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평해길』
『제10길 솔치길, 그리고 그후』
['경기옛길 종합 안내도']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10길 구글어스' 실트랙]
['제10길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관동대로-평해길> 중에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구간은
<양동역>을 출발해서 <석곡천> 제방길을 따라 <삼산역> 근처로 진행해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인 <솔치>까지 가는 "8.1km"를 걷고
계속해서 <강원도 구간>의 <첫 평해길 흔적>을 찾아 보는 "약13km"를 추가로 갑니다.
['양동역 앞']
['양동역 출발지'] 8:50
2021년 6월 1일 (화) 구름
<청량리역>에서 오전 7시3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양동역>에 8시44분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하게 답사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평해길 제10길 안내판>은 역 좌측에 있는 정자 쉼터 뒤에 있습니다.
['제10길 안내도']
안내도에는 <평해길의 마지막 구간>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만
<평해길 경기도구간의 마지막 구간>이 정확한 표현이지요.
<평해길> 중에 <경기도구간>은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니...
['양동도서관' 옆길]
<제10길 안내판>이 있는 쉼터 앞 좌측 <양동도서관>과 <여주식당> 사이 골목으로 안내됩니다.
이정표엔 "단석천" 까지 "1,6km"라고 알려 줍니다.
['양동도서관 앞'] 8:54
골목을 벗어나면 "양동도서관" 정문 앞 도로를 만나고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쌍학1리 마을회관' 옆]
<쌍학1리마을회관> 옆 삼거리에서 방향을 바꾸면...
['석곡천'] 8:57
지난 <9코스>에서 만났던 <석곡천>을 다시 만나 좌회전하면...
[야외공연장]
['동계팔경 안내판']
작은 야외공연장이 있는 곳에 "동계팔경 안내판"이 있습니다.
"택당 이식"선생이 고향인 이곳 <양동>에 은거 할때 <석곡천>을 거닐며 경치 좋은 곳 여덟곳을 지정하여
사람들에게 소개 했는데 이를 "동계팔경"이라 한답니다.
<택당 이식 선생"은 <광해군> 시절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다가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몰두하며 후학들의 교육에 힘썻고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하여 주요 요직에서 일했으며 특히 대제학과 예조참판, 이조참판을 역임했답니다.
<병자호란> 때에 <청음 김상헌>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하다가 인질로 '심양'으로 잡혀 가기도 한 척화파인데
돌아 와서는 대사헌, 형조, 이조, 예조의 판서 등 조정의 최고 주요직을 두루 역임했답니다.
하지만 1646년 별시관(別試官)으로 과거 시험의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그가 출제한 문제에 역모의 뜻이 있다고 하여 관직이 삭탈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국문학사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문인으로 조선문학 4대가로 추앙 받고 있는 분이죠.
<양동 고을>에서 빼놓을수 없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쌍학교'] 9:00
<쌍학교>를 건너 갑니다.
<택당 이식 선생>의 묘와 유적은 앞에 보이는 산능선 뒤 우측 <안골>에 있으며
<명성왕후>의 도피처였던 <쌍학리 마골>은 앞에 보이는 산능선 우측으로 한참 올라가
지난 <9코스 쌍학리 임도길> 근처까지 올라 간 곳에 있더군요.
[뒤돌아 본 '쌍학교'] 9:01~9:06
<쌍학교> 근처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양동도서관>과 <양동역>을 뒤돌아 보고
['석곡천 제방길']
<석곡천 제방>에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12분여 진행하면....
['검단다리' 앞] 9:18
"검단다리" 앞에 운동시설이 있는 소공원에 도착합니다.
<양동역>에서 부터 이정표에 표기된 <단석천>이 바로 이곳으로 <단석천>이 <석곡천>에 합수 되는 곳이며
<단석천>에 <검단다리>가 설치된 곳이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쌍학리 마골>에 대한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설치되 있는데...
