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14코스』
      『통영 죽림신도시 속으로』 



  [지도]                   
  <남파랑길 14코스>는 '경남 통영시 광도면 황리'에 있는 "황리사거리"에서 출발하여
  '경남 통영시 용남면 장문리'에 있는 "통영시립충무도서관"까지 "13.9km"를 가는 코스입니다..


  ['황리사거리']          11:10          
  2022년 7월 13일 수요일 흐림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황리'에 있는 "황리사거리"에서 <남파랑길 14코스>를 시작합니다.
  <통영 방향>으로 뒤돌아 서면...


  ['임외마을 버스정류장']               11:13

  [현위치]                 
  <황리사거리>의 <임외마을 버스정류장> 옆에 설치되 있는 <남파랑길 14코스 안내판>을 보고
  이곳의 현위치를 확인하고 출발합니다.


  [뒤돌아 본 '황리사거리']                  
  조금 진행해서 뒤돌아 본 <황리사거리>입니다.
  보이는 <면화산>은 <면화산>의 정상 봉우리가 아니고, 여러 봉우리 중에 두 봉우리가 보이는군요.
  <면화산>은 "목화꽃" 모양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잠시후 <공얄등산>을 오르며 조망 하겠습니다.



  ['안정리' 통과]                  
  이곳은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 입니다만, 
  원래 <고성현>이었는데 근대에 <통영시>에 편입되었다고 하네요.
  15분 정도 <77번국도>를 따라 진행하면...
 

  ['망향비']            11:28         
  지난 <13코스>의 <성동조선> 앞에 세워져 있는 <망향비>와 같은 <망향비>가 있는데
  "안정리 安井里"라는 조그마한 농어촌에 <성동조선><한국도시가스>등 국가 산업단지가 
  들어 서며 타지역으로 이주 해야만 했던 원주민들이 "고향을 잊지 않도록" 望鄕碑를 세웠다고


  ['새통영농협']             11:28         
  <망향비>를 지나면 바로 <농협> <하나로마트>등이 있는 곳을 만나며
  "벽방초등학교"가 뒤에 있습니다.


  ['벽방산' 조망]                        
  <벽방초등학교>를 지나면 서쪽으로 "벽방산 碧芳山 651.5m"이 조망 됩니다.
  '푸를 벽碧'에 '꽃다울 방芳'자를 쓰는 산으로 <통영시>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스님>들이 밥 먹을 때 사용하는 밥그릇(발鉢) 모양을 닮았다고 <벽발산 碧鉢山>이라고도 한답니다.
  <안정리>에는 "안정 安井"이라는 안심하고 먹을수 있는 우물이 유명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앞에 보이는 <벽방산>의 지하수가 영향을 준듯...


  [삼거리]             11:33       .
  이어서 아파트 단지로 들어 가는 삼거리를 지나면...


  ['KOGAS 통영기지 본부 정문']             11:37       
  "한국가스공사 KOGAS 통영기지 본부" 정문을 지나 갑니다.
  '천연액화가스(LNG)'를 수입하여 재기화하여 공급하는 공공기관인데 
  현재 운영중인 배관길이는 2020년 12월 기준 총 4,971km이며,
  2020년 12월 기준 212개 시군, 19,250,000세대(보급률 83.4%)에 천연가스를 공급ㆍ운영하고 있다고
  연탄 때던 때가 엊거제 같은데 무지 발전 했습니다.


  ['77번국도']                   
  다시 도로를 따라 10여분 더 진행하면...


  [갈림길          ★ 길조심 ★          11:47        
  전봇대에 조그만 <남파랑길 화살표>가 부착된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런 곳에 큰 규모의 <남파랑길 이정표>가 있어야 좋을 텐데....
  전봇대엔 <호암2길> 입구라고 알리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공얄등산' 입구]                         
  <호암2길>로 방향을 바꾸면 <공얄등산>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100m쯤 올라 가면....


  [삼거리]             11:49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엔 이정표가 두개씩이나 설치되어 길안내를 합니다.
  여기서부터 <적덕삼거리>까지가 <공얄등산 고갯길>이 되겠습니다.


  [뒤돌아 본 '안정리']                    
  삼거리에서 지나온 <안정리>를 뒤돌아 보고...
  다시 700m 정도 거리를 10여분 진행하면...


  [삼거리]               11:59          
  또 다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시키는 데로 좌회전하고


  [오름길]                        
  제법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오름길을 7분여 오르면


  ['안정리' 조망]               12:07       
  뒤돌아 보면 출발지였던 <황리>와 <안정리>가 시원하게 조망 됩니다.
  특히 지난 <13코스> 때 돌아 왔던 <구절산>과 <면화산>이 그림처럼 조망되며
  <성동조선>과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가 그 규모를 자랑하며 펼쳐지는게 보입니다.



  [오름길]                    
  몇구비 꼬부랑길을 10여분 더 오르면


  ['공얄등산 고갯길 정상']             12:18      
  <공얄등산 고갯길 정상>에 도착합니다.
  <77번 국도>에서 이곳까지 대략 30분 정도 걸렸군요.



  [내림길]                         
  올라 왔으니 다시 내려 가야죠? ㅎㅎ 이런거 하러 다니는 거니까...



  ['덕포리' 조망]              12:34          
  내림길을 12분여 내려 가면 다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며
  <광도면 덕포리 적덕마을>이 가까이 다가 옵니다.
  "적덕 赤德 마을"은 이 산에 <붐바우>라고 하는 "붉은 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답니다.
  4분 정도 <적덕마을>을 통과하면...


  ['적덕삼거리']              12:38      
  <77번국도>와 다시 만나는 "적덕삼거리"에 도착 합니다.
  실제는 사거리인데 지도나 안내도엔 삼거리라고 하는군요.
  여기선 직진하여 바닷가로 나가야 하고
 

  ['적덕항']              12:41       
  바닷가로 나가면 "적덕항"을 만나고


  ['덕포리' 해안도로]            
  <덕포로>라고 하는 '덕포리 해안도로'를 15분 정도 진행하면...
 

  ['구집마을회관']              12:57~1:10            
  "구집마을회관"을 만나 정자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구집마을']                 
  "구집마을 舊集"
  마을 이름이 특이해서 면밀히 조사를 해 봤습니다만 알 길이 없었는데
  <통영시 도로명 지명유래집>에서 반가운 설명이 있더군요. 인용하면...
  "덕포리 덕포로(德浦路)의 갈래 길이며, 마을지명 구집(舊集․구집이)에서 유래된 길 이름이다.
  마을 뒤편의 산등성이와 그 골짜기가 각각 9개의 명당을 갖춘 길지(吉地)라 하여 
  원래 '구집(九集)'이라 칭했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속설이 있다. 
  토박이 지명은 '구집이(구지비)'라 칭한다."
  의문이 풀려 무척 기뻣습니다. ㅎㅎ


  [갈림길]             1:12      
  <구집마을 안내석>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변경된 <남파랑길 14코스>는 우측 <구집마을>을  통과하라고 합니다.
  변경 전 길이나 큰 차이는 없으나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는 분들은 마을길을 이용하면 되고

                
  ['구집마을' 해안]                        
  저는 미리 조사를 통해 계획하여 촬영 할 유명한 바위 때문에 변경 전 길인 해안도로를 갑니다.
  잠시 진행하면...


  ['구집마을회관'과 '해룡산' 조망]     
  해안도로를 몇백m 진행하다가 뒤돌아 보면
  휴식을 취했던 <구집마을회관>이 정면으로 조망되고, 
  그 우측으로 이 고을에선 제법 유명하다는 "해룡산 海龍山 31.8m"이 보이며
  그 우측 끝에 "해룡바위"가 보입니다.
  <해룡바위>를 줌인 해 보면....


  ['해룡바위' 줌인]                  
  "해룡바위 海龍巖"
  어민들에게 <海龍>은 神적인 존재이죠.
  이 바위를 기준으로 <통영시>의 행정구역 이름이 정해 졌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바위라고...
  그러니까 저 바위 남쪽 건너편이 다음 <15코스>에서 진행 할 <용남면 龍南面>이라고 한답니다.


  [新舊길 합류 삼거리]                 1:20           
  변경된 <구집마을길>과 다시 합류하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마을길을 돌아 온 횐님들은 괜히 돌아 왔다고 푸념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ㅎㅎ
  200m 정도 되는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 가면...


  [갈림길]             1:24        ★ 길조심 ★                
  길조심을 해야 하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화살표> 하나가 갑자기 꺽기는 갈림길을 알리고 있으니 유의하고
  바닷가로 내려 가면...


  ['창포' 조망]              1:25     
  '통영시 광도면 덕포리 창포마을'이 펼쳐 집니다.


  ['창포마을회관']             1:27

  ['창포마을회관 앞 소공원']                      
  "창포마을회관 소공원"
  <창포마을>이라고 해서 <단오절>에 머리 감을 때 사용하는 <창포 菖蒲>인줄 알았는데
  이 고을에 "매우 큰 창고가 있었던 포구"라고 "倉浦마을"이라 한다는군요. ㅎㅎ


  ['몽돌산' 고개 오름길]

  ['몽돌산' 고갯마루]            1:35        
  <창포마을회관>을 지나면 <손덕마을>로 넘어 가는 고개를 넘어야 하더군요.
  이 고개는 "몽돌"이 많은 해변을 가진 <몽돌산 고갯길>이 되겠습니다.
  보행자를 위한 갓길이 없어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더군요.
  이 고개에서 지나온 <구집마을>과 <창포마을>을 뒤돌아 보면....
 

  ['해룡바위' 조망]

  ['해룡바위' 줌인]                          
  햐~~ 여기서 바라 보는 "해룡바위 海龍巖"가 더욱 그럴듯 하군요.


  ['손덕마을회관']              1:43        
  <창포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가면 "손덕마을회관"을 바로 만납니다.
 

  [데크길]              1:45

  ['손덕마을' 안내석]           1:47               
  <손덕마을회관>을 지나면 해안에 데크 보행로를 설치해 위험에서 해방됩니다.
  "손덕마을 遜德"은 "이곳 주민들이 유순하고 부유하여 벼슬이 높은 손님을 많이 맞아 들여서"
  이름 지어진 지명이라고 하는군요.ㅎ
 

  ['통영죽림신도시' 조망]              1:48        
  <손덕마을>을 돌아 나가면 
  드디어 <14코스 종착지>가 있는 "통영죽림신도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골프연습장]            1:50     
  제법 큰 골프연습장을 지나면...


  ['광도천' 합류지]                    
  <광도천>이 바다에 합류하는 <이도> 앞에서 우회전 하면...


  ['광도천']            1:52             
  <광도천>을 건너기 위해 앞에 보이는 <덕포교>를 이용해야 하니 좀 돌아 와야 하더군요.


  [조형물]                         
  아마도 <코로나 관련 조형물>인 듯한 돛배가 하나 <광도천>에 설치되 있고


  ['덕포교']            1:55         
  <덕포교>를 건너 다시 바다 방향으로 나가면...


  ['광도천']                   
  이 개천이 <광도천>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리고 있으며
  우측엔 <카페 드 몰른>이라는 카페가 들렸다 가라고 유혹하지만
  바다로 다시 나가면...


  ['통영죽림신도시' 조망]            2:01        
  바다를 매립해 건설했다는 <통영죽림신도시>가 더욱 가까와 지고...


  ['14번국도']            2:06         
  <14번국도>를 잠시 진행하면...
               

  ['죽림소공원']                2:11          
  <죽림소공원>을 만나고


  ['죽림해변']                    
  바다를 매립해 만든 <죽림해변>을 걷기 시작합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 지는 편의시설들이 이어 집니다.


  [상가]  

  [요트 선착장] 

  ['죽림해변']               2:15~3:07   (점심식사)     
  "통영죽림신도시"
  <죽림만 竹林灣> 약100만여평을 매립하여 조성한 계획도시랍니다.
  서울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통영 청소년수련원']             3:24      
  <죽림신도시> 해변을 지나면 "통영 청소년 문화원"이 새로 문을 열어 운영 중인데
  실내수영장 등 실내체육시설과 문화시설이 있다고...


  ['통영시립충무도서관' 조망]

  ['통영시립 충무도서관']              3:28       
  <통영청소년수련원>을 지나면 바로 <남파랑길 14코스 종점>이 있는
  "통영시립 충무도서관"에 도착하게 되며 <14코스>를 마치게 됩니다.



  ['14코스~15코스 시종점' 안내판]                    
  <남파랑길 14코스 종점>과 <15코스 출발지>를 확인하고 버스를 타고 귀가 했습니다.
  서울에는 비가 무지 많이 내린다는 소식인데 이곳엔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흐린 날씨에 기온도 높지 않아 비교적 편안한 답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4km 였으며, 점심식사 시간 포함 4시간 15분 정도가 걸렸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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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_14코스.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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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13코스』
   『거북선과 대완구, 그리고 비격진천뢰 이야기』 



  [지도]                   
  <남파랑길 13코스>는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에 있는 "배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경남 통영시 광도면 황리'에 있는 "황리사거리"까지 "20.9km"를 가는 코스입니다..


  ['배둔시외버스터미널']                11:20           
  2022년 6월 22일 수요일 맑음 연무      
  <죽전>에서 3시간 50여분 만에 <배둔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합니다.
  날씨는 맑았으나 연무가 껴 사진 촬영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공식 안내도]

  ['가례마을' 이야기]                 
  터미널 옆에 <남파랑길 안내도>와 <가례마을 이야기판>이 설치되 있어 참고 하고...
  뒤돌아 나가면...


  ['공룡나라 고성' 아치]                    
  "공룡" 빼고는 자랑 할게 없는 듯..."공룡"을 곳곳에 앞세운 조형물들이 즐비한 <고성군>인데
  <남파랑길 13코스>는 "공룡나라 고성"이라는 아치 뒤에서 출발합니다.


  ['마구들' 통과]            11:27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은 들판 농로였습니다.
  "마구들"
  이 들판은 위의 <가례마을 안내판>에서 언급되고 있는 간척지 들판이라는데 
  일제시대 때 <당항만>을 일부 매립하여 만들어 비옥한 토질로 농산물이 풍부하다고 
 

  ['구만천' 둑방길]              11:33         
  <마구들> 농로를 잠시 진행하면 <구만천> 둑방길로 올라 서게 되는데 앞에 <망화교>가 보입니다.
  변경 전 <남파랑길>은 저 다리를 건너 진행했다는데, 변경 후엔 건너지 않고 직진하더군요.


  ['구만천' 둑방도로]                
  <망화교>에서 도로를 따라 5분여 진행하면....


  ['배화교']                11:38       
  <배화교>를 지나치게 되는데 다리엔 "공룡 조형물"이 <고성이 공룡 나라>라고 또 외치고 있습니다.
  <배화교 안내석>이 눈길을 끄는데, "공룡 알" 모양이군요. ㅎㅎ 모두 "공룡"과 연관 시키고 있습니다.
  거대한 '공룡'은 새끼를 낳을 듯 하지만 파충류라 '알'을 낳았지요.
  "구만천 九萬川"은 '고성군 구만면'에 있는 <낙남정맥 용암산> 등에서 발원하여 <당항만>으로
  흘러드는 10km도 않되는 짧은 하천이랍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낙남정맥 마루금>까지는 10km도 않되는 짧은 거리라는 의미이니...


  ['구만천-마암천'이 '당항만'과 합류하는 곳]        .
  <배화교>를 지나면 <구만천>이 <마암천>과 합류하여 <당항만>으로 흘러 갑니다.
  이곳은 이미 바다같지 않은 바다로군요.
  "마암천 馬岩川"은 '고성군 마암면'에 있는 <낙남정맥 성지산-덕산>등에서 발원하여
  <당항만>으로 흘러 드는 9km 정도의 하천이랍니다.
  앞에 <거북선 모형>이 있는 <해상보도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상보도교'와 '거북선']                   
  <구만천>과 <마암천>이 합류하여 <당항만> 바다로 들어 가는 곳에
  <거북선> 모형이 설치된 "해상보도교"가 경관을 더욱 고조 시키는군요.
  여기는 "공룡"이 아니고 "거북선"입니다. ㅎ



  ['해상보도교']               11:48         
  "해상보도교와 거북선"
  <당항만둘레길>의 하일라이트.....


  ['당항만둘레길' 안내도]      
  지난 <남파랑길 12코스>의 <당항포 관광지>에서 이어져 오는 <당항만둘레길>이 끝나는 곳으로
  <해상보도교 거북선>은 <당항만 둘레길>의 백미를 장식하는 곳이었습니다.
  아!~~ '이순신장군'과 '당항포해전'....꿈처럼 그날이 아른거립니다.


  ['거북선' 조형물]           
  <해상보도교> 가운데에는 "거북선 조형물"이 설치되 있는데


  ['거북선' 내부]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23전 23승"을 거두게 한 결정적 무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비격진천뢰 飛擊震天雷""대완구 大碗口" 였습니다.
  이게 없었으면 천하의 <이순신장군>도 '조총'으로 무장한 쪽바리들을 절대 이길수 없었습니다.
  막강한 무기와 똑똑한 부하들이 있었기에 <이순신장군>도 영웅이 될수 있었던거죠.
  <비격진천뢰>는 요즘 말로 "시한 포탄"이고, <대완구>는 포탄을 쏘는 "함포"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쪽바리들의 '조총'은 인명 살상을 할수 있는 사정거리가 2~30m 정도여서 접근전을 해야 했죠.
  한편 사정거리가 3~400보가 되는 함포를 쏘는 우리 수군은 적의 선박과 떨어져 싸울수 있어
  우리는 피해를 전혀 입을수 없는 전투 구조였으니, 싸워 이기는 건 당연지사이고 
  지는게 오히려 이상 할 정도겠죠?
  쪽바리들이 이길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접근전인데,  접근전을 막기 위해선 <판옥선>에 지붕을 
  덮었는데 이것이 바로 <거북선>이 된것이죠.
  멀리서 '함포'를 쏘고, <거북선>이 적의 함선들 사이로 종횡무진하니 승패는 보나마나였습니다.

        
          ['비격진천뢰의 비밀']     
          보물로 지정된 "비격진천뢰 飛擊震天雷""대완구 大碗口"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윗글을 읽으며 공부하세요~~~ㅎ


  ['해상보도교' 건너편]            11:50        
  <거북선 모형>이 있는 <해상보도교>를 건너면 '쉼터 정자'와 건너편에 <청룡사>가 조망됩니다.


  [뒤돌아 본 '배둔리']             12:02      
  지나온 <고성군 회화면소재지>인 <배둔리>를 뒤돌아 보며 감회에 젖어 드는데
  <이순신장군>의 그 날...<당항포해전>의 승전고가 울려 퍼지는 듯 하군요.


  ['당항만']                  
  <당항만> 해안도로를 따라 7분여 저 앞에 보이는 산능선 모퉁이를 돌아 가면...
  


  ['마동호 방조제']                 12:09          
  "마동호방조제"가 조금 독특한 모양을 하고 나그네를 반깁니다.
  <당항만>이 내륙 깊숙히 들어와 끝나는 곳에 방조제를 만들어 <시화호> 처럼 담수화를 시키
  농지와 농수를 확보하려 했다는데...현지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저항을 받아 공사가 지연되다가
  지난 2020년 10여년만에 완공을 보았답니다.
  <파란문>이 항상 하는 말..."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게 최고의 개발이다"


  ['방조제 수문']                     
  그런데 방조제 수문은 모두 개방되 있군요.
  바다의 수위와 민물의 수위가 같습니다.


  ['1010지방도']            12:20        
  <마동호방조제>를 건너면 <1010번 지방도>를 걷게 되는데 보행로 갓길이 없더군요.
  지난 <12코스 답사기>에서 언급 한바 있는 "기생 월이"가
  일본 첩자가 그린 염탐 지도에 <당항만>이 <고성읍내>를 통과해 서쪽 바다와 연결되 있다고 
  몰래 그려 넣은 그 바닷길이 바로 이 <마동호>를 가로 질러  앞에 보이는 <거류산> 우측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갈림길]                 12:27         
  보행로가 없어 좀 위험한 <1010번 지방도>를 7분여 진행하면 갈림길 삼거리를 만나며
  <남파랑길>은 좌측 <구절산> 방향 <남촌마을><정북마을>로 안내 됩니다.
  10여분 마을 농로를 진행하면....


  ['남촌마을' 조망]

  ['남촌마을 쉼터']               12:36        
  <남촌마을> 정자 쉼터를 만나고
 

  ['거류산' 조망]

  [갈림길]                12:45      
  다시 10여분 전형적인 농촌마을을 통과하면 다시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번엔 좌측 <정북마을>로 안내 됩니다.


  ['정북마을'과 '면화산' 조망]            
  <면화산>이 조망되는데 저 산을 좌측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정북마을>로 들어 가면
 

  [추모비]                12:57        
  추모비가 있는데 "처사"라고 한것으로 보아 큰 벼슬을 한 사람은 아닐거고...
  그래도 이 마을에선 매우 명망있는 분들로 보입니다. <이종락씨><이명규씨><이성규씨>
 

  ['정북마을회관']                  1:00

  ['정북마을']                 
  "정북마을회관"을 지나 마을을 통과하는데....
  "정북마을"의 "정북"이 뭔 뜻인지 궁금했는데...


  ['들샘 夜井']                  1:02~1:06

  [안내문]              
  "들샘 野井" 우물터가 있는데
  <정북>이 뭔 뜻인지 이곳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한자로 "정북 井北"이었으니, 이 우물을 기준으로 북쪽이 <井北마을>이고
  남쪽이 <井南마을>이었습니다. ㅎ

                
  ['구절폭포' 갈림길]              1:07    
  <들샘 우물터>를 지나면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갑니다만
  여기서 직진하면 요즘 출렁다리로 유명해 졌다는 "구절산 구절폭포"로 가는 길이랍니다.
  왕복 한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그냥 패스하는데...


  ['구절폭포' 조망]

  ['구절폭포 출렁다리' 줌인]          1:14      
  마을길에서도 "구절폭포 출렁다리"가 조망되어 매우 기뻣습니다. ^*^
  "구절산 九節山 564.6m"은 <당항만>의 남쪽 산이며, <당동만>의 북쪽 산이 되겠습니다.
  "아홉번 끊어지며 떨어지는 폭포"라는 "구절폭포 九節瀑浦"에서 연유한다고 해서
  그 실제 풍경이 궁금하여 <고성군공식블로그>에 가서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


  ['구절폭포']             ☆ 고성군블로그에서 빌려 온 사진 ☆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해 주는군요.
  요즘 전국에 출렁다리 건설 붐이 일고 있죠? 투자비에 비해 관광객 유치가 쉬워 경제적이라고



  [사당]             1:16      
  이어서  <온양 방씨> 가문의 제각을 지나는데...
  솟을삼문의 이름이 <보안문 普晏門>이더군요.


  ['동림마을회관']             1:20        
  <보안문>을 지나 4분여 진행하면 "동림마을회관"을 만납니다.
  옛날 <거류산> 아랫마을에 방풍림을 조성했는데, 
  그 방풍림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東林마을>이라고


  ['면화산'과 '벽방산' 조망]                   
  <거류면사무소>가 있는 <거류면>의 중심지인 <당동리>으로 가며
  <면화산>과 <벽방산>을 조망합니다.


  ['김상한 행적비']          1:24        
  이어서 <김상한 행적비>를 논 가운데서 만나는데
  이 분은 <통정대부>라는 벼슬까지 오른 분이군요. 
  <통정대부>는 <정삼품>의 벼슬이죠. '정3품' 이상을 "당상관"이라 하고, 그 이하를 당하관이라 하고
  그런데 이런곳에 <행적비>를 세우는 것은 좀 그렇죠? 이런걸 '가오다시 한다'고 하죠? ㅎ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거류119안전센타']             1:29         
  "거류119안전센타"를 만나고
 

  ['77번국도']               1:29       
  이어서 <77번국도>에 합류 합니다.
  <남파랑길>은 앞에 보이는 <면화산>을 좌측으로 한바퀴 돌아 <황리사거리>로 가는데
  <황리사거리>는 앞에 보이는 <고개> 뒤에 있으니 꽤 긴 거리를 돌아 가는 것이었습니다.
  <13코스>는 공식적으로 <'20.9km'>나 되는 거리이니 후답자들 중에 힘드는 분들은 직진해서
  체력 안배를 해도 되겠습니다. 7km 정도 단축 되겠더군요.


  ['거류산' 조망]

  [안내문]               1:32        
  도로에 <거류산성 안내문>을 설치해 놨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거류산>은 이제까지 보던 각도와 달라서 완전 다른 모양으로 보이는군요.
  좌측에 있는 산이 <문암산>인데 잘못 표기했습니다.
 

  ['거류초등학교']              1:40      
  이어서 <거류초등학교>를 지나면
 

  ['남호처사 경주최씨 최규천' 쌍효각]           1:43    
  독특한 모양의 <쌍효각>이 있는데 <남호처사 경주최씨 최규천>이라고 쓰여 있고
  효부 <함안조씨>도 함께 쓰여 있더군요. 효자 효부 정려비였습니다.


  ['거류행정복지센타']          1:44       
  이 지역이 <거류면>의 중심지여서 <거류면 면사무소>인 <행정복지센타>가 있고


  ['고성 당동 삼거리']              1:47~2:35       
  이어서 "고성 당동 삼거리"를 만납니다.
  앞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남파랑길 13코스>를 좀 단축하고픈 분들은 여기서 직진하면 7km 정도는 단축되겠더군요.
  오리지날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나가 해안길로 갑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당동' 마을길]             2:36    
  마을 골목을 통과해 나가면...


  ['당동항']            2:39        
  <당동항>을 만나 우회전 하면...


  ['거류체육공원' 조망]           
  <거류체육공원>이 보이며, <면화산>과 <벽방산> 사이 고개가 보이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던 <황리사거리>로 가는 지름길이 되겠습니다.
  "면화산 綿花山 413.7m"은 글자 그대로 산 모양이 "목화"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벽방산 碧芳山 651.5m"은 <통영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랍니다.
  그러니까 <면화산>과 <벽방산>은 <고성군>과 <통영시>의 경계가 되는 산이 되겠습니다.


  ['거류체육공원' 앞]              2:47         
  <거류체육공원> 앞에서 좌측으로 <면화산둘레길>을 진행 합니다.
  <장마전선>이 올라 오고 있다는데, 현재의 날씨는 무척 무더웠습니다.
  다행이 바람이 좀 있어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땀은 줄줄 흘러 내리고...ㅠ


  [뒤돌아 본 '거류면 당동리']             2:54       
  이제 가면 언제 또 오랴~~
  잘있거라~ 거류산아~~


  ['화당마을' 조망]                3:10         
  이 바다는 <당동만>이랍니다.
  그러니까 <당동만>에는 <고성군 거류면>이 있고, <당항만>에는 <회화면>이 있는거군요.
 

