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의 유적을 찾아서"
[한성백제왕도길] 한성백제를 가다 답사기
천호역-풍납근린공원-풍납토성-풍납재래시장-경당지구-백제문화공원-풍납토성-
백제우물-성내교-몽촌정-올림픽파크텔-곰말다리-몽촌토성-몽촌역사관-백제집자리전시관-
야생화학습장-한성백제박물관-방이동고분군-석촌동고분군-석촌호수-삼전도비-잠실역
고구려의 시조 "주몽"....
'졸본부여'의 여인 "소서노"
그들 사이에서 탄생한 "비류"와 "온조"
그리고 "百濟"
오늘은 "백제"의 발상지 '하남위례성'이라고 추정되는 곳을 속하는
[서울 송파구-한성백제왕도길]로 도보 여행을 떠납니다
['송파구 유적 위치도']
'서울특별시 송파구'는 "한성백제시대 도읍지"라고 추정되는 유적이 있는 곳이죠.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그것이랍니다.
그리고 그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는데
"방이동 고분군"과 "석촌동 고분군"이 대표적이라 합니다.
특히 "석촌동 3호고분"은 '백제'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근초고왕의 왕릉"으로 추정된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의 비극....치욕의 "삼전도비"가 있는 "송파구"로 여행을 떠납니다.
['한성백제왕도길' 안내도>
'송파구'에서 [역사 문화 탐방길]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답사 할수 있도록
[한성백제왕도길]이라는 길을 만들어 놨더군요.
코스는 [천호역 10번출구]에서 출발하여 [풍납토성-몽촌토성-방이동고분군-석촌동고분군-석촌역]까지로
거리는 약9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만, 저는 [삼전도비]를 경유하여 [잠실역]까지로 연장하여 진행하였는데
GPS로 측정된 거리는 약13km였으며 4시간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천호역 10번출입구'] 10:26
2017년 5월 20일 (토) 맑음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과 '송파구 풍납동'의 행정구역 경계에 있는 [천호동 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천호동 사거리]에 있는 [지하철 5호선 8호선 천호역]에 내려서...
['천호역 10번출입구']
[천호역 10번 출구]로 나가 [천호대교] 방향으로 40m쯤 직진하면...
['풍납근린공원'] 10:27
"풍납근린공원"을 만납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풍납토성"의 입구 이기도 합니다.
"풍납동 風納洞"
글자 그대로 '바람이 많이 불어 들어 오는 곳'이라고, "風納洞"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근린공원엔 풍차와 바람개비가 돌아 가고 있고...
['풍납근린공원 화장실'] 4분간 여행준비
"풍납근린공원"에는 화장실과 휴식시설이 있는데
화장실 옆으로 돌아 들어 가면...
['풍납토성'] 10:31
"풍납토성 風納土城"을 만납니다.
"백제 百濟"
678년 동안 존속한" 백제"는 그 역사의 전개과정을 수도 변천을 중심으로 보면
제1기 : 한성도읍기(漢城都邑期: 기원전 18∼기원후 475),
제2기 : 웅진도읍기(熊津都邑期: 475∼538),
제3기 : 사비도읍기(泗沘都邑期: 538∼660)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제1기 : 한성도읍기"의 왕궁이 이곳 "풍납토성" 일것이라고 똑부러지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합리적 추론을 할수 있다는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한성백제 중심 유적지"를 답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풍납토성' 안내문]
"풍납토성"에 대한 공식적 안내는 위의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저는 조금 더 깊이 있게 디테일한 내용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풍납토성"이 이천여년의 세월을 벗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 동기부터 알아 보겠습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城인지 뭔지도 모르는 언덕배기 속에 뭍혀있던 토기, 항아리, 기와등이
무더기로 지상으로 올라와 이곳이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는 "한성백제"의 진원지가 아닌지 의심하고
그이후 발굴을 하게 되었고, 발굴 결과 '삼국사기'에 기록된 "하남위례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기원전 18년에 한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도읍으로 정한 곳이란거죠.
