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회룡사-석굴암" 답사기
회룡역-태조 태종 상봉지-회룡탐방센타-회룡사-석굴암-회룡역
'왕의 귀환'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집념의 기도
'함흥차사'와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과의 재상봉 - "龍의 回歸"
그리고 '상해임시정부'의 "백범 김구선생"의 흔적을 찾아
['지형도']
[구글어스]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 있는 "회룡역"에서 "회룡사-석굴암"을 다녀 오는 "6.7km" 코스입니다.
['회룡역'] 11:15
2018년 6월 9일 (토) 맑음
'의정부시'에 있는 "회룡역 回龍驛"에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이 역은 [의정부경전철]과 환승할수 있는 역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의정부경전철]은 적자 누적으로 사업자가 부도를 내고 파산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잘 운행된다네요.
뉴스를 검색해 보니 요즘 [의정부경전철]은 하루 5만명 이상이 이용하며 지난해와 비교해 엄청 활성화 되어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으로 제몫을 하고 있어 새로운 사업자를 물색하고 있다네요.
5만명이 경전철을 이용하면 3만4000㎏의 CO₂와 1600㎏의 CO₂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가 있다는군요.
['회룡역' 앞]
[회룡역3번출입구] 앞으로는 "의정부시 호원동"이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잠시후 다시 언급하겠지만,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와 아들 "태종 이방원"이와 재상봉하고
이곳에서 '의정부' 3정승들과 정사를 논했다고 하여 『전좌 展座』마을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현재의 「의정부시」라는 지명이 실제로 탄생된 진원지라고 합니다.
['호원동 사거리'] 11:19
[회룡역 3번출입구]에서 200m쯤 직진하면 첫번째 사거리를 만나는데
정면에는 "회룡사"의 뒷산인 "범골능선의 392m봉"이 조망됩니다.
[회룡사]로 가는 길은 여기서 길을 건너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한블록을 진행합니다.
['회룡사입구 사거리'] 11:22
이어서 [회룡사입구사거리]를 만나는데, 꼭~ 보고 가야하는 안내석이 우측 길가에 있는데
바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의 상봉지" 안내석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현재의 "의정부시"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하니 매우 의미있는 곳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태조-태종 상봉지' 안내문]
윗 사진의 안내석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아버지가 목숨걸고 건국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권력을 쥐기 위해 형제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극악무도한 인간 '이방원'...
그런 배은망덕한 불효자 아들을 인정하지 않고 죽여버리려한 아버지 '이성계'의 분노...
이미 실권을 장악한 아들 '이방원'이가 하는 꼴을 차마 눈 뜨고 볼수 없어 고향인 '함흥'으로의 귀향.
그리고 '함흥차사'...
마지막 '함흥차사'였던 "무학대사"의 설득이 귓가에 아른거립니다.
"방원이 진실로 죄가 있으나 사랑하는 아들들은 모두 죽고 오로지 방원만이 남았습니다.
만약 이마저 끊어버리면 평생 애써 이룬 왕업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남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혈족에게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닙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무학 無學"의 설득에 넘어 가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
그리하여 '한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선 아버지 '이성계'.
극악무도한 불효를 저지른 아들 '이방원'이 아버지를 환영하며 마중 나온곳이 바로 이곳이었답니다.
아무리 그렇다쳐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치까 떨려 아들 '이방원'이를 죽여버리고 싶었던 아버지 '이성계'.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로 '神弓'이라는 칭호를 가진 아버지 '이성계'가 아들 '이방원'이를 만나자마자
그를 향해 "분노의 화살"을 날린곳도 이곳.
아버지와 아들의 상봉은 이렇게 "분노의 화살"로 시작되었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상봉은 실질적으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버지는 이 근처에 머무르며
'의정부 3정승'들의 政事에 대한 결재를 하며 태상왕권을 행사하여 실질적인 "議政府"가 되었다고
현재의 "議政府市"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는 유래가 되었다는 곳도 이곳.
