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6봉-8봉능선과 삼성산 종주 산행기

관악산은 경기5악중 서울에 있는 유일한 산이며 접근성이 좋아 하루 산행지로는 최고로 꼽히지만
"北漢山國立公園"이라는 거창한 산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속만 끓고있어 울화병이 있는 火山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화재가 이 관악산에서 온다고 믿고
연주대 부근 기상대 건물 있는곳에 쇠말뚝을 박고, 삼성산에는 우물을 정상 부근에 팠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악산을 말할때엔 대체로 북한산과 비교부터 합니다. 못하다느니..비교가 않된다느니...
저는 자칭 북한산 마니아라고 할 정도로 북한산 예찬론자입니다만
이 어리석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오늘은 관악산을 찾아 비교되지 않는다는 그 山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모든 산은 그 산 나름대로의 멋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높으면 높은대로...크면 큰대로...아기자기하면 또 그런대로...작으면 어떻고 肉山이면 또 어떻겠습니까
물론 여러 각도에서 비교 할수는 있겠으나, 최소한 북한산과 관악산의 기암괴석 많큼은 비교 하지 말아 달라고
화려한 5월의 마지막 날에 관악산의 秘景속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늘은 일반인들이 잘 가지 않는 암벽 릿찌코스인 6봉능선과 8봉능선을 오르며 
관악산의 매력이 무엇인지 잘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고 번암 채제공선생의 관악산 산행기인 "遊冠岳山記"를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하철 과천 정부종합청사역 6번 출구
12시 정각에 이 곳에 섰습니다
6봉 능선과 8봉능선 산행은 저도 오늘이 처음입니다
다녀봐야 서울대 입구에서 연주대까지 껍쩍껍적 다닌 경험밖에 없습니다
북한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그런데 관악산을 제대로 가보지도 않고 그런 말 하지말라는 관악산 예찬론자들의 말을 듣고
앞으로 관악산을 심층 탐험해 봐야겠다고 생각 하게 됬습니다
여러 자료를 검색해 보았으나 6봉능선과 8봉능선을 함께 소개한 것이 별로 없어서
도대체 어떤 곳인가를 먼저 이곳부터 확인 하고 싶었습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와 그 뒤로 관악산이 병풍을 두른듯 서있습니다
이제까지 저 관악산의 아주 일부만 가 보고 왈부왈부 했던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서문에 장황한 글을 쓴 이유가 6봉능선과 8봉능선을 종주해 보지 않고는 관악산에 대해
왈부왈부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관악산의 크다란 재발견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산행을 시작 해 보자꾸여

6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과천 청사 입구 삼거리가 나옵니다
안내 표지판을 자세히 보세요
각 부처 안내 표지판의 색갈이 조금씩 틀린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런거 그냥 지나치지 않죠
정권이 바뀔때마다 부처의 이름이 바뀌었기에, 이름이  바뀔때마다 덧칠을 했기 때문에
같은 푸른색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틀려졌을 겁니다. 많이 수정한것으로 보아 많이 바꼈겠지요?
알맹이가 바뀐 것이 아니라 이름만 바뀌었다는..즉 전시행정의 표본이라 할수 있지않을까요?
이런 느낌에 동의 하십니까? ㅎㅎ 그냥 저만의 우려였으면 좋겠습니다

