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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17코스』
 『거제 포로수용소와 석름봉, 칠천량과 맹종죽순길』 


  ['남파랑길 거제구간 종함 안내도']

  ['17코스 국토지리원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17코스>가 확대됩니다★ 
  <님파랑길 17코스>는 '경남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고현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석름봉"을 오르고 <하청면>으로 넘어 가 "칠천도"를 조망하고
  다시 "모리고개"를  넘어며 "맹종죽순체험길"을 걸어 <임진왜란> 때에 승전고를 올렸던
  "장문포 (현 장목항)"으로 가는 약19km 거리를 갑니다.
  


  ['고현사거리']            11:50      
  2022년 9월 14일 수요일 흐린 후 맑음    
  <거제도>의 최고 중심지인 "고현사거리"에서 답사를 시작합니다.
  <6,25 전쟁> 때에 170,000여명이 넘는 포로들을  수용 했던 "거제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인데
  이젠 세계 최고의 선박을 만드는 조선소가 들어 서면서 도시화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군요.
  
  <17코스 출발지점>은 앞에 표기한 <고현버스터미널> 건너편 입니다.



  ['17코스 출발지']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되니다 ★        
  <고현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남파랑길 17코스> 출빌지 안내판에서 출발합니다.
  <윗 사진을 클릭하면 <17코스 안내도>를 자세히 볼수 있으니 참고 하고...
  다시 <고현 사거리>로 돌아 갑니다.
  


  ['신현 제2교']                  
  <고현사거리>에는 <고현천>이 흐르고 있으며, <신현 제2교>와 <신현 제3교>가 설치되 있더군요.
  <신현 제2교>를 건너 <신현 제3교>의 좌측 보행로로 가면....
  


  ['신현 제3교']             11:57           
  <신현 제3교>를 건너게 되는데, 잠시후 오르게 될 "석름봉"이 조망됩니다.
  <6.25 전쟁> 때에 수많은 전쟁포로들을 실어 나르던 "고현포구"를 매립하여 아파트들을 짓고
  보행육교까지 새로 설치했군요.
  계속 직진해 가면....
  
 

  ['신오1교']                12:02               
  <연초천>을 건너는 <신오1교> 입구를 만나는데, 오리지날 남파랑길은 좌측 해안을 따라 
  <신오1교> 밑을 통과하여 우측 <연초천>으로 갑니다만, 현재 공사중으로 갈수 없다고 막아 놨습니다.
  그래서 우측으로 돌아 <연초천>으로 갑니다.



  ['신오1교' 다리 밑]            12:05             
  <연초천>이 <고현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나가는 곳에 설치된 <신오1교> 밑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데크길'을 이용 해야 하는데 여기도 공사 중이어서 진행 할수가 없고




  [공사중-출입금지]           12:05       
  데크길 우측 도로도 봉쇄되 있어 다시 돌아 나갈까? 생각하다가 저 앞에 막아 놓은 철책으로 가서
  철책을 밀어 간신히 통과하고  ㅎ
  



  ['연초천 데크길']           12:08       .
  여기서 부턴 데크길을 이용 할수 있더군요.
  <석름봉 등산로 입구>는 앞에 보이는 <신오교> 좌측에 있었습니다.
  


  ['신오교']            12:12      
  <신오교>를 건너면 "소오비마을" 입구 사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러니까 이 다리 건너편 우측은 "연초면 연사리 烟沙里"였으며
  좌측은 "연초면 오비리 烏飛里"였는데, '까마귀가 많이 날며 서식하는 마을'이었겠고
  앞에 보이는 <소오비마을>은 <오비리> 중에 "작은 오비리 마을"이라 생각 됩니다.
  


  ['연초천 상류' 방향 조망']                
  <신오교>를 건너며 남쪽 "연초천 烟草川"을 조망하고
  


  ['연초천 하류' 방향 조망]                   
  <연초천>의 북쪽 하구를 조망합니다.
  <고현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나가는 곳에 <거제시> 최고 중심지역인 <고현동>이 있으며 
  <삼성중공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멀리 지난 <16코스>에서 넘었던 <망치산>이 조망됩니다.



