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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팔색길]을 가다"
     "제8색 화성성곽길" 답사기 
         장안문-화홍문-방화수류정-연무대-동북공심돈-창릉문-봉돈-남수문-
         팔달문-화양루-화성장대-화서문-서북공심돈-장안문-화성행궁-팔달문
        
            수원 팔색길  

      1. 도심 속 생명의 길 "모수길" - 22.8km
         모수길은 백제시대부터 ‘물길의 근원이다’라고 해 모수국이라 불렸던 
         수원 대표 하천인 서호천과 수원천을 따라 도심 속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
      2. 수려한 자연풍경 연결한 "지게길" - 7.1km
         지게길은 광교마을과 파장초등학교를 이어주던 학생들 등굣길이며,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다니던 옛 길로 호젓한 광교산 숲길과 광교천 수변길을 즐길 수 있는 곳
      3. 자연하천과 숲이 있는 "매실길" - 18.1km
         생태자연길은 황구지천과 칠보산 자락길, 호매실천을 연결
      4. 녹음이 푸르른 "여우길" - 10.7km
         광교저수지와 원천저수지를 연결하는 여우길은 광교공원의 산책로와 음악분수 등을
         즐기며, 원천유원지의 과거 추억과 새롭게 조성되는 광교수변길을 즐길 수 있도록 
         광교 택지지구의 녹지축을 연결
      5. 메타세콰이어길이 있는 "도란길" - 11.1km
         도란길은 넓은 보행로와 잘 꾸며진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는 영통 신시가지 길로 
         영통의 공원, 녹지, 원천리천을 연결
      6. 수원시와 외곽을 연결하는 "수원둘레길" - 60.6km
         수원시와 외곽을 연결하는 수원둘레길은 기존의 광교산길과 칠보산길, 원천리천길,
         영통의 경계 등을 연결해 수원의 경계를 둘러 볼 수 있는 곳
      7. 역사·문화 길 "효행길" - 12.3km
         효행길은 정조대왕이 부왕(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현륭원을 참배할 때 왕래하던 길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

      8. 수원 화성 거니는 "화성성곽길" - 5.1km

                        
                         
   


  [제8색 화성상곽길 구글맵]

  ["화성성곽길" 구글어스]

  "수원화성""장안문"에서 출발하여 "화홍문-방화수류정-동장대-창룡문-
  남수문-팔달문-화양루-화성장대-화서문-서북공심돈-장안문"으로 화성성곽을 한바퀴 돌아 보고
  "화성 행궁"을 거쳐 "팔달문"에서 탐방을 마침니다.
  거리는 공식적으로 성곽길이 5.1km이지만, 행궁을 돌아보고 "팔달문"까지 7km를 갑니다.


  ['장안문(북문)']          1:48
  
  2016년 3월 11일 (금) 맑음 
  [수원팔색길] 중에 [제2색 지게길]과 [제7색 효행길]의 일부를 걷고 계속해서 [제8길 화성성곽길]을 갑니다.
  [제7색 효행길]이 지나는 "장안문"에서 [화성성곽길]을 출발합니다.
  "장안문 長安門"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일반적으로 "북문"으로 불리우는데,
  '한양성'의 "숭례문-남대문"보다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매표소]

  "장안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매표소가 있습니다.
  성곽 탐방은 1,000원/인 이더군요. 표를 끊으면 조그만 스티커를 하나 주는데
  잘 보이도록 가슴에 붙이고 다니라고 알려 줍니다.


  ['장안문']

  "장안문" 위로 올라 가면 "장안문"은 2중문으로 되 있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문루]

  문루에도 들어 가 보는데 대부분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화성장대' 조망]     

  "장안문"에서 "화성장대"가 있는 "팔달산"을 조망하고..
  성곽종주는 시계방향인 동쪽방향으로 갑니다.


  ['북동적대'-'북동치']         1:58~2:00

  "장안문"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북동적대 北東敵臺""북동치 北東雉"를 만납니다.
  "敵臺"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만 설치되 있는 방어 시설로.... 들어가 보면


  ['홍이포']

  "홍이포 紅夷砲"가 설치되 있는데 사거리가 700m에 달한다고...


  [뒤돌아 본 '장안문']  

  "북동적대"에서 바라보는 "장안문"입니다.
  이렇듯 "장안문"을 호위하고 있는 시설이 "적대"이더군요.


