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명승지를 찾아』
[남파랑길 부산구간 Ⅱ]
"흰여울마을-용두산공원-자갈치시장-송도해수욕장"
중리해안-85광장-75광장-하늘전망대공원-흰여울터널-흰여울문화마을-
깡깡이마을-영도다리-남포역-광복동문화거리-용두산공원-부산근대역사관-
국제시장-자갈치시장-새벽시장-남항대교-거북섬-송도해수욕장
[관광안내도]
[국토지리원 지도]
[구글 지형도]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중리해변"에서 출발하여 [절영로]를 따라 "하늘공원"까지 진행하고,
[절영로]에서 바다갓길인 "절영해안산책로"로 내려가 "흰여울해안터널"까지 진행합니다.
여기서 다시 "이송도전망대"로 올라 가서 "흰여울문화마을"을 구경하고
"깡깡이예술마을"을 경유하여 "영도다리"를 건너 "광복동문화거리"로 들어가 "용두산공원"으로 올라 가고,
이어서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을 통과하여 "송도해수욕장"까지 약14.5km를 진행합니다.
['중리해변' 입구] 12:05
2019년 11월 13일 (수) 흐림
빗님이 오후에 내린다는 예보가 있는 조금 흐리날에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중리포구"에
도착하여 [남파랑길]을 출발합니다.
['중리해안']
"동삼동 東三洞"은 ‘동쪽에 위치한 3개의 마을’이라는 뜻인데,
"상리, 중리, 하리"등 영도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세 개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지금의 동삼동이 되었답니다.
이곳은 "중리 中里"에 있는 포구여서 자연스럽게 "중리포구-중리해변"이 되었답니다.
['절영해안산책로']
동행한 산악회 횐님들은 모두 바다갓길인 "절영해안산책로"로 들어 갑니다.
[남파랑길]은 아직 구체적으로 루트가 정해진건 없고, 현재 계획 중에 있습니다.
어느 길이 [남파랑길]이고 아니고는 순전히 남해안을 걷는 사람들의 선택적 몫입니다.
앞으로 [남파랑길]이 만들어진다해도, 정해진 길만을 따라 철로를 걷드시 가는 것은 여행의 묘미가 없습니다.
규격화 된 길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미리 조사를 하여 걷는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절영로']
그래서 저는 오늘 여행코스를 미리 충분히 조사하여 여유롭고 구경거리 많은 길로 진행합니다.
아랫쪽 바닷가 [절영해안산책로]는 오르내림이 많은 이름 그대로 해안길이어서 바닷가 자연을 구경하며
걷는 길인데, 그동안 [해파랑길]이나 [서해안길]에서 엄청 많이 접해본 해안길이라 그 길을 벗어나
편하고 볼거리가 새로운 '사람 사는 길'인 [절영로]를 홀로 진행합니다.
앞에 보이는 소나무 숲으로 가면...
['중리해녀촌입구'] 12:11
['85광장'] 12:14
[중리해녀촌]으로 내려 갈수 있는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면
"85광장"이라는 쉼터를 만납니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85광장"인줄 알았더니 '1985년도'에 조성된 광장이어서 "85광장"이랍니다. ㅎ
['절영해안산책로']
"85광장"에서 [절영해안산책로]를 내려다 보는데 해안 절벽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많습니다.
[삼거리] 12:17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영도]의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도로로서 [고신대]로 갈수 있는 삼거리였습니다.
삼거리를 지나면 바로 "75광장"을 만나는데...
['75광장' 입구] 12:18~12:23
['영도찬가']
['75광장']
['사자정']
"75광장"
[절영로]에 있는 쉼터 겸 조망처로서는 규모가 가장 큰 공원이었습니다.
"75광장"도 "85광장"과 같이 '1975년도'에 조성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영도]의 서쪽 해안 절벽 위에 있는 "사자정 獅子亭"과 "영도 찬가" 비석이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었습니다.
[남쪽 조망]
"사자정 獅子亭"에 올라 먼저 남쪽을 조망하면
[태종대] 앞에 외로이 떠있는 "주전자섬"이 보입니다.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오늘 여행의 종착지인 [송도해수욕장]과 '부산의 중심지'가 조망됩니다.
['75광장' 조망]
"사자정 獅子亭" 위에서 내려다 본 "75광장"인데 봉수대도 보이는군요.
['절영마'] 12:23
[75광장]에서 다시 [절영로]로 나가면
"절영마 節影馬" 조형물이 거리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자기 그림자 보다 더 빠르다고하니 "빛의 속도" 보다 더 빠르다는 말이겠죠? ㅎ ^*^
하여간 '날쌘돌이'를 강조하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요즘 이런 말 한마리만 있으면 경마장에 가서 떼돈을 벌텐데...ㅎ
['목장원'] 12:24
"목장원"이라는 음식점이 [봉래산 손봉] 아래에 규모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습니다.
'한우등심' '한정식' '뷔폐'등을 하는 대형 음식점이라는데, 돌잔치등 단체객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하늘전망대' 앞] 12:25~12:30
['하늘전망대 스카이워크']
['조망도']
[목장원]을 지나면 "하늘전망대"가 나타납니다.
'스카이워크'가 해안 절벽 밖으로 돌출되 있어 조망하기 좋았습니다.
중요 조망 포인트 안내도가 있어 비교해 가며 조망을 하면...
[남쪽 조망]
"대마도"가 보인다는 남쪽...흐린 날씨 때문인지 "대마도"는 보이지 않고
'입항'을 대기중인 대형 선박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정박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선박들이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정박해 있죠? 그 이유를 아시나요?
선박이 바다에 정박 할때엔 반드시 '바닷물의 흐름', 즉 조류 방향으로 뱃머리를 놓아야
물의 저항을 덜 받아 움직임이 최소화 되어 안전하겠죠.
그래서 모든 선박들이 모두 조류방향으로 일렬로 닻을 내리고 정박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
[남서쪽 조망]
남서쪽도 시원한 조망은 없고
[서쪽 조망]
서쪽에는 [암남공원 岩南公園]과 [진정산] [두도 頭島]가 잘 보이고 [송도해수욕장]도 보이는군요.
[두도 頭島] 뒤로 [낙동정맥]의 끝인 [몰운대]와 [쥐섬]이 옛 추억을 일깨워 주는군요.
['몰운대'에서 '쥐섬'을 배경으로...]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낙동정맥]을 끝내며 '몰운대'에서 '쥐섬'을 배경으로 찍은 추억의 사진인데
땀으로 흠벅 젖은 쬐끔 젊었던 여름날의 추억입니다. ㅎㅎ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송도해수욕장]과 [천마산]이 보이는군요.
[해변 조망]
"하늘전망대 스카이워크" 아래엔 [절영해안산책로]가 이어지고
[동쪽 조망]
'스카이워크'에서 뒤돌아 보면 [봉래산 손자봉]이 새로운 각도로 보입니다.
저 봉우리들을 오르는 날도 손꼽아 기다립니다.
['영도사격장'] 12:31
'스카이워크'를 지나면 "하늘공원"을 만나고 공원 앞엔 "영도 사격장"이 있습니다.
실탄 사격을 하는 곳이라는데 일반인들도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사격 할수 있다고
['무지개다리' 갈림길] 12:32
[하늘공원]을 지나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기서 직진하는 길은 오로지 도로 뿐이니 이젠 [절영해안산책로]인 해안으로 내려 갑니다.
이정표엔 "무지개다리"로 내려 간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내림길]
['무지개다리' 조망]
[하늘공원]에서 잠시 급경사 내리막 계단을 내려 가면
"무지개다리"라고 하는 다리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무지개는 보이지 않더군요. ^*^
[봉래산]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이 다리로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킬때 무지개가 나타난다고
[무지개다리]라고 명명한게 아닐지 추측해 봅니다.
[남쪽 조망] 12:36
[무지개다리]에서 "중리해변"에서 이어지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뒤돌아 보고
['무지개다리']
지금부터 진행 할 [절영해안산책로] 방향을 조망합니다.
[송도해수욕장]과 [남항대교]가 더욱 가까워집니다.