청사 입구로 우회전하면 이렇게 쭉 뻗은 길이 펼쳐지고,
이 길의 끝 지점에 등산로가 시작 됩니다.
언제나 등산로 입구 찾는 일이 제일 중요한데, 가고 싶어도 입구를 찾을수 없어서
그냥 평상시에 잘 다니는 아는 코스를 가는 경우가 많지요
오늘 확실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토요일 오후이기 때문인지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깨끗하게 잘 만들어져 있는 이곳 과천 정부 종합청사도 조만간 충청도로
이사 간다고 하죠? 이 시설들은 이렇게 잘 지어 놓고 또 새로 지어서 간다고 하는데
국토의 균형 발전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좀 아깝군요.
요즘 이곳 과천에는 음식점을 비롯한 상가들의 매물이 무지 많다는군요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가 여기 있는 줄도 처음 알게 되었고,
國史 이야기를 하면 우리 전통 가옥이 무조건 생각 나나요?
하여튼 우리 國史는 초가집이나 기와집, 엽전, 삿갓을 떠 올려야 되는 모양이네요
저는 이런 것도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되는데.....
국사편찬위원회 건물의 지붕많큼은 기와집 모양으로 해 논 것을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나네요
하기사 뭐? '뉴-라이트 역사책'인가 뭔가가 요즘 구설수에 오르고 있죠?

기술표준원
국사편찬위원회 다음이 기술표준원이고 이 곳이 등산로를 찾는데 결정적 지형지물입니다

등산로 입구
기술표준원 담 끝에 백운사 입구 표지판이 있습니다
이곳이 6봉능선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입니다
     
      등산로 입구
      기술표준원과 좌측의 중앙공무원연수원 사잇길이 등산로인데 매우 좁습니다
      여기만 찾으면 이제부터는 일사천리입니다
      앞으로 나오게 될 마당바위 갈림길에서만 유의하면 길안내는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입구에 들어 서면 요렇게 생겼습니다..ㅎㅎ
이 등산로가 종합청사를 지으며 없어 졌는데, 많은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정부가 듣고
새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1년 정도 밖에 않된다네요.
그래서 아는 사람이 별루인듯합니다.

안으로 조금 올라 가니 감시초소가 있었고, 
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근무중인 사람이 있더군요.
이 사람에게 길을 물어 오른쪽으로 올라 갈수 있었습니다

등산 안내도가 있었는데 상세하지가 못했고, 표기도 잘못되 있는듯....
국기가 계양되 있다고 국기봉인데 국사봉으로 잘못 표기한듯...
관악산에 국사봉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못들어 봤습니다
관악산엔 11한곳의 국기봉이 있는 걸로 유명하지요. 11한곳 국기봉 종주가
관악산 전체를 누비는 그런 산행이라 저도 언젠가는 한번 해 보려합니다

감시초소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오르니 붉은색의 다리가 나왔습니다
등산객은 또 저 혼자 밖에 없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됩니다

다리를 건너 직진만 하면 됩니다

조선시대 자생종교 각세교라나 뭐라나..그 종교의 교주가 뭍혀있다네요
신경 쓸건 못되고...여하튼 다리 건너 인공적인 볼거리는 이 무덤 하나 밖에 없으니...

나중에 알게 됫지만 이곳에서 부터 안양 유원지까지가 '서울대 수목원'이더군요

산행 들머리에서 부터 오르막이면 무척 힘이 들지요
이 코스는 워밍업을 하라고 하는지 완만한 경사로 걷기 좋았습니다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산행코스가 관악산에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곧 알게 됩니다

요즈음 肉山을 많이 다녀서 바깥세상을 못보고 산행을 해 갑갑했는데
여기는 이름부터 冠岳다웁게 암릉이라 시야가 확 트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앞의 산봉우리가 오늘 오르려는 6봉능선의 정상부근입니다
이렇게 알고 걷기에 페이스도 조절할수 있고 여러모로 좋았습니다
역시 산은 岳자가 들어 가는 산이어야 산 다웁지요

이쪽편의 계곡도 매우 좋았습니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사람없어 조용하고 깨끗하고...이런 곳을 왜 사람들이
이렇게 내팽개쳐 놓고 있을까

등산로는 이렇게 끊겼다 이어졌다를 몇번 반복하니 유의 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없어서 물어 갈수도 없습니다

조그마한 폭포들도 제멋대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거대한 岩盤이 꾸며내는 자연은 멋을 더해줍니다
제발 언제까지나 이런 모습을 잃지 말아라...!!

