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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종로구』
 『동대문에서 대학로까지 역사유적』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에서 '동대문'까지 실트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출발하여 <훈련원터> <미육군공병단터> <성제묘> <염초청터>를 둘러
  보고, <전태일 분신터>와 <동대문전차차고터>를 지나 <북평관터> <한양성곽박물관>을 통과하여
  <낙산 정상>에 오르고, <창신채석장전망대>와 <총무당>을 답사하고 <이화장>과 <대학로>를 갑니다.


  ['동재문역사문화공원역' 1번출입구]              12:14       
  2021년 10월 13일 (수) 구름 약간 맑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는 <옛 동대문운동장>에 2014년에 건축한 복합문화공간이랍니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라는 건축설계가가 설계한 '환유의 풍경'을 담은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동대문야구장 유구' 전시]
  
  <옛 동대문운동장 터>는 역사적으로 군대와 관련이 많습니다.
  <조선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이 1594년에 설치되여 400여년을 군사훈련으로 운영하다가
  <구 한말>에는 <하도감>을 신식군대인 <별기군>으로 바꿔 훈련원으로 사용 했는데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면서 <하도감>을 폐지하고, 이곳에 <청나라> 제독 <오장경>이 주둔했고
 그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쪽바리들이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건설했다는데...
  1925년 일본의 왕세자였던 "히로히또"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나라 군사역사가 살아 있는 <하도감 터>를 매립하여 운동장을 만들었다는거 아닙니까. 에휴~~
  '히로히또'는 일본 최장 군주가 되고 세계2차대전을 벌여 최후에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 일왕인데
  1989년에 아들 '아키히토'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었으니 죽은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때 매립되어 흔적을 찾을수 없다가 2008년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복원 공사를 할때 
  땅 속에 뭍혀있던 유구들을 찾아 모아 이곳에 전시 했답니다.


  [사거리에서 '동대문' 방향 조망]                12:22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사거리>에서 잠시 후 방문할 <동대문> 방향을 조망하고


  [사거리에서 '을지로5가' 방향]
  
  먼저 <을지로5가> 방향으로 100m 정도 조금 진행하면....



  ['중앙의료원']                       12:25
  
  "국립중앙의료원"을 만납니다. 두번째 방문입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한국전쟁> 후 부상병과 환자 진료와 의료요원 교육을 목적으로 
  스칸디나비아 3국, 즉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 한국정부가 함께 설치한 
  공공의료원이랍니다.
  요즘 '코로나19사태'로 눈코 뜰새 없다는 "국립중앙의료원" 안으로 들어 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의료원 본관 앞에 "훈련원 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군인들의 무술훈련과 "무과 과거시험"을 보던 "훈련원"이 있었던 곳이란거죠.
  그러니까 조금전 <동대문운동장 터>의 <하도감>의 본부가 이꼿 <훈련원>이었던거죠.
  "훈련원 訓鍊院"은 1392년(태조1년)에 설치하여 조선왕조가 멸망 할때까지 존속된
  <조선왕조 500여년>을 지탱하는 군대의 핵심 군인을 뽑고 훈련했던 곳이어서 그 의미는 무척 큽니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총칼로 무장한 막강한 무력을 가진 군사집단의 중심지였으니
  <중종반정>등 쿠데타의 핵심 거처이기도 했답니다.


  ['훈련원공원']                     12:29
        
          ['윤관장군 동상']

  ['훈현원공원 광장']

  ['안내문']
  
  <중앙의료원> 옆에는 "훈련원공원"이 조성되 있습니다.
  <옛 훈련원>은 이 공원과 <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을지로6가>와 <청계천6가> 사이 모두가
  <훈련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 무과 과거를 본 곳이기도 한데, 말타기 시험에서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져 낙방한 곳이어서 역사의 현장을 찾는 느낌이 새롭습니다.
  낙방한 4년 뒤인 1576년(선조 9년) 봄 2월, 32세의 나이로 무과에 간신히 합격했답니다.
  성적은 합격자 28명중 중간 정도인 丙科(병과)의 제4등이었다는데 그런 정도의 성적이라면 종전 
  같으면 관직을 제수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할 정도라니 어느 정도 시험점수였는지 알수 있죠.
  하지만 시험 점수로만 인간을 평가 할순 없죠? 성적과 능력은 별개라는 교훈을 준 '이순신장군'입니다
  이곳엔 조선시대 장군들의 동상은 없고, 고려시대의 <윤관장군> 동상이 설치되 있어 좀 그렇군요.
  왜냐하면 고려시대엔 <개성>에 <훈련원>이 있었으니 조선시대와는 관계없는 곳이니까요.


