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26코스』
     거제면에서 산방산을 돌아 청마기념관으로
  
           거제파출소-거제정글돔식물원-외간리동백나무-대봉산자락길-
           신두구비재-산방산자락길-상죽전마을-방하마을 청마기념관


  ['남파랑길26코스 안내도']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남파랑길 26코스>는 <거제파출소>에서 출발하여 <대봉산-산방산 임도>를 돌아
  <방하리 청마기념관>까지 가는 13km 거리라고 알려 줍니다.
  


  ['남파랑길26코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국토지리원 지도>를 보면 
  <남파랑길 26코스>의 반 이상이 <대봉산-산방산 임도>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보기 좋게 확대 됩니다.



  ['거제파출소' 앞 사거리]                      

  ['거제119안전센타'와 '거제파출소']           11:48      
  2023년 2월 22일 (수) 대체로 맑음    
  <남파랑길 26코스>의 출발지인 "거제파출소-119안전센타" 앞 입니다.
  남쪽 나라 거제도의 날씨는 비교적 푸근하여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분명 느낄수 있었습니다.
  


  ['거제면 서정리']             11:50           
  "옛 거제현"의 중심가였던 "거제면 서정리 西亭里"에서 북쪽으로 진행합니다.
  
  "거제면 서정리 西亭里" 지명의 유래는 <옛 거제 관아>가 있는 곳에 <큰 정자>가 있었는데
  그 <정자>를 기준으로 서쪽을 <서정리 西亭里>라 하고 가장 번화한 곳이 되었답니다.
   
  도로를 잠시 진행하면...
 


  ['산방산-대봉산' 조망]              
  이 지역은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간척지란걸 알게 해주는제방이 이어지며
  오늘 올라 산옆구리를 통과해야 할 "대봉산-산방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고
 


  [갈림길]            11:53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금호타이어 서정지점>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선 좌측 해안가로 진행하여 조금 들어 가면...



  ['경남 수자원연구소']            11:56       
  "경남 수자원연구소 폐류양식연구센터"가 있고
  


  ['거제방조제']             12:00       
  다시 맑끔하게 단장 된 방조제를 만나 진행하면서 왼쪽을 바라보면



  ['거제만']               
  옛 거제의 중심이었던 "거제만 巨濟灣"이 호수처럼 펼쳐지는데
  가운데에서 약간 우측에 있는 <산달도>와 그 뒤로 <한산도>가 보입니다.
  모두 조선수군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한산도>가 지척에 있습니다.
  
  지금의 바다는 잔잔하지만 그때의 포성이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듯 합니다
  


  ['거제국민체육센터']                 
  방조제 중간 쯤으로 가면 "거제국민체육센터"가 간척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스포츠센타의 모양이 <고래>를 닮았나요? 상어를 닮았나요



  [뒤돌아 본 '거제읍']              
  옛 거제현의 중심가를 뒤돌아 보며 옛 영화를 되찾기를 기원하고...




  ['거제방조제 쉼터']               
  이어 방조제 위에 설치된 쉼터를 지나면 "간덕천 갑문"이 무지개빛을 발산하며 반깁니다.
  


  ['간덕천 갑문']             12:08           
  "간덕천 갑문"은 바다로 흐르는 "간덕천"에 바닷물의 역류를 막기 위해 세운 갑문이라하고
  


  ['간덕천 갑문 다리 위 입체그림']           
  <간덕천 갑문> 다리엔 입체그림으로 나그네들을 조금 즐겁게 해 주더군요.
  구경거리 없는 <26코스>의 구경거리? ㅎ
  
  

  [재실?]            12:09        
  종가집인지 재실인지 제법 고풍을 풍기는 한옥을 우측으로 통과하면...



  ['거제시농업개발원'과 '정글돔' 조망]        
  "거제시농업개발원""농업테마공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특히 "거제식물원 정글돔"이 눈길을 끕니다.
 


  ['거제식물원 정글돔'과 '계룡산']          12:12         
  "거제식물원 정글돔"은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제일 큰 <정글돔 식물원>이랍니다. 
  