['회룡탐방센타' 가는 길]
"태조 이성계"가 머무르며 정사를 보았다고 이 지역을 "전좌마을 展座마을"이라고 했답니다.
실질적인 궁전이 자리한 마을이라는 의미이죠.
"龍의 回歸"를 의미하는 "回龍寺"로 가는 길입니다.
'호원동' 마을을 7분여 통과하면...
['회화나무'] 11:30
보호수로 지정되 관리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를 만나며 [북한산둘레길]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만납니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槐木"이라고 쓰죠. 느티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충북 괴산군'에는 산에 '회화나무'가 많다고 "槐山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槐"를 파자해 보면 "나무 木"에 "귀신 鬼"가 붙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귀신이 붙어있는 나무여서 마을의 안녕을 지켜 준다고 마을 어귀에는 "회화나무 槐木"이 주로 서 있지요.
"回龍寺"로 올라가는 어귀에 서있는 "회화나무"가 새롭습니다.
['회룡탐방지원센타'] 11:33
'호원동' 마을을 벗어 나면 "북한산국립공원 회룡탐방지원센타"가 산객들을 맞아 줍니다.
[북한산국립공원]에는 山이라는 칭호가 붙은 산이 셋 있는데, [북한산-도봉산-사패산]입니다.
그러니끼 [북한산국립공원]은 [북한산-도봉산-사패산]으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이지요.
위에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그리고 [북한산둘레길]의 한 구간인 [안골길]과 [보루길]의 시종점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회룡계곡길']
탐방지원센타를 지나면 "회룡계곡"이 이어지며
['북한산둘레길 보루길' 입구] 11:37
이어서 [북한산둘레길-보루길] 입구를 지나 갑니다.
[북한산둘레길]을 다녀 간지가 벌써 8여년이나 되었군요. 세월 빠름니다.
조만간 한번 더 다녀 갈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
[삼거리] 11:41
[북한산둘레길-보루길] 입구에서 2~300m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우측으로 가면 "석굴암"으로 가고, 좌측길은 "사패능선-회룡사" 간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룡사]에 갔다가 [석굴암]으로 가려면 [회룡사]에서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 우측 [석굴암]으로
가야 한다고 선답자들의 답사기에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제법 먼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데...
저는 먼저 좌측 [회룡사]로 올라 갑니다.
['회룡폭포'] 11:45
계곡 중간 중간엔 자그마한 폭포들이 몇개 있는데 어느 폭포가 "회룡폭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략 이 폭포가 지도에 나와 있는 "회룡폭포"가 아닐지 추정하며 조금 더 올라 가면...
['회룡사' 입구] 11:48~12:34
[사패산 계곡등산로]와 [회룡사]가 헤어지는 곳을 만나는데...
[사패산 계곡등산로]는 직진하여 올라 가고 [회룡사] 정문은 우측 다리이더군요.
['회룡사' 정문]
"대한불교 조계종 회룡사"
일주문이 없는 다리 정문으로 들어 가면...
['회룡사']
"회룡사 回龍寺"는 제법 규모가 있으면서도 아담하고 이쁘게 단장되 있었습니다.
"龍의 回歸"라는 의미의 "回龍寺"여서 강건한 의미의 "비구" 절간인줄 알았더니
女僧들이 수도하며 살아가는 "비구니 절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아름답고 깨끗하게 단장되 있는듯...
['회룡사 연혁']
[회룡사 연혁]을 제가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회룡사]는 신라시대 "의상"이 개산한 절로 이름이 "법성사 法性寺"였는데...
고려 말에 "무학대사"가 중창을 하여 "이성계"와 함께 新王祖 창업을 위한 기도를 3년간 하여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올라 "回龍寺"라고 했다는 설과...
'함흥'에 가 있던 "태조 이성계"가 아들 "태종 이방원'이의 간절한 歸京 요청으로 '함흥'에서 돌아와
"무학대사"를 찾은 곳이어서 "회란용가 回鸞龍駕"라고 "무학대사"가 기뻐하여 "回龍寺"라고 했다고...