마당바위 - 갈림길 유의
이 곳이 매우 중요한 갈림길인 '마당바위'입니다
암반이 넓어 마당같다고 해서 붙여졌겠죠.
여기는 모두가 암반이기 때문에 길의 흔적이 없습니다.
저는 다행이 산꾼을 만나 물어서 길을 찾았습니다만,
오른쪽 푸른색 옷을 입은 산꾼이 내려 오는 뒷쪽으로 올라 가서
사진에 보이는 암반 끝부분에서 바로 좌측으로 가야만 6봉능선으로 갈수 있고,
바로 직진하면 연주대 방향이라 하더군요

문원폭포 앞
마당바위에서 조금 올라 가면 이런 표지판이 나오는데
여기를 그냥 지나치면 천추의 한을 남깁니다
이 표지판 뒤가 '문원폭포'입니다

문원폭포
뭐 빅토리아 폭포나 나이아가라 폭포, 이과수 폭포같은 폭포는 아니지만..ㅎㅎ
그래도 이 가뭄에 시원하게 물소리를 들려 주더군요

문원폭포
왜 문원폭포인지 그 이유는 알수가 없었고..."나이야~가라~폭포"로 제가 다시
별명을 붙이겠습니다. ㅎㅎ
         
          문원폭포
          여기 물이 너무 시원해서 세수도 하고 발목도 담궈 피로를 풀었습니다
          아까 올라 오며 발목을 또 약간 접질렸는데..에구~꼭 접질린데만 접질린다니까요

암능지대 시작
문원폭포를 지나 오르니 본격적인 岩稜地帶가 펼쳐졌습니다

시야가 확 트이며 관악산의 정상부근인 방송송신탑이 보입니다
관악산은 저 방송송신탑과 연주대에 있는 기상대 레이더만 보면 나의 위치를
알수 있습니다. 방향 잡기가 쉽지요

제법 올라 왔습니다
뒷쪽으로 과천정부종합청사와 아파트들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청계산이 보입니다.
안성의 칠장산에서 수원의 광교산까지 온 한남정맥은 김포반도의 끝 문수산까지 가지만,
수원의 광교산에서 백운산을 거쳐 저 청계산으로 해서 여기 관악산까지 이어진 줄기를
'관악지맥'이라고 합니다.

奇奇妙妙한 바위들이 어서 오라고 반깁니다
저는 이런 암벽타기를 매우 좋아하며 산행의 즐거움을 이런 암벽타기에서 찾습니다
오늘 잘 만났습니다. 기분이 좋아 훨훨 날것 같았습니다
물론 인수봉같은 전문가들이 하는 암벽타기가 아닌 조막조막한 암벽타기를 말합니다. ㅎㅎ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듯한 바위 사이로 관악산 송신탑이 보입니다

"육봉능선의 첫번째 봉우리"
왜 이 코스에 등산객들이 많이 없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네~위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관악산에서 가장 위험한 코스가 "육봉능선"이라합니다
"팔봉능선"보다 훨신 더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육봉능선을 다닌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육봉능선"의 첫번째-두번째 봉우리
"육봉능선의 봉우리는 크게 여섯개 봉우리가 있는데 1봉, 2봉, 3봉등으로 순서대로
부르면 되고 아래쪽에서 1봉, 2봉, 3봉등으로 해도 되고, 윗쪽에서 순서를 메겨도 되기에
저는 편의상 아랫쪽에서부터 첫번째봉, 두번째봉..으로 하겠습니다
멀리 비행기가 저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 왔습니다
우연인줄 알았는데 김포공황 가는 비행기는 이 관악산 상공을 지나 가더군요.
몇분에 한대씩 지나 갔습니다

첫번째 봉우리를 오르는 중간에 암반위로 소나무가 분재처럼 자라고 있더군요
남편이랑 같이온 여자분을 만났는데, 저분들은 자주 이 코스를 다닌듯해서
세번째 봉우리까지는 저 분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방법이 좋지요?ㅎ