['갈맷길']
['파도광장'] 12:41
[갈맷길]을 5분 정도 진행하면 "파도광장"이라는 해변을 만나는데 자갈마당이더군요.
조금 더 진행하면...
['흰여울해안터널' 조망] 12:45
['흰여울해안터널']
[안내문]
"흰여울해안터널"을 만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흰여울해안터널' 통과]
70m 길이로 약40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터널을 통과하면....
['피아노계단' 입구] 12:48
바로 "피아노계단 입구"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버리고 [피아노계단]으로 올라가야
'영도의 명소' 아니 '부산의 명소'라고 하는 "흰여울문화마을"을 구경하며 통과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계단']
피아노 건반 모양을 한 계단이어서 아마도 "피아노계단"이라고 하는듯 한데 제법 길고 가파릅니다.
하지만 이런 발품을 팔지 않고는 생동감있는 새로운 삶의 현장을 체험 할수 없으니
힘들더라도 올라 갑니다.
['이송도 전망대'] 12:54~1:07
[피아노계단]을 오르면 "이송도 전망대"가 올라 오느라 수고 많았다고 아름다운 경치를 제공해 줍니다.
"이송도 二松島"는 건너편 우리나라 제1호 해수욕장인 '암남동'의 "송도"를 "제1 송도"라 하고
마주하고 있는 이곳 "영도 영선동"의 "흰여울마을 일대"를 "제2 송도"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이곳 전망대의 이름이 "이송도전망대"가 되었다고
['피아노계단' 조망]
"이송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피아노계단]입니다.
제법 길고 가파르죠? ㅎ
발품을 팔아야 지금부터 펼쳐지는 "흰여울문화마을"을 만끽 할수 있습니다.
['흰여울문화마을'] 1:08
[이송도전망대]를 나서면 "흰여울문화마을"이 시작됩니다.
[흰여울길]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림으로써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하여 [흰여울길]이라 했답니다.
[흰여울길] 주변일대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2송도]라 일컫는다죠.
'6.25전쟁' 피난민들의 가난한 생활 거주지였던 '봉래산' 기슭의 가파른 벼랑에 살던 사람들은
새로운 아파트 등으로 이사하고 그들이 살던 집들은 폐가가 되어 가고 마을은 유령의 마을로 변했는데
부산시가 2011년 12월 공.폐가를 리모델링하여 지역 예술가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영도 구민들로 하여금 생활 속 문화를 만나게 하는 독창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꾸며 거듭났답니다
지금은 부산을 찾는 여행객들의 명소로 관광지화 되었다고...
지금부터 일직선으로 연결된 좁은 벼랑 골목인 [흰여울길]을 통과해 보겠습니다.
['등대쉼터'] 1:10
['무지개계단' 입구] 1:12
[흰여울길]엔 카페가 많았으며, 다양한 벽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하며 바다를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에 쫏기는 나그네는 횡하니 지나칩니다.
['흰여울 안내소'] 1:13~1:16
[흰여울길]의 백미는 "흰여울 안내소"였는데
그 이유는 영화 "변호인"의 촬영 장소 중에 한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내소 벽에는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이곳 촬영분 대사가 쓰여 있었습니다.
['흰여울 안내소'- 영화 '변호인' 촬영장소]
안으로 올라 가니 6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직도 살아 있는듯 슬레트 지붕에 좁은 생활 공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살며 자신 희생하며 악착같이 자식 공부시켜 우리나라 발전의 토대를 만든 곳이라 생각하니
그 어머니들의 사랑이 느껴지며 뭔가 허공에 무지개가 피어 오르는듯 합니다.
[안내소 내부]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다는 조그만 방으로 들어 가 보니
[흰여울문화마을]에 대한 안내물들이 나열되 있었으며, 예술인들의 작품도 몇점 보였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송도해수욕장']
예전 이런 집들을 '하꼬방'이라 했죠. '상자'같다는 일본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만...
비참하고 처참한 궁핍한 생활상을 보여 주는 창문입니다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이젠 '낭만'을 생각하더군요.
[영화 '변호인' 포스터]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대화']
"노무현 전대통령"을 정치에 들어 서게 하는 "부림사건"을 영화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전두환"이의 신군부가 조작한 용공 간첩사건이었습니다.
내용은 모두 잘 아실테니 아래 백과사전을 참고하시고...
그 영화의 백미라 할수 있는 대사를 한번 더 곱씹어 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
당신이 말하는 국가란 무었입니까 ?"
독재권력 전두환을 향해 부러짖는 그 외침이 생생합니다.
백과사전에서 "부림사건"을 인용하면..."부림사건"은 1981년 부산의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국가전복과 사회주의 건설을
모의한 국가변란조직으로 몰아간 부산지역 사상 최대의 조작 공안사건이다.
전두환 공안당국이 독서모임인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 회원인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19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최장 60여일까지 불법 감금·고문하고 구속기소해 유죄 판결이 나왔다.
당시 이 사건 변론을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고,
이는 2013년 개봉해 11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변호인>
[마을 쉼터] 1:16
['커피-스넥코너']
이런저런 서민들의 마을을 상품화한 마을들을 지나며
즐거움 보다는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앞서는 것은 나 뿐일까....
['흰여울마을 출입구']
[흰여울마을] 골목길을 벗어나는데 벽에 쓰여 있는 한 귀절이 도보여행을 정의해 주는군요.
[파란문]도 굼뱅이처럼 뉘엇뉘엇 삶의 현장을 돌아 보는 도보여행이 되도록 해야 할텐데....
언제나 시간에 쪼들리는 내 형편이 안스럽습니다.
[뒤돌아 본 '흰여울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 1:22
"흰여울마을"을 나서며 뒤돌아 본 마을 전경입니다.
아랫쪽 [절영해안산책로]는 주민들의 건강산책로라 여겨지니
[절영해안산책로]를 걷기 보다는 [흰여울마을길]을 걸어야 여행의 운치가 더 있을 듯 합니다.
[갈림길] 1:25
[흰여울마을]을 벗어나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니는데
[절영해안산책로]로 들어 가는 길인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내림길]
해안산책로로 내려 가는 데크 계단에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잠자고 있었고
어미는 계단 옆에서 밥을 먹으며 새끼의 안위를 지켜보고 있더군요.
['부산남항대교'] 1:29
아파트와 방파제 사잇길을 진행하는데 "남항대교"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남항동' 통과]
'남항동'을 12분여 통과하면...
['국제선용품유통센타'] 1:41
[국제선용품유통센타]를 만나고
['대평동 깡깡이마을'] 1:52
이어서 '대평동' "깡깡이예술마을"로 들어 갑니다.
배 표면에 슨 녹이나 조개 같은 이물질을 털어내기 위한 망치질 소리 때문에 ‘깡깡이 마을’이라고
불리워진 '부산 영도구 대평동'의 조선소 지역을 일컷는다고 합니다.
억척스러움의 대명사인 "깡깡이 아지매"는 고된 깡깡이질에 나선 대평동 중년 여인들의 근면함과
끈기를 일컫는 말이라는데 현재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후유증으로 여러 질병에 시달린다고...
뭔일이던 해서 자식들을 부양 해야만 했던 그 시절 그 여인들을 회상해 봅니다.
['남포동' 조망]
'대평동 깡깡이마을' 건너편엔 '부신의 심장부'라 할수 있는 '남포동'이 조망되고
그 뒤로 "천마산 天馬山 326m"이 완벽하게 조망됩니다.
"절영마"가 하늘을 나는듯...
['자갈치시장' 조망]
어물냄새 풍기던 "자갈치시장"은 갈매기가 나는 듯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바다 위를 나는듯 합니다.
여기서 미리 알려드리면 저는 오늘 "자갈치시장 전망대"를 올라 부산항 주변을 조망 할것입니다.
[용두산공원]은 당연 찾아 볼것이고
['롯데마트''영도다리' 조망]
'부산'엔 "롯데"가 주름 잡고 있다죠? 프로야구팀까지 [롯데자이안트]가 본거지이고...
[부산대교]와 [영도대교] 사이 중앙동에 자리 잡고 있는 "부산롯데종합몰"이 보입니다.
저 자리는 원래 "부산시청"이 있던 곳인데...
