요. 이도로를 따라 직진해도 "화석정으로 갈수 있는데 ['필무인텔' 앞] 12:32 ★ 길조심 ★ "필무인텔"을 지나자마자 [의주길]은 우측으로 안내됩니다.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더군요. 저도 직진했다가 되돌아 왔으니 유의 해야하고 ['화석정' 가는 길] 12:35 [화석정로]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가 펼쳐지며 "화석정"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농로를 따라 4분여 진행하면... ['화석정' 조망] 12:39 "화석정경로당"을 만나며, 뒤로 "화석정"이 보입니다. 우측 넓은 길을 따라 3분 정도 가면... [삼거리] 12:42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갑니다. [평화누리길]과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평화누리길]은 189km로 김포-고양-파주-연천을 잇는 길이랍니다. 조만간 이 길도 걸어 보아야 할텐데...집에서 접근거리가 너무 멀어서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아래에는 주택과 음식점들이 제법 많이 있는데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입니다. ['화석정' 입구] 음식점 옆 계단으로 올라 가면.... ['화석정'] 12:46~1:26 (40분간 조망및 휴식, 점심식사) 먼길을 걸어 온 나그네를 "화석정"이 반겨 줍니다. ['화석정'] "화석정 花石亭" 560년이 넘은 느티나무와 "율곡 이이 선생"이 여덟살에 지었다는 "八歲賦詩"가 "화석정"을 호위하고 있고 현판에는 [花石亭 丙午四月 朴正熙]라고 쓰여 있습니다. '丙午年'이면 1966년인데... "八歲賦詩"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숲 속의 정자에는 이미 가을이 깊었는데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과 맞닿아 푸르렀고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아래 붉었구나 山吐孤輪月 (산토고윤월):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강은 만리에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도다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그 소리 저무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구나 그런데 이 詩는 "율곡 이이선생"이 쓴 詩가 아니라고 '화석정 편액'에 쓰여 걸려 있었는데 이 편액은 "율곡선생"의 증손인 '이후지. 이후방'이 화석정을 중수 할때 1673년에 만들어 걸어 두었다고.. 그 이유는 이 詩의 작가를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조사하여 발표한 내용이니 어느 정도 믿을수 있겠지요? ㅎ "노산 이은상선생"은 "율곡선생 팬"입니다만 사실관계를 확실히 하려고 조사를 했다네요. "율곡 이이선생"의 총명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후세들의 과잉 노력은 아닐지... 오히려 그 총명함에 누를 끼치는 행위는 아닐지... 위 詩는 "송강 정철선생"의 "송강집 松江集"과 "서애 유성룡선생"의 "서애집 西厓集"에 "화석정을 지나며"라는 똑같은 詩가 실려있습니다. ['화석정'에서 조망] "화석정"에선 "임진강"이 화려하게 조망됩니다. "율곡선생"은 '화석정'에 들릴때 마다 기둥이나 마루에 기름칠을 반질반질하게 했다죠? 그리고 " 宣祖"가 임진왜란을 피해 의주로 도망가는 몽진길에 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뱃길을 밣히고 폭풍우 몰아치는 칠흙같은 밤에 이 '임진강'을 건너 도망 갈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그래서 "율곡선생"의 선견지명은 어디까지 인지 모를 정도라고 극찬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보면 충분히 그럴수 있었겠다고 느껴 집니다. 다음 사진의 공식 안내문을 보면.... ['화석정' 공식 안내문] "인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라는 글귀의 내용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이유가 쪽바리들에 의한 듯하게 느껴 집니다만 위에서 언급 했드시 " 宣祖"가 폭풍우 몰아치는 깜깜한 밤중에 '임진강'을 건너기 위해 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거대한 횃불 역활을 하게 했으니 쪽바리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왕이 직접 방화 한것이라고 할수 있죠? 그 아이디어는 "한음과 오성"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이 냈다고 합니다.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도망치면서 문화유적에 방화까지 한 방화범이 "宣祖".... 제가 "선조"와 "인조"를 조선 최악의 왕이라고 항상 씹어대는 이유를 이것만으로도 알만하죠? ㅎ 그런데 "서애 유성룡선생"이 쓴 "징비록"에는 이 '화석정'을 불태운게 아니라 이 아래에 있는 집을 불태웠다고 기술하고 있어 약간 혼동을 주는데, "서애 유성룡선생"은 당시 영의정이었으니 아무리 미워도 왕의 실책을 어느 정도 덮어 줄려고 그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야 '임진강'이 훤히 밣혀져 강 건너기가 쉽겠죠?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시길...ㅎ ['임진강' 북동쪽 조망] 임진강(臨津江)은 254km로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강이죠 함경남도 덕원군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254km를 흘러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한강과 합류한답니다. "임진강"의 옛 이름은 "신지강 神智江"이었답니다. ['임진강' 북서쪽 조망]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망 갔던 " 宣祖"는 다시 이 강을 건너 환궁하게 되었죠. 선조 27년(1593) 10월 宣祖는 전쟁이 끝나 환도할 때, 저도 인간인지라 미안한건 느꼈나 봅니다. 이 강에 당도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의 넋을 달래고자 나루터 강변 모래사장에 제물을 차려놓고 위령제를 지내면서 '의주' 몽진 당시 4월 그믐밤 폭풍우 속 노심초사 고생 끝에 이 나루를 건너게 된 쓰라린 아픔과 이 강을 지키고져 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용감한 충신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가운데 "宣祖"는 통곡하며 그래도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天佑神助]로 나루를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 하였다하여 [신지강 神智江]이 [임진강 臨津江]으로 개칭하게 되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더군요. "임진 臨津"이라는 말은 "나루터에 다달은다"라는 뜻이랍니다. ['화석정' 주차장과 매점] "화석정"에서 식사와 휴식, 조망을 마치고 다시 출발합니다. ['스탬프함'과 '임진나루'로 가는 길] 1:26 "임진나루"로 가는 길은 정문으로 나 있군요. 이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 1:31 "필무인텔"에서 오는 도로와 만나 우회전합니다. ['임진나루'로 가는 길] 내려와 각도를 바꿔보면 "화석정"에서 나와 "임진나루"로 가는 길은 알기 쉽습니다. 앞에 보이는 [37번국도] 굴다리 밑으로 진행합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임진나루' 위] "임진나루" 위 데크를 통과하고 ['임진리' 입구] 1:36 이어서 "임진리" 입구를 만나 마을로 내려 갑니다. [나루터마을] "임진 나루터"는 사라지고, 음식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루터마을"입니다. 