릿지구간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직벽코스로 장비를 이용해서 오르내립니다만
저는 장비도 없기에 암벽 옆구리에 바짝 붙어 올랐습니다
이 코스는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암벽을 무서워하는 분들은 오면 않되겠습니다.
북한산에는 이런 암벽코스가 있으면 그 옆으로 우회로가 거의 있습니다만,
여기 관악산 육봉코스에는 우회로가 없고 자연상태 그대로여서,
진짜 산행을 즐기는 꾼들에겐 매우 좋을듯합니다. 다만 초보는 사절
관악산에 이렇게 좋은 코스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점점 관악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는 로프를 이용해서 오르는 사람들 옆의 이곳 옆구리로 올랐습니다.ㅎㅎ

첫번째 봉우리를 올라와 아까 아래서 봤던 그 양반이 초보친구를 올리느라
낑낑대고 있었습니다. 장비 사용은 편할때도 있지만 불편할때도 있습니다
지나온 암능이 용꼬리 같습니다

첫번째 봉우리에서 바라 본 두번째 봉우리
햐~~ 멋있습니다
물 한모금 마시고 주변 경관을 관찰했습니다

첫번재 봉우리 바위 사이로 두번째 봉우리를 봅니다
그런데 이 바위들 말입니다. 자세히 보세요.
오른쪽 바위는 남자 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나만 그렇게 보이나? ㅎㅎ
오른쪽 남자 바위가 왼쪽 여자 바위에게 뽀뽀를 하자고 하니까
왼쪽 여자 바위가 수줍어서 오르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듯한데... ^*^
하여간 꿈보다 해몽이라니까 최초로 제가 해몽을 해 봤습니다. 그럴듯 하죠? ㅎ

도대체 이런 바위 꼭대기에 어떻게 살아 숨쉬는지 이 소나무 존경스럽습니다

두번째 봉우리 앞으로 갔습니다

두번째 봉우리 뒤로 보이는 세번째 봉우리도 아름답습니다
비싼 경비들이며 금강산 갈 필요 있습니까? 여기도 경치 좋습니다~~

두번째 봉우리 암벽 릿찌
가까이 가 보니 경사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아까 그 부부가 오르기에 저도 뒤따라 올랐습니다.
만약 저 부부 들이 오르지 않았다면 저도 옆으로 어디 다른 길을 택했을 지도 모릅니다

두번째 봉우리
갈수록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하나하나 암벽을 즐겼습니다.
이런 암벽코스는 위험하기는 해도 힘은 그다지 들지 않죠. 왜냐면 네발로 가니까요

두번째 봉우리에서 세번째 봉우리로 내려 가는 중간에 있는 소나무와 그 뿌리
약 10m 아래에 까지 뿌리를 내려 수분을 끌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암반이기에 뿌리가 노출되 있습니다

세번째 봉우리
오늘 오르는 육봉과 팔봉 중에 가장 어려웠던 릿지구간이었습니다
여기도 그 부부가 오르는 뒤를 따라 올랐습니다.
여기 오를 때는 오줌이 좀 마렵더군요..ㅎㅎ

세번째봉우리의 정상은 또 이렇게 생겼더군요

세번째 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두번째 봉우리
그 앞으로 과천과 청계산이 보입니다

앞으로 가야할 네번째 봉우리, 다섯번째, 마지막 여섯번째 봉우리
세번째 봉우리에서 네번째 봉우리를 가려면 아랫쪽으로 많이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기에 조금 힘듭니다
바위 하나 하나가 모두 예술작품 같았는데 모두 소개해 드리지 못하는군요
앞의 바위는 큰 물고기가 먹이를 달라고 하는 듯하지 않나요?

관악산 송신탑과 키높이를 맞춰 갑니다

뒷쪽 서남쪽으로 안양 평촌의 모습도 보입니다

가야할 4,5,6봉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네번째 봉우리 릿찌구간
정말 절묘합니다

네번째 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3,2,1봉
아름답습니다

네번째 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3,2,1봉
앞의 사람이 올라 오는 코스로 올라 왔습니다
관악산과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비교 할수 있겠습니까?
북한산은 웅장하고 관악산은 아기자기하다고 할까요?

