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없는 길을 가다』
명성지맥2구간 :
용화저수지-약사령능선-명성산-삼각봉-[길없는 길]-
탱크사격훈련장-사격지휘소-무선송신탑-여우봉-여우고개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을 보고 어떤이들은 한장만 남았다고 하고
어떤이들은 한장이나 남았다고 합니다.
간단한 표현같지만 세상을 사는 마음 자세가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여유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냐,
매사를 불만으로 초조하게 사는 부정적 삶이냐 하는 것으로도 해석 할수 있겠습니다
모두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를 각박하게 만듭니다
초조하고 각박한 일상에서 벗어나 탈출!!~
대자연 속으로 일상탈출!!~
登山입니다
12월14일(일) 새벽부터 일상탈출을 위한 행군은 시작되었습니다
날씨는 구라청 예보와는 달리 바람도 멎고 기온도 예상보다 낮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철원에 있는 명성산 구간이라 추위와 눈을 걱정했는데
눈 구경하기 어려웠고 더워서 입었던 옷들을 벗어야 했습니다
무지무지 재미있었던 "명성지맥2구간"을 저와 함께 가 보실까요?
[산행 개념도]
명성지맥1구간 날머리였던 "약사령 고개"를 이번엔 반대 방향에서 진입하기로하고
신철원을 지나 "삼부연 폭포"를 구경하고 "용화저수지"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개념도의 보라색 線이 "명성지맥 마루금"이며 붉은 線이 실제 산행한 코스입니다
오늘은 마루금을 약간씩 벗어나 산행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알려 드림니다
[삼부연폭포앞 터널]
오전7시에 양재역 서초구민회관 주차장에서 많은 산객들을 만나
9시15분경에 신철원을 지나 [삼부연 폭포]앞에 도착했습니다
삼부연 폭포앞에는 터널이 뚤려있어 용화저수지까지는 2~3분정도에 갈수가 있었습니다
저 터널이 없었을 때에는 심심산골에 "삼부연 폭포"는 자리 잡고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했을 것입니다
[삼부연폭포]
삼부연 폭포는 한문으로 三釜淵 瀑布로 쓰고 있습니다
釜는 부산 할때의 釜입니다. 즉 가마솥 釜를 의미합니다
삼부연 폭포는 3단 폭포로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데
사계절 마르지 않는 물과 기이한 바위가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신비로움을 불러 일으키며
폭포의 물 떨어지는 곳이 세군데 있는데 그 모양이 '가마솥' 같다하여 三釜淵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三釜淵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어 동네 이름을 용화동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상류 3km 지점에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래서 이름을 용화저수지라고 했으며,
옛부터 가뭄이 들면 폭포 밑에 단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가마솥 모양이라는 웅덩이 유래는 공식적으로는 안내판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후삼국시대 궁예가 철원 풍천원에 도읍을 정할 당시 이곳에서 도를 닦던 이무기 4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 3마리가 폭포의 기암을 뚤고 용으로 승천하였는데 그때 생긴 血淵이 가마솥 모양 같다고
三釜淵이라 하는 전설이 있으며, 이 3개의 바위구멍에 물이 고여 노귀탕·솥탕·가마탕이 되었다고 전한다"
겸재 정선(鄭敾)선생 잘 아시죠? 겸재선생은 우리나라 미술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드신 분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 그림을 모방하는것이 잘 그리는 그림이라고 하던 때에
독창적인 "진경산수화"를 그렸습니다. 대표작은 무지 무지 많습니다만 국보로 지정되있는
'금강산전도'가 가장 유명합니다. 그런데 겸재 선생이 금강산에 그림을 그리러 가기 전에
이곳에 들려 삼부연 폭포를 그렸는데 금강산 구룡폭포를 그리기 위한 실습이었다고합니다
그 많큼 삼부연 폭포는 아름답고 폭포의 모든 조건을 골고루 가지고 있어 동양화 중에서도
"진경산수화"를 공부하는 미술 학도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삼부연폭포]
삼부연 폭포는 명성산과 각흘산 줄기의 계곡에서 흘러와 한바탕 폭포를 이루고
저 계곡으로 유유히 흘러 갑니다
도로가 없던 옛날에 겸재 정선선생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어렵게 이 계곡에 올랐으리라
[삼부연폭포]
우리는 편하게 관광버스를 타고 와 잠시 내려 기념 사진 몇장 찍고 훌러덩 가버립니다
행복한것인지..편리한것인지....
겸재 정선선생처럼 삼부연 폭포를 깊이 있게 감상하지 못하고 겉치레만 하고 갑니다
[용화저수지 위 산행 들머리]
9시25분에 용화저수지 위 산행 들머리인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명성지맥2구간에는 많은 산객들이 참여했습니다
긴 여정을 위해 산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산행 안내도]
용화저수지 위에 있는 "1번위치"에서 노란색 번호를 따라 명성산까지 갈 예정입니다
명성지맥 마루금은 '약사령 고개'까지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서 "약사령능선"을 타야합니다만
계곡길은 지루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며 길도 좋지않아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지만 철원군에서 권장하는 정식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로 한것입니다
가 볼만한 코스였습니다
[용화저수지 삼거리-산행 들머리]
등산로로 올라와 삼거리를 촬영했습니다.
오른쪽 길이 '약사령 고개'로 올라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제가 지금 서있는 길을 따라 '약사령 능선'으로 갑니다
[각흘산]
오르는 길 좌측으로 "각흘산 능선"이 지난번 만나서 반가웠다고 인사 하는듯합니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습니다
9시 35분
이번 '서울백두클럽'에 기록적인 산객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서로 친분이 없는 분들이 많아 제각각 가까운 사람들끼리 산행을 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다 보면 새로운 山친구가 될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자주 만나자구요~~
이 세상에 와서 가장 즐거운 일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 알아 가는 일'이라고도 하는데...
