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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파도랑 함께 걷는 해파랑길』 [해파랑길1코스] "부산 해운대구간" 답사기 청사포입구-문탠로드-미포-해운대해수욕장-동백섬-부산영화거리-민락교-광안리 ['코스 안내도'] [국토지리원 e맵] 이번 코스는 [해파랑길1코스]이지만 지난 [2코스] 잔여구간과 [1코스 해운대구간]을 갑니다. 한번에 통과하면 시간과 경비를 줄일수 있는데 산악회와 함께하니 어쩔수 없이 산악회 계획에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코스] 일부분과 [1코스] 일부분인 "청사포-미포-해운대-광안리"까지 약13km를 진행합니다. ['청사포' 입구] ['청사포입구오거리' 들머리] 12:00 2019년 5월 22일 (수) 맑음 지난 구간의 날머리였던 "청사포 동해선 건널목"의 윗쪽에 있는 "청사포입구오거리"에서 출발합니다. 이번구간은 대부분 "부산문탠로드"와 함께 [해파랑길]이 이어졌습니다. ['청사포' 조망] 들머리를 들어서서 내려다 보면 "청사포"가 조망되고 [숲길] 달빛이 훤하게 밝혀주는 보름날 달밤에 걸어야 더 좋다는 "문태로드"가 이어 집니다. 우측엔 [해운대신도시] 아파트촌이 밀집해 있는 '부산 해운대구 중동'인데 여기선 그런 신도시가 있는지 없는지 느낄수 없고 오로지 숲길만 눈에 보일 뿐입니다. 한치 앞도 못보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숲길을 7분여 진행하면... [삼거리] 12:07 가로등이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오늘 진행한 구간에선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또한 이곳 바로 우측이 [해운대신도시] 아파트단지이고, "달맞이어울마당"이 있는 곳인데 둘러 볼 시간이 없어 좌측 내림길로 바로 내려 갑니다. [내림길] 東海와 [해운대신도시] 사이의 "달맞이공원"이어서 산책코스 시설은 잘되있었습니다.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5분여 내려 가면... ['동해남부선']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해남부선" 옛철길이 보이고, 푸른 동해 바다도 보입니다. [운동시설] 12:15 이어서 주민들을 위한 운동시설이 있는 곳에서 고도를 약간 높이면... ['해월정' 조망] "와우산 해월정 臥牛山 海月亭"이 잠깐 보입니다. "와우산"은 해발 109.3m로 [해운대신도시]가 있는 '중동'과 [동해] 사이에 있는 "달맞이공원"의 중심인데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 그리고 "소의 꼬리 부분"이 "미포 尾浦"라고... ['해월정' 앞 바다전망대] 12:23 "와우산 정상 해월정" 아래엔 "바다전망대"가 설치되 있습니다. 이 전망대는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東海"와 "南海"의 경계가 되는 곳이라고 알려져 지리적으로 주는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진짜 "우리나라 '東海'와 '南海'의 경계"가 되는 곳인지 조사해 봤습니다. 먼저 [해양수산부 국토해양조사원] 홈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가서 '東海'와 '南海'의 경계를 찾아 보니 [질의 응답난]에 [해양수산부 담당공무원]의 친절한 답변이 있었습니다. 인용합니다. 우리나라 해상에서 서해, 남해, 동해의 경계는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에 국립해양조사원에서는 업무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동해, 남해, 서해의 경계를 정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경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해안]은 '두만강'에서 '부산시 달맞이 고개 정상'에 위치한 '팔각정(해월정)'앞 동해바다를 조망하는 곳에서 '135도'로 그은 선의 북측해역을 말하며, (현위치를 의미하는듯...) [남해안]은 '달맞이 고개'에서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산 사자봉' '땅끝탑'에서 '225도'로 그은 선 사이이며, [서해안]은 '전남 해남'에서 '압록강'까지를 말합니다. [파란문]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몇번이나 방문했던 [해파랑길 출발점]이자 [종점]인 "오륙도" 앞 "오륙도 해맞이공원"에 가면..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경계 표석을 별도로 또 설치해 놓은걸 볼수있더군요.