  ['화당마을회관']             3:18~3:28  
         
         "화당마을"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하고...
         이곳 쉼터 정자에서 물도 좀 마시며 쉬고...


  ['가조도 옥녀봉' 조망]              3:30       
  해안도로를 따라 <면화산> 동쪽 기슭으로 올라 가는데
  앞으로 <거제도 구간>에 들어 갈때까지 계속 만날 <가조도>의 <옥녀봉>이 조망됩니다.


  ['면화산둘레길']              
  <면화산>의 동쪽으로 올라 가면...


  [조망]              3:41        
  글래핑 시설이 해안가에 있고, 건너편에 <삼강S&C(주)>라는 조선소가 보입니다.
  그리고 <당동항>에는 수많은 양식장 부자가 둥둥 떠 있습니다.



  [둘레길]                     
  <면화산둘레길 고성구간>을 10여분 더 진행하면....


  ['성동조선소']               3:51       
  제법 유명한 "성동조선소"를 만나는데
  여기서 부터 <통영시>가 시작됩니다.


  [숲길]   

  ['성동조선소']                  

  ['성동조선소']               4:10     
  무척 큰 <성동조선소>의 옆길을 20여분 진행하면 <성동조선소> 안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성동조선소>는 중형선박을 만드는 조선소로는 세계 제일이었는데,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운 중국의 등장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몰락의 길을 걷다가 부도 났죠.
  현재 회생 절차를 밟고 있으며 <현대><삼성><대우>등 대형 조선소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했다고
 

  ['망향비']                4:31

  ['임중마을 세적사']                   
  <성동조선소>는 "통영시 광도면 황리" "임중마을 林中"이 있던 곳이었답니다.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어 <한국가스공사 기지>가 만들어 지고,
  조선 경기 활황으로 <성동조선소>가 들어 서며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쫒겨 났답니다.
  그래서 고향을 잃어버린 원주민들이 <망향비>를 세워 이곳이 자기들의 고향이었다는 것을 
  추억 할수 있도록 했다는데.....그 내용이 구구절절 가슴 아프게 합니다.
  원주민들을 쫒아내고 설립된 <성동조선>이라도 사업이 잘되면 좋겠는데....



  ['황리사거리']                4:50      
  <성동조선> 정문 앞 <망향비>에서 다시 20여분 더 진행하면 <황리사거리>에 도착하며
  <남파랑길 13코스>를 종료합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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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12코스』
      『'당항포해전'과 '기생 월이' 이야기』 


  ['카카오맵'] 

