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시청에서 창의문까지 역사탐방』
- 1부 -
['시청'에서 '경희궁'까지 실트랙]
1. "시청-서울시의회-도로원표-훈련도감터-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경교장-4.19기념도서관-한글가온길 입구"
<시청역>에서 <세종대로>를 따라 <세종대로 사거리>로 가서 좌회전하여 <새문안로>로 갑니다.
<서대문사거리>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와 <한글가온길>을 이용하여 <육조거리뒷골목>으로
['시청역3번출구']
2021년 11월 2일 (화) 구름 약간 맑음
서울지역에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11월초에 길을 나섭니다.
<시청역3번출구>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서울시의회']
[안내문]
"서울특별시 의회"를 만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는데...
요약하면 일제시대 경성시민들을 위한 공연장인 <부민관 府民館>이었는데
해방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다가 <시민회관>이 되고, 현재는 <서울시의회>가 이용하고 있답니다.
이 건물이 <부민관>일때, 그러니까 일제시대 1945년 7월 24일
대한애국청년단원 강윤국(康潤國)·조문기(趙文紀)·유만수(柳萬秀) 등이 친일파 박춘금(朴春琴)이
조직한 대의당(大義黨) 주최로 동남아, 일본 괴뢰정부의 대표가 참석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대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이곳을 폭파한 사건이 일어 났답니다.
제가 기억하는건 대학 때에 <"MBC 10대 가수 가요제">가 여기서 열렸는데....
당시 최고 인기 코메디언이었던 <구봉서.곽규석씨>와 인기 가수였던 남진, 이상렬, 이용복, 정훈희,
조미미, 하춘화와 김세환, 정미조, 김추자등이 경연을 벌이고 상을 주는 자리였는데
전기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해 난장판이 된 기억이 납니다.
이 때 일화로, 당시 '맹인 가수'로 유명했던 가수 이용복씨는 화재가 발생하기 직전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도우미와 함께 행사장을 나왔는데, 이용복이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화재가 발생했다고
그리고 제가 학창시정 <국회의사당>이었을 때 <김두한의 오물투척사건>이 기억 납니다.
<삼성그룹> <이병철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을 일으켰을때 당시 여당인 <자유당>이 옹호하자
더러운 인간들이라고 <탑골공원 변소>에서 똥물을 퍼와 국무위원석에 왕창 투척한 사건이
새록새록합니다. 요즘 국회에도 좀 그러고 싶을 때가 있죠? ㅎㅎ
['광화문원표공원']
['도로 원표']
[안내문]
"도로 원표 道路元標 Zeromilestone"
<서울>에서 <부산>을 갈때 거리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잰 것일까? 평상시 매우 궁금했죠?
<서울>이나 <부산>등 각 지역의 면적이 장난이 아닌데, 도로 거리를 이정표에 표시 할때 기준점이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요. 그 기준점이 바로 이곳 "도로 원표 道路元標 Zeromilestone"랍니다.
가끔 다니면서도 이런게 여기 있는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에휴~
['청계천' 시작지점]
<도로원표> 건너편에는
<한양도성> 안을 흐르는 유일한 개천인 "청계천"이 자기 이름을 갖는 시작점이 있습니다.
<청계천>으로 흘러 드는 枝川에 대해선 잠시후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하고...
['광화문빌딩']
<도로원표>를 지나면 <동아면세점>이 있는 "광화문빌딩"을 만납니다.
이 자리엔 "국제극장"이 있었었죠.
['국제극장']
['국제극장' 앞 분수대와 '구 동아일보' 조망]
<국제극장>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 개봉관이었던 서울의 대표적 극장이었죠.
사진에는 <장희빈>이 상영되고 있는 걸로 보아 1961년도에 찍은 사진인듯
김진규, 김지미, 조미령, 주증녀 등 당시 최고 인기 배우들이 등장 했던걸로 기억됩니다.
건너편엔 <옛 동아일보 사옥>이 보이는군요. 현재 <일민 김상만 미술관>
<일민 김상만>은 <인촌 김성수>의 장남이죠.
<피맛골>은 빌딩숲으로 변모했군요.
['종로' 방향 조망]
<옛 국제극장>에서 <종로> 방향을 촬영했습니다.
우측 <일민미술관>이 윗 사진의 <옛 동아일보 사옥>이란걸 알수 있고...