명성산은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간 유명한 산입니다만
대부분 산정호수에서 억새밭을 올라 억새 구경하는 코스로 명성산을 다녀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枝脈을 종주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아닌 이런 곳으로 다닙니다
이 코스도 교통 접근성이 나빠 산객들이 찾지 않는 코스이라 길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쪽 코스는 최초 30분이 가파른 오르막이었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십리도 못갑니다. ㅎㅎ
[쉼터]
정확히 30분 정도 오르니 여지없이 쉼터가 나왔으며, 옷도 벗고 수건도 꺼내고....
여기까지가 가파른 오르막이었고 이제부터는 완만한 봉우리를 수없이 넘습니다
쉼터에서 '약사령 능선'으로 가는 길에
뒤 돌아 보니 산행 들머리였던 '용화 저수지'가 조망됩니다
제법 올라 왔습니다
[각흘산]
좌측으로는 지난 명성지맥1구간에 점령했던 '角屹山'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혹시 나쁜 무리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호위하고 있는듯니다
약사령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걷기 대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무척 많은 듯 선두는 벌써 멀리 가버렸습니다
명성지맥 마루금에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부터 시야가 확 트이며 산행 코스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걸을 수 있어 한결 편해졌습니다
각흘산-약사령 고개에서 올라 오는 지맥 마루금 능선이 그 윤곽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있는 곡은 모두 잘 아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이 곡은 멕시코 출신의 3인조 트리오 "로스 트래스 디아멘테스"가 발표하여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라틴음악의 고전이죠?
맥시코의 '트리오' 라고 하면 'Trio Los Panchos 트리오 로스 판초스'가 먼저 생각 납니다만
사실 Los Tres Diamantes도 만만치 않은 라틴음악의 대표들입니다
이 곡은 세계의 여러나라에서 나름대로의 감성에 맞게 개사되어 불려지는 노래이며
듣는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으로
언제 들어도 감미롭고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명성산]
드디어 명성산 정상이 시야에 들어 오며, 광활한 평원이 오장육부를 시원하게 해 줍니다
능선 뒤로 뽈록 나온 가운데 봉우리가 "삼각봉"이며 우측 봉우리가 "명성산 정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이 노래를 "불루벨스"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고 제목을 붙여 불렀습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제가 "불루벨스" 얘기를 하니 벌써 눈에 선하게 떠 오를것입니다. ㅎㅎ
[약사령 능선 갈림길]
각흘산에서 약사령을 넘어 명성산으로 가는 "명성지맥 마루금"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저 맨 끝의 '광덕산'에서 가운데 '각흘산'을 지나 달려 온 지맥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약사령 능선 이정표]
용화 저수지에서 여기 까지가 3.2km이었습니다
10시 45분에 여기까지 왔으니 1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여기까지가 실제 오르막이었고 앞으로는 더욱 편안한 능선길이 되겠습니다
'불루벨스'가 부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순전히 우리식으로 번안한 것입니다
이 노래의 원명은 Luna Llena로서 영어로 하자면 Full Moon이며
우리말로 직접 번역하자면 滿月이라고 해야겠지요
滿月을 불루벨스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번안 햇는데
번안 하는 사람 맘대로 이겠죠
약사령 능선에서 바라 본 '한북정맥'
저도 사진 촬영하는 기술이 많이 발전했나 봅니다
이 사진은 의도적으로 역광을 생각하며 찍은 사진인데 동양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멋진 경치 속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흥얼 거리며
누구에게나 있는 옛사랑을 음미해 봅니다
푸른 저 달빛은 호숫가에 지는데
멀리 떠난 그 님의 소식 꿈같이 아득하여라
차가운 밤이슬 맞으며 갈대밭에 홀로 앉아
옛사랑 부를때 내 곁엔 희미한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여
차가운 밤이슬 맞으며 갈대밭에 홀로 앉아
옛사랑 부를때 내 곁엔 희미한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여
[약사령 능선]
지금은 씨즌이 지나 '억새'가 수명을 다하고 많이 주저 앉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썩어도 준치'라고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명성산의 억새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절경으로 유명합니다
가을이면 수많은 인파들로 명성산을 뒤덮고...
궁예가 망국의 한을 토하며 울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과 산객들이 명성산을 무수히 밟아 아파 우는 명성산이 됩니다
앞에 올라 가는 일행들이 보입니다
모든 슬픔과 고독을 보담아 주는 듯한 명성산이 오늘 따라 더욱 새롭습니다
몇번 명성산을 찾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 코스로는 처음입니다
저 위 봉우리에 올라 가서, 다시 내려다 보며 사진을 찍어 보여 드리겠습니다
와우~
명성지맥 마루금이 장관을 이룹니다
이 마루금은 경기도와 강원도를 경계선으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지겨운 광덕산과 각흘산이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이 남았다고 계속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정말 편안하고 푸근한 등산길입니다.
삼각봉이 점점 더 다가 오고 있습니다
평온한 산행길이라 심심치 않게 유머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좀 차원있는 유머이니 한번 느껴 보세요
제목을 뭘로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웃다가 죽었다"로 정했습니다
미국인, 한국인, 일본인, 세사람이 남태평양을 항해하는 중에
갑자기 불어 닦친 폭풍우로 배가 난파되어 식인종이 사는 섬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들과 모양새가 다른 세사람을 식인종들은 모아놓고
숲속에서 과일을 아무거나 10개씩 따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면서...
"웃거나, 울거나 하면 죽임을 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사람은 정글 속으로 들어 가 살아 남기 위해 과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열심히 과일을 찾아 다니던 미국인이 사과 10개를 맨먼저 따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식인종들이 그 사과를 모두 자신의 똥구멍에 집어 넣어라고 명령을 합니다
미국사람은 어쩔수 없이 명령을 따라 사과 4개를 넣고는 아파서 울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웃거나 울면 죽임을 당한다는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약사령 능선 좌측으로 탱크부대 사격 훈련장과 멀리 한북정맥이 雲海 위에 뜨있습니다
다음에는 다행이도 한국인은 딸기를 10개를 따왔습니다.