  ['훈련원공원 종합체육관']                   12:32
  
  <훈련원공원> 서쪽에는 <훈련원공원 종합체육관>이 있는데, 그 앞에 표지석이 하나 있습니다.
  "경성사범학교 교지비 京城師範學校 校址碑"
  쪽바리들이 1921년 4월에 일본인 초등교원 양성기관으로 설치했던 <조선총독부사범학교>를 
  1922년에 <관립 경성사범학교>로 개편하여 교사 양성을 한 곳이랍니다.
  그러니까 <훈련원>을 해산하고 그 터에 <경성사범학교>를 설립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개칭 승격되었고, 그 이후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있다가 
  다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던 것이죠.
  <헌법재판소>는 <종로구 재동>에 있었던 <옛 창덕여고> 자리로 이사했습니다.
  <훈련원>→<경성사범학교>→<서울사범대>→<농협중앙회>→<헌법재판소>→<훈령원공원>으로
  변모한 역사의 흔적


  ['동호로']                       12:34
  
  <훈련원공원>에서 서쪽 골목으로 나가면 <동호로>를 만납니다.
  <동호로>는 <종로5가>에서 <청계천5가>를 지나 <장충체육관>으로 이어지는 도로랍니다.
  50m 정도 <청계천> 방향으로 가면...



  ['구 경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                    12:35
  
  <경성사범학교>가 있었던 <훈련원공원> 뒤에는
  "구 경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가 폐가가 되며 쓸쓸히 있습니다.
  <경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는 조금전 <훈련원공원>에 있었던 <경성사범학교> 뒤에 딸려 있던 
  3개의 부속학교 가운데 하나였답니다. 1922년 설립된 이 학교는 일본인 학동들을 위한 학교였다는군요.
  <6,25전쟁>을 격으며 이 학교는 "미육군 극동공병단(FED)"이 주둔해 오다가
  현재는 <국방부 소관 국유재산>이니 출입을 제한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을 뿐
  앞으로 월 하려는지 이렇게 방치되 있습니다.


  ['청계5가 지하상가 4번출입구']                  12:39
  
   <구 경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에서 조금 진행하면 <청계5가 지하상가 4번출입구>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성제묘"가 있다고 해서 찾아 가야 하는데 길찾기에 유의 해야 하더군요.
   <←성제묘>라고 표기 한곳을 자세히 보면....


  ['성제묘' 조망]
  
  <코리아 못>이라는 가게와 <경북수출포장>이라는 가게 사이 골목으로 들어 가야 하더군.
  지하상가를 통과해 건너 가면....



  ['성제묘']

  ['현성전']

  [안내문]
  
  "성제묘 聖帝廟"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삼국지>의 <관우 關羽>를 神으로 모시는 사당으로 민간인이 세운 私廟랍니다.
  참고로 국가가 세운 <성제묘 聖帝廟>는 "동묘 東廟"가 있지요.
  사진 촬영을 위해 간신히 담벼락을 타고 올라 <관우 부부>를 모신 전각인 <현성전 顯聖殿>을 찍고
  골목을 나와 <청계천>으로 조금 가면...


  ['염초청 터']                   12:45
  
  "염초청 터 焰硝廳址"
  <염초청焰硝廳>은 조선시대 "화약"을 제조하던 관아로서 임진왜란 때 이곳에 본청이 설치되었답니다. 
  관아의 규모는 112칸으로 비교적 큰 것이었는데, 고려시대 말부터 이어온 화약제조 기술이 이어져 
  <염초청>은 조선의 국방기술의 중심에 있었던 관청이었답니다.
  1882년 <임오군란> 때에 폐지 되고 이 자리에 <방산시장>이 들어 서게 되었다고...
  조선시대 <염초청>은 도성에 2곳이 자리잡고 있었다는데
  하나는 이곳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서울역 근처 <염천교(鹽川橋)>에 위치하고 있었답니다. 
  <염천교>라는 이름의 유래부터가 <염초청> 앞에 있다고 하여 <염청교焰廳橋>,<염초청교焰硝廳橋>라 
  불리다가 후대에 이름이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마전교']
  
