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0km 남해안의 정취』
『남파랑길』
['구글맵']
[지형도]
[남파랑길 8코스]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있는 "상리마을"에서 출발하여
'진해구 태백동'에 있는 "진해드림로드출발지점"까지 가는 "천자봉-시루봉-웅산-덕주봉-장복산의 임도"인데
윗 지도에 연두색으로 표기된 루트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임도로서 공식적 거리는 <15.7km> 입니다.
서울에서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와서 고작 임도를 걷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되어
저는 윗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기된 "진해바다70리길1코스"를 참고하여 "진해 鎭海"를 걸었습니다.
관계당국에서 그어 놓은 선을 중심선으로 하여 그 주변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도보여행 하는 것이
진짜 "남파랑길"을 의미있게 여행하는 것이지, 관계당국이 그어 놓은 선을 철길따라 가듯이 가는 것은
진정한 도보여행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다음 "진해바다70리길 안내도"를 참고하고
"진해"가 여행객에게 강력 추천하는 "진해근대역사문화거리"를 걸었습니다.
['진해바다70리길']
['진해바다70리길' 안내도]
['진해루' 앞에 있는 '욕먹는 여행 안내도']
"진해바다70리길 2코스~7코스"는 "남파랑길6코스~7코스"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남파랑길8코스"는 "진해바다70리길 1코스"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 가라고 합니다.
도보여행의 묘미는 "진해바다70리길 1코스", 즉, "진해 시가지"라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저는 "진해루" 앞에 있는 "浴먹는 여행 안내도 1~3구간"을 적극 참고하여 진행합니다.
['상리마을' 입구] 12:05
2020년 11월 11일 (수) 맑음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있는 "상리마을"에서 [남파랑길8코스]는 "천자봉"으로 안내됩니다.
['2번국도'-'진해구청' 앞길]
저는 서두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진짜 진해"를 확실히 도보여행하기 위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와 "진해근대역사문화거리"를 가기 위해 산악회 대열에서 벗어나
[진해시내]로 들어 갑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창원소방본부']
['드림파크' 입구] 12:16
"창원소방본부"와 "드림파크 입구"를 만나며 "천자봉"을 조망합니다.
우리 산악회는 '천자봉' 중턱 산허릿길인 임도로 올라 가고 있을거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
['진해구청' 진입로] 12:17
['진해구청' 조형물]
['진해구청'에서 조망]
예전엔 "慶南 鎭海市"였는데 지금은 "昌原市 鎭海區"로 "창원시"에 흡수통합되었지만
그래도 "진해시"의 역사를 안고 있는듯 구청의 규모는 시청 규모 못지 않았습니다.
[진해구청]은 "천자봉-시루봉" 산줄기를 병풍으로 삼으며 '진해항'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해구청]을 5분여 통과해 나가면...
['풍호사거리'] 12:23
[2번국도]가 지나고 있는 "풍호사거리"를 만나 직진하고
['풍호동' 통과]
이어서 '풍호동'을 통과하는데 대단위 아파트단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순신리더쉽센터'] 12:30
'풍호동'「창원마린푸르지오아파트단지」를 지나면 "이순신리더쉽센터"를 만납니다.
<이순신장군>의 리더쉽을 배우고 체험하는 국제센터 랍니다.
국제센터의 건물 입구 및 야외 마당에는 거북선 게이트와 어록 조형물을 설치하였고,
1층 로비에는 이순신 초상화와 학익진 전법으로 적을 유인해 섬멸한 한산대첩도,
충무공이 순국한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도를 파노라마 벽화로 조성하였더군요.
['풍호오거리']
['한화 L&C' 정문] 12:36
「풍오오거리」로 나가면 "한화 L&C" 정문이 있는데
이곳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2코스"의 시종점이었습니다.
지금부턴 "진해바다70리길 1코스"를 여행하게 됩니다.
['천자로']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 12:45
「풍오오거리」에서 10여분 바닷가로 진행하면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를 만나 우회전하고
['진해항' 전망대] 12:52
<진해제2부두 앞 삼거리>에서 부턴 방조제가 "소죽도"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진해항"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어 잠시 조망을 하고 갑니다.
['대죽도''곶출산' 조망]
먼저 남쪽으로는 " 대죽도 大竹島"와 그 뒤로 <진해항>을 감싸고 있는 "곶출산-고절산"이 조망되는데
<곶출산 串出山> 뒤에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해]에선 함정이 있는 해군기지를 볼수 없지요.
