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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해운대 장산 산행기]   
  2011년 3월 20일(일) 
  새벽부터 봄비는 주룩 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전국에 비가 내린다고 시시각각 안내합니다
  건조주의보가 내린 상태니 전국에 비가 좀 더 내려야겠습니다만,
  오늘은 모처럼 멀리 부산으로 산행을 가는 날이라 봄비가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KTX에 몸을 싣고 온통 雲霧로 흐릿해진 비 내리는 산하를 
  단숨에 달려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9월 낙동정맥 종주를 할때 찾은 이후 처음입니다.
  오늘은 심한 운무로 한치 앞을 볼수 없는 상황이라 산행기가 여행기로 변합니다.
  배경음악은 Eleni Karaindrou의 - 안개 속의 풍경 주제가 - 
      

  ['이기대'에서 바라보는 '오륙도']
      
  부산역에서 반가운 횐님들과 3개월만에 조우를 했습니다.
  그리곤 산행지인 '해운대 장산'으로 바로 향하는데......
  친절하신 부산 산꾼들이 가는 길에 "오륙도"와 "이기대"를 들려 구경 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가까이서 "오륙도"를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오륙도"에 대해선 먼 나라 전설 속에서나 보일락 말락하는 그런 신비한 섬으로 
  아련히 연정과 애정이 이별과 재회를 연결 시켜 주는 등대같은 걸로 여겨 왔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제법 덩치가 있는 그저 그런 암봉일 뿐이군요.
  또한 육지와 매우 가까이있어 물이 빠지면 육지와 붙어 버릴듯 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직접 보지 말고 그냥 꿈 속에 놔 둘껄.....
  앞에 보이는 곳이 '오륙도 선착장'이라고 하는데, 부산 산꾼들이 산행 후 저곳에서 
  해삼 멍개에 쐬주 한잔 하는 곳이란걸 산행기에서 본적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저곳.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행태가 저런 바닷가 갯바위에서 한잔 쪼~옥 하는거죠? ㅎㅎ
  "이기대"는 한자로 "二妓臺"로 쓴다는데, 글자 그대로 기생과 관련이 있답니다.
  이곳에 두명의 기생 무덤이 있어서 불리워졌다는 설과, 촉석루 '논개'와 비슷한 사연으로
  임진왜란 때에 쪽바리 껴 안고 바다에 투신했다고 붙여진 "義妓臺"가 음운 변화로
  "二妓臺"가 되었다고....
      

  [대천공원]

  오늘 산행지인 "장산 萇山"입구인 "대천공원"입니다.
  말로만 듣던 '해운대 신시가지'가 규모도 크고 시설도 다양합니다.
      
 
  [대천공원]                                  [야외공연장]

  "대천공원"에는 야외공연장과 조형물들이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만들어 주고
  체력단련, 문화 예술을 쉽게 접할수 있도록 깨끗하게 조성되 있습니다.
  주말인데도 행락객들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일듯.....
      

  [인사]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종일 내렸습니다.
  다행히 '대천공원 야외 공연장'은 우리들의 만남의 장소로 적합하여
  이곳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산행 준비를 했습니다.
      

  [기념사진]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정암 김광진 교수님"과 직간접적으로 연분이 있는 분들입니다.
  因緣이란 참 묘한거죠? 이렇게 비내리는 날에 전국에서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산행 들머리]

  "장산"의 산행 들머리는 조금 횟갈리게  어느 꽃가게 안으로 들어 가더군요.
  물론 "장산"의 산행 들머리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만,
  '대천공원'에서 "옥녀봉-중봉-장산 정상"으로 가는 곳이 이곳이라 합니다.
  아니나 다르겠습니까... 우리 일행을 놓친 후미 두분이 이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어 저는 이곳으로 세번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습니다. ㅎㅎ
      

  [계곡]

  들머리를 들어 서면 계곡물을 건너 갑니다.
  이곳은 내리는 비가 거의 없는 겨울에도 水量이 풍부하답니다.
  계곡이 깊다는 뜻이겠죠
      

  [이정표]

  개울을 건너 조금 올라 가면 이정표가 갈길을 알려 줍니다.
  "옥녀봉" → 1.5km
  "중   봉" → 2km
  "정   상" → 3.1km
  "장산 萇山"은 높이가 634m로서 부산에선 "金井山 801.5m" 다음으로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옥녀봉' 정상]

  길을 잃은 후미그룹을 찾아 몇번을 들머리에 갔다 오느라 조금 늦게
  "옥녀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신시가지가 화려하게 조망되는 곳이란걸 알고 무척 기대했는데
  "오리무중 五里霧中"
  아깝습니다. 다시 한번 더 오라고 자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옥녀봉 정상석]

  "장산 萇山"에는 삼한시대 "장산국 萇山國"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동래부지'(1740년)에는 “옛 장산국은 대군 30명을 일으켜 가야국을 쳤다.”고 기록돼 
  있어 전체 인구가 100명 안팎인 아주 작은 소집단 부족국가로 장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산의 역사와 전설"의 저자인 김병섭씨는 “장산 萇山은 가장 높다는 뜻의 
  상산(上山), 봉래산 (蓬萊山), 내산(萊山) 등으로도 불렸으며, 가시복숭아 나무가 
  많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장산국"이라는 이름은 돌복숭아가 많은 장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갈림길]

