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경흥길』
 『제6-1길 만세교길 : 신북면사무소~영북농협』
  "함흥차사의 진실과 백로주 암각문을 찾아서"


  ['제6-1길 만세교길 실트랙']              
  <경흥길 6코스>에는 두개의 길이 조성되 있더군요.
  하나는 오늘 걷게 되는 <6-1코스>로서 <포천천>을 따라 <영중면 양문리>까지 가는 <만세교길>이고
  또 하나는 <포천아트밸리>를 경유하여 <천주산 등산>을 하며 <영중면 양문리>까지 가는
  <독곡아트밸리길>이었습니다. <6-2코스 독곡아트밸리길>은 입장료 5,000원을 내고 가야 한다는데
  다음에 날씨 좋은 봄날에 <포천아트밸리>도 구경하며 가기로 하고 
  오늘은 빨간색 선으로 표기한 <6-1코스 만세교길>을 먼저 진행합니다.


  ['신북면행정복지센차 앞']                 10:15

  ['제6-1길 만세교길' 안내판]                      
  2022년 2월 24일 (목)  맑음       
  <잠실 광역버스 환승센타 '25번 gate'>에서 <3006번 직행버스>를 타고 1시간 15분이 걸려
  <신북체육문화센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답사를 시작합니다.
  먼저 <신북면행정복센타> 앞에 있는  출발지점에서


  ['신북읍행정복지센타' 앞]                
  <신북행정복지센타 앞 사거리>에서 <경복대학교> 방향으로 돌아 나가면...


  ['신북교' 방향]          
  <3006번 직행버스>가 정차하는 <신북체육문화센타>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신북교' 앞]             10:18          
  조금 직진하면 <신북교> 입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가면...
  

  ['신북교' 밑]              10:19        
  <신북교> 밑에 <포천천 둑방 데크길> 입구를 만나 데크길을 이용 합니다.


  ['포천천' 데크길]                       
  <포천천> 둑방길을 따라 조성된 데크를 따라 <신포천아파트>까지 진행하는데
  좌측에 수증기를 내뿜으며 <반월산성>에서 부터 보이던 석탄발전소인 <'GS포천그린에너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신포천아파트' 앞 갈림길]               10:27      
  <신포천아파트> 앞에 <경흥길>은 좌측 <포천천>으로 내려 가라고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는데
  관심 가지지 않으면 지나칠수 있으니 유의 해야 하겠더군요.


  ['포천천 징검다리']                      
  <신포천아파트> 앞에서 <포천천>을 건너는데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징검다리'로 가서


  ['포천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가는 <포천천>을 조망하는데
  이 <포천천>이 <영평천>과 합류하는 "영중면 양문리"까지 오늘 갈 예정입니다.
  <포천천>을 건너 서측 둑방길로 올라 가면....


  [둑방길]            10:36       
  우측 <43번국도>에 유명한 "포천방어방커"가 있는데 모르고 가면 알수 없습니다.
  우측 <43번국도>엔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없어 <경흥길>은 부득이 이 둑방길로 안내하는가 봅니다.
  그러니까 저 <포천방어방커>를 직접 찾아 보려면 승용차를 이용해야 안전 하더군요.


  ['포천방어방커' 조망]                   10:38

  ['포천방어방커' 줌인]       
  "포천방어방커"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60호
  <6.25 남침> 때에 <포천지역>엔 4개의 방어 방커가 있었다는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방커랍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쏘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시작하여 
  잠시후 만나게 될 <만세교> 방면으로 진출하여, 파죽지세로 <만세교>를 지나 포천방향으로 
  진출하자 <대전차방어방커>를 주축으로 방어 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이 방어벙커가 남침하는 북한군 탱크를 4시간 정도 지연시켰다는게 공적이라면 공적이랍니다.
  그 시간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 시민들에겐 안심하라고 방송했는데
  그러면서 그가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부산으로 몽진하는 시간을 벌게 했으니 공적이라면 공적이죠.


  ['둑방길']                 
  <'GS포천그린에너지'>가 더욱 가까워지며, <장자교>가 다가 옵니다.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금주산' 조망]               10:47       
  "금주산 金珠山 568.3m"이 조망 됩니다.
  "금 아홉 덩이가 묻혀 있는데 아들 아홉을 둔 사람이라야 그 금을 캘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실제로 이 산에는 금광이 있어 얼마 전까지도 금을 캤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금주산>의 남쪽엔 제가 좋아하는 "봉래 양사언선생 묘"가 있습니다.
  <포천>이 고향인 <양사언선생>은 고향의 품에서 잠들고 있습니다.
  <포천>은 의외로 많은 유명 인물들의 고향 이더군요.
  <백사 이항복선생> <한음 이덕형선생>등을 비롯해 잠시후 <만세교>에서 알아 볼 <성석린선생> 등등
  조선의 최고 명필을 꼽으라면 누굴 꼽겠습니까. <추사 김정희>? <만호 한석봉>? <안평대군>?....
  저는 神의 필치라는 <봉래 양사언선생>을 꼽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태산가 太山歌>를 쓰셨죠.
  
<무지무지 유명한 양사언선생의 글씨 "비 飛">
<금강산>을 무지무지 사랑한 <양사언선생>은 관직생활도 <금강산> 주변 고을을 자원해서 하며 자신의 '호'까지도 <여름 금강산>을 의미하는 <봉래 蓬萊>로 지을 정도였답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선녀와 나뭇꾼>으로 유명한 <감호 鑑湖> 가에 <비래정 飛來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 글자를 남겼다는데 그 글자가 바로 이 글자랍니다.
['장자교'] 10:53 이어서 <장자교>를 만나는데 <포천장자산업단지>와 <43번국도>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GS포천그린에너지"라는 열병합발전소로 직접 통하는 다리이더군요. ['한바위교'] 10:59 이어서 바로 <한바위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을 이용해야 하더군요. [뒤돌아 본 'GS포천그린에너지'] 11:01 <한바위교>를 건너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GS포천그린에너지"라는 열병합발전소는 석탄화력발전소랍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는데 유연탄 사용량을 50% 줄이기로 하며 타협해서 가동 중이라고.. 이 화력발전소는 석탄발전소이지만 친환경 공법으로 가동 되도록 건설되었다네요. 그리고 타지역 발전소와는 달리 주변 공단에 전기와 온수를 공급하는 열병합발전소라고 합니다. ['북만세교'] 11:14 이어서 <북만세교 北萬歲橋>를 만납니다. <포천 쓰레기소각장>과 <스포츠센타>로 연결하는 다리더군요. ['만세교리' 조망] <북만세교>에서 우측으로 <포천시 영중면 만세교리>가 펼쳐지며 그 뒤로 <금주산>이 다른 각도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금주산> 우측 아래에 <양사언선생 묘>가 있습니다. 선생의 묘는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으며 <포천시 향토유적 제32호>로 지정되 있답니다. ['만세교검문소' 앞] 11:18 다시 <43번국도>로 나가면 "옛 만세교검문소"가 있었던 곳을 만나며 <만세교리>라는 마을이 제법 번화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앞에 보이는 빨간색 모텔 앞에서 길을 건너 건너편 길을 이용 해야 하더군요. ['만세교1리'] <만세교1리>를 통과하는데 여기서 <경흥길6-2길 독곡아트길>과 다시 합류하여 함께 가기 시작 하는 곳이더군요. ['만세교'] 11:28 [안내문] "만세교 萬歲橋" <북관대로 北關大路>, 즉 <경흥로>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에 있는 다리랍니다. <포천시 신북면>과 <포천시 영중면>의 경계를 이루는 "영덕천"에 있는 다리 입니다. 안내판에는 <3.1운동> 당시 포천시민들이 만세를 부른 다리라고 하며, <6.25전쟁>때에는 북한군의 남침에 격열히 저항한 방어선이었다고 안내하고 있는데... 가장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태조 이성계>와 <함흥차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여암 신경준의 도로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등 고지도에도 등장하는 <만세교>에 대해 잠시후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명덕천'과 '금주산' 조망] <만세교> 위에서 <명덕천>과 그 뒤로 <금주산>을 조망합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대동지지』에 "육송정천(六松亭川)은 포천현(抱川縣)의 동쪽 25리에 있는데, 현등산(운악산)에서 흘러나와 북쪽으로 흘러 만세교(萬歲橋)에 이르러 한천과 합쳐져 <백로주>로 흘러 들어간다.”고 되어 있으며, <육송정천六松亭川>은 이 고을에서 판서 한명이 탄생 할때 마다 소나무 한그루씩 심었는데 여섯명의 판서가 배출되어 六松이 되고, 그곳에 <六松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지금은 도로 개설로 사라지고 주변에 있던 <명덕사> 라는 절 이름을 차용해 와 <명덕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세삼거리'] <만세삼거리>는 <37번국도>와 <43번국도>가 교차하는 곳이었습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라는 사자성어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시나요? "심부름 보낸 사람이 소식없이 영영 돌아 오지 않는 경우"를 <함흥차사>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계시죠? 특히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에 특사를 파견하여 아버지가 환궁 할것을 요청했지만,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환궁을 거절하며 찾아온 특사 모두를 죽여버려서 돌아 오지 않는 특사를 <함흥차사>라고 한다고 알고 계시지는 않나요?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오늘은 <함흥차사>의 허구와 역사적 진실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만세삼거리 조형물'] 11:30 <만세삼거리>에는 <포천시 상징 조형물>이 설치되 있습니다. <경흥길>은 앞에 보이는 굴다리를 통과하더군요. "함흥차사 咸興差使"는 도대체 몇명이었을까? 실제 인물은 누구 누구였을까? 실제로 <함흥>에 특사로 파견 되엇다가 죽어 돌아 오지 못한 <함흥차사>는 과연 있었을까? 역사 기록에 근거하여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런 <함흥차사>는 단 한명도 없었는데.... 어찌하여 우리들에게 "죽어 돌아 오지 않는 특사"로 대부분 알게 되었을까.... 그 진실을 잠시 후 알아 보겠습니다. ['금주3리'] 11:35 <만세삼거리 굴다리>를 통과하면 <금주3리>가 이어지며 우측에 <미륵박물관>이 보입니다. <미륵박물관>은 <경흥길6-2코스>가 통과하는 곳이지만 <경흥길6-1길>에서도 구경하고 갑니다. 길을 건너 <미륵박물관>으로 들어 가면.... ['미륵박물관'] 11:40~11:45 "미륵박물관" <금주산> 자락에 있는 <금룡사>는 1865년 조선 <고종 2년>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지담스님>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나라를 위한 기도를 드린 것이 <금주사(금룡사의 이전 이름)>의 출발점이 되었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사단법인 구천미륵회>라는 단체가 인수하고, 이곳에 이런 <미륵박물관>을 지었으며 <영농법인 하늘마당>이라는 10만평 규모의 과수원도 운영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더군요. 종교단체 맞어? 궁금하더군요. <미륵 彌勒>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나라 말이 아니죠. 산스크리트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마이트레아>를 한자로 음역한게 <彌勒>이고 다시 우리말로 음역한게 <미륵>이니.....<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阿逸多)>랍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하나로,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이랍니다 그 <미륵>은 아직까지도 자기 고향인 <인도><네팔>등의 중생을 잘 살게 구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고향 사람들도 못 구제하는 <미륵>에게 우리를 맡길수 있을까... [지나온 길 조망] <미륵박물관>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볼수 있었고... ['43번국도'] ['백로주' 입구] 11:55 <미륵박물관>은 코로나 사태로 후문을 폐쇠하여 다시 정문으로 나와 <43번국도>를 10여분 진행하면 "백로주입구-금주1리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여기서 건너편 <백로주교> 방향으로 길을 건너야 했습니다. ['백로주' 입구] ['백로주' 입구 조형물] ['거사리 마을' 안내판]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는 한자로 <居士里>로 쓰는데, <조선 선조> 때에 활약한 "지천거사(芝川居士) 황정욱(黃廷彧)"이 살았다고 하여 <居士里>가 되었다는데, "백로주 白鷺洲"로 더 유명한 곳이죠. ['배로주교' 앞 스탬프함] 12:00 [안내문] <영평8경 중에 제7경>이라는 "백로주 白鷺洲"가 있는 곳이라고 알리는 표지석이 있으며 <경흥길 6코스 스탬프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표지석에 새겨진 오리지날 "白鷺洲" 刻字를 바위에서 오늘 직접 찾아 보려고 합니다. ['백로주' 조망] ['백로주'] <백로주교> 위에서 "백로주 白鷺洲"를 조망합니다. <백로주>의 뜻을 알아 보면 <백로>는 글자 그대로 '황새' '외가리'등으로 불리는 새이고 <주 洲>의 뜻을 확실이 알아야 전체 의미를 알수 있겠죠. <洲>는 <섬>이라는 뜻이니 <백로주>는 <백로 모양의 바위 섬>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사진 속 가운데 바위 섬이 <백로주>이고, 우측 바위가 <동암 東巖>인데 좌측에 있는 <서암 西巖>에 "白鷺洲"라는 刻字가 있다고 해서 오늘 찾아 보려고 합니다. ['백로주교' 서쪽 끝] 12:03 <백로주교> 서쪽 끝에서 <경흥길>은 좌측길로 가지만 저는 우측 제방길을 따라 <서암>의 <白鷺洲> 각자를 찾아 보고 다시 나와 좌측 <경흥길>로 진행하겠습니다. ['동암' 조망] <동암 東巖>이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저 바위에도 많은 암각문이 있다고 합니다. ['백로주' 조망] 가까이 측면에서 바라 보는 "백로주 白鷺洲"입니다. <백로>가 물 위에 떠있는 모양이라고 하는데....각자 감상 하시고... 여기에도 무수한 암각문이 있다고 합니다. ['서암' 가는 길] 12:07 "백로주 白鷺洲"라는 암각문을 찾아 가기 위해 <서암 西巖>으로 가야 하는데 먼저 수문 아래로 내려가면.... ['서암' 가는 길] 부교가 놓여 있는데 예전에 암각문으로 가도록 만들었으나 홍수로 거의 파손되어 이용 할수 없고 걸어서는 앞에 보이는 <서암 西巖>으로는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와 우측 모래톱으로 나가서 [모래톱에서 '서암' 조망] 모래톱에서 바라보니 "백로주 白鷺洲"라는 刻字가 실제로는 잘 보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줌인해 보니 ['백로주' 각자와 암각문] "白鷺洲" '己卯秋鐵原府使東岡書' 기묘추철원부사동강서 "기묘년 가을에 철원부사 동강이 씀" <기묘년>은 <선조 12년(1579)>이라고 계산되며 <철원부사 동강>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백로주> 암각문 좌측에는 또 하나의 암각문이 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자료>를 참고 하면... “山有白雲洲白鷺 산유백운주백로 산에는흰구름 물가에는 백로가 노니는데 雲隨鷺去隨鷺雲 운수로거수로운 구름은 백로따라 백로는 구름따라 가네 山雲洲鷺相隨處 산운주로상수처 산엔 구름 물가엔 백로가 서로 따르는 곳에 我方閒情一群 아방한정공일군 나 또한 한가롭게 한무리가 되었다네 素洲 소주” 라고 새겨져 있으며, 시를 지은 <소주>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백로주교'로 회귀] 12:17 <백로주>에서 지름길이 있나 헤메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다시 <백로주교>로 나가서 ['거사리' 통과] "지천거사(芝川居士) 황정욱(黃廷彧)"이 살았다고 하여 <居士里>가 되었다는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를 통과합니다. <명성지맥>이 지나는 추억의 <불무산 佛舞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명성지맥>을 종주하며 <불무산>을 올랐던 때가 벌써 13년이 흘렀군요. 그땐 청춘이었는데..ㅠㅠ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하겠습니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라는 나라를 무너뜨리며 왕이 되었으나 가장 가까운 자기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게는 무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이방원>이는 자기 아버지의 아들이자 자신의 형제들을 거의 다 죽이고, 친인척까지 많이 죽였습니다. <태조 이성계>에게 적군은 <고려의 잔재>가 아니라 바로 아들 <이방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위에 겨우 7년정도 있었을 뿐 <이방원>이를 죽이지 못하고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내주고,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를 적으로 보며 유랑시위를 하게 되었지요. [''백로주 유원지' 조망] 12:40 <거사리>를 23분 가량 통과하면 우측에 <포천천>이 보이며 건너편에 <백로주유원지>도 보입니다. 이 근처에도 대규모 펜션이 여럿 있더군요.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1. 태조의 첫번째 유랑 시위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대를 이어 영구집권 할듯 했던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의 형제살생에 환멸을 느끼고, <조선>을 개국하고 고작 7년여만에 왕위를 둘째 아들 <정종>에게 물려주고 <오대산>으로 들어가 세상사를 잊고 조용히 살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볼수 있으며, 무척 낭만적인 철학자 같은 느낌도 줍니다. 왕위를 물려 받은 <정종>은 수도를 <한양>에서 다시 <개경>으로 옮기며 권토중래 했지만 <이방원>의 위협에 즉위 3년여만에 자기 셋째 동생 <이방원>에게 다시 왕위를 물려주고 아버지와 같이 상왕으로 물러나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종>때 까지 오래 살수 있었습니다. <정종>이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 주자 이틀만에 <태조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다시 <한양>으로 천도 할것을 요구하며, 요구를 받아 들이자 어찌된 일인지 유랑 시위를 풀고 <개경>으로 돌아 갑니다. <이방원>이를 인정 했다는둥 여러 설이 있습니다. ['영북면' 방향 조망] 오늘의 종점인 <영북면 양문리>가 조망되기 시작하고 15분 정도 진행하면...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2. 두번째 유랑 시위 <개경>으로 돌아 온 <태조 이성계>는 다시 울분이 치솟아 올랐는지 20여일만에 또 다시 <유랑 시위>를 떠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방원>이 이 놈을 인간으로 볼수 가 없었던게죠. 이번엔 <금강산>으로 들어 가서 <유랑 시위>를 했습니다. <이방원>이는 즉시 <도승지 박석명>으로 하여금 <태조>의 안부를 묻기 위해 그를 급파합니다. 첫번째 <차사 差使>가 되겠습니다. 첫번째 특사인 <도승지 박석명>이 <금강산>에 도착했을 때엔 <태조>는 <금강산>을 거쳐 <함경도 안변>에 있었으므로 <안변>까지 가서 <태조>를 문안합니다. ('안변 安邊'은 '원산'과 '통천' 사이에 있는 고을인데 '원산'과 가까운 곳) 그는 <태종>의 걱정을 <태조>에게 전하였으나 <태조>는 완강하게 여기서 살겠노라 고집합니다. 첫번째 차사는 <함흥차사>가 아니라 <안변차사>인 셈이죠. 돌아 온 <박석명>으로 부터 보고를 받은 <태종>은 더 강한 특사를 보냄니다. <태조>가 아끼던 신하이자 <태조 이성계>의 절친이었던 영의정 <성석린>을 <안변>으로 파견합니다. <성석린>은 <포천> 출신으로 <이성계>와 함께 쿠데타를 함께한 절친이었습니다. <성석린선생 묘>는 여기서 가까운 <포천시 신북면 고일리>에 있는데 <포천 향토문화유적 20호>로 지정되 있는 <포천>의 자랑이라고도 합니다. 두번째 특사도 <함흥차사>가 아닌 <안변차사>인 셈입니다. <성석린>은 당시 민심이 흉흉함을 들어 환도를 요청하였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즐거웠던 <태조>는 둘이서 바닷가 정자에 올라 바둑도 두며 회포를 풀며 다정하게 놀다가 요청을 수락하며 <성석린>과 함께 <한양>으로 돌아 왔습니다. (<성석린>이 <태조>를 설득하는 방법등에 대한 이야기는 '연려실기술'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에 너무 기뻤던 <태종>은 <태조>를 위해 잔치를 열며, 큰 공을 세웠던 <성석린>에게 말 한필 을 내려주며, 공을 치하하였습니다. <함흥차사>가 죽어 못 돌아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화려한 환영을 받으며 돌아 온 것입니다. ['양문IC교' 조망] [다리밑] 12:55 <37번국도>가 지나는 <양문IC교> 밑에 도착하면 <경흥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또한 추억의 <명성지맥>이 더욱 윤곽을 보여주고.... 종점인 <영중농협>까지 1.4km만 가면 되겠군요.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3. 세번째 유랑 시위 <안변>에서 돌아 온 <태조>는 <이방원>이를 직접 보니 다시 울분이 치솟아 올랐는가 봅니다. 그래서 다시 세번째 <유랑시위>에 들어 갑니다. 기록에는 간곳이 <소요산>으로 나옵니다만, 현재의 <양주 회암사>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태종>은 <성석린> 등과 함께 추운겨울, <회암사>로 직접 행차하여 아버지 <태조>를 뵈옵고, 오랜 기간 환도를 주청하였지만, <태조>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태조>의 최측근이었던 '동북면 도순무사' <박만>이 특사로 파견되어 <태조>에게 돌아오실 것을 눈물로 간청하니 그때서야 환궁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죽어 돌아 오지 않는 <함릉차사>가 아니라 살아 돌아 온 <양주차사>였던거죠. <양주>에서 장장 130여일이라는 '가출'은 이로서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130여일간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상왕으로서 정무에 소외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 정승을 <양주>로 보내어 상왕의 결재를 맡도록 조치하고, 자신이 장기간 그곳에 머물며 상왕을 설득할 때에 신하들이 결재를 받으러 장기간 그곳에 파견되어 마치 정부가 그곳으로 옮긴 것과 같다하여, 그곳의 지명이 오늘날 "의정부(議政府)"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예전엔 <의정부><동두천>도 <양주>에 속한 고을이었으니... ['거사교' 조망] 이어서 <거사교>가 나타나며, 다음 구간에 진행할 <운산리고개>가 <불무산>과 <보장산> 사이에서 어서 오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4. 네번째 유랑 시위 환궁 두달만에 다시 분노는 치솟아 오른 <태조>는 다시 <양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명분에 밀려 두달만에 다시 환궁했고... ['거사교' 통과] 1:00 <거사교>를 통과 하여 건너편 둑방길로 가면...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5. 다섯번째 유랑 시위......"조사위의 난" <태조>는 또다시 다섯번째 가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가출은 지난 여러차례의 가출에 비해 다른 성격을 띄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두번째 부인이자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이며 세자로 책봉 됬던 <방석>의 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의 외족이 되는 "안변부사 조사의 趙思義"가 <태조>의 고향이자 근거지인 <함경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신덕왕후>와 <세자 방석>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이었습니다. <趙思義>이라는 이름도 당시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 집니다. ㅎ <안변부사 조사의 趙思義>는 주변 수령과 주변 여진족들을 회유하여 1만여명의 군사로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바로 <조사의 무리>가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을때 즈음에 <태조>는 다섯번째 가출을 하여 <함흥지역>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함경도 동북면>의 급박한 정세와 아버지 태상왕의 <함흥행>을 보고받은 <태종>은 <상호군 박순>을 <함경도 동북면>으로 급히 파견하여 <조사의>의 군대에 회유된 그 지역 수령들을 설득하게 하였으나, 도리어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바로 이 <박순>의 죽음이 <함흥차사>의 잘못된 고사성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즉 <박순>은 <태조 이성계>에게 보내어진 <차사>가 아니라 반란군을 회유하라는 어명을 받은 <회유사>였고, 그를 죽인 것은 <이성계>가 아니라 반란군 <조사의의 군사>였습니다. 한편, 당시 <태조>가 있었던 <함흥>은 <조사의>의 반란군에 접수당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태종실록>을 비롯한 조선의 正史에는 조선왕조 최초의 반란인 <조사의의 난>이 당시 상황에 비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고, <태조 이성계>와 <조사의>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이는 분명히 <태조>가 <조사의의 난>과 연관이 되어있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사의>가 난을 일으킬 시점에 <함흥>으로 행차한 <태조 이성계>의 행동은 분명, 의혹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조사의의 반군> 진영에는 <태조 이성계>가 있었을 것이고, <조사의의 반군>은 반란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성계>를 모실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태종 이방원>이는 다시 특사를 보내는데 이번엔 <내관 노희봉>을 <함흥>으로 보냈습니다. <노희봉>은 <태조>의 안부를 묻기 위해 떠난 후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이도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분명히 <태조 이성계>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조사의의 반군>에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조사의의 반군>은 <이천우 군대>를 격파하고 승승장구 <평양>으로 진군하였으나, <평양>에서 정부군에게 궤멸당하며 <조사의의 난>은 평정되고 맙니다. 결국 <태조 이성계>는 영원한 동지 <무학대사>의 설득에 의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기록되 있지만 <조사의의 난>이 실패하면서 갈곳을 잃어 돌아 오지 않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학대사>의 설득도 있었겠지만 상황이 어쩔수 없었다는게 대부분 학자들의 분석입니다. ['뻐꾹천교'] 1:08 바로 앞에는 <뻐꾹천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고, 좌측 <포천천>에는 <은현교>가 보입니다. 다음 구간에서 저 <은현교>를 건너게 되겠습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결론 <태조 이성계>는 <함흥>으로 오는 <차사>들을 단 한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희생당한 두명은 <태조 이성계>의 명령으로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 반란군 <조사의의 군사>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에 대한 옛이야기는 아마도 <태종>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뭇사람들이 살을 붙여 만든 창작품에 지나지 않은 것이란게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확실합니다. 더더욱 <김진명 작가>는 그의 책에서 <함흥차사>는 <태종 이방원>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사의의 난>의 우두머리가 아버지 <태조 이성계>이므로 그 반란군 속으로 가면 반드시 죽으니 우리편은 어느 누구도 <함흥>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방원의 경고""함흥으로 가면 죽어 돌아 오지 못한다"라는 "함흥차사 咸興差使"이며 글자와는 관계없는 "경고"를 부여 한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태조 이성계>에게 살해 당한 <함흥차사>는 단 한명도 없었으니.... ['낙귀정지' 조망] <네이버 지도>에는 <낙귀정>이 있었던 자리가 건너편이라고 표기 하는데 정확치 않은듯 하고 실제 <낙귀정터>는 다음 구간에서 확인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3번국도' 영북면 양문리 중심가] 1:13 <뻐꾹천>을 따라 <43번국도>로 다시 나가면 <뻐꾹1교>를 만나 건너고 <영북면 양문리> 중심거리를 잠시 진행하면.... ['영북논협' 앞 '양문1리(터미널) 버스정류장'] 1:17 <영북농협> 앞에 <경흥길 6-1코스 종점>인 <양문1리(터미널)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경흥길 7코스> 출발 안내판은 버스정류장 뒤에 붙어 있어 여기선 보이지 않더군요. 오늘 걸은 거리는 11.77km였으며 3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곳 버스정류장에서 <1386번 직행버스>를 타고 <도봉산역>으로 가서 전철로 환승하여 귀가 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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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5길 반월산성길 : 포천시청-청성산-신북면사무소』
  "청성산 반월산성을 답사하다"


  ['제5길 반월산성길 실트랙']              
  <경기옛길-경흥길 제5길>은 <포천시청>에서 출발하여 <청성산 반월산성>을 오르고
  <신북면행정복지센타>까지 가는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입니다.