['풍납토성' 단절지점] 10:33
[풍납근린공원]에서 "풍납토성" 옆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토성이 끊어지고 도로와 시장을 만납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 가게 되는데...
['풍납재래시장']
"풍납토성"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인데 城 안에는 재래시장이 왁자지껄...
이 시장이 "풍납재래시장"이라고 하는데 "풍납동 도깨비시장"이라고도 하는 곳이랍니다.
갑자기 길찾기가 어려워 집니다.
[한성백제왕도길]에는 그 어떠한 길안내 표지판도 없습니다.
그러니 미리 열심히 공부를 하고 가야 하는데 그런 자료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한성백제왕도길]은 여기서 시장 안으로 3~40m 직진해 들어 갑니다.
[시장삼거리] 10:38 ★ 길조심 ★
길조심을 해야하는 시장 안 삼거리를 만나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형제쌀상회"가 있는 곳입니다.
저도 여기서 직진했다가 알바를 하고 다시 돌아 와서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갔으니
후답자들은 조심하시기 바람니다. ㅎ ^*^
[골목]
"형제쌀상회"에서 좌회전하면 시장을 벗어나 주택가 골목이 이어집니다.
100m정도 진행하면...
['경당지' 후문] 10:40~10:47
별도의 안내가 없는 "경당 후문"이 우측에 나타나는데 모르고 가면 그냥 지나 칠듯합니다.
길안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고 가는게 좋겠습니다.
['경당터']
"경당"
"경당"이 있었던 곳이라는데 "경당"은 '국가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전' 같은거라고 합니다.
또한 이곳이 [풍납토성]의 "왕궁터"라고 추정 된답니다.
그렇다면 "온조"가 이곳에 거주하며 나라를 건립 하지 않았을까
"백제"의 혼이 살아 움직이는듯 하군요.
['경당' 안내문]
"을축년 대홍수"로 이천여년의 베일을 벗은 "풍납토성과 경당".
일제시대였던 1925년에 발생했던 어마어마했다는 "을축년 대홍수"에 대해 잠시 알아 보겠습니다.
1925년 여름에 대홍수가 일어 났는데 네번 연이어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쳤다는군요.
첫번째 : 7월 7일 태풍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관통해 지나 가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는데
이때는 '낙동강유역'이 제일 큰 피해를 입었고 '한강유역'은 수위가 10.57m 였답니다.
두번째 : 이어서 7월 15일에서 18일까지 4일 동안 다시 엄청난 태풍이 불어와 '중부지방'을 관통했는데
비가 어느 정도 왔는지 쉽게 이해 할수 있게 말하자면 "숭례문"이 잠길 정도였다니
어느 정도 인지 이해 할수 있죠? 우리는 이때를 주로 "을축년 대홍수"라고 하는데...
7월7일 비가 엄청나게 내려 피해를 입고 있는데 다시 일주일만에 이런 비가 내려 홍수가
발생해서 업친데 덮친격으로 피해가 더더욱 컷답니다.
그리고 '한강유역'의 지형이 완전히 바꼈다고 하는데...
현재의 잠실지역은 지금의 '여의도'와 같이 "잠실섬"이라는 이름의 섬이었는데
"잠실섬"과 "송파" 사이에 흐르던 샛강이 "송파강"으로 원래 '한강'의 본류였는데
홍수로 본류가 현재의 본류인 북쪽으로 바뀌고 "송파강"이라는 한강의 본류가 없어지고
"송파강"이라는 본류 한강의 흔적은 현재의 "석촌호수"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석촌호수"는 1925년 이전까지는 '한강'의 본류가 흐르던 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뚝섬지역"이 "뚝섬"이라는 섬었는데 이 홍수로 오히려 섬이 육지에
붙어 버려서 현재는 섬도 아닌데도 현재까지도 "뚝섬"이라고 하는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북한산성'의 행궁들과 성곽등도 유실되어 사라지는등 문화재가 엄청나게 타격을 입었지만
하지만 이때의 대홍수로 이천여년의 베일을 벗고 우리에게 나타난
"풍납토성"과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발견되었으니 다행이라 해야하나...불행이라 해야하나..
