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가는 모락산 산행기 LG아파트 약수터-모락산 국기봉-모락산성 팔각정- 전승기념비-보리밥고개-사인암-계원예대-갈미한글공원 속담에.. "밥은 봄처럼" "국은 여름처럼" "장은 가을처럼" "술은 겨울처럼"이란 말이 있지요 모든 음식에 적정 온도가 있기 마련이듯이 한해도 계절따라 따뜻하고, 덥고, 시원하고, 추워야합니다 여름은 여름 다웁게 더워야 여름이지요. 2012년 여름은 오랜만에 여름값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계곡을 찾아 휴가를 떠나는 날 '파란문'은 근교 산을 찾아 나섭니다. [모락산 개념도]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내손동'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의왕시' 도심 속에 솟아 있는 岳山이기에 접근성이 좋고, 또한 아름다운 산이라 많은 산객들이 찾는 명산이라고 합니다. [모락산 구글어스] 도심 속에 있는 산이라 등산로는 여러 갈래로 나 있다고 합니다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LG아파트 약수터"에서 '모락산 정상'을 오르고 "계원예대 후문"으로 하산합니다. "임영대군 묘"를 주의 깊게 보아 두시기 바람니다. "모락산"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LG 아파트 약수터] 11:25 2012년 8월 3일 (금) 맑음, 낮최고 기온 36.7도 산행 들머리 - "LG아파트 약수터" '경기도 의왕시 호계동'에 있는 "LG아파트" 건너편 산밑에 있는 약수터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되겠습니다. 찾아 가는 방법은 많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의왕역"까지 [전철1호선]을 이용하고, "의왕역"에서 [1-1번 시내버스]를 환승하여, 이곳에서 내렸습니다. [등산로 입구] 11:28 ['모락산' 등산안내도] 'LG약수터' → '정상' 1,211m '정상' → '계원예대' 1,878m 전체적으로 약3km정도되는 짧은 코스이군요. [들머리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 본 광경]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대부분 산과 바다를 찾아 피서를 가는 휴가철이지만 잠시 틈이 생겨 평소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모락산"으로 짧은 산행을 나섯습니다. [등산로] [된비알] "LG아파트 약수터"에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된비알이었습니다. 하지만 등산로는 잘 정비되 있었고.... [안부 삼거리] 11:35 [안부 삼거리 이정표] [정상으로 가는 길] 7분 정도 계단을 오르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모락산 정상'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평지를 걸어 갑니다. [계수기] 11:38 내방하는 등산객들의 수를 헤아리는 계수기를 통과합니다. 다음은 며칠전 지역신문 기사입니다. 인용 "의왕시에 따르면 모락산과 백운산, 청계산, 덕성산 등산로 일원에 설치한 출입인원 계수기를 통해 등산객 출․입현황을 분석한 결과 1년간 100만2,300명이 등산을 했으며, 계수기가 설치되지 않은 곳으로 등산한 등산객까지 합하면 더욱 많은 등산객들이 의왕시의 산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 중 모락산이 52만명으로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았으며, 그 다음으로 백운산 23만명, 청계산 20만명(6개월 측정), 덕성산 5만명의 등산객들이 의왕시에서 등산을 즐겼다." [큰바위계단입구-삼거리 갈림길] 11:39 계수기를 지나자마자 바로 삼거리가 나오며 좌측 나무계단으로 산객들을 안내합니다. 이곳이 "큰바위계단입구"라고 합니다. [큰바위 계단 입구] 11:40 "LG아파트"에서 여기까지 도상거리로 100m이군요 도상거리와 실제거리, 체감거리는 구별해야 합니다. 계단을 약3분 정도 올라 갑니다.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 11:42 [체육시설] [이정표] 도심 속에 있는 산이기에 주민들을 위한 주민생활체육시설이 설치되 있습니다. [사각정 쉼터] 11:44 체육시설을 지나면 바로 사각정이 있는 쉼터가 있고.... 여가 보내기엔 아주 좋겠군요. [사각정 쉼터에서 정상방향 조망] 11:44 사각정 쉼터에서 정상방향을 올려다 봅니다. 아주 가깝군요. 무궁화가 도열해 있는 길을 지나 조금 가면... [급경사 계단]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모락산'은 岳山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곳인데 13분 정도 급경사를 오릅니다. 