마을을 통과하면... ['055번 마을버스' 종점] 1:43 [055번 마을버스]의 종점을 만나는데 때마침 [055번 마을버스]가 회차하고 있습니다. ['임진리' 들날머리] 1:48 이어서 "임진나루 마을"의 서쪽 들날머리를 통과하면... ['37번국도' I.C.] [37번국도] 인터체인지를 지나는데 [평화누리길]과 "화석정"에서부터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앞에 보이는 화살표 표기한 곳에서 방향이 바뀌니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비포장도로] 1:50 자동차 도로를 피해 비포장도로로 [의주길]과 [평화누리길]은 이어 집니다. 5분 정도 진행하면... [낚시 캠핑 공원] 1:55 "낚시 캠핑 공원"이라는 곳을 지나고 [비포장도로] 계속 비포장 도로를 7분 가량 약간 가파른 오름길을 진행하면... [헬기장이 있는 '장산전망대' 삼거리] 2:07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엔 매우 넓은 헬기장이 있고, [장산전망대 0.6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의주길]은 [평화누리길 반구정 9.3km→]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이곳이 "임진리"에서 "장산리"로 넘어 가는 고개인듯... ['장산1리'로 가는 길] "장산1리"로 내려 가는 길입니다. [포장도로] 한적한 포장도로를 9분 정도 내려 가면.... [삼거리] 2:16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평화누리길' [←8.8km 반구정]은 좌측으로 간다고 안내를 하고, [의주길]은 직진한다는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의주길]과 [평화누리길]이 헤어지는거죠. 그런데 진행해 보니 직진길에도 [평화누리길] 표지기가 부착되 있더군요. "반구정과 황희정승"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쓴 글을 찾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이 도로에는 "문산역"에서 "임진각"을 오가는 [058번 마을버스]가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임진각"에서 "문산역"으로 [056번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 갈때 이 도로를 다시 지나더라구요. ['장산1리' 가는 길] 앞에 [056번 마을버스]가 가고 있습니다. 12분 정도 이 길을 진행하면.... ['장산교회' 앞] 2:28 "장산교회" 앞을 지나고 ['장산1리' 조망] 이어서 "장산리"가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장산1리' 버스정류장] 2:33 "장산1리 마을회관"과 [장산1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사거리를 지나 계속 직진합니다. 여기서 [평화누리길]을 다시 만나는데 ['평화누리길'과 헤어짐] 2:35 곧 [평화누리길]은 우측으로 가고... [의주길]은 계속 직진입니다. 10여분 직진하면... [고개] 2:45 "장산리"에서 "마정리"로 넘어 가는 고개를 넘고... ['마정리' 조망] 고개를 넘으면 "마정리"가 펼쳐지고 ['마정4리' 입구] 이어서 "마정4리" 입구를 만나 우회전 합니다. ['마정4리' 입구] 2:56 ★ 길조심 ★ "마정4리 입구"에서 50m 정도 직진하곤 바로 좌회전 해야 합니다. 직진하기 쉬우니 집중력을 잃으면 알바하기 쉬운 곳이니 유의 해야 하고 ['마정4리' 마을 통과] "마정4리" 마을을 통과하여 "마정3리"로 넘어 가면... ['마정초등학교'] 3:04 "마정초등학교"를 지나고 ['마정3리' 입구] 3:05 이어서 "마정3리" 입구를 만나 우회전 합니다. ['마정2리' 가는 길] 좌측에 [통일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정2리'] 3:06 "마정2리" 마을 안내석을 지나면... [대전차 방호벽] 3:10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탱크 방호벽을 지나 좌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통일로' 사거리] 3:12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일로]를 만나는데 직진하여 건너 갑니다. [통일로] 중간에서 좌우측을 보면... [통일로 남쪽방향] [통일로 북쪽방향] 왕복 6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통일로]가 개점 휴업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폐쇠로 오가는 차들이 없어진지 오래 [구 통일로 가는 길] 직진해서 옛 통일로로 갑니다. [의주길] 3:19 옛 통일로로 올라 가기 전에 [의주길]은 도로를 피해 우측 보행로로 안내되고 6분 정도 진행하면 ['자유로' 다리] 3:25 [자유로] 다리 밑을 통과하여 좌측 옛 통일로로 올라 갑니다. ['임진강역'] 3:26 그러면 [임진강역]을 정면으로 만나는데 사람의 흔적은 없습니다. 지난해에 "DMZ 관광열차" 타고 "도라산"으로 갈때 내려 검문을 당한 역인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제가 쓴 "DMZ-Train"을 타고 도라산을 가다"라는 글을 찾아 읽어 보시고 ['임진각' 가는 길] [임진각역]에서 [임진각]은 가깝습니다. [낚시터] 몰골만 남은 [옛 경의선] 옆에는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새로운 [경의선]이 건설되 있는데... 낚시꾼들이 분단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을 잊고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세월을 잊고 싶군요...ㅎ ['임진각 버스정류장'] 3:30 [임진각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며 [의주길]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끊어집니다. 오랜만에 다시 "임진각"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려 했는데.... ['임진각' 버스시간표] [3시 37분 마을버스]가 곧 도착 할듯하여 주변만 살피고 답사를 마침니다. ['임진각'] [의주길]이 북한의 "의주"까지 계속 이어지길 학수고대하며 [경기옛길-의주길]의 답사를 모두 마침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3.6km였으며 3시간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경기옛길-의주길' 전체 구글어스] [경기옛길-의주길] 전체 구글어스 괘적입니다. 공식적으로는 "52.1km"라고 합니다만, 제가 직접 걸으며 측정되어진 거리는 "55.3km"였습니다. 물론 접속거리와 알바거리가 포함되었기 때문이겠죠. 이로써 [경기옛길-영남길 삼남길 의주길]을 완주했습니다. 그 동안 함께하신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눈요기감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이미 다녀 오신 분들에겐 추억을 일깨우는 그런 답사기가 되기를 바라며 [경기옛길]의 [영남길] [삼남길] [의주길]을 마침니다. 함께 보면 도움되는 "파란문의 글"을 소개 해 드림니다. 1. "황희정승"과 "반구정" ☆☆ 여기 클릭 "황희정승"과 "반구정" ☆☆ 2. "DMZ-Train"을 타고 도라산을 가다" ☆☆ 여기 클릭 "DMZ-Train"을 타고 도라산을 가다" ☆☆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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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의주길]을 따라서... '용암사'에서 '중에교'까지 답사기 용암사-용미1리-은곡교-장곡교-오두지맥고개-분수원교-윤관장군묘-광탄하나로마트- 신산5리-부곡3리-부곡2리-파주읍사무소-파주향교-봉서산-봉서3리-중에교 "가을편지" 중에서 이해인 누구나 한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살아 온 날을 고마워하며 떠날 채비에 눈을 씻는 계절 모두에게 용서를 빌고 약속의 땅으로 뛰어가고 싶습니다 "경기옛길-의주길"의 종합안내도입니다. [의주길]은 다섯구간으로 총52.1km이더군요. [제1길-벽제관길]은 "삼송역"에서 "벽제관지"까지 7.6km이고 [제2길-고양관청길]은 "벽제관지"에서 "용미3리"까지 6.2km [제3길-쌍미륵길]은 "용미3리"에서 "신산5리"까지 14km [제4길-파주고을길]은 "신산5리"에서 "선유삼거리"까지 11.6km [제5길-임진나루길]은 "선유삼거리"에서 "임진각"까지 12.7km랍니다. [구글지형맵] 오늘은 그 두번째로 '파주시 광탄면 용미1리'에 있는 "용암사"에서 '파주시 파주읍 봉서3리'에 있는 "중에교"까지 GPS 측정으로 "23.1km를 갑니다. ['용암사' 앞] 10:00 2016년 10월 22일 (화) 구름 많고 가끔 비 조금 내림 [서울역 버스환승센타]에서 [703번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약 1시간 30분이 걸려 지난 구간의 종점이었던 "용암사 입구"에 내렸습니다. GPS 작동등 간단한 출발 준비를 하고 바로 출발합니다. 보행자가 걸을수 있는 갓길이 없는 [78번지방도]를 조심스레 4분 정도 직진 진행하면... ['용미1리' 입구] 10:04 [용미1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정목이 길안내를 하는데 [← 4.8km 분수원교]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윤관장군묘]와 [분수원교]로 20분 이내에 갈수 있지만 [의주길]은 약6km를 좌측으로 뺑뺑이를 돌려 약1시간반을 걷게 합니다. 오리지날 [경기옛길-의주길]도 직진합니다만, 좀 많이 걸으라고 이런식으로 만든듯...