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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파도랑 함께 걷는 해파랑길』 [해파랑길 3코스] "부산구간 첫번째" 답사기 월내교-배상기공덕비-월내역-월내항-임랑해변-문동항-칠암항-동백항-수산과학연구소- 온정항-이동항-한국유리해변길-이천항-강송교-일광해수욕장-기장경찰서-기장군청 ['코스 안내도'] [해파랑길 3코스]는 "해파랑길 부산구간"으로 진입하는 남진 [부산구간 첫번째 코스]가 되겠습니다. 벌써부터 "오륙도"가 다섯개인지 여섯개인지 가물가물 보이는듯 가슴 설렙니다. [국토지리원 e맵] 오늘은 지난 구간의 종점이었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에너지팜]에서 출발하여 해안선을 따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신천리'에 있는 [기장군청]까지 약15km를 진행합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에너지팜'] 11:47 2019년 4월 10일 (수) 흐리고 바람 어젯밤 모처럼 비다운 비가 내렸는데 그 후유증으로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 질듯 잔득 찌푸리고 있는데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아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만...사진의 색깔은 흑백같아 아쉽습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에너지팜]을 나서면... ['길천삼거리'] [길천삼거리]를 지나고... ['월내교'] 11:51 이어서 [월내교]를 만납니다. [월내교]는 [장안천]을 건너가는 다리로서 '길천리'와 '월내리'의 경계가 되며 이 지역이 '기장군 장안면'인데 [장안천]은 '장안면'을 관통하고 있는 개천이더군요. ['월내어린이공원' 위치] [월내교]를 지나면 길조심을 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좌측 해변길로 [해파랑길]이 이어 질듯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우측 골목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특히 남진하는 답사객들은 조심하여야 하더군요. 많은 횐님들이 왼쪽 해안으로 발길을 옮겨서 "이쪽이에요 ~!"라고 소리 질러도 자신들의 상식을 믿고 대부분 해안가로 향하더군요. 저는 홀로 [한국관광공사] 공식 홈페이지 [두루누비]가 안내하는 정식 코스인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이곳에서 [한국관광공사]가 해안길을 버리고 골목으로 [해파랑길]을 만든 이유는 아마도 앞에 표기한 [배상기 보부상 공덕비]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월내어린이공원'] 11:52 "배상기 보부상 공덕비""월내어린이공원" 입구에 있습니다. "배상기 공덕비"에 대해선 지난 답사기에 이미 언급했지만 한번더 언급하면... ['배상기 공덕비'] ['월내리 공덕비' 안내문] "배상기 공덕비" "배상기 裵常起 1842년~1920년"는 1842년 '전라북도 익산'의 토호집안에서 태어났는데... 1862년 민란에 연루되어 쫓기게 되자 보부상을 따라 이곳 '기장군 월내리'로 숨어 들었답니다. 1862년에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민란이 전국적으로 일어 났었죠. 특히 진주를 비롯한 경상도와 곡창지대인 전라도 등지에서... [배상기]는 낯선 어촌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젊은 시절, 기장지역에서 생산되는 고등어. 갈치. 대구. 소금. 미역등 소위 '어염해조류'를 매입하여 가까이는 기장장(읍내시장)과 좌천장(중북시장)을, 멀리는 동래. 안동. 영천장 등지로 다니면서 팔기도 하고 약품. 양곡. 포목. 칠기. 잡화류 등과 물물교환하며 부를 축적했답니다. 그는 멸치로 젓갈을 담아 내륙지를 통해 팔았다는데 그래선지 멸치젓갈의 원조라고 구전되고 있답니다. 