식인종들은 한국인에게도 또 미국인과 똑 같은 똥구멍에 넣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은 딸기이니 쉽게 9개를 넣고 나머지 1개를 남기고.....
갑자기 웃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명성산-약사령능선-삼각봉 안부 삼거리]
세월이 흘러 저승에서 두사람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미국사람이 한국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때 왜 웃었냐?"
그러자 한국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명성산-약사령능선-삼각봉 삼거리 이정표]
마지막 1개를 넣으려는데....
일본사람이 수박을 10개를 따갖고 나오잖아!"
[명성산 주능선에 올라 '약사령능선'을 뒤 돌아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측은 경기도 포천시로서 삼각봉과 팔각정, 산정호수로 가는 길이며
좌측은 강원도 철원군으로서 명성산 정상과 "궁예능선"으로 가는 길입니다
명성산 정상은 여기서 10분 거리이기에 모두 갔다가 되 돌아 옵니다
[명성산 정상 봉우리]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명성산 정상이 바로 보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강원도 철원군입니다.
그러므로 억새축제가 열리는 명성산은 경기도 포천시에서 주관을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명성산은 포천시에 있는 산으로 알고 있으나
명성산 주봉은 분명히 강원도 철원에 있습니다.
좌측의 봉우리가 그 유명한 "궁예봉"입니다.
명성산에 오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살다간 "궁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궁예"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나 전설, 설화는 무척 많으며,
TV드라마로도 여러번 방영된바 있어 "궁예"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마디 할줄 압니다
[명성산 정상]
명성산 주봉에는 군벙커시설이 있으며 오르기 쉽습니다
'후고구려'와 '태봉국', 그리고 "궁예"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고려사',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식 역사 기록이라 할수 있는 삼국사기와 고려사에선 "궁예"를 잔인무도한 인간으로
묘사 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기록이나 전설, 설화에는 그렇게 폭군이 아니었고,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킨 "왕건"을 권모술수에 능하고 야잡한 치졸한 인간으로 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예"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명성산 정상]
명성산에 대해선 제가 지난 10월 19일에 찾아 산행기를 이미 썼습니다
10월22일자 鳴聲山과 山井湖水 山行記를 찾아 읽어 보시면
또 다른 가을 낭만을 느끼실수 있을 것입니다
[명성산 정상에서 바라 본 '궁예봉']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城을 쌓았다고 했는데 그 城은 어디에 있는가?
"궁예성"은 현재는 들어 갈수 없는 DMZ에 있다고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수 없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왕건'의 역성혁명은 무혈로 궁예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해 성공한것으로 되있습니다.
그러나 철원, 포천지방의 향토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궁예는 최후까지 왕건의 반란군에
대항해 싸웠다고 주장하고 있어 역사책 '삼국사기'를 무색하게하고 있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이기에 쿠데타에 성공한 왕건을 칭송하고
패배한 궁예를 폄하 하는 것은 전세계사에도 당연시 되 왔으니 우리는 유추해 생각 할수 있습니다
궁예는 왕건에게 쪽겨 918년 6월에 북쪽으로 도망간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 피했을 것입니다.
궁예가 왕건과 항전했다는 철원의 보개산성, 성동리성, 싸우다 달아났다는 패주골,
군사들이 한탄을 하며 쫓겨났다는 군탄리, 궁예가 피신했다는 명성산의 개적동굴,
궁예가 건너면서 한탄했다는 한탄강...
전설을 종합해 보면, 궁예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왕건과 싸우다 남쪽으로 후퇴했던 것 같습니다.
그 최후의 항전지는 앞에 보이는 저 "궁예능선"의 궁예봉에 진을 치고 城을 쌓아 항쟁을 계속했답니다
현재도 城의 일부가 남아 있으니 '삼국사기'의 역사왜곡은 확실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궁예봉 기슭에는 군사가 약200여명이 들어 갈수 있는 큰 개적동굴도있으며
당시의 흔적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답니다
또한 명성산 근처엔 궁예가 왕건에게 항복문서를 바쳤다는 '항서밭골'이란 지명이 남아있는데
이런 地名은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란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 삼국사기의
역사왜곡도 마음 속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명성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용화 저수지]
삼국사기에 공식적으로 나온 궁예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원문을 인용해 검토해 보겠습니다
"弓裔 新羅人 姓金氏 考第四十七憲安王誼靖 母憲安王嬪御 失其姓名
或云 “四十八景文王膺廉之子” 以五月五日 生於外家 "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 의정(誼靖)이며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 성과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또는 48대 경문왕 응렴(膺廉)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다]
궁예는 후고구려를 창건했으니 고구려 후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궁예가 신라의 왕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 궁예의 이름이 활 弓과 후예 裔이므로 활쏘기의 후예라는 의미로
스스로 고구려의 경상도 방언인 구레왕으로 할 정도 였으니,
그는 자신의 모국인 신라를 경멸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한것은 틀림없는듯합니다
위의 삼국사기에서 "47대 헌안왕의 아들일수도 있고 48대 경문왕의 아들일수도 있다"는
왕자의 아버지도 고의적으로 애매하게 기록하는 불분명한 역사책은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명성산 정상에서 바라 본 철원평야와 금학산]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궁예의 理想을 알아 보면
"天復元年辛酉, 善宗自稱王,
謂人曰: "往者新羅請兵於唐, 以破高句麗, 故平壤舊都鞠爲茂草, 吾必報其"
[천복(天復: 唐 昭宗의 연호) 원년(서기 901년) 신유(辛酉)년에
선종(善宗=궁예)이 왕을 자칭하고 사람들에게 일렀다.
