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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
      "양평 물소리길 1코스-문화유적숲길" 탐방기
           양수역-용담리-정창손묘-부용리-이덕형신도비-부용산약수터-
           샘골고개-여운영생가-신원역-양서초교-도곧터널-국수역
        
   
               * 꽃과 바람 *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면 꽃처럼 살면 되고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면 바람처럼 살면 된다. 
           꽃은 자신을 자랑하지도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바람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으니 험한 산도 자유롭게 오른다

                        
                         


  ['물소리길' 전체 개념도]

    
     "양평 물소리길"은 총연장 "59.1km"라고 합니다.
     '양평군'은 다양한 미사여구로 "물소리길"을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백문이불여일견'이니 직접 탐방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코스 공식 개념도]

  [정방향 1코스와 팔당댐 주변 구글어스]

  [서쪽에서 동쪽방향 1코스 구글어스]

"양평물소리길 1코스"는 "양수역"에서 출발하여, "샘골고개"를 넘어 "신원역"을 통과하여 "국수역"까지 가는 "15.3km"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윗 구글어스를 보면 "청계산" 아래 자살한 "최진실씨 묘"도 참고로 표기했습니다. ㅎ 위의
를 클릭하여 별도 창을 열어 두고 답사기를 읽으시면 이해하기가 더욱 쉽겠습니다. [양수역 1번출구] [양수역 1번출구] 8:27 2015년 8월 27일 (금) 대체로 맑음 사정상 "3코스-4코스-5코스"를 먼저하고 "1코스"를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드는 날에 "양평 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을 가기 위해 '중앙선'을 타고 "양수역"에 내렸습니다. [양수역 1번출구]로 내려가니 바로 "물소리길" 안내가 시작되었고 "물소리길"은 안내판과 리본등 표지기로 길안내를 하고, 필요한 곳엔 길바닥에도 표시를 하여 처음 찾는 이방인들에게 나름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양수역 1번출구]로 나가 좌측 방향으로 5~60m 떨어진 곳에 있는 "중앙선 굴다리"로 갑니다. ['중앙선' 굴다리 통과] 8:28 이 '중앙선 굴다리'는 '용담2리' '부용1-2리' '목왕1-2리'에 사는 분들이 대부분 통과하는 중요한 굴다리이더군요. 지금은 "한강기맥"이 지나는 "벗고개"에 터널이 뚫려 '서종면'으로도 왕래 할수 있는 중요한 길이 되었더군요. [양평군 공영주차장 앞] 8:29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하자마자 공영주차장이 있고, 그 우측으로 '물소리길'은 이어집니다. 100여m 직진하면.... [물소리길 종합안내소] 8:31 삼거리를 만나며 "물소리길종합안내소"가 있습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근무 중인 안내원은 없고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좌측으로 30여m 가면.... [부용산 등산로 입구] 8:32 "용담2리"안내석과 "부용산 등산로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가정천"을 건너가는 다리를 건너 갑니다. [삼거리] 8:34~8:38 (4분간 알바) 그러면 처음으로 [양수역에서 0.6km] 진행했으며, [국수역까지 13.2km] 남았다는 팻말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길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무심결에 선명한 좌측 도로를 갔더니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화도-양평간 제2공구 건설현장] 사무실이 있었고 막다른 길이어서 처음부터 알바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ㅎ "돌다리도 두둘겨보고 건너자"라는 속담을 다시 한번더 상기 하며 길을 갑니다. [갈림길] 8:39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도 이정표가 길을 안내 합니다. 여기서부터 "하계산"과 접경되 있는 마을을 지나 가게 되더군요. [밭] 밭을 지나 산과 가까워지는 곳까지 가서 산 아래 좌측으로 길은 휘어 집니다. 