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산 국치길과 중앙정보부 1부』
[남산에 있었던 "조선신궁 朝鮮神宮" 전경]
[다녀온 길]
일제강점기시대
쪽바리들이 무한히 사랑했던 南山............木覓山
<조선통감부>와 <조선신궁>등을 南山에 짓고, 침략의 마수를 내 뻗었던 곳이 南山이었답니다.
<서울시>가 그 침략의 역사를 잊지 말자고 <남산>에 "남산 국치길"을 조성 했다고 해서
나름대로 많은 예습을 하고 답사에 나섭니다.
<서울시 관련 홈페이지>와 <블로그 송풍수월>에 게재된 『남산의 역사와 문화』를 참고 해 답사
했다는 것을 알려 드림니다.
['명동역 5번출입구'] 12:30
2021년 9월 23일 (목) 구름 약간 맑음
<4호선 명동역 5번출구>에서 답사를 시작합니다.
['명동역5번출구' 앞]
<명동역 5번출구> 정면으로 <신세계백화점 신관>이 보이는 <회현사거리>로 진행해서
우측 <소공동>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서울중앙우체국']
['홍영식 동상'] 12:35
"서울중앙우체국"이 <제비 날개 모양>을 하고 우뚝 솟아 있으며
정문 앞에는 <우정총국>의 초대 총판이었던 "홍영식 1855~1884"의 동상이 있더군요.
현재의 이 자리는 일제시대 <경성우편국>이 있던 자리이고, 당시 <우정총국>은 현재의 <조계사>
옆에 있었으며, 지금은 <체신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더군요.
<홍영식>은 <우정총국>을 세우고 개국 축하 파티를 여는 틈을 이용해 <갑신정변>이라는 쿠데타를
<박영효><김옥균>등과 함께 일으킨 인물이죠. 하지만 3일만에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청나라 군>에
의해 스무아홉살에 살해 당한 인물인데, 이곳에 동상까지 세울만한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갑신정변>이란게 일본놈들의 후원을 받고 한 쿠데타이니....
[현재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 있었던 '경성우편국']
['한국은행']
<서울중앙우체국> 건너편에는 "한국은행"이 있습니다.
일제침략의 대명사 중에 하나인 <조선은행>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건물을 짓고 친필 휘호를 남긴 <조선은행 머릿돌>을 없애지 않고 남겨 두기로
했다는 "조선은행 본점 건물"은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뒤에 신축건물을 새로 지어 <한국은행 본점>이 우리나라 금융을 총괄 관리하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신관과 구관]
<한국은행> 건너편에는 "신세계백화점"이 있습니다.
이 백화점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소비문화를 바꿔 놓았다는 "미스꼬시 백화점" 이었답니다.
현재의 <롯데백화점>은 <조지아백화점>이 있었던 자리고, 현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악명 높았던
<동양척식회사>가 있었답니다.
<미스꼬시백화점>을 중심으로 밀집된 고급 상가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충무로>, 즉 <혼마치 本町>는
당시 <경성> 사람이면 누구나 가서 맘껏 소비하고 즐기고 싶어한 욕망의 해방구 였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지인'으로 불린 쪽바리들이 식민지 지배층으로서 특권적 삶을 누리는
"선망과 배제의 공간"이기도 했답니다.
<이상의 날개> 읽어 보셨나요?
아내가 몸을 팔고 가져다 주는 돈..그 돈을 변소에 버리고 그 단절된 관계를 벗어나
"날개"를 꿈구며 올라간 건물의 옥상이 저 <미쓰꼬시백화점> 옥상이었죠.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솟아 나길 바라는 그는 추락을 위해서인가 ...자유룰 위해선가...
환락의 상징 <미스꼬시백화점>에서 몸도 마음도 사고 파는 자본주의를 경멸하는 것인가....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일제 강점기 시절의 암울함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밀어 닥치는 자본주의 환락 환상이 어른거리는
<이상의 날개>에도 등장하는 <미스꼬시 백화점>이란걸 생각하며 바라보면 감회가 남다를 겁니다.