  "옥녀봉"에서 조금 내려 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는 "중봉", "장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장산의 옆구리로 질러 가는 길이더군요.
  후미 찾으러 몇번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하고, 이틀 연짱 산행을 해서 피곤하기도 하고,
  특히 심한 운무로 눈에 뵈는게 없는 비 내리는 날이라 정상을 오르는 의미가 없다고...
  또한 부산 산꾼들이 볼거리는 옆구리로 가는 것이 더 많다는 추천을 하여 
  오랜만에 만난 부산 산꾼들과 비내리는 장상의 주막에서 한잔하고져 옆구리로 갔습니다
      

  [너덜지대]

  '장산' 정상 아래 옆구리로 나아가니 엄청난 "너덜지대"를 만납니다.
  "너덜지대"는 광주 무등산의 '指空너덜'이 압권인데, 
  이곳도 무등산에 뒤지지 않는듯 오히려 더 큰듯 합니다
      

  [너덜지대]

  너덜은 화산용암이 분출 할때 호수나 바다를 뚫고 나오면, 용암이 물로 급속 냉각이 되어
  균열이 생기게 되고, 세월이 흐르며 조각 조각 갈라진 바위가 되어 계곡으로 무너져 내린
  바위들을 말합니다.
      

  [너덜지대]

  우리나라는 대체로 약7,400만년 전에 이러한 화산 활동이 있었다고 하죠?
  너덜이 있는 걸로 보아 "장산"은 아주 옛날 화산 폭발 전에는 바다였음이 분명하고
  바다 속에서 분출한 용암이 쌓여 만들어진 산이 틀림없습니다
      

  [麻姑堂]

  너덜지대 아래로는 "麻姑堂"이라는 곳이 운무 속으로 보였는데.....
  이곳이 유명한 곳이라는 부산 산꾼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仙人과 혼인한 ‘고씨 할매 설화’"가 있는 곳이랍니다
  아득한 옛날 장산 기슭 장자벌에 고씨 성을 가진 처녀가 홀어머니와 함께 토막집에서 
  살고 있었다는데, 어느 여름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치더니 멀리 동쪽 하늘에 
  영롱한 무지개가 나타나고 고씨 처녀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이 빠져 있었답니다. 
  그때 하늘에서 비단옷을 입은 仙人이 나타나더니 무지개를 타고 곧장 고씨 처녀의 집 앞에 
  다가와 목이 마르니 물을 청했답니다. 물그릇 속에 비친 처녀의 얼굴은 옥처럼 빛나며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며 仙人도 이쁜건 알아 바로 그 처녀에게 매료되고 말았답니다. 
  그리곤 둘은 마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을 치렀다는군요.  
  이들은 장자벌의 땅을 일구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아들 열명과 딸 열명을 낳았다네요. ㅎ
  엄청 사랑했나 봅니다. ㅎ
      

  [안개]

  仙人은 혼인한 지 60년이 되자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답니다. 
  고씨 할매는 仙人의 뒤를 이어 부족을 다스리는 대족장이 되었지만, 仙人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고씨 할매는 장산바위에 올라가 날마다 옥황상제께 남편의 귀환을 
  간절히 빌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졌다고 하는군요. 자식들은 고씨 할매가 숨진 곳에 
  큰 무덤을 만들고 부족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됐답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바깥에서 식사를 할 때면 먼저 밥 한 숟갈을 떠서 '고씨례 高氏禮'라 
  소리지르며 음식을 던진 뒤에 식사하는 등 고씨 할매에게 예를 올렸다고 합니다. 
  "고시레" "고수레" "고씨례"의 어원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고 ....ㅎㅎ
  산에서 밥 먹을 때 왜? '고시레~!"를 하는지 이제서야 "고시레"의 어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이곳 "麻姑堂"에서 매년 정월 보름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군요. 
      

  [龜南亭]

  "구남정"이라고 하는 주막이 장산 중턱에 멋지게 있는데 비가 와서인지 휴점....
  비석의 한자가 처음엔 "申"으로 보였는데, "거북 龜"를 거북이처럼 상형문자로 써놨습니다.
      

