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27코스』
   청마기념관에서 둔덕기성을 돌아 견내량을 건너다
  
           방하마을 청마기념관-거림리-둔덕기성-오량리-
           거제대교-통영신촌마을-장평리-삼화삼거리


  ['남파랑길27코스 안내도']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 있는 <청마기념관> 앞에 설치된 안내도입니다.
  이번 코스는 거리가 조금 짧아, 오늘은 <27코스>를 마치고 <28코스 일부>를 더 진행합니다.
  


  ['남파랑길27코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실제 진행한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으로 <27코스>와 <28코스 일부>를 진행한 트랙인데, 
  <통영시 용남면 삼화리>에 있는 <삼화삼거리>까지 13.6km를 갑니다.



  ['청마기념관' 앞]          11:30~11:35                 
  2023년 3월 8일 (수) 대체로 맑음 연무   
  연무와 미세먼지로 사진 촬영에는 좋지않은 날씨입니다만, 그래도 봄은 완연하게 느낄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거제로 떠나는 <남파랑길 거제구간>은 오늘로 마지막이 되는 시원섭섭한 날입니다.
  
  "청마 유치환 기념관"앞에서 <거제구간> 마지막 답사를 출발합니다.
  


  ['산방산' 조망]          
  <청마 유치환>이 사랑한 고향의 산 <山芳山>이 멋지게 조망되는데
  그는 저 산기슭에서 지금 영면하고 있는데,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산방산> 품에 안겨 잠들겠지만 
  그가 남긴 아름다운 詩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깃발>처럼 펄럭일 것입니다.



  ['둔덕기성' 조망]              
  <청마기념관>에서 서쪽으로 이번 코스의 하일라이트가 될 "둔덕기성"이 조망됩니다.
  앞에 펼쳐지는 마을은 <둔덕면 거림리 屯德面 巨林里>라고 합니다. 
  큰 방풍 숲을 조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그 큰 방풍 숲은 보이지 않는군요.
 


  ['방산교']             11:41           
  <정마기념관>에서 5분 정도 서쪽으로 직진하면 <방산교>를 건너는데, <둔덕천>이 흐르고 있고



  ['청마기념관' 출입구]           11:42     
  이어서 "청마기념관" 들날머리를 알리는 표지목이 이별을 아쉬워하는데....
  