['대교동' 통과]
'대교동'의 남항을 통과하여 [영도다리]로 나가면...
['현인' 노래비] 2:10
"가수 현인선생 노래비"가 지나는 나그네의 눈길을 끕니다.
[영도다리]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애타게 찾는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들려 오는듯...♬
['영도대교'] 2:10~2:13
['영도대교']
[부산시청에서 퍼 온 사진]
매일 오후 2시에 [영도다리]를 들어 올리는 행사를 "도개쇼"라고 한다는데
'부산갈메기'라는 노래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뿔사 약간 늦게 도착하여 끝나 가고 있는 시점이어서 무지 아쉬웠습니다만
퍼 온 사진으로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유라리광장']
[영도다리] 아래엔 "유라리광장"이라는 광장이 [자갈치시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유라리"가 뭔 뜻인지...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파란문]이라 확인해 봤습니다.
"유라리 광장"
유라시아 대륙의 국도 7호선의 시점과 종점인 이곳을 유럽의 유와 아시아의 라(아)
그리고 사람, 마을, 모여 즐겨 노는 소리를 뜻하는 리(이)의 조합으로
유럽과 아시아인이 함께 어울려 찾고 즐기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5년 11월 21일 부산광역시 중구청장
['광복동-남포동' 삼거리] 2:14
[영도다리]를 건너면 [남포동]과 [중앙동] [광복동]이 만나는 "영도대교 앞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롯데마트] 자리는 원래 [부산시청]이 있던 곳이죠.
[용두산공원]으로 가려면 [부산지하철 남포역 6번출입구]로 들어가 [7번출구]로 나가면 됩니다.
['광복동 문화의 거리']
[부산지하철 남포역 7번출구]로 나가면 좌측으로 '부산의 명동'인 "광복동거리"가 펼쳐집니다.
완전 로데오거리로 변모했군요.
[용두산공원]으로 올라 가는 에스컬레이트가 있는 곳은 [Reebok판매점] 다음에 있습니다.
['용두산공원' 입구 에스컬레이트] 2:23
[용두산공원]으로 올라 가는 에스컬레이트는 약100m로 엄청 긴 에스컬레이트였습니다.
[에스컬레이트]
"용두산"의 높이가 51.4m 정도이니
윗 사진과 같은 에스컬레이트 네개를 이은 4단 에스컬레이트여서 세번 갈아 타고 올라 갔습니다.
에스컬레이트 내부 조명 빛의 색깔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향연을 하고
['미타선원']
에스컬레이트를 갈아 타는 곳엔 [미타선원]이라는 선원 입구도 있고...
[에스컬레이트 빛]
빛쑈를 하는 듯한 마지막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눌루날라 올라 가면...
['용두산공원' 입구] 2:26~2:34
['용두산공원']
"용두산공원 龍頭山 51.4m"에 쉽게 올랐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엔 이곳에 그들의 신사를 지어 참배를 하게 했던 곳이라죠.
또한 "미화당백화점"이 근처에 있어 저도 용두산공원을 올랐다가 '미화당백화점"으로 내려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런 모습은 간데 없고 "부산의 상징"이 되어 우릴 반겨 줍니다.
"용의 머리"를 닮았는지는 알수 없고 [부산타워]가 긴 목을 내밀고 부산시내를 굽어 보고 있고
[지나온 길]
공원에 올라 뒤돌아 보니 올라온 에스컬레이트와 [롯데마트], 그리고 '영도"의 "봉래산"이 조망됩니다.
[종각]
"용두산 종각"은 서울의 [보신각]과 같은 종각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매년 12월 31일 밤 12시에 타종행사를 하는 곳이죠.
부산 지상파 TV 방송 3사가 생중계를 하죠
['꽃시계']
이곳 "꽃시계"는 전국에 있는 모든 꽃시계 중에 유일하게 "촛침"이 있는 꽃시계라고 자랑하네요. ㅎ
['이순신장군상']
[용두산 정상]에는 쪽바리들의 신사가 있었던 곳이랍니다.
해방후 '민영석'이라는 사람이 일본 신사에 불을 질럿는데 때마침 강한 바람으로 대형 화재로 변해 몽땅
타버렸다네요. '민영석'이라는 사람은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두번이나 옥살이를 했고 그 보복으로 방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6.25 때엔 피난민들의 판잣집이 이 "용두산"을 뒤덮었답니다.
그 때에 또다시 대형 화재가 나 판잣집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그 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는데
몽진 중이던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이라 한때 불려졌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몰락하고, 1966년 '박정희군사정권'이 집권하면서 "용두산공원"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보시는 바와 같이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이 우리나라 바다를 굽어 보며
쪽바리들을 경계하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부산면세점']
[부산면세점 용두산점]과 [부산타워]가 있는데
[부산타워]는 높이가 120m이고 서울 남산의 [서울타워]보다 2년 먼저 준공되었다네요.
관람료가 성인은 8,000원으로 좀 비싸죠? ㅎ 서울 남산 [서울타워]는 7,000원인데..
잠시후 [자갈치시장 전망대]에서 무료로 부산을 조망 할수 있으니 [부산타워]는 올라 갈 필요 없고
['부산근대역사관' 가는 길] 2:35
[용두산공원] 뒷쪽에 있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가는 공원 내림길입니다.
200m 정도 진행하면...
['용두산어귀삼거리'] 2:39
[용두산어귀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 좌측에 [부산근대역사관]이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명소를 관람하라고 [남파랑길]을 이리로 돌아 가게 만들었는 듯 한데
우리 횐님들은 그런 내용을 모르니 여기서 '중국호떡'만 사먹고 가버립니다.
'중국호떡'을 사준 '이선생님'에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부산근대역사관]을 둘러 봅니다.
['부산근대역사관']
['역사관' 입구]
"부산근대역사관"
이렇게 유명한 건물을 그냥 지나치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 자원수탈기구로 악명 높았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습니다.
또한 해방된 후엔 '미국해외홍보관' 역활을 하는 "미문화원 美文化院"으로 미국이 차지하고...
70여년간의 외세 지배로 점철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건물입니다.
급기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기에 미국이 신군부의 군대 동원을 용인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1981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의 지지와 공고한
한미동맹관계를 확인하고 제5공화국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화운동세력에게
미국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 의식을 확산시켰습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인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 등은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방조하고 광주학살을 용인한 것을 비판하면서
이곳 부산미문화원에 잠입하여 방화하고 “미국은 더 이상 남한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하는 사건이 발생했었죠.
그 과정에서 화재로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전두환에 대한 분노는 더해 갔는데
전두환이는 아직도 사과 한마디는 커녕 자기 탓이 아니라고 괴변을 늘어 놓으며 골프나 치러 다닙니다.
이런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부산미문화원"
부산시민들의 끈질긴 반환 요청으로 1999년에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아 2003년에 현재의 역사관으로
만들어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 와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아~! 다시는 그런 굴욕적인 역사를 만들지 맙시다
['대청사거리'] 2:44
[부산근대역사관]을 뒤로하고 [대청동] 거리를 잠시 거닐면 "대청사거리"를 만납니다.
[남파랑길]을 여기로도 뺑뺑이를 돌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를 졔 나름대로 유추해 보면...
첫째, 이 사거리 우측에 1979년 10월에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민주공원]이
'보수산 寶水山 169.1m"에 있으며 민주항쟁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부산의 명소이죠.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대통령'의 유신체재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이었죠.
둘째, 이 사거리 직진 건너편엔 그 유명한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지요.
피난시절 생활고를 못이겨 아끼던 책들을 내다 팔아 먹을거리를 사고,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이
싼 헌책을 구입하러 다니던 헌책방골목이 있고
셋째, 이 [대청사거리] 좌측엔 너무나 유명한 "국제시장"이 있어서라고 생각됩니다.
피난시절 구호품이나 구제품들을 거래하던 부산의 중심 시장이었으니까요.
도보여행객들이 모르면 그냥 길만 걷고 지나치는 의미없는 길을 걸을 뿐입니다.
안내산악회가 안내해 주어야 하는 할일은 의외로 많은데...
