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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세번째 국립공원" "계룡산 남매탑 삼불봉"을 찾아서 상신리-용산구곡-큰골삼거리-큰배재삼거리-남매탑고개-남매탑-상원사- 삼불봉고개-삼불봉-금잔디고개-큰골삼거리-용산구곡-상신리 "우리나라 名山이라 함은" 산 모양이 돌로 이루어진 골산이어야만 산이 수려하고 물 또한 맑고 강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곳에 좋은 터를 부려놓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곳이 우리나라 안에는 개성의 오관산(五冠山) 한양의 삼각산(三角山) 진잠의 계룡산(鷄龍山) 문화의 구월산(九月山)등 네 곳이 있다 - 이중환의 "택리지 擇里志" - 중에서 [구글어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서 출발하여 "큰골"이라고 하는 "龍山九曲"을 통과하여 "남매탑"을 오르고 이어서 "삼불봉 775m" 정상을 오르고 "금잔디고개"를 경유하여 원점 회귀하는 GPS 측정 거리로 8.3km를 갑니다. ['상신리 신야도원 전통문화마을센터' 앞] 10:52 2016년 8월 21일 (일) 맑고 무더위 국민의 세금으로 우리나라 일기예보를 하는 공식기관인 "기상청"에 대해 "니네들 정도의 예보는 나도 하겠다~"라고 비아냥거리며 "구라청"이라고 국민들이 뭇매를 날리고 있는 기록적 더위 속에서... 그동안 너무 더워 쉬고 있던 산행길에 나섯습니다. "대전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로 이동하여 "상신리 신야도원 전통문화센타" 정문 앞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상신리 上莘里"의 " 신 莘"이라는 한자가 집에 와서 조사해 보니 "족두리풀" "긴 모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더군요. 안내판에는 이 마을의 상징을 "여치"로 정해 정문 앞에는 "여치집" 모양을 만들어 놨는데 우측 바로 앞에 보이지요? ㅎ ['상신리' 마을길] 제가 "정암 김광진교수님"과 인연을 맺어 함께한 첫산행이 2009년 3월 15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동학사 입구"에서 "천정골코스"로 올라 "큰배재-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로 가는 "계룡산 등산코스"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스였으니 산행실력도 어느정도 수준급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많은 산님들이 모여 들어 지금은 산악회라기 보다는 "즐거운 모임"이라는 성격이 강해지고.. 그래서 산행실력도 다양하여 모든 분들을 만족시키는 산행코스 선택하기도 조금 어려워지기도 했답니다. ㅎ 또한 오늘은 기록적인 여름 더위와 싸워야하는 날이기도 하여 조금 쉬운 코스를 선택하였다는군요. 그래도 한여름 산행은 어디를 가도 힘들기에 계곡에 퍼질러 앉아 놀다 오는게 상책인데 모두가 계획된 코스를 모두 종주했으니 이젠 산행실력이 일취월장 한듯 보였습니다. [당간지주] 10:56 마을길을 따라 조금 올라 가니 우측에 조금 독특한 건물과 당간지주가 보였습니다. 이 근처에 "구룡사"라는 절간이 있었는데 그 절간의 당간지주라고 추정하는 고려시대 유적이라고..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마을길] 다시 마을길을 조금 더 올라 가면 등산안내도와 화장실이 설치되 있는 곳을 만나는데 이곳 우측에 있는 음식점에서 뒷풀이를 한다고 부산-대구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과 만나는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고... [음식점] 11:02~11:10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는 부산-대구지역 횐님들과 반가운 조우를 하고 ['상신계곡' 입구] 11:10 바로 산행길에 나섭니다. 멀리 오늘 산행코스의 마지막 고개가 될 "금잔디고개"가 조망되는군요. "금잔디고개"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금남정맥"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계곡물은 모두 "금강"으로 흘러 간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 가면.... ['계룡산 상신탐방지원센타'] 11:13~11:17 "계룡산 상신탐방지원센타"를 만나며 오랜만에 만나는 횐님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뵙죠? 만나서 반가웠어요~~!" "모두 오랜만에 만났는데 더 젊어지는 사람들 뿐이니...ㅎ" [계곡 오름길]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서 "계룡산"으로 오르는 계곡의 이름은 "큰골"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대로 피서하기에 괜찮은듯한 계곡으로 보입니다만, 요즘 너무 가물어 하류에만 물이 조금 있어 아쉬움을 남겼는데 그래도 피서를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용산구곡'] "큰골"이라는 이 계곡은 조선말 "취음 권중면"이라는 문신이 "용산구곡 龍山九曲"이라는 테마 계곡으로 이름지었다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시고...