휘어지는 곳에 가서... [뒤돌아본 '양수역'방향] 8:44 "양수역"에서부터 지나온 길을 조망 할수 있으며, 그 뒤로 "천마지맥"의 마지막 산인 "예빈산"의 "견우-직녀봉"이 조망되며 좌측으로는 "검단지맥"의 마지막 산인 "검단산"이 조망 됩니다. [용담리 주택가 통과] "용담2리" 마을을 8분여 걸리며 통과하면... [부용리] 8:52 "부용2리"로 넘어 가며 갑자기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우측 앞에 보이는 산줄기를 통과해 넘어 가야하더군요. 물론 이 길을 따라 직진해 가도 다시 만나기는 하지만, "물소리길"에 충실해야겠죠? [갈림길] 8:53 콘테이너가 있는 삼거리에 [12.1km.↔1.7km지점]을 알리는 팻말이 있는 곳에서 골목으로 들어 가서 저 앞에 보이는 삼거리로 가면... [삼거리] 8:54 우측에 산속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습니다. [1코스]의 이름이 [문화유적숲길]이어서인지 산길이 몇군데 있었습니다. [숲길 입구] "물소리길"이 "산새소리길"로 변하는 입구입니다. [숲길] '물소리' 대신에' 매미소리'가 진동하는 숲길이었습니다. 완만한 오름길과 내림길을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9"04 갈림길이 나오는데 아무런 방향표시가 보이지 않았는데 우측으로 가보니 뒤에 좌측으로 가라는 방향표시판이 있었습니다. 좌측으로 완만한 내림길을 3분여 진행하면.... [갈림길] 9:07 '물소리길'은 갑자기 우측으로 인도됩니다. [내림길] 갈림길에서 3분 정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새로 만든듯한 나무다리를 건너고.... 우측으로 개울을 따라 잠시 오르면 ['정창손' 묘소 앞] 9:09~9:15 (6분간 탐방) "정창손 묘소"를 만나며 길은 좌측으로 안내됩니다. 갑자기 새로운 세계에 온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동산제] ['정창손 묘소' 전경] "정창손 鄭昌孫 1402~1487".... 그는 누구인가? 그는 '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에 이르기까지 고위관직을 38여년간이나 두루거쳤는데 영의정만도 15년간이나 했던 불세출의 인물입니다. 무지무지 장수하기도 했으니 가능했겠지만...... 그러나 후세 백성들은 그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고 현재도 '정창손선생'이라던가하는 단순한 존칭조차도 붙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이 단순히 "정창손"이라고만 부르는듯 한데 그 이유는 무었일까요? "세종대왕"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여 집현전에 근무하였는데, 당시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의 그 유명한 '한글창제반대상소'에 앞장서며 강력한 반대를 하다가 "세종대왕"에 의해 모두 감옥으로 가기도 한 "한글창제반대세력"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단종"이 즉위하자 당시 이조판서에 까지 올랐던 '정창손'은 "수양대군"의 쿠데타 세력에 합류하여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는 반정에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단종복위운동"을 벌였던 '성삼문' '박팽년'등 '사육신'들을 밀고해서 모두 사형시키는 밀고자 역활도 하고 그러니까 당시 최고의 모사꾼 "한명회"의 꼬봉으로 활동을 하며 언제나 살아있는 권력에 빌붙는 처신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종" 때엔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윤씨"를 폐비시키는데 앞장서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 부관참시 당하기도한 인물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인간들은 모두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정창손'이 모두 권력 지향적인 일만 한것은 아니겠지요. '고려사' '세종실록' '문종실록'등의 편찬에도 참여했답니다. 정창손의 묘역은 신도비문에 의하면 연산군에 의한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하면서 신도비와 함께 파괴되었다가 '중종 반정'으로 신원이 복귀되면서 신도비를 제외하고 다시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위에 보이는 "정창손의 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 방제동'에 있었던 것으로 도시개발로 1970년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새로 조성한 것으로 부인묘와 하나의 봉분으로 합장하고 이전의 석물과 새로운 석물을 함께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묘의 좌측에 부인묘비와 정창손의 묘비가 있고 묘의 좌우에는 2조의 문인석을 배치하였는데 상석과 망부석, 장명등, 동물석상은 근래에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부용2리' 버스정류장 가는 길] 9:15 '정창손' 관련 역사 이야기 하나 더 언급합니다. "정창손과 남이장군" 잘 아시는 "남이 장군"은 1457년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면서 "수양대군 세조"의 신임까지 듬뿍 받으며 관직을 맡아 경기북부 도적때들을 섬멸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일조하고 이후 여진족까지 토벌하며 27살의 젊은 나이에 '오위도총부도위관', 즉 현재의 육군참모총장에 오르지요. 