당시의 지형과 '을축년 대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역 지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잠실섬"과 "송파강"을 유의하여 보시기 바람니다.
세번째와 네번째 " 8월과 9월초에도 큰비가 내렸답니다. 이 "을축년 대홍수"로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6천여 호의 가옥이 유실되고, 1만 7천여 호의 가옥이 붕괴되고,
4만 6천호의 가옥은 침수되었고, 3만 2천단보의 논과 6만 7천 단보의 밭이 유실되었답니다.
홍수로 인한 피해액만 1억 300만원에 달하였다는데
이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1년 예산의 58%에 달하는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경당' 정문]
"을축년 대홍수"로 베일을 벗은 "경당"
"경당지구"를 답사하고 정문으로 나와 "풍납백제문화공원"을 다녀 와야 하겠습니다.
"경당 정문"에서 가는 길을 보면...
['경당' 정문앞 사거리] 10:47 ★ 길조심 ★
위의 사진의 반대 방향인 "경당 정문"에서 바라보면 앞에 사거리가 있는데
화살표 방향으로 "풍납백제문화공원"을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하더군요.
['풍납백제무화공원' 입구] 10:49~10:55
[한성백제왕도길]에는 공식적으로 들어 있는 답사지는 아니지만
꼭 가봐야 하는 "한성백제 유적지"라고 생각되어 다녀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 가면...
['풍납백제문화공원']
예상보다 훨씬 넓은 유적지가 공원화 되어 펼쳐 집니다.
['풍납백제문화공원' 안내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시고...
['지상식건물지']
[안내문]
이곳이 '왕궁터'라고 짐작된다는 '지상식 건물지'가 상당한 규모로 있는데
"공주산성"의 왕궁터와 비슷하다고 하는군요.
['풍납토성' 모형과 유물 발굴위치]
그리고 "풍납토성"의 모형을 만들어 유물이 발굴된 지점등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 중에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등이 발견 될 정도로 생활 수준이 높아
왕족등 엄청 부유층이 살았던 왕궁터로 추정한답니다.
['풍납토성' 발굴조사 현황도]
[현위치]가 빨간색으로 표기된 "풍납백제문화공원"입니다.
제가 답사한 루트는 빨간색선으로 표기했으니 참고하면 되겠는데
[풍납토성]은 한강변에 "ㄷ자 모양"으로 축성했다는 것을 알수 있고
현재는 성 안에 아파트등 주택들이 점령하고 있어 좀 아쉽고
'토성'과 '경당' '문화공원'만이 복원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안내도를 보고 "백제우물"이 어디 있는지 감을 잡고 가는게 좋습니다.
['경당' 정문 앞 사거리 회귀] 10:57
다시 "경당 정문" 앞에 있는 사거리로 돌아와 "경당" 옆길로 나가서
['풍납토성'으로 나가는 길]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풍납토성' 입구] 11:03
"풍납재래시장"에서 끊어졌던 "풍납토성"이 다시 시작되는 곳에 도착합니다.
['풍납토성']
복원된 "풍납토성"을 따라 4분여 진행하면...
[도로] 11:07
'풍납동'과 '도심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너고...
['풍납토성']
다시 "풍납토성"을 따라 5분 정도 진행합니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수원화성'등 조선시대 城과는 비교되는 고대 토성이라
새로운 느낌을 받습니다.
[도로] 11:12
"풍납토성" 안의 '풍납동'과 도심을 연결하는 제법 넓은 도로를 다시 만나는데
행단보도를 이용하여 도로를 건너 가서
['풍납토성'] ★ 주위 - '백제우물' 조망 ★
다시 "풍납토성"을 따라 진행합니다.
여기서 유의 해야하는 것은 "백제우물"을 구경하고 가는 것입니다.
모르고 가면 무조건 그냥 지나칠수 있으니 관심 가지고 가야 합니다.