['소죽도 방조제']
서쪽으로는 방조제가 이어지며 "진해항"이 펼쳐지며
['안민고개' 조망]
북쪽으로는「장복산-덕주봉」에서「웅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 중간에 있는 "안민고개 安民고개"가 보입니다.
['천자봉 능선' 조망]
북동쪽으로는 <진해>를 대표하는 산줄기가 전체적으로 조망되는데 앞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진해구청]에서 진행한 경로를 짐작할수 있게 [진해구청]이 보입니다.
['소죽도'와 '에너지환경과학공원' 조망] 12:53
전망대에서 "소죽도 小竹島"로 방조제를 따라 진행하면
[소죽도]와 육지 사이를 매립하여 [소죽도]는 이젠 섬이 아니란걸 알수 있으며
매립지엔 "에너지환경과학공원"을 만들어 놨는데, 쓰레기소각장 등이 있었습니다.
<진해앞바다> 매립및 조성공사 설계를 제 친구가 했는데, 이 친구가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친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송기동 석탑산업훈장" 받고 난 그 후 여기 클릭
이 글 클릭해서 잠깐 보고 가세요~~ ㅎㅎ 잠깐이면 됩니다. ~~
['진해해양레포츠센터'] 1:06
['소죽도찜질방']
['소죽도에너지환경과학공원']
"소죽도 小竹島"에 있는 시설들을 지나는데....
앞으로도 계속 보겠지만 가는 곳마다 "거북선 모양" 건축물들이 즐비했습니다.
['해외참전기념탑']
300억원을 들여 건립했다고 자랑하는 "해외참전기념탑"을 둘러 보고
['진해루' 조망] 1:10
[소죽도]에서 "진해루 鎭海樓"를 조망합니다.
앞으로 더 언급하겠지만 [진해루]가 있는 주변은 옛날 "해군 해병 신병훈련소"였습니다.
[진해루] 주변은 백사장이었으며 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튼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병신병훈련소]였습니다.
제가 사십육여년 전에 저곳에서 신병훈련을 받았던 곳으로....감개무량...
[진해루]가 있는 자리엔 훈련병들의 "변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진해루' 가는 해안로]
[회전교차로]
['진해루' 방향] 1:22
[진해항] 방조제를 따라 [안민고개]를 바라 보며 진행하면 회전교차로를 만나고...
회전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구이동2교']
['해군교육사령부']
[구이동2교]를 지나며
"옛 해군 해병대 신병훈련소"였던 지금의 "해군교육사령부"가 길게 이어집니다.
제가 훈련을 받던 70년대 초엔 이런 도로도 없었고 저런 형태의 벽돌담도 없는 바닷가로 기억됩니다.
좌측 해변으로 나가면...
['진해루해변공원']
['진해루' 조망]
['진해루'] 1:34
"진해루해변공원"이 조성되 있군요.
[진해루]가 있는 자리엔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옛날에 "변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물론 추측입니다.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ㅎ
[현위치와 진해여행 안내도]
[진해루] 옆에는 관광안내도가 있는데 "창원 편백숲 浴먹는 여행"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ㅎ
[진해]를 여행하려면 이 안내도가 가장 도움이 될듯...
저는 이 안내도를 참고하여 여행했습니다.
['진해루' 2층 대청마루']
['옛 해군신병훈련소']
['옛 해병신병훈련소']
[해병훈련소 입소 하던 첫날 사진]
"진해루 鎭海樓"에 올라 사위를 조망합니다.
현재 "해군교육사령부"가 있는 "옛 해군 해병대 신병훈련소" 안을 바로 앞에서 들여다 봅니다.
해병대 관련 블로그에서 퍼온 당시 사진을 첨부합니다.
[6관문]을 통과해 입소하던 첫날의 모습인데 진짜 변함없는 그날의 그 상황이 파노라마로 떠 오릅니다.
주변 兵舍와 시설들이 이젠 추억으로 눈웃음 짓게 하지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가는 첫날부터 '꼰아박아' 실시!를 물 먹듯 하기 시작했었죠. ㅎ
해병대를 다녀 오신 분들은 모두 이런 상황을 똑 같이 경험 했을 것입니다.
['불모산-웅산-시루봉' 조망]
['천자봉-대발령' 조망]
"불모산"에서부터 "천자봉-대발령"까지 한 눈에 조망됩니다.