이곳 오르는 길이 '모락산'에서 제일 힘드는 곳이더군요...ㅎㅎ [쉼터] 11:57~12:07 (10분간 휴식) 급경사를 올라 서면 다시 쉼터가 있는 안부... 날씨가 워낙 더우니 잠시 휴식... [큰바위] 12:09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조금 진행하니 어마어마한 바위가 나타납니다. 이름하여 "큰바위"...ㅎ 이곳이 "큰바위계단입구"이며 계단을 따라 올라 갑니다. "큰바위"로 릿지를 해서 갈수도 있더군요. 안전하게 계단으로... [큰바위 전망대] [큰바위 전망대] "큰바위"는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큰바위 전망대에서 정상 방향 조망] 12:16 "큰바위"가 있는 오름길이 "모락산"의 최고 절경인듯합니다. ['지지대고개'와 '한남정맥' 조망] "큰바위 전망대"에 올라 조망을 합니다. 먼저 남쪽방향을 바라보면.... "광교산"에서 "수리산"으로 뻗어 가는 "한남정맥"이 "의왕시"와 "수원시"를 가르고 있으며 [1번국도]가 "지지대고개"를 지나고 있습니다. ['수리산' 조망] 서쪽을 바라보면.... '경기도 도립공원'인 "수리산"이 "관모봉-태을봉-슬기봉-꼬깔봉-수암봉"을 품고 있으며 앞에는 "의왕시"와 "군포시"가 펼쳐집니다. ['관악산' 조망] 북쪽을 바라보면.... 수도 서울을 감싸고 있는 대표산 "관악산"과 "삼성산" "우면산"이 '서울'과 '과천' '안양'을 분리해 놓고 있는데.... 이젠 서울과 주변 도시들의 경계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남태령"을 넘어 이곳 '의왕시'를 지나고 다시 "지지대고개"를 넘으며 '수원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까지 자주 왕림 하였답니다. ['큰바위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12:18 "큰바위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모락산"의 하일라이트 [돌무덤이 있는 안부] 12:21 "큰바위 전망대"와 정상 사이에는 돌무덤이 있는 안부가 하나 있습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안부에서 5~6분 암릉구간을 오르면..... [암릉구간] 정상부근은 모두 바위 덩어리 [정상] 드디어 하늘이 열리며 정상에 다다릅니다. 'LG아파트 약수터'에서 눌루날라로 1시간 정도 걸렸군요. 일반적 속도로 오르면 40여분 걸리겠습니다. ['모락산 국기봉' 정상] 12:27 정상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모락산 국기봉" 그리고 불어 오는 바람은 너무나 시원했습니다. 오늘 최고 기온이 36.7도라고 합니다만, '모락산 정상'과는 천지차이.... [정상 표지석] ['모락산 국기봉' 정상] 12:27~13:08 (41분간 휴식) 시원하게 불어 오는 바람을 에어컨 삼아 '모락산' 정상에서 한숨 잤습니다. 너무나 시원해서 소르륵 잠이 들었습니다. 40여분이나 잤더군요...ㅎ 머리가 맑끔해지고.... [모락산의 유래] "모락산의 유래"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에게 반감이 생긴 '임영대군'. 그래서 그는 이 산에 올라 '한양'(우회적 표현으로 중국 '낙양')을 사모하며 소일하였다는 것이 '모락산의 유래'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글 속에는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틀리는 역사적 사실이 기재되 있어 잠시 짚고 넘어 가겠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관심 가져 주시고...... "세조에게 반감이 생긴 임영대군"이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백운산' '광교산' '바라산' 조망] 오늘 "모락산'을 오르고 "오메기고개"를 지나 "백운산-광교산"으로 가려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더워 "모락산"만 오르고 집으로 돌아 가야겠습니다. 이 구간은 조만간 종주하겠습니다. ['청계산' 방향 조망] "백운산"에서 이어지는 "관악지맥" 산줄기가 "청계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악산' '삼성산' 조망] "세조에게 반감이 생긴 임영대군"이라는 구절 이 구절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아 보기 위해 먼저 '세종대왕'의 자식들부터 자세히 알아 보자구요.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청송 심씨)'와의 사이에서 8남 2녀를 낳았습니다. '소헌왕후'는 조선 왕비 중에 자식을 가장 많이 낳은 왕비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지요 '세종대왕'은 후처들에게서도 10명의 아들을 추가로 두어, 합쳐서 18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아들 많이 낳은 왕으로 단연 1위를 차지하며 기네스북에 올라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종대왕'은 政事도 잘 보았지만 情事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서자들은 놔두고 정통파 '소헌왕후'에게서 낳은 아들들을 알아 보면.... 