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역사 문화, 자연생태, 건강산행 코스"
      "용인 너울길 1코스-광교산너울길" 탐방기
           서원말-심곡서원-조광조선생묘-한남정맥삼거리-매봉약수터-버들치고개-
           천년약수터-성불사-서봉사지-법륜사-소말구리고개-손골성지-[17-1번 버스종점]
        
                    絶命詩 
                                       정암 조광조
   
                            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네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성을 밝게 밝게 비추리.

                        
                         


  [너울길 1코스 개념도]

  [너울길 1코스 구글어스]

  '제주 올레길' 이후 전국에 몰아친 둘레길 만들기는
  정부의 5,000억 예산 지원에 힘입어 거의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그렇고 그런 길을 만들었습니다.
  '용인시'에서도 둘레길과 유사한 "너울길"이라는 길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길을 나서기 전에 길에 대한 자료 조사를 했습니다만,  흔해빠진 공식 홈페이지 하나 없고,
  선답자들의 답사기들도 몇개 없었으며, 그나마 불평 투성이 답사기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불평의 내용은 대부분이 "길안내"가 부실해 길찾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파란문"이 나름대로 조사를 해서 "용인너울기1코스-광교산너울길"을 탐방해 보기로 했습니다.
  위의 구글어스는 제가 직접 걸으며 만들어진 GPS 트랙이며, 세개의 GPS의 평균값은 14.5km였습니다.


  ['서원말-심곡서원' 버스정류장]      11:29
  
  2015년 9월 13일 (일) 맑음 
  가을 날씨 중에서도 전형적인 맑고 시원한 날씨를 보이는 날에 "용인너울길 1코스" 답사에 나섯습니다.
  1코스의 출발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서원말.심곡서원 버스정류장]입니다.
  이곳으로 운행하는 버스는 '수원역' '분당선 죽전역-미금역', 직행좌석버스(서울역 강남역)등 무지 많이
  있으니 인터넷 검색하여 자기 편리한 버스를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이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뒷쪽 첫번쩨 신호등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 "심곡서원" 방향으로 갑니다.



  [심곡서원]

  신호등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 방향을 바라보면 "심곡서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심곡서원"으로 2~3분 진행하면...


  [홍살문]     11:31~11:41

  "정암 조광조 선생 靜庵 趙光祖, 1482~1519"의 위폐를 모신 "심곡서원 深谷書院"에 도착하여
  홍살문을 통과하여 서원으로 들어 갑니다.


  [심곡서원 외삼문]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속에서 최고의 '진보개혁파'를 꼽으라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저는 단연 "정암 조광조 선생 靜庵 趙光祖 先生"을 꼽습니다.
  '용인너울길 제1코스'를 '역사 문화가 있는 광교산너울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정암 조광조선생"에 있다고 저는 생각 됩니다. 
  평소 "조광조선생"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오늘에서야 유적을 찾게 되었군요.
  선생에 대한 공식적 안내는 위의 안내문을 참고하시고...


  [강당-일소당]

  "외삼문"을 들어 서면 현재 "講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오리지날 이름 "일소당 日昭堂"이 반깁니다.
  "日昭堂"이라는 명칭은 제가 서두에 올린 "절명시"에서 따온 것이라 생각되며 태양이 밝게 비추는 곳이라고
  해석해도 되겠지요?
  "조광조선생"의 '개혁정치'를 알아 보기 위해선 당시의 정치 상황을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정치상황은 "연산군"의 폭정을 빌미로 쿠데타가 일어 났죠. 이름하여 "중종반정".
  '성희안 박원종'등 훈구파(보수세력)들이 천하의 간신배 '임사홍'등과 결탁하여 일으킨 쿠데타는 성공하였고
  어린 "중종"을 왕위에 앉히고, '성종' 때부터 새롭게 정계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들을 제거하며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하룻밤 사이에 이복형인 "연산군"에 이어 왕위에 오른 18세의 '진성대군'....
  그가 "조선 제11대 왕 중종"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권1"에서 인용합니다.
  지중추부사 박원종, 부사용 성희안, 이조판서 유순정 등이 주동이 되어 건의하고서, 군자부정 신윤무, 
  군기시첨정 박영문, 수원부사 장정, 사복시첨정 홍경주와 거사하기를 밀약했다. 거사하기 하루 전날 저녁에
  성희안이 김감(金勘), 김수동(金壽童)의 집에 가서 모의한 것을 고하고, 이어 박원종, 유순정과 더불어 
  훈련원에서 회합했다. 무사와 건장한 장수들이 호응해 운집했고, 유자광, 구수영(具壽永), 운산군 이계(李誡),
  운수군 이효성(李孝誠), 덕진군 이활(李活)도 또한 와서 회합했다. 여러 장수들에게 부대를 나누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뜻밖의 일에 대비하게 했다. 밤 3경에 박원종등이 곧바로 창덕궁으로 향해 가다가 
  하마비동(下馬碑洞) 어귀에 진을 쳤다. 이에 문무백관과 군민등이 소문을 듣고 분주히 나와 거리와 길을
  메웠다. 영의정 유순(柳洵), 우의정 김수동(金壽童), 찬성 신준(申浚)과 정미수(鄭眉壽),
   예조판서 송일(宋軼), 병조판서 이손(李蓀), 호조판서 이계남(李季男), 판중추부사 박건(朴楗),
  도승지 강혼(姜渾), 좌승지 한순(韓恂)도 왔다.
  먼저 구수영, 운산군, 덕진군을 진성대군의 집에 보내어 거사한 사유를 갖추어 아뢴 다음 군사를 거느리고
  호위하게 했다. 또 윤형로(尹衡老)를 경복궁에 보내어 대비께 아뢰게 한 다음, 드디어 용사(勇士)를
  신수근, 신수영(愼守英), 임사홍 등의 집에 나누어 보내어, 위에서 부른다고 핑계 대고 끌어내 쳐 죽였다.
     - 중종 1년 9월 2일 -