  [가야할 성곽길 조망]         2:00

  "북동적대"에서 가야할 성곽을 조망합니다.
  보통 100m 정도의 간격으로 초소가 설치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북동포루']        2:02

  "북동적대"에서 100여m 진행하면 "북동포루 北東砲樓"가 있습니다.
  "포루"가 계속 일정간격으로 있는데 한자를 자세히 봐야 합니다.
  이곳은 "砲樓"로 대포를 쏘는 곳이고....



  ['화홍문'(북수문)]          2:05

  '수원시'의 중심부, 즉 "수원화성"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개천이 "수원천"입니다.
  그래서 水門이 두군데 있는데 "북수문"과 "남수문"이랍니다.
  이 水門의 정식 이름은 "화홍문 華虹門"인데 "화성의 무지개문"이라는 뜻이라네요.


  ['수원천' 조망]

  "화홍문"에서 "수원천"을 조망합니다.
  [수원팔색길]의 [제1색길]인 [모수길]이 지나고 있는 "수원천"입니다.
  제가 쓴 답사기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수원팔색길 1색-모수길 답사기] 여기 클릭 


  [뒤돌아 본 '화홍문']

  "화홍문"을 지나 뒤돌아 보고...



  ['방화수류정'(동북각루)]       2:08~2:11

  "화홍문" 옆에는 군초소로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訪花隨柳亭"이 있습니다.
  성곽 방어에 취약 지역인 水門을 다시 방어하는 초소로서 "角樓"라고 한다는데 동북쪽에 있다고
  "동북각루 東北角樓"라고 한답니다.
  화성을 축조 할때 삼엄한 군사시설로만 만든 것이 아니고 이렇게 아름답고 운치있게도 城을 쌓았답니다.
  "정조대왕"이 제작자라고 한다면 "번암 채재공" 영의정이 총감독이고
  설계 감리등 공사 총괄책임자가 "다산 정약용선생"이었지요.


  ['화홍문(북수문)" 조망]

  "방화수류정"에서 "화홍문"을 내려다 봅니다.
  군사적 방어시설에 예술적 아룸다움까지 혼합된 건축물이란것을 알수 있습니다.


  ['서장대' 조망]

  "방화수류정"에서 "화성"의 총지휘부인 "화성장대 華城將臺"가 또렷하게 조망됩니다.


  [가야할 '동북포루' 조망]

  "방화수류정"에서 가야할 성곽을 미리 조망하고...



  ['북암문']

  비밀통로인 "암문"을 지나 갑니다.
  이 암문은 북쪽에 있는 암문이라고 "북암문 北暗門"이랍니다.


  ['용연' 조망]

  "북암문"을 지나 언덕배기를 올라 뒤돌아 본 "방화수류정""용연지 龍淵池"입니다.
  "방화수류정"에는 운치있는 연못도 있는데 성곽방어와 여가를 이용해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만들었답니다.
  군시설이라기 보다는 정말 아름다운 공원 같습니다.
     "윤기 (1741~1826)"라는 분이 쓴 "화성 華城"이라는 詩를 하나 들려 드림니다.

          霧罷風輕小雨餘. 華城朝日駐征車. (무파풍경소우여 화성조일주징거)
          訪花亭壓長安堞. 如意橋橫萬石渠. (방화정압장안첩 여의교횡만석거)
          園寢入望淸御路. 關防成邑簇人居. (원침입망청어로 관방성읍족인거)
          微臣每過偏多感. 聖孝應徵太史書. (미신매과편다감 성효응징태사서)

          안개 개고 바람 잦아들자 비가 조금 내리고
          화성의 아침 해가 순행(巡行)하는 수레에 머물렀네.
          방화수류정은 장안문 성가퀴와 조화를 이루고
          여의교는 만석거에 놓여있네. 
          원침에 들어가 청어로를 바라보니
          요새 마을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무리지어 사네.
          미신(微臣)이 지날 때마다 문득 많은 감회가 일어
          임금의 효도는 응당 태사(太史)의 기록을 증명했네


  [동북포루]     2:14

  이 "포루"는 앞에 있었던 "砲樓"와는 한자가 틀리죠?
  컴퓨터에는 없는 한자인데 요즘 말로 "초소"이겠지요.


  ['연무대' 조망]

  진행방향을 조망하고 진행합니다.
  "동장대"라고 하는 "연무대"가 조망됩니다.


