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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마루 정기산행]  
        원터골-돌문바위-매봉-혈읍재-옛골
     

         속담에..
        "밥은 봄처럼" 
        "국은 여름처럼"
        "장은 가을처럼" 
        "술은 겨울처럼"이란 말이 있지요
         모든 음식에 적정 온도가 있기 마련이듯이
         한해도 계절따라 따뜻하고, 덥고, 시원하고, 추워야합니다
         길기도 했던 지루한 장마가 끝난다는 날.
         새벽까지 내리던 장맛비는 북한으로 올라 가고
         여름이 여름 다웁게 무더워 지기 시작합니다
         
         2011년 7월 17일(일) 오전 흐리고 오후 맑음.
         모처럼 맑은 휴일에 동기동창들과 자연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청계산 원터골 산행 들머리] 오전 11시 정각

  마음은 언제나 산으로 향하지만
  이런 저런 핑개로 산을 가까히 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주로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은 앞으로 새로운 '산꾼'이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산행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겠죠?


  [원터골]

  새벽까지 내리던 장맛비는 북으로 올라 가고 금년 장마는 끝났답니다.
  그 덕분으로 '청계산 원터골' 계곡엔 맑은 물이 풍성히 흐르고 있습니다.
  산행 들머리로 들어 서니 대자연의 분위기가 오늘 예사스럽지가 않습니다.
  모처럼 즐거운 여름 계곡 산행이 될것 같은 예감이 벌써 다가 오고 있지 않습니까? ㅎ


  [쉼터]

  여름은 여름이라고 벌써부터 땀은 흐르기 시작하고
  한달 이상 주말이면 비가 내려 산행을 할수 없었기에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숨도 차고 다리도 무거운 짐을 진듯합니다.
  자연히 쉬는 시간이 많아 집니다.


  [갈마재 정자] 12시 20분

  "갈마재"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왼쪽 우횟길로 다니던 친구들이 이번에는 계단을 걸어 직접 오르겠다고 합니다.
  사실 계단으로 오르는게 더 편한데 시각적 압박감 때문에 왼쪽길로 주로 갑니다.


  [매봉 오르는 계단]

  한발자욱 한발자욱 두발로 스스로 걷지 않고서는 맛볼수 없는 산행의 맛입니다.
  "힘든 등산을 왜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 많지요?
  저는 "힘들기 위해서 산에 간다"라고 답합니다.
  힘들지 않는다면 산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 들어 누워 있으면 힘들 일이 없지요.
  힘들기 위해서 산에 올라 갑니다.


  [헬기장] 12시 50분

  "갈마재" 정자에서 계단을 헥헥거리며 오르면 처음으로 헬기장을 만납니다
  이곳은 우회로로 오르는 길과 다시 만나는 곳이기도하고, "옥녀봉"에서 오는
  "관악지맥"과도 합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까지만 오르면 힘든 구간은 대체로 끝납니다. 쉽지요?


  [돌문바위로 오르는 길]

  "매봉"까지는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속합니다.
  부자 동네여서인지 등산로는 잘 단장되 있습니다.


  [돌문바위] 12시 58분

  "돌문바위"
  제가 여러번 언급한 괴상한 이름 - "돌문바위"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門 형태를 만들고 있는 바위여서 붙여진 이름인데
  "돌문"이면 "돌문"이라 하던지 "돌문바위"는 또 뭡니까..족발
  차라리 한자로 "석문 石門"이라고만 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까?


  [매봉 정상] 오후 1시 11분

     "582.5m 높이 매봉 정상"에는 정상석이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서있습니다
     "매봉" 정상석 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유치환 선생"의 詩 "행복"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 아무것도 가진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매봉 정상에서 서울 조망]

  '매봉 정상"은 서울시 우수조망소로 선정된 곳입니다.
  '우면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소가 잠자고 있는 모양' 같습니까? 
      [개그콘써트에 나오는 요즘 유행어 - "소는 누가 키울꺼야!~"]
  그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양재I.C.에서 한남대교로 뻗어 있습니다.


  [혈읍재] 오후 1시 30분

  '매봉'에서 아이스케키 하나 사 주는 친구가 있어 맛있게 먹었는데
  값이 올라 '바밤바'가 1,500원 하더군요.
  그리고 15분 정도 걸어 "혈읍재"로 가서 기념촬영.
  "혈읍(血泣)재"는 조선시대에 '정여창 선생'이 이상 국가 건설이 좌절되자 
  청계산에 숨어 들어와 피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그런 사연이야 알던 모르던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합니다.


  ['옛골' 계곡에서 피서] 2시 30분

  "혈읍재"에서 "옛골"방향으로 3~40분 정도 내려와 계곡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며 계곡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잊어 버렸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특별히 설명 할 필요 없겠지요?
  오리로스에 막걸리와 소주로 흥을 돋구었습니다.


  [한잔]

  더우면 풍덩 계곡물에 잠겼다가 다시 한잔!~~ 캬~ 좋습니다.
  '파란문'을 챙겨 주는 칭구들이 많지요? ㅎ
  그런데 돈은 안주고 술만 줍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 기분 이 우정 변치 말자고....
  2시간 이상이 걸린 계곡 여흥을 마치고 하산 준비를 합니다.
  모두 환갑이 지나는데 무척 젊지요?


  [하산] 4시 12분

  청계산 계곡이 이렇게 좋은 곳인줄 처음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름엔 수량도 풍부하고 .. 글자 그대로 淸溪입니다.
  피서를 교통체증에 짜증내며 돈 들여 가며 멀리 갈 필요 없습니다.


  [하산]

  또 다시 올것을 기약하며 여흥이 남아 있는 청계산 계곡을 따라 내려 갑니다.


  [맑은 계곡-청계산] 4시 47분

  징검다리를 지나 옛골로 하산 합니다.
  시원합니다.


  [옛골]

  쓰레기 몽땅 챙겨 '옛골'로 내려 왔습니다
  '원터골'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오후 5시반경 하산했으니 약6시간반의 산행이었습니다
  계곡에서 물놀이와 여흥시간이 2시간 이상 걸렸으니 실제 산행 시간은 얼마 않됩니다.