  ['국토지리원 지도']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 됨*    
  "남파랑길 12코스"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근곡리 신기마을'에 있는 "암아교차로"에서 출발하여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에 있는 "배둔시외버스터미널"까지 공식적으로 18km 거리 랍니다.
['거인산악회']
2022년 6월 8일 (수) 흐림 2020년 11월 11일에 <남파랑길 진해구간> 이후 '코로나 시대'를 어둠 속에서 보내다가 다시 오랜만에 <거인산악회 남파랑길 팀>에 합류하여 머나먼 남쪽나라로 길을 나섯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카페 거인산악회>에 접속하여 신청 하기만 하면 됩니다. 매월 둘째 셋째 수요일에 진행 합니다. ['암아교차로'] 11:44 "남파랑길 12코스"의 출발지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근곡리 신기마을'에 있는 "암아교차로"에 도착했습니다. <죽전>에서 4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교차로 같지 않은 단순한 삼거리인듯 한데 교차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궁금하여 지도를 봤더니 바로 뒤에 <2반국도>와 <14번국도>, 그리고 <구2번국도>가 교차하는 제법 큰 교차로였는데 이곳은 그 교차로에서 제일 큰 삼거리여서 붙여진 이름인듯... 교차로 건너편에 <남파랑길 12코스 안내도>가 설치되 있으니 확인하고 갑니다. ['11~12코스' 안내도] <11코스>와 <12코스>의 시종점이라고 함께 표기했군요. 더 자세한 안내도는 제가 편집 해 올린 위의 지도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이번 코스는 해변을 따라 걷는 단순한 코스이고 이정표도 잘되 있어 길찾기는 문제 없더군요. 이나저나 이곳부터 "남파랑길 고성-통영구간"이 시작됩니다. 아직 '창원시 마산합포구'를 지나고 있지만...<남파랑길>에선 <고성-통영구간>이 시작된다는 뜻 ['이명리' 방향] <암아교차로>에서 남쪽 <이명리>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이창교'] 11:49 "이창교 耳昌橋"를 건너게 되는데 여기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암아교차로'] 출발지였던 <암아교차로> 삼거리가 있는 '마산합포구 진전면 근곡리'의 <신기마을>이 조망되는데 저곳에 있는 상점들은 모두 <암하>를 상호로 쓰고 있더군요. '암하참복집' '암하편의점' '암하해물칼국수'...교차로는 <암아>인데 상호들은 모두 <암하>더군요.ㅎ ['진전천'과 '낙남정맥' 조망] 서북 방향을 바라보면 "진전천 鎭田川"이 멀리 보이는 <낙남정맥>에서 흘러와 바다로 갑니다. 이 주변에서 "8ㆍ15광복기념 진전천 여울축제"가 열린다고 하네요. 행사 내용엔 물수제비뜨기, 용댐컬링, 발가락 낚시 등 주민참여 게임을 진행하며, 밤에는 레크리에이션과 라이브공연, 마술공연, 초대가수 공연 등으로 즐거운 축제를 한답니다. [삼거리] 11:58 . <이창교>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명리 耳明里"입구 였습니다. <국토교통부>가 2006년에 지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인 길이 시작됩니다. 잠시 후 만나는 <창포마을>에서 <당항만>의 입구인 <동진교>를 지나 <고성 배둔리>까지 라는데 <남파랑길 12코스> 대부분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가 되겠습니다. [해안로] 아름다운 해안길이기는 한데 보도가 없어 좀 위험한 길이 상당 구간 이어졌습니다. 도보여행 보다는 드라이브 코스로 지정된듯 해서 좀 씁쓸..... ['창포마을' 입구] 12:16 "창포마을 昌浦"은 '공기 좋은 내 고향'이라고 안내하는데 현재 지명은 <昌浦>라고 쓰지만, 원래 이곳엔 세곡과 세어를 거둬들이는 <창고 倉庫>가 있어서 <倉浦>라고 했답니다. ['창포리' 통과] 산악회 회장님이 알려준 <창포마을>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통과하고 [고개] 12:31 <창포리>를 지나면 해안을 벗어나 고개를 하나 넘어 갑니다. <창포리>에서 <시락리>로 넘어 가는 고개였습니다. 아직도 <고성군>으로 넘어 가지 못하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을 걷고 있습니다. ['동진교' 조망] 12:42 ['동진교'] ['동진교' 밑 포구] 12:45 고개를 넘어 가면 제법 유명한 "동진교 東鎭橋"가 조망되기 시작하는데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창포리'와 '고성군 동해면 외산리'를 연결하는 다리라는데 관광객 유치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는데 큰 역활을 한 다리랍니다. <고성군 동해면>의 <동>과 <창원시 진전면>의 <진>을 따와 <동진교>라고 명명 했다는데.....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임진왜란 당항포해전"의 <당항만>의 출입구가 되기 때문인데 <당항만>이라는 호수같은 홀쭉하고 길쭉한 바다로 들어 가는 입구여서 전술적으로도 무척 중요한 곳이라고 주변 산들의 이름도 그런데서 연유 한 것이라 합니다. ['당항만'] 지도를 보면 "당항만"은 바다와는 관계 없는 큰 호수로 착각 할 정도로 내륙에 쑥 들어 와 있는 강이나 호수와 같은 막다른 바다입니다만.... 그래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 바다가 반대 방향으로도 뚫려 있는 것으로 짐작하는거죠. <이순신장군>은 이런 지리적 함정을 전투에 활용해 <당항포해전>을 완벽한 승리로 이끌었다죠. 앞으로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남해안을 여행하면 <이순신장군> 유적을 빼곤 무의미 할 정도이니 ['소포만'] 1:06 아직까지 '창원시 마산합포구'를 지나고 있는데 "소포만"이라는 마을을 지나고 ['낚시펜션'] 1:10 낚시꾼들에게 인기 있는 <낚시펜션>들도 보이고....바다낚시가 아니라 민물 강 호수낚시로 보이죠? ㅎ ['시락마을'] ['시락마을항'] 1:22 이어서 제법 큰 마을인 "시락마을 時洛里"를 만납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로서..... 時洛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곳일까 마감하는 곳일까... [음식점] [점심식사] 1:45~2:23 <시락마을>을 지나 20여분 진행하니 산악회 회장님이 추천한 음식점이 나타납니다. 인적이 드문 곳의 음식점이라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손님이 좀 있었습니다. 더더욱 추천 음식인 버섯영양정식 값은 20,000원이었고, 제일 싼 곤드레정식 값이 12,000원이었습니다. 남해안 까지 도보여행 와서 싸구려는 먹을 수 없고....ㅎㅎ <이선생님>이 베풀어 주어 잘 먹었습니다. 다음엔 제가 사도록.... ['정곡마을'] ['정곡사거리'] 2:44 식사 후 20여분 길을 더 진행하면 "정곡사거리"를 만납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가 끝나고 '고성군'으로 넘어 가는 경계 지점에 있는 마지막 사거리더군요. [안내도] 이곳 <정곡사거리>에도 친절하게 <남파랑길 안내도>를 설치 해 놨는데.... 제가 자세히 들여다 보니 출발지인 <암아교차로>에 있던 안내판과 똑 같아서 놀랐습니다. <현위치>는 제가 "빨가색으로 별표시" 한 <정곡리>인데....관계자는 철거 하던지 수정하던지 하슈~~ 어찌 이런게 아직까지도 이러구 있을까....<남파랑길> 다니는 분들도 건성으로 지나치는듯 ['마산-고성 경계'] 2:47 <정곡리사거리>를 지나면 바로 터널을 통과 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쓴 <설국>이 생각나게 하는 터널이군요. "국경의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터널이라기 보다는 <생태통로>인듯 한데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고성군>의 경계였습니다. ['어선마을 입구'] 2:54 터널을 통과하면 '고성군 회화면 어신리'의 "어선마을" 입구 사거리를 만납니다. "고성 固城"이라는 이름은 '무쇠로 단단하게 만든 城'이라는 뜻이지만 그 어느것 보다도 <固城>은 "공룡 발자국 화석지"로 유명하죠? 그 첫번째 화석지가 여기서 좌측 700m 지점에 있다고 하는데...이곳은 건너 뜀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진행 예정인 <상족암>에 가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엄청난 <공룡 발자국 화석지>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곳 조그마한 화석지는 건너 뛰는 것입니다. 단체 행동 해야해서 시간도 없고... ['어선마을' 이야기] 원래 고기잡이 배를 의미하는 <어선> 모양의 마을이라고 하는 마을명에서 바꼈다고... ['고성한산마리나리조트'] 3:15 <어선마을>입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당항포관광지"가 시작됩니다. 먼저 건축물들이 호화찬란해 지며 리조트 등 관광유락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성 해양레포츠 아카데미' 조망] ['고성 해양레포츠 아카데미'] 3:20 "고성 해양레포츠 아카데미"라는 시설을 지나면... ['고성관광지' 정문 앞] 3:27 "당항포관광지" 정문 앞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열린관광지 11곳> 중에 한곳이라고 자랑합니다. 또한 <고성군>에는 <고성 9경>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1경>이 이곳 <당항포관광지>라고 한답니다. ['고성관광지' 정문] 남쪽나라 변방으로 여겨지던 <고성>을 관광지로 거듭나게 만든 "세계공룡엑스포"가 열린 곳이죠. 아직 <코로나사태>의 영향이 있는지 좀 한산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건 꼭 구경 하고 싶지만 단체행동에 시간이 없으니 패스하고... [삼거리] 3:30 이어서 삼거리를 지나면.... ['경남교육청 종합복지관'] <당항포관광지> 안에 유스호스텔 같은 큰 건물이 있어 뭔가 했더니 <경남교육청 종합복지관>이더군요. 선생님들이 좋은 대우를 받으며 건강해야 미래가 있겠죠? 검사, 의사, 목사...이런 분들 보다 "교사"가 더 존경 받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의 미래가 밝습니다. ['당항만둘레길' 출입구] 3:47 이어서 "당항만둘레길"입구를 만납니다. [안내도] 안내도를 꼼꼼히 읽어 보고... 안내도의 <현위치>에서 좌측에 표기된 <당항포관광지> 방향을 바라보면.... ['충무공 전승 기념탑' 조망] <당항포관광지> 안에 조성한 "충무공 전승 기념탑"이 조금 보입니다. <당항포>를 도보여행 하면서 그냥 지나치면 않되는 매우 의미있는 <당항포해전 기념탑>인데 저는 그래도 쬐끔 알기에 여기서 사진이라도 촬영 하지만...다른 분들은 모르고 그냥 지나칩니다. <남파랑길>을 만들 때 저런 곳으로 통과 하도록 해야 진정한 <남파랑길>이 되겠죠? 그냥 걷다가 가라는 식의 <남파랑길>이라면 뭐하러 여기까지 오나? 동네를 걷지... <남파랑길>에서 <이순신장군> 빼면 뭐 볼일 있나요? '앙꼬없는 찐빵'이지... ['당항만둘레길 데크']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만들었을 "당항만 둘레길"이 시원하게 전개 됩니다. "당항포해전"을 이해 하려면 먼저 "당항만의 지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도에서 보는바와 같이 <당항만>은 "닭의 목아지" 처럼 생겼다 하여 탄생된 지명이랍니다. 다시 말해 <당항만>은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 같은 "닭의 목아지" 모양이어서 해군 함대가 들어 가긴 쉬워도 들어 가면 포위 당하기가 쉬워 탈출이 어려운 곳이랍니다. <이순신장군>은 병법도 잘 구사했지만, 이런 지형지물을 이용해 <23전 23승>을 거둔 것으로도 유명하죠. 그런데 일본 침략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찌하여 이런 불리한 막다른 곳으로 들어 갔을까? 쪽바리들의 머리가 나빠서 일까? 저는 그들에 대한 미스터리가 궁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 동안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가 요즘 학자들과 문학인들의 활약으로 조금씩 풀리고 있다해서 그 내용을 나름대로 요약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항리'] 4:00 <당항만둘레길> 중간에서 <당항리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이 주변이 <당항리> 임에 틀림없겠습니다. ['거류산' 조망] "거류산 巨流山 571m" <거류산>은 <고성>을 대표하는 산 중에 하나로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리워 진다는데 이유는 산 모양이 <알프스산맥의 마테호른산>을 닮았기 때문이랍니다. <파라마운트 영화회사>가 만든 영화가 시작 할때 사자인가? 호랑이인가가 어러렁거리는 뒷배경 산이 <마테호른 산>이죠. 일반적으로 우리는 <양평>의 <용문산 백운봉>을 <한국의 마테호른>이라 하죠 삼각뿔 모양이라 독일어로 Matterhorn...
['스위스'의 '마테호른'] 비교 되나요? ㅎㅎ 해발 4,500m급의 '마테호른'과 570m급의 '거류산'이라 도져히 비교가 않됩니다. ㅎ 그래도 흉내는 내죠? ㅎ
[데크 둘레길] <당항포해전>은 <임진왜란> 때에 유일하게 두번의 해전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1592년 <1차해전>에서 26척을 침몰 시키고 1594년 <2차해전>에서 30척을 뿌셨답니다. 막다른 <닭목아지>처럼 생긴 호수 같은 바다로 쪽바리들은 왜 들어 갔을끼? 그들이 속아서 들어가 전멸 당했다고 <당항포>를 속칭 "속싯개"라고도 한다는데 쪽바리들은 그렇게 어리석은 돌대가리들인가? 그런 곳에 왜 들어가? 죽을려고 들어 갔담? 의문이 많았습니다만.... "당항포해전"과 "기생 월이 月伊" 그 의문을 풀어 준다는 어느 기생 이야기가 <고성>에 있더군요. <진주 촉석루>에 <논개>가 있다면 <고성>엔 <월이>가 있다고 <고성향토사학자>들과 <문학인>들이 그 녀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며 관련 연구서와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어 흥미진진하더군요. 내용을 몇줄로 요약하면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일본은 우리나라에 첩자를 미리 무지 많이 보내 염탐을 했답니다. 특히 지도가 절대적으로 필요 했겠지요. 그래야 침략이 가능하니까....당연하죠? 침략 지도를 만들기 위해 중으로 위장한 일본 첩자가 <당항만 일대>를 지도로 만들어 가지고 가기 전에 현재 '고성읍내' 근처의 '송학리'에 <무기정 舞妓亭>이라는 고급 주막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이곳에 근무하던 <기생 월이 月伊>가 밤중에 벗어 놓은 그의 옷에서 지도를 발견하면서 그가 일본 첩자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 지도에 <당항포>가 막다른 바다가 아니라 <고성읍내>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그려 넣었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파란색 선이 <월이>가 그려 넣었다는 바닷길을 제가 나름대로 추정하여 표기 한 것인데 이렇게 오기 된 지도를 보고 쪽바리들이 <당항포>로 함대를 이끌고 진격 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지형을 이용해 전투를 잘하는 <이순신장군>이라 유리한 지형의 <당항포해전>에서 적군들을 단 한명도 남기지 않고 전멸 시켰다는 전투가 바로 <당항포해전>이죠. <이순신장군>이 <기생 월이>와 사전에 짜고 한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하는 향토사학자들도 있더군요. 물론 이런 이야기는 기록에는 없는 전해 오는 전설이지만,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400년 이상 구비전승 되는 일은 흔치 않기에 연구와 세미나가 계속 된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 <기생 월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사엔 역사의 터닝포인트에서 여인이 꼭 등장하죠? ㅎㅎ
['해상보도교' 입구] 4:12 <당항만둘레길 안내도>에 표기된 "해상보도교"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 <해상보도교>가 "거북선"을 형상화 했다고 조금전 안내판에서 보았는데.... 어디가 <거북선> 닮았어? ^.^ ['해상보도교 중앙'] <해상보도교>의 중앙에 도착하니 이곳 쉼터 겸 조망소가 <거북선>을 형상화 한듯 한데.... 알고 보니 이곳 보도교가 아니라 다음 <13코스>에 <거북선> 모양 보도교가 있더군요. <이순신장군>은 <당항포>는 "닭목아지" 같은 지형이라 <학이진 전법>을 쓸수 없어서 <닭목아지>에 맞는 전법인 "장사진 長蛇陣" 전법을 사용했다는데, 말 그대로 뱀처럼 길게 함대를 배치하여 적을 공격하는 진법을 의미합니다. 장군은 처음엔 적선에 불화살을 쏘았는데, 화살을 쏘는 조선수군을 우습게 보고 조총을 가진 쪽바리들은 바다 가운데로 조총을 쏘며 나왔는데 이게 <이순신장군>의 유인책이었죠. 바다 가운데로 나오는 적선을 포위하여 <비격진천뢰>, 즉 요즘 말로 함포를 쏘며 격침시키기 시작하고 이 때에 <이순신장군>은 <거북선>을 등장 시켰답니다. <거북선>이 진가를 발휘하는 최초의 전투가 바로 <당항포해전>이었답니다. [둘레길] <1차 당항포해전>에선 적선 26척 중에 25척을 침몰 시키고 한척을 남겨 두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순신장군>의 깊은 뜻이 있었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본군들이 육지로 올라 가지 않도록 한척을 남겨 두어서 물에 빠진 놈들은 모두 그 배에 올라 탈수 있었답니다. 그때에 그 배를 침몰시켜 몰살 시켰다는 것이니 매우 경제적 전투를 한것이지요? 또한 이런 평가도 있더군요. 물에 빠진 쪽바리들이 육지로 조총을 들고 올라 가면 백성들이 피해 볼수 있으니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이런 전법을 썻다고 "이순신의 애민정신"을 강조 하더군요. 저는 백성들을 고려한 것이라기 보다 경제적이고 완벽한 전투를 위한 것이라 더 생각되는데...ㅎ ['배둔2교'] 4:26 <당항만둘레길>이 끝나면 이번 코스의 종점인 <배둔리>로 들어 가게 되는데 먼저 "배둔천"을 건너는 "배둔2교"를 건너 갑니다. ['배둔터미널' 조망] 종착지인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있는 곳이 조망되는데 그 뒤로 <낙남정맥>의 <성지산> 근처에 있는 <경남도립공원 연화산>이 보이는듯 하군요. ['배둔1교'] 4:33 <배둔천> 둑방을 따라 <배둔1교>로 가서 ['배둔 중심가'] [배둔시외버스터미널] 4:41 <배둔리背屯里> 중심가를 통과하면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합니다. <남파랑길 안내판>은 터미널 옆에 있어 모르고 가면 찾기 어렵겠습니다. ['배둔시외버스터미널'] 4:42 [12~13코스 안내도'] <12~13코스 안내도>가 설치되 있는데 길찾기에 도움은 되지 않는군요. ['삼일운동 창의탑' 앞] 4:50 <배둔시외버스터미널> 앞에는 "고성은 공룡의 나라"임을 알리는 아치가 설치되 있고 "삼일운동 창의탑"도 있습니다. 여기서 <남파랑길 12코스>를 마치고 서울로 귀경했습니다. <죽전>까진 버스 타는 시간은 4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8.2km였으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참고 "고성의 기생 ‘월이’를 아시나요"-경남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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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명승지를 찾아』 [남파랑길] "부산구간 영도-태종대-감지해변" 답사기 봉래교차로-봉래치안센타-봉래골그린공원-해돋이전망대-청봉약수터- 해돋이배수지-고구마역사공원-고신대-와치복지회관-해양대입구-태종대입구- 태종대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태종대입구-감지해변-태종대주차장 [국토지리원 지도]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에 있는 "봉래교차로"에서 출발하여 "봉래치안센타"로 올라 가 "봉래골그린공원"에서 "고구마역사공원-고신대 영도캠퍼스"를 둘러 "와치종합사회복지회관"까지 "봉래산둘레길"을 통과하고 "동삼동"을 통과하여 "태종대"를 둘러 봅니다. ['부산항대교'에서 '영도' 조망] 잔뜩 찌푸린 날씨로는 여행에 '운수 무지 없는 날', 그러나 걷기엔 괜찮은 '운수 좋은 날'에 "부산항대교"를 건너며 버스 안에서 촬영한 "영도"입니다. "부산항"을 세계적 항구도시로 만들어준 천혜의 방파제 역활을 하는 "영도 影島". 오늘은 그 "영도 影島"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영도 봉래교차로'] 11:50 2019년 10월 23일 (수) 흐림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에 있는 "봉래교차로"에 내려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곳은 [부산대교]에서 '영도'로 바로 통하는 '영도'의 중심 교차로였습니다. 위의 고가도로는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를 직접 연결하는 "영도고가도로"였고... ['봉래산' 조망] [봉래교차로]를 건너면서 "봉래산 蓬萊山 396.2m"을 조망합니다. "영도 影島"가 존재 할수 있게 하는 '영도의 중심'이 되는 산이라죠. [봉래산 蓬萊山]은 원래 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3대 神仙山 중에 하나이죠. [영주산, 방장산]과 함께...[봉래산]은 특히 신선이 먹는다는 "불노초"와 "불사약"이 있다고하죠? [蓬萊山]의 "蓬"은 "쑥"을 의미하고 "萊"는 "잡초"를 의미하지만 합쳐 불로초라 하기도 한답니다. [조봉 祖峯]·[자봉 子峯]·[손봉 孫峯]의 세 봉우리가 [봉래산 蓬萊山]을 형성하고 있답니다. 또한 "봉황이 날라드는 형세"라는 "鳳來山"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여하튼 '봉황'이 날라들며 '불노초'가 서식하는 전설 속의 [봉래산 蓬萊山]을 꿈꾸며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 부여를 해 봅니다. 참고로 [영도 스토리텔링 최종보고서]에 나와 있는 [봉래산]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원래 봉래산(蓬萊山)은 중국 전설에 나타나는 영산(靈山)인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이다. 동쪽 바다의 가운데 있으며,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고 한다. '서복(徐福)'이라는 진시황의 신하는 문헌상으로 '서복' 또는' 서불(徐巿)'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중국을 천하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을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사방으로 보냈으나 불로초를 구해오지 못했다. 제나라 출신의 '서복'은 기원전 255년 제나라에서 태어서 진나라의 방사(方士)로 일했다. 그의 생애 동안 불로초를 찾아 동해를 두 번 가게 된다. 자기가 불로초를 구하러 갈 차례임을 알고 기원전 219년(시황 28년) 진시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가야 할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오고자 합니다." 이에 시황은 크게 기뻐하여 동남동녀 수천을 뽑아 그에게 주고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아 오게 하였다. '서복'의 상소문에 있는 봉래산(蓬萊山)은 금강산이요, 영주산(瀛洲山)은 한라산 이다. 그리하여 기원전 219년에서 210년 사이에 시작된 그의 행적은 일본까지 이어진다. 60척의 배와 5,000명의 일행, 3,000명의 동남동녀와 각각 다른 분야의 장인들이 동반한 그 여행은 기원전 210년까지 이어졌으나, 이후 그는 다시 황도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름 금강산"을 "봉래산 蓬萊山"이라 하는 건 모두 아실거고... 조선 시대 최고 문장가 중에 한분인 "양사언선생"의 호가 "봉래 蓬萊"이기도 하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태산가"를 지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양사언선생"은 '여름 금강산"의 이름인 "봉래산 蓬萊山"을 너무 좋아해 자원하여 '철원 현감'으로 가서 금강산을 자주 유람하며 신선의 세계와 현세를 함께할 꿈을 꾸며 많은 기록을 남겼답니다. ['봉래언덕길' 입구 삼거리] 11:55 [봉래교차로]에서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를 직접 연결하는 [영도고가도로]를 좌측으로 따라 몇백m를 진행하면 처음으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봉래언덕길]이 이어집니다. ['봉래언덕길'] [봉래산]을 바라보며 제법 가파른 언덕길을 5분여 올라 가면... ['봉래길'] [봉래산] 비탈에 형성된 [봉래동4가] 골목길을 다시 5분여 올라 가는데 길찾기의 포스트가 되는 [선불사]와 [유진캐슬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봉래치안센타' 앞] 12:04 이어서 "봉래치안센타"를 만나며, 치안센타와 "유진캐슬아파트" 사이에 "봉래골그린공원 입구"가 열립니다. ['봉래골그린공원' 입구] "봉래골그린공원"으로 올라 가는 길 좌측에는 "선불사"라는 절이 있고... 공원 정문을 통과해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봉산약수터'] 12:07 "봉산약수터"가 있는데 주민들의 생활운동시설들과 쉼터가 함께 조성되 있더군요. [오름길] [봉산약수터]를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 가면... [편백나무 숲] 편백나무 숲이 우거진 "봉래산둘레길"를 만나는데 이제부터 [고신대학교 영도캠퍼스]까지 이 둘레길을 진행합니다. 8분여 숲길을 진행하면... [갈림길] 12:15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해돋이배수지 →] 방향으로 올라 가고 ['주막집'] 12:16 이어서 바로 주막집을 지나는데 앞에 [해돋이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간 있으면 묵사발에 막걸리 한잔 하고 싶지만... ^*^ ['해듣이전망대' 조망] 아쉬움 뒤로하고 [해돋이전망대]로 갑니다. ['해돋이전망대' 앞] 12:18~12:21 "해돋이전망대" 앞에는 "청학동 해돋이 마을"에 대한 안내도가 있는데 이제부터 [봉래동]을 벗어나 [청학동]으로 들어 가는군요. [부산시 지명의 유래]에서 인용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영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한말에는 6호의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청학동의 동명은 이곳이 숲이 울창하여 청청(靑靑)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 지대가 학맥설(鶴脈說)에 따라 해운대에서 영도를 바라보면, 마치 학(鶴)이 남쪽으로 날으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청학동이란 동명을 짓게되었다고 한다. 청학동이라 하기 이전에는 지금의 청학동시장과 부산은행지점 바닷가 일원을 조내기라 불러왔다. 조내기 일대는 어장으로 많은 생선이 잡혔다고 한다. 어장의 개발에 따라 뚜겁바구, 넉섬방우, 덤버들 등의 해안지명이 생겨나고, 이후 인가가 들어섬에 따라 조내기라는 지명도 얻게되었다. 조내기란 지명의 유래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이곳의 바닷가는 낮고 개펄이 많아 썰물 때는 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는 조락(潮落)한 곳이 많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는 통신사(通信使) 조엄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이곳에서 처음으로 재배하여 조씨가 고구마를 캐내기 시작하여 조내기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현재까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청학동 해돋이 마을' 안내도] [청학동 해돋이 마을 안내도]를 보는데.... 神仙들이 푸른 鶴을 타고 불노초가 자생하고 불사약이 있다는 전설 속의 "봉래산"에 날라와 천년만년 살았을 "靑鶴洞"이 현재도 과연 그런 전설 속의 마을일까? 다닥다닥 붙은 서민 주택들이 봉래산 기슭에 안감힘을 쓰며 붙어서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서북쪽 방향] 神仙들이 푸른 鶴을 타고 불노초가 자생하고 불사약이 있다는 전설 속의 "봉래산"에 날라와 살았다고 하는 "靑鶴洞"에 있는 "靑鶴洞 해돋이 전망대"에 올라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도시 "부산"을 조망합니다. 서북쪽으로는 [낙동정맥]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몰운대]로 향하는 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정산 고당봉-백양산-엄광산-구덕산-시약산]들이 [몰운대]로 향하고 있고...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인 "부산북항"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며 그 뒤로 [낙동정맥]이 [천성산]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우측엔 [황령산]과 [금련산]이 조망됩니다. [북동쪽 조망] 북동쪽으로는 [부산항대교]가 [부산항]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뒤로 [장산]과 [해운대]의 '엘씨티'등이 조망됩니다. [동쪽 조망] 동쪽으로는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의 시종점인 "오륙도"와 "오륙도SK뷰아파트"가 보입니다. ['봉래산 둘레길'] [청학동 해돋이 전망대]에서 조망을 마치고 둘레길을 잠시 진행하면... ['청골약수터'] 12:25 "청골약수터"를 만납니다. [영도 봉래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후 쪽바리들이 "고갈산 沽渴山-목 마른 산" 또는 "고갈산 枯蝎山-삐삭 마른 도마뱀"이라고 비하하며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라의 정기를 끊는다고 쇠말뚝을 무수히 박았답니다. 그런데도 이 약수터에는 음용 적합 판정을 받은 약숫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정기를 끊을려고 해도 굳건히 일어나는 대한민국을 쪽바리들은 막을수 없습니다. 언제 마셔 보겠냐 싶어 한바가지 시원하게 마시고...혹시 불노초 썩은 물이라도 들어 있으려나? ㅎ [갈림길] 12:27 [봉래산둘레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면 ['연화사' 뒷길] [연화사]라는 절간 뒤를 지나고 ['해돋이 배수지'] 12:31 이어서 [해돋이 배수지] 정문을 만나는데 조그마한 섬 [봉래산] 산비탈에 수돗물을 공급하려면 이런 배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요. ['영도 고구마 역사공원' 앞] 12:31 [해돋이 배수지] 정문 건너편에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이 있습니다.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 정문] ['고구마 시배지 상징 조형물'] "고구마 시배지" 대표적 [구황작물 救荒作物]인 고구마를 최초로 심어 수확한 곳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있는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이더군요. * 구황작물 救荒作物 - 가뭄이나 장마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양분이 많지 않은 땅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작물들로서 조·피·기장·메밀·고구마·감자등이 있다고 하며 * 현재 '조내기 고구마 종자'는 없어지고 다른 품종의 고구마를 전국 각처에서 재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구마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니라 '남아메리카'라고 하더군요. ['조엄과 조내기 고구마' 안내문] "조엄"은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가던 도중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처음 보고 구황작물로 좋다고 판단하여 종자를 부산으로 보냈고, 다음 해(1764) 봄에 부신진 첨사가 봉래산 해안지대에 심어 조내기 고구마의 시초가 되었다는 공원 안내판의 설명이네요 '고구마'라는 말 자체가 그가 지은『해사일기(海槎日記)』에서 일본인이 이를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부른다고 기록한 데서 "고구마"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다 합니다. 그러니까 "고구마"는 일본말 '고귀위마'의 우리식 변음이군요. 밤 맛을 지닌 조내기 고구마는 작고 붉은 것이 특징인데 조내기의 어원은 조엄이 가져와 처음 재배해 내었다는 의미에서 나왔다는 설, 작은 것을 뜻하는 이곳 말인 쪽내기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여럿이 있는데 정확한건 모른다고... "조엄 1719~1777"은 '풍양 趙氏'로 '강원도 원주' 출신이랍니다. "정조대왕"의 외조부인 "홍봉한"의 누이동생이 "조엄"의 부인이라는군요.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고, [혜경궁 홍씨]는 "정조"의 어머니이죠. "조엄"은 과거에 급제하여 일본통신사를 비롯 암행어사, 동래부사, 경상도-평안도관찰사등으로 승승장구 했으나, 뇌물죄등으로 파직당하고 김해로 귀양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답니다.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 안내도] [공원길] [공원 어린이 놀이터] [현장학습 나온 어린이들] 12:35 ['동삼동' 조망] [공원길] 12:39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은 고구마 시배지에 대한 역사공원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을 위한 놀이공원으로 조성되 있어 많은 어린이들이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레길] 계속해서 둘레길을 진행하면 중간에 데크 다리를 하나 만납니다. 이곳에선 조망이 트이는데... ['조도' 조망] 12:44 '부산'에서 아침을 가장 먼저 맞이 하는 곳이라고 "아치섬 朝島"라고 하는 조그마한 섬이 보이는데 현재는 매립되어 육지와 붙은 섬이 아닌 섬이 되었고, "해양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더군요. 그리고 동양 최대의 해양박물관이라는 "국립해양박물관"도 보이는군요. "조도"는 "영도"와 함께 '부산항'의 천연방파제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봉래산 둘레길] 다시 [봉래산둘레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영도구 청학동'에서 '동삼동'으로 들어 갑니다. ['고신대 영도캠퍼스' 뒷길] "고신대학교 영도캠퍼스"를 만나는데 예전 1980년까지는 "고려신학교"였었죠. [고신대]는 캠퍼스가 '부산 영도' '부산 송도'에 있고, '천안'에도 캠퍼스가 있답니다. [사거리] 12:53~12:56 ★ 길조심 ★ [고신대] 울타리가 좌측으로 90도 꺽어지는 곳에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선 이정표에 [←목장원] 방향이라고 가리키는 좌측으로 방향 전환하는게 [태종대]로 가기 쉽습니다. [남파랑길]은 아직 정립된 길이 없기 때문에 어느 길이 바른길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영도 影島]는 삼국시대부터 명마를 사육하는 말목장이었답니다. 그리고 조련된 말들이 무지 빨리 달려 말의 그림자가 따라 가지 못할 정도여서 한자로 "節影馬"라고 했는데 "節影馬"를 기르는 섬이라고 "節影島"라고 불리워 지다가 줄여서 "影島"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목장원]은 부산에서 제일 큰 음식점 중에 하나라는데 '영도'의 서쪽 [절영로]에 있는데 주로 '돌잔치' '회갑년'등을 하는 소갈비 등을 파는 음식점이랍니다. [내림길] 잘 조성된 내림길을 5분 정도 내려 가는데, 이 곳이 "와치공원"이더군요. ['와치공원'] 1:01~1:03 "와치공원" 출입구에서 헤어졌던 횐님들을 기다렸다가 다시 만나고 ['와치종합복지회관'] [와치종합복지회관] 앞으로 내려 갑니다. "와치 臥峙"는 '임진왜란' 부산포 해전 때 이곳에 주둔했던 적의 기치를 끌어 눕혔다는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던데...믿거나 말거나...ㅎ ['영도어울림문화공원'] 1:08 "영도구 동삼동 東三洞"은 '상리', '중리', '하리'의 3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를 합쳐 '동삼동 東三洞'이 되었고, '영도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洞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영도구'의 공공시설들이 이 부근에 움집해 있었습니다. ['동삼동' 통과] '동삼동'의 [와치로]를 따라 15분여 내려 가면... ['조도' 조망] 1:23 "조도"가 성큼 다가오는데 예전에 바다였던 곳을 매립해 해양관련시설을 건립했더군요. [점심식사] 1:27~2:07 (40분간 점심식사) [목천돼지국밥]이라는 음식점에서 부산의 토종 음식인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돼지국밥'은 한마디로 '6.25 전쟁'이 낳은 음식인 셈이죠. 부추무침과 소면을 함께 국밥에 넣어 먹는게 특징이라면 특징. 먹을 것이 부족하던 그 시절에 값이 싸면서도 든든한 돼지국밥은 가난한 피난민들의 배를 채워 주었고 영양을 보충해 주었다는데, 오늘은 [남파랑길]에서 별미 특식으로 쐐주와 함께 즐겼는데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귀한 점심식사였습니다. ['동삼동' 통과] '돼지국밥'과 소주...또한 「구름나그네님」이 주신 맛술이 더해져 도보여행길에서 접하는 흥겨운 특별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제부터 [태종로]를 진행합니다. 5분여 [태종로]를 진행하면... ['해양대' 입구] 2:13 "한국해양대학교" 입구를 만나는데, 입구 우측에 "동삼동패총전시관"이 있더군요. 신석기시대 조개 무덤을 전시하고 있다는데 지금으로부터 8천년 전부터 4천년 전까지 약4천년 동안 만들어진 패총이라고 합니다. ['태종대' 가는 길] [태종대]로 가는 외길인 [태종로]를 10여분 더 진행하면 ['태종대 온천 찜질방'] 2:25 나이 좀 드신 여성들이 좋아할 [태종대 온천 찜질방]을 만나고 ['태종대앞 교차로'] 2:28 이어서 [태종대 앞 교차로]에 도착합니다. 