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업무상 편의를 위해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 '동해'와 '남해'의 경계인 이곳 [해월정] 앞과는 별도로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경계 표석을 별도로 "오륙도 앞"에 설치해 놓은 이유는 아마도 [문화관광부]에서 [해파랑길]을 걷는 답사자들을 위해 설치 한것이 아닐까?라고... 저는 [해파랑길]을 걷는 답사자이기에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오륙도 앞"으로 생각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해파랑길]의 시종점이니까요. 그리고 정부 관련 기관마다 '동해'와 '남해'의 경계점을 조금씩 다르게 표기하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해양수산부] [문화관광부] [기상청]이 모두 달랐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니 각자 나름대로 판단해도 좋을듯...^*^ ['오륙도' 조망]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해와 남해의 경계"인 이곳 - [와우산 해월정] 앞에 있는 [바다전망대]에 서니, [문화관광부]가 설정한 "동해와 남해의 경계""오륙도해맞이공원" 앞에 있는 "오륙도"가 훤하게 조망됩니다. 이곳과 "오륙도"간의 직선 거리는 약8.3km라고 하는군요. "부산항"을 천혜의 세계적 항구로 만들어 준 [장산봉 산줄기]와 [오륙도], [영도]가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장산봉 산줄기]와 [영도] 사이에 [부산항]이 있고 [오륙도]가 방파제 역활을 하니까요... 오늘은 이 광경을 계속 감상하며 [해파랑길]을 걷게 되겠습니다. ['삼포해안길'] 12:28 [달맞이공원]의 숲길-'삼포(구덕포-청사포-미포)해안길'을 5분여 더 진행하면... ['해운대구 중동'-'달맞이길'] 12:29 [달맞이공원 숲길]이 끝나고 '해운대 중동'의 [달맞이길]이라는 도로를 만납니다. ['해운대엘씨티' 조망] [해운대]가 성큼 다가오며 초고층 101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인 "해운대엘씨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포전망대'] 12:30~12:32 이어서 "미포전망대"를 만나는데 조망을 하고 갑니다. ['해운대' 앞바다 조망] [해운대]와 [광안리] 앞바다와 [오륙도]는 계속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낙동정맥]을 하며 산행을 했던 추억의 [구덕산-엄광산-백양산] 산줄기도 보이는군요. ['해운대해수욕장' 조망] 또 다른 각도에서 조망되는 "해운대해수욕장"이 전체적으로 완벽하게 조망되는군요. 멋집니다. 그리고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인 "해운대엘씨티"는 101층으로 금년말에 완공된답니다. 건축 인허가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한동안 뉴스에 무지 오르내렸지요. 여하튼 그동안 해운대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줄 여기와서야 느낄수 있었습니다. '호놀룰루'나 '상파울로'보다도 더 멋집니다. ['해운대비치빌라' 방향 조망] 전망대 뒤 북쪽 방향으로는 [해운대 신도시]의 아파트들이 이미 줄을 서 있고... ['해운대' 가는 길] 전망대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 가면... ['미포오거리'] 12:39 "미포오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부터 "해운대해수욕장"이 시작되었습니다. ['미포건널목'] 바닷가로 잠시 내려 가면... ['동해남부선'] 12:42 새로운 [동해남부선]은 복선 전철로 탈바꿈하여 산을 뚫고 터널로 통과하고 [옛 동해남부선]은 추억 속으로 가며 공원화 되어 산책코스로 탈바꿈하여 구경거리가 되었군요. ['미포항'] ['미포' 안내문] "미포 尾浦"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하고 ['해운대해수욕장'] 12:46 이어서 "해운대해수욕장"이 펼쳐집니다. 고교시절 수학여행부터 시작하여 여러번 방문 한적 있지만 무척 많이 변했습니다. 빌딩들은 하늘로 치솟고, 해변은 더욱 맑끔해졌습니다. 다만 백사장 넓이는 많이 줄어든듯... ['수중방파제등표'] "해운대수중방파제등표"가 제법 예술적 형상을 띠며 설치되 있는 곳 해변에 철 이른 해수욕을 하려는지...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려는지...비키니 차림의 여인이 홀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안눌 선생"이 쓴 詩 "해운대에 올라"라는 詩碑도 해변에 설치되 있었습니다. 조선조 [선조]시대 부터 [광해군] [인조]에 이르기까지...