그리고 한해 후엔 현재의 국방장관 자리인 '병조판서'에 까지 오르며 조선의 兵權을 한손에 쥐게 됩니다. "세조"가 '훈구파(혁명파)"들을 견제하기 위한것이기도하지만, "세조"가 이만저만 신임한게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남이장군"을 쿠데타 주체세력인 "한명회, 유자광, 정창손등"이 그를 가만히 두고 바라만 보고 있었겠습니까? "남이장군"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쓴 유명한 詩가 있지요? 白頭山石 磨刀盡(백두산석 마도진) 豆滿江水 飮馬無(두만강수 음마무) 男兒二十 未平國(남아이십 미평국) 後世誰稱 大丈夫(후세수칭 대장부)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닳게하고 두만강 물은 말에게 먹여 말리오리다. 사나이 스물에도 나라를 평안하게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나를 대장부라 말할수 있겠는가 이 詩가 그의 운명을 가르는 독약이 될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권력이 "남이장군"에게로 갈것을 우려한 "한명회 일파"는 '남이장군'을 총애하던 "세조"가 죽자 즉시 '남이장군'을 제거하기 위한 모사를 꾸미지요. 그 중심부에 "정창손"이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위의 詩를 이용하는데, 윗 詩의 "未平國""未得國"으로 고쳐 새로 왕위에 오른 어린 "예종"에게 '남이장군'이 왕위를 넘본다고 속여 역모죄로 처단 하도록 꼬드겼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종"의 와이프가 '한명회의 딸'이죠? 즉, "예종"의 장인어른이 "한명회"였습니다. 이렇듯 당시는 "이씨조선"이 아니라 "한씨조선"이었던 때였습니다. "未平國""未得國"으로 바꾸면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면"이라는 뜻으로 바껴 역모를 꿈꾸는 놈으로 확 바껴버리지요? 나라를 평안하게 하겠다는 의미가 역모로 바뀌는 것인데 이런 모사를 "한명회 일파"가 결행하며 "남이장군"을 옥에 가두고 가혹한 고문을 가하지요. 그리고 결국 저잣거리에서 마소(馬牛)로 하여금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해져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나이가 고작 28세였으니 아까운 인재를 너무 쉽게 음모로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치권력을 쥐기 위한 모사 모반이 극에 달한 조선의 비극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뀐 '연산군' 시절에 이들은 모두 부관참시 당하며 역사의 모사꾼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지요. '연산군'의 폭력은 사안에 따라 평가를 달리 해야 한다는게 이런 것들입니다. "정창손 묘소"를 우연찬게 지나다 보니 그 옛날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부용2리' 버스정류장 앞 卍자 사거리] "정창손 묘지"를 벗어나면 [부용2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사거리를 만납니다. "양평역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해 오는 자동차 주도로를 다시 만나는 것이지요. ['부용2리' 버스정류장 앞] 이 사거리엔 "물소리길쉼터"라는 편의점도 있고.... ['부용1교' 가는 길] 9:19 이 사거리에는 [양수역에서 2.8km지점]이라는 팻말이 설치되 있으며 "부용1교"를 향해 직진해 갑니다. 100m 정도 진행하면.... ['부용1교' 앞] 9:21 "가정천"을 건너는 "부용2교" 앞에 도착하며 '물소리길'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우측 길로 갑니다. ['부용2리' 개천길] 좌측에 "가정천"을 끼고 13분여 진행합니다. 중간에 갈림길이 있습니다만 "가정천"을 끼고 계속 직진하면 되더군요. [삼거리] 9:34 그러면 [양수역에서 3.9km 지점]이라는 팻말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정진기숙학원' 조망] '한강기맥'이 지나는 "청계산"과 "형제봉"이 조망됩니다. 