  ['석름봉' 등산로 입구]              12:14       
  <17코스>는 <석름봉> 등산과 <앵산 임도>를 걷는게 중요 과제더군요.
  바닷가를 걷는 둘레길이 아니라 등산코스를 걷는 <남파랑길>이 앞으로 약3시간 가량 이어 집니다.



  ['석름봉 등산 안내도']            
  <석름봉 등산 안내도>를 잘 기억하고 가면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정자>의 위치와 <체육시설 1-2>의 위치를 알고 가면 산행이 쉽습니다.
  안내도의 <석름봉> 위치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이는데, 두번째 <체육시설>에서 <0.5km > 우측이
  <석름산 정상>이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바닷가에서 갑자기 산으로 오르니 숨가뿝니다.
  20여분 오르면....
    


  ['신우마리나아파트' 갈림길 쉼터]               12:33         
  첫번째 쉼터를 만나는데 '연초면 오비리'에 있는 <신우마리나아파트> 갈림길이었습니다.
  

  

  [오름길]              
  첫번째 쉼터를 지나면 이번 코스에서 가장 가파른 오름길이 12분여 이어 집니다.
  헥헥거리며 올라야 하는데 다행히 거리가 짧아 위안이 되더군요.
  


  [정자 쉼터]             12:43~12:45         
  헥헥거리며 12분여 오르면 정자 쉼터에 오르게 되는데 이곳에선 처음으로 조망이 트입니다.
  여기서 조망을 하고 가야 <17코스>를 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겠더군요.
 


  ['고현' 조망]                  
  먼저 출발지였던 <고현버스터미널> 방향을 조망합니다.
  <거제시청>이 있는 자리는 <고현읍성>이 있던 자리인데, <고현읍성>을 복원해 시청의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지난 <16코스>에서 둘러 봤던 <사등읍성>이 <세종대왕> 시절에 인구 증가로 
  비좁아져서 <고현읍성>을 새로 건설하여 <고현읍성>으로 옮겼답니다.
  그 이후 <6.25 전쟁> 때에는 현재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선 <계룡산> 아래 계곡이
  온통 <포로소용소> 였으니 상전벽해라고 표현 할수도 있겠습니다.
  "계룡산 鷄龍山"에 대해선 지난 산행기에서 언급 했음으로 생략하고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촬영한 <거제포로수용소> 사진을 보여 드립니다.

  ['거제 포로수용소' 일부 사진]     출처: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포로 중에 북한군이 140,000여명, 중공군이 30,000여명이었으며, 여자 포로도 300여명 있었다고.
    
 

  ['삼성중공업' 조선소 조망]       
  북쪽으로는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름길]                  
  정자 쉼터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소오비' 갈림길-체육시설1]         1:00    
  <체육시설1>이 있는 "소오비 갈림길"을 만납니다.
  한자로 "小烏飛"로 쓰니 "까마귀"가 많이 서식하며 날아 다니는 작은 마을이 아닌지 앞에서도 언급했고


  
  [오름길]                  
  <소오비 갈림길>에서 다시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름길을 13분 정도 진행하면....
  

                
  ['연중마을' 갈림길-체육시설 2]            1:13     
  두번째 <체육시설2>가 있는 "연중마을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남파랑길>은 <앵산 방향>으로 진행 합니다.
  

                
  ['석름봉 정상' 갈림길]         1:14    
  이어서 바로 갈림길을 만나는데, 표기 한데로 <석름봉 정상>으로 가는 길과
  <석름봉 정상>을 우회하는 허릿길로 나뉘는 곳인데, <남파랑길>은 좌측 우회길로 진행 하면 됩니다.
  정상을 올라 보고 가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이는데 시간이 없어 좌측길을 이용합니다.
  