  [애국지사 강근호의 집]

  또한 "애국지사 강근호의 집"이 산 중턱에 있더군요.
  저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강근호 애국지사"는 김좌진 장군과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을 비롯해 만주와 러시아 일대에서 독립군의 위세를 떨치고,
  1950년 6·25전쟁에도 참전, 몸을 아끼지 않는 나라 사랑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집은 '강근호 애국지사'의 부인인 "이정희여사(77세)"가 일군 집이라고 하는데
  부산일보 기사를 "발가락님 블로그"에서 보고 요약 정리를 하여 알려 드림니다.
  6.25 전쟁 중 서른네살 연상인 강지사와 결혼한 이정희여사는 꽃다운 나이 스물여덟에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되어 어린 아들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답니다.
  이여사는 전쟁 중에 미국 정부가 강 지사의 공로를 인정해 수여한 동성무공훈장을 발견해 
  무작정 하얄리아 부대로 찾아 가서 "난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귀국 정부가 강 지사의 
  공을 인정했으니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만 마련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답니다. 
  1967년 제대 군인들을 모아 '장산개척단'을 조직한 뒤 지금의 장산마을 20만평 개간을 
  진두지휘하고, 벌거숭이 산이던 장산에 나무를 심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도록 한 그는 
  개간한 땅을 모두 노동자들이 불하받도록 해 주고, 이곳 "모정원"으로 내려왔다는군요. 
  강 지사의 추모비가 세워진 한 평도 안되는 땅 외에 이 여사가 기거한 땅은 불하받지도 
  못한 국유지랍니다. 욕심없는 여자로 추앙 받는다는데 현재 투병 중이라고하네요
      

  [장산의 천제단]

  너덜지대는 장산 정상에서 골자기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이곳에 "장산의 천제단"이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체육시설]

  계곡으로 내려 오니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이 있고...
      

  [심우정 尋友亭]

  尋友..........친구를 찾는 곳인가 봅니다.
      

  [양운폭포 養雲瀑布]

  부산지역 근처 산에서 폭포 찾기가 어렵다는데
  이 계곡에는 폭포가 다섯개나 있다고 하며, 그 중에 이 폭포가 가장 크다네요
      

  [폭포사 瀑布寺]

  養雲瀑布를 지나니 瀑布寺라는 절간도 운치있게 있고....
      

  [대천공원 야외공연장]

  산행 출발지였던 "대천공원 야외 공연장"으로 돌아왔습니다.
  3시간 반 정도 걸린 간단한 산행이었습니다.
      

  [대천공원 해운대 조형물]

  구름이 약간 벗겨져 장산의 옥녀봉이 조형물 뒤로 보이는듯...
  이 조형물은 해운대의 발전하는 모습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했다는데,
  '돛, 돛대, 장승, 파도...."등을 표현 한것이라네요
      

  [대천공원에서 바라보는 '해운대 신시가지']

  해운대 신시가지가 멋있고 깨끗하지요?
  이번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요즘 이곳 아파트 가격이 엄청 떨어졌다고 합니다.ㅎㅎ
  영화 '해운대'가 가상의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번 일본 쓰나미가 증명 해 주었으니..
  세계가 충격이었지만, 이곳 "해운대"는 정말 더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ㅎㅎ
      

  [해운대]

  뒤풀이를 위해 해운대 횟집으로 와서 밖으로 보이는 해운대 해수욕장을 촬영했습니다
  고딩 때 수학여행으로 와 보곤 처음으로 해운대에 다시 왔습니다.
  좁아진 백사장과 동백섬....해운데 엘리지....
  海雲臺하면 생각나는 분이 한분있지요. 모두 아시겠지만... 
  "최치원선생" - 천재였지요. 홀홀단신 13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외국어 몰입식 과외도 받지 못했는데도 당나라 과거에 장원급제한 신라시대 
  "孤雲 최치원선생"이지요. 
  이 양반 호를 "孤雲"이라 한것 -- 저는 그 양반의 심중을 읽을수 있을 듯합니다. 
  "외로운 구름" ......천재는 항상 외로운가 봅니다 
  이 양반 신라로 돌아와서 큰 일을 하려고 했으나, 그 천재성 머리에 부담을 느낀 
  신라 진골세력은 '최치원선생'을 요즘 말로 왕따를 시켰죠. 
  자신의 위상이 현실에서 따르지 않자 지금 이곳 부산의 바닷가 동백섬에서 외로이 
  낚시를 하며 자신과 따르지 않는 현실을 씁쓸히 읊어며 "외로운 구름"이라 한 
  자신의 호 "孤雲"을 바다위를 떠도는 구름 - 즉 "海雲"이라 고쳐 부르고, 
  최치원선생이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 세운 정자를 "海雲臺"라 하여 
  이곳의 地名이 "海雲臺"가 되었다는 내력을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듣고 
  아직도 부산을 생각하면 "孤雲", "海雲" 최치원선생을 떠올리곤 하죠 
      

  [뒷풀이]

  해운대 해수욕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빌딩에 있는 횟집에서 뒷풀이를 했습니다.
  역시 회는 부산에서 먹어야 최고
      

  [詩낭송]

  프로 시낭송가이신 부산의 간호사님의 시 낭송도 듣고....
      
          
           [부산역 앞]

           부산역 앞 술집 골목에서 구미에서 오신 '소국님'과...
           누가 잘못 보면 오해 하것다~ ㅎㅎ
      

  [부산역]

  이제 가면 언제 오나..........잘 있거라 부산항아~ 
      

  [부산역 대합실]

  부산역 대합실에서도 오뎅을 안주로 또 한잔...ㅎㅎ
  낮에 KTX 고장이 있어서 문제가 됫다는데, 그래도 타고 올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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