  그 뒤로 "계룡산 鷄龍山 569.8m"이 <거제도 진산>임을 뽐내듯 솟아 있습니다.
  정상 부근의 암벽이 "닭벼슬"을 닮고 능선이 "龍"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대전-공주>에 걸쳐있는 <국립공원 계룡산>의 유래를 참고로 잠깐 언급하면...
  <조선>이 건국되면서 조선의 수도를 새로 정하기 위해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계룡산>을 
  찾았는데, 풍수지리에 일가견을 가진 <무학대사>가 이때에 그 산의 이름을 "계룡산"이라고 했다는데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어서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으로 "용이 날아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다."라고 했답니다 
  여기서 말한 ‘金鷄'는 富의 상징, ‘飛龍'은 현명한 임금을 의미했답니다
  


  ['외간교 앞 사거리']            12:17        
  <간덕천 갑문>에서 8분여 진행하면 <외간교 앞 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선 <외간초등학교> 방향 가운데 길로 진행 하는데
  정면에 추억의 <거제지맥>이 지나는 <옥산고개>가 조망되는군요. 
  저 고개 뒤에 <삼성중공업>으로 가는 <남파랑길16코스>의 <사곡해수욕장>이 있죠.
 


  ['외간리 동백나무 공원 입구']              12:23        
  <외간초등학교>를 지나 200m쯤 전진하면 <외간리 동백나무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돌아 가라고 안내하지만, 직진하는게 지름길입니다.

 

  ['외간리 동백나무 공원' 정문]             12:25~12:27      
  "외간리 동백나무 공원"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외간리 동백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되 있을 정도의 특징있는 규모의 <동백나무>군요.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자세히 설명 되 있습니다.
  

 
  ['정자'와 '장군돌']            
  이 소공원에는 "장군돌"이라고 주장하는 바위를 특별히 전시 해 놨습니다.
  150여년전 <정2품 가의대부 이학규장군>이 가지고 놀던 돌이라고 후손들이 자랑 삼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똥오줌을 거름용으로 지고 나르는 통을 똥장군이라하죠?
  근대엔 그 후손들이 그 똥장군을 지지하는 받침돌로 사용했다고 ㅎㅎ
  
 


  ['계룡산' 조망]                
  <외간리 外看里>와 <계룡산>이 조망됩니다.
  
  <간看>이라는 뜻에는 <보살핀다>라는 의미가 있어 <간호사>등에 쓰여지죠.
  한편 <외부에서 방문한다. 찾아오다>라는 의미도 있어 <외간남자><외간여자>등을 쓸때도 사용하죠.
  
  이곳 <외간리>는 <거제현> 중심 바깥쪽 마을이라고 지어진 지명이랍니다.



  [이정표]            12:28        
  <외간리 동백나무 공원>을 나서면 이정표가 "신두구비재 5.05km→"를 알려 줍니다.
  
   "신두구비재"는 깅상도 사투리를 알아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52번 돌아 가는 고개→쉰두구비재→신두구비재"...이제 이해하기 쉽죠? ㅎ



  ['외간리' 통과]                
  <외간리 마을>을 8분여 통과하면....
  



  ['장수공원']              12:36        
  주민들의 건강 산책 공원인 "장수공원"을 만나고



  ['신두구비재' 입구]              
  <대봉산-산방산 자락길>을 <52번 돌아 가는 고갯길>의 출발지점에는 <남파랑길 안내도>가 설치되 있고
  


  [오름길]                      
  약간 경사도가 있는 오름길을 지그재그로 잠시 오르면....
  


  ['거제읍' 조망]       12:38  ★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확대 됨 ★ 
  옛 거제의 관아가 있던 <옛 거제 중심지>인 <거제면>과 <거제만>이 펼쳐집니다.
  지나온 <정글돔식물원><스포츠센타>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선자산-노자산-가라산>까지 조망되는군요
  이 사진 클릭하면 상세한 설명과 함께 크게 잘 보입니다.
  


  ['대봉산 자락길']      
  끊임없이 이어지는 널직한 임도...이름하여 <대봉산 자락길>을 25분 정도 진행하면....
 


  ['외간리' 사거리]           1:00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아곳은 <외간리>에서 임도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올라 <대봉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지나더군요.

 

  ['거제만' 조망]             
  <거제만>을 조망하니 이제 제법 고도를 높였다는 것을 알수 있고
   
 

  ['산방산 자락길']                   
  계속 이어지는 <산방산 자락길>을 볼거리 없이 길기만 한 임도를 50여분 더 진행하면.....