['회현사거리'] 12:40
<경성우편국><조선은행><미스꼬시백화점>을 둘러 보고 다시 <회현사거리>로 돌아 와 <남산>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직진해서 <남산3호터널> 방향으로 잠시 올라 가면....
['남산3호터널' 앞] 12:45
<남산3호터널> 조금 못미쳐 갈림길을 만나는데 <남산오르미 승강장> 방향을 안내합니다.
직진성 우측길로 올라 가면...
['남산오르미 승강장'] 12:47
"남산오르미 승강장"을 만나며, 좌측엔 "남산3호터널준공기념탑"이 있습니다.
탑승은 무료이고 누구나 탈수 있는데, 운행시간 중에 일요일 운행시간을 유의하면 되겠습니다.
[경사형 엘리베이트]
<남산오르미>는 경사형 엘리베이트였습니다. 무료여서 더 즐겁고...ㅎㅎ
또한 <남산>으로 오르는 가장 편리하고 쉬운 시설이었습니다.
['남산3호터널 요금소']
<남산오르미>를 타고 올라 가는데 지난주에 답사 했던 <남산옛길>의 <삼풍아파트>가 보입니다.
제가 이 <남산오르미>를 이용하게 된 것은 지난번 <남산옛길>을 걸을 때 보여서
뭔가 해서 검색해 봤더니 바로 이 <남산오르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이 코스를 택했구요. ㅎ
[뒤돌아 본 '회현사거리']
1층과 2층 두개층만 있는 <남산오르미>지만 운행 거리가 제법 되지요?
잠깐이지만 뷰도 좋아서 대 만족이었습니다. ㅎ
['남산오르미 승강장'과 '남산케이블카 승강장'] 12:50
<남산오르미>의 2층은 <남산케이블카> 승강장 바로 옆이었습니다.
<남산 정상>으로 가실 분들은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가면 간단한데 왕복 13,000원
여기서부터 <서울시>가 조성한 "남산 국치길"을 시작합니다.
우측으로 조금 올라 가면...
['국치길']
<국치길>에 있는 첫번째 '국치의 상징'인 <한양공원비> 이정표를 만납니다.
['한양공원비 쉼터'] 12:53
['한양공원비']
['한양공원비' 뒷면]
[안내문]
"한양공원비"를 만나는데....
일제강점기시대 쪽바리들의 <남산사랑>이 시작되는 징표라 할수 있는 <한양공원비>가 길섶에
서 있는데, 뒷면의 글자들은 모두 홰손되어 알아 볼수 없습니다만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남산> 일대 약 30만평을 무상 임대해 쪽바리들을 위한 어마어마한 <남산공원>을 만들었는데,
<고종>이 <한양공원>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답니다.
비석에 새겨진 "漢陽公園"이라는 글자는 <고종>의 진필이라니....갸우뚱 ~~
['남산3호터널기계실' 입구] 12:58
이어서 <남산3호터널기계실> 출입문을 만나는데, 지난주 <남산옛길>을 걸을 때 통과했던 곳입니다.
['삼순이계단' 앞] 12:59
이어서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바로 올라 갈수 있는 <삼순이계단>을 지나 <백범광장>으로 먼저 갑니다.
<조선신궁터>를 답사 한 후 <삼순이계단>으로 내려 올 예정입니다.
['호현당' 앞 삼거리] 1:00
<호현당> 앞 삼거리를 건너 <호현당>으로 가면...
['호현당'] 1:03
"호현당 好賢堂"은 "어진 사람들(賢人)이 좋아 하는 집"이라는 의미라는데...
코로나 시대에 인기 있는 무료 야외 예식장이라고 하네요.
['백범광장'] 1:03
<호현당> 바로 옆에 <백범광장>이 있으며 "백범 김구 선생 동상"도 보입니다.
이곳에 <백범광장>을 만든 사연에 대해선 앞으로 답사하게 될 <조선신궁>에서 느낄수 있겠고
['남산' 오름길]
<남산>으로 오르는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현재 지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얫길의 여운이 남아 있는듯 한데....
