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역사문화 탐방』
『이수정터-염창터-증미산-광주바위-허준박물관-공암나루터-허가바위-
하마비-양천현아지-양천향교-궁산-소악루-겸재미술관-궁산땅굴』
['구글맵']
<9호선 염창역>에서 출발하여 <이수정>이 있었던 터를 찾아 보고,
소금 창고였던 <염창 터>를 지나 <증산>을 올라 주변을 조망하고,
우리민족의 자랑 <동의보감>이 집필된 <허준공원><허준박물관><탑산><공암나루터><허가바위>를 탐방하며
계속해서 <양천관아터><양천향교>와 <궁산>에 올라 <소악루>에서 한강하구를 감상합니다.
마지막으로 <겸재 정선 미술관>과 <궁산땅굴>을 탐방하는 10.5km를 갑니다.
['염창역 3반출입구'] 11:55
2021년 3월 3일 (수) 맑음 연무
<9호선 염창역 3번출구>로 나가 동쪽으로 직진합니다.
['염창역'에서 '증산'까지]
먼저 주변 상세 지도를 숙지하고 출발합니다.
<양화교>에서 <안양천>으로 내려가서 [한강-안양천 합수부]를 확인하고
<이수정>으로 올라 가 주변을 조망하고, <염창 터>를 지나 [염창공원]이 있는 <증산>으로 갑니다.
['양화교 입구']
<9호선 염창역 3번출구>에서 직진하면 [양화교] 입구를 만나는데 [양화교]로 가는 보도가 보이지 않지만
우측 [목동] 방향으로 조금 가면 [양화교]로 가는 횡단보도를 만날수 있고
['양화교'] 12:03
[양화교]에 올라 조금만 진행하면...
(<양화교>와 <양화대교>는 구별해야 합니다.)
['안양천 진입로']
<안양천>으로 내려가는 진입로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안양천 수변길']
계단을 내려가 <안양천 수변길>을 만나면 <한강> 방향으로 [양화교] 밑을 통과해 진행합니다.
이 계단은 근간에 새로 만들었나 봅니다. 지도에는 나오지 않더군요.
['안양천-염창동 진출입로'] 12:14
[양화교]를 통과해 10여분 진행하면 <안양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을 만나는데
[올림픽대로]가 지나는 [염창교] 앞에 좌측으로 올라 가는 <안양천-염창동 진출입길>이 있습니다.
['안양천-염창동 진출입 계단']
<안양천-염창동 진출입길>로 올라 가면 앞에 빨간색 건물이 보이는데 [경인양행]이라는 회사 건물이더군요.
['염창동둘레길' 입구] 12:17
<이수정>으로 가는 길은 [경인양행] 건물 우측에 자동차 도로 사이에 있는데
[염창동둘레길] 입구이기도 했습니다.
['염창동둘레길']
[염창동둘레길]를 따라 조그만 동산으로 올라 정상에 도착하는데 옛날엔 "도당산"이라는 동산이었답니다.
여기서 뒤돌아 조망을 하면...
['안양천-한강 합수부' 조망] 12:21
"안양천-한강 합수부"가 보이는데 합수부를 <올림픽대로-염창교>가 뒤덮고 있습니다.
이 광경은 잠시 후 탐방하게 될 <이수정 二水亭>과 절대적 관계가 있으니 관심 가져야 하겠고...
<이수 二水>는 <양수 兩水>와 같이 '두물머리'라는 의미이니...
건너편엔 동양 최대 인공폭포라는 <양화인공폭포>가 있는 "쥐산"이 정수장 건설로 산높이가 낮아져 있고
<쥐산> 뒤에는 <고양이산>이 있었다는데 개발로 흔적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지명들이 재미있죠?
또한 저 <쥐산>은 <한남정맥 백운산>에서 분기하는 "관악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로서
좌우에 <탄천>과 <안양천>의 경계를 이루며 뻗어와 그 맥을 다하는 곳이 되겠습니다.
[관악지맥]이 궁금하시면 제가 쓴 <관악지맥 산행기>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염창정'] 12:22~12:27
봉우리를 지나면 바로 "염창정 鹽倉亭"이러는 정자를 만나는데, 안타갑게도 코로나사태로 꽁꽁 묶여 있는데
현재는 아파트 단지 쉼터로 주민들이 <염창정>이라는 이름으로 이용하지만 이곳이 유명한 "이수정"이
있었던 자리랍니다. 정자 우측 뒤로 그 흔적을 증명하는 표지석이 숨어 있는데 쬐끔 보이죠? ㅎ
['이수정 터']
"이수정터 二水亭址"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숨어 있는 표지석입니다.
