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정동길-고종의 길-환구단』Ⅱ부


  ['환구단']


  ['1902년 한성부 지도']

  [탐방코스 지도]
          
  "1부 덕수궁"에 이어서 <정동역사거리>와 <고종의 길>, 그리고 <환구단>으로 향합니다.
  그러니까 <덕수궁>을 한바퀴 빙 돌아 <환구단>으로 가는 것입니다.


  ['정동길' 입구]
  
  2021년 9월 12일 (일)  맑음       
  <덕수궁> 답사를 마치고 <덕수궁돌담길>로 들어 갑니다.


  ['덕수궁돌담길']
  
  <덕수궁돌담길>로 들어 가면 먼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를 만나는데 이 청사 13층에 <정동전망대>가
  있어 <덕수궁>을 비롯해 <정동지역>을 한눈에 조망 할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오늘은 건물 보수공사 중이라 들어 갈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촬영한 사진을 첨부 합니다.



  ['정동전망대'에서 '덕수궁' 조망]   2018년 4월 18일에 촬영한 사진
  


  ['김장생 생가터']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는 옛날 "김장생 선생" 생가터였다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김장생선생>은 <우암 송시열>의 스승으로 유명하지요. <김집>은 <김장생선생>의 아들
  <金長生 선생>은 존함이 "長生"이라는 독특한 이름인데 1548년 7월8일~1631년 8월3일까지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꽉채운 83세까지 사셨으니 당시로는 진짜 "長生"하셨죠?
  선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하시면 되겠습니다.


  ['돈암서원']
  
  <김장생선생>과 그의 아들 <김집>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며 설립된 서원이 <돈암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된 우리나라 9개 서원 중에 하나더군요.
  <충남 논산>에 있는데 제가 다녀와 답사기를 쓴 바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논산] "계백혼이 살아 숨쉬는 솔바람길" 답사기 여기 클릭


  [거리 공연]
  
  <김장생선생 생가터>를 지나면 <경운궁>의 정문이었던 "대안문 大安門"이 있었던 곳을 지나고


  ['운교' 터]

  이어서 "운교 터 雲橋址"를 만납니다. 무심코 지나면 알수 없는데 보행로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요즘 명칭으로 "육교"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사진을 보면...


  ['운교' 사진]

  [안내문]
  
   "운교 雲橋"는 <고종>이 궐밖 가까운 곳에 고위관료들의 관청을 만들어 쉽게 <고종>과 접촉하며
   업무를 보고하거나 어명을 받들게 할 목적으로 만들었답니다.
   그곳이 잠시 후 들릴 예정인 <서울시립박물관> 자리 였답니다.
   그러니까 이 <운교>는 <경운궁>과 궐밖 관리들 집무실인 각사를 바로 연결하는 다리였던거죠
   일본놈들의 간섭을 피하기 위한 것도 포함되겠죠?


  [옛 '홍교' 사진]               
  
  <운교>와 같은 육교는 또 있었답니다.
  <경운궁>과 <경희궁>을 연결하는 "홍교 虹橋"였는데 사진 속에 전찻길이 선명히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 <홍교>는 지금의 <서대문>과 <광화문로타리> 사이에 있었겠습니다.
  뒤로 <인왕산>이 변함없이 솟아 있군요.


  ['정동 사거리']                 
  
  <운교 터 雲橋址>를 지나면 바로 <정동사거리>를 만납니다.
  우측엔 <미국대사관저>가 있고, 정면엔 <정동제일교회>가 있으며
  7시 방향엔 <서울시립미술관>이 있습니다. 먼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들어 갑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입구]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엔 <최정화씨> 작품의 <장미빛인생>이라는 작품이 눈길을 끌고...
  조금 올라 가면...


  ['독립신문사' 터]
  