  ['사청앞 버스정류장']              10:07        
  2022년 2월 17일 (수)  맑음       
  "경기옛길-경흥길 제5길 반월산성길"의 정식 출발지는 <포천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만
  교통편의를 위해 <3006번 광역버스 정류장>인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합니다.
  *<잠실광역환승센타> 25번gate에서 <3006번 광역버스>를 타고 55분이 걸려 이곳에 내렸습니다.
  <잠실>에서 <포천 송우리>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무정차로 운행하기에 빠르고 편리했습니다.


  ['신읍삼거리']             10:08~10:15     
  <시청버스정류장>에서 직진하면 바로 <신읍사거리>를 만나는데 
  이름에서부터 이 거리는 새로 만들어진 중심지라고 <신읍리 新邑里>라고 하더군요.
  <구읍리 舊邑里>는 잠시후 만나는 <청성산> 남쪽 아래에 있더군요.
  그리고 이 사거리엔 <만두집>이 있습니다.
  제가 포천을 찾을 때 마다 거의 매번 이용하는 만두집인데 가격 맛 모두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만두 열개에 5,000원.  아점용으로 하나 사고...직진하면....


  ['포천시외버스터미널']               10:17~10:23          
  "포천시외버스터미널"을 만나는데 <제5코스 반월산성길>의 정식 출발지가 되겠습니다.
  터미널 승객대기소 앞에 안내판이 있고...


  ['제5코스 반월산성길' 출발지 안내판]                 
  "경흥길 제5길 반월산성길" 안내판을 참고 하고
  

  ['구한내사거리']            10:24      
  <포천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면 바로 <구한내사거리>를 만나는데 우회전 하면...


  ['한내교']                10:25         
  <포천천>을 건너는 "한내교"를 만나는데
  잠시후 올라야 할 <청성산 반월산성>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청성역사공원' 가는 길]

  ['청성역사공원' 정문]             10:38      
  <한내교>에서 13분 정도 걸려 직진하면
  "청성역사공원" 정문을 만납니다. 안으로 들어 가면...


  ['스탬프함']                      
  광장 앞 우측에 <스탬프함>이 있고, 좌측엔 <평화의 소녀>가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역사를 잊은 자에게 내일은 없다" 라고 호소하는 듯한 "평화의 소녀像"이 있고



  ['충혼탑']   
  제법 긴 계단을 올라 가면 "포천충혼탑"이 건립되 있습니다.
  <의정부시 충혼탑>과 비슷하군요.


  ['충혼탑'에서 조망]       
  <충혼탑>에서 <포천시내> 방향을 조망하고....
  "왕방산 736.7m 王方山"은 <포천>의 진산이라 할수 있죠.
  지명의 유래는 각 기관마다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포천시 문화관광 홈피에는
  "신라 헌강왕 3년(872)경 도선국사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 격려하였다 해서
  왕방산이라 불리어졌고, 도선국사가 기거했던 절을 왕방사라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라고 하고
  2) 국토지리원 국토포털 지명의 유래에는
  "고려왕족 왕상인(王相人)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정권 획득으로 말미암아 피신중에 이 산봉에서
  옛 궁성인 송도를 바라보다 투신 자살한 곳이라 하여 왕망산(王望山)으로 불리던 것이
  후에 왕방산(王方山)으로 불리우고 있음."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3) <왕방산> 정상 안내판에는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돌아 오는 중에 '왕방사'에 머물러 '왕이 방문한 산'이라는 의미로
  王訪山이라고 불리웠졌다는 설이 있다"라고....


  ['행운의 종']                 
  <충혼탑> 우측 옆에는 "幸運의 鐘"이 있으며


  ['반월각' 가는 길]            10:44      
  <행운의 종> 앞에 이정표와 함께 <최익현선생> 안내판이 있습니다.
  또한 <청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최익현선생' 안내문]           
  <최익현선생>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 하고


  [돌탑 정원]                    
  좌측에는 <돌탑>들이 있는데 쉼터인지 정원인지 뭔지....
  4분여 오름길을 올라 가면....


  ['반월각']                10:49        
  "반월각 半月閣"을 만납니다.
  이곳은 "포천시민대종"이라는 鐘이 있는 종루였습니다.
  이 鐘은 무게가 15톤으로 12억5천여만원을 들였답니다.


  [서쪽 조망]                 
  서쪽을 바라보니 지나온 <축석령>과 <천보산맥>이 한눈에 조망되고
  <한북정맥>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군요.


  ['반월각' 앞 광장]                         
  <반월각> 앞 광장으로 나가 건너편으로 가면....


  ['반월산성' 가는 길 입구]

  ['포천 600년 기념탑']                      
  "포천 600년 기념탑"이 있는데
  100년 후인 2113년 5월 13일에 개봉 할 <타임캡슐>을 매장해 놨다는군요.
  이 기념탑은 2013년 <서장원 포천시장>이 건립했다는데, 2016년 7월에 '여성 성추행'으로
  징역10개월 집행유예2년을 대법원으로 부터 확정 선고를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고...


  [기념탑에서 바라보는 '반월각']             10:54       
  기념탑에서 <반월각>을 뒤돌아 보고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8분여 올라 가면....
  

  ['반월산성' 조망]            11:02      
  <청성산> 정상부에 있는 "반월산성 半月山城"이 나타 납니다.
 

  ['남문' 앞]               10:03    
  먼저 <반월산성 남문> 앞에 도착하는데, 우측 바로 앞이 <남문>인데 <남문>으로 올라 가지 않고,
  여기서 좌측 <북문>으로 돌아 올라 가라고 하네요.
  좌측으로  돌아 가면....


  ['북문' 방향 성곽]                  
  <퇴뫼식 성곽>을 따라 <북문>으로 갑니다.
  *<퇴뫼식 성곽>이란?
  산봉우리 정상을 중심으로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축성한 성곽
 

  ['북문']               11:06      
  <북문>을 통해 城안으로 들어 가면...
 

  ['북문'에서 '남문' 방향 조망]             11:08~11:20          
 성곽 아래로 돌아온 방향 위에 전망대가 있어 갔다가 돌아옵니다.


  ['포천시내' 조망]                        
  <반월산성>에서 바라보는 <왕방지맥>의 <왕방산>과 그뒤 <국사봉>입니다.
  "국사봉 754.9m 國射峰"
  우리나라에는 "국사봉"이라는 이름의 산봉우리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國士峰, 國師峰, 國寺峰, 國思峰등 한자로 쓰면 몇 종류가 되는 "국사봉"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전국의 산들을 좀 다녀 본 결과 "사격 할 射"를 사용하는 "국사봉"은 이곳이 처음입니다.
  그 사연을 알아 보니....
  조선 제7대 왕인 폐륜아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형제들까지 죽이며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해, 그 죄를 뉘우치며 전국의 금수강산을 벗하며 名山大刹을 찾아 다녔다는데....
  자신의 고조 할아버지인 '태조 이성계'가 머무르기도 했다는 이곳 양주-포천 지역도 방문을 했답니다.
  '세조'는 사냥도 좋아해, 지난번 "천보산"에서 본 "칠봉산(어등산)"에도 올라 사냥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냥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어느 방향을 향하여 활을 쏘는데 이것을 "시사 示射"라고 하고,
  왕이 示射하는 것을 "국사 國射"라고 한답니다.
  "칠봉산(어등산)"에서 "세조"가 지금의 이 산을 향하여 "示射"를 하여 사냥 시작을 알렸다고
  이 산봉우리가 "국사봉 國射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죠? ㅎㅎ
  사실 이 "국사봉"은 "왕방산"에 속하는 한 봉우리이지만, 
  높이는 "왕방산 736.4m"보다 더 높은 "754.9m"입니다.
  '6.25전쟁' 이후 미군2사단이 저 산 근처 '동두천'에 주둔하는 바람에 "국사봉"은 미군 통신부대가 
  점령하여 일반인들의 출입이 오랜동안 금지 되어 있다가 미군2사단이 '평택'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제가 <왕방지맥>을 종주하며 "국사봉"을 오를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자세한 사항은 별첨한 <왕방지맥 두번째 산행기>를 참고 하면 <왕방산>과 <국사봉>의 정상부를
  자세히 볼수 있겠습니다.


  ['청성산 정상' 조망]                               
  전망대에서 <청성산 정상> 방향을 바라보고
  먼저 우측에 있는 <남문>부터 둘러 보고 <토광지>를 경유하여 정상으로 갑니다.


  ['남문']                11:21     
  "반월산성 남문"
  城門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군요.


  [반월산성 안내문]          
  <반월산성>은 <사적 제403호>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잘 나와 있고...


  [토광지']             11:23       
  "토광지 土壙址"
  <토광 土壙>은 "음식물 등을 저장하는 창고"랍니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엔 땅 쏙에 음식물등을 저장했죠.
  이 산성엔 이런 <토광>이 총27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청성산 정상부']             11:26        
  <청성산 정상부>로 올라 가면 이 산성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들이 있고


  ['장대지']            11:28       
  이어서 "장대지 將臺址"를 만나는데 "청성산 285.1m 靑城山" 정상입니다.
  山城에는 대부분 장군의 지휘소인 <장대>가 있는데 여기도 정상부에 있었군요.
  제일 높은 곳이라 조망이 좋아 조망을 하고 갑니다.


  [북쪽 조망]              
  먼저 북쪽을 바라보면 오늘 답사의 종점인 <신북면행정복지센타>가 있는 곳이 조망됩니다.
  사진의 정중앙에 김이 나오는 큰 굴둑이 있는 곳이 <포천GS그린에너지>라는 열병합발전소인데
  저 근처가 <신북면>이 되겠고 <신북면행정복지센타>가 있었습니다.


  [북동쪽 조망]                    
  북동쪽으로 <천주산 天株山 423.4m>이 조망되는데 
  현재 채석을 하고 있는 <채석장>이 흉뮬스럽게 보입니다.
  <포천아트밸리>는 <천주산 정상> 앞 산줄기 너머에 있어 여기선 보이지 않고...
  아랫마을은 <하성북리 下城北里>라고 하는데 <반월산성>의 북쪽 아랫마을이라고...


  [동쪽 조망]                     
  동쪽으로는 <한북정맥>의 "운악산 雲岳山 934.7m"이 조망되고 <수원산>으로 이어 집니다.
 

               
             ['애기당지']                 11:32     
             <장대지> 옆에는 "애기당지"가 있는데
             <반월산성>에 가면 꼭 봐야하는 시설이랍니다.
 

 [동남쪽 조망]              
  <애기당지>에서 동쪽 성곽을 따라 내려 가면
  <한북정맥>의 "수원산 水源山 697m"이 추억 속에 아물거리고...
 

  [동문]             11:35      
  이어서 <동문>을 지나면...


  [건물지]         
  여러 건물이 있었다는 <건물지>가 <애기당> 남쪽 아래에 있습니다.


  [남쪽 성곽]

  [느티나무]                 11:39       
  남쪽 성곽을 따라 내려 가면 보호수인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반월산성>을 벗어 나게 됩니다.



  [내림길]        
  시내에서 <반월산성> 정상으로 연결되는 남쪽 도로를 따라 10여분 내려 가면....


  [갈림길]                  11:48       
  <구읍리 생활체육시설>이 있는 곳에서 <경흥길>은 좌측 계단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앞에 보이는 마을이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라는데
  <포천>의 옛 이름이 <청성>이었으며 관아와 향교등 주요 관청이 이곳에 있었었답니다.
  그래서 현재는 이 지역을 "군내면 구읍리 郡內面 舊邑里"라고 한다는군요.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현감 縣監>이 있었고, 근대엔 <포천군청>이 이곳에 있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성산 반월산성>이 이 고을의 핵심 중심 城이었다고


  ['청성산 둘레길']                 
  <경흥길>과 함께하는 <청성산둘레길>은 마을로 내려 가지 않고 산허리를 돌아 갑니다.
  10여분 진행하면....


  ['포천향교' 조망]                    
  우측 아래에 <포천향교>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포천향교 갈림길']                11:57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향교 방향>을 바라보면...


  ['포천향교']                               
  "포천향교"는 개보수공사로 온통 가림막을 치고 있는데 매우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향교>는 대체로 <관아> 옆에 있었기에 이 근처가 옛날엔 <포천의 중심지>였슴이 확실하고
 

  ['구읍리 석불' 조망]                       
  삼거리에서 진향방향을 바라보면 <구읍리 석불입상>이 보입니다.


  ['구읍리 석불 입상']                    12:00

  [안내문]                      
  "구읍리 석북입상 舊邑里 石佛立像"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청성산 둘레길']                               
  <향교>에서부터 <백구> 한마리가 나타나 길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어찌 된 일인지 가는 곳마다 개들의 한영을 받곤 하죠. ㅎㅎ 개팔자인가봐요~ ㅎ
  23분 정도 <청선산둘레길>을 진행하면....


  ['약수터' 앞 갈림길]                12:23     
  <약수터> 앞 삼거리를 만납니다.


  ['약수터']               
  <약수터>에는 맑은 물이 제법 나오고 있었는데
  백구가 자주 찾아와 마시는지 먼저 약숫물을 많이 먹더군요.
  백구와는 여기서 헤어지고...


  [내림길]

  ['하성북리']            
  <하성북리> 마을로 내려 가니 이번엔 요런 강아지들이 다시 반겨 줍니다. ㅎ
  반겨 주는 것들은 개들 뿐....ㅎ ^*^


  ['벧엘기도원' 앞]              12:38      
  마을을 통과해 나가면 <벧엘기도원>을 만나는데,  여기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청성산']              
  지나온 <청성산 반원산성>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옛 경흥길>이 <한양>과 <함경북도 끝 경흥>을 이어주는 길의 중요 포인트였다는 것을 알수 있고


  ['골말교']               12:40     
  이어서 <골말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 해야 하고


  ['개천']                     
  <포천천>으로 가는 개천을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43번국도']                     12:51
  
  ['고속도로 굴다리' 통과]          12:52         
  <43번국도>를 다시 만나며
  이어서 우측에 있는 <포천-구리 고속도로>의 굴다리를 통과하여 좌회전하면...
 

 [고속도로 옆길]                      
  <포천-구리 고속도로> 옆을 15분 정도 진행 합니다.
 

  ['구신북대로앞교차로']            1:06       
  그러면 <고속도로 종점>인 <구신북대교앞교차로>를 만나는데 <'K-Mart'>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선 길을 건너 가서....


  ['포천천'으로 나가는 길]         1:08      
  보행로가 없는 도로를 50m 정도 가면 길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직진하는게 좋겠더군요. 
  <경흥길>은 오리지날이 <43번국도>인데 걷기코스로 뺑뺑이를 돌리는 것이므로


  ['신북면 기지리']

  ['포천천']                        
  여기서부턴 <신북면 기지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포천천>을 만나 <포천천> 뚝방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신북대교' 동쪽끝]            1:18        
  <신북대교>의 동쪽 끝머리에서 도로로 올라 가야 하고


  ['신북대교삼거리']                       
  도로로 올라 가면 <신북대교삼거리>가 있는데 좌측으로 길을 건너


  ['43번국도']                 
  <43번국도>에서 좌측 <포천현대자동차공업사>로 들어 가야 하더구요.
  여기서 길 찾는데 좀 헤메고...
  여기서도 그냥 직진해 가는게 더 즐거운 <경흥길>이 될듯하니 후답자들은 참고하시고...
  <경기문화원>이 정해 놓은 루트만을 따라 가는게 <경흥길 정답>이 아닙니다.
  <옛 경흥길>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있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느끼며 가는게
  진정한 <경흥길>을 걷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포천현대자동차공업사']              1:25        
  <포천현대자동차공업사> 안으로 들어 가서


  ['포천천 둑방길']

  ['평안산업' 앞]                   1:36

  ['신북면행정복지센타' 조망]            1:39                
  다시 <포천천 뚝방길>을 진행하여 길이 끊기는 곳에서 우회전 하면 <신북면행정복지센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신북면행정복지센타' 버스정류장]                1:44               
  다시 <43번국도>로 나가면 <신북면행정복지센타>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지나가서 뒤돌아 보면...
  **<도봉산역>으로 가는 <1386번 광역버스>는 이곳에서 타야 합니다.


  ['6코스 출발지 안내판' 위치]             

  ['6코스출발지 안내판']                 
  버스정류장 뒤에 <제6길 만세교길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관심 가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유의 해야 겠습니다.


  ['신북면사무소']                1:45       
  <신북면사무소>는 공사중이고...


  ['신북면사무소앞 삼거리']                 
  <잠실광역환승센타>로 가는 <3006번 광역버스>를 타려면 앞의 <신북면사무소앞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가야하는데, 때마침 <3006번>이 나오고 있군요.


  ['한내가족처럼요양병원']  

  ['신북체육문화센타' 버스정류장]            1:46~2:09        
   <3006번>은 이곳 <신북체육문화센타 정류장>에서 타야 합니다.
   15분~20분 배차간격이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1.15km였으며, 3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 별첨 : 
  "<왕방지맥 두번째 산행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 파발막길 : 소흘행정복지센타-포천시청』
     "전계대원군을 찾아 보다"


  [제4길 천보산길 실트랙']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은 <소흘읍행정복지센타>에서 출발하여 <포천천 수변길>을 거닐어
  <포천시청>까지 가는 다소 단조로운 길이었습니다.


  ['제4길 출발지]                            

  [안내문]                        
  2022년 2월 13일 (일)  흐림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 파발막길"의 출발지는 <소흘읍사무소>인 "소흘행정복지센타"입니다.



  ['소흘행정복지센타']                   
  <제4길 파발막길>의 출발지와 <스탬프함>은 <소흘읍자치센타> 뒤에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출발지>에서 스탬프를 찍고, 다시 <소흘읍사무소> 정문으로 돌아 나와 
  <43번국도>로 잠시 나가면...


  ['43번국도']

  [소흘 홈플러스' 앞]                           
  <전두환 전대통령>이 도로 확포장 공사를 하고 자기 맘대로 <호국로>라고 이름 붙인 <43번국도>를
  만나는데 좌회전하여  <송우리 중심가> 방향으로 들어 가면 <홈플러스> 앞을 지나고...


  ['송우리 중심상가 거리']

  ['송우시장 사거리']                  
  <송우리 중심상가지역>으로 들어 가면 <송우시장 사거리>를 만나는데
  

  ['사거리 쉼터'] 

  ['송우시장' 안내문]                   
  <송우사거리>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 되 있고, 몇몇 조형물이 있으며
  <송우시장>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주공2단지 석향마을' 정문]                10:00   
  계속해서 직진하면 <송우리시내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이어서 <주공2단지 석향마을 아파트> 정문에 도착합니다.
  지난 <3코스 축석고갯길>을 여기까지 진행 했었기에 오늘은 실제 이곳부터 답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우교']                  10:04         
  <주공2단지> 정문에서 200m 정도 직진하면 "송우교 松隅橋"를 만납니다.
  이 다리를 건너 "q 턴"을 하여 개천길로 내려 가야 하는데


  ['송우교' 밑 수변길 입구]                      
  이런 방법으로 "q턴"하여 개천으로 내려 가면


  ['송우천']        
  <송우천 松隅川>을 만나 수변길을 잠시 진행하고


  ['포천천-송우천' 합수부]                 10:08    
  이어서 "포천천 捕川川"을 만나는데, 
  <4코스 파발막길>은 <포천천 수변길>을 따라 가는 단순한 코스가 되겠습니다.


  ['포천천']       
  이어서 하천을 건너 건너편 수변길을 진행하게 되며


  ['가산교']               10:12             
  바로 <가산교 加山橋>를 만나 통과 하는데....
  여기서 우측 <가산면 금현리>로 가면 "백사 이항복선생 묘"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활을 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신 중에 한분이어서 47세에 영의정에 오른 분이죠.
  <오성과 한음>이라는 스토리 메이크로도 유명하신 분 입니다만....
  성품이 곧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서인에 반대하다가 
  결국 <철령> 너머 <북청>으로 유배가서 외롭고 고단했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철령>을 넘어 가며 유배길에서 쓴 그의 詩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심금을 울림니다.
                  《철령 높은 봉에》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었다가
                  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고신원루 孤臣寃淚>는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을 의미하죠. 
  선생이 <북청>으로 유배를 간 길이 바로 <경흥길>이였습니다.
  <한양>에서 고향인 <포천>을 지나 <백두대간> 고갯마루인 <철령>을 너머 <북청>으로 갔으니


  ['포천천']

  ['왕방지맥' 조망]                  
  <가산교>를 지나면 <왕방지맥>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왕방지맥>의 대표산인 <왕방산>이 
  조망되기 시작하며, 추억의 <오지재>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오지재>는 <포천>과 <동두천>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지금은 터널이 뚫려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지맥꾼들이 주로 이용하더군요.


  ['선단 요금소']                 10:29           
  20여분 수변길을 거닐며는 <포천-구리 고속도로>의 <선단 톨게이트>가 보이고


  ['전계대원군 묘' 조망]             10:30         
  다시 <왕방산> 방향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데....
  <경흥길4코스>는 <포천천 수변길> 만을 걷는 단조로운 길이어서
  그동안 한번은 찾아 보고 싶었던 "전계대원군 묘"를 다녀 오도록 합니다.
  <전계대원군 묘>는 <오지재>로 올라 가는 입구 마을 <왕방산> 끝자락에 있습니다.


  ['선단IC교']  

  [계단]                  10:35          
  <선단 톨게이트>로 연결하는 <선단IC교>라는 다리 밑에 계단이 있더군요.
  이 계단을 올라 가서 <전계대원군묘>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올 예정입니다.



  ['장승거리 사거리']              10:37      
  <선단IC교>에서 <43번국도>로 약100m 정도 나가면
  <43번국도>에 있는 "장승거리 사거리"를 만나는데 <동두천> 방향으로 직진하여
  사진 속에 표시한 화살표 지점으로 가면....


  ['선단4통.장승거리' 버스정류장]            10:40    
  <선단4통.장승거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전계대원군묘>까지는 약2km로 왕복 4km 정도 되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탑니다.
  시내버스는 비교적 자주 있더군요. 저는 운 좋게 바로 버스를 탈수 있었고....
  버스정류장은 4개 정도를 지나는데.....4분 정도 버스를 타면


  ['선단5통마을회관' 앞 회전교차로]            10:46      
  <선단5통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고
  이곳에는 <회전교차로>가 있는데 이 교차로에서 우측을 바라보면....


  [고가도로]               
  <오지재터널>로 가는 새로 생긴 고가도로가 보입니다.
  고가 도로 밑으로 가면...


  ['전계대원군묘' 입구]              10:48        
  그 동안 한번은 꼭 가 보고 싶었던 <전계대원군묘> 입구가 고가도로 밑에 있습니다.
  이 묘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1호>라고 알리고 있군요.
  

  ['祀宇']      
  <조선왕조>엔 네명의 <대원군 大元君>이 있었죠.
  <대원군 大元君>이라는 호칭에 대해 먼저 알아 보면.... 
  왕조국가에선 왕위를 세습하기에 아버지가 먼저 왕이 되고 다음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데
  왕이 아들을 못 낳은 경우가 여러번 있어, 다른 형제나 왕족 중에서 정치적으로 선택한 사람을
  王으로 앉히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간단하게 얘기 하자면
  "王의 아버지" 중에 "아버지는 왕위에 오를 자격이 없어 왕이 되지 못했는데. 
  아들이 어찌어찌 정치적으로 王이 된 경우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 호칭 하죠.
  <대원위대감>이라고도 했고...."왕이 되지 못한 왕의 아버지"
  조선왕조 5백년 역사상 <대원군>은 모두 4명입니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과, 
  조선 역사상 두번째의 반정인 쿠데타를 통해 왕이 된 <인조>의 아버지 <정원대원군>, 
  그리고 이곳에 모셔진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 
  마지막으로 <고종황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중 <정원대원군>은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욕심을 부려 자신의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여
  왕의 대열로 억지로 끌여들여 왕릉을 조성하니 이 왕릉이 바로 요즘 <문화재청>과 <아파트 건설사>,
  그리고 <인천시>가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옥신각신하고 있는 <김포>의 <장릉>입니다.
  그래서 실제 <대원군>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과 
  <강화도령-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 그리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세명입니다.
  이들 중에 <흥선대원군>만이 살아서 <대원군> 대우를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은 후에 <대원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흥선대원군-이하응>을 주로 <대원군>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죠.
 

  [안내문]

  ['신도비']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1785년 4월 29일~1841년 12월 14일)은
  한마디로 <조선 제26대 철종>의 생부입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하면 <강화도령-원범이>의 어비지입니다.
  <전계대원군>이나 <흥선대원군>은 모두 <사도세자>로 부터 시작됩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중엔 정실부인 <혜경궁 홍씨>에게서 태어난  <정조>가 왕위에 올랐지만
  이 경우도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했는데 아들이 왕이 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엔 <사도세자>가 <영조>의 정식 아들이었기에 <정조>가 아버지를 <장조>로 
  추존하여 왕위에 올려 놨기에 <사도세자>를 <대원군>이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祀宇']                  
  이곳 祀宇는 <대원군> 권위에 맞게 규모가 상당합니다.
  현재 이 묘소를 관리하며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있더군요.
 