['경복궁' 방향 조망]
<옛 국제극장> 앞에서 길을 건너며 북쪽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현재 <광화문 광장>은 대규모 공사 중이라 대부분 출입금지이군요.
<육조거리>가 있었던 거리인데 앞으로 하나 하나 답사할 예정인데
윗 사진에 빨간색 화살표는 <백운동천>이 <청계천>으로 가는 물줄기를 표시 한것입니다.
하지만 그 물줄기는 복개공사로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보이지 않습니다.
['육조거리']
['백운동천']
['수선전도 首善全圖']
<경복궁> 서북지역에서 <청계천>으로 흘러 가는 개천들에 대한 개념도와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수선전도 首善全圖>입니다.
<수서전도>에 노란색으로 표기한 원이 현위치입니다.
이렇듯 <청계천>을 만드는 지천 중에 가장 큰 지천이 <백운동천>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은 <백운동천>을 따라 <청계천 발원지>인 <창의문>까지 올라 갈 예정입니다.
['아주개']
"야주개 夜珠峴"
잠시후 들리게 될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빛이 나 밤에도 이 고개까지 비친다고
붙여진 고개 이름이라고...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가 엄청 크고 화려한 모양으로 재탄생했군요. 번창하는 곳은 교회등 종교시설이 대표적..
이 지역이 옛날부터 "새로 만들어진 문 안쪽"이라고 <새문 안>이라고 했는데 <새문>은 <돈의문>을
의미하죠. 서대문은 원래 현재의 <사직터널> 위 쯤에 있었던 <서전문 西箭門>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이 지역으로 옮겨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동네가 <새문안>이 되었고
교회 이름까지 <새문안 교회>라고 짓게 되었답니다.
또한 <새문안로>를 <신문로>라고도 하는데, 한자로 표기했을 때 <新門路>가 되니
['훈련도감' 터]
<새문안교회>를 지나면 "훈련도감"이 있었었다는 표지석을 만납니다.
['한글가온길' 입구]
<훈련도감터>를 지나면 "한글가온길 입구"를 만나는데
직진해서 <경희궁>과 <경교장>, <돈의문 터>, 그리고 <4.19혁명기념도서관>을 둘러 보고
다시 돌아와 우측 <한글가온길>로 갈 예정입니다.
['흥화문' 터]
이어서 <구세군회관> 건물 모퉁이에 "흥화문 원래 자리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부터 <경희궁>이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현재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은 여기서
제법 먼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작성 된 <서궐도안>을 먼저 보고 답사를 시작하면
<경희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서궐도안']
1820년 <순조> 때에 그려진 "서궐도안" <보물 제1534호>입니다. <경희궁>을 <서궐 西闕>이라고 했죠.
다른 궁궐과 달리 정문인 <흥화문>이 우측 아래 동쪽을 향하고 있고 (현재 구세군회관 자리)
<궐내각사> 자리가 현재의 <서울역사박물관>이란 걸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궐도 일직선으로 남향을 하고 있는데, 건물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수 있죠.
['서울역사박물관' 입구']
['금천교']
모든 궁궐의 정문을 지나면 반드시 "금천교 禁川橋"가 있죠.
궁궐을 출입하는 관리들은 몸과 마을을 깨긋이 하고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나쁜 기운을 모두 씻어 내고 통과하라는 의미조 있겠죠.
여기엔 정문인 <흥화문>은 없지만 <금천교>는 흔적이 남아 복원을 해 놨습니다.
<금천교>를 지나면 궁궐이 시작되는게 아니라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시작됩니다.
옛날 <궐내각사>가 있던 자리인거죠.
['옛 다리 표지석']
['복청교'와 '소의교']
[안내문]
<서울>이 개발되면서 사라진 다리들의 표석을 찾아 몇개 전시해 놨고
['광화문 콘크리트 구조 부재']
<박정희정권> 시절에 <광화문>을 복원하며서 무식하게 철근콘크리트로 복원했죠. 1968년도에...
그리고 현판을 <박정희대통령>이 써서 붙였었죠.
<김영삼정권> 때에 철거 복원 하면서 부재를 몇점 전시 해 놨습니다.
['종루 주춧돌']
지하철 공사 하다가 발굴된 오리지날 <보신각>의 종루 주춧돌을 전시해 놨습니다.