첫째 아들 : 문종 (외아들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일찍 죽음) 둘째 아들 : 수양대군=세조 (삼촌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함) 셋째 아들 : 안평대군 (형인 '수양대군'과 권력 다툼을 벌이다 '계유정란'때 사형당함) 넷째 아들 : 임영대군 ('수양대군'의 편으로 왕위찬탈에 협조하여 '세조'의 신임을 얻음) 다섯째 아들 : 광평대군 (스무살에 요절) 여섯째 아들 : 금성대군 ('수양대군' 반대파로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임을 당함) 일곱째 아들 : 평원대군 (천연두로 어려서 사망) 여덟번째 아들 : 영응대군 ('수양대군'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보좌하여 천수를 누림) 보시는 바와 같이 "임영대군"은 '세조'의 반대파가 아니라 지지파여서 "세조에게 반감이 생긴 임영대군"이라는 구절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약하자면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은 "수양대군"의 반대파여서 죽임을 당했고, "임영대군"과 "영응대군"은 "수양대군"의 지지파여서 이들 둘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천수를 누렸기 때문에 안내판 글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임영대군"의 아들 "이준"은 28세에 영의정에 특채되어 조선왕조 최연소 영의정이라는 감투를 쓰는 파격적 인사가 단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무엇때문에 이런 잘못된 글이 이곳에 나 돌아 다니는 걸까? 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짐작해 봅니다. "임영대군의 묘가 이곳 모락산 자락에 있어, 그를 조금이라도 미화 시키기 위해...." "형제와 조카를 무참하게 죽이며 등극한 '세조-수양대군'과 거리를 두려고..." 그래도 그렇지 한편을 반대편을 만들려고 하면 되나요? ['정상 삼거리 - 팔각정' 조망] 13:08 '모락산' 정상에서 가야할 봉우리들을 바라봅니다. '모락산'은 크게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할수 있겠더군요.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백제시대 "모락산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상 팔각정'으로 가는 길] 계단을 내려가 5분 정도 진행합니다. ['팔각정'이 있는 '정상삼거리'] 13:13 '팔각정'이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모락산성"이 있었던 곳인가 봅니다. "계원예대"는 좌측 방향 [이정표] [팔각정] "모락산성"은 삼국시대 백제 산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흔적은 잘 보이지 않았고 팔각정만 산객들을 반깁니다. [모락산성 안내판] ['모락산 전승비'로 가는 길] 팔각정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진행하면.... [모락산 전승비] 13:14 "모락산 전승비 慕洛山 戰勝碑"가 있는 곳이 나옵니다. [모락산 전투 요도] [모락산 전투 개요] ['모락산 전승비'앞 "백운산" 갈림길] 13:20 산객들에겐 이곳이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지나와 뒤돌아 보며 촬영했습니다. 이유는 "모락산-백운산-광교산" 연계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방향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정표] 조만간 "모락산-백운산-광교산"종주를 하겠습니다. [묘지가 있는 쉼터] 13:21 "모락산"에는 세개의 큰 봉우리가 있는 걸로 생각됩니다. 조금전 팔각정에서부터 이어져 "모락산성"이 있었던 곳입니다. [묘지가 있는 봉우리] "묘지가 있는 봉우리 정상"에는 특이하게 해묵은 묘가 한기 있군요. 물론 "임영대군" 묘는 아닙니다. ㅎ "임영대군 묘"는 구글어스에 표기 해 놨습니다. ['묘지가 있는 봉우리'에서 '보리밥고개'로 내려 가는 길] 3분 정도 내려 갑니다. [보리밥고개] 13:24 "묘지 봉우리"에서 3분 정도 내려 가면 "보리밥고개"라는 곳이 나오는데 지명의 유래는 모르겠습니다. 이 근처...즉 '광교산'과 '모락산' 주변에는 "보리밥 음식점"이 유명한데.... 