  ['祀堂']                     
  제사를 지내는 사당에는 특이하게 문인석이 배향하고 있고, 장명등도 있습니다.
  일빈적으로 문인석과 장명등은 묘 앞에 있는데....
 


  ['전계대원군 묘']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묘비에는 "유명조선국 전계대원군 묘"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라고 쓰여 있는데 <철종의 어필>이라고 합니다.
  먼저 제가 정리한 <전계대원군>의 족보를 보면
  <철종>은 도저히 왕위를 계승 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족보를 보면 <24대 헌종>까지는 왕의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 했는데
  <24대 헌종>이 후사 없이 죽는 바람에 그 이후 부터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24대 헌종>의 아들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안동김씨 세도정치세력>이 쬐끔만 똑똑한 왕족이
  있으면 모두 죽이며, 왕족 혈통의 씨를 말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아들이 <전계대원군>이고 그의 서자가 <원범이>였습니다.
  또한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의 아들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고
  <흥선대원군>의 아들이 <고종>이니 모두 <사도세자>의 혈통을 잇지만 명색만 왕족이었던게죠.
  왕위를 계승 시킬 왕족이 씨가 말랐지만 그래도 허수아비 왕은 내세워야 했던 <안동김씨 세도세력>은
  왕족은 왕족이지만 부모형제 모두 죽임을 당하고 홀로 농부로 나뭇꾼으로 강화도에 살고 있던 
  그 유명한 <강화도령-원범이>를 하루 아침에 왕으로 등극시키니 그가 바로 <25대 철종>이고
  이미 역모의 누명 속에서 천주교를 믿는다고 처형 당한 아버지가 졸지에 <대원군>이 되니
  그가 바로 이 묘의 주인인 <전계대원군>인 것입니다.


  [조망]                        
  <사도세자>의 서자→<은언군>의 서자→<전계대원군>의 서자→<철종>으로 이어지는 집안은 콩가루 집안.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죽임을 당했고,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은 역모에 휘말려 강화도에 유배 당했다가 죽고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대원군>은 천주교 신자여서 처형을 당한  비극의 집안입니다.
  사실 왕족이라 할수도 없을 정도의 명색만 왕족이었으며 <안동김씨 세도가>의 희생양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안동김씨 세도세력>은 허수아비 왕을 앉혀야만 했으니 글도 모르는 까막눈 <원범이>를
  그 자신도 모르게 하루 아침에 왕위에 등극시켰습니다. 그 때 나이가 18세였고....
  글을 알면 <안동김씨세력>들에게 역모의 누명을 쓸수 있다고 아버지 <전계대원군>이 글을 가르치지
  않아 진짜 까막눈이었던 <원범이>이었답니다.
  졸지에 왕이 된 <원범이>는 술과 여색에만 포위 당해 살며 <안동김씨세력>의 바지사장 역활만 하며 
  후궁까지 대여섯명을 거닐고 아들도 여럿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는데 
  <안동김씨세력>들이 씨족을 말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그리고 그도 33세에 폐결핵으로 죽고....
  그리하여 다시 왕이 필요 했는데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의 아들인 <남연군>에게서 태어난
  <흥선대원군>이 나타나며 그의 둘째 아들 <명복이>가 왕위에 오르니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었던 것입니다.


  ['철종' 어머니 묘 조망]                               
  위의 <전계대원군묘>에는 그의 정실부인인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와 합장되 있는데
  <전계대원군>의 첩이었던 <염씨>의 묘는 우측 아랫쪽에 별도로 조성되 있습니다.



  ['용성부대부인 염씨 묘']                      
  <전계대원군>의 첩이었지만 후에 <철종>이 되는 왕을 낳았으니, 평민 출신이지만 예우를 갖춰
  "용성부대부인 염씨 龍城府大夫人 廉氏"로 격상되어 별도로 묘를 만들었답니다.
  <원범이>의 어머니 묘가 되겠습니다.
  <원범이 엄마 염씨>는 공사판의 식당 (요즘말로 함빠)에서 일하던 작부였답니다.


  ['祀宇' 조망]               11:04     
  권력은 무었인가
  그 당시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으로 부국강국으로 변모하여 대항해시대로 가고 있었는데, 
  씨족을 말리면서 까지 권력을 쥐고 호위호식하려한 <안동김씨 세도세력>들은 
  나라를 망국의 길로 몰아가고 있었으니.....조선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선단5통마을회관' 앞 회전교차로]            11:06     
  <전계대원군묘>를 둘러 보고 다시 <선단5통마을회관>앞 회전교차로에 나오니 곧 바로 버스가 옵니다.


  ['장승거리 사거리']                 11:10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장승거리 사거리>로 돌아와 <포천천>으로 나가면...


  ['선단IC교']             11:14              
  <선단IC교>에 다시 돌아와 <포천천 수변길>을 진행합니다.



  ['후평교']             11:23    
  <포천천 수변길>을 10여분 진행하면 <후평교>를 통과하고


  ['포천천교']                11:29

  ['파발막길'의 유래]                     
  이어서 <포천천교>를 만나는데 <파발막길> 안내판이 있고
  남은 길이 6.1km라고 알려 줍니다.
 

  ['포천천 둑']               11:33   
  <포천천교>에서 둑방길로 올라 가는데  
 

 [둑방길]       
 여기서 부턴 <수변길>로 가도 되고 둑방길로 가도 됩니다.
 수변길은 좌우 조망이 없어 저는 둑방길을 이용합니다.
 

  [군부대]

  ['청성산' 조망]              
  지루한 길을 40여분 진행하면.....


  ['유일교' 앞]                12:11         
  <유1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수변길>로 내려 가고


  ['포천천교']                    12:16      
  <포천천교>를 지나 10여분 진행하면


  ['포천종합운동장' 조망]               12:25         
  <포천종합운동장>이 건너편에 보이며


  ['포천대교']

  ['포천대교' 통과]                12:33     
  이어서 <포천대교>를 통과하면


  ['청성산 반월산성' 조망]               12:34     
  다음 구간인 <제5길 반월산성길>의 핵심인 <반월산성>이 있는 <청성산>이 조망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가야 하더군요.


  ['포천산림조합']                      
  <포천시 산림조합>을 만나 우회전하면...


  ['포천시청' 앞 거리]

  ['포천시청']                  12:37    
  <포천시청>앞 거리를 만나고


  ['포천시청 앞 버스정류장']                  12:38
        
          ['53번버스시간표']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에서 답사를 마침니다.
  앞으로 답사 해야할 <7~8코스>를 가려면 이곳에서 <53번시내버스>를 이용하는게 편리한데
  시간표를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오전 9시 20분 버스를 타면 편리 하겠습니다.
  2020년 5월5일에 <포천 한탄강주상절리길>을 답사 할때 이용한 버스인데 시간표는 변동 없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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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3길 축석고갯길 : 축석령-소흘행정복지센타』


  [제2길 천보산길 실트랙']              
  <경기옛길-경흥길> 세번째 답사코스인 <제3길 축석고갯길>의 실트랙 <국토지리원지도>입니다.
 

  ['축석령삼거리']                 9:12      
  2022년 2월 8일 (화)  맑음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인 "축석삼거리"에서 답사를 시작합니다.


  ['자연 그리고 휴식']         
  <축석삼거리>는 <포천시>의 관문이라고 할수 있어 작은 공원과 조형물이 건립되 있습니다.
  "자연 그리고 휴식"이라는 조형물인데 <이종섭>이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경흥길3코스> 안내판과 <스탬프함>은 조형물 우측 뒤에 있는데 
  <3코스> 진행방향과는 완전 다른 엉뚱한 곳에 있으니 미리 알고 가야 하겠습니다.


  ['제3길 축석고갯길' 출발지]

  [안내문]                  
  보물찾기 하는 것도 아닌데 <3코스 출발지>와 <스탬프함>을 묘한 곳에 설치해 놨습니다. ㅎ
  <경흥길>을 등지고 있으니...
  

  ['祝石']              
  이 삼거리 공원에는 보기엔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바위가 있는데
  <축석령>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바위가 바로 이 바위 "축석 祝石"입니다.
  <기원 할 축祝>과 <바위 석石>字를 사용하는 ...
  <효종> 때에 과거 무과에 합격하여 <주군절제도위(州郡節制都尉)>를 거쳐 <귀성부사(龜城府使)>를
  지내던 "오백주 吳伯周 1643(인조21)~1719(숙종45)"라는 사람의 효심이 깃든 바위랍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버지 병 치료에 좋다는 <석청>을 엄동설한에 이 바위에서 구했다는 것인데...
  이 바위는 북쪽 500m나 떨어진 <천보산 중턱>에 있던 것을 여기로 옮겨 놓은 것이라 하고
  상식적으로 엄동설한에 바위에서 <석청>이 흘러 나올수도 없으나 "孝心"을 강조하기 위한
  설화라고 생각됩니다.


  ['호국로']                   
  이곳 <축성령삼거리>에 돋보이게 설치한 큰 바위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전두환 전대통령>이 <43번국도>를 확포장 했다고 기념석을 세웠답니다.
  권위주위 시대에 쫄들이 앞다투어 아부한 흔적이라 생각되지만, 도로 확포장하는 것까지 치적이라고
  이렇게 거창한 표지석을 세운다는 발상이 과연 군부쿠데타 세력 다웁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두환 친필>이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자기 이름이 세겨진 이런 자연홰손 바위를 보고 즐거워 했을 <전두환>......
  쿠데타로 국민을 사살한 놈이 뭔 <護國>이라고?  "호국'의 뜻이나 알고 썻을까..'호구' 같은 놈...


  ['천보산맥' 들머리 조망]      
  <경흥길3코스>의 들머리는 <43번국도> 건너편 <옛 검문소> 앞에 있습니다.


  ['옛 축석령검문소']            9:20         
  <옛 축석령 검문소>는 군시설이지만 현재 빈 건물로 남아 있는데 
  예전 <포천-철원>지역에서 군생활을 하던 분들에겐 잊을수 없는 통과의례 검문소로 기억 된다죠? ㅎ
  여기서 우측 골목으로 100m 정도 들어 가면....


  [삼거리]               9:23         
  <보광사>라는 조그만 절간 입구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길로 올라 갑니다.
  좌측 능선이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산줄기인데 앞에 보이는 <천보산맥 능선>을 만나 좌측으로 
  이어지며, <한북정맥>에서 분기하는 <왕방지맥>은 <천보산맥>을 따라 우측으로 이어지며
  <경흥길>과 함께 하더군요.
  10여분 좌측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등산로 입구]             9:32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에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정목이 길 안쪽에 있어 지나치기 쉬우니 유의 해야 겠습니다.


  [산행 들머리]                 9:33        
  이정목 앞에는 폐 군참호가 있으며 좌측 등로로 올라 갑니다.

 
  ['오름길']             
  다시 능선길을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가면....


  [천보산맥' 마루금]                9:43            
  <천보산맥 능선길>을 만나는데 <왕방지맥 마루금>이기도 합니다.
  <한북정맥>이나 <왕방지맥>은 오래전에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가 있습니다.
  산행기 끝에 첨부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하시고...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양주자이아파트1단지' 갈림길 쉼터]             9:52        
  <양주자이1단지아파트>와 연결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쉼터가 있고


  ['양주 고읍신도시' 조망]                  
  쉼터에서는 <양주시 고읍신도시>가 조망됩니다.
  앞으로도 <천보산맥> 좌측엔 <양주시 고읍신도시>가 계속 펼쳐지며 
  우측엔 <포천시 소흘읍>이 이어 집니다.

 
  ['능선길]            
  다시 능선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쉼터]             10:02           
  조금전 쉼터삼거리와 비슷한 쉼터삼거리를 다시 만나고


  [진행방향 조망]             
  진행방향으로 조망이 조금 트이는데 잠시후 오를 <활공장>이 있는 <376.2m봉>이 조망됩니다.
  저 봉우리가 오늘 코스에서 제일 높은 곳이더군요.

 
  [능선길]               
  다시 13분 정도 능선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면....




  ['360.3m 암봉']                10:15             
  <360.3m봉>에 도착하는데 오늘 코스에서 가장 멋진 봉우리입니다.
  

  ['376.2m봉 (할공장)' 조망]            10:18      
  <360.3m 암봉>을 지나면 최고봉인 <376.2m봉 활공장>이 가까이 다가 오며...
  20여분 더 진행하면.....
 


  ['활공장']                  10:38       
  <376.2m봉 활공장>에 도착 합니다.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어서 조망을 하고 갑니다.


  [조망 1]                  
  먼저 남서쪽으로 <천보산맥>이자 <왕방지맥>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오며
  뒤로 <수락산> <도봉산>..그리고 <북한산>까지 잘 보입니다. 사진엔 흐릿하지만...
  <천보산맥>에는 <천보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두군데 있는데, 여기선 <의정부 천보산>이 보입니다.
 

  [조망 2]                     
  서쪽으로는 <양주시 고읍신도시>가 계속 번성해 가고 있고
  <한북정맥>이 지나는 <불곡산>과 <호명산><한강봉><사패산>이 조망됩니다.
 

  [조망 3]                         
  북쪽으로는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를 시찰하면서 올랐던 <어등산 御登山( 칠봉산)>이
  보이는데,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우측에는 <양주 천보산>이 있으며 <회암사>는 <천보산> 아래에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시찰한 루트는 <어등산(칠봉산)>→<천보산>을 거쳐 잠시후 만날 <어하고개>로
  하산하고 <회암사>로 갔다고 합니다.


  ['376.2m봉']                  10:39      
  <활공장> 뒤에는 "376.2m봉" 정상이 있습니다.
  <맨발님>이 부착한 <왕방지맥 표지판>이 있군요. 제가 갔었을 땐 없었는데....
  <맨발님>은 <준.희님>과 함께 우리나라 산줄기에 표지판을 부착하고 있는데 요즘 건강이 어떠 하신지


  [갈림길]                               
  <376.2m봉>에서 조금 진행하면 <어하마을>과 <어하고개> 갈림길이 있으며



  ['해룡산''왕방산' 줌인 조망]                10:45         
  이어서 <왕방지맥>이 조망되는데 <양주 천보산>과 <해룡산><왕방산>까지 보이는군요.

 
  ['어하고개'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8분여 내려 가면....


  ['어하고개 생태통로' 조망]                 10:03             
  전에는 없던 <어하고개 생태통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하고개 생태통로']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를 시찰하면서 <어등산(칠봉산)>과 <천보산>을 오르고 이곳에서 하산한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어하고개 御下峴"라 한답니다.
  <어하고개 생태통로>에서 <포천시> 방향을 바라보면...


  ['고모리산성' 조망]                 10:04          
  <포천시 소흘읍>과 <고모리산성>, 그리고 그 뒤로 <죽엽산>이 조망됩니다.

 
  [오름길]                 
  <어하고개>에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가면...


  ['326.4m봉']                  11:16   
  <326.4m봉>에 올라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어하고개'와 '활공장']                  
  지나온 <어하고개>와 <활공장>이 있던 <376.2m봉>이 조망됩니다.
  둘레길이라기 보다는 등산코스라고 할수 있죠?
 

 [다음 봉우리 조망]       
  진행방향으로 다시 올라 야 할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포천 소흘읍' 조망]                   11:23                 
  <포천시 소흘읍>이 점점 윤곽을 그려내고...

 
  [능선길]                 
  15분 가량 능선길을 진행하면....


  ['죽엽산' 조망]                 11:37       
  유명한 "고모리산성"이 있는 산봉우리가 이젠 선명하게 보이는데
  <고모리산성>은 <옛 경흥길>에서 없어서는 않될 중요한 군사방어진지 였답니다.
  제 생각에는 <경기옛길-경흥길>을 저 <고모리산성>으로 연결하는게 더 좋았을 듯....
  그래야 <옛 경흥길>의 의미를 더욱 느낄수 있을테니...
  그 뒤엔 <죽엽산>이 보이는데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산줄기가 되겠습니다.
  <포천시>는 <한북정맥>과 <왕방지맥>이 둘러 싼 분지여서, 이 분지에 외부에서 흘러 들어 오는
  물은 없고, 내리는 빗물은 모두 <포천시> 정중앙을 통과하는 <포천천>으로 모여 흘러 나가며
  <영평천>과 합류하여 <임진강>으로 흘러 나갑니다.
  그리하여 <포천>이라는 지명은 "물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없고 외부로 흘러 나가기만 한다고
  하여 <안을 포(抱)>, <내 천(川)>字를 사용하는 이름이 되었답니다.



  ['군훈련장']                11:53     
  조망을 마치고 봉우리를 조금 내려 가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한 군훈련장을 지나고


  ['석문이고개']               11:54          
  이어서 "석문이고개 石門嶺"를 만나는데 
  <왕방지맥>은 직진합니다만, <경흥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하산해야 하더군요.
  이후의 <왕방지맥>이 궁금하신 분들은 첨부한 <왕방지맥 산행기>를 참고 하시고...


  ['소흘읍' 방향 내림길]                    
  이정목이 가리키는 <체육공원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내림길]                   
  10여분 내림길을 진행하면....


  ['소흘생활체육공원']               12:03         
  "소흘읍 행활체육공원"을 만나 통과 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가서...


  [길조심]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면...


  [공사중]                       
  공사중인 길을 만나고...


  [실내테니스장]

  ['인공암벽장']               12:07   
  <소흘읍>이 자랑하는 "인공암벽장"과 실내 테니스장 등 여러 시설들이 있고
 


  ['소흘체육공원' 안내문]                 
  다목적운동장 앞에는 체육공원 안내문이 있으며
  정문을 통해 나가면...


  ['체육공원' 진출입로]               12:10       
  <체육공원 진출입로>를 만나 이 길을 따라 끝까지 진행합니다.
  다만 중간에 <둘레길 출발점> 방향을 알리는 이정목이 하나 있어 좌측 산으로 가기 쉬운데
  저 길은 <천보산둘레길>을 안내하는 것이고, <경흥길>은 직진해 내려 가야 하더군요.


  ['포천-양주 고속도로']                 12:17      
  이어서 <경흥길 안내판>을 지나면 <포천-양주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게 되며


  ['올리어린이집']                12:23      
  <올리어린이집>을 지나면...


  ['소흘행정복지센타' 뒤]              12:25     
  삼거리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3코스종점>인 <소흘읍행정복지센타>가 있습니다.
  그런데 황단보도가 없어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해 가야 했습니다.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횡단보도']                   12:28     
  이런 방법으로 우회하여...


  [삼거리]               12:30       
 다리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 가면...


  ['소흘읍보건소'와 '행정복지센타']

  ['주민자치센타'와 '스탬프함' 위치]               12:32            
  <소흘읍사무소>인 "소흘읍행정복지센타"가 <보건소>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3코스종점-4코스출발지>와 <스탬프함>을 찾으려면 
  우측 <소흘읍주민자치센타> 건물 뒤로 가야 하더군요. 
  그리고 다시 나와 우측길로 <4코스>를 진행 해야 하니 유의 해야겠습니다.


  [3코스 종점'과  '4코스 출발지']              12:34     
  <소흘읍주민자치센타> 뒤에 <3~4코스 시종점>이 있으며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4코스>를 이어 가려면 다시 <소흘읍사무소> 정문 앞으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 잊으면 않되겠더군요.
  저는 계속 <4코스>로 진행합니다만, <3코스 답사기>는 여기서 종료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코스의 고도표입니다.
  평평한 능선길은 아니죠? ㅎㅎ
  걸은 거리는 9.3km였으며 3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부록』
  1.  "왕방지맥 첫코스 산행기" 여기 클릭
  2. "한북정맥 일곱번째 산행기:죽엽산-고모리산성" 여기클릭
  3. "한북정맥 여덟번째 산행기:축석령-고읍신도시-샘내고개" 여기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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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기옛길-경흥길』
      『제2길 천보산길 : 의정부역-축석령』


  [제2길 천보산길 실트랙']            ★ 사진 클릭하면 크데 확대 됨 ★  
  <경기옛길-경흥길> 두번째 답사코스인 <제2길 천보산길>의 실트랙 지도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무지무지 크게 확대 됩니다.
 

  ['의정부역 5번출입구']                10:00        
  2022년 1월 26일 (수)  맑음      
  <제2길 천보산길>의 출발지는 <의정부역 5번출구>입니다.
  좌측 차도를 건너 가면...


  ['안중근의사 상']         
  <의정부역전근린공원>이 크게 아름답게 조성되 있는데, 그 중에 "안중근의사 상"이 다른 곳의 것과는
  아주 다른 포즈를 취하는 동상이 있는데.....권총을 빼내며 <이또 히로부미>를 향해 돌진 하는듯...



  ['제2길 출발지점']                  
  <안중근의사상> 앞에는 "경흥2길-천보산길"의 출발지를 알리는 안내판과 <스탬프함>이 있고
  정면엔 <의정부관광안내소>가 우체국 모양을 하고 있는데, 
  

  ['5-1번 출입구']              
  <제2길-천보산길>은 <지하상가 5-1번출입구>를 이용해 건너편 <태조 이성계 상>으로 건너 갑니다.
  길안내표지는 <지하상가 6-4번출구>로 안내하지만 <지하상가 5-2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이성계상>이
  있으니 <5-2번 출구>를 이용하는게 가장 가깝고


  ['이성계 상']                10:09    
  저는 모르고 시키는대로 <6-4번 출구>로 나가 다시 <5-2번출구> 앞으로 돌아 오니
  조용할 날 하루도 없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朝鮮>을 開國한 "태조 이성계 상"이 
  <의정부의 명동>인 <의정부행복로> 입구에 용맹스런 활쏘기 포즈를 취하며 호령을 하고 있습니다.
  <의정부 議政府>라는 지명을 만들어 준 왕이기에 특별히 세운듯...
  조선왕조 27명의 왕 중에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태조>와 <태종>을 호칭 할때엔 이름을 뒤에 붙이죠.
  <태조 이성계>라던가 <태종 이방원>이라고.....다른 왕들은 이름조차도 모르죠? ㅎㅎ
  왜그러는지 아세요? ^*^


  ['행복로' <신혼부부상>]      
  <행복로>를 통과하는데 먼저 <신혼부부상>이 눈길을 끌고...


  ['행복로' <중년부부상>]        
  이어서 <중년부부상>도 세워져 있는데....
  사진 속 앞에 보이는 한자를 알수 있나요?  제가 보기엔 <암반수 巖盤水>라고 생각되는데...
  이 조형물에 수로를 만들고 물이 흐르게 조경을 했는데, 지하 103m에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흐르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셔도 되는 물이라고 자랑하고 있더군요.



  ['밀레니움 오밸리스크']      
  계속해서 로타리 마다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밀레니엄 오벨리스크>라는 조형물도 눈길을 끌고
  

  ['말타기']              
  추억의 <말타기 놀이> 조형물도 있습니다.


  ['파발로터리']                       10:18

  [지명의 유래]                         
  <의정부 행복로>를 통과하면 <행복로>의 끝에서
  "파발로터리"를 만나는데 지명의 유래는 안내문을 참고하고


  ['의정부경전철']             
  이어서 <의정부경전철> 밑으로 조금 진행하면....


  ['양주교' 앞 '양지공원']                10:23      
  <의정부경전철>이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는 곳에 <양주교>라는 <중량천> 다리를 만납니다.
  교각 뒤에는 "양지공원"이라는 표지석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중랑천']         
  <의정부시>를 관통하고 있는 <중랑천>을 만나는데
  <중랑천>으로 내려 가서 남쪽으로 조금 진행하면...


  ['중랑천-부용천' 합수지점]              10:26          
  <중랑천>을 건너는 첫번째 다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좌측<부용천>이 <중랑천>에 합수하는 곳이더군요.
  다리를 건너 좌측 <부용천>으로 들어 가면...


  ['부용교']               10ㅣ28       
  <부용천>이 그 이름을 다하고 <중랑천>에 합수하며 소멸되는 곳에 <부용교>라는 다리가 있고...
  이제부터 <부용천>을 따라 <새말인도교>까지 660m를 진행합니다.


  ['금신교']                 10:34    
  "부용천 芙蓉川"은 <의정부시 금오동(金梧洞)~신곡동(新谷洞)> 일대를 흐르는 길이 9.2km의
  작은 규모의 하천이지만 <의정부시>의 대표 생태하천이라고 합니다. 봄에 벗꽃이 유명하다고...
  <금신교>를 지나면....


  ['새말인도교']             10:38        ★ 길조심 ★          
  <부용천>의 세번째 다리인 "새말인도교"를 만나는데
  <경흥길>은 여기서 좌측 계단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경흥길> 안내표지판은 보이지 않았고, 안내리본이 좌측 계단 위 나무에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둑으로 올라 가면....


  ['그린힐아파트 107동']              
  우측에 <그린힐아파트 107동>이 바로 보이는데, 좌측 골목으로 나가면...


  ['43번국도'-'꽃동네 버스정류장']               10:41        
  오리지날 <경흥길>이라고 추정되는 <43번국도>를 만나는데
  <꽃동네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꽃동네 입구']            
  이제부터 <43번국도>를 건너 <꽃동네>로 들어가 <천보산>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마을회관']                  
  '의정부시 금오동'에 있는 <꽃동네>를 대체로 직진 통과하면...
 

  ['소림사' 입구]                 10:51        
  <소림사> 입구를 만나는데 <제2길 천보산길 안내판>과 <의순공주묘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의순공주묘>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데 안내판은 이곳에 설치해 놔서 혼돈을 줍니다만....
  여기서 <의순공주묘>를 다녀 오도록 하겠습니다.
  좌측을 바라보면...


  ['의순공주묘' 가는 길]                  
  좌측에 있는 빌라의 이름은 <정은리치빌>이며 이 뒷길의 약50m쯤에 <의순공주묘>가 있습니다.
  조금 들어 가면...
 