['마골' 조망]
['마골' 스토리텔링]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쌍학리 마골>은 여기서 아주 먼 곳에 있습니다.
<마골>은 현재도 몇가구 만이 있는 산간오지인데 이렇게 기어코 안내판까지 설치하는 것은
"양평의 동쪽 마을---양동"엔 그많큼 히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사실 <양둉면>이 강력 내세우는 히스토리는 <택당 이식선생> <명성왕후 도피처> <을미의병> 이었습니다.
<임오유월일기>라는 일기책은 <명성왕후>의 주치의가 도피기간에 쓴 것으로 그날 그날의 날씨와 처방전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인데, <명성왕후>는 51일간의 도피 기간 중에 '인후염', 즉 목감기를 엄청 알았으며
다리에 종기가 나서 고생하고, 특히 '말라리아(학질)'에 걸려 사경을 헤메기도 했더군요.
그리고 7월2일 일기에는 '여주 장호원'에서 <지평 섬실>에 있는 <전 현감 안정옥의 집>으로 옮기기도
했는데 약 10일간 머물렀다고 기록되 있답니다. 그곳이 현재 지명으로 <양동면 쌍학리 마골>이라고 합니다.
['삼산역' 가는 길] 9:22
<단석천>이 <석곡천>에 합류하는 <검단다리>에서 부턴 이정표가 "삼산역" 방향을 가리킵니다.
<양동지역>에 인삼밭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태양광발천시설이 아니라 인삼밭 차양막입니다.
10여분 <석곡천> 제방길을 진행하면...
['삼산터널' 앞] 9:32
축산농가가 큰 규모로 있어 분뇨냄새가 많이 나는 곳을 지나면
<중앙선>이 터널로 들어 가는 곳을 만나는데 <삼산터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측엔 <광주↔원주 고속도로>가 보이고
[도로 만남] 9:36
<삼산터널>이 있는 조그만 산을 좌측으로 돌아 나가면 도로를 만나고
[회전교차로] 9:38
이어서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좌측에 <삼산교>가 있는 곳이더군요.
그러니까 <석곡천>이 <단석천>과 합류하여 개천 이름이 "삼산천 三山川"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직진하면 <갼현유원지>로 바로 갈수 있는데 <평해길 걷기코스>는 우측으로 안내됩니다.
이 길들은 모두 걷기코스로 <경기문화원>이 작위적으로 개발한 길이지
<오리지날 평해길>과는 무관한 길이란 것도 알고 가면 이 길의 의미를 더욱 실감 할수 있습니다.
['삼산2리' 가는 길]
<광주-원주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면
['삼산2리']
['삼산2리 은행나무 보호수'] 9:47
'양평군 양동면 삼산2리'의 논밭이 펼쳐지며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이젠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있고
['삼산2리 마을회관'] 9:51
이어서 <삼산2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삼산역' 방향 조망]
"막"자가 들어가는 산인 <삼막골산>과 <사기막산>의 계곡의 좌측엔 "옛 중앙선 판대역"이 보이며
중앙에는 <퍈대역>의 역활을 대신하는 <新중앙선>의 "삼산역 三山驛"이 조망됩니다.
<사기막산> 뒤에는 유명한 국민관광지인 "간현유원지-소금산 출렁다리"가 있습니다.
['배내교'] 9:54~9:57
<삼산역>으로 가는 입구엔 "배내교"라고 하는 조그만 다리가 있습니다.
우측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개천이 <솔치>에서 흘러 내리는 개천입니다.
옛날엔 <남한강>에서 <섬강>따라 이곳까지 배가 들어 왔다고..그래서 <배내교>라고...
이곳 이정표엔 <삼산역→> 방향 표시가 잘못되 있고, 또한 <평해길 걷기코스>는 <삼산역>을 경유하지도
않아서 <삼산역→>이라는 이정표도 필요 없는데도 부착해 놨습니다.
