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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의 끝 - 고봉산과 장명산을 가다 일산을 많은 사람들은 고양시 일산구로 느끼기 보다는 독립된 도시 일산으로 느낍니다 분당을 성남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도시 분당으로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新都市중에 최대를 자랑하기에 新都市로 느끼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일산에 신도시 분양 때부터 살면서 '한북정맥'이 일산을 지나 交河에서 끝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우리 동네 얘기도 모르며 다른 지역의 산들에 대해 산행기를 쓴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지역의 한북정맥을 샅샅이 파헤쳐 보려합니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별로 없어 자료 찾기가 쉽지 않아 또 부실한 산행기를 쓰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만 최선을 다해 보려합니다한북정맥은 금강산위의 백두대간 분수령인 장바위산에서 시작하여 북한지역 다섯 분수령을 지나 휴전선을 건너 남쪽에서는 삼천봉, 광덕산등 25개의 산을 지나 交河의 장명산에서 끝납니다 등산 메니아들은 주로 화천군의 수피령에서 '한북정맥 종주'를 시작 하더군요 보통 6개월 정도 걸려 완주를 하는데 주로 휴일을 이용하기 때문일것입니다 수피령-백운산-민둥산-청계산-운악산-국사봉-사패산 도봉산을 거쳐 우이령에서 상장능선으로 내려가 솔고개를 건너 서울 각지역의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 북한산 뒷쪽 노고산을 통과해서 삼송리 '뉴코리아 골프장', 원당의 '한양칸트리 클럽'을 지나 일산의 "고봉산"으로 한북정맥은 뻗어와 교하의 "장명산"에서 끝납니다 오늘은 제가 사는 곳인 이곳 일산의'고봉산'과 교하의 장명산'을 다녀 왔습니다 일산 고봉산
신도시가 건설되 제가 이사 올때는 이곳들이 대부분 논밭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맨땅 찾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고봉산은 일산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 봉우리에 엄청나게 큰 안테나가 있기 때문에 찾기가 매우 쉽습니다만 등산로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파트촌 사이를 뚤고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산 신도시에서 갈때는 일산교를 건너 중산지구 '산들마을 아파트' 뒤쪽으로 가는 길이 가장 빠릅니다
안곡초등학교옆 고봉산 등산로 입구 5~6년전에 와 보고 처음이라 이곳 찾는데 조금 헤맸습니다 그동안 엄청나게 아파트와 부대 시설들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안곡초등학교 뒤로 고봉산 안테나가 보입니다.
등산로로 들어 오니 완전히 도시를 벗어 나는듯 합니다
등산로 초입 고봉산 등산로는 여러 곳이 있습니다만 이곳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등산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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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이 국민은행 연수원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금년엔 처음으로 진달래꽃을 보았습니다 오늘 날씨가 무척 따뜻하다 못해 더웠습니다
일산의 옛 이름은 -한뫼- 입니다. 한문으로 풀어서 한 (一)자와 뫼(山)자 해서 일산이 되었습니다. 순수한 우리말 -한 뫼- 는 어데가고 한문으로 뜻을 붙여서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일산- 이란 지명이 되었답니다. 한뫼(一山)는 하나의 산 즉 고봉산을 칭하는 지명입니다.