뭔 관련이 있나? ['보리밥고개'에서 '백운산' '바라산' 조망] "바라산" 너머에는 '용인시 고기리'가 있지요 ['보리밥고개'에서 '청계산'방향 조망] 유명한 "백운호수"가 조금 보이는군요 앞에 보이는 산줄기가 제법 유명한 "광-청 종주 코스"입니다. 수원 '지지대고개'에서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날'까지 종주하는 '파란문'의 산행기가 몇편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저 산줄기를 모두 여러번 종주했습니다. ['사인암'으로 가는 길] "보리밥고개"에서 "사인암"으로 가는 길도 암릉구간이었습니다. [암릉구간] '세종대왕'은 최고의 임금이었으나 사생활에선 명성 많큼 그렇게 좋지는 못했답니다. 백성들에겐 훌륭한 임금이었으나 개인적으론 어쩌면 불행한 임금이었습니다. 자식들을 많이 낳았지만 형제들 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고.... 며느리를 맞을 때 됨됨이를 직접 알아보고 맞았지만.....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문종)의 첫번째 며느리는 '압승술'을 하다가 쫓겨났고 첫째 아들의 두번째 며느리는 동성애자, 알콜 중독자이기에 쫓겨났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자세히 별도로 알려 드림니다)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부인 '남씨'는 정신질환이 있어서 왕에게 반말을 하는 등 '미친년'으로 또 궁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은 자식들의 혼사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대부분 실패했답니다. 사위도 골치 아프게 했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정의공주"의 남편 "안맹담"이라는 놈은 술을 무지무지 좋아해 '세종대왕'이 "안맹담" 사위와 술 함께 마시는 놈들은 혼내 주기도 하며 극기야 술 함께 마시는 놈들을 감옥에 보내기도 했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사인암'앞 쉼터] 13:31 세종대왕은 살아 있는 종합병원이었답니다. 평생 당뇨병과 함께, 풍질과 부종, 수전증 같은 병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35살 이후에는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였다고하며 당뇨 후유증 때문에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부종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 누울 수도 없어 잠을 잘수도 없을 정도 였답니다. 여기에 후궁들만 다섯명이나 되었으니 상상하지 않아도 성생활은 문란 할수 밖에 없었을거고 이런 과정에서 '세종대왕'은 임질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였다니.... 이런 것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진짜 랍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잼있죠? ㅎㅎ [사인암] "사인암 舍人巖" "임영대군"이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았다고 하는데.... ['사인암'에서 뒤돌아 본 '묘지가 있던 봉우리'] "사인암"에서 지나온 "묘지가 있던 봉우리"를 뒤돌아 보고.... ['사인암'에서 '수리산' 조망] "묘지가 있는 봉우리" 옆으로 '경기도 도립공원'인 "수리산'이 계속 조망되며.... ['사인암'에서 '계원예대' 조망] 북쪽으로는 '관악산'과 '삼성산'이 조망되는데 발 아래엔 모락산 날머리인 "계원예대"가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가 형제들을 죽이며 왕권을 차지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왕권을 물려 주자, 세종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이 앞에 보이는 관악산 "연주대"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섭한 마음을 추스렸다는데.... 이곳 "모락산 사인암"에는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이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형인 "수양대군-세조"를 향해 섭한 마음을 표출했다니...역사는 돌고 돌고... 역사는 언제나 거기서 거기.... [암봉] 13:36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의 성욕은 똑 같습니다. 