  [뒷풀이] 5시 30분

  그냥 갈수 없지요?
  다시 간단한 뒷풀이를 하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바다의 女人
   
   
         한번 넘어지면 누군가가 뒤집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북이 보다
         넘어져도 우뚝 서고야 마는 오뚜기로 살아 가세요
         神은 실패자는 쓰셔도 포기자는 안 쓰신다고 합니다

         비록 흐린 날이라도 하루에 한 번,
         별을 관찰하는 소년의 심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십시요
   
         즐거운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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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여인 - 4월과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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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산행기』 길에서 즐거움을 줍다 2010년 10월 16일(토) 맑음 오랜만에 양재동 화물터미날에서 '청계산'을 종주하고 수원에 있는 '광교산'까지 가려고 길을 나섯는데..... 가을 날씨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하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취해 '청계산' 자락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양재동 화물터미날 앞] 8시 47분 지난해 가을 설악산 공룡능선을 함께 다녀 오고는 그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山友와 전철 4호선 "선바위역" 1번출구에서 8시 30분에 만나 시내버스 "11-3번"을 타고 "양재동 화물 터미날" 앞에서 8시 45분경에 내렸습니다. 양재역에서도 이곳으로 다니는 대중교통이 많아 의외로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습니다. [등산로 입구] "COSTCO"건너편, "양재화물터미날"과 "양곡도매시장" 사잇길로 쭈~욱 올라 갑니다. 아침식사들을 못하고 나와 "양곡도매시장"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등산로 입구] 9시 35분 9시 3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터미날과 양곡시장 사잇길로 쭈~욱 올라 가면 예전에 등산로 입구가 있었던 곳엔 도로공사가 한창이고, 우측으로 조금 들어 가면 새로운 등산로 입구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산행 개념도] 산행개념도가 "청계산"까지 자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길은 외줄기이고 이정표도 잘 설치되 있어 "매봉"까지 아무른 걱정 없이 갈수 있습니다. [옥녀봉 오르는 길] 완만한 登路를 따라 "옥녀봉"으로 올라 갑니다. [안부] 9시 55분 산행들머리에서 약15분 정도 오르면 과천방향에서 오르는 안부를 만나고... [옥녀봉 오르는 길] 안부에서 30분 정도 조금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갑니다. [쉼터] 10시 25분 중간 중간 쉼터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초보산객들이 다니기엔 아주 좋은 코스라고 생각됩니다. [옥녀봉 오르는 길] 쉼터를 지나 조금 올라 갑니다. "양재화물터미날"에서 "옥녀봉"까지는 4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옥녀봉 정상과 '옥녀봉' 안내] 10시 30분 "옥녀봉 玉女峰" 375m높이 "옥녀봉 정상"은 헬기장으로 넓은 마당 같으며 쾌청한 가을산을 즐기기 위해 산을 찾은 산객들로 만원입니다. ['옥녀봉'에서 바라보는 '관악산', '과천'] "옥녀봉"에서는 "관악산"이 완벽하게 조망되고, 과천과 "과천 경마장", "대공원"등이 아주 가까이 보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옥녀봉을 못미쳐 동기동창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홍어와 무인도"를 아끼는 애독자분들은 아시겠죠? 지난 여름 "킬리만자로"를 등정하고 온 친구입니다. 그의 "킬리만자로 등정기"도 저의 블로그와 카페에 올려져 있으니 못보신 분들은 찾아가 읽으시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실 겁니다. 이나저나 이 사람을 여기서 우연히 만났으니 오늘 산행계획에 차질이 올것같습니다. ㅎㅎ [길에서 만난 사람들] 10시 53분 친구와 함께 온 분들과도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함께하게 됩니다. 이분들은 우리나라 최대그룹S회사 통신사업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으로 퇴임후에도 이렇게 한달에 한번씩 만나 산행을 하며 우의를 다진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막걸리가 오고 가는 것으로 보아 오늘 청계산에선 없던 일이 벌어질듯... 그래도 아직까지는 예의를 갖추고... [원터골 갈림길] 11시 11분 "옥녀봉"과 "매봉" 사이에 있는 안부인데, "원터골"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매봉' 오르는 길] "원터골 안부"에서 부터는 "매봉 정상"까지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짐을 지고 오르는 포터] 짐을 지고 오르는 저 젊은 짐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지름니다. "에휴~ 우리는 이 산을 오르며 힘들다고 하지 말아야겠지? ㅎㅎ" 그래서 제가 저 짐꾼에게 가까이 가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말 시키지 마세요!~ 당신들은 내가 재미로 보입니까? 죽겠는데..." 그래서 제가 다시 "이렇게 많은 운동을 해서 오래 살겠는데?"라고 했더니... 그 젊은 친구가.. "에휴~ 죽지 못해 이짓 하지요. 오래 살기는 커녕 고달퍼 더 일찍 죽을꺼에요. 말 시키지 말아요. 더 힘들어요" 운동과 노동의 차이점 모두 아시죠? "운동"은 '돈을 들여 가며' 하는 것이고....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죠. [헬기장] 11시 33분 20여분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면 헬기장이 나옵니다. 이 헬기장은 "원터골"에서 직접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 건물은 높아졌지만 우리들의 인격은 더 낮아졌습니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우리들의 시야는 더 좁아졌습니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아무리 사도 기쁨은 줄어들었습니다 ['돌문바위' 오르는 길] 가을이 청계산에도 찾아 왓다는 것을 실감하며 "돌문바위"로 올라 갑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습니다. 모든게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습니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졌습니다 ['돌문바위'] 11시 46분 청계산 "매봉코스"의 名所 "돌문바위"에 왔습니다. 저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돌문바위"라는 이름이 다소 거슬립니다. 전부 한자로 쓸려면 한자로 통일하는게 일관성이 있는데 한자와 한글이 혼재되어 좀 그렇지요? 한자로 쓰려면 "石門岩"..... 한글로 쓸려면 "돌틈바위"..... ['충혼탑' 입구] ['매바위' 오르는 길] "돌문바위"를 지나면 1982년 공군 수송기 추락 사건으로 운명을 달리한 "특전사 53명의 군인들"을 기리는 "충혼탑" 입구를 지나 "매바위"로 올라 갑니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습니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내지는 않습니까? 가진 것은 몇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매바위] 11시 51분 "매봉 정상" 100m앞에 "매바위"가 있습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습니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분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매바위 정상석] "578m 높이에 있는 "매바위" 이곳에서는 '분당'방향등 동쪽을 조망할수 있습니다. [매봉 정상] 11시 54분 양재화물터미날에서 2시간 20분이 걸려 "매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서울에 가까이 있어 평상시에도 많은 산객들로 붐비는 곳인데, 청명한 가을 날씨라 더 많은 듯합니다. [매봉 정상] 우리나라 산이름 중에 가장 많은 이름이 "응봉 鷹峰", "매봉"입니다. "鷹""매"라는 뜻이니 "응봉"이나 "매봉"이나 같은 말입니다. [매봉 정상석] "582.5m 높이 매봉 정상에"는 정상석이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서있습니다 "매봉" 정상석 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유치한 선생"의 詩 "행복"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 아무것도 가진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산으로 들로....