교차로에는 "순직선원위령비"가 있고 ['태종대' 입구] ['태종대 안내석'] 2:30 "태종대 太宗臺"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주변 환경은 완전 깨끗하고 아름답게 조성되었습니다. ['태종대 순환로' 입구] 2:35 [태종대]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 순환로가 있는데, 순환로의 길이는 4.3km라고 합니다. 걸어서 다녀 올수도 있고, 우측에 있는 [다누비 열차]를 이용해 순환할수도 있더군요. ['다누비 열차' 타는 곳] 걸어서 [태종대]를 둘러 볼수 있지만 이번 기회에 [다누비 열차]를 타 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라 [다누비 열차]를 타고 [태종대]를 돌아 보기로 했습니다. [다누비 열차]는 순환로에서 세 곳에 정차하는데, [태종대전망대]와 [영도등대] 그리고 [태종사]이더군요. 그리고 승차권을 한번 끊으면 각 승하차장에서 내렸다가 구경하고 그 다음 [다누비열차]를 다시 타고 계속 이동할수 있더군요. ['다누비열차'] 2:42 [다누비열차]를 타고 10여분 진행하면 ... ['태종대전망대' 승하차장] 2:51~2:57 첫번째 승하차장인 "태종대전망대"에 도착합니다. ['태종대전망대'] "태종대 전망대"는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었다고 하며 전망대와 음식점, 커피샵, 편의점등이 있는데 오늘은 휴업 중이더군요. ['모자상'] [전망대] 앞에는 "모자상 母子像"이라고 하는 조형물이 있는데 '6.25'이후 1970년대에 삶에 지쳐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 "모자상"을 설치하게 되었답니다. 실제 이 조형물을 설치하고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확 줄었는데, 대신에 [영도다리]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었답니다. 이래 저래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전망대] 태평양이 훤히 펼쳐지는 전망대로 나가서 조망을 합니다. ['주전자섬' 조망] [태종대 전망대] 바로 앞에는 "주전자섬 (生島, 유분도 鍮盆島)"이 있습니다. 주전자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글쎄 그리고 일본의 "대마도"가 여기서 56km 거리에 있어 맑은 날에는 잘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흐린 날씨로 아쉬움만 가득 태평양에 퍼져 나갑니다. '서울 북한산'에서 '수원 광교산' 정도 되는 거리일텐데.... ['대마도' 조망도] [태종대전망대]에 있는 "대마도 조망 안내도"인데, 조망안내도에는 [대마도]가 잘 보이지만 오늘은 흐린 날씨로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자살바위'] 전망대 앞 절벽 아래엔 [자살바위]가 암울했던 시절을 부서지는 포말과 함께 회상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때에는 말할것도 없고 1970년대에도 한해에 30여명이 이곳에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망대가 있는 이곳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구명사 求命寺"라는 절을 천막 형태로 짓고 자살을 막고 고혼을 추모했는데, 그 후 1969년 해안작전도로 개설 시에 순직한 육군 제1203 건설공병단 장병 네 사람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해 지난 1976년에 군 지원으로 이곳 천막형태의 "구명사"를 철거하고 전망대에서 태종대 입구 방향 중간쯤에 새로이 번듯한 "구명사"를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다음은 "구명사"에 있는 "구명사 창건 비화"인데 인용합니다. 1959년 여름, 영도 신선동에 살고 있던 정영숙(鄭英淑)은 군에서 제대한 남편이 병환으로 사회활동이 어렵게 되자 생계수단으로 수목이 울창한 태종대 전망대 절벽 위 모퉁이에 작은 가게를 차려 소풍객들을 상대로 사이다 과자류를 판매하면서 틈틈이 남편의 쾌유를 위해 절벽 아래 생도(生島)를 미륵불 삼아 불심을 다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당시는 6.25 동란 직후라 피란민들과 이산가족들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던 힘든 시절이라 현 전망대 아래 절벽으로 몸을 던지는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 해에는 30여명이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사회적 큰 문제가 되기도하여 이곳을 자살바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매일 새벽 절벽 위 모퉁이 가게로 출근하던 정영숙은 동틀 녘 절벽 위에 거지런히 벗어둔 신발을 보곤 섬뜩함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었던 정영숙은 절벽 바위를 찾은 사람들을 살피다 자살을 하러 온 듯한 사람이 보이면 그들의 애달픈 사연을 들어주며 '자살 시도자'들의 결심을 돌리게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다 보니 마침내 '자살바위에 신들린 사람'이 되었다. 1961년 어느 여름날, 극약을 먹고 바위에 쓰러진 처녀를 업고 와 비누를 갈아 먹여 위장의 내용물을 토하게 하고 죽을 쑤어 먹여 살려놓았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고마워 이 곳을 떠날 수가 없다"라며 20일 가까이 함께 가게를 돌보며 부처님께 합장을 올린 일도 있었다. 처녀는 서울의 명문 여대 재학생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이곳을 찾았음을 서울로 돌아간 뒤 보내준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 편지 서두는 "바다 밑 이름없는 조개껍질이 되었을 저를 구해주신 아주머니께"로 시작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직한 가장의 눈물도 보았고, 의부(義父)의 학대에 몸서리치는 여공의 슬픈 사연도 들었다. 그렇게 정영숙의 설득으로 발길을 돌린 이가 한해 15~20여명이 되니, 십여년 동안 150여 명은 족히 넘는 목숨을 구제하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자리한 지 3년 후, 지성이면 감천이지 남편도 건강을 회복하여 가정이 안정을 찾자, 이 곳에 절을 지어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기로 결심하고 가게 일 틈틈이 돌을 모아 담장과 울타리를 쌓기 시작했다. 조금씩 돈이 모이면 시멘트도 바르고 인부를 사서 슬레이트 지붕도 올렸다. 마침내 1968년 움막 같은 절이 완성되었고, 부산 청룡사(靑龍寺)에서 스님도 모셔왔다. 그리고 생명을 구원하고, 고혼을 달래기 위해 불사를 일으킨 곳이라고 하여 '구명사(救命寺)'라는 작은 현판도 달았다. 그러나 태종대 해안도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1970년 철거가 되고 말았는데 때마침 도로공사작업 중 발파작업 사고로 육군 제1203 건설공병단 장병 네 분이 순직하는 일이 벌어져 이 분들의 영령을 봉안하는 일이 큰 화두가 되자 육군 공병단에서 지원하여 1971년 10월에 현재의 장소에다 새로이 절을 건립하여 4분의 영령을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살로 이승을 하직한 사람들도 함께 명복을 빌어드리는 축원을 올리기 시작하였는데 그러한 공덕이 쌍여 오늘날에 와서는 부모형제 등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이 조상을 극락으로 이끄는 제를 올리는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 되었다. 특히 구명사는 산신각, 천불전의 현판 글씨와 돌에 새긴(서각) 절 표지석 이 세점은 모두 일봉 서경보 스님의 글씨이다. - 글쓴이 영도구 문화관광 자문위원 姜太仁 - ['영도등대' 승하차장] 2:59 [태종대전망대]에서 [영도등대 입구]까지는 200m로 잠깐이면 걸어 갈수 있어 [다누비열차]를 타지 않고 2분 정도 걸어서 갑니다. [등대 출입구] 3:00 [영도등대 출입구]를 통과해 내려 가면... [계단 내림길] 계단 내림길이 이어지며 ['해기사 명예의 전당'] 먼저 "해기사 명예의 전당"이 계단 중간에 있습니다. ** "해기사 海技士"는 일정 수준의 기술 또는 기능이 있어 선박의 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업무수행을 할 수 있도록 면허받은 자격, 또는 그 자격을 가진 자를 말함. [등대 조망]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서 [영도등대]를 조망하고 [계단 내림길] ['바다헌장'] 계단 내림길을 내려 가면 [바다헌장]과 조형물이 있고 ['무한의 빛' 조형물] 이어서 "무한의 빛"이라는 조형물이 내방객들을 기다립니다. 이 조형물은 "해양도시 부산,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갔으면 한다."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태종대'] 바다 속에서 긴 세월 동안 퇴적되 만들어진 퇴적암들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형성된 바위 지층들. 수많은 세월 동안 파도에 침식되어 부산의 대표적 지질공원을 이루고 있는데... "태종대 太宗臺"의 위치는 [태종산]이 있는 [영도]의 남쪽 끝 해안 절벽 전체를 포괄적으로 일컷지만 그 중에서도 실제 "태종대 太宗臺"는 어디일까?...궁금하지 않나요? 그래서 심층 조사를 했습니다. '신라 29대 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활을 쏘며 쉬어 갔다고 하는 바위가 사진 속에 수십명이 앉아도 될 평평하고 넓직한 바위가 실제 "태종대 太宗臺"랍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바위는 "망부석 望夫石"이라고 하는 바위인데 옛날 왜구에게 끌려 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여인이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눈보라가 치건 땡볕이 내리쬐건 굴하지 않고 일본 땅이 아련하게나마 보이는 이곳에서 돌처럼 서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돌덩이로 굳어 버렸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런 전설을 따라 이 바위를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 望夫石"이라 일컫게 되었답니다. "신선대 神仙臺, 神仙岩" 예전에는 [태종대]를 [신선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신선이 머물만한 아름다운 경치를 가졌기 때문인데 옛날 神仙이 바로 이 바위 위에서 도끼자루가 썩는 줄 모르고 느긋하게 앉아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또한 이곳 [신선대]는 선녀들이 내려와 놀고, 아이를 낳기도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답니다. 바위에는 아이의 태를 끊는 가위와 실패의 흔적, 그리고 출산한 선녀의 오른쪽, 왼쪽 무릎이 닿은 흔적도 남아있다고 하는데, 오른쪽 무릎에 힘을 더 주었기 때문에 오른쪽 흔적이 더욱 선명하다고 하는군요. ^.^ 신선 선녀들이 사랑을 하며 아이까지 낳던 바위여서 지금도 순산을 기원하는 산모들이 찾는다고...ㅎ ['영도등대 해양문화공간'] "영도등대"는 일제강점기시절에 만들어져 세계로 뻗어 가는 '부산항'의 길잡이가 되어 왔답니다. 지금은 불빛이 아닌 첨단 과학기술로 선박운항을 돕는 "영도 항로 표지 관리소"로 변모했답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등대 시설, 예술 작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도 설치했더군요. 자연사박물관에는 이 근처에서 발굴했다는 공룡알 공룡발자욱등도 있고 ['영도등대 선착장'] 항로표지소 아래 해변엔 배처럼 생긴 건물이 눈길을 끄는데, [태종대 관광유람선 선착장]이었습니다. ['태종대'] "태종대"의 핵심 "태종대"라고 하는 "태종대 바위와 망부석, 신선대"...그리고 "주전자섬"... 진짜 "太宗臺"가 펼쳐집니다. '대마도'까지 보였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희망의 빛'] [영도 항로 표지 관리소]에는 "희망의 빛"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인어상이었습니다. 물고기 비늘 모양 그물 팬티스타킹만 입고 옷을 벗고 있어 오늘처럼 바람이 심한 날에는 춥겠군요.ㅎ 반드시 옷 벗은 여자가 횟불을 들어야 "희망'을 주는가? ~ ㅎ 예술이라 믿겠습니다. ['등대자갈마당'] 관광 유람선 선착장에는 해삼 멍게에 소주도 팔고... 오늘 바람이 좀 심해 유람선이 운행을 못해서 손님이 없는데, 우리 횐님 중에 몇분은 내려 가서 기여코 소주에 해삼 멍게를 맛보고 올라 오더군요. ㅎ 이곳이 "등대자갈마당"이라고 하는데, [태종대]에는 '자갈마당'이 세군데 있다는군요. ['자갈마당' 각 위치] [태종대]엔 '자갈마당'이 이곳 [등대자갈마당]과 그리고 [태원자갈마당]...오늘 마지막 종점이 될 [감지자갈마당]이 있답니다. ['오륙도''해운대' 조망] [영도등대]에서 바라보는 [오륙도]와 [해운대]방향입니다. ['태종대'] "무한의 빛"이라는 조형물과 "주전자섬"..그리고 "태종대"와 "망부석"..."신선대" 사람들 중에는 "무한의 빛"이라는 조형물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천혜의 자연 경관을 뽐내는 "태종대-망부석-신선대"와 "주전자섬"에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조형물이라는 분들도 있고, 그런데로 독특하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파란문'의 생각은 어떻냐구요? ㅎ 언급 않겠습니다. 감상은 자유니까요 ~ 하지만 이런 명승지에는 명승지에 어울리는 조형물을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ㅎ ['영도등대' 승하차장] 3:23~3:37 약 25분 정도 "영도등대"를 둘러보며, 실제 "태종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누비열차] 승하차장으로 돌아가 [다누비열차]를 타고 원점 회귀했습니다. ['다누비열차' 승하차장] 3:45 [영도등대]에서 8분 정도 [다누비열차]를 타고 [태종대입구 승하차장]으로 돌아 갔습니다. ['태종대 입구 관광안내소'] 3:48 [태종대] 입구 [관광안내소]를 통과하여 주차장으로 가면... ['태종대 주차장'] 3:50 [태종대주차장] 서쪽으로 "감지해변"이 있어 다녀 오기로 합니다. 다음 구간으로 연결되는 [감지해변]인데 요즘 [갈맷길 개량공사]로 연말까지 출입 할수 없다고... 그래서 다음 구간은 [중리해변]에서 시작한다는 산악회장의 안내가 있어서 다녀 오는 것입니다. ['감지해변' 입구] 3:52 ['감지해변 자갈마당'] ['부산 남항' 방향 조망] 3:54 "감지해변 甘池海邊" [영도]는 우리나라 名馬를 키우는 國馬場이었다는 것과 이곳에서 자란 말들은 '자기 그림자보다 빨리 달려서 絶影馬'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는 것은 [삼국사기]등 여러 고문서에 기록으로 나와 있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자라는 말들이 더욱 빨라질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는데, 여러 이유 중에서 하나는... 이 지역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의 물이 맑고 달콤하여 [영도]에서 방목되는 말들이 목이 마르면 가서 그 연못의 물을 먹었답니다. 그리하여 그 연못의 이름이 "감지 甘池"가 되었고 [영도]에서 방목되는 말들이 이 물을 마시고 絶影馬가 되었으며, 그후 이 섬의 이름까지 絶影島→影島가 되게 했으니 이 "감지해변 甘池海邊""감지 甘池"가 주는 의미는 크다 아니할수 없겠습니다. [영도등대 자갈마당]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이곳도 [태종대]의 "자갈마당' 세곳 중에 한곳. [부산항] 밖에서 정박하고 있는 대형 선박들이 엄청 많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남파랑길-영도 태종대구간]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올라가 버스를 타고 귀경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다누비열차] 거리 포함하여 13.4km였으며 4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태종대 항공사진'] 마지막으로 [네이버지도 항공뷰사진]을 캡쳐하여 이해하기 쉽게 편집도 한 "태종대"입니다. 엄청나게 큰 거북이 한마리가 태평양을 향해 느린 헤엄을 치는 듯한 "태종대"는 이렇게 보아야 그 진면목이 보이는듯 하군요. 또 다시 기회가 오려는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관광 유람선을 타고 "태종대"를 바다에서 보고 싶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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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명승지를 찾아』 [남파랑길 부산구간 Ⅱ] "흰여울마을-용두산공원-자갈치시장-송도해수욕장" 중리해안-85광장-75광장-하늘전망대공원-흰여울터널-흰여울문화마을- 깡깡이마을-영도다리-남포역-광복동문화거리-용두산공원-부산근대역사관- 국제시장-자갈치시장-새벽시장-남항대교-거북섬-송도해수욕장 [관광안내도] [국토지리원 지도] [구글 지형도]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중리해변"에서 출발하여 [절영로]를 따라 "하늘공원"까지 진행하고, [절영로]에서 바다갓길인 "절영해안산책로"로 내려가 "흰여울해안터널"까지 진행합니다. 여기서 다시 "이송도전망대"로 올라 가서 "흰여울문화마을"을 구경하고 "깡깡이예술마을"을 경유하여 "영도다리"를 건너 "광복동문화거리"로 들어가 "용두산공원"으로 올라 가고, 이어서 "국제시장""자갈치시장"을 통과하여 "송도해수욕장"까지 약14.5km를 진행합니다. ['중리해변' 입구] 12:05 2019년 11월 13일 (수) 흐림 빗님이 오후에 내린다는 예보가 있는 조금 흐리날에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중리포구"에 도착하여 [남파랑길]을 출발합니다. ['중리해안'] "동삼동 東三洞"은 ‘동쪽에 위치한 3개의 마을’이라는 뜻인데, "상리, 중리, 하리"등 영도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세 개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지금의 동삼동이 되었답니다. 이곳은 "중리 中里"에 있는 포구여서 자연스럽게 "중리포구-중리해변"이 되었답니다. ['절영해안산책로'] 동행한 산악회 횐님들은 모두 바다갓길인 "절영해안산책로"로 들어 갑니다. [남파랑길]은 아직 구체적으로 루트가 정해진건 없고, 현재 계획 중에 있습니다. 어느 길이 [남파랑길]이고 아니고는 순전히 남해안을 걷는 사람들의 선택적 몫입니다. 앞으로 [남파랑길]이 만들어진다해도, 정해진 길만을 따라 철로를 걷드시 가는 것은 여행의 묘미가 없습니다. 규격화 된 길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미리 조사를 하여 걷는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절영로'] 그래서 저는 오늘 여행코스를 미리 충분히 조사하여 여유롭고 구경거리 많은 길로 진행합니다. 아랫쪽 바닷가 [절영해안산책로]는 오르내림이 많은 이름 그대로 해안길이어서 바닷가 자연을 구경하며 걷는 길인데, 그동안 [해파랑길]이나 [서해안길]에서 엄청 많이 접해본 해안길이라 그 길을 벗어나 편하고 볼거리가 새로운 '사람 사는 길'인 [절영로]를 홀로 진행합니다. 앞에 보이는 소나무 숲으로 가면... ['중리해녀촌입구'] 12:11 ['85광장'] 12:14 [중리해녀촌]으로 내려 갈수 있는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면 "85광장"이라는 쉼터를 만납니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85광장"인줄 알았더니 '1985년도'에 조성된 광장이어서 "85광장"이랍니다. ㅎ ['절영해안산책로'] "85광장"에서 [절영해안산책로]를 내려다 보는데 해안 절벽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많습니다. [삼거리] 12:17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영도]의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도로로서 [고신대]로 갈수 있는 삼거리였습니다. 삼거리를 지나면 바로 "75광장"을 만나는데... ['75광장' 입구] 12:18~12:23 ['영도찬가'] ['75광장'] ['사자정'] "75광장" [절영로]에 있는 쉼터 겸 조망처로서는 규모가 가장 큰 공원이었습니다. "75광장"도 "85광장"과 같이 '1975년도'에 조성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영도]의 서쪽 해안 절벽 위에 있는 "사자정 獅子亭"과 "영도 찬가" 비석이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었습니다. [남쪽 조망] "사자정 獅子亭"에 올라 먼저 남쪽을 조망하면 [태종대] 앞에 외로이 떠있는 "주전자섬"이 보입니다.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오늘 여행의 종착지인 [송도해수욕장]과 '부산의 중심지'가 조망됩니다. ['75광장' 조망] "사자정 獅子亭" 위에서 내려다 본 "75광장"인데 봉수대도 보이는군요. ['절영마'] 12:23 [75광장]에서 다시 [절영로]로 나가면 "절영마 節影馬" 조형물이 거리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자기 그림자 보다 더 빠르다고하니 "빛의 속도" 보다 더 빠르다는 말이겠죠? ㅎ ^*^ 하여간 '날쌘돌이'를 강조하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요즘 이런 말 한마리만 있으면 경마장에 가서 떼돈을 벌텐데...ㅎ ['목장원'] 12:24 "목장원"이라는 음식점이 [봉래산 손봉] 아래에 규모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습니다. '한우등심' '한정식' '뷔폐'등을 하는 대형 음식점이라는데, 돌잔치등 단체객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하늘전망대' 앞] 12:25~12:30 ['하늘전망대 스카이워크'] ['조망도'] [목장원]을 지나면 "하늘전망대"가 나타납니다. '스카이워크'가 해안 절벽 밖으로 돌출되 있어 조망하기 좋았습니다. 중요 조망 포인트 안내도가 있어 비교해 가며 조망을 하면... [남쪽 조망] "대마도"가 보인다는 남쪽...흐린 날씨 때문인지 "대마도"는 보이지 않고 '입항'을 대기중인 대형 선박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정박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선박들이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정박해 있죠? 그 이유를 아시나요? 선박이 바다에 정박 할때엔 반드시 '바닷물의 흐름', 즉 조류 방향으로 뱃머리를 놓아야 물의 저항을 덜 받아 움직임이 최소화 되어 안전하겠죠. 그래서 모든 선박들이 모두 조류방향으로 일렬로 닻을 내리고 정박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 [남서쪽 조망] 남서쪽도 시원한 조망은 없고 [서쪽 조망] 서쪽에는 [암남공원 岩南公園]과 [진정산] [두도 頭島]가 잘 보이고 [송도해수욕장]도 보이는군요. [두도 頭島] 뒤로 [낙동정맥]의 끝인 [몰운대]와 [쥐섬]이 옛 추억을 일깨워 주는군요. ['몰운대'에서 '쥐섬'을 배경으로...]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낙동정맥]을 끝내며 '몰운대'에서 '쥐섬'을 배경으로 찍은 추억의 사진인데 땀으로 흠벅 젖은 쬐끔 젊었던 여름날의 추억입니다. ㅎㅎ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송도해수욕장]과 [천마산]이 보이는군요. [해변 조망] "하늘전망대 스카이워크" 아래엔 [절영해안산책로]가 이어지고 [동쪽 조망] '스카이워크'에서 뒤돌아 보면 [봉래산 손자봉]이 새로운 각도로 보입니다. 저 봉우리들을 오르는 날도 손꼽아 기다립니다. ['영도사격장'] 12:31 '스카이워크'를 지나면 "하늘공원"을 만나고 공원 앞엔 "영도 사격장"이 있습니다. 실탄 사격을 하는 곳이라는데 일반인들도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사격 할수 있다고 ['무지개다리' 갈림길] 12:32 [하늘공원]을 지나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기서 직진하는 길은 오로지 도로 뿐이니 이젠 [절영해안산책로]인 해안으로 내려 갑니다. 이정표엔 "무지개다리"로 내려 간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내림길] ['무지개다리' 조망] [하늘공원]에서 잠시 급경사 내리막 계단을 내려 가면 "무지개다리"라고 하는 다리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무지개는 보이지 않더군요. ^*^ [봉래산]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이 다리로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킬때 무지개가 나타난다고 [무지개다리]라고 명명한게 아닐지 추측해 봅니다. [남쪽 조망] 12:36 [무지개다리]에서 "중리해변"에서 이어지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뒤돌아 보고 ['무지개다리'] 지금부터 진행 할 [절영해안산책로] 방향을 조망합니다. [송도해수욕장]과 [남항대교]가 더욱 가까워집니다. ['갈맷길'] ['파도광장'] 12:41 [갈맷길]을 5분 정도 진행하면 "파도광장"이라는 해변을 만나는데 자갈마당이더군요. 조금 더 진행하면... ['흰여울해안터널' 조망] 12:45 ['흰여울해안터널'] [안내문] "흰여울해안터널"을 만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흰여울해안터널' 통과] 70m 길이로 약40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터널을 통과하면.... ['피아노계단' 입구] 12:48 바로 "피아노계단 입구"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버리고 [피아노계단]으로 올라가야 '영도의 명소' 아니 '부산의 명소'라고 하는 "흰여울문화마을"을 구경하며 통과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계단'] 피아노 건반 모양을 한 계단이어서 아마도 "피아노계단"이라고 하는듯 한데 제법 길고 가파릅니다. 하지만 이런 발품을 팔지 않고는 생동감있는 새로운 삶의 현장을 체험 할수 없으니 힘들더라도 올라 갑니다. ['이송도 전망대'] 12:54~1:07 [피아노계단]을 오르면 "이송도 전망대"가 올라 오느라 수고 많았다고 아름다운 경치를 제공해 줍니다. "이송도 二松島"는 건너편 우리나라 제1호 해수욕장인 '암남동'의 "송도"를 "제1 송도"라 하고 마주하고 있는 이곳 "영도 영선동"의 "흰여울마을 일대"를 "제2 송도"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이곳 전망대의 이름이 "이송도전망대"가 되었다고 ['피아노계단' 조망] "이송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피아노계단]입니다. 제법 길고 가파르죠? ㅎ 발품을 팔아야 지금부터 펼쳐지는 "흰여울문화마을"을 만끽 할수 있습니다. ['흰여울문화마을'] 1:08 [이송도전망대]를 나서면 "흰여울문화마을"이 시작됩니다. [흰여울길]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림으로써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하여 [흰여울길]이라 했답니다. [흰여울길] 주변일대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2송도]라 일컫는다죠. '6.25전쟁' 피난민들의 가난한 생활 거주지였던 '봉래산' 기슭의 가파른 벼랑에 살던 사람들은 새로운 아파트 등으로 이사하고 그들이 살던 집들은 폐가가 되어 가고 마을은 유령의 마을로 변했는데 부산시가 2011년 12월 공.폐가를 리모델링하여 지역 예술가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영도 구민들로 하여금 생활 속 문화를 만나게 하는 독창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꾸며 거듭났답니다 지금은 부산을 찾는 여행객들의 명소로 관광지화 되었다고... 지금부터 일직선으로 연결된 좁은 벼랑 골목인 [흰여울길]을 통과해 보겠습니다. ['등대쉼터'] 1:10 ['무지개계단' 입구] 1:12 [흰여울길]엔 카페가 많았으며, 다양한 벽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하며 바다를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에 쫏기는 나그네는 횡하니 지나칩니다. ['흰여울 안내소'] 1:13~1:16 [흰여울길]의 백미는 "흰여울 안내소"였는데 그 이유는 영화 "변호인"의 촬영 장소 중에 한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내소 벽에는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이곳 촬영분 대사가 쓰여 있었습니다. ['흰여울 안내소'- 영화 '변호인' 촬영장소] 안으로 올라 가니 6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직도 살아 있는듯 슬레트 지붕에 좁은 생활 공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살며 자신 희생하며 악착같이 자식 공부시켜 우리나라 발전의 토대를 만든 곳이라 생각하니 그 어머니들의 사랑이 느껴지며 뭔가 허공에 무지개가 피어 오르는듯 합니다. [안내소 내부]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다는 조그만 방으로 들어 가 보니 [흰여울문화마을]에 대한 안내물들이 나열되 있었으며, 예술인들의 작품도 몇점 보였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송도해수욕장'] 예전 이런 집들을 '하꼬방'이라 했죠. '상자'같다는 일본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만... 비참하고 처참한 궁핍한 생활상을 보여 주는 창문입니다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이젠 '낭만'을 생각하더군요. [영화 '변호인' 포스터]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대화'] "노무현 전대통령"을 정치에 들어 서게 하는 "부림사건"을 영화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전두환"이의 신군부가 조작한 용공 간첩사건이었습니다. 내용은 모두 잘 아실테니 아래 백과사전을 참고하시고... 그 영화의 백미라 할수 있는 대사를 한번 더 곱씹어 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 당신이 말하는 국가란 무었입니까 ?" 독재권력 전두환을 향해 부러짖는 그 외침이 생생합니다. 백과사전에서 "부림사건"을 인용하면... "부림사건"은 1981년 부산의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국가전복과 사회주의 건설을 모의한 국가변란조직으로 몰아간 부산지역 사상 최대의 조작 공안사건이다. 전두환 공안당국이 독서모임인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 회원인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19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최장 60여일까지 불법 감금·고문하고 구속기소해 유죄 판결이 나왔다. 당시 이 사건 변론을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고, 이는 2013년 개봉해 11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마을 쉼터] 1:16 ['커피-스넥코너'] 이런저런 서민들의 마을을 상품화한 마을들을 지나며 즐거움 보다는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앞서는 것은 나 뿐일까.... ['흰여울마을 출입구'] [흰여울마을] 골목길을 벗어나는데 벽에 쓰여 있는 한 귀절이 도보여행을 정의해 주는군요. [파란문]도 굼뱅이처럼 뉘엇뉘엇 삶의 현장을 돌아 보는 도보여행이 되도록 해야 할텐데.... 언제나 시간에 쪼들리는 내 형편이 안스럽습니다. [뒤돌아 본 '흰여울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 1:22 "흰여울마을"을 나서며 뒤돌아 본 마을 전경입니다. 아랫쪽 [절영해안산책로]는 주민들의 건강산책로라 여겨지니 [절영해안산책로]를 걷기 보다는 [흰여울마을길]을 걸어야 여행의 운치가 더 있을 듯 합니다. [갈림길] 1:25 [흰여울마을]을 벗어나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니는데 [절영해안산책로]로 들어 가는 길인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내림길] 해안산책로로 내려 가는 데크 계단에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잠자고 있었고 어미는 계단 옆에서 밥을 먹으며 새끼의 안위를 지켜보고 있더군요. ['부산남항대교'] 1:29 아파트와 방파제 사잇길을 진행하는데 "남항대교"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남항동' 통과] '남항동'을 12분여 통과하면... ['국제선용품유통센타'] 1:41 [국제선용품유통센타]를 만나고 ['대평동 깡깡이마을'] 1:52 이어서 '대평동' "깡깡이예술마을"로 들어 갑니다. 배 표면에 슨 녹이나 조개 같은 이물질을 털어내기 위한 망치질 소리 때문에 ‘깡깡이 마을’이라고 불리워진 '부산 영도구 대평동'의 조선소 지역을 일컷는다고 합니다. 억척스러움의 대명사인 "깡깡이 아지매"는 고된 깡깡이질에 나선 대평동 중년 여인들의 근면함과 끈기를 일컫는 말이라는데 현재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후유증으로 여러 질병에 시달린다고... 뭔일이던 해서 자식들을 부양 해야만 했던 그 시절 그 여인들을 회상해 봅니다. ['남포동' 조망] '대평동 깡깡이마을' 건너편엔 '부신의 심장부'라 할수 있는 '남포동'이 조망되고 그 뒤로 "천마산 天馬山 326m"이 완벽하게 조망됩니다. "절영마"가 하늘을 나는듯... ['자갈치시장' 조망] 어물냄새 풍기던 "자갈치시장"은 갈매기가 나는 듯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바다 위를 나는듯 합니다. 여기서 미리 알려드리면 저는 오늘 "자갈치시장 전망대"를 올라 부산항 주변을 조망 할것입니다. [용두산공원]은 당연 찾아 볼것이고 ['롯데마트''영도다리' 조망] '부산'엔 "롯데"가 주름 잡고 있다죠? 프로야구팀까지 [롯데자이안트]가 본거지이고... [부산대교]와 [영도대교] 사이 중앙동에 자리 잡고 있는 "부산롯데종합몰"이 보입니다. 저 자리는 원래 "부산시청"이 있던 곳인데... ['대교동' 통과] '대교동'의 남항을 통과하여 [영도다리]로 나가면... ['현인' 노래비] 2:10 "가수 현인선생 노래비"가 지나는 나그네의 눈길을 끕니다. [영도다리]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애타게 찾는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들려 오는듯...♬ ['영도대교'] 2:10~2:13 ['영도대교'] [부산시청에서 퍼 온 사진] 매일 오후 2시에 [영도다리]를 들어 올리는 행사를 "도개쇼"라고 한다는데 '부산갈메기'라는 노래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뿔사 약간 늦게 도착하여 끝나 가고 있는 시점이어서 무지 아쉬웠습니다만 퍼 온 사진으로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유라리광장'] [영도다리] 아래엔 "유라리광장"이라는 광장이 [자갈치시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유라리"가 뭔 뜻인지...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파란문]이라 확인해 봤습니다. "유라리 광장" 유라시아 대륙의 국도 7호선의 시점과 종점인 이곳을 유럽의 유와 아시아의 라(아) 그리고 사람, 마을, 모여 즐겨 노는 소리를 뜻하는 리(이)의 조합으로 유럽과 아시아인이 함께 어울려 찾고 즐기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5년 11월 21일 부산광역시 중구청장 ['광복동-남포동' 삼거리] 2:14 [영도다리]를 건너면 [남포동]과 [중앙동] [광복동]이 만나는 "영도대교 앞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롯데마트] 자리는 원래 [부산시청]이 있던 곳이죠. [용두산공원]으로 가려면 [부산지하철 남포역 6번출입구]로 들어가 [7번출구]로 나가면 됩니다. ['광복동 문화의 거리'] [부산지하철 남포역 7번출구]로 나가면 좌측으로 '부산의 명동'인 "광복동거리"가 펼쳐집니다. 완전 로데오거리로 변모했군요. [용두산공원]으로 올라 가는 에스컬레이트가 있는 곳은 [Reebok판매점] 다음에 있습니다. ['용두산공원' 입구 에스컬레이트] 2:23 [용두산공원]으로 올라 가는 에스컬레이트는 약100m로 엄청 긴 에스컬레이트였습니다. [에스컬레이트] "용두산"의 높이가 51.4m 정도이니 윗 사진과 같은 에스컬레이트 네개를 이은 4단 에스컬레이트여서 세번 갈아 타고 올라 갔습니다. 에스컬레이트 내부 조명 빛의 색깔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향연을 하고 ['미타선원'] 에스컬레이트를 갈아 타는 곳엔 [미타선원]이라는 선원 입구도 있고... [에스컬레이트 빛] 빛쑈를 하는 듯한 마지막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눌루날라 올라 가면... ['용두산공원' 입구] 2:26~2:34 ['용두산공원'] "용두산공원 龍頭山 51.4m"에 쉽게 올랐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엔 이곳에 그들의 신사를 지어 참배를 하게 했던 곳이라죠. 또한 "미화당백화점"이 근처에 있어 저도 용두산공원을 올랐다가 '미화당백화점"으로 내려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런 모습은 간데 없고 "부산의 상징"이 되어 우릴 반겨 줍니다. "용의 머리"를 닮았는지는 알수 없고 [부산타워]가 긴 목을 내밀고 부산시내를 굽어 보고 있고 [지나온 길] 공원에 올라 뒤돌아 보니 올라온 에스컬레이트와 [롯데마트], 그리고 '영도"의 "봉래산"이 조망됩니다. [종각] "용두산 종각"은 서울의 [보신각]과 같은 종각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매년 12월 31일 밤 12시에 타종행사를 하는 곳이죠. 부산 지상파 TV 방송 3사가 생중계를 하죠 ['꽃시계'] 이곳 "꽃시계"는 전국에 있는 모든 꽃시계 중에 유일하게 "촛침"이 있는 꽃시계라고 자랑하네요. ㅎ ['이순신장군상'] [용두산 정상]에는 쪽바리들의 신사가 있었던 곳이랍니다. 해방후 '민영석'이라는 사람이 일본 신사에 불을 질럿는데 때마침 강한 바람으로 대형 화재로 변해 몽땅 타버렸다네요. '민영석'이라는 사람은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두번이나 옥살이를 했고 그 보복으로 방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6.25 때엔 피난민들의 판잣집이 이 "용두산"을 뒤덮었답니다. 