"옛날에 신라가 당(唐)에 군사를 청하고 고구려를 파(破)하였기 때문에
평양 옛 도읍이 황폐하여 풀만 무성하다.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리라!"]
외세를 끌어 들여 자신들의 정권 연장에 이용한 신라 왕조에 대한 반감이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궁예의 법명이 선종善宗입니다
어느 고승이 궁예에게 저 앞에 보이는 금학산을 가리키며
"금학산을 진산으로 하여 도성을 건설하면 왕조가 300년이 갈것이며
다른 곳을 선택하면 30년도 못 간다"라고 조언을 했는데도, 궁예는 현제의 DMZ쪽에
城을 지어 곧 바로 멸망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잘 되면 자신의 공로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 되는 것이니 풍수지리설은 믿을 바는 못됩니다
[명성산 정상에서 바라 본 명성산 주능선]
궁예가 애꾸눈이 된 사연
궁예의 아버지는 신라 제47대 헌안왕이고,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후궁이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48대 경문왕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록은 47대 헌안왕이 48대 경문왕에게
완전이 호구 잡혀 꼭두각시 왕만 하다가 왕위를 48대 경문왕에게 그냥 물려줬기 때문입니다
궁예의 탄생은 삼국사기에서 5월 5일에 외가에서 출생하였다고 기술해 놨습니다
탄생 설화에 나타나 있는 이 때의 상황을 제가 시나리오로 꾸며 보겠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140여년전 5월5일 단오날이었습니다
일관(日官)이라고 하는 나랏일에 대해 점(占)보는 일을 맡아보는 벼슬을 가진 놈이
신라 왕실에 허겁지겁 뛰어 옵니다. 그리고 후에 48대 왕이 되는 예비 경문왕에게 아룁니다
日官 : (뛰어 와 허리를 굽히고 숨을 헐떡이며...) 전하!!~~ 큰일 났습니다
王 : 호들갑 떨지 말고 자세히 아뢰어라!
日官 : 아이구 숨차~ 전하! 기이한 점괘가 나왔습니다
王 : (놀라며) 무슨 점괘냐?
日官 : (건너편 왕궁을 가리키며) 저쪽 47대 헌안왕 세칸드 침소에서 왕자가 한명 탄생했습니다
王 : 무어라? 아들 하나 낳은게 뭔 큰일이라고 호들갑이냐? 내가 그깟 아들 하나를 무서워 하겠냐?
日官 : 아닙니다. 전하!~ 47대 헌안왕의 아들이 탄생하면서 부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王 : 어떻게 예사롭지가 않다는것이냐? 궁둥이에 뿔이라도 있느냐?
日官 : 이 왕자 쎄끼가 나면서 부터 이빨이 나고, 얼굴에는 이상한 瑞光이 비취고
아이큐가 무지 좋아 벌써부터 또릿또릿한게 큰 인물이 될것 같습니다
王 : (놀라며) 그래? 앞으로 내가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될것이란 말이지?
日官 : 넵! 그렇게 사료 되옵니다
王 : (벌떡 일어 서며 화낸 목소리로) 여봐라!~~ 이거이 않되겠다. 그 애새끼 죽여버려!!~~
(호위병들이 급하게 뛰어 나간다)
[명성산 정상에서 바라 본 산정호수 부근과 '몽메르 C.C.']
(장소가 바껴 47대 헌안왕의 세칸드 침실)
(호위병들이 침입하는 소리가 들린다)
(위기에 처한 왕후가 아들을 강보에 싸서 부랴 부랴 안고 방안의 숨을 곳인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군사들이 방문을 박차고 쳐 들어 온다)
(다급해진 왕후가 다락문을 열고 밖에 있는 유모에게 아이를 던진다)
(유모가 아래에서 아이를 받는데, 이때 유모가 잘못하여 손가락이 아이의 눈을 찌른다)
(눈에서 피가 나는 아이를 안고 허겁지겁 도망을 친다)
궁예가 애꾸눈이 되는 과정을 제가 기록을 토대로 이해하기 쉽게 꾸며 봤습니다
이해가 쉬운가요? ㅎㅎ
[삼각봉]
삼각봉을 오릅니다. 멀리서는 암벽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는데....
이것은 궁예가 신라왕자이었으나 왕실의 내분으로 조정에서 용납되지 못하였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뒤 궁예는 유모에 의하여 몰래 키워졌읍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자라면서 궁예가 유모의 말을 하도 잘 듣지 않아 나몰라라 하고 내빼버렸답니다
그래서 갈곳없는 궁예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몰래 세달사(世達寺)라는 절에 들어가
가짜 중이 되고, 이름도 출가하면 주어지는 법명인 " 선종(善宗)" 이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궁예는 훗날을 기약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며 호시탐탐 신라에 대한 복수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삼각봉]
또 고려사에는 궁예의 와이프인 "강씨왕후"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강씨부인은 남편의 정치행위에 대해 잘못된 사안에 대해선 잘못됬다고 直言을 많이 했는데
이런 것을 자기를 의심하여 기만한다고 여겨 "강씨왕후"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묘사 하지만
다른기록에는 "그저 해(害)했다"고만 기록했고,
사실에 가까운 지방의 전설들은 "강씨봉 아랫마을에 유배 보냈다"고 하며
그래서 현재의 "강씨봉"이란 산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져 내려 오니 사서의 기록들을 무색하게 합니다,
"강씨왕후"에 대해선 할말이 무척 많습니다. 정말 빼어난 미모에 지성을 갖춘 여자이었죠
그런 것들은 모두 기록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승자의 역사책에는 못된 여자로 폄하합니다
[명성산 삼각봉 정상석]
[삼각봉에서 명성산 주능선을 따라 팔각정 방향으로 갑니다]
고려의 사학자들은 "궁예와 강씨왕후"를 폄하하기 위한 설화를 지어내 퍼뜨렸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궁예와 구미호">라는 것입니다
"홍어와 무인도"를 사랑해 주시는 횐님들을 위해 이 설화의 개요를 요약 정리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설화의 출처는 <<경기북부 구전자료집Ⅱ>>(박이정, 2001)이란 사실을 미리 알려드림니다
① 구미호가 강씨왕비를 잡아먹고 왕비 행세를 합니다.