  <서울시립미술관>이 예전엔 <육영공원 터>였다가 <독일영사관>이 되고, 이어서 <독립신문사>가
  있었었다는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조금 더 추가하자면 
  조금전 <운교>에서 알아 본 바와 같이 <독일영사관> 이후 잠시 <궐밖 각사>인 관청이 있었고, 
  이후 <독립신문사>가 자리 했는데, 일제에 의해 <독립신문>이 폐간 당하면서 "경성재판소"가 차지하고. 
  해방 후엔 "대한민국 대법원"이 자리하다가, 1995년에 <서초동>으로 이전하고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이 되었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쪽바리들이 1928년 <독립신문사>를 폐간 시켜 몰아내고 <경성재판소>를 설치하여 식민통치의 
  선봉에 섯던 곳인데,.해방 후엔 우리나라 <대법원>이 그 뒤를 이었이었지만.......좀 그렇죠?
  이 주변엔 가정법원등 각종 법원들이 함께 줄줄이 설립되어 <정동길>은 <법조거리>가 되었었습니다.
  1995년 몽땅 <서초동>으로 이전해 갔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같이 걸으면 이별한다는 속설이 있지요?
  이별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는 이유는 몇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 언급하면...
  모든 법원이 줄 서 있는 <덕수궁돌담길>에서 사랑을 속삭이다가 결혼 한 연인들은 
  결국 이혼소송을 하러 다시 <덕수궁돌담길>을 걷게 된다는.....믿거니 말거나...ㅎ
  지금은 모두 <서초동>으로 이사 가서 괜찮아요 ~~ <서초동>에선 데이트하는거 조심하시고...ㅎ
  현재 <미술관>은 코로나사태로 사전 예약자들에게만 관람을 허용하고 있어 내부엔 들어 가서
  관람은 못하고 주변만 둘러 보았습니다.
.


  ['운교' 흔적 조망]
  
  <미술관>에서 옛날 <운교>가 설치되었던 곳을 이곳에서 조망하고


  ['정동사거리']
  
  다시 <정동사거리>로 내려 가면
  건너편에 <마국대사관저>인 <하비브하우스>가 있습니다. 
  예전엔 <덕수궁>에 포함되었던 곳인데 <고종>이 미국에 팔았다죠? 
  현재 <덕수궁>은 당시의 1/3 수준으로 줄어 들었답니다. 그러니까 이 주변은 대부분 <덕수궁>이었죠.
  <미국대사관저>인 <하비브하우스>는 예상과 달리 우리나라 전통 가옥인 "한옥"이더군요.
  들어 가기도 어려운 <하비브하우스>를 최근에 다녀와 탐방기를 블로그에 올리신 분이 있어
  그 블로그를 링크 시켜 드리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 하세요
    "주한미국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 방문"   여기 클릭


  ['정동제일교회']

  [안내문]
  
  "정동제일교회"
  <유관순 누나의 장례식>을 거행 한곳으로 유명 합니다만....
  이 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로서 미국의 <아펜젤러>가 설립한 개신교 교회이죠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교장도 역임한 우리나라 신교육과 개신교의 선구자이죠.
  이 교회엔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출신 유명 인사들이 다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서재팔 박사>는 <<아펜젤러>의 <배재학당>을 다니며 <정동제일교회>를 다녔기에
  해방후 그들이 대통령과 칭송받는 인물이 되어 <정동제일교회>의 신도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답니다.
  더 유명한 얘기 하나 더 언급하겠습니다.
  우라나라 新女性 1호로 꼽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여성소설가, 여성해방운동가 등등등
  "우리나라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정월 나혜석>이 이곳 <정동제일교회>에서 <김우영>이라는
  변호사와 결혼식을 올려 세간의 화재가 되었죠. <김우영>이는 조선총독부 관리로 친일파로 분류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결혼식 청첩장을 일간 신문에 광고로 사나흘이나 내서 당시로는 파격이었죠.
  그렇게 요란스럽게 결혼한 <나혜석>은 결혼 10여년만에 조금 전에 들렸던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신인
  <경성재판소>에서 이혼 소송을 당해 이혼하죠. 간통혐의 였지만 판결 전에 서로 합의이혼했죠.
  <덕수궁돌담길>을 걷는 연인들은 이별한다는 속설을 만들어 내는데 한몫하기도 했습니다. ㅎ
  <나혜석><수덕사의 여승>등 新女性들에 관한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으면 제가 쓴 다음 글을 보세요
      "新女性과 女僧"  여기 클릭


  ['배재학당 기념관' 조망]
  
  배재학당 졸업생들 중에 유명인들은 <이승만 전대통령> <주시경> <김소월> <나도향> <한동일> 
  <백건우>등 유명인사들이 많이 있지요?
  <이승만 박사>는 뒤에 <배재학당>을 초급대학으로 인정받아 미국 <조지 와싱턴 대학> 3학년에 
  편입하게 되고...영어를 잘해 결국 <미 군정> 이후에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되고....


  ['정동극장' 조망]

  ['정동극장']
  
  "정동극장 貞洞劇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 圓覺社>를 복원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탄생한 극장으로, 
  전통예술의 발전과 보급 등의 목적으로 1995년에 건립되었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라는 <혈의 누>를 쓴 <이인직 선생>이 창설 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인직>에 대해선 잠시후 <중명전>에서 알아 보기로 하고...
  특히 조선 근대 5대 명창 중에 한분인 <이동창 명인>의 판소리를 들은 <고종>이 '통정대부'의 벼슬을
  내리기도 해 지금까지도 마당에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동극장' 내부]
  
  <정동극장>은 요잠 코로나사태로 좀 썰렁한 느낌이 들었는데 카페는 성업 중에 있더군요.
  요즘은 전통 악극보다 현대극 등을 공연한답니다.