줌인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불모산' 정상 줌인]
"불모산 佛母山 801.1m"
[불모산] 정상에는 통신시설과 군부대가 있어 주변 어디서나 [불모산] 임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금관가야>의 첫번째 왕인 [김수로왕]에게 이억만리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시집 온 인도 소녀 "허황옥".
그녀는 [김수로왕]과의 사이에서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 총12명을 낳았으니 금슬이 보통이 아니었겠죠? ^.^
첫째 아들은 [김수로왕]의 뒤를 이어 "제2대 거증왕"이 되고, 둘째와 셋째는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죠.
나머지 7명의 아들들은 "허황옥"의 오빠 "허보옥"과 함께 왕궁을 떠나 불교에 귀의했답니다.
"허황옥"의 오빠인 "허보옥"도 함께 같은 돌배를 타고 인도에서 왔는데
"허보옥"은 여동생이 왕후가 되었기에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 갈수도 있었지만, 정치권력의 무상함을 알아서
"허황옥"의 나머지 7명의 아들들을 데리고 속세를 떠나 절간으로 입산수도 하러 떠났는데,
그 절간이 앞에 보이는 [불모산] 골짜기에 있는 "장유사 長遊寺"로 들어 간 것이었답니다.
이억만리에서 낳은 아들들에 대한 "허황옥 왕후"의 모성애는 어느 여성보다도 강했답니다.
그래서 <김해>에서 매우 가까운 저 [불모산]의 [장유사]를 자주 찾아 아들들을 보려고 했답니다.
오빠 "허보옥"은 여동생의 앞날을 위해 [장유사]에서 아들들을 몰래 데리고 "합천 가야산"으로 잠행해서
부귀를 뜬구름과 같이 보며 '불도佛道'를 설경하고 산을 떠나지 않았다고 [長遊不返]하여
그를 "장유화상 長游和尙 "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허왕후"의 모성애는 더욱 깊어져 아들들을 보기 위해 "합천 가야산"까지 찾아 갑니다.
오빠 "허보옥"은 "허왕후"를 피해 또 다시 "지리산 칠불사"로 밀행을 했죠. "허왕후"는 거기까지 찾아 가고...
마지막으로 아들과 상봉하게 해 주는 날이 아들들 '성불 成佛'하는 날이었습니다. 죽는 날이란 뜻이죠.
그후 [김수로왕]이 그런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아들들이 공부하던 곳에 절을 지어 주었는데
그 절이 바로 "지리산 칠불사 七佛寺"라는 거죠.
"지리산 칠불사"에 가면 그런 전설을 확실히 들을수 있습니다.
"불모산 佛母山"의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부을무산(夫乙無山)"으로
"부을"은 서쪽을 뜻하는 "불", "무"는 산을 뜻하는 "뫼"의 변이 형태 "무"를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그렇다치더라도 좀 부족한 면이 있고, "파란문"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불모산 佛母山"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석가모니의 어미니"인 "마야부인"을 일컷겠지만
여기선 "허황후"가 일곱 왕자들을 보고 싶어하는 모성애가 깃든 산으로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시루봉' 정상 줌인]
"시루봉 653m"
거대한 떡시루가 하늘마저 삼켜 버릴 듯 우뚝 솟은 우람한 돌덩어리로 훤칠하게 빼어난 자태는
장부의 대담한 기풍마저 엿보이게 하는데, "해병혼 海兵魂"이 깃든 산으로 유명하죠.
근대사에선 [명성왕후]가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100일 산제를 지냈다는 名山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해병훈련병 시절 "골 때리는 산"으로 기억 됩니다. ㅎ
해병신병 훈련의 하일라이트가 이 "천자봉 구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들은 이 "시루봉"을 "천자봉"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당시 추억의 사진 보여드리면....
['천자봉 구보훈련' 옛 사진]
"해병대 신병 훈련의 하일라이트"인 "천자봉 구보" 사진입니다.
[시루봉]을 [천자봉]이라고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가끔 대폿집에서 해병 출신들이 뻥 구라치는 무용담을 핏대를 세우며 얘기하는데...
"천자봉 구보" 할때 완전무장을 하고 했다는둥...수없이 했다는 둥,,,ㅎㅎ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M1소총"과 수통만을 휴대하고 한번인가? 두번인가 올랐습니다. ㅋ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등산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저는 산을 오르는건 생소했는데
'653m' 급경사 오름길을 거의 뛰다시피 오르는건 여간 힘든게 아니어서 추억에 남는 것입니다.