<세종대왕>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이 이곳에 <임정 林亭>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경치를 즐기다가
<광해군> 시대의 [한흥군 이덕연]과 그의 동생 [충숙공 이덕형]이 물려 받아 수리하여 <이수정>이라 했답니다.
[충숙공 이덕형]은 '한산 이씨'로서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과는 다른 인물인데
이 분들은 '한산 이씨'이고, [한음 이덕형] 선생은 '광주 이씨'입니다.
.
"충숙공 이덕형"..이 분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인물이어서 저도 아는 분이니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이 분은 [인조반정] 당시 도승지로서 <광해군>의 최측근이었습니다.
그러니 [인조반정] 쿠데타 세력들에 의해 제거 되야할 제거 대상 1호였습니다만
그런데 자신이야 죽어도 좋으니 자신이 섬기던 옛 임금 <광해군> 많큼은 목숨을 보전해 줄 것을 강력 요구헤서
쿠데타 세력들에게도 그 충성심이 돋보였으니, 오히려 반정 주역들이 권력안정을 위해 포섭한 인물이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호도 <충숙공>을 받은 인물이니 인물 됨됨이를 짐작 할수 있죠?
그러나 이들 형제가 서인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것 같았을 것이란건 당연지사...
그래서 <이수정>을 고쳐 짓고 언제라도 물러날 준비를 해 두었고 물러나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는 시간을...
<이덕연 이덕형> 형제는 두분다 80세 이상 사셨는데 당시로는 엄청난 장수를 누렸고
<이덕연 선생>은 말년에 호를 <이수옹 二水翁>이라 했다고도 합니다.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이수정']
<겸재 정선 선생>은 <이수정>을 그림으로 남겼으며 소중한 우리나라 문화 유산이 되었습니다.
옛날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진경산수화로서 <이수정>의 아름다움을 음미 할수 있습니다.
<이수정>은 정자라기보다 주거 주택으로 보이는군요.
이 산수화와 현재의 <안양천-한강 합수부>인 [二水]는 너무나 변해 있어 옛날이 그리워지는군요.
['치성단']
<염창정> 앞에는 치성을 드리는 <치성단 致誠壇>이 있고
['염창정' 앞 아파트단지]
[안내판]
['염창정' 전경]
<한흥군 이덕연>과 <충숙공 이덕형>이 집과 정자를 짓고 살았을 터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 있어
사람 살기 좋아진 시대를 대변해 주지만 옛 그림이 더 친근감이 가는 것은 무었 때문일까...
['염창동둘레길']
<이수정 터>에서 아파트단지와 <올림픽대로> 사이로 난 [염창동둘레길]을 따라 7분여 진행하면....
['염창나들목'] 12:34
아파트단지와 <한강>을 잇는 "염창나들목"을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염창초등학교>로 잠시 가면
['염창 터'] 12:37
<한강우성아파트 103동> 정문 경비실 옆에 "염창터 鹽倉址"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동네 이름을 <염창동>이라고 만들어준 "국립 소금 창고"가 있었던 곳이랍니다.
['염창길훈아파트 102동']
['증산' 입구] 12:42
<우성아파트 103동>에서 <201동> 방향으로 올라 가면 <염창길훈아파트 102동>을 만나며
<염창공원>이 있는 <증산>으로 올라 가는 입구를 만납니다.
['증산' 오름길]
[화장실과 운동시설]
['전망대']
<염창산><증미산>이라고도 하는 <증산>을 10여분 올라 가면 전망대를 만나고
['염창산 전망대'] 12:51~12:56
[안내문]
['염창동 이야기']
"증산 拯山 54.6m
세금으로 곡식을 실어오던 세곡선(稅穀船)이 강화만(灣)을 통해 한강으로 들어와 용산으로 가던 도중에
이 산 근처에서 자주 좌초되어서 이 산 아래 한강변에서 곡식을 건지려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답니다.