['백제우물']
"백제우물"은 "송파 헤모로 아파트 102동"앞에 있습니다.
'풍납토성'으로 현장 답사를 나온 학생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아마 숙제인듯...
['백제우물'] 11:19
['백제우물' 안내문]
우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오랜 세월 숱한 왕조의 흥망성쇠와
끊임없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아름다운 옛 풍광은 잃었으나
풍납토성 언저리인 내부와 외부에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취가
소중하게 담겨있다
우물에서 많은 백제시대 유뮬이 나와서 귀중한 문화재가 되었답니다.
현재는 우물 속에 물은 없었고 물을 떠서 주는 아낙네 조형물이 있습니다.
[도로] 11:24
토성 안의 '풍납동'과 도심을 연결하는 가장 큰 도로를 만나고 횡단보도를 이용해 건너 갑니다.
좌측으로 가면 [풍납사거리]이더군요.
['풍납토성']
다시 "풍납토성"을 따라 진행하는데 "풍납종합사화복지관" 건물을 만나고
그뒤로 '롯데월드'와 우측엔 '아산병원'이 조망됩니다.
"풍납토성"은 '아산병원' 앞 '올림픽대교' 도로에서 우측으로 휘어집니다.
['풍납종합사회복지관'] 11:30
"풍납토성길"에서 "몽촌토성"으로 가려면
"풍납종합사회복지관" 샛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고
[근린공원]
"풍납종합사회복지관" 샛문을 통과하면 조그마한 근린공원이 있으며
['올림픽대교 남단사거리' 방향] 11:32
"아산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는 "약방 거리"
"올림픽대교"와 연결되는 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3분 정도 진행하면...
['올림픽대교 남단사거리'] 11:35
[오림픽대교 남단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우측 '잠실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갑니다.
['잠실사거리' 방향]
좌측에 "칠지도 조형물"이 보입니다.
뒤로 보이는 "올림픽파크텔"로 가야 합니다.
['칠지도']
백제가 일본에 하사했다는 "칠지도 조형물"입니다.
백제의 철기문화를 상징하는 칼이죠.
['성내교'] 11:41
"성내교"를 만나는데 다리 밑으로 길을 건너 갑니다.
['성내교' 다리 밑 통과]
"성내교" 다리 밑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구중교']
"성내천"을 건너 "몽촌토성' 안으로 들어 가는 "구중교"라는 다리를 건너 갑니다.
다리를 건너 좌측에 있는 "몽촌정"에 들렸다가 "올림픽파크텔" 앞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몽촌정'] 11:45~11:57 12분간 간식및 휴식
"몽촌정 夢村亭"
夢村이라고 하면 '꿈꾸는 마을'로 해석될수 있지만 지명의 유래는 상식을 벗어 나더군요.
두가지의 유래가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가 '망월봉이 솟아 있는 마을'이라하여 "망달(망월)마을"이라고 불리워지다가 음운변화로
"멍마을.멍말'등으로 불리워지다가 한자음 표기 때에 "夢村"으로 바뀌었다는군요.
두번째는 옛날 삼한시대에 이곳을 "검마을" "곰말"이라고 불리워 졌는데 "곰"이 "꿈"으로 변하여
"몽촌"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어찌 좀 이상한데 공식적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믿어야지요 ㅎㅎ
['곰말다리' 조망]
"몽촌정"에서 서쪽으로 "곰말다리"가 보입니다. 저 앞으로 가야 하고요.
여기서 "성내천"에 대해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왜냐하면 "몽촌토성"을 알기 위해선 "성내천"을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내려 오는 이 개천은 "몽촌토성" 근처를 흐르는데
"몽촌토성"을 축성할때 성곽 방어를 위해 토성의 외곽을 휘돌아 나가도록 하여 이중 방어선을
만들어서 "성내천"이라고 한다는데 한자로 쓰면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城內川"으로 쓰니 확실히 알수 있죠?