  "석름봉 石凜峰 301m"로 지도와 안내도에 위치와 높이가 다르게 표기되 있더군요.
  <국토지리원 지도>에서 찾아 보니 높이는 301m로 표기 되 있고
  이름은 아주 어려운 한자를 사용하는 <돌 석石>자에 <차가울 름凜>자를 사용하는 산이었습니다.
  

                
  ['석름봉 정상' 허리길]          
  <석름봉 정상 우회길>인 허릿길로 편하게 8분 정도 진행하면....



  ['석름봉 정상' 갈림길]             1:22           
  <석름봉 정상>에서 내려 오는 길과 합류하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고...
  

  
  [급경사 내림길]                     
  사진에는 급경사를 느끼기 어렵지만 실제는 매우 가파른 급경사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갑니다.
 


  ['연사동네 체육시설']             1:33       
  그러면 좌우로 임도가 연결되 있는 "연사동네체육시설"이 있는 고개를 만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가면 <연초면 연중리 중촌마을>이라 하고, 우측은 <연초면 연사리 烟沙里>랍니다.



  ['연사동네 체육시설']                
  화장실까지 갖춰진 건강체육시설로 <앵산 등산로>가 직진방향으로 이어지더군요.
  "앵산 鶯山 512.9m"은 <거제도 10대 명산>에 속하는 '꽤꼬리 같은 산'이랍니다.
  


  [임도 삼거리 조망]

  ['임도 삼거리]             1:38    
  <연사동네체육시설>이 있는 고개에서 우측으로 임도가 이어지는데
  가까운 곳에 이정표가 있는 큰 삼거리가 있습니다.
  <남파랑길>은 좌측 <유계마을> 방향으로 진행 합니다.
 

  
  [임도]                 
  지금부터 구경거리도 없는 지루한 임도를 1시간반 정도 걸어야 하더군요.

 

  ['벽계수' 조망]        

  ['벽계수']            2:00~2:15   
  <연사동네체육공원>에서 25분 정도 임도를 진행하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벽계수를 만납니다.
  제가 <벽계수>라고 하니까 <황진이>가 쓴 시조에 나오는 단어를 먼저 떠 올리겠지만
  <벽계수 碧溪水>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일반명사로 '푸르고 맑은 계곡물'이라는 뜻이죠.
  여기서 시원하게 세수를 하고....

 

  ['연초면사무소' 갈림길]            2:24       
  계속해서 임도를 진행합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연초면사무소>로 이어지는 등산로 갈림길을 지나고
 
 
  
  [임도]                  
  8분 정도 더 임도를 진행하면....
  
 

  ['조망처 1']          2:32       
  시야가 트이는 곳을 만나는데, 
  모르면 그냥 지나 치는 곳이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기억 해 뒀다가 꼭 조망을 하고 가세요~~
  여기서 우측을 바라 보면...



  ['대금산' 조망]           
  바로 아래에 <연초면 다공리 茶貢里>가 조망되고
  좌측 멀리 다음 <18코스>에서 오르며 지나게 될 "대금산 大錦山 438.6m"이 조망되며
  "강망산 江望山 374.3m"도 보이는데 다다음 <19코스>에서 정상은 오르지 않지만
  <강망산 봉수대> 까지는 오르게 되는 산인데 아래 바닷가에 "김영삼전대통령 생가"가 있죠.
  


  [삼거리]             2:39    
  이어서 알바하기 쉬운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진행하여
  5분 정도 진행하면....



  [조망처 2']              2:44       
  두번째 시야가 트이는 최고의 "17코스 조망처"를 만납니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의 현장을 조망 할수 있는 곳이니 무척 중요한 조망처라고 생각됩니다.
  우측 북쪽을 바라보면...
  