지친 육신을 보담아 주는 大自然 속으로 여행을 자주 갑시다 [매봉 정상에서 '서울' 조망] 안개가 조금 끼어 시야가 좋지 않습니다만, '우면산'과 서울이 보입니다. [매봉에서 바라보는 '망경대'] "청계산"의 최고봉인 "망경대 望京臺"가 보입니다. 한자를 잘 보아 두시기 바람니다. "서울을 바라보는 곳"이라 뜻입니다. 고려의 충신 "조견 선생"이, 쿠데타 세력인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 도읍지 한양을 바라보며 전 왕조인 고려왕실을 염모하였던 곳이라 하여 "망경대 望京臺"라 한답니다. [길에 주저 앉다] 12시 5분 광교산까지 가야 하는데 청계산 매봉 아래 막걸리 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산행은 끝이 나고, 음주가무가 시작됩니다. ㅎㅎ [산에서 가을을 마시다] "성행위를 위하여!~"라고 건배를 하니 "하세!~ 하세!~"라고 모두 외칩니다. 무슨 야한 건배 구호를 이런 곳에서 외치고 난리 부루스를 떠는가!~ ㅎㅎ 그런데 "성행위"가 뭔 말인가 하면.... '성'공적인 '행'복한 삶을 '위'하여!~ 라는 말의 줄임 말이라고 하니... 알고 보면 그렇게 야한 말도 아니지요? ㅎ 그런데 모두 "하세...! 하세...!"는 또 뭔가!~ ㅎㅎ [청계산에서 만난 사람들] 청계산 매봉 아래에서 막걸리 장사를 하는 분(가운데)까지도 잘 아는 술꾼들이었습니다. 하여간 "大한국인"들입니다. 술에 대해선....ㅎ [혈읍재로 가는 길] 2시 매봉 아래 막걸집에서 거의 한시간을 퍼 마시고 "혈읍재"로 갑니다. [혈읍재에서] 2시 10분 "혈읍(血泣)재"는 조선시대에 '정여창 선생'이 이상 국가 건설이 좌절되자 청계산에 숨어 들어와 피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그런 사연이야 알던 모르던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합니다. ['옛골'로 내려 가는 길]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노래는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래이지요? ㅎㅎ 옛날 노래입니다만, 하남석씨 아시죠? '밤차로 떠난 여인' 부른 가수 하남석씨의 또 다른 힛트곡 '바람에 실려'라는 노래의 오리지날이 이 노래 입니다 "Saddle The Wind"라는 곡이며 "Lou Christie"가 불렀습니다 하남석씨가 부른 '바람에 실려'라는 노래 가사 추억 속에서 음미해 보세요 하늘을 나는 새들 푸른 저 하늘 위에서 꿈따라 바람따라 날아서 희망을 찾아가네 바람따라 떠나리 저 먼 곳에 고향 떠난 철새처럼 그리워 못 잊어 떠나면 사랑하는 내님 날 반기리 [약수터-옻샘] "옻샘"도 지나고.... ['옛골' 계곡] 옛골계곡을 조심스레 내려 갑니다. 왜냐고요? 막걸리가 얼큰해서....ㅎ [길에 앉다] 3시 30분 옛골에 거의 다 내려와서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다시 퍼 마십니다. 이 자리는 정말 명당 자리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활용하던 곳인데....어디냐고요? 알켜 줄수 없어요! ㅎ [산해진미를 맛보다] 온갖 세상살이 얘기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래서 산행기의 제목이 "길에서 즐거움을 줍다"가 되었습니다. 부글 부글 끓는 라면 냄새와 함께 깊어 가는 가을정취는 글자로는 표현 할수 가 없습니다. ['옛골'로 하산] 아무리 재미 있어도 집에는 가야겠죠? 1시간 30분 정도를 히히닥 거리다가 하산합니다. [또 한잔....] 에휴~~ 옛골에 내려 와서는 음식점으로 들어 가 다시 또....ㅎㅎ "더 잘 살기 위해서 " 여행을 한다고 바로 무언가가 남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여행하던 날들을 되돌아보면,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니던 시간은 평생 웃음지을 수 있는 기억이 된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사치가 아니다. 왜 꿈만 꾸고 있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일상 속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다. - 박준의《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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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南山 벚꽃 축제 잔인한 달이라고하는 4월 어두운 겨울에서 벗어나 화려하게 너무나 화창하게 다가오는 4월 그래서 잔인하다고까지 했겠는가 무척이나 오랜만에 서울 南山에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것도 옆지기와 함께..... 벚꽃, 개나리꽃이 허드러지게 핀 南山을 한바귀 빙 돌고 왔습니다 [장충체육관 앞 사거리] 4월11일 토요일 오후 2시 지하철3호선 동국대역으로 나와 장충체육관과 장충단공원이 있는 장충동 4거리에 섯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南山을 오르며, 처음으로 "제2회 남산벚꽃축제" 구경을 하러 나온것입니다 그것도 와이프와 함께..... [장충체육관 앞 사거리에서 바라 본 '남산타워'] "여의도 벚꽃놀이"는 자주 갔었습니다만 南山에 벚꽃구경하러는 처음입니다. 어느 학교 선생님이 11일(금)에 구경갔다온 안내를 보고 기회를 잡았습니다 [장충체육관 앞 사거리에 있는 돼지 조각상] 특히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서울에 살면서 남산을 올라 본 사람들은 오랜만에 한번 정도씩이거나 아예 올라 보지 못한 분들도 무척 많을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분들을 위해서라도 '파란문'이 한번 다녀와 못가본 분들에게 간접 경험이라도 시켜 드리고쟈 직접 나섰습니다. 저 착하죠? ㅎㅎ [장춘단 공원 입구] 장춘동 냉면을 한그릇 사먹고 오후 2시 30분에 남산을 오릅니다 저는 "장충단공원"에는 처음입니다. 차를 타고 지나 치기만 했지 직접 들어가기는 처음입니다. 우리가 가볼 곳이 얼마나 많은지,,, [수표교] 장충단공원 입구에는 "水標橋"가 멋진 위용을 자랑하며 놓여있습니다 이 다리는 돌다리로서 원래는 청계천 2가에 있었으나 발전하는 서울이라는 미명아래 회색빛 콘크리트로 서울을 뒤덮는 1959년에 늘어나는 자동차길을 만들기 위해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답니다. 청계천 - 원래 淸溪川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고 붙여진 이름이지만 당시 '청계천'은 하수구를 의미 할 정도로 서울의 모든 생활하수가 흘러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복개하고 차량통행에 도움을 주고 악취를 감추었습니다 "水標橋"는 조선 세종 2년(1420)에 세운 다리로, 당시에는 이곳에 소시장(牛市場)이 있었다 하여 ‘마전교’라 불리웠답니다. 세종 23년(1441) 수표(水標)(보물 제838호)를 만들어 이 다리 옆에 세우고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어 홍수에 대비하도록 하였고, 영조 36년(1760) 다리를 수리하면서 돌기둥에 ‘경(庚)·진(辰)·지(地)·평(平)’이라는 글씨를 새겨두어 4단계의 물높이를 측정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라는 말이 생겨나 "水標橋"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청계천을 건너는 다리로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홍수 조절을 위한 알림판 역활도 하였답니다 다리에 설치되 있던 "水標"는 다리를 이곳으로 옮길 때 함께 옮겨왔다가 1973년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奬忠壇址] 장충단공원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아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外勢의 침략으로 패망해 가는 조선왕조의 피맺힌 恨을 토로하며 日本 침략자들에 대항해 피흘리며 죽어간 애국충절의 魂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제단"입니다 특히 을미사변, 즉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에 목숨 바치며 싸우다 죽어 간 시위대장 홍계훈, 염도희, 이경호 열사들을 제사 지내는 곳이었답니다 애국충절의 魂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제단"인 奬忠壇은 6.25전쟁의 화마에 전소되고 이곳에 奬忠壇이 있었다고 알리는 奬忠壇址碑만이 홀로 서 있습니다 [奬忠壇址 표지석] [奬忠壇碑] 한자로 된 `獎忠壇'의 세 글자는 고종황제의 어필이라고 합니다. 비(碑) 뒷면에는 충정공 민영환이 글을 짓고 직접 쓴 143자의 비문이 음각돼 있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보면 “군인으로서 어려움에 당면해서 죽은 사람이 많으니 슬프다. 