그리고'물소리길'이 지나는 "정진기숙학원"도 보이는군요. ['부용2교' 건넘] 9:36 "가정천"을 따라 가다가 [부용2교]를 만나면 다리를 건너 가서 "정진기숙학원"으로 갑니다. ['부용2교'에서 진행방향] [부용2교]에서 바라보면 앞에 첫번째로 보이는 다리를 건너 "정진기숙학원"으로 갑니다. 저 다리 앞으로 가면... ['4.1km' 지점] 9:38 [양수역에서 4.1km지점]이라고 알리는 팻말이 있고 다리를 건너 3분 진행합니다. ['정진기숙학원' 조망] "정진 본원 기숙학원"이 점점 가까워지며.... [정진기숙학원 앞] 9:41 "정진기숙학원" 앞에 도착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 가려면 학원이 학교 보다 더 우위에 있나 봅니다. [삼거리] 9:42 "정진기숙학원" 앞을 돌아 가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안내판을 따라 진행하고 [갈림길] 9:45 개인 주택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이정표를 만나며... [논두렁길] '물소리길'은 눈두렁을 따라 가도록 안내됩니다. 논두렁을 'ㄱ'자로 진행하면.... ['부용4교' 조망] [부용4교]를 만납니다. [부용4교]로 올라 가서... ['부용4교'에서 진행방향] 9:47 앞에 보이는 자동차도로로 올라 갑니다. [마을 주도로 건넘] "양수역 굴다리"에서 오는 자동차도로를 만나 건너 가고... [구 도로] 9:49 옛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잠시 진행하면.... [쉼터] 9:51~9:57 의자가 있는 쉼터를 만나며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운길산' 조망] 쉼터에서 지나온 방향을 조망하니 "운길산"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운길산 수종사"도 보였습니다. ['5.2km' 지점] 9:58 쉼터에서 30여m 진행하면 '산양삼재배지'를 지나며 '물소리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숲길] 10:00 그러면 '물소리길'은 우측 산으로 올라 가라고 안내를 합니다만, 몇십m 지나지 않아 다시 이 길로 내려와 다시 합류하더군요. 굳이 올라 갔다와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후답자들은 그냥 직진하면 되겠습니다. 2-30m 거리입니다. ['이덕형 신도비'] 10:01 "한음 이덕형선생 신도비"를 만납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선생 묘지"가 건너편에 있는데 이곳엔 신도비가 있는 곳입니다. '물소리길'은 "이덕형선생의 묘지"는 통과하지 않더군요.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덕형 신도비' 안내문] "이덕형선생"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만화책 동화책등에 수없이 등장한 인물..."오성과 한음"의 실제 인물이지요. "백사 이항복"이 "오성"이고... 두 사람 다 최고위 관직이란 관직은 모두 올랐던 막상막하의 수재들이죠? 판서라는 판서는 모두 거치고 영의정까지 모두 지냈습니다. "권율장군"의 사위가 "백사 이항복"이고, "영의정 이산해"의 사위가 "한음 이덕형"이죠. 또한 "이산해"의 작은 아버지가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입니다. [숲길 입구] 10:02 "한음 이덕형선생 신도비"를 지나면 바로 숲길이 시작됩니다. [숲길] 숲길을 10여분 진행하면.... [목왕2리] 10:11 "목왕2리"로 들어 가게 되고... [이덕형 詩碑] 10:16 '이덕형선생'의 詩碑를 지나며 [계곡] 10:17~10:21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 갑니다. 여기서 길조심을 해야 하는데 좌측 주택 앞으로 올라 가야 하더군요. [주택 통과] 주택 앞을 통과하여 조금 올라 가면.... [목왕2리 자동차도로] 10:23 "목왕2리"를 이어주는 자동차도로를 만나서 [목왕2리 자동차도로]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올라 갑니다. [느티나무] 10:28 그러면 버스정류장 이름이 [느티나무]인 중요한 "느티나무"를 만납니다. 여기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부용산' 가는 길] 이곳은 "부용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하더군요. 주택 뒷마당같은 곳을 지나 직진해 갑니다. [부용산 산길 입구] 이정표가 있으며 지금부터 산길이 시작됩니다. "부용산" 오르는 길입니다. [갈림길] 10:30 바로 갈림길을 만납니다만 어느길로 가나 다시 만나고....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갑니다. "부용산" 오르는 등로입니다만, 경사는 심하지 않아서 오르는데 별 문제는 없더군요. 15분 정도 오르면.... ['부용산약수터고개'] 10:45 이름 모를 고개에 오르는데 사거리였습니다. 