  ['의순공주묘' 입구]                     
  좌측에 있는 빌라의 이름이 <힐링타운>이라는 빌라였는데 
  이 빌라 뒤에 나무 몇그루가 있으며 문인석이 두개 서있지만 초라한 묘가 있는데
  누구의 묘인지 분명하게 알려주는 안내판도 없이 <의순공주묘>라고 추정된다는 묘가 있더군요.
 

  ['의순공주묘']                    10:55

  [안내문]                          
  "의순공주묘 義順公主墓"
  이곳 묘 앞에는 없고, 조금전 <소림사> 앞에 있던 안내문을 여기서 소개 하면
  안내문에 <족두리묘>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병자호란> 후 <청나라>가 공녀로 공주를 보내라는 
  지시를 받고,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가는 도중 <평안도 정주> 쯤 갔을 때 
  정조를 지키기 위해 투신자살 했는데 족두리만 건저 올렸다는 내용이 있는데 터무니 없는 낭설이랍니다.
  이것은 역사 기록에는 전혀 없는 지어낸 전설 일뿐인데 공식 안내문에 스스로 터무니 없는 전설이라
  하면서도 기록하여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의순공주>에 대해선 <조선왕조실록>에 상당히 자세하게 기록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천보산>을 걸으며 <효종실록>을 중심으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뒤에서 본 '의순공주묘']                        
  뒤에서 바라본 <의순공주묘>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관리를 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의정부시>에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를 해 달라고 요청을 수없이 했다지만
  <의정부시>는 이 묘가 실제 <의순공주묘>인지 뭔지 확실한 근거가 없어 문화재로 지정 할수 없다고
  그냥 방치하고 있답니다. 이곳을 지나 다니는 산객들이나 관심있는 분들이 이 묘를 보며
  대부분 한마디씩 하며, 이런 <의정부시>의 처분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욕하기 전에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 보고 그 근거를 제시하며 욕해야 하지 않나요?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잘난척 습관성 비난이 난무하고 있으니....
  필자인 <파란문>은 이 묘가 <의순공주묘>라고 심정은 가지만 <의순공주묘>라고 확신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제가 "심정은 간다" 라고 하는 그 이유는....


  ['금림군 이개윤 묘']                         
  <의순공주묘>에서 30~40m 떨어진 곳에 
  <의순공주>의 아버지인 "금림군 이개윤 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묘소 관리를 잘하고 있어서 <의순공주>의 묘와는 관리 상태가 완전 비교됩니다.
  여기 관리 하는 김에 옆의 <의순공주묘>라고 추정되는 묘도 관리 좀 해주지....
  묘비에는 "顯祿大夫 錦林君 墓"라고 쓰여 있으며 <부인 문화류씨>와 합장 되 있다고 합니다.
  <금림군 이개윤>은 <성종>의 서자인 <익양군 이회>의 3세손으로 왕족이었습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가 공녀로 공주를 보내라는 명령을 받은 <효종>을 비롯한 왕족 사대부들은 
  모두 자기 딸을 공녀로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자기 딸을 공녀로 보내겠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이 묘의 주인인 왕족 <금림군 이개윤>이었으며
  그 딸의 이름이 "이애숙 李愛淑"이었는데, 얼시구 좋구나 <효종>은 그녀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
  "큰 뜻에 순응한 여인"이라고 "의순공주 義順公主"라는 칭호를 주고 <청나라>에 보냈습니다.
  '비운의 여인' <이애숙-의순공주>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소림사' 입구]                11:08     
  <금림군묘>와 <의순공주묘>라 추정하는 묘를 둘러 보고 
  다시 <소림사 입구>로 돌아와 <천보산 옆구리>를 돌며 <경흥길>을 이어 갑니다.
  여기서부터 <의정부시 소풍길>과 함께 하기에 지금부터는 <의정부 소풍길>을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현충탑>까지 "6.2km'라고 알려 줍니다.

  
  ['천보산 둘레길']                         
  <천보산> 옆구리 <의정부소풍길>을 걸으며 <의순공주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시대 <병자호란(1636년)>이 있었던 후 <효종> 때 였습니다.
  <조선>은 <청나라>에 치욕의 패배를 한 댓가로 왕과 대신의 아들들을 인질로 보내고, 
  <조선>의 수많은 딸들을 '공녀'로 바쳤는데, 이때 공녀로 간 소녀들이 수만명이랍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치욕을 당한 <인조>가 얼마후 인질로 잡혀 갔던 아들 둘이 돌아 오자
  둘 중에 <소현세자>는 자신이 죽이고, 둘째 <봉림대군>을 왕에 오르게 하니 그가 바로 <효종>이었죠.
  그 때 <청나라>도 <태종(홍타이지)>가 죽고 어린 아들이 황제로 즉위하였는데, 
  너무 어린지라 황제의 삼촌인 "도르곤"이라는 놈이 섭정을 하며 황제 대역을 하는 최고 권력자였죠..
  하필이면 그때쯤에 아내를 잃은 <도르곤>은 사신을 보내 <조선> 왕의 딸, 즉 공주 중에서 
  자신의 배필을 구해줄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 놈 <도르곤>은 자신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조선의 공주를 아내로 삼고 싶었던가 봅니다.
  <효종>에게는 공주가 다섯명이나 있었지만 어찌 그런 못된 놈의 오랑캐에게 
  그 귀하디 귀한 공주를 시집보낼 수 있겠는가... 더러워 미칠 지경이었겠죠.
  <병자호란>때 잡혀갔다가 되돌아온 많은 여인들이 "환향녀→화냥년"으로 불리면서 
  치욕스런 대접을 받았던 것도 그 때였으니....
  그렇지만 전쟁에서 처절한 패배를 당한 <조선>은 나라의 힘이 부족하니 청나라를 무시할 수 없었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무슨 더 큰 행패를 부릴 지 모르기 때문에
  <효종>의 고민은 깊어만 갔답니다. 대신들도 당연히 덩달아 걱정이 많았습니다만...
  다행히도 얼마후 <청나라>는 꼭 공주가 아니어도 왕족이나 대신의 딸이어도 좋다는 언질을 줍니다.
  얼씨구나 <효종>은 종친과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하며 왕족이나 대신들의 도움을 은근히 기대
  했습니다만, 대부분의 왕족과 대신들은 저마다 자신의 딸을 숨기기에 바빴답니다.
  이는 사랑스런 자신의 딸을 지키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적 위기를 외면하는 것이기도 했겠죠.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어야 그들의 요구와 행패를 막을 수 있을 텐데....
  짜쟌~~ 이때 왕족의 한 사람인 <금림군 이개윤>이 용맹스럽게 <효종> 앞에 나섭니다.
  그는 <성종>의 4대손으로 당당한 왕족 종실의 한 사람이어서 자격도 갖추고 있었는데
  <금림군 이개윤>은 스스로 자신의 딸을 <청나라>에 시집 보내겠다고 자원합니다.


  [전망명소]                   11:20

  ['의정부시' 조망]                               
  <소림사> 입구에서 12분 정도 오름길을 오르면 <전망명소>를 만납니다.
  오늘 날씨는 맑으나 연무가 껴 조망은 별루이군요.
    <의순공주의 결혼>에 대한 <효종 실록>을 살펴 보면 
  <금림군 이개윤>이 스스로 자신의 딸 "이애숙 李愛淑"을 <청나라>에 시집 보내겠다고 자원하여 
  <효종>은 숨통이 트이게 되었는데....
  <금림군 이개윤>이 스스로 자신의 딸을 <청나라>에 시집 보내겠다는 이같은 보고를 받은 <효종>은 
  너무나도 기쁘고 감동하여 그녀를 궁으로 불러 들여 만나 그녀의 모습을 보니 공주로서의 아름다움과
  위엄까지도 갖추고도 남음이 있어 너무 좋아 했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그리하여 <효종>은 그녀를 자신의 양녀로 삼고, "의순공주 義順公主"로 호칭토록 하였답니다.
  <이애숙>은 이제 조선의 공주 <의순공주>로 신분 세탁이 된 것이었습니다.
  <의순義順>이라고 한 것은 '대의에 순종'했다는 뜻이니 결국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운명에 
  순종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니 <효종>의 교묘한 방법으로 희생양이 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딸을 공녀로 바치겠다고 한 <금림군 이개윤>과 기꺼이 가겠다고 한 
  <이애숙>이지만, 하지만 당시 <이개윤>과 그 딸의 장한 결심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답니다.
  어느 누가 머리 빡빡깍고 싸움 밖에 모르는 미개한 몽고놈들에게 시집 가고 싶어 했겠습니까?
  <유교문화>가 <조선>을 지배하는 사회관념 속에서 사람들은 <이개윤>을 두고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딸을 팔아먹은 자라고 비방하기도 했답니다.
  <유교문화> 속에선 당연한 비방이겠죠?
  사실 <의순공주>는 조선의 여인 중에서, 특히 왕족과 대신의 딸들 중에서,
  누군가는 <청나라> 황제역활을 하던 <도르곤>의 배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였던 것인데
  그것은 돈을 위한 것도 아니고 권력을 갖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 됩니다.
  그들은 왕족으로서 이미 적당한 돈과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타인의 괴로움을 경감시켜 주려는 
  "살신성인의 정신", 바로 그것이었다고 필자인 <파란문>은 생각해 주고 싶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살펴 보면
  <효종 1년> 1650년 4월 22일,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출발하자 <효종>은 서대문 밖 <모화관>까지 나아가 송별했으며, 
  백관들은 반으로 나누어 <홍제원>까지 수행토록 했다. 그녀의 오빠 두 명이 수행원으로서 
  그녀를 청나라까지 배종하였고, 우수한 역관 5명, 공노비 중에서 선발된 시녀 16명과 
  유모, 몸종, 수모(首母: 머리단장과 화장을 책임지는 여성), 의녀 등이 그녀를 따랐다. 
  5월 21일, <도르곤>이 6만 명의 수행인을 이끌고 <산해관> 부근의 연산(連山)으로 마중나와
  혼인의식과 초야를 치렀다.
  
  이와 같이 <의순공주>의 혼례는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 되었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수 있으니 떠도는 설화에 현혹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오름길]

  [내림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다시 내려 가면 계단이 나타나는데....
  <조선 국왕>의 대대적인 환송을 받으며 시집간 <의순공주>의 <청나라>에서 생활을 알아보면...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효종>의 극진한 애정과 후원을 받으며 
  마침내 청나라로 간 <의순공주>는 <도르곤>과 정식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몽고족 <도르곤>이 <조선>의 <의순공주>를 보자마자 조선공주의 기품있는 모습과 아름다움에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나 뭐래나....여튼 무지 흡족해 했다고 한것은 틀림 없었답니다.
  (일부 설화에는 못 생겨서 소박 맞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이는 <유교문화>의 <조선백성>이
  <의순공주>를 '화냥년'으로 비하 시키기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기록에는 <도르곤>이 <의순공주>를 가리켜 "백송골"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는데
  그것은 "흰색의 매"라는 뜻이니 그녀가 매처럼 날렵하고 고운 자태를 지녔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쁘지 않고 기품없는 여자였으면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공녀로 바쳤겠습니까? 후환 두렵게...
  결혼한 <도르곤>과 <의순공주>는 금슬이 좋았다고 합니다.
  <의순공주>도 <도르곤>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텃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불행하게도 <도르곤>은 <의순공주>와 결혼한지 불과 7개월만에 사냥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만약 <도르곤>이 오래 살았다면 둘 사이의 사랑도 깊어지고,
  그 만큼 <조선>과 <청나라>와의 관계도 좋아졌을 것인데.......
  <도르곤>이 죽자 <의순공주>는 <청나라>의 다른 황족인 <박락>이라는 놈에게 넘겨 졌으나...
  두번째 남편인 <박락>도 1년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의 삶도 무지무지 불행한 것이죠?
  그녀는 이후 <북경>에서 3년여간을 혼자서 쓸쓸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갈림길]                      11:28             

  [갈림길]                      11:32

  [갈림길]                       11:43    
  <의정부시 금오동>의 주택가와 아파트단지에 밀접한 산이어서 곳곳에 접속로가 많아 갈림길이
  많았으니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의순공주>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 오는 과정과 그 후를 알아 보면...
  <효종 6년> 1655년, <의순공주>의 아버지인 <이개윤>이 조선의 사신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수소문한 끝에 자기의 딸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황제>에게 글을 올려 자기 딸인 <의순공주>를 조선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청나라> 황제도 이를 허락하였답니다.
  <청나라>의 황제인 <순치제>가 보낸 칙서의 내용을 인용하면... 
  "<의순공주>가 미망인(孀)이 되어 종친의 사저(邸)에 지내며 부모 형제와 멀리 떨어졌으니
  측은하게 여긴지 오래 되었는데, 아비인 <이개윤>이 딸을 보고자 주청하니 더욱 안쓰러워 
  의정대신(議政大臣)과 함께 귀국시켜 친지와 살 수 있도록 하니 조선에선 따르라."
  
  <효종 7년> 1656년 4월 26일에 <의순공주>가 조선으로 귀국하였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16세에 고국을 떠난지 7년만에 아버지를 따라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죠.
  <효종>은 <호조>에 명을 내려 그녀에게 매달 쌀을 내려 평생을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친척과 이웃들의 못된 비아냥과 손가락질이었답니다.
  <청나라 오랑캐>에게 몸과 마음을 더럽힌 여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화냥년"~
  <조선 조정>까지도 더이상 정치적 가치도 사라진 그녀에 대해 태도도 돌변했습니다.
  <사헌부>에서 <의순공주>를 조선으로 데려온 <금림군 이개윤>을 탄핵하여 파직시켰으며
  <사간원>에서는 파직으로는 벌이 부족하다 하여 <이개윤>은 삭탈관작되어 성 밖으로 쫓겨났고
  또한, 귀국한 <의순공주>의 칭호는 "이개윤의 딸(女 혹은 女子)"로 격하되었답니다.
  나쁜놈들 X씨끼들~
  <효종>의 지극한 보살핌도 주위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를 극복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녀는 그렇게 쓸쓸하게 세월을 보내다가 조선에 돌아온지 6년만에 병으로 죽었답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8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였습니다.
  <효종>은 그녀의 죽음을 가련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배려해 주었지만
  국가 권력에 의해 정략적 재물로만 쓰여지고 버려진....
  슬픈 아픔을 간직한 여인의 초라한 묘에는 몇닢의 낙엽만 묘를 덮고 있을 뿐 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도 <환향녀→화냥년>이 되고 말았으며 그녀의 묘도 그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경흥길>을 걸으며 만난 <공주>들의 묘....
  <숯장수 한경록>에게 시집 보내진 <의혜공주> 이야기와 함께 <의순공주>의 기구한 운명은
  <경흥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군요.


  [내림길]  

  [다리]                     11:44    
  <천보산 둘레길>인 <의정부 소풍길>을 내려 가면 처음으로 다리를 하나 만납니다.
  이 다리 앞에는...
 

  ['금오동 파스텔아파트']               11:45       
  '의정부시 금오동'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스텔아파트>가 지척에 있는데
  <경흥길>은 좌측 산능선으로 올라 갑니다.
  2분 정도 올라 가면....
 

  ['화춘군묘' 조망]                       

  ['화춘군묘']                    11:47~11:50       
  "화춘군묘 花春君墓"를 만납니다.
  잠시후 만나게 될 "인성군 仁城君"의 손자이더군요.
  그러니까 <선조>의 일곱번째 아들이 <인성군>이니 <선조>의 증손자가 되겠습니다.
  조선시대엔 왕족은 과거에 응시 할수 없어 일반관직에 나갈수 없었는데, <화춘군>은 품행과
  학식이 중후해서 왕족 종실 신분으로 관직에 입직 출사하여 관직에 진출한 희귀한 사례라고 합니다.
  문관 겸 무관으로 관직생활을 하며 <명의대부明義大夫>와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總府 都總管>의 
  지위에 올랐던 특출한 왕족이었답니다.
 

  ['천보산' 조망]            

  ['인성군묘' 조망]                          
  <화춘군묘>에서 능선으로 올라 가면 <천보산 정상>이 조망되고
  <인성군묘>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성군묘' 조망]                   


  ['인성군 묘']                12:12~12:46              
  "인성군 묘 仁城君墓"
  <인성군>에 대해선 안내문에 설명이 되 있습니다.


  ['인성군묘'에서 조망]                        
  <선조>의 일곱번째 아들인 <인성군>은 비운의 혁명가 였답니다.
  엄청 똑똑한 인물이었지만 결국 쿠데타에 연루되어 조카인 <인조>에 의해 사사되었답니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조망]                       
  <인성군묘> 뒤로 올라 펼쳐지는 <의정부시 금오동>과 <가토릭대 성모병원>을 조망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 가면...


  ['천보산 탑고개' 등산로 출입구]                 12:48     
  <천보산 탑고개>와 연결되는 등산로 입구를 만나 통과합니다.
  여기서 <천보산 탑고개> 방향으로 올라 가면 <인성군>의 어머니인 <정빈 민씨 묘>가 있습니다.
  <정빈 민씨>는 <선조>의 후궁이죠.


  ['바위고개']                12:57       
  <탑고개 등산로 입구>에서 10여분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가면
  바위를 쌓아 놓은듯한 독특한 城같은 고개를 만나고

 
  [내림길]                   
  계속해서 내림길을 6분여 내려 가면...


  [계곡]                  1:03      
  계곡을 만나고...

 
  [오름길]                 
  다시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송전철탑]               1:12      
  송전철탑이 지나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선 좌측 아래에 있는 <양주터널>로 통하는 도로에서 나는 자동차들의 굉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쉼터]                  1:13

  ['축석령' 조망]                  
  송전철탑 앞에는 간이 의자 하나가 있는 쉼터가 있는데
  오늘 코스의 종점인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축석령>이 조망됩니다.
 

  [내림길]

  ['자금사거리 굴다리']                 1:22          
  다시 10여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자금사거리 굴다리>를 만나 통과하면...


  ['자금사거리']               1:24       
  <자금사거리>를 만납니다.
  <의정부>에서 <양주 고읍>으로 통하는 <양주터널 입구>이고...


  ['금곡교버스정류장']              1:25        
  이어서 <금곡교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오리지날길은 여기서 좌측으로 갑니다만
  그냥 이 <43번국도>를 따라 가도 큰 차이 없더군요.
  15분 정도 진행하면....


  ['본자일' 입구]                    1:40        '
  <본자일입구>를 만나는데 여기서 길을 건너 가라고 안내합니다.
  길을 건너 건너편 길을 따라 4분여 올라 가면....


  ['축석령 옛길' 입구]                  1:44          
  <축석령 옛길 입구>를 만나며 <경흥길>과 <소풍길>은 우측 옛길로 안내됩니다.


  ['축석령' 조망]                1:50       
  <한북정맥>이 지나는 <축석령>이 조금 더 가까이 조망되는데, 여기서 보니 좀 큰 고개 같군요.


  ['현충탑' 입구]                 1:58       
  이어서 <현충탑 입구>를 만나는데 안으로 올라 가면....


  ['현충탑']

  ['현충탑' 의미]                           
  조금 독특한 모양의 <현충탑>이 건립되 있고...


  ['천보산' 조망]                
  뒤돌아 보니 지나온 <천보산>이 조망됩니다.
 

  [''현충탑' 동문]                    2:03      
  <현충탑 동문>은 잠겨 있지만 편의상 그냥 문을 넘어 가서 
  10여분 옛길을 진행하면...


  ['43번국도' 합류]                 2:12        
  헤어졌던 <43번국도>를 다시 만나고


  ['축석령']                  2:17    
  이어서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를 넘어 <포천시>로 들어 가고...


  ['축석령 삼거리']                2:19            '
  이어서 바로 <축석고개 삼거리>를 만나는데


  ['제2길 천보산길' 종점-'제3길 축석고갯길' 시점]          2:20    
  삼거리에는 <호국로>라는 표지석과 조형물이 있으며
  <경흥길 제2길 천보산길>의 종점이 되겠습니다.
  <경흥길 제3길 축석고갯길>의 출발 안내판과 <스탬프함>은 우측 뒤에 있으니 유의해야 하겠더군요.
  오늘 걸은 거리는 11,5km였으며 4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이번 코스도 <천보산>의 옆구리를 오르내리는 등산로로서 제법 체력소모를 요하는 코스였습니다.
  <의순공주>의 기막힌 삶과 국가에 의해 희생된 한 여인의 운명을 기록을 통해 알아 보며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관심있게 눈여겨 보아야 할 의미있는 답사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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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1길 사패산길 : 망월사역~의정부역』


  ['경기옛길']

  ['경흥길' 개통]

  ['경흥길' 종함안내도]                  
  <경기옛길> 6개 구간 중에 다섯번째로 <경흥길>이 2021년 11월 20일에 개통되었다고 해서
  선조들이 왕래했던 그 길의 흔적과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걷기코스>로 만들어진 <경흥길>을 갑니다.
 

  ['도봉산역 1번출입구']             10:32           
  2022년 1월 19일 (수)  눈      
  오늘 눈이 제법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모처럼 눈길을 걷기 위해 부랴부랴 길을 나섯습니다.
  <경기옛길-경흥길>의 제1코스인 <사패산길>은 <망월사역>에서 출발한다고 안내되고 있습니다만
  제가 <도봉산역>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오리지날 <경흥길>을 조금이라도 더 걸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시-의정부시' 市界]            10:40         
  <도봉산역>에서 북쪽으로 <3번국도>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서울시-의정부시 市界"를 만납니다.
  <한양옛길>을 벗어나 실제 <경기옛길>이 시작 되는 곳이라 할수 있죠.
  <경기문화원>이 조성한 <경기옛길-경흥길> 걷기코스의 오리지날 옛길을 조금 알아 보겠습니다.
  <1대간 9정맥>을 종주 하는 산객들의 지침서인 <산경표 山經表>를 산꾼들은 대부분 알지요.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지형을 <백두대간>을 주축으로 <1대간 9정맥>으로 도표로 만든 것이죠.
  <산경표 山經表>의 저자 "여암 신경준" 선생은 우리나라 道路에 대해서도 업적을 남겼습니다.
  선생은 "도로고 道路考"라는 지리서도 남겼는데, <경기옛길>은 대부분 이 책을 근거로
  걷기코스를 만들었더군요.
  <도로고 道路考>에서는 우리나라 간선도로를 <6대로>로 분류하였는데, <경흥로>는 두번째 도로더군요.
  정식 명칭은 "경성동북저경흥로제이 京城東北抵經興路第二"였습니다.
  주요 경유지를 알아 보면....
  <동대문> 또는 <혜화문>에서 출발하여 <수유리>를 지나  <누원(다락원)>을 통과 한다고 되어있으며
  계속해서 <축석령><송우리><만세교><김화><금성><창도역><회양><철령><고산역><안면><함흥>
  <북청><길주><영천><회령><온성><경원><경흥><서수리>까지 연결되 있다고 표기 합니다.


  [길건넘]                  
  <여암 신경준> 선생의 <도로고 道路考>에는
  <漢城>을 출발한 <경흥로>는 <수유리>를 지나 "누원 樓院 (다락원)"을 통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리지날 <경흥로>를 조금 더 음미해 보기 위해 <서울-경기도 경계>에 있었던  
  "누원 樓院 (다락원)"의 흔적을 찾아 보기 위해 <도봉산역>에서 출발 한 것입니다.
  <북한산둘레길>이 지나는 건너편 쯤에 "누원 樓院 (다락원)"이 있었었다고 합니다.
  

  ['다락원 마을회관']                 10:47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 있는 "다락원마을회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도로고>에는 <한성>을 나가서 <수유리>를 지나 "누원 樓院 (다락원)"을 통과 한다고 해서
   "누원 樓院 (다락원)"을 찾아 보기 위해 왔습니다만, 옛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 볼수 없고, 
   <다락원마을>이라는 지명은 아직도 남아 마을회관이 있습니다만 이곳이 옛 역원자리라는증거는
   없습니다
   이곳 근처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누원 樓院 (다락원)" 에 대해 알아 보면
   이 공영여관의 형태가 조금 특이하게 <루 樓>가 있어서 우리말로 <다락원>이라 불리우게 되었답니다.
   <경흥길>은 <함경도>의 <원산> <함흥> 등에서 잡히는 해산물의 운송로였는데 주로 <명태>가 
   많았다고 합니다. 옛날엔 <원산> 앞 바다에서 <명태>가 무지 많이 잡혔다니 이해가 갑니다.
   이 근처에서 현재 영업중에 있는 유락시설이나 도서출판사 <다락원多樂院>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의혜공주.한경록 묘' 입구]              10:49     
  <다락원마을회관>을 지나면 <의혜공주>와 <한경록>의 쌍봉묘 입구 라고 알리는 표지판을 만나는데
  
  <의혜공주>와 <한경록>에 대한 스토리는 무지무지 유명하죠?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 설화를 짤막하게 언급하면....
  <중종>과 <문정왕후>의 딸로 태어난 <의혜공주>는 숯장수 <한경록>과 혼인 한걸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중종>이 공주들에게 “너희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누구의 덕이냐?”라고 묻자 
  <의혜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공주들은 아버지 <중종>의 덕이라고 하였으나 
  <의혜공주>는 아버지 <중종>의 우쭐대는 꼴에 "한 때의 영화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답했다죠.
  이에 격노한 <중종>이 <의혜공주>를 다음 날 새벽 <동대문>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자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하였는데, 그가 바로 '숯장수'였던 <한경록>이었다는 것입니다.
  엄격한 가부장적 <유교> 사회에서 여성은 희생을 강요 당하며 남녀평등은 상상 할수없는 사회였지만
  <의혜공주>는 당당히 독립자영(獨立自營)의 사상을 굽히지 않고, 나아가 자기변혁(自己變革)과 
  자기계발(自己啓發)이라는 명제를 강력히 주창함과 동시에, 공주라는 신분을 타파한 여성으로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기에, 후손들 중에는 이분을 "왕신(王神)할머니"로 모시는 토속신앙도
  생겨 났다고 할 정도로 조선시대의 <新女性>이었답니다.
  <의혜공주>는 44세에 저 세상으로 갔고, <한경록>은 <오위도총부>의 부총관까지 관직에 오르며
  74세까지 장수하며 <임진왜란> 때에 <송파 샛강>에서 왜적들과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앞서간 <新女性>과 부군의 묘를 쌍분으로 맑끔하게 조성해 놨더군요.