['올림픽파크텔' 앞]
"올림픽파크텔" 앞을 지나면
['곰말다리'] 12:02
"올림픽공원 정문"에서 "몽촌토성"으로 연결되는 "곰말다리"를 만나 건너 갑니다.
['올림픽공원 호수]
"곰말다리" 위에서 "성내천"이 만드는 "몽촌호"와 음악분수대가 있는 수변무대가 멋있게 보이고
['몽촌토성' 입구] 12:03
"몽촌토성"으로 들어 가는 입구를 지나 올라 가면....
['몽촌토성'] 12:05
"몽촌토성"에 도착하는데, [한성백제왕도길]은 좌측으로 토성 위를 돌아 가도 되지만
[토성 안길]
토성 안을 가로 지르는 안길을 이용하여 "몽촌역사관"으로 진행합니다.
['산수유길' 사거리] 12:09
[산수유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면
[피크닉장]
단체 피크닉장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고
[현위치 안내도]
"몽촌토성"에서는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되겠습니다만
처음 가시는 분들은 "몽촌역사관"과 "한성백제박물관" 만큼은 다녀 가야 겠습니다.
[피크닉장]
다체 행사객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피크닉장 뒤로 "몽촌역사관"이 보입니다.
['몽촌역사관'] 12:17~12:25
"몽촌역사관"
'암사동'의 선사시대, '명일동-가라동-역삼동'의 청동기시대,
백제의 도읍이었던 '풍납토성-몽촌토성'등을 소개하는 역사의 타임캡슐이라고 자랑
['몽촌역사관' 내부]
여느 역사관과 비슷했는데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많이 나왔더군요.
간단하개 역사관을 둘러 보고
[산책로]
"몽촌토성"의 남쪽 문 방향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우측에 나무 바리게이트가 보이는데 "몽촌토성"의 남쪽에는 "성내천"이 없어 방어를 위헤
별도로 저런 나무 바리게이트를 쳤다고 하는군요.
['88올림픽 수영장'] 12:30
"몽촌토성"의 끝지점에 도착하면 성밖에 "88올림픽 수영장"이 보이는데
[한성백제왕도길]은 여기서 우측 토성으로 올라갑니다.
['백제집자리 전시관' 가는 길]
"백제집자리전시관"으로 올라 갑니다.
코스푸레하는 여자들이 기모노를 입고 쑈를 하는군요.
['백제집자리 전시관'] 12:35
"백제집자리전시관"을 지나
['88마당'과 올림픽경기장들]
"몽촌토성" 성곽 위에서 "올림픽공원"을 바라봅니다.
"올림픽체조경기장"과 "올림픽헨드볼경기장"등 올림픽 경기장들이 자리 잡고 있고
뒤로 보이는 산이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입니다.
['야생화 학습장']
['야생화 학습장' 사거리] 12:41
"야생화학습장"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갑니다.
[순환로]
"몽촌토성"을 전체적으로 둘러 보려면 무척 많이 걸어야 하겠더군요. 규모가 커서...
[올림픽공원 호수] 12:49
"몽촌호수" 서남쪽에 도착해서 조망을 하고
[조형물공원]
조형물공원을 지나면
['한성백제박물관'] 12:53~1:10
"한성백제박물관"에 도착합니다.
예상보다 상당한 규모인데 조목조목 둘러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하게 한바퀴 빙 둘러 보고 가겠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 로비']
박물관 로비인데 규모가 커서 간단하게 돌아 보기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군요. ㅎ
['온조'의 남하 장면 모형]
전시된 많은 유물들에 대해선 지식이 없어 그냥 지나치는데 이 모형은 관심이 가더군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졸본부여"의 여인인 "소서노"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비류"와 "온조"가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따뜻한 땅을 찾아 가는 상황을 모형으로 만들어 놨군요.
"비류"는 배를 타고 내려와 지금의 "인천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온조"는 육로를 이용해 이곳 "한강유역"으로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였답니다.