그래서 <건질 '증(拯)'>자를 써서 <증산(拯山)> 또는 쌀을 건진다고 <증미산(拯米山)>이라 하였는데,
후에 한자가 바뀌어 <증산(曾山)>이 되었다가, 산 아래에 한양으로 운반할 소금을 보관하는 소금창고가
있었다 하여 다시 <염창산(鹽倉山)>으로 산 이름이 바뀌었답니다.
['이수정' 조망]
전망대에서 지나온 <이수정>과 <염창터> 방향을 조망하는데...
옛 정취는 오간데 없고..
바로 아래 보이는 골프연습장은 제가 [목동아파트]에 살 때에 골프를 시작하여 연습하던 곳이였는데
지금은 폐장을 했군요.
['난지도 하늘공원' 조망]
북쪽으로는 늪지대였던 <난지도>가 <쓰레기산>이 되어 <북한산>과 <인왕산><안산>을 가로 막고...
['염창동둘레길' 출입구]
[계단]
[내림길]
<증산 전망대>에서 한강변으로 난 [염창동둘레길]을 따라 6분여 내려 가면....
['염창동-가양동 洞界'] 1:02
<염창동>과 <가양동>의 행정구역 경계를 이루는 도로를 만납니다.
화살표로 표시한 골목으로 들어 가면...
['염강 나들목']
"황금내근린공원"이 이어집니다.
<가양3동>의 [올림픽대로]를 따라 700미터 동서로 이어진 근린공원이랍니다.
[올림픽대로]를 건설하기 전에는 갈대와 억새가 가득한 작은 내천(內川), 즉 "샛강"이 있었답니다.
<한강> 상류에서 침식작용으로 잘게 부서진 '사금(砂金)'이 떠내려 오다가 강폭이 넓은 이곳에서 유속이
느려져 '사금(砂金)'이 내천의 점토층에 쌓였었는데, 이에 주민들이 사금을 채취하면서부터
이 內川을 "황금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한강 제방을 쌓아 육지를 만들고 아파트와 공원을 건설해서 그 흔적을 찾을수 없습니다만
현재는 공원 이름으로만 남아 이곳이 옛날 "沙金鑛"이었음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황금내근린공원>을 7분여 진행하면 [서울둘레길]이 지나는 "염강나들목"을 만납니다.
['서울둘레길 스템프함'] 1:09
"염강나들목" 앞에는 [서울둘레길 스템프함]이 있군요.
제가 서울둘레길을 답사한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와는 비교 할수 없이 여러 시설들이 생겨났고 코스도 좀 바뀌었더군요.
조만간 새로이 <서울둘레길>을 답사 해 볼까 합니다.
['염강나들목 지하도']
['한강변 자전거도로'] 1:12
<염강나들목>을 통과해 나가면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만나 <가양대교> 방향으로 진행헤서
['가양대교' 남단 밑 통과] 1:20
<가양대교> 밑을 지나고...
['구암나들목'] 1:28
이어서 <구암나들목>을 만나는데 [허준공원]으로 연결되는 나들목으로 이곳엔 육교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구암 龜巖>은 <허준 선생>의 호이죠.
엘리베이트를 타고 육교로 올라 갈수도 있고 계단을 이용 할수도 있습니다.
저는 걸어서 올라 갔습니다.
['허준공원'에서 '궁산땅굴'까지]
<구암나들목>에서 앞으로 진행해야할 명소들의 위치를 미리 예습하고 갑니다.
"구암나들목-허준공원-허준박물관-공암나루터-공암바위(허가바위)-양천향교역-하마비-양천관아-
양천향교-소악루-양천고성-겸재 정선 미술관-궁산땅굴-양천향교역" 순서로 진행합니다.
['88올림픽대로 육교']
<구암나들목>인 육교로 올라 가면 전망대가 있습니다.
먼저 조망을 하면....
['증산' 조망]
동쪽으로는 조금 전에 올랐던 <증산>이 <가양대교> 뒤에 보이고
['북한산' 조망]
북쪽으로는 <대덕산>과 <난지도 노을공원>이 건너편에 있는데 <북한산>이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연무가 좀 사라져 가시거리가 좀 길어 지는군요.
['궁산''덕양산' 조망]
서쪽으로는 <덕양산>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한양성]은 <內四山>과 <外四山>이 감싸고 있는데
<內四山>은 [북악산-인왕산-목멱산(남산)-낙산]이고 <外四山>은 [북한산-덕양산-관악산-용마산]이죠.
