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남원 도보여행』
『남원시내 역사유적 도보여행Ⅲ』광한루원
['실트랙']
「1부-2부」에 이어 「3부」는 "남원의 시그니쳐"인 "광한루원"을 둘러 봅니다.
['광한루원 동문']
2024년 5월 23일 (목) 대체로 맑음
"광한루 정문 廣寒樓동東門"
"광한루원 廣寒樓苑"의 정문에는 "청허부 淸虛府"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황희 정승>이 귀양 와 지은 <광통루>로 시작되었는데
하늘나라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이 "광한청허부 廣寒淸虛附"라고 해서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신선이 되고파 이상향으로 "달나라 월궁 月宮"의 "광한청허부"와
견줄려고 지은 이름이라고
['광한루' 지도]
<광한루> 전체 규모를 네이버 지도로 미리 알아 보고 정문인 동문을으로 들어 가면...
['옥지환']
먼저 조형물 하나가 너른 광장 가운데에 설치되 있는게 보입니다.
"옥지환 玉指環"이라는 조형물인데 "옥으로 만든 가락지"랍니다.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춘향>에게 장원급제하여 돌아 오겠노라고 징표로 준 가락지랍니다.
하늘나라 궁전을 상징한다는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첫삽을 뜨고 <정인지 충신> <송강 정철>등이
완성 시켰지만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가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지는 <광한루>입니다.
['충혼불멸비']
<광한루>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가면
<광한루>엔 어울리지 않는 "충혼불멸비"가 설치 되있습니다.
<6.25전쟁>시 지리산등에서 저항한 공비들과 싸우다 전사한 민간인과 청년들을 추모하는 비라고
['단심문']
"춘향사당"의 정문인 "단심문 丹心門" 안으로 들어갑니다.
['춘향 사당']
그러면 "춘향사당 春香祠堂"을 만나는데 "열녀춘향사 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춘향 영정']
<춘향 영정>이 봉안되 있습니다.
['비석군']
<춘향사당> 옆에는 "비석군"이 있는데 <남원>과 관련있는 인물들의 칭송비들이었습니다.
<이몽룡>의 실존인물 <성이성>의 아버지인 <성안의>는 제일 오랜 기간 재임한 <남원부사>로 여기에
공덕비가 있다는데 찾아 보았습니다만 실력없어 찾을수 없었고....
['광한루']
이어서 <광한루 북문> 앞에 "광한루 廣寒樓"가 <달나라 궁전> 같은 위용을 보이며 나타나는데
"湖南第一樓"라고 하는군요.
"광한루 廣寒樓"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 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 랍니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광한 廣寒>은 달나라 궁전을 뜻하지만, <춘향과 이몽룡>이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는게 더 알려져 있죠.
['광한루 측면']
<광한루> 옆에서 바라보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詩가 있더군요.
['다산 정약용 시']
['광한루 전면']
"광한루 廣寒樓"는 <보물 제281호>랍니다.
['광한루' 앞]
<광한루> 앞 연못에는 전설 속의 靈山인 <삼신산 三神山>을 세개의 섬으로 만들어 놨는데
<진시황>의 명령으로 <불노초>를 찾아 나선 중국의 <서불>이 우리나라 대표산을 탐험한데서
<한라산=영주산> <금강산=봉래산> <지리산=방장산>을 지칭한답니다.
['영주각']
연못에 있는 세개의 섬 중에 좌측 섬이 "한라산"을 의미하는 "영주산"이며
<영주각>이라는 전각을 세워 놨고
['방장정']
우측에는 "지리산"을 의미하는 "방장산"이 있는데 <방장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방장정'에서 '광한루' 조망]
<방장정>에서 <광한루>를 조망합니다.
<황희 정승>이 <광통루>를 세우고 난후 1592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요천>의 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어 "은하수"같다고 했답니다.
['김삿갓의 시']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난고 김병연 선생"도 다녀 가셨군요.
['방장정'에서 '오작교' 조망]
"송강 정철" 선생이 '전라관찰사' 시절 "오작교 烏鵲橋"를 놓았다는데
전설 속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표현 한것이라고...
['송강 정철의 시']
우리나라 국문학사에서 최고로 꼽는다는 <송강 정철 선생>의 시도 한수 읊어 보고 갑니다.