  [심곡서원 내삼문]

  제사를 지내는 祀堂에는 '사액 賜額' 받은 "深谷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왕위세습이 아니라 신하들인 훈구파에 의해 왕위에 오른 "중종"은 훈구파의 꼭두각시와 다름없었습니다.
  "중종"의 와이프는 '연산군' 때에 영의정이었던 신수근의 딸인 "중종"의 첫사랑 "단경왕후"이지요.
  쿠데타세력인 훈구파들은 "중종"의 '단경왕후'까지 7일만에 폐비시키고 이혼을 시켜 쌩이별을 하게 만들지요.
  궁중에서 쫏겨나 '인왕산' 밑에 살고 있다는 '단경왕후'가 보고 싶어 "중종"은 밤이나 낮이나 인왕산을
  바라보며 그리워 했는데,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폐비-단경왕후"는 자기가 궁중에서 입던 분홍색 치마를
  인왕산 바위에 걸어 "중종"이 보도록 했다는 사연이 전하는 "인왕산 치마바위"의 주인공들입니다.
  이런 로맨스까지 제가 언급하는 것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쿠데타세력에 의해 이혼까지 당하는 
  힘없는 "중종"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장서각. 보호수]

  "중종"이 성장하면서 '훈구파'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왕권을 회복하려는 마음은 당연히 생겼겠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준 세력들이지만 그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으니, 유명무실한 왕의 권위를 찾으려고
  시도를 하는데... 그 시도의 첫걸음이 "정암 조광조"의 등용이었습니다.
  '중종'은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해야한다고 주창하는 "정암 조광조"가
  쿠데타세력인 훈구파를 견제 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왕권확립이 가능하리라 생각했겠죠.


  [치사제. 협문. 서재]

  "조광조"의 개혁정치는 크게 다섯가지로 요약할수 있답니다.
  그 첫번째가 "소통의 정치"였습니다.
  '중종'의 첫번째 와이프가 위에서 언급한 "단경왕후"인데 쿠데타세력들에 의해 강제 이혼 당했죠?
  쿠데타세력에 의해 강제 재혼한 두번째 와이프인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바로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중종'이 애타게 그리워하던 첫사랑 "단경왕후"를 복위 시키자고 상소를 올리는 관료가 있었는데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이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훈구파들이 상소를 올린 이놈들을 괘씸하다고 귀양을 보내는데,
  "조광조"가 "중종"에게 "言路가 활성화되야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질수 있는데, 
  상소를 올렸다고 귀양을 보내면 누가 올바른 소리를 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상소를 올렸다고 
  그들을 탄핵한 "이행(李荇)"을 대신 귀양보내며, "소통의 정치"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통의 정치"는 훈구파들의 보복대상이 되는 그런 것이었으니...개혁은 정말 힘들지요?
  5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소통의 정치"가 문제되고 있죠? ㅎ



            
               [용인광교산너울길 공식 안내판]

  "심곡서원" 홍살문 옆에는 "용인광교산너울길"이라는 안내도가 설치되 있습니다.
  총길이 12.6km이며 4시간 20분이 걸린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걸어 본 결과 약14.5km로서, 5시간 30분 가량 걸렸다는 것을 알려 드림니다.
  물론 '손골성지'를 왕복하는 거리가 추가되었는데 왕복 하지 않을수 없었고,
  약간의 알바도 했습니다만 초행길에선 알바도 하지 않수 없는 그런 길안내였기 때문입니다.
  자칭 길찾기의 전문가라고 하는 "파란문"이 알바를 할 정도이니 일반인들이 가면 더 어렵겠죠.
  앞으로 저의 답사기를 숙지하고 가시는 분들은 조금은 쉽게 다녀 올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서원말 버스정류장' 삼거리]       11:44

  "심곡서원" 탐방을 마치고 다시 [서원말.심곡서원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로 나가면
  길 건너편에 [산너울1길] 안내판이 보입니다. 길안내라는게 대체로 이런식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초행길인 답사자들이 저런 안내판을 찾을수 있겠습니까? ㅎ
  길을 건너 좌측 방향으로 버스정류장 [상현교차로]가 나올 때까지 한 정거장을 걸어 갑니다.