다섯번째 봉우리

다섯번째 봉우리도 옆구리로 올랐습니다
이 바위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용이 살짝 모습을 드러 내는듯한데....

다섯번째와 여섯번재 사이의 바위

마지막 여섯번재 봉우리를 오르며 내려다 본 다섯번째 봉우리

마지막 여섯번째 봉우리
육봉능선의 시작 봉우리이며 제일 높고, 태극기가 계양되있어 국기봉이라고도 합니다

마지막 여섯번째 봉우리를 오르며...

육봉능선의 끝, 국기봉을 오르니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또한 막걸리 장사 아이스케끼 장사들이 있었습니다
관악산의 북쪽, 즉 서울대 쪽에서 오르기는 쉬워 이런 장사꾼이 올수있는 것입니다

육봉능선의 최고봉, 국기봉
이 봉우리는 관악산 주능선, 즉 연주대에서 여기까지 평평하게 있는 능선이기에
여기까지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다시 육봉능선을 하산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오르기는 좀 쉬워도 이런 릿찌구간은 내려 가는게 훨신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육봉, 국기봉에서 바라본 남쪽의 과천과 청계산
5봉, 4봉, 3봉...

육봉, 국기봉에서 바라본 동쪽의 송신탑과 뒤쪽에 연주대 기상대 레이더가 조금 보입니다

육봉능선의 국기봉에서 바라본 서쪽의 팔봉능선과 멀리 삼성산이 보입니다

육봉능선의 국기봉에서 팔봉능선으로 가는 길

육봉능선의 국기봉에서 팔봉능선으로 가는 길 아래로 "불성사" 절간이 보입니다
불성사 뒷쪽의  능선이 "팔봉능선"이며 제2봉, 제3봉, 제4봉이 보입니다
불성사는 팔봉능선의 1봉과 2봉 사이 안부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육봉능선의 국기봉에서 팔봉능선으로 가는 길

팔봉능선의 제1봉
팔봉능선의 제1봉에서 바라 본 송신탑
저 뒤 연주대까지 관악산 주능선입니다

팔봉능선의 제1봉에서 2봉으로 넘어 가는 안부.
좌측으로 불성사로 해서 안양으로 하산하는 계곡길이 있습니다
           
           관악산에는 이정표 설치가 좀 미비한듯합니다. 이정표 모양도 좀 그렇고...
영조-정조 시대의 명재상 번암 채제공선생이 쓴 "遊冠岳山記"는 매우 유명해서 이번 기회에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번암 채제공선생과 관악산 산행기를 간략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예봉산-적갑산-운길산-수종사 산행기에서 예고 해 드린바도 있죠

팔봉능선의 제2봉
번암 채제공선생은 정조10년(1786년) 예순일곱에 관악산 등산을 하며  
"遊冠岳山記"라는 산행기를 남기셨습니다.
당시 조선시대의 평균 수명이 50이 않되던 시대에 67세는 할아버지 중에 할아버지 정도 되는 나이였습니다
그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든 셋의 나이에 날 듯이 관악산을 오른 미수 허목선생을 생각하고, 
그의 체력과 학문을 따르고자 관악산을 올랐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채제공선생은 허목선생처럼 여든 셋에 관악산을 오르고자 하였으나, 
여든 셋의 나이를 채우지 못하여 관악산과의 인연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순 일곱에 관악산을 오르게 되고 팔순까지 사시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수 허목선생은 여든일곱까지 사셨죠
등산을 많이 한 선조들은 모두 장수 했으니 등산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팔봉능선의 제2봉을 내려 가고 있습니다
미수 허목선생은 서인의 총수 송시열과 맞짱을 뜨던 남인의 총수였지요
서인이 보수 수구 세력이라면 남인은 진보 개혁 세력으로 구별할수 있는데 남인의 계보는
방통 황희선생, 퇴계 이황선생, 미수 허목선생, 번암 채제공선생, 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성리학과 실학파라 할수있겠습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이런 정치적 문제에만 있는것이 아니고 등산에도 있습니다
모두 등산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해서 그들의 산행기는 우리들에게 아직도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요즘 아는척하고 다니는 산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이분들이 다 한것을 리바이벌 하는 겁니다
모두 영의정까지 하신것도 같지만(다산만 빼고), 장수 하신것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황희선생이 팔순, 이황선생이 칠순, 허목선생이 여든일곱, 채제공선생이 팔순, 
정약용선생이 칠십오세까지 사셨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장수였습니다
특히 허목선생은 팔십사세에 관악산 등산을 하셨으니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나요?