  <염초청터> 표지석 건너편엔 "마전교 馬廛橋"가 <청계천>을 건너게 해 줍니다.
  <마전교>는 조선시대 지금의 <종로5가>와 <을지로6가(방산동)> 사이의 <청계천>에 놓여진 다리인데.
  건립시기는 <태종> 때 쯤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영조> 때에 이르러 <마전교>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다리 주변에서 말을 사고 파는 시장이 열렸기 때문에 "말전다리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고


  ['청계천 평화시장']
   
  <마전교> 앞 <염초청 터>에서 <청계천>을 따라 내려 가면
  우측엔 <평화시장>의 <헌책방 서점>들이 좀 보이는데 예전엔 엄청 많았던 <헌책방거리>였었죠.
  

  ['전태일다리']                  12:58~1:06
  
  <평화시장 헌책방거리>를 지나면 <평화시장> 중심부에 도착하는데
  "전태일다리"라고 하는 "버들다리"를 만납니다.
  이곳이 또한 근대 노동운동 역사의 현장이죠.


  ['버들다리' 위의 '전태일']

  ['전태일']
  
  <버들다리> 위에는 "전태일 全泰壹 (1948년 9월 28일~1970년 11월 13일)" 像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더 얘기할 말이 없습니다. 모두 아는 얘기이니....


  ['전태일' 분신 장소]

  [분신장소 표시판']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이곳에서 스물둘의 나이로 노동착취에 항거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과 함께 분신한 장소가 그날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지판 위를
  지나는 사람들은 분주하기만 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뒤로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 속에서도 많은 노동관련 이슈들이 터져 나왔고,
  분신사건 이후로 <박정희 대통령>은 71년 세번째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공약에 
  <노동문제해결>을 넣어서 처리를 천명했으나, 당선된 후에는 이를 뒤집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서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아예 박탈해 버렸지요.
  그리고 1년뒤 10월엔 <유신>으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여사>는 아들의 뒤를 이어 노동운동을 계속 하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 계엄포고 위반으로 감옥생활을 했는데, 최근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 신청을 해서
  곧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오겠습니다만, 그 어머니는 별세하신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오간수문교']                       1:08
  
  <전태일다리>에서 조금 더 내려 가면 <오간수문교>를 만나는데 좌회전하면...


  ['흥인지문']                  1:10

  [안내문]
  
  "보물 제1호 흥인지문 興仁之門>
  <동대문역 7번출입구> 앞에는 "경성괘도회사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요즘 말로 <서울 외곽 전철역>이 있었습니다.
  시내에는 <전차>가 다녔지만 <동대문>에서 <왕십리-뚝섬-광나루>까지는 <괘도전차>가 다녔지요.
  철길 옆에는 무수한 판잣집들이 나열되 있어 주택난을 실감하게 했으며, 많은 어린이들이 위험하게
  철길에서 놀던 광경이 희미하게 스쳐 갑니다.
  

  ['전차 차고 터']                  

  [안내문]
  
  <동대문> 앞 시내 방향에는 "전차 차고 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상영지인 <한성전기회사>가 있었던 곳이랍니다.
  그 후엔 <동대문시장>이 자리 잡고 특히 현재의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서울 호텔"이 있는 자리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죠.
 

  ['1955년도 사진']
  
  1955년도에 촬영한 <동대문 전차 차고지> 사진입니다.
  <전차 차고지>와 주변을 확실히 알수 있죠?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
 

  ['흥인지문공원' 조망]
  
  <동대문> 옆 <흥인지문공원>을 바라보며 <이화동> 방향으로 건너 가면...
 

  ['북평관 터']                    1:16
  
  <서울게임아카데미>라는 건물 앞에서 "북평관 터 北平館址" 표지석을 만납니다.
  조선 초기 농경생활이 미진했던 <여진족>들이 말,산삼, 모피 등을 가져와 
  의류와 쌀 등 먹거리와 물물교환을 해 가곤 했다는데, 당시 <여진족>의 사신들을 접대하기 위해 만든
  국영의 <객관(客館)>이었는데 조선 중기에 없어 졌답니다.


  ['디자인재단' '한양도성박물관']
  
  건너편에는 "한양도성박물관""디자인재단"이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화여대부속병원>이었지요.
  <한양도성박물관> 뒤로 올라 가서



  ['한양도성 낙산구간']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낙산> 정상 방향으로올라 가면...