  ['신두구비재']            1:51         
  "신두구비재"에 도착합니다. 
  52번 꾸불꾸불 구비구비 돌아 가는 길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이곳은 <하죽전 마을>에서 직접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였습니다.
  여기서 부턴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산방산' 정상 조망]          1:56   ★ 이 사진은 꼭 클릭 해 보세요★  
  "산방산 山芳山 507.3m" 정상 밑을 통과합니다.
  산의 모양이 <묏 산山>자를 닮았다거나 <꽃봉오리> 같다고 명명된 산봉우리인데
  저속한 <파란문>의 눈에는 <여근곡 女根谷>으로 보이나니 그렇다고 너무 저속하다고는 하진 마이소~ㅎ
  
  시집도 안간 <선덕여왕>도 <여근곡>으로 침입하는 <백제군>을 겨울 개구리 울음소리로 알아 차리고
  <여근곡>으로 들어 오는 놈들은 모두 죽어 나가니 걱정 말고 빨리 나가 죽이라고 명령 했으니...ㅎ

  이 사진 꼭 클릭 해 보세요~~친절하죠? ^*^


  
  [내림길]       
  <신두구비재>에서 완만한 내림길을 40여분 하산하면....
  


  ['상죽전 마을']            2:32     
  "방하리 상죽전 上竹田 마을"을 만납니다.
  길조심해야 하는 곳인데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측로 가야 합니다.
    


  ['상죽전마을 선인장']         
  <상죽전마을> 어느 주택 담장에는 <선인장>이 온통 자생하고 있어 
  여기가 남녁 거제도란걸 실감나게 해 주는데...
  
  "선인장 仙人掌"은 "신선의 손바닥"이란 사실 아시나요?
  神仙의 손바닥은 식물<선인장>처럼 생겼고 손바닥에 가시가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란거...
  한자를 보면 바로 알수있죠?
  



  [고개 입구]          2:35       
  <상죽전마을>에서 <방하리 청마기념관>으로 넘어 가는 고개 입구입니다.
  이제 이 고개만 넘으면 종점인 <청마기념관>에 도착하게 되겠습니다.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고갯마루]             2:50         
  쉼터도 없는 고갯마루에 도착하는데, <상죽전마을>과 <방하마을>을 잇는 고개였습니다.
  
  
  
  [내림길]                 
  이어서 완만한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방하리' 조망]         3:00      ★ 이 사진 꼭 클릭 해 보세요 ★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어 유명해졌다는 
  <산방산 山芳山> 아랫마을이라 "방하리 芳下里"가 되었다는 제법 큰 마을이 펼쳐 집니다.
  
  그런데 이 마을은 <고려 제18대왕 의종>이 <정중부의 무신정변>이라는 군사쿠데타로 실각하고
  앞에 보이는 <둔덕기성>으로 유배를 왔는데 함께 따라온 호위병과 시종들이 먹고 살기 위해
  <둔전屯田>을 일구며 삶을 이어간 곳이어서 이 지역의 지명을 "둔덕면 屯德面"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역사적 의미가 더 있는 마을이라 하겠습니다.
  
 그 이후의 <의종> 행로에 대해선 다음 코스에서 알아 보기로 하고 마을로 내려 가면...
  


  ['공주샘']            3:04      .
  마을로 들어 가면 먼저 "공주샘"이 나그네를 반기는데 
  농촌 주택도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주택가에 옛왕조시대를 연상케하는 <공주샘>이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 가면...
 


  ['공주샘']                  
             
                   ['공주샘 안내문']                   
     아니나 다를까 역시 <고려 18대왕 의종>의 딸이 자기 아버지가 마실 물을 길어 가던 우물이라고
     알리고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벽화]           
  주택 담장에 그려진 여러 벽화 중에 <공주>가 <공주샘>에서 물을 길어 <둔덕기성>으로 이고 가는 
  장면을 특별히 촬영하여 <김현길의 시>와 편집하였는데....
  
  벽화에는 어여쁜 아가씨로 그려져 있지만 유배 당한 왕족의 처지가 그리 화려하진 않았겠죠.
  특히 주색잡기에 빠져 살다가 고려라는 나라를 말아 먹고 46살에 <이의민>에 의해 허리뼈를 뒤로 꺽여 
  비참한 죽임을 당한 <의종>이 이런 효성 지극한 딸을 두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치환기념관'과 '방하리마을회관' 앞]         3:09~3:21  
  <거제파출소>에서 3시간 20여분이 걸려 
  "방하리마을회관""청마 유치환 기념관"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정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왼쪽 담장 안이 <유치환 생가>입니다.
  