정상적 남성 100%가 자위를 하고, 여성도 별반 차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동성애를 하는 자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며느리들 중에 첫째 아들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 "봉씨" 이 여자가 세종실록에 아주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세자빈이 궁녀와 동성애를 한것이죠. ['전망대'로 내려 가는 길] 궁녀들 사이의 동성애를 보통 '대식'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대식'은 궁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드러나곤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하죠?ㅎ 이렇듯 은밀하게 행해지던 궁녀들의 동성애가 겉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가 주인공이었던 사건입니다. 세종대왕은 궁녀들 사이의 '대식'이 적발되면 곤장 100대~70대씩 때려서라도 금지시키려고 했답니다. 당시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정관료들의 성 윤리가 대단히 엄격하여 동성애를 절대 용납하지 못했던 때이랍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인 '봉씨'가 궁녀와 동성애를 벌이다 적발되어 쫓겨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는데,『세종실록』에서 궁녀의 동성애에 관한 기록은 이때의 상황을 가장 자세하게 기술해 놨습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이 큰며느리 '봉씨'를 내치면서 부득이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다 보니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세종이 큰며느리를 내친 이유는 근본적으로 아들, 즉 '문종'에게 있었답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여색을 멀리한 모범적인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일 밤 독수공방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문종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세자빈 김씨'는 학문에만 열중할 뿐 자신을 모른 체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압승술 壓勝術"을 행하다가 시아버지 '세종대왕'에게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압승술"이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일종의 민간 미신이랍니다. 구체적으로 "압승술"은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 뒷굽을 태워 가루를 내고 나서 그것을 술에 타 남편에게 먹이는 일종의 미신인데요. 휘빈 김씨는 세자가 자주 출입하는 궁녀의 신을 훔쳐다가 그 신을 태워 세자의 술이나 차에 섞어 마시게 하거나,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를 만들어 먹이는 등 세자를 곁에 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되지만 당연히 이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오히려 그녀의 행각은 탄로 나서, '세종대왕'은 장차 왕비가 될 큰며느리가 그런 요상한 짓을 한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고 국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큰며느리 '김씨'를 곧바로 쫓아내 버렸지요. 그러나 '김씨'가 쫓겨난 후 들어온 두번째 큰며느리 '봉씨'도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은 여자이니 마찬가지였답니다. 다만 '봉씨'는 '김씨'처럼 "압승술"을 쓰는 대신 동성애에 빠져 궁녀들과 성욕을 불태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노발 대발 난리가 났고 결국 폐서인을 시켜 추방합니다. 쫏겨난 '봉씨'는 반성은 커녕 성욕을 해결한게 뭔 죄가 되냐고 항변하다가 결국 자기 친아버지로 부터 비참하게 목 졸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남자 구실 못하는 '문종'이 이혼 대상이고 위자료를 줘야 할텐데.... 이러한 와중에 '문종'이 꼴깝을 합니다. 자신의 부인들이 성욕을 해결 못해 "압승술"이나 '동성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궁중의 어느 궁녀와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유일한 아들 "단종"이며, 그 궁녀가 "단종"의 어머니인 "양원 권씨"로 '문종'의 세번째 부인인 "현덕왕후"가 됩니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단종'을 더욱 인정하려하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왕권찬탈의 빌미를 찾으려 혈안이었데 이것은 좋은 미끼여서.... 