['부산국제시장']
"부산국제시장"
'6.25전쟁' 피난시절의 애환이 서려있는 시장입니다만, 현재는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다른 여느 대도시의 큰 시장과 별 다름이 없어 언급은 줄이고 그냥 패스 ~
['남포사거리'] 2:57
[국제시장]을 지나면 [남포사거리]를 만나는데 직좌하여 [자갈치시장]으로 갑니다.
['자갈치시장'] 3:03~3:13
"자갈치시장"
바닷가에 자갈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자갈밭의 어시장은 사라지고
현대식 고층 [자갈치시장]이 들어서서 시장이라기 보다는 회센타가 되었습니다.
[전망대 입구]
[자갈치시장]에선 전망대를 다녀와야하는데, 건물이 워낙 커 입구를 모르면 찾아 가기 어렵더군요.
전망대 입구는 시장건물 우측 끝 지점이었습니다.
입구로 들어 가면 7층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 갑니다.
['7층' 전망대 입구]
7층에 내리면 정면에 [terra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전망대는 우측 비상계단으로 들어가 한층 더 올라 갑니다.
['자갈치시장 전망대']
"자갈치시장 전망대"
얼마전 KBS TV의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이다도시'씨가 만나고 싶어 하던
한국에 처음 와 취직했던 신발공장 '미스 킴'을 찾아 상봉하는 장소로 나왔더군요.
무료로 부산항과 주변을 조망 할수 있는 곳이라 찾았습니다.
자갈치시장 건물 위 갈메기 날개 아래에 전망대는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영도다리''영도' 조망]
[영도다리]와 [영도 봉래산]을 조망하고
['깡깡이마을' 조망]
건너편 '영도 대평동'의 "깡깡이예술마을"도 전체적으로 잘 보입니다.
['송도해수욕장' 방향 조망]
우측으로는 [송도해수욕장] 방향의 [부산남항]과 [천마산]이 조망됩니다.
['낙동정맥' 조망]
북서쪽으로는 추억의 [낙동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대티고개-시약산-구덕산"이 조망되고
['민주공원' 조망]
북쪽으로는 [부마민주항쟁 기념탑]이 있는 "보수산"과 그 뒤로 [낙동정맥 엄광산]이 보이는군요.
[''노상 자갈치시장'] 3:13~3:48
[자갈치시장 전망대]에서 내려가 노상 자갈치시장을 통과하다가
[국수순대국]을 먹었는데 이 또한 별미였습니다.
그런데 값이 4,000원으로 서울과 비교하면 1/3 정도의 가격이어서 놀랐습니다.
소주도 한병에 3,000원이었고...
이곳 노상 자갈치시장도 곧 헐리고 새로운 건물 시장이 건립 될 예정이라는군요.
['새벽시장'] 3:51
[자갈치시장]은 왼편의 영도대교 밑 건어물시장에서부터 오른편 남부민동 새벽시장까지 랍니다.
[국수순대국]을 든든하게 먹고 나가면 새벽에만 열린다는 [새벽시장]을 통과하는데
오후인데도 시장은 열리고 있더군요.
['부산공동어시장'] 3:59
이어서 [부산공동어시장]을 지나면...
['남항대교'] 4:11
"남항"의 서편에 있는 [남항대교] 밑을 지나고
['송도케이블카 삭도장'] 4:15
계속해서 [송도해수욕장]으로 들어 가는데, 먼저 [송도해상케이블카] 삭도장이 반겨주고
['거북선' 입구 다리] 4:17~4:30
이어서 [송도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실제 "송도"였다고하는 "거북섬"을 만나
['거북섬' 입구]
입구 정문 조형물을 통과하면
['어부와 인용']
['어부'] ['인용']
[안내문]
"어부(魚夫)와 인용(人龍)"이라는 조형물이 눈길을 끕니다.
얽힌 전설은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되겠고
['거북이']
"다복이 多福이"라는 거북 조형물은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아 보이더군요. ㅎ
[케이블카]
[송도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가 운행하고 있고
[전망대]
여기도 "스카이워크"가 설치되 있었습니다.
등대와 "영도 봉래산"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송도'와 케이블카]
['다복이'와 송도해수욕장]
"거북섬"을 돌아 보고 해수욕장으로 나갑니다.
예전에 제 친구가 앞에 보이는 해변에서 '횟집'을 운영했었는데, 태풍 '매미'로 가게가 초토화 되어
폭삭 망했다고...
[다이빙대]
해수욕장 가운데엔 다이빙대가 설치되 있는데 받침판이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로 가는 '송도해수욕장']
겨울로 치닺는 가을 풍경이 날씨까지 찌푸려 해수욕장에 어른거려 조금 을씨년 스럽군요.
['현인' 동상] 4:40
['현인광장'을 조성하며]
[영도다리]에도 있었는데 [송도해수욕장]에도 "현인선생 동상"이 있씁니다.
'부산이 낳은 불멸의 국민가수'라고...
['현인' 노래방]
"현인선생 동상" 앞에는 야외 노래방이 있는데
"현인선생"이 부른 힛트곡 13곡을 감상할수 있도록 기기를 설치해 놨습니다.
원하는 노래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오더군요.
누군지 모르는 아줌마들과 "굳세어라 금순아"를 틀어 흥겹게 따라 부르며 춤도 같이 추고...ㅎㅎ ♬
[조형물]
['송도레포츠센타']
[송도해수욕장]의 여러 시설들을 지나면...
['송도해수욕장' 주차장] 4:45
['영도' 조망]
오늘 도보여행의 종착지인 해수욕장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영도"가 그림자 "影"이 아니라 노을에 물드는 ...가을 단풍색으로 다가 옵니다.
['송도해수욕장' 조망]
새로워진 "송도해수욕장"을 뒤돌아 보며 즐거운 [부산도보여행]을 마침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4.5km였으며 4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부산의 명승지를 찾아』
[남파랑길] "부산구간 영도-태종대-감지해변" 답사기
봉래교차로-봉래치안센타-봉래골그린공원-해돋이전망대-청봉약수터-
해돋이배수지-고구마역사공원-고신대-와치복지회관-해양대입구-태종대입구-
태종대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태종대입구-감지해변-태종대주차장
[국토지리원 지도]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에 있는 "봉래교차로"에서 출발하여 "봉래치안센타"로 올라 가
"봉래골그린공원"에서 "고구마역사공원-고신대 영도캠퍼스"를 둘러 "와치종합사회복지회관"까지
"봉래산둘레길"을 통과하고 "동삼동"을 통과하여 "태종대"를 둘러 봅니다.
['부산항대교'에서 '영도' 조망]
잔뜩 찌푸린 날씨로는 여행에 '운수 무지 없는 날', 그러나 걷기엔 괜찮은 '운수 좋은 날'에
"부산항대교"를 건너며 버스 안에서 촬영한 "영도"입니다.
"부산항"을 세계적 항구도시로 만들어준 천혜의 방파제 역활을 하는 "영도 影島".
오늘은 그 "영도 影島"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영도 봉래교차로'] 11:50
2019년 10월 23일 (수) 흐림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에 있는 "봉래교차로"에 내려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곳은 [부산대교]에서 '영도'로 바로 통하는 '영도'의 중심 교차로였습니다.
위의 고가도로는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를 직접 연결하는 "영도고가도로"였고...
['봉래산' 조망]
[봉래교차로]를 건너면서 "봉래산 蓬萊山 396.2m"을 조망합니다.
"영도 影島"가 존재 할수 있게 하는 '영도의 중심'이 되는 산이라죠.
[봉래산 蓬萊山]은 원래 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3대 神仙山 중에 하나이죠.
[영주산, 방장산]과 함께...[봉래산]은 특히 신선이 먹는다는 "불노초"와 "불사약"이 있다고하죠?
[蓬萊山]의 "蓬"은 "쑥"을 의미하고 "萊"는 "잡초"를 의미하지만 합쳐 불로초라 하기도 한답니다.
[조봉 祖峯]·[자봉 子峯]·[손봉 孫峯]의 세 봉우리가 [봉래산 蓬萊山]을 형성하고 있답니다.
또한 "봉황이 날라드는 형세"라는 "鳳來山"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여하튼 '봉황'이 날라들며 '불노초'가 서식하는 전설 속의 [봉래산 蓬萊山]을 꿈꾸며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 부여를 해 봅니다.