꼭 부착하고 싶으면 <솔치→>라는 이정표를 부착해야 하겠습니다.
['삼산역' 조망]
<배내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삼산역>을 조망만하고
['솔치' 가는 길] 9:57
<중앙선> 고가교 아래를 지나 <솔치>로 향합니다.
['당산' 조망]
<배내교>에서 부턴 이장표에 <경기도 경계>라고 표기하는군요. <솔치>라고 하면 더 좋았을 듯 한데...
['스탬프함'] 10:07~9:12
<배내교>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스탬프함>이 있는 다리를 만납니다.
이곳엔 이정표가 좌측 전봇대에 부착되 있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관심 가지지 않으면 다리 건너 너른 도로로 직진하기 쉽더군요.
['당산' 이야기]
<스탬프함> 옆에는 <당산>에 대한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있고
['산막골산 임도' 입구]
<솔치>로 가는 "삼막골산 임도 입구"입니다.
[뒤돌아 본 '스탬프함']
임도로 올라 가 <스탬프함>이 있는 임도 입구를 뒤돌아 보고
[임도]
['솔치마을' 조망] 10:19
조용한 임도를 7분여 진행하면 <솔치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름길]
[임도삼거리] 10:31
이번 코스에서 유일한 오름길인 임도를 12분여 오르면 <임도삼거리>를 만납니다.
['당산' 조망]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내림길을 진행하면....
"당산 堂山 545.6m"이 건너편에 가까이 보입니다.
<경기도 양평군>과 <경기도 여주시>,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의 경계가 되는 산이더군요.
이 임도가 있는 <삼막골산>과 <당산> 사이의 계곡이 "오리지날 평해로"로서 현재 <88번국지도>가
"대송치 大松峙 (솔치)"로 향하고 있는 광경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평해길 걷기코스>와 <원형 평해길>을 비교하며 걷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갈림길]
['솔치' 가는 길]
임도가 <88번국지도>로 연결되기 전에 좌측으로 걷기코스는 방향을 바꾸고
['소나무 숲']
['솔치 주유소' 조망]
<솔치>라는 이름 다웁게 여전히 소나무가 많은 길을 즐기며 거닐면 어느새 <솔치>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먼저 지금은 문을 닫은 주유소가 보이고
[차량 차단기]
이어서 차량 차단기를 지나면...
['경기옛길-평해길' 종점] 10:50~11:23
['솔치' 스토리텔링]
<솔치>에 도착합니다
"경기 옛길 평해길 종점"을 안내하는 각종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걷기코스'와 '원형노선']
<평해길>의 <원형노선>과 <걷기코스>를 표기한 안내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길을 걸으며 <평해길 원형노선>과 직접 관계없는 길을 걸었다고 투덜대더군요.
저는 이 <솔치>를 넘어 <강원도 평해길>로 답사를 갑니다.
<강원도>는 아직 <강원 옛길 평해길>을 조성하지 않아서 <원형 평해길>을 주로 이용하는데
보행답사길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얼마나 위험하고 길찾기가 어려운지 잠시후 언급하겠으며
<평해길 걷기코스>가 조성된 <경기도>는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됩니다.
['솔치']
<솔치>에는 <대송치>와 <소송치>가 있는데
이곳은 "대송치 大松峙 해발 218.3m"입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행정구역 경계가 되며 <양평군>과 <원주시>의 경계가 되는군요.
['강원도 옛길-평해길']
많은 답사자들이 이곳 <솔치>가 <평해길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경기도 평해길>의 시종점이기는 하지만
길고 긴 '경북 울진 평해'로 이어지는 <평해길>은 실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치>를 넘어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 <솔치>를 넘나들기 위해 말을 갈아 타고 묵어 가던
驛院이 있었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의 "옛 안창역원 安昌驛院"과 주변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고
<서원주역>으로 걸어가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쉼터'] (33분간 휴식)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11:23
<솔치>에 있는 쉼터에서 아점을 먹고 쉬어 갑니다.