그 때에 또다시 대형 화재가 나 판잣집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그 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는데 몽진 중이던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이라 한때 불려졌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몰락하고, 1966년 '박정희군사정권'이 집권하면서 "용두산공원"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보시는 바와 같이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이 우리나라 바다를 굽어 보며 쪽바리들을 경계하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부산면세점'] [부산면세점 용두산점]과 [부산타워]가 있는데 [부산타워]는 높이가 120m이고 서울 남산의 [서울타워]보다 2년 먼저 준공되었다네요. 관람료가 성인은 8,000원으로 좀 비싸죠? ㅎ 서울 남산 [서울타워]는 7,000원인데.. 잠시후 [자갈치시장 전망대]에서 무료로 부산을 조망 할수 있으니 [부산타워]는 올라 갈 필요 없고 ['부산근대역사관' 가는 길] 2:35 [용두산공원] 뒷쪽에 있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가는 공원 내림길입니다. 200m 정도 진행하면... ['용두산어귀삼거리'] 2:39 [용두산어귀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 좌측에 [부산근대역사관]이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명소를 관람하라고 [남파랑길]을 이리로 돌아 가게 만들었는 듯 한데 우리 횐님들은 그런 내용을 모르니 여기서 '중국호떡'만 사먹고 가버립니다. '중국호떡'을 사준 '이선생님'에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부산근대역사관]을 둘러 봅니다. ['부산근대역사관'] ['역사관' 입구] "부산근대역사관" 이렇게 유명한 건물을 그냥 지나치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 자원수탈기구로 악명 높았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습니다. 또한 해방된 후엔 '미국해외홍보관' 역활을 하는 "미문화원 美文化院"으로 미국이 차지하고... 70여년간의 외세 지배로 점철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건물입니다. 급기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기에 미국이 신군부의 군대 동원을 용인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1981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의 지지와 공고한 한미동맹관계를 확인하고 제5공화국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화운동세력에게 미국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 의식을 확산시켰습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인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 등은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방조하고 광주학살을 용인한 것을 비판하면서 이곳 부산미문화원에 잠입하여 방화하고 “미국은 더 이상 남한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하는 사건이 발생했었죠. 그 과정에서 화재로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전두환에 대한 분노는 더해 갔는데 전두환이는 아직도 사과 한마디는 커녕 자기 탓이 아니라고 괴변을 늘어 놓으며 골프나 치러 다닙니다. 이런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부산미문화원" 부산시민들의 끈질긴 반환 요청으로 1999년에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아 2003년에 현재의 역사관으로 만들어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 와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아~! 다시는 그런 굴욕적인 역사를 만들지 맙시다 ['대청사거리'] 2:44 [부산근대역사관]을 뒤로하고 [대청동] 거리를 잠시 거닐면 "대청사거리"를 만납니다. [남파랑길]을 여기로도 뺑뺑이를 돌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를 졔 나름대로 유추해 보면... 첫째, 이 사거리 우측에 1979년 10월에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민주공원]이 '보수산 寶水山 169.1m"에 있으며 민주항쟁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부산의 명소이죠.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대통령'의 유신체재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이었죠. 둘째, 이 사거리 직진 건너편엔 그 유명한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지요. 피난시절 생활고를 못이겨 아끼던 책들을 내다 팔아 먹을거리를 사고,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이 싼 헌책을 구입하러 다니던 헌책방골목이 있고 셋째, 이 [대청사거리] 좌측엔 너무나 유명한 "국제시장"이 있어서라고 생각됩니다. 피난시절 구호품이나 구제품들을 거래하던 부산의 중심 시장이었으니까요. 도보여행객들이 모르면 그냥 길만 걷고 지나치는 의미없는 길을 걸을 뿐입니다. 안내산악회가 안내해 주어야 하는 할일은 의외로 많은데... ['부산국제시장'] "부산국제시장" '6.25전쟁' 피난시절의 애환이 서려있는 시장입니다만, 현재는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다른 여느 대도시의 큰 시장과 별 다름이 없어 언급은 줄이고 그냥 패스 ~ ['남포사거리'] 2:57 [국제시장]을 지나면 [남포사거리]를 만나는데 직좌하여 [자갈치시장]으로 갑니다. ['자갈치시장'] 3:03~3:13 "자갈치시장" 바닷가에 자갈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자갈밭의 어시장은 사라지고 현대식 고층 [자갈치시장]이 들어서서 시장이라기 보다는 회센타가 되었습니다. [전망대 입구] [자갈치시장]에선 전망대를 다녀와야하는데, 건물이 워낙 커 입구를 모르면 찾아 가기 어렵더군요. 전망대 입구는 시장건물 우측 끝 지점이었습니다. 입구로 들어 가면 7층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 갑니다. ['7층' 전망대 입구] 7층에 내리면 정면에 [terra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전망대는 우측 비상계단으로 들어가 한층 더 올라 갑니다. ['자갈치시장 전망대'] "자갈치시장 전망대" 얼마전 KBS TV의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이다도시'씨가 만나고 싶어 하던 한국에 처음 와 취직했던 신발공장 '미스 킴'을 찾아 상봉하는 장소로 나왔더군요. 무료로 부산항과 주변을 조망 할수 있는 곳이라 찾았습니다. 자갈치시장 건물 위 갈메기 날개 아래에 전망대는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영도다리''영도' 조망] [영도다리]와 [영도 봉래산]을 조망하고 ['깡깡이마을' 조망] 건너편 '영도 대평동'의 "깡깡이예술마을"도 전체적으로 잘 보입니다. ['송도해수욕장' 방향 조망] 우측으로는 [송도해수욕장] 방향의 [부산남항]과 [천마산]이 조망됩니다. ['낙동정맥' 조망] 북서쪽으로는 추억의 [낙동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대티고개-시약산-구덕산"이 조망되고 ['민주공원' 조망] 북쪽으로는 [부마민주항쟁 기념탑]이 있는 "보수산"과 그 뒤로 [낙동정맥 엄광산]이 보이는군요. [''노상 자갈치시장'] 3:13~3:48 [자갈치시장 전망대]에서 내려가 노상 자갈치시장을 통과하다가 [국수순대국]을 먹었는데 이 또한 별미였습니다. 그런데 값이 4,000원으로 서울과 비교하면 1/3 정도의 가격이어서 놀랐습니다. 소주도 한병에 3,000원이었고... 이곳 노상 자갈치시장도 곧 헐리고 새로운 건물 시장이 건립 될 예정이라는군요. ['새벽시장'] 3:51 [자갈치시장]은 왼편의 영도대교 밑 건어물시장에서부터 오른편 남부민동 새벽시장까지 랍니다. [국수순대국]을 든든하게 먹고 나가면 새벽에만 열린다는 [새벽시장]을 통과하는데 오후인데도 시장은 열리고 있더군요. ['부산공동어시장'] 3:59 이어서 [부산공동어시장]을 지나면... ['남항대교'] 4:11 "남항"의 서편에 있는 [남항대교] 밑을 지나고 ['송도케이블카 삭도장'] 4:15 계속해서 [송도해수욕장]으로 들어 가는데, 먼저 [송도해상케이블카] 삭도장이 반겨주고 ['거북선' 입구 다리] 4:17~4:30 이어서 [송도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실제 "송도"였다고하는 "거북섬"을 만나 ['거북섬' 입구] 입구 정문 조형물을 통과하면 ['어부와 인용'] ['어부'] ['인용'] [안내문] "어부(魚夫)와 인용(人龍)"이라는 조형물이 눈길을 끕니다. 얽힌 전설은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되겠고 ['거북이'] "다복이 多福이"라는 거북 조형물은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아 보이더군요. ㅎ [케이블카] [송도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가 운행하고 있고 [전망대] 여기도 "스카이워크"가 설치되 있었습니다. 등대와 "영도 봉래산"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송도'와 케이블카] ['다복이'와 송도해수욕장] "거북섬"을 돌아 보고 해수욕장으로 나갑니다. 예전에 제 친구가 앞에 보이는 해변에서 '횟집'을 운영했었는데, 태풍 '매미'로 가게가 초토화 되어 폭삭 망했다고... [다이빙대] 해수욕장 가운데엔 다이빙대가 설치되 있는데 받침판이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로 가는 '송도해수욕장'] 겨울로 치닺는 가을 풍경이 날씨까지 찌푸려 해수욕장에 어른거려 조금 을씨년 스럽군요. ['현인' 동상] 4:40 ['현인광장'을 조성하며] [영도다리]에도 있었는데 [송도해수욕장]에도 "현인선생 동상"이 있씁니다. '부산이 낳은 불멸의 국민가수'라고... ['현인' 노래방] "현인선생 동상" 앞에는 야외 노래방이 있는데 "현인선생"이 부른 힛트곡 13곡을 감상할수 있도록 기기를 설치해 놨습니다. 원하는 노래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오더군요. 누군지 모르는 아줌마들과 "굳세어라 금순아"를 틀어 흥겹게 따라 부르며 춤도 같이 추고...ㅎㅎ ♬ [조형물] ['송도레포츠센타'] [송도해수욕장]의 여러 시설들을 지나면... ['송도해수욕장' 주차장] 4:45 ['영도' 조망] 오늘 도보여행의 종착지인 해수욕장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영도"가 그림자 "影"이 아니라 노을에 물드는 ...가을 단풍색으로 다가 옵니다. ['송도해수욕장' 조망] 새로워진 "송도해수욕장"을 뒤돌아 보며 즐거운 [부산도보여행]을 마침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4.5km였으며 4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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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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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허황옥의 발자취를 찾아』 [남파랑길] "진해구간 1코스 망산도-안골포-웅천읍성" 답사기 송정공원-망산도-유주각-부산신항-웅천안골왜성-안골포-진철교-황포돛대노래비- 흰돌메공원-웅천남문신도시-주기철목사기념관-웅천읍성-제덕사거리 [구글어스] [국토지리원 지도]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있는 "송정공원"에서 출발하여 "망산도-유주각"등 "허황옥 왕비"의 흔적을 돌아 보며 [부산신항] [안골포]를 지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는 "제덕사거리"까지 약16km를 갑니다. ['송정공원' 앞 버스정류장] 11:30 2020년 1월 22일 (수) 흐리고 비 금방이라도 하늘에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질듯한 잔뜩 찌푸린 날 [죽전]에서 약4시간이 걸려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있는 "송정공원"에 도착하여 바로 답사를 시작합니다. 위에 보이는 고가도로는 [부산신항]과 [가덕도]로 연결되는 [녹산산업대로]더군요. 이곳 [송정공원버스정류장]엔 안내도가 있는데... ['남파랑길 창원6코스' 안내도] ['남파랑길 창원6코스' 안내도 확대] "남파랑길 창원 6코스"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남파랑길]을 안내한다면 "남파랑길 6코스"로 하던지, "남파랑길 창원1코스"라고 해야 할듯 합니다. 저는 [남파랑길] 진해구간 1코스라고 표기 했는데, 이 지역은 원래 [진해시] 지역이어서 [진해]가 더 친근감이 있어서 편의상 [진해구간 1코스]로 표기했습니다. [남파랑길]은 이렇게 아직 그 전체적 기준을 잡지 못하고 지역별로 나름대로 기준을 설정하여 안내하고 있는듯... ['부산시-창원시 市界'] 11:31 [송정공원] 앞 삼거리를 건너면 바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었습니다. 원래 "금관가야"의 국제항구 역활을 하던 지역이 [부산신항] 건설로 엄청 변했습니다. ['용원동 사거리'] 11:32 이어서 [용원동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좌측 [←2.6km 39분 웅천안골왜성]이라고 알려 주는데 "39분" 걸린다고 안내하는 섬세함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군요. ㅎㅎ. 사람에 따라 다양한 걷기 능력을 감안 한다면 [약40분}이라고 해도 될껄...39분...ㅎ ['망산도' 앞] 11:35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의 중심지인 "망산도 望山島"앞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망산도'와 '유주정'] "망산도 望山島""유주정 維舟亭"이 나그네를 반겨 주는데 어쩐지 주변 풍경이 씁쓸합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은 어떡해서던 조그만 역사관계만 있어도 예산을 들여 관광지화 하는데... [금관가야]의 첫왕비인 "허황옥 許黃玉"이 자기 어머니의 꿈을 믿고 머나먼 이억만리 "인도 아유타국"에서 '돌배'를 타고 시집을 왔는데 도착한 곳이 이곳 "망산도"랍니다. 당시 "허황옥"의 나이는 16세, 오빠 "허보옥"과 20여명이 넘는 선원들과 함께 입국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인도의 공주와 왕자, 선원들이 국경을 넘어 입국 한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조그마한 섬이 주는 의미는 크다 아니할수 없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 있는 국제결혼으로는 첫 '국제 결혼'이 이루어지는데 "가락국"의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이 즉시 결혼을 하고 신혼밤을 보냈답니다. 여기서 [김해 왕궁]으로 가는 길목인 [명월산 흥국사]에서 첫날밤을 보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2박3일간이나 붙어 떨어지지 않했다나 뭐래나...ㅎㅎ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첨부한 [삼국유사 제2권 가락국기]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망산도' 입구] ['망산도' '유주암' 안내문] 이곳은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지만 앞에 있는 조그마한 섬 [망산도]는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이랍니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입국하여 첫발을 내디딘 곳인데도 개발은 커녕 출입금지를 시키며 일반 관광객들의 접근을 오히려 막고 있습니다. ['망산도'] ['삼국유사 제2권 가락국기' 원문 일부] "허황옥"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를 비롯해 여러 역사책에 상세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원문 일부와 번역문을 올려 참고하겠습니다. 건무(建武) 24년 무신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아뢰기를 “대왕이 강령하신 이래로 아직 좋은 배필을 얻지 못하셨으니 청컨대 신들의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항려가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짐이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니 짐에게 짝을 지어 왕후(王后)를 삼게 하는 것도 역시 하늘의 명령일 것이니 경들은 염려 말라”라고 하고, 드디어 유천간(留天干)에게 명하여 경주(輕舟)를 이끌고 준마(駿馬)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서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神鬼干)에게 명하여 승점(乘岾) [망산도는 서울 남쪽의 섬이고 승점은 연하(輦下)의 국(國)이다.]으로 가게 하였다. 갑자기 바다의 서남쪽에서 붉은 색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매달고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유천간 등은 먼저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올리니 곧 사람들이 다투어 육지로 내려 뛰어왔다. 신귀간은 이것을 보고 대궐로 달려와서 그것을 아뢰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여 이내 구간(九干) 등을 찾아 보내어 목련(木蓮)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이하게 하였다. 곧 모시고 대궐로 들어가려 하자 왕후가 이에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과 본래 모르는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서로 따라가겠는가”라고 하였다.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하니 왕은 그렇다고 여겨 유사(有司)를 이끌고 행차하여, 대궐 아래로부터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곳의 산 주변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의 별포(別浦) 나루에 배를 대고 땅으로 올라와 높은 언덕에서 쉬고, 입고 있는 비단바지를 벗어 폐백으로 삼아 산신령(山神靈)에게 바쳤다. 그 밖에 시종한 잉신(媵臣) 두 사람의 이름은 신보(申輔)·조광(趙匡)이고, 그들의 아내 두 사람의 이름은 모정(慕貞)·모량(慕良)이라고 했으며, 노비까지 합해서 20여 명이었다. 가지고 온 금수능라(錦繡綾羅)와 의상필단(衣裳疋緞)·금은주옥(金銀珠玉)과 구슬로 된 장신구들은 이루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왕후가 점점 왕이 있는 곳에 가까이 오니 왕은 나아가 그를 맞아서 함께 유궁(帷宮)으로 들어왔다. 잉신 이하 여러 사람들은 섬돌 아래에 나아가 뵙고 곧 물러갔다. 왕은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잉신 내외들을 인도하게 하고 말하였다. “사람마다 방 하나씩을 주어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 그 이하 노비들은 한 방에 5, 6명씩 두어 편안히 있게 하라."난초로 만든 음료와 혜초(蕙草)로 만든 술을 주고, 무늬와 채색이 있는 자리에서 자게 하고, 옷과 비단과 보화도 주었고, 군인들을 많이 모아서 그들을 보호하게 하였다. 이에 왕이 왕후와 함께 침전(寢殿)에 있는데 왕후가 조용히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살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모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皇天)을 뵈었는데, 황천은 가락국의 왕 수로(首露)라는 자는 하늘이 내려 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곧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것이 이 사람이다. 또 나라를 새로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갔다. 꿈을 깬 뒤에도 황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부모를 작별하고 그곳을 향해 떠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蟠桃)를 찾아 이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용안(龍顔)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나면서부터 자못 성스러워서 공주가 멀리에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이제 현숙한 공주가 스스로 왔으니 이 사람에게는 매우 다행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그와 혼인해서 함께 이틀 밤을 지내고 또 하루 낮을 지냈다. 이에 그들이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내는 데 뱃사공이 모두 15명이니 이들에게 각각 쌀 10석과 베 30필씩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8월 1일에 왕은 대궐로 돌아오는데 왕후와 한 수레를 타고, 잉신 내외도 역시 재갈을 나란히 수레를 함께 탔으며, 중국의 여러 가지 물건도 모두 수레에 싣고 천천히 대궐로 들어오니 이때 시간은 오정(午正)이 되려 하였다. 왕후는 이에 중궁(中宮)에 거처하고 잉신 내외와 그들의 사속(私屬)들은 비어 있는 두 집을 주어 나누어 들어가게 하였고, 나머지 따라온 자들도 20여 칸 되는 빈관(賓館) 한 채를 주어서 사람 수에 맞추어 구별해서 편안히 있게 하였다. 그리고 날마다 지급하는 것은 풍부하게 하고, 그들이 싣고 온 진귀한 물건들은 내고(內庫)에 두고 왕후의 사시(四時)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허황옥 왕후'] 우리나라 "許氏 시조의 어머니"인 "허황옥 왕후"의 동상입니다. "허왕후의 릉" 앞에 있는 동상인데, 제가 예전 [가야 역사 탐방]을 할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궁합이 찰떡이었던가 봅니다. ㅎㅎ 아들을 열명 낳고, 딸을 둘 낳아, 총 열두명의 자녀를 낳았으니 궁합 얘기를 해도 되겠죠? ㅎ 제 눈엔 풍채도 좋고 아기 잘 낳게 생긴 몸매같습니다. ㅎ ['김수로왕'] ['삼국유사' '거등왕'과 '왕비'의 죽음] "허황옥 왕비"와 "김수로왕" 사이에서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탄생했다는거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첫째 아들은 [수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거등왕 居登王"이 되고, "김해 김씨 시조"가 되었으며 둘째 셋째 아들은 "김해 허씨 시조"가 되는데, 이는 "허왕후"가 이억만리 타국에서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흔적이 영원히 사라진다고 자신의 姓을 사용케 해 달라고 요청해서 붙여진 姓이랍니다. 그리고 [居登王] 편을 보면 아버지는 수로왕(首露王), 어머니는 허황후(許皇后)이다. 건안(建安) 4년 기묘 3월 13일에 즉위하였다. 치세는 39년으로 가평(嘉平) 5년 계유 9월 17일(253년)에 죽었다. 왕비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慕貞)으로 태자(太子) 마품(麻品)을 낳았다. 영제(靈帝) 중평(中平) 6년 기사 3월 1일에 왕후가 죽으니 나이는 157세였다. 온 나라 사람들은 땅이 꺼진 듯이 슬퍼하고 구지봉(龜旨峰) 동북 언덕에 장사하였다 ['유주암' 조망] "허황옥 일행"이 타고 온 "돌배"를 정박 시켰는데, 그 "돌배"가 뒤집혀 남아 있다는 "유주암 維舟岩"은 "망산도" 건너편에 보이는데, 제가 예전에 [가야역사탐방] 때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 드리면... ['유주암'과 '망개산'] 자료사진 예전에 촬영한 "유주암 維舟岩" 사진입니다. 역사 기록엔 그 어느 곳에도 "유주암 維舟岩"에 대한 언급이 없답니다. 그래서 이 바위가 [유주암]이라고 단정 할수는 없고 그저 참고로 재미로 보면 될듯 합니다. 하지만 "허황후"가 타고 온 "돌배"에 대해선 확실한 언급이 [삼국유사]와 여러 고서에 나와 있더군요. ['파사석탑'] ['삼국유사' '파사석탑'] "허황후"가 돌배에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 婆娑石塔"과 관련 [삼국유사] 기록입니다. [파사석탑]은 "허황후의 무덤" 앞에 현재도 남아 있는 그녀의 유물이죠. [파사석탑]은 돌배가 항해 할때 배가 기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돌탑이었답니다. 그리고 이 바위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성분의 바위이고 현재 "인도 아유타국" 근처에 같은 형질의 바위가 산재 하고 있어 "허황후"가 가지고 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고 합니다. ['유주정'] [망산도] 옆에는 "유주정 維舟亭"이라는 정자를 현대에 만들어 놨는데 이곳이 그 옛날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건 나 뿐일까... ['유주비각' 가는 길] 11:39 [유주정]에서 뒤돌아 보면 [유주비각]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정우마트]와 [장수식품점] 사이 골목으로 100m쯤 올라 가면... ['용원초' 앞 사거리] 11:41 [용원초등학교] 앞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회전하면... ['유주비각' 조망] [유주비각]이 보입니다. ['유주비각'] 11:43 ['유주비'] [안내문] "유주비 維舟碑"가 있는 "유주비각 維舟碑閣"입니다. "大駕洛國 太祖王妃 普州太后許氏 維舟之地" "가락대국의 태조왕비인 보주태후 허씨의 유주지지"라고 비석에 쓰여 있습니다. "유주지지 維舟之地"라는 말의 뜻은 "배를 정박시킨 곳"이라는 뜻 ['수로왕과 허왕후 영정'] "김수로왕과 허황후 영정"입니다. 머나먼 '인도 아유타국'에서 [망산도]를 통해 [가락국]으로 온 "허황옥"은 현재 "흥국사"라는 절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고 하는 [삼국유사] 기록을 위에서 보여 들였죠. 하룻밤으로론 부족해 2박3일을 보냈다고 하니 궁합이 찰떡궁합인듯... ['신혼여행지'] [망산도]에서 [흥국사]까지 가서 신혼첫날을 보내는 루트를 대략 추측해 봤습니다. 루트에 있는 지명은 모두 그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지명이라고 하더군요. "밝은 보름달 같은 허황후"의 모습을 빗대어 "명월산"이라고 했으며, "보배같은 여인"이라고 "보배산"이라고 산 이름까지 "보배산"이라고 할 정도 였다니 "김수로왕"이 "허황후"의 미모에 얼마나 반했는지 알수 있습죠? 첫날밤을 보내고 넘어 간 고개를 "배필정고개"라고 하는 것도 현재까지 전해 지고 있답니다. ['부산신항 아파트단지'] ['용원교'] 11:50 [유주비각]을 둘러 보고 바닷가로 나가면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부산신항"과 신항 신시가지로 들어 가는 [용원교]라는 다리를 건너는데 이름은 [부산신항]이지만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었습니다. ['송정공원'에서 '안골포'까지 상세 지도] 여기서 [송정공원]에서 [안골포]까지의 상세 지도를 참고하고 ['신항물조은온천'] 11:58 [부산신항]의 신항 신시가지로 들어 가는데 "신항 물조은 온천"이라는 상당한 규모의 온천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초록오름공원'] 12:08 신시가지를 통과하면 [초록오름공원]이라는 가로공원을 만나는데 우회전하면 [다리] 육지와 매립지의 경계를 이루는 수로 다리를 건너고 ['안골포' 가는 길] 12:16 [안골포]로 향하는데 좌측에 [안골왜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웅천안골왜성'] 12:19 [안내문] "웅천안골왜성" 임진왜란 때 일본군(倭軍)이 쌓은 일본식 성곽(왜성)으로 당시 '일본 수군의 본거지'였답니다. [남파랑길]을 직접 걸으니 '일본 수군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생태통로] 12:24 이어서 우측에 있는 "망개산"과 좌측 "안골왜성"을 연결하는 생태통로를 넘어 가면... ['안골포 신도시' 조망] [안골포 아파트단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골포' 조망] 12:31 [안골포]로 내려가 [안골포] 바다를 조망하고 우회전하면... [삼거리] 삼거리를 만나는데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안골포 마을'을 빙 둘러 가라고 합니다. ['진해유치원'] 옛 초등학교 자리에 "진해유치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유치원은 [공립단설유치원]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유치원이더군요. 초등학교는 모두 아파트단지로 옮겨 가고 텅빈 초등학교를 유치원으로 개조하여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유치원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저도 괜히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크고 넓고 아름다운 유치원은 처음 봅니다. 운동선수들이 많이 배출 될듯...ㅎ ['안정공원 (무궁화공원)'] 12:35 [진해유치원] 뒤에는 "안정공원 (무궁화공원)"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안골포]를 대표하는 공원인가 봅니다. 엄동설한에 이곳이 남쪽 나라라는걸 강조라도 하듯 나뭇잎과 잔듸들이 푸른빛을 띄고 있습니다. [점심식사] 12:37~1:12 [안골포]에서 점심식사는 칼국수로... 손님이 많았는데, 품질은 글쎄....ㅎ ['안골포' 마을과 신도시 조망] [안골포]의 구시가지와 건너편에 보이는 신시가지가 확연히 비교되는 "안골포 마을" 전경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은 "망개산"입니다. ['안골포'] ['웅동만'으로 넘어 가는 길] ['청안동'] [안골포]를 한바퀴 빙 돌아 나가는데 포구 입구를 매립하여 육지화해서 [부산신항]과 [진해웅동경제자유구역]을 만들어서 바다인지 호수인지 알수 없게 되었군요. 22분 정도 걸어 [안골포]를 빠져 나가면.... ['웅동만'] 1:34 [웅동만 熊洞灣]이 펼쳐지는데, [안골포]는 [웅동만]의 일부분이란걸 알게 해 줍니다. 잠시후 찾아뵐 [황포돛대노래비]와 [흰돌메공원]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남양동' '마천동' 조망] '진해구 남양동-마천동'이 펼쳐집니다. [대장천]을 건너는 [진철교]가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뒤에 보이는 산은 "마봉산 400.8m"인듯한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진철교' 앞 사거리] 1:47 [진철교] 앞 사거리에 도착해서 좌회전하면... ['진철교'] 1:48 [대장천]이라고 하는 개천을 건너는 [진철교]를 만나 건너는데... [대장천]은 [불모산]과 [굴암산]등 [신낙남정맥]의 산줄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개천이더군요. ['진철교' 서쪽 끝] [진철교]를 건너면 이정표는 좌회전 하라고 알려 주며... [전력선 지중화] 1:52 대규모 전력선을 地中化하는 곳을 만나는데 이 곳이 [마천일반산업단지]여서 전력 수요가 많은가 봅니다. 요즘 새로 건설하는 신시가지나 공단들엔 전력선을 地中化하고 있죠. ['진해마천지방 산업단지'] '진해구 남양동'의 [영길마을]을 통과하면... ['황포돛대 노래비' 이정표] 1:56 [영길마을]을 통과하여 [황포돛대 노래비]로 가는 이정표를 만나 지름길로 10여분 진행합니다. ['진철교'에서 '제석사거리'까지 상세 지도] [영길마을]에서 [제덕사거리]까지 상세지도를 확인하고 진행하면 보이는게 많아 집니다. ['영길마을' 입구 공원] 2:05 [영길마을]이 끝나는 곳에 가로공원이 하나 있는데 [황포돛대 노래비] 표지가 있습니다. 이곳이 [황포돛대 노래비]인가? 확인해 보니 앞으로 12분 정도 더 가야 하더군요. ['황포돛대 노래비 공원'] 2:17~2:21 ['황포돛대 노래비'] "황포돛대 노래비" 여기서 "황포돛대"라는 노래를 만들었는줄 알았는데 안내문을 보니 아니올시다 ~ ㅎ 이 고장 출신인 작사가 "이일윤씨"가 '경기도 연천'에서 군복무를 할때 어린 시절의 고향 눈 내리는 '영길만'을 회상하며, 흘러가는 배에 슬픈 마음을 담아 노랫말을 지었다고 노래비 아래엔 노래를 직접 들을수 있도록 음향시설을 해 놨는데 버튼을 밟으면 노래가 실제 나왔습니다. [해안도로] [황포돛대 노래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흰돌메공원' 휴게소] 2:31~2:47 ['흰돌메공원' 전망대 조망] [전망대에 있는 안내판] "흰돌메공원"을 만납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립니다만,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전망대에는 [부산신항 조감도]가 있었는데... 날씨가 나빠 눈에 뵈는게 없어 아쉬웠던 [흰돌메공원]이었습니다. ['부산신항-진해신항' 조감도] 공원 옆엔 [[창원 진해 신항] 방향 조감도가 있고 ['웅포해전 기념비'] 2:48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장군"의 승전장이었던 "웅포해전" 기념비도 있더군요. "웅포 해전 熊浦海戰"은 1593년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전라좌수사'였을 때에 "원균장군"의 경상우수영 함대와 "이억기장군"의 전라우수영 함대와 연합하여 왜군 100여 명을 사살한 전투이나, 이 해전에서 조선군 배 2척이 전복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웅포'의 왜성들을 초토화 시키고 '부산포'로 진격하려던 "조선 함대"가 이곳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해 '부산진' 출격에 차질이 생겼다고 합니다. [웅포해전]을 우리나라 역사서엔 우리나라가 승리한 해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조선에서 자기들이 승리한 해전이 세번 있었는데, 그 중에 한곳이 이곳 [웅포해전]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인명 피해가 100여명 있었으나, 조선 전함 2척을 침몰시켜 더 큰 피해를 줬다고 자기들이 이긴 해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연전연패하던 일본수군은 이때부터 절대 바다로 나가 싸우지 말고 육지 근처에서 싸우라는 일본 본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가 있어서 육지의 왜성과 연계해 포구에서만 싸운 결과라고... ['남문대교'] 2:56 [남해고속도로] 본선에서 [부산신항]과 [진해웅동공단]으로 연결되는 [남해고속도로 제3지선]이 지나는 [남해대교] 밑을 통과하면... ['남문동 신시가지'] 3:00 [진해구 남문동 신시가지]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전국의 대부분이 구도심을 버리고 신시가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남문동 아파트단지'] ['웅천초등학교'] ['남문경제자유지역'] '진해구 남문동'의 신시가지를 15분여 통과하면.... ['세스페데스공원 사거리'] 3:16 [세스페데스공원]이 있는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이정표가 우측으로 가라고 알려 줍니다. ['2번국도-진해대로'] ['웅천읍성' 가는 길] 그러면 [2번국도]이자 [진해대로]가 지나는 다리 밑을 통과하여 5분 정도 진행합니다. [2번국도]를 가운데 두고 신시가지와 구도심이 나뉘어 지더군요. ['주기철목사기념관' '웅천읍성' 조망] 옛 "웅천" 구도심의 정취가 느껴지는 "웅천읍성"과 이 고장이 낳은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주기철목사 기념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기철목사 기념관'] 3:24 "주기철 목사" 신사참배거부와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5회나 체포되어 5년 4개월동안 모진 고문을 받으며 황실불경죄,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44년에 순국했답니다. ['웅천읍성' 전경] 3:26~3:34 [안내문] "웅천읍성 熊川邑城" 군사적 방어 역활을 하는 城이 아니라 행정업무를 보는 관청을 邑城이라고 하지요. [세종 16년]에 건설된 읍성이라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해자'] ['해자 조교'] "해자 垓子"는 '성벽 밖에 적이 접근하기 어렵게 파 놓은 참호 시설로 물을 채워 놓는 곳'이라죠. "해자 조교"는 '해자'를 건너는 도개교를 말합니다. ['동운 입구'] ['견룡문'] "견룡문 見龍門" "웅천읍성"의 東門으로 복원된 유일한 門이랍니다. [북쪽 '해자' 조망] 東門에 올라 사위를 조망합니다. 먼저 북쪽으로는 복원된 성곽과 '해자'가 있으며 저 멀리 산줄기 들은 "신낙남정맥"의 산들인듯한데 확실한 산이름들은 운무로 잘 모르겠습니다. ['주기철목사기념관' 조망] 동남쪽으로는 [주기철목사기념관]과 그 뒤로 [남문동 신시가지]가 조망됩니다. [남쪽 성곽 조망] 남쪽으로도 '해자'와 성곽이 보입니다. [城 안 조망] 서쪽으로는 앞으로 진행해야할 [남파랑길]이 '성내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우체국은 "진해웅동우체국"이었습니다. ['성내동' 사거리] 3:40 東門에서 우체국을 지나 잠시 직진하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엔 [웅천고등학교]가 있더군요.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城內洞'을 6분여 통과하면... ['2번국도-진해대로'] 3:46 [2번국도]이자 [진해대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 [제석사거리]로 가는데 이 근처 [두부랑 고기랑]이라는 음식점에서 술한잔 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 속에서 "두부와 고기"를 안주로 소주 한잔하는 그 맛은 아직도 잊을수 없습니다. [구글어스] [국토지리원 지도] 오늘 걸은 거리는 약16km로 4시간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귀경하는 고속도로엔 굵은 빗줄기가 겨울인지 여름인지 분간 못하게 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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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