『하루』와 동행했습니다 일산의 모산이자 제일 높은 산인 고봉산은 높이가 208.6m로 서울의 남산(262m)보다 낮지만 한북정맥의 끝자락인 이 지역에선 가장 높은 산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루'가 같이 산행을 할 정도로 누구나 언제나 산책겸 운동 할수 있는 곳이라 여겨집니다
힘들어서 어거적 거리며 따라 오는 '하루'
고봉산 등산로에서는 좌우의 아래 일산신도시나 원당쪽을 촬영할수가 없습니다 아직 봄인데도 모두 울창한 숲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어 어거정거리는 우리 '하루' 고봉산은 옛부터 태미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입니다. 고봉산은 높은 산봉우리 또는 봉화를 올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고봉봉수대(高峰烽遂臺)>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유명한 산으로 한강유역 일대를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인 군사, 교통, 전략상의 요충지였다는군요 이 산에서는 이를 증명하듯 곳곳에서 삼국시대의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다합니다
고봉산 정상 바로 아래의 헬기장 고봉산 정상 부근의 헬기장에 올랐습니다 고봉산은 정상에 무지하게 큰 안테나가 있어 북한산에서도 잘 보입니다 저 안테나는 군사시설로 표기되 있습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국정원의 정보,첩보 수집용 안테나라는 설이 있습니다
고봉산 정상 저곳이 정상인데 불행이도 정상은 밟을수가 없습니다. 저 안테나 시설 밑에 많은 군사시설이 있어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 갈수 없는 저곳에 <고봉봉수대(高峰烽遂臺)>가 있다고 합니다 일산구 싸이트에서 찾아 낸 자료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고봉봉수대(高峰烽遂臺)> 형태 : 직사각형으로 돌 석축을 쌓아 놓음 규모 : 석축의 총 둘레는 약 120m, 높이는 약 5m 보존상태 : 자연돌을 쌓아 만든 봉수대로 특별히 무너진 곳 없이 보존 상태 양호함. 이 고봉 봉수대는 조선조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부터 고종 31년(1894)까지 봉수망 제 4 노선의 직봉으로 파주군 교하면의 형제봉에서 봉화를 받아 해포 봉수대, 서울의 무악(안산) 봉수대에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상태로 보아 그 규모나 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 29년(1447) 5월에 제정된 규정으로 그 규모를 유급해 보면 봉수의 높이는 25척, 둘레 70척, 봉수대 아래쪽의 사면에는 30척의 규모로 여겨지고 있다. 고봉 봉수대 정상에서는 멀리 개성의 송악산, 강화의 마니산, 서울의 남산과 파주의 감악산 등이 조망되어 봉수대로서의 지리적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듯 하다. 봉수는 봉수대를 중심으로 봉화를 올려 그 신호로써 다음 봉화대에 전하는 제도인데 옛부터 전통적인 통신 수단 가운데 가장 신속하고 간편한 일반적인 송신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고봉산 정상의 술판 요즘 왠만한 산에는 이런 장삿꾼이 있지만 여기는 규모가 꽤 크고 손님도 많았습니다 인근 아파트촌의 쫌생이들이 여기 술마시러 오는 듯합니다
정상에 올라 할딱거리며 힘들어 쉬고 있는 '하루'
조금 쉬더니 이젠 할딱거리지는 않네요 우리 '하루'는 저의 도움없이 하산 했습니다. 오늘 일년치 운동을 다 한것같습니다. ㅎㅎ 고봉산 산행은 이것으로 마치고 장명산으로 이동합니다
한북정맥의 끝-장명산을 가다 4월6일 고봉산을 내려와 한북정맥의 끝봉우리인 장명산으로 향했습니다 한북정맥은 이제 맥을 잇지 못하고 온통 짤리고 파헤쳐져 옛모습을 찾을수는 없습니다 특히 도시화 되버리는 지역은 권투로 말하자면 스트레이트, 훅, 아퍼컷,뻐팅까지 다 맞아 시퍼렇게 멍들고 K.O.직전인듯 싶습니다. 얼굴 모습이 모두 일그러져 누가 누구인지 알아 볼수도 없을 정도로 도시화 되버렸습니다 그래도 많은 등산 마니아들은 용케도 길을 찾아 종주를 하고 있습니다 6개월 이상씩이나 걸리는 머나먼 종주를 구간 구간 끊어 걷고 또 걷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대단한 존재 이상의 존경스럽기까지합니다 그들의 산행기를 보면서 잃어버린 우리 옛 산하를 체험하곤 합니다 고봉산에서 장명산을 가려면 일산 신도시로 나와 옛 월마트였던 현재 이마트에서 금촌, 문산 방향으로 가야합니다일산가구공단 입구 고봉산을 지난 한북정맥은 아파트와 경의선 철도, 몇개의 확장된 도로를 거쳐 이곳 일산가구공단입구를 통과합니다 이곳 일산 가구공단 앞은 얼마전까지만해도 좁은 편도1차선의 국도였으며 약간 높은 언덕이었습니다만 그동안 개발이 되어 언덕은 간곳없고 화려한 간판들로 메워져 있습니다. 저도 이곳이 한북정맥이 지나는 곳이란걸 이제서야 알게 �습니다. 한북정맥은 이곳을 지나 아미가 골프 연습장 뒷쪽을 거쳐 장명산으로 갑니다만 오늘 저는 장명산을 가려고 차를 몰고 왔기에 바로 장명산으로 향합니다
교하 이마트 금촌방향으로 가다 보면 '교하 이마트'가 나옵니다 이 교하 이마트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전 해야만 하기에 미리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곳이 "교하 삼거리"입니다
교하 삼거리 이정표 교하 삼거리에서 교화읍사무소쪽으로 좌회전하여 직진합니다
삼거리 갈림길 이곳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직진을 하여 50m쯤 앞에서 차를 세우고 우측 오솔길을 따라 올라 가면 장명산의 앞면을 볼수 있고 여기서 우회전하여 통일동산쪽으로 가서 좌측으로 들어 가면 장명산의 뒷모습과 정상을 오를수 있습니다 우선 저는 직진을 하여50m쯤 가서 장명산의 앞 모습을 보려 합니다. 직진을 하면 처음으로 우측으로 올라 가는 차도 다닐수 있는 오솔길이 나옵니다
장명산 입구 표지판 하나 없습니다 저는 옆의 식당 아주머니에게 물어 이 길을 찾았습니다 여기 길가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 올라 갔습니다.
