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문화숲길]
"원효깨달음길" 2코스 산행기
한서대입구-대곡리마을회관-내포문화숲길안내소-한서대앞산-312.7m봉-임도사거리-
석문봉능선고개-일락사-일락산등산로삼거리-개심사주차장-개심사일주문
心生卽種種心生 心滅卽種種心滅
如來大師云 三界虛僞 唯心所作
한 생각이 일어나니 갖가지 마음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갖가지 마음이 사라진다.
여래께서 이르시되, 삼계가 허위이니
오직 마음이 마음을 만드느니라
- '마명보살'지음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글인데 -
- '원효스님'이 재해석한 '大乘起信論疏'에서 -
[구글지형도]
[구글어스]
[개념도]
[원효깨달음길 2코스]는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 있는 "한서대입구"에서 출발하여
"가야산 중턱 임도 허릿길"을 통과하여 "일락사"를 지나 "개심사"로 가는 "11.8km"의 길이었습니다.
['한서대학교' 입구] 8:000
2017년 6월 23일 (금) 맑음 연무
[분당선]을 타고 [망포역]에서 내려 다시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수원버스터미널"로 가서
[한서대-해미-서산-태안]으로 가는 6:50 시외버스를 타고 '충남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 있는
"한서대 앞"에서 내렸습니다.
버스 요금은 6,700원이었고 1시간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예전 [금북정맥]을 할때 여러번 이용했던 버스.
교통이 편리해져 서울에서 근교 가는 시간 정도면 '수원'에서 '서산'을 갈수 있었습니다. ㅎ
['연암산' 조망]
"한서대 입구" 삼거리에서 지난 1코스의 대표산이었던 "연암산"을 조망하며 추억으로 남기고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에서 "해미"방향으로 100m쯤 내려 가면
['원효깨달음길 2코스' 출발지점] 8:06
[원효깨달음길 2코스]의 출발지점인 [대곡2리표지석]이 어서오라고 반겨 줍니다.
[원효깨달음길]은 앞에 보이는 "한서대 앞산"으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한서대 앞산"이라는 지명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고 제가 편의를 위해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대곡2리] 마을 골목길로 들어 가면...
['대곡리마을회관' 앞] 8:11
[대곡리 마을회관]을 지나 조금 더 올라 가면...
[갈림길] 8:13 ★ 길조심 ★
길안내판이 있는 골목 삼거리를 만나는데 안내에 따라 좌회전합니다.
직진하면 [한서대]로 가는 길이더군요.
[골목]
골목으로 방향을 바꾸면 "한서대 앞산"이 성큼 다가오며, [내포문화숲길 안내소]가 보입니다.
"대곡2리"는 "한서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원룸들로 이루어진 마을인듯... 온통 원룸들이었습니다.
['내포문화숲길 안내소'] 8:15~8:20
"내포문화숲길 안내소"에는 화장실도 있어 탐방객들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느낄수 있는데
안내원은 아직 출근시간 전이라 출근을 안한듯 잠겨 있었습니다.
여기서 산행 준비를 간단하게 하고 출발합니다.
['내포문화숲길 서산구간 안내도']
[내포문화숲길]은 [서산시-홍성군-예산군-당진군]이 합동으로 만든 "323.7km"에 이르는 걷기코스인데
이곳에는 [내포문화숲길] 중에 [서산시구간]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한서대앞산' 조망]
[내포문화숲길안내소]에서 "한서대 앞산"을 바라보면서 등산을 시작합니다.
[삼거리]로 표기한 곳까지
[오름길]
15분 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능선 삼거리] 8:35
길안내판이 있는 능선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정면으로 "일락산"이 보이는데 사진에는 연무로 희미하게 나타나는군요.
여기서 다시
['한서대 앞산' 조망]
"한서대 앞산"을 바라보면서 7분 정도 더 올라 가면...
[삼거리] 8:42
"한서대 앞산" 정상부근에 길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를 다시 만나는데
우측 가까운 곳에 "한서대 앞산" 정상이 있습니다만,
[원효깨달음길]은 정상은 가지 않고 그냥 좌회전하라고 알려 줍니다.
[오름길]
좌회전하여 잠시 올라 가면...
['가야산' 조망] 8:44
쨔-안~ [금북정맥]이 지나고 [충청남도 도립공원]인 "가야산"이 펼쳐집니다.