연혁안내문의 내용은 제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는 전후설정과 주체가 약간 다르군요.
제가 알기로는 "무학대사"가 "삼봉 정도전"과의 '유교-불교 싸움'에서 지고 '이성계' 마저 '함흥'으로
귀향하자, 이곳으로 들어와 숨어 수도하였다고 하는게 믿을만 하다고 생각되며...
또한 '이성계'가 아들 '이방원'의 간청으로 '함흥'에서 돌아 올때 이곳 '의정부'에 오래 머문 이유는
'한양'으로 가기 싫어서기도 했지만 "무학대사"가 "회룡사"에 있어서라고 하는게 더 앞뒤가 맞을듯...
그리고 1630년 (인조때)에 "비구니 예순"이 중건한 이후 "비구니 절"로 이어져 온다고...
['범종각']
['관세음보살']
['대웅전' '삼성각' '극락보전']
여느 절간과 별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는 절이었습니다.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절간이어서인지 깨끗하게 단장되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생각됩니다.
"비구니"는 女僧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 語'이죠.
['삼성각'에서 조망]
'삼성각'에서 [회룡사] 내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다시 정문으로 내려 갑니다.
['회룡사'에서 '석굴암' 가는 길] 12:34
다리 정문에는 [회룡사 연혁 안내판]이 크게 세워져 있습니다.
앞 계단에 제 배낭이 보이죠? ㅎ
[회룡사]에서 [석굴암]으로 가는 샛길이 분명 있을텐데 둘러 보아도 그런 길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빵을 먹고 있는데...
우측 "부도탑"이 있는 곳에서 여승 두분이 내려 오는게 아니겠습니까?
우측 "부도탑"으로 연결된 계단은 철문으로 잠겨 있고 사람들의 통행흔적이 거의 없었습니다만...
"이제 알았다 ! ~"
집에서 모든 선답자들의 답사기를 웹써핑 해봤지만 [회룡사]에서 [석굴암]으로 바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 주는 답사기는 없었습니다. 모두 조금전 삼거리로 내려가 돌아 가는 길만 있다고 쓰여 있더군요.
스님들만 오르내리는 지름길이 분명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에 아무도 모르게 우측 철문 옆으로 "부도탑"으로 올라 갔습니다.
[부도] 12:35
"부도탑"으로 올라 가니 길은 없어 보였는데...
앞의 철조망 울타리로 가보니
[철조망 울타리]
쨘 ~~ 울타리를 따라 선명한 길이 열렸습니다.
조금전 여승들이 통과했을 그 길이 틀림없다고 느끼고 20m쯤 올라가보니...
[개구멍] 12:36
철조망 울타리에 개구멍이 뚤려 있었습니다. 햐 ~
기어서 철조망을 통과해 20m 쯤 나아가니...
[등산로] 12:37
나무가지로 길을 막은 능선길을 만나는데 일반등산로를 만나는 것이였습니다.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철조망 울타리]
[회룡사]가 보이며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잠시 50m 쯤 올라 갑니다.
[포장도로 만남] 12:39
그러면 [석굴암]으로 올라 가는 포장도로를 만나며...
조금 올라 가면
['석굴암' 입구] 12:42~12:57
"석굴암 石窟庵"을 [회룡사]에서 지름길을 이용하여 쉽게 찾아 왔습니다.
저의 이 글이 인터넷에 올려지면 이 길이 앞으로 온전 할지 모르겠습니다. ㅎ
그래서 이 길을 알릴지 말지를 두고 고민을 했습니다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회룡사]에서 이 길을 정상적 길로 개방하는게 [회룡사]에 큰 피해를 줄걸로 예상되지는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회룡사]와 [석굴암]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도움이 될거라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알리기로 하였는데 오로지 제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것도 첨언합니다.