즉 [임진왜란]부터 [정묘호란]까지 관직에 있었는데, 그가 [임진왜란] 이후 1608년 [부산 동래부사]로 재직하던 때에 지은 詩랍니다. 해운대에 올라 - 이안눌 - 구름속에 치솟는 듯 아스라이 대는 높고 굽어 보는 동녁바다 티없이 맑고 맑다 바다와 하늘빛은 가없이 푸르른데 훨훨 나는 갈매기 등너머 타는 노을 [호텔] ['파라다이스호텔'] 호텔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며칠전 뉴스에 "해운대에선 호텔을 찾기보다 손님 찾기가 더 어렵다"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불경기에 너무 많아진 호텔들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호텔들이 많다고... [海松] 소나무와 쉼터... ['해운대해수욕장' 정문] 해수욕장의 중앙에 있는 "해운대해수욕장" 정문을 지나면... ['해운대 모래축제']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는 "해운대모래축제"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돌아 와요 부산항에~'] 준비 중인 모래성을 구경하며 해변을 거닐면... ['해운대관광안내소'] 12:56 "해운대관광안내소"를 지나고 [해변] [송림공원] 하늘로 치솟은 빌딩들을 등에 업고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해운대해수욕장"을 지나면... ['웨스틴 조선호텔'] "동백섬"에 자리잡고 있는 "웨스틴조선호텔"을 만나며 ['웨스틴조선호텔' 앞'] ['동백섬둘레길 들날머리'] 1:05 [해파랑길]은 "웨스틴조선호텔" 앞으로 이어지며 "동백섬"으로 안내됩니다. ['인어전망대'] 1:06 [동백섬 해안데크]로 올라 가면 "인어전망대"를 만나며 ['황옥공주 인어상'] [안내문] "황옥공주 인어상"이라는 조형물을 감상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는데.... "황옥공주"는 '바다 건너 인어나라 마란다국'의 공주라고 하며, 그녀는 '무궁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 갔다는군요. ㅎ 그런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의 첫 왕비가 "허황옥"이죠. '인도 아유타국' 공주로 먼 바다를 건너 '가야'로 온 '인디안' "허황옥"과 약간 연관짓는 인어상인듯...ㅎ "허황옥"은 우리나라 "허씨 許氏"의 시조이죠. 그래서인지 "許氏"들의 머리카락은 대부분 '인도인'들과 같은 꼽슬머리더군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DNA는 숨길수 없는 유전이라는 걸 증명하는건 아닐지... [파란문]이 발견한 꼽슬머리 유전론입니다. ㅎㅎ 믿거나 말거나 [해변데크] [동백섬] 해안데크를 조금 더 진행하면... ['동백섬'과 '오륙도'] 두번째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동백섬]의 해안절경과 어우러져 [오륙도]까지 보입니다. ['동백섬 출렁다리'] 1:09 워낙 튼튼하게 건립해서인지 출렁다리는 별로 출렁거리지 않았습니다. ㅎ [뒤돌아 본 '해운대'] 출렁다리 앞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해운대"인데 '하와이 와이키키해변'이나 '상파울로해변'보다 더 멋진 "海雲臺"로 보입니다. [해변데크] 다시 해안데크를 타고 [동백섬]의 남쪽 끝으로 가면... ['APEC기념 등대전망대'] 1:16~1:19 "APEC기념 등대전망대"를 만납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해운대 석각"을 반드시 보고 가야 하는데 다행이 이정표가 길안내를 잘 하고 있었습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방향을 틀면... ['해운대석각 전망대'] "해운대 석각"을 볼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우측 전망대로 나가야 볼수 있더군요. ['해운대 석각' 조망] ['해운대석각'] "海雲臺 石刻" "해운대"라는 지명을 만들어 준 기원이 이 "海雲臺 石刻"이라고 합니다. 悲運의 天才 "최치원선생"이 음각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海雲臺 石刻"입니다. "최치원선생"의 호가 "고운 孤雲"이고, 자가 "해운 海雲"이죠. 그래서 "바다 위를 떠도는 외로운 구름"이라는 선생의 인생을 대변해 줍니다. "최치원선생"에 대해선 [동백섬] 정상에 있는 [최치원선생 동상]에 가서 언급하기로 하고 ['해운대석각' 안내문] 여기선 안내문을 꼼꼼이 읽어 보고 갑니다. ['해운대' 조망] 마지막으로 [해운대해수욕장]을 뒤돌아 보고 ['APEC기념 등대전망대'] 1:19 ['APEC누리마루' 조망] "APEC기념 등대전망대"로 다시 올라 가서 조망을 합니다. ['오륙도' 조망] [해파랑길]의 시종점인 "오륙도해맞이공원"은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광안대교' 조망] "누리마루APEC하우스""광안대교"가 그림같습니다. ['동백섬 순환로'] [동백섬 순환로]로 나가면 ['누리마루APEC하우스' 정문] 1:22~1:27 [안내문] "누리마루APEC하우스"의 정문으로 들어 갑니다. 