  [교차로]                 10:54      
  이어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지나는 갈림길을 통과하여 
  저 앞에 보이는 <1호선 전철> 옆길을 따라 진행하면


  ['호암초등학교']               11:01      
  <호암초등학교>를 지나게 되고


  ['망월사역']                 11:07      
  이어서 <망월사역>과 <신한대학교>를 만납니다.
  <경기옛길-경흥길>의 제1길인 <사패산길>의 출발지가 바로 <망월사역>이기에
  <망월사역3번출입구> 앞에 있는 <스탬프함>과 안내판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좌측 <망월사>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망월사역 3번출입구']              11:08~11:13    
  <망월사역3번출입구> 앞에는 <스탬프함>과 <경흥길>의 출발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제1길 사패산길' 출발지점]                        
  오리지날 <경흥길>은 <3번국도>를 따라 <의정부역>까지 가고
  이어서 <43번국도>를 따라 <포천-철원>으로 가지만....
  걷기코스로 조성한 <경기옛길-경흥길>은 <사패산>의 옆구리 <북한산둘레길>을 돌아가라고 합니다..


  ['신한대' 정문 앞]             
  <망월사>로 올라 가는 길에 들어 서면 <신한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고


  ['옛 장수원터']              11:18       
  이어서 도로안내판에 <원도봉산입구>라고 알리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곳은 <경흥길>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는데....
  이곳엔 "장수원 長水院"이라는 공영여관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다락원>을 거쳐서 <경흥길>을 이용하는 상인들이 이곳에서 쉬어가면서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는데
  원래 <장수원>은 공용이었으나 조선 후대에 오면서 개인 주막으로 변하여 술도 팔고 잠도 재워주는 
  역할을 하여 나그네들에게는 일석이조여서 주로 상인들이 이용하게 되었답니다.
  <장수원>은 <다락원>과 가까운 곳에 있어 관리들은 <다락원>을 이용했고...


  ['망월사 입구']                11:19          
  <망월사> 가는 길로 잠시 올라 가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11:22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밑 우측을 통과합니다.
  

  ['북한산둘레길 다락원길' 종점]                 11:31~11:44

  ['보루길' 출발지]                  
  <북한산둘레길-다락원길>의 종점이자  <북한산둘레길-보루길> 출발지를 만나는데 
  <경기옛길-경흥길>은 지금부터 <북한산둘레길>을 따라 <의정부시청>까지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경흥길' 안내표지판]                     
  <경흥길>에 대한 길안내는 거의 없으니 <북한산둘레길> 안내표지판을 이용해야 합니다.



  ['망월사능선']                    
  18분 정도 걸려 <망월사능선> 산줄기를 하나 넘어 가면....


  ['안말교']                 12:02      
  <안말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고




  ['안말통제소']                12:05    
  이어서 화장실이 있는 <안말통제소>를 통과하게 되며


  ['보루길']

  [능선]            
  다시 13분 정도 걸려 산줄기를 하나 더 넘어 가면....
  

  ['원심교']                 12:18   
  <원심교>라는 다리를 건너 갑니다.
 

  ['계단 오름길']  

  [내림길]                          
  <원심교>에서 다시 산줄기를 하나 더 10여분 넘어 가면...


  ['원심사' 주차장]                

  ['원심사' 정문 옆길]                 12:29      
  <원심사 주차장>과 정문 앞을 지나게 되고
 

  [계단 오름길]                     
  <제1길 사패산길>에서 가장 가파른 계단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사패산 제3 보루' 고갯마루]                     
  "사패산 제3보루"가 있다는 고갯마루에 도착하는데 <포토존> 안내판이 있으며
  현위치 안내도 하고 있습니다.


  ['사패산 제3보루']                    12:40

  [안내문]                        
  "사패산 제3보루"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패산' 능선길] 

  [전망대]                12:51   
  <사패산 제3보루>가 있는 고개에서 능선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전망대>를 만나는데...



  ['의정부시' 조망]                   
  <의정부시>가 전체적으로 조망 되는 곳이라는데, 오늘은 눈이 내려 조망은 꽝...
  안내도를 참고하고...


  [계단 내림길]                         
  엄청 길고 가파른 계단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보루길' 종점]                       1:04                
  <북한산둘레길-보루길>이 끝나고


  ['사패공방']              
  <사패공방>이 있는 이 길은 유명한 "회룡사 回龍寺""석굴암 石窟庵"으로 가는 길입니다.


  ['안골길 입구' 조망]                                   
  <사패공방>에서 우측 <회룡천> 건너편을 바라보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교각 밑에 <북한산둘레길-안골길> 입구가 보입니다.


  ['회룡사' 스토리텔링]                                             
  <회룡사>와 <석굴암>에 대해선 제가 쓴 답사기를 참고 하세요
  <북한산국립공원>에는 <석굴암>이 세곳 있는데 그 중에 한곳이 바로 이곳에 있지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비화가 숨어 있는 곳입니다.
  [역사탐방] 회룡사-석굴암 답사기 여기 클릭
 

  ['안골길' 입구]                  1:10     
  이제부터 <북한산둘레길-안골길>이 시작됩니다.
  조금 올라 가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1:13     
  우측에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굉음을 울리며....
  산으로 잠시 올라 가면...
 

  [쉼터와 나무가지]               1:16       
  <사패산길>은 <사패산>의 옆구리를 계속 오르내리는 등산코스여서 제법 체력소모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내림길]                   

  [굴다리]

  [데크길]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옆길 데크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귀가도']                    1:27        
  <귀가도>라는 굴다리 앞을 지나고


  ['범골']                       
  이어서 <범골> 입구를 지나 고개로 올라 가면...


  [고개 쉼터]                  1:31   
  고개 쉼터가 있는데 반가운 <경흥길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제1길 사패산길>의 종점인 <의정부역>까지 "3.1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이 길을 따라 12분 정도 진행하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1:43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를 건너는 굴다리를 만나 통과하면...


  ['의정부청소년수련관'']                   
  <의정부청소년수련관> 뒤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의정부시청구역>이며...





  ['직동테마공원' 통과]                          
  <의정부시청> 뒤에는 "직동테마공원"이 상당한 규모로 조성되 있었습니다.
  15분 정도 눈으로 뒤덮힌 공원을 구경하며 통과하면....


  [갈림길]                2:02           ★ 길조심 ★     
  길조심 해야하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경흥길>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없더군요.
  <북한산둘레길-안골길>은 직진해 가는데
  <경흥길-사파산길>은 우측길로 가야하며 <북한산둘레길>과 여기서 헤어지게 됩니다.


  ['의정부세무서' 조망]                      
  <의정부세무서>가 조망되고


  <의정부세무서> 뒷쪽 공원길에서 <시청역>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사잇길]                  2:08~2:18       
  <의정부세무서>와 <의정부시청> 사잇길이 이어지며 중간에 정자 쉼터가 있더군요.
  쉼터에서 아이젠도 벗으며 산행을 마무리 하고 내려 가면....


  ['시청역']

  ['의정부시청' 본관 조망]                       
  <의정부 경전철>이 다니는 <시청역>과 <의정부시청 본관> 앞을 통과하여


  ['의정부역' 가는 길]                      
  일직선으로 뻗은 <의정부역>으로 가는 길을 직진하면...


  ['백석천']               2:21        '
  중간에 <백석천>이라고 하는 개천을 만나는데 백로들이 노닐고


  ['의정부역']

  ['의정부역3번출입구']             2:30        
  <의정부역3번출입구>에서 답사를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흥길 제1길>은 공식적으로 <망월사역>에서 출발하여 <의정부역>까지 가는 8km 거리이지만,
 저는 <도봉산역>에서 출발하여 <다락원터>를 둘러 보고 <망월사역>으로 갔기에
 오늘 걸은 거리는 11.5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번 코스는 <사패산> 옆구리를 오르내리는 등산코스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눈길을 원없이 걸었습니다. 추억에 남을 나드리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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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옛길』
 『관동대로-평해길』서울구간

  ['구글맵 실트랙']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에 대한 공식적인 길안내는 아직까지 정립 된바 없습니다.
   '경기도'가 '걷기코스'로 만든 『경기옛길-평해길』은 다녀 온바 있으나 『서울구간』이 궁금하여
   여러 자료를 검토하여 오로지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추정하여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을 갑니다.
   그러니 이 길이 정확한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이라고 할수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이며
   "걷기코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참고 문헌으로는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을 참고 했다는 것을 첨언합니다.


  ['흥인지문']            11:25        
  2021년 6월 16일 (수)  구름                         
  '경기도'가 걷기코스로 만든『경기옛길-평해길』"125km"를 완주하고,『서울구간』이 궁금하여 길을 나섭니다.
  <한양성>의 동쪽 대문인 "흥인지문 興仁之門 (東大門)"에서 출발합니다.
  <東大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6가'에 있으니 <종로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대문구>에는 <東大門>이 없다는거....아시나요? ㅎ


  ['동대문역 7번출입구' 앞]                         
  <동대문역 7번출입구> 앞에는 "경성괘도회사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요즘 말로 <서울 외곽 전철역>이 있었습니다.
  시내에는 <전차>가 다녔지만 <동대문>에서 <왕십리-뚝섬-광나루>까지는 <괘도전차>가 다녔지요.
  철길 옆에는 무수한 판잣집들이 나열되 있어 주택난을 실감하게 했으며, 많은 어린이들이 위험하게
  철길에서 놀던 광경이 희미하게 스쳐 갑니다. 산아제한까지 했는데도 아이들은 넘쳐 났었습니다.
  <뚝섬>으로 여름 물놀이 피서 가던 옛날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이렇게 <동대문>은 동쪽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였으니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의 출발지 였음이 분명합니다.


  ['동대문'에서 '선농단'까지 실트랙 지도]                 
  먼저 제가 진행한 <동대문>에서 <보제원><선농단>까지의 상세 지도를 참고하여 출발하면
  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동대문' 밖 '종로']       11:28          
  <동대문>을 벗어나면 <종로 鐘路>가 <신설동 로타리>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수많은 옛 선조들이 풍운의 꿈을 안고 드나들었을 『관동대로-평해길』이 펼쳐집니다.
  지금이야 도로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수많은 차량 행렬이 줄을 잇지만...그래도 옛길이 연상됩니다.



  ['동묘앞역' 사거리]                 11:33             
  <동대문>에서 8분정도 <종로>를 걸으면 <동묘앞역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한성부 동부 12방> 중 일부인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이 있던 곳이라죠.
  <숭신방>과 <인창방>은 이름에서 한글자씩 서로 따와 합치며 현대의 <숭인동><창신동>으로 
  이름이 변했습니다만, 지명은 옛부터 그 맥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동묘벼룩시장']             11:36          
  "동관왕묘 東關王廟  (동묘東廟) 보물 제142호"
  <삼국지>의 세 영웅 중에 중국인들에게 神으로 추앙된 유일한 영웅이 <관우 關羽>이죠.
  이곳은 <관우 關羽>를 모시는 곳인데...대한민국에 왠 <관우 關羽> 사당?이라고 의아해 하는 분들 계시죠
  '임진왜란' 때 가끔 <관우>의 혼이 나타나 명나라 군사를 도왔으므로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관왕묘>를 건립했다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전란 후 민심 이반을 우려한 당시 기득권층이 중화사상에
  입각한 사대주의적 통치 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보수공사를 오래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공사중이라 들어 갈수 없고...
  이 골목은 "동묘벼룩시장"으로 항상 북적이는 유명한 곳입니다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좀 조용하군요.
  그런데 이 시장은 '조선 초기'엔 "여인시장 女人市場"으로 유명했다는 사실 아시나요.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단종>과 영원한 이별을 하는 <청계천 영도교>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사연에 관해선 제가 자세히 포스팅한 글이 [부록]에 첨부되 있습니다.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를 찾아서" 


  ['동묘' 담장]                    
  <동묘>의 담장을 따라 <신설동로타리>로 향하다가 좌측을 바라보면...


  ['동망봉' 조망]                      
  <정순왕후>가 <단종>을 그리워하며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동망봉 東望峰"이
  이젠 고층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슬픔은 여전히 남아 있는듯 동쪽을 바라 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어 <정순왕후>의 그리움이던 <동망봉>이던 모두 안스러워 보이는 듯 합니다.



  ['신설동로타리']               11:43        
  <동묘>에서 7분여 진행하면 <신설동로타리>를 만납니다.
  이곳이 중요한 <관동대로>의 포인트인데, 현재의 관점에선 여기서 <청량리>로 직진하면 가깝습니다만
  옛날에는 여기서 좌측 <안암오거리> 방향으로 大路가 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한양 동대문>으로 오가는 여행객들의 "역원 驛院"인
  "보제원 普濟院"은 "흥인문 밖 3리(약 1.2km)에 있다."라고 기록되 있으며
  또한 "조선시대에 이곳(보제원)을 가자면  <흥인문>을 벗어나 <동묘>에 이르면 이곳에서 길이 둘로 
  갈라지는데, 동북쪽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보제원>에 닿게 된다."라고 언급되 있어 참고 했습니다.
  <문화진흥원>에서 설치한 표지석도 <안암오거리>에 설치되 있다는 것을 잠시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신설동로타리>에서 동북쪽 방향인 <안암오거리>로 갑니다.


  ['대광고' 방향]                           
  <신설동로타리>에서 동북쪽 방향에는 오래된 검정고시학원인 <수도학원>이 아직도 성업 중에 있고
  <대광고등학교>가 보이는군요. <대광고>로 진행하면...


  ['대광중고 삼거리']                11:49        
  <대광중고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대광중고교 정문']              11:50         
  <대광중고등학교 교문>을 만나는데, <4.19민주혁명 진원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으며
  <한경직 목사>가 설립자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대광고>는 '자율형사립고'이죠.


  ['안암2교']               11:51         
  <대광고 교문>을 지나면 <안암2교>를 만나 건너게 되며


  ['북한산' 조망] 

  ['성북천']                        
  <안암2교>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북한산>이 조망되고
  남쪽으로는 <성북동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성북천>이 <청계천>으로 흘러 가고 있었습니다.


  ['안암로']                        

  ['안암오거리']            12:00              
  <대광고>에서 10여분 <안암로>를 진행하면 <안암오거리>를 만납니다.
  

  ['안암오거리' - '보제원터 표지석']                
  <안암오거리>에는 지난번에 이미 답사한 <보제원터 표지석>이 <안암오거리 버스정류장> 옆에 설치되 있는데


  ['보제원 터 표지석']               12:02      
  
  "보제원터 普濟院址" 표지석이 [안암오거리]에 행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쓸쓸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경기동부지역>과 <함경도><강원도>로 가는 관리나 여행객들이 식사를 하며 쉬고
  관리들은 마패를 보여주고 말을 갈아타는 <동대문> 밖 최대의 "역원 驛院 "이 있던 자리랍니다.
  
                     보제원 普濟院 터  
                             1393년~1895년
                             여행자의 무료 숙박과
                             병자에 약을 주던 곳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전국 각지에는 '공공여관'인 "역원 驛院"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규모가 가장 큰 "驛院"은  "한양성의 4대문" 중에 3대문 밖에 있었던 "역원 驛院"이었는데...
  그 중에서 <동대문> 밖에 있었던 "보제원 普濟院" 이 이곳에 있었었다고 하니
  그래서 저는 <관동대로-평해길>이 이곳으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온 것입니다.
   "한양성의 4대문" 중에 3대문 밖에 있었던 '공공여관'인 "역원 驛院 "을 확실히 알기 위해 
   옛 지도 <대동여지도>를 보며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보제원'과 '이태원' '홍제원' 위치]

  [서대문] 밖에는 <의주로>의 "홍제원 洪濟院"이 있었는데 주로 중국을 왕래하는 관리들이 이용했고
  [남대문] 밖에는 <삼남로>의 "이태원 梨泰院"이 있었는데 현재 [용산고등학교] 자리랍니다.
  그리고 [동대문] 밖 3리 쯤에 "보제원 普濟院"이라는 '강원도-함경도 방향' 역원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특히 [동대문] 밖 "보제원 普濟院"은 '공공여관'의 성격 보다 '공공병원'의 역활이 컷답니다.
  역병이 돌거나 가난과 질환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구휼해 주던 의미있는 병원역활과 구휼역활을 했다는겁니다.
  이곳 <제기동>에 있는 동양 최대 한약재시장인 <서울약령시(경동한약재시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양>으로 전염병이 옮겨지지 않도록 요즘으로 비교하자면 <코로나 방역 검역소> 역활을 했다는 거죠.


  ['선농단' 가는 길]          12:04       
  <보제원터>에서 남쪽방향 <용두동> 방향으로 50m쯤 내려 가면 첫번째 골목을 만나는데
  <선농단>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곳입니다.
  좌측 골목으로 조금 올라 가면....


  ['서울종암초등학교' 앞 '선농단역사문화관']

  ['서울종암초등학교']              12:06           
  <서울종암초등학교>를 만나며 <선농단>은 건너편에 보입니다.
  이 지역은 <동대문구 제기동>인데 <종암초등학교>라는 이름의 초등학교가 있어 이채롭습니다.
  <종암동>은 여기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성북구 종암동>이죠.


  ['선농단 역사문화관']                 12:07~12:15      
  "선농단 역사문화관"
  역사문화관은 패스하고 바로 우측으로 가면


  ['선농단' 입구]

  ['선농단' 안내문]                          
  "선농단 先農壇"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있으니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요약하면 ....
  조선시대 농사 잘 지어 풍년들라고 왕이 제사를 지내고 농사 시범을 보이던 곳이랍니다.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일이야말로 왕이 꼭 해야 할 의무같은거죠.
  한편 이와 같은 의미로 '성북동'에 가면 "선잠단 先蠶壇"이 있죠.
  <선농단>은 왕이 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 곳이고
  <선잠단>은 왕비가 '누에고치를 잘 길러 비단을 많이 만들게 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죠.
  먹고 입는 衣食문제 해결이 최고의 善이었던 농경사회에서 빼 놓을수 없는 중요한 일이니...


  ['선농단 향나무']                              
  계단을 올라 가면 우측에 엄청 큰 향나무가 보이는데...
  "천연기념물 제240호 선농단 향나무"
  [선농단]이 만들어 질때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600여년 묵은 고목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향나무라고 합니다.
  <향나무> 우측 땅 바닦에는 <청량대 표지석>이 있습니다.


  ['청량대' 표지석]      

  [안내문]                       
  "청량대 淸凉臺"
  일제강점기시절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선농단]을 없애고 일반 공원을 만들었다는 
  그 흔적인 "청량대 淸凉臺"라는 표석이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선농단']                     
  "선농단 先農壇"은 위에서도 언급 한 바와 같이 
  왕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농사 시범을 보이던 국가 중대 행사를 행하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이름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의미의 "제기동 祭基洞"이 되었답니다.


  ['제신농씨'와 '후직씨']

  [현재의 '선농단']       
  "선농단 先農壇"의 변천사는 안내문을 참고하고...
  이곳이 <옛 서울대 사범대학교> 자리라고...


  [친경 광경]                       
  <고종>이 "선농단 先農壇"에서 제사를 올리고 농사 시범을 보이는 사진이랍니다.
  왕이 제사를 올리고 농사 시범을 보이고 난 이후에 시범에 이용했던 소를 잡아 국을 끓여
  참석자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는군요.
  이 점심 식사를 <선농단>에서 대접했다고 <선농탕>이라 했는데 후에 음운변화로 "설렁탕"이 되었다고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설농탕>의 유래는 "雪濃湯"으로 '눈처럼 하얀 국물이 찐한 탕'이란 뜻으로 알고
  있는데...아무렴 어떼요.
  


  ['순종'의 친경 광경]                       
  <조선왕조>가 멸망 할때까지 최후의 순간까지 "선농단 先農壇"에서 제사를 올렸다는 사진 기록입니다.
  마지막 황제 <순종>이 <선농단 행사>를 하는 장면이랍니다.
  1904년에 마지막 <선농단 행사>를 마치고 <사직단>으로 옮겨 <선농단>은 일제에 의해 <청량대>라는 
  공원으로 변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하네요.


  ['구글맵' 실트랙]                   
  <보제원><선농단>에서 부터 <중랑교>까지의 상세 지도를 참고하고 진행합니다.


  ['성일중학교' 앞 '서울내부순환고가도로']              12:18     
  <선농단>에서 동쪽 <성일중학교> 방향 골목을 나가면
  <서울내부순환고가도로>가 <정릉천> 위를 달리고 있는데


  ['정릉천']                   
  <정릉천> 위에 설치된 <서울내부순환고가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삼일교']                            12:20

  ['정릉천' 조망]                       
  <안암오거리>에서 <제기사거리>로 연결하는 <삼일교>를 건너며 <정릉천>을 조망하고


  ['서울약령시']              12:26          
  동양 최대의 한약재 시장이라는, 그러니까 세계 최대의 한약재시장이라는 "서울약령시"를 지나고


  ['제기사거리']              12:28       
  이어서 <제기사거리>를 지나 갑니다.


  ['청량종합도매시장']             12:30          
  계속해서 "청량종합도매시장"을 만나며


  ['동대문경찰서 사거리']              12:34        
  이어서 <동대문경찰서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여기선 직진합니다.


  ['미주마파트']               12:36     
  <동대문경찰서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미주아파트> 사잇길을 통과하게 되며


  ['청량리역' 앞]               12:39       
  이어서 <청량리역> 앞 도로를 만납니다.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청량리역' 앞광장]             12:40      
  <청량리역> 앞 광장이 이렇게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창녀촌과 허름한 술집들이 활개치던 <청량리역> 주변은 이렇게 마천루로 하늘을 찌를듯 변하고 있고...
  그런데 <청량리역>은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는데 <청량리역>이라고 합니다. ㅎㅎ
  <동대문구>에는 지역과 지명이 다른게 너무 많아요. ㅎ


  ['이문동' 방향]                        
  고층 건물이 호위하는 <중량교> 가는 길이 나날이 번화해 지고 있습니다.
  이 도로의 우측은 <동대문구 전농동>이며 좌측이 <동대문구 청량리동>입니다.
  6분 정도 진행하면...


  ['떡전교사거리']              12:46             
  "떡전사거리"를 만납니다.
  <관동대로-평해길>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떡을 사먹거나 선물용 떡을 사가는 "떡전"이
  있던 곳이어서 많은 떡가게들이 즐비했다는 <관동대로>의 명소였답니다.
  아직까지도 그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명소입니다만, 현재는 "떡집" 찾기가 어렵군요.
  <삼남길>에는 이와 같은 의미의 "병점 餠店"이 있죠.
  <삼남대로>를 오가며 떡을 사먹던 곳인데 현재의 <화성시 병점>입니다
  <병 餠>이 '떡'이라는 뜻이니 <떡가게>가 많았던 곳이었답니다.


  ['청량고등학교']             12:50          
  <떡전사거리>를 지나면 <청량고등학교>를 지나고


  ['시조사삼거리']             12:51      
  이어서 <시조사 삼거리>를 만납니다.
  <중랑교>는 여기서 우측 철도다리를 넘어 갑니다만 옛길은 직진하여 <이문동>을 경유했다고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잠시후 언급합니다.


  ['시조사']                        
  <제칠일안식일교회>가 운영하는 종교서적을 주로 펴내는 <시조사>가 있고


  ['회기동']               12:53         
  이어서 "회기동 回基洞"으로 진입합니다.
  현재 <경희여고> 자리에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의 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삼릉>으로 이장.
  그 묘의 이름이 "회묘 懷墓"였는데, <회묘>는 <연산군>이 즉위하며 <회릉 懷陵>으로 승격되어
  이 마을을 <회릉동>이라고 불렀다가 <중종반정>으로 <능>이 다시 <묘>로 바뀜에 따라 <회묘동>으로 불렀으며,
  주민들이 이름이 나쁘다고 아우성쳐 <회 懷>자를 음이 같은 <회 回>자로 바꾸고,  
  <묘 墓>자를 모양이 비슷한 <터 基>자로 바꾸어 <회기동 回基洞>이 된 유명한 동명 유래가 있습니다.
  <회기동>은 <경희대학교>와 관련 학교가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습죠.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면 <회기역>은 <휘경동>에 있는데도 <회기역>이라 합니다. ㅎㅎ
  <휘경역>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고 더 이쁜 이름인데...


  ['외대 입구']                1:08     
  <회기동>을 지나면 바로 <이문동>이 시작됩니다.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은 분명 <이문동>을 통과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이문동 里門洞"은 조선시대 이곳에 오늘날의 방범초소 역할을 했던 <이문 里門>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글자 그대로 <이문 里門>, 마을의 출입검문소가 있었으니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은
  <한양>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검문을 받고 통과 했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관동대로-평해길>은 이 지역을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1:09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에서 캠퍼스를 들여다 보고 갑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왔는데 예전 대학원을 여기 다닌적이 있습니다.


  ['외대앞역' 가는 길]

  ['외대앞역' 앞 지하차도]               1:12        
  <외대 정문>에서 동쪽으로 잠시 직진하면 <외대앞역 지하차도>를 만나며


  ['외대앞역']                1:13         
  [지하철1호선]이 다니는 <외대앞역>에서 철로를 건너야 하는데....



  ['외대앞역' 건널목]                           
  <외대앞역> 앞에는 철도건널목이 아직도 있고, 실제 이용되고 있더군요.
  서울의 철도건널목은 대부분 지하화하거나 육교를 만들어 안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곳 철도건널목은 아마도 서울에 있는 유일한 철도건널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때마침 전철이 지나가고...


  ['이경시장']              1:16     
  <지하차도>는 있는데 사람들은 건널목을 바로 건너는게 신기할 정도.
  여하튼 건널목을 건너면 "이경시장"이 좌측에 있습니다.
  이 도로의 좌측은 <이문동>이고 우측은 <휘경동>입니다.
  동네 이름에서 한자씩 따와 <이경시장>이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도로를 끝까지 직진해 가면...