<덕양산>에는 [행주산성]이 있으며 <한양>의 <外四山> 중에 하나라는거 아시고 계셨나요? ㅎ
['허준공원' 조망] 1:35
육교 남쪽에서는 <구암공원>이라고도 하는 "허준공원"이 조망됩니다.
['공암나루근린공원']
<구암나들목 육교>를 건너 내려 가면 먼저 [공암나루근린공원]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허준공원'] 1:37~1:51
이어서 "허준공원 (구암공원)"이 펼쳐지며, 건너편엔 "대한한의사협회"가 붙어 있습니다.
['허준 선생 동상']
[안내문]
공원에는 "구암 허준 龜巖 許浚" 선생 동상이 있습니다.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는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名醫이자 <동의보감>의 저자이시죠.
병에 걸려 치료하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을 강조하셨죠
그래도 병에 걸리면 치료하는 방법을 누구나 알기 쉽게 쓴 책이 <동의보감>이죠.
<동의보감>의 서문을 요약 하면...
"옛날 뛰어난 의사는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의사는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은 다스릴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쫒으며 원천을 캐지않고 지류만 찾는 것이니
병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
요즘 의사들이 더 귀 기우려야 할듯...
국민이 있어 의사도 학교 때 외운거 갖고 벌어 먹고 사는데,
자기들이 국민의 위에 있는줄 아는 세태를 <허준 선생>은 개탄 할겁니다.
['광주바위']
"광주바위"
공원에는 연못이 하나 있고 연못 가운데 <광주바위>라고 하는 바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바위는 공원의 조형물로서 오리지날 <광주바위>는 아니랍니다.
한강 개발로 흔적없이 사라진 명승지 <탑산과 광주바위>를 추억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광주바위>에 대한 전설은 허무맹랑 하지만 재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단양>의 <단양팔경> 중에 제1경인 <도담삼봉>의 전설과 거의 같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게시해 놨더군요.
['광주바위' 모형]
이쪽에 있는 바위들을 자세히 보니 천연바위가 아니라 시멘트로 만든 인공바위더군요.
<겸재 정선 선생>이 <광주바위>와 <탑산의 공암바위> 주변 경관을 그림으로 남겨 놨으니
아래에 첨부한 그림과 이곳 연못의 바위를 비교 해 보면 인공적이란게 분명 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광주바위>는 한강 개발로 없어진지 오래랍니다.
['겸재 정선선생'이 그린 '공암층탑(孔巖層塔)']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이며 우리나라 <보물 제1950호>로 지정된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공암층탑 孔巖層塔"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림에 대해 줏어 들은 내용을 기술하면....
우측 산이 잠시후 방문할 <탑산>이며 산에 <탑>이 보입니다.
<탑산> 아래에 있는 절벽에 구멍이 있는데 이 동굴이 "공암 孔巖 (구멍바위)"로 잠시후 방문 하는데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을 집필했다는 동굴이고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이 탄생한 굴이라고
"허가바위"라고도 하더군요.
그리고 <한강>에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가 <광주바위>랍니다.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는 선비의 모습이 여유롭습니다.
뒷쪽 산인 <증산> <쥐산> <선유봉>이랍니다. 지금은 대부분 까뭉개진 산들입니다.
['허준공원' 정문]
<허준공원> 정문으로 나가면 <가양2동주민센타>가 있고
['대한한의사협회'와 '허준박물관']
이어서 [대한한의사협회]와 [허준박물관]이 붙어 있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 제34~35대 회장 <안재규>가 <파란문>의 친구입니다. ㅎㅎ
현재 <군산>에서 <지산한의원>을 하고 있고...골프 핸디캡이 "0"으로 프로급 ^*^
[ '허준박물관' 정문]
"허준박물관"을 관람하고 갑니다.
이 박물관 개관식 할때 왔다 갔는데 벌써 7~8년 된듯 하군요.
[박물관 내부]
박물관은 세개층과 옥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옥상엔 정원과 약초원이 <탑산>에 연결되 있었습니다.
한의학에 대해 아는게 별루여서 관람이 시원찬았습니다.
뭘 알아야 관람도 재미있는데....ㅎㅎ
['구암 허준 선생 像']
['허준 선생 가계도']
['허준선생'에 대한 진실과 오해]
<허준선생>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는데....
<허준선생>에 대해 잘못된 내용이 판치는 것은 저는 <소설 동의보감>과
이것을 기초로 드라마한 <집념>이라는 드라마라 할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은성씨>가 쓴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들 때문에 소설과 드라마의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 오해하게 했죠.