ㅎ [삼거리-'오두지맥'마루금] "오두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용미1리 양지마을 안내석" 앞에 오랜만에 다시 왔습니다. "오두지맥" 마루금은 여기서 마을안내석 뒤로 이어져 "돌봉산"을 지나 가는데 잠시후 지나게 될 "장곡리"에서 "분수리"로 넘어 가는 고개에서 [의주길]은 이 마루금을 다시 만납니다. [갈림길] "용미1리" 양지마을길로 들어 가면 갈림길이 있으나 이정목이 길안내를 하고 있어 문제 없고... ['용미1리 마을회관'] 10:12 이어서 "용미1리 마을회관"을 만납니다. 스스로 장수마을이라고 자랑하는 "양지마을"에 "용미1리 마을회관"이 있군요. 마을 회관을 돌아 나가면... [마을 통과] '양지마을'을 4분여 걸려 통과하면 ['용암사 쌍미륵' 조망] 10:16 동쪽으로 "장지산"이 조망되며 "용암사 쌍미륵"도 보입니다. ['관청고개' 조망] 남쪽으로는 지난구간에 넘었던 "관청고개"가 이젠 추억으로 남고 멀리 "북한산"이 삐쭉 머리를 내밀고 있군요. ['서울시립 용미리공동묘지'] "국사봉"에서 "명복산"까지가 "용미리공동묘지"라고 불리우는 "서울시립용미리공동묘지"입니다. 대단한 면적이지만 더 이상 들어가 누울 자리는 없답니다. ['98번지방도' 합류] 10:21 "용미1리 양지마을"을 약17분이 걸려 통과하면 [98번지방도]를 만납니다. 이 도로는 지난 구간에 만났던 [용미5교차로]에서 "장곡리"로 가는 길이죠. ['서현공원' 앞 통과] 10:23 [98번지방도]를 100m 정도 진행하면 "서현공원"이라고 하는 "납골당"을 지나게 되는데 ['서현공원'] "서현공원"이라는 납골당은 지하주차장까지 있는 제법 큰 규모이더군요. "용미리공동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니까 이런 납골당이 번성하는가 봅니다. [비포장도로] 10:25 "서현공원"을 지나면 걷기에 위험한 [98번지방도]를 벗어나 걸을수 있는 비포장도로로 [의주길]은 안내됩니다. ['고산천' 둑방길] "공릉저수지"로 흘러 가는 "고산천"이라는 개천 둑방길을 따라 8분여 진행하면... ['은곡교'] 10:33 "은곡교"를 만나 다리를 건너 좌측 둑방길로 진행하고 ['고산천변길'] "고산천" 좌측 둑방길을 지루하게 20여분 더 진행합니다. [ 공장지대] "고산천" 둑방길 좌측에는 소규모 공장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가동을 하지 않고 문을 닫은 공장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가동하는 공장에는 검은 얼굴의 외국인들이 공장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장들 뒷쪽에는 조금전 "은곡교"에서부터 "파주제이골프장"이 차지하고 있어 문을 닫은 공장들과 골프장이 서로 비교되는 묘한 느낌을 받게 하더군요. ['장곡교'] 10:51 "장곡교"에 도착합니다. 우측에 흐르는 "고산천"은 "공릉저수지"와 곧 만난답니다. ['장곡1리'] "장곡교" 앞에는 "장곡1리 마을표지석"이 있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100m쯤 앞에 "공릉저수지"가 있고 옆에는 유명한 "공릉국민관광단지"가 있죠. 그리고 좌측 산에는 "파주 삼릉"이 있는데 "공릉" "순릉" "영릉"입니다. "공릉 恭陵"은 '조선 8대왕 예종"의 元妃인 "장경왕후"의 릉입니다. 어린 '단종'을 죽여 몰아내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앉히는 "계유정란"에서 결정적 역활을 한 천하의 모사꾼 "한명회" 아시죠? 그 "한명회의 셋째딸"입니다. 16살에 세자빈에 책봉되고 17살에 아들 낳다가 죽었습니다. 백성들은 '한명회'가 천벌을 받아서 딸이 일찍 죽었다고 비아냥 거렸답니다. "순릉 順陵"은 '조선 제9대왕 성종'의 元妃인 "공혜왕후"의 릉이죠. "예종"은 와이프로 맞은 '한명회 셋째딸"이 죽고 자신도 일찍 죽었지요. 그러자 "예종" 아버지의 동생인 "자을산군"이 "조선 제9대왕 성종"에 즉위하죠. '한명회'는 다시 남아 있는 넷째 딸을 "성종"의 元妃인 "공혜왕후"로 만들지요. 딸 두명을 왕비로 만든 막강 파워의 '한명회'이죠? ㅎ '한명회'의 세도가 어느 정도 였는지 알만하죠? ㅎ 하지만 이 딸-'공혜왕후'도 애를 낳지 못하고 19살에 죽어버렸습니다. 이로서 '한명회'의 시대도 가고... 그러니까 "공릉"과 "순릉"은 '한명회"의 딸 자매의 무덤입니다. '한명회'의 딸-공혜왕후가 죽자 소위 "여인천하 시대"가 열리죠? 드라마나 영화로 무지 울궈먹는 스토리 ㅎ "성종"의 세번째 왕비인 '제헌왕후'가 "폐비 윤씨"가 되고 복수에 불타는 "연산군 시대"로 가지요... "영릉 永陵"은 '영조'의 장남인 "효장세자"와 그의 부인의 릉입니다. "효장세자"는 유명한 "사도세자"의 형인데 일찍 죽어 동생이 세자에 올랐지만 "사도세자"마저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삼촌인 "효장세자"의 양아들이 되고 이어서 왕위에 올랐죠. ['장곡교' 건넘] "장곡교"를 건너 "장곡1리"로 들어 갑니다. [분수원교]까지 2.2km 남았다고 알리는 이정목이 있습니다. [삼거리] 10:57 "장곡교"에서 5분 정도 마을을 통과하면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고... ['장곡리'에서 '분수리'로 넘어 가는 길]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에서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로 넘어가는 완만한 오름길을 18분 정도 진행하면.... ['오두지맥' 고개] 11:15 "오두지백" 마루금이 지나는 고개에 도착합니다. 이 고개를 경계로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와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가 행정구역을 달리 하더군요. ['오두지맥 마루금'] "오두지맥 마루금"에는 [낙원 APC 표지기]가 세월 속에 희미해져 가고 있고...ㅎ ['분수리'] 낮으막한 고개를 넘으면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가 펼쳐 집니다. 15분 정도 마을을 통과하면.... ['분수2교(분수원교)' 조망] [분수2교(분수원교)]를 만나는데 이정목이 지금까지 안내하던 "분수원교"는 실제 [분수2교]이더군요. ['분수2교(분수원교)"에서 "윤관장군묘' 다녀 오는 길] 11:30 [분수2교(분구원교)] 우측 끝에는 "윤관장군묘"를 다녀오는 길 안내판이 전봇대에 있습니다. 이정표는 여기서 바로 좌측으로 가라고 알리고 있습니다만, "윤관장군묘"를 다녀 오지 않을수 없습니다. 참고로 다녀 오는 길을 더 자세히 알려 드리면... [네이버 위성지도] [분수2교(분수원교)]가 [현위치1]입니다. 제가 다녀 오는데 40분 정도 걸렸으니 참고 하시고... ['분수2교(분수원교)'에서 '윤관장군묘' 가는 길] [분수2교(분수원교)]에서 "윤관장군묘"로 가는 길입니다. ['윤관장군묘' 조망] [분수2교(분수원교)]에서 "윤관장군묘"까지는 제법 먼 거리이더군요. 묘지까지 둘러 보고 오는데는 약1km정도의 거리도 거리이지만 둘러 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갈림길] 11:40 마을을 만나면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윤관장군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곳이 앞의 '네이버 위성지도'의 [현위치2]입니다. ['윤관장군묘' 입구] 11:42~12:00 (18분간 묘역 순례) [78번지방도]가 지나는 길가에 있는 "윤관장군 묘" 입구에 도착합니다. ['여충문'] "스탬프함"이 있는 "윤관장군 묘역" 입구입니다. 정문인 "여충문 麗忠門"은 잠겨있고 우측 묘 입구로 가야 합니다. 스탬프함의 스탬프는 망가져서 찍을수가 없었고... [안내문] "윤관장군"에 대한 공식적인 안내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세요~ ['윤관장군묘' 정면] 왕릉 못지 않은 대단한 규모의 묘입니다. [왼쪽 '충려사'] 좌측에는 제사를 올리는 祠堂인 "麗忠祠"가 있고 [오른쪽 '사무실'등] 우측에는 '문화해설사'가 있는 안내소와 사무실등이 있더군요. [''윤관장군 묘'] "윤관장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과거시험 '무과'가 아닌 '문과'에 급제한 문인입니다. "강감찬장군"도 '문과' 출신이죠. ㅎ 칼싸움 잘한다고 전쟁을 잘한다고만 할수는 없죠? 전술도 좋아야하고 병력관리도 잘 해야 명장이 되는거니까요... 고려왕조의 개국공신인 "윤신달"이 "파평 윤씨"의 문호를 열고 5세손인 "윤관장군" 때에 이르러 가문이 엄청 번성하여 그후 조선왕조를 쥐락펴락하는 세도가의 가문으로 승승장구한 집안이 "파평 윤씨 가문"이죠? "파평윤씨"는 조선왕조의 왕비를 아홉명이나 배출한 대단한 가문이기도 합니다. 시인 윤동주, 7080 가수 윤형주, 락밴드 "윤도현씨"도 '파평윤씨'이고 파주 출신이더군요. [석물] 석물들이 도열하고 있는데 왕릉으로 착각하게 할 정도입니다. [안내문] "윤관장군묘역"은 지난 400여년간 "청송심씨"와 묘역 다툼이 있었는데 2008년에 분쟁이 완료되어 "청송심씨"들의 묘를 이장해 갔다고 알리는 안내문이 "윤관장군묘" 바로 뒤에 있더군요. "청송심씨 가문"은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 이전까지 조선왕조의 개국공신 집안이었죠. "소헌왕후"가 "청송심씨"입니다. "소헌왕후"의 아버지이자 "태종"과 사돈지간인 "심온선생"이 영의정이었을 때에 "태종 이방원"이는 왕권 강화를 위해 개국공신이나 세력화되는 인간들을 무참하게 토사구팽했지요. 