참고로 [영도 스토리텔링 최종보고서]에 나와 있는 [봉래산]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원래 봉래산(蓬萊山)은 중국 전설에 나타나는 영산(靈山)인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이다.
동쪽 바다의 가운데 있으며,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고 한다.
'서복(徐福)'이라는 진시황의 신하는 문헌상으로 '서복' 또는' 서불(徐巿)'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중국을 천하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을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사방으로 보냈으나 불로초를 구해오지 못했다.
제나라 출신의 '서복'은 기원전 255년 제나라에서 태어서 진나라의 방사(方士)로 일했다.
그의 생애 동안 불로초를 찾아 동해를 두 번 가게 된다.
자기가 불로초를 구하러 갈 차례임을 알고 기원전 219년(시황 28년) 진시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가야 할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오고자 합니다." 이에 시황은 크게 기뻐하여 동남동녀 수천을 뽑아
그에게 주고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아 오게 하였다.
'서복'의 상소문에 있는 봉래산(蓬萊山)은 금강산이요, 영주산(瀛洲山)은 한라산 이다.
그리하여 기원전 219년에서 210년 사이에 시작된 그의 행적은 일본까지 이어진다.
60척의 배와 5,000명의 일행, 3,000명의 동남동녀와 각각 다른 분야의 장인들이 동반한 그 여행은
기원전 210년까지 이어졌으나, 이후 그는 다시 황도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름 금강산"을 "봉래산 蓬萊山"이라 하는 건 모두 아실거고...
조선 시대 최고 문장가 중에 한분인 "양사언선생"의 호가 "봉래 蓬萊"이기도 하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태산가"를 지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양사언선생"은
'여름 금강산"의 이름인 "봉래산 蓬萊山"을 너무 좋아해 자원하여 '철원 현감'으로 가서
금강산을 자주 유람하며 신선의 세계와 현세를 함께할 꿈을 꾸며 많은 기록을 남겼답니다.
['봉래언덕길' 입구 삼거리] 11:55
[봉래교차로]에서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를 직접 연결하는 [영도고가도로]를 좌측으로 따라
몇백m를 진행하면 처음으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봉래언덕길]이 이어집니다.
['봉래언덕길']
[봉래산]을 바라보며 제법 가파른 언덕길을 5분여 올라 가면...
['봉래길']
[봉래산] 비탈에 형성된 [봉래동4가] 골목길을 다시 5분여 올라 가는데
길찾기의 포스트가 되는 [선불사]와 [유진캐슬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봉래치안센타' 앞] 12:04
이어서 "봉래치안센타"를 만나며, 치안센타와 "유진캐슬아파트" 사이에 "봉래골그린공원 입구"가 열립니다.
['봉래골그린공원' 입구]
"봉래골그린공원"으로 올라 가는 길 좌측에는 "선불사"라는 절이 있고...
공원 정문을 통과해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봉산약수터'] 12:07
"봉산약수터"가 있는데 주민들의 생활운동시설들과 쉼터가 함께 조성되 있더군요.
[오름길]
[봉산약수터]를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 가면...
[편백나무 숲]
편백나무 숲이 우거진 "봉래산둘레길"를 만나는데
이제부터 [고신대학교 영도캠퍼스]까지 이 둘레길을 진행합니다.
8분여 숲길을 진행하면...
[갈림길] 12:15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해돋이배수지 →] 방향으로 올라 가고
['주막집'] 12:16
이어서 바로 주막집을 지나는데 앞에 [해돋이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간 있으면 묵사발에 막걸리 한잔 하고 싶지만... ^*^
['해듣이전망대' 조망]
아쉬움 뒤로하고 [해돋이전망대]로 갑니다.
['해돋이전망대' 앞] 12:18~12:21
"해돋이전망대" 앞에는 "청학동 해돋이 마을"에 대한 안내도가 있는데
이제부터 [봉래동]을 벗어나 [청학동]으로 들어 가는군요.
[부산시 지명의 유래]에서 인용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영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한말에는 6호의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청학동의 동명은 이곳이 숲이 울창하여 청청(靑靑)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 지대가 학맥설(鶴脈說)에 따라 해운대에서 영도를 바라보면, 마치 학(鶴)이 남쪽으로 날으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청학동이란 동명을 짓게되었다고 한다.
청학동이라 하기 이전에는 지금의 청학동시장과 부산은행지점 바닷가 일원을 조내기라 불러왔다.
조내기 일대는 어장으로 많은 생선이 잡혔다고 한다. 어장의 개발에 따라 뚜겁바구, 넉섬방우,
덤버들 등의 해안지명이 생겨나고, 이후 인가가 들어섬에 따라 조내기라는 지명도 얻게되었다.
조내기란 지명의 유래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이곳의 바닷가는 낮고 개펄이 많아 썰물 때는
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는 조락(潮落)한 곳이 많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는 통신사(通信使) 조엄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이곳에서 처음으로 재배하여
조씨가 고구마를 캐내기 시작하여 조내기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현재까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청학동 해돋이 마을' 안내도]
[청학동 해돋이 마을 안내도]를 보는데....
神仙들이 푸른 鶴을 타고 불노초가 자생하고 불사약이 있다는 전설 속의 "봉래산"에 날라와
천년만년 살았을 "靑鶴洞"이 현재도 과연 그런 전설 속의 마을일까?
다닥다닥 붙은 서민 주택들이 봉래산 기슭에 안감힘을 쓰며 붙어서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서북쪽 방향]
神仙들이 푸른 鶴을 타고 불노초가 자생하고 불사약이 있다는 전설 속의 "봉래산"에 날라와 살았다고
하는 "靑鶴洞"에 있는 "靑鶴洞 해돋이 전망대"에 올라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도시 "부산"을 조망합니다.
서북쪽으로는 [낙동정맥]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몰운대]로 향하는 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정산 고당봉-백양산-엄광산-구덕산-시약산]들이 [몰운대]로 향하고 있고...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인 "부산북항"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며
그 뒤로 [낙동정맥]이 [천성산]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우측엔 [황령산]과 [금련산]이 조망됩니다.
[북동쪽 조망]
북동쪽으로는 [부산항대교]가 [부산항]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뒤로 [장산]과 [해운대]의 '엘씨티'등이 조망됩니다.
[동쪽 조망]
동쪽으로는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의 시종점인 "오륙도"와 "오륙도SK뷰아파트"가 보입니다.
['봉래산 둘레길']
[청학동 해돋이 전망대]에서 조망을 마치고 둘레길을 잠시 진행하면...
['청골약수터'] 12:25
"청골약수터"를 만납니다.
[영도 봉래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후 쪽바리들이 "고갈산 沽渴山-목 마른 산"
또는 "고갈산 枯蝎山-삐삭 마른 도마뱀"이라고 비하하며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라의 정기를 끊는다고 쇠말뚝을 무수히 박았답니다.
그런데도 이 약수터에는 음용 적합 판정을 받은 약숫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정기를 끊을려고 해도 굳건히 일어나는 대한민국을 쪽바리들은 막을수 없습니다.
언제 마셔 보겠냐 싶어 한바가지 시원하게 마시고...혹시 불노초 썩은 물이라도 들어 있으려나? ㅎ
[갈림길] 12:27
[봉래산둘레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면
['연화사' 뒷길]
[연화사]라는 절간 뒤를 지나고
['해돋이 배수지'] 12:31
이어서 [해돋이 배수지] 정문을 만나는데
조그마한 섬 [봉래산] 산비탈에 수돗물을 공급하려면 이런 배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요.
['영도 고구마 역사공원' 앞] 12:31
[해돋이 배수지] 정문 건너편에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이 있습니다.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 정문]
['고구마 시배지 상징 조형물']
"고구마 시배지"
대표적 [구황작물 救荒作物]인 고구마를 최초로 심어 수확한 곳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있는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이더군요.
* 구황작물 救荒作物 - 가뭄이나 장마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양분이 많지 않은 땅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작물들로서 조·피·기장·메밀·고구마·감자등이 있다고 하며
* 현재 '조내기 고구마 종자'는 없어지고 다른 품종의 고구마를 전국 각처에서 재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구마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니라 '남아메리카'라고 하더군요.