② 구미호인 왕비는 사람 죽이는걸 즐거워 해, 궁예가 왕비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사람을 계속 죽입니다.
③ 왕비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백성들은 아는데, 임금만 모른다는 것입니다
④ 한 대신이 삼족구를 구해 와 구미호를 물리칩니다.
삼각봉을 지나와 어느 무명봉에 올라 삼각봉과 명성산 정상, 궁예봉 능선을 뒤 돌아 봤습니다
오른쪽 앞부터 삼각봉, 명성산 정상 봉우리, 궁예봉과 그 능선
역사의 승자가 패자를 어떻게 폄하하는지 그 단면을 확실히 들여 다 볼수 있는 "궁예와 구미호"
"궁예와 구미호"에서 궁예가 사람을 많이 죽인 이유를 구미호가 왕비를 잡아먹고
그 탈을 쓴 구미호가 왕인 궁예를 홀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인이 생기길 천하일색으로 생겼는데 웃는 벱이 없어. 좋아하는 벱이 없어.
거 사람 죽이는 것만 보면 깔깔 웃어,”
왕비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궁예가 사람을 계속 죽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궁예는 본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한 폭군은 아니라는 것인데
이렇게도 나쁜 놈을 만들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대단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둔갑을 자유자재로 하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일 수도 있고,
또는 왕을 홀려 정치를 등한시하게 하여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요사스런 여인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구미호가 어떤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든, 이것은 폭군으로서의 궁예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보다는
여색에 빠져 정치를 등한시한 망국의 군주로서의 궁예를 파렴치한 놈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파렴치하고 권모술수에 능했던 인간은 오히려 쿠데타 정권의 "왕건"이었다고 전해져 내려 옵니다
'삼족구'는 세개의 다리를 가진 개를 말하는데 여기선 '왕건'을 암시하며, 난세에 영웅 출현을 의미합니다
이야기가 좀 ..그렇지요? ㅎㅎ
[산정호수]
드디어 산정호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 속의 우물이라고 山井호수라고 한답니다
이 산정호수를 바라 보면 고등학교 1학년때 가을 소풍왔던 기억이 제일 먼저 납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신 분들은 이곳으로 소풍을 왔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엔 김일성의 별장이 있다고 했는데 실제 김일성은 이곳에 2~3일 정도 머물렀을 뿐이고
화려한 별장은 없었습니다
산정호수 오른쪽에 볼록 나온 봉우리는 "망무봉"이라하며, 그 뒤는 '몽메르 C.C.'입니다
호수의 가운데 부분에 작게 볼록 나온 봉우리는 "망봉"입니다.
망무봉이나 망봉은 궁예가 왕건 군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망보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명성산 주능선의 좌측은 모두 일반인 출입금지 지역으로 우라나라 탱크부대들의
사격 훈련장입니다. 오늘도 지축을 흔드는 탱크소리가 어러렁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의 산봉우리가 "여우봉"입니다.
앞에 좌측으로 나있는 작은 능선이 명성지맥길 입니다
저 능선 지맥 마루금을 따라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탱크포사격장 안으로 들어 가야
명성지맥 마루금을 따라 저 여우봉으로 올라 갈수있습니다
[명성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능선]
삼각봉에서 세개 정도의 작은 봉우리를 지나 팔각정 방향으로 오면
좌측으로 '명성지맥 마루금 능선'이 이렇게 나옵니다
길 찾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가버린 선두 그룹은 보이지 않고
"길 없는 길"만이 반기기는 커녕 오지 말라고 철조망을 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 나~ㄴ 그냥 후미 그룹을 기다렸을 뿐이고~~탱크 소리를 들었을 뿐이고~~"
"무섭기도 했을 뿐이고~~ 오도 가도 못할 뿐이고~~"
[출입금지 경고판]
'서울백두클럽' 선답자들의 표지리본은 펄럭이는데
앞에는 철조망과 함께 "경고판"이 어름짱을 놓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군 사격장으로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함"
"사격시 피탄(낙탄)으로 인명 피해가 있을 수 있음"
"임의 출입시에는 관련 법령에 의거 처벌함"
"피해 발생에 따른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음"
이런 경고판을 보고도 "나-ㄴ 들어 갔을 뿐이고~~,목숨은 하늘에 맡겼을 뿐이고~~"
세상에 아무리 "명성지맥 종주"도 좋지만, 이런 곳에 함부러 허가도 받지 않고 들어 가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입니까? 이러면 되는것입니까?
간땡이가 부어도 이만 저만이 아니지요? ㅎㅎㅎ
철조망을 넘어 마루금 능선으로 들어 가니 탱크 사격장은 더욱 가깝게 보이며
오늘이 일요일인데도 훈련을 하고 있는 탱크들이 이리떼처럼 어러렁 거리고 있습니다
여느 인터넷에서도 명성지맥의 이 오리지날 루트를 따라 종주 했다는 기록을 못보았습니다
아무리 깡다구가 있는 인간들이라 하더라도, 죽고 싶어 환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명성지맥'을 포기하면 했지 이 탱크 사격장 안으로 들어 가지 않습니다
저의 이 산행기는 무단 출입을 했다는 증거인 동시에 자인서이기도 함으로
군 수사기관에서 처벌을 내릴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산행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ㅎㅎ
포탄이 떨어지는 지점에는 산이 완전히 벗겨져 있습니다.
명성지맥 마루금은 저 사격장 건너편으로 뻗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길 없는 길"을 개척해서 전진해야합니다
헌병들 한테 잡혀 가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혹시 이곳에 불발탄이라도 하나 떨어져 있다면....
