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서호 (水源 西湖) [화서역] 5:40 2016년 4월 8일 (금) 지난번 [수원팔색길-제1색 모수길]을 답사할때 꽃이피는 봄날에 다시 한번 더 가보고자 했던 "서호 西湖"를 어스럼 저녁녁에 다시 찾았습니다. [화서역 5번출입구]로 나가니 바로 "서호체육센타"가 있고 ... [서호 꽃뫼공원] 체육센타 앞에는 바로 "서호 꽃뫼공원"이 펼쳐집니다. 수원에선 제법 유명하다는 "웨딩펠리스"라는 예식장이 보이고 [수원성감리교회] 공원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물은 "수원성감리교회"라는 건물이고... [벚꽃터널] "서호천"이 흐르는 개천가로 나가니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12월에 이 길을 걸으며 "꽃피는 봄날"에 다시 와 꽃 구경을 하리라 다짐한바 있는데 오늘 찾아와 보니 그런데로 한번쯤 구경 할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단지 저녁 어스럼 시간이어서 사진빨이 나빠 화려한 봄색깔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군요 [여기산] "여기산 麗妓山 104.1m" "서호"를 아우르며 솟아있는 "여기산"은 산의 모습이 아름다운 기생의 자태와 같다고 麗岐山이라 한답니다. "서호" 주변은 우리나라 농업발전의 요새라 할 정도로 관련 기관과 시설들이 움집해 있죠 우리나라 농업 과학화, 특히 신품종 개발의 개척자라 할수 있는 "우장춘박사"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장춘 박사" 하면 제일 먼저 생각 나는 것은 무었인가요? 대부분 "씨없는 수박 발명가"라는 한구절이 떠 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씨 없는 수박"은 일본 교토대의 "기하라 히토시 교수"가 처음 만든 것이고 "우장춘박사"는 씨 없는 수박의 종자를 한국에서 처음 재배에 성공하여 보급한 사람이었는데, 우리들은 대부분 "우장춘 박사"를 "씨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해방 후 어려웠던 시절 학교에서 그렇고 그런것으로 그렇게 배워서이죠. 이런 교육적 헤프닝은 가난한 우리나라 백성들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을까.... 개발독재를 향한 독재권력자들의 잔꾀였을까...뭘까 [우장춘 박사 묘] [새싹교 앞] [새싹교] 지난 겨울에는 공사 중이었던 "새싹교"가 완공되었군요. [삼거리] "새싹교"를 지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수원팔색길-제1색 모수길]은 좌측 호숫갓길로 진행하는데 오늘은 '농업과학연구소' 안을 통과하여 진행해 봅니다. ['농업과학연구소' 안 벚꽃길] 꽃이 활짝 폈습니다. 며칠 안으로 다시 꽃잎은 지겠지만 이 순간 만큼은 절정을 이루고 있어 보기 좋습니다. [서호] "우장춘 박사"는 西湖를 바라보며 잠자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역사를 이번 기회에 한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을미사변" 아시죠? 쪽바리들이 우리나라 국모인 "명성왕후"를 시해한 사건입니다. "명성왕후" 시해 사건은 쪽바리들이 한짓이라고 모두 믿고 있지요? 물론 직접 칼을 휘둘러 "명성왕후"를 죽인 놈들은 쪽바리들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권력의 중심부인 경복궁에 침입하여 왕후의 침전으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들어 가서 칼을 휘두를수 있기 위해선 경복궁을 지키는 우리나라 경비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경복궁 대문을 활작 열어주고 고종황제와 민비의 침전으로 길을 안내한 장본인이 우리나라 경복궁 경비 제2대대장이었던 천인공로할 인간 친일파 "우범선"이었습니다. 그런 천인공로할 짓을 한 민족의 반역자인 "우범선"의 큰아들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제가 "우장춘 박사"라면 믿으실겁니까? ㅎ [운동장] "명성왕후"를 실제 시해한 핵심 조선 친일파 인간은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인 "우범선"입니다. "을미사변" 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에서 숨어 살던 "우범선"은 일본인 여자 "사카이(酒井ナカ")와 결혼하여 "우장춘 박사"를 낳고, "고영근"이라는 애국심에 불타는 "고종"의 자객에 의해 살해 당해 죽었습니다. 