팔봉능선의 제3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팔봉능선에 대해선 특별히 설명할 이야기 거리가 없어서 빨리 지나 갑니다
번암 채제공선생의 "遊冠岳山記"의 한구절 인용하겠습니다
"연주대는 구름 속까지 우뚝 솟아 있다. 
내 자신을 돌아보니 천하 만물 중에 감히 높이를 다툴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사방의 봉우리들이 자그마해서 헤아릴 수도 없다. 
오직 서쪽에 거뭇한 기운이 쌓여 뻗어 있는데 마치 하늘과 바다가 이어져 있는 듯하다." 

팔봉능선 중에는 가장 어려웠던 제3봉 오르기인듯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오르내립니다
번암 채제공선생은 연주대 정상에 기대어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 한수를 읊었습니다. 
연주대에 과거에 오른 양녕대군을 기억하고, 또 이익을 기억하면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내려오는 길은 다시 들렀던 절인 "불성암"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노량진 집으로 돌아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3봉에서 뒤돌아 본 2봉
이젠 방송송신탑이 이쪽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번암 채제공선생은 자하동 곧 오늘날 서울대학교에서 신림동으로 흘러내리는 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이익의 '유관악산기'에 따르면 당시 동서남북 네 곳의 자하동이 있었는데, 남자하는 안양쪽이고, 
서자하는 삼성산의 삼막사 일대며, 북자하는 지금의 서울대학교 쪽이고, 동자하는 과천 쪽이라합니다. 
그 중 동자하가 가장 아름다웠으며, 관악산 전체로는 연주대의 경관이 빼어났다고 적고 있습니다 
오늘 오른 육봉능선을 가장 아름답다고 한듯합니다

팔봉능선의 제3봉에서 바라본 육봉능선의 국기봉
채제공선생은 관악산 산중으로 들어왔는데 이미 날이 저물어 길을 잃어버립니다. 
난감한 상황인데 다행히 채제공선생 일행은 함께 산행을 나섰던 숙현이 
절을 발견해서 중의 안내를 받아서 절로 향했습니다. 이 절이 불성사입니다
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다시 연주대로 향하였는데 
건강한 승려 몇 명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승려는 채제공선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연주대는 여기서 10리쯤 됩니다. 
길이 매우 험하여 나무꾼이나 중들도 또한 쉽게 넘어 갈 수 없습니다. 
기력이 미치지 못하실까 걱정됩니다." 
그러자 채제공선생은 
"천하 만사는 마음에 달렸을 뿐이라. 마음은 장수요, 기운은 졸개다. 
그 장수가 가는데 그 졸개가 어찌 가지 않겠는가?"하고 말했습니다
과연 영의정 다운, 알피니스트 다운 비유라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야할 제4봉이 보이며 그 뒤로 삼성산이 보입니다.
저 삼성산을 좌측으로 넘어 안양으로 갈 예정입니다

제3봉을 내려 가고 있습니다

제3봉을 내려 가며 서로 도움을 주는 청춘남녀들...

제4봉이 보입니다
이제 관악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나요?
너무 아름답지요. 저도 오늘 관악산을 재발견했습니다.