버스정류장도 있으나 하루에 몇번 운행해서 시간을 잘알아야 하겠는데 오후 3시반경에 있는듯...
['수청동 마을 앞' 버스정류장] 11:34
['수청동마을'과 '솔치' 조망]
<솔치>에서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속으로 완만한 경사의 고갯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수청동마을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뒤돌아 보면 <솔치>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고
"물 맑은 마을"이라는 의미의 <수청마을>이 <솔치> 아레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동막골' 버스정류장] 11:45
[카페] 11:49
<강원도>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매우 완만한 고갯길을 15분여 더 진행하면
이 고갯길에서 유일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제법 멋진 카페를 만나고...
['간현봉' 조망]
이어서 국민관광지라는 "원주 간현유원지"를 만들어준 "간현봉 艮峴峰 384.7m"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슬안동 버스정류장'] 12:06
<솔치>에서 43분 정도 쉬지 않고 내려 가니, <슬안동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송래부락' 입구]
<판대.오크벨리 방향>으로는 "송래부락" 입구라는 안내석이 있고
[뒤돌아 본 '솔치' 방향]
지나온 <솔치> 고갯길 방향을 뒤돌아 봅니다.
동해안에서 잡힌 물고기들과 특산물을 싣고 <한양>으로 향하던 사람들...
<신사임당>과 <율곡>등 선조들이 오갔을 고갯길...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88번국지도']
이곳 <88번국지도>에는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도보답사를 하기엔 매우 위험하더군요.
<경기도>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원형 평해길>에서 안전하고 걷기 좋은 <걷기코스 평해길>을 만든 것이
이런 길을 걸으면서 이제야 그 편의성과 안전성에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강원도>도 어서 빨리 <강원옛길 평해길 걷기코스>를 조성해 주길 바래 봅니다.
그러면 제가 제일착으로 답사하겠습니다. ^*^
['을미의병 기념탑' 앞 삼거리] 12:32~12:34
['을미의병 봉기 기념탑']
['기념탑 건립 취치문']
<솔치>에서 완만한 내림길을 약1시간 10분 진행하니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을미 의병 봉기 기념탑"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열받은 우리 백성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봉기 했답니다.
특히 <양평 백성들>이 대거 봉기 했는데, 이곳 <원주 백성들>도 봉기 했다는군요. 서로 가까운 곳이니,,,
[ '을미의병 기념탑' 앞 삼거리] 12:34
"을미 의병 봉기 기념탑" 앞 삼거리에서 <의민공 김제남 묘와 사당>을 먼저 찾아 보기 위해
50m 정도 직진해 내려 가면
['의민공 김제남 사당'] 12:38~12:40
"의민공 김제남 懿愍公 金悌男, 1562∼1613"의 사당과 묘역이 있습니다.
<김제남>이 누구냐? 역사적으로 무지무지 유명한 사람인데 이름은 처음 들어 보죠?
바로 <철의 여인-복수의 화신>으로 불리워지는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의 친아버지 이죠.
그러니까 <김제남>은 <선조>의 장인 어른이 되는겁니다. 그리하여 '연흥부원군'으로 봉해졌습니다만...
<선조>의 세컨드인 <인목왕후>가 왕비에 올랐을 때 비록 <공빈 김씨>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지만
이미 세자에 책봉 된 아들 <광해군>이 있었는데, 아들이 새엄마 보다 열살이나 더 많은 콩가루 집안...ㅎ
하지만 <인목왕후>가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자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당파간 싸움이 피터지게 일어나고
그 싸움에서 <인목왕후-영창대군 파>가 완전 패함으로서 그 정점에 있던 <영창대군 외할아버지-김계남>은
역모 혐의로 참수 당하고 그후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삼대가 멸족 당했지요.
이름하여 <계축옥사>...