앞으로 [회룡사]가 철조망 울타리를 개방 할것인지, 오히려 철조망 울타리 개구멍을 철벽 봉쇄할지는
[회룡사]가 판단할 몫입니다.
스님들만 다니지 마시고 많은 후답자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개방해 주시길 바람니다. ㅎ
['불이문']
"석굴암의 정문 - 불이문 不二門"입니다.
암자의 정문으로는 독특한 정문이죠? ㅎ
정문 바위에는 요즘 사고로는 자연홰손인 글자를 새겨 놨는데...
"서울 중구 예관동'에 산다는 "수암 김창진"이라는 사람이
[不二門 祝福記念]과 가족 이름을 새겨 놨는데...축복 받을 일인지 저주 받을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석굴암' 앞마당]
[不二門]을 통과하면 [석굴암] 앞마당이 아담하게 펼쳐지며
정면 큰 바위 아래엔 우물이 있더군요.
이런 山寺에 거주하기 위해선 우물이 필수이죠.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우물이더군요.
정면에 보이는 산은 [범골능선]에 있는 [392m봉]
['석굴암'과 '산신각' 조망]
쨔~ㄴ ~~ 오늘 답사의 하일라이트인 "석굴암"입니다. 뒤에는 "산신각"이 있습니다.
'경주 불국사'에만 "석굴암"이 있는게 아니죠. "석굴암"이라는 이름은 전국에 산재해 있습니다.
이곳 [북한산국립공원]에만도 세군데나 있지요.
이곳 "석굴암"은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등극하기전 고려 말에 "무학대사"와 함께 [회룡사]를 찾아와
"태조 이성계"는 이곳 "석굴암"에서 조선건국을 기원하며 3년 동안이나 기도를 올렸다고 하며
"무학대사"는 근처 '무학굴'이라는 곳에서 기도를 했다네요.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에 이 근처 "도봉산 우이암" 아래에 있는 "원통사"에서도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마치던 어느날 "天上의 相公[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 후 그는 실제 조선왕조의 太祖가 되지요?
그래서 "원통사 藥師殿" 앞 바위에 "相公岩"이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하는데 현재도 있습니다.
이렇듯 "이성계"는 기돗빨이 좋다는 전국의 절간을 찾아 왕국건설을 기원하는 기도를 많이 했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곳 중에 한곳인 "남해의 보리암"도 있지요.
['석굴암' 내부]
"석굴암" 내부의 모습입니다.
세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굴이어서 우측엔 창문이 있어 햇빛이 들어 오는게 특징이라면 특징이군요.
['석굴암 암각문']
[암각문 안내문]
석굴암에서 나와 방향을 약간 바꿔 바라보니 세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고
"백범 김구선생 白凡 金九先生"의 필적암각문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김구선생"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일제침략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내며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후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여 통일민족국가건설운동을 전개한 반외세 민족주의자라고만
알고 있지 않나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 중에 이곳과 관계있는 이야기 하나 알려 드리면...
"백범 김구선생"은 일본놈 중위 쓰치다[土田壤亮] 를 때려 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수감중에
탈옥을 하여 여러 山寺에 은신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가 되어 주지스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도 선생이 도망다니던 곳 중에 한곳이었으며, 나중 해방되어 '상해'에서 돌아 왔을 때
산수 좋고 추억 어린 이곳을 자주 찾아 왔었는데, 1948년 가을에 찾아 왔을 때엔 이 지역 언론인들에게
바위에 새겨져 있는 "石窟庵, 佛, 戊子仲秋遊此 金九"라는 친필을 써 주었는데
이듬해인 1949년 봄에 '남상도씨'등이 3개월에 걸쳐 조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각을 완료하고 선생을 초대해 명문제막식을 열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날-1949년 6월 26일
선생의 집무실인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安斗熙)'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했지요.
민족의 지도자 한분이 사라지고 조국을 위해 싸움 한번 한적없는 미군정의 앞잡이인 '이승만'에게 나라를
넘기며 기나긴 분단의 아픔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유당'의 시대로 이어져 갔습죠.