<보신각>이라고 부르게 된게 <고종> 이후부터라는거 처음 알았습니다. ㅎ
[추억의 '전차']
교복 입고 등교하는 아들에게 보자기에 싼 벤또(도시락)을 급히 가져와 전달하는 엄마의 모정이
맘 찡하게 하는 광경이 추억 속에...
['경희궁공원']
<경희궁공원>을 지나면...
['흥화문']
[안내문]
['옛 흥화문']
[1930년대 폐허가 된 '경희궁']
흥망성쇄...질곡 많은 "흥화문 興化門"이 자기 자리도 아닌 곳에서 옛날을 그리워 하며 서 있습니다.
이 문은 <이또 히로부미 伊藤博文>의 사당인 <박문사 博文寺>의 정문으로 옮겨 사용되었는데
그 자리가 현재 '장충동' <신라호텔>입니다.
그러니까 이 <흥화문>은 <신라호텔>로 갔다가 되돌아 온 것이죠.
['서울중고등학교' 터]
"서울중고등학교 터"
1910년 5월에 일본인 거류민단에 의해 <경희궁터>에 설립된 <경성중학교>가 광복 후 일본인의
철수로 폐교되자 서울시에서 이를 인수하여 <서울공립중학교>로 개교하였답니다
지금은 <서초동>으로 이전했고...
['서울시 교육청' 조망]
<서울시 교육청>이 옆에 보이고, <기상청>도 그 옆에 있었는데....
['경희궁']
[안내문]
[안내도]
"경희궁 慶熙宮"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조선왕조 건물들은 쪽바리들이 불태운게 아니라 우리 백성들이 화가 나서
<경복궁> 등에 불질렀다고도 합니다. 백성들을 두고 저만 살겠다고 도망간 <선조>가 더 적군이란거죠.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조선왕조>를 재건하기 시작하며 이 궁궐을 새로 만들었답니다.
하지만 그도 기득권세력들에 의해 사라지고 <임진왜란>에 이어 다시 <병자호란>으로 갔지요.
['숭정문']
['숭정전']
[안내문]
<숭정문>을 들어 서면 "숭정전 崇政殿"이 펼쳐집니다.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유명한 <조대비>의 아들 <헌종>이 즉위식을 올린 곳이랍니다.
특히 <사도세장>의 아들 <정조>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며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친 곳으로 유명합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보수기득권세력인 훈구파들에 대한 선전포고 였습니다.
이 건물 오리지날은 현재 <동국대학교>에 이전 되 있는데 <정각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고
이 건물은 새로 만들어 복원한 건물이랍니다.
['자정전']
[안내문]
<숭정전> 뒤에는 "자정전 資政殿"이 있습니다.
['옛 서울고' 터]
<숭정전>을 둘러 보고 <숭정문>으로 다시 나와 바라보는 <옛 서울고 터>입니다.
윗 사진에서 본 폐허가 되었던 <경희궁>과 현재 모습을 비교하면 진짜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할수도
['서대문' 방향]
['돈의문 박물관 마을']
<경희궁>을 나가 <서대문> 방향으로 조금 올라 가면
<서대문>의 본명인 <돈의문>의 역사 박물관 마을이 있고
['돈의문 터']
"돈의문 敦義門址"
우리가 일반적으로 西大門이라고 부르는 <돈의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 졌고
복원하려니 도로 사정등도 있고 특히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복원도 할수 없답니다.
사진 속에는 아직도 남아 있으니 보여 드리면....
['돈의문']
시대별로 <돈의문>의 주변 모습이 확연히 다릅니다.
전차가 <돈의문>을 통과하고 있는게 재미 있습니다.
['경교장']
[안내문]
"경교장 京橋莊"
<백범 김구선생>이 기거 한 곳으로 여러번 담사 한바 있어 오늘은 생락하고
<경교장>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잠시 후 답사할 <이기붕 저택 터>와 비교하기 위해서 입니다.
<경교장>을 나서서 <서대문로터리>로 향하면...
['4.19혁명기념도서관']
"4.19혁명 기념도서관"을 만납니다.
이곳이 <3.15부정선거>의 원흉인 "만송 이기붕 晩松 李起鵬"이 살던 집터입니다.
<충남 괴산> 출신으로 8·15 광복 이후 <이승만>의 비서, 국방부 장관, 서울특별시 시장,
국회의장직을 역임한 대한만국 역사를 뒤 흔든 인물인데....