<임진왜란><정유재란>으로 나라가 폐허가 되고 백성들의 삶은 피죽을 끓여 먹어야만 하던 시절에
정치집단들은 정치권력을 쥐기 위해 다시 피 터지는 싸움판을 벌였던거죠.
간신히 살아 남은 <인목왕후>는 절치부심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에 복수하며 다시 <인목대비>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며, 그녀의 아버지 <김계남>을 사면복권 시켜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이니
이 곳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평해길>을 헛걸음 하는게 되겠지요? ^*^
['의민사']
<의민공 김제남 懿愍公 金悌男>에게 제사를 올리는 社宇랍니다.
['김제남'과 후손 묘소]
<김제남>은 역모혐의로 삼대가 몰살 당했습니다.
<김제남>의 자손 삼대가 몰살 당했지만 큰며느리 <초계 정씨>, 즉 큰 아들 <김래>의 부인과 <손자 천석> 만이
제주도에 귀양 가 있다가 며느리 <초계 정씨>의 기지로 살아 남았는데
그후 <인조반정>으로 기사회생하여 <인목대비>의 부탁으로 <인조>가 특명으로
그녀의 고향에 이렇게 묘역과 사당을 조성하게 했답니다.
아버지 <김계남>과 아들 <김래><김규><김선>의 무덤이 함께 마주 보며 안치되 있습니다.
['김제남 묘지' 잎구에서 '김제남 신도비' 가는 길] 12:40
<김제남 사당과 묘역>에서 <김제남 신도비>로 가는 길은 정면에 뻗어 있습니다.
7~80m 정도 진행하면...
['김제남신도비' 조망] 12:42~ 1:00
나이가 500살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김제남 신도비>가 보입니다.
좌측 연못도 <연안 김씨>들 소유라고 합니다.
['김제남 신도비'와 보호수']
神道碑는 죽은 자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요즘 말로 이력서라고 할까요.
['신도비']
['신도비' 윗부분]
['신도비' 아랫부분]
['신도비' 뒷면]
<김계남 신도비>는 <강원도문화재 자료 제21호>로 지정되 있는 문화재라는데,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신을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는 모습이며,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져 있는 것이 <복수의 화신>이라 불리우는
<인목대비>의 위세가 어떠 했는지를 잘 알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비 뒷면에는 총탄의 흔적이 여러발 남아 있어 애처롭게 보입니다.
['김제남 묘소' 조망]
<김제남 신도비>에서 지나온 <김제남 묘소와 사당>을 뒤돌아 보고
['원주시' 조망]
<김제남 신도비>에서 펼쳐지는 <안창리>와 <여주 문막>, 그리고 <백운산>과 <치악산>이 그림 같습니다.
<김제남 신도비> 근처에는 옛날 <평해로 솔치>를 통과해 공무상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과 행인이 많았는데
이들을 위한 <역원 驛院>이 있었답니다. 중요한 고개 초입에는 어느 곳이나 있었지만...
이곳에 있던 驛院의 이름이 "안창역원 安昌驛院"이었답니다.
<울진 평해>에서 <삼척-강릉>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오는 <평해로>가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단양-제천>을 지나 이곳 <원주>에서 합류하여 <한양>으로 가는
"만남의 장소"였으며 숙박과 말을 갈아 타는 곳이었으니 "안창역원 安昌驛院"이
당연 상당한 규모로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듯 합니다.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된 "송강 정철 선생"도 이곳에서 쉬며 말을 갈아 타고 갔을 것입니다.
그가 쓴 "관동별곡 關東別曲"의 첫구절을 읽어 볼까요?