우측길은 "부용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물소리길'은 안내판이 가리키는데로 직진해 고개를 넘어 갑니다. ['물소리길약수터'] 10:47~11:11 고개를 넘어 가면 바로 "부용산약수터"가 나타나는데, 안내판에는 "물소리길약수터"라고 표기해 놨습니다.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되 있으며 "물소리길 1코스 도보 인증대"가 설치되 있습니다. 또한 우측에는 약수터가 두군데 있는데 마셔도 좋다는 수질 적합 판정을 받았더군요. '물소리길'을 갈때엔 물을 미리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겠지요? 여기서 25분 정도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갑니다. [부용산과 오이씨 전설] 안내문을 읽어 보시고.... [부용산 정상-부인당] 이 사진은 제가 2010년 1월 16일에 "부용산" 정상에 올랐을때 사진입니다. "부용산 정상"에는 보시는바와 같이 "부인당"이라는 팻말이 있었고 정상석은 정상 아래에 설치해 놨더군요. [당시 구글어스 산행괘적] 그 당시 제가 쓴 "형제봉-청계산-부용산-하계산 산행기를 참고하려면 http://blog.daum.net/paraanmoon/7801187 여기 클릭 [갈림길] 11:11 "물소리길 약수터 쉼터" 앞에는 갈림길이 있는데 우측으로 가야하고... [청계산-형제봉 조망] 바로 "청계산"과 "형제봉"이 조망됩니다. [전나무숲] 이어서 울창한 전나무 숲이 이어지며, 삼림욕장이라고 삼림욕하고 가라고 하지만 그냥 지나치고 6분여 진행하면.... [샘골고개] 11:17 2010년 1월 16일에도 지난적이 있는 "샘골고개"에 도착합니다. 등산객들을 처음으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부용산" 정상까지는 0.54km이고, "청계산"까지는 4.88km라고 알리고 있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또한 "신원역"까지는 1.9km라고 [내림길] 10여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샘골 등산로 들날머리] 11:28 '양평군 양서면 신원1리'에 있는 "샘골"을 만나며 산길은 끝납니다. [샘골 전경] "샘골" 주택들이 조망되는데, 화살표 방향으로 통과합니다. [샘골마을길] 11:33 마을을 통과하며 남쪽을 조망하면... [앵자지맥 조망] '남한강' 건너편에 있는 "앵자지맥"의 산들이 조망되고... 자세한 내용은 "파란문"이 두발로 쓴 "앵자지맥 산행기"를 참고 하시고.... [남한강 조망] 이어서 "중앙선"과 "남한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뒤돌아 본 '샘골고개'] 11:37 뒤돌아 보며 지나온 길을 조망합니다. "부용산"과 "샘골고개", 그리고 "샘골"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물소리길쉼터] 11:43 "샘골"에서 "여운형선생 생가"로 넘어 가는 길에 "물소리길 쉼터"라는 막걸리집이 있고... [고개] 11:44 삼거리인 고갯마루에 올라 서면 "여운형선생 생가"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나고 "신원역"까지는 0.9km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도 있습니다. ['여운형' 생가] 11:46 고개를 넘어 가면 바로 "여운형선생 생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몽양기념관] 11:47~11:49 생가 아래에는 "몽양기념관"이 있는데 입장료를 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에 들어 가면 기념관 내부를 설명과 함께 볼수 있으니 직접 관람은 생략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엔 일제 권력에 빌붙어 잘먹고 잘살다가 해방이 되니 이젠 대한민국의 권력을 잡아 호의호식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이 날뛰는 해방정국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제와 싸우며 독립투쟁을 하던 애국자들은 그런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나쁜놈들로 매도 당하며 암살 당하기 시작합니다.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그 대표적입니다. "여운형선생"같은 민족주의자도 무려 10번이나 암살을 당할뻔하다가 결국 혜화동 사거리에서 총격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배후도 공범도 없다는 열아홉살의 한지근이라는 소년이 범인이라고 경찰은 붙잡았습니다만 이를 믿는 국민들은 없었겠지요? 