  ['상현교차로' 등산로 입구]       11:51~11:53

  "심곡서원"에서 10여분이 걸려 [상현교차로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있는
  "광교산등산로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조광조선생 묘소"의 정문은 여기서 직진하는데 앞의 버스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있더군요.
  그러나 그런 안내는 어느곳에도 없어서
  저는 등산로 중간에 있는 줄 알고  등산로로 직접 올라 갔습니다.


  [등산로 들머리]

  이곳 광교산 등산로 출입구에는 만남의 광장과 먼지털이등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조광조선생 묘소 들어 가는 길]       11:55~12:00

  등산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니 "조광조선생 묘소"라고 여겨지는 묘소가 옆에 보이는데...
  들어 갈수 있는 문은 없었고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어 어디로 들어 가야하는지 왔다리 갔다리..
  할수없이 철조망이 넘어져 있는 곳으로 무단 침범 할수 밖에 없었고....


  ['조광조선생 묘소']

  "조광조선생"의 묘소는 최상단부에 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조광조선생"의 개혁정치에 대해 계속하겠습니다.
  "조광조선생"의 두번째 개혁정치는 "향약"의 시행이었습니다.
  향촌규약(鄕村規約)의 준말로, 지방자치단체의 향인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는 향촌이 이기주의로 흐르고, 상부상조의 정신이 헤이해지는 것을 안타갑게여겨  
  '여씨향약'을 팔도에 실시하도록 한 것인데 조선시대 향약운동은 이때가 시초랍니다.
  뒷날 "율곡 이이"도 향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죠?
  요즘으로 하자면 "새마을운동" 같은거...
  세번째 개혁은 "미신을 타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유교' 이외에는 이단으로 몰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기우제'등도 미신이라고 폐지시켰습니다.
  궁중에서 도교 행사를 치르는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여 실현시켰습니다.
  '소격서'는 "하늘에 올리는 제사"인데 이는 천자만이 할 수 있는데 한낱 제후나라인 조선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 올리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중종'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광조"는 "중종"을 앞에 앉혀놓고 밤새도록 허락하라고 욱박지르다시피 해서 허락을 받아
  냈는데, 이것이 또 후에 화근이 될줄이야....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는 "중종"의 비들과 궁녀들의 반대가 가장 심했는데
  훈구파들이 이러한 궁녀들을 이용해 "조광조 죽이기" 계략을 세우지요.
  네번째 개혁은 "과거제도 개혁"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입시제도 개혁"이었습니다.
  문장이나 詩를 잘 짓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일괄 필기시험으로 뽑을 것이 아리라
  사람의 덕목과 인성, 생활태도를 중시하여 재능과 학식이 있는 사람을 뽑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하여 참신 발랄한 신진 소장파 사류들을 많이 등용하게 되었습니다.
  입시제도를 바꾸는 문제는 5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설왕설래 되고 있죠?
  필기시험이 아닌 인성 위주의 입시제도를 이미 500여년전에 시행 한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거제도의 변경도 입지가 좁아지는 훈구파들의 반발을 사는 구실이 됩니다.
  다섯번째 개혁은 훈구파들의 결정적 반발을 불러 일으킨 "반정공신들의 공훈 삭제"였습니다
  반정공신들의 공훈을 무려 3/4을 삭제하여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꼴을 당한 늙은 훈구대신들은 “젊은 애들이 지나치게 날뛴다”고 보복을 다짐하게 했는데
  곧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신진사류들은 거리낌 없이 앞으로만 내달았답니다.
  "조광조"는 왕도 도덕적으로 흠 잡힐 짓을 하면 않되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왕이라 할지라도 궁녀들과 함부러 성행위를 하면 않되고...등등 언행을 조심해야한다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왕조시대에 신하가 왕에게 하는 말로는 왕도 자존심 상하는 말이죠? ㅎㅎ
  "중종"도 이런 "조광조"가 점점 싫어지기 시작하는데...
  "조광조" 앞에서는 "중종"도 꼼짝 못했는데, 무식이 들통 날까봐 눈을 마주치지도 못할 정도가 될 지경
  이었으니, 자신을 보위 하도록 등용 시킨 것이 오히려 눈에 가시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설 곳이 자꾸 좁아지는 쿠데타 공신 훈구파들이 이런 빈틈을 파고 들어 반격을 시작합니다.