['조엄과 조내기 고구마' 안내문]
"조엄"은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가던 도중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처음 보고 구황작물로
좋다고 판단하여 종자를 부산으로 보냈고, 다음 해(1764) 봄에 부신진 첨사가 봉래산 해안지대에
심어 조내기 고구마의 시초가 되었다는 공원 안내판의 설명이네요
'고구마'라는 말 자체가 그가 지은『해사일기(海槎日記)』에서
일본인이 이를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부른다고 기록한 데서 "고구마"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다 합니다.
그러니까 "고구마"는 일본말 '고귀위마'의 우리식 변음이군요.
밤 맛을 지닌 조내기 고구마는 작고 붉은 것이 특징인데
조내기의 어원은 조엄이 가져와 처음 재배해 내었다는 의미에서 나왔다는 설,
작은 것을 뜻하는 이곳 말인 쪽내기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여럿이 있는데 정확한건 모른다고...
"조엄 1719~1777"은 '풍양 趙氏'로 '강원도 원주' 출신이랍니다.
"정조대왕"의 외조부인 "홍봉한"의 누이동생이 "조엄"의 부인이라는군요.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고, [혜경궁 홍씨]는 "정조"의 어머니이죠.
"조엄"은 과거에 급제하여 일본통신사를 비롯 암행어사, 동래부사, 경상도-평안도관찰사등으로 승승장구
했으나, 뇌물죄등으로 파직당하고 김해로 귀양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답니다.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 안내도]
[공원길]
[공원 어린이 놀이터]
[현장학습 나온 어린이들] 12:35
['동삼동' 조망]
[공원길] 12:39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은 고구마 시배지에 대한 역사공원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을 위한 놀이공원으로 조성되 있어 많은 어린이들이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레길]
계속해서 둘레길을 진행하면 중간에 데크 다리를 하나 만납니다.
이곳에선 조망이 트이는데...
['조도' 조망] 12:44
'부산'에서 아침을 가장 먼저 맞이 하는 곳이라고 "아치섬 朝島"라고 하는 조그마한 섬이 보이는데
현재는 매립되어 육지와 붙은 섬이 아닌 섬이 되었고, "해양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더군요.
그리고 동양 최대의 해양박물관이라는 "국립해양박물관"도 보이는군요.
"조도"는 "영도"와 함께 '부산항'의 천연방파제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봉래산 둘레길]
다시 [봉래산둘레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영도구 청학동'에서 '동삼동'으로 들어 갑니다.
['고신대 영도캠퍼스' 뒷길]
"고신대학교 영도캠퍼스"를 만나는데 예전 1980년까지는 "고려신학교"였었죠.
[고신대]는 캠퍼스가 '부산 영도' '부산 송도'에 있고, '천안'에도 캠퍼스가 있답니다.
[사거리] 12:53~12:56 ★ 길조심 ★
[고신대] 울타리가 좌측으로 90도 꺽어지는 곳에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선 이정표에 [←목장원] 방향이라고 가리키는 좌측으로 방향 전환하는게 [태종대]로 가기 쉽습니다.
[남파랑길]은 아직 정립된 길이 없기 때문에 어느 길이 바른길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영도 影島]는 삼국시대부터 명마를 사육하는 말목장이었답니다.
그리고 조련된 말들이 무지 빨리 달려 말의 그림자가 따라 가지 못할 정도여서 한자로 "節影馬"라고 했는데
"節影馬"를 기르는 섬이라고 "節影島"라고 불리워 지다가 줄여서 "影島"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목장원]은 부산에서 제일 큰 음식점 중에 하나라는데
'영도'의 서쪽 [절영로]에 있는데 주로 '돌잔치' '회갑년'등을 하는 소갈비 등을 파는 음식점이랍니다.
[내림길]
잘 조성된 내림길을 5분 정도 내려 가는데, 이 곳이 "와치공원"이더군요.
['와치공원'] 1:01~1:03
"와치공원" 출입구에서 헤어졌던 횐님들을 기다렸다가 다시 만나고
['와치종합복지회관']
[와치종합복지회관] 앞으로 내려 갑니다.
"와치 臥峙"는 '임진왜란' 부산포 해전 때 이곳에 주둔했던 적의 기치를 끌어 눕혔다는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던데...믿거나 말거나...ㅎ
['영도어울림문화공원'] 1:08
"영도구 동삼동 東三洞"은 '상리', '중리', '하리'의 3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를 합쳐 '동삼동 東三洞'이 되었고, '영도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洞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영도구'의 공공시설들이 이 부근에 움집해 있었습니다.
['동삼동' 통과]
'동삼동'의 [와치로]를 따라 15분여 내려 가면...
['조도' 조망] 1:23
"조도"가 성큼 다가오는데 예전에 바다였던 곳을 매립해 해양관련시설을 건립했더군요.
[점심식사] 1:27~2:07 (40분간 점심식사)
[목천돼지국밥]이라는 음식점에서 부산의 토종 음식인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돼지국밥'은 한마디로 '6.25 전쟁'이 낳은 음식인 셈이죠.
부추무침과 소면을 함께 국밥에 넣어 먹는게 특징이라면 특징.
먹을 것이 부족하던 그 시절에 값이 싸면서도 든든한 돼지국밥은
가난한 피난민들의 배를 채워 주었고 영양을 보충해 주었다는데,
오늘은 [남파랑길]에서 별미 특식으로 쐐주와 함께 즐겼는데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귀한 점심식사였습니다.
['동삼동' 통과]
'돼지국밥'과 소주...또한 「구름나그네님」이 주신 맛술이 더해져
도보여행길에서 접하는 흥겨운 특별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제부터 [태종로]를 진행합니다.
5분여 [태종로]를 진행하면...
['해양대' 입구] 2:13
"한국해양대학교" 입구를 만나는데, 입구 우측에 "동삼동패총전시관"이 있더군요.
신석기시대 조개 무덤을 전시하고 있다는데 지금으로부터 8천년 전부터 4천년 전까지 약4천년 동안
만들어진 패총이라고 합니다.
['태종대' 가는 길]
[태종대]로 가는 외길인 [태종로]를 10여분 더 진행하면
['태종대 온천 찜질방'] 2:25
나이 좀 드신 여성들이 좋아할 [태종대 온천 찜질방]을 만나고
['태종대앞 교차로'] 2:28
이어서 [태종대 앞 교차로]에 도착합니다.
교차로에는 "순직선원위령비"가 있고
['태종대' 입구]
['태종대 안내석'] 2:30
"태종대 太宗臺"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주변 환경은 완전 깨끗하고 아름답게 조성되었습니다.
['태종대 순환로' 입구] 2:35
[태종대]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 순환로가 있는데, 순환로의 길이는 4.3km라고 합니다.
걸어서 다녀 올수도 있고, 우측에 있는 [다누비 열차]를 이용해 순환할수도 있더군요.
['다누비 열차' 타는 곳]
걸어서 [태종대]를 둘러 볼수 있지만 이번 기회에 [다누비 열차]를 타 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라
[다누비 열차]를 타고 [태종대]를 돌아 보기로 했습니다.
[다누비 열차]는 순환로에서 세 곳에 정차하는데, [태종대전망대]와 [영도등대] 그리고 [태종사]이더군요.
그리고 승차권을 한번 끊으면 각 승하차장에서 내렸다가 구경하고 그 다음 [다누비열차]를 다시 타고
계속 이동할수 있더군요.
['다누비열차'] 2:42
[다누비열차]를 타고 10여분 진행하면 ...
['태종대전망대' 승하차장] 2:51~2:57
첫번째 승하차장인 "태종대전망대"에 도착합니다.
['태종대전망대']
"태종대 전망대"는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었다고 하며 전망대와 음식점, 커피샵, 편의점등이 있는데
오늘은 휴업 중이더군요.
['모자상']
[전망대] 앞에는 "모자상 母子像"이라고 하는 조형물이 있는데
'6.25'이후 1970년대에 삶에 지쳐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 "모자상"을 설치하게 되었답니다.