이때부터 정권에 비판적인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갔죠.
['극락전']
조금 더 전체적 구경을 위해 "극락전"으로 올라 가서
['극락전'에서 '물이문' 조망]
[不二門]과 앞마당을 조망하는데 기도하거나 은신하기에 좋은 장소로 느껴집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약간 돌리면...
['극락전'에서 '산신각' 조망]
[산신각]이 보이고 [석굴암] 상단 바위가 보입니다.
[산신각]으로 올라 가면...
['산신각'과 '석굴암' 바위]
[석굴암] 상단 바위가 보여서 바위로 올라 가면...
['원도봉'과 '포대능선' 조망]
정면으로 "원도봉"과 "포대능선"이 조망되고...
['불이문' 조망]
아래엔 [不二門]이 새로운 각도로 보입니다.
['산신각'과 '극락전' 조망]
바위 위에서 [산신각]과 [극락전]을 조망하고
[산신각]으로 다시 내려 가면...
['범공능선 등산로']
[석굴암]에서 "범골능선"으로 가는 등산로를 찾을려고 집에서부터 조사를 했는데
알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석굴암]에서도 여기저기 찾아 봤는데 이곳에서 찾았습니다. ㅎ
등산로는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산신각] 옆으로 희미하게 나 있었습니다.
이 등산로도 인터넷에 최초로 알려지는 것일 겁니다.
조만간 이 길로 [범골능선]으로 올라 [사패산]으로 갈 예정입니다.
['불이문' 통과] 12:57
[석굴암]을 둘러보고 [불이문]을 통과해 나가면 정면으로 "수락산"이 조망되고
['회룡사' 가는 길] 1:00
잠시 내려 가면 조금전에 올라 왔던 [회룡사] 지름길을 다시 만납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 가도 되지만, 포장도로는 꼬불꼬불하고 경사도가 높을듯해서
등산로 능선을 이용하기로 하고 [회룡사] 지름길로 들어 갔습니다.
['회룡사' 뒷길]
[회룡사] 철조망 울타리를 잠시 지나면...
['회룡사' 갈림길] 1:02
[회룡사]로 들어 가는 갈림길을 다시 만나는데 이번에는 직진합니다.
[등산로]
능선 등산로를 조금 더 진행하면...
[포장도로 만남] 1:08
[석굴암]으로 연결되는 포장도로를 다시 만나고
조금 더 내려 가면...
[삼거리] 1:09
[회룡사]와 [석굴암]이 나뉘는 삼거리에 다시 왔습니다.
[회룡사]와 [석굴암]을 한꺼번에 답사하려면, 앞에서 알려드린 지름길을 이용하지 않으면
제법 먼길을 한번 더 돌아야 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북한산둘레길 보루길입구'] 1:13
[북한산둘레길-보루길] 입구를 다시 지나면...
['북한산둘레길 안골길입구'] 1:15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만나며 다리 좌측에 [북한산둘레길-안골길] 입구도 보입니다.
['회룡탐방지원센타'] 1:16
이어서 [북한산국립공원 회룡탐방지원센타]를 지나고
[회화나무] 1:18
귀신이 붙어 살아 외부의 적들을 물리친다는 "회화나무 槐木"을 지납니다.
계속해서 '호원동' 마을을 지나면...
['태조-태종 상붕지'] 1:26
앞에서도 언급랬던 "태조-태종 상봉지" 안내석을 다시 지나가며 그 옛날을 그려봅니다.
권력을 향한 집념
아버지를 배척하고 형제들과 친인척, 아들인 '세종대왕'의 장인어른까지 모조리 죽이며 잡은 권력.
배은망덕한 불효자 아들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화살.
권력이 그렇게 좋은가!~ 그들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립니다.
['회룡역'] 1:31
[회룡역]에 돌아 와 [회룡사-석굴암] 답사를 마칩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6.7km"였으며, 2시간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 다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ㅎ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