['정운 이영도']
<청마 유치환>이 죽을 때까지 사랑하기만 한 여인--"정운 이영도 시인"도 아련하게 멀어져 갑니다.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플라토닉 러브'..... 그리움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 수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울컥 한 가슴 밀고드는 그리움 -이영도-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 ['둔덕기성' 가는 임도 입구] 11:55 <거림리> 마을을 통과하면 <둔덕기성>으로 올라 가는 임도 입구를 만나는데 차량이 성까지 운행 할수 있더군요. [오름길] 30여분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창녕조씨묘역'] 12:24 <창녕조씨묘역>을 지나고 ['둔덕기성' 조망] 이어서 13분 가량 더 진행하면 <둔덕기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둔덕기성' 입구] 12:37 <거림리>에서 약45분 정도 넓직한 임도를 오르면 <둔덕기성> 입구에 도착합니다. 입구에는 <둔덕기성 안내문>과 <정과정곡 詩碑>가 설치 되 있습니다. <정과정곡 鄭瓜亭曲>에 대해선 잠시후 언급하기로 하고... [안내문] "둔덕기성 屯德岐城"에 대한 안내는 안내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고려 제18대 왕 의종>이 <정중부의 무신정변>으로 폐위되어 유배된 곳이 바로 이곳이랍니다. 제가 당시 정치적 상황을 요약해 드리면... <18대 의종>의 아버지인 <17대 인종> 때에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등으로 <고려>의 국운은 이미 기울고 있었는데, 국정능력은 없고 오로지 주색잡기에 찌든 <의종>이 왕위에 오르며 수많은 <문신 토호세력들>의 <무신>들에 대한 조롱 비하가 극에 달하기까지 했습니다. 참고 참던 <무신>들 중에 <이의방>이 상장군 <정중부>의 비호 아래 핵심 문신들을 죽이고 <18대 의종>을 폐위시켜 이곳 <거제도 둔덕기성>으로 유배를 보내며 <고려 왕씨 왕조>는 실질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는 역사적 현장이기도 합니다. [화장실] 입구에서 우측으로 조금 올라 가면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고 성으로 들어 가기 위해선 좌측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둔덕기성' 출입문] 12:40 ★ 사진을 클릭하면 '성 안내도' 나옴 ★ 성곽 출입구 앞에는 이 성의 안내도가 설치되 있습니다. 윗 사진을 클릭하면 이 城의 유적 배치도를 자세히 볼수 있으니 미리 숙지하고 가면 좋습니다. (1번) 지점인 현위치에서 우측 반대방향으로 답사하여 (2번) <남문지>로 나갔습니다. ['거림리-방하리' 조망] 성곽 입구에서 북쪽 성곽으로 올라 가며 뒤돌아 본 동남쪽 광경입니다. 펼쳐지는 <거림리>와 <방화리>가 희뿌연 연무 속에 하늘거립니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노자산><가라산>까지 거침없이 조망되었을텐데....아쉽습니다. ['우두봉' '산방산' 조망] 다행이 동쪽 <우두봉>과 <산방산>은 비교적 잘 조망되는군요. 가까우니까... <산방산 山芳山>은 정상의 바위도 기암괴석으로 아름답지만, 주변 흙이 다섯가지 색깔을 띈다고 더 유명하다는데 언제 올라 볼수 있을까..... <남파랑길>을 저 산 옆구리 임도로 돌릴게 아니라 정상으로 돌리면 좋겠는데... 아니면 코스를 선택 할수 있도록 <임도코스>와 <정상코스>로 편성하던지....(파란문 생각...) ['동문'] 조금 오르면 <동문터 東門址>를 만나는데 여기선 <우두봉>이 <소머리> 모양으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정상부] 조금 더 올라 가면 <둔덕기성>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329.7m봉 정상] 12:44 "329.7m봉" <둔덕기성>에서 제일 높은 곳입니다. 이곳엔 <옛 저장고 터>와 <제단>이 있었답니다. 조망이 좋은 곳인데 연무로 아쉬움만 남는데... ['저장고' 터] 음식물과 <씨앗>등을 보관 저장하는 "저장고"가 있던 곳이라고.... ['가조도' 방향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연무로 사진빨이 나쁩니다만 그래도 사위를 조망합니다. 먼저 우측 동북쪽으로는 <남파랑길 13코스> 때에 돌았던 무더운 여름날의 <면화산>과 <성동조선소>가 추억 속에 아른거리고 <남파랑길 16코스>에서 <사등면 성포>에서 바라보던 <가조도 옥녀봉>이 조망됩니다. 