  ['칠천도' 조망]         
  쨘~~~
  바로 아래에 보이는 <유계마을>로 <남파랑길>은 이어 집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칠천량해전"의 현장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집니다.
  "칠천도 七川島"는 <거제도>에 속하는 섬으로는 가장 큰 섬이라죠.
  원래 이름은 <漆川島>로 "옷나무"가 많고 조그만 섬에 계곡개천이 일곱개나 있어서 랍니다.
  
  가장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곳은 "칠천량 해전"의 위치 입니다.
  기록에는 "칠천량의 외줄포"로 나와 있지만 <외줄포>의 현 위치는 정확히 모른다고 합니다만
  현재 "칠천량해전공원""씨릉섬"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게 정설이랍니다.
  
  <도원수 권율>에게 빠따까지 맞으며 어쩔수 없이 출전한 "원균 장군"이
  쪽바리들의 본거지인 '부산진'으로 뛰어 들었다가 쪽바리들의 엄청난 저항을 받아 퇴각해서
  1597년 7월 16일 그 날 밤 머문 곳이 바로 <칠천량 외줄포>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에게 당하기만 했던 쪽바리들이 이번엔 엄청난 전투준비를 하고 재침하며
  새벽 4시경 육지와 바다를 통해 동시에 공격 함으로서 <조선 수군>은 대참패를 하게 되는데 
  이 전투를 우리는 "칠천량 해전"이라고 부름니다만......
  전쟁은 서로 맞부디쳐 싸우는게 전쟁인데 이건 일방적으로 당한 피습이어서 <해전>이라고 할수도 없죠.
  <이순신과 원균>에 관한 <파란문>의 개인 생각이 잠시 후 이어집니다.



  ['진해' 조망]                   
  우측을 바라보면 지난 <남파랑길 7~8코스>에서 지났던 "진해구간"이 조망됩니다.
  <'STX조선소'>...그리고 <가야의 왕후 허황옥>의 일곱 아들과 모정이 서려있는 <불모산 佛母山>
  해병대들에겐 <눈물고개>로 불리워진 <안민고개>, 그리고 <마산>으로 넘어 가는 길목의 
  <장복산 長福山>이 <칠천량>과 이렇게 가까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위 두장의 사진을 이번 <17코스>의 최고의 사진으로 꼽겠습니다.
  

  
  [임도]                 
  임진왜란 와중에 바다에선 선전했습니다만, 육지에선 쪽바리들의 위세는 더욱 강해져 
  우리나라 강토를 완전 점령하여 한양으로 치고 올라가니....
  비겁한 왕 '宣祖'는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북으로 북으로 몽진길에 오릅니다. 저만 살겠다고....
  아들 "광해군"에게 분임조라는 왕권행사를 일부 때어주며 나가 싸우라고 하고 저는 도망간거죠.
  <경복궁>을 불태운 집단이 쪽바리라고 알고 있지는 않나요?
  백성을 버리고 홀로 도망간 <선조>에 대한 반감으로 우리 백성들이 불지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기적인 '宣祖'는 "이순신 장군"에게 쪽바리들의 핵심 거처인 "부산진"을 치라고
  어명을 내립니다. "X도 모르는 놈이 탱자 보고 부랄~ 부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宣祖'에게 요즘 유행어로 하자면 "휘발유통을 메고 불속에 뛰어 드는 꼴"이라고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조선 水軍전체가 몰살 당한다고....
  소인배 '宣祖'는 노발대발 "어명을 어겨? 이 쌔끼! 사형 시켜!!"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순신장군"은 '삼도수군절도사'에서 졸지에 계급장 떼게 되고
  체포되어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며 사형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의 후임으로 "원균장군"에게 다시 휘발유통을 짊어 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졸지에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 자리에 앉혀진 "원균장군"도 현지에 내려가 상황을 살펴 보니
  '이순신'이 왜? 어명을 어겼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진' 침공을 이 핑개 저 핑개로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원균장군"을 천거한 사람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권율 도원수"였는데
  자기가 천거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장군'이 출전을 하지 않고  어명을 어기고 있으니 난감했겠죠.
  그래서 "원균장군"을 불러 가두고 태형을 가합니다. 곤장을 치는 것이었죠. 요즈말로 "빠따"
  물론 '宣祖'의 암묵적 지시가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삼도수군절도사'를 '도원수'가 어떻게 매질을 해? 에휴~
  그리하여 "원균장군"은 어쩔수 없이 휘발유통을 메고 '부산진' 불속으로 뛰어 들어 
  조선수군 모두와 자신이 함께 활활 산화해 갔던 것입니다. 그것을 '칠천량해전'이라고 하죠.