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그래도 "나-ㄴ 갈 뿐이고~~" ㅎㅎ
길 없는 길을 헤쳐 나가다
[길 없는 길]
후미 그룹을 30여분이나 기다려 만났습니다
저 보다 못 걷는 거북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거북이들이 있어 저 같은 거북이도 토끼 소리 듣게 해 주기 때문에 믿음직한 거북이들입니다 ㅎㅎ
원래 산악회 회장님이 이곳에서 만나 함께 "길 없는 길"을 가야 한다고 수차에 걸쳐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런 위험한 탱크 사격장 안으로 "길 없는 길"을 혼자서 찾아 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입니다
후미 그룹에는 산악회 회장님이 거북이들을 이끌고 오기 때문에 위안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길 없는 길]
어느 누구도 다닌 흔적이 없는 길을 들어 서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명성산 주능선에서 뻗어 내린 지맥 마루금이 벌써 멀어 지고 있습니다
[명성산 억새 축제장]
지맥 마루금 우측 계곡이 팔각정에서 등선폭포로 내려 가는 "억새 축제장"이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명성산 방문객들은 저곳을 이용하여 명성산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 인간들은 뭣하는 인간들입니까?
저 좋은 길 놔두고 "길 없는 길"을 뚤고 헤치고 나아 가고 있습니다
포탄이 날라 오던 말던 깡다구로 뭉쳐진 아이디 '봉자언니'와 '멍에'님이 포사격장 안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습니다. 연애시절에 애인이랑 왔어야 보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곳이
몰래 놀기는 무지 좋았을 텐데...ㅎㅎㅎ
그래도 "길 없는 길"에서 명성산 억새꽃에 파뭍혀 잠시 상념에 잠기는 것도
소녀 시절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어른 거리게 하겠지요
기다림이란 이름으로
이덕상
나뭇가지로 흔들렸다가
다시
나무로 서있으외다.
꽃잎으로 떨리었다가
다시
꽃으로 앉았으외다.
님이 뿌린 꽃으로 피어나
님이 심은 나무로 자라나
이제사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말함이오.
"기다림이란 이름"의 이덕상 시집 중에서
이덕상 시인은 저의 후배인데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있어 소개해 드렸습니다
[길 없는 길]
위에서 내려다 볼때는 한 봉우리만 넘으면 탱크 사격장을 건너 갈듯 보였는데
실제 와 보니 무척 먼 거리였으며 조그만 봉우리를 몇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월남전 스키부대(?)가 베트콩 수색작전을 펴듯 전진하고 있습니다. ㅎ
"나-ㄴ 불발탄을 만나지 말아야 할 뿐이고~~~"
그래서 솔찍히 저는 일행들의 뒤에서 걸었습니다. 요런 잔머리는 잘 돌아 갑니다.
뒤에 가야만 앞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길을 만들어 주어 걷기에 편하고
더 더욱 중요한 것은 불발탄이 있다면 앞에 가시는 분들이 먼저 밟기 때문에
뒤에 가는 사람이 아무래도 덜 위험하기 때문입니다..ㅎㅎㅎㅎ
[길 없는 길]
아무리 그래도 양심은 쬐끔 남아 있어 뒤에도 몇 사람 두고 중간에서 걸었습니다 ㅎㅎㅎ
뒷 사람들은 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뒤에 오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거북이라서
뒤에 오는 것이니 오해 없기 바람니다. 저 분들은 착한 사람들이에요~~!! ㅎㅎ
[길 없는 길]
이 세상에서 우리 같은 인간들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출입금지 지역에 법을 어기면서 무단 출입하면서
최소한 이렇게 스스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산행기를 쓰는 사람은 제가 처음일것입니다
아무리 명성지맥 종주가 중요하다고 해도 이런 길을 간다는 것은 솔찍히 비정상적 인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산행기 보고 헌병들이 잡으러 오면 할말이 없는데....ㅎㅎㅎ
앞에 있는 가운데 봉우리 뒤로 사격장을 건너야 명성지맥 오리지날 루트인데
가깝게 보이던 것들이 자꾸 더 멀리 보이는건 무슨 연유일까요?
[길 없는 길]
갈대가 앞을 가로 막으며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듯합니다
오늘 금년 들어 처음으로 입고 나온 비싸게 주고 산 "eider" 등산복에 흠집이 많이 생겨
집에 가면 마눌에게 야단 맞을 각오도 했습니다
앞으로 '서울백두클럽' 지맥 종주에 참여 하시는 분들은 비싼 등산복은 집에 두고
싸구려 함부러 입어도 되는 등산복을 입고 나오세요. 본전도 못 뽑아요
[길 없는 길]
사격장 바로 앞 봉우리 밑에서 우리의 등불이요 희망인 회장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GPS도 없고 독도법도 몰라 그저 따라 다녀야 하는데 회장님을 잃어 버렸으니
저같은 수준의 일행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 회장님과 함께 잘 왔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길 없는 길]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탱크부대가 다니는 도로까지 앞장서 나아 갔습니다
[길 없는 길]
무조건 봉우리 위로 올라 갔습니다
사실은 여기서 좌측으로 건너 가야하는데.....회장님은 오리지날 루트를 찾아 가버렸고...
"우리는~ 외롭게 남았을 뿐이고~~ 탱크 사격장 안이었을 뿐이고~~" ㅎㅎ
[길 없는 길]
봉우리에 올라 와 명성산 주능선을 뒤돌아 봤습니다.
어렵사리 길없는 길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등산복 바지 "eider"는 이제 많이 헤어졌습니다. 에구~ 집에 가면 마눌에게 죽엇다.