  ['조광조선생 묘']

  수세에 몰린 훈구파들은 "조광조"를 몰아낼 계략을 꾸미고 실행에 옮깁니다.
  '한명회 일파'가 '남이장군'을 몰아 낼때의 모략보다 더 치졸한 방법을 쓰죠.
  바로 그 유명한 "주초위왕 走肖爲王"이라는 거죠? ㅎ ㅎ
  "走자와 肖자를 가진 자가 王이 된다." "走자와 肖자를 합치면 趙가 되지요?"
  '미신 타파' '왕과의 성행위 금지'등 개혁에 반대했던 궁궐에 있는 불만세력인 '비와 궁녀'들을 시켜 수많은
  나무잎에 꿀로 "走肖爲王"이라는 글씨를 써서 벌레들이 그 글씨만을 갉아 먹게하고, 
  그 나무잎들을 줏어다가 "중종"에게 보여 주게 해서 "조광조의 역모"를 하늘이 암시하고 있다고 부추깁니다.
  "정암 조광조선생"은 그렇게 훈구파들의 모함에 의해 "역모혐의"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중종"은 모함인줄 알면서도 속아 주는 척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젠 눈에 가시이니...
  그리하여 '전남 화순'으로 귀양보내졌다가 사약을 받게 되지요.
  의금부 도사가 사약을 들고 오자, 조광조가 조용히 물었답니다.
 “주상께서 신에게 죽음을 내리신다면 합당한 죄명이 있을 것 아니요? 삼가 그 죄명을 듣고 싶소.”
  도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답니다. '조광조'는 뜰에 내려와서 북쪽을 향해 두 번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사약의 교지를 받았답니다. 그리고 허락을 받고 집에 편지를 써서 조상의 무덤 옆에
  자신을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답니다. 이어 목욕을 하고 옷깃을 가다듬고 자리를 펴고 앉아 
  詩 한수를 지었는데 그 詩가  이 답사기의 서두에 올린 유명한 "絶命詩"입니다.
  목숨을 끊으며 마지막으로 읊는 詩라는 뜻이지요.
        
                    絶命詩 
                                       정암 조광조
   
                            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네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성을 밝게 밝게 비추리.


  ['조광조선생 묘비']

  "조광조"의 인생과 생활, 정치 철학을 가장 사랑한 사람은 저와 이름이 비슷한
  선조시대의 "율곡 이이 栗谷 李珥"였습니다. 
  그는 그가 쓴 [석담일기 石潭日記]에서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류들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옛사람들은 반드시 학문이 이루어진 뒤에나 이론을 실천했는데, 이 이론을 실천하는 요점은 왕의
  그릇된 정책을 시정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 다스릴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정치 일선에 나간 결과 위로는 왕의 잘못을 시정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구세력의 비방도 막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도학을 실천하고자 왕에게 왕도의 철학을
  이행하도록 간청하기는 했지만, 그를 비방하는 입이 너무 많아, 비방의 입이 한 번 열리자 결국 몸이
  죽고 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니 후세 사람들에게 그의 행적이 경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다는 뜻입니다. 평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개혁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정암 조광조선생"은 훗날 "선조" 때에 명예가 회복되어 "영의정"에 추증됩니다.
  "파란문"은 다음과 같이 생각 합니다.
  그는 너무 곧게만 일을 하려 들었고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반대파의 보복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리라. 하지만 개혁에 대한 그의 정열은 길이 빛났고, 
  굿굿한 신념은 변절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고....
  쓰고 보니 "율곡 이이"의 생각과 비슷하네요? ㅎㅎ


  [등산로 복귀]       12:00

  "조광조선생 묘소"를 둘러 보고 묘소 뒤로 난 소로를 따라 일반등산로에 다시 합류 했습니다.
  4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삼거리]      12:04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매봉약수터]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숲길]

  "용인광교산너울길"은 둘레길을 도는 느낌이 아니고 등산하는 느낌입니다.
  완만한 오름길을 6분 정도 더 오르면...


  [군부대 앞 삼거리]        12:10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앞에 군부대 철조망 울타리가 보입니다.
  여기선 우측 넓고 선명한 길로 진행 합니다.
  그러면 바로...


  [군부대 울타리]

  군부대 울타리를 만나 진행하는데, "매봉약수터"까지 이 울타리를 따라 가도 됩니다.

 
  ['235.6m봉' 쉼터]        12:16~12:18

  잠시 오르면 "235.6m봉"에 오르는데 이곳엔 쉼터가 있더군요.
  잠시 쉬어 가고...