  '宣祖' 이 졸열한 왕은 어쩔수 없이 사형 시키려했던 감옥에 있는 "이순신장군"을 
  다시 '삼도수군절도사'에 앉히며 휘발유통을 메어 줍니다. 너덜너덜 걸레가 된 조선 수군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이순신장군"은 마지막 海戰인 '노랑해전'에서 도망가는 쪽바리들을 죽여버리고 
  스스로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며 역사 속에서 사라 집니다.
  
  전쟁이 끝나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순신장군'은 살아서 가도 "선조"에 의해 어명을 어긴 것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차라리 사라지겠다고 결심한것으로 저에겐 그렇게 보입니다.
  저는 그때 <이순신장군>은 죽지 않고 죽은 것으로 알리바이를 만들어 조용히 사라 진 것이라고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믿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원균장군"과 "이순신장군"
  그리고 "宣祖"....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적인가!!~~??
  어명을 어기고 차라리 감옥행을 택하며 생명을 부지한 <이순신>이 충신인가
  어명을 받들어 나가 싸우다 죽은 <원균>이 역적인가
  과연 누가 역사 속의 인물인가?
  저는 이 두사람에  대한 평가 보다는 "선조"를 평가 해야 한다고 고래고래 외치는 것입니다.
  
  왕은 자기 꼴리는대로 놀고 지랄해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전투에 대해선 X도 모르는 놈이 자기 꼴리는대로 이래라~ 저래라 할수 있는가~
  원인과 결과에 모든 책임이 있는 쪼다리 왕 "선조"가 사형 당해야 하지 않나요?
  <이순신>과 <원균>은 무슨 죄가 있어 "선조"에게서 고난을 받아야 했나요.
  오로지 "선조"의 부하였다는 것 이외엔 아무른 연관성이 없지 않나요.
  정치 권력을 쥔 저급한 놈들의 무능과 오만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치가 떨리지 않나요?.........

               

  ['대성사']             3:03         
  각설하고 조망처에서 조망을 하고 20여분 임도를 내려 가면
  "대성사"라는 절을 지나고



  [죽림 통과]                
  이어서 대나무 숲을 잠시 지나면...



  ['하청면 유계리']            3:05       
  "거제시 하청면 유계리"가 펼쳐 집니다.






  ['유계리 마을' 통과}             
  "유계리 柳溪里" 마을을 30여분 걸려 통과 합니다.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라고 <柳溪里>라고 한다는데 버드나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하해안로']             3:33    
  <유계리 마을>을 벗어 나면 <연하해안로>라는 차로를 만나 진행하고
  


  ['하청야구장']           3:36    
  이어서 "하청야구장"을 만나는데
  이곳에서는 <칠천도>가 가장 가까이 보였습니다.
  
 

  ['칠천도' 조망]                 
  사진의 한계 때문에 멀리 보이지만 실제는 무척 가까웠습니다.
  약간 줌인 해 보면....
  


  ['칠천량해전공원' 줌인]          
  먼저 "씨릉섬""칠천량해전공원"을 바라 봅니다.
  <씨릉섬>과 <칠천량해전공원> 사이가 <외줄포>였다고 하며 <원균장군>의 조선 함대가
  처참하게 피습 당한 현장이라고 앞에서도 언급했죠. 400여년이 지난 현재의 감상은 어떠 한가요.