ㅎ [계곡길] "큰골"이라는 "용산구곡"은 약1.8km 이어지는 계곡인데 가파르지 않고 정비가 잘되있어 걷기에 편했습니다. "용산구곡" 1.8km를 약 한시간 정도 쉬엄쉬엄 오르면.... ['큰골삼거리'] 12:12 이정표가 설치된 "큰골삼거리"를 만납니다. 오늘 산행코스는 여기서 좌측 [남매탑 1.4km→] 방향으로 [남매탑-삼불봉]을 오르고 우측 [←1.2km 금잔디고개]를 경유하여 이곳으로 다시 내려 올 예정입니다. [오름길] "큰골삼거리"에서 부터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더군요. 40여분 오름짓을 하면.... ['큰배재삼거리'] 12:55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다시 만납니다. 이곳은 "큰배재" 바로 옆에 있는 삼거리로서, "동학사 주차장"에서 오르는 인기있는 등산코스이죠. 제가 처음 "계룡산"을 찾았을때 이용한 등산로를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남매탑고개' 가는 길] "큰배재 삼거리"에서 "남매탑고개"로 가는 길입니다. 경사가 약간 있는 오름길을 10여분 진행하면.... ['남매탑고개'] 1:06~1:16 [해발 590m]라고하는 "남매탑고개"에 도착합니다. 10여분 휴식을 취하고....날씨가 더워 틈만 나면 쉽니다. ㅎㅎ ['남매탑' 가는 길] "남매탑고개"에서 산허리를 따라 8분여 진행하면..... ['남매탑'] 1:24~2:25 "남매탑 男妹塔" "남매탑"에 대해서는 동학사 홈페이지의 설명을 먼저 인용하겠습니다 동학사에서 북쪽으로 1.8km 쯤 오르면 나란히 서있는 2기의 탑이 있다.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량사지(淸凉寺沚)의 5층석탑과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는 7층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계룡산 삼불봉 아래 동쪽 8부능선, 해발 약 590m의 등산로 옆에 있는 이 탑의 사지는 근처에 [청량사淸凉寺]라는 '막새 기와'가 발견되어 청량사지라고 부르고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때 병화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일명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2기의 석탑들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사역내에는 현재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안내판에 공식적으로 알리고 있는 "남매탑의 전설"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때의 한 스님이 이곳에서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었답니다 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왜 수도를 할때 습기 많고, 벌레 많고, 더러운 환경의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는지..??.. 맑고 깨끗한 곳에서 수도를 해야 수도가 잘되지 않겠습니까? (가난하고 갈곳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굴속에 들어 가 살았지요?) 여하튼 그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 입을 벌리고 울부짖고 있었답니다 그 스님이 - 그 스님은 청량사 개산자인 '상원조사' - 호랑이 입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있어서 가시를 뽑아 주었답니다. 며칠뒤, 호랑이는 아리따운 한 아가씨를 업고 와 놓고 갔답니다 스님의 은공에 보답하는 뜻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이곳 안내판에 써놓고 그림까지 그려 안내하고있습니다. 위에 보시는 안내 그림과 설명문이 그것입니다. 제가 조금 더 조사한 내용을 추가하여 제 개인적인 생각을 포함시킨 "남매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 드리면.. 호랑이에게 납치된 그 아가씨는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루는 날 밤에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날에 더스틴 호프만의 '졸업'영화도 아닌데 인간도 아닌 호랑이에게 납치가 되? 에구~ 호랑이는 아릿따운 아가씨를 그것도 결혼 첫날밤에 납치해서 스님에게 성상납을 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아무리 고마웠다해도 그 호랑이 개새끼는 너무 한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러한 전설은 후세에게 교육적으로도 나쁜 영향을 주는듯 한데... 