무료 입장. [그림] 로비에는 조선 왕실에 걸리는 그림이 걸려있고 [로비] [APEC회의] 당시엔 검색대였던 곳을 지나 회의장으로 들어 갑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던 "노무현대통령"의 방명록이 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라고 기술했군요. 며칠전 "노무현대통령"의 서거 10주기 기념식이 열렸죠. [회의장] 2005년 11월 18~19일에 열린 제13차 APEC 정상회담 회의장 [회의장 남쪽] 회의장을 나서서 바닷가로 나가면 펼쳐지는 풍경.... [회의장 동쪽] 동쪽으로는 조금전 들렸던 "등대전망대"가 보이고... 정자 쉼터도 있군요. ['동백섬' 정상 가는 길] 1:29 [APEC회의장]을 나서서 [동백섬순환로]를 잠시 진행하면 [동백섬]의 중앙 정상에 위치한 [최치원선생 동상]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기까지 와서 선생을 알현하지 못하고 간다는 것은 [파란문]에겐 있을수 없는 일...ㅎ 그래서 올라 갑니다. [오름길] 동백나무가 울창한 [동백섬]의 "동백공원"으로 올라 가는 길은 말끔했습니다. [공사중 통행금지] 1:31 그런데 화장실이 있는 정상 부근에 도착하니 '공사중'이라고 통행금지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휴~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올라 가지 않을 [파란문]이 아니죠? ㅎ 통행금지 가림막 밑으로 기어서 올라 가면... ['해운정'] 1:34~1:37 "최치원선생 기념관"이라는 "해운정 海雲亭"이 나타나는데 잠겨 있어 들어 갈수 없었고 [경주최씨 부산종친회]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최치원선생"은 "경주최씨의 중시조"이시죠. 우측으로 나가면... ['최치원선생' 유적지] "최치원선생 유적지"가 있는데 중앙에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 정치권력의 그림자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이곳 [동백섬] 바닷가에서 자신을 "바다 위를 떠도는 외로운 구름"에 비유한 선생입니다. [삼국사기]에는 관직을 떠나 이곳 '해운대'를 거쳐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만, 언제 저 세상으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 세상 사람들은 그가 神仙이 되었다고... ['최치원선생 동상'] "바다 위를 떠도는 외로운 구름" - "孤雲""海雲"이라는 호와 자를 가진 "최치원선생의 동상"입니다. 龍杖(용장)을 쥐고 있는 모습이 특별합니다.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라는 기록을 여럿 세웠죠.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유학파로 외국에서 그 나라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국비 유학생이었던거죠. 즉, '당나라'로 12세때 유학가서 18세때 당나라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했죠. 외국인이 그 나라의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한다는 것은 지금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 당시 당나라에서 일어난 '황소의 난' 때엔 진압대장 "고변장군"의 종사관으로 참전하여 그 유명한 "토황소격문"을 작성하여 전국에 방을 붙여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데 칼이 아닌 글로 소금장수 출신의 "황 소"라는 반란세력의 위세를 제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답니다. [격문]의 내용은 제법 길어 모두 언급할수 없는데 친절하게 요약하자면 "쿠데타를 일으킨 '황 소'는 대오각성하여 항복하라는 내용이며 항복하지 않으면 지하의 귀신들까지 나타나 너를 죽일것이라는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이 격문을 본 "황 소"는 깜짝 놀라 침상에서 떨어졌을 정도 였고, 민심이 "황 소"를 떠나 난을 진압하게 되어 "칼보다 더 쎈 글"이라고 황제가 칭찬하며 "최치원선생"에게 "금어대"를 하사했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당나라'의 역사책인 [唐書]에도 기록되었으니 그의 업적을 짐작할수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당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되었지요. '당나라'에서의 관직생활을 마치고 고국인 '신라'로 돌아 와서는 (12살에 가서 29세에 돌아 왔죠) '당나라'에서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 '정강왕'에게 바쳤는데, 다음 왕이었던 "진성여왕"이 이 책의 내용을 너무 좋아해 대량으로 발간하게 해 주었답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詩文集인 "계원필경 桂苑筆耕"입니다. 