<소설 동의보감>은 저도 재미 있게 읽은 소설입니다만, <이은성씨>가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4권 중 3권까지만 쓰고 도중에 돌아 가셨죠. 물론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지만 소설은 소설입니다.
<소설 동의보감>의 대표적인 허구가 <허준선생>의 스승이 <산청의 유의태 柳義泰>라는거죠.
<산청>에는 <유이태 劉以泰>라는 명의가 실제 있었는데 소설에서 교묘하게 <산청의 유의태 柳義泰>로
변모시켜 소설에 <허준의 스승>으로 설정한것으로 보입니다.
<유이태 劉以泰>는 [숙종]의 어의를 한 분이니 <허준선생>의 100년쯤 후배 되는 분을 스승으로 만든 것입니다.
['동의보감' 집필]
"동의보감 東醫寶鑑 - 국보 제319호"
중국의 한의학과는 태동이 다른 우리나라에 맞는... 우리나라 기준의 의학서여서 더욱 값진 책이죠.
그래서 <유네스코>가 세계 최초 유일의 의학서로 인정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책입니다.
자랑스럽죠?
그런데 이 책을 <허준선생>이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알고 계시지는 않나요?
<허준선생>이 집필한 모든 책은 모두 <14대 왕 선조>의 지시에 의해 국가사업으로 쓰여 진 것입니다.
윗 사진이 집필 장면을 모형화 한 것인데 집필 장소는 잠시후 방문하게 될 <공암-허가바위>라고 합니다.
<동의보감>은 1596년 <선조>의 어명으로 "양예수" "정작" "허준"등이 편찬하기 시작했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허준이 다시 편찬하여 1610년 완성하였는데
이 때는 1608년 [14대 왕 선조}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죽게 했다는 죄명으로 유배 생활을 할때 였습니다.
<광해군>이 즉위 2년에 <동의보감>을 받아보고 무지무지 기뻐하며 유배에서 해제하고 다시 정1품 어의에
올려 자신을 보필하게 하며 馬 한필도 하사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고급 중형승용차를 하사 한거죠.
그러나 선생은 5년 정도 보필하다가 아쉽게도 <광해군 7년> 1615년에 76세를 일기로 타개했습니다.
['동의보감 속 동물약재']
['1층 로비']
박물관을 횡하니 둘러 보고 나가서 <공암바위>로 갑니다.
['탑산' 옆 통과]
['가양동 성당']
['탑산' 들머리] 1:32
박물관 정문으로 나가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우측엔 <탑산>이라는 조그만 동산이 있는데 끝까지 가면
앞에 <천주교 가양동 성당>이 있고 그 앞에 <탑산> 들머리가 있습니다.
정상엔 정자가 하나 보입니다.
<탑산>의 높이가 3~40m 정도로 보이는데. 앞에서 본 <겸재선생>의 그림 [공암층탑]에 나타난 <탑산> 모습은
한강 개발로 강물의 수위도 달라졌고 주변을 온통 매립하여 산 중턱까지 한강이 육지가 되버렸습니다만
그래도 그림 속의 <탑산> 느낌은 조금 남아 있는듯 합니다.
['영등포공고' 앞 '공암나루터 공원']
['공암나루터']
<탑산 입구> 옆에는 "공암나루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앞에는 <영등포공고>가 언제 떠내려왔는지 <강서구 공암나루터>에 있습니다.
이 나루터에는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許宣文>과 고려 태조 <왕건>의 얘기가 전해 오고 있더군요.
왕건이 개성에서 후백제의 <견훤>을 치러 내려 갈때 배가 없어 한강을 건널수 없어 고심하고 있을때
당시 90세이던 <허선문>이 이 동네 소유 배들을 모아 왕건에 제공하여 강을 건너 후백제를 칠수 있었답니다.
후에 왕건이 <허선문>에게 고마움으로 <삼한공신 양천촌주 三韓功臣 陽川村主>로 삼고
이 지역 땅을 하사하여 대대로 자손이 살도록해 주었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양천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또한 <공암나루>에는 <이억년>과 <이조년>의 형제애가 서려 있는 나루라고 만화로 이해하기 쉽게 해 놨습니다.
여기에서 현재의 "김포 金浦"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1963년까지는 여기도 '김포군'이었다고..