오솔길에 들어 서면 보이는 광경 저 앞의 능선이 한북정맥이며 그 끝자락에 와 있는 것입니다. 사진 속에 불을 피우고 있는 분 보이시죠? 저 분을 만나서 장명산의 위치와 장명산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이 분입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증인 채택을 했습니다 ㅎㅎ 다음은 이 분과의 대화 내용을 간략하게 알려 드림니다. 파란문 : 아저씨 장명산이 어디 있어요? 아저씨 : 어~ 장명산은 뭐할려고 그러시오? 파란문 : 한북정맥의 끝봉우리라고 해서 무슨 산인지 구경하려고요 아쩌씨 : 장명산이 그런 산이여? 파란문 : 예, 아주 의미 있는 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북정맥의 끝이니까요... 아저씨 : 내가 어려서 부터 여기 살았는데도 처음 듣는 얘기구먼요. 여하튼 장명산은 옛날의 장명산이 아니고 지금은 거의 없어져 버렸소 파란문 : 아니, 왜요? 산이 없어지다니... 아저씨 : 장명산은 저기 능선 뒤에 한 봉우리있는데 반토막 났거던.... 내가 어렸을 때에는 장명산에서 횟가루를 파냈어요. 거 왜 묘지에 뿌리고 담벼락에 흙과 합쳐 사용하는 하얀 횟가루.. 그러다 10여년 전 부터는 산을 부셔서 레미콘용 자갈을 채취해서 신도시 건설하는데 썼겠지... 반 이상 파먹었어. 파먹고 텅비니까 ... 이제는 그 자리에 건설패기물 쓰레기들을 가져다 뿌셔서 매립을 했는데..반쯤 메꿨어요. 지금도 건설 패기물 쓰래기 처리하고 있어요 더럽고 냄새 나서 가까이 가기도 싫어요. 해도 해도 너무 해요 별짓을 다하고 있어요. 그렇게 중요한 산이면 왜 이렇게 방치를 했을까? 내가 더 궁금하네. 일전에 시청에서 일본놈들이 박아 논 철심 뽑아 낸다고 여기 저기 찾아 다니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더니.. 그런 맥락인 모양이지? 지금은 온 산에 일본놈들이 박아 논 철심보다 더한 전신주, 아파트, 뭐 더한 것들을 우리나라 놈들이 때려 박고 있쟌수~ 파란문 : 예전에는 경치가 좋았나요? 아저씨 : 옛날에는 장명산이 매우 유명했다우~ 나도 아버지한테 들은 건데 특히 조선 시대엔 구절초가 장명산을 메우다 시피 피어나 전국의 애 못낳는 여자들이 임신에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나 장명산 구절초를 구하러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여기가 조용하고 안락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지요. 저 옆의 곡릉천에서 고기도 잡고.... 지금은 냄새나는 더러운 땅과 강이 �다우
길을 따라 '하루'와 함게 올랐습니다 우리 '하루'는 무지 하게 걷습니다 중간 중간 물을 줬어야 했는데...집에 와서 물을 줬더니 한사발을 마시더라구요..ㅎㅎ 미련한 제가 잘못이죠 머리 나쁘면 개까지 고생 한다니까요
건설 패기물 처리 매립장 입구 아저씨가 들려 준 얘기들이 얼마큼 진실일까 ..뻥튀긴건 아닐까 약간 의심했는데 상상할수 없는 일들이 장명산 근처에서 벌어 지고 있더군요 안으로 들어 가 볼까요?