  ['창용문' 조망]

  城안에는 "연무초등학교"가 보이고


  ['광교산' 조망]

  북쪽으로는 "광교산"과 "백운산"이 조망됩니다.


  ['동암문']          2:18

  시설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입니다.
  "한국의 레오나르드 다빈치"라고 해도 모자랄 "다산 정약용선생"을 기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룬 분인데 수구정치세력들로부터 정치적 보복을 받고 귀양살이로.. 
  우리나라 좋은 나라? ㅎ


  ['연무대' 조망]

  "동암문"을 지나면 "연무대"라는 이름을 가진 "동장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화성열차]         2:22

  "동장대" 앞에는 "화성열차"가 출발하는 곳이 있는데
  걷기가 힘든 분들은 이 열차를 이용 할수있겠습니다.


  ['연무대']       2:22~2:25

  "연무대 鍊武臺 - 동장대 東將臺"
  동쪽에 있는 작전지휘소이자 병사들의 무술 훈련장이었답니다.


  ['창용문' 조망]

  "동장대" 앞으로 펼쳐지는 광경입니다.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이 조망됩니다.


  ['동북공심돈']         2:26

  "동북공심돈 東北空心墩"
  "공심돈"은 적의 동태를 살피는 망루로서 "수원화성"에만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랍니다.


  ['동북노대']       2:29

  "동북노대 東北弩臺"
  "노 弩"는 '다연발 활'이라고 합니다. 
  동북쪽에 있는 다연발 활을 쏘는 곳이라고 "동북노대"라 한답니다.



  ['창용문']      2:32

  "창룡문 蒼龍門"
  "화성"의 동대문인데 보수공사 중에 있군요.


  ['연무대' 조망]

  "창룡문"에서 지나온 "연무대-동장대"를 조망하고


  ['동일포루']      2:39

  이어서 "동일포루 東一포樓"를 지나고...


  ['동일치']

  계속 이어지는 성곽.....
  대단한 규모입니다.


  ['동포루']        2:45

  "동포루 東砲樓"를 지나고....


  [팔달산 조망]

  잠시 후에 오를 "팔달산"과 "화성장대"를 조망합니다.
  웅장한 성곽과 초라한 주택들이 비교되는데, 아마도 성곽 주변에 주택의 증개축이 불허되고 있어서이겠죠?