  ['휘경1빗물펌프장']               1:22        
  <중랑천 제방도로>를 만나며, 우측에 <휘경1빗물펌프장>이 있습니다.
  펌프장 정문 앞으로 돌아 나가면...
 

  ['중랑교'로 가는 샛길]                         
  <휘경1빗물펌프장> 옆으로 샛길이 있으며 <경춘선 중랑철교> 밑을 통과해 나가게 됩니다.


  ['중랑교' 입구]                             
  그러면 <중랑교> 입구를 만나며


  ['동대문구' 입구]              1:25        
  <중랑교> 앞에  "서울의 門 - 東大門區" 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옛날에는 이 근처에 "중랑포"라는 나룻터가 있어 배를 타고 <중랑천>을 건넜답니다.


  ['중랑교']                         
  <중랑교>는 1971년 10월에 준공되었다는군요.
  걸어서 <중랑교>를 건너는 것은 생애 처음입니다. ㅎㅎ


  ['중랑철교' 조망]               
  <중랑교>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때마침 "KTX"가 지나가고
  그 뒤로 <도봉산> 수락산><불암산>이 쬐끔씩 보이는군요.


  ['배봉산' 조망]                      
  남서쪽으로 뒤돌아 보니 <배봉산>이 가까이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무덤이었던 <영우원>이 있었고, <순조>를 낳은 <정조대왕>의 마지막 부인인 <수빈 박씨>의
  무덤인 <휘경원 徽慶園>이 <배봉산> 자락에 있었었죠. 지금은 모두 이장 했는데
  <사도세자>의 <영우원>은 <수원 융릉>으로 이장되고, <휘경원>은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 근처로 이장
  되었습니다.
       "배봉산과 영우원-휘경원" 답사기를 참고 하세요.


  ['구글맵' 실트랙]                   
  <중랑교>에서 <망우고개>까지 상세 지도를 참고하고


  ['중랑구 중화동']                    1:33

  ['중랑역']               1:36               
  <중랑교>를 건너면 <중랑구>가 시작됩니다.
  잠시 진행하면 <중랑역>을 만나고
 

  ['동일로지하차도 사거리']                         

  ['이중섭']                       
  <화가 이중섭>과 <중랑구>는 무관하지만 <이중섭>이 <망우리공동묘지>에 뭍혔다고 
  <중랑구>와 뭔 관계라도 있는듯 거리에서도 자랑하며


  ['상봉역']                    1:47

  ['상봉역버스정류장']             1:52     
  <상봉역>을 지나면...



  ['상봉프리미어스엠코']              1:56         
  <망우역> 근처에 <상봉프리미어스엠코>라는 주상복합빌딩이 엄청난 규모로 건립되 있는데
  건물보다 히프가 무지 큰 여인의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ㅎ


  ['망우역']                1:57          
  이어서 <망우역>을 통과합니다.
  지난주에 <망우역2번출구>에서 출발했던  <봉화산둘레길과 옹기테마공원> 을 답사했었죠



  ['망우사거리']               2:09         
  이어서 <망우사거리>를 지나면


  ['망우고개' 조망]               2:15          
  <망우리공동묘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10여분 올라 가면...



  ['망우리고개 육교' 조망]                  2:25             
  <망우고개 육교>가 가까이 다가 옵니다.
  예전엔 한식과 추석이 되면 수많은 성묘객들이 이곳 <망우리공동묘지>로 몰려 들었죠.
  청량리 중랑교부터 교통경찰들이 쫙 깔려 교통 정리를 할 정도 였으니 어느 정도 였는지 짐작되죠?
  승용차가 거의 없던 시절이니 서민들은 대부분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차장 아가씨가 "청량리 중량교 망우리 가요~~"라고 외치며 초만원 버스 옆구리를 탕 탕 치며 "오라이"했는데
  너무 힘들었던 승객들은 "차라리 죽어러 망우리 가요~~"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망우리고개 육교']        
  <망우리공원>으로 연결되는 육교로 올라가면 <경기옛길-평해길>의 길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는데
  제가 그 길을 걸은게 벌써 지난 추억이 되버렸다고 다시 한번 더 그 <평해길>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원형 평해길>과 <걷기코스 평해길>은 구별해서 걸어야 합니다.


  ['서울시내' 조망]                   
  육교에서 서울시내를 조망하는데
  예상보다 서울시내는 가깝게 느껴집니다.


  ['망우고개 구리방향']                   2:31

  ['망우고개 서울방향']     
  오늘의 종착지인 "망우고개 忘憂峴"에 도착하여 답사를 종료 합니다.
  이후의 <관동대로-평해길>은 걷기코스인 <경기옛길-평해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구리시 딸기원 버스정류장']               2:34                
  <경기옛길-평해길>의 출발지였던 <딸기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상봉역>으로 가 귀가했습니다.


  ['구글맵' 실트랙]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약13.5km 였으며 3시간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부록] <파란문>이 쓴 이 글에 참고가 되는 답사기
   1.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를 찾아서" 여기 클릭
   2. "인명원터-보제원터-선농단-영휘원-홍릉터-천장산-회묘터-의릉 답사기"
  3. "배봉산과 영우원-휘경원" 답사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기옛길-평해길』
 『제10길 솔치길, 그리고 그후』  

  ['경기옛길 종합 안내도']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10길 구글어스' 실트랙]

  ['제10길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관동대로-평해길> 중에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구간은
  <양동역>을 출발해서 <석곡천> 제방길을 따라 <삼산역> 근처로 진행해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인 <솔치>까지 가는 "8.1km"를 걷고
  계속해서 <강원도 구간>의 <첫 평해길 흔적>을 찾아 보는 "약13km"를 추가로 갑니다.


  ['양동역 앞']              

  ['양동역 출발지']                8:50      
  2021년 6월 1일 (화)  구름                          
  <청량리역>에서 오전 7시3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양동역>에 8시44분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하게 답사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평해길 제10길 안내판>은 역 좌측에 있는 정자 쉼터 뒤에 있습니다.


  ['제10길 안내도']                         
  안내도에는 <평해길의 마지막 구간>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만
  <평해길 경기도구간의 마지막 구간>이 정확한 표현이지요.
  <평해길> 중에 <경기도구간>은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니...


  ['양동도서관' 옆길]                                   
  <제10길 안내판>이 있는 쉼터 앞 좌측 <양동도서관>과 <여주식당> 사이 골목으로 안내됩니다.
  이정표엔 "단석천" 까지 "1,6km"라고 알려 줍니다.


  ['양동도서관 앞']                    8:54         
  골목을 벗어나면 "양동도서관" 정문 앞 도로를 만나고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쌍학1리 마을회관' 옆]                 
  <쌍학1리마을회관> 옆 삼거리에서 방향을 바꾸면...


  ['석곡천']                  8:57    
  지난 <9코스>에서 만났던 <석곡천>을 다시 만나 좌회전하면...


  [야외공연장]

  ['동계팔경 안내판']                     
  작은 야외공연장이 있는 곳에 "동계팔경 안내판"이 있습니다.
  "택당 이식"선생이 고향인 이곳 <양동>에 은거 할때 <석곡천>을 거닐며 경치 좋은 곳 여덟곳을 지정하여
  사람들에게 소개 했는데 이를 "동계팔경"이라 한답니다.
  <택당 이식 선생"은 <광해군> 시절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다가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몰두하며 후학들의 교육에 힘썻고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하여 주요 요직에서 일했으며 특히 대제학과 예조참판, 이조참판을 역임했답니다.
  <병자호란> 때에 <청음 김상헌>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하다가 인질로 '심양'으로 잡혀 가기도 한 척화파인데
  돌아 와서는 대사헌, 형조, 이조, 예조의 판서 등 조정의 최고 주요직을 두루 역임했답니다.
  하지만 1646년 별시관(別試官)으로 과거 시험의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그가 출제한 문제에 역모의 뜻이 있다고 하여 관직이 삭탈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국문학사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문인으로 조선문학 4대가로 추앙 받고 있는 분이죠.
  <양동 고을>에서 빼놓을수 없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쌍학교']                9:00     
  <쌍학교>를 건너 갑니다.
  <택당 이식 선생>의 묘와 유적은 앞에 보이는 산능선 뒤 우측 <안골>에 있으며
  <명성왕후>의 도피처였던 <쌍학리 마골>은 앞에 보이는 산능선 우측으로 한참 올라가
  지난 <9코스 쌍학리 임도길> 근처까지 올라 간 곳에 있더군요.


  [뒤돌아 본 '쌍학교']                   9:01~9:06         
  <쌍학교> 근처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양동도서관>과 <양동역>을 뒤돌아 보고


  ['석곡천 제방길']                             
  <석곡천 제방>에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12분여 진행하면....


  ['검단다리' 앞]                9:18    
  "검단다리" 앞에 운동시설이 있는 소공원에 도착합니다.
  <양동역>에서 부터 이정표에 표기된 <단석천>이 바로 이곳으로 <단석천>이 <석곡천>에 합수 되는 곳이며
  <단석천>에 <검단다리>가 설치된 곳이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쌍학리 마골>에 대한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설치되 있는데...


  ['마골' 조망]

  ['마골' 스토리텔링]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쌍학리 마골>은 여기서 아주 먼 곳에 있습니다.
  <마골>은 현재도 몇가구 만이 있는 산간오지인데 이렇게 기어코 안내판까지 설치하는 것은
  "양평의 동쪽 마을---양동"엔 그많큼 히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사실 <양둉면>이 강력 내세우는 히스토리는 <택당 이식선생> <명성왕후 도피처> <을미의병> 이었습니다.
  <임오유월일기>라는 일기책은 <명성왕후>의 주치의가 도피기간에 쓴 것으로 그날 그날의 날씨와 처방전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인데, <명성왕후>는 51일간의 도피 기간 중에 '인후염', 즉 목감기를 엄청 알았으며 
  다리에 종기가 나서 고생하고, 특히 '말라리아(학질)'에 걸려 사경을 헤메기도 했더군요.
  그리고 7월2일 일기에는 '여주 장호원'에서 <지평 섬실>에 있는 <전 현감 안정옥의 집>으로 옮기기도
  했는데 약 10일간 머물렀다고 기록되 있답니다. 그곳이 현재 지명으로 <양동면 쌍학리 마골>이라고 합니다.


  ['삼산역' 가는 길]                    9:22           
  <단석천>이 <석곡천>에 합류하는 <검단다리>에서 부턴 이정표가 "삼산역" 방향을 가리킵니다.
  <양동지역>에 인삼밭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태양광발천시설이 아니라 인삼밭 차양막입니다.
  10여분 <석곡천> 제방길을 진행하면...


  ['삼산터널' 앞]                   9:32          
  축산농가가 큰 규모로 있어 분뇨냄새가 많이 나는 곳을 지나면
  <중앙선>이 터널로 들어 가는 곳을 만나는데 <삼산터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측엔 <광주↔원주 고속도로>가 보이고


  [도로 만남]                   9:36      
  <삼산터널>이 있는 조그만 산을 좌측으로 돌아 나가면 도로를 만나고

  [회전교차로]                     9:38      
  이어서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좌측에 <삼산교>가 있는 곳이더군요.
  그러니까 <석곡천>이 <단석천>과 합류하여 개천 이름이 "삼산천 三山川"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직진하면 <갼현유원지>로 바로 갈수 있는데 <평해길 걷기코스>는 우측으로 안내됩니다.
  이 길들은 모두 걷기코스로 <경기문화원>이 작위적으로 개발한 길이지 
  <오리지날 평해길>과는 무관한 길이란 것도 알고 가면 이 길의 의미를 더욱 실감 할수 있습니다.


  ['삼산2리' 가는 길]                      
  <광주-원주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면


  ['삼산2리']

  ['삼산2리 은행나무 보호수']          9:47       
  '양평군 양동면 삼산2리'의 논밭이 펼쳐지며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이젠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있고


  ['삼산2리 마을회관']              9:51    
  이어서 <삼산2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삼산역' 방향 조망]                
  "막"자가 들어가는 산인 <삼막골산>과 <사기막산>의 계곡의 좌측엔 "옛 중앙선 판대역"이 보이며
  중앙에는 <퍈대역>의 역활을 대신하는 <新중앙선>의 "삼산역 三山驛"이 조망됩니다.
  <사기막산> 뒤에는 유명한 국민관광지인 "간현유원지-소금산 출렁다리"가 있습니다.


  ['배내교']                9:54~9:57       
  <삼산역>으로 가는 입구엔 "배내교"라고 하는 조그만 다리가 있습니다.
  우측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개천이 <솔치>에서 흘러 내리는 개천입니다.
  옛날엔 <남한강>에서 <섬강>따라 이곳까지 배가 들어 왔다고..그래서 <배내교>라고...
  이곳 이정표엔 <삼산역→> 방향 표시가 잘못되 있고, 또한 <평해길 걷기코스>는 <삼산역>을 경유하지도
  않아서 <삼산역→>이라는 이정표도 필요 없는데도 부착해 놨습니다.
  꼭 부착하고 싶으면 <솔치→>라는 이정표를 부착해야 하겠습니다.


  ['삼산역' 조망]                      
  <배내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삼산역>을 조망만하고


  ['솔치' 가는 길]               9:57      
  <중앙선> 고가교 아래를 지나 <솔치>로 향합니다.


  ['당산' 조망]                      
  <배내교>에서 부턴 이장표에 <경기도 경계>라고 표기하는군요. <솔치>라고 하면 더 좋았을 듯 한데...


  ['스탬프함']                10:07~9:12      
  <배내교>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스탬프함>이 있는 다리를 만납니다.
  이곳엔 이정표가 좌측 전봇대에 부착되 있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관심 가지지 않으면 다리 건너 너른 도로로 직진하기 쉽더군요.


  ['당산' 이야기]         
  <스탬프함> 옆에는 <당산>에 대한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있고


  ['산막골산 임도' 입구]                    
  <솔치>로 가는 "삼막골산 임도 입구"입니다.


  [뒤돌아 본 '스탬프함']                       
  임도로 올라 가 <스탬프함>이 있는 임도 입구를 뒤돌아 보고


  [임도]

  ['솔치마을' 조망]                   10:19      
  조용한 임도를 7분여 진행하면 <솔치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름길] 

  [임도삼거리]                10:31      
  이번 코스에서 유일한 오름길인 임도를 12분여 오르면 <임도삼거리>를 만납니다.


  ['당산' 조망]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내림길을 진행하면....
  "당산 堂山 545.6m"이 건너편에 가까이 보입니다.
  <경기도 양평군>과 <경기도 여주시>,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의 경계가 되는 산이더군요.
  이 임도가 있는 <삼막골산>과 <당산> 사이의 계곡이 "오리지날 평해로"로서 현재 <88번국지도>가
  "대송치 大松峙 (솔치)"로 향하고 있는 광경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평해길 걷기코스>와 <원형 평해길>을 비교하며 걷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갈림길]

  ['솔치' 가는 길]                             
  임도가 <88번국지도>로 연결되기 전에 좌측으로 걷기코스는 방향을 바꾸고


  ['소나무 숲']

  ['솔치 주유소' 조망]                       
  <솔치>라는 이름 다웁게 여전히 소나무가 많은 길을 즐기며 거닐면 어느새 <솔치>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먼저 지금은 문을 닫은 주유소가 보이고


  [차량 차단기]                   
  이어서 차량 차단기를 지나면...


  ['경기옛길-평해길' 종점]                      10:50~11:23       

  ['솔치' 스토리텔링]                         
  <솔치>에 도착합니다
  "경기 옛길 평해길 종점"을 안내하는 각종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걷기코스'와 '원형노선']                     
  <평해길>의 <원형노선>과 <걷기코스>를 표기한 안내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길을 걸으며 <평해길 원형노선>과 직접 관계없는 길을 걸었다고 투덜대더군요.
  저는 이 <솔치>를 넘어 <강원도 평해길>로 답사를 갑니다.
  <강원도>는 아직 <강원 옛길 평해길>을 조성하지 않아서 <원형 평해길>을 주로 이용하는데
  보행답사길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얼마나 위험하고 길찾기가 어려운지 잠시후 언급하겠으며
  <평해길 걷기코스>가 조성된 <경기도>는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됩니다.


  ['솔치']                       
  <솔치>에는 <대송치>와 <소송치>가 있는데 
  이곳은 "대송치 大松峙 해발 218.3m"입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행정구역 경계가 되며 <양평군>과 <원주시>의 경계가 되는군요.


  ['강원도 옛길-평해길']                 
  많은 답사자들이 이곳 <솔치>가 <평해길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경기도 평해길>의 시종점이기는 하지만 
  길고 긴 '경북 울진 평해'로 이어지는 <평해길>은 실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치>를 넘어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 <솔치>를 넘나들기 위해 말을 갈아 타고 묵어 가던 
  驛院이 있었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의 "옛 안창역원 安昌驛院"과 주변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고 
  <서원주역>으로 걸어가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쉼터']                           (33분간 휴식)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11:23             
  <솔치>에 있는 쉼터에서 아점을 먹고 쉬어 갑니다.
  버스정류장도 있으나 하루에 몇번 운행해서 시간을 잘알아야 하겠는데 오후 3시반경에 있는듯...


  ['수청동 마을 앞' 버스정류장]                   11:34

  ['수청동마을'과 '솔치' 조망]                          
  <솔치>에서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속으로 완만한 경사의 고갯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수청동마을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뒤돌아 보면 <솔치>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고 
  "물 맑은 마을"이라는 의미의 <수청마을>이 <솔치> 아레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동막골' 버스정류장]                          11:45

  [카페]                    11:49      
  <강원도>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매우 완만한 고갯길을 15분여 더 진행하면
  이 고갯길에서 유일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제법 멋진 카페를 만나고...


  ['간현봉' 조망]                       
  이어서 국민관광지라는 "원주 간현유원지"를 만들어준 "간현봉 艮峴峰 384.7m"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슬안동 버스정류장']                 12:06      
  <솔치>에서 43분 정도 쉬지 않고 내려 가니, <슬안동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송래부락' 입구]                        
  <판대.오크벨리 방향>으로는 "송래부락" 입구라는 안내석이 있고


  [뒤돌아 본 '솔치' 방향]                            
  지나온 <솔치> 고갯길 방향을 뒤돌아 봅니다.
  동해안에서 잡힌 물고기들과 특산물을 싣고 <한양>으로 향하던 사람들...
  <신사임당>과 <율곡>등 선조들이 오갔을 고갯길...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88번국지도']        
  이곳 <88번국지도>에는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도보답사를 하기엔 매우 위험하더군요.
  <경기도>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원형 평해길>에서 안전하고 걷기 좋은 <걷기코스 평해길>을 만든 것이
  이런 길을 걸으면서 이제야 그 편의성과 안전성에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강원도>도 어서 빨리 <강원옛길 평해길 걷기코스>를 조성해 주길 바래 봅니다.
  그러면 제가 제일착으로 답사하겠습니다. ^*^


  ['을미의병 기념탑' 앞 삼거리]                   12:32~12:34

  ['을미의병 봉기 기념탑']                         

  ['기념탑 건립 취치문']                          
  <솔치>에서 완만한 내림길을 약1시간 10분 진행하니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을미 의병 봉기 기념탑"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열받은 우리 백성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봉기 했답니다.
  특히 <양평 백성들>이 대거 봉기 했는데, 이곳 <원주 백성들>도 봉기 했다는군요. 서로 가까운 곳이니,,,


  [ '을미의병 기념탑' 앞 삼거리]                12:34      
   "을미 의병 봉기 기념탑" 앞 삼거리에서 <의민공 김제남 묘와 사당>을 먼저 찾아 보기 위해
   50m 정도 직진해 내려 가면


  ['의민공 김제남 사당']                 12:38~12:40       
  "의민공 김제남 懿愍公 金悌男, 1562∼1613"의 사당과 묘역이 있습니다. 
  <김제남>이 누구냐? 역사적으로 무지무지 유명한 사람인데 이름은 처음 들어 보죠?
  바로 <철의 여인-복수의 화신>으로 불리워지는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의 친아버지 이죠.
  그러니까 <김제남>은 <선조>의 장인 어른이 되는겁니다. 그리하여 '연흥부원군'으로 봉해졌습니다만...
  <선조>의 세컨드인 <인목왕후>가 왕비에 올랐을 때 비록 <공빈 김씨>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지만
  이미 세자에 책봉 된 아들 <광해군>이 있었는데, 아들이 새엄마 보다 열살이나 더 많은 콩가루 집안...ㅎ
  하지만 <인목왕후>가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자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당파간 싸움이 피터지게 일어나고
  그 싸움에서 <인목왕후-영창대군 파>가 완전 패함으로서 그 정점에 있던 <영창대군 외할아버지-김계남>은
  역모 혐의로 참수 당하고 그후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삼대가 멸족 당했지요.
  이름하여 <계축옥사>...
  <임진왜란><정유재란>으로 나라가 폐허가 되고 백성들의 삶은 피죽을 끓여 먹어야만 하던 시절에
  정치집단들은 정치권력을 쥐기 위해 다시 피 터지는 싸움판을 벌였던거죠.
  간신히 살아 남은 <인목왕후>는 절치부심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에 복수하며 다시 <인목대비>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며, 그녀의 아버지 <김계남>을 사면복권 시켜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이니
  이 곳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평해길>을 헛걸음 하는게 되겠지요?  ^*^


  ['의민사']                     
  <의민공 김제남 懿愍公 金悌男>에게 제사를 올리는 社宇랍니다.


  ['김제남'과 후손 묘소]                    
  <김제남>은 역모혐의로 삼대가 몰살 당했습니다.
  <김제남>의 자손 삼대가 몰살 당했지만 큰며느리 <초계 정씨>, 즉 큰 아들 <김래>의 부인과 <손자 천석> 만이
  제주도에 귀양 가 있다가 며느리 <초계 정씨>의 기지로 살아 남았는데
  그후 <인조반정>으로 기사회생하여 <인목대비>의 부탁으로 <인조>가 특명으로 
  그녀의 고향에 이렇게 묘역과 사당을 조성하게 했답니다.
  아버지 <김계남>과 아들 <김래><김규><김선>의 무덤이 함께 마주 보며 안치되 있습니다.


  ['김제남 묘지' 잎구에서 '김제남 신도비' 가는 길]            12:40    
  <김제남 사당과 묘역>에서 <김제남 신도비>로 가는 길은 정면에 뻗어 있습니다.
  7~80m 정도 진행하면...


  ['김제남신도비' 조망]                12:42~ 1:00           
  나이가 500살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김제남 신도비>가 보입니다.
  좌측 연못도 <연안 김씨>들 소유라고 합니다.



  ['김제남 신도비'와 보호수']                   
  神道碑는 죽은 자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요즘 말로 이력서라고 할까요.


  ['신도비']

  ['신도비' 윗부분]

  ['신도비' 아랫부분]

  ['신도비' 뒷면]                
  <김계남 신도비>는 <강원도문화재 자료 제21호>로 지정되 있는 문화재라는데,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신을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는 모습이며,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져 있는 것이 <복수의 화신>이라 불리우는 
  <인목대비>의 위세가 어떠 했는지를 잘 알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비 뒷면에는 총탄의 흔적이 여러발 남아 있어 애처롭게 보입니다.


  ['김제남 묘소' 조망]              
  <김제남 신도비>에서 지나온 <김제남 묘소와 사당>을 뒤돌아 보고


  ['원주시' 조망]                        
  <김제남 신도비>에서 펼쳐지는 <안창리>와 <여주 문막>, 그리고 <백운산>과 <치악산>이 그림 같습니다.
  <김제남 신도비> 근처에는 옛날 <평해로 솔치>를 통과해 공무상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과 행인이 많았는데
  이들을 위한 <역원 驛院>이 있었답니다. 중요한 고개 초입에는 어느 곳이나 있었지만...
  이곳에 있던 驛院의 이름이 "안창역원 安昌驛院"이었답니다.
  <울진 평해>에서 <삼척-강릉>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오는 <평해로>가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단양-제천>을 지나 이곳 <원주>에서 합류하여 <한양>으로 가는 
  "만남의 장소"였으며 숙박과 말을 갈아 타는 곳이었으니 "안창역원 安昌驛院"이
  당연 상당한 규모로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듯 합니다.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된 "송강 정철 선생"도 이곳에서 쉬며 말을 갈아 타고 갔을 것입니다.
  그가 쓴 "관동별곡 關東別曲"의 첫구절을 읽어 볼까요?
  
           江강湖호애 病병이 깁퍼 竹듁林님의 누엇더니,
           關관 東동 八팔百백里니에 方방面면을 맛디시니,
           下하直직고 믈너나니 玉옥節졀이 알패 셧다
           延연秋츄門문 드리다라 慶경會회南남門문 바라보며,  
.          平평丘구驛역  말을 가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 관찰사>라는 직책을 제수 받아 강원도로 가며 여기까지 <평해로>를 이용했는데
  <팔당> 근처에 있었던 "평구역"에서 말을 갈아 타고 <양평>에서 <용문>까지 걸었던 "흑천을 돌아서
  "솔치"를 넘어 이곳으로 와 <원주><춘천><철원><화천>을 지나 <금강산>으로 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었던 <경기옛길-평해로>가 그많큼 <강원도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길이었다는 것을 
  <관동별곡>에서도 알수 있죠
 저 앞에 펼쳐지는 <섬강 蟾江>과 <치악산 雉嶽山>을 바라보며 <송강 정철 선생>은 노래 했을 것입니다.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흥법사지' 가는 길 조망]          1:00        
  <김계남 신도비>에서 <흥법사지>로 가는 남쪽 방향 길입니다.
 

  ['솔치' 조망]                            
  <김계남 신도비>에서 나와 뒤돌아 본 <솔치>와 <김계남 신도비>입니다.


  ['안창대교' 앞 사거리]                   1:03        
  <안창대교> 앞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흥법사지>를 다녀와 좌측 <안창대교>를 건너 갈 예정입니다.
  <흥법사지>까지 왕복 1,5km라고 알려주는데, 다녀 오는데 28분이 걸렸습니다.