그가 재산을 모은 일화가 재미있는데, 어느 날 월내 바닷가에서 파도에 밀려온 거북이를 발견하자 막걸리를 먹여 바다로 돌려보냈는데 이때부터 재산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ㅎ 보부상으로 모은 부를 이 지역을 위해 많이 사용하여 지역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개나 세워줄 정도로 지역 공헌도가 큰 사람이었답니다. 평생 하나 받기도 어려운 공덕비를 세개씩이나 받은 내용을 공덕비를 통해 알아 보면... "좌우사반수배상기휼상영세불망비(左右社班首裵常起恤商永世不忘碑)"는 1904년에 "보부상 조직에 참여했던 행상들의 상행위를 도와준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세운 공덕비라고하며 "통정대부배공상기창계휼리비(通政大夫裵公常起刱契恤里碑)"는 1913년에 "보부상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월내마을을 중심으로 계를 창설하여 상업 활동에 적극 나선 것"을 칭송하고 "통정대부배공상기창숙장학비(通政大夫裵公常起刱塾漿學碑)는 1917년에 "보부상 조직을 유지하며 글방을 열어 학문을 장려하였다"하여 세워준 공덕비랍니다. 여하튼 그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지역 상업활성화와 장학사업을 위해 사용한 훌륭한 사람이었답니다. [골목길]] [월내어린이공원] 옆으로 난 골목길을 잠시 진행하면... ['동해선' 건널목] 11:56 [동해선] 철로 건널목을 만나는데 때마침 열차가 지나 가고 있습니다. [동해선] 바로 뒤에는 "부산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조만간 '고리원자력발전소'까지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어 나겠군요. 여하튼 [부산] 속으로 들어 가고 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철로 갓길] [해파랑길]은 [동해선] 철길 옆으로 진행되는데 공사로 모양새가 조금 이상해 진듯합니다. 우측에 [부산동해남부선] "월내역" 전철역이 완공 단계에 있는듯... [갈림길] 11:59 철길 옆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을 두번 만나는데 두번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좌측으로 100m 정도 골목을 걸어 나가면... ['31번국도'] 12:01 "월내리"를 통과하고 있는 [31번국도]를 다시 만나 건너가서 건너편 골목으로 직진합니다. ['월내리' 중심가]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중심지를 구경하고 앞에 보이는 횡단보도를 이용해 건너 갑니다. ['월내항'] ['월내항 공판장'] 12:03 그러면 바로 "월내항 月內港"을 만납니다. 파도가 높은 이런 날 오후의 漁港은 아무래도 더욱 한산하리라... [해안길] 12:06 '월내리' 해변길을 따라 [임랑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기장군 8경" 중에 "제1경"이라고 하는 "달음산 588m"이 조망됩니다. [포항]의 해안가에는 온통 "迎日-해맞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았습니다만 이곳 [부산 기장군]에는 東海에서 특이하게 "月內-달맞이"라는 지명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기장군 8경] 중에 으뜸이라는 [달음산]도 "달그림자"에서 유래한다고 하니 묘한 느낌을 느낍니다. ['31번국도'] 12:11 [월내해변]을 벗어나면 다시 [31번국도]를 만나 잠시 진행합니다. 지붕에 자동차도 올려 놓고...다양한 손님끌기가 눈길을 끌지만 갈길 바쁜 나그네는 눈팅만하고 ['고스락'] 영화 [보안관]을 촬영한 곳이라나 뭐래나... [고스락]이라고 하는 음식점이 펜션처럼 늘어서 있고 ['임랑항' 가는 길] 12:14 [고스락]을 지나면 [해파랑길]은 다시 바닷가 [임랑항]으로 안내됩니다. ['임랑항'] 12:16 [임랑항]으로 들어 가면 먼저 낚시에 걸린 물고기 조형물이 회색빛 하늘에 밝음을 선사해 주고 ['임랑해수욕장'] 이어서 "임랑해수욕장"이 펼쳐집니다. 한자로 "林浪"이라고 쓴다는데, 松[林]과 파도[浪]이 아우러지는 곳이라고.... 눈길을 끄는 것은 [꽃밭에서]라는 카페인데... ['정훈희 김태화의 꽃밭에서'] 12:19 가수 '정훈희' '김태화'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꽃밭에서]라는 카페랍니다. 