그 서릿발, 눈보라에도 늠름하고 당당했던 뛰어난 절개는 밝기가 해.별과 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奬忠壇碑 설명] [奬忠壇 公園] 奬忠壇 公園에 오니 전설적 가수 "배호"가 부른 "안개낀 장충단 공원"이 생각 납니다. "대전 부르스"를 작사하신 '최치수선생'이 작사하시고, 배상태씨가 작곡한 "안개낀 장충단 공원" 이 노래는 단순한 연민의 노래가 아니고 日本 침략자들에 대항해 피흘리며 죽어간 애국충절의 魂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단순한 유행가로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그 이유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奬忠壇 公園 롤러스케이트장과 동국대학교 건물] 배호의 본명은 '배만금'이며, 1942.4.24.중국 산동성 제남시에서 부친 배국민 독립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독립투사의 아들입니다. 부친의 별세와 6.25 전쟁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다 겨우 중학교2년을 다니고 맙니다 다행히 당시 밴드마스타였던 외삼촌 '김광빈'으로부터 드럼을 배워 '김광빈악단'의 드러머로 음악계에 입문하여 전설적 가수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의 노래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지요? 모두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1971년 11월 11일 그를 괴롭히던 신장병으로 '스타'가 유명을 달리하고 사라졌습니다 아직 살아 있다면 67세밖에 않되는 나이인데 39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가 지난날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슬픈사연이 깃든 애상의 표현으로 노래한 것은 어쩌면 배호 자신의 운명 같은 가련함을 추억속에 그려보며 구슬프고 애달프고 절절하게 숨넘어 가는 목소리로 불러진 노래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안개낀 장충단 공원"은 독립투사인 아버지를 많이 생각하며 불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별한 연인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로 알고 있으나 잘 음미해 보시기 바람니다 안개낀 장충단공원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배호 노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 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이준 열사 동상] [이준 열사 프로필] [동국대 정문과 南山 올라 가는 길] '장충단공원'에서 남산으로 올라 가려면 동국대학교 정문 바로 옆으로 난 계단으로 가면 됩니다 사진의 우측이 동국대 정문이고, 좌측이 남산 올라 가는 계단길입니다 [南山 올라 가는 길] 首都 서울의 중심공원 다웁게 모든 시설이 깨끗하게 잘 정비되 있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최현배선생은 우리나라 한글을 반석 위에 올려 놓으신 분이죠 근현대에 와서는 한글=세종대왕이 아니라 한글=최현배라고 할 정도이지요 [외솔 최현배 선생의 詩] [南山 올라 가는 길] 허드러지게 핀 벚꽃 아름답습니까? 물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奬忠壇 公園의 벚꽃은 생각해 봐야할 점이 있습니다. 일본 쪽바리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식민지를 만들었을 때 信念있는 테러리스트 안중근의사는 일본 총독 "이또 히로부미 伊藤博文"를 살해합니다. 열 받은 쪽바리들은 "애국충절의 충신들을 招魂하는 제단인 奬忠壇"에서 제사를 금지하고 이곳 奬忠壇을 놀이公園으로 만들어 버렸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박문사 博文詞"라고 하는 신사를 만들고 "伊藤博文 이또 히로부미"의 넋을 달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벚꽃나무를 심었답니다 [南山 올라 가는 길에서 뒤 돌아 본 '신라호텔'] "伊藤博文"의 넋을 기리기 위한 "박문사 博文詞"는 해방과 함께 부셔졌지만 아직도 벚꽃나무는 남아 봄이면 허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제가 이 벚꽃길을 걸으면서도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한 사연을 이해 하시겠습니까? 벗꽃 그 자체야 나무랄수 없이 아름답지만 역사를 쬐끔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곳의 벚꽃이 오히려 반감을 가질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南山 올라 가는 길 옆 동국대학교] [南山 순환로] 동국대 정문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남산순환도로"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저는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왔습니다. 여기서도 저의 주특기인 알바를 했습니다. ㅎㅎ [南山 순환로] 아래쪽으로 내려 가는 길. 계속 가면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옵니다. 걸어서 남산 정상을 가려면 왼쪽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시기 바람니다 [南山 순환로에서 바라 본 '남산타워] 벚꽃은 奬忠壇 公園이 있는 南山의 동쪽에만 집중적으로 피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알려 드린바와 같습니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石虎亭] "石虎亭"이라고 하는 활쏘는 활터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國弓을 즐기고 있더군요. [石虎亭] 화살이 꽂히는 과녁이 상당히 멀리 있습니다. "국립극장"의 위용도 함께 볼수있군요 [石虎亭 안내] [南山 순환로] 석호정을 지나 계속 올라 갑니다 나름대로 벚꽃 구경도 하며.... [南山벚꽃축제] 南山벚꽃축제장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음악회를 하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구경은 못했습니다 [南山 순환로] [南山 정상으로 가는 버스] 순환로를 따라 가면 국립극장쪽에서 올라 오는 南山車路를 만납니다. 남산 오르는데도 버스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버스는 만원이었습니다 [南山타워로 올라 가는 길] 저는 걸어서 올라 갑니다 자칭 등산 좀 한다는 인간이 남산을 버스로 오르면 되겠습니까? ㅎㅎ 걸어서도 20여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걸어 가야 이것 저것 구경을 더 많이 할수 있습니다 [漢陽城廓] 조금 걸어 올라 가면 漢陽城廓을 만납니다 [漢陽城廓 탐방로] 우측으로 '漢陽城廓 탐방로'가 잘 설치되 있습니다 車路를 버리고 '漢陽城廓 탐방로'로 오릅니다 漢陽城廓 탐방로는 계단의 길이가 250m로 상당한 된비알이니 천천히 걸어 오르시길... [漢陽城廓 탐방로] 서울이라는 이름이 탄생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제가 "여성봉-오봉-도봉산-우의암 산행기"에서 한번 쓴적이 있습니다 南山의 漢陽城을 보니 다시 한번 더 얘기를 하지 않을수가 없군요 고등학교 국어(고문)시간에 "서울"에 대한 어원을 배웠을 것입니다 서라벌>셔블>서울로 음운변화가 있었다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런 반론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이 주로 서라벌>셔블>서울은 터무니 없는 말도 않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漢陽城廓 탐방로] 서라벌>셔블>서울의 서벌은 한자로 徐伐로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현재 우리나라의 '서울'이라는 것이 위치상으로도 문제가 있고 음운변화로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정말로 서울은 서라벌>셔블>서울의 음운변화를 거치며 탄생된 것일까? 저와 함께 추적 해 볼까요? [漢陽城廓 탐방로] "서울"에 대한 명칭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첫째가 우리가 이미 학교 때 배운 서라벌>셔블>서울이라는 것이고.... [南山 山嶽會] 이곳은 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체력단련장과 친목 모임터인듯합니다 1884년에 일어 난 갑신정변과 그 이후 外勢들의 침탈 음모들이 난무하는 세상을 거치고 결국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한일합방 이후에는 이런 비참한 說도 있었습니다. "서러워 울고있는 도시니까 서울로 부른다..." 