피도 눈물도 없이 죽이고 또 죽였지요. 자신의 사돈이자 아들 "세종대왕"의 장인어른인 영의정 "심온 선생"까지 없는 죄를 만들어 죽였지요. 그런 "청송심씨" 가문과 "파평윤씨" 가문 사이에 땅 싸움이 400여년간이나 있었군요. ['윤관장군 묘' 전경] 장군의 묘 뒤로 올라가 펼쳐지는 전경을 촬영했습니다. 건너편에 "오두지맥"이 지나고 있고 조금전에 '장곡리'에서 넘어온 고개도 오른쪽에 보입니다. 명당자리라던가 이런것 보다는 규모에 놀라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인물인데도... ['윤관장군의 나무'] 12:00 입구에 "윤관장군의 나무"가 있는데 하마터면 놓칠뻔했습니다. ㅎ [분수원교]로 돌아 갈때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것보다 새로운 길인 도로를 따라 가려고 했으나 도로 갓길이 없어 위험해 그냥 왔던 길로 되돌아 갑니다. ['분수2교(분수원교)' 조망] 마을로 나가 [분수원교]를 조망하고... ['분수2교(분수원교)' 회귀] 12:12 [분수2교(분수원교)]로 회귀했습니다. 계속해서 직진 ['분수원교'에서 '광탄읍' 가는 길] [분수2교(분수원교)]에서 "광탄읍내"로 가는 길입니다. ['광탄읍 중심지' 조망] "광탄읍내"가 조망되고... 10여분 진행하면 [차도와 만남] 12:23~12:48 (25분간 점심식사) 새로 뚫린 도로와 만나는데 아침도 못먹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음식점을 찾아 읍내로 들어 가려고 하는데 앞에 보이는 "대동반점"이라는 중국집에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줄을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이 유명한 집인가보다 생각하고 들어가 '짜장밥'을 먹었는데 그런데로... 아마 값이 싸서인듯 ㅎ [광탄읍내 통과] 새로 뚫린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 가면... ['분수천교'] 12:50 [분수천교]를 만나는데 예전엔 [의주길]을 우측 제방 데크길로 다녔나 본데 지금은 도로가 깨끗하게 완공되어 다리를 건너 바로 진행합니다. 도로 신설로 안내표지기등은 모두 없어져 길찾기에 유의 해야 합니다. ['하나로마트' 앞] 12:57~1:03 "광탄읍내"의 중심부가 되버린 "하나로마트" 앞 [광신교]가 보입니다. 계속 직진하면 되더군요. ['하나로마트' 통과] 1:03 "하나로마트" 앞에는 [신산5리 2.9km→]라고 알리는 이정목이 길안내를 합니다. ['분수천' 둑방길] "하나로마트"를 지나 "분수천" 둑방길을 계속 직진 진행합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새술막교'] 1:13 "새술막교"를 지납니다. ['새술막 이야기 안내판'] 420여년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쪽바리들이 쳐들어 오자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길로 "조선 14대왕 선조"가 저만 살겠다고 도망간 길이군요. '의주'로 도망 가면서도 백성들에게 신세를 많이 지며 갔군요. 베풀며 가도 시원찮은데... 제가 제일 저질의 왕이라고 하는 "선조"의 쪽팔리는 행태가 여기서도 있었군요. ['분수천' 갓실] "분수천" 갓길을 13분여 더 진행하면... ['외화산교'] [외화산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가야 합니다. ['외화산교' 통과] 1:26 [외화산교]를 건너 직진해서 2~300m 진행하면.... ['광탄어린이집' 앞-'제4길 파주고을길' 출발지점] 1:30 "광탄어린이집"이 있는 [신산5리입구]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경기옛길-의주길 제3길 쌍미륵길]이 끝나고 [제5길 파주고을길]이 시작되는 곳이군요. 이곳에 [703번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으니 구간을 끊을때 참고 하면 좋습니다. ['제4길-파주고을길' 안내문] [경기옛길-의주길]의 "제4길 파주고을길"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교통 관계로 [중에교]까지만 갑니다. 그 이유는 [중에교]에 가서 알려 드림니다. [갈림길] "광탄어린이집" 담장을 따라 조금 가면 담장이 끝나는 곳을 만나는데 이정목이 좌측으로 안내합니다. ['분수천'으로 가는 길] 1:33 다시 "분수천" 둑방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의주길]은 "분수천 외화산교"에서 "ㄷ자" 모양으로 진행되는 것이었습니다. 10여분 진행하면 ['분수천' 둑방길] 1:43 다시 "분수천" 우측 둑방길을 만나 진행하게 되고 5분 정도 진행하면... ['법원리-파주'간 도로공사] 1:49 "파주-법원리"를 잇는 신설 도로공사 다리 밑을 지나갑니다. 다시 둑방길을 7분여 더 진행하면... [갈림길] 1:56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 우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부곡3리' 조망]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농로가 이어지고 넘어야할 고개가 보이는데 [부곡3리]에서 [부곡2리]로 넘어 가는 고개이더군요. 농로를 5분 정도 진행하면... ['부곡교'] 2:01 "문산천"을 건너는 "부곡교"를 만나 건너 가서... ['부곡3리' 입구] 2:03 계속 직진하여 "부곡3리"를 통과하여 앞에 보이는 능선을 넘어 갑니다. ['부곡3리' 통과] '파주시 파주읍 부곡3리'에서 '부곡2리'로 넘어 가는 길입니다. 완만한 오르내림길인데 25분 정도 걸림니다. ['부곡2리'] 2:27 "부곡3리"에서 고개를 넘어면 바로 "부곡2리"를 만나고 ['부곡2리' 통과] 약 15분 가량 "부곡2리"를 통과하면... ['파주읍' 조망] 2:42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중심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10여분 진행하면 ['오봉교'에서 '봉서산' 조망] 2:52 "갈곡천" 위를 건너는 "오봉교"를 건너 갑니다. 오늘 유일한 등산코스로 넘어야 할 "봉서산"이 조망됩니다. "봉서산"은 '파주의 진산'이라네요. [삼거리] 2:57 "오봉교"를 건너 5분 쯤 진행하면 큰 삼거리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죄측으로 방향을 틀면... ['파주읍사무소' 조망] "파주읍사무소"가 보이기 시작하고 ['파주읍사무소'] 3:02 "파주읍사무소"는 "파주읍행정복지센타"라는 이름이라고 알리고 있는데 [의주길]은 "파주읍사무소"를 빙 돌아 갑니다. ['파주읍사무소' 옆길] 3:04~3:24 (20분간 휴식) "파주읍사무소" 좌측길입니다. 이곳 길가에 주저 앉아 20여분간 휴식을 취하고 출발합니다. ['파주삼거리' 가는 길] 3:25 "봉서산"을 바라보며 주택가를 통과 하게 되겠습니다. [주택가-시장 통과] 시장도 있는 주택가를 잠시 통과하면... ['파주삼거리'] 3:31 "파주읍"의 중심가인 "파주삼거리(주내삼거리)"를 만나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파주우체국-파주파출소' 통과] 골목으로 들어 가면 "파주우체국"과 "파주파출소"를 지나 "봉서산"으로 올라 가게 되더군요. ['파주초등학교' 옆 통과] 이어서 좌측 "파주초등학교"와 우측 군부대 사잇길로 올라 가면... ['주내교회'] "주내교회" 앞을 지나 고도를 조금씩 높이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더 올라 가면... ['파주향교' 갈림길] 3:40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길은 "봉서산"으로 올라 가는 길이고, 우측은 "파주향교"로 가는 길인데 "파주향교"를 가 볼려면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 와야 합니다. 우측으로 30m 쯤 내려 가면... ['파주향교'] "파주향교"가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들어가 봐야 볼것도 없는 향교인지라 방문은 생략하고 되돌아 갑니다. ['봉서산산림공원' 입구] 3:42 삼거리로 되돌아 와서 "봉서산산림공원" 안으로 들어 갑니다. ['봉서산산림공원' 안내문] "봉서산"은 '오동나무'에 살며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는 "봉황"이 깃들어 노래하며 즐기던 산이라고... '파주'의 진산이랍니다. "봉황 鳳凰"은 "봉 鳳"은 암컷을 말하고 "황 凰"은 숫컷을 일컷는데 이 새는 둘이 합쳐야 하나의 새가 되어 "봉황"이 되는 전설 속의 새이죠. 우리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봉 잡았다고"고 하고,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황 잡았다"고 하지요? 화투 노름 할때 제일 많이 쓰는데... 이거이 "봉황"의 암컷을 잡았는지 숫컷을 잡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이죠. [운동시설] 3:45 조금 올라 가면 운동시설들이 있고 [포장도로] 3:48 이어서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군사도로이더군요.