 

  ['청마 유치환기념관']               
  "청마 유치환 기념관"
  <고향 故鄕>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진데 실제 그럴까요?
  국어사전에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며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청마 유치환>의 <고향 故鄕>이 어디인가를 두고 법정싸움까지 간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청마 유치환>은 자신의 수필 <나의 詩 나의 人生>에서
  "나는 나의 선조 부모가 태어나 살아온 '거제 둔덕'에서 태어나 두살까지 살다가 세살 때 <통영>으로
  이사를 가 유소년시절을 보냈고, '자랐던 집'은 "한반도의 남쪽 끝머리에 있는 바닷가 '통영'”이라고
  한데서 법정싸움까지 가는 일의 발단이라고...
  <태어 난 곳>과 <자란 곳>이 달라 발생한 문제인데, 전세계인들 이런 사람 한두명이 아닙니다.
  물론 다른 이유인 <옛 거제>와 <현 통영>이 행정구역상 같다가 분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데
  
  법정싸움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거제시>와 <통영시>가 정부로부터 <청마기념관 건립비용>을 서로 타 낼려고 싸운 것인데
  <청마 유치환>이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주장하며 한치의 양보도 없었답니다. 
  생가및 기념관 건립비용이 수십억이 걸려 있었으니...관련 공무원들의 밥줄까지 걸렸겠죠?ㅎ
  기념관과 생가 복원은 관광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도 무지 크기 때문이니...
  
  <거제시>는 
  <유치환>이 태어 난 곳은 의심의 여지없이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가 분명하다고 주장했으며
  <통영시>는 
  태어 난 곳만이 <고향>이라 할수 있는가? 어린시절 성장 한 곳이 실제 <고향>아니냐?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의 고향은 병원이냐? 성장한 집이 있는 곳이 고향 아니냐!
  
  국어사전에는 <태어나서 자란곳>이 <고향>이라지만, <태어 난 곳>과 <성장한 곳>이 달라
  뜻하지 않게 부닥친 그렇게 큰 의미는 없는 '건축비'를 위한 <고향논쟁>이었지요.   
  그들의 싸움은 결국 무승부..............
  그래서 건축비는 반반 나눠 가지라 하여 <청마 유치환>의 생가와 기념관은 두곳에 건립되었는데
  <거제시>와 <통영시>에 별도로 <생가>와 <기념관>을 각각 건립되게 된 사연입니다.
  
  이곳 말고 <남파랑길 29코스 통영시>에 <통영 청마 유치환 생가와 기념관>이 또 있습니다. ㅎㅎ
  
 

  ['청마 유치환기념관']               
  "청마 유치환 기념관과 우체통"
  <청마 유치환>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정운 이영도>라는 여인과 주고 받은 5,000여통의 편지로
  유명하기에 기념관 앞에는 상징적 의미로 우체통이 설치된듯 합니다.
  우체통의 이름이 <청마우체통>이군요. ㅎ



  ['1층 기념관']             
  <유치환>이 죽을 때까지 戀書를 주고 받은 여인 "정운 이영도丁芸李永道"는 시조시인 이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경북 청송>에 가면 그녀의 기념공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시조시에 큰 업적을 쌓아 죽어서도 한국문인협회장으로 장례가 치뤄 졌지요.
  
  <유치환>이 그녀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 중에 하나 소개하면....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 같이 요지경 같이 높고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이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52년 6월 2일 당신의 마(馬)



  ['2층 기념관']                
  <정운 이영도시인>은 남편이 폐병으로 일찍 죽어 21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어린 딸 한명과 함께
  <청송>에서 <통영>으로 이주하여 지금의 <통영중앙우체국> 앞에서 수예점을 하며 생활하다가 
  <통영여중 가정선생>으로 특채되고, 국어선생이던 <유치환>과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죠.
  당시 사회 관습상 유부남과 과부의 연애는 비난의 대상이 되던 시대였으니.....ㅠ
  그리하여 시인들 답게 편지로만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았답니다
  
  <정운 이영도>의 시조 편지 한통 소개 합니다.
  (시조시인이란걸 알고 읽어야 시조의 단순함과 함축된 이름다움을 느낄수있죠)
  
             아지랑이
                    -이영도-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시 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 삼월 아지랑이
              종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옥상 전망대]       ★ 사진을 클릭하면 '폐왕성'이 잘 보임 ★  
  <청마 기념관>에 들리면 반드시 올라 가 봐야 하는 곳이 옥상 전망대입니다.
  <청마 기념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둔덕기성>과 <우두봉>입니다.
  