이 說은 백성들의 입에서 나온 한탄의 말이겠지만 이 또한 하나의 說입니다 [南山 山嶽會 亭子뒤 '남산타워' 가는 산길] "서울"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정식 명칭으로 사용한것은 해방후 1946년 8월 16일 미국군정하에서 미국식 직제 개편으로 경성부→서울특별자유시로 경기도에서 분리되면서 '서울'이라는 이름이 새로이 탄생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조선 개국과 동시에 한성-한양이라 불리워져 왔고 일제 강점기 시대엔 "경성"으로 명명되어 왔습니다. [南山 山嶽會 亭子뒤 '남산타워' 가는 산길] "서울"에 대해 제가 여러 참고 문헌들을 읽어보고 그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설을 지금 부터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특히 백승현씨가 쓴 '어디서 마음을 구하랴'라는 책을 주로 참고하여 알려 드리도록하겠습니다 [南山에서 두번째 높은 봉우리 정상] 서울은 왜 한자가 없을까? 서울은 한문상의 표기가 없고 대신에 한양(漢陽) 또는 漢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천도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 건국과 함께 탄생된 도시가 오늘의 '서울'이 되었는데 탄생 될때의 이름이 漢陽이고 한양의 외곽에 城을 쌓고 난 다음에 漢城으로도 불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을려면 漢陽의 탄생 과정을 추적해 보아야합니다 [南山타워로 올라 가는 길] "漢陽城廓 탐방로"와 "산길을 따라 봉우리를 넘으면 다시 남산순환차로와 만납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다음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으려 할 때 그 성곽을 쌓는 기준선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던 어느 날 태조 이성계가 삼봉 정도전, 무학대사와 함께 협의를 하고 있는데 큰 눈이 내렸답니다 눈이 한양을 둘러 싸고 있는 산능선을 따라, 능선 밖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고, 능선 안쪽에는 눈이 조금 쌓여졌답니다 그 상황을 눈여겨 살펴본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무학대사는 성곽을 쌓을 윤곽을 그리고 눈이 많이 쌓인 곳과 적게 쌓인 곳의 경계선을 따라 도성을 쌓게 했다고 합니다 한양과 한양 밖에 내린 눈이 경계선을 그어 준 것입니다 [南山타워로 올라 가는 길]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곳과의 경계선을 따라 쌓은 都城은 산의 능선을 따라 북악산-인왕산-남산-동대문에 있는 낙산을 연결하는 것으로 둘레가 40리에 이르렀습니다 즉 한양성곽은 "눈 雪" 경계선을 따라 건설된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이 "한양의 울타리"를 만들었다고하여 눈雪자를 써서 '설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은 도성으로 한 때 설성雪城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다시 '설울'로 불리워 지면서 '설울'의 "ㄹ" 복음이 묵음화 되면서 서울로 발음 되어진 것이랍니다 요약하자면 서울은 雪울타리 →雪울 → 설울 →서울로 된 것이라 합니다 저는 이 이론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생각 되며 또한 이것은 각종 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漢陽城廓] 다시 漢陽城廓을 들어 서면 남산의 정상부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南山타워] [南山타워] [현 위치 안내도] 남산 주차장에 있는 현 위치 안내도 [南山타워 주차장] 버스를 타고 내려 가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습니다. 걸어가면 건강에도 좋고 시간도 오히려 절약되고 경제적인데... [버스 운행 정보] 걸어서 남산 오르기도 힘드시는 분들을 위해 버스 운행 정보를 알려 드림니다 [주차장 매점과 중국식당] 마실 것을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아서 마실것을 사러 매점에 들어 갔는데 매점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모두 저와 같은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어 캔맥주와 음료수 사는데 10분이 걸렸습니다 앞으로 남산을 오르실 분들은 베낭에 미리 음식물을 준비해 오시기 바람니다. 저도 앞으로 온다면 반드시 베낭을 메고 음식물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옆의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파는데 4,500원이더군요 [캔맥주 한잔] 와이프는 맥주, 특히 카스를 무척 좋아합니다. 술꾼인 저는 음료수 마시고 와이프는 맥주 한캔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앞모습은 보여 드리지 않습니다. ㅎㅎ [일본 관광객]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 행렬은 거의 모두 일본사람들이었습니다 여하튼 반가운 일입니다 [南山 정상부] 人山人海를 이룹니다 [南山 '팔각정'앞 농악 공연] 흥겨운 농악을 공연하고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2시에서 3시 사이에 하는듯... [南山 '팔각정'] 南山의 本名은 목멱산(木覓山)입니다 覓은 '찾을 "멱"이더군요 木覓山은 높이가 262m로 목멱산·인경산·마뫼 등으로도 불렸으며, 기반암은 화강암이랍니다.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으며 漢陽城廓의 중요지입니다 [南山 '팔각정'안에서 바라본 '농악대 공연장'] [南山타워 앞] [서울 N 타워] [서울 N 타워] [서울타워 매표소] [서울타워 요금표] 서울타워에 들어 가는데 입장료를 내야하더군요. 입장료가 무려 어른 한사람당 7,000원이더군요 전망대까지 엘리베이터 타는 요금이 7,000원이면 좀 쎄지요? 그리고 점심식사는 26,000원/1인, 저녁은 38,000원/1인 합니다 휴~ 돈없으면 들어 가 보기도 어려운데, 다행히 워낙 복잡해서 매표 매진이 되어 돈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이죠? ㅎㅎ [南山烽燧臺] [南山烽燧臺 설명] [南山烽燧臺에서 바라 본 서울시내] [南山烽燧臺에서 바라 본 서울시내] 바로 앞 건물이 '케이블카' 타는 곳입니다. 좌측 산이 "인왕산"이고, 가운데가 "북악산", 그 뒤에 어렴푸시 보이는 "북한산"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의 행렬] 참을성이 많으신 분들만 '케이블카'를 타세요. 무지 오래 기다려야합니다 걷지 못하는 분들과 함께.... [팔각정과 서울타워] 節彼南山霄漢連 扶輿磅礴見千年 如雲如蓋葱蘢氣 散作陽和布四埏 높다란 저 남산은 은하수와 연했는데 아름다운 기운 충만하여 천 년을 보겠네 구름 같고 일산 같은 숲의 무성한 기운이 화창한 봄기운으로 화하여 사방에 퍼지누나 [케이블 카] [하산하는 길에 있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서울] 서울의 대표 산인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이 조망됩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서울] [남산 순환차로] 남산에서 계단을 내려 오면 남산순환차로를 만납니다 [상행 케이블카 타는 곳] 이곳에도 남산으로 올라 가려는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타려고 줄을 길게 서 있습니다 [남산 케이블 카] 멋진 사진으로 케이블카를 탓다고 대리 만족하시기 바람니다 ㅎㅎ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올려다 본 남산] 충무로 "지하철 명동역"에서 남산을 올려다 봤습니다 [明洞] 우엑!!~~ 명동을 지나 가려고했더니 발 붙일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1921년 대공황 이후 최고의 불경기라고하는데 明洞은 예외인가 봅니다 [明洞] 요즈음 明洞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하네요 현수막도 일본어 투성이었습니다. 불황에 조금은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두산빌딩 지하 '맥스 생맥주'] 와이프가 가자고한 을지로입구 두산빌딩 지하에 있는 "맥스 생맥주집"에서 훈제 닭고기와 생맥주를 먹으며 모처럼 데이트를 했답니다 화사한 봄날에 나들이 한번 못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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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청계산 시산제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이다.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1년에 한번하는 시산제
              1년에 한번인데도 그동안 무척 많이 한듯합니다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그 동안 무척이나 많이 
              가고, 오고,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습니다