  ['봉돈']          2:50
봉수대가 산꼭대기에 있지 않고 낮은 곳에 있는게 특징이라면 특징.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세요.
['봉화대화장실'] "심재덕" 전수원시장겸 국회의원이 생각 납니다. [지게길]에서 이미 언급한 화장실 문화를 바꾼 분이죠. 이 화장실의 중앙에는 살아 있는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여하튼 수원의 공중화장실은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입니다. [교회 조망] 성곽을 돌며 계속해서 보이는 교회가 하나 있는데 알아보니 "수원제일교회"라는군요. ['동남각루'] 2:56~3:06 보수 중인 "동남각루 東南角樓"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남수문'-'팔달문' 조망] "동남각루"에서 바라보는 "남수문 南水門"입니다. "동남각루"는 "남수문을 지키는 시설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제 "화성"의 남대문인 "팔달문"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원천'] "남수문" 위에서 다시 만난 "수원천"을 조망합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지동시장"과 "영동시장"을 바라봅니다. 이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지동시장" 앞에 있는 만두집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ㅎ "지동시장" 앞으로 가면... [남수문'] "지동시장"으로 가며 "남수문"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지동시장'] 3:10~3:17 "지동시장" 정문이 독특하죠? ㅎ 정문 우측에 "추억의 장날 만두"가 보이지요? 줄을 서야 살수 있는 유명한 만두집입니다. 6분여 줄을 서서 만두와 도넛츠를 삿습니다. 그러니까 점심 식사를 만두로 한것이죠. ㅎ 만두는 3,000원/6개이고 도넛츠도 같은 값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너츠는 괜히 삿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 만두는 크기나 맛이 모두 괜찮았습니다. ['영동시장'] 만두를 사들고 건너편 "영동시장"으로 직진해 가면 간단하게 "팔달문"으로 갈수 있었는데 모르니 다시 "남수문"으로 돌아가 복잡한 골목을 통과해 "팔달문"으로 갔습니다. 후답자들은 여기서 "영동시장"으로 직진해 가시길... ['팔달문' 조망] 간단하게 올수 있는 길을 "남수문"을 통과하여 다시 "영동시장"으로 나오니 바로 앞에 "팔달문"이 있었습니다. "지동시장"에서 50m 정도? ㅎ 성곽길은 "팔달문"의 우측을 돌아 건너가도록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팔달문'] 3:23 "팔달문 八達門 - 남문 南門"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라하며, 축성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보물402호'로 지정되 있답니다. 전시 상황에 불 공격을 받을 경우 물을 이용해서 대응 할수 있는 "오성지"라는 시설이 갖춰져 있답니다. "정조대왕"은 이 문을 통해 "현륭원"을 오갔다고 합니다. [매표소] 3:27 "팔달문"을 지나면 "수원화성"의 진면목을 두루 조망 할수있는 "팔달산"으로 올라 가는 성곽길이 열립니다. 이곳에도 매표소가 있는데 "장안문"에서 이미 표를 삿기때문에 스티커를 보여주고 통과합니다. [뒤돌아 본 '팔달문'] "팔달산"으로 조금 올라 가서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팔달문"은 잘 보이지만 다른 성곽은 현대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군요. 얼마 전까지만해도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즉 서울의 명동과 같은 "남문 주변"이었는데 이젠 "광교신도시"등 주변으로 옮겨져 간다는군요. ['남포루' 앞 도로] 3:31 조금 더 올라 가면 성 외부와 연결되는 도로를 만나고, 위에는 "남포루 南砲樓"가 보이는데 바로 앞에는 "노래비"가 눈길을 끕니다. ['고향의 봄' 노래비] 뭔가해서 올라 가 봤더니 "고향의 봄" 노래비 였습니다.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동요인데 이 노래 모르면 아프리카 사람이지요? ㅎ "이원수 李元壽 1911~1971" '마산상고' 출신으로 '함안금융조합'에 다니다가 "경기공고 교사"로 취직되어 서울로 올라와 "박문출판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하게되면서 화려한 아동문학의 중심에 서서 승승장구하며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까지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이지요. "고향의 봄"은 '경남 창원 소답리'가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원수 선생"은 '월간소년' 1980년 10월호에 '자전회고록-흘러가는 세월 속에'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습니다. "내가 난 곳은 양산이라고 했다. 양산서 나긴 했지만 1년도 못되어 창원으로 왔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난 곳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중략) 마산에 비해서는 작고 초라한 창원의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 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그런 것들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가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쓴 동요가 <고향의 봄>이었다." 