  ['창신 채석장전망대' 조망]                    1:28
  
  <창신동>에 있는 <창신숭인 채석장전망대>가 조망됩니다.
  잠시후 <채석장전망대>를 답사 할 예정이어서 어디인지 미리 확인하는 겁니다.


  ['이화동']
  
  <한양성곽> 정상부까지 나름대로 개성을 뽐내는 <이화동 카페>들이 즐비하게 널어서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 가면...


  [쉼터 전망대]                     1:38
  
  <서울시내>를 조망하기 좋은 곳에 쉼터가 있어 쉬며 조망을 하고 갑니다.
  

  [북쪽 조망]
  
  북쪽으로는 <북한산>의 <보현봉>과 그 뒤로 <백운대 인수봉>등이 보이고


  [서쪽 조망]
  
  서쪽으로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과 <서울대병원>이 보입니다.
  여기서 <서울대병원>을 조금 줌인해 보면...
   

  ['서울대병원' 조망]
  
  앞으로 찾아 갈 <마로니에공원>과 <서울대병원> <창경궁>이 지척에 있습니다.


  [남쪽 조망]
  
  남쪽을 바라보면 역시 <남산>이 확실히 조망됩니다.


  ['낙산' 정상]                       1:43
  
  좌청룡 우백호라는 풍수지리에 <좌청룡>에 해당한다는 "낙산 駱山 124.3m" 정상에 올랐습니다.


  ['창신 채석장전망대' 조망]
  
  <낙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잠시 후 다녀올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 위치를 가늠해 보고


  ['한성대' 조망]
  
  북쪽으로는 <한성대> 좌측 아래에 있는 <삼군부 총무당>의 위치를 가늠 해 보고 
  잠시 후 다녀 올 예정입니다.


  ['낙산공원' 주변 지도]
  
  <낙산> 정상에서 앞으로 진행 하게 될 코스를 지도를 통해 알아 보고 출발합니다.
  먼저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를 다녀와 <삼군부 총무당>을 들리고 <낙산공원 중앙광장>으로 돌아와
  <이화장>을 거쳐 <대학로>로 갈 예정입니다.


  ['낙산공원' 출입문]                       1:45
  
  <한양성곽>의 <낙산공원>을 빠져 나가 앞에 보이는 <창신쌍용아파트202동>으로 가서
  우측으로 <채석장>을 다녀 옵니다.
 

  ['창신숭인 채석장전망대']                   1:53~2:05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
  <일제강점기> 시절에 여러 공공기관의 건물을 짓기 위해 채석을 한 채석장이 바로 <낙산>의 동쪽에
  있어서 그 파괴된 <창신동 숭인동>의 흔적을 조망 하도록 전망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사정상 오후4시부터 오픈한다고 문을 잠궈 놨더군요. 휴~
  카페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무료로 엘리베이트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조망 할수 있다는데...
 

  [근린공원]
  
  할수 없이 아래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내려 가니 채석장 90도 절벽이 바로 앞에 있고


  ['동망봉 채석장' 조망]
  
  <단종 비>인 <정순왕후>가 <영월>로 유배를 간 <단종>을 그리워 하며 한없이 울었다는 <동망봉>이
  건너편에 보입니다.
  <서울역> <시청> <구 조선총독부> <한국은행>등 근대 서울을 대표하는 일제시대 건축물들을 짓는데
  이곳에서 채석한 돌을 사용 했답니다.
  바위의 질도 좋고, 거리가 가까워 운반이 쉬워서 <낙산>과 <동망봉>등을 폭파 했답니다.
  <창신동>이 '달동네'라는 빈촌이 된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하니 볼수록 애처롭습니다.
  <동망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의 흔적을 찾아서" 여기 클릭 


  ['낙산 삼거리' 회귀]                     2:09
  
  <채석장 전망대>에서 다시 <창신쌍용아파트202동> 앞으로 와 <낙산삼거리>라는 버스정류장에서
  계단으로 내려 갑니다.


  [계단 내림길]
  
  이 계단은 <한성대>로 내려 가는 계단인데 제법 긴 계단이었습니다.
  계단을 3분여 내려 가면...


  ['한성대' 옆골목]                    2:12
  
  <한성대> 담장 옆 골목길을 만나는데 <삼군부 총무당>을 다녀와 좌측 계단으로 올라 갈 예정입니다.
  100m 정도 골목을 내려 가면...