 

  ['칠천교' 줌인]                     
  <칠천연육교>가 건설되면서 <칠천도>는 이젠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네요.
  바다 위에 설치된 태양광전지판이 새롭습니다.

 

  ['하청야구장' 정문 앞]             3:41      
  <하청야구장> 정문 앞을 지납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겨울 캠프로 활용 된다고 하는데 
  지난 해엔 <한화야구단>이 겨울 캠프로 이용했다고



  ['하청부두']                   
  야구장 앞에는 "하청 부두"가 있고



  ['하청부두' 앞 음식점들]            3:42             
  이어서 <하청부두> 앞 음식점 거리가 있는데 식사 할만한 곳은 글쎄...



  ['ing25편의점']              3:42~4:03       
  조금 지나면 <'ing24편의점'>이 있어 바나나우유에 산악회가 나눠 준 떡으로 점심을 때우고
 


  ['하청스포츠타운' 조망]            4:04       
  편의점을 지나면 "하청 스포츠타운"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 앞으로 갑니다.



  ['신동버스정류장' 앞 삼거리]

  ['하청스포츠타운' 방향]            4:07        
  <신동버스정류장>앞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면...
  


  ['하청스포츠타운']           
  <하청 스포츠타운>을 지나고
 


  ['축구공''야구공' 화장실]                    
  주차장엔 <축구공 모양><야구공 모양> 화장실이 있더군요.
  


  ['모리고개' 조망]            4:17     
  조금 진행하면 <남파랑길>은 도로를 버리고 우측 <사환마을>로 안내되는데
  잠시후 넘어야 할 <모리고개>가 조망됩니다.

 

  ['사환천']                4:21         
  농로를 4분여 진행하면 <사환천>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사환마을' 안내석]           4:21     
  이어서 <5번국도>를 다시 만나는데 <사환마을> 안내석이 있습니다.
  이 길로 들어 가면 지름길이지만 좌측으로 빙~둘러 가라고 합니다.
 
 

  [데크길]                      
  지름길 두고 뺑뺑이를 돌리는 이유는 이 데크길과 <사환마을회관>을 보고 가라고 하는듯....



  ['모리고개' 입구]               4:25   
  <사환마을회관>을 지나면 <남파랑길>은 우측 <맹종죽순체험길>로 안내되고
    


  ['사환마을' 통과]

  [화분]                         
  마을을 통과하는데 '옹기'가 많이 있어 옹기가마가 있는 줄 알았는데 '화원'의 화분들이더군요.
  



  [고갯길]                    
  완만한 고갯길을 잠시 오르면



  ['모리고개']               4:38       
  "모리고개"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사거리인데 <남파랑길>은 직진합니다.



  ['맹종죽순체험길' 안내도]          ★ 클릭하면 확대 됨니다 ★  
  <모리고개>는 "맹종죽순체험길"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하더군요.
  윗 안내도를 클릭하면 죽순체험길을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내림길]                    
  "맹종죽순"은 대나무 중에 제일 굵은 대나무의 죽순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왕죽"이라고도 하지요.
  <맹종 孟宗>은 사람 이름으로 중국 삼국시대 이전 <노나라>의 재상이었는데 
  <맹자>의 18대 손이라고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에 <맹종>의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자 <왕죽죽순>이 병환에 좋다고 해서
  구하려고 했으나 추운 겨울에 죽순을 구할수 없었지만, 하늘도 효심을 알아 주었는지
  눈 속에 솟아 난 죽순을 채취하여 어머니를 살렸다는 일화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옥천사']            4:45     
  <모리고개>를 내려 가면 <옥천사>라는 작은 절을 지나고
  


  ['닭장']                   
  길가에 닭장이 눈길을 끌었는데 오랜만에 닭장 구경하는데 장닭이 우렁찬 울음 소리를 내더군요.
 


  ['실전마을 회관']             4:51       
  이어서 "실전마을회관"을 지나 갑니다.
  예전엔 이 마을에서 목화와 대마를 많이 재배해서 '실'을 많이 만들었다고...
  '실 만드는 밭'이라는 이름에서 <실전>이 유래했는데 현재는 <實田>으로 쓴다고 합니다.