[원효깨달음길]은 앞에 보이는 거대한 "가야산"을 한바퀴 빙~도는 코스로 조성되었더군요.
"가야봉-석문봉-옥양봉"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이 "二代天子之地"라고 하는 명당자리를 만드는
병풍 역활을 한다고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의 묘를 "상가리"로
이장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죠. 다음 3-4코스에서 "남연군묘"를 방문하게 되겠습니다.
이나저나 [원효깨달음길 2코스]는 앞에 보이는 "가야산 중턱"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가는 길이었습니다.
['일락산 일락사' 조망]
[원효깨달음길]은 "가야산 중턱" 임도를 따라 "일락사"로 가서 다시 능선을 넘어 "개심사"로 가더군요.
여기서 앞으로 진행할 [원효깨달음길2코스]를 전체적으로 가늠하며 갈수 있어 좋더군요.
[내림길]
"한서대 앞산"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 가면...
[쉼터] 8:48~9:00
간단한 운동시설 몇개와 의자가 있는 안부 쉼터를 만나서 잠시 쉬어 가고
[오름길]
얼마전 산불이 난 흔적이 있는 오름길을 5분여 오르면...
['312.7m봉' 정상] 9:06
"312.7m봉"정상에 오르고
['한서대' '연암산' 조망]
"한서대학교"가 조망되며, 지난 1코스에서 올랐던 "연암산"이 이제 멀어지기 시작하는군요.
[능선 내림길]
길은 매우 넓고 선명합니다.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임도사거리] 9:19
비포장도로인 임도를 만나는데 삼거리가 아니라 사거리이군요.
우측 샛길로 내려 가면 "한서대"로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길안내판이 앞에서 안내하고 있는데 좌측길로 가라고 알려 줍니다.
[가야산 허릿길-비포장도로]
지금부터 "일락사"까지 1시간 40분을 이 임도를 따라 걷게 되겠습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시야가 트이는 곳도 거의 없어 지루하다면 지루한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으며 "원효의 깨달음"과 "원효깨달음길"의 의미를 나름대로 음미하며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 "원효의 깨달음"은 '원효'와 '의상'의 유학길에서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유학을 간 길"에 대해 알아 보고
2. "원효의 깨달음"이란 무었인지도 확실히 알아야겠죠?
3. 그리고 "원효의 깨달음"에 대해 "파란문"의 개인적 관점에서 나름 음미해 보겠습니다.
이 글은 종교적 관점이라기 보다는 "파란문" 개인의 사적인 느낌이오니 종교적 논쟁은 의미가 없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정도로 흘깃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야산 허릿길-비포장도로]
"가야산 허릿길"은 오르내림도 있지만 산책로 수준으로 조용히 걷기엔 괜찮은 길인듯 하군요.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천삼백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불교를 국교로하여 佛國을 세우려했던 新羅시대 "진평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있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으로 너무나 유명하신
"혜초스님"은 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시로는 거의 불가능한 머나먼 인도의 다섯나라로 여행을 떠나
불교 발생지를 두루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 '돈황'에서 객사하시고...
"원효"와 "의상"은 다소 가까운 '당나라'로 불교공부를 위해 지금말로 하자면 유학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원효와 의상의 1차 유학길"
"원효"와 "義湘"이 의주, 압록강을 지나 요동반도 쯤 갔을때,
'당나라' 수비병들에게 붙잡혀 감옥살이를 하게됩니다. 죄명은 간첩죄였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우리의 삼국을 독립국으로 보지 않고 자기들의 속국으로 보았는데,
삼국중 특히 고구려가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당나라에 맞짱뜨고 있을 때여서 국경수비가
삼엄했을 때였다고 합니다.
몇달간의 옥살이 끝에 간신히 탈출한 원효와 의상은 고향인 신라로 허무하게 되돌아 옵니다.
'1차 유학길'은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석문봉 등산로 입구 삼거리] 10:12
[임도사거리]에서 가야산 허릿길을 50여분 진행하면 "석문봉 등산로입구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 능선이 "석문봉"에서 "해미"로 뻗어있는 능선으로 "일락사"로 넘어가는 고개이더군요.
"원효와 의상의 2차 유학길"
그러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을 그렇게 쉽게 끝낼 인물들이 아니란건 다 아시죠?