다음 옛 사진을 보자구요.
['조선신궁' 전경 사진] '서울역'을 찾아 보세요 ㅎ 바로 앞 큰집
['조선신궁 384계단' 오름길]
['조선신궁' 정문]
일제는 1925년에 "조선신궁 朝鮮神宮"을 짓고 조선인의 영혼까지 점령하려고 했답니다.
학생, 징병된 병사, 징용 가는 사람들...모두 이곳에서 강제 '신사참배'를 해야 했답니다.
<조선신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384개 계단>이었다는데, 현재와는 지형과 경사도가 다르군요.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 광장] 1:06
<옛 384계단>으로 추정되는 오름길을 오르면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앞 광장을
만나는데 아곳이 옛날 <조선신궁> 앞 광장이었답니다.
<조선신궁> 건물은 앞에 표시한 곳에 있었다는데, 후에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건립되고
이어서 <육영수여사>가 심혈을 기우린 <남산식물원>이 있던 자리인데, 현재는 <한양도성 유적지>로
탈바꿈 했습니다.
['안중근의사 동상']
['안중근의사' 휘호]
<조선신궁>이 있던 앞 광장에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멈추게 한 "안중근의사"와 기념관이
대한 건아의 건재함을 알리며 쪽바리들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見利思義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해 지면 목숨을 주라"
1910년 2월에 <여순감옥>에서 쓴 글로서 <보물 제569-6호>로 지정된 유명한 글이죠.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
<조선신궁>이 있었던 자리는 <남산식물원>이 차지하다가
지난해 그러니까 2020년 11월에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으로 변모 했답니다.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 안내도']
['한양도성 유적']
이 <한양도성>을 밑에 깔고 <조선신궁>이 세워지고, 해방 후엔 다시 <이승만대통령 동상>이 세워졌다가
<4.19의거>로 철거되고 <남산식물원>이 <어린이회관>과 함께 들어 섯지요.
슬픈 역사를 걷어내고 이제 <한양도성> 유적으로 복원되었답니다.
['방공호']
<한양도성 유적지>를 지나면 <神殿>이 있었던 자리 뒤에 <방공호>가 눈길을 끕니다.
[방공호 입구]
[안내문]
쪽바리들도 공습은 무서워 해서 곳곳에 방공호를 만들었다지요.
특히 이곳 <조선신궁>의 방공호는 더 큰 의미를 주는듯 하군요. 경비병들도 숨어 있었으리라
제가 다녀 온 다른 방공호는 <김포공항> 근처의 <강서구 궁산땅굴>이 인상 깊었습니다.
[방공호에서 바라보는 '조선신궁터']
<방공호>에서 바라보는 <조선신궁 터> 입니다.
다음 옛 사진들을 감상 해 볼까요?
이 자리가 일제강점기 시절엔 어떠 했는지 실감 할수 있습니다.
['조선신궁 전경도']
['조선신궁']
이 사진은 현재의 <잠두봉>에서 촬영 한듯한데 규모가 상당합니다.
당시의 <경성역>이 지척에 보이는게 더욱 새삼스럽군요.
<서울역>과 <남산> 사이에 <대우빌딩>등 대형 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보이지 않아
거리가 엄청 멀게 느껴졌는데, 아무 건물도 없이 보니 매우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군요.
<만리동 고개>도 보이고...^*^
['조선신궁 배전 터']
[안내문]
<神殿>이 있었던 자리에서 조금 내려 가면 "배전 拜殿 터"가 있는데
<배전 拜殿>의 기초 구조물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배전 터 위치']
['배전']
<배전 拜殿>은 <신궁 神宮> 앞에 있는 건물로 글자 그대로 "절하는 곳"을 의미하겠죠
['조선신궁' 배치도]
<배전 拜殿> 뒷 사무소 등 집들이 있는 곳에
현재 <남산도서관>과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우남 이승만 대통령 동상']
해방이 되면서 <남산 조선신궁>은 완전 폭파되었답니다.