  [갈림길]

  [봉우리]

  [갈림길]

  "235.6m봉 쉼터"에서 울타리를 따라 가면 우회로가 두어군데 있는데
  우회로를 무시하며 울타리를 따라 직진해도 되고, 우회로를 이용해도 됩니다.
  저는 모두 직진해서 울타리를 따라 오르내리며 진행합니다.
  8분여 진행하면....


  [삼거리-한남정맥]         12:26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한남정맥"을 만나는 곳입니다.
  요즘 "한남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의 표지기가 보이더군요.
  오랜만에 다시 왔습니다.
  이곳 주변의 "한남정맥"에 대해선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것이고...


  [울타리 사잇길]

  "한남정맥"과 함께 이젠 양쪽에 철조망 울타리가 있는 길을 잠시 진행하면...


  [삼거리]        12:28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를 또 만나는데
  "한남정맥"은 좌측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진행 합니다만, "너울길"은 직진하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너울길"도 여기서 좌측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한남정맥"과 함께 진행해도 아무 문제 없겠더군요.
  "너울길"은 괜히 뺑뺑이만 돌리고 있더군요. 그 이유는 곧 알게 됩니다.
  직진해 20m 정도 나가면...


  [갈림길]      12:29
 
  다시 갈림길이 있습니다만, 직진하는 저 앞에 "산너울길" 이정표가 보입니다.
  시키면 시키는데로 해야죠? ㅎㅎ  큰 의미는 없지만...

 
  [내림길]

  이정표가 [←매봉약수터]를 가리키는 좌측방향으로
  볼거리 하나 없는 내림길을 6분 정도 내려 가면....


  [군훈련장도로 삼거리]         12:35

  넓은 비포장도로 수준의 '군훈련장 도로'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매봉약수터 0.3km]라고 알려 줍니다.
  이정표의 지시대로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군훈련장도로]

  이 도로는 군훈련장 도로이더군요. 현재는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는....
  곳곳에 군훈련장 표시가 있습니다.
  이 넓은 옛 군사도로를 따라 100m 정도 진행하면...


  ['한남정맥'  복귀]      12:38

  "한남정맥"이 지나는 군부대 울타리를 다시 만납니다.
  제가 지나온 길로 삥~ 돌 필요 없지요? ㅎㅎ  이해가 가나요?
  구경거리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괜히 거리만 늘린 것이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광교산너울길]은 둘레길로는 제법 긴 14.5km 인데...


  [갈림길]         12:40

  이어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 직진길은 "한남정맥 마루금"이고
  "너울길"은 우측 "매봉약수터"로 갑니다.
  "한남정맥"을 종주 할때도 우측 "매봉약수터"를 들려 가는게 일반적입니다.


  [매봉약수터]        12:40~12:44

  "매봉약수터 쉼터"가 바로 펼쳐집니다.
  여기선 이정표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정표를 찾아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매봉샘]

  "너울길"에는 곳곳에 약수터가 있어 물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불행이도 "매봉샘"의 수질은 음용부적격 판정을 받았더군요.
  목이 말라 그래도 조금 마셧는데 아직 살아 있습니다. ㅎㅎ
  앞으로 가실 분들은 미리 물 준비 하세요~

 
  [산책로]

  이정표가 가리키는데로 진행하지만 갈림길이 많아 길을 모르는 사람들은 길찾기가 어려울듯...
  저는 '한남정맥' 할때 지나 간적이 있어 전체적 흐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가지만...
  5분 정도 오르내림을 하며 진행하면...


  [갈림길]          12:49

  "매봉약수터" 앞에서 헤어졌던 좌측 "한남정맥 마루금"을 다시 만나는데 
  계단으로 오르지 않고 옆길로 진행합니다.


  ['수원둘레길']        12:52

  그러면 "한남정맥 마루금"과 다시 만나는 곳에 [수원둘레길] 표지판을 만납니다.
  [수원둘레길 표지판]은 서울둘레길 표지판과 모양은 같고 색깔만 다르군요.
  수원둘레길은 이름이 "팔색길 八色길"인데, 이곳은 "六色길"이라고 하는군요.
  조만간 수원둘레길도 탐방해야겠군요.
  여기서부터 "천년약수터"까지 "수원둘레길"과 "한남정맥 마루금", 그리고 "용인너울길"이 함께 갑니다.
  4분 여 진행하면...



   ['버들치고개']     12:56

  "버들치고개"를 지나는데...
  이 고개는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광교신도시'와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을 잇는 고개이며
  "광교산 주요 등산로" 중에 하나.


  [잘못된 표기]

  "버들치고개"에서 잠시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천년약수터] 방향으로 진행 합니다.
  그런데 이정표에 [성복동]이라는 표기가 [성북동]으로 잘못 표기되 있군요.
  한자로 쓰면 "星福洞"인데, "성북동"으로 오기. 관계자는 빨리 고치세요~~

 
 
  [숲길]

  "버들치고개"에서 25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유유히 즐기며 진행하면...