저와 동시대를 함께한 가수인데...세월도 빨라요 ~ 바람불고 파도치는 철 이른 바닷가의 카페들은 모두 조용하군요.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듯... ['임랑행정봉사실'] 12:21 이어서 "임랑행정봉사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이 [해파랑길3코스]의 시종점인데....그래서 [스탬프함]도 여기 있고 [민박촌 벽화거리] 계속해서 [임랑해수욕장]의 민박집 벽화거리가 이어 집니다. 이 지역 출신 중에 유명한 분이 있다죠? [포항제철]을 일군 "박태준" 회장이 이곳 출신이랍니다. ['임랑교'] 12:25 [임랑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 화장실과 샤워장이 설치되 있는데 앞에는 [좌광천]이라고 하는 개천이 흐르고 있어, 앞에 보이는 [임랑교]를 건너 가야 하더군요. [임랑교]로 올라 가면.... ['임랑교' 위 쉼터] 12:27 [좌광천]이라는 개천을 건너는 [구 임랑교]에는 쉼터가 조성되 있더군요. 알고 보니 [신 임랑교]는 좌측에 있고 이 다리는 구 다리여서 쉼터를 조성한것이었습니다. [현위치] [현위치]를 확인하고... ['문동리 31번국도'] 다시 [31번국도]를 따라 '기장군 일광면 문동리'로 들어 갑니다. [임랑교]에서 7분여 [31번국도]를 진행하면.... [폐쇠된 해파랑길] 12:34 폐쇠된 [해파랑길]을 만나는데...부실공사인지 사유지인지... 조금 더 가서 좌측 으로 내려 갔습니다. ['문동항'] "문동항 文東港"을 만나고 ['문중항' 쉼터] 12:36 연이어 "문중항 文中港"을 만나는데 쉼터와 안내도가 있습니다. 이곳엔 "해창 海倉"이 있었던 곳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기장 미역'은 전국에서도 으뜸이라고 하고, 특히 멸치등 해산물로 유명하지요. 그래서 조선시대까지는 세금으로 바칠 해산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항상 붙어 다녀 해산물도 세금으로 거둬드렸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해동지도 기장현'] [해동지도 기장현]편을 보는데..뭐가 뭔지 어디가 어딘지 훌터보기만 하고 ['칠암항'] "칠암항 七岩港"으로 들어 갑니다. [칠암항]은 비교적 번화하더군요. 횟집도 많고.... ['야구등대'] 12:43 "칠암항 七岩港"은 큰 바위가 일곱개나 있다는 의미이겠으나 "칠암항 七岩港"의 볼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야구등대"라는군요. 왼쪽 빨강색 등대는 "갈매기등대"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동안 [칠암항]이라고 하면 "아나고 회"가 먼저 떠 올랐는데...ㅎㅎ ['칠암항 횟집 거리'] [칠암항] 횟집거리를 통과합니다. [임랑해수욕장]에서 2.4km이고 앞으로 가야할 [일광해수욕장]까지는 6.0km가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야구등대' 다녀오기] 12:48 [칠암항]이 끝나는 지점에서 [야구등대]를 다녀 오기로 합니다. [야구등대]를 다녀 오는데 13분이 걸렸습니다. ['붕장어 등대'] [흰색 야구등대]까지는 방파제 위에 관광도로를 설치해서 걷기에 편했는데 저는 [야구등대] 보다도 "붕장어 등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근접 사진 촬영을 못해서 지금도 무지 아쉽습니다. [야구등대]도 희귀하지만 "붕장어 등대"는 더더욱 희귀하죠. "붕장어"는 우리말이고 일본놈들이 쓰는 "아나고"로 더 알려진 "붕장어"인데 요즘은 꼬들꼬들한 "아나고회"는 부산지역이 아니곤 맛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온통 수입 냉동 '붕장어'와 '먹장어'여서 횟감으로 사용 할수가 없기 때문이라네요. [칠암항]이 "아나고의 고장"이라는 걸 화려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야구등대'] 12:52 "야구등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10m 길이의 야구 방망이, 글러버, 그리고 공을 형상화한 등대이군요. ['최동원' 안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고는 실제 안내문에는 "최동원 선수"에 대한 내용으로 도배했더군요. 