     
     [청계산 원터골 입구]

     2월 15일 (일) 
     매년 2월 셋째주 일요일에 지내는 동창회 "시산제"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나서
     양재역 2번 출구로 나와 강남역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 "4432번" 시내버스를 타고
     "청계산 원터골" 앞으로 왔습니다.
     청계산을 찾는 대부분의 산객들이 '양재역 3번 출구'로 나와 "4432번" 버스를 타는데
     이것 또한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죠. 여기서 대부분 타기 때문에 무척 복잡합니다
     양재역 2번 출구로 나가 "4432번"을 한 정거장 앞 강남역 방향에 있는 
     '영동중학교'앞 정류장에서 타면 편할수 있습니다

     
     [청계산 원터골 입구]

     청계산에는 "원터골"이 두군데 있습니다.
     가장 많은 산객들이 몰리는 이곳 "원터골"과 안양 인덕원쪽에서 가는 "청계사" 방향으로
     "하오고개"를 넘어 가기 바로 전에도 "원터골"이 있습니다.
     "원터골"이란 地名은 쉬운 말을 어렵게 만들어 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그냥 사용합니다.
     "원터골"에 대해 알려 드리죠
     옛날에는 한양에서 남쪽지방을 갈때 "달래내고개"를 걷거나 말을 타고 넘어야 했습니다.
     특히 말을 타고 넘는 사람들 - 즉 관리들이 이곳에서 말을 빌려 타고 넘는 "驛院"이 있었답니다.
     그 "驛院" 자리가 이곳에 있었다고 "驛院터"라고 하다가 "驛"은 빼고 쉽게 "院터"라고만 하였고
     "院터"가 있는 마을을 "원터골"이라 하게 되었으니, 전국에 "원터골"은 이곳뿐만 아니라
     중요한 고개가 있는 곳엔 많이 있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굴다리 위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말을 타고 "달래내고개"를 넘는 사람은 이제 찾아 볼수 없으니 
     "원터골"이 무슨 의미인지 알 필요도 없이 잊혀져 가버림니다.

     
     [청계산 원터골]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가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며
     등산로는 우측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수 많은 음식점과 등산용품점이 줄을 서 산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청계산 등산로 입구] 

     삼거리에서 약 100m쯤 올라 가면, 청계산 원터골 등산로 입구가 나오며
     좌측에 만남의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만남니다
     오전 10시가 조금 못되어 도착했습니다

     
     [청계산 등산로 입구] 

     원터골 만남의 장소에는 무척 오래된 보호수가 세월을 머금고 어렵게 생명을 이어가고 
     수많은 인간들은 건강산행을 위해 늙어 가는 보호수를 보며 청계산을 오릅니다

     
     [청계산 등산로 입구] 

     청계산 원터골과 양재화물터미날등에서 "매봉"까지 오르는 코스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들이 산다는 '서초구'에 있습니다.
     부자 동네에 있는 산이라 시설도 여느 산보다 잘 해 놨습니다.
     산행후 신발의 흙 먼지를 털라고 골프장에나 있는 압축공기 분사기도 있습니다

          
          [삼거리 이정표]

          등산로입구에서 조금 오르면 삼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어느 곳으로 가나 다시 '매봉'에서 만납니다만, 직진을 하면 계단이 많고,
          좌측으로 가면 자연미가 아직 살아있는 등로여서 우리들은 주로 좌측 등로로 오릅니다
          이곳에서 "매봉" 정상까지 2.2km는 된비알로서 땀좀 흘림니다
     
     다행이 새벽에 눈이 조금 내려 청계산 산행에 운치를 조금 더 느낄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청계산을 조금 우습게 봅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훌륭한 건강 산행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원터골 등산로 입구'에서 '매봉'까지 2.2km는 급경사 된비알로서 무척 힘드는데도
     별거 아니라고들 합니다. 아마 자주 다녀서 길을 잘 알기 때문이겠고,
     肉山이라 오르는 등로에선 조망이 없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죠
     처음 이곳을 오르면 많이 힘들어 합니다

     
     청계산은 서울에 붙어있는 산이기에 휴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명소입니다
     년간 약 500만명이 이용한다고 하는군요

     저의 동창회 산악회 이름은 "휘마루"입니다.
     는 아시다시피 모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아름다울 입니다.
     마루산등성마루를 의미합니다.
     "휘마루"는 한달에 한번 셋째주 일요일에 이곳 청계산에 모여 산행을 합니다.
     건강산행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만, 高校 졸업후 오랜 세월 동안 흩어져 살아오다
     서로 얼굴 마주하며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그런 만남의 장이기도 합니다.
     발족된지 벌써 십년이 넘었나 봅니다

    
     [쉼터]

     어느 산이나 처음엔 힘이 들지요. 워밍업도 부족하고 모처럼 된비알을 오르면
     숨이 차고 땀이 납니다. 하지만 그럴 때쯤에는 곧바로 '쉼터'가 나옵니다.
     저는 등산은 참 쉬운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힘들면 쉬면되니까요
     힘들면 앉아 쉬고, 또 오르고, 또 쉬고.....그러다 보면 정상이 나타나더군요
     저도 등산 예찬론자가 된지 얼마되지 않습니다만 하면 할수록 즐거운게
     산에 가는 일이 되 버렸습니다.
     요즈음엔 산의 매력에 푹 빠져 이산 저산 돌아 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적당하게 내려준 하얀 눈이 운치를 더해 줍니다. 오늘 눈 구경으로 본전 뽑았습니다.
     저는 '아이젠'을 준비 못한 친구를 위해 아이젠을 빌려 주는 바람에 미끌어져
     이 부근에서 메기를 한마리 잡았습니다. ㅎㅎ
     그래서 카메라 렌즈에 흙이 뭍었는데 모르고 계속 사진을 찍어 사진의 가운데 부분이
     지져분하게 나오니 양해 바람니다
     
     눈 내린 날의 산행은 낭만이 가득합니다.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노래는 조금 오래 된 노래입니다만
     고교 동창들과 이런 산행을 하며 있었던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길 때 사용하려고
     남겨 두었던 "내일로 가는 마차"라는 노래입니다.