그 자리엔 80세의 절대권력자인 "이승만대통령"의 동상을 세워 그의 만수무강을 빌었답니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인용 합니다.
"이 동상은 몸통 길이가 23.5척(7m), 축대 높이를 합하면 81척(25m)로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상이었다. (중략) 동상 건립에 필요했던 3억환가량의 자금은 전국 극장 입장권에 10~20환씩의
경축금을 부과해 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동상은 1960년 <4.19의거> 뒤 해체 철거됐답니다.
<이승만>의 호인 <우남>을 따 지었던 <남산> 정상의 <우남정> 또한 <4.19의거> 때 파괴됐다가,
1968년 <남산팔각정>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돼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부산의 <용두산공원>도 <우남공원>으로 변경되었다가 <4.19의거>후 제 이름을 찾았지요.
정치권력의 부침에 따라 <남산>과 우리 산하는 심하게 굴곡되 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현재 개인 보관중인 동상 일부]
해방 후 <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을 지낸 절대 권력자였던 <이승만박사>는
<4.19의거> 후 <미국 하와이>로 도망가 살다 그곳에서 5년 정도 더 살다가 요양원에서 죽었지요.
이곳에 있었던 동상은 그 이후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알아 보았습니다.
해체 철거 후 <이승만박사> 동상의 행방에 대한 신문기사를 인용합니다.
"윗 사진은 <코리아 라이프> 1970년 3월호에 보도된 <서울 명륜동 1가>에 남겨진 이승만 동상의
잔영들이다. 머리부분만 남아 있는 왼쪽의 동상은 남산에 세워졌던 것이고, 상반신만 남은
오른쪽의 동상은 파고다공원에 세워졌던 것이다"
30년이 흐른 현재도 <명륜동 1가> 주택에 남아 있다고 하네요.
['남산 분수대']
[안내문]
<일제강점기시대>와 <이승만독재시대>가 지나니 <5.16군사쿠데타>세력이 <남산>을 점령했습니다.
<배전 拜殿> 아랫쪽엔 <5.16군사쿠데타> 후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심혈을 기우려
설립한 <어린이회관 (현 교육정보연구원)>과 <남산식물원>, 그리고 <분수>가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여러번 아범님 따라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민주화가 된 현재에는 있을수 없는 권위주의 시대의 잔존물인거죠.
이 사진을 보면 <조선신궁>과 <이승만박사 동상>,<남산식물원>의 위치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수 있군요.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1:20
<분수대>에서 내려 가면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옆 <삼순이계단>으로 내려 가는 곳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있습니다.
['위안부 기림비']
<아시아 태평양 13개국>의 수십만명의 여성과 소녀들의 고통을 증명하기 위해 세웠답니다.
<한국><중국><필리핀>의 세 소녀를 <김학순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랍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실명으로 처음 증언한 분이 <김학순 할머니>라고 하죠?
25년여 전에 이미 작고하셨습니다.
['삼순이 계단']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를 지나면 "삼순이계단"을 만납니다.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 입구'] 1:26
<삼순이계단>을 내려가 다시 <남산순환로>로 내려가 진행하면,
<남산둘레길>과 연결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국치길>은 좌측 <남산순환로>로 이어 집니다.
['한양공원비' 조망]
조금전 오르면서 들렸던 <한양공원비>가 건너편에 보이고
['남산케이블카 승강장'] 1:29
이어서 <남산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면
['남산 돈까스 거리'] 1:30
좀 유명한 <남산돈까스거리>가 시작됩니다.
대여섯집의 돈까스집이 있는데, 저는 이 남산돈까스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가격은 13,000원씩이나 하는데 맛은 7~8,000원짜리 다른 집과 별 차이 없는듯 해서 입니다.
['반공청년운동 순국열사 기념비' 입구] 1:31
<남산돈까스거리> 건너편에 이런 계단 하나를 만나는데
<반공청년운동 순국열사 기념비> 입구라고 해서 또 언제 오겠나 싶어 올라가 봅니다.