그래서 [최동원등대]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ㅎ [야구 글로버 속으로 보이는 '고리원자력발전소'] ['고리원자력발전소' 조망] [야구등대]에서 [고리원자력발전소]를 조망하고... ['달음산' 조망] [야구등대]에서 "기장8경 중 제1경"이라는 "달음산"을 조망합니다. 東海라 하면 먼저 日出이 떠오르는데 이 지역엔 "달맞이" "달그림자"등의 지명이 많아 특이합니다. 앞으로 언급할 예정인 "난계 오영수"의 단편소설 "갯마을"에도 등장하는 "달음산"입니다. 주인공 "해순이"가 재혼해서 농사를 짓고 살던 곳이 "달음산 계곡"이어었다는데, 바다를 잊지 못하고 다시 바닷가 갯마을로 도망쳐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내용의 [갯마을]의 배경이 되는 산이죠. 그래서 그녀의 이름도 '바다와 함께 순응하며 산다'는 의미의 "해순이 海順이"였습니다. "해순이 海順이"에겐 저 "달음산"이 감옥으로 느껴져 바다가 펼쳐지는 갯마을로 탈출했지요. [야구등대]에서 바라보는 [달음산]이 갯마을의 젊은 과부 "해순이"의 넋을 바라보고 있는듯... [방파제 관광도로] [야구등대]에서 다시 방파제 위에 설치된 관광도로를 따라 [칠암항]으로 돌아 갑니다. ['신평해변'] 1:01 [칠암항]을 지나면 [신평리 해변]이 이어지고 ['신평소공원' 입구] 1:03 [해파랑길]은 바닷가 "신평소공원"으로 이어 집니다. 입구에는... ['윳판대 조망소'] 1:03 ['윳판대'] "윳판대" 조망소가 있는데, 윳판 모양 바위가 보인다고... 스토리텔링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같아서 생략합니다. [야외공연장] 1:04 [신평소공원]에 있는 [야외공연장]이 바다를 향해 아담하게 설치되 있고... 여기서 "해변의 여인"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어떨까 ['신평해변'] [신평소공원] 앞 바다는 높은 파도로 요란스러웠습니다. [해변의 여인]이 잘못하다간 물에 빠져 죽을듯...ㅎ ['신평소공원'] 1:05 "신평리 新平里"는 "새 들"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군요. 공원 규모는 작지만 제법 아기자기하게 꾸몃습니다. [뒤돌아 본 '고리원자력발전소'] [고리원자력발전소]를 한번더 뒤돌아 보고... [어선] 예산을 제법 많이 투입한듯한 [신평소공원]을 통과합니다. ['리버사이드팬션'] 1:08 이어서 해변에는 펜션과 커피샆들이 이어지고... 모퉁이에 보이는 쉼터 정자를 돌아 가면... ['동백항'] 1:12 [''동백해녀복지회관'] 1:17 "동백항 冬栢港"이 펼쳐지고... "해녀 海女"는 '제주도'에만 있는 걸로 연상되지만 동해안에도 많은가 봅니다. 여러곳에 [해녀복지회관]이 건립되 있었습니다. <오영수의 단편소설-갯마을>의 주인공 [해순이]가 자꾸 떠오릅니다. <갯마을>은 제가 고교학창시절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었죠.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신영균'과 '황정순', [홍대 공예과]에 다니던 '고은아'씨들이 출연했었죠. 23살의 청순 과부 [해순이]역을 맡았던 '고은아'씨도 지금은 팔순이 가까워지는 할머니가 되었으니 지금 그 영화를 다시 찍는다면 시어머니역을 맡았던 '황정순'씨역을 맡아야 할듯... 아!~ 세월은 인간들의 삶을 되풀이하게 하고... ['동백리'] 1:19 [동백리]를 통과하여 [수산과학연구소] 방향으로 가면... ['수산과학연구소' 조망] 1:20 [부경대 수산과학연구소]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해변을 따라 연구소를 빙 돌아 갑니다. [쉼터] 1:25 연구소 모퉁이 지점에 쉼터 전망대가 있는데... 올라 가서 뒤돌아 보면... [해변 무덤] 바로 아래 해변에 무덤이 눈길을 끕니다. 파도에 견디고 있는 무덤인데 특이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갯마을의 해순이> 생각이 떠오릅니다. 바다를 무지무지 사랑한 [海順이].... 왜냐하면 <갯마을>의 첫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서(西)로 멀리 기차 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각대는 H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덧게덧게 굴 딱지가 붙은 모 없는 돌로 담을 쌓고, 낡은 삿갓모양 옹기종기 엎딘 초가가 스무 집 될까 말까? 