          내일로 가는 마차 
                  이재성 
          해저문 창가에 가득 눈물젖은 별빛이 와도
          슬퍼말아라 친구야
          깨진꿈이 서러우면 작은불을 밝히려마
          두손을 모으고 친구야
          가슴까지 태웠던 사랑은
          지난꿈이 되었어도 슬퍼말아라 친구야
          참을수 없는 슬픔이 다가와 너의 두볼을 적시거든 
          눈을감고 내일로 가자 친구야
          지나버린 시간일랑 남기고 떠나자 
          눈물이 앞을 가려도 스쳐지나는 바람 바람 바람인것을
          친구야 눈물을 숨기렴
          내일로 가는 마차를 타고가자 타고 떠나자
          내일로 가는 마차를 타고가자 타고 떠나자
          지나버린 시간일랑 남기고 떠나자
          눈물이 앞을 가려도 스쳐지나는 
          바람 바람 바람인 것을 친구야 눈물을 숨기렴
          내일로 가는 마차를 타고가자 타고 떠나자
          내일로 가는 마차를 타고가자 타고 떠나자

     
     청계산은 바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肉山입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산행을 하면 매봉 부근과 망경봉 석기봉 근처에서
     웅장한 바위들을 구경할수 있습니다

     
     [쉼터 정자]

     청계산에는 여러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되있습니다.
     중간 중간 요소요소에는 쉼터가 잘 만들어져 있어 산객들을 편하게 해 줍니다

     
     [쉼터 정자]

     이곳 정자 쉼터에서 전열을 재정비해 마지막 된비알을 오를 준비를 합니다
     이곳에서 매봉까지가 가장 힘든 급경사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쉼터 이정표]

          이곳이 꼭 알아 두어야 할 지점입니다.
          "매봉" 정상을 밟고 "혈읍재-청계산 정상"으로 가고 싶으신 분들은 계단길로 직진하여 오릅니다
          다만, 산행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나 힘든 분들은 여기서 좌측길로 가면 "매봉"을 오르지 않고, 
          '매봉'을 우회해서 "혈읍재- 청계산 정상"으로 갈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두팀으로 나뉘어 오릅니다
     매봉을 오르는 사람들은 직진해서 계단으로 오르고
     체력에 문제가 있는 분들은 좌측 우회로를 이용합니다
     
     매봉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와 뒤돌아 보았습니다.
     쉼터가 정확한 지점에서 휴식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잘 설치된 계단을 따라 계속 오릅니다
     청계산 매봉 근처는 서초구청에서 나무 계단으로 도배를 해 놨습니다

     
     [쉼터]

     부자 동네 다웁게 곳곳에 쉼터를 잘 만들어놔 산행하기에 편합니다
     처음으로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이기에 이곳에서 주변 경관을 조망하고 가야합니다.
      
     북동쪽 강남 방향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이 워커힐이 있는 '아차산'입니다.
     
     동쪽방향
     가운데 산이 "인릉산"입니다.
     청계산과 인릉산 사이에 경부고속도로가 지나 가며, 고속도로 굴다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 올라 왔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인릉산"은 성남市界종주 산행을 할때 지나 가는 성남市界의 일부입니다

     
     [관악산]

     冠岳山이 남성미를 자랑하며 불꽃처럼 솟아 있습니다
     한남정맥 광교산에서 분기한 "관악지맥"은 바라산, 우담산,청계산을 지나
     앞에 보이는 우측 청계산 옥녀봉을 지나 우면산으로 가 남태령을 넘어 관악산으로 갑니다
     옛부터 관악산은 남성적인 산으로 표현하고 청계산은 여성스러운 산으로 표현했습니다
     관악산과 청계산은 같은 산줄기에 있는 산들이죠

     
     [매봉 헬기장]

     청계산 매봉 헬기장이 매봉 근처에 있습니다
     헬기장이 아니라 공원같이 꾸며 놨습니다

     
     [매봉 헬기장]

     매봉 헬기장은 쉼터

     
     [매봉 헬기장에서 바라 본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과 검단지맥]

     멀리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과 '검단산'이 "검단 지맥"을 이루고 뻗어 있군요
     앞의 '인릉산'과 남한산성 사이에 "서울공항"이 보입니다
     성남市界종주산행을 저는 거의 다 했습니다.
     남한산성이 있는 청계산을 올라 검단산 - 왕기봉 - 이배재고개 - 연리지봉 - 갈마치 - 영장산 -
     일곱삼거리 - 분당율동공원뒷산길 - 태재 - 불곡산........
     그리고 수원의 광교산 - 백운산 - 바라산 - 우담산 - 하오고개 - 청계산 국사봉 - 이수봉 -
     석기봉 - 망경봉 - 혈읍재 - 매봉 - 옥녀봉 - 양재동화물터미날 까지
     두번으로 나누어 11시간40분과 10시간 10분이 걸려 주파 한바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저의 산행기를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산행기 이름은 "광교산 지지대고개에서 청계산 양재동 화물터미날까지"와
     "남한산성에서 불곡산까지"입니다
     
     '매봉'을 향해 오르는 길도 잘 정비되 있어 등산로인지 전망대 구경가는 길인지
     구분 할수 없을 정도로 돈을 발라 놨습니다

     
     [돌문바위]

     '매봉코스'의 유명지인 "돌문바위"입니다
     "돌門"인데 이 돌門을 세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나 뭐래나....
     저는 갈때마다 돌았는데도 소원이 이루어 지는 걸 못봤습니다
     저 앞에 서서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는 중은 지난 십년동안 한자리에서 목탁을 두드림니다
     명당자리에서 수입이 아주 짭짤하겠더군요. 그러니 계속하겠지요?
          
          청계산에 놓인 모든 계단은 서초구 주민들이 헌납한 것들로 만들었다고
          계단마다 기부자 명단을 붙여 놨습니다.
          기부자들은 기부만 하고 여기로 등산은 오지 않고 골프장으로 주로 가겠지요?