또 하나의 국민동요라고 할수 있는 "오빠생각"도 모두 아시져? ㅎ "뜸북 뜸북 뜸북새 산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이 "오빠생각"이라는 동요의 작사가를 아시는 분들은 많지 않지요? "최순애씨 (1918~1998)"가 작사한 것인데 , 바로 "이원수씨"의 와이프였습니다. "최순애씨"가 '수원 출신'으로 12살때에 쓴 "오빠생각"이 '방정환선생'이 펴낸 "어린이"라는 잡지에 입선하게 되며, 15살에 "고향의 봄"을 쓴 창원 출신 '이원수'와 12살에 "오빠생각"을 쓴 수원 출신 '최순애'는 이런 인연으로 1936년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죠. 하지만 "이원수씨"는 황국신민을 꿈꾸는 일제에 적극 동조하여 친일행위를 했으며 해방후에는 좌익계열의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회'가 편낸 "친일명부"에 올라 있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이원수씨"의 둘째 딸인 "이정옥씨"가 [이원수 탄생 100돌 기념행사]에 참석해서 “나름대로 아버지를 존경하던 분들이 굉장히 상처 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기만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며 유족을 대표해 아버지의 친일행위에 대해 공식 사과했답니다. 수원 출신 "홍난파"에 대해선 너무 잘 아시는 분이니 언급을 자제하겠습니다만 판소리나 부르고 듣던 봉건사회에서 피아노 바이올린등 신음악을 들려준 최고의 뮤지션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업적과 명성을 잇지 못하고 친일파라는 불명예를 안고 역사 속에 서 있지요. [오름길] [수원팔색길 제8색 화성성곽길]에서 가장 힘든 오르막이 되겠습니다. ㅎ 잠시 올라 가면.... ['서남암문-서남포사'] 3:38 "팔달산"의 능선에 오르게 되며 암문과 초소가 함께 있는 "서남암문-포사 西南暗門"를 만남니다. 이 암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서남각루' 가는 "용도"] "용도 甬道"라고 하는 좁은 성곽길이 열립니다. "용 甬"이라는 한자는 일반적이지않은 한자여서 옥편을 찾아봤더니 "솟을 용"이더군요. 그러니까 능선에 성곽을 쌓았기 때문에 외부 침입에 취약한 지역이어서 별도로 城밖에 城을 돌출시켜 방어능력을 보강했다고 생각되는군요. 이 "용도 甬道"는 100m가 좀 안되는듯... ['화양루'] 3:41~3:53 "용도 甬道"의 끝은 막다른 골목이었고, "화양루 華陽樓"라는 角樓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서남각루 西南角樓". ['화양루' 밖 조망] "화양루" 밖의 모습입니다. 능선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주민들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더군요. 그리고 우측 아래에 "경기도청"이 있지요. ['화양루'에서 바라보는 "용도"] "서남각루"라고 하는 "화양루"에 걸터앉아 "지동시장"에서 사온 만두와 도넛츠를 먹으며 쉬었다 갑니다. ['서남암문-서남포사'] 3:55 다시 "서남암문"으로 나와서... ['서남암문'에서 조망] 암문에서 바라보는 광경입니다. 앞에 "3.1운동기념탑"과 '이동통신중계탑"이 보입니다. ['3.1운동기념탑'] "3.1운동기념탑"이 독특한 모양으로 건립되 있습니다. ['경기도청' 연결통로] 3:59~4:01 능선을 잠시 진행하면 城밖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서장대관광안내소'와 '진달래화장실'] 城밖에는 "진달래화장실"이 반겨주고 "서장대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경기도청"이 바로 아래에 있는데 "경기도청"으로 오르내리는 길이랍니다. "수원역"에서 "화성"을 직접 걸어서 탐방하려면 이 길을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서포루] 4:03 감시초소인 "서포루"를 지나면... ['효원의 종'과 매표소] 4:05~4:09 "팔달산 八達山 145.5m"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곳엔 "효원의 종"이라는 종각이 있고 다시 매표소가 있습니다. "화성장대"가 팔달산의 최정상에 있을줄 알았는데 조금 아래에 있군요. ['효원의 종각'] 이 종은 돈만 내면 누구나 언제라도 칠수 있는 종이더군요. ㅎ 실제 돈 내고 종 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요금은 사진 안에 있는 요금표를 참고 하시고 ['서장대' 조망] "수원화성"의 총지휘사령부가 있는 "화성장대-서장대"로 갑니다. ['화성장대(서장대)'] 4:12~4:25 "화성장대(서장대) 華城將臺 西將臺" 華城의 총지휘사령부로서 "정조대왕"이 직접 올라 '장용영 군사'들을 지휘 했다고 합니다. 장대 뒤에 "서노대"가 보이는데... ['서노대'] "서노대 西弩臺" "노대 弩臺"는 華城에 두군데있는데 "동북노대"는 지나왔죠? 이 "노대"는 다연발 활을 쏠수 있는 경호시설이라고 합니다. ['서노대'에서 '화성장대' 조망] "서노대"에서 바라보는 "화성장대"입니다. "정조대왕"이 작전지휘를 할때 뒤에서 삼엄한 경비를 했겠죠? ['화성행궁' 조망] 지금부터 "화성장대"에서 조망을 합니다. 먼저 "화성장대"가 팔달산의 최정상에 있지 않은 이유를 알수 있는 것은 바로 아래에 "화성행궁"이 있기 때문일거라고 생각됩니다.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베풀어 주기도 했던 "화성행궁"이 가까이 발 아래 보입니다. "한중록 閑中錄"의 저자 "혜경궁 홍씨" '풍양 홍씨'이지요. '정조대왕'의 어머니자 '사도세자'의 와이프였던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이라는 책을 집필 할때가 바로 이곳에서 회갑연 바로 후였습니다. "한중록"은 4권으로 되있는데 그 중에 제1권을 이때에 썻지요. 