저는 "M1소총"이 무척 무거웠고 '철모'가 "골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ㅎ
그래도 저 시절로 돌아 가고 싶습니다. 뭐라해도 아무리 고생해도 젊음이 좋아요~~♬ ♧
요즘은 일반인들을 위해 당시 해병훈련체험 행사를 하고 있다는군요.
['천자봉' 줌인]
"천자봉 天子峰 506.8m"
현재의 [천자봉]엔 이동통신중계탑이 하나 있어 알아보기 쉽습니다.
이 봉우리 보다는 앞의 [시루봉]이 진짜 "하느님의 아들 天子"로 보이죠? ㅎ
['안민고개' 줌인]
[장복산][덕주봉]과 [웅산] 사이에 있는 "안민고개 安民嶺"입니다.
'진해'에서 '창원 안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임진왜란 때 황(黃)장군이라는 명장이 왜군이 이 고개를
넘지 못하게 방어를 잘 해서 그쪽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제가 당시 해병신병훈련을 받을 때엔 [진해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받고, 저 [안민고개]를 넘어 행군하여
[창원 상남훈련소]로 이동하여 공용화기 사격훈련과 산악훈련 침투훈련등 진짜 해병훈련을 받았는데...
저 [안민고개]를 완전무장하고 넘을 때 무지무지 힘들었습니다.
저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교관들이 "꼰아박아 실시"를 하고 "타향살이" 노래를 부르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훈련병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해병들은 저 고개를 "눈물고개"라고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바라보니 그다지 높지 않은 고개인데, 그 때엔 왜그리 높게 느껴졌던지...ㅎ
그리고 [상남훈련소]의 위치가 현재 어디인지 궁금했는데, 조사 해 보니
현재 [경남도청] 뒤 [창원대학교] 근처가 "옛 해병상남훈련소" 자리라는군요.
그렇다면 무척 먼 거리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소죽도-대죽도-곶출산' 조망]
옛날 [진해해병신병훈련소]의 변소가 있었던 자리 쯤으로 생각되는 [진해루]에서 [진해항]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 [거제도]가 보인다며 탈영을 하려면 저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하던 교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진해마린어드벤처']
[휴게소와 어린이놀이터] 1:42
[진해루]에서 조망을 마치고 해변공원을 진행하면 휴게실과 어린이놀이터등이 있는데
온통 '거북선' 모양의 시설물이었습니다.
해군의 본고장 "진해"에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빼고는 뭔 얘기를 하겠습니까
['한주호 준위' 추모 기념탑] 1:44
[안내문]
휴게소 옆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에서 구조활동을 하다가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는 추모탑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해군교육사령부' 정문] 1:46
'옛 해군 해병 훈련소'는 현재 "해군교육사령부"로 변모해 있습니다.
[뒤돌아 본 '진해루해변공원']
['속천항' 조망]
['속천항'] 2:07
[진해루해변공원]의 서쪽 끝에서 "속천항 束川港"을 만납니다.
일제 강점기에 "아사히마치[旭町]"라는 일본식 동명으로 불렸다는 곳입니다.
['속천항' 로터리] 2:08
['진해바다70리길' 이정표]
[속천항] 북쪽엔 회전교차로가 있으며 [진해바다70리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속천종점' 사거리] 2:10
[속천동]은 진해항 해변의 끝에 있는 동네여서 시내버스 종점이 있더군요.
[속천종점 사거리]에서 10여분 진행하면...
['태평사거리'] 2:19
사거리로는 독특한 모양의 "태평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 [진해시]가 철저한 계획도시란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해근대문화역사길"이 시작됩니다.
먼저 제가 [선학곰탕]과 [장옥거리]라고 표기한 곳부터 가 보겠습니다.
그리곤 가운데 길로 [남원로터리]로 진행합니다.
['요항부 병원장 관사']
현재 "선학곰탕"이라는 음식점인데 이 집은 옛날 일제강점기 시절에
"요항부 병원장 관사"여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로 지정 되었답니다.
밖에서 볼땐 허름한 집으로 보이지만 들어 가면 상당히 넓고 고급스런 일본식 주택이랍니다.
그리고 현재는 곰탕 맛집으로 유명하고 영업시간은 점신시간 3시간만 운영한다네요.
이 집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진해 선학곰탕" 자세히 보기 여기를 클릭해 들어 가 보세요.
['장옥' 거리]
"장옥거리 長屋街"
일제 강점기 시절의 근대 주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본식 [장옥(長屋)거리]가 있습니다.