     
     [매바위]

     "매봉"에는 "매바위"와 "매봉"이 있습니다

          
          [매바위]
     
     [매봉]

     '매바위'에서 '매봉'은 약 100m정도... 가깝습니다
     "매봉 정상입니다.
     "매봉"은 582.5m 높이로 제법 높은 산입니다

     
     [매봉 정상석]

     매봉 정상석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내 아무것도 가진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매봉에서 바라 보는 서울시내와 북한산]

     날씨가 흐려 조망이 별루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북한산이 지척입니다
     서울의 중심부입니다
     
     '매봉'을 내려가 망경봉으로 향합니다
     청계산은 서울특별시의 남쪽관문에 위치해 있어 서울로 상경하는 시민들에게 녹색의 푸르름을 안겨 주며
     도시의 삭막함을 절감시켜주며 연간 이용자수가 500여만명으로 휴일에는 6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어 
     도시지역에 대한 “녹색허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고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서 애용되고 있답니다
     
     '혈읍재' 가는 길에서 바라 본 '망경봉'입니다
     '망경봉'은 청계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청계산의 유래를 살펴보면 
     청계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라고 합니다. 
     그전에는 청룡산이란 이름이 목은 이색(고려말의 학자. 포은, 야은과 함께 고려말의 삼은)의 
     詩에 보일 뿐이라고 합니다. 

          청룡산 아래 옛절
          얼음과 눈이 끊어진 언덕이
          들과 계곡에 잇닿았구나
          단정히 남쪽 창에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종소리 처음 울리고 닭이 깃들려하네
     청계산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아시므로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풍수지리에선 관악산을 우백호, 청계산은 좌청룡으로 보며
     관악산은 힘이 솟는 男性으로 비유하고, 청계산은 아리따운 女性으로 비유합니다
     남성적인 岳山의 관악산과 玉女峰등 여성적 이미지가 강한 청계산은 '관악지맥'으로 붙은 산입니다

     
     [혈읍재]

     혈읍재도 중요한 곳입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 가면 '옛골'로 바로 등산로를 탈출할수 있습니다.
     체력이 약하신 분들은 이곳에서 하산하면 됩니다.
     우측으로 가는 길은 "망경봉"으로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입니다.
     대부분 오른쪽 우회길로 가는데 중간에 "마왕굴"을 경유하여 "이수봉"쪽으로 갈수 있습니다
     직진하여 망경봉 정상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망경봉을 오를수 있습니다

     
     [혈읍재]

     오늘은 직진하여 망경봉 군부대 철조망 좌측길로 가려합니다
     이 코스는 저도 처음 가 봅니다

     
     [망경봉에 있는 미군부대]

     혈읍재에서 직진하여 망경봉 정상으로 가면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우측은 망경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며, 어느 쪽으로 가나 군부대를 돌아 
     다시 망경봉 헬기장에서 만납니다

     
     망경봉 좌측 우회로로 처음 가 보는데 길이 편하게 잘 나 있더군요

     청계산에는 대표적인 봉우리가 네개있습니다.
     지금 지나온 "매봉"
     그리고 지금 우회하고 있기에 알수 없는 청계산의 최고봉인 "망경봉"이 있으며
     "이수봉"과 "국사봉"이 있습니다
     망경봉望京峰으로서 고려말  '조견선생'이
     이성계의 쿠데타로 이곳에 은신하며 서울을 바라보며 나라를 걱정한곳이라합니다
     그래서 望京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며, 이와 유사한 산봉우리 이름은 북한산에도 있지요
     삼각산을 이루고 있는 "백운대", "인수봉", 그리고 "만경대"인데, 이 "만경대"를
     "망경대"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萬가지 경치가 보인다고 "萬景臺"라고 합니다만
     조선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한양천도를 하려고 이곳에 올라
     앞으로 서울이 될 한양을 바라 보았다고 "望京臺"라고도 한답니다

     
     '마왕굴' 코스 보다 이 코스를 추천합니다.

     "이수봉"은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번이나
     넘겼다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二壽峰이라는 말쌈입니다. 
     이수봉의 높이는 545m입니다
     國思峰은 540m 높이로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고려의 충신 조윤(趙胤)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시산제 장소]

     우회로를 잠시 돌아 나아 가니 시산제 공터가 바로 나왔습니다
     매년 60회 선배들과 함께 시산제를 지내는데, 60회는 벌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62회도 시산제 준비를 합니다
      현수막을 걸고....
     
     제삿상을 차립니다
     돼지머리는 준비하기도 힘들고 무거워 요즈음 저희들은 돼지저금통으로 대체하여
     시산제를 지냅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더군요
     돼지머리 대신에 돼지머리 누른 고기는 준비를 합니다
     구색은 제법 갖추고 식순도 조금 복잡하지만 할건 다 합니다
     
     축문과 산악인 선서를 하고....
     
     산짱이 제일 먼저 산신령께 3배 제례를 올립니다
     산짱과 산총님~! 수고하셨습니다.
     금년 한해동안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산신령님도 도와 주실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모두 제배하고 돼지저금통에 금일봉을 넣고...
     
     오늘은 총교우회 산악회인 "휘산회" 산행대장인 63회 이재현 대장이 직접 참석하여
     시산제를 함께 빛내 주었습니다.
     
     또한 60회 산악회 대표 선배님들이 62회 시산제에 배향해 주었습니다
     선후배간의 정이 넘쳐 나는 광경입니다

     
     [응원가 제창]

     씩씩하다 우리는 휘문의 건아~♬
     온 누리를 빛내일 휘문 학도다~!!
     응원가 제창을 끝으로 시산제를 모두 끝냅니다
     날씨도 좋지 않은데 약 20여명의 교우들이 참석하여 시산제를 무사히 지냈습니다
     
     가장 즐거운 식사시간
     저는 동기동창인데도 처음 만나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동기동창 끼리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하니 모두 웃을수 밖에...ㅎㅎ
     
     
     옛골로 하산합니다. 이곳으로 하산하면 간단하게 버스 정류장으로 갈수 있습니다
     약 30분이면 하산 완료합니다
     
     하산하는 길은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 오기 때문에 간단하며
     군사도로가 S자인 곳에는 지름길을 이용합니다
     
     62회 동기동창 여러분~!
     오늘 저의 산행기를 보시면 청계산 등산 코스가 쉽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실 청계산을 풀코스로 뛸려면 만만치 않습니다만, 오늘과 같은 코스는
     등산 완전 초보라 할지라도 오를수 있는 간단한 산행코스입니다.
     지금까지 "휘마루" 참여를 미적 미적 하셨던 분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동참하시고, 이러한 기회로 등산에 입문하여 마니아가 되시기 바람니다
     나이들면 반드시 등산은 해야합니다

     
     [뒷풀이]

     옛골로 내려와 화기애애한 뒤풀이를 하고
     2009년 휘마루 시산제를 마쳤습니다
 
      오늘 저의 산행기를 보시는 모든 분들
      금년 한해도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많이 하시기 바람니다
                    화이팅!!~~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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