『계원필경』의 제목은 “모래를 헤쳐 금을 찾는 마음으로 계원집(桂苑集)을 이루었고, 난리를 만나 융막(戎幕)에 기식하며 생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필경(筆耕)으로 제목을 삼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최치원선생 유적지'] ['최치원선생 유적비'] 당시 '신라'는 국운이 쇄략하여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진골'과 '성골'들의 권력다툼, 지방 호족들의 반란, 민중봉기등... '당나라'도 국운이 다하여 '송나라'로 권력이 넘어 가고 있었죠. "최치원선생"이 쇄략해 가는 신라를 부흥시키기 위한 상소문을 올리는데... 그게 그 유명한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십조 時務十條"이죠. 멸망해 가는 '신라'를 부흥시키기 위해선 급선무로 해야할 열가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상소문이었답니다. 골품제를 완화하고 인재를 두루 등용하여 정사를 살펴야 한다는 내용등 시국수습 대책 열가지를 "진성여왕"에게 올렸는데, "진성여왕"은 "최치원"의 뜻을 따르려 했으나 '진골세력'들의 저항으로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최치원'은 수구기득권 세력들로 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모든 관직을 내 던지고 "바다 위를 떠도는 외로운 구름"처럼 떠돌이가 되어 이곳 [동백섬]에서 "海雲臺"라는 石刻을 새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그것이 이곳의 地名이 되고... [내림길] 1:38 [동백섬]은 "동백공원"으로 조성되 있는데, 여름철 피서 씨즌을 준비하느라 보수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최치원선생"을 알현하고 [동백공원길] 중앙 통로로 잠시 내려 가면... ['웨스틴조선호텔' 앞 순환로] 1:40 [웨스틴조선호텔] 정문 방향으로 진행되며 ['웨스틴조선호텔' 정문 앞] 1:41 [웨스틴조선호텔] 정문 앞 삼거리가 [동백섬 순환로]의 시종점이었습니다. ['코딜리아 패트'] 1:42 [안내문] 플라스틱 사용 자제를 홍보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동백로다리'] 1:44 [동백섬]은 원래 섬이었으나 모래 퇴적작용으로 육지화 되었다는군요. ['운촌항'] [동백섬]과 '우동' 사이에는 "운촌항"이라는 조그만 항구가 있고 ['해운대구 우동'] 1:53 '해운대구 우동'의 시가지를 통과합니다. ['동백섬'과 유람선] 때마침 "부산 유람선"이 "운촌항"을 돌아 가며 [동백섬]을 바다에서 구경시켜 주는군요. 언제 나도 저 유람선을 타고 부산 구경을 해야 할텐데...실현 될려는지... ['천만관객 영화존'] 1:55 이어서 "해운대 영화의 거리"가 펼쳐지는데 [천만관객 영화존] [에니메이션존] [해운대배경 영화존] [산토리니광장]으로 구성되 있더군요. ['해운대 우동' 초고층 아파트] '해운대 우동'의 초고층 아파트들이 솟아 있습니다. 뒷쪽에 보이는 '두산위브'는 80층짜리 아파트이고 제일 낮은 아파트가 40층이라네요. 서울에도 없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태평양을 바라보며 솟아있는데 대부분 평당 이천만원 정도라네요. ['장산' 조망] "해운대 영화의 거리"를 통과하며 '해운대'의 진산인 "장산 萇山 634m"이 조망됩니다. 부산에서 금정산[800.76m], 백양산[641.33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죠. 제가 2011년 3월11일에 부산 山友들의 초대를 받아 산행을 하며 줏어 들은 얘기 하나 들려 드리면... "장산 萇山 634m"에는 "仙人과 혼인한 ‘고씨 할매 설화’"가 있는 곳이랍니다 아득한 옛날 장산 기슭 장자벌에 고씨 성을 가진 처녀가 홀어머니와 함께 토막집에서 살고 있었다는데, 어느 여름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치더니 멀리 동쪽 하늘에 영롱한 무지개가 나타나고 고씨 처녀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이 빠져 있었답니다. 그때 하늘에서 비단옷을 입은 仙人이 나타나더니 무지개를 타고 곧장 고씨 처녀의 집 앞에 다가와 목이 마르니 물을 청했답니다. 