지붕 하나에 여러 가구가 들어선 형태의 긴 목조건물이 거리를 따라 들어서 있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목조 연립 주상복합 주택]이라고 할까요?
이런 형태의 일본식 주택을 "長屋"이라하고 일본말로 "나가야"라고 한답니다.
['남원로터리' 방향]
['남원로터리'] 2:30
[태평사거리]에서 [남원로터리] 방향으로 가면 [남원로터리]를 만납니다.
전봇대에 "진해근대문화역사길"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로터리 중앙으로 들어 가면...
['남원로터리' 북쪽방향]
['백범 김구 친필 시비']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가 있습니다.
내용은 안내문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남원로터리' 남쪽 방향]
[남원로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해군사관학교 입구"가 보이고
[북쪽 '중원로터리' 방향]
['진해제과'] 2:34~2:37
[남원로터리]에서 북쪽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올라 가면 "벚꽃 빵"으로 유명한 [진해제과]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산악회 횐님들에게 기념으로 맛을 보여주기 위해 빵을 사서 한시간 이상 들고 다녔습니다.
빵이 무겁다기 보다 두 박스를 들고 한시간 이상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는게 예삿일이 아니죠? ㅎ
빵값은 많이 올라 낫개로는 1,300원하고, 대포장으로 사면 하나에 1,000원.
['중원로터리'] 2:38
"진해 鎭海"의 중심부 "중원로터리 中原"에 도착했습니다. [진해제과]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鎭海]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알본놈들이 대륙 침공의 전진기지로 철저히 계획하여 만든 新都市라죠.
[鎭海]라는 단어에서도 알수 있드시 "바다를 제압한다"라는 의지를 가진 계획도시랍니다.
그 계획도시의 중심이 바로 이곳 [중원로터리]로서 사통팔달 통하는 여덟갈래의 방사형 로타리랍니다.
이 로터리를 만들던 때엔 로터리 가운데에 "팽나무"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鎭海]를 뒤덮고 있는 "벚꽃"
봄이면 엄청난 행락인파로 붐비는 [鎭海]는 일본놈들에 의해 대륙침공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져
그들의 國花인 "벚꽃"을 엄청나게 심어 시가지 전체를 뒤덮고 있는데
그런 내력을 알고 "벚꽃"을 보면 마냥 즐겁게 볼수만은 없겠지요.
['근대문화역사길' 안내도]
안내도를 숙지하고 다녀야 더 많은 것들을 볼수 있습니다.
아픈 역사도 역사입니다.
<11번 장옥거리><10번 선학곰탕><9번 김구선생시비>는 구경했고
[중원로터리] 주변 건축물들을 구경하겠습니다.
['진해우체국'] 2:39
[중원로터리] 동쪽에는 "진해우체국"이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중에 하나.
우리나라를 침탈하고 대륙침공의 전지기지로 만든 [진해]에는 일본 본국과의 통신연락을 위해
대규모 우편국이 팔요했겠죠.
그런데 이 우체국은 일본풍 건물이 아니고 러시아풍 건물이라네요.
['진해탑산']
[진해우체국] 뒤에는 "제황산공원"이 있습니다.
산 이름에서부터 쪽바리 냄새가 나지요? ㅎ
그래서 요즘 이름을 "진해탑산공원"으로 바꿨데나 뭐래나
보이는 "진해탑"은 원래 "일본전승기념탑"이 있었던 자리랍니다.
올라 가는 방법은 [모노레일 3,000원/인]이었고, 걸어서는 [365계단]을 이용하면 된다는데...
모두 5분 정도면 올라 갈수 있는 "110m"의 얕은 산이더군요.
[진해]에선 "서울의 남산" 같은 산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동쪽에서 서쪽 방향 '중원로터리']
['중원로터리' 북쪽 '진해역' 조망]
[중원로터리]에서 [진해역]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입니다.
['중원로터리' 서쪽에서 '진해탑' 조망] 2:45
[중원로터리] 서쪽으로 가서 바라보는 동쪽입니다.
[진해우체국]과 [제황산공원]의 [진해탑]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군요.
['잔해근대사거리']
['군항마을역사관']
[중원로터리] 서쪽에는 "진해군항마을 역사관"이 있고...
좌측으로 돌아 가면...
['원해루']
"원해루"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습니다.
무척 낡아 곧 무너 질것 같은데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는 맛집으로 '근대문화유산'이랍니다.
"이승만대통령"이 짜장면 먹고 다녀 갔다고...
[장군의 아들] 촬영지이기도 하답니다.