  
     『1470km 남해안의 정취』
   『남파랑길』

               

  ['구글맵']

  [지형도]

  [남파랑길 8코스]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있는 "상리마을"에서 출발하여
  '진해구 태백동'에 있는 "진해드림로드출발지점"까지 가는 "천자봉-시루봉-웅산-덕주봉-장복산의 임도"인데
  윗 지도에 연두색으로 표기된 루트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임도로서 공식적 거리는 <15.7km> 입니다. 
  서울에서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와서 고작 임도를 걷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되어
  저는 윗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기된 "진해바다70리길1코스"를 참고하여 "진해 鎭海"를 걸었습니다.
  관계당국에서 그어 놓은 선을 중심선으로 하여 그 주변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도보여행 하는 것이 
  진짜 "남파랑길"을 의미있게 여행하는 것이지, 관계당국이 그어 놓은 선을 철길따라 가듯이 가는 것은
  진정한 도보여행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다음 "진해바다70리길 안내도"를 참고하고
  "진해"가 여행객에게 강력 추천하는 "진해근대역사문화거리"를 걸었습니다.


  ['진해바다70리길']

  ['진해바다70리길' 안내도]

  ['진해루' 앞에 있는 '욕먹는 여행 안내도']

  "진해바다70리길 2코스~7코스""남파랑길6코스~7코스"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남파랑길8코스""진해바다70리길 1코스"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 가라고 합니다.
  도보여행의 묘미는 "진해바다70리길 1코스", 즉, "진해 시가지"라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저는 "진해루" 앞에 있는 "浴먹는 여행 안내도 1~3구간"을 적극 참고하여 진행합니다.


  ['상리마을' 입구]                  12:05

  2020년 11월 11일 (수) 맑음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있는 "상리마을"에서 [남파랑길8코스]는 "천자봉"으로 안내됩니다.


  ['2번국도'-'진해구청' 앞길]

  저는 서두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진짜 진해"를 확실히 도보여행하기 위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진해근대역사문화거리"를 가기 위해 산악회 대열에서 벗어나
  [진해시내]로 들어 갑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창원소방본부']

  ['드림파크' 입구]                12:16

  "창원소방본부""드림파크 입구"를 만나며  "천자봉"을 조망합니다.
  우리 산악회는 '천자봉' 중턱 산허릿길인 임도로 올라 가고 있을거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


  ['진해구청' 진입로]                 12:17

  ['진해구청' 조형물]

  ['진해구청'에서 조망]

  예전엔 "慶南 鎭海市"였는데 지금은 "昌原市 鎭海區"로 "창원시"에 흡수통합되었지만
  그래도 "진해시"의 역사를 안고 있는듯 구청의 규모는 시청 규모 못지 않았습니다.
  [진해구청]은 "천자봉-시루봉" 산줄기를 병풍으로 삼으며 '진해항'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해구청]을 5분여 통과해 나가면...


  ['풍호사거리']                    12:23

  [2번국도]가 지나고 있는 "풍호사거리"를 만나 직진하고


  ['풍호동' 통과]

  이어서 '풍호동'을 통과하는데 대단위 아파트단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순신리더쉽센터']                12:30

  '풍호동'「창원마린푸르지오아파트단지」를 지나면 "이순신리더쉽센터"를 만납니다.
  <이순신장군>의 리더쉽을 배우고 체험하는 국제센터 랍니다.
  국제센터의 건물 입구 및 야외 마당에는 거북선 게이트와 어록 조형물을 설치하였고, 
  1층 로비에는 이순신 초상화와 학익진 전법으로 적을 유인해 섬멸한 한산대첩도,
  충무공이 순국한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도를 파노라마 벽화로 조성하였더군요.


  ['풍호오거리']

  ['한화 L&C' 정문]                  12:36

  「풍오오거리」로 나가면 "한화 L&C" 정문이 있는데
  이곳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2코스"의 시종점이었습니다.
  지금부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를 여행하게 됩니다.


  ['천자로']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                  12:45

  「풍오오거리」에서 10여분 바닷가로 진행하면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를 만나 우회전하고


  ['진해항' 전망대]                   12:52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에서 부턴 방조제가 "소죽도"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진해항"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어 잠시 조망을 하고 갑니다.


  ['대죽도''곶출산' 조망]

  먼저 남쪽으로는 " 대죽도 大竹島"와 그 뒤로 <진해항>을 감싸고 있는 "곶출산-고절산"이 조망되는데
  <곶출산 串出山> 뒤에는 "해군사관학교""해군기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해]에선 함정이 있는 해군기지를 볼수 없지요.


  ['소죽도 방조제']

  서쪽으로는 방조제가 이어지며 "진해항"이 펼쳐지며


  ['안민고개' 조망]

  북쪽으로는「장복산-덕주봉」에서「웅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 중간에 있는 "안민고개 安民고개"가 보입니다.


  ['천자봉 능선' 조망]

  북동쪽으로는 <진해>를 대표하는 산줄기가 전체적으로 조망되는데 앞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진해구청]에서 진행한 경로를 짐작할수 있게 [진해구청]이 보입니다.


  ['소죽도'와 '에너지환경과학공원' 조망]                 12:53

  전망대에서 "소죽도 小竹島"로 방조제를 따라 진행하면
  [소죽도]와 육지 사이를 매립하여 [소죽도]는 이젠 섬이 아니란걸 알수 있으며
  매립지엔 "에너지환경과학공원"을 만들어 놨는데, 쓰레기소각장 등이 있었습니다.
  <진해앞바다> 매립및 조성공사 설계를 제 친구가 했는데, 이 친구가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친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송기동 석탑산업훈장" 받고 난 그 후  여기 클릭
  이 글 클릭해서 잠깐 보고 가세요~~ ㅎㅎ 잠깐이면 됩니다. ~~


  ['진해해양레포츠센터']                   1:06

  ['소죽도찜질방']

  ['소죽도에너지환경과학공원']

  "소죽도 小竹島"에 있는 시설들을 지나는데....
  앞으로도 계속 보겠지만 가는 곳마다 "거북선 모양" 건축물들이 즐비했습니다.


  ['해외참전기념탑']

  300억원을 들여 건립했다고 자랑하는 "해외참전기념탑"을 둘러 보고


  ['진해루' 조망]                  1:10

  [소죽도]에서 "진해루 鎭海樓"를 조망합니다.
  앞으로 더 언급하겠지만 [진해루]가 있는 주변은 옛날 "해군 해병 신병훈련소"였습니다.
  [진해루] 주변은 백사장이었으며 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튼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병신병훈련소]였습니다.
  제가 사십육여년 전에 저곳에서 신병훈련을 받았던 곳으로....감개무량...
  [진해루]가 있는 자리엔 훈련병들의 "변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진해루' 가는 해안로]

  [회전교차로]

  ['진해루' 방향]                1:22

  [진해항] 방조제를 따라 [안민고개]를 바라 보며 진행하면 회전교차로를 만나고...
  회전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구이동2교']

  ['해군교육사령부']

  [구이동2교]를 지나며
  "옛 해군 해병대 신병훈련소"였던 지금의 "해군교육사령부"가 길게 이어집니다.
  제가 훈련을 받던 70년대 초엔 이런 도로도 없었고 저런 형태의 벽돌담도 없는 바닷가로 기억됩니다.
  좌측 해변으로 나가면...


  ['진해루해변공원']

  ['진해루' 조망]

  ['진해루']                   1:34

  "진해루해변공원"이 조성되 있군요.
  [진해루]가 있는 자리엔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옛날에 "변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물론 추측입니다.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ㅎ


  [현위치와 진해여행 안내도]

  [진해루] 옆에는 관광안내도가 있는데 "창원 편백숲 浴먹는 여행"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ㅎ
  [진해]를 여행하려면 이 안내도가 가장 도움이 될듯...
  저는 이 안내도를 참고하여 여행했습니다.


  ['진해루' 2층 대청마루']

  ['옛 해군신병훈련소']

  ['옛 해병신병훈련소']
                
                  [해병훈련소 입소 하던 첫날 사진]

  "진해루 鎭海樓"에 올라 사위를 조망합니다.
  현재 "해군교육사령부"가 있는 "옛 해군 해병대 신병훈련소" 안을 바로 앞에서 들여다 봅니다.
  해병대 관련 블로그에서 퍼온 당시 사진을 첨부합니다.
  [6관문]을 통과해 입소하던 첫날의 모습인데 진짜 변함없는 그날의 그 상황이 파노라마로 떠 오릅니다.
  주변 兵舍와 시설들이 이젠 추억으로 눈웃음 짓게 하지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가는 첫날부터 '꼰아박아' 실시!를 물 먹듯 하기 시작했었죠. ㅎ
  해병대를 다녀 오신 분들은 모두 이런 상황을 똑 같이 경험 했을 것입니다. 


  ['불모산-웅산-시루봉' 조망]

  ['천자봉-대발령' 조망]

  "불모산"에서부터 "천자봉-대발령"까지 한 눈에 조망됩니다.
  줌인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불모산' 정상 줌인]

  "불모산 佛母山 801.1m"
  [불모산] 정상에는 통신시설과 군부대가 있어 주변 어디서나 [불모산] 임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금관가야>의 첫번째 왕인 [김수로왕]에게 이억만리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시집 온 인도 소녀 "허황옥".
  그녀는 [김수로왕]과의 사이에서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 총12명을 낳았으니 금슬이 보통이 아니었겠죠? ^.^
  첫째 아들은 [김수로왕]의 뒤를 이어 "제2대 거증왕"이 되고, 둘째와 셋째는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죠.
  나머지 7명의 아들들은 "허황옥"의 오빠 "허보옥"과 함께 왕궁을 떠나 불교에 귀의했답니다.
  "허황옥"의 오빠인 "허보옥"도 함께 같은 돌배를 타고 인도에서 왔는데
  "허보옥"은 여동생이 왕후가 되었기에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 갈수도 있었지만, 정치권력의 무상함을 알아서
  "허황옥"의 나머지 7명의 아들들을 데리고 속세를 떠나 절간으로 입산수도 하러 떠났는데, 
  그 절간이 앞에 보이는 [불모산] 골짜기에 있는 "장유사 長遊寺"로 들어 간 것이었답니다.
  이억만리에서 낳은 아들들에 대한 "허황옥 왕후"의 모성애는 어느 여성보다도 강했답니다.
  그래서 <김해>에서 매우 가까운 저 [불모산]의 [장유사]를 자주 찾아 아들들을 보려고 했답니다.
  오빠 "허보옥"은 여동생의 앞날을 위해 [장유사]에서 아들들을 몰래 데리고 "합천 가야산"으로 잠행해서
  부귀를 뜬구름과 같이 보며 '불도佛道'를 설경하고 산을 떠나지 않았다고 [長遊不返]하여 
  그를 "장유화상 長游和尙 "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허왕후"의 모성애는 더욱 깊어져 아들들을 보기 위해 "합천 가야산"까지 찾아 갑니다.
  오빠 "허보옥"은 "허왕후"를 피해 또 다시 "지리산 칠불사"로 밀행을 했죠. "허왕후"는 거기까지 찾아 가고...
  마지막으로 아들과 상봉하게 해 주는 날이 아들들 '성불 成佛'하는 날이었습니다. 죽는 날이란 뜻이죠.
  그후 [김수로왕]이 그런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아들들이 공부하던 곳에 절을 지어 주었는데
  그 절이 바로 "지리산 칠불사 七佛寺"라는 거죠.
  "지리산 칠불사"에 가면 그런 전설을 확실히 들을수 있습니다.
  "불모산 佛母山"의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부을무산(夫乙無山)"으로
  "부을"은 서쪽을 뜻하는 "불", "무"는 산을 뜻하는 "뫼"의 변이 형태 "무"를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그렇다치더라도 좀 부족한 면이 있고, "파란문"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불모산 佛母山"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석가모니의 어미니"인 "마야부인"을 일컷겠지만
  여기선 "허황후"가 일곱 왕자들을 보고 싶어하는 모성애가 깃든 산으로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시루봉' 정상 줌인]

  "시루봉 653m"
  거대한 떡시루가 하늘마저 삼켜 버릴 듯 우뚝 솟은 우람한 돌덩어리로 훤칠하게 빼어난 자태는
  장부의 대담한 기풍마저 엿보이게 하는데, "해병혼 海兵魂"이 깃든 산으로 유명하죠.
  근대사에선 [명성왕후]가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100일 산제를 지냈다는 名山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해병훈련병 시절 "골 때리는 산"으로 기억 됩니다. ㅎ
  해병신병 훈련의 하일라이트가 이 "천자봉 구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들은 이 "시루봉"을 "천자봉"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당시 추억의 사진 보여드리면....


  ['천자봉 구보훈련' 옛 사진]

  "해병대 신병 훈련의 하일라이트"인 "천자봉 구보" 사진입니다.
  [시루봉]을 [천자봉]이라고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가끔 대폿집에서 해병 출신들이 뻥 구라치는 무용담을 핏대를 세우며 얘기하는데...
  "천자봉 구보" 할때 완전무장을 하고 했다는둥...수없이 했다는 둥,,,ㅎㅎ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M1소총"과 수통만을 휴대하고 한번인가? 두번인가 올랐습니다. ㅋ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등산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저는 산을 오르는건 생소했는데
  '653m' 급경사 오름길을 거의 뛰다시피 오르는건 여간 힘든게 아니어서 추억에 남는 것입니다.
  저는 "M1소총"이 무척 무거웠고 '철모'가 "골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ㅎ 
  그래도 저 시절로 돌아 가고 싶습니다. 뭐라해도 아무리 고생해도 젊음이 좋아요~~♬ ♧
  요즘은 일반인들을 위해 당시 해병훈련체험 행사를 하고 있다는군요.


  ['천자봉' 줌인]

  "천자봉 天子峰 506.8m"
  현재의 [천자봉]엔 이동통신중계탑이 하나 있어 알아보기 쉽습니다.
  이 봉우리 보다는 앞의 [시루봉]이 진짜 "하느님의 아들 天子"로 보이죠? ㅎ


  ['안민고개' 줌인]

  [장복산][덕주봉]과 [웅산] 사이에 있는 "안민고개 安民嶺"입니다.
  '진해'에서 '창원 안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임진왜란 때 황(黃)장군이라는 명장이 왜군이 이 고개를
  넘지 못하게 방어를 잘 해서 그쪽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제가 당시 해병신병훈련을 받을 때엔 [진해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받고, 저 [안민고개]를 넘어 행군하여
  [창원 상남훈련소]로 이동하여 공용화기 사격훈련과 산악훈련 침투훈련등 진짜 해병훈련을 받았는데...
  저 [안민고개]를 완전무장하고 넘을 때 무지무지 힘들었습니다.
  저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교관들이 "꼰아박아 실시"를 하고 "타향살이" 노래를 부르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훈련병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해병들은 저 고개를 "눈물고개"라고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바라보니 그다지 높지 않은 고개인데, 그 때엔 왜그리 높게 느껴졌던지...ㅎ
  그리고 [상남훈련소]의 위치가 현재 어디인지 궁금했는데, 조사 해 보니
  현재 [경남도청] 뒤 [창원대학교] 근처가 "옛 해병상남훈련소" 자리라는군요.
  그렇다면 무척 먼 거리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소죽도-대죽도-곶출산' 조망]

  옛날 [진해해병신병훈련소]의 변소가 있었던 자리 쯤으로 생각되는 [진해루]에서 [진해항]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 [거제도]가 보인다며 탈영을 하려면 저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하던 교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진해마린어드벤처']

  [휴게소와 어린이놀이터]                 1:42

  [진해루]에서 조망을 마치고 해변공원을 진행하면 휴게실과 어린이놀이터등이 있는데
  온통 '거북선' 모양의 시설물이었습니다.
  해군의 본고장 "진해"에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빼고는 뭔 얘기를 하겠습니까


  ['한주호 준위' 추모 기념탑]                    1:44

  [안내문]

  휴게소 옆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에서 구조활동을 하다가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는 추모탑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해군교육사령부' 정문]                 1:46

  '옛 해군 해병 훈련소'는 현재 "해군교육사령부"로 변모해 있습니다.


  [뒤돌아 본 '진해루해변공원']

  ['속천항' 조망]

  ['속천항']                  2:07

  [진해루해변공원]의 서쪽 끝에서 "속천항 束川港"을 만납니다.
  일제 강점기에 "아사히마치[旭町]"라는 일본식 동명으로  불렸다는 곳입니다.


  ['속천항' 로터리]                2:08
        
          ['진해바다70리길' 이정표]

  [속천항] 북쪽엔 회전교차로가 있으며 [진해바다70리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속천종점' 사거리]                     2:10

  [속천동]은 진해항 해변의 끝에 있는 동네여서 시내버스 종점이 있더군요.
  [속천종점 사거리]에서 10여분 진행하면...


  ['태평사거리']                      2:19

  사거리로는 독특한 모양의 "태평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 [진해시]가 철저한 계획도시란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해근대문화역사길"이 시작됩니다.
  먼저 제가 [선학곰탕]과 [장옥거리]라고 표기한 곳부터 가 보겠습니다.
  그리곤 가운데 길로 [남원로터리]로 진행합니다.


  ['요항부 병원장 관사']

  현재 "선학곰탕"이라는 음식점인데 이 집은 옛날 일제강점기 시절에
  "요항부 병원장 관사"여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로 지정 되었답니다.
  밖에서 볼땐 허름한 집으로 보이지만 들어 가면 상당히 넓고 고급스런 일본식 주택이랍니다.
  그리고 현재는 곰탕 맛집으로 유명하고 영업시간은 점신시간 3시간만 운영한다네요.
  이 집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진해 선학곰탕" 자세히 보기 여기를 클릭해 들어 가 보세요.

     
       ['장옥' 거리]

  "장옥거리 長屋街"
  일제 강점기 시절의 근대 주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본식 [장옥(長屋)거리]가 있습니다.
  지붕 하나에 여러 가구가 들어선 형태의 긴 목조건물이 거리를 따라 들어서 있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목조 연립 주상복합 주택]이라고 할까요?
  이런 형태의 일본식 주택을 "長屋"이라하고 일본말로 "나가야"라고 한답니다.


  ['남원로터리' 방향]

  ['남원로터리']                    2:30

  [태평사거리]에서 [남원로터리] 방향으로 가면 [남원로터리]를 만납니다.
  전봇대에 "진해근대문화역사길"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로터리 중앙으로 들어 가면...


  ['남원로터리' 북쪽방향]


  ['백범 김구 친필 시비']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가 있습니다.
  내용은 안내문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남원로터리' 남쪽 방향]

  [남원로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해군사관학교 입구"가 보이고


  [북쪽 '중원로터리' 방향]

  ['진해제과']                2:34~2:37

  [남원로터리]에서 북쪽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올라 가면 "벚꽃 빵"으로 유명한 [진해제과]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산악회 횐님들에게 기념으로 맛을 보여주기 위해 빵을 사서 한시간 이상 들고 다녔습니다.
  빵이 무겁다기 보다 두 박스를 들고 한시간 이상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는게 예삿일이 아니죠? ㅎ
  빵값은 많이 올라 낫개로는 1,300원하고, 대포장으로 사면 하나에 1,000원.


  ['중원로터리']                   2:38

  "진해 鎭海"의 중심부 "중원로터리 中原"에 도착했습니다. [진해제과]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鎭海]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알본놈들이 대륙 침공의 전진기지로 철저히 계획하여 만든 新都市라죠.
  [鎭海]라는 단어에서도 알수 있드시 "바다를 제압한다"라는 의지를 가진 계획도시랍니다.
  그 계획도시의 중심이 바로 이곳 [중원로터리]로서 사통팔달 통하는 여덟갈래의 방사형 로타리랍니다.
  이 로터리를 만들던 때엔 로터리 가운데에 "팽나무"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鎭海]를 뒤덮고 있는 "벚꽃"
  봄이면 엄청난 행락인파로 붐비는 [鎭海]는 일본놈들에 의해 대륙침공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져
  그들의 國花인 "벚꽃"을 엄청나게 심어 시가지 전체를 뒤덮고 있는데
  그런 내력을 알고 "벚꽃"을 보면 마냥 즐겁게 볼수만은 없겠지요.



  ['근대문화역사길' 안내도]

  안내도를 숙지하고 다녀야 더 많은 것들을 볼수 있습니다.
  아픈 역사도 역사입니다.
  <11번 장옥거리><10번 선학곰탕><9번 김구선생시비>는 구경했고
  [중원로터리] 주변 건축물들을 구경하겠습니다.



  ['진해우체국']                  2:39

  [중원로터리] 동쪽에는 "진해우체국"이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
  우리나라를 침탈하고 대륙침공의 전지기지로 만든 [진해]에는 일본 본국과의 통신연락을 위해
  대규모 우편국이 팔요했겠죠.
  그런데 이 우체국은 일본풍 건물이 아니고 러시아풍 건물이라네요.


  ['진해탑산']

  [진해우체국] 뒤에는 "제황산공원"이 있습니다.
  산 이름에서부터 쪽바리 냄새가 나지요? ㅎ
  그래서 요즘 이름을 "진해탑산공원"으로 바꿨데나 뭐래나
  보이는 "진해탑"은 원래 "일본전승기념탑"이 있었던 자리랍니다.
  올라 가는 방법은 [모노레일 3,000원/인]이었고, 걸어서는 [365계단]을 이용하면 된다는데...
  모두 5분 정도면 올라 갈수 있는 "110m"의 얕은 산이더군요.
  [진해]에선 "서울의 남산" 같은 산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동쪽에서 서쪽 방향 '중원로터리']

  ['중원로터리' 북쪽 '진해역' 조망]

  [중원로터리]에서 [진해역]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입니다.


  ['중원로터리' 서쪽에서 '진해탑' 조망]               2:45

  [중원로터리] 서쪽으로 가서 바라보는 동쪽입니다.
  [진해우체국]과 [제황산공원]의 [진해탑]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군요.


  ['잔해근대사거리']

  ['군항마을역사관']

  [중원로터리] 서쪽에는 "진해군항마을 역사관"이 있고...
  좌측으로 돌아 가면...


  ['원해루']

  "원해루"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습니다.
  무척 낡아 곧 무너 질것 같은데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는 맛집으로 '근대문화유산'이랍니다.
  "이승만대통령"이 짜장면 먹고 다녀 갔다고...
  [장군의 아들] 촬영지이기도 하답니다.


  ['육각집']

  [원해루] 건너편에는 "육각집 (뾰쪽집)"이라는 집이 있는데 '근대문화유산'이랍니다.
  당시엔 [중원로터리]를 한눈에 볼수있는 누각형태의 조망소로 [진해신시가지]의 '랜드마크'였답니다.
  우측에 보이는 로터리가 [중원로터리]


  ['군항마을 테마공원' 입구]

  ['군항마을 테마공원']

  [군항마을역사관] 옆에는 "군항마을 테마공원"을 조성해 놨고....


  ['흑백다방']

  근대역사건축물 중에 하나라는 "흑백다방"도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북원로터리' 방향]                   2:54

  [이순신장군 동상]이 있다는 [북원로터리] 방향을 바라보기만 하고 [진해역]으로 갑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전국 어디서나 볼수 있으니 시간도 없고 벚꽃빵을 들고 있어 생략하고


  ['진해역']                   2:59

  "진해역 鎭海驛"에 도착했습니다.
  驛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하고 벚꽃씨즌에나 몇번 사용한다는 [진해역]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면되고...
  驛 좌측에 있는 [여좌천 입구]로 갑니다.


  ['여좌천' 입구]                     3:00

  ['진해선' 굴다리]

  [진해역] 좌측 옆에 있는 [여좌천] 가는 길인데, [진해선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여좌천' 주변 안내도]

  "여좌천 주변 안내도"를 참고하여


  ['여좌천 데크길]                    3:03

  ['여좌천']

  "여좌천 餘左川"에는 데크길을 설치해 놨고, 벚꽃나무가 개천을 뒤덮고 있어 봄에는 정말 멋지겠더군요.
  [여좌천]은 "장복산"에서 발원하여 진해 앞 바다로 나가는 4.5km의 개천이랍니다.
  [여좌천]의 축대와 바닦은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완벽한 석축으로 만들었다고...
  데크를 설치한 거리는 1.5km라고 합니다.


  ['로망스다리']                    3:05               (10분 휴식)

  ['여좌천']

  중간에 "로망스다리"를 만나는데 MBC 드라마 [로망스] 찰영지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진해여고'와 '평지봉']

  [여좌천] 좌측엔 [진해여고]와 [평지봉]이 조망됩니다.


  ['하늘마루다리']                 3:30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앞]

  "여좌천 餘左川"엔 깊은 내력이 있는 줄 알고 조사 해 봣는데 싱겁게도
  '여명곡(餘明谷)'과 '좌천리(左川里)'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랍니다.


  ['여좌천 데크길' 끝나는 곳]                   3:34

  [여좌천 데크길]이 끝나는 곳입니다.
  저는 여기서 함께 왔던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 [남파랑길8코스] 종점으로 올라 가야 하는데
  우측길로 8분 정도 올라 가면....


  ['진해문화센터']                     3:42

  "진해문화센타"를 만나는데 [2번국도]가 지나는 곳이었습니다.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2번국도'-'장복터널' 방향]        

  [데크길]

  ['장복산조각공원' 입구]                   3:50

  [2번국도]를 따라 [장복터널] 방향으로 잠시 올라 가면
  다시 데크길을 만나는데 데크가 끝나는 곳에 우측으로 "장복산조각공원"이 이어지고


  ['진해드림로드1구간' 입구]

  ['남파랑길 창원8코스 종점-9코스 시점']                 4:00~5:00

  "남파랑길 8코스 종점-9코스 시점""진해드림로드 시점"에 도착했습니다.
  산악회 회원들과는 완전 다른 [남파랑길]을 걸었습니다.
  산악회 횐님들은 관계기관에서 설정한 루트를 정직하게 따라 걸었고
  저는 [진해]의 추억과 유적들을 찾아 자유롭게 걸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이 어느 길로 갈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사항입니다.