사진을 클릭해서 큰 화면으로 보세요~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오량리>가 조망되는데, <정과정곡>을 쓴 <과정 정서>가 유배 왔던 곳입니다. ['정과정곡'] "정과정곡-정서 鄭瓜亭曲 鄭敍" 학창시절 고문시간에 엄청 외었던 詩歌였는데 지금도 학력고사에 자주 등장한답니다. 우리나라 <유배문학>의 효시이며 작가를 알수 있는 유일한 고려시대 詩歌라는거.... 그리고 고려와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의무적으로 외워야 했다는 무지무지 유명한 詩歌 그 詩歌가 왜 여기 있을까?라고 의문을 갖는 사람은 학창시절 공부 좀 하신 분들...ㅎㅎ 이 詩를 쓴 <과정 정서>와 <고려 18대왕 의종>에 대해 알아야 이 詩가 왜 유명한지 알수 있습니다. <의종>의 엄마인 그 유명한 <공예태후>는 후계자로 자신의 장남인 <의종>을 앉힐수 없다고 주장하며 동생인 <대령후>를 왕위에 앉힐려고 했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우여골절 속에 왕이 된 <의종>은 자숙하며 정치력을 발휘해야하는데 워낙 능력이 없어 왕이 된 후에도 사치향락에 쩔어 살았습니다. 그러니 <의종>은 아버지 <인종> 때와 마찬가지로 항상 쿠데타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 詩를 쓴 <정과정-瓜亭 鄭敍>는 <의종>의 아버지인 <17대 왕 인종>과 동서지간으로, 그러니까 <과정 정서>는 <공예태후>의 언니와 결혼한거죠. 그러니 <과정 정서>는 <의종>의 큰이모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의종>은 항상 동생 <대령후>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엄마 <공예태후>와 동생 <대령후>의 쿠데타를 두려워 했답니다. 그런 저런 와중에 <김존중>등 간신배들의 무고로 <정과정>이 <대령후>와 가깝게 지낸다는 이런 단순한 이유로 <대령후>와 <정과정>을 역모혐의로 귀양 보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과정 정서>는 쿠데타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귀양을 보낸다고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니 <의종>은 시국이 어수선하니 고향 <부산 동래>에 좀 내려 가 있으면 곧 불러 올리겠다고 언질을 줍니다. <부산 동래>가 고향인 <동래 정씨-정서>는 고향에 내려가 <과정 瓜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오이와 참외등을 재배하며 6년여를 보냈는데 그의 호 <과정 瓜亭>은 이 때의 호로서 <오이 과瓜>입니다. 곧 유배에서 해제하고 불러 올리겠다고 약조한 <의종>은 세월이 흘러도 불러 올리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쓴 글이 바로 <정과정곡>입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내가 죄 없다는 것은 모두 아는데도 왜 나를 아직도 불러 올리지 않습니까?" 이런 내용을 접한 <의종>은 가엽게 여겨 불러 올리기는 커녕 더 먼 <거제도 오량리>로 진짜 유배를 보냈는데 그가 유배생활을 한곳이 바로 아래에 보이는 <오량리>였다는 것입니다. 20여년의 억울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이곳에 자기를 유배 보낸 <의종>이 유배를 오게 되었고 유배생활을 하던 <정과정>은 <의종>을 유배보낸 무신정권에 의해 유배에서 풀려나 개겅으로 돌아 가게 되는데, 그래도 약 한달간은 이곳에서 같이 유배생활을 하였기에 서로 만날수 있었을거라고 추측한답니다. 입장이 완전 바뀐 이모부-외조카 사이의 전세역전은 각기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젠 <의종>이 <정과정곡>을 읊어야 하지 않았을까~~ ['견내량' 조망]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북쪽으로는 그 유명한 "견내량 見乃梁"이 펼쳐집니다. <임진왜란> 최고 해전 <한산대첩>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며 <일본수군>과 <조선수군>의 NLL이라고도 할수 있는 요충지였습니다. 