  ['장동극장' 옆 골목]

  ['중명전' 입구]

  <정동극장> 왼쪽 골목으로 들어 가면 "중명전 中明殿"을 만납니다.


  ['중명전']

  [안내문]
  
  "중명전 中明殿"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한일협상조약>이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역사의 현장이죠.


  ['을사늑약' 현장 모형]

  ['을사늑약'의 인물들]
  
  <늑약 勒約>이라는 말이 '강제로 맺은 조약'을 의미하니 무효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핵심은 우리나라 "외교권"을 박탈하는 조약이었으니 주권을 잃어 버리는 조약이었죠.
  윗 사진에 등장하는 일본놈은 <이토 히로부미>와 주한일본공사관인 <히야시 곤스케>이며
  우리 측 인물은 8명입니다. 요즘 말로 정부 각부처 장관들입니다.
  8명 중에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 적극 찬성하여 <을사오적>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조약체결에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이하영>과 <권중현>은 소극적인 반대의견을 내다가 <권중현>은 나중에 찬성했으니
  윗 사진 속의 인물을 모두 욕하며 씹으면 않되겠습니다.


  ['옛 러시아공사관' 조망]
  
  <중명전>에서 <옛 러시아 공사관>이 지척에 보입니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한 곳....
  옆에 있는 <예원학교>는 근간에 지은 예술중학교 건물이니 역사와 무관합니다.


  ['을씨년스럽다']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의 어원을 알고 계셨나요?
  우리 백성들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조금 전 <정동극장>을 창설한 사람이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이라고 언급했지요?
  우리는 이 <경술국치>의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만을 기억하지는 않습니까?
  ‘최초의 신소설’이라 배운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 .... 그는 누구인가 !
  그는 일본에 유학했으며, <러일전쟁> 때는 일본군 통역관을 했던 인물로서
  일본말을 못하는 <이완용>의 비서로서 <경술국치>의 실무자였습니다. 
  그가 쓴 <혈의 누>라는 소설도 고아가 된 주인공 <옥련>을 일본 군의관이 구해주고 교육해주는 등
  일본인을 은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 제목 역시 우리말로 <피눈물>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해도 <혈루’(血淚)>가 옳은 말임에도 일본식 표기인 <血の 淚>를 
  그대로 직역하여 <혈의 누>라고 표현한것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는 <이인직>을 <신소설의 개척자>로 칭송하며, 
  그의 소설도 여전히 일본식 문법으로 표기하고 부르니 이게 왠일입니까...우리나라 학자들은 뭐하는지
  저는 <이인직>만 생각해도 <피눈물>이 날듯하며 "을씨년스럽습니다".


  ['정동거리']
  
  <중명전>에서 나와 다시 <정동거리>로 나가면 좌측엔 <이화여고>가 있고, 우측엔...


  ['신아일보 별관']  

  [안내문]
  
  "신아일보 별관"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이화여고']

  
  이어서 <이화여고> 정문을 만납니다.
  옛 교정과 비교하면 변해도 너무 변했죠?
  <유관순 누나>의 동상과 기념관이 함께 있습니다.
        "[천안역사문화둘레길] 유관순열사 초혼묘 답사기"  여기 클릭


  [''예원학교']
  
  <예원학교>는 이름에서 좀 이상하지만 <이화학당>이 세운 예술전문중학교 입니다.
  학교 옆길로 학교 뒤로 올라 가면....


  ['정동근린공원']         
  
  조그마한 "정동근린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이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던 곳으로 <고종>이 <아관파천 俄館播遷>을 한 곳이죠.
  <아관 俄館>이 <러시아 공사관>을 말하는 것이니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혰다는 의미이지요.


  ['옛 러시아공사관' 흔적]
  
  <옛 러시아 공사관> 건물을 사진으로 세워 놨습니다.
  현재는 조금전에 지났던 <정동제일교회> 뒤에 있는 <옛 배재학당 운동장>을 매입해서
  그 자리에 <러시아 대사관>을 지어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배재학당>은 '강동구 고덕동'으로 1984년에 이전하여 자율형사립고등학교로 변신했습니다.
  당시 <배재학당 운동장 값>이 <고덕동> 전체 땅값보다 더 비쌋다고....ㅎ
  이 사진에서 눈 여겨 볼 곳은 제가 화살표로 표시한 <고종의 길> 출입구 위치입니다.