그 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날씨도 무척 추운 겨울이었답니다. [삼불봉의 설경]이 "계룡산 제2경"이라고 하지만 납치된 어린 신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세월은 가고....추위가 물러 가고 따뜻한 봄이 왔답니다. 그 아가씨는 토굴 파고 수도하며 살고있는 스님하고, 한 계절을 첩첩산중에서 함께 살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 스님도 혼인 첫날밤에 납치되 온 그 아가씨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 어느 구석이 찔렸는지 이제와서 남녀의 연을 맺을수 없다고 아가씨를 집으로 돌려 보냈답니다 그러나 그 아가씨의 부모는 딸을 그 스님에게 다시 돌려 보냈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혼식 올리는 날 밤에 호랑이에게 납치되어 어느 산중 토굴 속에서 중하고 한 계절을 살다가 다시 돌아 온 딸을 다시 그냥 받아 들여 다른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중에게 다시 돌려 보내겠습니까? 요즘이면 몰라도 그 당시라면 더더욱 돌려 보낼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ㅎ 호랑이한테 납치되어 중하고 살다 온 여자를 다시 어디로 시집을 보내겠습니까? 그 스님 - 상원조사-는 돌아 온 아가씨와 혼인 할수 없는 '스님'이었기에 부부의 연은 맺을수 없어 '男妹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살았답니다. 처녀 독수공방 시켰단 말인데....?? ㅎㅎ 그들이 죽고 난 다음 그들의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상원조사'의 제자 '회의화상'이 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학사에는 여승들만 사는가요? 이상으로 "남매탑"에 얽힌 전설을 파헤쳐 보았습니다만, 그냥 재미로 읽으시길....전설은 전설일 뿐 ㅎ ['상원암'] "남매탑" 아랫쪽에는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염불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왔었을 때엔 "상원암 약숫물"이 좋았는데 가뭄으로 거의 메말라 병아리 눈물 많큼씩 나오고... [점심식사] 점심식사는 횐님들이 정말 많이 준비하셨더군요. 정성으로 준비해 운송까지 해주시니 고맙고 고마워서 뭔말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 산행기에서나마 감사를 드림니다. 수고하신 분들 앞으로 늙지 않을거예요~~ ㅎ ['삼불봉고개' 오름길] "남매탑"에서 "삼불봉"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깔딱고개였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짧아 13분 정도만 헥헥거리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무더운 한여름에 13분 정도 깔딱이 오르면 누구나 힘들지요? ㅎ ['삼불봉고개'] 2:39~2:45 이정표가 설치되 있는 "삼불봉고개"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다시 "삼불봉"으로 올라야 하는데 매우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체력적으로 좀 힘든 분들을 위해 그래서 여기서 "금잔디고개"까지는 "삼불봉"의 허리를 돌아가는 우회로가 있더군요. 여기서 정상팀과 우회로팀으로 나뉘어 진행하고...ㅎ ['삼불봉 정상'오름길] "삼불봉고개"에서 "삼불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200m 계단으로 8분 정도 오릅니다. 아무에게나 정상을 허락 할수 없고 능력 있는 분들만 오르라고 하는듯 200m 계단은 "三佛"-즉 '세분의 부처'를 만나려면 이 정도는 수도하며 고행의 길을 올라야 한다고 하는듯...ㅎ [삼불봉 정상] 2:53~3:02 "계룡산 삼불봉 鷄龍山 三佛峰 775m" 이 봉우리는 '동학사'나 '천황봉'에서 바라보면 "세분의 부처 모습"으로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하며, 눈 내리는 겨울의 雪景은 너무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래서 [三佛峰 雪花]를 [계룡산 제2경]이라 한다는군요. [인증샷] 기록적인 무더위에도 우회로를 이용하지 않고 정상까지 오른 횐님들의 인증샷을 올려 드림니다. ㅎ 무지 더워 힘들게 올랐지만 오르고 보니 도저히 후회 할수 없다고 좋아했습니다. 수고하셨구요...더욱 즐겁고 안전한 산행 많이 하시기 바람니다. 11월 서울 "한양성"의 "인왕산구간"에서는 "파란문"이 문화해설사로서 직접 해설을 하며 안내 하겠습니다. 