엄청난 건설 패기물 쓰래기 더미
장명산을 만나다 저 앞의 반토막 난 초라한 산이 한북정맥의 끝 봉우리 "장명산'이랍니다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도 다녀 가고, 산경표의 신경준도 다녀 갔을 산 - 장명산 그 장명산은 나에게 저런 모습으로 다가 왔습니다
래미콘 공장 파낸 자갈들과 건설 패기물을 처리 하여 재 활용하는 지는 몰라도 제법 큰 래미콘 공장도 있었습니다
저 장명산의 왼쪽 짤려 나간 부분이 한북정맥이 었는데 그 脈이 끊긴 것입니다 물론 13개정맥이 끊긴 곳이 한두 곳이겠습니까만은.... 한북정맥의 상징적인 이 곳이 이런 모습으로 변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장명산의 뒷쪽을 가기 위해 아까 진입했던 삼거리로 다시 나와 통일동산 쪽으로 갔습니다
조금 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면 통일 동산 쪽 곡릉천 다리이고 좌측으로 가면 곡릉천 제방을 따라 장명산으로 갈수 있습니다.
조금 내려 가니 곡릉천이 제법 넓게 확 펼쳐졌습니다. 저 앞의 다리를 여러번 지난적이 있었지만 곡릉천이 이렇게 큰 하천인줄은 미쳐 느끼지 못했습니다
곡릉천 제방에 올라 장명산을 뒷쪽에서 바라 보았습니다 곡릉천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앞쪽에서 볼때 보다는 모양이 살아 있었습니다만, 상상했던것 보다 작아 山이라기 보다는 동산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이 산의 이름이 長命山이더군요..그 이유를 자료 조사를 해 보니 아까 아저씨가 해준 이야기와 비슷하더군요 ◈ 척교 : 102m ◈ 거리(시청기준):4.0km ◈ 별명 및 본명 : 약 산 고양의 고봉산 서북맥 내령으로 와동산을 거쳐 끝머리 벌판 가운데로 우뚝서있는 이산은 산아래 곡릉천(공능천이 발음이 변해 곡릉천이 �다고 함)이 흘러 경관이 아름다우며 이산 주위로 전부 구절초가 자생, 주민들은 이를 많이 복용 수명이 연장되었다 하여 유래된 것이다 옛날 조선시대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한 아낙이 아이 갖기를 소원한 나머지 지금은 흔적도 없는 교하면 장명산 중턱에 위치한 약수터에 올라가서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대린 물을 먹으면서 지성을 드린 후에 아이를 갖게 되자 그 소문이 한양 땅에 퍼지게 되어 아이를 갖지 못한 양반님네 부인들이 매년 음력 9월 9일 에 장명산에 내려와서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대린 물을 먹어서 아이를 갖게 된 일이 많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구절초는 여자의 냉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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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같지도 않은 정상에 그래도 올랐더니 그 동안 한북정맥을 완주한 마니아들이 自祝하기 위해 걸어 논 현수막들이 쓸쓸히 세월의 풍상을 얘기 하듯 펄럭이고 있었으며... 그 뒤로 건설 패기물 처리 시설들과 래미콘 공장시설들이 가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북정맥을 완주한 많은 등산 마니아들도 저와 같은 허무한 감상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장명산 정상 나무가지엔 숱한 고난을 무릅쓰고 한북정맥을 완주한 마니아들의 기념 리본들이 달려있었으며 멀리 한강과 오두산 통일 전망대를 향해 손짓하는듯 했습니다. 허무했습니다. 고생해서 찾아온 종점이 이런 모습이라니......
곡릉천 하구 갑문 곡릉천은 장흥계곡에서 북한산의 송추계곡에서 흘러 내려와 이곳에서 한강과 합쳐집니다. 한강 하류의 祖江이 서해의 만조 시간 때에는 강물이 불어 이곳 곡릉천 같은 곳은 역류를 함으로 갑문을 만들어 역류 현상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 交河는 이렇듯 큰 강 줄기인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조그만 지류들이 합쳐지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역사 속에서 이곳에 수도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여러번 있었을 정도로 풍수지리설에서는 알아 주는 명당 자리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