지금도 믿어지나요? ㅎ 권력을 향한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우리 역사는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 위의 "정창손 묘"에서 언급했던 정치적 모사가 예나 지금이나 이어지는 것이죠. "몽양 여운형선생"은 '배재학당' 출신이며 '조선중앙일보' 사장이기도 했던 언론인이며 독립운동으로 감옥까지 가며 싸운 민족주의자였지요. [갈림길] "몽양기념관"에서 내려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어디로 가나 다시 만납니다만 좌측길은 "몽양선생"의 詩碑를 전시한 길이더군요. [몽양 유객문] 11:55 詩碑길을 내려가면 가장 큰 바위에 세긴 "夢陽 留客文"이 눈길을 끕니다. 이 "留客文 유객문-손님을 머무르게하는 글"은 '몽양 여운형선생"이 직접 쓴 글은 아니지요. 그 유명한 중국의 "朱子"가 쓴 글인데.... 이 글에 얽힌 사연에 대해선 제가 옛날에 읽은 기억이 나는 "몽양 여운형 평전"속에서 찾아 볼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기형선생"이 쓰신 "몽양 여운형 평전"에 나오는 글이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몽양이 봉안으로 내려운 그해 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다. 낯선 중년신사가 혼자 찾아왔다. 여운형의 말에 의하면 경성 사람은 아닌 듯 싶었고, 뭘 끄집어내는데 낡은 '경성일보'신문이었다. 신문을 펼쳐놓고 손님은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여선생을 평상시 숭배했던 사람입니다.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 신문을 보고 이럴 수가 있나 하고 분개했습니다, 여운형 선생마저 이러시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요? 벼르고 별러 오늘에야 찾아뵈었습니다.” 몽양은 어떻게 설명할까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백지 조각을 찾아 내놓고 만년필로 내리써갔다. 人我人我不喜 人我不人我不怒我人 人我不人我人 我不人人我人我不人 欲知我人不人 我人我不人人之人不人 “이 글을 알지 모르겠습니다만 '주자유객문(朱子留客文)이라는 우스개글입니다. 주자는 귀한 손님이 자기 집에 찾아오면 이 글을 보이면서 이걸 풀이하면 그냥 가도 좋고 만일 풀지 못하면 자고 가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정통 한문이 아닌 이 글이 어디 해석이 됩니까. 공연히 손님을 묶어두자는 수작이지요. 손님은 부득이 하룻밤을 묵으면서 주자와 유쾌한 담소를 나누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몽양은 다음과 같이 토를 다는 것이었다. 人我人이라도 我不喜요, 人我不人이라도 我不怒라 我人이면 人我不人이라도 我人이요, 我不人이면 人我人이라도 我不人이라 欲知我의 人不人인댄 我人, 我不人 人之 人不人하라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기뻐할 바 아니요,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내가 노여워할바 아니니라.내가 사람이면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내가 사람이요, 내가 사람이 아니면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사람이 아니니라. 내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고자 할진댄 나를 사람이다 아니다 하는 사람이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아보도록 하라." 손님이나 김용기나 운혁이 "네, 네" 하면서도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다는 표정으로 보였던지 몽양은 부연해서 설명해주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평하든지 거기에 대해 기뻐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정당한 사람이면 사람들이 나를 악평한다 해도 내가 정당할 것이고, 내가 참으로 정당하지 못한 사람이면 사람들이 나를 훌륭한 사람이라 찬양할지라도 내가 훌륭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 사람됨에 대한 것을 참으로 알고자 한다면 나를 평하는 그 사람의 사람됨됨이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라, 나 자신의 정당성 여부가 문제이지 참새떼들의 입방아는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몽양은 빙그레 웃음을 띠고 “노형도 별 도리 없구만요. 오늘 저녁 묵고 가는 수밖에”라는 농담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한 '경성일보'를 만드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니 그들의 여운형에 대한 기사를 믿어서는 안된다는 답변이었다.이리하여 손님은 그날 저녁 이상촌 식대로 고구마에 옥수수를 곁들인 소찬을 대접받고 다음날 새벽 첫차로 떠났다. [중앙선 굴다리] 11:57 "몽양기념과"에서 내려 가면 바로 "중앙선" 굴다리를 만나며 [신원역 주차장] [신원역] 12:00~12:07 100m 거리에 "신원역 新院驛"이 있습니다. 