  ['흥법교']                 1:04      
  <흥법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  15분 정도 진행하면...


  ['흥법사지' 조망]                        1:11

  ['흥법사지']                      1:15~1:20                 
  "흥법사 興法寺"가 있었던 터에 도착합니다.
  예상 보다 너무 초라한 절터입니다만, 이 절은 매우 유명한 절이었더군요.
  이 절터에는 우리나라 보물이 두점 남아 있고, 
  국보로 지정된 <국보 제104호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傳 原州 興法寺址 廉居和尙塔)>과
  보물로 지정된 <보물 제365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보관 중에 있답니다.


  ['진공대사 탑비' 후면]

  ['진공대사 탑비' 옆면]

  ['진공대사']  

  ['진공대사 탑비' 정면]                
  "보물 제463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
  아주 독특한 탑비인데 자세한 사항은 <문화재청 홈피>를 인용합니다.


  ['진공대사 탑비' 안내문]                         
  <문화재청 홈피> 인용
  
  "보물 제463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
  흥법사터에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깨어진 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이 곳에는 비의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진공대사는 장순선사(長純禪師)밑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공양왕 때 귀국한 후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도 태조가 그의 설법에 감화하여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다.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 무늬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앞면 중앙에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두 마리는 양 귀퉁이에서 옆을 쳐다보고 있다.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웅장한 기운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이 엿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유물]                         
  탑비 옆에는 이런 유물이 땅 바닥에 방치되 있어 의아스럽고


  ['흥법사지']

  [안내문]                       
  "흥법사터 興法寺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나와 있습니다.


  ['흥법사지 삼층석탑']

  [안내문]                   
  "보물 제464호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原州 興法寺址 三層石塔)"
  제가 이곳을 궂이 방문한 이유는 <평해길>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을 거라고 추측해서 입니다.
  <통일신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국을 세운 <고려의 왕건>은 특히 <신라의 반란>이 언제나 위협이었지요.
  그래서 <경순왕>을 <임진강> 이남으로는 갈수 없도록하고, <후백제>의 <견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훈요십조>에 호남지방 사람들을 관직에 못 오르게  못박아 배척했지요. 지역감정 유발의 시초이죠.
  앞에서도 언급 했지만 동해안에서 <대관령>을 넘어 오는 <평해길> 이용객들과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오는 관리나 이용객들이 만나는 이곳은  "안창역원 安昌驛院"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 말>과 <고려시대 초>에 정치, 경제, 문화, 종교등의 중요한 요충지 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태조 왕건>의 왕사였던 <진공대사>가 이곳에서 입적하자 <태조 왕건>이 친히 비문을 쓰고
  이런 어마무시한 탑비와 석탑을 직접 세워 주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삼층석탑> 뒤로 펼쳐지는 <평해로>와 <영남길>이 "으뜸 고을 元州"를 더욱 빛나게 했으리라



  ['안창대교']            1:31  
  <흥법사지>를 둘러 보고 다시 <안창대교>로 돌아 오는데 약30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송강 정철 선생>도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섬강 蟾江"을 
  이젠 편하게 <안창대교>를 이용해 건너 갑니다.
  다리 뒤로 "티악 雉岳"이 조망됩니다.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뒤돌아 본 '솔치' 방향]                         
  <안창대교>를 건너며 뒤돌아 본 <평해로>의 <솔치 계곡>이고
 

  ['서원주역' 조망]                            
  북쪽으로는  "섬강 蟾江"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멀리 <서원주역>이 조망됩니다.
  오늘 <섬강>의 우측 제방길을 따라 <서원주역>까지 가서 답사를 마칠 예정입니다.
  사전에 조사 한바로는 저 제방길이 <원주구비길>이라는 둘레길이더군요.


  ['안창대교' '문막 방향']                           
  <안창대교>의 끝지점에서 <평해로>는 아마도 직진 했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평해로>를 마치고 
  <서원주역>으로 가기 위해선 <섬강 제방길>로 내려 가야하는데 제방으로 바로 내려 가는 길이 없더군요.
  그래서 <원주 방향>으로 200m 정도 직진해 갔더니


  [삼거리]                    1:43                  
  제방으로 좌회전 할수 있는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여기서 부터 길을 잘 못찾아 고생을 좀 했는데...
  다음의 지도를 보며 고생한 이유를 언급 하겠습니다.
  언제나 가 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기는 어려운 법....

         
            [현위치 주변 지도]                
  <안창대교>를 건너 바로 <섬강 제방길>로 연결되는 길이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이도 없어 좀 돌아 가야 했습니다. 지도를 보며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노란색 선으로 표기한 길로
  갔는데, 결과적으로 실패였습니다.
  혹시 앞으로 이 글을 읽고 답사길에 오를 후답자들이 있다면 빨간색선으로 표기한 길로 가시기 바람니다.




  [농로]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간 길은 농로로서 끝에는 길이 없었는데 논두렁으로 내려 가니 뱀도 쉭~지나가고
  발도 진흙에 빠지며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래도 되돌아 갈순 없어 고생하며 제방으로 나가면...


  ['섬강 제방길']                 1:59        
  <섬강 제방길>을 만나며


  ['원주구비길']

  ['원주구비길']                        
  이 길이 "원주구비길"이라는 둘레길이라고 알려 주는 리본이 펄럭입니다.
  조만간 <원주역사문화둘레길>을 답사해야 겠습니다.
  10여분 <원주구비길>을 진행하면...


  ['서원주역' 조망]                    2:10            
  <서원주역>이 정면에 보이는데 <서곡천>이 <섬강>에 합수하는 합수부여서 건너 갈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우측으로 5분 정도 진행했더니

  [도로 만남]                2:15   
  도로를 만나고, 다시 갓길이 없는 차도를 진행하면


  ['경장교' 조망]                      
  <경장교>라는 다리가 보이고


  ['경장교']                 2:20       
  <경장교>를 건너 앞에 보이는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해 좌회전 합니다.


  ['소금산' 조망]                         
  <경강교>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유명한 <소금산>과 <간현유원지>가 조망됩니다.
  지난해 가을에 와이프와 함께 다녀 온 <소금산 출렁다리>인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클릭해 보세요.
             『원주』"소금산 출렁다리" 여기 클릭 
 

  ['서원주역' 조망]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해 좌회전 하면 <서원주역>이 저만치 있고



  ['서원주역']                 2:33          
  <서원주역>에 도착하여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오후 2시 55분에 <청량리>로 가는 KTX를 타고 42분이 걸려 <청량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서원주역>에는 기차 시간을 걱정 할 필요없이 30여분에 한대꼴로 자주 열차가 있었습니다.


  [실트랙]                   
  <경기옛길-평해길>의 전구간을 답사하고, 계속 이어질 <강원옛길-평해길>을 기대하며
  즐거운 도보여행을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20.6km"로서 5시간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기옛길-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9길 구글어스' 실트랙]

  ['제9길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제9길 구둔고갯길>은 공식적으로 14.9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만,
  접속구간인 <일신역>에서 <구둔역>을 약 1.2km을 진행하여
  <구둔역>에서 출발하여 <지산터널>을 넘어 <일신3리>를 통과하고, 
  <쌍학리임도>를 돌아 <매월교>에 도착하고 <양동면사무소>를 지나 <양동역>까지 가는 15.4km를 갑니다.


  ['일신역']                   8:36           
  2021년 5월 26일 (수)  구름 약간 맑음                          
  <청량리역>에서 7시 3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일신역>에 정확히 59분이 걸려 8시 34분에 도착하여 출발 준비를 하고 8시 40분에 출발합니다.
  <일신역>은 승객이 적어 하루에 4번 열차가 정차하는데, 오전에 두번, 오후에 두번 뿐인데도 이렇게 한산합니다.
  버스정류장에 버스시간표라도 있나해서 확인했습니다만 어떠한 정보도 없었고
  단지 지난 8코스 할때 이곳에서 오후 2시30분에 <용문역>으로 가는 <987-3번 시내버스>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죠.
  역앞에서 <구둔역>으로 가는 길은 역 좌측 녹색 펜스에 리본이 길안내를 하더군요.
  좌측으로 진행해서 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뒤돌아 본 '일신역']                 8:41      
  리본의 안내를 따라 도로로 나가 <일신역>을 뒤돌아 보고


  [갈림길]                   *:44       
  이어서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진행해야만 하더군요.
  이곳만 주의하면 <구둔역>까지는 외줄기 길이었습니다.


  ['구둔역' 가는 길]                             
  벌써 추억이 되버린 <고래산>이 지난 구간을 상기시키는데
  길가에 만발한 찔레꽃이 향기를 뿜어내며 싱그러운 내음이 나그네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일신역>에서 <구둔역>까지는 약1.2km로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구둔역']                8:52~9:03         
  "경기옛길-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의 출발지인 "구둔역 九屯驛"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8코스 고래산길>에서 구경을 못했으므로 조금 깊이 있게 둘러 보고 갑니다.


  ['구둔역' 앞 안내판들]                      
  <구둔역> 앞마당에는 버스정류장과 관광안내도, 안내문 등이 있고 <스탬프함>도 있습니다.


  [영화 촬영지]

  ['구둔역 안내판']                     
  <복선 전철-중앙선>이 개통되면서 폐역이 된 <구둔역>은 자신의 임무를 조금전 <일신역>에 넘겨 주고
  이젠 추억을 먹고 사는 관광지로 남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답니다.



  ['구둔역']                     
  "구둔역 九屯驛"
  이 지역의 이름이 <구둔 九屯>이어서 자연스럽게 <구둔역>이 되었겠지만
  <둔 屯>이라는 한자가 <군대가 진을 칠 '둔 屯'>이니...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막기 위해 이 지역 산골자기 아홉 곳에 진을 치고 방어를 했다고 하고
  1904년 <정미의병> 때에는 <구둔치>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기도 했다는 군요.


  ['구둔역 플렛트홈']                            
  驛舍는 잠겨있어 옆 샛길로 플렛트홈에 들어 가니 열차가 아닌 지하철 전동차가 쌩뚱맞게 전시되 있고


  ['서울 방향']

  ['양동역 방향']                               
  추억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오로지 추억을 먹고 사는 <구둔역>은 "환상열차의 종소리"만 들리는듯....


  ['제9길 구둔고갯길' 안내도]             

  ['구둔역' 앞]                 9:03       
  <구둔역 플랫트홈>을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경기옛길-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 답사를 시작합니다.
  역 앞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나가면...


  ['고래산' 조망]                  
  <8코스 고래산길>의 <고래산 임도>가 먼저 시야에 들어 오고
  <일신보건진료소>가  천문대 모양을 하고 다가 옵니다.


  [갈림길]                   9:07       
  곧 바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에 보이는 <느티나무>로 가면...




  ['구둔마을 느티나무']               9:09         
  400여년의 세월 속에 마을을 지켜오던 느티나무도 이젠 너무 늙어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있답니다.
  <양평군 보호수 제24호>라는데 모양이 우람하고 독특합니다.


  ['일신2리 마을회관']                 9:10          
  <느티나무>를 지나면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 (폐교)> 담장을 만나며
  "일신2리마을회관"앞을 지나고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 (폐교)']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 (폐교)"가 분교로는 상당한 규모로 남아 있으니
  옛날에는 이 지역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체험학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고래산 임도'와 '8코스' 조망]                      
  학교 옆에서 <고래산>과 <고래산 임도 출구>를 조망하고



  [갈림길]                  9:15       
  <옛 중앙선 폐철로>로 가는 골목길인데 길찾기에 조금 유의해야 하고
  집 뒤로 나가 100m 정도 올라 가면....


  [갈림길]                     9:18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우측 도랑을 건너 100m 정도 더 올라 가면...
  ★ 여기서 직진해서 올라 가면 오리지날 "구둔치 九屯峙"라고 국토지리원 지도에 표기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해길 걷기코스>는 모두 <오리지날 평해길>은 아니고 일반 고갯길과 길 일 뿐이더군요.
  잠시후 <쌍학리입도입구> 고개에서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옛 '중앙선' 폐철길]               9:21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 도랑을 건너 조금 올라 가면 <옛 중앙선 철길>을 만납니다.
  <군둔역>에서 "1.0km" 왔으며 앞으로 <쌍학리임도입구>까지 "3.3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중앙선 폐철길']                    
 鐵路는 걷어내 없어진 옛 <중앙선>입니다.
 철로에는 자갈을 깔지요.  
 열차가 통과 할때 철로에 약간의 탄력을 주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잡풀 잡목이 자라지 못하게 하며, 비가 내리면 흙은 유실되니 유실을 막기 위해 자갈을 깐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길을 걸을 후답자들은 <트랙킹화> 보다는 <등산화>를 신고 가는게 발이 편하겠습니다.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9:32       
  <옛 중앙선>은 앞에 보이는 <지산터널>로 들어 가는데 터널을 막아놔 우측 산으로 우회하게 하더군요.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산길 입구]                 9:33    
  도랑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약간 불안감을 주는데, 숲 속으로 들어가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산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고개]                  9:43       
  지도에 <고추산>이라고하는 산 좌측 고개를 넘어 가게 되며


  ['중앙선 폐철길']                   9:46          
  이어서 조금 전에 헤어졌던 <옛 중앙선>을 다시 만나는데 콘테이너 하나가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을 바라보면...


  ['지산터널' 조망]         
  <옛 중앙선>이 지나 다니던 <지산터널>이 보이는데 출입구는 시멘트블록으로 완전 막아 놨습니다.
  그래서 <고추산 고개>를 넘어 우회 했다는 것을 알수 있고...


  ['중앙선 폐철길']                         
  다시 <옛 중앙선 폐철길>을 5분여 진행하면....


  [사거리]                   9:51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를 만나는데
  <옛 중앙선>은 직진해서 <미봉터널>이라는 터널로 가는데 
  <평해길 걷기코스>는 우측으로 <일신3리>를 빙 돌아 
  <매월터널>앞에 있는 <쌍학리임도입구>에서 다시 만나더군요.
  아마도 <미봉터널>도 앞의 <지산터널>과 같은 이유로 우회 하는듯 합니다.


  ['일신3리' 가는 길]                      
  <옛 중앙선 폐철로>를 버리고 마을로 내려 갑니다.
  10여분 내려 가면...


  ['토종꿀집']                     10:00

  ['일신3리' 마을 통과]                      
  <일신3리> 마을을 통과하고


  [아스콘 포장 도로 만남]                10:04         
  이어서 아스콘 포장도로를 만나 좌회전 하면...


  ['못저리길']

  ['못저리 세하마을' 입구]                       
  <못저리 세하마을>이라는 마을안내석이 있는 도로를 13분 정도 고도를 조금씩 높이며 올라 가면...


  ['도로 끊김]              10:17                
  포장도로가 끊어지며 산길이 시작되는 막다른 도로에 도착합니다.
  좌측 아래엔 <매월터널> 입구가 있었으며, 이정표엔 <쌍학리임도입구>가 "0,2km"남았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쌍학리 임도 입구"가 틀림없을듯 한데...이정표를 믿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잠시후에는 <쌍학리임도입구>가 더 멀어져 "0.7km" 남았다고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표시가 있는 <쌍학리임도입구>는 오늘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쌍학리 임도' 올라 가는 고갯길]                
  <쌍학리임도>로 올라 가는 고갯길을 13분 정도 올라 가면...


  [고개]                10:30            
  이정표가 있는 고개를 만납니다. 이정표엔 이곳에서 <쌍학리임도입구>까지 또다시" 0.7km"가 남았다고 하며 
  또 좌측으로 가라고 하지만 좌측엔 길도 없는데 도데체 <쌍학리임도입구>는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조금전 <매월터널> 입구 옆 도로에선 "0.2km" 남았다고 하더니 이젠 더 늘어나 0.7km를 좌측으로 가야 한다고?
  우리나라 이정표들이 그렇고 그러려니 생각하고 GPS를 따라 우측 <매월교>방향으로 진행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좀 답답
  이곳은 행정구역상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와 <양평군 양동면 매월리>의 경계였습니다.
  <쌍학리>와는 너무 먼 위치에 있고 걷기코스 임도가 <쌍학리>를 통과하지도 않고 <매월리>만을 통과하는데 
  어이해서 <매월리임도>라 하지 않고 <쌍학리임도>라고 한건 또 뭔 이유인가?


  ['詩 구둔치']                       
  이 고개에 올라, 올라 온길과 진행방향을 촬영하는데 이정표에 詩 한수가 걸려 있습니다.
  <박우형>이라는 분이 쓴 <구둔치>라는 詩였습니다. 내용은 사진 속에 보는 바와 같습니다.
  이 詩 때문에 이곳이 <오리지날 평해길>이 지나는 <구둔치>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여기는 <구둔치>가 아닙니다.
  <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에는 <구둔고개>나 <구둔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리지날 평해길>도 <구둔고개>를 통과하지 않는다고 <경기문화원> 스스로도 알리고 있는데
  이 걷기코스의 이름을 <구둔고갯길>이라고 붙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경기문화원>은 그 이유를 밝혀주시기 바람니다.
  다음 지도를 보면...


  ['구둔치' 주변 상세 지도]                 
  <국토지리원 1/25,000 지도>입니다.
  <구둔치>는 조금전 <일신초등학교 분교>에서 바로 <양동면 매월리>로 넘어 가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옛 중앙선>의 <매월터널> 위에 있는 고개로서 이름없는 고개입니다.
  지도에서도 알수 있드시 <지평면>에서 <양동면>으로 넘어 가는 길은 지도에 표기된 <구둔치>가 훨신 가깝죠.
  <옛 중앙선>이 지나는 길로 <평해길 걷기코스>를 억지로 붙이려다가 발생한 헤프닝 같습니다.
  <경기문화원>이 펴낸 <평해길 안내도>를 다시 첨부하여 살펴 보면...


  ['평해길 안내도']           
  <경기문화원>이 안내하는 안내도를 다시 확대해서 보면
  오렌지색 선으로 표기한 <구둔고갯길 걷기코스>와 '노란색 점선'으로 표기된 <원형노선>, 
  즉 <오리지날 평해길>과는 완전 멀리 있는 관계없는 길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오로지 걷기코스 일 뿐...
  요즘으로 말하자면 고속도로였던 <관동대로-평해로>는 우마차도 다니는 길이었으니 
  이런 가파르고 좁은 고개로 다닐수 없었고, 이 산줄기를 빙 돌아 갔다고 안내도에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길 이름을 <오리지날 평해길>과 관계있는듯 <구둔고갯길>이라고 지은 것은 문제 있습니다.
   <구둔치>나 <평해길>과는 아무 관계 없는 고개인데도
   이곳 이정표에 부착되 있는 <詩 구둔치> 때문에 오가는 답사자들에게 
  이곳이 <오리지날 평해길>이 지나는 <구둔치>로 더욱 오해하게 합니다.


  ['임도 삼거리']                10:36            
  <구둔치>로 오해하기 쉬운 고개에서 우측으로 잠시 진행하면 다시 임도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엔 리본을 좌측에 세개나 메달아 놨으니 좌측으로 진행해야겠죠.



  ['매월리(쌍학리) 임도']                          
  조그전에도 언급 했드시 이 임도는 <양평군 양동면 매월리>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쌍학리임도>를 걷는게 아니라  "매월리임도"를 걷는 것입니다.
  이 임도는 조금전 고개에서 앞으로 만날 <그린팜 영농조합>까지 1시간 1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그리고 이 임도는 지난 <고래산임도>와 비슷한 임도가 되겠습니다.


  [이정표-"쌍학리 마골" 갈림길]                   11:05        
  고개에서 35분 정도 지루한 임도를 걸으면 이 임도에선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처음 만나는데
  이정표엔 <쌍학리임도입구>에서 2.7km  왔으며 앞으로 <매월교>까지 4.9km남았다고 알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측 산줄기를 넘어 가면 "쌍학리 마골"과 연결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쌍학리 마골>은 <명성왕후>가 <임오군란>때에 피신한 곳 중에 한곳이었으니 어찌 그냥 지나 갈수 있겠는가



  ['명성왕후 은신처'와 '택풍당']                       
  "명성왕후 은신처""택풍당"의 위치를 나름대로 편집해 보았습니다.
  <평해길 현위치>와 <쌍학리 마골>의 위치를 확인하면 현재도 심심산골인데, 
  당시엔 도피처로서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과 명성왕후>
  <명성왕후> 민씨 친족정권의 인사행정 문란, 매관매직, 관료층의 부정 부패 및 국고의 낭비, 
  일본의 경제적 침략등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었죠. 군졸들은 무려 13달 동안 봉급을 받지 못하였고 
  그나마 한 달치 급료를 쌀로 받았으나, 그마저 섞인 모래가 반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에 결국 구식군졸들이 격분하여 선혜청의 <당상 민겸호>를 찾아가 자택을 부수고 <민겸호>를 죽이며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름하여 <임오군란>이며 <민겸호>는 <명성왕후>의 친척 오빠....
  군인들이 창덕궁으로 찾아가 <명성왕후>까지 죽이려 하자 평민복으로 갈아 입고 도피길에 나섯지요.
  먼저 <수락산> 기슭에 있는 <용굴암>에 숨어 들어 부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하고
  <여주 장호원>으로 잠행하여 지내다가 상황이 않좋다고 느낄 때에 이곳 <양평 마골>로 옮겨 숨어 지냈답니다.
  오십며칠간의 도피 생활을 이곳과 여주에서 했으니 그녀에게는 잊지 못할 곳이겠습니다.



  [임도]                  
  <민겸호>는 <명성왕후>의 친척 오빠로 왕후를 등에 업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로 
  <민씨 세도정치>의 수괴라 할수 있지요.
  그런데 역사의 아이로니....<민겸호>의 아들이 <민영환>이니....
  탐관오리인 아버지 <민겸호>와 애국지사인 아들 <충정공 민영환>....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택풍당>에 대해선 잠시 후에 안내판을 보기로 하고
  다시 25분여 임도를 진행하면....


  ['매월리' 조망]                 11:31        
  <양동면 매월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10여분 더 진행하면...


  [이정표]                  11:42         
  다시 두번째 이정표를 만나고


  [차량 차단기]                   11:50       
  이어서 자동차 차단기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임도는 끝나고...
  좌측엔 <그린팜 영농법인>이 있습니다.


  ['그린팜 영농조합법인']               11:51         
  <그린팜 영농조합법인>을 들여다 보고


  [아스콘 포장도로]                        
  아스콘 포장도로를 10여분 진행하면...


  [옛 '중앙선 굴다리']                    12:01

  [뒤돌아 본 '중앙선']                       
  <중앙선 굴다리>를 만나는데 통과해 뒤돌아 보니 <옛 중앙선>과 <新중앙선>이 함께 있군요.


  ['매월임도 입구']                   12:02          
  <매월리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다리 옆에 안내도가 있어 보니
  이 안내판에는 이곳이 <쌍학리임도 입구>가 아니라 "매월리임도 입구"라고 분명히 표기하고 있습니다.
  <경기문화원>만 <매월리임도>를 <쌍학리임도>라고 곳곳의 이정표를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택풍당' 안내문]                 
  <택풍당>에 대한 안내문이 있는데 조금전 임도에서 본 <명성왕후 도피처 지도>에 표기한 곳에 있는데
  즉, <양동면 쌍학리 안골>에 <택풍당>이 있는데, 멀고 먼 이곳 <매월리>에 안내판을 설치했군요.


  ['구둔치' 조망]                            
  여기서 <구둔치>가 조망됩니다.
  저 고개 너머에 <지평초등학교 일신 분교>가 있습니다.


  ['매월천'과 '매월교']              12:05       
  이정표에 수없이 표기한 <매월교>는 실제 <매월교>를 만났을 때엔 <매월교>에 아무른 표식도 없고


  ['석곡천'과 '중앙선']                12:06        
  <매월교>를 통과하면 <매월천>이 <석곡천>에 합류하여 <매월천>은 이름을 잃어 버리고...


  ['상록다리']                 12:08           
  이어서 <석곡천>을 건너는 <상록다리>를 만나 건너 우회전하면...


  ['중앙선']                        
  <중앙선>이 <양동역>으로 향하고


  ['석곡리 상록마을' 조망]            

  [출렁다리]                 12:12           
  <석곡천>을 따라 난 제방길을 진행하면 <석곡리 상록마을>이 보이며
  선답자들의 답사기에 무조건 등장하는 이 다리는 섶다리인줄 알았는데 
  철판과 와이어로 만든 무지 튼튼한 다리로 현재 주민들이 이용하는 다리더군요.
 

  ['양동면 중심가' 조망]                            
  <양동 중심지>가 점점 다가오니 이젠 <경기도>의 끝머리에 도착하며 <강원도>가 새롭게 다가 옵니다.


  [삼거리]                    12:24          
  <석곡천 제방>에서 시내로 들어 가는 삼거리를 만나 좌회전 하면...


  [삼거리]               12:26             
  <349번국지도>를 만나 <양동 중심지>로 들어 갑니다.
  좌측엔 <중앙선>이 있습니다.


  ['양동면사무소']                   12:28

  ['양동의병 안내문']                     

  [뒤돌아 본 '양동면사무소']                     
  <을미의병> <정미의병>이 봉기한 진원지라고 알리는데
  제 생각에는 조금 전에 알아본 <명성왕후>의 도피처와 관련이 있는게 아닌지..
  <명성왕후>가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으로 울분을 참지 못하고 봉기한 의병을 <을미의병>이라고 하니까...


  ['양평축협 양동지점']                  12:33

  ['양동파출소']                12:35         
  축협과 파출소를 지나면...


  ['양동역' 앞 사거리]                     12:36        
  <양동>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양동역앞 사거리>에 도착하여 좌회전하면


  ['양동역' 조망]

  ['양동역']                  12:37            
  "양동역 楊東驛"에 도착하며 답사를 마칩니다.
  "양평의 동쪽 끝"에 있는 고장이라고 "양동 楊東"이라 한답니다.