학구열에 불타는 원효와 義湘은 기필코 더많은 것을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2차 유학길'에 오릅니다.
지난 '1차 유학길'은 陸路를 이용하는 바람에 당나라 수비병들에게 붙잡혀 곤혹스런 감옥살이를 했으므로,
이번엔 체포될 염려가 없는 뱃길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들이 지금의 수원을 지나 남양반도의 '화성시 남양'을 거쳐 "화성시 송산 서신" 쯤 갔을때...
밤이 어두워져 어느 공동묘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기에 모두들 아시죠?
그리고 밤중에 원효가 묘지에서 잠을 자다가 지친 몸이라 목이 말라 곁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맛있게
마셨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어젯밤에 마신 물은 해골 바가지에 고여있는 시체 썩은 물이었다는거~~
모르고 마실 때엔 맛있었는데 시체 썩은 물이란 사실을 알곤 토하고 난리법석을 떨었다는거~~
그런데 이 헤프닝에서 그 유명한 "원효의 깨달음"이 탄생되지요.
"해골바가지에 고여 있는 시체 썩은 물을 마신 그 무덤"은 어디인지 기록에 남아 있는가?
이것은 조금 중요한 문제 인데 왜냐하면 이곳 "서산시-홍성군-예산군-당진군"에서
현재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원효깨달음길]이라고 길을 만들어 마치 이곳에서 "원효의 깨달음"이
진짜로 있었다고 하는듯 하여서 입니다.
"원효"와 "의상"의 유학길과 깨달음에 대해선 기록으로 상세히 남아 있습니다.
'송나라'의 "찬녕(919~1002)"이라는 사람이 982년부터 988년에 걸쳐 편찬한
<송고승전>의 "당신라국 원효 의상전"에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이를 토대로 다시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쓴 그 유명한 [삼국유사]의 [원효 의상 전교]에도
그들의 행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원효가 깨달음을 얻은 그 무덤"은 "당항성" 부근이었다고 하는데
"당항성"은 현재 "화성시 송산면-서신면"에 걸쳐있는 "구봉산"의 "당성 唐城"이라고 합니다.
저도 "당성 唐城"을 직접 답사 한적이 있는데 [태행지맥]을 종주 할때 두번 다녀 왔습니다..
"당성 唐城"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태행지맥 마지막편]을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기록을 종합해 볼때
[원효깨달음길]은 이곳 "충남 태안반도"가 아니라 "경기 화성시 남양반도"에 있어야하는거 아니겠습니까?
[2013년 3월에 촬영한 "화성시 송산면 서신면"에 걸쳐 있는 "당성 唐城"입니다]
城의 이름을 "당나라 당 唐"을 사용하는것도 특이한데
옛날 삼국시대엔 "당나라"를 왕래하는 가장 빠른 뱃길이 이 근처였답니다.
지도를 보면 사실 "대부도"에서 "산동반도"까지가 가장 가까운 거리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유학을 간 "의상"은 여기서 배를 타고 "산동반도"의 "양주"에 도착하게 되는데
지금의 "봉래시 등주(登州)"가 됩니다
[뒤돌아 본 '가야봉']
"석문봉입구삼거리"에서 뒤돌아 본 "가야봉"입니다.
산허리길을 많이 진행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해골물사건"이라는 이 하나의 헤프닝이 원효에겐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지요?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사는 집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는 유명한 말이 여기서 탄생되었죠
즉,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는 "원효"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가 되었습니다.
心生卽種種心生 心滅卽種種心滅
如來大師云 三界虛僞 唯心所作
한 생각이 일어나니 갖가지 마음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갖가지 마음이 사라진다.
여래께서 이르시되, 삼계가 허위이니
오직 마음만이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즉,"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는 쉽게 얘기하자면
'세상만사 마음 먹기 달렸을 뿐'이라는 의미의 말이겠죠?
['일락산' 조망]
[금북정맥]이 "가야산 석문봉"에서 '서산-태안'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일락산"이 조망되기 시작하고
내림길이 이어 집니다.
"원효의 유학 포기"
공동묘지에서 해골 바가지의 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은 것까지는 좋으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 갑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구하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나라에는 있으며, 당나라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 간것입니다.