실제 이 조형물을 설치하고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확 줄었는데, 대신에 [영도다리]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었답니다. 이래 저래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전망대]
태평양이 훤히 펼쳐지는 전망대로 나가서 조망을 합니다.
['주전자섬' 조망]
[태종대 전망대] 바로 앞에는 "주전자섬 (生島, 유분도 鍮盆島)"이 있습니다.
주전자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글쎄
그리고 일본의 "대마도"가 여기서 56km 거리에 있어 맑은 날에는 잘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흐린 날씨로 아쉬움만 가득 태평양에 퍼져 나갑니다.
'서울 북한산'에서 '수원 광교산' 정도 되는 거리일텐데....
['대마도' 조망도]
[태종대전망대]에 있는 "대마도 조망 안내도"인데, 조망안내도에는 [대마도]가 잘 보이지만
오늘은 흐린 날씨로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자살바위']
전망대 앞 절벽 아래엔 [자살바위]가 암울했던 시절을 부서지는 포말과 함께 회상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때에는 말할것도 없고 1970년대에도 한해에 30여명이 이곳에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망대가 있는 이곳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구명사 求命寺"라는 절을 천막 형태로 짓고
자살을 막고 고혼을 추모했는데, 그 후 1969년 해안작전도로 개설 시에 순직한 육군 제1203 건설공병단
장병 네 사람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해 지난 1976년에 군 지원으로 이곳 천막형태의 "구명사"를 철거하고
전망대에서 태종대 입구 방향 중간쯤에 새로이 번듯한 "구명사"를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다음은 "구명사"에 있는 "구명사 창건 비화"인데 인용합니다.
1959년 여름, 영도 신선동에 살고 있던 정영숙(鄭英淑)은 군에서 제대한 남편이 병환으로 사회활동이
어렵게 되자 생계수단으로 수목이 울창한 태종대 전망대 절벽 위 모퉁이에 작은 가게를 차려
소풍객들을 상대로 사이다 과자류를 판매하면서 틈틈이 남편의 쾌유를 위해 절벽 아래 생도(生島)를
미륵불 삼아 불심을 다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당시는 6.25 동란 직후라 피란민들과 이산가족들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던 힘든 시절이라
현 전망대 아래 절벽으로 몸을 던지는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 해에는 30여명이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사회적 큰 문제가 되기도하여 이곳을 자살바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매일 새벽 절벽 위 모퉁이 가게로 출근하던 정영숙은 동틀 녘 절벽 위에 거지런히 벗어둔 신발을 보곤
섬뜩함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었던 정영숙은 절벽 바위를 찾은 사람들을 살피다
자살을 하러 온 듯한 사람이 보이면 그들의 애달픈 사연을 들어주며 '자살 시도자'들의 결심을 돌리게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다 보니 마침내 '자살바위에 신들린 사람'이 되었다.
1961년 어느 여름날, 극약을 먹고 바위에 쓰러진 처녀를 업고 와 비누를 갈아 먹여 위장의 내용물을
토하게 하고 죽을 쑤어 먹여 살려놓았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고마워 이 곳을 떠날 수가 없다"라며
20일 가까이 함께 가게를 돌보며 부처님께 합장을 올린 일도 있었다.
처녀는 서울의 명문 여대 재학생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이곳을 찾았음을 서울로 돌아간 뒤 보내준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 편지 서두는 "바다 밑 이름없는 조개껍질이 되었을 저를 구해주신
아주머니께"로 시작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직한 가장의 눈물도 보았고, 의부(義父)의 학대에
몸서리치는 여공의 슬픈 사연도 들었다. 그렇게 정영숙의 설득으로 발길을 돌린 이가 한해 15~20여명이
되니, 십여년 동안 150여 명은 족히 넘는 목숨을 구제하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자리한 지 3년 후, 지성이면 감천이지 남편도 건강을 회복하여 가정이 안정을 찾자,
이 곳에 절을 지어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기로 결심하고 가게 일 틈틈이 돌을 모아 담장과 울타리를
쌓기 시작했다. 조금씩 돈이 모이면 시멘트도 바르고 인부를 사서 슬레이트 지붕도 올렸다.
마침내 1968년 움막 같은 절이 완성되었고, 부산 청룡사(靑龍寺)에서 스님도 모셔왔다.
그리고 생명을 구원하고, 고혼을 달래기 위해 불사를 일으킨 곳이라고 하여 '구명사(救命寺)'라는
작은 현판도 달았다.
그러나 태종대 해안도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1970년 철거가 되고 말았는데 때마침 도로공사작업 중
발파작업 사고로 육군 제1203 건설공병단 장병 네 분이 순직하는 일이 벌어져 이 분들의 영령을
봉안하는 일이 큰 화두가 되자 육군 공병단에서 지원하여 1971년 10월에 현재의 장소에다
새로이 절을 건립하여 4분의 영령을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살로 이승을 하직한 사람들도 함께
명복을 빌어드리는 축원을 올리기 시작하였는데 그러한 공덕이 쌍여 오늘날에 와서는 부모형제 등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이 조상을 극락으로 이끄는 제를 올리는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 되었다.
특히 구명사는 산신각, 천불전의 현판 글씨와 돌에 새긴(서각) 절 표지석 이 세점은
모두 일봉 서경보 스님의 글씨이다.
- 글쓴이 영도구 문화관광 자문위원 姜太仁 -
['영도등대' 승하차장] 2:59
[태종대전망대]에서 [영도등대 입구]까지는 200m로 잠깐이면 걸어 갈수 있어 [다누비열차]를 타지 않고
2분 정도 걸어서 갑니다.
[등대 출입구] 3:00
[영도등대 출입구]를 통과해 내려 가면...
[계단 내림길]
계단 내림길이 이어지며
['해기사 명예의 전당']
먼저 "해기사 명예의 전당"이 계단 중간에 있습니다.
** "해기사 海技士"는 일정 수준의 기술 또는 기능이 있어 선박의 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업무수행을
할 수 있도록 면허받은 자격, 또는 그 자격을 가진 자를 말함.
[등대 조망]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서 [영도등대]를 조망하고
[계단 내림길]
['바다헌장']
계단 내림길을 내려 가면 [바다헌장]과 조형물이 있고
['무한의 빛' 조형물]
이어서 "무한의 빛"이라는 조형물이 내방객들을 기다립니다.
이 조형물은 "해양도시 부산,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갔으면 한다."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태종대']
바다 속에서 긴 세월 동안 퇴적되 만들어진 퇴적암들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형성된 바위 지층들.
수많은 세월 동안 파도에 침식되어 부산의 대표적 지질공원을 이루고 있는데...
"태종대 太宗臺"의 위치는 [태종산]이 있는 [영도]의 남쪽 끝 해안 절벽 전체를 포괄적으로 일컷지만
그 중에서도 실제 "태종대 太宗臺"는 어디일까?...궁금하지 않나요? 그래서 심층 조사를 했습니다.
'신라 29대 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활을 쏘며 쉬어 갔다고 하는 바위가 사진 속에 수십명이 앉아도 될
평평하고 넓직한 바위가 실제 "태종대 太宗臺"랍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바위는 "망부석 望夫石"이라고 하는 바위인데
옛날 왜구에게 끌려 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여인이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눈보라가 치건
땡볕이 내리쬐건 굴하지 않고 일본 땅이 아련하게나마 보이는 이곳에서 돌처럼 서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돌덩이로 굳어 버렸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런 전설을 따라
이 바위를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 望夫石"이라 일컫게 되었답니다.
"신선대 神仙臺, 神仙岩"
예전에는 [태종대]를 [신선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신선이 머물만한 아름다운 경치를 가졌기 때문인데
옛날 神仙이 바로 이 바위 위에서 도끼자루가 썩는 줄 모르고 느긋하게 앉아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또한 이곳 [신선대]는 선녀들이 내려와 놀고, 아이를 낳기도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답니다.