<보성고>를 졸업하고 <연세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접시닦기를 하며
아이오와주 <데이버 대학교>를 졸업한 의지의 한국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권력 욕심은 그를 인생 나락으로 곤두박질
독재 영구 집권욕에서 치뤄진<3,15부정선거>로........
['서울적십자병원']
[좌측에서부터 '장남 이강석' 프란체스카여사' '이승만' '이기붕' '박마라아여사' 차남' 이강욱']
<이기붕>의 저택은 <4.19혁명기념도서관> 뒤 <서울적십자병원>에 까지 걸쳐 있었었답니다.
<이기붕>은 장남 <이강석>을 아들이 없던 <이승만>의 양자로 입양시키고 차기 대권을 노렸습니다만...
<3.15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은 되었지만 <4.19혁명>이 일어나 그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그는 미국으로 망명하려고 하던 찰라에 당시 <경무대> 육군 소위로 근무 중이던 장남 <이강석>이
권총으로 아버지, 어머니, 동생을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지요.
권력욕이 낳은 비극의 반대급부는 총살이었습니다. 그 이후 정권도.....
['한글가온길' 입구]
<경희궁>과 <이기붕 집터>를 돌아 보고 다시 <한글가온길> 입구로 돌아 갔습니다.
<가온길>은 <가운데 길>이라는 순수 우리말이라네요.
['한글가온길'에서 '창의궁터' 까지 실트랙]
2. 한글회관-육군무관학교터-봉상시터-방정환탄생지-한성전보총국너-사역원터-
주시경집터-종침교터-내자호텔터-장흥고터-금천교터-창의궁터
<한글가온길>에서 <육조거리 뒷골목>을 지나 <광화문역사거리>를 통과하여
<창의궁터>까지 가는 지도입니다.
['한글회관']
<한글가온길>로 들어 가면 먼저 <한글회관>을 만나고
['육군무관학교' 터]
<한글회관> 건너편 <신문로빌딩> 앞에 "육군무관학교 터" 표지석이 있으며
[봉상시터' 조망]
['봉상시' 터]
이어서 모르고 가면 찾기 어려운 "봉상시 터"가 있습니다.
['로얄빌딩' 앞 '방정환선생 탄생지' 조망]
['방정환 선생 탄생지']
<봉상시 터>에서 우화전하면 <로양빌딩>을 만나는데 <세종문화회관> 뒤 입니다.
이곳에 <소파 방정환선생 탄신지> 표지석이 있습니다.
"어른"이라는 말에 대칭되는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어린이들의 대부이시죠.
['세종문화회관' 뒤 삼거리]
<방정환선생탄신지> 앞에 삼거리가 있는데,
먼저 우측 <세종문화회관> 뒤 울타리에 설치된 <사역원터>를 확인하고 좌측 골목으로 진행합니다.
그 이유는 좌측 골목이 복개된 <백운동천>이 흘러 <청계천>으로 가는 물줄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역원 터' '한성전보총국' '양정학교 터']
<세종문화회관> 뒤 울타리에는 세개의 표지가 있는데
먼저 "한성전보총국"이 있었었다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1885년 6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전선을 연결하여 서로 전보를 주고받았던 곳
그 옆에는 "사역원 터 司譯院址"
외국어 통역관의 양성과 번역 통역을 담당하던 곳
"양정 창학터 養正創學址"
<양정학교>가 원래 이곳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했군요.
['용비어천家' 빌딩]
<용비어천家>라는 오피스텔은 "주시경선생 집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앞뒤 구석구석 찾아 봤는데도 별도의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고...
['종교교회']
['종교교회' 정문 앞]
"종교교회 琮橋敎會"
독특한 이름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종교 宗敎 religion>을 의미하는 <종교교회>가 아니라
이 앞에 흐르는 <백운동천>에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 이름이 <종침교 琮琛橋><종교 琮橋>여서
교회 이름도 다리 이름 <종교 琮橋>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네요. ㅎㅎ
이 교회는 <배화학당>을 설립한 선교사 <조세핀 캠벨>이 세운 교회 중에 하나랍니다.
<조세핀 캠벨>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교회 이름을 만들게 한 <종침교>는 여기서 대각선 방향 건너편 <김&장법률사무소> 빌딩 옆에 있습니다.