['비류'가 타고 왔을 배 모형]
"비류"가 타고 왔을 모형 배가 눈길을 끌고
[칠지도]
"백제"가 일본"의 형님 나라라고 자부하는 '철기문화'의 화려한 상징인 "칠지도"가
자랑스럽게 전시되 있습니다. 물론 모형이지만...
오리지날 "칠지도"는 일본 "이소노가미 신궁[石上神宮]"에 봉안되 있는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 있습니다.
"칠지도"가 유명하게 된 것은 칼의 앞뒷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죠.
<앞면〉 泰△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銕七支刀出(生)辟百兵宜供供侯王△△△△祥(作)
〈뒷면〉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우리말로 해석을 하면
〈앞면>
태△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 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가 만들었다.
〈뒷면〉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한성백제박물관' 출입구] 1:12
박물관을 나가 올림픽공원을 나가는 "한성백제박물관 출입문"을 통과하여 길을 건너
[방이초교삼거리] 방향으로 갑니다.
['방이동 고분군' 가는 길]
"한성백제박물관 출입문"을 나와 길을 건너 [방이초교삼거리]로 가는 길인데
[방이초교삼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고
['방이초등학교' 앞]
"방이초등학교 버스정거장]을 지나 10여분 직진하면...
['방이동 고분군'] 1:23
좌측에 "방이동 고분군"을 만나는데
['방이동고분군 사거리'] 1:24
[방이동 고분군 사거리]에서 좌측 "방이동고분군"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 직진해 가야 합니다.
좌측으로 50m쯤 가면
['방이동 고분군' 정문] 1:26~1:36
[고분]
[안내문]
"방이동 고분군"
자세한 내용은 안내판을 참고 하시고...
"방이동 芳荑洞"의 지명의 유래를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방이동"은 원래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를 사용하는 "오랑캐를 막는 곳"이라는 뜻이었답니다.
이 주변 동네들의 유래는 대부분 "병자호란"에서 유래한다고 하지요?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인조"를 잡으로 진을 친 '청나라군'을 방어 하자는 곳이었다는 뜻이랍니다.
'청나라' "누루하치"가 오랑캐였으니...."누루하치"의 뜻은 "맷돼지 가죽"이라는 몽골어라죠?
동네 이름이 좀 전투적이고 치욕의 기억을 일깨운다고 1914년 지명 개정 때에
동네 이름을 좀 예쁘게 "꽃다울 방(芳)", "흰비름 이(荑)"로 고쳤다고 합니다.
['송파2동' 통과] 1:41
"방이동 고분군"을 나와 [송파동]을 통과해 15분 정도 진행하면....
['송파사거리'] 1:51~1:56
[송파대로]가 지나는 [송파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도 [석촌동] 방향으로 직진해 갑니다.
이 사거리엔 "송파유래비"를 세워 놨는데 지명의 유래는 없고 동네 자랑만 늘어 놨더군요.
"송파동 松坡洞"
'고개'를 나타내는 단어는 많습니다. "재, 티, 현, 치, 령....등등"
그런데 "파 坡"도 고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송파"는 "소나무 언덕 고개"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롯데월드' 조망]
[송파사거리]에서 가까이 있는 "롯데월드"를 조망하고
[석촌동]을 15분여 통과하면...
['우리은행 가락동지점' 앞] 2:09 ★ 길조심 ★
"우리은행 가락동지점"을 만납니다.
은행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가면....
['돌마리어린이공원'] 2:13
"돌마리어린이공원"을 만나는데
공원 안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가 우측으로 가면....
['석촌동 고문군' 조망] 2:14
"석촌동 고분군"이 보이기 시작하고
['석촌동 고분군' 입구] 2:15~2:22
[안내문]
"석촌동 고분군"으로 들어 갑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백제식 고분]
[고구려식 고분]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인데 계단식으로 만들어 "한국의 피라밋"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답니다.
['3호분']
['근초고왕릉'으로 추정하는 안내문]
특히 [3호고분]은 "한성백제시대"를 꽃피운 "근초고왕 왕릉"이라고 추정한답니다.