바위에는 아이의 태를 끊는 가위와 실패의 흔적, 그리고 출산한 선녀의 오른쪽, 왼쪽 무릎이 닿은 흔적도
남아있다고 하는데, 오른쪽 무릎에 힘을 더 주었기 때문에 오른쪽 흔적이 더욱 선명하다고 하는군요. ^.^
신선 선녀들이 사랑을 하며 아이까지 낳던 바위여서 지금도 순산을 기원하는 산모들이 찾는다고...ㅎ
['영도등대 해양문화공간']
"영도등대"는 일제강점기시절에 만들어져 세계로 뻗어 가는 '부산항'의 길잡이가 되어 왔답니다.
지금은 불빛이 아닌 첨단 과학기술로 선박운항을 돕는 "영도 항로 표지 관리소"로 변모했답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등대 시설, 예술 작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도 설치했더군요.
자연사박물관에는 이 근처에서 발굴했다는 공룡알 공룡발자욱등도 있고
['영도등대 선착장']
항로표지소 아래 해변엔 배처럼 생긴 건물이 눈길을 끄는데, [태종대 관광유람선 선착장]이었습니다.
['태종대']
"태종대"의 핵심 "태종대"라고 하는 "태종대 바위와 망부석, 신선대"...그리고 "주전자섬"...
진짜 "太宗臺"가 펼쳐집니다. '대마도'까지 보였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희망의 빛']
[영도 항로 표지 관리소]에는 "희망의 빛"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인어상이었습니다.
물고기 비늘 모양 그물 팬티스타킹만 입고 옷을 벗고 있어 오늘처럼 바람이 심한 날에는 춥겠군요.ㅎ
반드시 옷 벗은 여자가 횟불을 들어야 "희망'을 주는가? ~ ㅎ 예술이라 믿겠습니다.
['등대자갈마당']
관광 유람선 선착장에는 해삼 멍게에 소주도 팔고...
오늘 바람이 좀 심해 유람선이 운행을 못해서 손님이 없는데,
우리 횐님 중에 몇분은 내려 가서 기여코 소주에 해삼 멍게를 맛보고 올라 오더군요. ㅎ
이곳이 "등대자갈마당"이라고 하는데, [태종대]에는 '자갈마당'이 세군데 있다는군요.
['자갈마당' 각 위치]
[태종대]엔 '자갈마당'이 이곳 [등대자갈마당]과
그리고 [태원자갈마당]...오늘 마지막 종점이 될 [감지자갈마당]이 있답니다.
['오륙도''해운대' 조망]
[영도등대]에서 바라보는 [오륙도]와 [해운대]방향입니다.
['태종대']
"무한의 빛"이라는 조형물과 "주전자섬"..그리고 "태종대"와 "망부석"..."신선대"
사람들 중에는 "무한의 빛"이라는 조형물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천혜의 자연 경관을 뽐내는 "태종대-망부석-신선대"와 "주전자섬"에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조형물이라는
분들도 있고, 그런데로 독특하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파란문'의 생각은 어떻냐구요? ㅎ 언급 않겠습니다. 감상은 자유니까요 ~
하지만 이런 명승지에는 명승지에 어울리는 조형물을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ㅎ
['영도등대' 승하차장] 3:23~3:37
약 25분 정도 "영도등대"를 둘러보며, 실제 "태종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누비열차] 승하차장으로 돌아가 [다누비열차]를 타고 원점 회귀했습니다.
['다누비열차' 승하차장] 3:45
[영도등대]에서 8분 정도 [다누비열차]를 타고 [태종대입구 승하차장]으로 돌아 갔습니다.
['태종대 입구 관광안내소'] 3:48
[태종대] 입구 [관광안내소]를 통과하여 주차장으로 가면...
['태종대 주차장'] 3:50
[태종대주차장] 서쪽으로 "감지해변"이 있어 다녀 오기로 합니다.
다음 구간으로 연결되는 [감지해변]인데 요즘 [갈맷길 개량공사]로 연말까지 출입 할수 없다고...
그래서 다음 구간은 [중리해변]에서 시작한다는 산악회장의 안내가 있어서 다녀 오는 것입니다.
['감지해변' 입구] 3:52
['감지해변 자갈마당']
['부산 남항' 방향 조망] 3:54
"감지해변 甘池海邊"
[영도]는 우리나라 名馬를 키우는 國馬場이었다는 것과 이곳에서 자란 말들은 '자기 그림자보다 빨리 달려서
絶影馬'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는 것은 [삼국사기]등 여러 고문서에 기록으로 나와 있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자라는 말들이 더욱 빨라질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는데, 여러 이유 중에서 하나는...
이 지역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의 물이 맑고 달콤하여 [영도]에서 방목되는 말들이
목이 마르면 가서 그 연못의 물을 먹었답니다. 그리하여 그 연못의 이름이 "감지 甘池"가 되었고
[영도]에서 방목되는 말들이 이 물을 마시고 絶影馬가 되었으며, 그후 이 섬의 이름까지 絶影島→影島가
되게 했으니 이 "감지해변 甘池海邊"의 "감지 甘池"가 주는 의미는 크다 아니할수 없겠습니다.
[영도등대 자갈마당]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이곳도 [태종대]의 "자갈마당' 세곳 중에 한곳.
[부산항] 밖에서 정박하고 있는 대형 선박들이 엄청 많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남파랑길-영도 태종대구간]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올라가 버스를 타고 귀경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다누비열차] 거리 포함하여 13.4km였으며 4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태종대 항공사진']
마지막으로 [네이버지도 항공뷰사진]을 캡쳐하여 이해하기 쉽게 편집도 한 "태종대"입니다.
엄청나게 큰 거북이 한마리가 태평양을 향해 느린 헤엄을 치는 듯한 "태종대"는 이렇게 보아야
그 진면목이 보이는듯 하군요.
또 다시 기회가 오려는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관광 유람선을 타고 "태종대"를 바다에서 보고 싶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남파랑길 종합 지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나라 둘레를 잇는 걷기여행길 ‘코리아둘레길’의 남해안 노선인 남파랑길 사업 계획을 25일 발표했다.
남파랑길은 전체 길이 1463㎞로 국내 최장을 자랑한다. 구간별 특징을 고려해 5가지 주제 길을 정했다.
영화와 한류의 도시, 대도시와 자연의 매력을 함께 보유한 ‘한류길’(부산∼경남 창원),
한려해상국립공원 해안 경관을 담은 ‘한려길’(고성, 통영, 거제, 사천, 남해),
섬진강의 꽃 경관을 볼 수 있는 ‘섬진강 꽃길’(하동∼광양),
다도해의 생태환경을 부각시킨 ‘남도 낭만길’(전남 여수, 순천, 보성, 고흥),
남도 유배문화와 다양한 순례 자원을 체험할 수 있는 ‘남도순례길’(장흥, 강진, 완도, 해남) 등이다.
5가지 주제 길은 해안길과 숲길, 마을길, 도심길 등 모두 90개 구간으로 나뉜다.
구간은 대중교통 접근성을 고려, 여행자가 하루 정도 이동하기 적당하게 정했다. 구간별 길이는 10~30㎞다.
문체부는 구간 가운데 인문·지리·문학·역사·종교 등 주제별 걷기여행길을 발굴하고 이를 활용한 관광상품도 추진한다.
또 ‘나만의 인생사진 명소 걷기’, ‘길 위에서 만나는 내 인생의 인물’, ‘남도 식도락 여행’ 등 관광콘텐츠도 발굴한다.
남파랑길 안내 체계를 구축하고 주제별 걷기여행 등을 시범 운영하고 2020년 하반기 이를 정식 개통할 예정이다.
남파랑길은 2016년 개통한 ‘해파랑길’에 이은 두 번째 코리아둘레길 노선이다.
남해의 지역성 ‘남쪽’과 ‘쪽빛 바다’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파란문"의 TIP
[남파랑길]은 아직 정립되지 않아, 성질 급한 답사자들은 현재 각 지역 둘레길을 주로 이용해서 걷고 있습니다.
저도 걸으며 쓰는 답사기가 있는데 '코로나바이라스 사태'로 중단되고 있습니다만...
현재 정부에서 1차 확정된 [남파랑길 GPX트랙]은 제가 블로그와 함께 운영하는 카페 "홍어와 무인도"에 올려 놨으니
가서 간단한 회원 가입하고 다운 받아 가셔서 참고하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