군수물자와 지원병을 신속하게 <한양>방향으로 수송 하려면 이 해협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서로 뺏길수 없는 요충지 중에 요충지였답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고려 제18대왕 의종>이 수백명의 가솔을 이끌고 유배를 올때 건넜다고 "전하도 展下渡"라고도 한다는 것도 알아 두고.... ['통영'방향 조망]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서북쪽으로는 <통영시가지>가 연무 속에 하늘거리는데.... <견내량> 가운데에 떠 있는 "해간도 海艮島"가 조망됩니다. 만조 때도 물이 들지 않는 것처럼 보여 <해간도>라고 한다는데, 썰물때엔 모래톱이 생겨 걸어서도 건널수 있었는데 현재는 다리가 놓여 육지화 되었고, 요즘은 캠핑장이 유명하다는군요. ['제단'] <둔덕기성>에서 제일 높은 <329.7m봉>은 제단으로 사용했었다고... ['몽돌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투석용으로 바닷가에서 몽돌을 올려 비축했다고 ['서문' 방향 성곽] <서문>방향 성곽을 따라 조금 내려 가다가 성 중앙으로 가면... ['건물터'와 집수정' 조망] <의종>이 기거했을 건물이 있었던 터와 빗물을 모아 저장하던 <집수정>이 전체적으로 보입니다. [항공사진] ['집수정'] "집수정 集水井" 성곽으로 둘러 쌓인 城안에 마실 물이 없으면 城으로서 존재 가치가 없지요. 城을 쌓을 때 첫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바로 우물이죠. 우물이 없는 곳엔 빗물을 받아서라도 마실 물을 저장하는 이런 집수정이 절대 필요 했겠습니다. <방하리>에 있었던 <26코스>의 "공주샘"을 기억하시나요? <의종의 딸> 공주가 아버지를 위해 제법 먼 <방하리 우물>까지 매일 가서 지하수인 맑은 우물물을 길어 와 아버지 <의종>에게 물을 바친 이유를 이젠 알수있지요? 이 城안에는 빗물을 받아 저장하는 집수정만 있어 수질이 매우 나빳겠죠. 보다시피... 그래서 공주가 산 아랫 마을까지 힘들게 오르내리며 맑은 우물물을 길어 온 이유.....아시겠죠? ㅎ <의종>... 이 쪼다리는 유배 온 주제에 지가 직접 물마시러 다니지 왜 딸까지 고생 시켰나~~ ['남문 밖'] 12:58 <남문>으로 나가니 이쪽 성곽은 아직까지 복원을 못했다는걸 알수 있는데 [복원 된 성곽] 1:00 동쪽 성곽은 복원 완료 [내림길] 실질적으로 <고려 왕씨 왕조>의 최후가 된 역사적 <둔덕기성>을 둘러 보고 하산 합니다. 방향이 서쪽이라 <미륵도>의 <미륵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잠시 더 진행하면... ['미륵산' 조망] 1:11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통영>과 <한산도> 사이의 바다가 펼쳐지는데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장군>이 <학익진 전법>을 펼쳐며 대승을 거둔 "한산대첩"의 현장입니다. 돌대가리 <왜장 와끼자카>의 일거러진 얼굴이 바다 가운데 떠 있는 똥덩어리로 보이는군요.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에 대해선 앞으로 남은 코스에서 되새겨 보기로 하고... ['견내량' 방향] <견내량> 방향인 <시래산>으로 방향을 바꾸면 [향나무] 1:46 <시래산>의 동남쪽에 있는 <오량리>로 들어 가는데 길가에 독특한 나무가 있어 궁금랬습니다. 마침 동네 주민이 있어 나무 이름을 물어 보니 <향나무>라고 합니다. <향나무>는 수없이 보지만 이렇게 생긴 <향나무>는 처음 봅니다. 동네 주민도 자랑하더군요. ['오량리' 조망] <정과정곡>을 쓴 <과정 정서>가 유배와 15년 가량 살았다고 하는 <사등면 오량리>입니다. <남파랑길 거제구간>을 답사하며 버스를 타고 수무번 이상 이용했던 <14번국도>인 <거제대로>가 <오량리>을 관통하며 지나고 있습니다. [굴다리] 1:51 <14번국도>인 <거제대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하여 북쪽으로 5분여 진행하면... ['오량1교'] 1:57 <남파랑길15코스>가 지났던 "오량1교"가 보입니다. 이 주변은 <한산대첩> 때에 <와끼자카>가 이끄는 일본수군 대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곳으로 <이순신장군>이 이 놈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학익진 전법'으로 박살 냈습니다. ['남파랑길15코스'] <신거제대교>에서 내려와 <오량1교>로 가는 <남파랑길15코스>를 다시 만나는데 6개월만이군요. 세월도 빠릅니다. ['신거제대교'] 1:59 . <신거제대교> 밑을 통과하면... ['오량초등학교'] 2:01 매우 큰 규모의 <오량초등학교>를 만나고... ['거제대교'] 2:09 이어서 <거제대교> 밑을 통과합니다. ['덕호리(신촌) 버스종점'] 2:10~2:42 여기가 <거제도 신촌마을>로서 버스종점이 있더군요. 