[길 없는 길]
봉우리에 올라 서니 이제서야 명성지맥 마루금이 정확히 보입니다
마루금은 좌측의 하얀 라인을 따라 사격장을 건너 가 건너편 능선을 타고 내려 가야 합니다
여기서 무척 갈등이 생겼습니다. 회장님이라도 있었으면 어떤 결정을 내렸겠는데
탱크 훈련하는 소리가 어러렁 거리는데 도져히 건너지 못하겠더라고요
당시에는 회장님이 저 오리지날 루트로 갔는지 몰랐으며, 또한 회장님이 저에게 우리는
위험한 오리지날 루트로 가지 않고, 바로 앞 탱크길로 해서 여우봉 헬기장으로 간다는 귀뜸을
사전에 해 주었기에 그래서 건너지 않기로 결정을 하고 우측으로 여우봉을 향했습니다
[길 없는 길]
오른쪽 능선을 타고 무작정 내려 갔습니다
중간 중간 커다란 포탄껍질들이 있었고 돌무덤으로 표시되 있었습니다
무서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 "길 없는 길"을 헤쳐 나아 가는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습니다
[길 없는 길]
길 없는 길을 가다 보니 알바를 많이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하며 탱크 사격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훈련 중인 탱크들(줌인한 사진입니다)
간 떨리게 합니다. 저도 옛날에 해병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만
탱크 앞에서 폼 잡아 봐야 항공모함 앞에서 수영 하는거죠
[길 없는 길]
탱크들이 다니는 도로가 선명합니다
명성지맥 마루금은 앞에 보이는 여러 갈래의 탱크 도로 건너편 능선입니다만
우리는 안쪽 능선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탱크 도로]
탱크 훈련 도로로 내려 왔습니다
32명의 회원중에 아홉명이 후미에서 길을 찾아 '길 없는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탱크 도로]
탱크가 금방 지나갔다는 증거이기도 한 탱크 바퀴 자욱이 선명합니다
이제는 제일 걱정이 군 포사격장을 무단 침입했다고 잡아 갈것같아 마음 졸이며서 나아 갑니다
어디 죽이기야 하겠냐? 라고 위안하면서....ㅎㅎ
[탱크 사격 훈련장]
뒤 돌아 봤습니다
1번과 2번 타겟 사이로 내려 왔습니다.
경고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ㅎㅎ
[탱크 사격 훈련장]
앞에는 탱크들이 어러렁 거리며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명성지맥 마루금을 찾아 가야합니다. 부대 안으로 깡다구도 좋게 들어 갑니다
앞에 보이는 오른쪽 계곡이 "등선폭포"로 내려 가는 계곡입니다.
저 계곡을 따라 내려 가면 산정호수입니다만 우리는 여우봉을 올라야 하기에
사격장 안으로 들어 갑니다
[탱크 사격 훈련장]
탱크 사격 훈련장은 엄청 나게 큼니다
지맥 오리지날 루트는 저 훈련장 끝의 능선을 빙 돌아 와야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판단되어 약식 루트를 따라 갑니다
[사격 지휘 본부]
훈련 중인 군인들에게 길을 물어 군부대로 올라와 내려 보며 몰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밑에 훈련하고 있는 탱크들이 보이시죠?
다행이도 오늘은 사격훈련은 없는 날이라 출입을 방관한다고 하더군요
군인들의 따뜻한 안내를 오히려 받고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오늘 사격훈련을 했다면 우리도 절대 들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진실이도 아닌데 자살할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격 지휘 본부]
사격 지휘 본부에서 바라 보니 우리나라 戰車部隊의 훈련장 모양을 전체적으로 볼수 있군요
가끔 T.V.에서 훈련 장면을 뉴스 시간에 방영해 주는데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곳 사진 찍으면 간첩이나 좌익 빨갱이로 몰려서 절대 사진 촬영은 못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뀐것입니다. 이제 이런 훈련장은 비밀일수 없는 정보화 시대가 되버렸습니다
숨길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더 자랑해야할 군 훈련 시설이라 생각됩니다
[여우봉 무선통신 중계탑]
여우봉을 오르기 시작 합니다. 사격 지휘소 부대 앞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올라 가니
무선통신 중계탑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길을 잘 찾아 갈수 있습니다
"길 없는 길"은 여기까지입니다
[여우봉 무선통신 중계탑]
이 무선통신 중계탑을 찾으면 '여우봉'과 '여우고개'로 가는 길은 쉽습니다
이제 모두 어디론가 제각각 가버리고 4명만이 남아 완주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산행 리더가 없으니 자기 자신만을 믿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산행이 끝나고 "길 없는 길" 구간 때문에 몇 사람들이 회장님을 향해 불평 불만을 표출 하기도 했습니다
"길 없는 길" 안내를 받지 못해서 정상적 산행을 못했다는 불만이겠지요
이것은 집행부의 준비 부족을-집행부라 해 봐야 회장님 한분인데 - 불평 할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번쯤 자신의 산행 중에 아집은 없었는지 뒤돌아 보기도 해야 하기도 할것같군요
단촐한 식구 끼리 오붓이 다니다가 갑자기 많은 회원이 참여하여 산행리더 하기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특히 하필 이렇게 많은 회원이 모였을 때 "길 없는 길"로
산행을 갔는지 참 앞뒤가 이빨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지난 광덕산 구간은 아무리 많은
회원이 와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 하지 않았을 텐데....
'길 없는 길'이었기에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더욱 참여 하지 않았을까라고도 생각 됩니다....
[여우봉 헬기장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전날 명성산 구간을 홀로 답사를 왔었더군요.