  [실트랙 지형도]

  오늘 걸은 거리는 약13km였으며 4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도보여행이란....
  언제나 틀에 박힌 일상의 틀을 벗어나
  항상 서 있는 자신의 영역을 박차고 나가서
  만나 보지 못했던 미답의 사람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이리라.
  관계기관이 작위적으로 그은 [남파랑길]이 이런 도보여행 의미와는 완전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남파랑길8코스]는 서울에서 10시간이 넘는 버스 타는 시간을 들여 ''진해'에 갔지만
  선조들의 흔적과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이 아니고 고작 '진해의 산허릿길 임도'를 걷게 하는 것이어서
  저는 수없이 다닌 산길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어 나름대로 조사를 하여 "진해의 중심"을 답사해 보았습니다.
  군시절과 벚꽃놀이 때의 추억을 일깨워준 도보여행이서 임도를 걷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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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남파랑길]진해근대사거리(오룩스).gpx
  
     『1470km 남해안의 정취』
   『남파랑길』

               

  ['구글맵']

  [지형도]

  [남파랑길 8코스]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있는 "상리마을"에서 출발하여
  '진해구 태백동'에 있는 "진해드림로드출발지점"까지 가는 "천자봉-시루봉-웅산-덕주봉-장복산의 임도"인데
  윗 지도에 연두색으로 표기된 루트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임도로서 공식적 거리는 <15.7km> 입니다. 
  서울에서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와서 고작 임도를 걷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되어
  저는 윗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기된 "진해바다70리길1코스"를 참고하여 "진해 鎭海"를 걸었습니다.
  관계당국에서 그어 놓은 선을 중심선으로 하여 그 주변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도보여행 하는 것이 
  진짜 "남파랑길"을 의미있게 여행하는 것이지, 관계당국이 그어 놓은 선을 철길따라 가듯이 가는 것은
  진정한 도보여행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다음 "진해바다70리길 안내도"를 참고하고
  "진해"가 여행객에게 강력 추천하는 "진해근대역사문화거리"를 걸었습니다.


  ['진해바다70리길']

  ['진해바다70리길' 안내도]

  ['진해루' 앞에 있는 '욕먹는 여행 안내도']

  "진해바다70리길 2코스~7코스""남파랑길6코스~7코스"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남파랑길8코스""진해바다70리길 1코스"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 가라고 합니다.
  도보여행의 묘미는 "진해바다70리길 1코스", 즉, "진해 시가지"라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저는 "진해루" 앞에 있는 "浴먹는 여행 안내도 1~3구간"을 적극 참고하여 진행합니다.


  ['상리마을' 입구]                  12:05

  2020년 11월 11일 (수) 맑음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있는 "상리마을"에서 [남파랑길8코스]는 "천자봉"으로 안내됩니다.


  ['2번국도'-'진해구청' 앞길]

  저는 서두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진짜 진해"를 확실히 도보여행하기 위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진해근대역사문화거리"를 가기 위해 산악회 대열에서 벗어나
  [진해시내]로 들어 갑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창원소방본부']

  ['드림파크' 입구]                12:16

  "창원소방본부""드림파크 입구"를 만나며  "천자봉"을 조망합니다.
  우리 산악회는 '천자봉' 중턱 산허릿길인 임도로 올라 가고 있을거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


  ['진해구청' 진입로]                 12:17

  ['진해구청' 조형물]

  ['진해구청'에서 조망]

  예전엔 "慶南 鎭海市"였는데 지금은 "昌原市 鎭海區"로 "창원시"에 흡수통합되었지만
  그래도 "진해시"의 역사를 안고 있는듯 구청의 규모는 시청 규모 못지 않았습니다.
  [진해구청]은 "천자봉-시루봉" 산줄기를 병풍으로 삼으며 '진해항'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해구청]을 5분여 통과해 나가면...


  ['풍호사거리']                    12:23

  [2번국도]가 지나고 있는 "풍호사거리"를 만나 직진하고


  ['풍호동' 통과]

  이어서 '풍호동'을 통과하는데 대단위 아파트단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순신리더쉽센터']                12:30

  '풍호동'「창원마린푸르지오아파트단지」를 지나면 "이순신리더쉽센터"를 만납니다.
  <이순신장군>의 리더쉽을 배우고 체험하는 국제센터 랍니다.
  국제센터의 건물 입구 및 야외 마당에는 거북선 게이트와 어록 조형물을 설치하였고, 
  1층 로비에는 이순신 초상화와 학익진 전법으로 적을 유인해 섬멸한 한산대첩도,
  충무공이 순국한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도를 파노라마 벽화로 조성하였더군요.


  ['풍호오거리']

  ['한화 L&C' 정문]                  12:36

  「풍오오거리」로 나가면 "한화 L&C" 정문이 있는데
  이곳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2코스"의 시종점이었습니다.
  지금부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를 여행하게 됩니다.


  ['천자로']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                  12:45

  「풍오오거리」에서 10여분 바닷가로 진행하면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를 만나 우회전하고


  ['진해항' 전망대]                   12:52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에서 부턴 방조제가 "소죽도"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진해항"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어 잠시 조망을 하고 갑니다.


  ['대죽도''곶출산' 조망]

  먼저 남쪽으로는 " 대죽도 大竹島"와 그 뒤로 <진해항>을 감싸고 있는 "곶출산-고절산"이 조망되는데
  <곶출산 串出山> 뒤에는 "해군사관학교""해군기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해]에선 함정이 있는 해군기지를 볼수 없지요.


  ['소죽도 방조제']

  서쪽으로는 방조제가 이어지며 "진해항"이 펼쳐지며


  ['안민고개' 조망]

  북쪽으로는「장복산-덕주봉」에서「웅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 중간에 있는 "안민고개 安民고개"가 보입니다.


  ['천자봉 능선' 조망]

  북동쪽으로는 <진해>를 대표하는 산줄기가 전체적으로 조망되는데 앞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진해구청]에서 진행한 경로를 짐작할수 있게 [진해구청]이 보입니다.


  ['소죽도'와 '에너지환경과학공원' 조망]                 12:53

  전망대에서 "소죽도 小竹島"로 방조제를 따라 진행하면
  [소죽도]와 육지 사이를 매립하여 [소죽도]는 이젠 섬이 아니란걸 알수 있으며
  매립지엔 "에너지환경과학공원"을 만들어 놨는데, 쓰레기소각장 등이 있었습니다.
  <진해앞바다> 매립및 조성공사 설계를 제 친구가 했는데, 이 친구가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친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송기동 석탑산업훈장" 받고 난 그 후  여기 클릭
  이 글 클릭해서 잠깐 보고 가세요~~ ㅎㅎ 잠깐이면 됩니다. ~~


  ['진해해양레포츠센터']                   1:06

  ['소죽도찜질방']

  ['소죽도에너지환경과학공원']

  "소죽도 小竹島"에 있는 시설들을 지나는데....
  앞으로도 계속 보겠지만 가는 곳마다 "거북선 모양" 건축물들이 즐비했습니다.


  ['해외참전기념탑']

  300억원을 들여 건립했다고 자랑하는 "해외참전기념탑"을 둘러 보고


  ['진해루' 조망]                  1:10

  [소죽도]에서 "진해루 鎭海樓"를 조망합니다.
  앞으로 더 언급하겠지만 [진해루]가 있는 주변은 옛날 "해군 해병 신병훈련소"였습니다.
  [진해루] 주변은 백사장이었으며 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튼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병신병훈련소]였습니다.
  제가 사십육여년 전에 저곳에서 신병훈련을 받았던 곳으로....감개무량...
  [진해루]가 있는 자리엔 훈련병들의 "변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진해루' 가는 해안로]

  [회전교차로]

  ['진해루' 방향]                1:22

  [진해항] 방조제를 따라 [안민고개]를 바라 보며 진행하면 회전교차로를 만나고...
  회전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구이동2교']

  ['해군교육사령부']

  [구이동2교]를 지나며
  "옛 해군 해병대 신병훈련소"였던 지금의 "해군교육사령부"가 길게 이어집니다.
  제가 훈련을 받던 70년대 초엔 이런 도로도 없었고 저런 형태의 벽돌담도 없는 바닷가로 기억됩니다.
  좌측 해변으로 나가면...


  ['진해루해변공원']

  ['진해루' 조망]

  ['진해루']                   1:34

  "진해루해변공원"이 조성되 있군요.
  [진해루]가 있는 자리엔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옛날에 "변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물론 추측입니다.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ㅎ


  [현위치와 진해여행 안내도]

  [진해루] 옆에는 관광안내도가 있는데 "창원 편백숲 浴먹는 여행"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ㅎ
  [진해]를 여행하려면 이 안내도가 가장 도움이 될듯...
  저는 이 안내도를 참고하여 여행했습니다.


  ['진해루' 2층 대청마루']

  ['옛 해군신병훈련소']

  ['옛 해병신병훈련소']
                
                  [해병훈련소 입소 하던 첫날 사진]

  "진해루 鎭海樓"에 올라 사위를 조망합니다.
  현재 "해군교육사령부"가 있는 "옛 해군 해병대 신병훈련소" 안을 바로 앞에서 들여다 봅니다.
  해병대 관련 블로그에서 퍼온 당시 사진을 첨부합니다.
  [6관문]을 통과해 입소하던 첫날의 모습인데 진짜 변함없는 그날의 그 상황이 파노라마로 떠 오릅니다.
  주변 兵舍와 시설들이 이젠 추억으로 눈웃음 짓게 하지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가는 첫날부터 '꼰아박아' 실시!를 물 먹듯 하기 시작했었죠. ㅎ
  해병대를 다녀 오신 분들은 모두 이런 상황을 똑 같이 경험 했을 것입니다. 


  ['불모산-웅산-시루봉' 조망]

  ['천자봉-대발령' 조망]

  "불모산"에서부터 "천자봉-대발령"까지 한 눈에 조망됩니다.
  줌인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불모산' 정상 줌인]

  "불모산 佛母山 801.1m"
  [불모산] 정상에는 통신시설과 군부대가 있어 주변 어디서나 [불모산] 임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금관가야>의 첫번째 왕인 [김수로왕]에게 이억만리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시집 온 인도 소녀 "허황옥".
  그녀는 [김수로왕]과의 사이에서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 총12명을 낳았으니 금슬이 보통이 아니었겠죠? ^.^
  첫째 아들은 [김수로왕]의 뒤를 이어 "제2대 거증왕"이 되고, 둘째와 셋째는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죠.
  나머지 7명의 아들들은 "허황옥"의 오빠 "허보옥"과 함께 왕궁을 떠나 불교에 귀의했답니다.
  "허황옥"의 오빠인 "허보옥"도 함께 같은 돌배를 타고 인도에서 왔는데
  "허보옥"은 여동생이 왕후가 되었기에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 갈수도 있었지만, 정치권력의 무상함을 알아서
  "허황옥"의 나머지 7명의 아들들을 데리고 속세를 떠나 절간으로 입산수도 하러 떠났는데, 
  그 절간이 앞에 보이는 [불모산] 골짜기에 있는 "장유사 長遊寺"로 들어 간 것이었답니다.
  이억만리에서 낳은 아들들에 대한 "허황옥 왕후"의 모성애는 어느 여성보다도 강했답니다.
  그래서 <김해>에서 매우 가까운 저 [불모산]의 [장유사]를 자주 찾아 아들들을 보려고 했답니다.
  오빠 "허보옥"은 여동생의 앞날을 위해 [장유사]에서 아들들을 몰래 데리고 "합천 가야산"으로 잠행해서
  부귀를 뜬구름과 같이 보며 '불도佛道'를 설경하고 산을 떠나지 않았다고 [長遊不返]하여 
  그를 "장유화상 長游和尙 "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허왕후"의 모성애는 더욱 깊어져 아들들을 보기 위해 "합천 가야산"까지 찾아 갑니다.
  오빠 "허보옥"은 "허왕후"를 피해 또 다시 "지리산 칠불사"로 밀행을 했죠. "허왕후"는 거기까지 찾아 가고...
  마지막으로 아들과 상봉하게 해 주는 날이 아들들 '성불 成佛'하는 날이었습니다. 죽는 날이란 뜻이죠.
  그후 [김수로왕]이 그런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아들들이 공부하던 곳에 절을 지어 주었는데
  그 절이 바로 "지리산 칠불사 七佛寺"라는 거죠.
  "지리산 칠불사"에 가면 그런 전설을 확실히 들을수 있습니다.
  "불모산 佛母山"의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부을무산(夫乙無山)"으로
  "부을"은 서쪽을 뜻하는 "불", "무"는 산을 뜻하는 "뫼"의 변이 형태 "무"를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그렇다치더라도 좀 부족한 면이 있고, "파란문"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불모산 佛母山"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석가모니의 어미니"인 "마야부인"을 일컷겠지만
  여기선 "허황후"가 일곱 왕자들을 보고 싶어하는 모성애가 깃든 산으로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시루봉' 정상 줌인]

  "시루봉 653m"
  거대한 떡시루가 하늘마저 삼켜 버릴 듯 우뚝 솟은 우람한 돌덩어리로 훤칠하게 빼어난 자태는
  장부의 대담한 기풍마저 엿보이게 하는데, "해병혼 海兵魂"이 깃든 산으로 유명하죠.
  근대사에선 [명성왕후]가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100일 산제를 지냈다는 名山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해병훈련병 시절 "골 때리는 산"으로 기억 됩니다. ㅎ
  해병신병 훈련의 하일라이트가 이 "천자봉 구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들은 이 "시루봉"을 "천자봉"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당시 추억의 사진 보여드리면....


  ['천자봉 구보훈련' 옛 사진]

  "해병대 신병 훈련의 하일라이트"인 "천자봉 구보" 사진입니다.
  [시루봉]을 [천자봉]이라고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가끔 대폿집에서 해병 출신들이 뻥 구라치는 무용담을 핏대를 세우며 얘기하는데...
  "천자봉 구보" 할때 완전무장을 하고 했다는둥...수없이 했다는 둥,,,ㅎㅎ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M1소총"과 수통만을 휴대하고 한번인가? 두번인가 올랐습니다. ㅋ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등산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저는 산을 오르는건 생소했는데
  '653m' 급경사 오름길을 거의 뛰다시피 오르는건 여간 힘든게 아니어서 추억에 남는 것입니다.
  저는 "M1소총"이 무척 무거웠고 '철모'가 "골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ㅎ 
  그래도 저 시절로 돌아 가고 싶습니다. 뭐라해도 아무리 고생해도 젊음이 좋아요~~♬ ♧
  요즘은 일반인들을 위해 당시 해병훈련체험 행사를 하고 있다는군요.


  ['천자봉' 줌인]

  "천자봉 天子峰 506.8m"
  현재의 [천자봉]엔 이동통신중계탑이 하나 있어 알아보기 쉽습니다.
  이 봉우리 보다는 앞의 [시루봉]이 진짜 "하느님의 아들 天子"로 보이죠? ㅎ


  ['안민고개' 줌인]

  [장복산][덕주봉]과 [웅산] 사이에 있는 "안민고개 安民嶺"입니다.
  '진해'에서 '창원 안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임진왜란 때 황(黃)장군이라는 명장이 왜군이 이 고개를
  넘지 못하게 방어를 잘 해서 그쪽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제가 당시 해병신병훈련을 받을 때엔 [진해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받고, 저 [안민고개]를 넘어 행군하여
  [창원 상남훈련소]로 이동하여 공용화기 사격훈련과 산악훈련 침투훈련등 진짜 해병훈련을 받았는데...
  저 [안민고개]를 완전무장하고 넘을 때 무지무지 힘들었습니다.
  저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교관들이 "꼰아박아 실시"를 하고 "타향살이" 노래를 부르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훈련병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해병들은 저 고개를 "눈물고개"라고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바라보니 그다지 높지 않은 고개인데, 그 때엔 왜그리 높게 느껴졌던지...ㅎ
  그리고 [상남훈련소]의 위치가 현재 어디인지 궁금했는데, 조사 해 보니
  현재 [경남도청] 뒤 [창원대학교] 근처가 "옛 해병상남훈련소" 자리라는군요.
  그렇다면 무척 먼 거리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소죽도-대죽도-곶출산' 조망]

  옛날 [진해해병신병훈련소]의 변소가 있었던 자리 쯤으로 생각되는 [진해루]에서 [진해항]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 [거제도]가 보인다며 탈영을 하려면 저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하던 교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진해마린어드벤처']

  [휴게소와 어린이놀이터]                 1:42

  [진해루]에서 조망을 마치고 해변공원을 진행하면 휴게실과 어린이놀이터등이 있는데
  온통 '거북선' 모양의 시설물이었습니다.
  해군의 본고장 "진해"에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빼고는 뭔 얘기를 하겠습니까


  ['한주호 준위' 추모 기념탑]                    1:44

  [안내문]

  휴게소 옆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에서 구조활동을 하다가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는 추모탑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해군교육사령부' 정문]                 1:46

  '옛 해군 해병 훈련소'는 현재 "해군교육사령부"로 변모해 있습니다.


  [뒤돌아 본 '진해루해변공원']

  ['속천항' 조망]

  ['속천항']                  2:07

  [진해루해변공원]의 서쪽 끝에서 "속천항 束川港"을 만납니다.
  일제 강점기에 "아사히마치[旭町]"라는 일본식 동명으로  불렸다는 곳입니다.


  ['속천항' 로터리]                2:08
        
          ['진해바다70리길' 이정표]

  [속천항] 북쪽엔 회전교차로가 있으며 [진해바다70리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속천종점' 사거리]                     2:10

  [속천동]은 진해항 해변의 끝에 있는 동네여서 시내버스 종점이 있더군요.
  [속천종점 사거리]에서 10여분 진행하면...


  ['태평사거리']                      2:19

  사거리로는 독특한 모양의 "태평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 [진해시]가 철저한 계획도시란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해근대문화역사길"이 시작됩니다.
  먼저 제가 [선학곰탕]과 [장옥거리]라고 표기한 곳부터 가 보겠습니다.
  그리곤 가운데 길로 [남원로터리]로 진행합니다.


  ['요항부 병원장 관사']

  현재 "선학곰탕"이라는 음식점인데 이 집은 옛날 일제강점기 시절에
  "요항부 병원장 관사"여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로 지정 되었답니다.
  밖에서 볼땐 허름한 집으로 보이지만 들어 가면 상당히 넓고 고급스런 일본식 주택이랍니다.
  그리고 현재는 곰탕 맛집으로 유명하고 영업시간은 점신시간 3시간만 운영한다네요.
  이 집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진해 선학곰탕" 자세히 보기 여기를 클릭해 들어 가 보세요.

     
       ['장옥' 거리]

  "장옥거리 長屋街"
  일제 강점기 시절의 근대 주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본식 [장옥(長屋)거리]가 있습니다.
  지붕 하나에 여러 가구가 들어선 형태의 긴 목조건물이 거리를 따라 들어서 있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목조 연립 주상복합 주택]이라고 할까요?
  이런 형태의 일본식 주택을 "長屋"이라하고 일본말로 "나가야"라고 한답니다.


  ['남원로터리' 방향]

  ['남원로터리']                    2:30

  [태평사거리]에서 [남원로터리] 방향으로 가면 [남원로터리]를 만납니다.
  전봇대에 "진해근대문화역사길"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로터리 중앙으로 들어 가면...


  ['남원로터리' 북쪽방향]


  ['백범 김구 친필 시비']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가 있습니다.
  내용은 안내문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남원로터리' 남쪽 방향]

  [남원로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해군사관학교 입구"가 보이고


  [북쪽 '중원로터리' 방향]

  ['진해제과']                2:34~2:37

  [남원로터리]에서 북쪽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올라 가면 "벚꽃 빵"으로 유명한 [진해제과]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산악회 횐님들에게 기념으로 맛을 보여주기 위해 빵을 사서 한시간 이상 들고 다녔습니다.
  빵이 무겁다기 보다 두 박스를 들고 한시간 이상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는게 예삿일이 아니죠? ㅎ
  빵값은 많이 올라 낫개로는 1,300원하고, 대포장으로 사면 하나에 1,000원.


  ['중원로터리']                   2:38

  "진해 鎭海"의 중심부 "중원로터리 中原"에 도착했습니다. [진해제과]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鎭海]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알본놈들이 대륙 침공의 전진기지로 철저히 계획하여 만든 新都市라죠.
  [鎭海]라는 단어에서도 알수 있드시 "바다를 제압한다"라는 의지를 가진 계획도시랍니다.
  그 계획도시의 중심이 바로 이곳 [중원로터리]로서 사통팔달 통하는 여덟갈래의 방사형 로타리랍니다.
  이 로터리를 만들던 때엔 로터리 가운데에 "팽나무"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鎭海]를 뒤덮고 있는 "벚꽃"
  봄이면 엄청난 행락인파로 붐비는 [鎭海]는 일본놈들에 의해 대륙침공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져
  그들의 國花인 "벚꽃"을 엄청나게 심어 시가지 전체를 뒤덮고 있는데
  그런 내력을 알고 "벚꽃"을 보면 마냥 즐겁게 볼수만은 없겠지요.



  ['근대문화역사길' 안내도]

  안내도를 숙지하고 다녀야 더 많은 것들을 볼수 있습니다.
  아픈 역사도 역사입니다.
  <11번 장옥거리><10번 선학곰탕><9번 김구선생시비>는 구경했고
  [중원로터리] 주변 건축물들을 구경하겠습니다.



  ['진해우체국']                  2:39

  [중원로터리] 동쪽에는 "진해우체국"이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
  우리나라를 침탈하고 대륙침공의 전지기지로 만든 [진해]에는 일본 본국과의 통신연락을 위해
  대규모 우편국이 팔요했겠죠.
  그런데 이 우체국은 일본풍 건물이 아니고 러시아풍 건물이라네요.


  ['진해탑산']

  [진해우체국] 뒤에는 "제황산공원"이 있습니다.
  산 이름에서부터 쪽바리 냄새가 나지요? ㅎ
  그래서 요즘 이름을 "진해탑산공원"으로 바꿨데나 뭐래나
  보이는 "진해탑"은 원래 "일본전승기념탑"이 있었던 자리랍니다.
  올라 가는 방법은 [모노레일 3,000원/인]이었고, 걸어서는 [365계단]을 이용하면 된다는데...
  모두 5분 정도면 올라 갈수 있는 "110m"의 얕은 산이더군요.
  [진해]에선 "서울의 남산" 같은 산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동쪽에서 서쪽 방향 '중원로터리']

  ['중원로터리' 북쪽 '진해역' 조망]

  [중원로터리]에서 [진해역]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입니다.


  ['중원로터리' 서쪽에서 '진해탑' 조망]               2:45

  [중원로터리] 서쪽으로 가서 바라보는 동쪽입니다.
  [진해우체국]과 [제황산공원]의 [진해탑]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군요.


  ['잔해근대사거리']

  ['군항마을역사관']

  [중원로터리] 서쪽에는 "진해군항마을 역사관"이 있고...
  좌측으로 돌아 가면...


  ['원해루']

  "원해루"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습니다.
  무척 낡아 곧 무너 질것 같은데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는 맛집으로 '근대문화유산'이랍니다.
  "이승만대통령"이 짜장면 먹고 다녀 갔다고...
  [장군의 아들] 촬영지이기도 하답니다.


  ['육각집']

  [원해루] 건너편에는 "육각집 (뾰쪽집)"이라는 집이 있는데 '근대문화유산'이랍니다.
  당시엔 [중원로터리]를 한눈에 볼수있는 누각형태의 조망소로 [진해신시가지]의 '랜드마크'였답니다.
  우측에 보이는 로터리가 [중원로터리]


  ['군항마을 테마공원' 입구]

  ['군항마을 테마공원']

  [군항마을역사관] 옆에는 "군항마을 테마공원"을 조성해 놨고....


  ['흑백다방']

  근대역사건축물 중에 하나라는 "흑백다방"도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북원로터리' 방향]                   2:54

  [이순신장군 동상]이 있다는 [북원로터리] 방향을 바라보기만 하고 [진해역]으로 갑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전국 어디서나 볼수 있으니 시간도 없고 벚꽃빵을 들고 있어 생략하고


  ['진해역']                   2:59

  "진해역 鎭海驛"에 도착했습니다.
  驛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하고 벚꽃씨즌에나 몇번 사용한다는 [진해역]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면되고...
  驛 좌측에 있는 [여좌천 입구]로 갑니다.


  ['여좌천' 입구]                     3:00

  ['진해선' 굴다리]

  [진해역] 좌측 옆에 있는 [여좌천] 가는 길인데, [진해선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여좌천' 주변 안내도]

  "여좌천 주변 안내도"를 참고하여


  ['여좌천 데크길]                    3:03

  ['여좌천']

  "여좌천 餘左川"에는 데크길을 설치해 놨고, 벚꽃나무가 개천을 뒤덮고 있어 봄에는 정말 멋지겠더군요.
  [여좌천]은 "장복산"에서 발원하여 진해 앞 바다로 나가는 4.5km의 개천이랍니다.
  [여좌천]의 축대와 바닦은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완벽한 석축으로 만들었다고...
  데크를 설치한 거리는 1.5km라고 합니다.


  ['로망스다리']                    3:05               (10분 휴식)

  ['여좌천']

  중간에 "로망스다리"를 만나는데 MBC 드라마 [로망스] 찰영지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진해여고'와 '평지봉']

  [여좌천] 좌측엔 [진해여고]와 [평지봉]이 조망됩니다.


  ['하늘마루다리']                 3:30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앞]

  "여좌천 餘左川"엔 깊은 내력이 있는 줄 알고 조사 해 봣는데 싱겁게도
  '여명곡(餘明谷)'과 '좌천리(左川里)'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랍니다.


  ['여좌천 데크길' 끝나는 곳]                   3:34

  [여좌천 데크길]이 끝나는 곳입니다.
  저는 여기서 함께 왔던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 [남파랑길8코스] 종점으로 올라 가야 하는데
  우측길로 8분 정도 올라 가면....


  ['진해문화센터']                     3:42

  "진해문화센타"를 만나는데 [2번국도]가 지나는 곳이었습니다.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2번국도'-'장복터널' 방향]        

  [데크길]

  ['장복산조각공원' 입구]                   3:50

  [2번국도]를 따라 [장복터널] 방향으로 잠시 올라 가면
  다시 데크길을 만나는데 데크가 끝나는 곳에 우측으로 "장복산조각공원"이 이어지고


  ['진해드림로드1구간' 입구]

  ['남파랑길 창원8코스 종점-9코스 시점']                 4:00~5:00

  "남파랑길 8코스 종점-9코스 시점""진해드림로드 시점"에 도착했습니다.
  산악회 회원들과는 완전 다른 [남파랑길]을 걸었습니다.
  산악회 횐님들은 관계기관에서 설정한 루트를 정직하게 따라 걸었고
  저는 [진해]의 추억과 유적들을 찾아 자유롭게 걸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이 어느 길로 갈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사항입니다.