정상에 올랐으니 이제부터 "계룡산"을 조망하며 "계룡산"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지나온 길 조망] 먼저 산행 출발지였던 "상신리"를 조망하고 올라온 "龍山九曲"과 "큰배재" "남매탑" 코스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상신리" 뒤로는 "공주시"와 "세종시"가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계룡산 주능선'] 쨘~ ~ 남쪽방향으로는 "계룡산의 하일라이트"가 펼쳐집니다. "계룡산"의 최고봉인 "천황봉 846.5m""쌀개봉-관음봉-자연성릉""금남정맥"이며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산봉우리들이 "계룡산"의 중심부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용의 몸통과 닭의 벼슬" 형상으로 보이시나요? "천황봉-쌀개봉"은 출입금지 지역이어서 일반 산객들은 출입 할수 없는 곳입니다만, 저는 "금남정맥"을 종주하며 탐방 한적이 있습니다. "쌀개봉"은 "디딜방아의 쌀개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쌀개"는 "디딜방아를 양쪽으로 고정 시키는 걸개"를 말 한답니다. "자연성릉 自然城稜"은 인공적인 "城"이 아니라 산줄기 자체가 城 모양이라 붙여졌답니다. 천년 고찰 "갑사"를 감싸고 있는 "관음봉-문필봉-연천봉"은 불교향이 풍기고.... 제가 '조선왕조실록 태조편'을 다시 몽땅 정독을 했습니다. 이글을 쓰기 위해...ㅎ 그리고 '素山 김홍주 산행문화연구소장님'의 설명을 참고하였습니다 1392년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王氏들이 아직까지도 우굴대는 개성이 싫었답니다 그래서 태조2년, 즉 1393년 음력 정월 직접 계룡산에 행차해 산세를 휘둘러 보았답니다. 풍수지리에 일가견을 가진 무학대사가 이때에 이 산의 이름을 "계룡산 鷄龍山"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태조를 수행해 현지로 내려간 무학대사는 新首都 예정지 "신도안 新都案"의 좌우 산세를 살핀 다음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즉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요, [비룡승천형 飛龍昇天形], 즉 "용이 날아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다." 라고 했답니다. "신도안"은 앞에 보이는 "천황봉" 남쪽에 펼쳐져 있는데 현재는 국군통합사령부인 "계룡대"가 자리 잡고... 여기서 말한 "金鷄"는 富의 상징, "飛龍"은 현명한 임금을 의미 한답니다. 즉, 이곳에 도읍하면 풍요한 태평세월이 보장된다는 뜻이랍니다. 무학대사는 金鷄의 ['鷄']와 飛龍의 ['龍']을 차용해 산 이름을 "鷄龍山"이라 부르자 했고 그 말대로 됐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곧바로 新首都를 이곳으로 정하고 공사 개시를 지시해 그해 3월부터 王都 건설의 삽질 소리가 계룡산 골짜기에 메아리쳤답니다. ['삼불봉' 조망] "삼불봉"에서 조망을 마치고 "금잔디고개"로 내려 가며 뒤돌아 본 "삼불봉"인데 여기선 숲으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세분의 부처"로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군요. 그래서 제가 2009년 3월 15일에 "자연성릉"으로 가며 뒤돌아 본 "삼불봉" 사진을 첨부하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무지 친절한 "파란문"이죠? ㅎㅎ [2009년 3월 15일 "자연성릉"으로 가며 촬영한 "삼불봉"] 佛心이 깊은 분들은 "세분의 부처"로 보일 것이고, 무신론자나 타종교를 믿는 분들은 기냥 바위 봉우리로만 보일 것이고...ㅎㅎ ['금잔디고개' 가는 길] "삼불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진행하여 다시 건너편 봉우리로 잠시 가면.... ['금남정맥' 삼거리] 3:16~3:21 해묵은 묘가 있는 봉우리에 오릅니다. 이 봉우리는 "금남정맥"이 지나는 봉우리로서 정맥꾼들에겐 중요한 갈림길이 됩니다. 왜냐하면 "금남정맥"은 여기서 우측 "금잔디고개"로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죠. 오늘 우리는 우측 "금잔디고개"방향으로 내려 가는데.... [현위치] 해 묵은 묘가 있는 이 삼거리봉에는 [현위치 안내도]가 설치되 있으니 참고 하시고 [조망소] 이 삼거리봉의 남서쪽으로 20m 쯤 나가면 조망소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망을 하고 갑니다. ['자연성릉' '관음봉' 조망] 태조 이성계의 "계룡산 신도안"에 대한 천도 건설사업은 1393년 연말 조선 개국 공신 "하륜(河崙)"과 "삼봉 정도전"등의 맹렬한 반대로 파국을 맞습니다. "하륜(河崙)"과 "삼봉 정도전"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계룡산을 반대했답니다. 첫째, 남쪽에 너무 치우쳐 한반도의 동쪽·서쪽·북쪽과 교통이 불편하다. 둘째, 주변에 큰 강이 없어 세금은 물론 물산을 운반할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한다. 셋째, 계룡산의 풍수는 중국의 풍수가 호순신(胡舜臣·송나라)이 말한 이른바 ‘수파장생쇠패입지(水破長生,衰敗立至)’의 땅이다. 즉, 흘러나가는 물이 땅의 기운을 약화시켜 나라가 곧 쇠망할 곳에 해당한다. 