물론 "의상"은 '원효'의 여러 유혹을 뿌리치고 홀로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고
'상해' 부근의 '종남산'에 있는 "지상사"에 가서 "지엄스님"에게 "화엄학"을 배우며, 공동 연구하며
십여년간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가야산 허릿길-비포장도로]
"석문봉등산로입구삼거리"에서 완만한 내림길을 25분 정도 진행하면....
여기서 저의 개인적 여담 하나 들려 드릴까 합니다
'원효'의 인간 내면의 세계를 제 개인적 각도에서 바라 보았는데...
단순한 개인적 생각으로 '원효대사'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것을 먼저 알려 드림니다.
다음 글은 이미 2008년 1월에 쓴 글이며 인터넷에 올려졌던 글입니다.
"원효의 깨달음에 대한 '파란문'의 생각"
"당성" 근처 무덤에서 해골 바가지에 담긴 시체 썩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일방적 선언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 간 '원효'.....당시 30대 중반이었답니다.
정말로 "깨달음" 때문에 유학을 포기한 것일까!~
평범한 인간인 "파란문"은 불교도들에게 욕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합리적 추론을 해봅니다.
'원효'가 유학을 포기한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1차 유학 길에서 간첩으로 오인 받아
요동에서 감옥살이까지 하며 고생해서 실제 마음 속으로는 재차 유학을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義湘'은 기필코 간다고 하니 자기는 가지 않을 명분을 찾아야
했으리라고 추측됩니다. 핑개를 만들어야 했겠지요? ㅎㅎ
그것이 해골물 사건의 "깨달음"으로 술수를 쓴게 아닌가하는 개인적 의구심이 듭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떻게 들리세여?
"어디에 가서 무엇을 구하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나라에는 있으며, 당나라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
아리송송하지만 저 같은 범생은 그저 유학 가기 싫어 핑개를 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개고생하며 유학 갈 필요 있냐? 여기서도 얼마던지 깨우칠수 있지 않는가?"라고 하는듯 하지 않습니까? ㅎ
그 유명한 원효의 "깨달음 一切唯心造"가 유학 기피용 술수?
원효 좋아 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저를 혼낼려 할텐데...ㅎ
그냥 개인적 생각쯤으로 받아 들여 주소서...
['일락사' 조망] 10:36
[원효깨달음길2코스]에서 유일하게 사람 사는 곳인 "일락사"가 육안으로도 보이고...
사실 '원효'는 스스로도 말했드시 "나는 양아치다!"라고 할 정도로 생활이 개판인 중이었죠.
스님이 공주를 꼬셔서 3일간이나 정사를 벌여 아들도 낳고...ㅎ
이 이야기는 다음 3-4코스에서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거리] 10:44
8분 정도 더 진행하면....
유학을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 온 "원효"는 "요석공주"와 그 유명한 "삼일야화"의 주인공이 되고
중이 여인과 정사를 한다는건 불교에선 있어선 안되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원효는
스스로 양아치라 칭하며 그후 저잣거리로 나가 "무애 無碍"와 같은 행동을 하고 다녔답니다.
그리곤 서민들의 佛心을 키우는데 매진합니다.
대승불교를 실천하는 것이죠.
여하튼 당시엔 왕실을 주축으로 하는 귀족불교에 '원효'가 매진하다가
일반 서민들을 상대로 하는 대승불교로 길을 바꾸고 불교의 대중화에 힘쓰게 되었다는거죠.
저의 윗글들만 읽으면 원효는 땡중처럼 보일려는지 모르겠으나 후에 그의 업적은 어마어마하죠?
많은 집필 활동을 하여 지금까지 그의 불교철학은 유구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불교"의 중추가 되었지요.
['일락사' 진출입로] 10:45
"임도사거리"에 비포장도로인 임도를 따라 1시간26분을 진행하면
자동차가 다니는 [일락사 진출입로]를 만나고
우회전 하여 올라 갑니다.
['일락사' 가는 오름길]
은근히 힘든 도로 오름길을 6분 정도 오르면...
['일락사' 입구] 10:51~11:26
"일락사 입구"에 도착합니다.
앞에 보이는 정자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일락사'] 11:26~11:41
[일락사 연혁]
"일락사 日樂寺"
'날마다 즐겁게'... 이런 뜻이겠죠? ㅎ
자세한 연혁은 안내판을 참고 하세요.