  ['삼선어린이집' 출입구]                     2:14
  
  <삼선어린이집> 입구를 만나는데 여기가 <삼선공원>이기도 하더군요.


  ['삼선공원']
  
  <삼선어린이집> 앞에는 <삼선공원>이 펼쳐지는데 조금 내려 가면...
   

  ['총무당' 뒷면]                     2:16~2:18

  ['총무당']

  [안내문]
  
  "삼군부 총무당 三軍府總武堂"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이 건물은 현재의 <광화문> 앞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대원군>이 설치한 군사기관이었던
  "삼군부 三軍府"의 중심 건물이랍니다.
  <총무당總武堂>은 <청헌당淸憲堂>·<덕의당德義堂>과 함께 원래 삼군부 내에 있었던 건물인데
  1930년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고하고, <덕의당>은 언젠가 없어졌고, 
  <청헌당>은 1967년 <정부종합청사>가 건립될 때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옮겨졌답니다.
  요즘같으면 '국방부' 건물인데 쪽바리들이 이 구석진 곳으로 옮긴 이유야 짐작하겠지만
  해방이 된 후 지금까지도 인적이 드문 이곳에 두고 있다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낙산' 정상 회귀]                      2:29
  
  <채석장 전망대>와 <삼군부 총무당>을 둘러 보고 다시 <낙산공원>으로 돌아 와서


  ['낙산공원']                    2:31~2:39
  
  <낙산공원>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 가면



  [계단 내림길]
  
  계단 내림길이 <낙산중앙광장>으로 이어지는데
  내려 가서 뒤돌아 보면...


  ['낙산중앙광장']                    2:44
  
  "낙산중앙공원"에는 "낙산전시관"이 있고, 공연장과 편의점도 있더군요.
  여기서 남쪽 방향으로 조금 가면...


  ['동숭어린이집']                  2:48~2:53

  ['이화장' 조망]                    
  
  <동숭어린이집>을 만나 우회전 하면 <이화장>이 보입니다.
  우측으로 돌아 <이화장>으로 가면...


  [이화장' 후문]                   2:59

  ['이화장' 정문]                  2:01

  [안내문]
  
  "이화장 梨花莊"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 박사"가 살던 집이란건 다 알지만...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는데 안내문 내용이 좀 그렇군요.
  이곳은 일찍이 <중종> 때의 문신인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옛 집터로 
  일명 <신대(申臺)>라 부르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었답니다. 
  <중종> 때 문장.글씨.그림을 잘하여 당대의 삼절(三絶)이라는 칭송을 받은 <신잠(申潛,1491∼1554)>이
  <이화정에서 술에 취하여>라는 시를 읊으며 젊은 날을 회고하였다는데, 
  거기에 "庭前只有李花樹 不見當時歌舞人"는 구절이 나온답니다.
  해석하면 "뜰 앞엔 배꽃만이 피었을 뿐, 노래하고 춤추던 그때 사람들 볼 수 없구나"라는 뜻
   

  ['이화사거리']                       3:09
  
  <이화장>에서 <이화사거리>로 나가면 <대학로>가 이어 집니다.


  ['서울사대부국' '서울사대부여중']
  
  <이화사거리>에는 <서울사범대학 부설 초등학교와 여자중학교>가 있습니다.
  <훈련원터> 뒤에 있던 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한듯합니다.


  ['대학로']
  
  <대학로>가 펼쳐집니다.
  1975년도 까지 <서울대학교>가 있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


  ['흥덕동천']
  
  "흥덕동천 興德洞川"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산 곳이 현재의 '혜화동' <옛 보성중고> 자리었답니다.
  말년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 난 뒤 자신이 살았던 집터를 절터로 희사하여 <흥덕사>가
  세워 졌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을 비롯한 신하들이 <유교국가>를 건설하려 했지만
  자신은 끝까지 불교를 신봉한 열열한 불교신자였지요. 그후 <흥덕사>라는 절이 있어 <흥덕동>이
  되었다는데 그곳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개천이어서 <흥덕동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현재 보는 이 <대학로>는 <흥덕동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개천이었답니다. 
  <구 서울대>와 <대학로> 사이에 흐르던 <흥덕동천>을 서울대생들이 <세느강>이라 부르고
  <서울대 본관> 앞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고 하며 <흥덕동천>을 건너 다녔다는데 
  현재는 <지하철4호선> 공사를 할때 완전 복개되어 지표면에 이렇게 흔적 모양만 남겨 놓고 
  사라 졌지만, <흥덕동천>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마 복개된 이 거리 밑으로 현재도 흐르고 있답니다.