뒤돌아 보면... ['거제대교' 올라 가는 길] <거제대교>로 올라 가는 <남파랑길>을 표기 했습니다. 여기 근처 중국집에서 짬뽕 한그릇 먹었는데, 우리 횐님이 사주셨습니다. 감사 ^*^ ['거제대교'] 2:43 제법 긴 <거제대교>를 건너 갑니다. <거제도>를 벗어나 육지로 가는거죠...감개무량입니다. 6개월의 <거제도 여행>은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아!~ 대마도...거제도의 한려해상국립공원....가라산....우제봉 해금강...바람의 언덕.... 그 추억은 가슴에 뭍고 <의종>과 <정과정>이 건넜고, <송시열>을 비롯한 5,000여명의 유배객들이 삶의 허무를 느끼며..때로는 희망을 안고 건넜을 <견내량>을 건너 갑니다. ['신거제대교' 조망] <거제대교>를 건너며 동쪽 <남파랑길15코스>를 할때 이용했던 <신거제대교>를 조망하고 ['해간도' 조망] 서쪽으로 "해간도 海艮島"와 그 뒤로 <미륵산> <통영>방향이 조망됩니다. 이 좁은 해협을 이용한 <한산대첩>도 기억하며 [뒤돌아 본 '둔덕기성'] 다리를 다 건널 쯤에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시래산 始來山"으로 "거제도로 가는 첫번째 산"이라는 의미이고 그 뒤로 조금 전에 올랐던 "둔덕기성"이 조금 보이는군요. 그러니까 <둔덕기성>에서 <시래산> 뒤를 빙돌아 "S자"로 돌아 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신촌마을 버스정류장'] 2:56 <거제대교>를 건너자 마자 바로 만나는 이야기 꺼리가 많았던 <남파랑길27코스>의 종점인 "통영 신촌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식사시간 포함 3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27코스>의 거리가 짧아 <28코스> 일부(3km)를 조금 더 걷기로 합니다. ['남파랑길28코스' 안내도]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남파랑길 28코스 안내도" 13.8km라고 하는데 다음번엔 <29코스>와 연계해야겠군요. ['용남면 장평리' 통과] <경남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15분 정도 통과하면.... ['삼봉산' 조망] 3:10 간척사업을 하고 있는 만을 만나는데 <삼봉산>이 그림처럼 조망되는군요. 이 만은 <임진왜란> 당시 <춘원포>였다는 설도 있더군요. ['두루미?'] 두루민지 뭔지 철새가 서식하고 있고 ['회조암'] 3:19 <회조암 匯照庵>이라는 절간같지 않은 절간을 지나게 되는데 무지 어려운 한자를 쓰는군요. ['삼화삼거리'] 3:27 이름도 어려운 <회조암 匯照庵>을 지나 마을을 잠시 지나면 <14번국도>가 지나는 굴다리를 만나고 이어서 만나는 '통영시 용남면 삼화리'에 있는 <삼화삼거리>에서 오늘 답사를 마치고 서울로 귀가 하는데 <통영>에서 <죽전>까지는 불과 3시간반 정도만 걸리더군요. <거제도>를 벗어나니 버스 통행 시간도 엄청 단축됩니다. ['구글어스'] ★사진을 클릭하면 국토지리원 지도가 나옴 ★ ['고도표'] . 오늘 걸은 거리는 13.6km로 3시간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삼화삼거리>에서 횐님들의 찬조로 '통영 회'와 소주 파티가 있어서 더욱 흥겨운 날이었습니다. "秋風辭" "歡樂極兮哀情多 환락극혜애정다"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 제가 요즘 씹어 보고 또 씹어 보는 구절입니다. 한(漢)나라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漢武帝)가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가 읊은 '추풍사 秋風辭'의 한 대목입니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권력의 쾌감이었을까? 아니면 궁궐 미인들과 누려본 성적(性的) 오르가즘이었을까? <고려 제18대왕 의종>과 <무비 無比>와의 절정은 <둔덕기성>으로 가는 것이었을까 슬픈 정(哀情)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었인가? 필자 '파란문'은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 "좋은 사람들과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고... . - 파란문-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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