  ['무궁화호']                  12:50~12:55        
  12시 55분 열차를 타지 않으면 세 시간 후에나 있기에 이 시간에 맞춰 답사를 했습니다.
  마지막 코스인 <제10길 솔치길>은 다음번에 진행 할 예정이며 거리가 짧아서
  <평해로>가 계속 이어지는 <서원주역>까지 진행 할 예정입니다.


  ['9코스 실트랙']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접속거리 포함 15.4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기옛길-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7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7길 지평향교길' 안내도]                            
  <제7길 지평향교길 10km>와 <제8길 고래산길 11.8km>를 합쳐 한번에 진행합니다.
  각 구간별 거리가 짧고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기에 불편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용문역']                  8:20        
  2021년 5월 19일 (수)  맑음                          
  <청량리역>에서 7시 3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용문역>에 정확히 40분이 걸려 8시 15분에 도착하여
  출발 준비를 하고 8시 20분에 출발합니다.
  <용문역 1번출입구> 앞 도로 건너편에서 우측인 동쪽으로 100m 정도 진행하면


  ['용문천년시장']              8:22        
  <용문천년시장 버섯국밥거리>를 만나 통과합니다.
  아침 식사 못하신 분들에게는 식사하기 좋은 곳이라 여겨지는데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 아직 미오픈


  ['용문중앙도로']                  8:24       
  <버섯국밥거리>를 통과하면 <용문중앙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7분여 진행합니다.


  ['용문면사무소 앞 회전교차로']                8:31           
  그러면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앞에는 "용문면사무소"가 보이고 
  그 뒤엔 <新용문버스터미널>이 있더군요.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341번국지도']                      
  <341번국지도>가 이어지는데 이 도로는 "석불역"까지 이어지는데 <평해길>의 중심축 역활을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 <341번국지도>를 중심으로 <평해길 걷기코스>가 좌우 명소들을 오가며 <석불역>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넘어야할 <그루고개>가 조망되며 <그루고개>를 만든 "갈지산 葛芝山 344.8m"이 연무 속에
  조망됩니다.   7분 정도 직진하면...


  ['화전교 앞 회전교차로']                  8:38       
  <경의중앙선>이 <갈지산 터널>로 들어 가는 고가철도가 지나는 곳 앞에 회전교차로가 있으며


  ['화전교']                    8:41         
  이어서 "흑천 黑川 (거무내)"를 다시 건너는 "화전교 花田僑"를 만납니다.
  그 옛날 <관동대로-평해길>은 <용문면 다문리>에서 <지평면 송현리>를 오가는 중요 하천과 고개가
  한눈에 조망되는군요.
  다리를 건너 6분 정도 직진하면...


  ['그루고개' 입구]                   8:47          
  <마룡1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그루고개 표지석>이 보입니다.
  우측 <341번국지도>는 새로 만든 도로이고, 옛 <그루고개>는 좌측 마을을 통과하였답니다.


  ['그루고개' 입구]                       8:48

  [안내문]                            
  "그루고개 (그릇고개)"
  <평해길 스토리텔링>을 읽을 때마다 어느 분이 썻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있는 글들을 기본으로 풀어 재미있게 써야 나그네들에게 도움을 줄텐데
  대부분 가설이나 추측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어 읽으나 마나여서 별 도움이 안되더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마룡리 쉼터']

  [과수원길]                   

  ['341번국지도' 제합류]                 8:55            
  <용문면 마룡리 마을>을 7분여 통과하면 다시 <341번국지도>를 만나고


  ['그루고개']                 8:56         
  옛길과 새길이 만나는 "그루고개 정상"에 도착하면
  <용문면 마룡리>와 <지평면 송현리>의 행정구역 경계라는걸 알수 있고
  옛길은 바로 좌측 <지평면 송현리>를 통과하라고 안내합니다.
  직진하면 <지평역>으로 바로 10여분이면 가지만, <평해길>은 좌측 마을을 통과하여 <지평역>으로
  둘러 가기에 30여분이 걸리더군요.


  ['송현리']

  ['꽃반들길']

  ['양봉']

  ['송현리 전원주택단지']                    
  지도에 <꽃반들길>이라고 표기된 <송현리 전원주택단지>를 통과합니다.


  ['경의중앙선']                   9:05         
  <송현리 전원주택단지>를 통과하면 옛길은 다시 <경의중앙선>이 <갈지산 터널>을 뚫고 나오는 곳을
  만나는데, 우측엔 <341번국지도>가 나란히 <지평역>으로 향하고 있고...
  오늘 진행해야 할 코스가 어느정도 윤곽이 잡힙니다.
  <배미산>의 좌측 능선을 넘어 <석불역>으로 가고, 다시 그 뒤에 있는 <고래산> 중턱으로 올라 임도를
  걷게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조금전에 넘은 <갈지산 그루고개>와 <배미산 능선 고개>를 넘고
  <고래산> 둘레길이라고도 할수 있는 <고래산 중턱 임도>를 걷는 약22km 길이 되겠습니다.


  [갈림길]                  9:06      
  옛길은 곧바로 다시 마을 속으로 안내됩니다.


  ['송현1리 송곡마을' 통과]

  ['송현리' 통과]

  ['송현리' 통과]                             
  이 마을 이름이 "송현리 松峴里"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루고개>로 가는 이 고갯길엔 소나무가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松峴"이겠죠?

  ['지평역' 입구]                   9:25          
  <송현리 마을>을 돌아 나가면 다시 <341번국지도>를 만나며 <지평역 입구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이 사거리에선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지평역']          
  먼저 "지평역"을 흘깃 보고 갑니다.
  <경의중앙선>은 여기 까지이고 이후부터는 <중앙선> 또는 <강릉선>이라고 합니다.
  전철이 다니는 <경의중앙선>의 종점이기 때문이겠죠.


  ['지평향교' 가는 길]                9:27          
  <지평역>에서 <지평면사무소>는 매우 가깝지만 
  옛길은 <지평향교>를 둘러 보고 가라고 멀리 뺑뺑이를 돌리는군요.


  ['지평향교' 조망]                                  
  <지평향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옛날엔 <향교>가 있는 곳에 관아가 있어 마을의 중심지를 이루었죠.
  옛날엔 저곳 주변이 <지평 砥平>의 중심지였겠습니다.


  ['지평향교' 앞]                 9:37~9:45       
  <지평향교> 앞에 도착하면 먼저 <스탬프함>이 우측 쉼터와 함께 있고


  ['지평향교 홍살문']

  ['지평향교']

  [안내문]                     
  "지평향교 砥平鄕校" <경기도문화재자료 20호>
  평소엔 개방하지 않아서 들어 가 볼수는 없었습니다.
  안내문을 참고하고


  ['지평향교' 앞]                    
  향교 앞에 있는 쉼터 정자에 가서 조망을 합니다.


  ['그루고개' 조망]                     
  서북쪽으로는 지나온 <그루고개>와 <갈지산>이 조망되고
  <그루고개> 뒤로 어렴푸시 <용문산 줄기>가 보입니다.


  ['지평역' 조망]                      
  서쪽으로는 조금 전에 지나온 <지평역>과 그 뒤로 산줄기 너머로 <추읍산>이 빼꼼 보입니다.
  "지평 砥平" 지명의 유래가 궁금햇는데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자를 풀이해 봤습니다.
  <지 砥>는 <숫돌>이라는 의미이죠. 그러니까 <지평 砥平>은 <숫돌처럼 평평하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봉미산 성황당']                   9:47~9:52

  ['을미의병기념비']                         
  <지평향교>에서 가까운 곳에 "을미의병 기념비""지평리전투 기념관"이 있는데
  "봉미산 성황당"이라는 표지석이 눈길을 끕니다.
  <을미의병>은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 시해>와 <단발령>에 따른 반일 감정의 폭발로 지역의
  학식있는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1895년 을미년에 결성되는 의병인데 그후 독립운동 등으로 발전되었지요.
  그러한 의병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난 곳이 <양평지역>이었답니다.


  ['지평의병' '지평전투' 기념관]

  [안내문]                 
  "지평리전투 기념관"
  안내문을 참고하고, 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 가면...


  ['지평리전투충혼비']         
  "지평리전투충혼비"가 있습니다.
  미군과 프랑스군이 중공군과 격전을 벌이며 산화해간 영령들을 추모하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최초 조립전차]           
  안보전시용으로 탱크를 전시해 놨군요.
  한국최초조립전차라고 합니다.


  [기념관 조망]                        
  기념관은 외관만 보고 횡하니 떠납니다.
  3분 정도 진행하면....


  ['지평교'에서 '지평초교' 조망]               9:55     
  "지평천 砥平川"이 흐르는 <지평교>를 건너 가면 <지평초등학교>가 기다립니다.
  <지평천 砥平川>은 <고래산>에서 발원하여 <흑천>으로 흘러 들어 가더군요.


  ['지평사거리']                  9:58           
  이어서 <지평>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지평사거리>를 만나는데...
  <면사무소>는 좌측에 있는데 옛길은 <면사무소>를 우측으로 돌아 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측에 있는 <지평막걸리 양조장>을 구경하고, 정면에 보이는 <지평고등학교> 앞을 통과하여
  좌측에 있는 <면사무소>로 가라고 하는듯


  ['온누리교회' 앞]                 10:00        
  <지평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지평우체국>과 <온누리교회>가 있으며
  옛길은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가라고 합니다.


  ['지평막걸리' 조망]

  [옛 '지평막걸리 양조장']              10:02         
  골목으로 들어 가면 "지평막걸리 옛 양조장"이 있는데 
  <등록문화재 제 594호>로 지정되었답니다. 현재 개보수공사를 하고 있군요.
  1925년에 동네 술도가로 출발했다는데, 이곳 지하 30m에서 나오는 우물로 막걸리를 만들었답니다.
  예전엔 술도가가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이었죠? ㅎ
  6.25 때에는 UN군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는군요.
  막걸리로 떼돈을 벌어서 여기 본사는 문화재로 남기고 
  공장은 <춘천시 동춘천산업단지>에 새로 엄청난 규모로 지어 이전했는데, 다시 제3공장을 건설한다고....
  우리가 요즘 마시는 <지평막걸리>는 이젠 <지평막걸리>가 아니고 <춘천막걸리>가 되었습니다.
  이름만 <지평막걸리>인거죠.
  막걸리 돗수를 6도에서 5도로 낮추어서 마시기 편해졌다고 유명해져 매출이 백배이상 늘었다고 하는데...
  알콜도수 낮춰서 원가 낮아지고 많이 마시게되니 판매량 늘어 일거양득 떼돈을 벌게 된 사연이 아닐까


  ['지평중고등학교']           
  <지평양조장> 앞에는 <지평중고등학교>가 있고
  골목을 통과하여 잠시 진행하면...


  ['지평면사무소' 조망]

  ['지평면사무소']               10:08         
  "지평면사무소"를 만납니다.
  옛날엔 <지평군>이었는데 <양근군>과 합쳐져 <양평군>으로 통합되었다죠.
  이젠 <양평군>에 속하는 인구 6 ~7,000명의 조그만 마을일 뿐이지만 옛날엔 군 소재지였으니...
  아 ! 옛날이여 ~~


  ['341번국지도']               
  <지평면사무소>에서 다시 <341번국지도>를 만나 동쪽으로 6분 정도 진행하면...


  ['햇골마을' 입구]               10:14            
  <석불역>으로 가는 옛길은 <햇골마을>로 안내됩니다.


  ['햇골마을' 가는 길]               10:16           
  이어서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햇골마을>로 진행해야 하더군요.
  <341번국지도>가 새로 생기기 전엔 이 길이 <평해로>로서 <지평천>을 따라 직진했답니다.
  <평해로 걷기코스>도 이 길을 중심으로 하여 걷기 좋은 곳으로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햇골']                
  몇 가구 정도만 보이는 <햇골>을 10여분 진행하면....


  ['동원농장' 입구]                  10:25         
  갑자기 견공들이 요란스럽게 환영하는 곳에 도착하는데
  앞에는 <동원농장 정문>이 있습니다.


  ['동원농장' 정문]                        
  <동원농장> 정문 앞에서 옛길은 좌측으로 안내되고


  [시멘트도로]

  [도로 종점]                10:31          
  시멘트포장도로를 5분 정도 올라 가면...
  도로가 끊기고 <배미산 능선 고개>로 올라 가는 산길을 만납니다.


  [마대길]

  ['배미산 능선길']                    
  오름길에는 마대를 깔아 길찾기는 쉬웠고, 
  이어서 <배미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을 잠시 올라 가면


  [갈림길]                    10:39          ★ 길조심 ★       
  갈림길 고개를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리본 하나가 길안내를 할뿐 관심 가지지 않으면 직진하기 쉽더군요.
  저도 모르고 직진했다가 리본이 안보여 되돌아 와서 좌측으로 내려 갔습니다. 
  이 능선 밑으로 <중앙선 지평터널>이 뚫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배미산 정상>을 다녀 오기엔 시간상 어려워 
  예전에 촬영한 사진으로 <배미산 정상>과 <배미산의 유래>를 참고용으로 대신 합니다.
  
                 
     
     ['배미산 등산안내도']         (예전 촬영한 사진)              
     "배미산 396m"
     기원전 2,300년 경..그러니까 약4,300년전에 9년 동안 대홍수가 있었는데
     그때 산 정상까지 물이 차올라 정상에 배를 붙잡아 메는 바위가 있었다고 <배미산>이라 한답니다. 
     또한 6.25때 중공군과 3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고...


  [내림길]                       
  5분여 내림길을 내려 가면...



  [민가]                10:45         
  민가가 한채 있으며 이정표가 설치되 있습니다.
  이 이정표는 조금전 능선 고개에 설치해야 할듯...


  [내림길]

  ['341번국지도' 만남]                 10:50          
  내림길을 5분 정도 내려가면 헤어졌던 <341번국지도>를 다시 만나고


  [사거리]

  ['중앙선' 굴다리]                  10:53              
  이어서 <지평천>에 다리가 있는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설치되 있습니다.
  우측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하여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석불역' 조망]                   10:55

  ['KTX']      
  드디어 <석불역>이 보이기 시작하며
  때마침 [KTX]가 굉음을 내며 <배미산 지평터널>을 뚫고 나옵니다.


  ['망미산 (서돌산)' 조망]

  ['7코스 종점' '8코스 시점']            10:58~11:21 (23분간 휴식)    
  <석불역> 앞에 있는 "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 종점"이며
  "평해길 제8길 고래산길 시점"에 도착했습니다.
  <제7길 지평향교길>을 마치고 <제8길 고래산길>을 계속 이어 갑니다.
 
  『경기옛길-평해길』
 『제8길 고래산길』  

  ['구글어스' 실트랙]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8코스 고래산길' 안내도]                          
  <고래산 임도>를 걷는 『제8길 고래산길』 출발지입니다.
  <고래산길>은 농로와 임도를 걷는 구경거리 없는 길이어서 단순무식한 길이더군요. ㅎㅎ


  ['석불역' 가는 길]                11:21          
  <평해길 쉼터>에서 <평해길>은 직진하지만
  <제8길 고래산길>의 출발지인 <석불역>을 다녀 오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방향 플렛트홈 출입문]        
  <석불역>은 하행선 플레트홈과 상행선 플레트홈 사이을 지하통로로 연결했더군요.
  우측 문이 상행선 서울방향 플레트홈 출입구인데 열차 시간 15분 전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하루에 9번 열차가 정차하기에 거의 하루 종일 문을 닫고 있는거죠.


  [지하통로]                    
  지하통로를 이용해 건너 가면....


  ['석불역' 앞 '망미2리']           
  <지평천>과 <망미2리 마을>이 펼쳐지고
  이 마을 이름은 "망미리"인데 한자는 일제시대 변형되어 "망미리 望美里"가 되었지만
  <대동여지도>나 <해동지도>등에는 "망미리 望彌里"로 표기되 있답니다.



  ['석불역']          
  "석불역 石佛驛"
  이 역은 "중앙선 용문-서원주 간 복선전철" 개통으로 2012년 9월에 새로 만든 역이랍니다.
  폐역이 된 <옛 석불역>은 잠시 후 <망미1리> 테니스코트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 역 대합실은 플레트홈과 연결되 있지 않은 단순 대기실이었고, 플레트홈으로 가는 통로는 역 옆에
  있는데 하행선은 바로 옆이고 상행선은 지하통로를 지나 조금전 출입문으로 가야 하더군요.
  이 마을 앞에 있는 산이 지도에는 "서돌산"이라고 표기되 있지만 
  <대동여지도>나 <해동지도>등에는  "망미산 望彌山"으로 표기되 있으니  
  "석불 石佛", 즉 <미륵보살>을 바라보는 산과 마을이라는 "망미산 望彌山"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듯..
  윗 스토리텔링에도 약간 언급이 있으니 안내문과 비교하며 참고하고...
  현재 "망미산 望彌山 (서돌산)" 정상에는 "느보산 342m"이라는 정상석을 세워 놨답니다. 
  <느보산>은 이스라엘 요르단강변에 있는 산으로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산이죠.
  이 산 중턱에 <여의도순복음교회 기도원과 묘지>를 조성하며 그들이 작의적으로 지은 산이름이랍니다.
   실제 이 역 뒷산에서 고려시대 제작 된것으로 보이는 <석불 石佛> 두개가 발견되어  
   <미륵보살>을 바라보며 구원을 바라는 "망미산 望彌山"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망미산 望彌山 (서돌산)" 정상에 있는 <양평군 안내문>을 첨부하니 참고하시고
         


  ['고래산' 가는 길]           11:28           
  <석불역>을 둘러보고 <제8길 고래산길>을 이어 시작합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341번국지도>와 <345번국지도>가 분리되는 고가도로 있는 곳에서 옛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망미1리>로 들어 갑니다.
  새로 건설된 <중앙선>은 직진하고 <옛 중앙선>은 우측으로 돌아 가더군요.
  사진 속의 우측 공터가 <옛 중앙선>이더군요.
 

  ['지평천 제방길']                   11:31        
  <지평천>을 따라 <고래산>으로 갑니다.
  잠시 진행하면...


  ['옛 석불역 (폐역)']                11:33          
  뜬금없이 제법 큰 규모의 테니스장이 이 농촌에 나타납니다.
  이 테니스장의 이름이 "지평테니스여행"이라는 테니스장이었는데, 오늘이 평일이고 코로나시대 인데도
  무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테니스를 즐기고 구경하는 사람도 의외로 매우 많았습니다.
  이곳이 바로 폐역이 된  "옛 석불역 舊 石佛驛"  자리이더군요.
  폐역이 된 역과 역 앞 공터에 테니스장을 만들었더군요.
  <舊 石佛驛>은 느리게 달리던 중앙선의 수많은 나그네들의 추억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진 빨간색 지붕의 <新 石佛驛>만이 [KTX]가 지나는 <石佛驛>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고래산' '우두산' 조망]                 11:41       
  <옛 석불역>에서 조금 더 농로를 진행하면 <고래산>과 <우두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보아야 산의 모양이 고래를 닮았는지, 소를 닮았는지 쬐끔 느낄수 있겠더군요.
  "고래산 高崍山 541.4m"은 "고래를 닮았다"고 하고, 
  "우두산 牛頭山 484.4m"은 "소머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동의 하시나요? ㅎ
  저 산 너머에는 <여주시>가 붙어 있습니다.
  <고래산>과 <우두산> 우측 사이에는 <양평TPC골프장>이 있는데 홀인원을 한 추억의 골프장입니다. ㅎㅎ


  ['옛 중앙선 철교 교각']             11:47             
  이어서 <옛 중앙선>이 지났던 철교 교각이 <지평천>에 추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었고...
  그러니까 <옛 중앙선>은 <석불역>에서 이 교각을 통과하여 좌측에 있는 <서돌산-망미산>의 <망미터널>을
  통과하여 <구둔역>으로 갔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삼거리]                     11:48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 <고래산 임도 입구>로 좌회전 합니다.


  ['고래산 임도' 가는 길 조망]            
  <망미1리> 마을이 조망되며 <고래산>과 <우두산>이 다가 옵니다.
  농로를 5분여 진행하면...


  ['341번국지도' 만남]                11:53      
  헤어졌던 <341번국지도>를 다시 만나며
  바로 우측에 <고래산 임도 입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래산 임도' 입구]                11:54            
  <고래산 임도 입구>에는 <백운정사>로 가는 안내판과 함께 이정표가 있습니다.
  "산책하는 달팽이"라는 산책로 안내가 재미 있습니다. ^*^
  오늘 산행을 마치고 돌아 올때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앞에 보이는 <망미1리>를 다녀 가더군요.


  ['고래산 임도' 입구]                  
  "산책하는 달팽이"라는 산책로와 함께하는 <평해길>입니다.
  본격적으로 <고래산> 속으로 올라 가게 됩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가면...


  ['백운정사']                 12:05           
  <백운정사>라는 조그만 절간을 만나는데 자동차가 있는 길로 100m 정도 더 올라 갑니다.


  [주택]                 12:07          
  그러면 전망 좋은 곳에 주택을 마련한 멋진 곳을 만나는데 여기서 지나온 길이 조망되었습니다.


  ['석불역' 조망]                          
  지나온 <석불역>과 <배미산>, <용문산>까지 거침없이 보이는군요.
  특히 <용문산 능선>은 <한강기맥>으로서 <북한강>과 <남한강>의 水界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래산 능선' 고개]                  12:09            
  주택 바로 옆에는 <고래산 능선>을 넘는 고개가 있었습니다.
  오르는데 체력 소모가 많을줄 알았는데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행 ㅎ


  [고개 앞 임도]                      
  고개를 넘으면 바로 <고래산 임도>가 좌우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정표가 없더군요.
  당연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고래산 임도']                   
  길고 긴 <고래산 임도>가 이어집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산림이 우거져 조망도 없는 갑갑한 임도를 홀로 외롭게 걸어야 합니다.


  [이정표]                  12:19              
  10여분 진행하면 이정표 하나가 볼거리라고 서 있는데
  임도 입구에서 0.6km를 진행했으며 앞으로 7.3km를 더 가야 한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평해길 쉼터']                12:36~12:48               
  이정표에서 17분 정도 더 진행하면...
  <고래산 임도 7.9km>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는 쉼터 정자를 만납니다.
  장의자는 몇군데 있습니다만 정자 쉼터는 이곳이 유일하더군요.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고래산 정상' 조망]                             12:51

  ['고래산 등산로 입구 사거리']                1:03         
  <고래산 정상>인듯한 봉우리가 보이는 곳 밑을 지나면
  "고래산 등산로"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좌측 아래에 있는 <무왕리>에서 <고래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더군요.


  ['고래산 등산로']                    
  <고래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보기만 하고


  [이정표]                      1:15          
  임도를 12분 정도 진행하면 다시 <고래산 정상 1,8km>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등산로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지루한 임도를 40여분 더 진행하면....



  [이상한 길안내판]                 1:52         
  방향 표시가 좀 이상한 이정표를 만나는데
  <임도 출구>가 바로 앞에 있는 곳으로 오해하기 쉬웠습니다.
  우측 임도를 따라 600m 정도 더 진행하면....


  [조망이 트이기 시작]

  ['구둔역' 조망]              2:02         
  처음으로 임도에서 외부 세계가 조망되는 곳을 만나는데
  바로 아래에 주택이 있고 멀리 <구둔역>이 보이는군요. 이제 종착지가 다가 옵니다.
  임도를 탈출하는 곳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임도 탈출 갈림길]                 2:03        ★ 길조심 ★ 
  조망이 트이는 곳 바로 옆에 <고래산 임도>를 탈출하는 출구가 있었는데 
  이정표도 없고, 리본은 나뭇닢 사이에 파무쳐 보이지 않아서 직진하기 쉬웠습니다. 
  GPS 트랙이 없으면 무조건 직진하겠죠? 그러니 <경기옛길 앱>을 다운 받아 가면 편리하겠습니다.
  후답자들은 이곳을 꼭 기억하고 가야 하겠습니다.


  [민가]                  
  임도 바로 아래엔 민가가 있고 내림길은 포장도로가 <345번국지도>까지 이어져 있어 길찾기는 쉬었습니다.
  8분여 포장도로를 내려 가면...


  ['345번국지도' 만남]                 2:11       
  <345번국지도>를 만나는데 <구둔역>은 좌측 방향에 있지만, 우측으로 가라고 합니다.
  우측으로 200m 정도 진행하면...


  ['구둔 쪽다리 버스정류장']                 2:15         
  "구둔 쪽다리"라는 안내석이 있고 "일신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지역의 대중교통 사정이 나빠 미리 버스시간과 열차시간을 조사했습니다.
  <일신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열차는 <13:05 17:09 19:09>에 있어 이 시간엔 적당한 열차가 없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조사해 봤더니 <여주 ↔ 용문>을 운행하는 <여주시내버스 987-3번>이 이곳을 2시20분에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바로 버스를 탈수 있었습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일신역>으로 가서 <17:09 열차>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용문역>으로 가야 하더군요.


  ['구둔쪽다리' 조망]                              
  <8코스 종점>인 <구둔역>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9코스 구둔고갯길>이 지나는 길이므로 다음번에
  <일신역>에서 <구둔역>을 통과하여 가는 길과 근접하므로 그 때 걷기로 하고 
  여기서 버스를 타기로 한 것입니다. 


  ['구둔역''일신역' 조망]            
  20여분만 조금 빨리 오면 <구둔역>까지 갔다가 나와 다음 정류장인 <일신1리 버스정류장>에서 
  <일신역>을 돌아 나오는 버스를 <2시30분>에 탈수 있으니 후답자들은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여기서 <구둔역>과 <일신역>을 조망하고 바로 <987-3번 버스>가 <2시 20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여
  

  ['987번 버스']                 2:21             
  승객이라곤 딸랑 혼자인 텅빈 <987-3번 버스>를 전세 내 <용문역>으로 37분 정도가 걸려 가서
  식사를 하고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귀가 했습니다.
  다음 <9코스>는 <청량리>에서 열차를 이용해 <일신역>으로 가고 <구둔역>에서 출발할 예정입니다.


  ['7~8코스 전체 실트랙']            
  오늘 걸은 거리는 21.6km 였으며 6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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