  *<둔덕기성>과 <고려 의종>에 대해선 다음 코스 답사기에서 언급하겠습니다.
  이 사진을 클릭하여 다음 코스에서 방문하게 될 <둔덕기성>을 전체적으로 감상하세요~



  [옥상에서 '산방산' 조망]   ★ 사진을 클릭 해 보세요 ★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산방산 山芳山"이 새로운 각도로 조망되며
  이 마을 이름이 왜? "방하마을 芳下里"인지 알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유치환>은 자기 고향을 다음과 같이 노래 했습니다.
  
           적은 골 안 다가솟은 산방(山芳)산 비탈 알로
           몇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
  


  ['유치환 생가' 조망]                      
  <기념관 옥상>에서 내려 다 본 <유치환 생가>입니다.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운영하던 한의사이고, 아버지도 대를 이어 한의사가 되어 통영에서 한의사를 
  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기에 <유치진>과 <유치환>을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보낼수 있었답니다.
  



  ['창마 유치환 동상']                      
  기념관 앞에는 <유치환> 동상도 있습니다.
  
  시인이라고 강조 하기 보다는 교육자로 더 강조되야 한다고 <파란문>은 강조합니다.
  40대에 <안의중 교장>을 시작으로 <경주고><경주여고><경남여고><대구여고><부산남여상>에서
  교장선생님으로 일생을 보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58세가 되던 해 <부산남여상:(현)부산영상예술고>에서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어느날
  현재의 <부산진역> 근처에 있는 <봉생병원> 앞 대로에서 시내버스에 치어 교통사고로 사망했답니다.
  
  선생을 보낸 <정운 이영도>선생은 그와 주고 받은 편지 중에 200여통을 책으로 발간했는데
  당시 저도 고교시절에 사서 읽을 정도로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으며
  당시 청춘들에겐 <연애편지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 였던게 기억납니다.
  책의 제목이 "사랑 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였는데 <청마 유치환>이 쓴 <행복>이라는 시에서
  인용한 제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책의 수익금은 전액 기부했다는군요.
 


  ['동랑 청마 생가'] 
  "동랑 유치진 東朗 柳致眞"
  우리나라 연극문화예술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희곡과 연극에 있어서 많큼은 대한민국 최고로 그 공로를 인정하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최초로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개설하고 초대 학과장이 되었으며, 
  <남산 드라마센타>와 <서울예술대학>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명실공히 우리나라 연극영화의 대부이죠.
  
  <청마 유치환>의 친형이며 이 집안의 장남인데도 이 집을 <동랑 유치진 생가>라고 광고 못하고
  그 명성을 동생 <유치환>에게 몽땅 넘겨 준 이유는 <친일반민족행위자>였기 때문이죠.
  
  

  ['동랑 청마 생가']                
  
           거제도 둔덕골은
           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 안 다가솟은 산방(山芳)산 비탈 알로
           몇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 왔던가

           시방도 신농(神農) 적 베틀에 질쌈하고
           바가지에 밥 먹고
           갓난것 데불고 톡톡 털며 사는 칠촌(七寸) 조카 젊은 과수며느리며
           비록 갓망건은 벗었을망정
           호연(浩然)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詩書)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가난뱅이 살림살이 견디다간 뿌리치고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젊은 증손이며
           고향 마을의 정경과 친척들의 삶의 모습

           그러나 끝내 이들은 손발이 장기처럼 닳도록 여기 살아
           마지막 누에가 고치 되듯 애석도 모르고
           살아 생전 날세고 다니던 밭머리
           부조(父祖)의 묏가에 부조(父祖)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고향을 벗어나지 못한 운명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父祖)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

  


  [가족 사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안방 문 위에는 시골 여느집에서나 볼수 있는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좌측 사진이 형인 <동랑 유치진>과 함게 짝은 사진이고, 우측 사진은 <청마 유치환>의 사진들이더군요
  



  ['방하리 팽나무']            3:20           
  <청마 기념관> 앞에는 300년 이상이 된 우람한 <팽나무>가 <방하리>의 상징처럼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구글어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

  ['고도표']                 .
  오늘 걸은 거리는 13.5km였으며 3시간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이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 유치환 -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