방송송신탑과 좌측으로 연주대의 기상대 레이더가 보이기 시작 하는군요
앞으로 "11개 국기봉 종주"를 포함해서, 호암삼-삼성산-관악산 종주를 하고 난 다음
관악산에 대한 비교를 하겠습니다

제4봉을 오릅니다. 아름다운 경관입니다
점점 관악산의 매력에 젖어 듭니다

제4봉에서 뒤돌아 보고

제4봉을 내려 갑니다

제4봉을 내려 가며

학바위 능선의 윤곽이 확실히 잡히는군요
방송송신탑에서 아랫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이 학바위능선입니다
이 능선 중간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학바위능선이라고 한답니다
학바위능선과 이 팔봉능선 사이의 계곡이 안양유원지로 흘러 내려가는 안양천의
발원지입니다.
그리고 학바위능선의 끝이 '무너미 고개'로서 서울과 안양의 경계가되며,
서쪽으로 삼성산으로 다시 오르는 안부입니다
학바위능선 뒷쪽의 기상대 레이더가 있는 연주대에서 서울대 신공학관과 자운암 쪽으로
뻗어있는 능선 사이에 서울대학교와 호수공원등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산코스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개천이 도림천입니다

가야할 6봉과 7봉 뒤로 삼성산이 성큼 다가 왔습니다

제5봉을 내려 가고 있습니다

6봉 근처에 오른쪽으로 관악산의 명물 - 왕관바위가 있습니다
윗부분이 조금 보이는군요

왕관바위에 조금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절묘하지요? 진짜 왕관 같나요?
이 관악산의 冠자가 저 王冠할때의 冠자입니다. 물론 여러 설이 있지만 관악산이
冠岳山이 된 이유중 하나라는 설이 있습니다.
산 전체가 冠을 쓴 산이라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만....

왕관바위에 더 가까이 갔더니 한무더기 젊은이들이 왕관에 서로 먼저 오르려하고 있었습니다

왕관바위를 빠져 나와 이젠 봉우리 세기도 의미가 없어져 다음 봉우리로 향했습니다

지나온 제5봉을 뒤돌아 보니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제6봉에서 지나온 제5봉과 좌측 학바위능선, 그리고 좌측 밑에 왕관바위

제7봉으로 향합니다
특기할만한 사항이 없습니다

제7봉에서 바라본 안양 유원지 계곡과 멀리 안양이 보입니다

제7봉에서 바라 본 삼성산과 정상부의 KT송수신탑

제8봉은 봉우리가 그다지 크지 않은 졸개의 봉우리들이었습니다

제8봉 옆구리를 따라 하산했습니다

조금 내려 가니 삼거리가 나왔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약수터를 지나 무너미 고개로 해서
서울대 방향으로 하산 하는 코스이고, 직진 해서 좌측으로  안양 방향입니다

조금 더 내려 가니 넓직한 공터가 나왔는데 여기가 옛날에는 안양유원지가 여기까지
들어와 있었답니다. 지금은 완전히 정비하여 유흥업소는 단 한군데도 없었고.....

학바위능선과 팔봉능선 사이의 계곡에서 발원하여 내려 오는 물이 이 앞으로 흐르고있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꺽여 남쪽 안양쪽으로 흘러 갑니다
개울을 건너면 삼성산이고 우측으로 가면 무너미 고개를 넘어 서울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좌측 안양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친구가 안양유원지로 승용차를 몰고 저를 만나러 오겠다고해서 안양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여기서 세수도 하고 발목도 식혔습니다. 휴식도 취하고....
이 맛에 등산 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정말 시원했습니다

안양유원지에 대한 기억은 중학교 때로 돌아 갑니다. 아주 오래 전이겠지요? ㅎ
그때는 여름이면 피서하러 여기로 가족이 함께 서울서 왔던 기억이 나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했던 것만 생각나는데 이렇게 깨끗이 정비가 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잘 정비된 산책길을 따라 내려 갔으며 산림욕을 하는듯 상쾌했습니다