자세한 내용은 만화를 읽어 보시고, 만화에 없는 얘기를 추가하면....
<이억년> <이조년>이라는 이름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이들 형제의 제일 큰형의 이름은 <이백년> 둘째가 <이천년> 셌째가 <이만년> 넷째가 <이억년>이고
막내가 <이조년>입니다. 특히 <이조년>은 고려말 예문관 대제학등 높은 관직에 오랫동안 올랐는데
그가 쓴 [다정가 多情歌]라는 시조가 유명하죠. 읽어보면 이 시조를 그가 썻다고?라고 하실겁니다. ㅎ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 제,
一枝春心(일지 춘심)을 子規(자규)ㅣ야 알냐마는,
多情(다정)도 病(병)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돌아서 자정을 알리는 때에,
배꽃 한 가지에 서린 봄날의 정서를 자규가 알고 저리 우는 것일까마는,
다정다감(多情多感)한 나는 그것이 병인 양, 잠을 이루지 못하여 하노라
['공암바위']
['공암바위']
<공암나루> 바로 옆에는 "공암바위 孔巖"가 있습니다.한마디로 <구멍바위>라는 뜻이죠.
<양천 허씨 시조>인 <허선문 許宣文>이 탄생 된 곳이라고 하며
그의 20대 손인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 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허가바위>라고도 하는군요.
['허가바위' 입구]
앞에서 본 <겸제선생>이 그린 "공암층탑 孔巖層塔"에는 이 바위 아래에 한강이 흐르며
<공암나루터>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현재의 이 주변은 한강 개발로 온통 매립하여 <공암바위>가
오히려 땅 아래에 있으니 변해도 너~무 변했죠?
매립지에는 학교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허가바위']
['허가바위' 내부]
"공암바위 孔巖 (허가바위)-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1호 "
굴의 크기는 가로 6m, 세로 2m, 길이 5m로 제법 큰 동굴이더군요.
이곳에서 <양천 허씨 시조>인 <허선문 許宣文>이 탄생했다는데, <허선문 許宣文>은 <가야 김수로왕>과
<인도 소녀 허황옥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으로 모두 <김해 김씨> <김해 허씨> 가문이죠.
그러니까 <김해 허씨>의 분파 중에 <양천 허씨>의 시조가 되는 것이니 모두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후손이고
참고로 <인천 이씨>도 <김해 허씨>의 분파로서 <김해 김씨><김해 허씨><양천 허씨><인천 이씨>들은
같은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후손으로 그래서 서로 결혼도 하지 않습니다.
['동의보감' 집필지]
또한 이 동굴에서 <허준선생>이 <동의보감>을 집필 했다는데...믿어도 되는지
임금의 御醫로 거의 일평생을 보낸 <허준선생>이 이런 열악한 굴 속에서 방대한 자료와 함께 집필 활동을
했다는 것은 의미를 극대화 하려는 의도일뿐 실제 이런 구멍바위에서 집필 활동을 할순 없었겠죠? 추측.ㅎ
['가양동 성당' 앞] 2:42
<공암바위>를 탐방하고 다시 <가양동 성당>으로 나가 [양천향교역]으로 갑니다.
앞에 보이는 <동양고등학교> 방향으로 15분 정도 걸려 [양천향교역]으로 가면...
['9호선 양천향교역 1번출입구'] 2:56
[지하철9호선 양천향교역 1번출입구]에서 <양천관아지>와 <궁산>등을 답사 시작합니다.
여기서 부터 "겸재 정선을 따라 산수화 속을 걷다"라는 테마길이 시작되더군요.
조금 직진하면...
['양천초등학교' 앞 '하마비']
['하마비'] 2:57
[양천초등학교] 정문 앞인 이 근처가 <양천관아>로 들어 가는 입구였나 봅니다.
['홍원사' 앞 사거리] 3:02~3:07
<하마비>에서 <양천초등학교> 골목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홍원사>라는 절이 보이는 곳에서 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을 보면....
['양천현아지' 로타리]
['양천현아지']
[안내문]
이 일대가 "양천 현아 陽川縣衙"가 있었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판에 있습니다.
이 주변을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를 통해 그 규모와 경관을 알아 보겠습니다.
['겸재 정선선생'이 그린 '양천현아']
[그림 설명]
그림은 <겸제 정선 미술관>에 전시하고 있는 것을 촬영한 것이고, 안내문은 이곳 안내판에 있는 것입니다.