['일락사' 앞 마당]
"일락사" 앞마당입니다.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삼층석탑과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독특하게 가지를 친 노거수가 山寺의 美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석문봉' 조망]
"일락사" 마당에서 "석문봉"을 조망합니다.
[금북정맥]에서 [석문지맥]을 분기 시키는 봉우리이기도 하죠.
[석문지맥]에 대해선 제가 쓴 [석문지맥산행기]를 참고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조금전에 넘어온 "석문봉등산로입구삼거리"가 있던 고개가 보입니다.
['개심사' 가는 길] 11:41
"일락사"에서 "개심사"로 가는 [원효깨달음길]은 "산신각" 가는 길 좌측으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개심사 4.02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계단]
가파른 계단 오름길을 5분여 오르면...
[능선삼거리] 11:46
"일락산등산로"가 있는 능선에 오르게 됩니다.
좌측에서 오는 등산로는 "일락산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등산로이더군요.
[오름길]
오름길을 8분 정도 더 오르면...
[쉼터 봉우리] 11:54
이정표와 평상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엔 [원효깨달음길안내판]은 없고
['일락산' 방향]
이정표가 [일락산 1.0m→] 방향을 가리키는 곳을 바라 보면 삼거리가 보이는데
30m 정도 앞에 있는 삼거리로 가면...
[삼거리] 11:55
길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를 바로 만납니다.
[원효깨달음길]은 좌측으로 가고 우측으로는 "일락산"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내림길]
삼거리에서부터 내림길이 이어 집니다.
잠시 진행하면...
[갈림길] 12:01
통나무를 짤라 만든 장의자가 두개 있는 삼거리를 다시 만나는데, 여기선 우측으로 안내됩니다.
[내림계단]
돌계단을 잠시 내려 가면...
[비포장도로] 12:02
비포장도로를 다시 만납니다.
이 비포장 도로는 [금북정맥]을 넘어 "용현계곡"을 지나 "보현사지"로 가는 도로이더군요.
[갈림길] 12:04
비포장도로를 100m 정도 진행하면 안내판이 도로를 벗어나 좌측 숲길로 내려 가라고 알려 줍니다.
[내림계단]
돌계단을 내려 가서
[내림길]
산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계곡 삼거리] 12:13
계곡을 만나 우측으로 내려 가게 됩니다.
[숲길]
숲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삼거리] 12:23
다리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곳이 중요한 곳인데, [원효깨달음길]은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 앞에 보이는 산으로 가더군요.
저는 별볼일 없는 산길을 피해 시간을 단축 시키기 위해 좌측 비포장도로를 이용합니다.
좌측 비포장도로를 따라 4분여 내려 가면...
['깊은골농원'] 12:27
"개심사' 입구 계곡에 있는 "깊은골농원"이라는 음식점을 통과하고...
['자연농산']
"자연농산"이라는 음식점도 통과하면
['개심사' 진출입로 삼거리] 12:33
"개심사"로 통하는 진출입 자동차도로를 만나 우회전하고...
['개심사주차장'] 12:34
"개심사 주차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직진해서 조금 더 올라 가면...
['개심사 일주문'] 12:36
"게심사 일주문"을 만나는데 [원효깨달음길 2코스]는 여기서 종료하고
"해미택시"를 불러 "해미"로 가서 음식점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서산"으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귀가 했습니다.
개심사"에서 "해미"까지 택시비는 13,500원이 나왔습니다. 시간은 5분 정도 걸리더군요.
[구글어스]
서쪽에서 바라보는 [원효깨달음길2코스] 구글어스입니다.
[내포문화숲길]의 [원효깨달음의 길]은 역사적 사실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단순히 길의 이름을 [원효깨달음의 길]이라 한것이리라.
앞에서도 언급 했드시 역사적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원효가 깨달음을 얻은 그 무덤"은
현재 "화성시 송산면-서신면"에 걸쳐있는 "구봉산"의 "당성 唐城" 부근이라고 하니까...
여하튼 길 이름을 '서산시-홍성군-예산군-당진군'이 먼저 [원효깨달음길]이라고 사용했으니
'화성시'가 양보한 결과가 된것인가..아니면 선수를 뺏긴 것일까...ㅎ
하지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재미로 읽어 주세요 ㅎ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1.8km였으며 전체적으로 4시간반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