  [옛 러시아공사관' 사진]
  
  <고종>이 파천했던 <구 러시아 공사관> 사진입니다.



  ['고종의 길' 출입문]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고 수시로 <덕수궁>과 통했던 길이라고 추정하는 길을 복원했답니다.



  ['고종의 길']
  .
  <고종의 길>이라는 길 이름이 좀 거시기 하지만...
  우측엔 당시 <미국공사관>이었던 <미국대사관저>가 높은 담 너머에 있고
  

  ['구세군' 조망]
  
  정면 건너편엔 <구세군>과 <덕수궁>이 보입니다.
 

  ['선원전' 조망]
  
  좌측엔 "덕수궁 선원전 德壽宮 璿源殿"이 폐허가 되어 발굴 복원공사 중에 있습니다.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진전(眞殿)이랍니다.
   이 터는 무엇보다 <경기여자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이죠. 고삐리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는데...ㅎ
   <경기여고>는 1988년 '강남구 개포동'으로 이전했습니다.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보수정비 공사 안내문]
  
  미국, 러시아공사관, 경기여고 사이에 아직도 남아 있는 끗빨있었던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이
  보수 정비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으며 떼돈을 번 고리대금업자들이죠.


  [동측 '고종의 길' 출입문]
  
  <고종의 길> 동측 출입문을 나서서 뒤돌아 본 출입문입니다.


  ['광화문 사거리' 방향]
  
  <고종의 길> 동측 출입문에서 <광화문 사거리> 방향으로 내려 갔다가 돌아 오겠습니다.
  

  ['구세군']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에서 종을 울리며 이웃돕기 모금활동을 하는 <구세군> 본부를 지나고


  ['덕수초등학교']
  
  이어서 <덕수초등학교>를 만납니다.
  예전엔 서울 5대 국민학교 중에 하나였던 명문 초등학교였습니다.
  '파란문'은 '교동국민학교' 출신입니다. ㅎㅎ '윤보선대통령' 출신학교...


  ['옛 선원전' 입구]
  
  <덕수초등학교> 맞은편엔 <경기여고> 정문이 폐허가 되 있습니다.
  학창시절 이 앞을 자주 왔다리 갔다리 했는데...ㅎ
  이 곳이  "덕수궁 선원전 德壽宮 璿源殿" 자리였다는 것은 근간에 알았습니다.
  현재 발굴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언제까지인지 기약이 없는듯...


  ['1900년대 초중반 '덕수궁' 주변 사진]
  
  1900년대 초중반의 <덕수궁> 주변 사진입니다.
  <선원전>의 위치와 모양을 보여 주는데 그 앞에 <덕수궁 중화전>과 <석조전> 등이 보이는군요.
  <선원전> 뒤에 <경희궁>도 보이는듯 하는데 자 자리에 <서울고등학교>를 세웠죠.
  <덕수궁> <경희궁>이 거의 황폐화 된 후의 사진인듯...


  [되돌아 온 '고종의 길' 동측 출입문']
  
  <덕수궁 선원전> 등을 둘러보고 다시 <고종의 길> 동측 출입구로 돌아와
  좌측 <덕수궁돌담길>로 들어 갑니다.
  미국대사관저의 담장 높이가 왠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군요.
   

  ['북측 덕수궁돌담길']
  
  <덕수궁>의 북측 돌담길로 들어 갑니다.
  얼마 전 까지만해도 <덕수궁돌담길 북측길>은 통행 할수 없었죠
  조금 들어 가면....


  [음식점 '콩두' 자리]
  
  좌측 폐쇄된 집이 예전 유명한 <콩두>라는 음식점이었는데 폐업했는지 문을 닫았고
  가운데 샛문은 뭔지 몰라 안에 경비를 서고 있는 경비원을 불러 내 물어 봤더니  
  <영국대사관>의 뒷쪽 샛문이라고 알려 주더군요.


  ['북측 덕수궁돌담길']

  ['덕수궁 내부 출입문']
  
  <덕수궁돌담길>의 이 구간이 130여년만에 개통된 <북측 덕수궁돌담길>이랍니다.
  <영국대사관>과의 오랜 협상에서 서로 조금씩 양해하여 길을 뚫었는데
  <영국대사관 구역>은 절대 불가라고 해서 <덕수궁 담장>에 門을 만들어 내부통행로를 만들었다고...
  <덕수궁> 안으로 들어 가면


  ['덕수궁돌담길 내부 보행로']

  ['덕수궁돌담길 외부 출입문']
  
  짧은 거리이지만 어쩔수 없이 <덕수궁돌담길>을 궁 안으로 <내부 보행로>를 만들어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문이 <창신문>이며 그 뒤에 <정관헌>이 보입니다. 