일본인 어머니에 의해 가난하고 어렵게 자란 "우장춘"은 동경제국대학에서 "種의 합성"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 育種學者가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한국국적으로 일본 속에서 살고 있을 즈음 해방이 되고... 1950년 '이승만 정권'은 한국말 한마디도 못하는 "우장춘박사"를 엄청난 돈을 들여 초빙하여 그가 사망하던 1959년까지 만 9년 5개월간 우리나라 농업과학연구소 초대 연구소장으로 취임시키고 우리나라 땅에 맞는 종자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 농업 발전에 혁혁한 공적을 쌓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천인공노할 역적이었다고 아들까지 싸잡아 응징 할수 없는 대표적 父子관계 - - - 을미사변의 주범 중에 한명인 친일파 "우범선"과 우리나라 농업발전의 선구자인 "우장춘박사"입니다. [항미정] "항미정 杭眉亭" "서호"에는 "항미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杭州)에는 이곳 서호가 이름을 따온 오리지날 "西湖"가 있지요. 항저우의 "서호"는 무척 아름다워 "항주의 미목(眉目)"이라고 한답니다. 저도 두어번 다녀 온바 있습니다만... 과연 "항주의 미목(眉目)"이라 할만 한데... 이 말의 뜻은 "西湖가 '서시'의 눈섭처럼 아름답다"라는 뜻이라는데 "서시"를 알아야 그 본뜻을 알수 있겠죠? 중국 4대 미인 중에 한명인 "서시 西施"를 아시나요? 중국 본토 발음으로는 "시쓰"라고 하더군요. 중국의 고대 4대 미녀는 서한 원제(元帝) 때의 궁녀 '왕소군(王昭君)', 삼국시대의 '초선(貂蝉'), 당대의 '양귀비(杨贵妃)', 춘추시대 월국(越國)때의 '서시(西施)'이죠. [항미정] "서시 西施"...본토발음 "시쓰" 어느 정도 예뻣는지 설명드리자면 "서시"가 어느날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맑은 강물에 비치자 이때 물고기들이 물에 비친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에 도취되어 헤엄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하는 고사가 전해져 내려 올 정도로 예뻣답니다. ㅎㅎ 현재 서시의 출생지라고 알려진 저장성의 제기시에는 서시가 빨래하던 전설의 장소를 완사(浣紗)라 하여 관광지로 조성하여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는데 남자들이 무지 다녀 간다는군요. ㅎㅎ 저도 갔다 왔어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들려 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ㅎ 물고기들까지 홀려 버릴 정도의 미모를 가졌다는 "서시"는 기원전 5세기경 중국 월나라의 여인이었답니다. 월나라가 세력이 약해 오나라에 정복 당할려고 할때, 월나라의 장수가 미인계를 썻다죠? 다름아닌 월나라의 미인 "서시"를 오나라 왕에게 갖다바쳤답니다. "서시"를 선물 받은 오나라왕 '부차'는 밤이나 낮이나 "서시"와 짝짜쿵~♡짝짜꿍~♥하며 정치는 내팽개치고 사랑에만 빠지게 되었답니다. 결국 오나라는 힘을 잃고 월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망했답니다. 미인계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고하죠. [항미정에서 바라보는 서호] "서시"는 오나라왕 '부차'와 사랑을 너무 찐하게 해서인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평상시 얼굴을 찌푸리고 찡그리며 다녔다는데, 얼굴을 찌푸리고 찡그리며 다니는 그 모습까지도 너무 아름다웠다네요. 그래서 그 당시 여자들이 자기도 이뻐 보일려고 모두 얼굴을 찌푸리고 찡거리며 다녔답니다.ㅎ 이쁘니까 찡그려도 이쁜거지 아무나 찡거린다고 다 이쁘게 보이나요? ㅎ 더 못생겨 보이겠죠? ㅎ 이때에 유명한 단어가 탄생되는데 바로 "빈축거린다"라는 말입니다. "찡그릴 빈 嚬"과 "찡그릴 축 蹙"으로 쓰는 "빈축 거린다"라는 말로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행위를 비아냥거리는 말로 "빈축거린다"라는 말이 탄생되었답니다. 요즘 성형수술로 이뻐질려고 하는 인간들도 빗대서 설명할수 있겠군요. ㅎ "생긴대로 삽시다" "미모지상주의"는 타파하고 心性을 중시합시다!~~ㅎㅎ [수문] [여기산 조망] [서호 둑방길] [서호]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는 "서호 西湖"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고유명사화 된 지명이지요. '숭례문'을 "남대문"이라하고 '흥인지문'을 "동대문"이라고 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서호"의 본명은 "축만제 祝萬堤"로서 "정조대왕" 재임시절에 "華城"을 축조하면서 자급자족 도시로 만들기 위한 인프라였답니다. 수원에 네개의 저수지를 그때에 만들었답니다. "만석거" "축만제" "만년제"... [낙조화장실] 수원의 화장실은 "화장실 문화의 산실" 다웁게 어딜 가나 특징있게끔 만들어 놨습니다. [화서역] "서호"를 한바퀴 도는데 한시간 정도가 걸렸군요. "화서역"으로 다시 돌아와 전철을 타고 귀가하였습니다. 낙화 이형기 詩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홍어와 무인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