江강湖호애 病병이 깁퍼 竹듁林님의 누엇더니,
關관 東동 八팔百백里니에 方방面면을 맛디시니,
下하直직고 믈너나니 玉옥節졀이 알패 셧다
延연秋츄門문 드리다라 慶경會회南남門문 바라보며,
. 平평丘구驛역 말을 가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 관찰사>라는 직책을 제수 받아 강원도로 가며 여기까지 <평해로>를 이용했는데
<팔당> 근처에 있었던 "평구역"에서 말을 갈아 타고 <양평>에서 <용문>까지 걸었던 "흑천을 돌아서
"솔치"를 넘어 이곳으로 와 <원주><춘천><철원><화천>을 지나 <금강산>으로 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었던 <경기옛길-평해로>가 그많큼 <강원도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길이었다는 것을
<관동별곡>에서도 알수 있죠
저 앞에 펼쳐지는 <섬강 蟾江>과 <치악산 雉嶽山>을 바라보며 <송강 정철 선생>은 노래 했을 것입니다.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흥법사지' 가는 길 조망] 1:00
<김계남 신도비>에서 <흥법사지>로 가는 남쪽 방향 길입니다.
['솔치' 조망]
<김계남 신도비>에서 나와 뒤돌아 본 <솔치>와 <김계남 신도비>입니다.
['안창대교' 앞 사거리] 1:03
<안창대교> 앞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흥법사지>를 다녀와 좌측 <안창대교>를 건너 갈 예정입니다.
<흥법사지>까지 왕복 1,5km라고 알려주는데, 다녀 오는데 28분이 걸렸습니다.
['흥법교'] 1:04
<흥법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 15분 정도 진행하면...
['흥법사지' 조망] 1:11
['흥법사지'] 1:15~1:20
"흥법사 興法寺"가 있었던 터에 도착합니다.
예상 보다 너무 초라한 절터입니다만, 이 절은 매우 유명한 절이었더군요.
이 절터에는 우리나라 보물이 두점 남아 있고,
국보로 지정된 <국보 제104호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傳 原州 興法寺址 廉居和尙塔)>과
보물로 지정된 <보물 제365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보관 중에 있답니다.
['진공대사 탑비' 후면]
['진공대사 탑비' 옆면]
['진공대사']
['진공대사 탑비' 정면]
"보물 제463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
아주 독특한 탑비인데 자세한 사항은 <문화재청 홈피>를 인용합니다.
['진공대사 탑비' 안내문]
<문화재청 홈피> 인용
"보물 제463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
흥법사터에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깨어진 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이 곳에는 비의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진공대사는 장순선사(長純禪師)밑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공양왕 때 귀국한 후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도 태조가 그의 설법에 감화하여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다.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 무늬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앞면 중앙에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두 마리는 양 귀퉁이에서 옆을 쳐다보고 있다.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웅장한 기운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이 엿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유물]
탑비 옆에는 이런 유물이 땅 바닥에 방치되 있어 의아스럽고
['흥법사지']
[안내문]
"흥법사터 興法寺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나와 있습니다.
['흥법사지 삼층석탑']
[안내문]
"보물 제464호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原州 興法寺址 三層石塔)"
제가 이곳을 궂이 방문한 이유는 <평해길>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을 거라고 추측해서 입니다.
<통일신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국을 세운 <고려의 왕건>은 특히 <신라의 반란>이 언제나 위협이었지요.
그래서 <경순왕>을 <임진강> 이남으로는 갈수 없도록하고, <후백제>의 <견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훈요십조>에 호남지방 사람들을 관직에 못 오르게 못박아 배척했지요. 지역감정 유발의 시초이죠.
앞에서도 언급 했지만 동해안에서 <대관령>을 넘어 오는 <평해길> 이용객들과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오는 관리나 이용객들이 만나는 이곳은 "안창역원 安昌驛院"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 말>과 <고려시대 초>에 정치, 경제, 문화, 종교등의 중요한 요충지 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태조 왕건>의 왕사였던 <진공대사>가 이곳에서 입적하자 <태조 왕건>이 친히 비문을 쓰고
이런 어마무시한 탑비와 석탑을 직접 세워 주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삼층석탑> 뒤로 펼쳐지는 <평해로>와 <영남길>이 "으뜸 고을 元州"를 더욱 빛나게 했으리라
['안창대교'] 1:31
<흥법사지>를 둘러 보고 다시 <안창대교>로 돌아 오는데 약30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송강 정철 선생>도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섬강 蟾江"을
이젠 편하게 <안창대교>를 이용해 건너 갑니다.