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더군요.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 3:50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의주길]은 우측 포장도로를 따라 간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상 이런 곳에는 좌측으로 올라 가야 정상석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어 정상석을 보기 위해 좌측 등산로로 올라 가 봅니다. 좌측길로 올라 가도 다시 우측 도로를 만날수 있더군요.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4분 정도 오르면... [공터] 3:54 풍향기가 있는 공터에 오르는데 의자가 있고 군시설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2분 정도 더 올라 가면... [전망대] 3:56~4:17 (11분간 조망및 휴식)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잘 올라 왔구나~ 생각했는데 정상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망] 전망대에 올랐는데 이 지역에 대해선 아는게 없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출발합니다. [포장도로] 전망대에서 내려 가면 다시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이번엔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 갑니다. 좌측에는 군부대 이더군요. 잠시 내려 가면 [삼거리] 4:20 조금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전 [의주길]이 우측에서 올라와 좌측으로 가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도 전망대가 있더군요. [전망대] "산불감시초소"와 "봉서산에 얽힌 이야기 안내판", 그리고 전망대가 있습니다. 전망대로 나가 보면... ['파주읍' 조망] "부곡3리"에서 "부곡2리"로 넘어 오는 고개가 "파주읍사무소"로 연결되는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봉서산에 얽힌 이야기'] "봉서산에 얽힌 이야기"는 안내판을 참고하시고... 차라리 근간에 타계한 코미디언 "구봉서씨"의 인생을 더덤는게 더 나을듯 ㅎㅎ ['봉서산 정상석'] 4:22 삼거리 전망대에서 다시 좌측으로 조금 내려 가니 정상석이 보입니다. 군부대 때문이겠지만 정상석이 산 중턱에 있군요. ㅎ 저 정상석을 찾으러 땀 좀 흘리며 군부대 입구 전망대까지 올라 갔다가 왔는데 여기 있어 허무... [내림길] "봉서산"을 내려 갑니다. 15분 정도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 가면.... [고개] 4:37 조그만 고개를 하나 지나고... [숲길] 이어서 숲길을 8분 정도 진행하면... [마을] 능선 좌측편으로 "봉서4리"가 조망됩니다. [도로] 4:45 이어서 도로를 만나는데 이정목이 우측 도로 따라 가라고 안내 합니다. 좌측 계단으로 가면 바로 '문산' 중심가로 가더군요. ['봉서3리'] "봉서3리"를 통과해 잠시 내려 가면... [갈림길] 4:49 좌측으로 가라는 이정목을 만나고 ['중에교' 가는 길] 7~8분 더 진행하면 [삼거리] 4:58 굴다리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서 100m 정도 가면 ['문산여고'앞 사거리-'중에교'] 5:00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문산여고앞 사거리"라고 하며 "중에교"가 있습니다. [의주길 4구간]은 직진하여 "선유삼거리"까지 1~2km 더 가야 하지만, "선유삼거리"에선 교통이 불편하여 이곳에서 답사를 마치고, 이곳이 종점인 [703번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는게 경제적이며 편리하다고 판단되어서 여기서 답사를 마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조금 가면.... ['봉서3리 버스정류장'] [봉서3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7~8분에 한대꼴로 다니는 [703번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환승하여 귀가했습니다. "서울역"까지 2시간 남짓 걸리더군요. [구글지형맵] [고도표] 고도표의 높이가 매우 높은듯 보이는데, 거리가 23km여서 고도표 폭을 줄이다보니 높이가 비대칭 되는군요. 제일 높은 "봉서산"이 214.5m 정도이니 전체적으로 평지성 길이었습니다. GPS로 측정된 거리는 23.1km였으며 7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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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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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파일:1][파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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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의주길]을 따라서... '삼송역'에서 '용암사'까지 답사기 삼송역-김지남묘-덕명교비-벽제교-대자삼거리-벽제관지-고양향교-중부대학교- 연산군금표비-혜덕사-성황당고개-고읍마을-관청고개-용미3리-용미2리-용암사 "가을편지" 중에서 이해인 누구나 한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살아 온 날을 고마워하며 떠날 채비에 눈을 씻는 계절 모두에게 용서를 빌고 약속의 땅으로 뛰어가고 싶습니다 "경기옛길-의주길"의 종합안내도입니다. [의주길]은 다섯구간으로 총52.1km이더군요. [제1길-벽제관길]은 "삼송역"에서 "벽제관지"까지 7.6km이고 [제2길-고양관청길]은 "벽제관지"에서 "용미3리"까지 6.2km [제3길-쌍미륵길]은 "용미3리"에서 "신산5리"까지 14km [제4길-파주고을길]은 "신산5리"에서 "선유삼거리"까지 11.6km [제5길-임진나루길]은 "선유삼거리"에서 "임진각"까지 12.7km랍니다. [구글지형맵] 오늘은 그 첫번째로 [제1길-벽제관길 7.6km]와 [제2길-고양관청길 6.2km]를 진행하고 [제3길-쌍미륵길 14km] 중에서 일부 구간 약5km를 더 답사합니다. GPS로 측정된 거리는 "18.6km"였습니다. [의주길-제1길 벽제관길] [경기옛길]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의주 제1길-벽제관길] 안내문입니다. ['삼송역' 8번출구] 11:05 2016년 10월 18일 (화) 안개후 맑음 [의주 제1길-벽제관길]의 출발지점은 [지하철 3호선 삼송역 8번출구]였습니다. [8번출구]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오르면 바로 우측에 [의주길 종합안내도]가 있고 바로 좌측 골목으로 [의주길]은 안내 됩니다. 이정목이 가리키는 방향은 조금 애매하지만 좌측으로 급방향 변경을 해야 합니다. 무심결에 그냥 나가 직진하면 길을 찾을수가 없으니 유의 해야겠고 [골목] 골묵을 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통일로'] 11:10 [1번국도]이며 [통일로]라고 불리우는 도로를 만나는데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입니다. 이 사거리를 직진해서 건너가 건너편 골목으로 [의주길]은 이어지는데 횡단보도가 없더군요. 좌측 '통일로'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확장공사 중인 '통일로'] 8차선으로 도로를 확장하고 있는 [1번국도-통일로]가 펼쳐지고 바로 앞에 길을 건널수 있는 횡단보도가 있어 저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길을 건넙니다. 그리고 저 앞에 "에코브릿지"가 조망되는데, [의주길]은 우측 숲으로 이어지다가 저 "에코블릿지" 우측 위에서 "김지남 묘"로 이어지더군요. 이 길로 직진하면 간단하게 갈수 있지만 [의주길]은 시작부터 뺑뺑이를 돌립니다. ㅎ [배수지 가는 길] 11:13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골목으로 들어 가는 입구 입니다. [북한산 5.98km→]라고 알리는 이정목과 [의주길]을 알리는 이정목이 있습니다. 이곳은 "북한산"으로 가는 길과는 아주 딴 길인데...노고산 지나 '창릉천'을 건너야 북한산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관악산"도 이곳에서 갈수는 있긴하죠? ㅎ ['한북정맥' 마루금] 11:16 좁은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추억의 "한북정맥 마루금"을 만납니다. 제가 "한북정맥"을 두번째 종주 할때엔 우측에 있는 배수지가 공사 중이었는데 완공되었군요. 