신원역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며 땀을 수습하고 출발합니다. [신원역 정문 앞] "신원역" 정문 앞으로 [6번국도]가 지나고 있습니다. 국도로 나가면.... [횡단보도] 12:08~12:11 신원역 앞 삼거리에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물소리길'은 여기서 황단보도를 건너 건너편 강변길로 갈수도 있고 여기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좌측 국도 옆 보도를 따라 갈수도 있도록 해놨더군요. 저는 횡단보도를 건너 진행했습니다만, 후답자들은 여기서 좌측 보도를 따라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설명드림니다. [강변길] 횡단보도를 건너 강변으로 내려 가면 강변길이 펼쳐집니다. 6분 정도 진행하면.... [다리] 12:17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 밑으로도 길을 만들어 놨는데.... 조금전 "신원역" 앞 횡단보도 건너기 전에서 오는 길과 여기서 다시 만나더군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신호대기하는 시간도 길고,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신호위반을 하기도 해서 보도를 따라와 이 다리밑으로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강하구 90km지점] [강변공원] 12::27~12:35 강변에는 공원을 조성해 놨습니다만, 그늘이 없어 걷기엔 너무 더웠습니다. 그래서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합니다. 이런 맑은 날에 우산 쓰고 걷는 사람은 없지요? ㅎㅎ 하지만 직사광선은 피해야하니...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리] 12:43 다시 다리 하나를 지나고 5분여 더 진행하면... [육교] [6번국도]에 있는 육교가 보이기 시작 합니다. 저 육교를 건너 가야 하더군요. [육교 앞] 12:48 육교 앞에 가면 이정표가 길안내를 하는데 길은 건너편 "옛 중앙선 철도"로 올라 가더군요. [육교 위에서 조망] 육교 위에서 "부용산"을 조망하고... [육교에서 진행방향] 육교를 내려 가는데 좌측 굴다리 위의 도로가 "옛 중앙선" 철도인데 지금은 개조하여 '자전거도로'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물소리길'은 저 "옛 중앙선 철도"로 올라 가서 진행하게 되더군요. [우산을 쓰고] 얼마나 덥고 햇볕이 따가운지 우산을 쓰고 진행한다는 것을 반사경으로 촬영하고...ㅎㅎ ['양서초교' 앞] "양서초등학교" 앞에 있는 "옛 중앙선"으로 나선형으로 올라 가는 길로 올라 가서 [옛 중앙선] 12:51 "옛 중앙선"인 '자전거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9분 정도 진행하면.... [도곡터널 잎] 1:00 "도곡터널"이 다가오며... [도곡터널 입구] 1:02 "도곡터널" 입구에 도착하는데 '물소리길1코스'도 이젠 1.7km만 더 가면 된다는 팻말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도곡터널 안] 터널을 3분여 걸려 통과하면....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ㅎ) [도곡터널 출구] 터널을 빠져나가면 ... [갈림길] 1:05~1:07 '물소리길'은 바로 우측으로 내려 가라고 아우성입니다. 일단 앞에 있는 쉼터로 가서 조망을 하고 되돌아 옵니다. [조망] "옛 중앙선"인 '자전거도로'는 앞에 보이는 "국수역"까지 직선으로 연결되는데 '물소리길'은 우측 개천으로 내려가 개천길을 빙~돌아 걷도록하고 있는데 힘드시는 분들은 여기서 자저거도로를 따라 "국수역"으로 직접 가도 되겠더군요. ['복포천'가로 내려 가는 길] '물소리길'이라고 물가로 뺑뺑이를 돌립니다. ['복포천'길] 이 개천의 이름이 "복포천 福浦川"이더군요. 그늘도 없는 이런 길을 여름에 거니는 것은 즐거움 보단 괴로움...ㅎ "용문산 가섭봉"과 "백운봉"이 조망됩니다. '물소리길'은 저 "용문산" 뒤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거리] 1:19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에 1코스의 종착역인 "국수역"이 보입니다. 여기서 "국수역"까지는 9분 정도 걸렸습니다. [국수역] 1:28 예상보다 빨리 훤한 대낮에 1코스의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다섯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군요. [고도표] [구글어스] 다섯시간이 걸려 15.3km의 1코스를 완주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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