조그마한 멸치 후리막이 있고, 미역으로 이름이 있으나, 이 마을 사내들은 대부분 철따라 원양출어에 품팔이를 나간다. 고기잡이 아낙네들은 썰물이면 조개나 해초를 캐고, 밀물이면 채마밭이나 매는 것으로 여느 갯마을이나 별 다름 없다. 다르다고 하면 이 마을엔 유독 과부가 많은 것이라고나 할까? 고로(古老; 경험이 많고 엣 일을 잘 알고 있는 늙은이)들은 과부가 많은 탓을 뒷산이 어떻게 갈라져서 어찌어찌 돼서 그렇다느니, 앞바다 물살이 거세서 그렇다느니들 했고, 또 모두 그렇게들 믿고 있다. 해순이도 과부였다. 과부 충에서도 가장 젊은 스물 셋의 청상이었다. ['온정항'] 1:28 수산과학연구소를 돌아 가면 "온정항"을 만나는데 커피샆과 음식점들이 많았고 손님도 많은듯 ['일광로'] 1:31 [온정항]을 지나면 [일광로]라고 하는 자동차 도로를 이용해야 하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탱자꽃"을 구경하며 25분 가량 도로를 진행합니다. ['해동성취사'] 1:34 [해동성취사]라는 절을 지나면... ['이천리' 부대앞] 1:41 [현위치] [이천리 이정목]이 있는 [부대앞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현위치를 알려 주고 [음식점] 부산 다웁게 해산물 음식점들이 줄을 잇습니다. ['이동수산' 앞] 1:51 [해파랑길3코스]는 "부산 갈맷길"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갈맷길]은 부산의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는 "갈매기"에서 따온 길이름이라고... ['이동항' 입구 삼거리] 1:55 [온정항]에서 25분여 도로를 진행하면 다시 다닷가로 나가라고 안내합니다. ['이동항'] 1:56 "이동항"으로 들어 가는데 [이동항]은 [이천리]의 동쪽에 있다고 [이동항]이라 한다네요.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본사'] 2:01 [이동항]을 통과하면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본사를 만납니다. 여기도 노사갈등이 있는듯... 공단 앞마당을 통과하면... [해변길 입구] 2:03 길이 끊어진듯한 해변 조그만 횟집을 만나는데 직진해 횟집 옆으로 가야하더군요. ['한국유리 부산공장' 해변길] 이어서 우측엔 [한국유리부산공장]의 옹벽이 있는 해변 오솔길을 10여분 진행하고 ['이천항' 방파제] 2:12 [이천항] 방파제를 지나면... [해변 울타리길] [한국유리부산공장] 울타리 옆길을 5분 정도 걷습니다. 이제 [일광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하며 [일광해녀복지관]도 등장하는군요. ['이천항'] 2:17 ['이천항' 중심지] 2:20 "이천항 伊川港"도 제법 번화하군요... [이천항] 중심지를 5분여 두리번 거리며 지나면... ['강송교'] 2:22 "강송교"를 건너는데 아래엔 [일광천]이 흐르고 있더군요. [강송교] 건너편엔 [별님공원]이라는 어린이공원이 있고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가 있으니 관심 가지고 건너야 볼수 있습니다. ['오영수 문학비'] 2:24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가 [별님공원]이라는 어린이공원 앞에 설치되 있습니다. 문학비에는 <갯마을>의 내용 일부가 새겨져 있었는데 글이 희미하고 너무 짧아 그 의미를 느낄수 없어 제가 그 부분의 원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해순이와 숙이 엄마는 물기슭 모래톱으로 해서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추진 모래가 한결 시원하다. 벌써 후리는 시작되었다. 굵직한 로프에는 후리꾼들이 지네발처럼 매달렸다. -데에야 데야- 이편과 저편에서 이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로프는 팽팽해 지면서 지그시 당기어 온다. 해순이와 숙이 엄마도 아무렇게나 빈틈에 끼어들어 줄을 잡았다. 바다 저만치서 선두가 칸델라 불을 흔들고 고함을 지른다. 당겨 올린 줄을 뒷걸음질 하는 사람들이 '데에야 데야'를 선창해서 후리꾼들의 기세를 돋우고, 막 거간들이 바쁘게들 서성댄다. 