['종교교회' 앞에서 '종침교 표석' 조망]
['종침교 터']
"종침교 琮琛橋"
<백운동천>은 완전 복개되어 흔적을 찾을수 없지만 지금도 이 도로 밑으로 흘러 <청계천>으로 가고
있는데, 여기에 다리가 있었다는 것인데 무지 무지 유명한 역사적 에피소드가 있는 다리랍니다.
조선 <성종>대에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폐위하기 위한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형제였던 <충정공 허종 許琮>과 <문정공 허침 許琛>은 <윤씨>의 아들 <연산군>이 세자로
있음을 걱정해, 고민 끝에 사직동에 사는 누이를 찾아 조언을 구했답니다. 이에 그 누이는 꾀를 내어,
훗날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화를 면키 어려우니 어전회의에 가지 말라고 했답니다.
이런 누이의 조언에 따라 그들은 궁궐로 가는 이 다리 위에서 일부러 낙마해 다리를 다침으로써
어전회의에 참석 못할 구실을 만들었다고.....
이로써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올라 자신의 생모 <폐비 윤씨> 복위 문제로 일으킨
<갑자사화(1504)> 때, 이 형제는 살아남았고, <허종>과 <허침>의 목숨을 구해준 다리라 하여
사람들은 그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와 <종침교>라 했고, 세월이 흐르며 <종교>로 이름이 줄었다고...
<종.침 琮.琛>한자의 의미를 옥편에서 찾아보니
<종琮>은 '옥으로 만든 홀대'를 의미하고, <침琛>은 '보배'라는 뜻으로 좋은 뜻이더군요.
['서울경찰청']
<종침교>를 지나면 "서울경찰청"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는 "내자호텔"이 있던 자리이죠?
일제시대 <미쿠니(三國)석탄회사>의 사원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 <내자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재 탄생해 주한 미군들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일반호텔이 되었는데, 유명한 일화가 있는 호텔이었죠
<10.26사건>으로 <김재규 정보부장>이 재판을 받던 재판장에서 나온 이야기 하나 언급하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음주 가무에 동원된 여성들이 <궁정동 안가>로 가기 직전
이곳 <내자호텔> 1층 커피숍으로 호출되어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을 기다리며 유의사항을
교육받던 곳이었는데, 그때 동원 관리되던 여성들의 수가 200여명이었다네요.
. 특히 <10.26사건> 때에 사건 현장에 있었던 두 여인의 현장검증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이 둘은 <여대생 신재순>과 <가수 심수봉>이었죠. <심수봉>도 대학생 시절...
그이후 <그때 그사람>이라는 노래가 공전의 힛트를 쳤고....
['장흥고 터']
<서울경찰청> 자리는 조선시대 "장흥고 터 長興庫址" 였군요.
['경복궁역교차로']
<내자동>을 지나면 <경복궁역 교차로>를 만납니다.
길 건너 좌측은 <경복궁역1번출입구>가 있는데 저곳에는 <한성정부유적표지석>이 있고
그 뒤에 <금천(교)시장>이 있었는데 <청계천> 이북에선 매우 큰 시장었다는군요.
그런데 도로 확장 공사로 쪼그라 들었다는데....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금천(교)시장>이라는 명칭은 이젠 찾아 볼수 없고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이 근처에서 <백운동천>를 건너 <경복궁>으로 가는 다리가 있었었다는데
['적선골음식문화거리']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라는 <금천(교)시장> 건너편에는 <적선골음식문화거리>가 <경복궁>까지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곳에 <고려 충숙왕> 때 만든 당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금천교>가 있었었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1928년 물길이 도로로 변하며 매몰되고 말았다는군요.
['금천교'의 옛 모습]
<백운동천>이 제법 큰 물길이었군요.
['경복궁']
<적선골음식문화거리>를 통과하면 <경복궁>을 만나는데 <국립고궁박물관>이 담 너머 보입니다.
<적선동 積善洞>은 주역에 나오는 <적선지가 필유여경 積善之家 必有餘慶>에서 따온 말이라는데
"이웃에 선을 베풀며 살자"라는 의미를 가진 동네 지명의 유래라고..
['창의궁 터']
<효자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창의궁 터"를 만나는데
<영조>가 왕이 되기 전 <연잉군> 시절에 살던 집..이런 집을 '잠저'라고 하죠.
여기서 『1부』답사기를 마치고 계속해서 『2부』답사기로 이어 집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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