['반공청녀운동 순국열사 기념비'] 1:33~1:35
[안내문]
"반공청년운동 순국열사 기념비"
우리나라 남산에 이런게 있었나? 의아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좀 애매모호 합니다. 실제 있었던 일인지..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내림길]
"애국 愛國"....간단히 말해 나라를 사랑하는 것.
과거에도 수많은 애국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이처럼 애국은 아주 숭고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애국청년단체>라는게 있었는지...있었다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 보기 위해 검색을 했더니
<박사모 홈페이지>가 나오며 실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국청년단체>라는 단어만 검색 되더군요.
그러니까 이곳에 있는 기념비 안내문의 <애국청년단체>라는 단체는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이 기념비를 만드는데 성금을 내고 기여한 분들의 명단이 별도 비석으로 세워져 있어 자세히 봤더니
<정일권><김종필><이후락>...등등이고, 건립위원회 회장이 <이은상>...ㅎㅎ 대략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육국제1보병사단 창설지>라고 하는 표지석도 있더군요.
이 표지석을 세운 당시 보병1사단장이던 <신현돈>씨는 무지 유명하죠? ㅎ
대통령 해외 순방 중이라 엄중 경계태세가 내려진 가운데 별 넷의 군단장이 만취 상태로 추태를
부리며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민간인들과 싸우지를 않나 개지랄 떨다가 수사가 진행되자 전역했죠.
2014년도 일이니 그리 오래 전도 아니니 기억납니다.
잠시후 탐방하게 되는 <중앙정보부>가 눈 앞에 서성거립니다.
['원조 남산 왕 돈까스' 앞]
['재미로' 입구] 1:40
<기념비>를 내려가 건너편으로 건너 가면 <원조 남산 왕 돈까스> 음식점 옆에
<숭의여대 별관 입구>가 있고, <재미로>라는 길안내 이정표가 보입니다.
여기서 군사정권시대에 유명했던 <남산외교구락부>를 답사하고 <리라초등학교>로 가겠습니다.
트럭이 공사를 위해 주차되 있어 사진으로 길 확인이 좀 그렇지만 트럭 뒤에 너른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으로 내려 가면...
['숭의여대 별관'] 1:42
그러면 "숭의여대 별관 정문"을 만나며
<외교구락부>는 사진 속의 주차장 옆에 있습니다.
['외교구락부']
"남산 외교구락부 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이곳이 7~80년대 그 유명했던 <남산외교구락부>라는 걸 증명합니다.
<구락부>는 "club"을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한거죠.
<외교클럽>이 맞지만 당시의 표기가 더 친근감이 드는건 너무 많은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리라
['외교구락부 이야기']
국내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인데 유명한 정치인들인 <신익희.조병옥.장택상.윤치영>씨가
이 레스토랑을 설립했다는 사실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할수 있는데.....
군부독재시대에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들...40대 기수론의 <김영삼><김대중>선생들이
회동과 회견등 굵지굵직한 행사를 거행 한곳으로 유명하지요.
특히 <나훈아> <김지미>씨가 약혼 발표를 한곳으로도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곳이죠.
<김지미씨> 1940년생이고 <나훈아씨> 1947년생이니 연상의 여인에서부터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수였으니 세간의 화제는 보통이 아니었죠? ㅎㅎ <김지미씨>는 미국에서 산답니다.
[옛 '외교구락부']
사연 많았던 <남산외교구락부>의 실제 옛 모습입니다.
민주화와 함께 <외교구락부>는 역활을 잃어 숯불갈비집으로, 예식장으로, 다시 레스토랑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지만 결국 문을 닫고 <숭의여대>에 팔려 <숭의여대 별관>이 되었답니다.
['조병옥선생''신익희선생']
['이민우' 'YS' 'DJ']
<외교구락부>를 만들고 이용했던 분들의 사진이 안내판에 있어 촬영했습니다.
벌써 추억이 되버린 인물들입니다.
['숭의여대' 조망] 1:46
<외교구락부>에서 <숭의여대>와 <리라초등학교>를 바라보며 올라 갑니다.
"남산 국치길과 중앙정보부Ⅱ 2부로 이어 집니다.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