다리 뒤로 "티악 雉岳"이 조망됩니다.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뒤돌아 본 '솔치' 방향]
<안창대교>를 건너며 뒤돌아 본 <평해로>의 <솔치 계곡>이고
['서원주역' 조망]
북쪽으로는 "섬강 蟾江"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멀리 <서원주역>이 조망됩니다.
오늘 <섬강>의 우측 제방길을 따라 <서원주역>까지 가서 답사를 마칠 예정입니다.
사전에 조사 한바로는 저 제방길이 <원주구비길>이라는 둘레길이더군요.
['안창대교' '문막 방향']
<안창대교>의 끝지점에서 <평해로>는 아마도 직진 했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평해로>를 마치고
<서원주역>으로 가기 위해선 <섬강 제방길>로 내려 가야하는데 제방으로 바로 내려 가는 길이 없더군요.
그래서 <원주 방향>으로 200m 정도 직진해 갔더니
[삼거리] 1:43
제방으로 좌회전 할수 있는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여기서 부터 길을 잘 못찾아 고생을 좀 했는데...
다음의 지도를 보며 고생한 이유를 언급 하겠습니다.
언제나 가 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기는 어려운 법....
[현위치 주변 지도]
<안창대교>를 건너 바로 <섬강 제방길>로 연결되는 길이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이도 없어 좀 돌아 가야 했습니다. 지도를 보며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노란색 선으로 표기한 길로
갔는데, 결과적으로 실패였습니다.
혹시 앞으로 이 글을 읽고 답사길에 오를 후답자들이 있다면 빨간색선으로 표기한 길로 가시기 바람니다.
[농로]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간 길은 농로로서 끝에는 길이 없었는데 논두렁으로 내려 가니 뱀도 쉭~지나가고
발도 진흙에 빠지며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래도 되돌아 갈순 없어 고생하며 제방으로 나가면...
['섬강 제방길'] 1:59
<섬강 제방길>을 만나며
['원주구비길']
['원주구비길']
이 길이 "원주구비길"이라는 둘레길이라고 알려 주는 리본이 펄럭입니다.
조만간 <원주역사문화둘레길>을 답사해야 겠습니다.
10여분 <원주구비길>을 진행하면...
['서원주역' 조망] 2:10
<서원주역>이 정면에 보이는데 <서곡천>이 <섬강>에 합수하는 합수부여서 건너 갈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우측으로 5분 정도 진행했더니
[도로 만남] 2:15
도로를 만나고, 다시 갓길이 없는 차도를 진행하면
['경장교' 조망]
<경장교>라는 다리가 보이고
['경장교'] 2:20
<경장교>를 건너 앞에 보이는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해 좌회전 합니다.
['소금산' 조망]
<경강교>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유명한 <소금산>과 <간현유원지>가 조망됩니다.
지난해 가을에 와이프와 함께 다녀 온 <소금산 출렁다리>인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클릭해 보세요.
『원주』"소금산 출렁다리" 여기 클릭
['서원주역' 조망]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해 좌회전 하면 <서원주역>이 저만치 있고
['서원주역'] 2:33
<서원주역>에 도착하여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오후 2시 55분에 <청량리>로 가는 KTX를 타고 42분이 걸려 <청량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서원주역>에는 기차 시간을 걱정 할 필요없이 30여분에 한대꼴로 자주 열차가 있었습니다.
[실트랙]
<경기옛길-평해길>의 전구간을 답사하고, 계속 이어질 <강원옛길-평해길>을 기대하며
즐거운 도보여행을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20.6km"로서 5시간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걷는 것과 사는 것 |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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