['육각집']
[원해루] 건너편에는 "육각집 (뾰쪽집)"이라는 집이 있는데 '근대문화유산'이랍니다.
당시엔 [중원로터리]를 한눈에 볼수있는 누각형태의 조망소로 [진해신시가지]의 '랜드마크'였답니다.
우측에 보이는 로터리가 [중원로터리]
['군항마을 테마공원' 입구]
['군항마을 테마공원']
[군항마을역사관] 옆에는 "군항마을 테마공원"을 조성해 놨고....
['흑백다방']
근대역사건축물 중에 하나라는 "흑백다방"도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북원로터리' 방향] 2:54
[이순신장군 동상]이 있다는 [북원로터리] 방향을 바라보기만 하고 [진해역]으로 갑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전국 어디서나 볼수 있으니 시간도 없고 벚꽃빵을 들고 있어 생략하고
['진해역'] 2:59
"진해역 鎭海驛"에 도착했습니다.
驛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하고 벚꽃씨즌에나 몇번 사용한다는 [진해역]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면되고...
驛 좌측에 있는 [여좌천 입구]로 갑니다.
['여좌천' 입구] 3:00
['진해선' 굴다리]
[진해역] 좌측 옆에 있는 [여좌천] 가는 길인데, [진해선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여좌천' 주변 안내도]
"여좌천 주변 안내도"를 참고하여
['여좌천 데크길] 3:03
['여좌천']
"여좌천 餘左川"에는 데크길을 설치해 놨고, 벚꽃나무가 개천을 뒤덮고 있어 봄에는 정말 멋지겠더군요.
[여좌천]은 "장복산"에서 발원하여 진해 앞 바다로 나가는 4.5km의 개천이랍니다.
[여좌천]의 축대와 바닦은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완벽한 석축으로 만들었다고...
데크를 설치한 거리는 1.5km라고 합니다.
['로망스다리'] 3:05 (10분 휴식)
['여좌천']
중간에 "로망스다리"를 만나는데 MBC 드라마 [로망스] 찰영지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진해여고'와 '평지봉']
[여좌천] 좌측엔 [진해여고]와 [평지봉]이 조망됩니다.
['하늘마루다리'] 3:30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앞]
"여좌천 餘左川"엔 깊은 내력이 있는 줄 알고 조사 해 봣는데 싱겁게도
'여명곡(餘明谷)'과 '좌천리(左川里)'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랍니다.
['여좌천 데크길' 끝나는 곳] 3:34
[여좌천 데크길]이 끝나는 곳입니다.
저는 여기서 함께 왔던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 [남파랑길8코스] 종점으로 올라 가야 하는데
우측길로 8분 정도 올라 가면....
['진해문화센터'] 3:42
"진해문화센타"를 만나는데 [2번국도]가 지나는 곳이었습니다.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2번국도'-'장복터널' 방향]
[데크길]
['장복산조각공원' 입구] 3:50
[2번국도]를 따라 [장복터널] 방향으로 잠시 올라 가면
다시 데크길을 만나는데 데크가 끝나는 곳에 우측으로 "장복산조각공원"이 이어지고
['진해드림로드1구간' 입구]
['남파랑길 창원8코스 종점-9코스 시점'] 4:00~5:00
"남파랑길 8코스 종점-9코스 시점"인 "진해드림로드 시점"에 도착했습니다.
산악회 회원들과는 완전 다른 [남파랑길]을 걸었습니다.
산악회 횐님들은 관계기관에서 설정한 루트를 정직하게 따라 걸었고
저는 [진해]의 추억과 유적들을 찾아 자유롭게 걸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이 어느 길로 갈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사항입니다.
[실트랙 지형도]
오늘 걸은 거리는 약13km였으며 4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도보여행이란....
언제나 틀에 박힌 일상의 틀을 벗어나
항상 서 있는 자신의 영역을 박차고 나가서
만나 보지 못했던 미답의 사람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이리라.
관계기관이 작위적으로 그은 [남파랑길]이 이런 도보여행 의미와는 완전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남파랑길8코스]는 서울에서 10시간이 넘는 버스 타는 시간을 들여 ''진해'에 갔지만
선조들의 흔적과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이 아니고 고작 '진해의 산허릿길 임도'를 걷게 하는 것이어서
저는 수없이 다닌 산길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어 나름대로 조사를 하여 "진해의 중심"을 답사해 보았습니다.
군시절과 벚꽃놀이 때의 추억을 일깨워준 도보여행이서 임도를 걷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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