이틀 연짱 명성산을 오르기에 아무리 강한 체력을 가졌더라도 무척 힘 들었을 것입니다
회장님도 빨리 하산하여 여러 회원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갖어야하겠다고 생각 했겠으나
특히 거북이 두 사람을 에스코트해서 와야 했으니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회원들이 이번에 참여 함으로 한개라도 더 챙기려고 하루 전날에도
답사를 와서 조금이라도 회원들에게 도움을 드리려 했는데 결국 돌아 오는 것은
불만과 핀잔이 돌아 오니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들은듯했습니다
[여우봉 헬기장]
이번 산행에 많은 회원이 기록적으로 참여해서, 처음에 회장님은 기분이 너무 좋아 '서울백두클럽'의
미래를 그림으로 그리며 벅찬 감동을 감추지 못하는 듯 어떻게던 이 회원분들을 영원한
'서울백두클럽 회원'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저를 비롯해 모두의 눈에도 비쳐졌다고 생각 합니다
회비를 천원씩 걷는다는것은 무었을 의미합니까?
돈 천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던 조그만 끈이라도 이어 연관관계를 만들려는것 아니겠습니까?
에구~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디어 만들어 가며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불평 불만이 나오니
실망이 컸을 것입니다. 에구~ 산다는게 뭔지......
그런데 회장님!!~ 이 정도의 불평 불만을 감싸 주지 못하면 않됩니다
회원수가 많아 지면 많아 질수록 수많은 "입"에서 더 많은 "불만"이 솥아져 나올텐데....
이런 저런 불만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불만도 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만만 하는 사람외에는 또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금처럼 사심없이 열심히 걸어 가시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습니다
[여우봉 헬기장]
이곳 헬기장은 대통령을 비롯한 높은 분들이 많이 찾아 오는 곳이라 그런지
매우 크고 정리 정돈이 잘 되 있었습니다
가운데 지나는 산줄기가 그 유명한 "한북정맥"이며 광덕산에서 뻗어 내린 백운산이
백운계곡을 끼고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뒤로 멀리 용문산과 화악산이 높은 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헬기장에서 여우봉 정상으로 갑니다
헬기장에서 여우봉으로 가는 도중에 우측으로 보이는 명성산의 "책바위"
[여우봉 정상]
3시55분에 여우봉 정상에 섯습니다
용화저수지를 출발한지 6시간 10분이 걸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우봉은 특별한 구경거리가 없었고 전망도 별루였습니다
[여우봉 정상]
'여우봉'은 탱크 사격 훈련장 안에 있는 "안덕재"와 "바깥덕재"라는 고개와도 관련이 있어
이름 지어진 곳이더군요
'덕'은 오징어나 황태를 널어 말리는 덕장의 '덕'이며 '닭장'을 의미하기도 한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까지 이곳 명성산과 안덕재 바깥덕재 사이의 분지인 현재의 포사격훈련장에서
火田을 일구며 살아 가던 우리의 선조들이 닭을 많이 키웠던가 봅니다. 그래서 닭고기를 무지
좋아하는 여우들이 이 봉우리에 많이 모여 살았다고 "여우봉"이라 한다고 하며
여우들이 주로 넘나 들었던 고개를 "여우고개"라고 한다는 군요
'여우고개'로 하산을 시작하는데 산이 그냥 쉽게 보내 주지는 않지요
또 조그만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합니다
"여우고개"는 여우가 넘나 들어 "여우고개'라 합니다만 왕건이 궁예군들의 동태를
여우 같이 감시 했다고 '여우고개'라고도 하는군요
이제 진짜로 '여우고개'로 하산 합니다
먼저 빠른 길로 여우고개에 도착하신 분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 연락을 주었습니다
빨리 오라는 암시이겠죠. ㅎㅎ
[여우 고개]
더디어 '명성지맥2구간"의 종착역 "여우고개"가 보입니다
여우고개는 이동에서 산정호수로 통하는 포장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여우 고개]
"명성지맥2구간"의 날머리 "여우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은 오후 4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용화저수지를 출발한지 정확히 7시간만입니다
'길 없는 길"을 헤치고 나아 가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이고
지난 1구간에 비해선 쉬운 길이었습니다
[여우재]
산정호수에서 이동 넘어 가는 방향, 즉 동쪽 방향입니다.
"명성지맥3구간"은 앞으로 2주후에 다시 이곳에서 오른쪽 "사향산"으로 출발합니다
여우고개는 자등현이나 약사령 처럼 빈약한 고개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우재상회]
가게에 "상회"라는 간판을 붙인것도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아직도 시골 냄새가 나기는 나는데 유흥업소도 있고 교회도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네요
[뒷풀이]
먼저 도착하신 분들이 부지런하게도 음식 준비를 하고 뒷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탱크포사격훈련장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뒷풀이]
구로 디지탈 단지내에서 "참터"라고 하는 유명 맛집을 하시는 사장님 부부가
직접 김치찌개를 요리하여 32명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감사 드리며 계속 수고해 주시면 다리가 아파 산에는 못가도 김치찌개를 먹어러
따라 올것입니다. 또 말로만 감사를 드리게 되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금낭화님이 '참터'에 벙개를 한번 때린다고 했으니 그 때 원수를 갚겠습니다
[뒷풀이]
난~ 이 김치찌개 때문에 또 쇠주 두병을 간단히 해 치웟을 뿐이고,
세그릇을 훌러덩 먹었을 뿐이고~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배가 든든할 뿐이고~~. ㅎㅎ
돌아 오는 버스안은 노래방이었습니다. 피곤해서 주무시는 분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냥 민숭맹숭 갈수는 없지요?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가끔 소리 질러 스트레스도 풀고, 어울리기도 해야 오래 산다구요~
'산산산님'의 분위기 있는 사회로 즐겁게 노래 부르며 서울로 향했습니다
酒流派는 또 "양재지맥"에서 입가심을 하고서야
'명성지맥2구간" 삼부연폭포-용화저수지-약사령능선-명성산-삼각봉-지맥 갈림길 봉우리-
[길 없는 길]-탱크포사격훈련장-무선통신탑-헬기장-여우봉-여우고개 산행을 마쳤습니다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푸른선이 백두클럽 회장님이 정상 루트로 명성지맥2구간을 완주한 괘적이고,
저는 분홍색선 구간으로 '탱크포사격장 안을 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