가마솥에는 불이 할활 타고 물이 끓는다. 그물이 가까워 올수록 이 '데에야 데야'는 박자가 빨라진다. -데야 데야 데야 데야- 이 때쯤은 벌써 멸치가 모래톱에 헤뜩헤뜩 뛰어 오른다. 멸치가 많이 들면 수면이 부풀어 오르고, 그물주머니가 터지는 때도 있다. 이날 밤도 멸치가 무던히 든 모양이다. 선두는 곧장 칸델라를 흔든다.. 후리꾼들도 신이 난다. -데야 데야 데야 데야- 이때 해순이 손등을 덮어 쥐는 억센 손이 있었다. 줄과 함께 검잡힌 해순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내버려 두었다. 후리꾼들의 호흡은 더욱 거칠고 빨라진다. 억센 손이 어느새 해순이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해순이는 그만 줄밑으로 빠져나와 딴 자리로 옮아 버린다. 그물도 거의 올라왔다. -야세 야세- 이 때는 사내들이 물기슭으로 뛰어들어 그물주머니를 한곳으로 모아드는 판이다. 누가 또 해순이 치마 밑으로 손을 디민다. 해순이는 반사적으로 휙 뿌리치고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멸치가 모래 위에 하얗게 뛴다. 아낙네들은 뛰어오른 멸치들을 주워 담기 바쁘다. 후리는 끝났다. ['별님공원'] [갯마을문학비] 뒤엔 [별님공원]이라는 어린이 공원이 있고 ['일광해수욕장'] 2:26 이어서 "일광해수욕장 日光海水浴場"이 펼쳐 집니다. [기장8경] 중에 [제3경]이라는 해수욕장이라고 하는데 모래사장의 총 면적은 3만 9,670m2, 길이는 1.8km, 너비는 25m라고하는 제법 큰 해수욕장이라고 합니다. [배 전망대] 2:31 고려말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등 세분의 聖人이 경치에 반해 머물다 갔다고 하는 "삼성대 三聖臺"가 [배 전망대] 바로 앞 해변 백사장 가운데에 있습니다. "고산 윤선도선생"이 귀양와 '죽성리'에서 6년간이나 거주했었다는데 그 당시 그의 동생이 면회 왔다 갈때의 심정을 적은 詩 두 수 "贈別少弟二首"를 보면 당시 그의 심정과 그 분의 꼿꼿한 정신세계를 느낄수 있더군요. “너의 뜻을 따르자니 새로운 길을 얼마나 많은 산이 막을 것이며, 세파를 따르자면 얼굴이 부끄러워짐을 어찌하리오.” 조선시대에도 돈이나 삼베를 내고 죄를 면하는 '속전(贖錢)제도'가 있었답니다. 요즘으로 치면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는 '보석제도'입니다. 윤선도의 이복동생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보석금을 내고 그를 한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선도"의 詩에는 편법을 써서 부끄럽게 풀려나기보다 당당하게 형기를 마치겠다는 의지가 굳건하게 담겨 있지요. 그래도 동생을 쫓아가고 싶은 마음까지야 어쩌지 못해 죽성리에서 말을 타고 이곳 '삼성대'까지 와서 배웅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詩속에 이어집니다. “내 말은 내달리고, 네 말은 더디건만 이 길 어찌 차마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수 있으랴?” 조선시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선생]의 대쪽같은 절개가 잘 나타나 있는 詩라고 생각됩니다. ['삼성리'] 2:32~2:47 (점심식사) [일광해수욕장]이 있는 마을이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랍니다. 이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간단하게하고... ['일광해수욕장 입구'] 2:49 [일광해수욕장] 출입구를 나와 ['일광교차로' 가는 길] [일광교차로]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5분 정도 진행하면... ['일광교차로'] 2:54 [후동입구]라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일광교차로]를 통과하면... ['기장읍'] 2:58 '기장읍'의 중심지로 들어 갑니다. '부산광역시'라고 하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기장경찰서'] 3:00 이어서 [기장경찰서]를 지나고 ['기장체육관' 앞] ['기장체육관'] 3:07 계속해서 [기장체육관]을 지나 갑니다. ['기장군청' 조망] [기장체육관]에서 10여분 진행하면 [기장군청]이 보이기 시작하고 ['기장군청'] 3:18 ['기장대로 560'] 상당한 규모의 [기장군청]에 도착합니다. 