  ['수원-용인 경계 표시]        1:22

  "수원시경계표시"가 있는 곳을 지나는데, '수원시'가 '용인시' 보단 돈이 많은듯...ㅎ
  하기사 인구에서도 비교가 않되죠?
  '수원시'는 백이십만명, '용인시'는 구십칠만명...


  [천년약수터 사거리]        1:25

  이어서 천년약수터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우측 "천년약수터"로 내려 갑니다.


  [수원둘레길-한남정맥]

  직진하는 길은 "광교산 주 등산로"로서 "수원둘레길"과 "한남정맥"이 지나고 있습니다.
  조만간 "수원둘레길"도 한번 돌아 봐야 겠습니다.
  이정표 색깔이 맘에 드는군요. ㅎ


  ['천년약수터' 내려 가는 길]      

  계단이 설치된 내림길로 30여m 내려 가면....


  ['천년약수터' 정경]      1:27~1:38

  "천년약수터"가 하나의 공원을 이루며 펼쳐집니다.


  ['천년약수터']

  "천년약수터"는 "매봉약수터"와 같이 불행이도 음용부적격 판정을 받았더군요.
  그러나 이 물을 마시면 천년을 산다고 해서 음용부적격이라 해도 두 바가지 마셧습니다. ㅎㅎ
  이천년을 살려는지 세균으로 일찍 갈려는지는 몰라도 아직 문제없이 살아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ㅎ

  山中好友林間鳥, 世外淸音石上泉
  각자 해석해 보세요~


  ['서봉사지' 가는 길]      1:39

  "천년약수터"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출발합니다.
  여기서도 이정표를 찾아 진행해야하는데 이정표가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으니 샅샅히 찾아야죠? ㅎ
  지금부터는 [서봉사지]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고...


  ['형제봉능선' 고개]       1:40

  "천년약수터 쉼터"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잠시 오름길을 오르면 갈림길이 몇곳 있어서
  다소 혼란스럽지만, 넓고 선명한 등로로 오르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형제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표시된 이정목이 있는 고개에 오르는데
  앞에서도 언급 한바와 같이 [서봉사지]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너울길]          

  고개에서 [서봉사지] 방향으로 내려 가는 길입니다.

 
  ['형제봉' 허릿길]

  지금부터는 좌측 "형제봉"의 산옆구리를 돌아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는 산옆구리를 13분여 진행하면....


  [삼거리]       1:53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길이 제법 넓은 길입니다.
  좌측 [←성불사]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성불사' 가는 길]

  자동차도 다니는듯한 넓은 길을 따라 7분여 올라 가면...


  ['성불사' 전경]

  절간은 보이지 않고 염불소리만 울려 퍼지는 "성불사" 앞에 도착합니다.


  [갈림길]        2:00

  여기서도 "형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군요.
  "너울길"은 계속 [서봉사지]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뒤에 보이는 숲 속에 "성불사"가 초라하게 있었는데 절간 같지 않아 가 보지도 않고...


  [성불사 약수터]

  정자 쪽으로 가는 길 옆에 "성불사 입구"와 "성불사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의 물은 음용합격 판정을 받았더군요.
  물을 준비 못해 두 바가지 들이키고....


  [정자 앞 갈림길]         2:04       ★ 길조심 ★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 이곳입니다.
  이정표가 있는데 [서봉사지] 가는 방향만 표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형제봉] 방향과 [성복동→] 방향은 확실히 알수 있는데
  [서봉사지] 방향은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자에 있는 등산객들에게 길을 물었는데
  "용인너울길"에 대해선 모른다고.."그런길도 있어요?"라고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여하튼 "용인너울길"은 인기 없는듯한데....
  여기선 [←형제봉] 방향과 [성복동→] 방향 사이에 표시되지 않은 길이 하나 있더군요.
  그 길로 가면 되는데...


  ['서봉사지' 가는 길]
 
  그 길은 이렇게 펼쳐지며, 저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형제봉' 허릿길]        

  이 길은 산비탈길도 있고 오르내림도 제법 있었는데 10여분 진행합니다.
  그러면...


  ['형제봉능선' 고갯길]          2:15

  이정표가 설치된 능선 사거리에 오릅니다.
  이 능선에서도 "형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가 봅니다.
  조사해 보니 "도마치고개"에서 "형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였습니다.
  "너울길"은 [서봉사지]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이곳 이정표에는 안내가 없습니다....
  또 혼동이 오는데...여기선 [신봉동 →] 방향으로 무조건 가 봅니다.
  대략 산옆구리를 돌아 가는게 "용인너울길"이니까...ㅎ


  [내림길]

  나중에 알았지만 "신봉동"에 [서봉사지]가 있더군요.