홍만종이라는 사람이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라고 하는 책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해 놨더군요.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 즉,鄭씨)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떠났다고... 이 설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그대로 실려 있더군요. 이것으로만 보아도 계룡산에 "정씨가 도읍한다"는 이야기는 서민은 물론, 양반들 사이에도 이미 널리 퍼졌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감록 鄭監錄"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계룡산"은 "정감록"의 진원지 였던거죠. 조정 대신들은 공방 끝에 하륜의 주장을 채택해 계룡산 천도 계획은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 공사 시작 1년만에 중단된것입니다. ['계룡저수지' 조망] 바로 앞에 보이는 계곡에 천년고찰 "갑사 甲寺"가 있는데 숲으로 보이지 않는군요. 조선의 수도가 한양으로 결정되자 계룡산 천도설은 한동안 잊혀졌다고 합니다. 계룡산의 풍수에 대한 평가도 신통치 않았다고하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인문과학지리서를 쓴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은 그의 30년 업적을 기록한 "택리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룡산은 웅장하기가 개성의 오관산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도 서울의 삼각산만 못하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계룡산 신화는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권 싸움과 붕당정치, 부패한 권력, 부정부패, 전쟁등으로 민심은 조선왕조를 이반하기 시작했고 그로 말미암아 다시 "계룡산 천도설"이 고개를 든 것 같다고 합니다. "세종시"를 보면 "계룡산"은 예나 지금이나 王都의 중심부라는걸 실증적으로 느낄수 있지요 [내림길] 삼거리봉에서 제법 가파른 내림길- 즉 "금남정맥' 마루금을 13분여 내려 가면..... ['금잔디고개' 쉼터] 3:35~3:37 "금잔디고개 쉼터"를 만나는데 "삼불봉고개"에서 오는 우회로와도 만나는 곳입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금잔디고개'] "금잔디고개"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수정봉"으로서 "금남정맥"이 지나 "부여 낙화암"으로 가는 산줄기입니다. 좌측으로 내려 가면 "갑사"로 통하고, 우측으로 내려 가면 "상신리"로 갑니다. ['금잔디고개'에서 상신리로 내려 가는 입구] ['큰골삼거리'로 내려 가는 길] ['용산구곡'] "금잔디고개"에서 "용산구곡"을 통과하여 "상신리"로 다시 내려 갑니다. 쬐끔 있는 계곡물이지만 계곡에 발도 잠시 담구며 더위를 씻고 1시간 40여분 걸려 내려 가면.... ['상신탐방지원센타'] 5:10~6:35 오전에 출발했던 "계룡산 상신탐방지원센타"에 도착하고 근처 음식점에서 닭백숙과 닭도리탕으로 뒷풀이를 하며 즐거운 한여름날을 장식 했습니다. "우리나라 名山이라 함은" 산 모양이 돌로 이루어진 골산이어야만 산이 수려하고 물 또한 맑고 강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곳에 좋은 터를 부려놓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곳이 우리나라 안에는 개성의 오관산(五冠山) 한양의 삼각산(三角山) 진잠의 계룡산(鷄龍山) 문화의 구월산(九月山)등 네 곳이 있다 - 이중환의 "택리지 擇里志" - 중에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진잠 鎭岑의 계룡산"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진잠 鎭岑"은 '대전'의 옛 지명으로 현재의 "대전시 유성구" 일대였으며, 현재도 "유성구"에는 "진잠동"이 있더군요. "잠 岑"이라는 한자는 "작지만 높이 솟은 산"을 의미하더군요. "대전"의 옛 지명이 "진잠"이었다는 것은 이번에 "택리지"를 다시 읽으며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제가 가지고 다니는 GPS로 8.3km로 나타났으며 무더위에 걷는 속도가 느리고 휴식시간이 많아 6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횐님들 다음 11월엔 서울 남대문에서 만나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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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삼불봉.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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