피 튀기는 당쟁싸움 속에서 시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살해되는 남편을 바라만 보며 속알이를 하던 여인이 "내가 언제 이렇듯 인생을 한가하게 즐길 때가 있었던가"라며 "혜경궁 홍씨"는 이처럼 기꺼운 마음으로 환갑을 맞이하면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붓을 들었다고 하지요. "한중록"에서 정치적 핵심 사항인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요약하자면 비정상적인 성격을 보이던 '영조'와 그로 인해 정신질환에 걸린 '사도세자'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로 인해 야기된 모든 갈등은 바로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만이 풀어낼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당시 아내로서 남편을 적극적으로 구명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아울러 사위의 죽음을 방관한 친정아버지 '홍봉한'을 비호함으로써 최근 일부 역사가들에 의해 심약한 궁중 여인이 아니라 냉혹하고 권력지향적인 정치인으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에구~~권력이 뭔지....
80세까지 장수한 "혜경궁 홍씨" 한국 여인의 로망이라고 해도 되겠죠? ㅎ
[한남정맥 '석성산-부아산' 조망] 동쪽으로는 "한남정맥"이 "부아산"과 "석성산"을 지나고 있고... '수원시'도 엄청 커졌습니다. 인구가 120만 정도 된다죠?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의 후광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한남정맥 '광교산-백운산' 조망] 북동쪽으로는 "한남정맥"이 지나는 "광교산"이 지척에 보이고... ['수리산' 조망] 북서쪽으로는 "한남정맥"이 "광교산"을 지나 만나는 "수리산"이 조망됩니다. ['서포루'] 4:29 "화성장대"에서 조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면 "서포루"를 지나고 ['서북각루'] 4:33 이어서 "서북각루 西北角樓"를 지나게 됩니다. 시설 하나 하나가 모두 예술입니다. ['화서문'] 4:36 "화서문 華西門-西門"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 있는 "화성의 서대문"이랍니다. ['서북공심돈'] 4:38 "정조대왕"이 가장 자랑했다는 "서북공심돈 西北空心墩"입니다. '보물1710호'로 지정된 특별한 건축물이랍니다. 안내문을 읽어 보세요. ['북서포루'] 4:43 "북서포루"를 지나면.... ['장안문' 조망] [화성성곽길]의 출발지였던 "장안문-북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장안문'] 4:47 "華城의 정문"이라는 "장안문 長安門"으로 돌아 왔습니다. [수원팔색길 제8색 화성성곽길]은 여기서 끝납니다만, "화성행궁"을 구경하고 가야겠죠? [鐘路] "장안문"에서 "鐘路"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화성행궁' 앞 광장] 4:57 "화성장대" 아래에 '청와대'처럼 있는 "화성행궁 華城行宮"이 펼쳐지며 새로운 흥분으로 다가 옵니다. ['신풍루'] 5:00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新豊樓"입니다. 관람시간이 오바되어 들어 갈수는 없었고... [행궁 안] 행궁 안을 슬쩍 들여다 보고는 발길을 돌림니다. 다음에 시간을 별도로 내서 심층 탐방하도록 하겠습니다. [노거수와 홍살문] "신풍루" 앞에는 역사를 머금고 있는 노거수가 가지를 펴고 있으며, 매표소도 있습니다. 행궁 관람은 별도로 표를 끊어야 하더군요. ['신풍루'와 노거수]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왕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세종대왕"은 누구나 공감 하실꺼고 , 그 다음은 저는 "정조대왕"을 꼽습니다. 당시 세계는 "르네상스 시대"로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다행히 세계 조류를 따라 실학사상으로 변화와 개혁의 길로 나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정조대왕"이 있었고 "다산 정약용"등 실학파들이 그 뒤를 바치고 있었는데 그런데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으로 우리나라는 봉건수구세력들의 노예가 되며 세계적 추세를 따르지 못하고 "안동 김씨"들의 "세도정치시대"로 들어가 암흑기를 거치며 나라를 빼앗기는 일제강점기시대로 갔습니다. 아!~~ 우리나라 좋은 나라?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 "화성행궁"을 뒤로하며 떠나 갑니다. ['팔달문' 조망] 5:08 "팔달문(남문)"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8색 화성성곽길 구글어스] [화성성곽] 거리는 공식적으로 성곽길이 5.1km이지만, 행궁을 돌아보고 "팔달문"까지 7km를 걸었습니다. 걸린 시간은 3시간 20분이 걸렸군요. ['2색 지게길-7색 효행길 일부-8색 화성성곽길 구글맵] 오늘은 [수원팔색길] 중에 [제2색 지게길]과 [제7색 효행길 일부]를 걷고 이어서 [제8색 화성성곽길]과 "화성행궁"을 한꺼번에 둘러 보았습니다. 총거리는 20km였으며, 6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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