  ['영국대사관 정문']
  
  <덕수궁> 밖으로 다시 나가면 좌측에 <영국대사관 정문>이 있고 정문 옆에 <덕수궁 양이재>가 있는데
  대사관 정문을 지키는 경찰이 있어 못 들어 가는 줄 느끼게 합니다만 들어 갈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라며


  ['양이재' 입구에서]
  
  <양이재> 입구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길입니다.
 


  ['양이재']

  [안내문]
  
  "경운궁 양이재 慶運宮 養怡齋"
  안내문을 참고하면되겠습니다.
  <성공회> 본부 속에 있으며 현재는 <성공회> 소유라는군요.


  ['세실극장']
  
  "세실극장"은 <대한성공회>의 주교였던 "세실 쿠퍼 (Cecil Cooper)"의 이름에서 따 왔으며
  70~80세대들에겐 잊지 못할 소극장으로 인기를 누렸는데 몇년전에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가
  재개관 했다나 뭐래나....
  <대한성공회> 소유랍니다.



  ['하늘마루']

  <세실극장> 앞에는 <하늘마루>라는 소공원이 있는데 아래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있더군요.
  그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성공회']
  
  "대한성공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
  <경운궁(덕수궁)>의 일부를 <영국성공회>가 매입하여 건립한 영국 교회
  <덕수궁>은 <미국교회-정동제일교회> <영국교회-성공회>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태리교회-명동성당>은 조금 떨어져 있지만....



  ['성공회수녀원']               
  
  <성공회수녀원>의 문이 독특하군요.


  ['조선일보' 관련 건물]              
  
  골목 안쪽으로는 <조선일보>가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회' '북악산' 조망]
  
  <옛 국회의사당>이다가 <시민회관>이 되고 지금은 <서울시의회>가 된 건물을 지나 
  시청앞으로 <세종대로>를 건너며 북쪽을 조망하고


  [뒤돌아 본 '성공회']
  
    지나온 <성공회>와 <하늘마루>라는 소공원을 이고 있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을 뒤돌아 보고


  ['서울시청']
  
  <서울시청>을 바라보며


  ['서울시청광장']
  
  <서울시청광장>을 가로 질러 가면...


  ['남산' 조망]
  
  <소공동> 사잇길로 <남산서울타워>가 조망되는데 조만간 <남산둘레길>을 답사 할 예정입니다.
  조금 왼쪽을 보면...


  ['환구단' 입구]

  
  "환구단" 입구가 보입니다.
  정문인데 왜 입구 라고 하는지는 안내문을 읽어 보면 알수 있습니다.


  ['환구단']

  [안내문]
  
  "환구단 圜丘壇"
  쓰러져 가는 <조선>을 다시 세우기 위해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고치고 황제에 오르고
  황제가 하늘에 <천제 天祭>를 지내는 곳이랍니다.
  선왕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 곡식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
  그리고 하늘에 올리는 제사, 즉  <천제 天祭>를 지내는 곳이 바로 여기랍니다.


  ['석고']
               
                     [안내문]
  


  ['환구단 난간석 석물']

  [안내문]
  


  ['환구단' 정면]
  
  <유교의 천자>가 하늘인 상제(上帝)와 오방제(五方帝)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랍니다.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골표하고 싶었던 <고종>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환구단'에서 남쪽 조망]

  <환구단>에서 정문 방향인 남쪽을 바라보면 <조선호텔>이 숨막히게 앞을 가로 막으며
  정문을 외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조선호텔' 정문]
  
  <환구단> 출입문으로 나가면 <조선호텔 정문>이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조선호텔' 앞 '소공동 지명의 유래' 표지석]
  
  <조선호텔> 정문 앞 화단에는 모르고 가면 도저히 볼수 없는 <소공동 지명의 유래> 표지석이 있습니다.
  <작은 공주>가 살던 곳이라고 불리워진 지명이라고....처음 알았습니다. ㅎ



  ['롯데호텔'과 백화점]
  
  <조선호텔>에서 <명동>방향과 <을지로입구>까지는 온통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이 자리 잡고



  ['을지로입구 사거리']
  
  <을지로입구역>에서 답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살다 보니']
  
  지하철 출입문에 있는 詩 한수가 하루를 뒤돌아 보게 하더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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