고개를 조금 더 내려 가면... [갈림길] 11:17 이정목이 좌측으로 가라고 합니다만, 좌측으로는 길이 없어 갈수 없고 조금 아래에 좌측으로 갈수 있는 길이 있으니 유의 해야 합니다. 제가 '한북정맥'을 할때도 이용했던 우회로여서 저는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저 아래 입구로 가면... [갈림길] ★ 길조심 ★ 입구에는 다시 갈림길이 있는데 좌측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길안내표지가 없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선답자들 중엔 많은 분들이 여기서 우측으로 가서 알바를 심하게 했더라구요. 좌측으로 조금 올라 가면... ['한북정맥' 마루금] 오리지날 '한북정맥' 마루금을 다시 만나고 [배수지] 11:23 배수지 앞으로 가면 [의주길] 안내표지목이 반겨 줍니다. ['한북정맥' 마루금] '한북정맥 마루금'이기도 한 숲길을 5분 정도 진행하면.... ['1번국도' 숫돌고개 에코브릿지] 11:28 공사를 하고 있는 [1번국도-통일로] '에코브릿지'를 만납니다. 이 '에코브릿지'는 조금전 [삼송역]에서 나와 만난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며 조망한 '에코브릿지'입니다. 제가 직진하면 간단하다고 한 그 '에코브릿지'입니다. [의주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데 길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김지남 묘"로 연결하려고 억지를 부린듯한 느낌을 받는데.... 여튼 우측으로 길없는 길을 잠시 내려 가면... [묘지] 묘지를 만나는데 이 묘지가 "김지남 묘"는 아니고,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 가야 하더군요. 조금 더 내려 가면... ['김지남' 묘역] "김지남 묘역"이 제법 큰 규모로 펼쳐지는데, "우봉 김씨 묘역"이라고 하네요. "김지남 묘"는 묘역의 최상단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안내판이 보이니까... ['김지남' 묘] 11:33~11:36 "김지남 묘" "김지남"이라는 분은 '조선 숙종' 때에 중국 일본을 오가며 활약한 통역관인데, 통역을 하며 외교도 함께한 능력있는 외교관으로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를 해결하고 그때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사람이랍니다. 그리고 청나라에서 "염초제조법"을 최초로 알아내어 '신전자초방'을 지었다고도 하는군요. 이런저런 업적으로 "중추부지사"라는 높은 벼슬에 오르고 "형조판서겸 오위도총부도청관"에 추증되었답니다. ['북한산' 조망] "김지남 묘"에선 '북한산"이 조망되는데 아직도 연무가 남아 있어 조금 아쉽군요. 앞에는 '한북정맥'이 "노고산"에서 "숫돌고개"로 이어지고 있고 ['삼송지구'] 북쪽으로는 "삼송지구 아파트단지"가 조망되는데 공사가 상당히 진전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고양오금초등학교'] "김지남 묘"에서 [의주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안내판이 없어 알수 가 없지만 "고양오금초등학교" 앞으로 적당히 내려 가면 되더군요. ['고양오금초교' 앞] 11:38 아파트단지 공사가 맑끔하게 끝난 "고양오금초등학교" 앞 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오금천'] 11:42 도로 우측에 흐르는 개천은 "오금천"이라고.. "오금천" 개천변길'로 내려 가지 않고 도로 따라 직진합니다. 100m 쯤 진행하면... [갈림길] 11:45 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우측 산책로로 들어 가야 하더군요. [산책로] "삼송휴먼시아아파트단지" 앞 산책로를 5분 정도 진행하면.... ['덕명교비'] 11:51~11:52 [의주길 스탬프함]이 있는 "덕명교비"를 만납니다. ['덕명교비'] "덕명교비 德明橋碑" 이 고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공릉천"에 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랍니다. ['오금천11교'] 11:54 "덕명교비"를 지나면 바로 다리를 만나는데 이 다리가 "덕명교"인가 했더니 이 다리는 "오금천11교"이더군요. "오금천"은 이곳에서 "공릉천"과 합수하며 이름을 잃어버리더군요. ['공릉천'에서 '벽제교' 조망] "오금천11교"에서 좌측으로 "공릉천"이 펼쳐지며 멀리 [1번국도-통일로]가 지나는 "벽제교"가 보이는데 저 "벽제교"를 건너 가야 합니다. ['벽제교'] 11:59 [1번국도]가 조금전 "숫돌고개" 근처에선 아직도 공사 중인데 이곳은 공사가 완료되었군요. "벽제교"를 건너 가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통일로 I.C'] 12:02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통일로 I.C"를 지나게 되고 ['서울시립승화원' 입구] 12:12 이어서 소위 "벽제화장터"라고 불리워지는 "서울시립승화원" 입구를 지납니다. 저와 관계되는 수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승화 하셨습니다. ['대자삼거리'] 12:14 이어서 "대자삼거리"를 직진해서 건너 갑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가는 길이 "의정부"로 가는 [39번국도]이죠. 조금 있다가 이 길 [39번국도]를 다시 만나 "고양동"으로 갈 것입니다. ['제1대자교'] 12:18 "대자삼거리"를 지나면 이어서 "제1대자교"를 만나 건너고 [다리 끝 지점]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정목이 풀섶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니 유의 해야겠고... ['용복교' 가는 길] 12:20 지금부터 우측 "벽제천"의 둑방길을 따라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멀리 "북한산"이 연무 속에 조망됩니다. [벽제관지 3.4km→]라고 알리고 있고 ['벽제천' 둑방길] 7분 정도 둑방길을 진행해 앞에 보이는 "용복교"로 가서 다리를 건너 우측 둑방길로 직진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벽제천' 우측 둑방길] 12:27 "용복교"를 건너 우측 둑방길로 계속 직진 진행합니다. 이 둑방길을 12분 정도 진행하면... ['빈정교' 앞 사거리] 12:39 ★ 길조심 ★ "빈정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사거리입니다. 이정목이나 길안내 표지가 잘못된 곳을 종종 만나지만 "그런 실수를 할수도 있겠지~"라고 특별히 질타를 하진 않습니다만, 이곳의 이정목은 언급 하지 않을수가 없군요. [덕명교중수비 3.2km →] [← 2.8km 벽제관지]를 알리는 이정목은 반대방향을 알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식홈페이지에 올려진 [GPS트랙]과는 반대방향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GPS트랙은 여기서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체적인 흐름, 즉 어느 길로 가던 우측 [39번국도-의정부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갔기에 여기서 어느길로 가던 상관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직진하여 우측 [39번국도-의정부길]로 나갔습니다. 7~8분 직진하여 [39번국도]로 나갑니다. ['39번국도'] 12:49 [39번국도]를 만나서 ['39번국도'] 13분 정도 [39번국도]를 따라 올라 가면... ['응달촌버스정류장'] 1:02 [응달촌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앞에는 "고양삼거리"가 있습니다. "고양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고양1교'] 1:04 "고양동"의 주요 들날머리입니다. "고양1교"를 건너 "삼성디지털프라자" 우측길로 진행합니다. 이정표들이 잘 보이지 않으니 조심해야 하는 곳입니다. ['고양동' 통과] 1:09 "고양동" 중심가를 5분 정도 직진해 올라 가면 세갈레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정목이 있습니다. 이정목이 있는 가운데 길로 올라 가면 되겠습니다. ['고양초등학교' 앞] '고양동'은 "고양시"의 진원지랍니다. 요즘은 "일산"을 "고양시"의 중심부로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이곳이 중심부 였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 동네는 "고양동"이랍니다.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는듯 한데 초등학교는 5층이나 되는군요. 학생수가 많은가 봅니다. 초등학생들이 5층을 오르내리기가 힘들텐데... ['벽제관지'] 1:13 '고양초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벽제관지 碧蹄館址"를 만납니다. 