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언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시인세계]에서
현역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그 설문 조사에서 그 유명한 손로원선생 작사, 박시춘선생 작곡,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가 단연 1위에 선정 되었답니다.
이어서 '킬리만자로의 표범','북한강에서','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한계령',
'아침 이슬','가시나무','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그 겨울의 찻집','황성 옛터'..
이러한 순으로 뽑혔답니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과 우리가 느끼는 노랫말이
비슷한가요? 저는 이런 통계가 있기 전부터 좋아 했습니다만, 저와 비슷하죠? ㅎ
저와 비슷하면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ㅎ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 가더라
이 노랫말이 흐를 땐 나의 청춘과 사랑과 삶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삶의 허무와 인생, 그 근원적 비극성이 한꺼번에 회화적으로 돌출되는 듯 합니다.
항구의 페이소스가 더없이 어우러져 있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고단한 시절에 우리 어머니들의 멍든 가슴을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고
역설적 카타르시스로 엉어리 진 멍든 가슴을 쓰다덤어 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아직도 그 시절 어머니들에겐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이 남아 있으리....
이런 노랫말들중 으뜸은 뭐니 뭐니해도 '봄날은 간다'라고 저는 말합니다.
열아홉 시절에 보았던 그 아름답던 세상은 어디로 갔는가
온통 내 세상 같고 내 편일 것 같던 그 세월은 언제 이렇게 변했던가!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속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인생의 허무를 열아홉 사랑으로 표현한 불후의 명작
나같은 허무주의자들이 한잔 술에 취해 벽에 머리 박고 부르는 노래
"봄날은 간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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