 
  [산허리길]

  8분여 산허릿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2:23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서봉사지] 방향으로 갑니다.
  [←서봉사지] 안내를 만났으니 잘 찾아 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산너울길]

  다시 7분여 산너울길을 진행하면...


  [신봉동 삼거리]        2:30

  또 다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계속 [←서봉사지]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숲길]

  길은 분명하나 사람들의 통행 흔적은 거의 없는 길을 5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       2:35

  철문이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철문 옆으로 다리를 건너가서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서봉사지]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너울길]

  다시 통행 흔적은 거의 없는 숲길을 5분 정도 진행하면...


  ['코나헤이븐커피점' 위 삼거리]         2:41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등산객이 아닌 일반 나들이객들도 제법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신봉동 '코나헤이븐커피점' 방향]

  이 삼거리 바로 아래에 "코나헤이븐커피점"이 있어 이 삼거리의 이름을
  "코나헤이븐커피점 위 삼거리"라고 제가 표기 한것입니다.


  ['서봉사지' 가는 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방향으로 6분 정도 올라 가면....


  [서봉사지]       2:47

  복원 공사 중에 있는 "서봉사지"를 만나는데
  "현오국사탑비"는 저 위에 있어 올라 가 봅니다.


  ['현오국사탑비']       2:49~3:00
 
  [현오국사비]                                           [보묵 제9호]
  

  "현오국사"에 대해선 아는바 없으니 안내문을 참고하시고...


  [형제봉 조망]

  "광교산 형제봉"이 조망되는데, 이 각도에서 바라보니 새로운 모양으로 보입니다.
  '용인광교산너울길'은 저 "형제봉" 옆구리를 돌아 온것입니다.


  [시루봉 조망]

  "광교산"의 최고봉인 "시루봉"도 조망이 되는군요.

 
  [내림길]

  "서봉사지"에서 5분 정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코나헤이븐 커피점']       3:05

  "코나헤이븐커피점"을 지나고


  [수잔교]       3:06

  이어서 [수잔교]를 지나는데 주택인지 카페들인지 모양을 뽐내고 있습니다.


  [산너울마을. 대하교]        3:08      ★ 길조심 ★

  여기서 길조심!
  "대하교"를 건너지 않고 우측 길로 그냥 내려 가야 하더군요.
  저는 국토지리원 발행 1/25,000 지도를 휴대폰에 저장하고 다녀서 
  GPS 트랙 없이 독도를 하며 이런 길을 찾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이젠 GPS 트랙이 만들어 졌으니 다음에 가실 분들은 저의 GPX를 퍼 가면 쉽게 갈수 있겠습니다.
  GPS 트랙은 "카페 홍어와 무인도"에 있습니다.


  [신봉동 도로]           3:12

  [대하교]에서 4분여 내려 가면 아스팔트 포장 2차선 도로를 만나며...


  ['15-1번' 신봉동 버스종점]        3:15

  이어서 [15-1번 마을버스]의 신봉동 종점을 지나고...


  ['법륜사' 입구 버스정류장]

  '광교산 등산안내도'와 "법륜사입구" 표지석이 있으며
  [법륜사입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해서...


  ['법륜사' 입구]      3:18

  "법륜사"로 올라 갑니다.


  ['법륜사' 가는 길]

  주변 집들을 구경하며 5분 정도 오르면....


  ['법륜사']      3:24

  "법륜사" 앞에 도착합니다.
  좌측 골목 '광교산등산로' 방향으로 진행하면 되더군요.


  ['법륜사']

  "법륜사"의 정문은 이곳인듯...
  좌측 골목 '광교산 가는길'로 진행하면되는데
  건물 벽에 [산너울1길]이란 팻말이 걸려 있더군요.
  아무튼 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는데.....


  ['법륜사' 옆 등산로]

  "법류사" 담장 옆길을 따라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         3:28        ★★★ 길조심 ★★★

  넓은 길은 우측으로 가는데 등산로는 좌측 숲길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측 넓은 길을 따라 올라 가서 고생을 좀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곳에 간단한 이정표 하나만 설치하면 아무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

 
  [묘지길]                                            [묘지]
 
  [삼거리]                                             [길없음]

  우측 넓은 길을 따라 올라 갔더니 규모가 있는 묘지를 만나고
  길을 따라 계속 올라 갔더니 삼거리를 만나는데 길은 여기까지 였습니다.
  그러니까 넓은 길은 묘지길이었던거지요.
  지도를 보고 일반등산로 방향으로 나가니 길은 완전 없어지지만, 
  경험과 지도 독도를 믿고 길없는 길을 잠시 더 진행하니...