이곳은 [의주 제1길-벽제관길]이 끝나고 [의주 제2길-고양관청길]이 시작되는 곳이더군요. [스탬프함]이 이곳에 있습니다. [의주길-제2길 고양관청길] [경기옛길]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의주 제2길-고양관청길] 안내문입니다. [제1길]에 이어 계속 [제2길]을 진행합니다. ['벽제관지' 통과] "벽제관"은 중국을 왕래하는 관리들이나 사신들의 숙소였답니다. [의주길]은 "벽제관지" 우측으로 빙 돌아 대각선 방향으로 갑니다. [뒤돌아 본 '벽제관지'] 주춧돌만 남은 "벽제관 터"를 뒤돌아 보고 ['벽제관지' 옆 근린공원] 1:18~1:32 (14분간 휴식) "벽제관터" 옆에는 근린공원이 있어서 쉬어 갑니다. 14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의주 제2길-고양관청길]을 출발합니다. 앞 도로로 직진해 가서... [도로 건넘] 1:33 ★ 길조심 ★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 "장군집" 앞 골목으로 갑니다. 길안내 표지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길을 미리 알고 가야 합니다. 이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로 갑니다. "고양향교"와 "대자산"을 통과하여 다시 이 길을 만나는데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 앞에서 만납니다. [골목] "장군집" 앞 골목으로 들어 가서 직진합니다. 앞에 보이는 "신화트윈빌"로 가서 ['신화트윈빌' 앞 삼거리] 1:38 ★ 길조심 ★ "신화트윈빌" 앞 삼거리에서 좌측 골목으로 가야 합니다., 저는 직진했다가 알바하고 되돌아 왔는데 "고양동"을 통과하는데 안내판이 시원찮아 많이 불편했습니다. [골목] 골목을 직진해 4분여 통과하면... ['고양향교' 앞] 1:43 홍살문이 보이는 "고양향교" 앞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홍살문 안으로 들어 가면... ['중남미문화원'] 홍살문 안으로 들어 가면 먼저 우측에 "중남미문화원" 정문이 있는데 입장료를 내야 들어 가는군요. 입장료도 무려 5,500원/인 '중남미문화원' 홈페이지에 가면 어느 정도 궁금증을 풀수 있으니 관람은 생략합니다. 우리나라 문화도 아직 잘 모르는데 중남미 문화까지 알려면 할일이 너무 많고...ㅎ 갈길도 멀고... ['고양향교'] "고양향교 高陽鄕校"는 보수공사 중에 있더군요. [의주길]은 좌측 골목으로 갑니다. ['고양향교' 내부] 보수공사 중에 있는 "고양향교" 안을 슬쩍 들여다 보고 [담장길] 1:47 '고양향교' 담장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고양향교' 조망] 1:49 "고양향교" 뒤에는 포토존을 만들어 놨기에 올라가 "고양향교"를 한컷 찍고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4분 정도 올라 가면... [원두막] 1:53 이정목이 있는 원두막을 만납니다. 원두막을 지나 산으로 조금 올라 가면.... ['최영장군 묘' 갈림길] 1:56 [←최영장군 묘]로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는데 [의주길]은 우측 [체험의 숲] 방향으로 갑니다. 이 산은 "대자산 大慈山 210m"이라고 하는 산인데 이 산에는 "최영장군 묘"와 "세종대왕"의 유일한 친남동생인 "성령군"의 묘가 있습니다. 여기서 "최영장군 묘"까지는 제법 멀어 다녀 오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고양누리길]를 가면 모두 답사할수 있으니 다음에 [고양누리길]을 가 보기로 하고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최영장군 묘" 사진을 보여 드리면 [최영장군 묘] ['호랑이굴' 갈림길] 1:57 이어서 [←호랑이굴] 갈림길을 지나갑니다. "호랑이굴"도 궁금하다구요? ㅎ 잠시면 다녀 올수 있고 ['체험의 숲'] 1:59 이어서 "체험의 숲"을 지나면 [갈림길] 2:01 ★ 길조심 ★ 제법 넓은 임도를 진행하다가 갈림길을 만납니다. 넓은 임도는 우측으로 꺽여 내려 가지만 [의주길]은 직진성 좌측길로 갑니다. [의주길 리본]이 달려 있으니 유의 해야 하더군요. ['호랑이굴' 갈림길] 2:02 다시 [호랑이굴] 갈림길을 지나 내림길을 5분 정도 내려 가면.... [도로 만남] 2:07 "벽제관터"에 직접 오는 도로를 만납니다.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 조망] 도로에 내려 서면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행로] 대학교 앞 도로여서인지 보행로가 좋습니다.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 2:13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 정문 앞을 지나고 ['천주교묘' 앞 버스정류장] 2:17 버스정류장 이름이 [천주교묘]라는 곳에서 길을 건너 좌측 보행로로 진행합니다. ['경기축산' 앞 버스정류장 삼거리] 2:23 "경기축산"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삼거리를 만납니다. 앞에 "미니스톱"라는 편의점이 보이는데 우측으로 [의주길]이 이어 집니다. 이정목이 [연산군시대 금표비 0.6km →]라고 알려 줍니다. ['연산군시대 금표비' 조망] 2:26 "미니스톱 편의점"에서 좁은 도로를 따라 조금 들어 가면 "연산군시대 금표비"가 보이기 시작하고... ['연산군시대 금표비'] 2:27 "연산군시대 금표비"는 길가에 유물로 남아 있군요. ['금표비'] [안내문] "연산군"이 자기 사냥터에만 집착한게 아니라 여자 사냥에도 엄청난 집착을 했지요. '흥청망청'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인간이니 이 정도 금표는 아무것도 아니죠. 조선왕조 선왕들을 기리는 "원각사-종로2가 파고다공원"을 허물고 기생 양성소를 만들었지요. 그 기생 양성소의 이름이 "흥청"인데 백성들이 씹는 말로 망할짓이라고 "흥청"은 "망청"이 된다는 "흥청망청"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 였으니... 전국에서 이쁜 처녀들 25,000명 정도를 뽑아 기생 수업을 시켜 데리고 놀았으면 "흥청망청"이 틀림없죠? ㅎ "흥청"에 비하면 이런 "금표비"는 비할바가 못되죠. ['혜덕사' 조망] 2:30 "연산군시대 금표비"를 지나면 "혜덕사 惠德祠""성황당고개"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헤덕사"를 들렸다가 다시 "성황당고개"를 넘어 가야 합니다. ['혜덕사'] 2:33~2:34 ['혜덕사' 안내문] "혜덕사 惠德祠" "태종 이방원"이의 일곱번째 아들인 "온령군"과 그의 후손들의 사당이더군요. "온령군"은 "세종대왕"의 이복동생이죠. "세종대왕"의 친남동생이 한명있었는데 앞서 언급한바 있는 "성령군"이라고... "성령군"은 일찍 병으로 죽어 역사에는 등장 하지 않지만 그의 무덤이 조금 전에 지났던 "최영장군 묘"가 있던 "대자산" 아래 기슭에 있다고 알려 드렸죠. "세종대왕"의 친남동생은 "성령군" 한명뿐이었고, 친여동생이 4명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이복동생은 무지 많은데 남동생이 7명, 여동생이 14명이나되죠. 그러니까 "태종 이방원"의 자식은 모두 29명이었답니다. [갈림길] 2:38 "성황당고개"를 넘어가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정표가 길안내를 해 주니 문제 없고 ['고읍마을' 조망] 2:41 이어서 "고읍마을"이 펼쳐지며, 넘어야할 "관청고개"도 조망됩니다. "관청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용미리공동묘지"입니다. ['고읍마을' 통과] 조그만 마을에 교회는 무지 큰 규모를 자랑하고, 노인요양소도 무척 큽니다. [마을버스 종점] 2:49 "삼송역"에서 이곳 "고읍"까지 마을버스가 30분에 한대씩 운행하고 있더군요. 때마침 마을버스가 들어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어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고 여기서 답사를 접고 집으로 갈까?라고도 생각해 봤습니다. ㅎㅎ 구간을 짜를때 이곳으로 하면 교통이 편리해서 좋겠습니다. ['고읍마을회관'] 2:51 이어서 "고읍마을회관"을 만납니다. 조선 중종때엔 이곳에 "고양관청"이 있었답니다. 1544년부터 1625년까지 81여년이나 존속했다는군요. 그래서 현재는 "古邑"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읍'과 '관청고개' 안내문] 안내문을 참고하시고 ['관청고개' 조망] "고읍마을"을 통과하며 넘어야할 "관청고개"를 바라봅니다. [갈림길] 2:55 길안내가 보이지 않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길로 올라 갑니다. [오름길] 13분 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관청고개'] "관청고개"에 도착합니다. ['관청고개' 정상] 3:08~3:28 (20분간 휴식) "관청고개" 정상에는 이정목이 설치되 있는데 [용미3리 1.4km→]라고 알려 줍니다. 