물그릇 속에 비친 처녀의 얼굴은 옥처럼 빛나며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며 仙人도 이쁜건 알아 바로 그 처녀에게 매료되고 말았답니다. 그리곤 둘은 마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을 치렀다는군요. 이들은 장자벌의 땅을 일구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아들 열명과 딸 열명을 낳았다네요. ㅎ 엄청 사랑했나 봅니다. ㅎ 仙人은 혼인한 지 60년이 되자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답니다. 고씨 할매는 仙人의 뒤를 이어 부족을 다스리는 대족장이 되었지만, 仙人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고씨 할매는 장산바위에 올라가 날마다 옥황상제께 남편의 귀환을 간절히 빌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졌다고 하는군요. 자식들은 고씨 할매가 숨진 곳에 큰 무덤을 만들고 부족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됐답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바깥에서 식사를 할 때면 먼저 밥 한 숟갈을 떠서 '고씨례 高氏禮'라 소리지르며 음식을 던진 뒤에 식사하는 등 고씨 할매에게 예를 올렸다고 합니다. "고시레" "고수레" "고씨례"의 어원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고 ....ㅎㅎ 산에서 밥 먹을 때 왜? '고시레~!"를 하는지 이제서야 "고시레"의 어원을 알게 되었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부산 장산 산행기- 여기 클릭"를 참고 하세요 [영화촬영 모형] 2:05 [산토리니광장]엔 영화촬영 모형도 있고 ['스파이더맨'] 잼있죠? ㅎ ['해운대 영화의 거리'] 2:06 "해운대 영화의 거리"를 지나면 [부산 요트 선착장] 2:13 "부산 마리나"로 들어 가는데, '마리나'는 요트 선착장을 일컷는 말이죠. ['부산아시안게임' 기념 조형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요트경기'가 열렸던 곳이랍니다. 기념조형물과 성화대도 있습니다. ['부산 마리나'] 요트들의 '마리나'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2:20 '부산 마리나'를 지나면 바로 옆에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활동을 못했던 영화인들이 많았죠. 그런게 풀리니 이번에 세계 최고권위의 "칸 영화제"에서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받아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해운대구 우동항 삼거리'] 2:22 '우동' 시가지를 통과하면... ['민락교'와 '광안대교'] 2:27 "수영강 水營江"이 바다와 합류하는 "수영만 水營灣"과 만나는 곳에 있는 "민락교"를 건너 갑니다. [수영강]을 경계로 '해운대구'와 '수영구'가 나뉘어 지는데, 건너 가면 '수영구 민락동'이랍니다. "수영강" 가운데에 [광안대교]가 지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水營"이라는 지명이 생겨 났다고 ['수영강'과 '광안대교'] [민락교] 위에서 [수영강] 가운데를 관통하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우동'의 초고층 아파트들을 조망합니다. [해변길 연결 계단] 2:33 [민락교]에서 해안데크로 내려 가는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 가면... ['장금이국수'] 2:36~3:11 [수영강] 강변에 '장금이국수'라는 식당에서 '장금이국수'를 곱빼기로 한그릇 먹었는데 값은 5,500원이었고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해안데크길] 이제 '수영구 민락동'의 해안데크길을 진행합니다. [쉼터] 3:23 해안데크길이 끝나면 [광안대교]가 위용을 뽐내며 바다 위를 달리고... ['광안리해수욕장' 횟집거리] 계속해서 '민락동 회센타'를 통과하면... ['광안리해수욕장'과 '금련산' 조망] "광안리해수욕장"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며 그 뒤로 "금련산 金蓮山 413.6m"도 보입니다. ['광안해변공원' 앞] 3:39 [광안해변공원] 앞에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진행하고 마지막 구간에서 뒷풀이와 함께 짧은 [오륙도해맞이공원]을 갈 예정입니다. 걸은 거리는 약13km였으며 3시간반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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