  [일반등산로 만남]

  계곡 옆으로 일반등산로가 보입니다.
  잘 찾아 왔습니다.
  후답자들은 조금전 "법륜사" 뒤 삼거리에서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좌측 숲길로 올라 가야겠죠? ㅎㅎ


  [일반등산로 복귀]      3:41

  다시 일반등산로이자 '용인산너울길'에 복귀하여 올라 갑니다.


  [샘]       3:49

  세수를 하며 땀을 수습할수 있는 샘을 지나서

 
  [오름길]

  등산 수준의 오름길을 올라 가면...


  ['수지성당-시루봉 주등산로 능선']       3:54

  "수지성당"에서 "시루봉"으로 오르는 주등산로가 있는 능선에 오르게 됩니다.
  이정표의 [산너울길 ↔] 표기는 오해를 불러 일킬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루봉'과 '수지성당' 방향으로 연결되고 있는 듯 알리고 있지 않습니까?
  미리 조사를 하고 왔기에 "법륜사"에서 올라갈때는 그래도 '수지성당' 방향으로 내려 가지만


  ['수지성당' 방향 능선길]

  이제부터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이 등산로는 지난 5월 10일에 답사 한적이 있습니다.
  산행기가 있으니 참고하시고 http://blog.daum.net/paraanmoon/7801610


  [쉼터]       3:58~4:05

  쉼터에서 좀 쉬었다가 진행합니다.

 
  [능선길]

  14분여 완만한 내림길을 진행하면....


  [쉼터]       4:19

  "소말구리고개" 바로 위 쉼터를 지나 내려 가고


  ['소말구리고개']      4:20

  "소말구리고개"에 도착합니다.
  이 고개는 '신봉동'과 '동천동'을 연결해 주는 고개이며, [산너울길]이 '동천동'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고개이기도 합니다.
  지난 번에 왔을 때에도 영업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오늘도 영업을 하고 있더군요.
  이 아주머니는 칡즙을 팔고 있었는데 지나는 등산객들에게 항상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갈때는 칡즙 한잔 팔아드려야지...칡은 위장에 특효이죠?


  ['소말구리고개' 이정표]

  "소말구리고개"에 있는 이정표엔 [산너울1길] 방향표시가 있으니 길찾기는 쉬운데
  조그만해서 무심결에 못보고 지나칠수 있으니 미리 예습을 하고 출발하세요~~ ㅎ


  [뒤돌아 본 '소말구리고개']

  '동천동' 방향으로 내려 가며 뒤돌아 본 "소말구리고개" 입니다.

 
  [내림길]

  자동차도 다니는듯한 길을 따라 잠시 내려 가면....


  ['용서고속도로']       4:25

  "용서고속도로"가 지나는 [동천터널] 위에 서서 고속도로를 볼수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터널은 [고기터널]이며 능선도 제가 이미 다녀간 등산로입니다.


  ['17-1번' SM루빌 버스 종점]       4:27

  터널 위를 내려 가면 바로 [17-1번 마을버스]의 종점이 있더군요.
  여기서 좌측으로 "손골성지"를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돌아 오지 않을수 없으니 돌아 오는 길도 '너울길' 총거리에 포함 시켜야죠?
  그런데 '용인시'는 돌아 오는 거리를 포함시키지 않았더군요.


  [마을 통과]

  '너울길' 길안내는 전혀 없는 마을길을 오로지 감각으로 "손골성지"를 찾아 갑니다.


  [사거리]     4:31

  골목을 "ㄹ"자로 통과하니 "손골성지" 안내판이 있는 사거리를 만나서
  좌측 "손골성지"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손골성지' 가는 길]

  사거리에서 8분 정도 올라 가면....



  [손골성지]

  [손골성지 안내문]       4:39~4:44

  "천주교 손골성지"에 도착합니다.
  신축 중인 성당 좌측으로 올라 가면 '십자가의 길'이라던가 순교한 신부들의 동상이 있고...
  자세한 안내는 안내판을 참고 하시고....


  [동천동 'SM루빌' 마을 통과]

  이 마을은 "SM루빌"이라는 회사가 주택단지를 조성하여 분양한 곳이더군요.


  ['17-1번' 마을버스 동천동 종점]       4:52

  다시 [17-1번 마을버스]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이 마을버스는 30분에 한대가 운행한다고 하는데 5시에 출발하더군요.
  [죽전역]까지 가는데 '수지지구'를 한바퀴 휘젓고 가더군요. ㅎ
  [죽전역]에서 '분당선'으로 환승하여 귀가했습니다.


  [용인광교산너울길 1코스 구글어스]

  [고도표]

  제가 가지고 다니는 GPS 세개로 측정한 거리의 평균값은 14.5km였으며
  5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고도표에서 보시는바와 같이 오르내림이 좀 있는 등산코스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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