        안양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처음으로 산뜻하게 길안내를 했습니다
        직진해서 계속 내려 가면 "예술공원"(옛 안양 유원지)이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아까 팔봉능선의 1봉과 2봉 사이의 "불성사"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 - - 

이 길이 불성사 가는 길

저는 이제 조금만 가면 안양유원지 이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만남의 다리"라는 다리가 하나 나타나고 이곳부터 안양계곡으로는 갈수 없고
우회 등산로를 이용하라고 완전히 철조망으로 막아 놨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 안양유원지는 서울대학교 수목원으로 탈바꿈 해 있었습니다

만남의 다리 위에서
이 계곡을 따라 내려 가면 3~40분이면 유원지 입구로 갈 것을 우회로인
삼성산 중턱을 넘어 갔으니 1시간반이 걸렸고, 엄청 힘들었습니다

등산이 끝났다고 생각 했는데 다시 시작이라니 심리적으로도 더욱 압박감이 왔습니다

그러나 삼성산 중턱에 오르니 지나온 팔봉능선이 그림처럼 활짝 펼쳐져
힘들지만 본전은 뽑앗다고 생각 했습니다

팔봉능선을 가 보지 않고는 관악산을 논하지 마시라
육봉능선이야 위험하니 그렇다치고 팔봉능선과 학바위능선은 올라 봐야
관악산에 대해 이야기 할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리

오르락 내리락을 열몇번 정도 한듯합니다
육봉능선 2시간 걸렸고, 팔봉능선도 2시간 걸렸는데, 여기 삼성산에서
안양유원지 입구까지 다시 2시간 걸렸습니다

등산로 우회로는 정비를 잘해놔서 불편이 없었습니다

이 안부에 전망대라는 안내가 있어 올라 가 봤습니다
팔봉능선 전망대였습니다

팔봉능선 조망이 제일 잘 되는 전망대에서 바라 본 팔봉능선
관악산 = 연주대 라는 공식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안양유원지가 서울대학교 수목원으로 거듭 태어나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주변 경관이 아주 좋아 졌습니다.
가운데는 수목원 저수지

능선 넘어 평촌신도시가 가깝게 보입니다

또 오르고

수목원 계곡(안양유원지 계곡)

삼성산의 막바지에 도달했습니다

다시 쉼터가 나오고

암능 양탄자를 밟고 갑니다

아래 계곡에 집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오르막

안양 유원지가 나왔으며, 여기가 등산로의 끝(시작) 지점이었습니다
이쪽 등산로를 이용하려면 제가 내려 온 곳으로 오르면 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르는 것도 언젠가 한번 시도 해 봐야겠습니다

등산로 출구(입구)로 나와 뒤돌아 보면 이렇게 다리 건너 좌측으로 등산로가 있으며
가운데 화장실이 있습니다

큰길로 조금 나오니 큰 다리 안쪽이 '서울대 수목원 관리실'이며 일반인은 더 이상 갈수 없으며
등산을 하실 분들은 좌측 등산로를 이용해야했습니다

안양유원지가 예술공원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시설이 있어서 들어가 봤습니다
     

안양유원지는 아주 잘 정비되있었습니다

옛날의 돗때기 시장 같던 유흥장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 없었습니다

호~~재미있습니다

살라는 정각이라는 뜻의 태국말이라고요?
친구가 마중 나온다고 해서 여기 저기 구경을 좀 했습니다

영화관도 있고

호텔도 있고...

폭포광장도 멋지게 만들어 놓고....

휴식공간을 잘 만들어 놨습니다
     
금천구 벽산관악타운에 사는 친구가 이쪽편으로 행차 했다고 반갑게 맞아 주어
고마웠는데, 또 메기 매운탕에 소주까지 사주어 잘 얻어 먹고 나오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친구야~~고맙다~~!!

관악역에서 전철을 타고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The Road of Freed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