그림 설명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겸재 정선 선생>의 그림에는 낙관이 세개 찍혀있는데
그 중에 두개는 선생의 도장이고, 큰 낙관 하나가 눈에 띄는데
"天金勿傳"
천금물전
<겸재 선생>은 "천금을 준다고 해도 남에게 전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림에 경고 표시를 했습니다.
중국의 <왕희지>가 옛 스승 <위부인>의 「필진도」를 읽고 난 뒤 자신이 평생 경험한 바를 적어
자손에게 남긴 「제위부인필진도후(題衛夫人筆陣圖後)」의 끝 구절에서 나왔답니다.
['겸재 정선선생'이 그린 '종해청조']
[그림 설명]
화가인 <겸재 정선 선생>은 화가이기도 하지만 요즘으로 치자면 시장.군수 급인 현감이라는 벼슬도 했죠.
이곳 <양천현감>은 선생이 66세 되던 해에 부임하여 4년여 근무했답니다.
왕(영조)과 왕세자(사도세자)의 그림 가정교사도 했고....
['김희성'이 그린 '양천현아']
[그림 설명]
이 분의 그림이 <양천현아>를 더 전체적으로 그렸군요.
<김하성>은 <겸재 선생>의 제자 뻘...
['양천현아' 모형형도]
이 사진은 <겸재 정선 미술관>에 설치된 <양천현아 모형도>를 촬영 한것입니다.
<양천형아>의 규모가 상당하며 반경 200m 이내의 읍치는 <양천현아>가 전국 유일이라고 합니다.
뒤에 보이는 산이 <소악루>가 있고 <양천고성>이 있는 "궁산 74.4m"입니다.
['홍원사'] 3:08
외형상 전통사찰은 아닌듯 한데 조계종이더군요.
이 자리가 옛날 <양천현아>의 <객사>자리라는군요.
골목을 따라 조금 더 들어 가면...
['양천향교'] 3:10~3:20
[안내문]
"양천 향교 陽川鄕校"를 만납니다.
현재 행정구역 '서울특별시'에 남아 잇는 유일한 향교라고 합니다.
이 지역이 1963년까지는 '김포군'이었답니다.
['향교 내부']
['양천향교 이야기']
향교 내부를 둘러 보고
[향교에서 조망]
향교 정문에서 옛 <양천현아>를 생각해 봅니다.
[공덕비]
향교 정문 옆에 있는 공덕비를 둘러 봤습니다.
혹시 <겸재 정선 선생> 공덕비도 있는가 해서...ㅎㅎ 없었습니다.
['궁산근린공원' 입구] 3:20
향교 정문 옆 공덕비 옆으로 <궁산근린공원> 산책로가 열립니다.
조금 올라 가면...
[운동시설]
['궁산' 중앙 통로] 3:23
운동시설과 공원 중앙통로를 만나고, 중앙통로를 따라 100m 쯤 올라 가면
['소악루'] 3:26~3:35
[안내문]
"소악루 小岳樓"를 만납니다.
이곳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설명 되 있습니다.
['소악루']
조선 <영조> 때 동북현감을 지낸 "소와 이유(1675-1753)"가 처음 지은 정자랍니다.
['소악루'에서 조망]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안현석봉']
[그림 설명]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보물 제1950호>로 지정된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겸재선생>이 그린 "안현석봉"이
이곳 <소악루>에서 한양 방향을 보고 그린 그림입니다.
<안현석봉>은 지금의 <서울 안산의 저녁 봉화>를 보고 그린 그림이랍니다.
산꼭대기에 봉화불이 빨갓게 보이죠? 그 뒷산이 북한산인듯...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소악후월']
[그림 설명]
<겸재선생>의 그림과 <이병연선생>의 詩를 연관지어 읽으면 감흥은 더 합니다.
<이병연선생>은 <겸재선생>의 둘도 없는 친우이죠.
<이병연선생>은 우리나라 국문학사에선 엄청난 지위를 누리는 분이죠.
이 분이 쓴 詩가 10,000수가 넘더라구요.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소악루']
<소악루>의 정취를 가장 잘 나타낸 <겸재선생>의 그림은 바로 이 그림 "소악루 小岳樓"입니다.
<양천관아>도 좀 보이고....