  ['한국방송통신대' 정문]                   3:13~3:18

  ]'한국방송통신대' 본관]
  
  이어서 "한국방송통신대"를 만납니다.
  <구 서울대> 자리를 이어 받아 평생학습사회 교육 메카로 올라 섯다고...
  


  ['방송대 역사관'']

  [안내문]
  
  "방송대 역사관" 
  <대한제국> 때의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건물로서 <사적 제279호>로 지정 됬답니다.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였다는군요.
  후에 이 시험소는 <서울대 공대>로 이어 졌다고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 야외 공연장']                    3:19~3:30
  
  "마로니에 공원"
  <구 서울대 본관> 앞에 있었던 공간을 활용하여 공원을 만들었는데 <동아그룹>이 건설 기부했다는군요.
  <마로니에 공원>엔 진짜 <마로니에 나무>는 세 그루 밖게 없고, 대부분 일본칠엽수라고 하는군요.
  <경성제국대학>으로 시작된 학교이기에 일본칠엽수가...
   

  ['예술가의 집']

  [안내문]
  
  "구 서울대 본관"
  현재 <예술가의 집>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건물이 
  <옛 서울대 본관>으로서 이곳에 아직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서울대 건물이라고


  ['이상옥 열사']
  
  <마로니에공원>엔 "이상옥 열사상"이 있는데 저에게는 좀 생소한 독립애국지사이군요.


  ['서울대터 표지석']

  ['옛 서울대 모형도']

  [안내문]
  
  <마로니에 공원> 가운데엔 <옛 서울대 터> 표지석과 <옛 캠퍼스 모형>이 설치되 있고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한국문화>와 <예술생산의 심장부>로서의 건축물로
  건축사적으로도 보존가치가 높아 2013년에 <서울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아르코>가 뭔 뜻인지 사전을 찾아 봐도 알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ㅎㅎ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영어 표기로 "Arts Council Korea"라고 하는데 이것의 약자라고 하는데
  "arko"를 음역 한것이라고...ㅎㅎ 이런것도 예술인가? 


  ['이음']                    3:31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 것을 이곳 "이음"에서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뭔 뜻인지 뭐하는 곳인지 궁금했는데 그냥 지나치기만 했기에 이번 기회에 실체가 뭔지 알아 봣습니다.
  이곳 "이음""한국장애인 문화 예술원"이 2015년도에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는 공간이며,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예술 창작 발표와 교육의 장이랍니다
  한마디로 <장애인 문화예술의 장>이라고 할수 있는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 주는 곳>이라고
  

  ['파랑새극장']
  
  "파랑새극장"
  1984년에 문을 연 대학로 최초의 민간 소극장으로 <김광석>, <동물원>, <들국화>, <신촌블루스>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파랑새 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고, 관객과 만나 음악세계를 만들어 왔답니다.
  코로나사태로 이곳의 예술문화 극장들은 개점 휴업....빨리 정상을 되 찾아야 할텐데


  ['학림다방']                      3:32
  
  <파랑새극장> 건너편에는 유명한 "학림다방"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군요.
  "학림사건"
  1981년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학생운동단체를 국가전복세력으로 몰아
  일망타진 했다는 사건이 <학림사건>이었는데, 학생들이 시위를 계획한 곳이 바로 저 <학림다방>이어서
  붙여진 이름이죠. <전두환 세력>은 학생들을 안기부가 불법체포하여 장기간의 불법 구금과 고문을 
  통하여 사건을 조작하여 최대 무기징역까지 때렸지요.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재심판결에서  "사법부의 과오로 인해 피고인들이 고초를 겪은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이 판결이 조그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며 모두 무죄 판결을 다시 내렸습니다.


  [조형물]
  
  <파랑새극장> 앞에 있는 뭔 뜻인지 모를 조형물을 보며 답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동대문' 주변 지도]

  ['낙산공원' 주변 지도]
  
  오늘 걸은 거리는 약8km이며, 3시간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점점 깊어 가는 가을 속에서 찾아본 역사 문화 유적이었는데 정말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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