  ['실전 버스정류장']            4:53~4:58        
  <실전마을회관>을 지나면 다시 <5번국도(거제북로)>를 만나는데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종점인 <장목파출소>까지 3.3km 남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부턴 볼거리도 없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2.5km를 이동하여....
  


  ['장서 버스정류장']           5:06     
  <장서 버스정류장>에 내려 다시 걷습니다.
  잠시 진행하면....
 


  [오리지날 코스 합류]             5:09       
  오리지날 남파랑길을 다시 만나고
  


  ['장동삼거리']           5:11      
  <장동삼거리>를 지나면...

 

  ['장목파출소' 앞 삼거리]            5:12             
  "장목파출소" 앞 삼거리에 도착하여 답사를 마칩니다.

 

  ['장목파출소']            5:13    
  <17코스~18코스 시종점 안내판>은 <장목파출소> 옆에 있습니다. 
 
 

  ['장목 회 센타']                      
  파출소 뒤로 나가면 <장목 회센타>가 있는데, 이곳에 <저도 관광유람선>의 선착장도 있더군요.
  <박정희 전대통령> 여름 휴가지가 있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함께 
  "저도의 추억"이라는 사진으로 더욱 유명해진 <저도>를 가려면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야 겠군요.



  ['장목항']                  
  "장문포해전 長門浦海戰"
  현재의 <장목항>이 예전엔 <장문포>였답니다. <목덜미 項>이나 <문 門>이나 그게 그거지만....
  
  1594년 10월 1일
  <이순신장군>의 함대가 <장문포>에 주둔하고 있던 쪽바리들을 쳐부수러 갔지만
  바다에서는 약하지만 육지에선 강한 쪽바리들이 좌우 육지에서 저항하니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퇴각하고, 이틀 후 육군과 공조하여 쳐부순 전투가 <장문포전투>람니다.
  
  <이순신장군>과 <원균장군>, 그리고 <선조>에 대한 <파란문>의 개인 생각을 알리며 답사기를 마칩니다.  
  우리는 왜 "이순신장군"을 민족의 영웅으로 생각할까?
  "세종대왕"을 기리는 거리가 "세종로"이고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기리는 거리는 "충무로"인데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세종대왕"이 있던 "세종로"엔 "세종대왕 동상"이 없어지고
  그 자리엔 정치군인들이 멘토로 만든 "이순신 장군 동상"이 소환되어 홀로 서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두분이 다 "세종로"에 서 있지만....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 이후 200여년간 입에도 뻥끗 못하는 어명을 거역한 역적이었는데....

  "이순신장군의 허상"이라는 책을 펴낸 분이 있더군요.
  다름아닌 '해군사관학교' 교수부장을 지낸 "임원빈교수"가 연구 결과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책이었는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읽어 아는 그런 "이순신 장군"은 많은 부분이 
  "가짜 이순신"이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는데.....특별히 기억 나는 글귀는
  "오늘날 충무공은 무협지 주인공처럼 초인적 역량을 지닌 인물로 각인됐다"
  "허상을 걷어낸 '정론(正論) 이순신'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순신장군"에 대해 "뻥튀기가 너무 많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파란문' 생각은
  그런 "뻥튀기 된 영웅"을 백성들은 오히려 더 갈망하는듯 하지 않습니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그런 "뻥튀기 된 영웅"이 다시 나타나 허우적대는 수렁에서 자기들을 
  건저주기를 더욱 학수고대하는게 아닌가? 라고도 생각됩니다.
  "이순신장군"의 실상보다는 전지전능한 허상을 더욱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건 아닌지
  <파란문>은 생각해 봅니다.
  요즘같은 우려스런 남북관계, 치열한 세계질서 속에선 더욱 현명한 정치지도자를 기대하듯...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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