['소악루'에서 동쪽 조망]
현재 <소악루>에서 바라보는 한강입니다.
<겸재선생>의 그림과 비교됩니다. ㅎ
['소악루'에서 북쪽 조망]
<안산>과 <북한산>은 <대덕산>과 쓰레기산인 <난지도> 뒤로 희미하게 보이고
['소악루' 조망]
<소악루>에서 <궁산 정상>으로 올라 가며 뒤돌아 본 <소악루>입니다.
저 <소악루>는 원래 자리가 아니지만 편의상 이곳으로 옮겨 신축했다고....
['양천고성지'] 3:36
[안내문]
['궁산' 항공 사진]
<궁산> 정상으로 올라 가면 "양천고성 陽天古城"이 있었다는 안내판이 있고
친절하게 항공사진도 찍어놨습니다.
['성황사']
['안내문]
"성황사 成皇祠"
안내판에 설명이 잘 되 있습니다.
['궁산' 정상] 3:39~ 3:47
"궁산 宮山 74.4m"
삼국시대엔 <한성백제>가 건너편 <덕양산>에 진을 친 <고구려>와 대치하던 城이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엔 <권율장군>이 진을 치고 있다가 건너편 <덕양산 행주산성>으로 옮겨
<행주대첩>을 이룬 곳이며
일제강점기시절엔 일본군이 주둔하며 <김포공항>을 건설하는 기지로 활용하고
6.25 때는 미군이 주둔하고, 전쟁 후에는 한국군이 주둔한 군사요충지 였답니다.
그러면서 <궁산 宮山>은 원형이 무지막지 홰손되었다는군요.
['덕양산' 조망]
<한강>의 關門인 <덕양산>이 <궁산>에서 가깝게 조망되고
['개화산' 조망]
꽃이 피는 <개화산 開花山>, 꽃이 만발하는 <방화동 傍花洞>..모두 꽃동네라는 의미
다음에 탐방할 예정입니다.
[내림길] 3:47
['궁산' 중앙 통로]
<궁산 정상>에서 중앙 통로로 내려가면...
['겸재 정선 미술관'] 3:52~4:24
<궁산공원> 정문을 나서면 "겸재 정선 미술관" 후문이 건너편에 있습니다.
미술관 정문은 1층에 있어 내려가서 거꾸로 올라 가며 관람해야 하더군요.
먼저 뒤에 보이는 <망동산 터>를 보고 내려 갑니다.
['망동산 터']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위대한 화원 "겸재 정선 선생"은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 까지 붓끝으로 감탄을 자아 내게했습니다.
이곳은 옛날 "망동산 望東山"이라는 산이 있었던 곳이라는데 개발로 원형이 홰손되었다고
['겸재 정선 미술관' 전경] 3:56~4:24
"겸재 정선 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홈페이지 인사말 캡쳐]
['금강내산총도' - 국립중안박물관 소장]
['18세기초 화단 상황과 정선]
[양천 현령 시절]
미술관에 들어 가면 먼저 <금강내산총도>가 내방객을 반겨주고
선생의 생애와 당시 화단의 상황등을 알려 줍니다.
['계상정거도']
많은 작품들 중에 눈에 확 들어 오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ㅎㅎ
그 동안 1,000원자리 지폐를 수없이 만졌지만 이 지폐 속에 이런 그림에 대해선 무관심이었는데
이 돈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34억짜리 그림이라던가, [보물585호]라던가, <퇴계선생>이 <도산서원>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던가 하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ㅎ
['총석정']
너무 많은 그림이 있어 생략하고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그림은 "총석정"이었습니다.
<관동팔경> 중에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는 <해금강>의 <총석정>을 여기서 알현하는군요.
['궁산 땅굴' 입구] 4:25
['궁산땅굴']
<겸재 정선 미술관> 앞에는 "궁산 땅굴"이 있습니다.
오후 4시까지만 관람 할수 있어 들어 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궁산 땅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가 굴착한 군사용 땅굴로서 군수 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 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클릭하여 영상으로 보세요.
"궁산땅굴 안내 영상"
['9호선 양천향교역 1번출입구'] 4:34
[강서구 역사문화 탐방] 첫번째 답사를 마치고 <9호선 양천향교역>으로 돌아가 귀가 했습니다.
[실트랙]
걸은 거리는 10.5km였으며 4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의외로 많은 역사 문화를 간직한 <강서구>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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