['자라돌']
다시 <광한루> 앞으로 나가면 "자라돌 鰲石"이 있는데
거북이 같은 큰 "자라"가 연못으로 입수하려는 듯한 바위가 눈길을 끌고
['오작교']
"오작교 烏鵲橋"
"까마귀"와 "까치"가 줄을 서 만든 전설 속의 "새다리"라죠.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오작교>에서 만나 한맺힌 사랑을 나눈다는 다리이죠.
'오작교'가 한자로 "烏鵲橋"라고 쓰니 "까마귀와 까치가 만드는 다리"라는 의미이죠
'직녀'는 체중이 가볍고 날씬했으니 '까치 머리'를 사뿐히 밟고 지나가고,
'견우'는 빨리 '직녀'를 만나고 싶어 무거운 체중으로 '까마귀 머리'를 마구 밟고 지나 갔다죠? ㅎㅎ
그래서 까마귀는 대머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실제 대머리 새입니다.
['오작교']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청춘 남녀의 애닮은 사랑 이야기라고들 알고 계시죠?
이 전설의 핵심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교훈적 이야기"입니다.
"견우와 직녀 설화"는 중국 한국 일본에만 있는 설화인데 농경사회의 대표적 설화이죠.
"牽牛와 織女"이니 한자를 풀이하면 "소 키우는 청년"과 "베 짜는 아가씨"이죠
이 청춘 남녀는 서로 사랑을 하게 됬는데 사랑도 좀 적당히 해야 하는데 너무 심했답니다.
농경사회에서 젊은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는데,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져
일은 내팽개치고 사랑놀이를 하며 놀아 났답니다.
"소는 누가 키우냐!" "베는 누가 짜냐!" (개그맨들의 유명한 멘트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참다 못해 이들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너희들은 일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일년에 한번만 비오는 칠월칠석날에 잠시 만나거라~"
젊은이들이여 열심히 일하라~ 그렇지 않으면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라는 교훈적 얘기이죠.
['완월정']
"완월정 婉月亭"
<완월정>은 1971년에 신축된 수중누각으로 '춘향제 행사'의 주요 무대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남문']
<완월정>에서 <남문> 방향으로 나가면 좌측에 <월매집>이 보입니다.
['월매집'']
"월매집 月梅宅"
<춘향이>의 엄마 <월매>는 "관기 官妓"였음이 틀림없지요.
그러니까 <광한루> 안에서 생활 할수 있었을테니까
['월매집 본채']
"본채와 마당"
대문을 들어 서면 마당이 제법 넓고, 본채가 앞에 있으며 우측에 <부용당>이 있습니다.
부엌과 각 방을 돌아 보면....
['부엌-'방자와 향단이']
"방자와 향단이"
부엌에서는 <방자>와 <향단이>가 썸타고 있고...^*^
['월매방']
"사랑의 약속"
큰방인 <월매방>에는 <춘향이>에게 <이몽룡>이 '사랑의 약조'를 하고 있습니다.
['춘향이 방']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춘향이 방>이 눈길을 끌고
['부용당' 앞]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 앞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 있는데
['백년가약']
<부용당>에서는 첫날밤을 보내는 <춘향>과 <몽룡>이가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몽룡>이는 실존 인물이란게 이미 밝혀졌죠
기록을 토대로 연구한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본래 이름은 "성이성 成以性 1595∼1664"으로 조선조 <광해군><인조>때의 실존 인물이랍니다..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는데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이미 죽고 없었다는 것이 기록인데
소설이나 판소리는 미화하고 약간 꾸며서 기록과는 좀 다르지요?
<춘향이>의 성은 알수 없는데 소설에선 <성이성>의 성으로 바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장원급제 기원단']
<춘향>이와 <월매>가 한양 간 <이도령>의 장원급제를 기원하던 우물가 기원단이라고...
['춘향이 그네']
<월매집> 옆에는 <춘향이 그네>가 있고
['춘향관']
<춘향관>을 둘러 보고 나오면
[영화 속의 '춘향이']
벽에는 <춘향이>를 연기한 유명한 배우들이 열거 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은 <춘향이>가 되었었군요.
['광한루원' 정문]
오후 1시53분부터 2시38분까지 약45분 정도 <광한루원>을 둘러 보았습니다.
<광한루원 동문> 앞에서 <Ⅲ부>를 마치고....
『남원시내 역사유적 도보여행』은 <Ⅳ부>로 이어 집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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