군청으로 올라 가면... ['차성가 詩碑'] "차성가 시비 車城歌 詩碑"가 설치되 있는데... [차성가]는 이 지역에 전해내려오는 노래인데, 그 내용은 이 지역의 산천경관을 두루 읊은 기행체의 노래로서 애향심이 물신 풍기는 가사문학작품이라고 합니다. [베 짜는 여인] [차성가 시비] 앞에는 베짜는 여인 조형물이 있는데 [차성가]와 무선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장군청' 정문] [기장군청]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에서 세수를 좀 하고 뒷문으로 나가면... ['봉대산' 조망] 3:20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봉대산"이 조망됩니다. [해파랑길3코스]는 원래 저 [봉대산]을 넘어 [대변항]까지 가야 합니다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고 나머지는 다음 구간에 추가로 걸을 예정입니다. 오늘 제가 걸은 거리는 [야구등대] 왕복등 추가로 걸은 구간을 합쳐 15.5km였으며 3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단편소설 <갯마을>에서 [해순이]가 뭍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마지막 부분을 읽어 봅니다. 고등어 철……! 해순이는 그만 호미를 내던지고 산비탈로 올라갔다. 그러나 바다는 안 보였다. 해순이는 더욱 기를 쓰고 미칠 듯이 산꼭대기로 기어올랐다. 그래도 바다는 안 보였다. 이런 일이 있는 뒤로 마을에서는 해순이가 매구(천년 묵은 여우가 변하여 된다는 전설에서의 짐승)혼이 들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시가에서 무당을 데려다 굿을 차리는 새, 해순이는 걷은 소매만 내리고 마을을 빠져나와 30리 산길을 단걸음에 달려 온 것이다. “진정이냐,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라, 보자!” 숙이 엄마의 좀 다급한 물음에도 해순이는 조용조용,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밭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온통 바다만 같고…….” “그래!“ “바다가 보고파 자꾸 산으로 올라갔지 머, 그래도 바다가 안 보이데….” “그래 너거 새서방은?” “징용 간지가 언제라고.” “저런…….” “시집에선 날 매구 혼이 들렸대.” “쯧쯧.” “난 인제 죽어도 안 갈 테야! 성님들 하고 여기 같이 살 테야!” 이때 후리 막에서 야단스리 꽹과리가 울렸다. “아, 후리다!” “후리다!” “안가?” “왜 안가?” 숙이 엄마가 해순이 보고 “앞치마만 두르고 빨리 나오라니…….” 해순이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낙네들은 해순이를 앞세우고 후리 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식은 모래가 해순이는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렸다. 달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들었다. -데에야 데야- 드물게 보는 멸치 떼였다. <끝> 이 작품은 인간의 본원적 순수성을 빼앗아 간 "현대 물질 문명이나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추구한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문명이 미치지 않는 갯마을을 배경으로 어촌, 바다에 대한 사랑을 지닌 '해순'이라는 여인을 통하여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서민적 정취를 담아 내고 있다고 '파란문'은 생각합니다. [해파랑길]은 이렇게 우리들의 일상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줍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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