여기서 20분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출발합니다. ['용미리 공동묘지' 윗길] "관청고개" 너머에는 "용미리공동묘지"가 펼쳐지는데 능선을 따라 조금 가면 내림길이 이어집니다. ['한우물약수터'] 3:31 계곡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한우물약수터"를 만납니다. 공동묘지에 있는 약수터라 꺼림직 했는데 수질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았더군요. [내림길] 10여분 완만한 경사의 계곡 내림길을 내려 가면... [묘지길] 3:41 묘지로 통하는 비포장도로를 만나 내려 가고 ['오두지맥' 조망] 조금 더 내려 가니 추억의 "오두지맥"이 조망됩니다. 좌측으로 눈길을 조금 돌리면... ['박달산' 조망] "오두지맥"이 지나는 산줄기가 추억을 불러 오고... "오두지맥"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쓴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헬기레펠훈련장"이라고 표기한 곳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수 있습니다. 물론 "박달산" 정상도 볼수 있구요. ['용미리 제1묘지 입구'] 3:49 시원하게 도로확장공사를 완료한 [78번지방도]를 만나는데 이곳이 [용미리 제1묘지 입구]이더군요. 이곳이 [의주 제2길-고양관청길]의 종착지이고, [의주 제3길-쌍미륵길]의 출발점이 되는 곳인듯 한데 도로확장공사로 표지기들이 모두 사라졋습니다. [의주길-제3길 쌍미륵길] 더 걸을수 있는 여력이 있기에 [의주 제3길-쌍미륵길]을 계속해서 진행합니다. [의주길]을 세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하려면 "용암사"까지 오늘 진행하는게 다음 구간을 위해 좋겠지요. ['78번지방도'] 그동안 공사를 하던 [78번지방도]는 6차선으로 시원하게 확장 완료되어 오가는 차량들이 기분 좋은듯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갓길이 있어 위험하지 않아 좋습니다. 7분여 도로 갓길을 진행하면... ['용미3리 버스정류장'] 3:56 [용미3리 버스정류장]을 만나며 앞에 삼거리가 있습니다. 삼거리에서 좌화전하여 "용미3리"와 "용미2리"를 통과하여 가라고 뺑뺑이를 돌립니다. 이 구간의 지리를 미리 알고 가도록 네이버 위성지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현위치 1] 윗 사진의 [용미3리 버스정류장]의 위치가 이 네이버 위성지도의 [현위치1]입니다. 확장 완료된 [78번지방도]를 직진해 "용암사"로 갈수 있습니다만 [의주길]은 별 의미도 없이 마을을 돌아 가라고 안내 합니다. 도로확장공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갓길 걷기가 위험해서 마을길을 걷는게 의미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확장 완료되어 그런 위험은 없고, 또한 조용한 시골마을 통과하는게 마을 주민들에게 그다지 환영받는 일은 아닌듯 합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경계하기 위해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있어 집앞을 지날때마다 개소리의 합창으로 동네가 시끄러워지더군요. ['용미3리 마을회관'] 4:00 하지만 저는 [의주길]이 시키는데로 진행합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용미3리마을회관" 앞을 지나고 [마을 통과] 4:20 ★ 길조심 ★ (알바) "용미3리" 마을을 통과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할곳이 많더군요. 저도 왔다리 갔다리 하며 통과햇습니다. 20여분 마을을 통과하면 ['용미3리'에서 '용미2리'로 넘어 가는 길] "용미3리"에서 "용미2리"로 넘어 가는 고개를 하나 넘고 [농로] 고개를 넘으면 농로를 잠시 통과하고 ['용미2리'] 4:27 이어서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용미2리"인듯 합니다. 이정목의 길안내를 따라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용미슈퍼'] 4:27 "용미슈퍼" 앞을 지나고 ['용암사 쌍미륵' 조망] "오두지맥"이 지나는 "장지산" 아래 "용암사 쌍미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진에는 쬐끄만하게 보입니다만 실제는 크게 확실히 보인다는거 아시져? [사거리] 4:33 확장공사 완료한 [78번지방도]에서 [98번지방도]가 분기하는 "용미5교차로"가 앞에 보이는데 [의주길]은 [옥미교]라고 하는 이 다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라고 알립니다. 물론 직진해서 앞에 보이는 [용미5교차로]로 나가 좌회전해도 되더군요. 이곳의 위치를 알아 보면 [현위치 2] 이곳이 [현위치 2] 지점입니다. 이해하기 쉽죠? ['장곡리' 방향] [옥미교]에서 좌회전하면 "장곡리" 방향의 [98번지방도]가 펼쳐지며 다음 구간에 진행할 "장곡리" 방향과 "돌봉산"이 조망됩니다. "오두지맥"이 지나는 "돌봉산"이니 제가 쓴 "오두지맥 산행기"를 보시면 정상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78번 지방도'] 4:37 [78번지방도]로 다시 합류하면 [부대앞]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고개로 직진 진행합니다. [확장공사 구간 끝지점] 4:39 그런데 [78번지방도]는 여기까지만 확장하고 중단되었군요. "용암사 쌍미륵"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 옵니다. ['용암사' 가는 길] 확장이 않된 도로 갓길을 걷는 것은 매우 위험 했습니다만 어쩔수 없이 "용암사"로 향합니다. 5분 정도 위험을 무릅쓰면... ['용암사' 입구] 4:45~4:55 "용암사" 입구에 도착합니다. "용암사"를 10여분 둘러 보고 나와 좌측에서 [703번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습니다. 건너편엔 버스정류장 표시가 없습니다만, 버스가 지날때 손을 들면 정차하더군요. ['장지산 용암사' 일주문] "오두지맥"을 하며 다녀 간적이 있습니다만 한번 더 둘러 보고 갑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전] 범종과 대웅전이 있고... 여기서 좌측 "삼성각"을 꼭 보고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승만대통령 탄생설화"가 있는 안내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좌측으로 가면... ['이승만대통령' 탄생설화] "삼성각" 옆에 [7층석탑]과 [동자상]이 있습니다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 보세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의 탄생설화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근간에 '국사편찬위원장'에 박근혜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유영익씨".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장인 "유영익씨"가 하늘로 모시는 "이승만 대통령"... "국정교과서"를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만드는 나라...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습니까? 뭔 비밀 문서 만드는건가요? 모두 다 아는 뻔한 역사교과서 만드는건데...왜 숨어 만드나요? "이승만대통령"의 탄생 설화가 이런 절간의 미륵석불에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곳 "용암사 쌍미륵불"에게 득남 발원 기도로 부터 탄생되었다는 설. ㅎㅎ 이 산 저 산 돌아 다니지 않으면 알수 없는 사실들을 이렇게 돌아 다니며 알게 됩니다. 이승만대통령은 재임시절 1954년에 이곳을 찾아 동자상과 7층석탑을 세웠다네요. 이승만대통령은 '박승선'이라는 분과 결혼을 해 아들을 한명 낳았는데 "이봉수"라는 분이죠. 그런데 그는 일찍 병사하고 말았답니다. 자식복도 없으셔...그리곤 조강지처인 본처와 이혼하고 아시다시피 외국여자 '프란체스카여사'와 재혼을 했는데 이번엔 단 한명의 후사조차 없었죠. 그래서 83세에 양자를 한명 두기로 한게 "이기붕의 아들-이강석"이었다는거 모두 아시져? 그 양자 '이강석'마저 "3.15부정선거" 이후 권총자살하고.... ['용암사 쌍미륵'] "용암사 쌍미륵"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이 석불이 "이승만대통령"을 낳게 했다고 하니 유심히 보시길...ㅎ [구글지형맵]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8.6km였으며 6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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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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