  [실트랙 지형도]

  오늘 걸은 거리는 약13km였으며 4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도보여행이란....
  언제나 틀에 박힌 일상의 틀을 벗어나
  항상 서 있는 자신의 영역을 박차고 나가서
  만나 보지 못했던 미답의 사람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이리라.
  관계기관이 작위적으로 그은 [남파랑길]이 이런 도보여행 의미와는 완전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남파랑길8코스]는 서울에서 10시간이 넘는 버스 타는 시간을 들여 ''진해'에 갔지만
  선조들의 흔적과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이 아니고 고작 '진해의 산허릿길 임도'를 걷게 하는 것이어서
  저는 수없이 다닌 산길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어 나름대로 조사를 하여 "진해의 중심"을 답사해 보았습니다.
  군시절과 벚꽃놀이 때의 추억을 일깨워준 도보여행이서 임도를 걷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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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개통식
남해안 속살을 들여다보는 90개 구간
부산~고성 770㎞ 해파랑길 이어 개통

 

전남 해남군 달마산에 있는 미황사 도솔암의 가을. 해남군청 제공

부산부터 해남까지 남해안을 따라 걷는 남파랑길이 열린다.

전남 해남군은 “31일 오전 11시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에서 남파랑길 개통식이 열린다”고 30일 밝혔다.

개통식은 한국관광공사가 ‘남쪽(南)의 쪽빛(藍) 바다와 함께걷는 길, 남파랑길’이라는 주제로 마련한다.

참여자들은 기념행사를 마친 뒤 땅끝 전망대~땅끝탑 구간을 산책할 예정이다.

 

 

남파랑길은 ‘코리아 둘레길’의 일부로, 지난 2016년 5월

부산~고성 770㎞ 구간 동해안에 조성한 해파랑길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다. 남파랑길은 부산시 남구 용호동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땅끝마을까지

1470km 90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국립공원을 비롯해 해안길과 숲길, 마을길,

도심길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걷기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코스다.

                             남해안을 연결한 남파랑길 개념도.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개통식이 열리는 해남군에선 90개 구간 중 3개 구간 46㎞가 포함됐다.

북일면 내동~북평면 남창의 해안길과 북평면 남창~송지면 미황사, 미황사~땅끝탑 등으로

평소 인기가 높은 걷기 여행의 명소다. 이미 명품 걷기길로 알려진 달마산 달마고도의 일부

구간이 포함되면서 순례꾼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군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미황사부터 몰고리재까지 걷는 행사를 추가로 펼친다.

해남군청 관광과 박우신씨는 “남파랑길은 코로나19 사태로 나갈 곳을 잃어버린 시민한테

비대면 비접촉으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남해안을 걸으며

자연·사람·문화를 만나보시길 권한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가야 허황옥의 발자취를 찾아』 [남파랑길] "진해구간 1코스 망산도-안골포-웅천읍성" 답사기 송정공원-망산도-유주각-부산신항-웅천안골왜성-안골포-진철교-황포돛대노래비- 흰돌메공원-웅천남문신도시-주기철목사기념관-웅천읍성-제덕사거리 [구글어스] [국토지리원 지도]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있는 "송정공원"에서 출발하여 "망산도-유주각"등 "허황옥 왕비"의 흔적을 돌아 보며 [부산신항] [안골포]를 지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는 "제덕사거리"까지 약16km를 갑니다. ['송정공원' 앞 버스정류장] 11:30 2020년 1월 22일 (수) 흐리고 비 금방이라도 하늘에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질듯한 잔뜩 찌푸린 날 [죽전]에서 약4시간이 걸려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있는 "송정공원"에 도착하여 바로 답사를 시작합니다. 위에 보이는 고가도로는 [부산신항]과 [가덕도]로 연결되는 [녹산산업대로]더군요. 이곳 [송정공원버스정류장]엔 안내도가 있는데... ['남파랑길 창원6코스' 안내도] ['남파랑길 창원6코스' 안내도 확대] "남파랑길 창원 6코스"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남파랑길]을 안내한다면 "남파랑길 6코스"로 하던지, "남파랑길 창원1코스"라고 해야 할듯 합니다. 저는 [남파랑길] 진해구간 1코스라고 표기 했는데, 이 지역은 원래 [진해시] 지역이어서 [진해]가 더 친근감이 있어서 편의상 [진해구간 1코스]로 표기했습니다. [남파랑길]은 이렇게 아직 그 전체적 기준을 잡지 못하고 지역별로 나름대로 기준을 설정하여 안내하고 있는듯... ['부산시-창원시 市界'] 11:31 [송정공원] 앞 삼거리를 건너면 바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었습니다. 원래 "금관가야"의 국제항구 역활을 하던 지역이 [부산신항] 건설로 엄청 변했습니다. ['용원동 사거리'] 11:32 이어서 [용원동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좌측 [←2.6km 39분 웅천안골왜성]이라고 알려 주는데 "39분" 걸린다고 안내하는 섬세함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군요. ㅎㅎ. 사람에 따라 다양한 걷기 능력을 감안 한다면 [약40분}이라고 해도 될껄...39분...ㅎ ['망산도' 앞] 11:35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의 중심지인 "망산도 望山島"앞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망산도'와 '유주정'] "망산도 望山島""유주정 維舟亭"이 나그네를 반겨 주는데 어쩐지 주변 풍경이 씁쓸합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은 어떡해서던 조그만 역사관계만 있어도 예산을 들여 관광지화 하는데... [금관가야]의 첫왕비인 "허황옥 許黃玉"이 자기 어머니의 꿈을 믿고 머나먼 이억만리 "인도 아유타국"에서 '돌배'를 타고 시집을 왔는데 도착한 곳이 이곳 "망산도"랍니다. 당시 "허황옥"의 나이는 16세, 오빠 "허보옥"과 20여명이 넘는 선원들과 함께 입국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인도의 공주와 왕자, 선원들이 국경을 넘어 입국 한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조그마한 섬이 주는 의미는 크다 아니할수 없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 있는 국제결혼으로는 첫 '국제 결혼'이 이루어지는데 "가락국"의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이 즉시 결혼을 하고 신혼밤을 보냈답니다. 여기서 [김해 왕궁]으로 가는 길목인 [명월산 흥국사]에서 첫날밤을 보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2박3일간이나 붙어 떨어지지 않했다나 뭐래나...ㅎㅎ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첨부한 [삼국유사 제2권 가락국기]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망산도' 입구] ['망산도' '유주암' 안내문] 이곳은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지만 앞에 있는 조그마한 섬 [망산도]는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이랍니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입국하여 첫발을 내디딘 곳인데도 개발은 커녕 출입금지를 시키며 일반 관광객들의 접근을 오히려 막고 있습니다. ['망산도'] ['삼국유사 제2권 가락국기' 원문 일부] "허황옥"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를 비롯해 여러 역사책에 상세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원문 일부와 번역문을 올려 참고하겠습니다. 건무(建武) 24년 무신 7월 27일에 구간(九干) 등이 조회할 때 아뢰기를 “대왕이 강령하신 이래로 아직 좋은 배필을 얻지 못하셨으니 청컨대 신들의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어 항려가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짐이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니 짐에게 짝을 지어 왕후(王后)를 삼게 하는 것도 역시 하늘의 명령일 것이니 경들은 염려 말라”라고 하고, 드디어 유천간(留天干)에게 명하여 경주(輕舟)를 이끌고 준마(駿馬)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서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神鬼干)에게 명하여 승점(乘岾) [망산도는 서울 남쪽의 섬이고 승점은 연하(輦下)의 국(國)이다.]으로 가게 하였다. 갑자기 바다의 서남쪽에서 붉은 색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매달고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유천간 등은 먼저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올리니 곧 사람들이 다투어 육지로 내려 뛰어왔다. 신귀간은 이것을 보고 대궐로 달려와서 그것을 아뢰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여 이내 구간(九干) 등을 찾아 보내어 목련(木蓮)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이하게 하였다. 곧 모시고 대궐로 들어가려 하자 왕후가 이에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과 본래 모르는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서로 따라가겠는가”라고 하였다.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하니 왕은 그렇다고 여겨 유사(有司)를 이끌고 행차하여, 대궐 아래로부터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곳의 산 주변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의 별포(別浦) 나루에 배를 대고 땅으로 올라와 높은 언덕에서 쉬고, 입고 있는 비단바지를 벗어 폐백으로 삼아 산신령(山神靈)에게 바쳤다. 그 밖에 시종한 잉신(媵臣) 두 사람의 이름은 신보(申輔)·조광(趙匡)이고, 그들의 아내 두 사람의 이름은 모정(慕貞)·모량(慕良)이라고 했으며, 노비까지 합해서 20여 명이었다. 가지고 온 금수능라(錦繡綾羅)와 의상필단(衣裳疋緞)·금은주옥(金銀珠玉)과 구슬로 된 장신구들은 이루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왕후가 점점 왕이 있는 곳에 가까이 오니 왕은 나아가 그를 맞아서 함께 유궁(帷宮)으로 들어왔다. 잉신 이하 여러 사람들은 섬돌 아래에 나아가 뵙고 곧 물러갔다. 왕은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잉신 내외들을 인도하게 하고 말하였다. “사람마다 방 하나씩을 주어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 그 이하 노비들은 한 방에 5, 6명씩 두어 편안히 있게 하라."난초로 만든 음료와 혜초(蕙草)로 만든 술을 주고, 무늬와 채색이 있는 자리에서 자게 하고, 옷과 비단과 보화도 주었고, 군인들을 많이 모아서 그들을 보호하게 하였다. 이에 왕이 왕후와 함께 침전(寢殿)에 있는데 왕후가 조용히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살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모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皇天)을 뵈었는데, 황천은 가락국의 왕 수로(首露)라는 자는 하늘이 내려 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곧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것이 이 사람이다. 또 나라를 새로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갔다. 꿈을 깬 뒤에도 황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부모를 작별하고 그곳을 향해 떠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蟠桃)를 찾아 이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용안(龍顔)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나면서부터 자못 성스러워서 공주가 멀리에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이제 현숙한 공주가 스스로 왔으니 이 사람에게는 매우 다행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그와 혼인해서 함께 이틀 밤을 지내고 또 하루 낮을 지냈다. 이에 그들이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내는 데 뱃사공이 모두 15명이니 이들에게 각각 쌀 10석과 베 30필씩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8월 1일에 왕은 대궐로 돌아오는데 왕후와 한 수레를 타고, 잉신 내외도 역시 재갈을 나란히 수레를 함께 탔으며, 중국의 여러 가지 물건도 모두 수레에 싣고 천천히 대궐로 들어오니 이때 시간은 오정(午正)이 되려 하였다. 왕후는 이에 중궁(中宮)에 거처하고 잉신 내외와 그들의 사속(私屬)들은 비어 있는 두 집을 주어 나누어 들어가게 하였고, 나머지 따라온 자들도 20여 칸 되는 빈관(賓館) 한 채를 주어서 사람 수에 맞추어 구별해서 편안히 있게 하였다. 그리고 날마다 지급하는 것은 풍부하게 하고, 그들이 싣고 온 진귀한 물건들은 내고(內庫)에 두고 왕후의 사시(四時)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허황옥 왕후'] 우리나라 "許氏 시조의 어머니"인 "허황옥 왕후"의 동상입니다. "허왕후의 릉" 앞에 있는 동상인데, 제가 예전 [가야 역사 탐방]을 할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궁합이 찰떡이었던가 봅니다. ㅎㅎ 아들을 열명 낳고, 딸을 둘 낳아, 총 열두명의 자녀를 낳았으니 궁합 얘기를 해도 되겠죠? ㅎ 제 눈엔 풍채도 좋고 아기 잘 낳게 생긴 몸매같습니다. ㅎ ['김수로왕'] ['삼국유사' '거등왕'과 '왕비'의 죽음] "허황옥 왕비"와 "김수로왕" 사이에서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탄생했다는거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첫째 아들은 [수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거등왕 居登王"이 되고, "김해 김씨 시조"가 되었으며 둘째 셋째 아들은 "김해 허씨 시조"가 되는데, 이는 "허왕후"가 이억만리 타국에서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흔적이 영원히 사라진다고 자신의 姓을 사용케 해 달라고 요청해서 붙여진 姓이랍니다. 그리고 [居登王] 편을 보면 아버지는 수로왕(首露王), 어머니는 허황후(許皇后)이다. 건안(建安) 4년 기묘 3월 13일에 즉위하였다. 치세는 39년으로 가평(嘉平) 5년 계유 9월 17일(253년)에 죽었다. 왕비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慕貞)으로 태자(太子) 마품(麻品)을 낳았다. 영제(靈帝) 중평(中平) 6년 기사 3월 1일에 왕후가 죽으니 나이는 157세였다. 온 나라 사람들은 땅이 꺼진 듯이 슬퍼하고 구지봉(龜旨峰) 동북 언덕에 장사하였다 ['유주암' 조망] "허황옥 일행"이 타고 온 "돌배"를 정박 시켰는데, 그 "돌배"가 뒤집혀 남아 있다는 "유주암 維舟岩"은 "망산도" 건너편에 보이는데, 제가 예전에 [가야역사탐방] 때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 드리면... ['유주암'과 '망개산'] 자료사진 예전에 촬영한 "유주암 維舟岩" 사진입니다. 역사 기록엔 그 어느 곳에도 "유주암 維舟岩"에 대한 언급이 없답니다. 그래서 이 바위가 [유주암]이라고 단정 할수는 없고 그저 참고로 재미로 보면 될듯 합니다. 하지만 "허황후"가 타고 온 "돌배"에 대해선 확실한 언급이 [삼국유사]와 여러 고서에 나와 있더군요. ['파사석탑'] ['삼국유사' '파사석탑'] "허황후"가 돌배에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 婆娑石塔"과 관련 [삼국유사] 기록입니다. [파사석탑]은 "허황후의 무덤" 앞에 현재도 남아 있는 그녀의 유물이죠. [파사석탑]은 돌배가 항해 할때 배가 기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돌탑이었답니다. 그리고 이 바위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성분의 바위이고 현재 "인도 아유타국" 근처에 같은 형질의 바위가 산재 하고 있어 "허황후"가 가지고 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고 합니다. ['유주정'] [망산도] 옆에는 "유주정 維舟亭"이라는 정자를 현대에 만들어 놨는데 이곳이 그 옛날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건 나 뿐일까... ['유주비각' 가는 길] 11:39 [유주정]에서 뒤돌아 보면 [유주비각]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정우마트]와 [장수식품점] 사이 골목으로 100m쯤 올라 가면... ['용원초' 앞 사거리] 11:41 [용원초등학교] 앞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회전하면... ['유주비각' 조망] [유주비각]이 보입니다. ['유주비각'] 11:43 ['유주비'] [안내문] "유주비 維舟碑"가 있는 "유주비각 維舟碑閣"입니다. "大駕洛國 太祖王妃 普州太后許氏 維舟之地" "가락대국의 태조왕비인 보주태후 허씨의 유주지지"라고 비석에 쓰여 있습니다. "유주지지 維舟之地"라는 말의 뜻은 "배를 정박시킨 곳"이라는 뜻 ['수로왕과 허왕후 영정'] "김수로왕과 허황후 영정"입니다. 머나먼 '인도 아유타국'에서 [망산도]를 통해 [가락국]으로 온 "허황옥"은 현재 "흥국사"라는 절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고 하는 [삼국유사] 기록을 위에서 보여 들였죠. 하룻밤으로론 부족해 2박3일을 보냈다고 하니 궁합이 찰떡궁합인듯... ['신혼여행지'] [망산도]에서 [흥국사]까지 가서 신혼첫날을 보내는 루트를 대략 추측해 봤습니다. 루트에 있는 지명은 모두 그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지명이라고 하더군요. "밝은 보름달 같은 허황후"의 모습을 빗대어 "명월산"이라고 했으며, "보배같은 여인"이라고 "보배산"이라고 산 이름까지 "보배산"이라고 할 정도 였다니 "김수로왕"이 "허황후"의 미모에 얼마나 반했는지 알수 있습죠? 첫날밤을 보내고 넘어 간 고개를 "배필정고개"라고 하는 것도 현재까지 전해 지고 있답니다. ['부산신항 아파트단지'] ['용원교'] 11:50 [유주비각]을 둘러 보고 바닷가로 나가면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부산신항"과 신항 신시가지로 들어 가는 [용원교]라는 다리를 건너는데 이름은 [부산신항]이지만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었습니다. ['송정공원'에서 '안골포'까지 상세 지도] 여기서 [송정공원]에서 [안골포]까지의 상세 지도를 참고하고 ['신항물조은온천'] 11:58 [부산신항]의 신항 신시가지로 들어 가는데 "신항 물조은 온천"이라는 상당한 규모의 온천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초록오름공원'] 12:08 신시가지를 통과하면 [초록오름공원]이라는 가로공원을 만나는데 우회전하면 [다리] 육지와 매립지의 경계를 이루는 수로 다리를 건너고 ['안골포' 가는 길] 12:16 [안골포]로 향하는데 좌측에 [안골왜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웅천안골왜성'] 12:19 [안내문] "웅천안골왜성" 임진왜란 때 일본군(倭軍)이 쌓은 일본식 성곽(왜성)으로 당시 '일본 수군의 본거지'였답니다. [남파랑길]을 직접 걸으니 '일본 수군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생태통로] 12:24 이어서 우측에 있는 "망개산"과 좌측 "안골왜성"을 연결하는 생태통로를 넘어 가면... ['안골포 신도시' 조망] [안골포 아파트단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골포' 조망] 12:31 [안골포]로 내려가 [안골포] 바다를 조망하고 우회전하면... [삼거리] 삼거리를 만나는데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안골포 마을'을 빙 둘러 가라고 합니다. ['진해유치원'] 옛 초등학교 자리에 "진해유치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유치원은 [공립단설유치원]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유치원이더군요. 초등학교는 모두 아파트단지로 옮겨 가고 텅빈 초등학교를 유치원으로 개조하여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유치원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저도 괜히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크고 넓고 아름다운 유치원은 처음 봅니다. 운동선수들이 많이 배출 될듯...ㅎ ['안정공원 (무궁화공원)'] 12:35 [진해유치원] 뒤에는 "안정공원 (무궁화공원)"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안골포]를 대표하는 공원인가 봅니다. 엄동설한에 이곳이 남쪽 나라라는걸 강조라도 하듯 나뭇잎과 잔듸들이 푸른빛을 띄고 있습니다. [점심식사] 12:37~1:12 [안골포]에서 점심식사는 칼국수로... 손님이 많았는데, 품질은 글쎄....ㅎ ['안골포' 마을과 신도시 조망] [안골포]의 구시가지와 건너편에 보이는 신시가지가 확연히 비교되는 "안골포 마을" 전경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은 "망개산"입니다. ['안골포'] ['웅동만'으로 넘어 가는 길] ['청안동'] [안골포]를 한바퀴 빙 돌아 나가는데 포구 입구를 매립하여 육지화해서 [부산신항]과 [진해웅동경제자유구역]을 만들어서 바다인지 호수인지 알수 없게 되었군요. 22분 정도 걸어 [안골포]를 빠져 나가면.... ['웅동만'] 1:34 [웅동만 熊洞灣]이 펼쳐지는데, [안골포]는 [웅동만]의 일부분이란걸 알게 해 줍니다. 잠시후 찾아뵐 [황포돛대노래비]와 [흰돌메공원]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남양동' '마천동' 조망] '진해구 남양동-마천동'이 펼쳐집니다. [대장천]을 건너는 [진철교]가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뒤에 보이는 산은 "마봉산 400.8m"인듯한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진철교' 앞 사거리] 1:47 [진철교] 앞 사거리에 도착해서 좌회전하면... ['진철교'] 1:48 [대장천]이라고 하는 개천을 건너는 [진철교]를 만나 건너는데... [대장천]은 [불모산]과 [굴암산]등 [신낙남정맥]의 산줄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개천이더군요. ['진철교' 서쪽 끝] [진철교]를 건너면 이정표는 좌회전 하라고 알려 주며... [전력선 지중화] 1:52 대규모 전력선을 地中化하는 곳을 만나는데 이 곳이 [마천일반산업단지]여서 전력 수요가 많은가 봅니다. 요즘 새로 건설하는 신시가지나 공단들엔 전력선을 地中化하고 있죠. ['진해마천지방 산업단지'] '진해구 남양동'의 [영길마을]을 통과하면... ['황포돛대 노래비' 이정표] 1:56 [영길마을]을 통과하여 [황포돛대 노래비]로 가는 이정표를 만나 지름길로 10여분 진행합니다. ['진철교'에서 '제석사거리'까지 상세 지도] [영길마을]에서 [제덕사거리]까지 상세지도를 확인하고 진행하면 보이는게 많아 집니다. ['영길마을' 입구 공원] 2:05 [영길마을]이 끝나는 곳에 가로공원이 하나 있는데 [황포돛대 노래비] 표지가 있습니다. 이곳이 [황포돛대 노래비]인가? 확인해 보니 앞으로 12분 정도 더 가야 하더군요. ['황포돛대 노래비 공원'] 2:17~2:21 ['황포돛대 노래비'] "황포돛대 노래비" 여기서 "황포돛대"라는 노래를 만들었는줄 알았는데 안내문을 보니 아니올시다 ~ ㅎ 이 고장 출신인 작사가 "이일윤씨"가 '경기도 연천'에서 군복무를 할때 어린 시절의 고향 눈 내리는 '영길만'을 회상하며, 흘러가는 배에 슬픈 마음을 담아 노랫말을 지었다고 노래비 아래엔 노래를 직접 들을수 있도록 음향시설을 해 놨는데 버튼을 밟으면 노래가 실제 나왔습니다. [해안도로] [황포돛대 노래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흰돌메공원' 휴게소] 2:31~2:47 ['흰돌메공원' 전망대 조망] [전망대에 있는 안내판] "흰돌메공원"을 만납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립니다만,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전망대에는 [부산신항 조감도]가 있었는데... 날씨가 나빠 눈에 뵈는게 없어 아쉬웠던 [흰돌메공원]이었습니다. ['부산신항-진해신항' 조감도] 공원 옆엔 [[창원 진해 신항] 방향 조감도가 있고 ['웅포해전 기념비'] 2:48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장군"의 승전장이었던 "웅포해전" 기념비도 있더군요. "웅포 해전 熊浦海戰"은 1593년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전라좌수사'였을 때에 "원균장군"의 경상우수영 함대와 "이억기장군"의 전라우수영 함대와 연합하여 왜군 100여 명을 사살한 전투이나, 이 해전에서 조선군 배 2척이 전복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웅포'의 왜성들을 초토화 시키고 '부산포'로 진격하려던 "조선 함대"가 이곳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해 '부산진' 출격에 차질이 생겼다고 합니다. [웅포해전]을 우리나라 역사서엔 우리나라가 승리한 해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조선에서 자기들이 승리한 해전이 세번 있었는데, 그 중에 한곳이 이곳 [웅포해전]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인명 피해가 100여명 있었으나, 조선 전함 2척을 침몰시켜 더 큰 피해를 줬다고 자기들이 이긴 해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연전연패하던 일본수군은 이때부터 절대 바다로 나가 싸우지 말고 육지 근처에서 싸우라는 일본 본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가 있어서 육지의 왜성과 연계해 포구에서만 싸운 결과라고... ['남문대교'] 2:56 [남해고속도로] 본선에서 [부산신항]과 [진해웅동공단]으로 연결되는 [남해고속도로 제3지선]이 지나는 [남해대교] 밑을 통과하면... ['남문동 신시가지'] 3:00 [진해구 남문동 신시가지]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전국의 대부분이 구도심을 버리고 신시가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남문동 아파트단지'] ['웅천초등학교'] ['남문경제자유지역'] '진해구 남문동'의 신시가지를 15분여 통과하면.... ['세스페데스공원 사거리'] 3:16 [세스페데스공원]이 있는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이정표가 우측으로 가라고 알려 줍니다. ['2번국도-진해대로'] ['웅천읍성' 가는 길] 그러면 [2번국도]이자 [진해대로]가 지나는 다리 밑을 통과하여 5분 정도 진행합니다. [2번국도]를 가운데 두고 신시가지와 구도심이 나뉘어 지더군요. ['주기철목사기념관' '웅천읍성' 조망] 옛 "웅천" 구도심의 정취가 느껴지는 "웅천읍성"과 이 고장이 낳은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주기철목사 기념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기철목사 기념관'] 3:24 "주기철 목사" 신사참배거부와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5회나 체포되어 5년 4개월동안 모진 고문을 받으며 황실불경죄,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44년에 순국했답니다. ['웅천읍성' 전경] 3:26~3:34 [안내문] "웅천읍성 熊川邑城" 군사적 방어 역활을 하는 城이 아니라 행정업무를 보는 관청을 邑城이라고 하지요. [세종 16년]에 건설된 읍성이라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해자'] ['해자 조교'] "해자 垓子"는 '성벽 밖에 적이 접근하기 어렵게 파 놓은 참호 시설로 물을 채워 놓는 곳'이라죠. "해자 조교"는 '해자'를 건너는 도개교를 말합니다. ['동운 입구'] ['견룡문'] "견룡문 見龍門" "웅천읍성"의 東門으로 복원된 유일한 門이랍니다. [북쪽 '해자' 조망] 東門에 올라 사위를 조망합니다. 먼저 북쪽으로는 복원된 성곽과 '해자'가 있으며 저 멀리 산줄기 들은 "신낙남정맥"의 산들인듯한데 확실한 산이름들은 운무로 잘 모르겠습니다. ['주기철목사기념관' 조망] 동남쪽으로는 [주기철목사기념관]과 그 뒤로 [남문동 신시가지]가 조망됩니다. [남쪽 성곽 조망] 남쪽으로도 '해자'와 성곽이 보입니다. [城 안 조망] 서쪽으로는 앞으로 진행해야할 [남파랑길]이 '성내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우체국은 "진해웅동우체국"이었습니다. ['성내동' 사거리] 3:40 東門에서 우체국을 지나 잠시 직진하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엔 [웅천고등학교]가 있더군요.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城內洞'을 6분여 통과하면... ['2번국도-진해대로'] 3:46 [2번국도]이자 [진해대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 [제석사거리]로 가는데 이 근처 [두부랑 고기랑]이라는 음식점에서 술한잔 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 속에서 "두부와 고기"를 안주로 소주 한잔하는 그 맛은 아직도 잊을수 없습니다. [구글어스] [국토지리원 지도] 오늘 걸은 거리는 약16km로 4시간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귀경하는 고속도로엔 굵은 빗줄기가 겨울인지 여름인지 분간 못하게 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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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진해1구간.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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