[석촌동 골목길]
"석촌동 고분군"을 돌아보고 직진하여 "석촌동" 골목길을 5분 정도 통과하면...
['석촌호수'] 2:28
"석촌호수"에 도착합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전에는 "송파강"이라는 "한강의 본류"가 흐르는 "한강"이었는데
"을축년 대홍수" 때에 지형이 바뀌고, 그후 다시 개발되어 지금은 호수로 남아 있는 "석촌호수" 랍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1925년 이전에는 "한강"이었다는거죠.
[둘레길]
"석촌호수" 둘레길을 따라 [잠실역]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삼전도비' 조망]
"삼전도비"가 있는 곳을 조망하고
['송파대로']
[송파대로]로 올라 가 [잠실역] 방향으로 조금 가면...
['삼전도비' 앞] 2:35
[잠실역환승센타 2번출입구]가 있는곳 앞에서 좌측에 "삼전도비"가 있습니다.
['삼전도비']
[안내문] 2:35~2:40
"삼전도비 三田渡碑"
먼저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들 중에 제가 가장 싫어하는 왕인 "인조"가
"병자호란"으로 '치욕의 삼배고구두례'를 하며 목숨만 살려 달라고 남긴 "치욕의 비석"입니다.
포로로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주축으로 수십만여명을 포로로 보냈으며 여자가 대부분이라죠.
정조를 짓밟힌 여자를 "화냥년"이라 하죠? 이때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라고 했는데,
"환향녀"가 음운변화로 "화냥년"이 되었으니 "인조"는 자신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화냥년"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은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 오는 "환향녀"들을 구제하기위해
지금 "홍제동"에 있는 "홍제천"에서 그곳을 씻기만 하면 처녀로 구제해 준다고 했으며
그래서 개천 이름이 "모두 구제헤 주는 개천"이라고 "弘濟川"이 되었다는 겁니다.
비극의 역사...치욕의 역사 입니다.
['삼전도비']
"대청황제공덕비 大淸皇帝功德碑"가 오리지날 이름이죠.
"삼전도비"라고 하는 것은 이 비를 '삼전도'에 세워서 부르는 일반명사입니다.
"삼전도"는 이곳 잠실나루터 부근인데 밀물 때에도 잠기지 않는 밭이 세곳 있었다고 "三田渡"라고 했답니다.
이 비석의 전면 좌측에는 '몽골글자'로 우측에는 '만주글자'로 새겼으며 뒷면에는 '한자'로 새겨 놨습니다.
글의 내용을 번역하면....
어리석은 조선 왕은, 위대한 청국 황제에게 반항했다.
청국 황제는 어리석은 조선 왕을 타이르고, 자신의 대죄를 납득시켰다.
양심에 눈을 뜬 조선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맹성하고,
위대한 청국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우리 조선은 이 청국 황제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고,
또 청국에 반항한 어리석은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
이 석비를 세우기로 한다.
['귀부']
"대청황제공덕비 大淸皇帝功德碑" 옆에 비석이 없는 "귀부 龜趺"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정말 우리 백성들로는 쪽 팔리는 "귀부"인데, "청태종"이 너무 작다고 크게 다시 만들라고해서
좌측의 "귀부"로 만들어 비를 세우고, 이것은 옆에 ...
['삼전도비']
역사란 삼전도비를 땅속에 묻는다고해서 가릴수도 없고,
파괴한다고해서 지울수도 없습니다
이 비를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듯 합니다.
[구글어스 GPS 트랙]
[고도표]
[한성백제왕도길]은 안내 이정표가 없어서 미리 공부를 하고 가지 않으면 길찾기가 어렵더군요.
제가 이번에 직접 걸으며 만든 [GPS 트랙]을 첨부하오니 다운 받아 가시면 길찾기가 쉬울 것입니다.
무료로 다운 받아 갈수 있습니다.
고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구간이 거의 평지성이어서 걷기엔 쉬운 코스였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3km였으며, 4시간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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