이로서 '세종대왕' 자식들과 며느리들의 불행은 극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큰며느리들은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압승술" "동성애"를 하다 쫏겨나고 "모락산"이라는 산 이름을 만든 "임영대군"의 와이프는 정신질환자로 시아버지인 세종대왕에게 반말 막말을 하는 등 '미친년'이었으니 지지리도 며느리 복이 없는 '세종대왕'이었던 것입니다. [전망대] 13:40 "사인암"에서 조금 내려 가니 전망대가 나옵니다. [전망대에서 '청계산' 방향 조망] 이곳에선 "청계산"이 황홀하게 조망되는 군요. 가운데 보이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학의분기점"입니다. 좌측 아파트촌이 "인덕원" '청계산'에는 "매봉"이 두개가 있죠?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 가는 계단] 전망대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 갑니다. [나무계단 삼거리] 13:44 전망대에서 나무계단을 내려 가면 "나무계단 삼거리"라는 이정목을 만나고.... ['계원예대 갈림길'로 내려 가는 길] 계속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계원예대' 갈림길] 13:48 "계원예대 후문"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만나면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계원예대' 갈림길 이정표] 이곳은 중요한 갈림길이었습니다. 우측으로 가면 "임영대군 묘"가 있는 '능안마을'로 갈수 있군요 [하산길] 산행 날머리인 "계원예대 후문"까지 약40분간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계원예대'로 내려 가는 길] "LG아파트 약수터"에서 오르는 코스는 암릉코스이고 "계원예대"에서 오르는 코스는 육산코스이군요. [모락산 산림욕장] '모락산 산림욕장'도 지나고... ['6.25' '베트남' 참전기념탑] 14:06 숲속에서 나오니 앞이 훤히 터진 조그만 공원이 나옵니다. 물론 주차장도 있구요 [참전 기념탑] 뭔가 했더니 "6.25"와 '베트남' 참전 기념탑이였습니다. 여하튼 6.25때 서울 수복을 위한 전투가 이곳에서 엄청 벌어진것은 사실 ['백운호수'로 넘어 가는 길] 공원 앞에는 시원한 도로가 뚤려있었는데, "백운호수"로 넘어 가는 도로이더군요 ['계원예술대학교'와 건너편 '갈미한글공원'] 아래쪽으로는 "계원예술대학"이 있으며 건너편엔 "갈미한글공원"이 있었습니다. [갈미한글공원] 14:10 [갈미한글공원 안내도] 시간도 여유있어 "갈미한글공원"으로 구경을 갑니다. 국어사전을 만든 "이희승 박사"가 의왕출신이라고 자랑겸 홍보겸 한글을 주제로 조성된 공원이라네요 [갈미한글공원 입구] 백일홍이 피어있는 공원으로 올라 갑니다. [한글 조형물] 한글 - - 세종대왕 - - 넷째아들 임영대군.............모락산 한글을 주제로 한 조형물..... [야외무대] 야외공연무대도 있는 제법 넓직한 공원이었습니다. [갈미조각공원]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었습니다. [갈미한글공원 입구] 공원을 한번 휘~ 돌아 보고 나갑니다. ['계원예대' 후문에서 '모락산' 조망] 14:14 "갈미한글공원"을 나와 "계원예대" 후문에서 "모락산"을 올려다 보고... [계원예대 정문으로 가는 길] 도로를 따라 "계원예대" 정문으로 내려 갑니다. [계원예대 정문] 14:26 "계원예술대학교" 정문에서 조망하고 "계원예대" 정문 수위에게 버스 타는 곳을 물어 보고.... ['서울외곽고속도로' 밑] 14:26 "계원예대" 정문 앞에 있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밑으로 조금 내려 갑니다. 여기서 버스 정류장을 유의 해야 하는데, "의왕역"으로 가실 분들은 좌측 정류장을 이용해야 하고, "평촌역" "인덕원역"으로 가실 분들은 우측 정류장을 이용해야 합니다. ['계원예대' 버스정류장] 14:35 저는 "의왕역"으로 갈 예정이므로 좌측 버스 정류장으로 갑니다. [버스노선도] 이곳을 통과하는 버스는 모두 들머리였던 "LG아파트 약수터"로 가더군요. 정류장은 네개만 지나면 "LG아파트 약수터"이니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의왕역"으로 가 "1호선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의왕역] 15:10 무더운 날씨여서 간단 산행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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